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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3:42 860회 0건
(속)숨결-2부
" ........ "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수연은 조금전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 선민이라는 여자의 말들을 떠올렸다.

- 마치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선배님의 책을 보면서 그 누군가를 생각했어요... 혹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것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고요.... -

- 그거 아세요.. 때로는 현실속의 사랑이 소설속에 표현된 사랑보다 더 아름답고 슬플수도 있다는걸... 그리고 그런 사랑속에서 모든것을 잃은체 고통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 사람이 느껴야할 고통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될수 없다는것을요.... -

- 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아름다운거 아닐까요... 자신을 기다리는 또다른 사랑이 있음을 고통에 허우적 거리는 사람이 느낄수만 있다면요... -

수연은 그렇게 선민이 내뱉은 말들을 하나 하나 곱씹어 보았다. 아마도 선민은 자신의 책에 등장한 선우라는 남자와 비슷한 사랑을 한 남자를 알고 있는듯 했다. 사랑하던 선화에게 버림받았던 선우가 죽음앞에서 자신을 간절히 기다리던 선화를 용서한체 자신의 품에서 그 여인을 떠나보냈듯이 선민은 그렇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낸 남자를 알고있는듯 했다. 하지만 수연은 그것보다 선민의 나머지 말들이 더욱 가슴에 남아있었다. 소설보다 더 아름답고 슬픈다는 사랑... 그리고 기다리는 또다른 사랑이 있기에 사랑은 아름답다는 그말... 수연은 선민이 남긴 그 나머지 말이 선민 스스로 보아온 사랑의 이야기를 한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쓴책에 대한 어떤 비평인지를 분간할수가 없었다.

- 지금 열차가.. 열차가....... -

그렇게 선민의 말들을 곱씹어보던 수연은 승강장 안내 방송 멘트가 흘러나오자 이내 시선을 들어 승강장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는 치하철 불빛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운명속에 무언가 힘차게 밀려들어 오는 운명의 사슬을 바라보듯 수연은 승강장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열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상훈 오빠... "
" 어..왔어... "
커피를 시켜놓은체 서류를 뒤적이던 상훈이 선민이 웃으며 서있는것을 발견하자 보고있던 서류들을 챙기며 반가운 얼굴로 선민을 맞았다.

" 오빤.. 어떻게 이런데서도 서류를 들쳐보고 그래요.... "
상훈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선민이 상훈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을했다.

" 그럼.. 어떡하냐.. 안짤릴려면 이렇게라도 바둥거려야지.. 이젠 식구도 하나 늘었는데... "
" 참.. 언니랑.. 지희는 잘있죠... "
" 음 잘지내.. "
선민의 말에 미소로 답을하며 상훈은 자신의 아내와 딸 지희를 떠올렸다.

" 재훈 오빠는요... "
" 음.. 좀 있으면 올꺼야.. 아까 전화해보니까.. 그냥 시내 구경 한다고 그러던데... "
" 그래요.... "
" 그런데 무슨일로 우리 둘을 다 부른거냐... 월급탔냐... "
" 아니예요..... "
" 그럼.... "
" 재훈 오빠 때문에요... "
" 재훈이... "
" 네...... "
" 왜.. 재훈이한테 나도 모르는 무슨일이 생긴거야... "
" 그게 아니고.... "
자신의 말에 말끝을 흐리는 선민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상훈은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럼.. 무슨 일인데.... "
" 오늘이.. 언니 떠난날이예요... "
" 벌써 그렇게됐나... "
선민의 말에 상훈은 애써 태연한듯 말을하며 자신앞에 놓여진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상훈은 커피를 목으로 넘기며 벌써 이년이나 지나버린 그때의 일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선영의 죽음 그리고 그런 선영의 죽음앞에 괴로워하던 재훈의 모습등.. 그런 기억들이 어느새 이년이란 터울을 남기고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음에 상훈은 씁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년이란 세월은 적지않은것을 바꿔 놓았다. 선영의 기억을 조금씩 거두어간것은 물론 자신에겐 아내와 사이에서 딸 지희가 생겼고 선민은 이제 다른 회사에서 끌어갈만큼 기자로써의 역량도 키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이년이란 시간은 선영의 죽음과는 별개인듯 계속해서 그 흐름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이 선영의 흔적을 부여잡고 있는 재훈을 제외한체.....

" 부모님은 어떠셔.... "
" 아직 좀 그러세요... 아버지는 이제 괜찮으신데.. 엄만 아직까지.... "
" 그럼 집에 가봐야 되는거아냐... "
" 부모님 어제 여행 가셨어요.. 엄만 싫다고 하시는데.. 아버지가 막무가내로 모시고 떠나셨어요... "
" 그래... "
" 아버지가 잘하신거죠.. 보나마나 집에 계셨으면.... 엄마 하루종일 울고만 계실테니까... "
" 선민이는 괜찮아... "
" 저요.. 전 괜찮아요.. 오빠도 알잖아요.. 저 씩씩한거.... "
" ......... "
상훈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선민을 애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웃고있는 선민의 얼굴과는 달리 선민의 눈가엔 눈물이 잔잔히 고여있었기 때문이다.


" 여기다.... "
선민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상훈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안을 두리번 거리는 재훈을 발견하자 손을 높이들어 재훈을 부르자 선민의 시선이 상훈의 시선을 따라 재훈에게 향했다.

" 임마.. 왜 이렇게 늦었어.... "
" 응.. 미안하다... "
상훈의 퉁명스런 말에 재훈이 힘없이 대답을하며 자리에 앉았다.

" 오빠 잘있어요... "
" 응... 잘있었어... 옮긴 회사는 어때... "
" 좋아요.. 일도 재밌고... "
" 그래.. 다행이다... "
" ........ "
선민은 힘없이 말하는 재훈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 저멀리서 피어오르는 애절한 감정을 되새겼다.

" 그런데.. 무슨 일이야.... "
" ....... "
" 일은 무슨.. 선민이가 오늘 한잔 낸단다... "
재훈의 말에 대답을 하지못한체 재훈만을 바라보고 있는 선민을 바라보며 상훈이 대신 입을 열었다.

" 그래... "
" 왜요... 싫으세요... "
" 그런게 아니라... "
" 그럼요... "
" 오늘은 별로 술마시고 싶은 생각이..... "
" ....... "
재훈의 말에 선민이 말없이 재훈을 바라보자 상훈이 다시 너스레를 떨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임마.. 이쁜 동생이 술산다는데.. 감사히 마셔야지.. 자식이... 선민아.. 가자... "
" ........ "
" 어서 일어나... 재훈이 너도 일어나고.... 빨리... "
상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재훈을 재촉하자 재훈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선민은 어두워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금전 기어이 자신과 상훈의 간청을 뿌리친체 돌아서버린 재훈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선민은 또다시 무너져버린 자신의 가슴을 애써 챙기며 지긋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무지 열릴것 같지 않는 재훈의 마음.. 아니 열리기는 고사하고 아직도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체 허우적대는 재훈을 생각하며 선민은 자신의 가슴에 아로 새겨둔 재훈을 향한 마음을 어떡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계속 기다려야 하는것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거둬들여야 하는것인지 하지만 선민은 알고있었다.이제는 재훈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거둬들이기엔 자신이 너무나도 많은 걸음을 내딛었다는걸....

" 선민아.... "
" ........ "
그렇게 재훈의 생각에 눈시울을 붉혀가던 선민을 상훈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불렀지만 선민은 계속해서 창밖만을 응시한체 상훈의 부름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런 선민을 향해 다시 상훈이 입을 열었다.

" 참고... 기다릴수 있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라... "
" .......... "
상훈의 말에 선민이 놀란 눈으로 상훈을 바라보았다.

" 쉽게 열려질 놈이 아니다.... "
" 오빠... "
" 안다.. 재훈이를 향한 네 마음.... "
" ....... "
선민은 너무나도 뜻밖의 말이 상훈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놀란 눈으로 상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숨죽여 소리없이 간직해온 감정이였다. 숨진 언니의 남자를 사랑한다는 죄책감만은 아니였다. 이미 그런 죄책감은 언니의 무덤가에서 용서를 구한 이후 많이 수그러졌다. 다만 열릴것 같지않은 재훈을 지켜보며 행여 자신의 감정을 되돌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혼자 감내하며 숨겨왔던 감정이였다. 그런데 상훈은 이미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고있다는듯 말하고 있는 것이였다.

" 처음... 네가 재훈이와 나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할때... 재훈이를 바라보던 네 눈빛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
" 오빠.... "
" 아까도 말했지만 기다릴수 있으면.. 기다려라... "
" .......... "
" 너로썬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되겠지만.. 언젠가는 재훈이도 네 마음을 알게 될꺼다... "
" .......... "
" 그러니까.. 좀더 참고 기다려봐.... "
" 기다리면요... 그럼 되나요... "
" .......... "
선민이 침묵을 깨고 입을열자 상훈은 운전하던 차를 길한켠에 세운뒤 자세를 돌려 눈시울이 붉어진 선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너도 알잖아.. 그 녀석의 마음이 쉽사리 열리지 않을거란걸.... "
" 알아요.. 하지만... "
" .......... "
" 오빠 말대로 기다릴수 있어요... 그게 일년이든 십년이든...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재훈 오빠가 언니를 잊지 못하면요... 그럼 전 어떡해야 되죠... "
" 그럼... 이제라도 재훈이를 향한 마음을 거둘수 있니... "
" ........... "
상훈의 말에 선민의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뺨을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 그럴수 있으면 여기서 멈춰라... 네말대로 너에겐 너무 힘든 길일지도 몰라.... "
" ......... "
" 처음엔 나도 너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게 누구의 말에 따라서 움직이는게 아니란걸... 나 또한 잘알기에 그동안 말없이 지켜만 보았다... 그런대로 너또한 잘버티는것 같았고... "
" ......... "
" ......... "
" 오빠.... "
짧은 침묵이 흐른뒤 선민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가는 얼굴로 상훈을 바라보았다.

" 그래 말해... "
" 저 어떡해 해야되요.... "
" ......... "
"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재훈 오빤 언제나 언니의 그늘에서 나오지 않은체 웅크리고 있고.. 그런 재훈 오빠를 바라보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
" ......... "
" 그래요.. 오빠 말대로 재훈 오빠의 마음이 쉽사리 열리지 않을 거란걸 알아요... 그러면서 그런 오빠를 향한 제 마음을 거두어 들일수가 없어요... "
" ......... "
" 저도 모르겠어요... 바보같이 왜 재훈 오빠를 사랑하게 됐는지... 오빠.. 이런 제가 어리석은 건가요.. 그런거예요... "
흐느끼듯 말하는 선민을 바라보며 상훈은 안타까운 마음에 말없이 선민의 어깨를 두드려주자 선민의 얼굴이 힘없이 상훈의 품으로 쓰러지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이제껏 자신 혼자서 겪어야만 했던 슬픔의 둑이 터져버린듯 선민은 그렇게 상훈의 품에서 자신의 아픔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 언제 아셨어요.... "
슬픔이 진정된듯 자세를 고쳐앉아 있던 선민이 상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아까 말했잖아.. 작년에 네가 처음으로 오빠란 호칭을 우리한테 쓰면서 어렴풋이 느꼈다고... "
" 재훈 오빠도 알고있을까요.. "
" 모를거다... 그 녀석.. 네 마음을 눈치챌만큼 아직 여유가 없을테니까.. 그리고 네가 그동안 잘 숨겨왔잖아.... "
" 그래도 오빤 눈치 챘자나요... "
" 후후.. 그 녀석이랑 나랑은 다르잖아... 난 우리 와이프 눈치보며 사느라고.. 사람 마음 알아채는 눈치하난 빠르거든.... "
" 훗... "
상훈의 말에 선민이 짧은 웃음을 짓자 상훈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 아마.. 밤거리에서 차대놓고 너랑 이렇게 오붓하게 앉아있는걸 보면.. 우리 와이프 아마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네 머리칼 다뽑아낼껄.... "
" 재희 언니가요.. 안 그럴것 같은데... "
" 말도마라... 우리 집사람 눈치 보느냐고 내가 기가 죽어산다... "
" 그래요..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요... "
" 어떻게 살긴.. 사랑으로 살지.... 아무리 그래도 내눈엔 세상에 우리 와이프만큼 이쁜 여자는 안보이거든... "
" 후후.. 순 엉터리.... "
" 그게 사랑이다... 물론 너랑 경우는 틀리지만... 때로는 상대방으로 인해 내 자신이 좀 힘들어도.. 참아내고 견디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수 있는게.. 바로 사랑이 있기때문이다... "
" ......... "
" 그러니까.. 너도 좀더 참고 기다려봐... 내가 너한테 해줄수 있는건 이말 뿐이다... "
" 고마워요.. 오빠... "
상훈의 말에 선민이 살며시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했다.

" 자식.. 그렇게 웃어... 넌 그렇게 활짝 웃을때가 제일 이쁘다... 물론 우리 와이프 다음으로... "
상훈의 말에 선민이 다시한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그동안 혼자서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오빠한테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까.. 조금 기운이 나네요.. "
" 그래.. 그럼.. 오늘 못마신 술까지 다음에 따불로 내라... 알았지.. "
" 그래요.... "
상훈의 말에 선민이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상훈은 자세를 바로잡은뒤 길가에 세워둔 차를 출발 시켰다.

그렇게 다시 어둠을 질주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선민은 이제껏 자신을 힘들게했던 자신만의 사랑을 새롭게 다지며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 거리의 풍경을 한결 밝아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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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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