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질투
우리나라 부부들의 가정불화 가운데 상당수는 고부간의 불화일 것이다.
다음 글도 고부간의 갈등이 빚어낸 사건이다. 소재는 넌 픽션이지만 구성상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픽션의 형태를 취한다. 사건 성격상 좀 특이한 일이라서 소개한다.
나는 올 해로 서른일곱 살이 된 남자이다.
지방 대학을 나왔지만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동기생들보다는 먼저 자가용을 타고 다닐 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갑부는 아니다.
아버지가 지방 재래시장에서 열심히 일하시면서 몇 개의 점포를 소유하셨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무렵, 지방으로 수금을 하러 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같이 장사를 하셨기에 당장 생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상술이 뛰어나시고 활동적이었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 눈에도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당히 활동적이시고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 밖에 없었다. 두 분의 금슬이 상당히 좋아 보이셨는데 나 하나 밖에 낳지 못한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도 살아계실 때는 힘이 장사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체격이 좋으셨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근면성으로 아주 강장한 분이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보통의 체격보다 조금 더 큰 키를 가지고 있었을 뿐 특별한 특징은 없었다. 얼굴형은 남들이 인사 치례로 미인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주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다.
그저 반듯하고 단정한 외모를 가지신 분이었다. 머리 스타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퍼머도 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일체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 나이는 서른일곱 살, 지금의 내 나이였다. 시골 식당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아버지가 낚아채듯이 결혼을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여섯 살이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비극이었지만, 어머니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시장에 나가셨다. 억척같은 부지런함과 강인함으로 아버지가 하시던 때보다 더 수입이 많아졌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보험금은 그대로 남겨두고 어머니는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 당시 내가 본 어머니는, 돈을 버는 일과 나에게 공부를 시키는 일이 전부였다. 그 덕에 나는 대학 졸업 때까지 별로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기대만큼의 좋은 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혼자 남은 어머니를 두고 서울로 유학을 할 수 없어서 결정한 일이었다. 그래도 지방 대학 중 이름난 국립대학이라서 아쉬움은 없었다.
아버지가 안계시고 독자인 까닭에 나는 군 면제가 되었다.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으나 나는 별로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보다는 몸이 약하게 보였지만 주로 책을 많이 읽어서 피부가 흰 편이었다.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대학 다니는 중에 후배나 클라스메이트와 데이트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섹스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섹스가 호기심의 대상이고 욕망의 분출구였으나, 점차 섹스에 익숙해지면서 분위기보다는 묘한 자극을 원하게 되었고, 변태적인 체위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잡한 섹스는 절대 피하였다. 오랄 섹스니 후배위 같은 것을 즐겼지만 그것도 시들하였다.
졸업 후에는 춤을 배워서 카바레에서 나이 많은 유부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대학 다닐 때 약간의 스포츠 댄스를 배워서 춤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큰 키에 해맑은 얼굴이다 보니 카바레에 가면 인기가 좋았다. 거기다가 내가 경제적으로 아쉬움이 없다보니 지저분한 제비로 보이지 않아서 많은 아주머니들이 나를 찾기도 했다. 취직도 쉬웠다. 그러다보니 같은 또래의 여자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주머니들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섹스의 기교나 호응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 무렵 장관 부인이나, 국회의원 부인들과도 섹스를 했다. 어느새 내가 가는 카바레에 소문이 나서 입이 무거운 젊은 청년이 춤을 잘 리드한다는 소문이 났다. 그러니 여자가 아쉬운 일이 없고, 그러다보니 결혼이 늦어지게 되었다.
어머니가 결혼을 재촉했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여러 번 선을 보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나이트에서 사내 회식을 하였을 때 다른 부서에 있던 아가씨와 춤을 추게 되었는데 몸매나 인물이 내가 본 여자 가운데 최고의 미녀였다. 가슴이 설레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들어보니 회사 내 최고의 킹카로 전무님 비서실에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전무님의 친척 딸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전무님의 친척 딸과 그저 평범한 공채 사원으로서 내세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것이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니 간단히 줄여서 말하자면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그때 나는 서른 살이었다. 아내는 스물다섯 이었고.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부부였다. 결혼한 이듬해에 아들을 낳고 또 딸도 얻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재산과 어머니가 증식한 재산은 내가 직장을 당장 그만둔다하여도 어려움이 없었다.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만 하였다.
결혼 할 때 어머니는 쉰 둘이었다. 하지만 특이한 체질을 가지셨는지 아니면, 매사 긍정적이고 공격적으로 살아오신 탓인지 외모는 사십대 초반을 유지하였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그동안 나와 관계를 가진 여자 중에 어머니 나이와 비슷한 여자도 있었는데, 그 여자들보다 훨씬 더 탄력 있는 몸매와 미모를 유지하였다. 거침없는 성격과 활동적인 생활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까지 어머니는 그저 내게 없을 수 없는 부모님이었고, 또 무섭고 단단한 분이었다. 감히 여자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서울에 살림을 시작한 후 어머니는 우리에게 아파트를 하나 사 주시고 서울에 가게를 내셨다. 고향의 가게와 건물은 세를 주고 서울에서 터전을 잡았다. 그러니 당연히 아내는 시어머니를 모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리그릇은 가까이 두면 서로 부딪쳐서 깨진다고, 아내와 어머니도 같이 살다보니 조금씩 불협화음이 생겼다. 그 원인은 사소한 것이었다. 생활방식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인데 이상하게 이해를 못하고 다툼이 잦아졌다. 그 간의 이야기는 주된 목표가 아니라서 생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어머니와 크게 다투고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전화를 받고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니도 화가 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별것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대신해서 어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앞으로 잘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으나, 어머니는 무엇이 그렇게 화가 나는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씹었다. 그래서 나도 화가 나서 술을 한 잔 마시고는 어머니에게 대들었다. 그러자 모자간에 싸움이 생겼다. 원래 싸움이란 말로 시작해서 감정이 격해지면 몸싸움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모자간 싸움에 몸싸움이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당사자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말다툼이 크게 번진 것은 밤이 늦어서였다. 티비에서 뉴스가 끝난 후였으니 밤이 깊어진 시간이었다. 그동안 간간이 아내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그러다가 말끝에 하도 어머니가 부아를 돋구어서 그만 심한 말을 하였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서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몸싸움이랬자 처음에는 어머니가 날 때리는 것이었는데, 오십이 넘으신 어머니가 때려보았자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으나 하도 성가셔서 엄마 팔을 잡고 진정시키느라고 몸이 부딪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팔을 잡았으나 어머니가 몸부림을 하도 쳐서 뒤에서 어머니를 안다시피 하고 침대로 밀어 붙였다. 말로 하자고 하면서. 어머니는 내가 잡은 몸을 놓으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몸부림을 쳤고, 그 통에 나는 더욱 어머니 몸을 죄었다. 처음엔 그저 어머니 몸을 감싸 안았다고 생각 했지 다른 생각은 없었다. 잠시 어머니가 몸을 움직이는 사이에 어머니의 유방을 쥐게 되었는데 브라를 하지 않았는지 맨 유방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그 감촉이 아내보다 더 탄력이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둘 낳자 처녀 때 팽팽했던 가슴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탄력이 놀라웠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놀랐는지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손을 떼려는 순간, ‘이놈 어디를 만지느냐’하면서 더 화를 내어서 그만 풀려던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술기운도 좀 있는데다가 어머니의 유방을 만지니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는데, 어머니가 결정적으로 날 흥분시키는 말을 하고 말았다.
“이 나쁜 놈. 엄마를 강간하려고 하다니.”
참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그때까지는 반은 장난으로 어머니와 싸움을 하였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뭐? 강간이 어떤 것인 줄 알아?”
내가 순간적으로 그렇게 대꾸를 하였다.
“못된 놈. 여우같은 년과 결혼하더니 아주 못된 것만 배웠구나. 이 나쁜놈. 어디 제 에미를 강간하려고 해?”
“강간? 그래 강간이 어떤 것인 줄 한 번 당해바라”
우리는 평소에 말을 놓고 지낸다. 대부분의 모자가 그렇듯이 아들인 나도 어머니에게 평어를 썼다. 그래서 그런 말이 쉽게 나왔는지도 몰랐다.
“뭐? 이놈이 정말”
상당히 장시간 감정 다툼을 벌린 뒤라서 그런지 내가 짐승이 되는 데는 경계선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어머니의 옷을 벗기고 달려들었다. 어머니가 꼬집고 할퀴고 발버둥 쳤지만 내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환한 불빛 아래서 어머니의 옷을 벗기는 것은 쉬웠다. 치마가 찢겨져 나가고 팬티가 뜯어지다시피 하였다. 그리고는 침대 위로 어머니를 쓰러뜨리고 내 몸을 얹었다. 아내와 섹스한 지도 오래되고 또 친정을 간 터라서 더욱 흥분하였는지 몰랐다.
어머니의 알몸 위에 내 알몸을 포갠 것은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힘주어 움츠린 어머니 다리는 내가 다리를 집어넣고 벌리자 저항할 수 없이 벌어져 버렸다. 그때까지는 어머니가 죽을힘으로 저항을 하였다. 온갖 욕을 다 하였는데 그것이 더욱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다투면서 어머니의 유방을 만질 때부터 내 물건은 발기가 되어 있었다. 의지와는 별개의 감정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다리 사이 은밀하고 소중한 그곳. 내가 나왔던 바로 그곳을 파고드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어머니의 저항이 있긴 했지만 성난 내 물건이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섹스에는 통달한 처지였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상대로 그런 기술까지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일단 그렇게 어머니를 굴복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내 물건이 들어간다 싶은 생각이 들자 나는 힘을 주어서 엉덩이를 눌렀다. 내 성기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표준이었지만 길이는 좀 길었다.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나와 하면서 한결같이 물건이 길다고 말해 주었다. 젊은 여자들하고 잘 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아가씨들은 성기를 끝까지 넣으면 통증을 호소했다. 아내도 그랬다. 그래서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좋았다. 하지만 그런 아주머니들도 내가 끝까지 밀어 넣으면 부담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무런 저항이 없이 내 물건이 깊게 잠겨 버렸다.
사정을 하고 안 하고 보다는 일단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봐. 이게 강간이다”
어머니는 갑자기 동작을 중지하였다. 내 것을 다리를 벌린 채 받아들이고는 가만히 있었다. 무성한 음모가 내 치부에 닿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섹스를 한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었고, 더 움직여서 쾌감을 맛보는 것보다는 얼른 내 물건을 빼야할 타이밍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좀 잠잠하기에 물건을 빼 내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섹스를 본격적으로 하려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불이나 끄고 하자”
그래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엉겁결에 어머니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직전까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가 갑자기 예전의 평온한 음성이 들려왔으니 그렇게 생각했다.
불을 끄고 다시 침대로 간 것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어머니 몸속에 들어간 것은 내가 강제로 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었고, 내 물건은 조금 전까지 위치했던 어머니의 질속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들어갔다. 모자간이라는 인연의 벽과 관념의 엄격함도 남여의 성기 결합에는 결코 완벽한 방어선이 되지 못했다. 성인이 된 모자는, 혈연이라는 두터움으로 무장되어 있어서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섹스는 시작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삼십 중반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서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욕정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엄마. 재혼해라”
“싱겁은 소리 하지마라. 네 아버지 같은 사람 없다”
어머니와 섹스를 한 후에도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의 히스테리였다. 그간 살기 바빠서 잊고 있다가, 갑자기 몸이 한가해지니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생기는데 해소할 길은 없고 그것이 짜증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한 번의 섹스로 어머니는 달라졌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이 보였다. 하지만 내게 미안해하고 또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섹스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죄스러워하고 부끄러워했다. 특히 아버지의 제삿날에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나도 굳이 상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려운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눈치를 모르는 아내는 어머니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집 안이 순탄해지자 더욱 날 믿고 따랐다.
처음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당장 그렇지는 않았고, 조금씩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나는 아내를 친정으로 대피시키고 어머니의 몸을 찾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는 섹스에 눈을 뜨게 되었고 노골적으로 원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적당히 거절할 구실을 찾았으나, 우정 아내에게 심통을 부리면서 사건을 만드는 어머니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일로 해서 집안이 편안하니 딱히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와 섹스를 한다는 야릇한 흥분감이 생기기 시작하여서 나도 은근히 바라는 바가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모자간에 섹스가 이루어진다는 말은 들어보기는 했어도, 내가 직접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또 처음에는 심각한 죄책감과 후회가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흥분감에 빠져들었다. 어머니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고 내 성기를 어머니가 입으로 애무할 때는 그저 한 쌍의 짐승이라는 감을 떨칠 수 없지만 그 순간은 황홀했다. 아내와 할 때보다도 더 흥분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은 어머니 나이가 쉰 아홉. 그러나 섹스는 여전히 왕성하다.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찾으시니까 정력이 쇠하지를 않는다. 아이들이 크자 집에서는 여유가 없으니까 밖에서 불러내었다. 원 룸을 하나 얻어 놓으시고 그곳에서 드나들기도 하였다. 하여튼 그로 인해서 어머니의 히스테리와 아내에 대한 질투가 없어지고 또 아내는 아내대로 어머니의 가게를 물려 받아서 일을 배우고 있으니, 겉으로 보면 우리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가족이다. 하지만 내가 겪는 고통은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집 안의 행복을 위해서는 내가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내가 희생이라고 말하면 웃긴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그렇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일찍 죽으면 내 아내와 아들도 이런 사이가 될 것인가를.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때로는 사기꾼 만나서 재산 날리고 몸 망치는 것보다는 나와 같은 모자 관계도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근친, 모자 섹스가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혹시 이 사이트를 보는 청소년들이 모자 섹스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금물이다.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니 꿈조차 꾸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도 잘 못한 것이, 어머니에게 일찍 재혼을 권유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 부부들의 가정불화 가운데 상당수는 고부간의 불화일 것이다.
다음 글도 고부간의 갈등이 빚어낸 사건이다. 소재는 넌 픽션이지만 구성상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픽션의 형태를 취한다. 사건 성격상 좀 특이한 일이라서 소개한다.
나는 올 해로 서른일곱 살이 된 남자이다.
지방 대학을 나왔지만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동기생들보다는 먼저 자가용을 타고 다닐 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갑부는 아니다.
아버지가 지방 재래시장에서 열심히 일하시면서 몇 개의 점포를 소유하셨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무렵, 지방으로 수금을 하러 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같이 장사를 하셨기에 당장 생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상술이 뛰어나시고 활동적이었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 눈에도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당히 활동적이시고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 밖에 없었다. 두 분의 금슬이 상당히 좋아 보이셨는데 나 하나 밖에 낳지 못한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도 살아계실 때는 힘이 장사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체격이 좋으셨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근면성으로 아주 강장한 분이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보통의 체격보다 조금 더 큰 키를 가지고 있었을 뿐 특별한 특징은 없었다. 얼굴형은 남들이 인사 치례로 미인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주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다.
그저 반듯하고 단정한 외모를 가지신 분이었다. 머리 스타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퍼머도 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일체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 나이는 서른일곱 살, 지금의 내 나이였다. 시골 식당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아버지가 낚아채듯이 결혼을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여섯 살이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비극이었지만, 어머니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시장에 나가셨다. 억척같은 부지런함과 강인함으로 아버지가 하시던 때보다 더 수입이 많아졌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보험금은 그대로 남겨두고 어머니는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 당시 내가 본 어머니는, 돈을 버는 일과 나에게 공부를 시키는 일이 전부였다. 그 덕에 나는 대학 졸업 때까지 별로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기대만큼의 좋은 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혼자 남은 어머니를 두고 서울로 유학을 할 수 없어서 결정한 일이었다. 그래도 지방 대학 중 이름난 국립대학이라서 아쉬움은 없었다.
아버지가 안계시고 독자인 까닭에 나는 군 면제가 되었다.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으나 나는 별로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보다는 몸이 약하게 보였지만 주로 책을 많이 읽어서 피부가 흰 편이었다.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대학 다니는 중에 후배나 클라스메이트와 데이트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섹스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섹스가 호기심의 대상이고 욕망의 분출구였으나, 점차 섹스에 익숙해지면서 분위기보다는 묘한 자극을 원하게 되었고, 변태적인 체위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잡한 섹스는 절대 피하였다. 오랄 섹스니 후배위 같은 것을 즐겼지만 그것도 시들하였다.
졸업 후에는 춤을 배워서 카바레에서 나이 많은 유부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대학 다닐 때 약간의 스포츠 댄스를 배워서 춤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큰 키에 해맑은 얼굴이다 보니 카바레에 가면 인기가 좋았다. 거기다가 내가 경제적으로 아쉬움이 없다보니 지저분한 제비로 보이지 않아서 많은 아주머니들이 나를 찾기도 했다. 취직도 쉬웠다. 그러다보니 같은 또래의 여자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주머니들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섹스의 기교나 호응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 무렵 장관 부인이나, 국회의원 부인들과도 섹스를 했다. 어느새 내가 가는 카바레에 소문이 나서 입이 무거운 젊은 청년이 춤을 잘 리드한다는 소문이 났다. 그러니 여자가 아쉬운 일이 없고, 그러다보니 결혼이 늦어지게 되었다.
어머니가 결혼을 재촉했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여러 번 선을 보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나이트에서 사내 회식을 하였을 때 다른 부서에 있던 아가씨와 춤을 추게 되었는데 몸매나 인물이 내가 본 여자 가운데 최고의 미녀였다. 가슴이 설레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들어보니 회사 내 최고의 킹카로 전무님 비서실에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전무님의 친척 딸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전무님의 친척 딸과 그저 평범한 공채 사원으로서 내세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것이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니 간단히 줄여서 말하자면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그때 나는 서른 살이었다. 아내는 스물다섯 이었고.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부부였다. 결혼한 이듬해에 아들을 낳고 또 딸도 얻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재산과 어머니가 증식한 재산은 내가 직장을 당장 그만둔다하여도 어려움이 없었다.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만 하였다.
결혼 할 때 어머니는 쉰 둘이었다. 하지만 특이한 체질을 가지셨는지 아니면, 매사 긍정적이고 공격적으로 살아오신 탓인지 외모는 사십대 초반을 유지하였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그동안 나와 관계를 가진 여자 중에 어머니 나이와 비슷한 여자도 있었는데, 그 여자들보다 훨씬 더 탄력 있는 몸매와 미모를 유지하였다. 거침없는 성격과 활동적인 생활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까지 어머니는 그저 내게 없을 수 없는 부모님이었고, 또 무섭고 단단한 분이었다. 감히 여자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서울에 살림을 시작한 후 어머니는 우리에게 아파트를 하나 사 주시고 서울에 가게를 내셨다. 고향의 가게와 건물은 세를 주고 서울에서 터전을 잡았다. 그러니 당연히 아내는 시어머니를 모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리그릇은 가까이 두면 서로 부딪쳐서 깨진다고, 아내와 어머니도 같이 살다보니 조금씩 불협화음이 생겼다. 그 원인은 사소한 것이었다. 생활방식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인데 이상하게 이해를 못하고 다툼이 잦아졌다. 그 간의 이야기는 주된 목표가 아니라서 생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어머니와 크게 다투고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전화를 받고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니도 화가 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별것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대신해서 어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앞으로 잘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으나, 어머니는 무엇이 그렇게 화가 나는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씹었다. 그래서 나도 화가 나서 술을 한 잔 마시고는 어머니에게 대들었다. 그러자 모자간에 싸움이 생겼다. 원래 싸움이란 말로 시작해서 감정이 격해지면 몸싸움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모자간 싸움에 몸싸움이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당사자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말다툼이 크게 번진 것은 밤이 늦어서였다. 티비에서 뉴스가 끝난 후였으니 밤이 깊어진 시간이었다. 그동안 간간이 아내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그러다가 말끝에 하도 어머니가 부아를 돋구어서 그만 심한 말을 하였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서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몸싸움이랬자 처음에는 어머니가 날 때리는 것이었는데, 오십이 넘으신 어머니가 때려보았자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으나 하도 성가셔서 엄마 팔을 잡고 진정시키느라고 몸이 부딪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팔을 잡았으나 어머니가 몸부림을 하도 쳐서 뒤에서 어머니를 안다시피 하고 침대로 밀어 붙였다. 말로 하자고 하면서. 어머니는 내가 잡은 몸을 놓으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몸부림을 쳤고, 그 통에 나는 더욱 어머니 몸을 죄었다. 처음엔 그저 어머니 몸을 감싸 안았다고 생각 했지 다른 생각은 없었다. 잠시 어머니가 몸을 움직이는 사이에 어머니의 유방을 쥐게 되었는데 브라를 하지 않았는지 맨 유방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그 감촉이 아내보다 더 탄력이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둘 낳자 처녀 때 팽팽했던 가슴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탄력이 놀라웠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놀랐는지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손을 떼려는 순간, ‘이놈 어디를 만지느냐’하면서 더 화를 내어서 그만 풀려던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술기운도 좀 있는데다가 어머니의 유방을 만지니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는데, 어머니가 결정적으로 날 흥분시키는 말을 하고 말았다.
“이 나쁜 놈. 엄마를 강간하려고 하다니.”
참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그때까지는 반은 장난으로 어머니와 싸움을 하였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뭐? 강간이 어떤 것인 줄 알아?”
내가 순간적으로 그렇게 대꾸를 하였다.
“못된 놈. 여우같은 년과 결혼하더니 아주 못된 것만 배웠구나. 이 나쁜놈. 어디 제 에미를 강간하려고 해?”
“강간? 그래 강간이 어떤 것인 줄 한 번 당해바라”
우리는 평소에 말을 놓고 지낸다. 대부분의 모자가 그렇듯이 아들인 나도 어머니에게 평어를 썼다. 그래서 그런 말이 쉽게 나왔는지도 몰랐다.
“뭐? 이놈이 정말”
상당히 장시간 감정 다툼을 벌린 뒤라서 그런지 내가 짐승이 되는 데는 경계선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어머니의 옷을 벗기고 달려들었다. 어머니가 꼬집고 할퀴고 발버둥 쳤지만 내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환한 불빛 아래서 어머니의 옷을 벗기는 것은 쉬웠다. 치마가 찢겨져 나가고 팬티가 뜯어지다시피 하였다. 그리고는 침대 위로 어머니를 쓰러뜨리고 내 몸을 얹었다. 아내와 섹스한 지도 오래되고 또 친정을 간 터라서 더욱 흥분하였는지 몰랐다.
어머니의 알몸 위에 내 알몸을 포갠 것은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힘주어 움츠린 어머니 다리는 내가 다리를 집어넣고 벌리자 저항할 수 없이 벌어져 버렸다. 그때까지는 어머니가 죽을힘으로 저항을 하였다. 온갖 욕을 다 하였는데 그것이 더욱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다투면서 어머니의 유방을 만질 때부터 내 물건은 발기가 되어 있었다. 의지와는 별개의 감정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다리 사이 은밀하고 소중한 그곳. 내가 나왔던 바로 그곳을 파고드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어머니의 저항이 있긴 했지만 성난 내 물건이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섹스에는 통달한 처지였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상대로 그런 기술까지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일단 그렇게 어머니를 굴복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내 물건이 들어간다 싶은 생각이 들자 나는 힘을 주어서 엉덩이를 눌렀다. 내 성기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표준이었지만 길이는 좀 길었다.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나와 하면서 한결같이 물건이 길다고 말해 주었다. 젊은 여자들하고 잘 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아가씨들은 성기를 끝까지 넣으면 통증을 호소했다. 아내도 그랬다. 그래서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좋았다. 하지만 그런 아주머니들도 내가 끝까지 밀어 넣으면 부담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무런 저항이 없이 내 물건이 깊게 잠겨 버렸다.
사정을 하고 안 하고 보다는 일단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봐. 이게 강간이다”
어머니는 갑자기 동작을 중지하였다. 내 것을 다리를 벌린 채 받아들이고는 가만히 있었다. 무성한 음모가 내 치부에 닿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섹스를 한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었고, 더 움직여서 쾌감을 맛보는 것보다는 얼른 내 물건을 빼야할 타이밍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좀 잠잠하기에 물건을 빼 내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섹스를 본격적으로 하려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불이나 끄고 하자”
그래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엉겁결에 어머니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직전까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가 갑자기 예전의 평온한 음성이 들려왔으니 그렇게 생각했다.
불을 끄고 다시 침대로 간 것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어머니 몸속에 들어간 것은 내가 강제로 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었고, 내 물건은 조금 전까지 위치했던 어머니의 질속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들어갔다. 모자간이라는 인연의 벽과 관념의 엄격함도 남여의 성기 결합에는 결코 완벽한 방어선이 되지 못했다. 성인이 된 모자는, 혈연이라는 두터움으로 무장되어 있어서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섹스는 시작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삼십 중반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서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욕정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엄마. 재혼해라”
“싱겁은 소리 하지마라. 네 아버지 같은 사람 없다”
어머니와 섹스를 한 후에도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의 히스테리였다. 그간 살기 바빠서 잊고 있다가, 갑자기 몸이 한가해지니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생기는데 해소할 길은 없고 그것이 짜증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한 번의 섹스로 어머니는 달라졌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이 보였다. 하지만 내게 미안해하고 또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섹스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죄스러워하고 부끄러워했다. 특히 아버지의 제삿날에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나도 굳이 상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려운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눈치를 모르는 아내는 어머니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집 안이 순탄해지자 더욱 날 믿고 따랐다.
처음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당장 그렇지는 않았고, 조금씩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나는 아내를 친정으로 대피시키고 어머니의 몸을 찾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는 섹스에 눈을 뜨게 되었고 노골적으로 원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적당히 거절할 구실을 찾았으나, 우정 아내에게 심통을 부리면서 사건을 만드는 어머니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일로 해서 집안이 편안하니 딱히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와 섹스를 한다는 야릇한 흥분감이 생기기 시작하여서 나도 은근히 바라는 바가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모자간에 섹스가 이루어진다는 말은 들어보기는 했어도, 내가 직접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또 처음에는 심각한 죄책감과 후회가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흥분감에 빠져들었다. 어머니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고 내 성기를 어머니가 입으로 애무할 때는 그저 한 쌍의 짐승이라는 감을 떨칠 수 없지만 그 순간은 황홀했다. 아내와 할 때보다도 더 흥분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은 어머니 나이가 쉰 아홉. 그러나 섹스는 여전히 왕성하다.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찾으시니까 정력이 쇠하지를 않는다. 아이들이 크자 집에서는 여유가 없으니까 밖에서 불러내었다. 원 룸을 하나 얻어 놓으시고 그곳에서 드나들기도 하였다. 하여튼 그로 인해서 어머니의 히스테리와 아내에 대한 질투가 없어지고 또 아내는 아내대로 어머니의 가게를 물려 받아서 일을 배우고 있으니, 겉으로 보면 우리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가족이다. 하지만 내가 겪는 고통은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집 안의 행복을 위해서는 내가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내가 희생이라고 말하면 웃긴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그렇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일찍 죽으면 내 아내와 아들도 이런 사이가 될 것인가를.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때로는 사기꾼 만나서 재산 날리고 몸 망치는 것보다는 나와 같은 모자 관계도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근친, 모자 섹스가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혹시 이 사이트를 보는 청소년들이 모자 섹스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금물이다.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니 꿈조차 꾸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도 잘 못한 것이, 어머니에게 일찍 재혼을 권유하지 못한 것이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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