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902호
1. 슬픈 아이
모든일이 잘 풀리고 몇 일 뒤 누나와 남편은 날 정식으로 초대했다.
남편은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더 자상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윤성이 만은 그렇게 쉽게 아빠에게 다가지 못하고 슬슬 눈치를 봤다.
“정말 뭐라고 이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아니예요...솔직히 제 주변에 가정폭력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그때는 화가 났지만,
이렇게 예전에 모습으로 돌아가니 정말 다행이네요...”
“근데 눈이 좋으신가 보네요...전 저 앞동이 잘 않보이는데...”
“네...네?...네...제가 조...좀 좋은 편이거든요...하하하”
그렇게 달라진 가정을 보자 누나를 알고 난 뒤 가슴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누나는 내게 직접적인 말은 않했지만,
눈빛으로 충분히 고맙다는 말을 하는 듯했다.
남편은 내가 논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기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했지만,
쉽게 승낙할 수가 없었다.
다시한번 잘 생각해 보고 결정되면 연락하라는 남편의 말을 뒤로 집을 나왔다.
‘그럼 이제 누나와 다시 그런일을 할 수 없겠지?...’
‘좀 아쉽기는 해도 너무 잘됐다...’
난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집으로 발길을 돌려 놀이터를 지나치는데...
“에이...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한참 기다렸잖아...불렀는데 대답도 없고...핸드폰도 않받고”
놀이터에서 갑자기 혜란이가 불쑥 튀어 나왔다.
“어...어...혜란이구나...하하”
“어...어...혜란이구나...하하...아저씨 월래 말 더듬던 사람 아냐?”
“아...아...아냐...”
“아...아...아냐...키득키득”
혜란이는 연신 내 말을 따라 하면서 즐거워했다.
“나 배고파 밥사줘...”
“밥?...나 지금 먹구 나오는 길인데...”
“나만 먹으면 되잖아...”
“어...어...그래...”
“어...어...그래...키득키득”
‘에휴~ 내가 어쩌다가 이런 어린 꼬마한테 이런 꼴을 당하누...’
하지만 그렇게 장난치는 혜란이 싫지는 않았다.
혜란이는 비빔밥이 나오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야...너 집에서 밥 않주냐?”
“응...”
“너 이 아파트 사는거 마저?”
“마저...101동 1902호...근데 아저씨두 101동 살지 않어?...왜 102동으로 들어갔어?”
“응...누구 아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저녁 먹구 나왔거든...그리고,
너 왜 자꾸 나한테 아저씨라구 그러냐?...이렇게 젊은 오빠한테...”
“오빠?...푸하하하...아저씨랑 나랑 몇 살 차이 나는지 알아?”
“한 8~9살?...”
“근데 오빠가 가당키나 해?...정말 밥맛 떨어지게 왜이러셔...”
“그정도면...오빠라고 해도 되지 않나?...쩝”
“아저씨 대학 나왔지?”
“엉”
“아저씨 대학 다닐때 나 뭐했는지 알아?”
“그야...초...”
“이제 할 말 없지?”
“.....”
“내가 오빠라고 불러주면 나한테 뭐해 줄껀데?”
“야...이렇게 밥도 사주고...뭐...”
“밥 밖에 더 사줬어?...치...좋아...까짓거...앞으로 나한테 하는거 봐서...”
“참나...”
“아~ 배부르다...잘먹었어 아저씨...”
“너!!! 아저씨라고 하면서 자꾸 반말 할래!!!”
“아~ 이래서 노땅들은 않된다니깐...나 갈게...”
“에휴...”
“아참...나 이제 그런거 않하기로 했어...그럼 다음에 봐”
‘그런거?...아~ 원조?...그래도 다행이네...’
혜란이를 만나면 이제는 나까지 덩달아 즐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참 밝고 명랑한 아인데...에혀~’
“아줌마 여기 얼마예요?”
“4500원이요...”
하지만 내 주머니에는 2000원 밖에 없었다.
“저기...아줌마...제가 깜빡하고 지갑을...다음에 갖다 드리면...”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하나...핸드폰이라도 맞겨요”
“아줌마 저 요 앞에 삼성아파트 살아요...제가 담에 갖다 드릴께요...”
“아니 이 아저씨가...내가 당신이 거기 사는지 어떻게 알아요 빨리 핸드폰 맞기구 가요”
“네...”
가게에 있던 손님들은 날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 쪽팔려...’
난 그날 개쪽 다 팔리고 핸드폰까지 뺏겨가며 그 가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아침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
“여보세요(잠이 덜깬 소리)...”
“아저씨...뭐야 아직도 자는거야?...일요일인데 집에서 뭐해...나와...얼릉”
“전화 잘못 하셨어요(역시 잠이 덜깬 소리)”
“뚝!”
“띠리리리~”
“여보세요(아직도 잠이 덜깬 소리)”
“야~~~~~~~~~!!!!!”
‘깜딱!’
난 비명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보세요?”
“이 아저씨가 정말...빨리 안나와!”
“혜란이구나...아저씨 졸린데...”
“안나오면 집으로 처들어간다...존말 할때 빨랑 나와”
“아...알아서...아~~~함...”
“딱 10분 줄게...뚝!”
“여보세요...여보세요...아~ 증말...”
‘괜찮아 아무도 없는데 올테면 오라지...’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엄마가 들어왔다.
“너 정말 이런식으로 생활 할꺼야?”
“어...어...엄마?...가게는?”
“너 오늘 둘째 형 애기 돌인거 알아 몰라 어!”
‘맞다...오늘이지...아...귀찮게...헉!...혜..혜란이...’
난 순간 그동안 혜란이의 행동으로 봐서 집까지 찾아오고도 남을 애라는걸 알 수 있었다.
난 전광석화 처럼 움직였다.
대충 세수하고 옷 입고 나가면서 시계를 봤다
전화온지 12분이 지났다.
“띵~ 동!!!”
“누구지 이시간에?”
“않돼!!!...”
“예가 왜이래...아직도 꿈속에서 헤매나”
“내...내가 받을게...내가...”
“누...누구세요?”
“나야...문열어”
‘헉...혜란이였다’
“나...나...지...지금...나갈려고 했거든...저...정말이야...”
“알았어, 10초 줄게”
내가 나가려고 하자 뒤에서 엄마가 불렀다.
“너 어디가...저게 아직도 잠이 덜깼나”
“잠깐 요 앞에...금방 갔다 올게...금방...”
문을 열자 계단에 혜란이가 앉아 있었다.
“나...나...나왔어...”
“아...진짜 짜증날라고 하네...15초 지났어...”
“미...미...미안해...”
“미...미...미안해...않되겠네 정말 병이네...병...가자”
“어...어...어디?”
“어...어...어디?...풋...키득키득”
“나 오늘 형 애기 돌잔치 가야 되는데...”
혜란이는 대꾸도 없이 엘리베이트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 역시 그런 혜란이를 뒤따라 내려갔다.
“아저씨...나 바다 보고 싶은데...”
“바...바다?...연안부두 가면 되잖아...”
혜란이는 날 째려보더니,
“누가 그런 갯벌 보구 싶다구 했어?...동해로 가고 싶다고...”
“동해?...오늘은 좀...”
“싫음 마...나 혼자라도 갈꺼니깐...”
“아...아니...그게 아니구...오늘 형 애기...”
“됐어...알았으니깐 그만하라고...나 혼자 갈꺼라고 했지”
정말 혼자라도 갈 태세였다.
‘아~ 불쌍한 내 신세...’
어쩔 수 없이 강릉으로 가는 버스에 우린 함께 올랐다.
“아저씨...근데 뭐하는 사람이야?”
“나...나?...음...그게...지금은 특별히...”
“그냥 백수라고 해...뭐 그렇게 뜸을 들여...”
‘이걸 그냥 꽉!...어휴...내 아픈 상처를...’
“나이가 몇인데?”
“27”
“나랑 9살 차이나네...좀 많긴 하지만...”
“너 그럼 고2?”
“응”
우린 버스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별로 우습지 않은 얘기에도 혜란은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어느 덧 버스는 강릉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닷가...
“야~~~~~~~...나 왔다~~~~~~~...그동안 잘 있었냐~~~~~~~”
오랜만에 온 바닷가...
나 역시 기분이 상쾌해 지는 느낌이었다.
혜란이는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신발을 벗고 물속을 뛰어 다녔다.
“아저씨...배고프다 밥먹자...”
“저기...근데...”
“걱정마...이번에는 내가 사 줄게...”
‘아~ 정말 쪽팔린다...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나...’
“아저씨 회 좋아해?”
“그...그냥 그렇지 뭐...근데 그런데는 좀 비싸...”
“아...진짜 쪼잔하긴...”
혜란이는 근처 횟집으로 그냥 불쑥 들어갔다.
어린 애한테 얻어먹는 다는 것이 쪽팔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줌마 여기 소주도 한병 주세요...”
“야...대낮부터 무슨 술을...”
“아~ 진짜...이렇게 좋은 안주가 있는데...그럼 그냥 안주만 먹을라구?”
“.....”
정말 내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아이였다.
‘여자들은 왜이렇게 말발이 쎈지...’
술을 시켰지만 혜란이는 두잔밖에 먹질 않았다.
나머지?...물론 내가 다 먹었지...
얼추 음식을 다 먹자 혜란이는 내게 카드를 내밀었다.
“아저씨가 계산해...내가 가면 이상하게 생각하니깐...”
“어...어...그래...근데...이거 누구카드야?”
“걱정마 훔친거 아니니깐...”
대낮부터 얼굴이 벌게져서 우리는 횟집을 나왔다.
“아저씨 나 졸려...잠깐 어디 들어가 있자”
“저...저...저기...”
“풋...하하하...걱정마 않잡어 먹을 테니깐...하하하”
뭔가 상황이 좀 역전된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없이 우리는 근처 모텔로 들어갔다.
모텔에 들어가자 혜란은 내가 있는데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내가 어쩔 줄 몰라 아등바등하는 사이 혜란이 욕실에서 타올만 걸치고 나왔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 타올을 밖으로 던져 버리는 거였다.
“아저씨 거기서 그렇게 뻘쭘하게 있지말고 일루 와바...”
“아...아...아니...나...나...나...여기 있을게...피곤하면 한 숨자...”
“걱정 말라니깐 누가 아저씨 잡아먹는데?...”
난 혜란의 카리스마에 눌려 침대에 같이 누웠다.
“아~ 좋다...”
“이...이...이러지마...”
“아저씨...나랑 쌕스하고 싶지 않아?”
“자꾸 이러면 나...”
“아저씨는 정말 참 특이하다...혹시 고자 아니야?...”
“헉...”
“어?...여기는 이렇게 불둑 섯는데...”
“하지마...”
“하하하...”
“.....”
“근데 정말 나랑 하고싶지 않아?...아저씨들은 나 같은 영계 좋아하잖아...”
“.....”
“아~ 아뭏튼 좋다...나좀 이렇게 안고 잘게...아~ 함...”
정말 내 인내력에 찬사를 보낸다...
생각같아서는 지금이라도 혜란이를 덥치고 싶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작은 외침은 날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말렸다.
그렇게 잠시 나도 깜빡잠이 들었다.
“안돼...안돼...가지마...악~~~”
혜란의 비명 소리에 난 눈을 떳다.
악몽을 꾸는지 혜란이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땀을 닦아주고 혜란이를 안아주자 다시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혜란이는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내 품 속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혜란이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자?”
“아...아니...”
“나 악몽 꿨어...근데...근데...눈을 못뜨겠어...
눈을 뜨면 항상 그랬듯이 내 옆에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눈을 못뜨겠어...
근데...눈을 뜨니까...아저씨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몰라...
아저씨 정말 고마워...흑흑흑...”
‘이 어린 아이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왠지 내 품에 안겨 소리 죽여 우는 혜란이가 슬프게 보였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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