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돋은 꽃, 장미
<2>
밤새 한숨도 못잤다.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 원래 고민이나 잡념이 많을 때는 그렇게 뜬눈으
로 밤을 지새는 적이 종종 있다. 인간이 살면서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 중에 절반이상이 일
어나지도 않을 일을 심각하게 걱정한다고 어디에선가 본 듯하다.
나도 그랬다.
처음엔 2,000여만원이라는 거금을 단숨에 내 놓고 미란이라는 술집접대부를 내 여자로 만
들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 한 그런 일이 불과 몇 시간 만에 후딱 지나가고 정신이 들었
을 땐 전과 다름없이 넓은 집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친짓을 한 것이
다. 차라리 미란이 알몸을 해서 내 침대위에 널부러져 있었다면 쓸데없는 망상은 하지 않았
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제와 같이 홀로 팬티 한 장만을 걸친 채 침대 모서리에 걸터 앉
아 담배를 피워내고 있다. 미란이 그 길로 잠적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내게 오긴 오지만
꽃뱀처럼 내가 이뤄놓은 재산을 탕진하는 생각, 술집 접대부의 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바람
이 날거라는 생각, 별의 별 생각에 별의 별 상상을 하다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에잇, 잘못되면 사기 한 번 당했다고 치지 뭐.’
그렇게 치부해버리고 생각을 지우려 해도 그게 사람 마음 먹은 대로 되는가. 그런 망상이
계속되고 있는 게 짜증날 무렵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집 안 꼴이 눈에 들어온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면서도 망상은 계속된다. 우스운 건 그런 망상을 하면서도
그녀가 올 거라는 기대감에 집안을 쓸고 닦고 있는 내 모습이 모순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
이다. 그런 생각을 할 거면 차라리 청소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정답인데 말이다.
청소를 대충 끝내고 소파에 기댔다가 잠시 졸고 말았다.
일요일. 오히려 나는 휴일에 더 할 일이 없다. 토요일까지 근무를 하는 바람에 일요일 단
하루를 쉬는 나이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단 하루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도 잘 만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막 지날 무렵이다. 저녁 무렵 오라했으니 어차피 기다려도 미란은 늦게
나 올 거라는 생각을 해버린다. 스스로 혼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도 피곤한데 이제는
남의 마음, 생각까지 컨트롤하려는 내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낮잠으로 이왕 나른해진 몸이기도 했거니와 잠 한숨 자지 않고 새벽 같은 아침부터 청소며
정리에 몸을 움직인 터라 아예 한숨을 더 자기로 마음먹고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간다. 빛
이 쳐들어오는 안방의 커튼을 닫고 방문도 닫아버린다. 이상하게 문을 열어두면 누가 날 자
꾸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잠을 이뤘다고 해도 설치기
일쑤였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서 이불까지 끌어당긴다. 눈을 감고 잠을 자려하는데 또
미란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는 정신이 혼미해서 진짜 미란인지 술집 미란인지도 분간이
안된다. 그러기를 몇 분, 나는 잠에 빠져든다.
생각외로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본다. 혼자일 때는 시간의 관념을 깡그리 무시
하고 지냈지만 지금은 다르다. 바로 맞이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4시 22분...
낮잠으로 무려 네 시간이나 자 놓고 다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기지개를 펴자 온몸
에서는 뼈부러지는 소리가 우드득 요란하다.
‘언제쯤 오려나~’
왜 미란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랫도리가 뻐근해져서도 아니고 그녀가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를 어제 원룸에 두고 올 때부터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내
돈이 허사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도 돈 귀한 줄 알고 아까운 줄 아는 평
범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몸을 달군 맥주 한 캔을 따 들이킨다. 달랑 팬티 한 장을 걸친 채 거
울 앞에 모습을 드리운다. 술을 그닥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물 대신, 음료 대신 이렇게 집
에서 쉴 때면 맥주로 가늠하는 편이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이제 자고 일어난 동네
백수와의 모습과도 같다. 원래 근육질이었던 몸매였던지라 근육의 자리는 고스란히 남아있
지만 볼품없이 말라버린 몸매 아래로 검은색 삼각팬티 한 장이 보인다. 트렁크나 드로즈 같
은 사각팬티는 자꾸 말려 올라가거나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보기엔 조금 민망할지 모르겠
지만 삼각팬티가 훨씬 편안하다. 예전에 미란이는 야하다며 사각팬티를 권유했지만 팬티만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다 어디가서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민감한 반응이라고 치부하며 무
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소파로 와서는 자리를 잡고 앉아 나머지 맥주를 단숨에 털어 넣는다. 어제 밤에 먹은
떡볶이가 조금 짰던 모양이다. 먹을 땐 몰랐는데 막상 자고 일어나니 얼굴도 부어있고 입안
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하다. 맥주 한 캔을 더 마실까 하다가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뽑아
마신다. 첫 잔을 바로 뽑아 마시고 나니 또 미란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항상 한 두 잔
정도는 뽑아 버리고나서 먹으라던 그녀. 공간은 달라졌지만 예전 집에 놀러와서는 어찌나
깐깐하고 깔끔을 떨던지 그 땐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한 잔을 더 뽑아 마시고
다시 소파로 온 나는 더디게만 가는 벽시계만 바라본다.
가을 햇볕이 좋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고 했던가? 11층 아래로 보이는 나뭇
잎들이 살랑이는 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노랗고 붉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부둥켜안은
모습으로 블루스를 추고 있는 듯하다. 환기나 할 겸, 외부 공기나 마실 겸해서 베란다의 문
을 열고 반대편의 작은방 창을 열어둔다. 가을 냄새가 풍기는 바람이 약간은 추울 정도로
관통하고 그 바람에 의해 잠은 완전히 달아난다. 조금 한기가 느껴질 무렵, 옷을 입으면 될
것을 옷 대신 거실의 하얀 보조커튼을 반쯤 채운다.
잠깐이지만 집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환기라는 걸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쾌한 가을의 바람이 휩쓸고 가는 캐캐 묵은 먼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쌓였었는지 비로
소 알게 된다. 아예 마음먹은 김에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집안의 창이란 창은 다 열고 마지
막으로 현관문까지 활짝 열어제낀다.
“어?”
앞집의 문이 보이고 옆쪽 방화문으로 난 계단실에서 한 여자가 내려온다. 바로 미란이다.
순간적으로 팬티바람인 것도 잊은 채 그녀 손에 들려있는 커다란 비닐봉투를 잡아주며 그녀
를 맞이한다. 비닐봉투엔 무슨 생각으로 사온건지 각종 식료품들이 가득이다.
“아직까지 잤어요?”
“어? 어.....”
얼떨떨하다. 낮잠을 자기 전까지만 해도 미란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던 내 자신이 민망할 만
큼 그녀가 아주 자연스럽게 갈색의 스웨이드 플랫슈즈를 벗고 맨발로 들어온다.
“잠꾸러기...”
“뭐야... 언제... 온 거야?”
“두 시간도 훨씬 넘게 기다렸어요... 피~~”
“그... 그랬어?”
초인종을 누르거나 전화라도 하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그녀의 말에 다시 역류
해 들어간다. 아직까지도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다.
“전화도 안 받고,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도 없고...”
“미... 미안...”
“나랑 살자고 한 거 후회되서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잖아요”
“후회는... 그런 생각 하지 말랬잖아~”
상황 파악을 하고 나니 괜스레 미란에게 미안해진다. 두 시간동안 어제의 나처럼 별의 별
생각과 걱정을 다했을 그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짜증과 투정은 충분히 받아줄
수 있을 만큼 귀엽기까지 하다.
“헤헤... 근데 옷 좀 입으면 안돼요?”
“오... 옷?”
그제서야 팬티 한 장 뿐인 나를 인지하고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 옷을 챙긴다. 이상하다.
기분이 왜 이렇게 좋은건지. 드림걸이라는 술집에서 보던 미란이가 아니다. 귀엽고 예쁘다.
여동생처럼 챙겨주고 싶고 오래만난 연인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럼에도 내 심장은 마구 뛰고 있다. 마치 여자라는 이성에 처음 눈을 뜨고 첫사랑의 손을
잡았을 때처럼 심장이 터져버릴 듯 요동치고 있다.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어본다. 손바닥
에 느껴지는 진동이 굴착기가 두드려대는 블레이커(일명 뿌레카)의 진동만큼이나 강하다.
“휴우, 노총각 아니랄까봐... 오빠! 집에 쌀도 없어?”
“으.. 응? 싸... 쌀?”
난 또 왜 이렇게 말을 더듬는 것인가!
어제처럼 미란 앞에서 멋지고 상스러운 남자의 모습은 어디가고 바보처럼 이렇게 말을 더듬
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뭐야... 집에서 도대체 뭐 먹어? 아무것도 없네?”
이놈의 계집애! 남의 집에 와서 함부로 찬장이며 냉장고를 뒤지냐고 따지고 싶지만 그저 머
리 속에서만 맴도는 말들이다. 실제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재잘재잘 말도 많고 엉뚱하다. 드림걸에서는 항상 내 말에 귀기울여주고 내 말에
호응을 해줬던 그녀였던지라 재잘거림이 낯설다. 하지만 그 재잘거림이 싫지는 않다. 조용
하고 정적이던 내 생활에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빠~ 나 나가서 쌀 좀 사올게요~”
옷 입는데는 몇 초면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럽기
도 하고 약간은 어색하기도 했다. 2년 전 마련한 이 집에 여자라는 동물은 그녀가 처음이었
고 남자도 친구 한 두 명이 잠시 있다 갔을 뿐 동거를 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
일까? 내 집이지만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자.. 잠깐! 같이 나가자~”
무거울텐데... 라는 생각에 대충 반바지에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거실로 따라 나선다. 이미
신발을 신고 있는 그녀이다.
“혼자 갔다 와도 되는데...”
“아.. 아냐... 나.. 나도 뭐 살 거 있어서 그래...”
“뭐요? 내가 사다줄께요”
“아... 아냐... 그... 그냥 같이 가...”
특별히 살 것도 없는데 그냥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휴대폰을 잊어 휴대폰
을 들고 나오고, 슬리퍼를 신다가 돈을 챙기지 않다 다시 들어 갔다 오고, 담배와 라이터를
챙기지 않아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데 지루한 듯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삐딱하게 선 그녀
가 나를 귀엽게 바라보고 있다.
“다 챙겼어?”
덤벙대는 남편을 기다리는 마누라 같은 느낌이다. 어느새 점점 말은 짧아져 반말이 되어 있
다.
“응? 으... 으응... 그... 그런 거 같애”
서둘러 슬리퍼를 신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미란이 허리에 있던 팔을 펼치며 나를 가로막는
다.
“머리! 그렇게 하고 나갈 거예요? 새 집 지어서?”
신발장 위 거울을 보니 가관도 그런 가관이 아니다. 어쩐지 걸을 때 마다 머리 위에서 무언
가가 출렁거리더라니, 그게 바로 내 머릿칼이었다.
다시 욕실로 가서 급하게 머리에 물을 묻혀보지만 왠만해서는 강철심 같은 머릿칼이 가라앉
지 않는다. 아예 머리를 감아야 할 정도로 심하게 떠버린 머릿칼이다.
“그냥 모자 써요~”
아! 모자!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미란의 말에 모자가 생각난 나는, 안방이며 작은방 세 개
까지 이리갔다 저리갔다 휘젓고 다닐 때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자 김치냉장고 위에!”
등잔 밑이 어둡긴 어둡다. 그렇게 몇 번이고 지나다닌 김치냉장고 위의 모자를 발견하지 못
한 것이다. 더 우스운 건 미란이 위치를 가르쳐줬다는 것이다. 우리집에 들어온 지 이제 10
여분 밖에 안 된 사람이.
“푸흣! 오빠~ 너무 귀여워~”
모자를 찾아 들고 나오는데 미란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가 보기엔 내 모습이 콩트 한 편
을 보는 듯 했을 것이다. 나이 서른 여덟을 먹고 새파랗게 어린 여자에게 듣는 귀엽다는
말.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평소 차분하다는 말을 듣는 내가 왜 이러는지 이상할 뿐이다.
“갑시다~”
현관문의 말발굽을 치워 버리고 문을 닫자 자동으로 기계음이 들리며 문이 잠긴다. 엘리베
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미란은 살포시 내게 기대오더니 곧 팔짱을 낀다. 그녀의 머리
에선 어제와 같은 샴푸의 향기가 밀려온다.
“오빠!”
“응?”
“근데 오늘 이상하다~ 왜 이렇게 덤벙대? 말도 더듬고?”
“내... 내가? 내.. 내가 언제....”
“피~ 왜 나 보니까 떨려? 너무 예뻐서?”
“떠... 떨기는...”
환한 곳에서, 그리고 옅은 화장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다. 화장을 지우니
진짜 미란이와 닮기는커녕 이미지부터 다르다. 그녀와 닮아서 끌린 건 사실이지만 닮지 않
았다는 걸 알고 난 지금도 실망스럽지는 않다. 이미 내 머리와 마음엔 미란이를 대체한 그
녀이기 때문인가 보다.
“왔다! 타자!”
“그.. 그래...”
그녀의 손을 잡으니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다. 내가 알고 느껴봤었던 익숙한 손길. 가녀리고
얇상한 감촉의 손가락이 나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든다. 심장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올라타려는데 윗층의 아주머니와 아들이 먼저 승강해 있다.
“안녕하세요”
뻘쭘함에 대충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수다스러운 윗층 아주머니는 나와 미란을 번갈아
보더니 곧 말문을 연다.
“어머! 총각! 이게 왠일이야... 생전 여자에 관심 없는 사람처럼 굴더니?”
“핫... 하핫.... 제.. 제가요?”
“애인? 여자친구? 하긴 가까운 사이니까 손도 잡고 다니는 거겠지?”
“하... 하핫... 예... 뭐...”
“어머, 참해라... 이렇게 예쁜 처자 만나려고 그랬나보구만?”
“그... 그게... 흐흐”
“그래! 우리 예쁜 언니는 몇 살이야?”
“저... 저요? 스물 넷이요~”
“스물 넷? 이 총각 이거... 아주 도둑놈이네 도둑놈이야... 중늙은이가 이렇게 어린...”
“하... 하핫! 그러니까... 그게.... 하...”
“꽉 잡어~ 응? 궁둥이 토실토실한 게 애도 잘 놓게 생겼네.”
“어... 엄만 무슨 그런 말을...”
“넌 가만히 있어 이누무시꺄! 어른들 얘기하는데...”
“아... 아드님이 참 듬직하네요...”
“아휴~ 그런 말 마. 이누무새끼가 얼마나 속을 썩이는데. 그나저나 결혼은 언제쯤 할거야?”
“그... 그게... 그러니까 할 때 되면... 하... 하하하”
“아유 야물딱져라. 나도 이런 딸내미 하나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드님 있잖아요”
“그게 그런 게 아니라우... 아들 놈 키워봐야 다 소용... 어머 다 왔네! 먼저 가요”
“후... 후유~~~”
11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말들을 쏟아낸 아주머니는 정확
하게 칼처럼 1층에 닿자마자 간다는 쿨한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진다. 정말 대단한 결단력
과 행동력이다.
“재밌는 아줌마네... 재밌으셔~”
“재밌어? 넌 나중에 저렇게 되면 안 된다~”
“왜? 난 저 분보다 더 할 거 같은데? 헤헤”
“안 돼! 저건 민폐야!”
“재밌잖아~ 어? 근데 오빠 이젠 안 더듬거리네?”
“그... 그래?”
“에이... 또 그런다.... 피~~~”
“아... 아냐....”
소소한 행복.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이 너무 익숙해져 나중엔 그게 행복인지 모르고 살아간
다. 나 역시 그렇게 되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 소소한 행복이라는 게 무언지 조금씩 알아가
고 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대형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커다란 카트를 끌고 마트를 구석구석
찾아다닌다. 시식도 하고 찬거리와 저녁에 마실 작은 샴페인도 한 병을 담는다.
그녀의 나이 스물 넷, 열 네 살의 차이. 결코 쉽게 감당하고 감내할 수 없는 나이 차이.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나이와 마담에게 들었던 나이, 그리고 그녀가 일하던 술집에서 들었
던 나이 중 진짜 나이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본명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이
름과 같은 홍지숙, 생일은 5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그런 것 이외의 것은 그녀가 말하기 전
까지 묻지 않거나 함께 지내며 천천히 물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오빠는 생일이 언제야?”
“나? 난 겨울. 12월 12일”
함께 장을 보고 돌아와 그녀는 나를 아예 주방근처로 오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분주히
손을 놀려 저녁상을 봤는데 눈이 놀란 만큼 입안도 놀라 두 그릇째를 비워내고 있었다. 하
얀 쌀밥에 매생이 국과 돼지갈비가 주메뉴였는데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어때? 맛있어요?”
“죽인다! 진짜 맛있어”
매생이 국이라는 걸 처음 접해봤는데 약간 비린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입맛에 맞
는다. 또 후라이팬에 구운 돼지갈비도 간이나 굽는 정도가 너무 알맞아 질기지 않고 부드럽
다. 항상 사먹거나 인스턴트로 때우던 날들이 365일 중 360일에 가까운 나로서는 집밥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헤헷! 잘 먹으니까 좋다!”
“나랑 식당 낼래? 어디서 배운거야?”
“다 나만의 노하우가 있는거지~”
“노하우? 그게 뭔데?”
“비밀~”
“쳇! 별게 다 비밀이다.”
더 이상 들어갈 위장의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맛있는 저녁상을 뒤로하고 소파로 나온다. 그것
도 어쩔 수 없이 밀려나온다. 미란이 극구 밀어내는 통에 설거지마저 도와줄 수가 없다.
“너 후회할 걸? 앞으로도 쭉~ 안 도와줄거야~”
“피~ 다 내가 할 거예요. 그런 협박 안 통해~”
씽크대에서 자기 손보다 훨씬 커다란 고무장갑을 낀 채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녀이다. 어제
처럼 하얀 티셔츠와 날렵한 몸매가 드러나는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뒷모습이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어 사지 않았던 앞치마도 미란이 장을 볼 때 딸기가 수놓인
귀여운 디자인을 골라 담아 메고 있다. 어제처럼 맨발이고 발가락은 티끌과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대로 엉덩이가 토실토실하다. 어린 나이답게 힙업이 되
어 작아 보이지만 도톰하게 허리까지 바짝 올라붙은 모습이다. 그녀와 함께 몇번이고 2차를
나가봤지만 엉덩이를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정상위로 시작해서 그 자세로 절정을 맞
이한 게 기억의 전부이다.
165cm정도 될 법한 알맞은 키다. 여자치고는 작지 않은 키라는 걸 알고 있다. 진짜 미란이
보다 5cm밖에 크지는 않지만 하지장이 길어서인지 훨씬 더 길어 보이는 느낌이다. 미란이
와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의 미란은 가정적이라고 해야할까?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미란의 행동과 말들은 전혀 인위적이지 않다. 정말 자신이 좋아서 하고 있는 일
처럼 즐겁고 기분 좋게 하고 있다. 마담의 말처럼 그녀는 정말 괜찮은 여자처럼 느껴진다.
미란이 모르게 천천히 그녀의 뒤로 다가간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소리 때문인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그녀이다. 날씬한 등과 허리라인이 보이고 머리는 어제와 다르게
포니테일로 한데 묶어 찰랑이고 있다.
“어맛! 깜짝이야... 오빠! 이럼 못 써요~”
미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살포시 그녀를 내 품안으로 가둔다. 안아보면 더욱 여리게 느껴
지는 그녀의 몸이다. 부끄러운지 몸을 베베 꼬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미라...ㄴ 아니... 지숙아...”
이젠 미란이 아닌 지숙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녀를 데려와 미란이를 잊지 못하는 건 아
닐까 하는 노파심은 어쩌면 기우였나보다. 비록 출신은 술집 접대부였지만 그것 하나만 빼
면 미란에 비해 꿀릴 게 없는 그녀이다.
“오빠~ 나 괜찮아... 헤헷 나 개명할까 하는데... 홍미란으로... 어때?”
이해심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자신의 출신 성분 때문에 참고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
는다. 지숙은 착하고 지고지순한 여자이다.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여자.
술집 접대부. 물론 정도는 아니다. 바른 길에서 벗어난 나쁜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 직
업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추호도 없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필요하다는 말 같지
도 않은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건 묻고 싶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랑보다는 돈 많은 남자를 택해 시집가는 여자와 자신의 어머니의 수
술비를 위해 술집을 간 여자. 나의 시선에서는 후자가 훨씬 순수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방
법이 잘못되었을 뿐 동기는 누구보다도 착한 심성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왜 아무 말도 없어~ 안 돼?”
“아니, 하지 마.. 개명... 이젠 미란이보다 지숙이 네가 더 좋으니까”
“으~~~ 닭살... 그리고!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야”
“가끔은 미란이라고 불러! 그럼 아주 못되게 행동할테니까... 헤헤헤”
“이젠 걔 생각 안날 거 같애. 니가 있는 한”
지숙이 설거지를 하다 말고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마주본 자
세가 되자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오빠!”
“응?”
말괄량이 여고생처럼 아주 수수한 눈빛으로 나를 부른다.
“오빠... 몰랐는데... 되게 느끼한 거 알아?”
“내... 내가?”
“완전 짱이야. 오빠 최곤데?”
“뭐가?”
“자세 좀 숙여 봐~”
“왜~”
“잠깐이면 돼...”
“왜~~~~”
무릎을 굽혀 자세를 숙이자 지숙이 귓속말을 하려는 듯 얼굴이 귀로 다가온다. 분명 느끼하
다거나, 닭살이라는 놀림을 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경로를 바꿔 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밀착시킨다.
“쪽! 아구... 이뻐라! 우리 오빠 왜 이렇게 이쁘지?”
그녀가 눈을 귀엽게 접으며 웃는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
도로 그녀가 마음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느즈막히 너무 불타는 사랑에 쉽게 지칠까 겁도
난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질 않는다. 첫경험의 여자 입술보다 훨씬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왔다간 듯 여운이 짙게 남는다. 처음 느끼는 지숙의 입술은 아니지만
지금의 입술은 마치 다른 여자의 것처럼 느껴진다.
“오빠! 오빠! 정신차려”
“.........한 번 더!”
마치 ‘얼음’이라는 주문을 왼 것처럼 ‘땡’이라는 주문이 필요했다. 망설임 없이 그녀가 전해
준 ‘땡’의 주문은 처음의 주문보다 훨씬 깊고 짙게 행해지고 있었다.
부드럽게 아랫입술을 잡아당기며 빨아들이는 지숙의 입술에선 향긋함이 묻어난다. 마치 양
치를 막 하고 나온 것처럼 청량감도 느껴진다. 그녀의 혀가 나의 입술을 파고 들었고 부드
럽게 내 안에서 놀다 수줍게 빠져나간다.
“됐지?”
“아니! 이제 시작이지!”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향한다. 발버둥을 치는 그녀이지만 격렬한 반응은 아니다.
예사처럼 귀염 떠는 내숭의 발동작이다. 여전히 손엔 빨간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고 그녀는
겨우 손을 뻗어 씽크대의 수도를 잠근다.
“오... 오빠! 잠깐만... 응? 잠깐만...”
이미 나는 이성을 잃었다. 외로움에 지친 반응이랄까? 간만에 찾아온 봄날 같은 분위기에
취해 버린다. 일방적이거나 노골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단숨에 침대로 달려가 지숙을 던지듯 내려놓는다. 놀란 얼굴이지만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나의 이성을 더욱 마비시켜 놓는다. 한창 예쁠 여자나이 스물 넷. 알맞게 영근 여체 앞에서
한 마리의 짐승으로 완전히 돌변한다.
"오... 오빠! 자... 잠깐만..."
싫은 표정은 아니지만 지숙은 물 묻은 고무장갑을 어쩌지 못한 채 조금씩 침대의 헤드로 몸
을 움추린다. 도망은 아니고 수줍음을 표현하고 있는듯하다. 혹여 침대에 물기라도 묻을까
두 손으로 정성스레 고무장갑을 받치고 있다.
"왜 더듬어? 무서워?"
나는 이성을 잃은 것이 들킬까 더듬거리는 그녀의 말투를 지적하며 농을 건넨다. 그러자 지
숙이 녹여낼 듯 유화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래! 무서워~ 으... 짐승같애"
"뭐? 짐승?"
"그래! 짐승!"
"그래? 어디 짐승이 어떤건지 제대로 보여줄까?"
옷을 벗는다.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 채 벌떡이는 중심부의 살덩이를 그녀에
게 내보인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지숙은 순식간에 알몸이 되는 나를 보고도 슬
쩍 고개를 돌릴 뿐이다.
"꺄아! 벌써 그렇게 커져 있으면 어떡해~~~"
지숙은 장난스레 눈까지 가리며 고음을 지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죽을 것만 같다.
단숨에 침대위로 튀어 올라 지숙을 눕히자 자연스럽게 고무장갑을 침대 아래로 떨구며 가슴
앞으로 손을 모아 몸을 감싸는 그녀이다.
“짐승!”
“그래! 나 짐승이다!”
그녀의 팔을 거둬들이며 티셔츠 아래로 손을 넣는다. 보들보들한 맨살이 닿자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배에 힘을 준다. 그러더니 몸이 경직되고 웃고 있던 얼굴에도 약간의 무덤덤
함이 찾아오고 있다.
“씻지도 않고! 하루종일...”
“괜찮아~”
이미 그녀의 티셔츠는 몸을 분리해 나가버렸고 가슴을 가리고 있는 브래지어의 후크도 분리
된 상황이다. 크지 않은 아담한 젖가슴이 좌우로 퍼지며 적나라게 드러난다. 크지 않은 가
슴이지만 지숙의 이미지와 몸매에 적당히 어울리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보지마요... 창피해...”
이미 몇 번이고 봤던 가슴이지만 여자의 가슴이란 남자로 하여금 보호본능과 함께 한입에
빨아먹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하는 가장 좋은 여자의 무기인 것 같다. 적갈색의 작은 유두가
떨고 있다. 꽃판도 넓지 않고 예쁘다.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백옥의 피부와 대조되는
짙은 색감에 금세라도 자지가 부러질 듯 아파온다.
“예뻐... 정말 예뻐...”
“정말?”
“응. 너무 귀엽고 예뻐”
“피~”
수줍은 표정으로 다시 돌아온 지숙은 야무진 입술을 오물거린다. 누가 이 여자를 술집 접대
부였다고 말할까? 아무리 봐도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예쁜 학생이거나 이제 직장에 막 들
어간 신입사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 역시 그녀의 지난 과오를 파헤치거나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 또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 마음 아닐까? 하지만 지금 내게
그녀가 술집 접대부였다는 사실은 그녀와의 관계에서 아무런 걸림돌이 될 게 없다. 그 생각
이 잊혀질만큼 그녀는 착하고 애교 넘치며 가정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면 곧 금세 볼품없이 변한다. 백합도, 장미도,
코스모스도. 결국 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꽃잎들이 붙어 있을 때 그 아름다움
이 최고조에 이르지만 여체는 다르다. 꽃과 같이 형형색색의 예쁘거나 귀여운 옷들로 가리
고는 있지만 한꺼풀씩 벗겨낼 때 마다 드러나는 희거나 때론 거무잡잡한 속살이 드러나면
그 여체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벗기기 힘든 스키니진을 아예 뒤집어버리고 은밀한
계곡을 가리고 있는 하얀천을 톡 하고 떼어내자 우거진 수풀이 드러난다. 생긴 것과는 다르
게 음모가 풍성한 지숙이다. 게다가 검기도 검다. 윤기가 차락 흐르는 음모를 손바닥으로
문지르자 그녀의 허벅지엔 긴장감이 도래한다. 알몸이 된 여체는 희다. 솜털하나 없이 매끈
한 피부가 매혹적이다. 흰색과 검은색의 조화는 그 어떤 절경의 수묵화보다 훨씬 운치가 있
다.
“오빠~”
터져 나오는 감탄을 막은 건 지숙이었다. 팔목을 잡아끌며 나지막히 나를 부른다. 흥분에
도취된 모습이 아닌 걸 보니 쑥쓰러운 모양이다. 하지장은 그녀의 옆쪽에 놓여 있지만 두
팔은 지숙의 얼굴 옆으로 지탱하고 그녀를 내려다본다. 모아진 허벅지에 자지가 눌려 귀두
가 터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버릇처럼 입술을 오물거리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행복
이라는 단어가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누구는 이런 행복을 20대 초반부터 시작하는가
하면 나는 이제 30대 후반 즈음 시작하려한다. 조금은 억울한 감이 들지만 아무래도 괜찮
다. 늦은 만큼 더욱 열심히 누리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떨어~”
“떨려... 오빠가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너 처음엔 나보고 아저씨라 그랬잖아”
“그땐... 그땐 오빠한테 마음이 없었으니까 그랬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자기 옛날 여자친
구 닮았다고, 가명이지만 이름도 막 바꿔서 부르고...”
지숙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같은 위치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
다. 동글고 빛나는 이마에 침이 약간 묻어난다. 다가갈 때 마다 자연스럽게 감아졌다 떠지
는 그녀의 눈도 보인다. 쌍꺼풀이 있고 속눈썹이 진하다. 마치 속눈썹 연장시술을 받은 것
처럼 진하고 길다.
“그래서, 복수한 거야? 소심한 복수?”
“응! 그래서 일부러 아저씨라고 했다 뭐~ 그리고 아저씨 맞지 뭐”
“그래! 나 아저씨다! 아저씨 왜 따라왔어? 이렇게 위험한데?”
“그 아저씨가 좋아져서... 내가 그 씨발스러운 여자 대신 해주고 싶어서...”
“씨발스러운 여자?”
“왜? 오빠가 씨발스러운 여자라며? 내가 그렇게 부르는 건 안 돼?”
모르기는 해도 1년 전만 됐더라면 지숙은 내게 욕을 얻어먹거나 당장에 쫒겨 났을지도 모
른다. 그만큼 나는 미란을 사랑했다. 나는 욕을 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로 그녀를
함부로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숙이기 때문에 나 대신 그녀를 욕할
수 있는 게 허용된다고 여겨진다. 나를 사랑했고 아프게 했던 그녀 대신 들어오고 싶어하는
그녀이기 때문에.
“괜찮아. 나도 지숙이가 그 씨발스러운 년 대신 내 마음속에 가득히 찼으면 좋겠어~”
“어흐~ 닭살... 오빠 오늘 진짜 왜 이래? 아님 원래 이런거야?”
돋지도 않은 닭살을 누르듯 몸부림치는 지숙이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느끼한 멘트였다.
하지만 마음만은 진지했다. 진짜 지숙이라는 여자를 너무 사랑하게 돼서 미란이를 아예 잊
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숙은 왠지 미란만큼 그렇게 쉽게 떠나갈 것 같지 않았
기 때문이다.
“왜? 싫어?”
“아니, 좋아... 너~~무 좋아!”
“좋아? 우리 귀요미?”
“응! 나 사실은 오빠 맨 처음에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
“아저씨라 그러더니!”
“나 원래 아저씨 같은 사람 좋아해. 조금은 무뚝뚝하고 무신경한 사람. 그리고 오빠처럼 박
력 있는 남자. 헤헷!”
“허이구? 칭찬이야 욕이야?”
“칭찬이지... 그리고 진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어”
“결정적인 이유?”
“오빠의 지고지순함? 한 여자를 오래 만난 것도,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
하는 것도... 왠지 그 미란이라는 언니가 되고 싶었어. 그 언니는 정말 행복할거야... 오빠
때문에”
“지고지순은 무슨... 찌질한거지~”
“아니야~ 찌질한 거. 얼마나 멋져... 꼭 드라마 같잖아”
“니가 아직 어려서 그래. 조금 지나면 또 그 씨발스러운 년 생각하냐며 바가지나 긁지 마”
“긁을거야!”
지숙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재미있고 즐겁지만 꼭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녀와 대
화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진
다. 가끔씩 건네오는 농담 같은 투정도, 귀여운 앙탈도 좋다.
“헤엑! 오빠... 근데...”
헛바람을 크게 씹어 삼키더니 갑자기 지숙이 난감한 표정으로 몸을 움찔거린다.
“왜? 왜 그래?”
“미안... 터졌어!”
“뭐... 뭐가?”
“생리”
부풀었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내 심정도 바람이 빠져나간다. 서둘러 몸을 피해
주자 손으로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붙잡고 서둘러 화장실로 가는 지숙의 토실토실한 엉덩이
를 보면서 씁쓸한 입맛만 다신다. 하지만 괜찮다. 지숙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고, 돈을 지불
하기는 했지만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도 어느 정도 알아냈고 그
녀를 향한 내 마음도 알 수 있다.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것.
<따로 드리는 글>
안녕하세요. 파랑진주입니다.
제 글을 기다려주신분도 계시고, 처음으로 제 글을 접하신 분들도 계실텐데...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변변찮은 글재주이지만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비록 인기작이거나 몹시 흥분되는 글이 아닐지라도 그저 이곳 공간에서
소통할 수 있는 게 즐거울 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이렇게 첨언을 하는 이유는
질문해주신 것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글의 분류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네토라레인지 네토리인지에 대한......
이번 글은 굳이 따지자면 네토리입니다.
참고하시라고 글 올렸습니다.^^
<2>
밤새 한숨도 못잤다.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 원래 고민이나 잡념이 많을 때는 그렇게 뜬눈으
로 밤을 지새는 적이 종종 있다. 인간이 살면서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 중에 절반이상이 일
어나지도 않을 일을 심각하게 걱정한다고 어디에선가 본 듯하다.
나도 그랬다.
처음엔 2,000여만원이라는 거금을 단숨에 내 놓고 미란이라는 술집접대부를 내 여자로 만
들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 한 그런 일이 불과 몇 시간 만에 후딱 지나가고 정신이 들었
을 땐 전과 다름없이 넓은 집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친짓을 한 것이
다. 차라리 미란이 알몸을 해서 내 침대위에 널부러져 있었다면 쓸데없는 망상은 하지 않았
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제와 같이 홀로 팬티 한 장만을 걸친 채 침대 모서리에 걸터 앉
아 담배를 피워내고 있다. 미란이 그 길로 잠적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내게 오긴 오지만
꽃뱀처럼 내가 이뤄놓은 재산을 탕진하는 생각, 술집 접대부의 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바람
이 날거라는 생각, 별의 별 생각에 별의 별 상상을 하다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에잇, 잘못되면 사기 한 번 당했다고 치지 뭐.’
그렇게 치부해버리고 생각을 지우려 해도 그게 사람 마음 먹은 대로 되는가. 그런 망상이
계속되고 있는 게 짜증날 무렵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집 안 꼴이 눈에 들어온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면서도 망상은 계속된다. 우스운 건 그런 망상을 하면서도
그녀가 올 거라는 기대감에 집안을 쓸고 닦고 있는 내 모습이 모순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
이다. 그런 생각을 할 거면 차라리 청소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정답인데 말이다.
청소를 대충 끝내고 소파에 기댔다가 잠시 졸고 말았다.
일요일. 오히려 나는 휴일에 더 할 일이 없다. 토요일까지 근무를 하는 바람에 일요일 단
하루를 쉬는 나이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단 하루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도 잘 만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막 지날 무렵이다. 저녁 무렵 오라했으니 어차피 기다려도 미란은 늦게
나 올 거라는 생각을 해버린다. 스스로 혼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도 피곤한데 이제는
남의 마음, 생각까지 컨트롤하려는 내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낮잠으로 이왕 나른해진 몸이기도 했거니와 잠 한숨 자지 않고 새벽 같은 아침부터 청소며
정리에 몸을 움직인 터라 아예 한숨을 더 자기로 마음먹고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간다. 빛
이 쳐들어오는 안방의 커튼을 닫고 방문도 닫아버린다. 이상하게 문을 열어두면 누가 날 자
꾸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잠을 이뤘다고 해도 설치기
일쑤였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서 이불까지 끌어당긴다. 눈을 감고 잠을 자려하는데 또
미란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는 정신이 혼미해서 진짜 미란인지 술집 미란인지도 분간이
안된다. 그러기를 몇 분, 나는 잠에 빠져든다.
생각외로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본다. 혼자일 때는 시간의 관념을 깡그리 무시
하고 지냈지만 지금은 다르다. 바로 맞이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4시 22분...
낮잠으로 무려 네 시간이나 자 놓고 다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기지개를 펴자 온몸
에서는 뼈부러지는 소리가 우드득 요란하다.
‘언제쯤 오려나~’
왜 미란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랫도리가 뻐근해져서도 아니고 그녀가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를 어제 원룸에 두고 올 때부터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내
돈이 허사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도 돈 귀한 줄 알고 아까운 줄 아는 평
범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몸을 달군 맥주 한 캔을 따 들이킨다. 달랑 팬티 한 장을 걸친 채 거
울 앞에 모습을 드리운다. 술을 그닥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물 대신, 음료 대신 이렇게 집
에서 쉴 때면 맥주로 가늠하는 편이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이제 자고 일어난 동네
백수와의 모습과도 같다. 원래 근육질이었던 몸매였던지라 근육의 자리는 고스란히 남아있
지만 볼품없이 말라버린 몸매 아래로 검은색 삼각팬티 한 장이 보인다. 트렁크나 드로즈 같
은 사각팬티는 자꾸 말려 올라가거나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보기엔 조금 민망할지 모르겠
지만 삼각팬티가 훨씬 편안하다. 예전에 미란이는 야하다며 사각팬티를 권유했지만 팬티만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다 어디가서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민감한 반응이라고 치부하며 무
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소파로 와서는 자리를 잡고 앉아 나머지 맥주를 단숨에 털어 넣는다. 어제 밤에 먹은
떡볶이가 조금 짰던 모양이다. 먹을 땐 몰랐는데 막상 자고 일어나니 얼굴도 부어있고 입안
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하다. 맥주 한 캔을 더 마실까 하다가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뽑아
마신다. 첫 잔을 바로 뽑아 마시고 나니 또 미란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항상 한 두 잔
정도는 뽑아 버리고나서 먹으라던 그녀. 공간은 달라졌지만 예전 집에 놀러와서는 어찌나
깐깐하고 깔끔을 떨던지 그 땐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한 잔을 더 뽑아 마시고
다시 소파로 온 나는 더디게만 가는 벽시계만 바라본다.
가을 햇볕이 좋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고 했던가? 11층 아래로 보이는 나뭇
잎들이 살랑이는 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노랗고 붉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부둥켜안은
모습으로 블루스를 추고 있는 듯하다. 환기나 할 겸, 외부 공기나 마실 겸해서 베란다의 문
을 열고 반대편의 작은방 창을 열어둔다. 가을 냄새가 풍기는 바람이 약간은 추울 정도로
관통하고 그 바람에 의해 잠은 완전히 달아난다. 조금 한기가 느껴질 무렵, 옷을 입으면 될
것을 옷 대신 거실의 하얀 보조커튼을 반쯤 채운다.
잠깐이지만 집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환기라는 걸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쾌한 가을의 바람이 휩쓸고 가는 캐캐 묵은 먼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쌓였었는지 비로
소 알게 된다. 아예 마음먹은 김에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집안의 창이란 창은 다 열고 마지
막으로 현관문까지 활짝 열어제낀다.
“어?”
앞집의 문이 보이고 옆쪽 방화문으로 난 계단실에서 한 여자가 내려온다. 바로 미란이다.
순간적으로 팬티바람인 것도 잊은 채 그녀 손에 들려있는 커다란 비닐봉투를 잡아주며 그녀
를 맞이한다. 비닐봉투엔 무슨 생각으로 사온건지 각종 식료품들이 가득이다.
“아직까지 잤어요?”
“어? 어.....”
얼떨떨하다. 낮잠을 자기 전까지만 해도 미란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던 내 자신이 민망할 만
큼 그녀가 아주 자연스럽게 갈색의 스웨이드 플랫슈즈를 벗고 맨발로 들어온다.
“잠꾸러기...”
“뭐야... 언제... 온 거야?”
“두 시간도 훨씬 넘게 기다렸어요... 피~~”
“그... 그랬어?”
초인종을 누르거나 전화라도 하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그녀의 말에 다시 역류
해 들어간다. 아직까지도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다.
“전화도 안 받고,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도 없고...”
“미... 미안...”
“나랑 살자고 한 거 후회되서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잖아요”
“후회는... 그런 생각 하지 말랬잖아~”
상황 파악을 하고 나니 괜스레 미란에게 미안해진다. 두 시간동안 어제의 나처럼 별의 별
생각과 걱정을 다했을 그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짜증과 투정은 충분히 받아줄
수 있을 만큼 귀엽기까지 하다.
“헤헤... 근데 옷 좀 입으면 안돼요?”
“오... 옷?”
그제서야 팬티 한 장 뿐인 나를 인지하고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 옷을 챙긴다. 이상하다.
기분이 왜 이렇게 좋은건지. 드림걸이라는 술집에서 보던 미란이가 아니다. 귀엽고 예쁘다.
여동생처럼 챙겨주고 싶고 오래만난 연인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럼에도 내 심장은 마구 뛰고 있다. 마치 여자라는 이성에 처음 눈을 뜨고 첫사랑의 손을
잡았을 때처럼 심장이 터져버릴 듯 요동치고 있다.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어본다. 손바닥
에 느껴지는 진동이 굴착기가 두드려대는 블레이커(일명 뿌레카)의 진동만큼이나 강하다.
“휴우, 노총각 아니랄까봐... 오빠! 집에 쌀도 없어?”
“으.. 응? 싸... 쌀?”
난 또 왜 이렇게 말을 더듬는 것인가!
어제처럼 미란 앞에서 멋지고 상스러운 남자의 모습은 어디가고 바보처럼 이렇게 말을 더듬
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뭐야... 집에서 도대체 뭐 먹어? 아무것도 없네?”
이놈의 계집애! 남의 집에 와서 함부로 찬장이며 냉장고를 뒤지냐고 따지고 싶지만 그저 머
리 속에서만 맴도는 말들이다. 실제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재잘재잘 말도 많고 엉뚱하다. 드림걸에서는 항상 내 말에 귀기울여주고 내 말에
호응을 해줬던 그녀였던지라 재잘거림이 낯설다. 하지만 그 재잘거림이 싫지는 않다. 조용
하고 정적이던 내 생활에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빠~ 나 나가서 쌀 좀 사올게요~”
옷 입는데는 몇 초면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럽기
도 하고 약간은 어색하기도 했다. 2년 전 마련한 이 집에 여자라는 동물은 그녀가 처음이었
고 남자도 친구 한 두 명이 잠시 있다 갔을 뿐 동거를 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
일까? 내 집이지만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자.. 잠깐! 같이 나가자~”
무거울텐데... 라는 생각에 대충 반바지에 반팔티셔츠 차림으로 거실로 따라 나선다. 이미
신발을 신고 있는 그녀이다.
“혼자 갔다 와도 되는데...”
“아.. 아냐... 나.. 나도 뭐 살 거 있어서 그래...”
“뭐요? 내가 사다줄께요”
“아... 아냐... 그... 그냥 같이 가...”
특별히 살 것도 없는데 그냥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휴대폰을 잊어 휴대폰
을 들고 나오고, 슬리퍼를 신다가 돈을 챙기지 않다 다시 들어 갔다 오고, 담배와 라이터를
챙기지 않아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데 지루한 듯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삐딱하게 선 그녀
가 나를 귀엽게 바라보고 있다.
“다 챙겼어?”
덤벙대는 남편을 기다리는 마누라 같은 느낌이다. 어느새 점점 말은 짧아져 반말이 되어 있
다.
“응? 으... 으응... 그... 그런 거 같애”
서둘러 슬리퍼를 신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미란이 허리에 있던 팔을 펼치며 나를 가로막는
다.
“머리! 그렇게 하고 나갈 거예요? 새 집 지어서?”
신발장 위 거울을 보니 가관도 그런 가관이 아니다. 어쩐지 걸을 때 마다 머리 위에서 무언
가가 출렁거리더라니, 그게 바로 내 머릿칼이었다.
다시 욕실로 가서 급하게 머리에 물을 묻혀보지만 왠만해서는 강철심 같은 머릿칼이 가라앉
지 않는다. 아예 머리를 감아야 할 정도로 심하게 떠버린 머릿칼이다.
“그냥 모자 써요~”
아! 모자!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미란의 말에 모자가 생각난 나는, 안방이며 작은방 세 개
까지 이리갔다 저리갔다 휘젓고 다닐 때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자 김치냉장고 위에!”
등잔 밑이 어둡긴 어둡다. 그렇게 몇 번이고 지나다닌 김치냉장고 위의 모자를 발견하지 못
한 것이다. 더 우스운 건 미란이 위치를 가르쳐줬다는 것이다. 우리집에 들어온 지 이제 10
여분 밖에 안 된 사람이.
“푸흣! 오빠~ 너무 귀여워~”
모자를 찾아 들고 나오는데 미란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가 보기엔 내 모습이 콩트 한 편
을 보는 듯 했을 것이다. 나이 서른 여덟을 먹고 새파랗게 어린 여자에게 듣는 귀엽다는
말.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평소 차분하다는 말을 듣는 내가 왜 이러는지 이상할 뿐이다.
“갑시다~”
현관문의 말발굽을 치워 버리고 문을 닫자 자동으로 기계음이 들리며 문이 잠긴다. 엘리베
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미란은 살포시 내게 기대오더니 곧 팔짱을 낀다. 그녀의 머리
에선 어제와 같은 샴푸의 향기가 밀려온다.
“오빠!”
“응?”
“근데 오늘 이상하다~ 왜 이렇게 덤벙대? 말도 더듬고?”
“내... 내가? 내.. 내가 언제....”
“피~ 왜 나 보니까 떨려? 너무 예뻐서?”
“떠... 떨기는...”
환한 곳에서, 그리고 옅은 화장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다. 화장을 지우니
진짜 미란이와 닮기는커녕 이미지부터 다르다. 그녀와 닮아서 끌린 건 사실이지만 닮지 않
았다는 걸 알고 난 지금도 실망스럽지는 않다. 이미 내 머리와 마음엔 미란이를 대체한 그
녀이기 때문인가 보다.
“왔다! 타자!”
“그.. 그래...”
그녀의 손을 잡으니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다. 내가 알고 느껴봤었던 익숙한 손길. 가녀리고
얇상한 감촉의 손가락이 나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든다. 심장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올라타려는데 윗층의 아주머니와 아들이 먼저 승강해 있다.
“안녕하세요”
뻘쭘함에 대충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수다스러운 윗층 아주머니는 나와 미란을 번갈아
보더니 곧 말문을 연다.
“어머! 총각! 이게 왠일이야... 생전 여자에 관심 없는 사람처럼 굴더니?”
“핫... 하핫.... 제.. 제가요?”
“애인? 여자친구? 하긴 가까운 사이니까 손도 잡고 다니는 거겠지?”
“하... 하핫... 예... 뭐...”
“어머, 참해라... 이렇게 예쁜 처자 만나려고 그랬나보구만?”
“그... 그게... 흐흐”
“그래! 우리 예쁜 언니는 몇 살이야?”
“저... 저요? 스물 넷이요~”
“스물 넷? 이 총각 이거... 아주 도둑놈이네 도둑놈이야... 중늙은이가 이렇게 어린...”
“하... 하핫! 그러니까... 그게.... 하...”
“꽉 잡어~ 응? 궁둥이 토실토실한 게 애도 잘 놓게 생겼네.”
“어... 엄만 무슨 그런 말을...”
“넌 가만히 있어 이누무시꺄! 어른들 얘기하는데...”
“아... 아드님이 참 듬직하네요...”
“아휴~ 그런 말 마. 이누무새끼가 얼마나 속을 썩이는데. 그나저나 결혼은 언제쯤 할거야?”
“그... 그게... 그러니까 할 때 되면... 하... 하하하”
“아유 야물딱져라. 나도 이런 딸내미 하나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드님 있잖아요”
“그게 그런 게 아니라우... 아들 놈 키워봐야 다 소용... 어머 다 왔네! 먼저 가요”
“후... 후유~~~”
11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말들을 쏟아낸 아주머니는 정확
하게 칼처럼 1층에 닿자마자 간다는 쿨한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진다. 정말 대단한 결단력
과 행동력이다.
“재밌는 아줌마네... 재밌으셔~”
“재밌어? 넌 나중에 저렇게 되면 안 된다~”
“왜? 난 저 분보다 더 할 거 같은데? 헤헤”
“안 돼! 저건 민폐야!”
“재밌잖아~ 어? 근데 오빠 이젠 안 더듬거리네?”
“그... 그래?”
“에이... 또 그런다.... 피~~~”
“아... 아냐....”
소소한 행복.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이 너무 익숙해져 나중엔 그게 행복인지 모르고 살아간
다. 나 역시 그렇게 되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 소소한 행복이라는 게 무언지 조금씩 알아가
고 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대형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커다란 카트를 끌고 마트를 구석구석
찾아다닌다. 시식도 하고 찬거리와 저녁에 마실 작은 샴페인도 한 병을 담는다.
그녀의 나이 스물 넷, 열 네 살의 차이. 결코 쉽게 감당하고 감내할 수 없는 나이 차이.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나이와 마담에게 들었던 나이, 그리고 그녀가 일하던 술집에서 들었
던 나이 중 진짜 나이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본명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이
름과 같은 홍지숙, 생일은 5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그런 것 이외의 것은 그녀가 말하기 전
까지 묻지 않거나 함께 지내며 천천히 물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오빠는 생일이 언제야?”
“나? 난 겨울. 12월 12일”
함께 장을 보고 돌아와 그녀는 나를 아예 주방근처로 오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분주히
손을 놀려 저녁상을 봤는데 눈이 놀란 만큼 입안도 놀라 두 그릇째를 비워내고 있었다. 하
얀 쌀밥에 매생이 국과 돼지갈비가 주메뉴였는데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어때? 맛있어요?”
“죽인다! 진짜 맛있어”
매생이 국이라는 걸 처음 접해봤는데 약간 비린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입맛에 맞
는다. 또 후라이팬에 구운 돼지갈비도 간이나 굽는 정도가 너무 알맞아 질기지 않고 부드럽
다. 항상 사먹거나 인스턴트로 때우던 날들이 365일 중 360일에 가까운 나로서는 집밥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헤헷! 잘 먹으니까 좋다!”
“나랑 식당 낼래? 어디서 배운거야?”
“다 나만의 노하우가 있는거지~”
“노하우? 그게 뭔데?”
“비밀~”
“쳇! 별게 다 비밀이다.”
더 이상 들어갈 위장의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맛있는 저녁상을 뒤로하고 소파로 나온다. 그것
도 어쩔 수 없이 밀려나온다. 미란이 극구 밀어내는 통에 설거지마저 도와줄 수가 없다.
“너 후회할 걸? 앞으로도 쭉~ 안 도와줄거야~”
“피~ 다 내가 할 거예요. 그런 협박 안 통해~”
씽크대에서 자기 손보다 훨씬 커다란 고무장갑을 낀 채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녀이다. 어제
처럼 하얀 티셔츠와 날렵한 몸매가 드러나는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뒷모습이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어 사지 않았던 앞치마도 미란이 장을 볼 때 딸기가 수놓인
귀여운 디자인을 골라 담아 메고 있다. 어제처럼 맨발이고 발가락은 티끌과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대로 엉덩이가 토실토실하다. 어린 나이답게 힙업이 되
어 작아 보이지만 도톰하게 허리까지 바짝 올라붙은 모습이다. 그녀와 함께 몇번이고 2차를
나가봤지만 엉덩이를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정상위로 시작해서 그 자세로 절정을 맞
이한 게 기억의 전부이다.
165cm정도 될 법한 알맞은 키다. 여자치고는 작지 않은 키라는 걸 알고 있다. 진짜 미란이
보다 5cm밖에 크지는 않지만 하지장이 길어서인지 훨씬 더 길어 보이는 느낌이다. 미란이
와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의 미란은 가정적이라고 해야할까?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미란의 행동과 말들은 전혀 인위적이지 않다. 정말 자신이 좋아서 하고 있는 일
처럼 즐겁고 기분 좋게 하고 있다. 마담의 말처럼 그녀는 정말 괜찮은 여자처럼 느껴진다.
미란이 모르게 천천히 그녀의 뒤로 다가간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소리 때문인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그녀이다. 날씬한 등과 허리라인이 보이고 머리는 어제와 다르게
포니테일로 한데 묶어 찰랑이고 있다.
“어맛! 깜짝이야... 오빠! 이럼 못 써요~”
미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살포시 그녀를 내 품안으로 가둔다. 안아보면 더욱 여리게 느껴
지는 그녀의 몸이다. 부끄러운지 몸을 베베 꼬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미라...ㄴ 아니... 지숙아...”
이젠 미란이 아닌 지숙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녀를 데려와 미란이를 잊지 못하는 건 아
닐까 하는 노파심은 어쩌면 기우였나보다. 비록 출신은 술집 접대부였지만 그것 하나만 빼
면 미란에 비해 꿀릴 게 없는 그녀이다.
“오빠~ 나 괜찮아... 헤헷 나 개명할까 하는데... 홍미란으로... 어때?”
이해심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자신의 출신 성분 때문에 참고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
는다. 지숙은 착하고 지고지순한 여자이다.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여자.
술집 접대부. 물론 정도는 아니다. 바른 길에서 벗어난 나쁜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 직
업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추호도 없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필요하다는 말 같지
도 않은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건 묻고 싶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랑보다는 돈 많은 남자를 택해 시집가는 여자와 자신의 어머니의 수
술비를 위해 술집을 간 여자. 나의 시선에서는 후자가 훨씬 순수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방
법이 잘못되었을 뿐 동기는 누구보다도 착한 심성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왜 아무 말도 없어~ 안 돼?”
“아니, 하지 마.. 개명... 이젠 미란이보다 지숙이 네가 더 좋으니까”
“으~~~ 닭살... 그리고!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야”
“가끔은 미란이라고 불러! 그럼 아주 못되게 행동할테니까... 헤헤헤”
“이젠 걔 생각 안날 거 같애. 니가 있는 한”
지숙이 설거지를 하다 말고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마주본 자
세가 되자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오빠!”
“응?”
말괄량이 여고생처럼 아주 수수한 눈빛으로 나를 부른다.
“오빠... 몰랐는데... 되게 느끼한 거 알아?”
“내... 내가?”
“완전 짱이야. 오빠 최곤데?”
“뭐가?”
“자세 좀 숙여 봐~”
“왜~”
“잠깐이면 돼...”
“왜~~~~”
무릎을 굽혀 자세를 숙이자 지숙이 귓속말을 하려는 듯 얼굴이 귀로 다가온다. 분명 느끼하
다거나, 닭살이라는 놀림을 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경로를 바꿔 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밀착시킨다.
“쪽! 아구... 이뻐라! 우리 오빠 왜 이렇게 이쁘지?”
그녀가 눈을 귀엽게 접으며 웃는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
도로 그녀가 마음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느즈막히 너무 불타는 사랑에 쉽게 지칠까 겁도
난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질 않는다. 첫경험의 여자 입술보다 훨씬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왔다간 듯 여운이 짙게 남는다. 처음 느끼는 지숙의 입술은 아니지만
지금의 입술은 마치 다른 여자의 것처럼 느껴진다.
“오빠! 오빠! 정신차려”
“.........한 번 더!”
마치 ‘얼음’이라는 주문을 왼 것처럼 ‘땡’이라는 주문이 필요했다. 망설임 없이 그녀가 전해
준 ‘땡’의 주문은 처음의 주문보다 훨씬 깊고 짙게 행해지고 있었다.
부드럽게 아랫입술을 잡아당기며 빨아들이는 지숙의 입술에선 향긋함이 묻어난다. 마치 양
치를 막 하고 나온 것처럼 청량감도 느껴진다. 그녀의 혀가 나의 입술을 파고 들었고 부드
럽게 내 안에서 놀다 수줍게 빠져나간다.
“됐지?”
“아니! 이제 시작이지!”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향한다. 발버둥을 치는 그녀이지만 격렬한 반응은 아니다.
예사처럼 귀염 떠는 내숭의 발동작이다. 여전히 손엔 빨간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고 그녀는
겨우 손을 뻗어 씽크대의 수도를 잠근다.
“오... 오빠! 잠깐만... 응? 잠깐만...”
이미 나는 이성을 잃었다. 외로움에 지친 반응이랄까? 간만에 찾아온 봄날 같은 분위기에
취해 버린다. 일방적이거나 노골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단숨에 침대로 달려가 지숙을 던지듯 내려놓는다. 놀란 얼굴이지만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나의 이성을 더욱 마비시켜 놓는다. 한창 예쁠 여자나이 스물 넷. 알맞게 영근 여체 앞에서
한 마리의 짐승으로 완전히 돌변한다.
"오... 오빠! 자... 잠깐만..."
싫은 표정은 아니지만 지숙은 물 묻은 고무장갑을 어쩌지 못한 채 조금씩 침대의 헤드로 몸
을 움추린다. 도망은 아니고 수줍음을 표현하고 있는듯하다. 혹여 침대에 물기라도 묻을까
두 손으로 정성스레 고무장갑을 받치고 있다.
"왜 더듬어? 무서워?"
나는 이성을 잃은 것이 들킬까 더듬거리는 그녀의 말투를 지적하며 농을 건넨다. 그러자 지
숙이 녹여낼 듯 유화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래! 무서워~ 으... 짐승같애"
"뭐? 짐승?"
"그래! 짐승!"
"그래? 어디 짐승이 어떤건지 제대로 보여줄까?"
옷을 벗는다.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 채 벌떡이는 중심부의 살덩이를 그녀에
게 내보인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지숙은 순식간에 알몸이 되는 나를 보고도 슬
쩍 고개를 돌릴 뿐이다.
"꺄아! 벌써 그렇게 커져 있으면 어떡해~~~"
지숙은 장난스레 눈까지 가리며 고음을 지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죽을 것만 같다.
단숨에 침대위로 튀어 올라 지숙을 눕히자 자연스럽게 고무장갑을 침대 아래로 떨구며 가슴
앞으로 손을 모아 몸을 감싸는 그녀이다.
“짐승!”
“그래! 나 짐승이다!”
그녀의 팔을 거둬들이며 티셔츠 아래로 손을 넣는다. 보들보들한 맨살이 닿자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배에 힘을 준다. 그러더니 몸이 경직되고 웃고 있던 얼굴에도 약간의 무덤덤
함이 찾아오고 있다.
“씻지도 않고! 하루종일...”
“괜찮아~”
이미 그녀의 티셔츠는 몸을 분리해 나가버렸고 가슴을 가리고 있는 브래지어의 후크도 분리
된 상황이다. 크지 않은 아담한 젖가슴이 좌우로 퍼지며 적나라게 드러난다. 크지 않은 가
슴이지만 지숙의 이미지와 몸매에 적당히 어울리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보지마요... 창피해...”
이미 몇 번이고 봤던 가슴이지만 여자의 가슴이란 남자로 하여금 보호본능과 함께 한입에
빨아먹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하는 가장 좋은 여자의 무기인 것 같다. 적갈색의 작은 유두가
떨고 있다. 꽃판도 넓지 않고 예쁘다.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백옥의 피부와 대조되는
짙은 색감에 금세라도 자지가 부러질 듯 아파온다.
“예뻐... 정말 예뻐...”
“정말?”
“응. 너무 귀엽고 예뻐”
“피~”
수줍은 표정으로 다시 돌아온 지숙은 야무진 입술을 오물거린다. 누가 이 여자를 술집 접대
부였다고 말할까? 아무리 봐도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예쁜 학생이거나 이제 직장에 막 들
어간 신입사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 역시 그녀의 지난 과오를 파헤치거나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 또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 마음 아닐까? 하지만 지금 내게
그녀가 술집 접대부였다는 사실은 그녀와의 관계에서 아무런 걸림돌이 될 게 없다. 그 생각
이 잊혀질만큼 그녀는 착하고 애교 넘치며 가정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면 곧 금세 볼품없이 변한다. 백합도, 장미도,
코스모스도. 결국 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꽃잎들이 붙어 있을 때 그 아름다움
이 최고조에 이르지만 여체는 다르다. 꽃과 같이 형형색색의 예쁘거나 귀여운 옷들로 가리
고는 있지만 한꺼풀씩 벗겨낼 때 마다 드러나는 희거나 때론 거무잡잡한 속살이 드러나면
그 여체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벗기기 힘든 스키니진을 아예 뒤집어버리고 은밀한
계곡을 가리고 있는 하얀천을 톡 하고 떼어내자 우거진 수풀이 드러난다. 생긴 것과는 다르
게 음모가 풍성한 지숙이다. 게다가 검기도 검다. 윤기가 차락 흐르는 음모를 손바닥으로
문지르자 그녀의 허벅지엔 긴장감이 도래한다. 알몸이 된 여체는 희다. 솜털하나 없이 매끈
한 피부가 매혹적이다. 흰색과 검은색의 조화는 그 어떤 절경의 수묵화보다 훨씬 운치가 있
다.
“오빠~”
터져 나오는 감탄을 막은 건 지숙이었다. 팔목을 잡아끌며 나지막히 나를 부른다. 흥분에
도취된 모습이 아닌 걸 보니 쑥쓰러운 모양이다. 하지장은 그녀의 옆쪽에 놓여 있지만 두
팔은 지숙의 얼굴 옆으로 지탱하고 그녀를 내려다본다. 모아진 허벅지에 자지가 눌려 귀두
가 터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버릇처럼 입술을 오물거리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행복
이라는 단어가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누구는 이런 행복을 20대 초반부터 시작하는가
하면 나는 이제 30대 후반 즈음 시작하려한다. 조금은 억울한 감이 들지만 아무래도 괜찮
다. 늦은 만큼 더욱 열심히 누리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떨어~”
“떨려... 오빠가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너 처음엔 나보고 아저씨라 그랬잖아”
“그땐... 그땐 오빠한테 마음이 없었으니까 그랬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자기 옛날 여자친
구 닮았다고, 가명이지만 이름도 막 바꿔서 부르고...”
지숙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같은 위치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
다. 동글고 빛나는 이마에 침이 약간 묻어난다. 다가갈 때 마다 자연스럽게 감아졌다 떠지
는 그녀의 눈도 보인다. 쌍꺼풀이 있고 속눈썹이 진하다. 마치 속눈썹 연장시술을 받은 것
처럼 진하고 길다.
“그래서, 복수한 거야? 소심한 복수?”
“응! 그래서 일부러 아저씨라고 했다 뭐~ 그리고 아저씨 맞지 뭐”
“그래! 나 아저씨다! 아저씨 왜 따라왔어? 이렇게 위험한데?”
“그 아저씨가 좋아져서... 내가 그 씨발스러운 여자 대신 해주고 싶어서...”
“씨발스러운 여자?”
“왜? 오빠가 씨발스러운 여자라며? 내가 그렇게 부르는 건 안 돼?”
모르기는 해도 1년 전만 됐더라면 지숙은 내게 욕을 얻어먹거나 당장에 쫒겨 났을지도 모
른다. 그만큼 나는 미란을 사랑했다. 나는 욕을 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로 그녀를
함부로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숙이기 때문에 나 대신 그녀를 욕할
수 있는 게 허용된다고 여겨진다. 나를 사랑했고 아프게 했던 그녀 대신 들어오고 싶어하는
그녀이기 때문에.
“괜찮아. 나도 지숙이가 그 씨발스러운 년 대신 내 마음속에 가득히 찼으면 좋겠어~”
“어흐~ 닭살... 오빠 오늘 진짜 왜 이래? 아님 원래 이런거야?”
돋지도 않은 닭살을 누르듯 몸부림치는 지숙이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느끼한 멘트였다.
하지만 마음만은 진지했다. 진짜 지숙이라는 여자를 너무 사랑하게 돼서 미란이를 아예 잊
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숙은 왠지 미란만큼 그렇게 쉽게 떠나갈 것 같지 않았
기 때문이다.
“왜? 싫어?”
“아니, 좋아... 너~~무 좋아!”
“좋아? 우리 귀요미?”
“응! 나 사실은 오빠 맨 처음에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
“아저씨라 그러더니!”
“나 원래 아저씨 같은 사람 좋아해. 조금은 무뚝뚝하고 무신경한 사람. 그리고 오빠처럼 박
력 있는 남자. 헤헷!”
“허이구? 칭찬이야 욕이야?”
“칭찬이지... 그리고 진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어”
“결정적인 이유?”
“오빠의 지고지순함? 한 여자를 오래 만난 것도,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
하는 것도... 왠지 그 미란이라는 언니가 되고 싶었어. 그 언니는 정말 행복할거야... 오빠
때문에”
“지고지순은 무슨... 찌질한거지~”
“아니야~ 찌질한 거. 얼마나 멋져... 꼭 드라마 같잖아”
“니가 아직 어려서 그래. 조금 지나면 또 그 씨발스러운 년 생각하냐며 바가지나 긁지 마”
“긁을거야!”
지숙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재미있고 즐겁지만 꼭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녀와 대
화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진
다. 가끔씩 건네오는 농담 같은 투정도, 귀여운 앙탈도 좋다.
“헤엑! 오빠... 근데...”
헛바람을 크게 씹어 삼키더니 갑자기 지숙이 난감한 표정으로 몸을 움찔거린다.
“왜? 왜 그래?”
“미안... 터졌어!”
“뭐... 뭐가?”
“생리”
부풀었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내 심정도 바람이 빠져나간다. 서둘러 몸을 피해
주자 손으로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붙잡고 서둘러 화장실로 가는 지숙의 토실토실한 엉덩이
를 보면서 씁쓸한 입맛만 다신다. 하지만 괜찮다. 지숙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고, 돈을 지불
하기는 했지만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도 어느 정도 알아냈고 그
녀를 향한 내 마음도 알 수 있다.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것.
<따로 드리는 글>
안녕하세요. 파랑진주입니다.
제 글을 기다려주신분도 계시고, 처음으로 제 글을 접하신 분들도 계실텐데...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변변찮은 글재주이지만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비록 인기작이거나 몹시 흥분되는 글이 아닐지라도 그저 이곳 공간에서
소통할 수 있는 게 즐거울 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이렇게 첨언을 하는 이유는
질문해주신 것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글의 분류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네토라레인지 네토리인지에 대한......
이번 글은 굳이 따지자면 네토리입니다.
참고하시라고 글 올렸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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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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