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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9:56 1,454회 0건
-55부-

유미는 침대 끝에 어색하게 엉덩이만 걸친 채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강주는 침대에 올라 비스듬히 누워 유미의 뒷모습을 간간이 바라본다.
낯 설은 둘만의 공간에 잔뜩 긴장한 듯 유미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유미씨......”

강주가 부르는 소리에 유미는 화들짝 놀라며 반응한다.

“네, 네?......”

“허......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리 놀라요? 이리 편하게 올라앉아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럼 밤새 그렇게 고문 받듯이 앉아 있을 거예요? 나를 오빠처럼 생각하라니까......”

“아유, 아무리 그래도 그게 어디 말이 돼요? 남편이 있는 여자가......”

“그 남편하고 헤어지기 싫으면 지금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지요?”

“어머! 이사님도 협조해 주신다고 하시고선...... 지금 그 말씀은 꼭 엄마에게 이르기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유미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서운한 듯 예쁘게 눈을 흘기니 강주의 앞섶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고 이내 허리를 틀어 유미의 시선을 따돌린다.

“하하...... 그럴 리가 있어요? 그 말이 아니고 유미씨가 너무 불편해 하니까 그러는 거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아군끼린데 너무 경계를 하니까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이리 와서 편히 기대요. 안심하고......”

유미는 강주의 말에 조금 미안했던지 경계를 풀고 침대의 한 옆으로 올라앉고 강주는 몸을 움직여 유미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준다.

“아! 이제 좀 그림이 나오네...... 하하하......”

“어머! 그림은 무슨 그림이요. 자꾸 갖다 붙이지 마세요. 차암......”

“그리고 그 사업 건에 대해선 생각해 봤어요?”

“네에...... 그건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

유미가 선뜻 마음의 결정을 내리질 못하니 강주의 마음이 더욱 바빠진다.
유미를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금융 사고를 일으켜 재원을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회장의 주변을 흩어버려 평정을 잃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그냥 보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참 이해할 수가 없네요.”

“뭐가요?”

“쉬운 길을 버려두고 어렵게 그 결혼을 지켜 내려고 하니까 보기에 답답해서 하는 소리에요.”

“제가 뭘요?...... 저는 다만 엄마하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것뿐이에요.”

“가치관이요?...... 무슨 가치관?...... 유미씨는 지금 즐기는 거예요. 유미씨가 정말 남편을 사랑해서 그 결혼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그로 인해서 갖은 고초를 겪게 되더라도 끝내 회장님하고 절연을 하고 둘이 멀리 도망이라도 가서 살았어야지요.
유미씨는 엄마의 그늘에서 안락하게 살면서 스스로 자기최면으로 그렇게 위안을 삼는 거예요. 유미씨가 엄마를 떠나지 못하니까 그 덕에 남편은 처갓집을 향해 숨소리 한 번 못 내고 눈치만 보고 사는 거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기죽어 사는 게 보기 좋단 말이에요?”

“네에?......”

“결혼이라는 건요. 성인 남녀가 각자가 부모의 품을 떠나 배우자와 한 몸을 이루는 겁니다. 부모의 품을 떠난다는 것은 물리적인 이사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부모에게서 떠나야 한다는 거예요.”

“......”

“남편은 유미씨를 위해서 진작 바보가 되어 버렸는데 유미씨는 무얼 위해서 그 가치관이란 이름으로 자존심을 지킬 거예요? 지금까지도 그 자존심은 남편을 위한 게 아니라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던 식구들과 유미씨 자신을 구분 짓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던 거예요. 오늘 유미씨하고 나하고 아무 일 없이 이 방을 나선다고 해도 이제는 온 집안 식구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식구들에게서 유미씨를 구분지어 주던 자존심은 이미 흠집이 난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럼 저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도대체......”

“유미씨 남편은 절대 지금 이 상태에서 일어서질 못해요. 내게는 기회가 넘치도록 많고...... 그 기회를 바탕으로 일어서라는데도 유미씨는 지금 이대로도 불편할 게 없으니까 남편이야 반 푼수가 되거나 말거나 상관 안 하는 겁니다. 내 말을 부정하려고만 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요. 정말 정신적으로 엄마를 떠나서 남편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지......”

유미는 강주의 말을 듣고 보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코 틀린 말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섣불리 사업을 한다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고 강주가 자신에게 요구할 대가도 무언지 짐작되는 까닭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비가 많이 내려서 산에 고립되어있는 부부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남편은 다쳐서 혼수상태에 빠졌고...... 건너편에는 구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구조해 주는 대가로 그 부인의 몸을 요구했다고 한다면 유미씨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 부부가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마침 강주가 자신이 고민하던 것의 정곡을 찔러온다. 대답이 궁한 유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하릴없이 헛기침을 할 뿐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음, 흠......”

“고민할 것도 없잖아요? 지금 유미씨 상황이 딱 그 꼴이란 겁니다. 사랑이라는 건 나눌 대상이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거예요. 이대로 가면 남편은 끝이잖아요? 내가 있고 그가 있어야 비로소 사랑이 시작될 수 있는 거잖아요? 짝사랑이라는 건 말장난에 불과한 거지만...... 하다못해 짝사랑도 그 대상은 있잖아요. 대상 없이 혼자 하는 사랑이란 건 어디에도 없어요.”

삼위일체라는 말이 있다. 사랑에 있어 그 교감하는 대상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일 테니 사랑을 가르치는 종교에 있어 삼위일체란 참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가 그 첫 번째고, 사탄으로 유래된 죄짓는 경향을 물리친 구세주가 그 두 번째, 지금 이 시간까지도 인류와 함께 한다는 절대자가 그 세 번째로 이 모두가 각각의 위격을 유지하지만 하나라는 말이고, 유일신이면서 그 격이 셋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사랑을 할 수 없으니 관계 안에서 서로의 사랑을 가르치는 종교로서는 어울리는 가르침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경지를 위격으로 삼아 비로자나불이라는 부처를 모신다.
이를 태양빛을 상징하는 근원적인 부처라 하니 곧 석가모니 이전의 부처요, 사람이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 창조주라는 말이고 관세음보살은 세상 시름을 모두 들어준다고 하니 그 또한 지금까지 함께 한다는 절대자와 닮았다.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종교의 가르침이 비슷하게 서로 통하니 흥미로운 일이다.
사람도 그와 비슷하게 각각의 처지에 따라 엄마도, 며느리도, 부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니 지혜로운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모든 일이 평화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유미의 경우처럼 자식으로의 입장만을 앞세운다면 이미 출가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남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니 그 평화는 진작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입장도 고려해야 옳겠지만 결혼을 했다면 그 우선순위에서 이야기는 달라져야 한다. 결혼은 결국 떠나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자신을 인정해 주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새로운 파트너와 신세계를 건설하는 일이니 그러지 못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아 미련을 남기게 된다면 결혼이란 그저 나이 찬 남녀 각개가 사회적으로 공식적인 오입허가를 받는 것에 불과한 일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난 유미씨 사랑을 지켜주는 대가로 교감을 원하는 것뿐이지만 그걸 거래처럼 요구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사람 사이에 절로 일어날 수 있는 가슴의 감정까지 속이진 말자는 겁니다. 결코 그게 유미씨에게 위해가 된다거나 할 일이 아니라는 건 더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유미는 대놓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강주를 마주보지도 못하고 발톱만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강주는 천천히 담배를 피워 물고 말을 잇는다.

“내일 나하고 그 회사에 같이 가자. 유미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오빠만 믿으면 돼. 그게 남편을 지키는 길이고 정말 네 사랑이 옳았다는 걸 식구들에게 보여주는 길이야. 그리고 이 상태로 가면 넌 결국 모든 것을 동생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고...... 지금이야 엄마가 계시니까 널 돌봐주지만 나중에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고 생각해 봐. 네 남편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네 스스로 걷어차고 나중에 후회해 봐야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무조건 이번 기회에 사업을 배워. 알았어?”

느닷없이 던지는 반말에는 반전의 힘이 들어있는지 강주의 단호한 의지를 느끼게 하고 유미는 고개를 들어 강주를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쉰다

“휴우......”

“네 사랑을 지키는 것과 나와의 관계는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 같은 별개의 문제니까 그것에 연연하지 말고...... 정 네 맘이 돌아서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은 배려해 줄 것이 없어. 그렇다면 여기 더 있을 필요도 없는 일이고......”

강주는 마치 방을 나가려는 듯 침대를 벗어나고 유미는 서둘러 강주를 붙잡는다.

“네...... 알았어요. 오빠...... 잠깐만이요. 그럼 사업은 오빠가 도와 주셔야 돼요.”

강주는 팔을 붙잡는 유미를 돌아보고는 방의 불을 꺼 버리고 침대로 돌아와 눕는다. 곁에 있는 유미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해 보지만 강주의 손을 벗어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소용없는 일이다. 이 밤을 그냥 보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예감하지만 아직은 낯 설은 손길이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이제 마음을 결정했으면 모두 오빠에게 맡겨. 눈을 감아......”

“네......”

유미는 강주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은 채 팔과 허리를 들어주며 옷을 벗기는 강주에게 협조한다. 마치 꿩이 풀숲에 대가리만 쳐 박은 채 포수가 자기처럼 자신을 못 보길 기대하는 것과도 같아 유미의 정신세계를 대변해 주는 모습에 강주의 입가엔 미소가 어린다.
어두운 방 안이지만 이미 유미의 몸은 은은한 빛을 내는 것처럼 강주의 시선에 노출되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윽...... 오빠......”

천천히 젖가슴을 베어 물고 체향에 숨을 들이킨다. 유미도 회장과 강주의 싸움에 그저 희생물에 불과하지만 어차피 그 남편과의 관계정립은 애초에 잘못되었던 일이니 그를 위로삼아 유미를 공략한다.

“으으윽...... 살살......”

손을 뻗어 음순을 열고 척후병을 들여보낸다. 촉촉한 입구를 지나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곳까지 정탐을 하며 길을 만든다. 유미는 강주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열락에 몸을 맡긴다. 이제 몸을 실어오는 강주를 느끼며 그 무게에 헛바람을 토한다.

“허억...... 오빠...... 제발......”

“후욱, 쑤우우욱......”

음순에 좆을 겨냥해 단번에 밀어 넣는다.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려는지 발기한 좆이 잠시의 틈도 주지 않은 채 비경으로 사라진다.

“하아아악...... 아파......”

“후욱, 후욱, 후욱.......”

한참의 허리놀림으로 유미는 미처 모르던 열락에 눈을 뜨고 눈앞의 새로운 사내에게 적극적으로 사타구니를 벌린 채 부딪쳐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윽...... 푸르륵...... 아학......”

“유미야, 다리...... 들어 봐......”

유미의 다리를 꺾어 접고 그 위에 몸을 실어 깊은 곳으로 좆을 들이민다.

“하아악...... 너무 깊어요...... 오빠......”

“조금만 참아...... 깊숙이 넣어줄게......”

빠른 좆질로 절정에 다다르고 이내 유미의 질 안에 흔적을 남긴다.

“후욱, 흐으으으윽...... 울컥......”

“하아아악.......”

낯 선 남자를 처음 받아들이는 유미를 배려해 체위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이미 유미는 열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만큼 대단한 흥분을 경험한다. 강주를 끌어안은 팔에 경련이 일고 한참동안이나 그 팔을 풀지 못한다.

“하윽...... 오빠...... 나 이젠 어떻게 해요?”

강주는 유미에게 다정히 입을 맞춰주고 유미는 강주의 혀를 받아들인다. 오히려 섹스 후에야 입을 맞출 수 있었으니 그 맛이 더욱 감미롭다.

“쭈우웁...... 후룹...... 으흠......”

“뭘 어떻게 해? 후훗...... 이젠 말 그대로 오빠랑 애인 하면 되는 거지.”

“그럼 난 오빠만 믿을게요. 오빠가 알아서 하세요.”

“그래......”

유미의 몸에서 내려와 숨을 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앞에 인기척이 어린다.

“엄마야! 누구 왔나 봐요?”

서둘러 뒤처리를 하고 옷을 입는다. 문을 열어보니 회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바라본다.

“아유! 미안해라. 애들 아빠가 오셨으니까 잠깐 내려와 봐. 유미 너도......”

“아, 알았어요. 엄마.”

몹시 부끄러운 상황이니 유미는 몸을 씻으러 급하게 일 층으로 내려가고 뒤에 남은 강주에게 회장이 은근한 미소를 보낸다.

“최이사, 내가 저 이한테도 민희 얘기를 해 줬으니까 나중에라도 혹시 묻거든 그냥 버텨. 알겠지? 호호호......”

“아! 네...... 알았습니다. 하하......”

사장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강주를 맞아 준다.

“오! 최이사 어서 와요. 허허...... 이제 우리 최이사가 사위가 되는 셈인가?”

“사장님...... 늦으셨네요? 아직 사위라긴 그렇고 유미씨하고 마음을 맞추는 중입니다.”

“허허...... 그래, 아직 시간도 많으니 천천히 사귀어 봐요. 그럼 술이나 한 잔 할까?”

회장과 유미가 술상을 차리고 각각 자리에 앉아 나란히 술잔을 기울인다. 유미도 이제는 자리에 동화되어 강주를 남편 섬기듯 옆에서 보조를 하는 모습이다. 가족들이 모두 그리 알고 있으니 몸을 사릴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음...... 그런데 저쪽 의왕에 물건이 안 들어온다면서 거긴 어떻게 처리하고 있지?”

“아! 네......”

강주는 완전히 의왕에 대한 관심을 끊어 버리기 위해 전무에게 넘기게 되었다고 발뺌을 한다. 그래야 추후의 연계를 원천봉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가 저쪽 회사를 그만 둘 때 누가 고발을 했는지 제가 개인 코너를 운영했던 것이 문제가 됐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무마시키는 조건으로 전무에게 상품 공급에 대한 권리를 넘겼어요. 그 덕에 못 받을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지요. 아마 지금은 그 쪽 창고에서 물건이 들어올 겁니다.”

“아! 그래?......”

“뭐, 그렇지만 여전히 관리는 제가 합니다. 그리고 전무는 거기서 마진만 먹는 거니까 별 일도 아니고요.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음...... 그럼 잘 됐네......”

회장은 뭔가 아쉬운 눈치지만 테를 낼 수도 없을 테니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술잔을 든다. 잠시도 복선을 깔지 않고 투명한 마음으로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이들이 가족이 아닌 것은 재론의 여지도 없는 일이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유미는 어느새 강주의 한 팔을 목에 두르고 가슴에 안겨 쌔근거리며 은은한 주향을 풍긴다.

“인호니?......”

“네, 이사님.”

“너, 지금 바로 도림동 장선배 회사로 와라. 나도 지금 출발할 테니까 거기서 만나자.”

“네, 알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강주는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미는 하룻밤 새 강주에 대한 마음이 새로 움트는지 더욱 다정한 얼굴로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자, 그럼 저는 유미와 함께 가겠습니다.”

“응, 그래...... 나중에 봐.”

“엄마, 절대 우리가 말할 때까지는 저 이에게 눈치 주면 안 되는 거 알죠?”

“아유, 얘는 내가 무슨 바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 호호호......”

차 안에서 강주는 유미의 손을 쥐어주고 유미는 고개를 숙인 채 팔을 맡기고 있다.

“유미도 회사에 대해서는 엄마나 아빠에게 절대로 말해선 안 돼. 나중에 때가 오면 네 남편을 회사로 불러들이면 되니까......”

“으응, 알았어요.”

의류회사에 도착한 강주는 장선배에게 유미의 안내를 부탁하고 의왕의 진정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인호와 함께 의왕으로 건너가기로 한다.

“자, 모두 구경했어?”

“네, 오빠...... 와...... 공장이 굉장히 넓어요.”

“그렇다니까...... 내가 모두 뒷돈을 대고 있으니까 너는 여기 장선배가 요구하는 서류하고 인감만 갖다 주면 돼. 네 주식하고 아파트는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다른 이사들이 알면 차별한다고 불평할 수도 있으니까 내 이름으로 넘겨 두고......”

“호호...... 알았어요. 그럼 나는 지금 바로 갔다 올게요.”

“그래, 나도 지금 의왕에 가야 하니까...... 유미야, 나중에 보자.”

“네...... 오빠, 잘 가요.”

의왕매장에는 이미 박부장의 소개로 사채업자들이 여러 명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매장의 권리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터이니 우선순위를 놓고 다투는 입장이어서 강주의 설명이 필요한 모양이다.

“자, 자...... 그러지들 마시고 고액을 빌려주는 순서대로 합시다. 박부장한테 소개 받았으면 알만한 분들이 왜 이래요? 달랑 이틀만 쓸 건데...... 그리고 이 일 말고 이다음에는 더 큰 일도 있으니까 그 기회는 마지막으로 들어가시는 분에게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요? 그건 뭡니까?”

“왜?...... 알려 드리면 직접 하시게?......”

“아이고, 우리야 원래 앞으로 나서는 일은 안 한다는 거 모르십니까?”

“허허...... 이건 아직 생각 중인데 영진이 조그맣게 건축도 하고 있으니까 건축사기도 한 번 더 해 볼까 생각만 갖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거 한 번 들어 봅시다.”

“뭐, 별 거 있나요? 한 십억 정도 만들어서 이삼백억 나가는 땅 가계약하고 계약금은 한 달 뒤 쯤 이십억 준다고 하는 거지요. 중도금이나 잔금은 한 육 개월 뒤로 미루고......”

“네......”

“그리고 그 전에 미리 로비 잔뜩 해서 건축허가하고 사업승인을 빨리 받아내야지.”

“으흥......”

“그리곤 일반분양하고 광고 잔뜩 때리는 거지요. 과대광고...... 분양대금이 들어오기 시작할 테니 계약금 이십억 주고...... 그리곤 영진건설을 끌어들이는 거지.”

“오호......”

“도급계약 끝나고 나면 분양대금 들어온 거 조금 주고 일단 공사 시키는 거지. 계속 과대광고 때리면서 터파기, 골조 일 이 층 올라가기 시작할 때 쯤 공사대금은 어음으로 길게 돌리고 분양대금이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공중분해하고 잠수하는 거지.”

“그럼 전부 얼마가 있어야 하는 거지요?”

“처음에 십억 외에 로비하는데 오억 정도...... 그 정도면 되겠지.”

“아! 그럼 이번일 끝나고 나면 수십억이 생길 텐데 직접 해도 될 걸......”

“하하...... 그야 물론 그래도 되지만 난 지금 유통을 먹으려고 하니까 거기에 돈이 들어가게 될지도 몰라서 그러지.”

“그럼 건설사기치면 콩밥은 누가 먹고?......”

“이번 일 말고도 그 얼굴마담이야 우리한테는 널렸다는 거 몰라요? 하하하......”

“캬...... 그러니까 우리들은 방법을 알아도 못하는 일이라니까......”

“자, 자...... 딴소리 하지 말고 얼른 빌려줄 돈 액수들이나 정해요. 서류는 여기 박사장이 모두 제공할 거니까 나중에 연락 주면 입금들이나 늦지 않게 시키고......”

다섯 명의 업자에게 총 팔십억을 빌리기로 합의를 하고 운전자금 이십억과 합해 백억의 자금을 납입할 주금으로 정하기로 약속한 후 이자 외에 성공 사례로 따로 얼마간 지급할 것을 약속해 입에 재갈을 물리곤 헤어진다.
진정이는 모처럼 강주가 찾아와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지만 이미 모든 신뢰를 쏟고 있으니 달리 불안해하지도 않는 모습이다. 일생 만나보지도 못할 사채업자들을 떡 주무르듯이 다루는 모습도 가히 신기하기만 하다.

“희숙씨는 지금 잘 있어요?”

“으응, 갑갑해서 미치려고 하지...... 허허......”

“아유, 참 답답하겠다. 뭐 그런 사람들이 다 있어요? 전혀 그런 사람인지 몰랐는데......”

“그러니까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모양이야. 너도 나 믿지 마. 이번 일이 너를 속이고 이 건물하고 땅 날리는 거면 어떻게 할래?”

“치...... 후훗, 이렇게 애 쓰지 않아도 그냥 당신 건데 뭐 하러 날 속일까?”

“하하하...... 역시 진정이 다운 소리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온 부부간에도 어느 날 문득 낯 선 사람처럼 생소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니, 그보다는 그간 알아왔던 사람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결국 그게 그 소리인 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부자관계라는 것은 그냥 아는 일이고 증명이 가능한 일이니 달리 믿음이 요구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느냐에 대해서는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모두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하질 않는다. 믿음이란 신앙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생활 안에서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것도 믿음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부부간에도 일방의 믿음만 강요한다면 그건 영락없는 짝사랑을 하자는 소리나 다름없는 일이고 짝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개체의 존중에 있어서나 재산의 관리에 있어서나 그에 앞서 그것들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단순한 앎을 넘어선 견고한 믿음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유태교, 기독교, 회교를 통틀어 신앙의 조상이라 추앙받는 아브라함은 떠나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기의 기반을 떠난다. 자기를 자기라고 인정해 주는, 자기를 보호해 주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었던 것이 그를 오랜 세월 후세에게 신앙의 조상이라는 자리매김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안정된 미래가 아니라 장차 내가 마련해 줄 어느 곳으로 무작정 가라는 것이었으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니면 이미 결혼 한 부부라도 아직 가고 있는 인생 여정에 장차 도착할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서로의 배우자를 신의 명령처럼 여기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가 되어주며 어딘지 모르는 그 곳을 향해 가야 할 것이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는 산도 있고, 골도 깊고 위험한 짐승을 만날 수도 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 나올 때까지 그 길을 간다. 길을 간다는 것은 머물러 있던 곳에서 떠나야 한다는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부들이 아직도 불행한 것은 아쉽게도 아직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우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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