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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사랑 - 1부1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0:20 1,658회 0건
그녀를 보았다!
10년이 지난 이후 만난 그녀는 그때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지만 날 대하는 태도만은 변해 있었다.
그녀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날보고 소리친다.

"가........다신 날 찾지마."
그녀에게 사랑의 증표로 선물한 반지를 빼 저 멀리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던져버린다.
그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린다.
난 그녀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잡기에 너무나 많은 잘못를 했기에 감히 그녀를 잡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녀가 멀어진 후 그녀가 던져버린 반지를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반지를 찾을 수는 없다.
그리운 마음에 대답없는 그녀를 불려본다.

소리치다 목이 막혀 깨어보니 출근시간을 알리는 자명종이 울리고 있다.
옆에 쌔근쌔근 잠든 부인과 딸의 얼굴은 한없이 평화롭게 보인다.

꿈이였다. 가슴아픈 사랑을 간직한체 이젠 멀리 떠나버린 그녀......
그녀를 보내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살고있는 날 본다.

출근할 생각도 잃어버리고 베란다에서 깊은 담배 한모금을 핀다. 그 담배연기 사이로 그녀와의 추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7년간의 사랑

1부(90년 겨울 - 첫 만남) - 1장

“삘리리~삘리리”
낮은 아침,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정신없이 자고 있던 수혼은 조용한 집안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가족인 수혼의 집이지만 가족들 모두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오전 9시가 지나면 집안이 조용해 진다. 졸린 눈을 비비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었다. 이 시간에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어제 직장을 그만 둔 자신만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하니 어제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전화가 있는 거실까지 힘들게 걸어가는데도 몸에 힘이 없어 휘청거렸다.
“여보세요.”
“나다. 지금 머 하냐?
“웬일이냐!”
“너 시간 있지. 이따가 1시에 너의 집에 갈꺼니까 준비하고 있어”
“왜”
“만나서 얘기하자”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국민학교라고 했다.) 때부터 만나는 3명의 친구 중 한명인 지성 이였다.
전화를 받고 다시 자려 했지만 한번 깬 잠은 쉽게 다시 오지 않았다. 머리가 아픈 것도 잠을 방해 했지만 어제 일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수혼은 상고(상업고등학교, 지금은 대부분 인터넷고 혹은 정보고로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모두 상고라고 했다.)를 나왔다. 수혼의 집안은 대가족이고 넉넉한 집안이 아니다 보니 집안 식구 모두가 벌어야 했다. 그래서 수혼의 큰형도 상고를 나와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해서 대학에 갔다. 그렇지만 작은형은 공부도 잘하고 한성격하는 사람이라 집안에서 큰 기대를 하고 인문계로 보냈지만 고등학교 때 많은 방황을 하며 기대를 저버렸다. 그런 것을 지켜보면서 수혼 자신도 그냥 상고로 진학하겠다고 결정하고 집안에 말했다. 그때 누나들과 부모님이 모두 반대했지만 자신은 공부에 뜻도 없고 누나들에게 부담주기도 싫다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고로 진학했었다.

상고 3학년이면 그때는 졸업하기 전에 실습생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수혼도 3학년에 되어 실습생으로 한 직장에 취업을 했었다. S상고 정보처리과를 졸업한 수혼은 자신의 과를 살리겠다고 IT업종에 취업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IT업종이란 말도 없었고, 천계천이나 용산에서 IT업종이 태동하고 있었던 때다. 그리고 그때는 IT업종이란 말 대신 프로그램샵이란 말이 있었던 때이다.

수혼은 S상고 정보처리과를 다니면서 과에서 운영하는 전산부라는 써클(지금은 동아리라고 하죠)활동을 했었다. 그 당시 S상고 전산부는 서울에 있는 명문대 전산 써클보다도 더 실력 있는 써클이였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대학생들과 이론적으로는 논하면 실력이 뒤쳐지지만 한 가지 명제를 가지고 프로그램화하는 실력은 당연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S상고 축제에서 전산부 프로그램 전시회인 전산제는 대학생들도 와서 견학하는 수준 이였다.
그런 전산부에서도 수혼의 프로그램 실력은 A급에 속했다. 전산제에 3개 이상 단독 프로그램을 전시한 학생은 당시 수혼과 다른 1명 뿐 이였다.

수혼은 그런 프로그램 실력을 믿고 다른 전산부 친구들과 함께 프로그램샵이라는 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그 당시 프로그램샵들이 그렇듯 프로그램만 해서는 회사가 운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프로그램샵들은 프로그램과 하드웨어 판매를 병행하는 회사였다.

수혼은 첫 직장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프로그램샵과 너무나 다른 환경에 절망했다. 회사에 들어가면 프로그램만 열심히 짜면 되겠지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라고 직원 수도 기존 4명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5명 이렇게 9명이 전부였다. 또한 출근시간은 칼, 퇴근시간은 회사 맘대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H/W 판매원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프로그램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H/W판매회사인 것이다.

그래도 첫 직장이라 참고 다녀야지 했지만 첫 월급을 받고 나서 완전히 황당함의 극치 보았다. 월급 35만원(그 당시 대입 초봉이 70~80만원, 고입 초봉은 50~60만원)수준 이였다. 아무리 실습생 신분이라도 너무 심한 박봉 이였다. 한마디로 차비, 식비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또한 수혼의 집안에서 수혼에게 대학을 진학하라는 압력이 들어오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입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싫다고 하던 수혼도 회사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맘이 흔들려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바로 전날 수혼은 신입사원 5명의 사표(사실 실습생 신분에서 사표를 제출할 수는 없다. 실습 종료다.)를 들고 사장실에 들어가 던져 버렸다. 회사가 뒤집혔다. 신입사원 전원의 사표를 들고 온 수혼에게 이사면담, 사장면담이 이어졌다. 수혼은 회사의 부당함을 밝히고 회사는 대부분 수혼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항복 선언을 했다. 수혼은 회사의 항복 선언을 받고 나머지 신입사원과 다시 회의를 했다. 결론은 다른 사원들은 모두 다시 회사를 다니고 사건의 주동자였던 수혼은 회사를 기만두기로 했다. 회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혼은 회사를 그만 두었고, 나머지 신입사원들과 어제 술을 마신 것이다.

12시쯤 무거운 몸을 움직여 외출할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지성이가 찾아오는 것은 같이 외출할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시쯤에 지성이가 집에 왔다. 지성 이와 나머지 국민학교 친구들은 모두 인문계 출신이다. 이놈들은 모두 전기, 후기대(그때는 전기, 후기, 전문대 시험제도였다.)를 떨어지고 전문대 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던 놈 들이였다.
“무슨 일이냐!”
“친구들 모두 커피숍에 있다. 그곳으로 가면서 얘기하자”
지성 이와 동네의 있는 커피숍으로 같이 걸어갔다. 그곳에 가니 나머지 친구들인 재운 이와 은성가 있었다.
수혼은 이런 커피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음료나 차 한 잔 마시고 돈을 낸다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가쟈~~”
수혼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일어났다. 모두 밖으로 나와 길을 걸었다.
“회사 다닌다고~”
은성이가 수혼을 보고 물었다.
“회사 다니는 놈이 이 시간에 집에 있겠냐? 어제 그만 두었다.”
“머~~ 회사 들어 간지 얼마나 됐다고~”
“그냥 회사가 맘에 들지 않고 나도 전문대 준비하려고 한다.”
“너~~ 대학 같은 거 안 간다며”
“집안에서 들어가라고 날리다. 평소에 말도 없던 큰형까지 와서 대학가라고 해서 그런다고 했다.”
“너 공부도 안했잖아”
“지금부터 해야지, 전문대 시험까지 아직 60일 정도 남았으니 그 기간만이라도 공부해야지”
“그럼 우리가 다니는 독서실로 외랴”
“독서실(?)”
수혼은 왜 도서관에 가면되지 독서실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서관은 싸고(당시는 도서관 입장료가 100원 이였다. 지금은 받지 않지만) 독서실은 비싼데, 그리고 머 특별히 도서관과 차이도 없는데 말이다.
“관심 없다. 그냥 도서관이나 다닐 거야”
“야~ 그러지 말고 중학교 이후로 잘 뭉치지 못했으니, 이번에 뭉치자~”
길을 가며 친구들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수혼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의 부탁도하고 월급탄 돈도 있고 해서 그냥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수혼에게 독서실에 같이 다니자고 한 것은 뭉치자는 것도 있지만 다른 흑심이 있었다.
“수혼이가 승낙했으니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당자 독서실로 가자”
“어디냐”
수혼은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친구들도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말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수혼과 은성은 특히나 말이 없는 편에 속했다.
“너희 집 바로 옆이다. 걸어서 3분 걸리다”
멀리 광한독서실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친구들의 말마따나 집에서 빨리 걸으면 3분 거리에 있었다.
광한독서실 건물은 5층 건물로 1,2층은 상가로 3층은 회사 사무실 그리고 독서실은 4층과 5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서실 총무라는 사람과 면담을 하고 1달 독서실비을 먼저 내고 계약했다.
“야~ 오늘 나머지 시간은 뭐하냐.
재운이가 수혼의 의사를 물어왔다.
수혼은 지금 당장 공부를 시작할 마음은 없었다. 어제 먹은 술로 머리가 아프고 마음도 편치 않아 공부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먼저 밥이나 먹자. 우리 집 비었으니까 우리 집에 가서 라면이나 먹자”
수혼은 친구들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야! 그렇지 말고 월급도 땄으니 밥이나 사라”
“참내~ 월급 얼마나 받았다고, 그래 내가 산다.”
친구들의 얼굴에 미소가 보였다. 그 미소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수혼은 생각했지만 그냥 생각 없이 넘어갔다.
“잠깐만! 내가 좀 볼일이 있다. 잠깐만 기둘려, 수혼이 너는 다른 애들과 독서실 좀 구경하고 있어라”
지성이가 다른 볼일이 있다며 5층 계단을 내려갔다. 재운이와 은성이는 수혼을 이끌고 독서실을 구경시켜다.
처음으로 독서실이란 곳에 온 수혼은 독서실이란 곳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도서관하고는 다르게 밝은 대낮인데도 실내가 어두 깜깜하고 책상 하나하나 사이에 큰 차단막이 없었다. 그리고 각 책상마다 책장과 스탠드가 있었다.
“왜 이렇게 어둡냐.
“독서실은 24시간 개방되고 잠도 자고 공부해, 밤에 공부하고 낮에 자는 사람도 있어서 향상 이렇게 어둡지”
“이곳에서 잠도 자냐.
“잠을 자려면 개인적으로 담요만 가져오면 돼”
“그래”
수혼의 인상이 구겨졌다. 수혼은 집 외에 다른 곳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체질이다. 신경이 예민해서 낮선 환경에서는 잠을 자지 못한다. 가끔 친구 집에서 밤을 보내는 경우에도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잠을 자도 수혼만은 날밤을 세고 새벽에라도 집에 와서 잔다.
이렇게 친구들과 독서실을 구경하고 있는데 지성이가 독서실로 들어왔다.
“먼저 가라~, 난 조금 후에 갈까?”
“왜~~”
“볼일이 좀 길어질 것 같아, 그러니까 너희들 먼저 바보로 가있어”
수혼은 “바보”라고 무슨 식당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빨리 와라, 우리 먼저 가자”
재운 이와 은성이가 먼저 가자고 해서 수혼도 독서실을 나섰다. 수혼만 식당 위치를 모르고 다른 애들은 모두 아는 눈치였다. 수혼은 묵묵히 친구들을 따라갔다. 조금 걸어가니 동네에서 제법 번화가인 4거리가 나왔다. 친구들을 따라 걸어가던 수혼의 눈에 간판하나가 들어왔다.
[레스토랑 바보]
“야~ 잠깐만 너희들이 말하는 곳이 저곳이냐”
수혼의 손끝으로 바보 간판을 가리키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어”
“이것들이 무슨 밥 한 끼 먹는데 레스토랑씩이나 가냐, 그것도 학생들이”
“야 한번 사는 거 근사하게 사랴”
“참내! 이것들이 아주 벗겨 먹으려고 드네.
“싫어”
“그래 알았다. 한번 사는 거 군말 없이 쏜다”
지하에 위치한 바보는 은은한 조명 비취고 있고 중앙에 테이블이 조금 있고, 나머지는 칸막이로 된 테이블이 위치하고 있었다. 한두 번 레스토랑이란 곳을 왔었지만 수혼은 이런 분위기가 익숙해지진 않았다. 친구들이 원하고 해서 마지못해 들어왔다.
칸막이가 있는 4인용 테이블로 가는데 친구들이 이왕이면 넓은 곳으로 앉자고 해서 10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지성이 오면 같이 주문하자”
“그러지 머~~~”

수혼은 속도 좋지 않고 육류를 싫어해서 마음이 탐탁하지 않았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은은한 불빛에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색다르게 보였다.
(완전히 조명발 받는군)
수혼은 친구들과 그동안의 지내온 이야기를 하며 지성이를 기다렸다. 친구 놈들은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는지 전기대, 후기대를 모두 떨어지고 전문대를 시험보기 위해 독서실에 남아 공부하고 있었다. 다른 놈들은 이미 전후기대를 합격하고 합격의 기쁨에 마시고 놀거나 대학예습을 하고 있는 마당에 이놈들은 전문대 시험이나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있으니 지성이가 들어왔다. 헌데 지성이와 함께 4명의 여자들이 함께 들어오는 것이었다.
“머야~”
“사실은 지성이가 우리들 미팅 주선했다. 그런데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 말 안한 거다”
“허 참내~~ 무슨 미팅이냐”
“조용히 해라! 이미 시작된 것 숙녀 분들도 들어왔는데 그만하자”
수혼은 황당했다. 사실 수혼도 미팅이란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수혼의 경우 고등학교 때 많은 미팅을 해봤고, 미팅이란 거 해봤자. 여자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수혼으로써는 한번 여자만나는 것 왜에는 다른 의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수혼이 많은 미팅을 했지만 한번이상 만난 여자는 2명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도 모두 다른 미팅참가자 친구들이 다시 미팅 상대를 만나는데 같이 만나자고 해서 같이 나온 자신의 미팅 상대를 본 것뿐 수혼이 청해서 다시 만난 여자는 없었다.

들어온 여자들을 보고 수혼은 쓴 웃음을 지였다. 수혼의 눈에 들어온 4명 모두 예쁜애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많은 미팅에 나가서 만난여자들 중에 지금 들어온 여자들보다 처지는 여자들은 본적이 없을 정도였다.
“야야 저쪽으로 가라”
저성이가 남자들을 한쪽 테이블로 몰고 여자들을 반대편 테이블에 않게 했다.
“인사해라. 이쪽은 미리 이야기한 내 친구들 윤재운, 장은성, 조수혼 그리고 이쪽은 김미선, 이지영, 박성매, 양란”
지성이의 소개가 끝나고 수혼은 천천히 여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은은한 불빛에 조명 발을 받으니 처음인상보다는 좀 낮게 보였다.
이지영, 박성매는 정말짜리 몽땅 그 자체였고, 양란이란 애는 반대로 미적마르고 얼굴이 너무 어린 게 보인 게 꼭 국민학생 같았다. 그나마 김미선이라 애가 개중에서 제일 이뻣다. 좀 까만 피부에 서구적인 마스크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이고 지금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어”
“내가 너희들 특별히 생각해서 주선하는 것이니까 잘해라”
미선이의 간단한 소개에 지성이가 마치 큰일이라도 한 냥, 인심 쓰는 말투로 친구들에게 이야기 했다.
(애고. 지랄을 해라)
수혼은 지성이가 못 마땅했지만 재운이와 지성이가 미팅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바보 돈가스 맛있어. 우리 돈가스 먹자”
“그래 남자들이 내는 거지”
쓴 웃음이 났다.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사준다는 것이 완전히 박가지 쓰는 꼴이다.
“먹고 싶은 것 먹어”
애들이 모두 돈가스 통일하고 식사가 나오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수혼은 월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학교에서도 같은 반 애들조차도 그런 애가 우리반이였나 할 정도로 말없이 자리만 지키던 학생 이였다. 다만 같은 서클이던 전산부 친구들과만 말을 조금씩 했지 다른 애들과는 잘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애였다. 하지만 그런 수혼이 미팅장소에 가면 태도가 돌변해서 여자들 앞에서 몇 시간이고 떠들어 댔다.

그때까지의 청소년들은 순진해서 남녀가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조금씩은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지금의 청소년보다 더한 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청소년들은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었을 때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 앞에서는 평소에 잘하던 말도 못하고, 좀 거북스럽게 행동하는데 비해 수혼은 반대로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여자들 앞에서는 말도 잘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특이 체질이었다. 그것은 수혼의 집안이 대가족이라 누나들이 많아서 여자들이 수혼에게는 남자들보다 더 편하게 느껴져 그런 것이다.

수혼은 여자들 앞에서 물맛난 고기마냥 마구 떠들었다. 하지만 수혼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는 수혼의 친구 은성이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화제가 세계사, 국사, 역경, 주역 등 고리타분한 것들 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들도 수혼의 말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하는 것이 너무 열정적이고 또한 자신들이 잘 모르는 새로운 얘기들이라 잘 경청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너희들도 한번쯤 한단고기(환단고기)라는 책을 읽어봐. 그곳에 보면 우리들이 학교에서 배운 국사와는 너무나 다른 우리나라의 역사가 기술돼 있어. 머 사람들이 그건 야사지 역사서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난 이왕이면 우리가 배우는 국사보다는 한단고기에 나오는 우리나라 역사를 믿고 싶고, 또 그것이 야사가 아닌 우리나라의 진정한 역사라고 믿어”
“참고로 말하면 한단고기에서 기술된 내용들을 그 시기 기술된 중국의 역사서와 비교해 보면 한단고기의 역사서를 사실이라고 확인할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어”
수혼이 떠들자 옆에서 은성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사실 수혼과 은성은 둘 다 말이 없는 편에 속하지만 일단 역사나 주역이야기가 나오면 거침없이 말들을 토해냈다. 꼭 교수가 제자들에게 강의하듯이 말이다.
성매나 지영이라는 애들은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먹는데 열중하고 미선이라는 애는 조금은 관심 있지만 수혼이 말하는 이야기가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에 조금은 짜증내는 듯했다. 다만 란이란 애만이 총총한 눈으로 얘기를 경청했다.
수혼이 이렇게 떠드는 것은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그러는 것이지 여자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자들이 재미어하든 지루해하던 관심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라도 떠들지 않으면 다른 애들이 조용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 이였다.
어느덧 식사가 끝나고 후식이 나왔다. 여자들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남자들은 대부분 음료수를 주문했다.
“내가 얘기하는 거 재미없지”
“그래 무슨 애 늙은이도 아니고 너무 고리타분하다”
“그렇다고 미팅에 나와서 호구조사 하는 것도 재미없고 학교 따져가며 같은 동문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재미없는 것 야냐”
“차라지 그런 애기가 낳겠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너희들이 말해”
수혼은 투명스럽게 대답하고 입을 닫았다.
미선이라는 애가 그래도 그녀들 중에 가장 활달했다.
“우리들은 사실 국민학교, 중학교는 다 다른 학교 나왔어. 다만 고등학교만 같이 다니는 거지. 그쪽은 어때”
“우리들은 국민 학교 때 같은 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는 나와 재운이, 수혼이 나 이렇게 같은 학교. 그리고 은성이만 다른 학교였지.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완전히 4명 모두 다른 학교 다녀”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만나니”
대화는 미선 이와 지성이가 주도하고 다른 애들은 조용히 듣고 있는 형국 이였다.
“우리들 모두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 그래서 동네에서 자주 만나. 하지만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지금 졸업반이 되고 해서 다시 이렇게 만나고 있지”
“참 너희들 중에 회사원도 있다며”
지성이가 수혼의 얼굴을 잠깐 보았다.
“어제부로 잘렸데”
“아니 들어가진 얼마나 되었다고 짜리니! 머 그런 회사가 있어”
아무래도 지성이가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은 여자들에게 한 모양이다. 수혼은 머라 말하려고 하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자신이 그만 둔 것이나 잘린 것이나 결과는 같기 때문이다.
“너지 수혼이라는 애가”
“그래!! 내가 생각하던 회사하고는 너무 다른 관계로 그렇게 됐지”
“머 할 거야. 다시 취업하니”
“아니 전문대 준비하려고 독서실 끊고 왔다”
“독서실”
“아~ 수혼이도 우리와 같은 독서실로 오기로 했어”
“같은 독서실”
“몰랐어. 여기 있는 숙녀 분들은 우리와 같은 독서실에 있어. 여자들은 4층 남자들은 5층, 층만 다르지 같은 독서실에 다녀”
(그럼 머야. 이 여자들도 모두 전후기 대학 떨어지고 전문대 준비하고 있는 거잖아. 우리와 동족들이군. 우리도 한심하지만 너희들도 어지간하다.)

수혼은 그렇게 단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이 단정적으로 생각한 이 일로 인해 길고도 질긴 7년간의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다. 만일 그때 “왜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어요”라는 간단한 질문만 했어도 그렇게 가슴 아픈 사랑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들 하며 후식을 모두 마치고 지성이의 제안으로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가까운 곳에 파리공원이란 곳이 있었다. 한국과 프랑스 백주년 기념으로 한국과 프랑스에 똑같이 만들었다는 공원으로 그냥 산책하기에는 부담 없는 곳이다. 바보에서 나온 우리는 파리공원까지 걸었다. 한 30분쯤 걸리는 거리로 좀 먼 거리였지만 걷는 것을 좋아하는 수혼의 친구들이라 모두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거리를 걸어가며 남자들이 앞에서 걷고 여자들은 뒤에서 따라오는 것이 되었다. 보통 수혼이 고등학교 때 미팅을 하면 만난 곳에서 파트너 정하고 바로 파트너별로 흩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미팅은 어차피 계속 같은 독서실에서 얼굴보고 지날 사이이기 때문에 파트너를 정하고 각자 흩어지는 이런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파리공원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늦어 수혼은 먼저 집으로 가고 다른 애들은 독서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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