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윤식은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줄 아들 신우를 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일일이 아들을 관리하고 스파르타식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다. 신우는 그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머리도 좋고 단정한 품행으로 자랐다. 그런데 요즘 신우가 반항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더욱 장 윤식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고도 포기한 것이다. 장 윤식은 대답을 못하는 아내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신우! 어디 갔냐고?”
“그게.........”
유 미정은 자신도 알 수 없기에 마주보이는 가정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지나간 세월동안 어린 신우를 자신이 낳은 아들처럼 보살폈다. 그러나 신우는 커갈수록 그녀를 냉정하게 대하며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장 윤식은 아내가 말 못할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정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모님도 모르시죠. 신우학생이 이틀 전에 집을 나가서 소식도 없어서요.”
“어디 있는지 알아봐야지.”
“전화도 안 받아서.........”
미정이 주눅이 들린 표정으로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미간을 찌푸린 장 윤식은 입맛을 다시며 복도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그는 마주쳐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들이 서운하기도 하고 괘씸하였다. 어쩌면 그가 기업을 확장하는 것은 욕망이기도 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기 때문이었다.
장 윤식은 저녁식사가 끝나도록 아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언짢았다. 미정은 남편이 원하는 만큼 신우를 관리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탓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자식도 아니었기에 신우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할 일은 기분이 좋지 않은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도리밖에 없었다. 잠자리에 들어간 미정은 남편 옆에 누우며 눈치를 살폈다.
“여보! 너무 걱정 마세요. 지금까지 신우가 말썽 부린 적은 없잖아요.”
“차라리 말썽 부리는 게 났지. 도통 말을 하지 않으니........”
“들어오겠지요. 그리고 신우가 그렇게 원하는데 유학을 보내주세요.”
“그놈이 애비 말은 안 듣고, 딴따라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니까 그렇지.”
“사람마다 재능이 다른 걸 어떡하겠어요.”
“자식이 크니까, 사업하는 것 보다 힘들군.”
입맛을 다신 장 윤식이 한 숨을 쉬었다. 미정이 남편의 팔을 끌어당겨 머리에 베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의 눈가에 자잘한 미소가 떠올랐다. 잠자리에서 그녀가 남편을 위로하는 것은 부부관계뿐이 없었다. 더욱이나 딸을 낳고 한창 성적으로 절정기에 오른 그녀가 먼저 남편에게 다가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있는 남편이 쉽게 피곤을 느끼는 것이 문제였다.
미정은 손을 뻗어 남편의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아내의 손길을 의식한 그가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나이가 들수록 풍만해지는 그녀의 젖가슴이 그의 손아귀 속에서 휘말렸다. 저절로 민감해지는 그녀는 남편의 몸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페니스를 쥐고 마찰하며 젖꼭지를 남편의 입에 넣었다.
“.........!”
아내를 쳐다보던 장 윤식이 익숙하게 젖꼭지를 입속으로 넣어 빨기 시작했다. 쾌감에 젖어든 그녀는 입을 벌리며 몽롱한 눈빛을 했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쥐어진 남편의 페니스는 발기할 엄두조차 하지 않았다. 마지못한 그녀는 모포를 젖히고 남편의 허벅지 사이에 엎드렸다.
일그러지는 장 윤식의 눈동자! 미정이 그의 페니스를 쥐고 빨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늙어가는 남편과 부부관계를 하기 전에 하는 전위행위였다. 그녀의 입속으로 드나들던 페니스가 발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속에 가득해진 페니스의 귀두를 혀로 핥았다. 입을 벌리고 있던 그가 그녀의 머리를 쥐고 심음을 흘렸다.
“그, 그만 됐어.......”
“.........”
미정은 남편의 페니스를 쥐고 흔들며 잠옷을 벗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 남편의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댔다. 장 윤식이 눈앞에 펼쳐진 아내의 보지를 혀로 핥았다. 그의 혀끝이 그녀의 보지 구멍을 넘나들었다. 쾌감에 젖은 그녀는 둔부를 흔들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남편의 몸 위에 올라앉아 손에 쥐고 있던 페니스를 보지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헉.......!”
“음.......!”
미정이 남편의 페니스를 깔고 앉는 동시에 그들은 신음을 터트렸다. 장 윤식의 손에 허리가 움켜쥐어진 그녀는 앞뒤로 흐느적거렸다. 그리고 솟구쳤던 그녀의 몸이 추락을 거듭했다. 그들의 침실은 끈적이는 열기로 가득해졌다. 반복되는 신음 소리와 거칠어지는 숨소리!
“아.........으! 하 아, 아 읍. 아 으.........”
“헉, 헉, 헉.........”
그때 열어놓은 침실 창문 커튼이 흔들렸다. 커튼 사이로 침실을 들여다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밤늦게 귀가한 장 윤식의 아들 신우였다. 유학을 고집하는 그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아버지를 피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지 획인하려고 침실 안을 살피는 것이었다.
마른 침을 삼키는 신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붉은 침대 등불 밑의 발가벗은 여자가 아버지의 몸에 울라가 육체관계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미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아버지의 침실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신우는 아버지의 침실을 엿보게 된 것은 이년 전이었다. 공부를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그는 여자의 신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침실을 엿보게 되었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여자가 자신을 낳아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이 차이에서도 알 수 있지만 주위 사람들도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의 신우에게 아버지의 정사장면은 성적인 충동이기도 하지만, 사회지도자로 존경받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그가 실망을 느끼게 하는 요인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여자였다. 아버지를 유혹하는 눈빛과 선정적인 그녀의 옷차림이 역겨웠다. 그는 차츰 아버지의 여자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는 식탁에서 장 윤식은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 윤식은 화가 치미는 것을 참고 있었고 신우는 모든 것이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대화가 없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 식구들은 침묵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던 장 윤식이 신우를 힐끔 쳐다봤다.
“요즘, 어디에 있었니?”
“친구 집에요.”
“식구들이 걱정하는 걸 알면 행선지를 밝히고 다녀야지!”
“.........네!”
신우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이 짧게 대답했다. 장 윤식이 다시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선영의 식사를 도와주고 있던 미정이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아내의 만류에 그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하고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말했다.
“정말, 대학에 안 들어 갈거니?”
“국내는 싫어요. 유학 보내주세요.”
“넌 그릇이 그것 밖에 안 되니. 지 애미를 닮아서.......쯔 쯧!”
식사를 중단한 장 윤식이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식구들의 시선이 이층 서재로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미정은 남편의 급한 성격이 항상 언짢았다. 그녀는 차라리 신우의 섬세하고 과묵한 성격이 남자답다고 생각했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남편과 다르게 신우는 의외로 다정다감한 내면이 있었다.
미정은 신우를 아직도 어리다고 판단하는 남편이 탐탁지 않았다. 그것은 아들을 과잉보호하는 남편의 아집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에는 테니스, 겨울에는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신우는 건강미 남치는 체격의 청년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남편과 달리 신우는 깊고 부드러운 눈빛과 뚜렷한 윤곽의 외모였다.
담요에 쌓인 아기 시절부터 신우를 보살폈던 미정이었다. 그런데 장성한 신우는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며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미정은 항상 남편과 신우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었다. 미정이 일어나서 커피포트를 렌지 위에 올려놓았다. 아침 식사 후에 남편의 커피만큼은 가정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 그녀가 습관처럼 하는 일이었다.
장 윤식이 출근하고 집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며칠 동안 집을 비웠던 신우는 이층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었다. 틈틈이 익힌 그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미정은 침실에서 잡지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어렸던 신우가 자라고 나니 집안에서 그녀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은연중에 그녀가 귀를 기울이고 있던 피아노 음률이 멈추었다.
신우는 피아노 건반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그의 어린 시절은 엄격한 아버지의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아들이라는 것에 만족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왠지 암울하게 느껴지는 가정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더욱이나 아버지의 내면에서 풍기는 비밀스러움은 신우를 알 수 없는 불신의 세계로 몰아갔다. 아버지의 정사장면!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아버지 여자! 그가 생모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동기였다. 집안의 가족사진 앨범 중에서 발견한 생모의 모습은 고결하고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굳은 표정은 그에게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자주 애미를 닮았다는 말을 떠 올린 그는 불쑥 일어나 거실로 내려갔다.
주방에는 가정부 김 정례가 배추를 다듬고 있었다. 김 정례는 이북 개성출신으로 신우의 생모가 사망하기 이전부터 같이 살고 있는 가정부였다. 식구들은 그녀를 개성 댁이라고 호칭했다. 홀로 월남한 그녀는 어느덧 육십이 가까워지는 나이였다.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마신 신우가 식탁 앞에 앉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줌마! 우리 엄마는 어떤 분이셨지요?”
“네 엄마!? 그건 왜 갑자기.......”
“그냥 알고 싶어서요.”
“참말로 곱상하고 인자한 사모님이었지.........”
배추를 다듬던 손을 멈춘 개성 댁은 과거를 회상하는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신우에게 생모와 아버지의 여자에 대해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는 궁금했지만 아버지의 시선을 의식해서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본 그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지금 같으면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 약 한 첩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병원에도 안 가셨어요?”
“심장병인데 지병이라 의사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단다. 약이라도 제대로 썼으면 좋았겠는데, 네 아버지가 워낙 바빠서.......”
“.........”
“사장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말꼬리를 흐린 김 정례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우는 그녀의 말이 더욱 의아스러웠다. 약을 제대로 못 썼다는 말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바빠서 병든 어머니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는 말인지 의문을 느꼈다. 그리고 어쩔 수없는 선택이라는 것에는 아버지가 생모의 병을 치료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무슨 선택이요!?”
“여자의 일생은 남자와 다르지........그게 운명인 걸.........”
신우는 운명론으로 돌리는 개성 댁의 말이 더욱 알쏭달쏭했다. 그는 생모가 돌아가신 이듬해에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재혼과 생모의 죽음에 연결되는 원인이라도 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지금 그 분을 어떻게 만났어요?”
“누구......!? 아! 지금 사모님! 사모님은 아버지 회사의 비서실에서 근무했었지.”
“여비서였다고요........!”
“........”
주방 입구를 살피는 김 정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우는 아버지와 미정 사이에도 묘한 의혹이 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아버지의 침실을 엿보고 나서부터 아버지와 미정 사이에서 흐르는 역겨움을 강하게 느꼈었다. 흐느적거리는 허리와 살집이 오른 엉덩이를 흔들며 아버지의 뒤에 서 있는 여인의 그림자! 항상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미정에게서 흘러나오는 이미지는 마치 창부와 같았다.
생각할수록 혼란해지는 신우는 어쨌든 의혹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 연출에 관한 공부에 전념하고 싶었다. 그의 관심과는 다르게 법조인이 되기를 집착하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친 것이었다. 국내 대학이 아닌 유학을 가고 싶은 그는 어떻게 하든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장 윤식은 며칠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아들이 탐탁하지 않지만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장학생을 놓치지 않으며 고분고분하던 아들이기에 언젠가는 자신의 말을 들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집안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린 딸 선영의 재롱이었다.
장 윤식이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던 날이었다. 그는 내년 총선거에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재에서 소속 정당에서 보내온 서류를 살피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개성 댁이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었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다가선 그녀가 주춤거렸다.
“회장님.......!”
“무슨 일이요?”
“밖에 어떤 사람이 와서 회장님을 뵙겠다고 명함을.......”
“........”
장 윤식은 회사에서 찾아 올 사람이 없기에 의아스러웠다. 명함을 받아 바라보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명함에 적힌 사람의 이름은 강민 신보에 근무하던 박 재필이었다. 그는 박 지숙과의 관계로 만났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렸다. 박 재필이 찾아온 이유를 생각하는 그는 게름직한 느낌이 들었다. 명함으로 책상을 툭툭 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게 하세요.”
장 윤식의 무거운 목소리를 듣고 개성 댁이 서재를 나갔다. 서재를 나온 개성 댁이 복도를 지나는 순간 신우가 자신의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유학에 대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아버지를 만날 생각이었다. 층계를 향하던 개성 댁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서재로 향하는 그를 불러 세웠다.
“어디 가려고?”
“아버지, 서재에 계시죠?”
“지금 들어가지 마. 회장님을 찾아온 손님이 올라올 거야.”
“........”
장 윤식은 개성 댁이 나가고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있었다. 서재 문이 열리고 박 재필이 들어섰다. 박 재필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세월이 묻어나 보이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던 장 윤식이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일어섰다.
“하하~! 이거 박 기자! 오랜만이군.”
“늙으셨지만 아직도 정정하시네요.”
“세월을 비껴 갈 수 있나. 자네도 어지간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군.”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던 미정이 찻잔이 담긴 쟁반을 받쳐 들고 서재로 들어왔다. 탁자에 녹차를 내려놓는 그녀를 유심히 살피는 박 재필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가 알고 있던 장 윤식의 아내 모습이 아니었다. 미정이 서재를 나가고 장 윤식이 차를 권했다. 찻잔을 집어든 박 재필이 의아스런 표정을 했다.
“사모님이........!?”
“하하하........! 벌써 오래된 얘기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나?”
“회장님이 국회의원 입후보 하실 거라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그거야, 뭐! 주위에서 권하기에.......”
연륜이 묻어나는 장 윤식의 표정은 자만심으로 가득했다. 박 재필은 그의 위엄이 서린 모습에도 느긋한 자세로 있었다. 장 윤식의 말을 듣고 오히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흘렀다.
“저도 정당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 미약 같은 것이지. 쉽지 않겠군.”
“정치가 바꿔져야한다는 소명감에 민국당 오산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보이지 않았군.”
여당의 추천을 받는 장 윤식과 달리 박 재필은 야당이었다. 박 재필에게 약점을 잡혔었던 장 윤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박 재필을 비웃고 있었다.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정당의 끄나풀이 되어 한건을 노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재필은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들고 온 손가방을 열었다.
박 재필이 손에 꺼내든 것은 소형 녹음기였다.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 윤식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려진 녹음기로 향했다. 박 재필이 탁자 가까이 허리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은 의원 입후보를 포기하실 겁니다.”
“글쎄, 나도 심사숙고하지만....... 지지하는 사람들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입후보 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나?”
“회장님은 오래전에 어린 고아소녀를 무참하게 성추행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당황한 장 윤식이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박 재필의 말은 분명히 협박이었다. 장 윤식이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박 재필의 입가에 비소가 흘렀다. 박 재필이 들고 있던 녹음기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버튼을 눌렀다. 녹음기에서 어린 소녀의 비명이 흘러 나왔다.
“하 악! 엄마 얏........”
“나를 좋아한다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면서........”
“아, 아저씨! 시, 싫어. 아파요......."
“널 여자로 만들어 주려는 거야.”
숨을 몰아쉬는 남자의 음흉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소녀의 울부짖음이었다. 장 윤식을 경멸하는 박 재필의 눈빛!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장 윤식의 하얗게 질린 표정! 소녀의 절규는 그치지 않았다.
“시, 싫어요. 아저씨! 주, 죽을 것 같아요.”
“조금만 참아. 난, 너를 보살펴 줄 거야. 여자는 누구나 겪는 고통이란다.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야.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창피하잖아.”
“아저씨! 그냥, 제발 보내주세요 이런 건 싫어요.”
“물론 보내줘야지. 너는 사랑받는 여자가 되는 거라고,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면 안 돼.”
장 윤식은 너무나 오래전의 일이라서 잊고 있었다. 영원히 숨겨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 지숙과의 관계를 조건으로 협박하던 박 재필이 다시 그의 치부를 갖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산전수전을 겪은 사업가였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품위를 잃지 않고 그는 태연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녹음기에서는 잡음과 함께 소녀의 울부짖음이 흘러나오고 장 윤식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소녀의 울부짖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메아리처럼 서재 안에 울려 퍼졌다.
“제발.......살려 주세요. 아저씨! 보내 주세요. 정말 싫어요.”
“널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거라니까.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하지만 이건 싫어요.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러세요. 원장님에게 말할 거예요.”
“말 하면 안 돼!”
“흐 윽~! 흐 으윽~!”
“여자는 누구나 아름다워지려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란다. 난 네가 정말 사랑스러워. 그래서 너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어 주려고 하는 거다. 오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너만 바보가 되고,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되는 거란다.”
“아. 아저씨! 하 악!”
“..........”
소녀를 안심시키는 말과 훈계와 협박을 번갈아 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단발마의 소녀 신음소리를 끝으로 철컥하고 녹음기가 멈추었다. 듣고 있던 장 윤식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박 재필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장 윤식을 바라봤다. 그러나 장 윤식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걸로 아는데. 사람은 말이야,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 그 실수는 아픈 상처로 남게 마련이고....... 인간이라면 그 아픈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아야 돼.”
“물론 장 회장님의 말씀은 익히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가 아니고 어린 소녀를 무참하게 짓밟은 인간은 사회에서 도태되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신이 아닌 이상 완전하지 못해. 실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니고 후회와 성찰을 하면서 일생을 사는 것이 인간이지. 사람마다 운명은 어쩔 수가 없는 걸세.”
흥분하기 시작한 장 윤식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박 재필은 뉘우침도 없이 설교를 하려는 장 윤식이 파렴치하게만 보였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은 박 재필이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지도자로 존경받는 회장님이 이기적인 말을......!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만약 회장님 딸이 그런 치욕을 당해도 그런 말로 무마시킬 겁니까? 회장님 딸도 추행을 하실 건가요?”
“뭐라고!? 이 사람이 막말을 하는군. 남의 아픈 상처를 파헤치는 사람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네.”
장 윤식의 말은 도리어 박 재필을 압박하는 경고 메시지였다. 박 재필은 예전처럼 그가 협상을 제의할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의외의 반격에 박 재필은 화가 치밀었다. 지나간 세월동안 갖은 고초를 경험한 그는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근덕거리던 박 재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정말 그러실 겁니까! 후회하실 텐데요!”
“날 협박하지 말고, 소신대로 하게나.”
“좋습니다. 당신은 의원 입후보는커녕 사회에서 매장될 것입니다.”
“신은 도울 자만이 돕는 거야. 자네는 평생 남의 상처만 들추고 살 것인가.”
“알았습니다. 반듯이 후회할 겁니다.”
장 윤식을 노려보는 박 재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그러나 장 윤식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박 재필은 당당하게 돌아서서 서재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문을 박차고 나가던 그가 흠칫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서재 앞에 서 있던 신우와 마주쳤던 것이었다.
“..........”
부딪칠 뻔했던 신우가 박 재필에게 고개를 꾸벅하였다. 하지만 독기가 오른 박 재필에게 신우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마주친 신우를 밀치고 층계를 향해 갔다. 서재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엿듣고 있던 신우는 놀란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는 아버지에게 유학을 보내달라는 간청을 하려던 것이었다.
신우는 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와 손님의 목소리에 무심코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었다. 그가 듣지 말아야 했었던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신우는 층계를 내려가는 박 재필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꼼짝할 수도 없었다.
장 윤식은 박 재필이 나가고 고개를 숙인 채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있었다. 철퇴를 맞은 듯이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쌓아온 명예가 한꺼번에 사라질 것이다. 그의 뇌리에는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사태를 수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장한 각오로 전화기를 집어든 그는 다이얼을 돌렸다.
신우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그는 낙심을 하여 의자에 주저앉았다. 지도자로 존경 받으며 가장 모범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여지없이 추악하게 변했다. 아버지의 가슴에 깔려 발가벗고 있던 아버지의 여자 모습, 그리고 아버지에게 짓밟히던 소녀의 절규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신우는 아버지의 진면목에 강한 의혹에 휘말렸다. 아들을 끔찍하게 여기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가 존경하던 아버지의 모습도 아니었다.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쓰고 있는 아버지는 야욕으로 가득한 남자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여자도 단순히 성욕의 희생물이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그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아버지를 경멸하는 반발 의식이었다.
삼십 여분이 지나고 신우는 층계를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에 청각을 곤두세웠다. 예민하게 반응한 그는 방문 앞으로 다가섰다. 층계를 올라온 구둣발자국 소리가 서재 앞에서 멈추어 섰다. 마른 침을 삼킨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누군가가 서재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장 윤식은 소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는 서재로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말없이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는 다름 아닌 장 윤식의 충복 황 민철이었다. 그는 장 윤식의 배려로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전화연락을 받고 달려온 민철은 무척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다급한 일이 아니면 장 윤식이 그를 집으로 호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맛을 다신 장 윤식이 입을 열었다.
“요즘 어때! 애들은 잘 크고?”
“네! 회장님 덕분에 편안합니다.”
“박 재필! 그 놈이 왔다 갔어.”
“재필이가요........!?”
황 민철은 같은 나이 또래의 박 재필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송지숙과 관련된 일도 알고 있었다. 황 민철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예감했다. 장 윤식이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자식이 협박을 하고 갔어. 고아들을 돌보던 시절의 실수를 어떻게 알았는지, 녹음기까지 들이 대는 거야. 그런 놈은 인간쓰레기야.
“녹음기를요.......!?”
황 민철은 녹음기의 어떤 내용에 장 회장을 화가 나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장 회장이 말하기 전에 물어본다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장 회장의 사생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는 여자관계일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고아들과 관련된 여자관계라면 그가 어렴풋이 장 회장이 급하게 호출한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장 회장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말 인데........자네가 조치해 줘야겠어.”
“어찌....... 할까요?
“영원히 입을 못 열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네........!?”
“남의 상처를 건드리고 다니는 인간은 사회에서 도태시켜야 돼.”
“아! 네.........”
황 민철은 더 이상 되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직접적인 지시는 아니었지만 사회에서 도태시킨다는 것은 뻔한 명령이었다. 그로서는 신과 같은 장 회장의 고충이었다. 두 손 마디를 눌러 소리를 낸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장 회장에게 구십도 각도로 허리를 굽혔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음! 역시 내 뜻을 알아주는 사람은 자네뿐이 없어.”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혔던 황 민철이 서재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를 바라보는 장 윤식은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황 민철이 서재를 나서는 순간 문 뒤로 몸을 숨기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신우였다. 신우는 황 민철을 아버지가 무척 신임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는 아버지의 또 다른 잔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우! 어디 갔냐고?”
“그게.........”
유 미정은 자신도 알 수 없기에 마주보이는 가정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지나간 세월동안 어린 신우를 자신이 낳은 아들처럼 보살폈다. 그러나 신우는 커갈수록 그녀를 냉정하게 대하며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장 윤식은 아내가 말 못할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정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모님도 모르시죠. 신우학생이 이틀 전에 집을 나가서 소식도 없어서요.”
“어디 있는지 알아봐야지.”
“전화도 안 받아서.........”
미정이 주눅이 들린 표정으로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미간을 찌푸린 장 윤식은 입맛을 다시며 복도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그는 마주쳐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들이 서운하기도 하고 괘씸하였다. 어쩌면 그가 기업을 확장하는 것은 욕망이기도 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기 때문이었다.
장 윤식은 저녁식사가 끝나도록 아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언짢았다. 미정은 남편이 원하는 만큼 신우를 관리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탓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자식도 아니었기에 신우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할 일은 기분이 좋지 않은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도리밖에 없었다. 잠자리에 들어간 미정은 남편 옆에 누우며 눈치를 살폈다.
“여보! 너무 걱정 마세요. 지금까지 신우가 말썽 부린 적은 없잖아요.”
“차라리 말썽 부리는 게 났지. 도통 말을 하지 않으니........”
“들어오겠지요. 그리고 신우가 그렇게 원하는데 유학을 보내주세요.”
“그놈이 애비 말은 안 듣고, 딴따라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니까 그렇지.”
“사람마다 재능이 다른 걸 어떡하겠어요.”
“자식이 크니까, 사업하는 것 보다 힘들군.”
입맛을 다신 장 윤식이 한 숨을 쉬었다. 미정이 남편의 팔을 끌어당겨 머리에 베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의 눈가에 자잘한 미소가 떠올랐다. 잠자리에서 그녀가 남편을 위로하는 것은 부부관계뿐이 없었다. 더욱이나 딸을 낳고 한창 성적으로 절정기에 오른 그녀가 먼저 남편에게 다가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있는 남편이 쉽게 피곤을 느끼는 것이 문제였다.
미정은 손을 뻗어 남편의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아내의 손길을 의식한 그가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나이가 들수록 풍만해지는 그녀의 젖가슴이 그의 손아귀 속에서 휘말렸다. 저절로 민감해지는 그녀는 남편의 몸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페니스를 쥐고 마찰하며 젖꼭지를 남편의 입에 넣었다.
“.........!”
아내를 쳐다보던 장 윤식이 익숙하게 젖꼭지를 입속으로 넣어 빨기 시작했다. 쾌감에 젖어든 그녀는 입을 벌리며 몽롱한 눈빛을 했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쥐어진 남편의 페니스는 발기할 엄두조차 하지 않았다. 마지못한 그녀는 모포를 젖히고 남편의 허벅지 사이에 엎드렸다.
일그러지는 장 윤식의 눈동자! 미정이 그의 페니스를 쥐고 빨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늙어가는 남편과 부부관계를 하기 전에 하는 전위행위였다. 그녀의 입속으로 드나들던 페니스가 발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속에 가득해진 페니스의 귀두를 혀로 핥았다. 입을 벌리고 있던 그가 그녀의 머리를 쥐고 심음을 흘렸다.
“그, 그만 됐어.......”
“.........”
미정은 남편의 페니스를 쥐고 흔들며 잠옷을 벗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 남편의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댔다. 장 윤식이 눈앞에 펼쳐진 아내의 보지를 혀로 핥았다. 그의 혀끝이 그녀의 보지 구멍을 넘나들었다. 쾌감에 젖은 그녀는 둔부를 흔들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남편의 몸 위에 올라앉아 손에 쥐고 있던 페니스를 보지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헉.......!”
“음.......!”
미정이 남편의 페니스를 깔고 앉는 동시에 그들은 신음을 터트렸다. 장 윤식의 손에 허리가 움켜쥐어진 그녀는 앞뒤로 흐느적거렸다. 그리고 솟구쳤던 그녀의 몸이 추락을 거듭했다. 그들의 침실은 끈적이는 열기로 가득해졌다. 반복되는 신음 소리와 거칠어지는 숨소리!
“아.........으! 하 아, 아 읍. 아 으.........”
“헉, 헉, 헉.........”
그때 열어놓은 침실 창문 커튼이 흔들렸다. 커튼 사이로 침실을 들여다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밤늦게 귀가한 장 윤식의 아들 신우였다. 유학을 고집하는 그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아버지를 피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지 획인하려고 침실 안을 살피는 것이었다.
마른 침을 삼키는 신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붉은 침대 등불 밑의 발가벗은 여자가 아버지의 몸에 울라가 육체관계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미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아버지의 침실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신우는 아버지의 침실을 엿보게 된 것은 이년 전이었다. 공부를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그는 여자의 신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침실을 엿보게 되었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여자가 자신을 낳아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이 차이에서도 알 수 있지만 주위 사람들도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의 신우에게 아버지의 정사장면은 성적인 충동이기도 하지만, 사회지도자로 존경받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그가 실망을 느끼게 하는 요인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여자였다. 아버지를 유혹하는 눈빛과 선정적인 그녀의 옷차림이 역겨웠다. 그는 차츰 아버지의 여자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는 식탁에서 장 윤식은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 윤식은 화가 치미는 것을 참고 있었고 신우는 모든 것이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대화가 없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 식구들은 침묵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던 장 윤식이 신우를 힐끔 쳐다봤다.
“요즘, 어디에 있었니?”
“친구 집에요.”
“식구들이 걱정하는 걸 알면 행선지를 밝히고 다녀야지!”
“.........네!”
신우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이 짧게 대답했다. 장 윤식이 다시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선영의 식사를 도와주고 있던 미정이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아내의 만류에 그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하고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말했다.
“정말, 대학에 안 들어 갈거니?”
“국내는 싫어요. 유학 보내주세요.”
“넌 그릇이 그것 밖에 안 되니. 지 애미를 닮아서.......쯔 쯧!”
식사를 중단한 장 윤식이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식구들의 시선이 이층 서재로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미정은 남편의 급한 성격이 항상 언짢았다. 그녀는 차라리 신우의 섬세하고 과묵한 성격이 남자답다고 생각했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남편과 다르게 신우는 의외로 다정다감한 내면이 있었다.
미정은 신우를 아직도 어리다고 판단하는 남편이 탐탁지 않았다. 그것은 아들을 과잉보호하는 남편의 아집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에는 테니스, 겨울에는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신우는 건강미 남치는 체격의 청년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남편과 달리 신우는 깊고 부드러운 눈빛과 뚜렷한 윤곽의 외모였다.
담요에 쌓인 아기 시절부터 신우를 보살폈던 미정이었다. 그런데 장성한 신우는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며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미정은 항상 남편과 신우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었다. 미정이 일어나서 커피포트를 렌지 위에 올려놓았다. 아침 식사 후에 남편의 커피만큼은 가정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 그녀가 습관처럼 하는 일이었다.
장 윤식이 출근하고 집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며칠 동안 집을 비웠던 신우는 이층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었다. 틈틈이 익힌 그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미정은 침실에서 잡지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어렸던 신우가 자라고 나니 집안에서 그녀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은연중에 그녀가 귀를 기울이고 있던 피아노 음률이 멈추었다.
신우는 피아노 건반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그의 어린 시절은 엄격한 아버지의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아들이라는 것에 만족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왠지 암울하게 느껴지는 가정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더욱이나 아버지의 내면에서 풍기는 비밀스러움은 신우를 알 수 없는 불신의 세계로 몰아갔다. 아버지의 정사장면!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아버지 여자! 그가 생모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동기였다. 집안의 가족사진 앨범 중에서 발견한 생모의 모습은 고결하고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굳은 표정은 그에게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자주 애미를 닮았다는 말을 떠 올린 그는 불쑥 일어나 거실로 내려갔다.
주방에는 가정부 김 정례가 배추를 다듬고 있었다. 김 정례는 이북 개성출신으로 신우의 생모가 사망하기 이전부터 같이 살고 있는 가정부였다. 식구들은 그녀를 개성 댁이라고 호칭했다. 홀로 월남한 그녀는 어느덧 육십이 가까워지는 나이였다.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마신 신우가 식탁 앞에 앉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줌마! 우리 엄마는 어떤 분이셨지요?”
“네 엄마!? 그건 왜 갑자기.......”
“그냥 알고 싶어서요.”
“참말로 곱상하고 인자한 사모님이었지.........”
배추를 다듬던 손을 멈춘 개성 댁은 과거를 회상하는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신우에게 생모와 아버지의 여자에 대해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는 궁금했지만 아버지의 시선을 의식해서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본 그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지금 같으면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 약 한 첩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병원에도 안 가셨어요?”
“심장병인데 지병이라 의사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단다. 약이라도 제대로 썼으면 좋았겠는데, 네 아버지가 워낙 바빠서.......”
“.........”
“사장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말꼬리를 흐린 김 정례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우는 그녀의 말이 더욱 의아스러웠다. 약을 제대로 못 썼다는 말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바빠서 병든 어머니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는 말인지 의문을 느꼈다. 그리고 어쩔 수없는 선택이라는 것에는 아버지가 생모의 병을 치료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무슨 선택이요!?”
“여자의 일생은 남자와 다르지........그게 운명인 걸.........”
신우는 운명론으로 돌리는 개성 댁의 말이 더욱 알쏭달쏭했다. 그는 생모가 돌아가신 이듬해에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재혼과 생모의 죽음에 연결되는 원인이라도 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지금 그 분을 어떻게 만났어요?”
“누구......!? 아! 지금 사모님! 사모님은 아버지 회사의 비서실에서 근무했었지.”
“여비서였다고요........!”
“........”
주방 입구를 살피는 김 정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우는 아버지와 미정 사이에도 묘한 의혹이 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아버지의 침실을 엿보고 나서부터 아버지와 미정 사이에서 흐르는 역겨움을 강하게 느꼈었다. 흐느적거리는 허리와 살집이 오른 엉덩이를 흔들며 아버지의 뒤에 서 있는 여인의 그림자! 항상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미정에게서 흘러나오는 이미지는 마치 창부와 같았다.
생각할수록 혼란해지는 신우는 어쨌든 의혹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 연출에 관한 공부에 전념하고 싶었다. 그의 관심과는 다르게 법조인이 되기를 집착하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친 것이었다. 국내 대학이 아닌 유학을 가고 싶은 그는 어떻게 하든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장 윤식은 며칠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아들이 탐탁하지 않지만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장학생을 놓치지 않으며 고분고분하던 아들이기에 언젠가는 자신의 말을 들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집안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린 딸 선영의 재롱이었다.
장 윤식이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던 날이었다. 그는 내년 총선거에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재에서 소속 정당에서 보내온 서류를 살피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개성 댁이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었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다가선 그녀가 주춤거렸다.
“회장님.......!”
“무슨 일이요?”
“밖에 어떤 사람이 와서 회장님을 뵙겠다고 명함을.......”
“........”
장 윤식은 회사에서 찾아 올 사람이 없기에 의아스러웠다. 명함을 받아 바라보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명함에 적힌 사람의 이름은 강민 신보에 근무하던 박 재필이었다. 그는 박 지숙과의 관계로 만났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렸다. 박 재필이 찾아온 이유를 생각하는 그는 게름직한 느낌이 들었다. 명함으로 책상을 툭툭 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게 하세요.”
장 윤식의 무거운 목소리를 듣고 개성 댁이 서재를 나갔다. 서재를 나온 개성 댁이 복도를 지나는 순간 신우가 자신의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유학에 대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아버지를 만날 생각이었다. 층계를 향하던 개성 댁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서재로 향하는 그를 불러 세웠다.
“어디 가려고?”
“아버지, 서재에 계시죠?”
“지금 들어가지 마. 회장님을 찾아온 손님이 올라올 거야.”
“........”
장 윤식은 개성 댁이 나가고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있었다. 서재 문이 열리고 박 재필이 들어섰다. 박 재필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세월이 묻어나 보이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던 장 윤식이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일어섰다.
“하하~! 이거 박 기자! 오랜만이군.”
“늙으셨지만 아직도 정정하시네요.”
“세월을 비껴 갈 수 있나. 자네도 어지간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군.”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던 미정이 찻잔이 담긴 쟁반을 받쳐 들고 서재로 들어왔다. 탁자에 녹차를 내려놓는 그녀를 유심히 살피는 박 재필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가 알고 있던 장 윤식의 아내 모습이 아니었다. 미정이 서재를 나가고 장 윤식이 차를 권했다. 찻잔을 집어든 박 재필이 의아스런 표정을 했다.
“사모님이........!?”
“하하하........! 벌써 오래된 얘기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나?”
“회장님이 국회의원 입후보 하실 거라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그거야, 뭐! 주위에서 권하기에.......”
연륜이 묻어나는 장 윤식의 표정은 자만심으로 가득했다. 박 재필은 그의 위엄이 서린 모습에도 느긋한 자세로 있었다. 장 윤식의 말을 듣고 오히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흘렀다.
“저도 정당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 미약 같은 것이지. 쉽지 않겠군.”
“정치가 바꿔져야한다는 소명감에 민국당 오산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보이지 않았군.”
여당의 추천을 받는 장 윤식과 달리 박 재필은 야당이었다. 박 재필에게 약점을 잡혔었던 장 윤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박 재필을 비웃고 있었다.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정당의 끄나풀이 되어 한건을 노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재필은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들고 온 손가방을 열었다.
박 재필이 손에 꺼내든 것은 소형 녹음기였다.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 윤식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려진 녹음기로 향했다. 박 재필이 탁자 가까이 허리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은 의원 입후보를 포기하실 겁니다.”
“글쎄, 나도 심사숙고하지만....... 지지하는 사람들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입후보 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나?”
“회장님은 오래전에 어린 고아소녀를 무참하게 성추행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당황한 장 윤식이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박 재필의 말은 분명히 협박이었다. 장 윤식이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박 재필의 입가에 비소가 흘렀다. 박 재필이 들고 있던 녹음기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버튼을 눌렀다. 녹음기에서 어린 소녀의 비명이 흘러 나왔다.
“하 악! 엄마 얏........”
“나를 좋아한다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면서........”
“아, 아저씨! 시, 싫어. 아파요......."
“널 여자로 만들어 주려는 거야.”
숨을 몰아쉬는 남자의 음흉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소녀의 울부짖음이었다. 장 윤식을 경멸하는 박 재필의 눈빛!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장 윤식의 하얗게 질린 표정! 소녀의 절규는 그치지 않았다.
“시, 싫어요. 아저씨! 주, 죽을 것 같아요.”
“조금만 참아. 난, 너를 보살펴 줄 거야. 여자는 누구나 겪는 고통이란다.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야.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창피하잖아.”
“아저씨! 그냥, 제발 보내주세요 이런 건 싫어요.”
“물론 보내줘야지. 너는 사랑받는 여자가 되는 거라고,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면 안 돼.”
장 윤식은 너무나 오래전의 일이라서 잊고 있었다. 영원히 숨겨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 지숙과의 관계를 조건으로 협박하던 박 재필이 다시 그의 치부를 갖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산전수전을 겪은 사업가였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품위를 잃지 않고 그는 태연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녹음기에서는 잡음과 함께 소녀의 울부짖음이 흘러나오고 장 윤식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소녀의 울부짖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메아리처럼 서재 안에 울려 퍼졌다.
“제발.......살려 주세요. 아저씨! 보내 주세요. 정말 싫어요.”
“널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거라니까.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하지만 이건 싫어요.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러세요. 원장님에게 말할 거예요.”
“말 하면 안 돼!”
“흐 윽~! 흐 으윽~!”
“여자는 누구나 아름다워지려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란다. 난 네가 정말 사랑스러워. 그래서 너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어 주려고 하는 거다. 오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너만 바보가 되고,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되는 거란다.”
“아. 아저씨! 하 악!”
“..........”
소녀를 안심시키는 말과 훈계와 협박을 번갈아 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단발마의 소녀 신음소리를 끝으로 철컥하고 녹음기가 멈추었다. 듣고 있던 장 윤식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박 재필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장 윤식을 바라봤다. 그러나 장 윤식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걸로 아는데. 사람은 말이야,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 그 실수는 아픈 상처로 남게 마련이고....... 인간이라면 그 아픈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아야 돼.”
“물론 장 회장님의 말씀은 익히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가 아니고 어린 소녀를 무참하게 짓밟은 인간은 사회에서 도태되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신이 아닌 이상 완전하지 못해. 실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니고 후회와 성찰을 하면서 일생을 사는 것이 인간이지. 사람마다 운명은 어쩔 수가 없는 걸세.”
흥분하기 시작한 장 윤식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박 재필은 뉘우침도 없이 설교를 하려는 장 윤식이 파렴치하게만 보였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은 박 재필이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지도자로 존경받는 회장님이 이기적인 말을......!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만약 회장님 딸이 그런 치욕을 당해도 그런 말로 무마시킬 겁니까? 회장님 딸도 추행을 하실 건가요?”
“뭐라고!? 이 사람이 막말을 하는군. 남의 아픈 상처를 파헤치는 사람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네.”
장 윤식의 말은 도리어 박 재필을 압박하는 경고 메시지였다. 박 재필은 예전처럼 그가 협상을 제의할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의외의 반격에 박 재필은 화가 치밀었다. 지나간 세월동안 갖은 고초를 경험한 그는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근덕거리던 박 재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정말 그러실 겁니까! 후회하실 텐데요!”
“날 협박하지 말고, 소신대로 하게나.”
“좋습니다. 당신은 의원 입후보는커녕 사회에서 매장될 것입니다.”
“신은 도울 자만이 돕는 거야. 자네는 평생 남의 상처만 들추고 살 것인가.”
“알았습니다. 반듯이 후회할 겁니다.”
장 윤식을 노려보는 박 재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그러나 장 윤식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박 재필은 당당하게 돌아서서 서재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문을 박차고 나가던 그가 흠칫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서재 앞에 서 있던 신우와 마주쳤던 것이었다.
“..........”
부딪칠 뻔했던 신우가 박 재필에게 고개를 꾸벅하였다. 하지만 독기가 오른 박 재필에게 신우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마주친 신우를 밀치고 층계를 향해 갔다. 서재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엿듣고 있던 신우는 놀란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는 아버지에게 유학을 보내달라는 간청을 하려던 것이었다.
신우는 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와 손님의 목소리에 무심코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었다. 그가 듣지 말아야 했었던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신우는 층계를 내려가는 박 재필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꼼짝할 수도 없었다.
장 윤식은 박 재필이 나가고 고개를 숙인 채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있었다. 철퇴를 맞은 듯이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쌓아온 명예가 한꺼번에 사라질 것이다. 그의 뇌리에는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사태를 수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장한 각오로 전화기를 집어든 그는 다이얼을 돌렸다.
신우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그는 낙심을 하여 의자에 주저앉았다. 지도자로 존경 받으며 가장 모범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여지없이 추악하게 변했다. 아버지의 가슴에 깔려 발가벗고 있던 아버지의 여자 모습, 그리고 아버지에게 짓밟히던 소녀의 절규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신우는 아버지의 진면목에 강한 의혹에 휘말렸다. 아들을 끔찍하게 여기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가 존경하던 아버지의 모습도 아니었다.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쓰고 있는 아버지는 야욕으로 가득한 남자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여자도 단순히 성욕의 희생물이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그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아버지를 경멸하는 반발 의식이었다.
삼십 여분이 지나고 신우는 층계를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에 청각을 곤두세웠다. 예민하게 반응한 그는 방문 앞으로 다가섰다. 층계를 올라온 구둣발자국 소리가 서재 앞에서 멈추어 섰다. 마른 침을 삼킨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누군가가 서재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장 윤식은 소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는 서재로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말없이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는 다름 아닌 장 윤식의 충복 황 민철이었다. 그는 장 윤식의 배려로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전화연락을 받고 달려온 민철은 무척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다급한 일이 아니면 장 윤식이 그를 집으로 호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맛을 다신 장 윤식이 입을 열었다.
“요즘 어때! 애들은 잘 크고?”
“네! 회장님 덕분에 편안합니다.”
“박 재필! 그 놈이 왔다 갔어.”
“재필이가요........!?”
황 민철은 같은 나이 또래의 박 재필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송지숙과 관련된 일도 알고 있었다. 황 민철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예감했다. 장 윤식이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자식이 협박을 하고 갔어. 고아들을 돌보던 시절의 실수를 어떻게 알았는지, 녹음기까지 들이 대는 거야. 그런 놈은 인간쓰레기야.
“녹음기를요.......!?”
황 민철은 녹음기의 어떤 내용에 장 회장을 화가 나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장 회장이 말하기 전에 물어본다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장 회장의 사생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는 여자관계일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고아들과 관련된 여자관계라면 그가 어렴풋이 장 회장이 급하게 호출한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장 회장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말 인데........자네가 조치해 줘야겠어.”
“어찌....... 할까요?
“영원히 입을 못 열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네........!?”
“남의 상처를 건드리고 다니는 인간은 사회에서 도태시켜야 돼.”
“아! 네.........”
황 민철은 더 이상 되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직접적인 지시는 아니었지만 사회에서 도태시킨다는 것은 뻔한 명령이었다. 그로서는 신과 같은 장 회장의 고충이었다. 두 손 마디를 눌러 소리를 낸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장 회장에게 구십도 각도로 허리를 굽혔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음! 역시 내 뜻을 알아주는 사람은 자네뿐이 없어.”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혔던 황 민철이 서재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를 바라보는 장 윤식은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황 민철이 서재를 나서는 순간 문 뒤로 몸을 숨기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신우였다. 신우는 황 민철을 아버지가 무척 신임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는 아버지의 또 다른 잔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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