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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3:57 1,650회 0건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이유...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간의 경력이 알려졌는지 과외문의는 많이

들어오는 편이지만 난 내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다. 어차피 과외란 것이 봉사활동은 아니

었기에 년말 쯤 세 명만 선택을 한다. 학생들의 성적표와 집안의 내력을 보고 부모와도 면

접을 한 뒤 세 명의 학생만 받았지만 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가르쳤고 내 공부를 방해받

지 않기 위해서 화, 목만 가르쳤다. 학부모들이 지출해야할 과외비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수준을 넘었고 그러한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은 나를 찾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불평은

커녕 그저 가르쳐준다는 것에만 감사했다. 철저한 공부를 시켰고 때로는 매를 들기도 했지

만 그들의 부모들 이상의 기대를 충족시켜왔고 그것은 나에게도 꽤나 만족을 주는 과정이었

으며 내 마음에 드는 아이들로만 고르기 때문에 이러한 생활이 그리 어려울 것은 없었다.

나이차도 있었으며 여자들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어설픈 문제들 역시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 애를 알기 전까지는. . .


이번 텀에서는 두 명의 여학생과 남학생 하나가 같은 팀이었는데 몇 달 동안은 예전과 같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평소에도 모범생이던 그들은 더 높은 점수를 얻

게 되었고 매번 번갈아가며 30분 동안 그들과의 일대 일 면담을 통해 아이들은 시험에 대

한 부담 보다는 시험이후에 주어질 새로운 생활을 상상하며 고된 가르침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 또한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나에게 닥쳐올

변화들에 대한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한 과거의 반복이

아니며 삶이란 끊임없는 우연과 필연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에 나는 예전의 도도함을 버

려야만 하였다. 그 일들도 내 삶의 일부분이기에 예측하나 확정할 수는 없는 인생의 불확실

성의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정한 룰을 따르는 한 그들에게 누구보다 자상했지만 내가 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엄격함으로 그들을 대했고 종아리에 피멍이 들게 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그게 싫다면 관

계를 끊으면 되지만 어느 학부모라도 그러한 일로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분들은 없었다. 그

러한 엄격함은 나에게도 적용이 되기에 아이들에게 틈을 주는 일 따윈 하지도 않았으며 아

이들 역시 묵계에 따라 내 뜻을 거스르는 일이 드물었기에 사제의 정 보다 형제들 간의 끈

끈함이 우리를 묶어주었고 예전의 제자들 역시 지금까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꽉 막힌 것도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유두리는 주었다. 그날도 그러했다. 짙은 하

늘에서는 끊임없이 눈이 내렸고 쌓이던 눈은 어느새 도로위에서 차들의 자취를 감추게 했

다. 그러기에 경아와 인협이의 전화에 흔쾌히 스터디를 미루었고 그 애에게도 전화를 했지

만 연결 음만 들릴 뿐 끝내 스터디가 연기된걸 알리지는 못했다. 하는 수 없이 한 시간을

넘어 걸어서 눈사람이 되다시피 하여 오피스텔에 도착하였다. 겨우 시간에 맞추긴 했지만

추위에 시달리고 몸이 젖어서 급하게 샤워만 하고 그 애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락도 없었고

모일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애가 오지 않았기에 속으로만 화를 삭이고 있었는데 아홉시 반

이 지나서야 초인종이 울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 애인 것을 알기에 묻지도 않고 화난 얼굴로 문을 열었지만 젖은 머리가 다시 얼도

록 긴 거리를 걸어왔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알만 하기에 조용히 비켜서며 들어오기를 기

다렸다. 하지만 그 애는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추위에 떨면서도 들어올 생각조차

못하고 머리를 숙인 채 자신의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에

화난 마음을 누르며 들어오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미동도 않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긴 머리

끝에 달려있는 얼음과는 달리 신발은 눈길을 걸으며 모두 젖었기에 나무로 바닥을 깐 오피

스텔이 더러워질까봐 못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 애라면 그러고도 능히 남을 아이였

다. 가끔씩 하는 농담에도 그저 입 꼬리만 잠시 움직일 뿐 두 시간을 가르치면서도 말 한마

디 듣기 어려울 만큼 내성적인 아이였기에 아무 걱정 마라며 손을 잡아끌다시피 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애의 상태는 심각했다. 신발 뿐 아니라 외투며 치마

까지 젖은 상태였으며 추위로 인해 눈에 띄게 떨고 있었기에 내 운동복과 함께 욕실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 보니 난감했다. 그 아이의 집에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를 않았고 설사 전화

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날엔 차를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그 아이뿐

아니라 나도 오랫동안 눈 속을 걷지 않았던가.


나는 여자로 느껴지는 사람이 없었기에 복잡한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살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상황이 그러하

기에. 욕실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그치고도 오랫동안이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니 조그맣게 대답소리는 들렸지만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을 재촉하고서야 겨우 문을 열고 나오긴 했지만 자기의 발가락을 보는 모습은 여전했

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공부할 여건은 안 되고 하니 상담이나 하려고 따뜻한 코코아를 타서

그 애 앞에 놓고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애의 어머니는 비록 혼자이긴 하지만 당당

한 모습이셨고 외국에 출장을 자주 가신다고 저번 면담 때 들었었다. 대부분 내가 말을 하

기는 하였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는 동안 그 아이를 통해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실

은 어머니가 명품을 취급하는 일종의 보따리상이셨고 자기의 학비가 버거워 요즈음에는 거

의 뵐 수도 없다는 말을 하는 사이 고개를 숙인 그 아이의 젖은 머리칼 사이로 물기가 번졌

고 나는 못 볼 것을 본 듯 화들짝 놀라 마른 헛기침만 해대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가 측은하게 느껴졌고 가냘픈 몸에 헐렁한 운동복을 입은 모습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밤을 샐 수는 없는 노릇이니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그 애가 눈물을 닦기를 기다린 후 하나밖에 없는 침대를 그 애에게 내어주며 난 보일러 온

도만 높인 채 옷을 두껍게 입고선 잠을 잘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 아이는 도무지 침대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땜에 내가 불편한 게 싫었던지 막무가내로 버티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애를 바닥에 재울 순 없는 노릇이고 둘이서 같이 침대에 눕는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억지로 다그쳐서 침대에 누이곤 나도 조금 떨어져서 바닥에 대충

자리를 잡고 누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청했지만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아이는 가냘픈 몸매

에 순진한 듯한 이미지를 가진 얼굴이 꽤나 이쁜 아이였지만 여자로 느껴본 적은 없었으며

지금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아이가 흘리던 눈물이 자꾸만 내 가슴에 떨어지는

듯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자고 있지 않다는 것 또

한 쉽게 알 수 있었다. 미약하지만 침대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두운 하늘에 내리는

눈 사이로 힘겹게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만이 간신히 그 아이의 아픔을 나에게 알려주었고

난 그 불빛을 원망하며 어쩔 줄 모르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몇 년도 더된 이야기지만 여자와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다. 서로 애타게 사랑하던 사람과의

가슴 떨리는 밤을 보낸 것이었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여자에 대해 무덤덤하지는 않을 것이

다. 상병때 귀중한 휴가도 다 보내버리고 부대위치상 복귀 전날엔 인근 도시로 가야했고 내

동기들과 여관에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직 딱지도 못 뗐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짖굳

은 동기들의 성화에 전화하는걸 조금 과하게 들이킨 술기운에 모른척하고 있었으며 동기들

이 2차를 나간사이 나이가 든 아주머니가 들어와도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내 나

름의 상상과는 달리 익숙한 손길로 군복을 벗긴 뒤 콘돔을 씌우고는 올라와서 굉장히 빠르

게 상하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정을 했고 그

아주머니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돈을 챙긴 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뒤돌아 나가버렸

다. 물론 그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삶의 찌꺼기가 쌓인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허무했고 여자에 대한 환상은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으며 솔직히 내가 조루가 아닌

가하는 불안감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한 일이 있었기에 복학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

면서도 친구나 동생 이상의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 날도 물론 여자로서의 감정을 느꼈다기 보다는 내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고 만족할만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했던 그 아이가 사실은 나로 인해 더 외로움에 떨며 가정

이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가 가졌던 자부심과 자신감에 금이 가

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이 다만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라는 내 자신이 너무 무기

력하게 보였고 그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잠을 청해볼 생각도 못한 채 그 아이가 빨리 잠에

빠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 애가 애써 다문 입 사이로 계속해서

흐느낌이 새어나왔으며 몸의 떨림마저 더해가는 것 같았기에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그 애

에게로 다가갔다. 나의 움직임에 놀란 듯 애써 잠을 자는 척 하지만 흐르는 눈물만은 어쩌

지 못하는 모양이다. 보다 못해 티슈를 가져다주었으나 꼼짝도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안타

까운 마음에 내가 눈물을 닦아주기는 하였지만 여자의 우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운지는 몰

랐다. 단지 내가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학생에 불과했지만 희미한 가로등에 비친 눈물자국

은 내 가슴을 그대로 뚫어버렸다. 그리고 그 아이의 눈물 자국을 지울 수 있다면 내 심장의

반을 도려낸대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했던

가? 공중에 붕~ 뜬 듯한 나를 가느다란 이성의 편린이 간신이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늦게

찾아온 사랑이 그 아이의 고통을 더 이상 참아보지 못하고 가슴으로 안게 하고 말았다. 그

리고는 거추장스러운 두꺼운 옷을 벗을 생각도 못하고 그 아이의 옆에 누워 팔 베게를 해주

고는 가만히 안고만 있었다. 물론 더 이상 나의 움직임은 없었지만 여전히 잠을 이루지는 못

했다. 나에게 안긴 뒤로 눈물을 그치고도 잠에 들지 못하기로는 그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

다. 둘 다 자는 척 했지만 깨어있다는 것은 서로가 알고 있었다. 그 아이의 커져만 가는 심

장 고동은 내 귀를 울리는 듯 했으며 내가 간간이 침을 삼키는 소리는 온 동네를 깨울 것처

럼 크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흐리지만 붉은 가로등에 비친 얼굴이건만 쌓여진 눈보다도 더

하얗게 느껴졌으며 실눈 사이로 보이는 그 아이의 속눈썹이 여전히 떨림을 멈추지 않고 있

었다. 눈을 뜬데도 그 아이가 나를 볼 확률은 우연히 주운 복권이 당첨되는 것보다 더 낮았

을 것이지만 왠지 나 역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아이를 볼 용기가 없었다. 분명 그리도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하지만 마음만은 떨림 속에서도 편안함이 찾아왔고 그 아이의 향기는

시간이 그리 더디 흐르던 좀 전과는 달리 순식간에 창밖을 밝히고 말았다. 그렇게 영원

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나는 선생이었고 그 아이는 내가 책임을 지고 있는 아이었기에

뜨기 싫은 눈을 떠야했으며 그 아이의 젖은 옷과 구두를 챙기고선 새벽에 뿌려진 듯한 모레

로 지저분해진 길을 따라 같이 그 아이의 집으로 갔다. 분명 좋은 아파트였지만 가녀린 그

아이가 혼자 지내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그 아이의 평소 행실로 인해 그 어머니는 아무런

걱정을 않고 외국을 다니겠지만 밤마다 남겨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그 아이를 생각하면

그 아이의 어머니의 당당함이 뻔뻔함으로까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의 냉정

함은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의 비정함은 인정과 배려를 사치로 전락시키는 게 현실

이지 않는가.


나 역시 그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문을 나섰지만 밤을 샌 피로는커녕 그 아이의

아픔에 정한 방향도 없이 무작정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하릴 없이 걷던 내 눈에

휴대폰을 파는 가게가 띄었고 급하게 재촉하여 제일 작은 것으로 구입해서는 얼른 그 아이

의 집으로 갔다. 스터디가 연기된걸 핑계로 거기까지 가기는 하였지만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

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문득 시계를 보니 열두시가 다되어가는 것이었다. 하기야 그때까

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다는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허탈함이란...


이튿날 둘만 스터디에 참석했고 그들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을 하다 문제만 내주고는 베란

다에 가서 하릴 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그래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학생들에게 평소

처럼 대했고 열한시가 되자마자 학생들을 보내고선 다시 그 아이의 집으로 달려갔다. 놀라

서 나온 그 아이에게 나라고 안심을 시켜주곤 들어오라는 그 아이의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

한 채 연락이 안돼서 너무 답답했다는 핑계로 전화기만 안기고는 도망치듯 오피스텔로 돌아

왔다. 몸도 마음도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고 감히 전화를 걸지도 못하고 눈을 뜬 체

로 밤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평소와는 달리 외로움이 심장을 후벼파는 듯 했으며 또다시 밤

이 긺을 한탄하며 창밖이 밝기만을 기다려야만했다.


담번에는 꼭 하도록 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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