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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9:26 1,561회 0건
목덜미에 불어오는 뜨거운 입김을 느낀 연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가슴을 끌어안았던 나경 아버지의 손바닥이 그녀의 작은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왠지 불안한 연희가 정색을 하며 돌아섰다.

“나경 아버지! 왜 이러세요? 너무 이러시면 징그러워요. 저도 이제 중학교 이학년인데 예전과는 다르잖아요.”
“이학년!? 지금까지 내가 귀여워해줬잖아.”
“오늘 이러시는 것은 전에 귀여워 해주시던 것과는 다르잖아요. 정말 징그럽단 말에요.”
“아 하~! 그래! 오늘 연희가 너무 예뻐 보여서 힘껏 껴안았던 모양이구나. 넌 벌써 숙성한 편이라서 젖가슴도 아담하고 여성스러워.”

나경 아버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성인여자를 다루듯이 젖가슴에 손을 대려고 하였다. 연희는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초경을 했고 감수성이 예민했었다. 다가오는 나경 아버지를 피해 연희는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며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 이전처럼 나를 대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경이한테 놀러 오지 않을 거예요.”
“이제부터 너를 껴안지 말라고?”

나경 아버지의 얼굴에는 쓸쓸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좌절하는 눈빛과 실망으로 가득한 표정! 연희는 왠지 나경 아버지가 측은해 보였다.

“그래요. 저도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잖아요.”
“그래 알았다. 전처럼 껴안지는 않을게.”

연희는 나경 아버지의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전처럼 껴안지 않는다는 말에 묘한 느낌을 풍겼다. 허탈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경아버지가 다가왔다. 연희는 안방을 나서기 위해 뒷걸음을 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병원에는 친구들과 가볼 거예요.”

연희의 말은 나경 아버지와는 같이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말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나경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낙심하는 표정으로 보아 나경아버지가 집착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연희는 생각했다. 방문을 나서려고 연희가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어 멋!”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연희는 우악스런 힘에 의해 침대위에 나동그라졌다. 나경 아버지가 그녀를 낚아채어 침대위로 눕힌 것이었다. 나경 아버지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연희의 옷을 벗겨나갔다. 연희가 몸부림을 쳐도 강압적인 폭력을 쓰지 않고 단추와 지퍼를 찾아 벗겼다.

“소리 지르지는 말아. 지금 내 심정은 너를 목 졸라 죽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도 연희는 나경 아버지의 손바닥에 입이 막히고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연희는 다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 허우적거리며 애원하였다.

“사, 살려 주세요.”

연희는 나경 아버지의 손에 발가벗겨졌다. 그리고 부풀어 오르는 그녀의 젖가슴을 입술로 물었다. 그녀를 끌어안은 목적이 젖가슴을 물려는 것 같았다. 연희는 남자에게 젖가슴을 물릴 때 어떤 감각인지 몰랐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겁에 질려 구체적인 감촉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입을 가린 손바닥이 벗어 날 때마다 연희는 애원을 했다.

“제, 제발 이러지 말고 살려주세요.”
“내가 왜 연희를 죽여. 소리만 지르지 마. 알았지? 내가 이러는 것은 연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야. 조금만 참아 줘.”

나경 아버지는 연희를 협박하기도 하며 달래는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연희는 젖가슴만 탐닉하고 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나경 아버지의 입속으로 젖꼭지가 빨려 들어가고 나경 아버지의 손길이 그녀의 몸을 마찰하고 다녔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묘한 감각에 빠져 들었다.

연희는 어지럽기도 하고 숨이 탁탁 막혔다. 그런데 나경 아버지가 자신의 바지를 벗는 모습을 보고 연희는 하복부를 내려다보았다. 나경 아버지의 하복부에는 거대한 흉물이 치솟아 있었다. 당황스러워 발버둥을 쳐보지만, 나경 아버지는 양다리와 양손으로 그녀의 허벅지와 두 팔을 꽉 누르고 있었다. 순간 누구에게도 열리지 않았던 처녀림으로 나경 아버지의 흉물이 밀고 들어왔다.

“하 앗! 엄 마 얏!”

연희는 골반이 터지고 살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껴 비명을 질렀다. 나경이 아버지가 얼른 내입을 틀어막았다. 보지 속으로 들어온 흉물이 숨겨진 살갗들을 짓이겼다. 성인 남자의 몸에 깔린 그녀는 어찌 되었든지 통증을 느끼는 보지 속에서 빨리 흉물이 빠져 나가기를 애원하였다. 나경 아버지가 숨을 몰아 쉴 때마다 그녀의 작은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아~! 아파요.”

나경 아버지가 움직일 때마다 연희는 아랫도리가 돌멩이로 짓찧는 것 같아서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연희는 그때 처음으로 강간당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어린 여자애를 강간한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던 그녀였었다.

입술을 깨물며 통증을 참는데 나경 아버지가 그녀를 부둥켜안고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몸속으로 뜨거운 분비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가정 시간에 배운 생명을 잉태하는 남자의 정액이라는 것을 알았다. 욕구를 채운 나경 아버지가 그녀의 몸에서 내려왔다. 연희는 하반신을 상실 한 것처럼 얼얼하였다. 눈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고 어깨에 경련이 일어나 욱신거렸다. 그녀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옷을 추슬러 입으려 했다.

“가만있어. 피가 흘렀잖아! 내가 닦아 줄게.”

나경 아버지가 휴지뭉치를 가져오더니 연희의 허벅지 사이를 닦아 주었다. 연희는 휴지가 음부에 닿을 때 쓰라린 통증으로 짧은 신음을 흘렸다. 휴지로 흘린 피와 분비물을 대강 닦아낸 나경 아버지가 화장실로 가서 물수건을 가지고와서 다시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말끔하게 만들었다. 나경 아버지는 울고 잇는 연희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리고 연희에게 옷들을 정성스럽게 입혀 주었다.

“오늘 일어난 일을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돼. 알았지? 나이 들면 알겠지만, 이런 일은 우리끼리 비밀로 해야 되는 거야. 만약 주위에서 알게 되면 넌 집에서 쫓겨나고 영원히 손가락질을 받아. 세상은 다 그런 거야. 자기 자신은 사랑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손가락질하는 세상이야.”

나경 아버지는 어린 연희가 알아들을 수 없는 감정과 협박조의 말로 다짐을 받으려는 것 같았다. 그는 뚫어지게 바라보며 연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연희는 앙팡지게 노려보며 나경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나경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고 수긍하거나 거부하는 문제를 떠나서 당한 일이 너무도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었다.

“연희가 어려서 내 마음을 이해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정말 연희를 사랑하고 의지하고 싶어.”
“나경이 엄마가 있는데 무슨 말예요?”
“물론 네 말이 맞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나는 이따금 죽고 싶어.”
“왜요?”
“이해할는지 모르는데, 연희에게만 진실을 말해줄게. 나경 엄마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러나 머릿속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아. 그래서 죽고 싶은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나경 엄마에게는 첫사랑의 남자가 있었어. 결혼당시만 해도 나는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어느 날 출장을 갔다가 일찍 돌아 온 날이었지. 나는 보지 말아야할 광경을 봤어. 첫사랑의 남자와 나경엄마가 침대위에 벗고 누워있는 모습을.”
“나경이 엄마가요.......!?”

어린 아이의 연희는 의외의 사실을 수긍할 수 없었다. 순간을 변명하려는 나경 아버지의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경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진지해 보였다. 나경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나는 죽고 싶었어.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가정을 깨트리기 싫어서 나경엄마를 용서했지. 그러나 마음은 항상 혼란스럽고 외로웠어. 나경이도 내 딸이 아니라는 짐작이 들었으니까. 시간이 갈수록 고독해지고 내가 의지할 여자가 필요했어. 다른 남자의 여자가 아닌 연희 같이 순결한 여자 말이야.”
“그렇지만 저는 어떻게 해요. 이해가 가지 않아요.”

“난, 연희를 좋아하면서도 말을 못했어. 이제는 너의 순결을 가졌어. 만약 연희가 비밀로 하지 않으면, 연희를 죽이고 나도 자살할거야.”

나경아버지의 눈빛이 스스로의 목숨도 포기한 맹수처럼 험악스러워졌다. 그토록 자신을 좋아한다는 나경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는 측은함을 느꼈던 연희는 공포를 느꼈다. 나경 아버지의 눈빛은 정말 죽일 수도 있다는 살벌한 눈빛이었기에 연희는 온 몸이 오싹하고 떨렸다.

“아. 알았어요.”
“나경이에게도 비밀로 하고. 난 정말 연희를 사랑하고, 내가 살아 있는 한 보살펴 줄 거야.”
“네. 비밀로 할게요. 저를 죽이지 말고, 죽지도 마세요.”
“연희 말이면 난 뭐든지 들을 수 있어. 그렇다고 연희를 괴롭히지는 않을게.”

나경 아버지는 바지 주머니를 뒤지더니 다시 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 꺼내 연희 의 손에 쥐어 주었다. 돈을 받아 쥔 연희는 갈팡질팡하였다. 나경 아버지는 핑계를 대고 불러서 안으려 할 것이 끔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부터는 돈에 옹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나경 아버지는 피가 묻은 침대시트와 휴지를 들고 방을 나갔다. 연희는 넋이 나간 듯이 훌쩍거렸다. 연희는 거울 앞에 서서 눈물 자국을 지우고, 일단은 나경이 집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을 뛰쳐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큰일을 당했으면서도 연희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휘청거리고 허벅지 사이가 뜨끔거렸다.

집으로 돌아온 연희는 우선 집안 식구들에게 눈치 채지 않게 세수를 하였다. 그래도 께름칙하여 벌거벗고 샤워기 밑에 주저앉았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리면서도 나경 아버지의 말들이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받아 드려야 하는 당연함으로 느껴졌다. 어린나이의 소녀로서 감수해야만 하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며칠이 지나가고 연희는 수치심이나 두려움도 잊어버렸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기에 여자가 나이가 들면 누구나 생리를 하듯이 막연하게 여자로서 응당히 남자를 받아드려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나이의 연희는 나경 아버지의 고독하다는 말을 애틋하게도 생각했다.

그 후부터 연희는 이따금 나경 아버지에게 안기면서도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겉으로 들어나지 않지만 여자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러움이라고 여겼다. 돈이 필요해서 연희가 자발적으로 나경 아버지를 찾는 경우도 있었다. 남녀 관계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었던 연희는 시간이 갈수록 성(SEX)에 대해 민감해졌다.

여고를 졸업한 연희와 나경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였다. 연희는 입학금이 없어서 대학진학을 포기 할 상황이었다. 나경 아버지가 연희의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잊어질 만하면 나그네처럼 나경아버지는 연희 앞에 나타났다. 어린 시절의 연희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경아버지가 인생에 대한 좌절감으로 우발적으로 자신을 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연희는 나경아버지가 끈질기게 놓아주지 않는 이유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처럼 정말 사랑해서 인지 의문스러웠다. 나경아버지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도 사랑 때문인지 자문해 본다. 과연 아버지와 딸 같은 나이 차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연희는 나경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고, 연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연희는 절친한 친구 사이인 나경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겉으로는 자매처럼 다정하지만 연희의 속마음은 항상 두려웠다. 그런데 나경이가 어느 날 연희를 찾아와서 자신의 아버지와 연희의 관계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경을 대하기가 불안했던 연희로서는 충격이었다.

나경이가 자신의 아버지와 연희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느껴 증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경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방황하는 이유보다는 같은 여자로서 아버지에게 외면당하고 사는 어머니가 애처로웠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나경이는 남자들을 저주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살고 있었다.

나경이가 본격적으로 아버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강의 시간에 나경은 문득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다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떠올랐다. 요즘 그녀의 아버지가 서울의 작은아버지 집에 와서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고향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왜 그림자처럼 살고 있을까! 항상 바람둥이처럼 밖으로 떠도는 아버지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 것일까. 나경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강의실의 유리창 밖을 내다보던 나경의 시선이 교단을 향했다. 교단위에서 강사는 인간의 콤플렉스에 관해서 질문하고 있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대해서 설명해 볼 학생?”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아가멤논 왕의 딸이 엘렉트라 아닌가요?”

학생들 중 누군가 상기된 얼굴로 되물었다. 교단을 서성이던 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럼 설명을 해봐요.”
“아가멤논의 아내가 신하인 정부와 모의하여 아가멤논 왕을 살해했고, 알렉트라가 아버지의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와 정부를 살해했다는 그리스 신화로 알고 있습니다.”
“잘 설명해 줬습니다. 엘렉트라의 아버지에 대한 집념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는 훗날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말을 낳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놓고 아버지를 적대하는 남자아이들의 본능이라면,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여아가 부친에게 집념을 갖고 모친을 시기하는 성향을 말한다. 아들과 딸이 뒤바뀐 상황에서도 일어 날수 있는 인간의 심리로서 같은 방향에서 갈라진 의미라고 볼 수 있는데........”

이어지는 강사의 말소리가 갑자기 나경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동굴 속에서 들리는 암울한 울림으로 들려 올뿐이었다. 나경은 항상 머릿속에 떠돌던 의문을 처음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것은 하루 동안 아버지를 미행해 본다는 뜻이었다. 강의 시간이 끝나고 나경은 작은아버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의외로 작은 아버지가 같이 있었다.

나경은 작은아버지 집 앞에 와서 망설이다가 길 건너 제과점으로 들어갔다. 다시 작은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언제 집을 나올지 모르는 무료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기다린 보람이 있어, 한 시간 가량이 지나니 아버지가 작은아버지 집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대문을 나선 나경 아버지는 골목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경은 아버지가 눈치 채지 못하게 빠른 걸음으로 뒤쫓았다.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이 엄폐물이 되어 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큰길 차도로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고 팔을 내뻗었다. 다른 사람들도 택시를 잡으려고 아버지와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다.

한참을 지나도 아버지는 택시를 잡지 못하더니 버스정류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같은 버스를 타면 아버지에게 들킬 것 가아 나경은 도로의 리어카 상인에게 짙푸른 선글라스를 사서 끼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다행스럽게 손님이 많아서 아버지에게 들킬 염려는 없었다.

몇 정거장인가 지나서 그녀의 아버지가 버스에서 내렸다. 나경은 허겁지겁 출구에서 내려서서 등을 돌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뒤쫓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무슨 약속이 있는지 인파 속을 헤치고 걸어갔다. 나경은 아버지를 놓칠세라 달려가다시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달려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거리 모퉁이를 돌아 ‘그린’이라는 간판이 붙은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경은 출입구 근처에서 다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벌써 객실로 들어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미행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난감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나경은 프런트를 지나 커피숍 안을 둘러보았다. 다행으로 커피숍 대형 유리창 근처의 탁자 앞에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웨이터가 가져다 놓은 물 컵을 만지며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경은 커피숍 계산대가 보이는 프런트의 소파에 등을 돌리고 앉아 가끔씩 아버지의 동태를 살폈다.

유리창 밖을 내다보던 나경이 다시 아버지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웬 여자가 아버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나경은 아버지와 마주 앉은 여자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다. 제법 떨어진 거리여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유심히 살피던 나경은 몸이 떨렸다. 좀 더 자세히 살피느라 선글라스를 치켜 올렸다.

나경은 주위 사람들 시선에도 불구하고 외치고 싶었다. 착각이야, 이건 정말 착각이야!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남다른 미모를 지닌 연희의 모습이 분명했으나 부정하고 싶었다. 나경의 맞은편에는 공중전화 박스가 보였다. 공중전화 박스로 가서 다이얼을 돌리는 나경의 손발이 후들거렸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나경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와 마주하고 있는 여자가 휴대폰을 받고 있는 모습을 봤다. 나경은 할 말이 없어서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경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나경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니 아버지를 마주하고 있는 여자도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나경은 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여자가 연희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연희가 왜 아버지를 만나며 언제부터 사적으로 만나고 있을까. 우연히 만난 것은 아닌 것 같고 만나서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나경은 혼란스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경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의 아버지와 연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을 나갔다.

호텔 정문 앞을 나온 나경은 나란히 걷고 있는 아버지와 연희를 발견하였다. 두 사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육교를 건너고 있는데 지하철을 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연희는 잘 빠진 몸매에 연미색의 투피스를 멋있게 차려 입고 있었다. 같은 계통의 핸드백을 든 연희의 모습은 성숙하고도 발랄한 자태였다.

연희는 어릴 적부터 가난했지만, 숙성한 편이었고 남다른 미모와 오붓한 가슴에 미끈한 팔다리, 신체적인 면에서 은근히 같은 또래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요즘도 나경은 이따금 만나고 있는 연희이지만 새삼스럽게 탐스러운 몸매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희를 남자들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것 같다.

나경은 요즘 아버지가 부동산 컨설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중개인 소개를 받느라고 아버지가 연희를 만나는 것일까. 종잡을 수가 없다. 두 사람은 전절 역으로 들어가 개찰구를 통과했다. 나경은 두 사람이 오르는 전철 옆 칸으로 빨려들 듯이 들어갔다. 칸막이 창 너머로 두 사람을 힐끔거리며 살폈다.

그녀의 아버지와 연희가 마주보고 무슨 얘기인가 나누더니 종로 3가에 도착했을 때 내렸다. 긴장한 나경은 부리나케 두 사람을 놓치지 않고 계속 쫓아갔다. 그들은 개찰구를 지나 지하도로 올라가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노변 상인들 사이를 지나 극장 앞으로 갔다. 그리고 매표소로 앞으로 다가섰다.

나경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시간에 영화를 보는 관계라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나경은 깊게 호흡을 하고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선정적인 여배우의 모습과 에로영화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외국 여배우가 미끈한 다리와 허벅지를 들어낸 본능적인 그림이었다.

나경은 눈치를 살피며 뒷좌석의 영화표를 예매하였다. 두 사람은 음료수를 사서 마시면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경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언제부터 아버지와 연희가 저런 관계가 되었을까. 어릴 적에 연희가 집에 놀러오면 아버지는 자신보다 연희를 더 반갑게 여기고 꼭 안아주기도 했다. 언제부터 아버지와 연희가 서울에서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됐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동안 기다렸다가 나경도 입장하였다. 그녀의 아버지와 연희가 세 줄 가량 앞쪽에 앉아 있었다. 나경은 앞 사람의 머리를 은폐물로 삼고 잔득 어깨를 움츠렸다. 영화가 시작되고 끔찍한 살인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남녀의 정사장면과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다루는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나경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기박하게 전개되는 스크린을 주시하다가 슬쩍 아버지 쪽을 훔쳐보았다. 그녀는 몸이 얼어 두 손을 쥐고 얼어붙으며 온몸의 신경이 바르르 떨렸다. 아버지의 오른 팔이 연희의 어깨를 감싸고, 연희의 머리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아버지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나경은 더 이상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영화가 종료되고 극장을 나선 그들은 다시 전철을 탔다. 나경은 계속 미행을 해야 하는지 망설였다. 그들이 헤어지지 않는 이상 끝까지 쫓아가고 싶었다. 그들이 전철에서 내린 역은 서대문을 지나 아현동이었다. 전철에서 내린 그들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나경은 아파트 앞 상가로 들어갔다. 나경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연희가 살고 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직 속단하기는 싫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들은 상가에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경도 상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무엇인가 한보따리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나경은 엉겁결에 약국으로 들어가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연희가 불쑥 약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나경은 등을 돌리고 선글라스를 눌러 썼다. 약국으로 들어선 연희에게 약사가 다가가서 물었다.

“뭘 찾으십니까?”
“콘돔하고 노원 한 갑 주세요.”
“네!? 아! 네.”

연희를 빤히 바라본 약사가 주문한 약품을 꺼내 봉지에 담았다. 나경은 유리창에 바짝 몸을 붙이고 긴장하며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만큼 시계바늘이 느리게 움직인다고 생각한 경우가 없었다. 약값을 치룬 연희가 약봉지를 들고 약국을 나갔다. 의아스럽게 바라보는 약사를 뒤로하고 나경은 상가를 빠져 나왔다.

상가를 나온 그들이 다정하게 상가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나경은 상가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화단을 돌아서 203동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경은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었다.

나경은 닫혀있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표지 형광판을 올려다보았다. 3층을 넘어서더니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멈추어 섰다. 나경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잠시 멈추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게 시작하였다. 그녀 앞에 멈추어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아 그들이 5층에서 내려선 것이 확실하였다.

동의 호수를 확인하니 좌측은 5호이고 우측은 6호 계열이었다. 연희의 아파트가 505호가 아니면 506호가 분명하다. 나경은 우편함을 살펴보았다. 505호 우편함은 비어 있었고 506호 우편함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전기고지서가 있었다. 연희의 아파트는 505호일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당면한 나경은 온 몸의 피가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연희가 어떻게 아파트에 사는지도 궁금했다. 연희는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에 진학하기도 어려웠었다. 그렇다면 대학 학자금이나 아파트 구입자금도 아버지가 제공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믿고 싶지 않아도 염연한 현실이었다. 연희를 발가벗기는 아버지의 표정을 상상한다. 지금 만약 아버지를 마주하면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다음날 나경은 아현동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눈에 익은 203동 아파트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5층에서 내려 505호 앞에 섰다. 초인 벨을 누르는 나경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한번 누르고 기다려도 될 것을 잇달아 벨을 눌렀다. 밀폐된 문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구세요?”
“나야! 나경이. 너, 연희 맞지?”
“나경이!? 어머!”

잠이 들었던 목소리인데 연희의 음성이 틀림없었다. 나경은 심장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비명 같은 외마디에 이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연희도 나경의 방문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505호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분홍빛 원피스를 걸친 연희 모습이 나타났다.

“어찌 된 일이야? 어떻게 여길.......”

당황한 연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나경은 되도록 침착하게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장이 놓인 현관과 이어진 실내는 단아하고 깔끔하게 정도 되어 있었다. 나경은 마치 아버지의 체취라도 느끼려는 듯이 거실 가운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세상은 좁으니까. 알게 되지.”
“여기 앉아.”

어찌할 바를 모르며 연희가 어색하게 소파를 가리켰다. 나경은 손가방을 던지다시피 탁자에 놓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나경은 스스로 긴장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했다. 연희가 맥 풀린 사람처럼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화장기 없는 연희 얼굴은 여전히 예뻐 보였다. 나경은 심호흡을 하였다.

“우리가 친구가 된 지 몇 년 됐지?”
“글쎄.......!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으니까.”

연희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경을 쳐다보았다. 바로 어제 나경이 앉았던 자리에 나경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언젠가부터 연희는 나경 앞에서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 같은 심정이었다. 나경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 연희를 바라봤다.

“이 아파트에 네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 것 같니?”
“네가 여기 오리라고는 생각 못했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까.”

나경은 잔인하다고 느낄 정도로 연희의 표정을 뚫어지게 살폈다. 연희는 나경의 방문 의도를 알아내려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경은 우회해서 접근하는 것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충격을 주고 싶었다.

“우리 아버지는 언제부터 만나기 시작했니?”
“너, 너......! 다 알고 왔구나.”

연희의 얼굴이 경색되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더듬거렸다. 연희의 표정을 보고 나경도 목구멍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연희가 갑자기 치친 모습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나도 모르겠어.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유를 모르겠다고!? 네가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문할 자격이 있어?”
“음.......!? 나한테 자격이 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
“자격이란 말이 거슬리면 처지라고 바꾸지. 어떻게 이런 처지가 됐냐고?”
“입이 열이라도 변명은 할 수 없어. 다만 내가 살아 있다는 현실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몰라도........”

나경은 가슴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연희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르르 몸을 떤 나경은 침착해져야한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연희의 눈 밑에 근육이 가늘게 경련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

“내가 알게 된 것을 이야기 하지. 나는 식물인간처럼 살아가는 어머니가 애처로웠어,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기도 하지. 그래서 아버지를 미행했고, 아버지와 네가 커피숍에서 만나서 극장에 가고 이 아파트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어. 너는 약국에서 콘돔과 노원도 사들고 왔잖아.”
“그렇다면 넌 눈에 보이는 것만 말할 뿐이야. 그 내면에는 어떤 시간들이 존재하는지 몰라. 왜 여기까지 들어와서 현장을 목격하지 그랬니?”

막상 나경의 말을 들은 연희는 자신의 치부가 들어나 보이는 것 같았다. 죄스러운 심정이지만 발끈해서 쏘아 붙였다. 나경은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연희가 인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연희의 말에 나경은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였다.

“연희! 너. 많이 변했구나. 마치 남자들 유혹하는 꽃뱀처럼 말하는 구나.”

나경은 연희를 향해서 돌진하듯이 덤벼들었다. 연희의 원피스 앞자락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마치 연희의 가슴에 숨겨둔 비밀들을 털어 내려는 몸짓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연희는 힘없이 나경에게 끌려왔다. 연희는 나경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쓰러졌다.----------[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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