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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58 787회 0건
거참 .. 이렇게 오래 멈출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군요..

많이 잊혀졌을 것 같습니다만... 계속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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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듣고 있는 거야? 뭐해?”

“아, 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저분자화합물의 .. 그.. 결합은..”

“그게 아니잖아.. 멍하니.. 왜 그래? 네가 중심이 되어서 진행하는 분야잖아. 그런 태도로 뭘 어쩌자는 거야?”

펼쳐진 노트 위에 볼펜을 쥔 채로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던 희성을 지영이 강하게 질책했다. 강한 질책 탓에 잠시 현실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단 한순간이라도 유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었다. 혼자두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자신의 발견이 계기가 되어서 출발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희성의 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유미의 마음 씀씀이에 등을 떠밀려 출장에 합류하고 말았다. 수도권과 지방 3개도시에서 년초부터 진행될 프로젝트를 대비한 사전 미팅이었다. 밤 늦게까지 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아침부터는 쉴틈없는 회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하고 있어도 머리속에는 온통 유미 생각 뿐이었다. 짬을 내어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받고서야 간신히 안심할 수가 있었다. 헌신적이기까지 했다. 자신의 일보다 상처입었을 것이 틀림없는 여자친구의 걱정이 우선이었다.

“자, 그럼 세부적인 것들은 메일로 주고 받기로 하죠”

드디어 마라톤 회의가 끝나고, 지칠대로 지친 상태로 회의실을 나섰다. 지영은 긴 머리를 흩날리며 새롭게 지어진 건물의 복도를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었다. 엘리베이터 홀 바로 옆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두잔 뽑아 든 채로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나섰다. 희성은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고생했어”

인적이 드믄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잔디밭 위로 늘어지고 있었다. 저녁무렵이라 한결 더 쌀쌀해진 날씨였다. 지영이 들고 있던 캔 커피를 희성에게 건냈다.

“아..”

“예상은 했지만 좀 피곤하네…”

부드러운 머리결이 석양에 빛나고 있었다. 그런 석양을 배경으로 크게 기지개를 켰다. 캔커피를 손에 든 희성은 그런 소녀 같은 그녀의 행동과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죄송했어요..”

“그럴 수도 있지 뭐.. 너무 무리하지 마…”

짧은 지영의 대답이었다. 어제 밤 만나기로 했던 호텔 로비에서 부은 얼굴과 반창고를 붙인 희성을 보고 잠시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지영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해도 대답할 말이 없었지만 그녀가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는 것도 어딘가 불편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안 물어보세요?”

지영은 언제나 그랬다. 필요이상으로는 파고 들지 않는 편이었다. 오히려 희성이 스스로 그 화제를 입에 올렸다.

“얼굴에 그 상처 말야?”

“…네”

“내가 물어봐주기를 기다렸니?”

온기라도 느껴보려는 듯 따뜻한 캔커피를 감싸쥐고 있던 지영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쿡 하고 웃음을 터트린 지영이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강한걸?”

희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강해요? 제가요?”

자조섞인 희성의 되물음이었다. 지영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여자친구가 힘들어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자신이.. 그런 여자친구를 도와주지 못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런 희성의 어깨를 지영이 가만히 잡아왔다.

“도망치지 않았잖아. 그래서 다친 거 아냐? 그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게 아니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좀 더 정신을 차리고 있었으면 유미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희성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아플 뿐이었다.

“너무 혼자 고민하지 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희성의 어깨를 조용히 끌어당겼다. 지영이 안아주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선생님.. 저…”

희성은 지영의 당기는대로 가만히 있었다.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지영의 손길이 희성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잘 들어..”

평소의 연구실에서 보여주던 말투와는 달랐다. 아끼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부드러운 어조였다.

“넌 혼자가 아냐…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걸 잊어버리지 마”

그렇게 잠시 말을 멈춘 지영이 귓가에서 속삭였다.

“네가 걱정스러워… 아주 많이… 그러니까 혼자서 고민하지 마.. 꼭 지금이 아니라도 괜찮으니까…너무 힘들어서 견디기 힘들어지면… 나한테로 와.. 틀림없이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야.. 알겠니?”

그녀의 품안에서 문득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올렸다. 어릴 적, 언제나 그렇게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던 어머니.. 희성의 웃는 얼굴을 좋아하던 엄마의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그런 지영의 마음씀씀이에 희성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유미를 걸고 하는 게임 같은 거.. 난 인정할 수 없어.. 더 이상 널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하.. 하지만.. 걔가.. 희성이한테 심한 짓을 할지도 몰라..”

마치 쫓겨나듯이 지훈의 집에서 나온 후, 희성과 유미는 역 근처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유미는 찢어진 희성의 입 주위와 부어 오른 얼굴에 대고 있던 휴지를 새것으로 바꾸었다. 피가 엄추자, 계속 다물고 있던 희성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난 아무래도 괜찮아.. 그보다.. 유미야.. 정말.. 미안해.. 아무 것도 모르고…”

“아냐.. 내가 잘못했어.. 나쁜 건 나야…”

“그렇지 않아. 유미는 잘못한 거 없어”

“..아니야.. 희성아..”

“어쨌든 이건 그자식과 내 문제야.. 유미는 관계 없는 일이야.. 집에 가자”

희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희성아.. 오늘.. 출장이라고 하지 않았어? 중요한 회의라고…”

“괜찮아.. 연구 같은 건.. 지금은 유미 없에 있을 거야”

“고마워 희성아.. 하지만.. 난 괜찮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라며..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해왔는데.. 나 때문에…. 더 이상 희성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부탁이야.. 지금이라도 가보도록 해.. 아파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거.. 희성이 꿈이었잖아… 나.. 희성이가 그 꿈을 향해 가는 거 보고 싶어… “

“하지만.. 유미야..”

“난 괜찮아.. 이제 정말 괜찮아.. 그리고.. 기뻤어.. 이런 날..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기다리고 있을게.. 응? 그러니까…”

오랜만에 보는 유미의 웃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희성은 그 웃음이 유미의 진짜 웃음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본래의 밝과 화려하던 웃음이 아니었다. 깊은 상처를 입고도 자신을 위해서 보여주는 그런 웃음이었다. 한동안 흐린 하늘을 오려다 보던 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가 끝나는대로 바로 올 게”

“응”

희성이 내민 손을 잡고 유미가 일어섰다.

“있잖아.. 희성아.. 저기.. 하나만 가르쳐 줄래? 희성이랑 .. 무슨 관계인 거야..? 가르쳐 주면 안돼?”

보이지 않는 상처를 건드리기라도 한 듯 희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일 우리 집에서 기다려 줄래? 그때 전부 얘기해줄게. 그 자식하고도 정리해야 할 것도 있고..”

간신히 쥐어짜내는듯한 목소리였다.

“그래.. 그럴게”

어딘가 모를 어색한 둘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오후의 강의가 끝난 후 낙엽이 굴러다니는 캠퍼스를 뒤로 했다. 어제 희성의 표정이 신경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꽃은 어떤 의미란 말인가.. 그리고 모든 것을 얘기해주겠다는 희성에게 자신도 이야기 하지만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이렇게 되고 말았는지… 모든 것의 시작은 자신이 희성을 배신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제 와서 희성에게 사랑 받을 자격따위는 자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훈이에게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버림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어…”

지하철 역으로 걸어들어가며 혼자말을 내 뱉았다. 그래도 모든 것을 밝히지 않으면 안되었다. 해가 기울어 석양이 고층 빌딩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쯤 희성이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회의 중일까.. 돌아오고 있는 중일까.. 희성을 생각하면 할수록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렇게 혼자 있는 것이 힘들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유미는 희성의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저녁은 어떻게 하지?’

문자로라도 물어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자신의 집과 희성이 집이 있는 층의 버튼을 눌렀다. 저녁거리라도 만들면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신이 만든 음식을 과연 희성이 먹어줄 것일까 하는 걱정과 희성이라면 먹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희성이의 따뜻한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유미의 가슴도 따뜻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저기.. 선생님.. 잠시 괜찮으세요?”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채 안경을 끼고 논문을 훑어보고 있던 지영에게 마음을 굳힌듯이 희성이 말을 걸었다.

“응? 괜찮아.. 왜?”

KTX의 차내 방송이 곧 도착을 알리고 있었다. 지영의 부드러운 눈빛이 희성을 향했다.

“음.. 선생님..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 그래?”

“아..아뇨.. 아무것도..”

“얘기해 보래두”

“그게.. 말이죠…”

지영은 한 손으로 자신의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응.. 얘기해봐”

“선생님.. 바람.. 피신 적 있으세요?”

“뭐어~?”

어리둥절해진 지영이 곧 표정을 추스리며 논문을 덮었다. 물론 지영은 바람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 지수와의 관계는 넓은 의미에서 바람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얘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이상한 거 물어봐서 죄송해요…”

지영의 표정에서 곤란함을 느끼고 대화를 접으려고 하는 희성이에게 예상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런 적 없는데?”

“그러시군요… 그런데..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믿는 것만으로는 안된다고.. 그녀를 붙잡아 두고 싶으면 믿음말고도 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그럼.. 선생님 남편분은 선생님에게 어떤 것을…”

“믿음 이외의 무엇인가가…”

마치 혼자말처럼 내뱉으며 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는 희성의 무릎에 타이트 스커트 밖으로 뻗어내린 지영의 무릎이 부딪혔다.

“선생님..”

“알고싶니?”

“…네”

그렇게 얘기하고 고개를 든 희성이에게 지영이 바짝 다가 앉았다. 열차가 역을 앞두고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가르쳐 줄까? 내가 받았던 것들.. 지금도 받고 있는 것들을?”

지영의 눈동자에서 평소의 청초함과는 다른 요염한 눈빛이 읽혀졌다. 희성은 자신도 모르게 그 눈길을 피하고 말았다.

“좋아.. 가르쳐 줄게.. 언제 한번 집으로 오는 게 좋겠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뺨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붙인 지영이 그렇게 말했다.


막 닫히려고 하는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팔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흔들릴정도로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 유미가 놀라고 말았다.

“지.. 지훈아.. 어.. 어째서..?”

“얘기 했었지? 매일 너를 안아줄 거라고.. 흐흐흐”

비열한 웃음을 흘리면서 지훈이 손을 뻗어 유미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고 했다.

“싫어! 만지지 마! 다가 오지 마!”

곧 희성을 만나기로 했는데..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은 희성이인데.. 라는 생각을 하며 작은 공간에서 유미가 지훈을 피해 몸을 틀었다. 하지만 뱀처럼 감겨오는 지훈의 팔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싫어하는 척 해봐야 소용 없어… 이제 슬슬 못참을 때가 되지 않았어? 넌 나 없으면 안되는 음란한 년이니까 말야. 나한테 안기는 생각만으로도 보지가 막 근질근질 하지? 지금도 벌써 펑 젖어 있는 거 아냐? 너 원래 그런 년이었잖아. 내 자지를 맛있게 쳐물고는 한두번 느껴서는 놔주질 않잖아? 안그래?”

희성이에게 유미와의 관계를 폭로한 것 뿐만이 아니라 유미를 걸고 내기까지 멋대로 시작한 지훈은 더 이상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 같았다. 어떻게 하든 철저하게 유미의 몸을 무너트리고 마음을 흔들어서 희성에게 빼앗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희성의 앞에서 유미를 개처럼 엎드리게 만들어서는 노예선언을 시키고만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희성이에게도 소중한 사람을 빼앗기는 기분을 맛보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옥이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외로워 할 거 같아서 말이지. 일부러 만나러 와 준 거라고.. 좋지 않아? 이제부터 또 빨 수 있게 된 거라고.. 네가 좋아하는 내 좆대가리를 말이지.. 하하하”

지훈은 일부러 그런 말을 내 뱉으며 서서히 유미에게 다가 갔다.

“웃기지 마! 누가 너 같은 거랑..”

강한 말투와는 달리 마치 먹이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을 마주한 것처럼 유미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훈은 비웃음을 머금은 채 유미의 어깨를 안으려고 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희성이가 보고만 싶었다. 그 동안 몇번이고 반복되었던 조교의 기억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기에 휩싸인 지훈의 모습에 유미의 본능이 떨고 있었다. 유미를 구석으로 몰아가며 다가온 지훈의 팔 너머러 엘리베이터의 숫자판이 보였다. 조금만 있으면 문이 열릴 것이었다. 문만 열린다면…

“뭐야? 그렇게 빼지 말라고.. 오늘도 언제나처럼 귀여워 해줄 테니까 말야. 미칠정도로 뿅가게 해줄게”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유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훈의 팔을 쳐내고 뛰쳐 나갔다.

“아.. 아파..”

유미의 트레이드 마크인 긴 머리가 문제였다. 머리채를 휘어 잡은 지훈이 그녀를 끌어 당겼다.

“시.. 싫어!”

균형을 잃고 넘지면서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부딪히고 말았다. 그런 유미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지훈은 팔안에 가두었다.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잊었나? 넌 그냥 가만히 안기기만 하면 돼.. 알아들어? 자.. 그럼 즐겨보도록 하자고.. 내가 선공을 하지”

“시.. 싫어.. 그만둬”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지훈의 커다란 손이 청바지 위로 유미의 엉덩이를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해!”

엘리베이터 벽과 지훈의 가슴 사이에서 버둥거리면서 간신히 움직여지는 한팔로 지훈을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만해!”

지훈이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일부러 침을 묻혀가며 핥아오는 그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유미는 있는 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만둬.. 안그럼 소리를 지를 거야.. 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꺅!”

지훈이 그렇게 소리치는 유미의 뺨을 한손으로 잡고 주먹으로 벽을 쳤다. 엘리베이터가 그 충격으로 흔들릴 정도였다.

“맘대로 해보라고. 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어….. 너만 아님 그 자식.. 그냥 죽일 수도 있다고.. 알아들어? 넌 그냥 평소처럼 가만히만 있으면 돼”

낮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안돼.. 시.. 싫어..”

유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어쩌면 좋을지를 모른채 그녀는 그저 희성이만을 마음 속으로 찾고 있을 뿐이었다. 전해질 리 없는 외침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또 어떤 심한일을 당하게 될지 너무나도 뻔했다. 이제부터 또 어떤 음란한 강요를 당하게 될지 상상이 갔다. 절망스러운 예감만이 밀려들었다. 또 희성이를 져버리고 말 것이 틀림 없었다.

“왜… 왜.. 이렇게..심한 짓을…”

“그 을 자식이랑 만난 네년 탓을 하라고. 그런 자식한테 반해버린 너의 그 어리석음이 문제인 거란 말이지..”

유미의 얼굴에 바짝 가져다 붙인 채 지훈이 낮은 소리로 으르렁 거렸다.


“오늘은 남편이랑 만나기로 했어”

라며 즐거운 듯이 얘기하던 지영과는 역에서 헤어졌다. 빨리 유미를 만나야 했다. 지훈의 머리 속은 연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애정과 후회가 뒤섞인 복잡한 기분이었다. 혼자서 힘들어하고 있는 줄도 몰랐고, 그런 유미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는 건 애인으로써 자격 미달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도대체 유미의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유미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었던 것일까… 계속 함께 있었고, 가까이 있었음에도 가장 필요할 때에….

지영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조금 위로를 얻기는 했지만 자책감에 짓눌린 무거운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빨리 돌아가서 유미 옆에 있어여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 만큼, 그 이상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와의 관계를 모두 이야기 하고 나면 설사 유미에게 경멸을 받을지도 몰랐지만 사실을 이야기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전부를 해야만 했다.

러시아워가 일단락 된 역을 빠져 나와 전철을 갈아탔다. 회의가 길어진 탓에 생각보다 귀가가 늦어지고 말았다. 시계 바늘은 벌써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저녁무렵 집에서 기다린다는 유미의 문자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그녀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멍하니 자리에 앉아 그녀를 생각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조금 전에 이제 막 도착했다는 문자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꺼내든 희성이 숨을 멈췄다. 메시지 대신 핸드폰으로 들어온 것은 팽팽하게 젖꼭지가 당겨진채 찍혀 있는 여자의 가슴 사진이었다.

“……!?”

엄지와 검지에 잡혀 있는 젖꼭지는 짓눌려 있는 상태였다. 하얀 피부와 핑크색 유린이 늘어나 있는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은 그런 사진이었다. 작은 액정화면에 나타난 충격적인 사진은 틀림없이 유미의 번호로 보내진 것이었다.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침착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고 있는 희성을 옆자리의 남자가 흘깃 쳐다보더니 눈길을 돌렸다.

“…설마..”

전철안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설마 유미가 그자식에게.. 설마… 또.. 그런… 정신 없이 유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유미의 부재중 메시지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그의 집 전화도 벨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핸드폰을 움켜쥔 그의 손에 땀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몇정거장을 더 지났을 무렵 또 한통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번엔 거칠게 묶여 있는 발목의 사진이었다. 발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자식이 틀림없었다. 강한 분노와 초조함이 온통 뒤섞이고 있었다. 어서 빨리 유미에게 가야만 했다. 역에 도착하자 마자 가방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세번째의 사진이 도착했다. 검붉은 자지를 하얀 손으로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슬쩍 보기만 한 후 바로 지워버렸다. 택시에 올라타면서 첫번째와 두번째의 사진도 지워버렸다. 하지만 그런 희성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네번째의 사진이 도착했다. 자지가 틀어 박혀 있는 입술과 그 자지를 빨아들이고 있는 듯한 볼을 옆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유미야…

“아저씨 빨리 좀 가 주세요”

서두르는 희성의 마음씨를 가지고 놀기라도 하듯 메시지가 들어오는 간격이 짧아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이 슬로 비디오로 보여졌다. 그 따위 사진은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새로운 메시지를 열 때마다 유미를 혼자 두었던 자신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다섯번째의 사진은 거친 손에 잡혀 있는 여자의 뒷머리였다. 빨간 리본이 보였다. 여섯번째 사진은 입을 막고 있는 손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간신히 집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입을 크게 벌린 채 하얀 액체를 머금고 있는 입안의 사진이 그의 휴대폰 액정에 비쳐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것을 채기다리지도 못했다. 계단을 뛰어 올랐다.

“유미야!”
숨을 헐떡이면서 뛰어 들어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침대도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유미 옆에 있었어야만 했었다. 그러지 못했기에 또 다시 유미를… 후회와 조급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희성을 마치 들여다 보고 있었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렸다. 메시지가 아니었다. 통화버튼을 눌러 유미를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유미야! 유미야!”

하지만 기대하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유미의 대답대신 희미한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츄릅,, ,, 으응,, 츄르릅..”

“그렇지 잔뜩 싸줄 테니까 그렇게 잘 빨아보라고”

지훈의 목소리였다.

“그만둬! 멈추란 말야 이자식아!”

희성의 애끓는 외침에도 아랑곳 없었다. 젖은 듯한 소리의 리듬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삼키는 거야.. 한방울도 흘리면 안돼”

“그만..! 그만 둬.. 제발..”

“아음.. 으응.. 음.. 콜록..”

“이봐 이봐 흘렸잖아.. 다 빨아 마시라고 했을텐데?”

“콜록,, 콜록.. 으응..”

“또 벌이 받고 싶은 모양이군? 벌써 몇번째인 거야? 그렇게 벌 받는 게 좋아?”

“요… 용서해 주세요.. 제발…”

“응.. 용서? 갑자기 무슨 약한 소리래? 왜? 아까처럼 까불어 보지 그래?”

마치 놀이라도 하는 것 같은 지훈의 목소리 하나 하나가 희성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자.. 잘못했어요.. 이제.. 그만.. 용서해줘요.. 다시는… 다시는 대들거나 하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든 시키는대로 할 테니까..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유미의 말소리엔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흔들리는 목소리로 간신이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야? 기분 좋게 만들어 줬잖아. 혼자서 외로웠던 거 아냐? 그래서 내가 대신 놀아 준 거 잖냐고.. 싫어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즐기고 있었던 거 아냐?”

지훈의 대꾸였다.

“여튼 벌은 받아야지? 각오해 두라고.. 스위치 올린다”

지훈의 말이 끝나자 마자 유미의 신음소리가 더 한층 높아졌다.

“유미야!!”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희성의 목소리는 전화 너머의 두 사람에게는 도달하지 않고 있었다. 유미를 괴롭히는 지훈의 즐기는듯한 목소리와 당하는 유미의 신음소리만이 일방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우와~ 이거 뭐야? 뭐 이렇게 젖었어? 내가 만져줬던 걸 안잊어버렸나보네? 훗.. 역시 몸은 솔직하다니까.. 그렇게나 좋아?”

“아… 음.. 모… 몰라.. 아응… 모.. 몰라요.. 아으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희성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감싸 안았다. 들려오는 여자친구의 고통이 섞인 신음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거.. 거긴.. 아..안돼.. 시.. 싫어..”

유미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아음… 하윽.. 괴..굉장히.. 아응.. 좋아요.. 아으응”

유미를 혼자 두는 것이 아니었다…

“하흑.. 뜨.. 뜨거워.. 아응.. 하흑.. 제발… 아으응~”

자신 때문에…

“부.. 부서질 거 같아… 아응.. 그.. 그만.. 제발.. 부탁해요..”

자신이 옆에 있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훈아.. 지훈아.. 제발.. 가게 해줘.. 그만.. 하흐응.. 이 대로는.. 이대로는.. 지훈아..”

유미야…

“아응.. 조.. 좋아.. 하음.. 하응.. 하아.. 아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유미의 목소리에 언제부터인가 달콤한 울림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가.. 갈 거 같아.. 아응… 시..싫어.. 보지마.. 보면.. 안돼.. 아흑”

전화기를 들고, 그렇게 얼마나 있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그만 하윽~! 아응.. 하아~ 하아~”

유미의 신음소리에 섞여 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멍청한 자식 잘 듣고 있나?”

“너 이자식 유미한테 무슨 짓을!”

분노에 찬 희성의 목소리를 무시한채 지훈이 말을 이었다.

“너 이 새끼. 나랑 했던 약속을 깨고 얘한테 전부 얘기하려고 했었다매? 게임 같은 거 안하겠다고 했다면서? 흐흣.. 살짝 만져 줬더니 질질 싸면서 유미가 죄다 얘기해해 주던데? 니가 그랬다면서..”

“너 이 자식.. 어디야? 지금 어디야?”

“시끄러.. 내가 내 장난감 가지고 뭘 하던 네가 뭔 상관인데? 안들려 이자식아.. 흐흐.. 유미는 너 대신 약속을 깰려고 했던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알아? 멍청한 자식.. 뭐 이렇게 질질 싸서야.. 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만둬! 유미는 관계 없잖아! 유미는 아무 상관 없잖아!”

목소리를 쥐어짜내고 있는 희성의 두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뭐? 왜 관계가 없는데?”

갑자기 유미의 신음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하흑.. 가.. 갈 거 같아.. 또.. 갈 거 같아~~”

“안돼! 참아!”

“시,, 싫어.. 제발.. 가게 해주세요..”

“유미야.. 그만.! 그만 해 이자식아!”

“하흥.. 아..안돼.. 이.. 이상해질 거 같아.. 아으음.. 미.. 미칠 거 같아.. 아아응.. 하흑”

“유미야.. 유미야~ 너 이 자식.. 네가 원하는 건 나잖아! 더 이상 유미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그러니까 그렇게는 안된다고..”

“왜 그래야 하는데?”

“네가 가장 아끼는 여자니까”

“뭐..? 뭐라고?”

“뭐.. 어쨌든.. 게임은 계속 되는 거야.. 그 외의 선택은 너 한테는 없어! 알아들어?”

“유미를.. 유미한테 손 떼 이자식아”

전화기 너머로는 유미의 막힌듯한 신음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게임.. 할거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지훈은 그 말 뿐이었다.

“… 알았어.. 할테니까.. 유미를.. 유미를…”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를 끝으로 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미는 벌써 집에 돌려 보내줬지. 잔뜩 싸게 만들어준 다음에 말야. 크크큭.. 이건 녹음된 거야 녹음! 멍청한 자식.. 아마 지금쯤 지 방에서 울면서 널 기다리고 있지 않을래나? 잘 위로해 주라고 크크큭”

“아 참! 그리고 잘들어. 앞으로 한번만 더 내말을 안들으면 그년은 오늘 정도로 끝내지 않을 거야.. 아주 부서질 정도로 짓밟아주겠어. 알아들어?”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덧붙인 지훈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가지고 있던 열쇠를 넣고 돌렸다. 최근 유미의 부모님은 출장중이었다. 집안은 어둠 뿐이었다. 유미의 방에도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정말 유미가 집에 있을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노크를 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었다. 열기를 머금은 공기가 퍼지며,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냄새와 느낌이 한꺼번에 밀려 들었다.

유미?

어둠을 향해 유미를 부르려던 희성이 보다 한발 먼저 인기척을 느낀 유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유미가 부른 것은 희성의 이름이 아니었다.

“지훈아…”

“…!?”

목소리가 들린쪽을 본 지훈은 멈칫거리고 말았다. 유미가 알몸으로 두 손, 두 발을 묶인 채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하얀 알몸이 뚜렷이 보여지고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유미의 사랑스러운 입술에서 여전히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 못참겠어..지훈아.. 이제 그만..응..? 제발..?”

마치 애교를 부리는 듯한 목소리에 미세한 진동음이 뒤섞여 있었다. 눈이 가려진 유미는 자신 앞에 서 있는 것이 희성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훈아.. 응? 나.. 시키는대로.. “

지훈이 화내지 않도록, 지훈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시키는대로 대답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난감으로.. 세..번.. 세번이나.. 싸버렸어.. 아주.. 아주 좋았어…”

모든 것이 지훈이 꾸민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훈은 잠깐 편의점에 다녀올 동안 몇번이나 싸는 지 잘 세어두라고 했었다. 돌아오면 또 느끼게 해준다는 말만 남기고 나가버린 후 집 앞에서 희성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유미는 그런 줄도 모르고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부탁이야.. 미.. 미칠 거 같아.. 응? 제발…”

애처롭게 묶인 알몸을 뒤틀며 유혹이라도 하듯이 허리를 들어 올려 보였다. 보지털 사이로 검은 물체가 언뜻언뜻 보이고 있었다. 유미가 허리를 흔들 때마다 땀이 베어 있는 풍만한 유방이 따라서 흔들렸다.

“지훈아.. 아흑.. 아응.. 또.. 또 쌀 거 같아.. 하응.. 이런.. 장난감 싫어… 제발.. 지훈아.. 자지를.. 자지를 넣어줘… 하흐윽!”

유미의 신음소리가 한층 더 높아지며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두 손을 묶인 채 무릎을 떨고 있었다.

“유미는.. 자.. 장난감 보다.. 지훈이 자지가.. 더… 좋아… 어서.. 못참겠어.. 아응.. 해줘.. 해줘.. 지훈아… 유미를.. 더.. 많이.. 더… 느끼게 해주세요..”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요염하게 유혹하고 있는 여자친구의 모습. 쾌락에 떨며 관능적으로 알몸을 뒤틀면서 음란한 말을 내 뱉고 있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희성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나약함에 어금니를 굳게 깨물고 있었다. 입안으로 뜨뜻하지만 비린 피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든 지금은 유미를 구해야만 했다. 달콤한 신음소리에도 희성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여자친구의 보지에 틀어박혀 있는 딜도를 잡고 천천히 뽑아 내었다. 성숙한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향기가 피어 올랐다. 유미의 보지에서 흘러내린 보지물로 인해 침대 시트도 젖을대로 젖어 있었다.

“아흑.. 아응.. 조.. 좋아…”

두 손을 묶은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침대 모서리에서 쓸리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딜도가 가는 실 같은 보지물을 매단 채 유미의 보지 안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젖은 소리와 함께 뽑아내자 유미의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아응.. 싫어.. 왜…?”

유미의 불만 섞인 투정이었다. 아무 말 없이 두 손과 두 발을 묶고 있던 로프를 풀고 작은 소리로 유미를 불렀다.

“유미야.. 이제 괜찮아..”

“지훈아…? 응…? 아아아~”

이제 자유롭게 된 손으로 눈가리개를 젖혔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째서…”

멍한 시선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유미의 두 손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공을 움켜쥐고 있었다.

“희.. 희성아…! 흐흑..”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제서야 알아차린 유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이곳에 희성이 와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저녁부렵부터 반복해서 이어진 굴욕과 자극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절정에 올라야만 했었다. 몇번인가 기절까지 했었다. 이대로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일찍 끝내고 싶어서 쾌락에 몸을 던지고 말았었다. 지훈이 좋아할 만한 말을 일부러 계속했다. 그랬던 유미의 생각이 전부 덫이 되고 말았다. 지훈의 계략대로 희성의 앞에서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던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고야 말았던 것이다. 놀람과 떨림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유미는 엉망진창이 된 침대 위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얼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대로 사라져 없어져 버리고만 싶었다. 희성을 또다시 상처입히고 말았던 것이다.

“미안해 유미야..”

희성은 유미의 갸녀린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나 때문에 미안해…”라는 말 뿐이었다.

이대로 얼마나 더 희성에서 상처를 줘야되는 것일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치욕적인 말을 들려주고야 말았다. 그 모든 것을 보여주고 만 유미는 희성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몸을 웅크리고..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할 뿐 이었다.

매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안아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지훈의 노림수대로 두 사람의 마음이 어긋나고 있었다. 결코 깨어질 리 없다고 믿고 있었던 두사람의 믿음이 조금씩 그렇게..

“물.. 받아둘게..”

희성은 그 말만을 남긴 채 방을 나섰다. 유미는 침대 한켠에 놓아두었던 테디베어를 끌어안은채 어깨를 떨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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