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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51 2,706회 0건

[2012년 9월 8일 01:20]


쏴아아아아-

「하아..」

샤워기의 물줄기 사이로 희미한 한숨 소리가 새어나온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더 이상 처음과 같은 아픔은 느끼지 않게 되었을 뿐, 은채는 좀 전의 관계에서도 아무런 쾌감도 얻지 못한 상태였다.

"아직 경험이 적어서 그런 것 뿐 일까?"
"아니면 혹시라도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여성잡지나 인터넷 기사에서 봤던 - 성생활 장애는 대부분 심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심리적인 요인이라..
문득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하지만 아무리 떨쳐내고 싶어도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
.
.

은채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주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귀여운 용모는 물론 학업 성적까지 우수한 그녀였지만 특유의 상냥하고 겸손한 성격 탓에 그녀를 시기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선생님들도 그런 그녀를 예뻐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어쩌다보니 3년 내내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친구들과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은 항상 그녀의 자리로 모여들어 이야기꽃을 피웠고, 남자 아이들은 서로 그녀와 짝이 되기 위해 종종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불운은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뒤바꿔 놓았다.
고등학교 배정에서 1지망으로 썼던 고등학교를 배정받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똥통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 해 집계된 그 지역의 고교배정상황은 1지망 배정률이 85%를 넘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 2지망~3지망에 거의 배정이 되었기에, 이 불운은 언뜻 사소해보이지만 어쩐지 그냥 운이 조금 나빴다고 넘겨버리기에는 묘한 불안을 야기하는 이질적인 사건이었다.

친구들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발표 후 일제히 은채의 곁에 모여 그녀를 위로했고, 은채는 친구들에게 최대한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괜찮아. 나도 너네랑 같은 학교 다녔으면 더 좋았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

「나쁜 친구들하고 안 어울리고 나만 열심히 하면 돼. 오히려 내신관리하기 편하고 좋은 거 아냐? 막이래ㅋ.」


하지만 주변 환경이라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향을 끼치기에 무서운 것이었다.
은채는 아직 어렸기에 이런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아니 무서움을 과소평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채가 그런 현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학식에서부터 그녀의 빼어난 외모는 남학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새로 입학한 미소녀에 대한 소문은 학교 전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반 배정이 끝나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교실 문이 열리더니 한 눈에 보기에도 불량스러워 보이는 남학생 무리가 들어왔다. 떠들썩하던 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 진짜 대박 예쁜데? 어디 학교에서 왔어?」 무리 중 한명이 다짜고짜 은채의 책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화양중이요..」 당황한 은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캬~ 목소리도 예쁘네? 어디 이름이..」 라고 말하며 명찰을 확인하던 남자의 손이 아직 채 영글지 않은 은채의 봉긋한 가슴을 슬쩍 건드리고 말았다.

「꺅!」

낯선 남자의 손끝이 자신의 몸에 닿자 깜짝 놀란 은채는 급히 몸을 움츠렸다.

「오~ 이 풋풋한 반응 뭐야? 존나 신선한데? ㅋㅋㅋㅋ」

은채는 난생 처음 겪는 상황과 수치심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반 아이들은 다들 모른 척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 무리의 남자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그 뒤로도 한참을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너넨 뭐야, 이 새끼들아! 빨리 너네 반으로 안 돌아가?」
몇 분 뒤 겨우 등장한 담임선생님으로 인해 사태는 겨우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서은채.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누가 괴롭히면 오빠들한테 얘기하고. ㅋㅋㅋ」


이 후 은채의 고교 생활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으로 꼬이고 말았다.
처음 며칠간은 소문을 듣고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남학생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겨우 남학생들의 관심이 사그러들자 이번에는 좀 논다하는 여자 선배들이 예쁘장한 외모의 은채를 자기네 그룹에 넣기 위해 반을 찾아왔다. 이유야 제각각이었지만 그렇게 상급생들이 교실을 찾아올 때마다 반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은채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조금씩 고립되어갔다. 뿐만 아니라 수차례 이런 일을 목도한 담임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조차도 은채를 성적이 좀 좋다 뿐이지 품행이 단정치 못한 학생으로 오해해버리고 말았다.

누구라도.. 아주 조금만 더 은채에게 관심을 갖고 편견 없이 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녀의 비극은 어쩌면 이때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기 초 몇차례 고백을 거절하고나자 은채에게 향했던 남학생들의 호의는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등하교시나 체육시간이나 언제나 홀로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은채는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의 대상으로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무서운 것은 처음에는 대부분 놀림이나 장난 수준에 그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도가 지나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브래지어 끈을 당기고 도망가던 아이들은 이제 그런 장난을 쳐도 전처럼 반응하지 않게 된 은채를 보며 장난의 수위를 높여갔다.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버리고 도망가는 경우는 물론, 가슴을 멋대로 만지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조차도 만족하지 못하게 된 일부 아이들은 결국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저기 있다! 잡아!」

체육시간이라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은채를 향해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우르르 뛰어오며 소리쳤다.

「!?」

은채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그녀에게 달려든 4명의 남학생들 앞에서는 무의미한 저항일 뿐이었다.

「뭐에요.. 왜 이러세요!!!」

「야. 꽉 잡아!」

버둥거리는 은채를 에워싼 남학생들은 순식간에 그녀의 팔을 하나씩 잡아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꺄악--!!!」

은채의 비명이 복도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몇 초 뒤-

「ㅋㅋㅋㅋㅋㅋㅋㅋ야 튀어!!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아 씨x 대박!!ㅋㅋㅋㅋㅋㅋ」

곧 비명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교실에서 나온 아이들이 은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녀는 복도바닥에 주저앉아 양 팔로 어깨를 감싸고 울고 있었다.

「뭐야? 야. 쟤들 뭐한 거냐?」

「나도 몰라. 무슨 일이냐?」

「ㅋㅋㅋ야 그게 말이지.. (소근소근)」

「뭐?ㅋㅋㅋ 진짜? 씨x 존나 대박ㅋㅋㅋㅋㅋㅋ」

「뭔데 새끼야? 씨x 나한테도 말해줘 봐.」

「(빡규랑 애들이 쟤 브라자 벗겨서 튄 거래..ㅋㅋㅋㅋㅋㅋ)」

「헉 진짜?! 씨x 그럼 쟤 지금 노브라야!?」

「쉿! 듣겠다, 새끼야.」

그 말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조용해진 아이들은 은채의 신체 일부분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무언가를 기대하듯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다행히 때맞춰 울린 수업종소리에도 아이들은 못내 아쉬운 듯 머뭇거렸지만 이내 복도에 출현한 선생님의 호통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대개 이런 류의 소문이 그러하듯 은채가 처한 상황은 휴대전화를 통해 학생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일부 학생들은 수업중임에도 불구하고 교실 창밖으로 하나 둘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고, 특히 자습 중이던 3학년 교실의 경우는 큰 소란이 일었다. 덕분에 소문은 결국 교사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지만, 거의 범죄수준의 이 일이 학교 밖으로 새어나가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짐짓 모른 척 하는 분위기로 굳어졌다.

결국 그렇게 은채는 그 날 하교할 때까지 무방비로 교내 모든 남자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다. 담임과 체육 선생님의 끈적끈적한 시선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렇듯 집단성에 숨어 무뎌진 죄의식은 어느새 고교생들의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심각한 범죄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있었지만, 같은 여학생들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녀를 뒤에서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뿐이었다.

은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남학생들의 추행도 추행이지만 친구 하나 없는 지독한 외로움이 너무나도 버티기 힘들었다. 잠자리에 누워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울면서 차라리 다 때려 치고 불량서클에라도 들어가 버리자고 마음먹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녀를 자신들의 그룹에 넣기 위해 찾아오던 일진 여자선배들도 학교 남학생들의 놀림거리가 된 그녀에게 관심을 끊은 지 오래였다.

괴로운 일상에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졌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의 가슴은 성장을 멈추지 않고 부풀어 올랐다. 어쩌면 너무 어린 나이부터 겪은 반복적인 추행과 이로 인해 자신의 신체나 성(性)적인 것에 과도하게 의식하는 스트레스 상태가 이어진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끝을 모르고 부풀어 오르던 그녀의 가슴은 2학년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비로소 성장을 멈추었지만, 성장을 멈추었을 때 그녀의 가슴은 이미 C컵에 달하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소문은 학년이 올라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고, 마른 몸에 의해 더욱 도드라지는 그녀의 큼지막한 젖가슴은 끊임없이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결국 3학년이 되고 졸업을 할 때까지도 은채는 온갖 남학생들의 손장난을 당하는 처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부 교사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 교내에 떠돈 적도 있지만 이내 쉬쉬하는 분위기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홀로 발정난 짐승 한가운데에 던져져 유린당해야 했던 은채의 가엾은 고교 시절은 결국 그녀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 고향을 떠남으로 인해 비로소 끝을 맺을 수 있었다.

.
.
.

‘똑- 똑-’

어느새 물줄기가 끊긴 샤워기 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욕실을 채우고 있었다,
은채는 지난날의 괴로웠던 기억까지 털어버리려는 듯 마른 수건으로 샤워 중 조금 젖어버린 머리카락들을 세차게 털어내기 시작했다. 속옷을 챙겨 입고 잘 때 입는 파자마를 챙겨 입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욕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어느새 옷을 모두 챙겨 입고 돌아갈 준비를 마친 남자친구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아 주었다.

「다 씻었어?」

「응..」

어쩐지 어색하고 부끄러워진 공기에 그녀가 쭈뼛거리며 서있자 남자친구가 그녀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그 포근한 온기에 은채의 얼굴에는 살며시 미소가 번진다.

"따뜻하다-."

은채는 이 순간 느끼는 이 따스함과 행복이 부디 영원히 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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