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3장
그날은 성년식이 있었던 날 이였다. 회사를 마치고 학교에 가니 수업이 모두 취소되고 학과별로 성년식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전자계산학과에서도 아이들끼리 돈을 걷어 파티를 하기로 협의 한 상태였다. 난 학교에서 수업시간 외에는 잘 볼 수 없는 아이였다. 회사 끝나고 수업 받고 집에 가서 쉬기도 바쁜 몸이라 자연히 학과 친구들과 친하지 못했다. 다만 실습시간에 아이들이 많이 도와죠 몇몇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친하지 못했다. 전자계산과는 남자여자 비율이 60:40 정도로 남자들이 조금 많았다. 하지만 역시나 난 학과 여자들에게 관심도 없었다. 란이 있었기 때문에 충실하기 위해 그런 이유는 아니고 단지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그날도 성년식 파티가 있다고 했지만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싫고 몸도 피곤해서 돈만 내고 집으로 와 버렸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와서 쉬고 있는데 10쯤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전화 왔다고 해서 받아보니 모르는 남자 목소리다.
“조수혼씨 되세요.”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저 양란 동기인데, 란이 많이 취해서 저와 함께 강남역에 있어요.”
무언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울화가 치밀어 오르며 숨이 막히는 느낌 이였다.
“그래요. 제가 지금 강남역으로 가려면 시간이 걸려요. 아마 1시간쯤 걸릴 것 같은데”
남자에게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침착하게 답했다. 남자가 전화를 한 이유가 날 나오라는 의미 같았기 때문에 강남역까지 시간을 계산하고 답했는데 남자는 내 말을 듣고 옆에 있는 애와 이야기하는 듯 잠깐 수화기 넘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란이 지금 전철을 타고 영등포구청역으로 간다고 해내요. 그쪽으로 나오실 수 있어요.”
“지금 출발하지요.”
택시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끌어 올라오는데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질투하나. 내가... 누구에게.... 왜.... 아니야. 질투는 아냐. 내가 머라고 질투를 해. 화가 난다. 무엇 때문에, 난 놀지도 못하고 집에 있는데 지는 술 먹었다고 해서... 아니면 모처럼 쉬고 있는데 방해해서..... 모르겠다.)
복잡한 마음으로 역에 도착했다. 너무 빨리 와서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개찰구 앞에 서서 나오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속이 복잡하지만 한 가지. 그녀에게 화가 나 있는 건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와 나란히 함께 걸어오고 있는데 날 보더니 멀리서도 몸을 세우며 반듯하게 했다. 남자도 날 보았다. 남자는 날 보더니 멀리서 인사하고 란을 보더니 개찰구를 나오지도 않고 다시 전철 타는 곳으로 내려가 버렸다.
“많이 먹었어”
“응 선배들이 성년식이라고 삼배 주를 먹이고 해서”
평소와 다르게 많이 흐트러진 모습 이였다. 내 앞에 와서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는지 똑바로 서 있었다.
“늦었다. 가자.”
난 먼저 걸었고, 그녀는 말이 없이 뒤따라 왔다. 시간도 늦어 택시를 잡으려 했다.
“싫어. 버스타고 가자”
“시간도 늦고 너 많이 취했다며”
“돈 아까워. 그리고 나 지금 술 꼈어”
그녀는 억지를 부렸다. 그녀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방법이 없다. 나도 고집에 쌘 편이지만 그녀의 고집은 고래심줄이다.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고 목동에 도착해서 그녀의 집으로 갔다. 우린 그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내가 화나듯 있었고 그런 날 보고 란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들어가”
“조금 있다 가면 안돼”
“지금 몇 시야 11시야”
“술 먹고 집에 들어가면 혼나! 나 술 좀 더 깨고 들어가면 안돼”
“어떻게 하자고”
“파리 공원가자. 걸어갔다 오면 술이 깨 것 같아”
할 수 없이 그녀와 함께 파리공원으로 향했다. 한 20여분 거리에 있는 공원까지 걸어가다 보니 난 억누르고 있던 화가 터지는 것 같았다. 그녀를 빨리 보내고 집에 들어가 화를 싹허야 하는데 그녀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니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더 복받쳐 올라오는 것 이였다.
“잠깐만”
나 공원 앞 가게에 들어가서 소주와 약주를 구입했다. 그녀와 함께 공원 벤츠에 않았다. 소주를 타서 잔도 없이 들이 컸다.
“수혼아. 왜 그래”
“별일 아니야. 술 먹고 싶어서 그래”
“넌 성년식이라고 학교에서 술 안 먹었어”
“피곤해서 그냥 왔어. 오늘 처음 먹는 거야. 넌 얼마나 마신거야”
“한 소주 2병정도 마신 거 같아. 쓰려져서 있는데 동기가 집에 바라다 준다고 해서”
“그래, 하긴 소주 반병만 마셔도 취하는데 2병이나 마셨으니 쓰려지겠지”
그녀는 주량이 약했다. 소주 한두 잔만 들어가도 얼굴이 빨개지고 반병을 마시면 정신 못 차리고 횡성수설에 길가다 노래를 하거나 집에 안가다고 고집을 부리는 평소와 완전히 단판이 된다. 그런 애가 소주 2병을 마셨으니 정신 못 차릴 만도 하다.
“선배들이 사람 잡으려고 했네. 그리고 너는 넙죽넙죽 받아먹고”
“성년식 맞는 다른 애들도 다 먹는데 나만 안 먹을 수 없었어”
“그렇지. 안 먹을 수 없지. 쓰려져도 먹어야지. 천하의 양란이 술이 무서워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돼지.”
“너 화났어”
“아니야. 무슨 화가 나! 내가 너에게 먼데 화를 내”
한두 번 더 마시자. 소주가 바닥이 났다. 양주를 타고 양주를 마셨다. 아무래도 취하지 않으면 억누르고 있던 화가 터져 버릴 것이다. 란에게 난 그리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니다. 란이 내 애인도 아니고 단지 아는 사람인데, 왜 란에게 화를 낸다 말인가?
란은 가만히 나의 모습을 치켜보았다. 술을 잔도 없이 마시고 있는데 말리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주량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소주 4병정도 마셔야 취한다는 걸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급하게 마시면 천천히 마시라고 말리던 애가 오늘은 그냥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속에서 불이 났다. 안주도 없이 소주 한 병을 병나발 불고 독한 양주를 마시니 짱자가 타는 듯 따끔거리며 열기가 얼굴로 확하고 올라왔다. 아직은 5월이라 밤으로 쌀쌀한 기운이 있었지만 술 마신 기운 때문에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혼아. 나 말이야. 너희 집에 가면서 느끼는 건데. 네가 참 행복하다고 느껴”
“무슨 말이야”
(애가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야. 술이 더 깬 거야.)
“너희 집 보면서 부렴들아. 어머니, 아버지 여자친구가 왔는데도 친절하시고, 너에게는 천하에 없는 아들마냥 향상 감싸주시고 그런 모든 것이 부렴들아”
“.......”
“네가 물었지. 왜 향상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냐고. 왜 향상 집 앞에서 망설이며 집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
“우리 집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만 살아. 넷째 오빠까지 결혼해서 모두 지방에 살고 막내 오빠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해. 그래서 셋만 살아”
“..........”
“나 친구들 한데도 말 못한 건데, 우리 엄마 새엄마다. 더욱이 6명 자식들 중에 엄마 배속으로 난 자식은 아무도 없어. 모두 전에 엄마 속에서 나왔어. 근데 있지. 우리 엄마 계모데 자식들이 아무도 큰소리 못해. 시골에 살 때 아빠가 암에 걸렸다. 엄마 돌아가시고 술로 세월을 보내시다 암에 걸렸는데 그때 새엄마가 우리아빠 살렸어. 병원에서 희망이 없다고 했는데 새엄마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빠 겉을 지켜주며 아빠 살렸어. 우리 아빠 모두 죽는 줄 알았는데 새엄마가 살렸어. 그래서 아무도 우리엄마한테 큰소리 못해.”
“......”
“오빠들은 그래도 그런 새엄마 보기 싫다고 모두 집나가서 살고 나만 같이 살아. 새엄마도 자식들이 자길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식들한테 정말 쌀쌀해. 나도 새엄마 아빠 살려줘서 고마운데 자꾸 엄마 생각나서 새엄마를 엄마라고도 못 불려. 조금 큰 다음에 돌아가셔서 가슴속에 엄마의 영상이 가득한데 새엄마를 보고 어떻게 엄마라고 부르니.”
“.......”
“나 가끔 너무 엄마보고 싶다. 근데 엄마 제주도에 있어서 가기도 힘들어.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찾아가지도 못해”
그 강한 란이 울고 있었다. 촉촉한 눈망울에서 두 줄기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려 내렸다. 그렇게 구박하고 그렇게 힘들게 해도 남 앞에서 그렇게 강했던 그녀가 울고 있었다.
“나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으면 미칠 것 같았어. 근데 널 보면 슬픔이 잊어져. 그렇게 슬픔에 잠겨도 널 만나면 아픔이 없어져”
올라오던 술기운이 삽시간에 날아가 버렸다. 정신이 번적 들었다. 향상 강하고, 향상 당당하고, 부족하게 하나 없을 것 같은 그녀가 가슴속에 깊이깊이 감추고 있던 슬픔을 꺼내 보이며 울고 있었다.
“너에게 향상 감사해. 그리고 미안해. 억지만 쓰는 날 받아주고 향상 밝은 얼굴로 날 대해 주는 넌 너무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아빠도 새엄마 눈치 보며 살갑게 대하지 않아. 집에 가도, 학교에 가도, 친구를 만나도 향상 혼자야. 하지만 너와 있으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내 겉에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해”
손이 떨려 왔다. 울고 있는 그녀를 감싸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그녀의 눈물을 닫아주고 싶다. 참는다. 아직까지도 그녀는 내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떠날 사람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다.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녀의 사랑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그녀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었다.
‘사랑이 주기만 하는 거라면, 사랑이 받기만 하는 거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아낌없이 모든 걸 주고, 사랑하는 이에게 모든 걸 받기 원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주기만 하는 사랑, 받기만 하는 사랑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떨리는 손으로 병을 들어 입에 부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녀 앞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무너질 것 같았다. 술기운이라도 빌려야 했다. 가득 고인 눈물이 고개를 숙이자마자 흘려 내렸다. 눈물도 전염되는 것인가. 소리 없이 두빰을 타고 눈물이 방울져 흘려 내렸다.
“몰랐어. 가슴속에 슬픔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 너무너무 미안해. 그런 것도 모르고 향상 힘들게 해서”
최대한 침착하려 해도 목소리가 떨려다.
“울지 마. 남자가 창피하게 왜 우니”
“내가 언제”
흐르는 눈물 닫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녀도 눈물을 닫고 웃는다. 말없이 서로를 한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한번 않아주면 안돼”
“머…….”
“한번만……. 너 품에 안겨보고 싶어”
“그건......”
그녀의 눈은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자신은 품어 달라고 자신을 안아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망설였다. 2년을 만나고 있지만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고,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직까지 손 한번 잡지 않았다. 그녀가 원해도 언제나 그건 만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녀도 그 문제만큼은 너무나 냉정하게 거절하는 태도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안 지금도 너무나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 눈빛을 보고 더 이상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속절없는 것인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안 된다고 외치고 있지만 어느새 내손은 그녀의 얼굴을 감 쌓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가 내 가슴으로 숙어져 왔다. 자연스럽게 내 팔은 그녀의 가르다란 어깨를 넘어 등으로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두 어깨가 가늘게 흔들렸다. 숨죽어 흐느끼는 그녀를 가슴으로 느낀다. 그녀의 등을 토닥이다 부드러운 그녀의 머릿결을 슬며시 슬어 준다.
(그래 울어,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 네 좁은 가슴이 너에게 힘이 된다면 얼마든지 빌려 줄깨, 마음껏 울고 다시 당당하고 씩씩한 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야. 약한 모습 너에게 안 어울려. 양란은 약한 애가 아니잖아)
그녀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슬어주며 울음이 그칠 때까지 말없이 지켜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몸이 진정되었다. 살며시 고개를 들것 같기에 손을 풀어 주었다.
“고마워. 이제 됐어. 시원하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듯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날 보았다. 뭉클한 것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다시 안아주고 싶은 감정을 억지로 진정하고 나도 웃어 주었다.
시간이 2시간 넘어가고 있었다.
“가자. 부모님 걱정한다.”
“그래. 너 출근해야지. 가자”
란을 집 앞에서 처음으로 란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보내야 한다. 멀리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우리 쪽을 보면서 서성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란. 혹시 저 사람 알아”
그 사람이 란 뒤에 있어서 그녀는 보지 못했다. 뒤돌아보던 그녀가 흠 짓 놀란다.
“아빠야. 들어가야 될 것 같아”
“빨리 가”
그녀는 뛰어서 아빠에게 달려갔다. 인사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멀리 란의 아빠에게 달려가 인사한다는 것도 실례 같아 그만 두었다.
그날은 성년식이 있었던 날 이였다. 회사를 마치고 학교에 가니 수업이 모두 취소되고 학과별로 성년식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전자계산학과에서도 아이들끼리 돈을 걷어 파티를 하기로 협의 한 상태였다. 난 학교에서 수업시간 외에는 잘 볼 수 없는 아이였다. 회사 끝나고 수업 받고 집에 가서 쉬기도 바쁜 몸이라 자연히 학과 친구들과 친하지 못했다. 다만 실습시간에 아이들이 많이 도와죠 몇몇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친하지 못했다. 전자계산과는 남자여자 비율이 60:40 정도로 남자들이 조금 많았다. 하지만 역시나 난 학과 여자들에게 관심도 없었다. 란이 있었기 때문에 충실하기 위해 그런 이유는 아니고 단지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그날도 성년식 파티가 있다고 했지만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싫고 몸도 피곤해서 돈만 내고 집으로 와 버렸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와서 쉬고 있는데 10쯤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전화 왔다고 해서 받아보니 모르는 남자 목소리다.
“조수혼씨 되세요.”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저 양란 동기인데, 란이 많이 취해서 저와 함께 강남역에 있어요.”
무언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울화가 치밀어 오르며 숨이 막히는 느낌 이였다.
“그래요. 제가 지금 강남역으로 가려면 시간이 걸려요. 아마 1시간쯤 걸릴 것 같은데”
남자에게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침착하게 답했다. 남자가 전화를 한 이유가 날 나오라는 의미 같았기 때문에 강남역까지 시간을 계산하고 답했는데 남자는 내 말을 듣고 옆에 있는 애와 이야기하는 듯 잠깐 수화기 넘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란이 지금 전철을 타고 영등포구청역으로 간다고 해내요. 그쪽으로 나오실 수 있어요.”
“지금 출발하지요.”
택시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끌어 올라오는데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질투하나. 내가... 누구에게.... 왜.... 아니야. 질투는 아냐. 내가 머라고 질투를 해. 화가 난다. 무엇 때문에, 난 놀지도 못하고 집에 있는데 지는 술 먹었다고 해서... 아니면 모처럼 쉬고 있는데 방해해서..... 모르겠다.)
복잡한 마음으로 역에 도착했다. 너무 빨리 와서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개찰구 앞에 서서 나오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속이 복잡하지만 한 가지. 그녀에게 화가 나 있는 건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와 나란히 함께 걸어오고 있는데 날 보더니 멀리서도 몸을 세우며 반듯하게 했다. 남자도 날 보았다. 남자는 날 보더니 멀리서 인사하고 란을 보더니 개찰구를 나오지도 않고 다시 전철 타는 곳으로 내려가 버렸다.
“많이 먹었어”
“응 선배들이 성년식이라고 삼배 주를 먹이고 해서”
평소와 다르게 많이 흐트러진 모습 이였다. 내 앞에 와서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는지 똑바로 서 있었다.
“늦었다. 가자.”
난 먼저 걸었고, 그녀는 말이 없이 뒤따라 왔다. 시간도 늦어 택시를 잡으려 했다.
“싫어. 버스타고 가자”
“시간도 늦고 너 많이 취했다며”
“돈 아까워. 그리고 나 지금 술 꼈어”
그녀는 억지를 부렸다. 그녀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방법이 없다. 나도 고집에 쌘 편이지만 그녀의 고집은 고래심줄이다.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고 목동에 도착해서 그녀의 집으로 갔다. 우린 그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내가 화나듯 있었고 그런 날 보고 란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들어가”
“조금 있다 가면 안돼”
“지금 몇 시야 11시야”
“술 먹고 집에 들어가면 혼나! 나 술 좀 더 깨고 들어가면 안돼”
“어떻게 하자고”
“파리 공원가자. 걸어갔다 오면 술이 깨 것 같아”
할 수 없이 그녀와 함께 파리공원으로 향했다. 한 20여분 거리에 있는 공원까지 걸어가다 보니 난 억누르고 있던 화가 터지는 것 같았다. 그녀를 빨리 보내고 집에 들어가 화를 싹허야 하는데 그녀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니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더 복받쳐 올라오는 것 이였다.
“잠깐만”
나 공원 앞 가게에 들어가서 소주와 약주를 구입했다. 그녀와 함께 공원 벤츠에 않았다. 소주를 타서 잔도 없이 들이 컸다.
“수혼아. 왜 그래”
“별일 아니야. 술 먹고 싶어서 그래”
“넌 성년식이라고 학교에서 술 안 먹었어”
“피곤해서 그냥 왔어. 오늘 처음 먹는 거야. 넌 얼마나 마신거야”
“한 소주 2병정도 마신 거 같아. 쓰려져서 있는데 동기가 집에 바라다 준다고 해서”
“그래, 하긴 소주 반병만 마셔도 취하는데 2병이나 마셨으니 쓰려지겠지”
그녀는 주량이 약했다. 소주 한두 잔만 들어가도 얼굴이 빨개지고 반병을 마시면 정신 못 차리고 횡성수설에 길가다 노래를 하거나 집에 안가다고 고집을 부리는 평소와 완전히 단판이 된다. 그런 애가 소주 2병을 마셨으니 정신 못 차릴 만도 하다.
“선배들이 사람 잡으려고 했네. 그리고 너는 넙죽넙죽 받아먹고”
“성년식 맞는 다른 애들도 다 먹는데 나만 안 먹을 수 없었어”
“그렇지. 안 먹을 수 없지. 쓰려져도 먹어야지. 천하의 양란이 술이 무서워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돼지.”
“너 화났어”
“아니야. 무슨 화가 나! 내가 너에게 먼데 화를 내”
한두 번 더 마시자. 소주가 바닥이 났다. 양주를 타고 양주를 마셨다. 아무래도 취하지 않으면 억누르고 있던 화가 터져 버릴 것이다. 란에게 난 그리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니다. 란이 내 애인도 아니고 단지 아는 사람인데, 왜 란에게 화를 낸다 말인가?
란은 가만히 나의 모습을 치켜보았다. 술을 잔도 없이 마시고 있는데 말리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주량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소주 4병정도 마셔야 취한다는 걸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급하게 마시면 천천히 마시라고 말리던 애가 오늘은 그냥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속에서 불이 났다. 안주도 없이 소주 한 병을 병나발 불고 독한 양주를 마시니 짱자가 타는 듯 따끔거리며 열기가 얼굴로 확하고 올라왔다. 아직은 5월이라 밤으로 쌀쌀한 기운이 있었지만 술 마신 기운 때문에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혼아. 나 말이야. 너희 집에 가면서 느끼는 건데. 네가 참 행복하다고 느껴”
“무슨 말이야”
(애가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야. 술이 더 깬 거야.)
“너희 집 보면서 부렴들아. 어머니, 아버지 여자친구가 왔는데도 친절하시고, 너에게는 천하에 없는 아들마냥 향상 감싸주시고 그런 모든 것이 부렴들아”
“.......”
“네가 물었지. 왜 향상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냐고. 왜 향상 집 앞에서 망설이며 집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
“우리 집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만 살아. 넷째 오빠까지 결혼해서 모두 지방에 살고 막내 오빠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해. 그래서 셋만 살아”
“..........”
“나 친구들 한데도 말 못한 건데, 우리 엄마 새엄마다. 더욱이 6명 자식들 중에 엄마 배속으로 난 자식은 아무도 없어. 모두 전에 엄마 속에서 나왔어. 근데 있지. 우리 엄마 계모데 자식들이 아무도 큰소리 못해. 시골에 살 때 아빠가 암에 걸렸다. 엄마 돌아가시고 술로 세월을 보내시다 암에 걸렸는데 그때 새엄마가 우리아빠 살렸어. 병원에서 희망이 없다고 했는데 새엄마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빠 겉을 지켜주며 아빠 살렸어. 우리 아빠 모두 죽는 줄 알았는데 새엄마가 살렸어. 그래서 아무도 우리엄마한테 큰소리 못해.”
“......”
“오빠들은 그래도 그런 새엄마 보기 싫다고 모두 집나가서 살고 나만 같이 살아. 새엄마도 자식들이 자길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식들한테 정말 쌀쌀해. 나도 새엄마 아빠 살려줘서 고마운데 자꾸 엄마 생각나서 새엄마를 엄마라고도 못 불려. 조금 큰 다음에 돌아가셔서 가슴속에 엄마의 영상이 가득한데 새엄마를 보고 어떻게 엄마라고 부르니.”
“.......”
“나 가끔 너무 엄마보고 싶다. 근데 엄마 제주도에 있어서 가기도 힘들어.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찾아가지도 못해”
그 강한 란이 울고 있었다. 촉촉한 눈망울에서 두 줄기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려 내렸다. 그렇게 구박하고 그렇게 힘들게 해도 남 앞에서 그렇게 강했던 그녀가 울고 있었다.
“나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으면 미칠 것 같았어. 근데 널 보면 슬픔이 잊어져. 그렇게 슬픔에 잠겨도 널 만나면 아픔이 없어져”
올라오던 술기운이 삽시간에 날아가 버렸다. 정신이 번적 들었다. 향상 강하고, 향상 당당하고, 부족하게 하나 없을 것 같은 그녀가 가슴속에 깊이깊이 감추고 있던 슬픔을 꺼내 보이며 울고 있었다.
“너에게 향상 감사해. 그리고 미안해. 억지만 쓰는 날 받아주고 향상 밝은 얼굴로 날 대해 주는 넌 너무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아빠도 새엄마 눈치 보며 살갑게 대하지 않아. 집에 가도, 학교에 가도, 친구를 만나도 향상 혼자야. 하지만 너와 있으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내 겉에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해”
손이 떨려 왔다. 울고 있는 그녀를 감싸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그녀의 눈물을 닫아주고 싶다. 참는다. 아직까지도 그녀는 내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떠날 사람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다.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녀의 사랑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그녀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었다.
‘사랑이 주기만 하는 거라면, 사랑이 받기만 하는 거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아낌없이 모든 걸 주고, 사랑하는 이에게 모든 걸 받기 원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주기만 하는 사랑, 받기만 하는 사랑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떨리는 손으로 병을 들어 입에 부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녀 앞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무너질 것 같았다. 술기운이라도 빌려야 했다. 가득 고인 눈물이 고개를 숙이자마자 흘려 내렸다. 눈물도 전염되는 것인가. 소리 없이 두빰을 타고 눈물이 방울져 흘려 내렸다.
“몰랐어. 가슴속에 슬픔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 너무너무 미안해. 그런 것도 모르고 향상 힘들게 해서”
최대한 침착하려 해도 목소리가 떨려다.
“울지 마. 남자가 창피하게 왜 우니”
“내가 언제”
흐르는 눈물 닫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녀도 눈물을 닫고 웃는다. 말없이 서로를 한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한번 않아주면 안돼”
“머…….”
“한번만……. 너 품에 안겨보고 싶어”
“그건......”
그녀의 눈은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자신은 품어 달라고 자신을 안아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망설였다. 2년을 만나고 있지만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고,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직까지 손 한번 잡지 않았다. 그녀가 원해도 언제나 그건 만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녀도 그 문제만큼은 너무나 냉정하게 거절하는 태도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안 지금도 너무나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 눈빛을 보고 더 이상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속절없는 것인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안 된다고 외치고 있지만 어느새 내손은 그녀의 얼굴을 감 쌓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가 내 가슴으로 숙어져 왔다. 자연스럽게 내 팔은 그녀의 가르다란 어깨를 넘어 등으로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두 어깨가 가늘게 흔들렸다. 숨죽어 흐느끼는 그녀를 가슴으로 느낀다. 그녀의 등을 토닥이다 부드러운 그녀의 머릿결을 슬며시 슬어 준다.
(그래 울어,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 네 좁은 가슴이 너에게 힘이 된다면 얼마든지 빌려 줄깨, 마음껏 울고 다시 당당하고 씩씩한 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야. 약한 모습 너에게 안 어울려. 양란은 약한 애가 아니잖아)
그녀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슬어주며 울음이 그칠 때까지 말없이 지켜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몸이 진정되었다. 살며시 고개를 들것 같기에 손을 풀어 주었다.
“고마워. 이제 됐어. 시원하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듯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날 보았다. 뭉클한 것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다시 안아주고 싶은 감정을 억지로 진정하고 나도 웃어 주었다.
시간이 2시간 넘어가고 있었다.
“가자. 부모님 걱정한다.”
“그래. 너 출근해야지. 가자”
란을 집 앞에서 처음으로 란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보내야 한다. 멀리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우리 쪽을 보면서 서성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란. 혹시 저 사람 알아”
그 사람이 란 뒤에 있어서 그녀는 보지 못했다. 뒤돌아보던 그녀가 흠 짓 놀란다.
“아빠야. 들어가야 될 것 같아”
“빨리 가”
그녀는 뛰어서 아빠에게 달려갔다. 인사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멀리 란의 아빠에게 달려가 인사한다는 것도 실례 같아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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