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대리님 저예요."
사무실 문이 살짝 열리면서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요?"
"다 아는 수가 있죠. 지난 번일 고마워서 엄청 수소문 했걸랑요."
"수소문? 그런다고 내가 일하는델 누가 알려줬지?"
"호호, 가요. 제가 점심 살께요."
동료들은 별안간에 문을 밀고 들어온 늘씬한 미인의 얼굴에 우선 놀랐고, 전혀 여자한테 무관심하던 최대리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더 놀란 것은 그 여자의 방문을 전혀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이봐, 최대리. 누구야?" 김대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물었다.
"응, 두어달 전 산에서 잠깐 본 적이 있는 아가씬데 난 잘 몰라."
"그런데 뭘 고맙다며 여기까지 찾아왔데?"
"글세, 내 버릇 알잖아. 절대로 명함이나 이름 안밝히고 조용히 사는 거."
"잘알지. 너 처럼 명함이 필요없으면서도 꼬박꼬박 명함 인쇄하는 놈은 첨 봤으니까."
"에잉. 다른 사람 명함 떨어질때쯤 내 것도 떨어졌겠지 싶어서 총무과에서 일괄 신청하니까 서랍속에 명함만 수북히 쌓이는거지 뭐.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쳐 넣을 수도 없고 귀찮아 죽겠구만."
"야야, 그나저나 저 아가씨 얼굴 정말 짱이다. 한건 한것같은데?"
"잘 모르는 여자이라니까 그러네."
"너 정말 몰라?"
"정말이래두. 니가 관심있는거 아냐?"
"기회만 된다면 짱이지..."
"좋아. 저 아가씨가 뭔일로 점심을 사겠다는지 모르지만 일단 밥먹고 돈은 네가 내라."
"나도 같이가자구?"
"얌마, 일단 투자를 해야 뭘 건질게 아냐?"
"알았어. 저 정도 여자라면 맨날 쏘겠다."
"대신, 저 여자가 돈내면 넌 똥되는거다. 알았지?"
"알써, 그럼 어서 나가자."
괜한 일로 사람 귀찮게 한다 싶은 마음으로 최대리는 김대리를 대동하여 문 앞에 서 있는 여자와 가까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은근히 최대리와 바짝 붙으며 살짝 팔장을 낀 느낌으로 걷고 있었다.
"최대리님, 제가 와서 놀랐어요?"
"놀라긴요. 그냥 놀란척 한거죠."
"근데 제 이름은 알아요?"
"아뇨, 댁의 이름도 모르고 내 이름도 알려 드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불쑥 사무실로 찾아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네요."
"그날 저를 구해주시곤 말없이 떠났잖아요.
정신을 차린 후에 절 구해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더라구요.
은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실례다 싶어서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인상착의를 대며 계속 물었더니 누군가가 최대리님을 아는 분이 있더군요."
"수 많은 사람 중에선 저를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저만 덩그런히 구해놓고 친구들한테 인적사항도 안남기고 사라지면 속이 편해요?"
"할일을 한 것 뿐인데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요?"
"야야, 식당가에 다 왔다. 밥먹자." 얘기를 말리며 김대리가 식당가로 들어섰다.
"뭘 드실래요?" 여자가 물었다.
"콩나물비빔밥 하는 집 있는데 그리 갈까요?"
"전 양식이 먹고 싶은데. 괜찮으면 할 얘기도 있으니 레스토랑으로 가요."
"그럼 한식과 양식으로 의견이 갈렸으니 내가 결정하면 되겠군. 양식 먹으러 갑시다." 김대리가 앞장 서며 레스토랑으로 들어선다.
"양식 안좋아해요?"
"오늘은 얼큰한걸 먹고 싶었는데 밀렸네요."
"레스토랑에서도 얼큰한건 있을꺼에요."
경기가 나쁘니 뭐니 해도 사람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제법 북적거리는 식당가 중에서 우리는 빨간 벽돌로 내벽을 쌓은 뒷편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인테리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고풍스러운 듯 꾸몃겠지만 초라한 구석이 많은 집이라서 이런 곳에선 오히려 밥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모락모락 김이 넘치는 차 한잔을 마실 수도 있어 좋겠다는 생각에 쇼파에 등을 깊이 묻어버렸다.
"그날 전 친구들이랑 계곡을 따라 산행을 하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들이라서 겨울 산행은 위험하다 싶었지만 따라 나섰던거죠.
한참을 오르면서 숨이 턱까지 차길래 조금 쉬다 가자고 주저 앉았는데, 애들은 게을러서 몸이 약해진거라며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얘기하며 뒤도 안돌아보고 산을 오르더군요.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고통을 느끼며 땅바닥에 주저 앉아있었지만 저만치 멀어져가는 애들을 따라잡아야겠다 싶어 뛰다시피 뒤를 ?았어요.
인적이 드문 산길이었지요.
마음속으론 뛴 것 같은데 몸은 점점 애들과 멀어졌던것같아요.
한참을 뒤?아 가는데 눈 덮힌 숲속에 텐트가 보이더군요. 살았다 싶었지요.
그 텐트에서 사내들이 불쑥 튀어나왔어요.
앞길을 턱 가로막더니 무조건 자기 텐트로 끌고가는거에요.
뭐라고 소리를 내질러야겠다 싶었지만 그 소리는 목구멍에서 튀어나오지 않았어요.
무서운 마음에 덜덜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을꺼에요.
한 사내가 나를 붙들고 있는 사이에 다른 사내는 바지를 벗으며 나를 덮치기 시작했죠.
주르르 눈물만 흐르더군요.
겁에 질려 얼이 빠졌다는 것을 눈치채곤 옷도 벗기지 않은채 마구 더듬기 시작했어요.
벌거숭이가 사내가 달려들어 힘겹게 부여잡고 있던 제 옷을 한꺼풀씩 벗겨내기 시작했지요. 이 산에 오른 어떤 사람에게라도 구원을 요청해야겠다 싶어 죽어라고 소릴 질렀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른 제 울음소리에 그 사내가 놀랐을 정도로 크게 표효했을 것 같아요."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죠.
인적이 드문 곳이었어요.
산세가 조금 험했지만 맑고 수려하여 심호흡하며 이 길을 택하길 잘했다 싶었죠.
수도승처럼 상념을 잊고 맑은 정신으로 그 길을 따르는데 여자의 표효하듯 크고 짧은 울음 소리가 들렸어요.
아차 싶어 사방을 둘러보니 어떤 사내놈이 칼을 휘드르며 간섭하지 말라고 막아서더군요.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부당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누군지 알 필요도 없었죠.
그 놈을 발로 냅다 걷어차고 짖밟아 버렸죠.
텐트안을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그냥 텐트뽈대를 뽑은 후 안에서 뒹굴고 있을 사람들을 잘근거리며 밟았어요.
어느정도 밟은 다음에 텐트를 찢어서 안을 들여다 보니 벌거숭이 사내가 엉금거리더군요. 밑에 깔린 여자는 의식을 잃었는지 사지가 축 늘어져 있었어요.
다행이 아직 일이 시작되지 않았더군요.
두놈을 정신없이 발로 짖밟아 준 후에 여자를 들쳐앉고 산 아래로 달려갔어요.
누군가 뛰쳐 내려오며 자기 친구라고 멈추라 하더군요.
산아래까지 댁을 안아들고 내려왔선 친구라는 분들게 정신이 들때까지 잘 보살펴 주라 말하곤 저는 다시 산을 올랐죠.
산 중턱에 떡이 되어있던 사내놈들이 내가 다시 오르자 한판 붙자며 이를 갈더군요.
전 그 놈들과 싸우기 싫어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곤 그 산을 넘었어요."
"그날 전 아무일도 없었던거 맞죠?"
"아무일도 없었어요."
"누가 절 알아보던가요?" 궁금해서 물었다.
"수소문 끝에 잡화상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인상착의를 얘기하니 금방 알려주던걸요?"
"그 할아버지 기억도 좋네."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뇨. 몇번 산행하며서 물건을 샀었어요. 그것 뿐인데도 절 알아봤나보네요."
"알아보다 뿐인줄 아세요? 어느 회사 다니는 누구라는것까지 훤히 알던걸요."
"그래, 절 찾아서 점심 사주러 온거에요?"
"생명의 은인인데 인사는 해야할 것 같았어요."
"이렇게 보니 실망스럽죠?"
"왜요?"
"못나보이잖아요."
"얼굴요?"
"네."
"그렇잖아도 할아버지가 인상 더러워서 기억한단 말도 하던걸요."
"그 할아버지 정말 솔직하시네."
"얌마, 최대리 니 상판이 어디 달구다닐 상판이냐?" 김대리도 한몫껴들며 얼굴을 들먹인다.
"하긴, 얼굴 때문에 면접 볼 때마다 매번 미끄럼을 탓었지."
세 사람이 한참 얘기를 곁들여 음식을 말끔히 치우니 곧 이어서 커피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따뜻한 햇살을 받고 이른 아침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지랑이 속에는 어떤 여자가 떠 올랐다.
찢어질 듯 거칠게 재껴진 웃옷 사이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굶주린 짐승처럼 마구 핥아대던 어떤 사내가 미쳐 속살을 다 파헤치기 전에 나동그라지며 드러난 속살은 뽀얀 젖가슴과 연결되어 있었다.
연한 분홍색 젖꼭지는 주인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솟아 올라 있었다.
그 주변은 침으로 범벅이 되어 흐를 듯이 많은 물기가 묻어 있었다.
산행을 위해 입혀졌을 두툼한 바지도 반쯤 벗겨진 채 무릎 위에 걸쳐 있다.
통통한 허벅지 사이에 비경이 드러나고 검은 숲을 지나 깊은 계곡이 살짝 드러나 있다.
숲은 거친 바람을 만난 듯 이리저리 잔 가지가 꺾여 무질서한 모습이었지만 깊은 계곡은 아직 어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은밀한 비경을 그대로 간직한 듯 했다.
널부러진 사내놈을 밀쳐내고 여자의 풀어진 가슴의 옷깃을 여몄다.
벗겨진 바지를 추슬르려 한 손을 허리에 넣고 또 다른 손은 바지춤을 잡아 끌어 당겼다.
하얀 속살이 아름답다.
검은 숲 속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다.
추스르던 손을 멈추고 하얗게 다가오는 그 곳을 더듬어 본다.
매끄럽다.
털 끝에 닿는 느낌이 까칠하다.
처음보는 여자의 모습이건만 울컥 아래서 용틀음하는 힘을 느낀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갈라진 틈을 따라 더듬었다.
미끈거리는 액체가 묻어난다.
코 끝에 대고 냄새를 맡아 봤다.
야릇한 기분이 온 몸에 퍼져 나간다.
의식을 잃은 몸도 손끝의 움직임에 따라 약간씩 반응을 보이는 듯 꿈틀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이 가빠진다.
둔덕을 맴돌던 손가락은 점차 깊은 동굴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어 동굴 주변에서 어느새 깊은 터널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까칠까칠한 질벽이 느껴졌다.
톡 톡 치듯 질벽을 두드려본다.
무의식 속에서 질벽이 반응하며 가느다란 손가락을 조여대기 시작했다.
몸이 터질 것 같았다.
자크를 풀러 물건을 꺼냈다.
이미 부풀어 오를 만큼 부푼 놈은 여자의 그곳을 보자 마자 터널에 머리를 밀어 넣고 싶은 욕망에 몸무림 치고 있었다.
손으로 잡아 몇번인가 흔들어댔다.
하얀 액체가 쭉 뻗쳐 나왔다.
급히 막았지만 이미 손 바닥은 흥건히 젖어 버렸다.
그 여자의 은밀한 곳에 손바닥을 댔다.
몸에서 분출한 그 것이 여자의 은밀한 곳에 닿는 것만으로도 결합한 느낌이 들었다.
널부러진 사내놈도 의식이 드는지 몸을 꿈틀댄다.
다시 발로 냅다 질러 텐트 구석으로 쳐 박아버렸다.
서둘러야 한다.
여자의 옷을 입혔다.
바람 한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옷가지를 동여매고 들쳐안은 채 더러운 소굴로부터 이 여자를 구출해야 한다.
얼마를 뛰었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소리 지르며 뒤를 따르고 있다.
여자 두명이 자기 친구라며 내려 놓으라고 한다.
그들이 잡혀가든 도망가든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에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경황이 없는 듯 하여 말 없이 뒤를 돌아 다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망가진 텐트를 고치고 있는 사내놈들을 만났다.
다시 또 그 짓거리하면 사지를 분질러 버리겠다고 윽박질렀다.
칼을 휘둘렀다.
굳이 싸워봐야 득될게 없다 싶어 전화로 추행범을 경찰에 신고하곤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갔다.
맑은 하늘이 보였다.
산 꼭대기에 올라와 보니 숨이 약간은 차다 싶을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가 정신을 잃었을 때 만져보던 그 곳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그 여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손바닥에 흩뿌리던 그 것을 넣어 주고 싶다.
여자는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으로 긴장이 풀렸다.
예전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상에 몰입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떡볶이도 먹었고 영화도 봤다.
쇼핑도 즐기고 밤차를 타고 여행도 다녔다.
그러나 언제 부턴가 아랫배가 더부룩해지며 헛구역질도 잦아져 임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혹시 지난 번 일 때문에 민감해져 가상임신이 된게 아닐까 싶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임신 이개월.
밤이 짧다 싶을 정도로 친구들과 어울려 생맥주도 진탕마시고 이름 난 나이트는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놀았지만 결코 임신할 정도로 남자관계를 만든 적이 없다.
뱃속의 아이는 누가 만들었을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경찰서에 붙잡힌 치한범들도 모르는 일이라고 완강히 오리발을 내밀었다.
자신을 구해 준 사람.
그 사람만이 진실을 알것같았다.
몇 날을 산에 오르내리며 그 사람에 대한 수소문을 했다.
고생한 많은 날들에 비해 너무 쉽게 초입에 위치한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몇번을 망설이다 오늘에야 그 사람을 만난다.
자신을 위급상황에서 살려 준 그 사람을 만난다.
자신에게 무거운 짐을 남기고 말없이 떠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 아이의 애비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저, 임신했어요."
"네?"
"그때 일로 저 임신했다구요."
최대리는 두 눈알을 떼굴떼굴 굴려본다.
이 여자가 왜 자신에게 찾아와 임신 사실을 떠들어 대는지 알 수가 없다.
"덤비던 사내놈을 발길질로 차 버려서 아무일도 없었을텐데, 내가 너무 늦었었나?"
"아뇨, 그 놈들은 일도 못 치렀는데 잡혀왔다고 아우성이던걸요."
"그럼 됐지 임신된걸 왜 저한테 말하죠?"
"뱃 속의 애는 최대리님 애라니까요."
순간적으로 그 날 손 바닥에 잔뜩 묻은 정액을 그 곳에 문질렀던 일이 머리를 스쳤다.
"쓰발, 먹어보지도 못하고 흔적만 남겼군."
"얌마, 점심은 니가 사야쓰겠다. 짜식." 김대리는 최대리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그 날로부터 몇 달 후, 평생 장가가긴 텃을 것 같은 인상의 최대리는 전직원들에게 국수 잔치를 배풀었다. 만삭의 여자는 만족한 듯이 환하게 웃으며 결혼행진곡에 따라 뒤뚱거리며 식장에 들어섰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화사한 미인과 초라한 총각이 많은 하객들로부터 축하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저 놈 말야, 처녀도 안떼고 임신 시킨 대단한 놈이란거 알아?" 김대리가 히히 거리며 친구 들에게 자랑을 늘어 놓았다.
"오잉, 그럼 성모?"
"그려, 저놈은 글쎄 좆도 한번 안박아보고 저 여잘 임신 시켰다니까."
주변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은 결혼을 축하하는 하객들의 소음속에 묻혀 버렸다.
사무실 문이 살짝 열리면서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요?"
"다 아는 수가 있죠. 지난 번일 고마워서 엄청 수소문 했걸랑요."
"수소문? 그런다고 내가 일하는델 누가 알려줬지?"
"호호, 가요. 제가 점심 살께요."
동료들은 별안간에 문을 밀고 들어온 늘씬한 미인의 얼굴에 우선 놀랐고, 전혀 여자한테 무관심하던 최대리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더 놀란 것은 그 여자의 방문을 전혀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이봐, 최대리. 누구야?" 김대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물었다.
"응, 두어달 전 산에서 잠깐 본 적이 있는 아가씬데 난 잘 몰라."
"그런데 뭘 고맙다며 여기까지 찾아왔데?"
"글세, 내 버릇 알잖아. 절대로 명함이나 이름 안밝히고 조용히 사는 거."
"잘알지. 너 처럼 명함이 필요없으면서도 꼬박꼬박 명함 인쇄하는 놈은 첨 봤으니까."
"에잉. 다른 사람 명함 떨어질때쯤 내 것도 떨어졌겠지 싶어서 총무과에서 일괄 신청하니까 서랍속에 명함만 수북히 쌓이는거지 뭐.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쳐 넣을 수도 없고 귀찮아 죽겠구만."
"야야, 그나저나 저 아가씨 얼굴 정말 짱이다. 한건 한것같은데?"
"잘 모르는 여자이라니까 그러네."
"너 정말 몰라?"
"정말이래두. 니가 관심있는거 아냐?"
"기회만 된다면 짱이지..."
"좋아. 저 아가씨가 뭔일로 점심을 사겠다는지 모르지만 일단 밥먹고 돈은 네가 내라."
"나도 같이가자구?"
"얌마, 일단 투자를 해야 뭘 건질게 아냐?"
"알았어. 저 정도 여자라면 맨날 쏘겠다."
"대신, 저 여자가 돈내면 넌 똥되는거다. 알았지?"
"알써, 그럼 어서 나가자."
괜한 일로 사람 귀찮게 한다 싶은 마음으로 최대리는 김대리를 대동하여 문 앞에 서 있는 여자와 가까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은근히 최대리와 바짝 붙으며 살짝 팔장을 낀 느낌으로 걷고 있었다.
"최대리님, 제가 와서 놀랐어요?"
"놀라긴요. 그냥 놀란척 한거죠."
"근데 제 이름은 알아요?"
"아뇨, 댁의 이름도 모르고 내 이름도 알려 드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불쑥 사무실로 찾아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네요."
"그날 저를 구해주시곤 말없이 떠났잖아요.
정신을 차린 후에 절 구해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더라구요.
은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실례다 싶어서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인상착의를 대며 계속 물었더니 누군가가 최대리님을 아는 분이 있더군요."
"수 많은 사람 중에선 저를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저만 덩그런히 구해놓고 친구들한테 인적사항도 안남기고 사라지면 속이 편해요?"
"할일을 한 것 뿐인데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요?"
"야야, 식당가에 다 왔다. 밥먹자." 얘기를 말리며 김대리가 식당가로 들어섰다.
"뭘 드실래요?" 여자가 물었다.
"콩나물비빔밥 하는 집 있는데 그리 갈까요?"
"전 양식이 먹고 싶은데. 괜찮으면 할 얘기도 있으니 레스토랑으로 가요."
"그럼 한식과 양식으로 의견이 갈렸으니 내가 결정하면 되겠군. 양식 먹으러 갑시다." 김대리가 앞장 서며 레스토랑으로 들어선다.
"양식 안좋아해요?"
"오늘은 얼큰한걸 먹고 싶었는데 밀렸네요."
"레스토랑에서도 얼큰한건 있을꺼에요."
경기가 나쁘니 뭐니 해도 사람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제법 북적거리는 식당가 중에서 우리는 빨간 벽돌로 내벽을 쌓은 뒷편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인테리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고풍스러운 듯 꾸몃겠지만 초라한 구석이 많은 집이라서 이런 곳에선 오히려 밥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모락모락 김이 넘치는 차 한잔을 마실 수도 있어 좋겠다는 생각에 쇼파에 등을 깊이 묻어버렸다.
"그날 전 친구들이랑 계곡을 따라 산행을 하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들이라서 겨울 산행은 위험하다 싶었지만 따라 나섰던거죠.
한참을 오르면서 숨이 턱까지 차길래 조금 쉬다 가자고 주저 앉았는데, 애들은 게을러서 몸이 약해진거라며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얘기하며 뒤도 안돌아보고 산을 오르더군요.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고통을 느끼며 땅바닥에 주저 앉아있었지만 저만치 멀어져가는 애들을 따라잡아야겠다 싶어 뛰다시피 뒤를 ?았어요.
인적이 드문 산길이었지요.
마음속으론 뛴 것 같은데 몸은 점점 애들과 멀어졌던것같아요.
한참을 뒤?아 가는데 눈 덮힌 숲속에 텐트가 보이더군요. 살았다 싶었지요.
그 텐트에서 사내들이 불쑥 튀어나왔어요.
앞길을 턱 가로막더니 무조건 자기 텐트로 끌고가는거에요.
뭐라고 소리를 내질러야겠다 싶었지만 그 소리는 목구멍에서 튀어나오지 않았어요.
무서운 마음에 덜덜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을꺼에요.
한 사내가 나를 붙들고 있는 사이에 다른 사내는 바지를 벗으며 나를 덮치기 시작했죠.
주르르 눈물만 흐르더군요.
겁에 질려 얼이 빠졌다는 것을 눈치채곤 옷도 벗기지 않은채 마구 더듬기 시작했어요.
벌거숭이가 사내가 달려들어 힘겹게 부여잡고 있던 제 옷을 한꺼풀씩 벗겨내기 시작했지요. 이 산에 오른 어떤 사람에게라도 구원을 요청해야겠다 싶어 죽어라고 소릴 질렀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른 제 울음소리에 그 사내가 놀랐을 정도로 크게 표효했을 것 같아요."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죠.
인적이 드문 곳이었어요.
산세가 조금 험했지만 맑고 수려하여 심호흡하며 이 길을 택하길 잘했다 싶었죠.
수도승처럼 상념을 잊고 맑은 정신으로 그 길을 따르는데 여자의 표효하듯 크고 짧은 울음 소리가 들렸어요.
아차 싶어 사방을 둘러보니 어떤 사내놈이 칼을 휘드르며 간섭하지 말라고 막아서더군요.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부당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누군지 알 필요도 없었죠.
그 놈을 발로 냅다 걷어차고 짖밟아 버렸죠.
텐트안을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그냥 텐트뽈대를 뽑은 후 안에서 뒹굴고 있을 사람들을 잘근거리며 밟았어요.
어느정도 밟은 다음에 텐트를 찢어서 안을 들여다 보니 벌거숭이 사내가 엉금거리더군요. 밑에 깔린 여자는 의식을 잃었는지 사지가 축 늘어져 있었어요.
다행이 아직 일이 시작되지 않았더군요.
두놈을 정신없이 발로 짖밟아 준 후에 여자를 들쳐앉고 산 아래로 달려갔어요.
누군가 뛰쳐 내려오며 자기 친구라고 멈추라 하더군요.
산아래까지 댁을 안아들고 내려왔선 친구라는 분들게 정신이 들때까지 잘 보살펴 주라 말하곤 저는 다시 산을 올랐죠.
산 중턱에 떡이 되어있던 사내놈들이 내가 다시 오르자 한판 붙자며 이를 갈더군요.
전 그 놈들과 싸우기 싫어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곤 그 산을 넘었어요."
"그날 전 아무일도 없었던거 맞죠?"
"아무일도 없었어요."
"누가 절 알아보던가요?" 궁금해서 물었다.
"수소문 끝에 잡화상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인상착의를 얘기하니 금방 알려주던걸요?"
"그 할아버지 기억도 좋네."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뇨. 몇번 산행하며서 물건을 샀었어요. 그것 뿐인데도 절 알아봤나보네요."
"알아보다 뿐인줄 아세요? 어느 회사 다니는 누구라는것까지 훤히 알던걸요."
"그래, 절 찾아서 점심 사주러 온거에요?"
"생명의 은인인데 인사는 해야할 것 같았어요."
"이렇게 보니 실망스럽죠?"
"왜요?"
"못나보이잖아요."
"얼굴요?"
"네."
"그렇잖아도 할아버지가 인상 더러워서 기억한단 말도 하던걸요."
"그 할아버지 정말 솔직하시네."
"얌마, 최대리 니 상판이 어디 달구다닐 상판이냐?" 김대리도 한몫껴들며 얼굴을 들먹인다.
"하긴, 얼굴 때문에 면접 볼 때마다 매번 미끄럼을 탓었지."
세 사람이 한참 얘기를 곁들여 음식을 말끔히 치우니 곧 이어서 커피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따뜻한 햇살을 받고 이른 아침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지랑이 속에는 어떤 여자가 떠 올랐다.
찢어질 듯 거칠게 재껴진 웃옷 사이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굶주린 짐승처럼 마구 핥아대던 어떤 사내가 미쳐 속살을 다 파헤치기 전에 나동그라지며 드러난 속살은 뽀얀 젖가슴과 연결되어 있었다.
연한 분홍색 젖꼭지는 주인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솟아 올라 있었다.
그 주변은 침으로 범벅이 되어 흐를 듯이 많은 물기가 묻어 있었다.
산행을 위해 입혀졌을 두툼한 바지도 반쯤 벗겨진 채 무릎 위에 걸쳐 있다.
통통한 허벅지 사이에 비경이 드러나고 검은 숲을 지나 깊은 계곡이 살짝 드러나 있다.
숲은 거친 바람을 만난 듯 이리저리 잔 가지가 꺾여 무질서한 모습이었지만 깊은 계곡은 아직 어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은밀한 비경을 그대로 간직한 듯 했다.
널부러진 사내놈을 밀쳐내고 여자의 풀어진 가슴의 옷깃을 여몄다.
벗겨진 바지를 추슬르려 한 손을 허리에 넣고 또 다른 손은 바지춤을 잡아 끌어 당겼다.
하얀 속살이 아름답다.
검은 숲 속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다.
추스르던 손을 멈추고 하얗게 다가오는 그 곳을 더듬어 본다.
매끄럽다.
털 끝에 닿는 느낌이 까칠하다.
처음보는 여자의 모습이건만 울컥 아래서 용틀음하는 힘을 느낀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갈라진 틈을 따라 더듬었다.
미끈거리는 액체가 묻어난다.
코 끝에 대고 냄새를 맡아 봤다.
야릇한 기분이 온 몸에 퍼져 나간다.
의식을 잃은 몸도 손끝의 움직임에 따라 약간씩 반응을 보이는 듯 꿈틀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이 가빠진다.
둔덕을 맴돌던 손가락은 점차 깊은 동굴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어 동굴 주변에서 어느새 깊은 터널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까칠까칠한 질벽이 느껴졌다.
톡 톡 치듯 질벽을 두드려본다.
무의식 속에서 질벽이 반응하며 가느다란 손가락을 조여대기 시작했다.
몸이 터질 것 같았다.
자크를 풀러 물건을 꺼냈다.
이미 부풀어 오를 만큼 부푼 놈은 여자의 그곳을 보자 마자 터널에 머리를 밀어 넣고 싶은 욕망에 몸무림 치고 있었다.
손으로 잡아 몇번인가 흔들어댔다.
하얀 액체가 쭉 뻗쳐 나왔다.
급히 막았지만 이미 손 바닥은 흥건히 젖어 버렸다.
그 여자의 은밀한 곳에 손바닥을 댔다.
몸에서 분출한 그 것이 여자의 은밀한 곳에 닿는 것만으로도 결합한 느낌이 들었다.
널부러진 사내놈도 의식이 드는지 몸을 꿈틀댄다.
다시 발로 냅다 질러 텐트 구석으로 쳐 박아버렸다.
서둘러야 한다.
여자의 옷을 입혔다.
바람 한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옷가지를 동여매고 들쳐안은 채 더러운 소굴로부터 이 여자를 구출해야 한다.
얼마를 뛰었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소리 지르며 뒤를 따르고 있다.
여자 두명이 자기 친구라며 내려 놓으라고 한다.
그들이 잡혀가든 도망가든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에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경황이 없는 듯 하여 말 없이 뒤를 돌아 다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망가진 텐트를 고치고 있는 사내놈들을 만났다.
다시 또 그 짓거리하면 사지를 분질러 버리겠다고 윽박질렀다.
칼을 휘둘렀다.
굳이 싸워봐야 득될게 없다 싶어 전화로 추행범을 경찰에 신고하곤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갔다.
맑은 하늘이 보였다.
산 꼭대기에 올라와 보니 숨이 약간은 차다 싶을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가 정신을 잃었을 때 만져보던 그 곳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그 여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손바닥에 흩뿌리던 그 것을 넣어 주고 싶다.
여자는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으로 긴장이 풀렸다.
예전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상에 몰입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떡볶이도 먹었고 영화도 봤다.
쇼핑도 즐기고 밤차를 타고 여행도 다녔다.
그러나 언제 부턴가 아랫배가 더부룩해지며 헛구역질도 잦아져 임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혹시 지난 번 일 때문에 민감해져 가상임신이 된게 아닐까 싶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임신 이개월.
밤이 짧다 싶을 정도로 친구들과 어울려 생맥주도 진탕마시고 이름 난 나이트는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놀았지만 결코 임신할 정도로 남자관계를 만든 적이 없다.
뱃속의 아이는 누가 만들었을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경찰서에 붙잡힌 치한범들도 모르는 일이라고 완강히 오리발을 내밀었다.
자신을 구해 준 사람.
그 사람만이 진실을 알것같았다.
몇 날을 산에 오르내리며 그 사람에 대한 수소문을 했다.
고생한 많은 날들에 비해 너무 쉽게 초입에 위치한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몇번을 망설이다 오늘에야 그 사람을 만난다.
자신을 위급상황에서 살려 준 그 사람을 만난다.
자신에게 무거운 짐을 남기고 말없이 떠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 아이의 애비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저, 임신했어요."
"네?"
"그때 일로 저 임신했다구요."
최대리는 두 눈알을 떼굴떼굴 굴려본다.
이 여자가 왜 자신에게 찾아와 임신 사실을 떠들어 대는지 알 수가 없다.
"덤비던 사내놈을 발길질로 차 버려서 아무일도 없었을텐데, 내가 너무 늦었었나?"
"아뇨, 그 놈들은 일도 못 치렀는데 잡혀왔다고 아우성이던걸요."
"그럼 됐지 임신된걸 왜 저한테 말하죠?"
"뱃 속의 애는 최대리님 애라니까요."
순간적으로 그 날 손 바닥에 잔뜩 묻은 정액을 그 곳에 문질렀던 일이 머리를 스쳤다.
"쓰발, 먹어보지도 못하고 흔적만 남겼군."
"얌마, 점심은 니가 사야쓰겠다. 짜식." 김대리는 최대리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그 날로부터 몇 달 후, 평생 장가가긴 텃을 것 같은 인상의 최대리는 전직원들에게 국수 잔치를 배풀었다. 만삭의 여자는 만족한 듯이 환하게 웃으며 결혼행진곡에 따라 뒤뚱거리며 식장에 들어섰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화사한 미인과 초라한 총각이 많은 하객들로부터 축하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저 놈 말야, 처녀도 안떼고 임신 시킨 대단한 놈이란거 알아?" 김대리가 히히 거리며 친구 들에게 자랑을 늘어 놓았다.
"오잉, 그럼 성모?"
"그려, 저놈은 글쎄 좆도 한번 안박아보고 저 여잘 임신 시켰다니까."
주변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은 결혼을 축하하는 하객들의 소음속에 묻혀 버렸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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