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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9:57 1,861회 0건
-47부-

“어머...... 인호삼촌, 어서 와요.”

“아! 네, 형수님...... 안녕하셨습니까?”

“강주씨, 삼촌 왔어요. 참, 아직 식사 안 했지요?”

“괘, 괜찮습니다.”

강주가 세수를 마치고 나오며 혜영의 말을 받는다.

“아! 물어볼 걸 물어 봐. 이 시간에 당연히 아침을 안 먹었겠지. 같이 차려. 민희야...... 너도 어서 상 차리고 밥 먹자.”

“우웅...... 알았어...... 언니, 같이 해요.”

“으응?...... 자네 그 옆구리에 있는 건 뭐야?”

강주가 식탁에 앉으며 인호의 허리띠에 달린 물건을 가리킨다.

“아! 네...... 이거 삼단봉입니다.”

“음...... 호신무기인가? 자네...... 차에 목검 싣고 다닌다면서 그런 것도 필요한 모양이지?”

“네, 이사님 모시고 다니다가 갑자기 상황이 발생하면 트렁크 열 시간도 없을 수 있으니까 그저 비상용으로 차고 온 겁니다.”

“그럼 목검은 뭐 하러...... 그것만 있어도 되지 않아?”

“아! 네...... 이게 견고해서 좋긴 한데 간혹 접히는 수가 있어서 여유가 있을 때는 주로 목검을 쓰는 게 편합니다.”

식탁을 차리던 민희가 한 마디 거들고 나선다.

“어머! 자기도 이 기회에 삼촌에게 배우면 되겠다.”

“야, 야...... 이게 뭐 하루 이틀에 되는 거겠어? 모든 일에는 전문가가 다 따로 있는 법이야. 대통령이 어디...... 경제, 문화나 군사 분야까지 다 달통해서 대통령하는 줄 알아? 그 주변에 훌륭한 참모들을 두고 그 사람들을 잘 관리해서 얻어내는 거지. 요는 사람을 경영하는 거야.”

“피...... 자기 말 대로면 대통령 노릇하는 것도 별 거 아니겠네?”

“하하......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둘 수 있다는 게 어디 보통 노력으로 되겠어? 사람을 다룬다는 것이 우리 회장처럼 기교나 암수만 갖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벌써 나부터도 경계를 하게 만들잖아? 진심이 통해야 할 것 아냐? 생면부지 남들끼리 만나서...... 자고 나면 동지가 원수로 바뀌는 세상인심에 정말 자신에게 정치생명을 맞기고 함께 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그 사람은 대통령 부럽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어?”

혜영이 식탁에 앉으며 인호를 보고 말을 받는다.

“음...... 그럼 삼촌이 앞으로 강주씨한테 그런 사람이 돼 줘야 하겠네요. 그럴 수 있겠죠?”

“아! 네, 물론입니다.”

“하하하...... 인호한테 물어보면 그런다고 하지, 못 하겠다고 하겠어? 아, 아....... 내가 인호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인호한테 물어 볼 얘기가 아니라는 뜻이야. 오히려 내게 물어 봤어야지. 인호에게 그런 신뢰를 받아낼 자신이 있냐고 말이야.”

“어머! 그게 그렇게 되나? 호호호......”

“그래, 인호야...... 우리 서로 노력하자고......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알아가면서 서로의 바램도 채워주고 그러다 보면 믿음도 생기는 거 아니겠어?”

“네, 저야 이사님 지시만 받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 해서 모시겠습니다.”

“일단 자네는 내가 관리하는 회사에 정식 직원으로 발령을 할 거야. 동생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동생들 기본 생활비는 충당하고 자네가 필요한 돈은 내가 따로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강주는 얘기를 중단하고 혜영과 민희를 돌아보며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다.

“아니지? 어쩌면 예쁜 형수들이 시동생 용돈 하라고 조금씩은 안 주겠나? 그렇지? 더군다나 오늘은 출근 첫날인데......”

“어머머! 자기는...... 지금 칼만 안 들었지. 순 날강도 같다는 생각 안 들어?”

“이 씨...... 나는 지금 백조라는 거 뻔히 알면서......”

등기서류를 챙겨 인호를 신갈로 보내고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혜영과 민희는 과일을 깎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친자매처럼 다정스럽다.

“강주씨, 일어나......”

“으응? 아! 내가 잠들었었나?”

“으응, 상무한테서 전화 왔어. 나 좀 보자는데 같이 가요. 어차피 자기 놀고 있는데......”

“으응...... 그럼 가야지...... 옷 좀 갈아입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함께 길을 나선다. 민희의 배웅을 받으며 혜영을 옆에 태우고 운전석에 오른다.

“야...... 이거 시트가 저절로 조정이 되네?...... 고급차가 다르긴 다르다.”

“호호...... 그게 뭐 돈을 많이 벌어서 이런 차를 타나? 이 장사 하려면 때론 그런 허세도 부려야 되니까 할 수 없이 그러는 거지.”

“하긴 그렇겠더라......”

예로부터 의복은 그 사람의 인간관계를 말해 준다고 하였으니 고쳐 말하면 신분을 의미한다는 말일 것이다. 요즘이야 옷뿐만 아니라 자동차나 살고 있는 집 따위로 그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발돋움하려는 자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그 키를 맞추려 온통 까치발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다. 오죽하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조차 그런 부모의 영향을 받아 친구를 사귀기 전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묻는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세상은 온통 거래로 얼룩져 있을 뿐이니 셈이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세뱃돈이 끝일지도 모른다. 이제 강주는 상무와의 거래를 통해서 새로운 신분을 얻어내야 할 입장이다. 이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으나 지금 강주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인맥으로 혜영의 옷장에 가득한 옷들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갖춘 셈이니 어떤 옷을 입느냐는 오로지 강주의 판단이 필요할 뿐이다.
상무실 비서의 미소 띤 얼굴로 전조가 밝음을 느낄 수 있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반갑습니다. 상무님.”

“오오...... 최소장, 함께 왔구먼. 자...... 장비서도 앉고......”

“강주씨가 왔으니까 직접 말씀 나누세요. 저는 밖에 후배들 좀 만나 볼게요.”

“그래, 경과가 어떻습니까?”

“으음...... 잘 될 것 같아. 자기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으니 바로 시인했다더군. 그래도 그간의 공이 있어서 아마 계열사 대표로 옮겨가게 될 거야.”

“아니? 대표로 가면 오히려 더 잘 돼서 가는 거 아닙니까?”

“허허...... 결코 영전이라곤 할 수 없지. 규모가 여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회사니까...... 하하하......”

“아! 그럼 그 자리는 상무님께서......”

“음...... 아직 발표는 안 했지만 안으로는 이미 그렇게 내정됐어. 그리고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아주 이번 기회에 본사로 들어오지?”

상무는 자신의 아픈 곳을 알고 있는 강주를 곁에 두어 사정거리 안에서 관리를 하려는 모양이다. 회사를 그만두어도 별 일은 아니겠지만 기왕 주차장 관리도 해야 하는데 남을 수만 있다면 남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무조건 거부를 하면 오히려 의심을 할 수 있으니 약간의 치부를 드러낸다. 치부라면 치부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공갈일 수도 있는 적절한 협상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네, 상무님...... 언제고 결국 들어와서 상무님을 모셔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제가 혜영이하고 일을 벌이다 보니까 의외로 사업체를 하나 넘겨받는 과정에 수원에 있는 조그만 조직을 하나 흡수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으음...... 조직을?......”

“네, 그 쪽으로 잘 아는 분이 있어서...... 뭐, 그렇다고 제가 그쪽으로 나설 것도 아니지만 우선 당장은 딸린 식구들인데 먹고 살 수 있는 방편이라도 마련해 주고 해산을 해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아예 이번 기회에 한...... 육 개월 정도만 휴직 처리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상무님도 아시지만 그 주차장 자리에 상인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줄까 싶은데......”

“으음...... 그렇다면 굳이 휴직까지는 할 필요가 없을 것 아닌가? 어차피 먹고 살도록 해 준다면서...... 자네가 그 자리에 그냥 있으면 아무 문제없을 것 아냐?”

“아! 물론 그럴 수만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해산을 하더라도 제가 통제하면 더욱 효과적일 텐데요. 하지만 상무님께서 본사로 들어오라고 하시니까...... 그리고 제가 수원에 있더라도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우게 될지도 몰라서......”

“으음...... 그러면 최소장이 수원에 그냥 있도록 해. 그리고 그 매장에는 부소장을 두 명을 보낼 테니까 자네는 자네대로 시간을 쓰도록 하고...... 그리고 그 주차장에 일을 맡긴다는 친구들 말이야. 반드시 해산을 할 필요가 있겠나? 최소장, 자네가 아직 젊어서 잘 모를 테지만...... 그거 기회라면 굉장한 기회란 말이야. 내가 어른이 되어가지고 자네한테 할 소리인지는 모르겠는데...... 뭐, 물고 물리는 세상이다 보니까 자네도 이번에 전무에게 다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우리 기업인들이 정치인들에게 막히다 보면 내가 왜 진작 정치인 한두 명쯤 사귀어 놓지 않았을까 싶을 때가 많거든...... 그런데 정작 정치를 하는 그 친구들도 막판에 부딪치면 그늘에서 일처리를 해줄 친구들이 아쉬울 때가 있다는 거야. 그래서 왕왕 우리한테까지 껄끄러운 부탁을 해 올 때가 있거든...... 반드시 그렇게 쓰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에 주차장 자리를 내 줄 거라면 해산을 하지 말고 차라리 잘 관리를 해 보는 것은 어떻겠어?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인데 후일을 도모하는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거고...... 자네나 나나 이런 밥을 먹고 사니까 전면에 나설 수도 없는 일이지만 꼭 그런 일이 아니라도 명함 내밀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있지 않겠어?”

역시 노회한 구렁이들이라 생각 외의 답을 만들어 내는 재주들이 있는 모양이다. 은근히 강주를 품에 안으면서 그 혜택을 함께 누리자는 속셈일 뿐이니 미리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감출 필요는 없는 일일 게다. 강주로서는 상무의 장군에 멍군으로 응수 했을 뿐인데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는 셈이다.

“아! 그러면 부소장을 두 명 보내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해. 그리고 내가 한 말도 잘 생각해 보고......”

이쯤 되면 잔을 받아 마셔야 할 것 같으니 더 이상 속내를 감출 필요가 없다.

“네, 상무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 일단은 상무님 말씀대로 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지도해 주십시오.”

“어머! 강주씨, 이제 다 정리된 것 같은데 언제까지 상무님이라고 할 거예요? 전무님이라니까...... 호호호......”

어느새 들어왔는지 혜영이가 너스레를 떨어댄다.

“아, 아...... 그렇지, 전무님...... 하하하......”

“하하하......”

세 사람은 완전히 의기투합을 한 연후에 비로소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웃어 제친다. 이제 강주는 여전히 수원매장의 소장으로 남아있게 되었지만 전화위복으로 오히려 더욱 자유로운 몸이 되어 영진 회장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되었고, 인간사 새옹지마라더니 영진 회장의 수작 덕분에 오히려 강주의 근무복에는 새로운 실세 전무와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일종의 비표만 추가로 달린 셈이 되어 버렸다.

“자, 그럼 이만 일어설까?”

“참, 전무님...... 저희 매장 부소장이 조만간 사직을 할 모양이던데...... 어차피 제가 지금 휴가기간이니까...... 아예 새 부소장 두 명을 동시에 발령을 내 주시면, 이 기회에 빨리 인수인계를 해주고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으음...... 그러지. 잘 됐군. 그 친구도 결국 내보내기 위해서 수원으로 보냈었는데, 내가 바로 영업부장에게 조치를 하라고 할 테니까...... 그럼 내일 보내면 자네가 처리할 수 있겠나?”

“네, 제가 내일 매장으로 출근하겠습니다.”

“음...... 알겠네.”

돌아오는 차안에서 혜영이 말을 걸어온다.

“자기 오늘 자고 갈 거야?”

“음...... 내일 새로 오는 부소장들 인수인계도 시켜야 하고, 나도 당부할 것들 자료 준비하려면 컴퓨터를 써야 되니까 할 수 없이 저녁에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럼 가기 전에 가게에 아홉 시쯤 들렀다가 가. 알았지?”

“왜? 나도 용돈이라도 주려고...... 킥......”

“아이 참...... 아침에 십만 원이나 뺏어 가 놓고......”

“야, 그게 나 준 거냐? 네 시동생이라면서...... 쿡......”

아파트 앞에 차가 주차된 것을 보니 인호가 일을 마치고 돌아 온 모양이다. 이제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쉬운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혜영이 안겨온다.

“야, 야...... 이거 다 찍힌다. 여기에 찍혀 봐야 출연료도 안 줘.”

“아이...... 그러지 말고 한 번만 꼭 안아 줘......”

인호는 거실 바닥에 앉아 무엇을 하는지 열중하다가 강주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이제 오십니까?”

“으응...... 그게 다 뭐야? 웬 목검이 이렇게 많아?”

“아! 네...... 가죽 감고 있었습니다. 이거 끝이 날이 서 있어서 위험하거든요. 좀 갈아내고 가죽으로 감았습니다.”

“으응...... 잘 했어. 아무리 위급해도 사람을 치명적으로 다치게 해선 안 돼. 검도한 사람들이 후려치면 팔 다리 하나씩은 그냥 부러진다던데...... 그리고 갔던 일은 잘 처리했지?”

“네, 박부장님께도 전화로 보고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좀 쉬어.”

방으로 들어가자 민희가 옷을 받아 걸고, 전화가 울려 번호를 보니 회장의 번호라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전화를 받는다.

“쉿......”

“......”

“네, 최이사입니다.”

“어머! 이사님, 오늘은 안 나오셨네요? 휴가 벌써 끝나신 거예요?”

“아! 네...... 제가 지금 조금 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 저쪽 본사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아니?...... 왜요?”

시치미를 떼고 물어오는 회장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지만 강주도 넉살 좋게 받아 넘긴다.

“휴우...... 뭐, 별 일은 아닙니다. 하여튼 내일까지는 시간 내기가 좀 어려울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쪽 문제를 정리해야 다른 일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매장 인수인계를 해 주기로 했거든요."

“어머! 그럼 그 쪽 회사를 그만 두시는 거예요?”

“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나...... 어떻게 해요?”

“뭐, 차라리 잘 됐지요. 그래야 영진 일도 집중할 수 있을 거고...... 그나저나 회장님...... 한 오천 정도 어디서 융통할 수 없을까요? 제게 있는 게 조금 부족해서......”

“어머! 오천이요? 음...... 그래요. 제가 가불해 드리는 걸로 할까요? 호호호...... 아니면 빌려드리는 걸로 할까요?”

“네, 이자 많이 받으셔도 좋습니다.”

“아유...... 이사님, 농담이에요. 계좌로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 이자 없으니까 안심하고 쓰세요. 가불처리 해 둘게요.”

전화를 끊으며 민희에게 미소를 보낸다.

“어머! 회장이야? 뭐래?”

“으응, 야...... 시치미를 딱 잡아떼는데...... 그래서 나도 모른 척하고 돈 빌려달라고 했지.”

“세상에...... 막상막하다. 정말...... 난 여태까지 사귀어 오면서 회장언니 그런 줄 정말 몰랐네......”

이제 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고 주변도 사뭇 일찍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강주의 차는 하모니 카페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어서 어십시오.”

“응, 수고 많다.”

이제는 익숙한 걸음으로 강주는 내실로 향하고 인호는 복도 소파에 몸을 기대어 얹는다.

“왜 오라고 했는데?...... 으응? 이 친구는?......”

내실로 들어서니 혜영과 함께 비서실 여직원이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강주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저 미스윤이에요.”

“호호호...... 놀랐지?”

“으응...... 이 친구가 왜 여기 있어?”

“응, 내가 아르바이트 좀 시킬까 해서...... 옛날에 있던 애들은 내가 신촌에 있을 때 가끔 했었거든...... 아까 새 전무님 만나러 갔을 때, 나하고 밖에서 얘기했어. 오늘은 그냥 놀러 온 거고......”

“자네도 나 알고 있지?”

“호호......네, 보라언니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하하...... 그래?...... 보라가 뭐라고 얘기해 줬는지 궁금하네?......”

“음...... 팬티 벗어드린 것까지 말해 주던데요. 호호호...... 소장님, 사귀어 보라고......”

“하하하...... 야...... 대단하다. 여자들도 뭐, 남자들하고 다를 게 별로 없는 모양이구나?...... 응?”

“자, 강주씨 룸에 술 차려 두라고 할 테니까 가서 술이나 한 잔하고 이 아가씨 머리 올려 줘. 이애 오늘은 일찍 가야 한다니까......”

“으응...... 그래서 오라고 한 거였어?”

“그래, 앞으로 자주 마주칠 텐데...... 자기부터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알았다. 한 잔 마셔보자.”

밖으로 나서는 강주를 따라 미스윤도 내실을 나서 룸으로 들어간다. 냉큼 강주의 곁에 앉아 술을 따른다.

“너...... 솜씨가 제법 익숙해 보인다.”

“호호...... 저...... 전에 퇴근하고 압구정에서 약간 했었어요.”

“으응...... 그렇구나...... 자, 너도 한 잔 해라. 합환주를 한 잔 하고 몸이 훈훈해져야 몸을 풀지. 뭐...... 너도 시간 없는 모양인데 멀리 갈 것 없이 여기서 어때?”

“네, 알았어요. 잠깐만...... 문 좀 잠그고요.”

미쓰윤은 문을 잠그고 바로 티셔츠와 청바지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곁에 와서 몸을 기댄다.

“너...... 그런데 왜 가까운 압구정 두고 수원까지 왔니?”

“네...... 보라언니가 얘기한 것도 있고, 아까 마담언니도 소장님한테 형부라고 부르라고 해서 기왕이면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려고요. 호호...... 그리고 언니가 좋은 손님만 찍어준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래?...... 그럼 형부라고 불러...... 음...... 너희 비서실에 너처럼 아르바이트 하는 애들이 더 있니?”

“음...... 뭐, 서로 얘기는 안 하지만 눈치로 봐서 두 명은 더 있는 것 같아요. 갖고 있는 명품이라든지...... 돈 쓰는 것 보면 알 수 있거든요.”

“그래, 하긴 거기서 표가 나겠구나. 월급 받아 봐야 여기저기 쪼개고 나면 쓸 것도 없을 텐데......”

“아이, 형부 어서요...... 시간 없어요.”

서서히 몸을 무너뜨리고 마지막 가린 부끄러운 곳도 노출 시킨다. 명품 핸드백에 치마를 올리고 수입 화장품에 팬티를 까 내린다.

“쭈우웁...... 후루룹......”

“으으으흥...... 으으흥......”

걱정되는 것은 몸뚱이에 느껴지는 남의 시선과 나를 평가해 주는 남의 판단뿐이니 이미 그곳에 자기애는 없어진지 오래다. 현재의 자신은 부끄러운 애벌레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화려한 나비가 되어 날갯짓을 할 때까지는 진창도 마다않고 기어 다닌다.
가정주부들에게 얼마를 주면 외간남자를 상대로 몸을 팔 수 있겠냐는 질문에 절대로 팔지 않겠다는 답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대부분이 차근차근 올라가는 금액에 그 정도라면 할 수 있다고 했다니 예비 창녀라는 뜻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액수를 다른 이보다 많이 적어 넣었다면 그저 고급 창녀일 뿐이다.
애벌레는 아직 누군가에게 몸을 의탁한 것도 아니니 현숙한 척 향기 뒤에 몸을 가려 셈을 하고 있는 그들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떳떳할 일이다.
이처럼 속셈 가득한 섹스에 사랑이라는 포장을 씌우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과거의 창녀, 혹은 준비된 창녀와 다를 것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다면 셈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나 있을지 모를 일이니 반려로서 사랑한다면 그 섹스에 속셈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악...... 하악......”

이제 고개를 꺾어 소파 밑으로 떨어뜨린다.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때까지 강주를 받아들이고 밀려오는 흥분을 경련을 일으키는 몸뚱이로 알아차린다.
사랑이 없는 섹스 후에 셈은 만족하였겠으나 고개를 꺾어 바라보는 몸뚱이가 수선화처럼 처량하다.

귀신이 있냐는 질문에 요즘 세상에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콧방귀를 뀌는 사람일수록 으슥한 공간을 무서워하기도 한다. 시쳇말로 요즘이야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니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생각이 아니라 진정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이미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주부들이라고 돈을 싫어할 리는 없으니 조사의 취지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소용없는 것이 귀신에 대한 관점이 그러하듯이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결혼 후 배우자와의 섹스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부족한 흥분을 채우기 위해 표출되는 반응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느끼는 감정은 솔직한 것이고 부인할 수 없으니 머릿속으로 아니라고 부정하려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여자는 이젠 신파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일이다. 동호회를 통해서 만나는 애인과 속셈 없는 섹스를 즐기고 가정으로 돌아가 남편과 자녀에게 최선을 다 한다는 요즘의 세태가 오히려 갸륵한 노릇이니 나는 아니라며 거기에 대고 손가락질을 해봐야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더 많을 뿐이라는 것을 돌아봐야 할 일이다.

“어머! 지금 오는 거야? 많이 늦었네?”

“네, 누님...... 어디 갔다 와요?”

“으응, 애들 군것질 거리 사 오느라고...... 그나저나...... 동생, 저쪽 회사 그만 두면 안 되는 거야?”

“그건 갑자기 왜요?”

“으응, 동생 얘기 들어 보니까 무섭고 겁나서......”

“아유 참, 괜찮아요. 게다가 지금은 저 때문에 그리로 옮긴 사람들도 있는데 제가 빠져 나오면 될 일이 아니지요.”

“하여튼 조심해야 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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