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딩동"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이 사는 듯한 미국의 한 주택가. 그 주택가의 한 집에 동양인 남성이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그는 바로 김인식.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가족이 알려준대로 이곳에 막 도착한 것이다. 가족이 이곳까지 오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기는 했지만 영어를 못하는 그로서는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는 내심으로 가족들이 마중 나와 주기를 바랬지만 그를 마중나온 가족은 없었다.

그는 약간은 섭섭했지만 이내 아이들은 공부하고 애들 엄마는 아이들 돌봐주느라 바빴겠거니 생각하며 그런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초인종의 울림이 미처 끝나기 전에 누군가 문을 열며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눈에 낯익은 여인. 바로 그의 아내 이혜선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올해 38세. 하지만 원래 나이를 잘 안 먹는 체질로 태어난데다 꾸준히 관리를 잘해서인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얼핏 봐서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오히려 나이를 먹어갈수록 늙는다기보다는 처녀시절의 청초함은 그대로 간직한채 중년여인의 원숙함까지 한 몸에 갖춘 그런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그녀의 남편 김인식의 눈에 그녀에 대한 애틋함과 반가움, 그리고 사랑이 담뿍 어린다.

그가 막 그녀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가 쏙 나온다. 바로 그의 아이들이었다.

이제 14살인 딸아이와 12살인 아들녀석이었다.

그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아빠"

아이들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그를 부른다.

"어이쿠, 이 녀석들, 그 동안 엄청 컸구나."

그가 아이들을 향해 양팔을 활짝 벌렸고 그런 그의 품안으로 아이들이 뛰어든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그의 아내가 흐뭇하게 바라본다.

"별일 없었지?"

김인식이 아이들을 양 팔에 안은채 그의 아내를 올려다보며 약간은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인사를 대신한 물음이기도 했다. 사실 김인식 그도 뭔가 멋있는 말로 오랜만에 만난 아내에게 사랑과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엇지만 막상 아내를 보자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아 그냥 그렇게 속마음과는 달리 무뚝뚝하게 대하고 만 것이었다.

그의 질문에 그의 아내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네, 당신 덕분에... 우리보단 당신이 고생 많죠."
"고생은 뭐..."

그래도 아내가 고생 많다는 말을 해주자 김인식은 그 동안의 섭섭함과 외로움이 사르르 씻겨 내려가며 뭔가 뿌듯한 보람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속마음과는 달리 간단하고 무뚝뚝하게 대꾸해버리고 말았다. 천리만리 멀리 떨어져 있을때는 아내만 만나면 이야기거리가 한보따리는 될것만 같았는데 막상 아내의 얼굴을 보자 이상하게도 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오히려 괜히 더 어색해지기만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리 들어가지."

그의 말에 따라 그의 가족들이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의 곁에서 재잘거리며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의 반가움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별다를바 없는 평범하고 다정한 가족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