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2일 토요일 18:40]
은채와 함께 있던 수호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재형이었다.
보통 연락을 하더라도 카톡으로 하지 전화를 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기에 무슨 급한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
「나? 여친이랑 데이트 중.ㅋㅋ」
「아..그래? 휴우~ 알았다 그럼.」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냐?」
「현택이가 자기 여친이랑 깨졌다고 술 한 잔 사달라고 해서 나가는 중인데 너도 올 수 있나싶어서 걸어봤다.」
「헐; 어쩌지. 난 못 가는데. 나 오늘 여친이랑 400일이라 간단히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아~ 그래? 이런 몰랐네. 축하한다. 넌 헤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사귀어라.」
「당연히 그래야지.ㅋ 근데 현택이는 또 왜 헤어졌대?」
「모르지. 가서 들어 봐야지.」
「주영이는 불렀고?」
「응, 근데 주영이는 전화를 안 받네. 나 혼자 만나서 위로해주게 생겼다.」
「아.. 그러냐? 어떡하지..」
「아니야. 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은채씨랑 데이트 잘 해라. 끊는다.」
「어? 어.. 그래.」
통화를 끝내자 옆에서 통화 내용을 대충 듣고 있던 은채가 물었다.
「왜? 오빠 친구가 여자 친구랑 헤어졌대?」
「응. 그런가 봐.」
「그래서? 오빠더러 오래?」
「그러려고 전화한 건데 내가 오늘이 우리 400일이라고 얘기했어.」
「그래도.. 헤어졌다는데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은채의 이런 성격까지 고려된 것은 아니지만 그 밖의 거의 모든 상황은 애초에 재형이 의도한 바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날이 둘의 400일인 것도 진작부터 몰랐던 바가 아니었다.
하지면 재형이 생각하기에 ①연락을 받을 당시 둘이 만나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예측하기에도, ②술자리까지 둘을 함께 부르기 자연스러운 상황을 이끌어 내기에도 그런 기념일만한 날이 없었다.
주영이에게 전화를 했었다는 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혹시라도 수호가 주영이에게 직접 연락을 해보거나, 아니면 나중에라도 전화가 온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거짓말이 들통 날 위험은 단순히 전화를 안 받아서 연락이 안 되었던 것으로 해둠으로서 대비책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그 이후의 진행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다시 수호에게 전화를 건 그는 자신이 급한 볼일이 생겨서 곧 가봐야 할 것 같다며, 현택이를 혼자 놔둘 수는 없으니 은채씨와 같이 와서 있어주면 안되겠냐고 이야기했다.
이미 그 전의 통화로 인해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던 수호와 은채는 그런 재형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였고, 제 발로 그들이 파놓은 함정 근처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
.
.
수호와 은채가 도착했을 때 둘은 이미 한 허름한 민속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야. 우리 왔다.」
「어~ 왔냐?」
「새끼. 넌 또 왜 헤어졌냐?」
「그러게 말이다. 근데 또는 뭐냐 또는.」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사실 현택의 시선은 이미 두 사람이 주점에 들어올 때부터 은채에게 쏠려있었다.
2주 사이에 부쩍 선선해진 날씨에 롱자켓을 걸친 그녀의 옷차림은 지난 번 원피스와 같이 가슴이 부각되는 옷은 아니었으나, 하늘하늘한 크림색 쉬폰 미니 스커트 아래로 곧게 뻗어있는 그녀의 다리는 검은색 반투명 스타킹과 어우러져 묘한 색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전히 수줍은 듯 수호의 뒤에 살짝 숨은 채인 은채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애인과 헤어져서 술을 마신다기에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하는 현택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런 위화감은 곧 격한 환영과 더불어 술잔에 채워지는 술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괜히 저 때문에 데이트도 못 하고..미안해요.」
「아니에요~ 저흰 정말 괜찮아요.」 현택이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하자 은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래도 두 사람 400일인데..」
「기념일이야 매번 돌아오는 건데요 뭐. 안 그래도 얼마 전 1주년 때도 오빠가 이벤트라고 무리를 많이 해서 이번에는 간단히 저녁만 먹기로 했었어요.」
「이야~ 수호자식이 1주년이라고 이벤트도 해줬어요? 새끼야 우리한테도 은채씨한테 하는 거 반만큼만 해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제가 좀 미안한데... 음..」
그렇게 말끝을 흐리던 현택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 그럼 우리 이런데 말고 자리를 옮기죠. 제가 근처에 분위기 괜찮은 바를 하나 알거든요.」
「네? 아니에요. 안 그러셔도 되요.」
「아니긴요. 두 사람 기념일인데 저 위로한다고 여기까지 와주시고.. 오늘 제가 축하하는 의미에서 쏘겠습니다.」
거듭 웃으며 사양하는 은채였지만, 수호의 입장에서도 이는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었기에 자리 이동은 대체로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도착한 곳은 현택이 얘기한대로 상당히 세련된 분위기의 바였다.
10시도 안된 이른 시간 이지만 바 안은 꽤 많은 손님이 있었고, 유독 젊은 남녀 커플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많이 어두웠지만 현택은 평소에도 자주 들르던 곳인 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비어있는 구석 자리를 향했다. 주영은 자리를 이동하면서 애초에 말했던 용무를 이유로 먼저 돌아갔다.
「왔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메뉴판을 들고 나타나 현택과 인사를 나누었다. 확실히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관계인 듯 보였다.
「사장님, 여기는 제 친구랑 그 여자 친구 분이신데요, 오늘 400일이라고해서 제가 모시고 온 거니까 특별히 잘해주셔야 되요?」
사장이라는 남자가 고개를 돌려 은채가 앉아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치자 얼른 인사를 건넨 은채였지만 사장은 2초 정도 그녀를 주시하고 돌아가 버렸다. 왠지 머쓱해진 은채에게 현택이 메뉴판을 들이밀며 술과 안주를 고를 것을 권했다.
「아니에요. 저는 술을 잘 못해서.. 두 분이서 고르세요.」
「에이~ 누가 많이 드시래요? 조금만 드세요. 그리고 좀 취하면 어때요? 옆에 수호도 있는데.」
난처한 표정으로 은채가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메뉴판을 건네받은 수호였지만, 그 역시 뭘 시켜야 될지 선뜻 고르지 못 하는 건 그녀와 마찬가지였다.
「으이구~ 이리 내봐.」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메뉴판을 가로채간 현택은 뭘 보지도 않고 벨을 눌러 능숙하게 <호세 쿠에르보>라는 데킬라 한 병과 토닉 워터를 주문했다.
평소 술과 친하지 않은 은채였지만 데킬라 슬래머의 제조법은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거기다 맛 또한 소주처럼 쓰기 않았기에 은채에게도 제법 먹을 만하게 느껴졌다. 이에 잠깐 경계심이 풀린 은채는 그만 현택의 잇따른 건배 제의에 연거푸 석 잔의 데킬라를 입 안에 털어 넣고 있었다.
평소 주량이 소주 반 병에 불과한 그녀는 이제부터는 조금씩 나누어 마시겠다고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현택은 데킬라 슬래머는 거품이 올라왔을 때 한 번에 마시는 게 원칙이라며 또 한 차례 건배 제의를 해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데킬라는 절반 이하로 줄어있는 상태였다.
은채는 이미 약간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고, 수호에게 다가가 이제 자신은 그만 마시는 게 좋겠다고 살며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은채가 그러든 말든 이미 수호는 처음 맛보는 양주에 흠뻑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더욱 걱정이 된 은채는 확실히 더 이상은 그만 마셔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까의 사장이라는 남자가 쟁반에 무언가를 들고 왔다. 다름 아닌 두 잔의 칵테일이었다.
사장은 두 분이 오늘 기념일이라 주는 서비스라며 라이터를 꺼내 칵테일에 불을 붙이더니 빨대로 한 번에 쭉 마셔야된다고 일러주었다.
더 이상의 술은 사양하고 싶은 은채였지만 자신들의 기념일을 축하해주려고 "특별히" 가져다 준 성의를 거절할 수 없었기에 수호와 함께 시키는 대로 단번에 칵테일을 빨아들였다.
「이야~ 잘 드시네.」 현택은 그런 광경을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박수까지 치며 신나 있었다.
「어때요?」 라며 사장이 소감을 묻기에 정말 맛있었다며 생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아.. 이제 진짜 그만 먹어야지."
은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잠시, 사장이 또다시 칵테일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저..이건..?」 은채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방금 전에 워낙 맛있게 드셔서 특별히 한잔 더 드리는 겁니다.」 사장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며 아까와 마찬가지로 불을 붙였다.
「아.. 저는 이제.. 좀..」 머뭇거리며 거절의 뜻을 밝히려는 은채에게 사장은 말을 끊고 술잔을 들이밀었다.
「이 칵테일은 불 붙였을 때 얼른 드셔야 됩니다. 자 어서요-」
밤 11시 30분. 자리를 옮긴지 불과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은채는 이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사장은 그 이후로도 두 차례나 더 칵테일을 가지고 와서 그녀에게 강권했다.
세 번째 잔은 아직 메뉴에 올리지 않은 칵테일인데 시음을 좀 부탁하고 싶다는 이유였고, 네 번째 잔은 그냥 손님이 너무 예뻐서 드리는 거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미 상당부분 판단력을 상실한 그녀는 그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들이미는 술잔조차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제는 따로 시키지 않아도 가져다주는 칵테일의 종류나 양에 상관없이 원 샷으로 들이켜고 있었다.
그나마 옆에 있는 남자친구란 녀석은 연거푸 가져다주는 사장의 "서비스"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런 그녀를 제지하기는커녕 연신 좋다고 박수까지 치고 자빠져있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사장은 한동안 테이블 옆에서 그런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지만, 이미 사장의 존재조차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둘은 취해버린 상태였다.
결국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그녀가 테이블 위로 쓰러져버리자 수호는 그제야 비로소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써보았다.
그런 그에게 사장은 술 깨는 약이라며 알약 4정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그런 사장에서 고마움을 표시하며 이미 심하게 꼬이는 발음으로 정말 서비스가 좋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정신을 차릴 심산으로 단숨에 2정을 털어 넣고, 남은 2정은 그녀로 하여금 삼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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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3일 일요일 08:50]
깨질듯 한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깬 은채는 낯선 천장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어떻게 된 일이지..?"
전날의 일을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던 그녀는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 그녀의 옆에는 속옷 차림의 수호가 잠들어 있었다.
"아..내가 너무 취해버려서 오빠가 날 데리고 온 모양이다."
"그런데 왜 옷이 전부 벗겨져 있는 거지..? 왜 집이 아닌 모텔로 데리고 온 거고? ..혹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은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비부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읏..!"
살짝 손만 닿았을 뿐임에도 전해오는 쓰라린 통증에 그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야.. 설마 내가 술 취해 있을 때 한 거야?"
그의 요구라면 언제든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은채였지만, 어쩐지 그가 그녀가 의식이 없는 틈을 타 일방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니 살짝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간 그녀는 그가 깨지는 않았는지 살피면서 거울에 자신의 비부를 슬쩍 비추어 보았다.
"세상에.."
그녀가 깜짝 놀랄 만큼 그녀의 비부는 빨갛게 부어오른 상태였고, 음모는 서로 엉겨 붙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뭔가에 불안해진 듯, 그녀는 비치된 목욕가운만 두른 채 욕실에서 나와 쓰레기통을 뒤졌다.
"휴우..피임은 제대로 해주었구나.."
쓰레기통을 가득 채운 용도미상의 휴지뭉치 가운데 버려진 콘돔 세 개를 확인한 그녀는 걱정했던 일만큼은 벌어지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여전히 그녀가 취해 있을 때 했다는 건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지킬 건 지켜줬다는 생각에 미워할 수 없는 그였다.
"근데 세 번이나 한 거야..?"
평소에는 한 번 하고나면 바로 콘돔을 처리하고 씻으러 가는 그였기에 조금 의아하기도 하였으나 평소보다 훨씬 더 부어있던 자신의 비부를 떠올리며 납득해버린 그녀였다.
괜스레 잠든 그의 이마에 꿀밤 한 대를 쥐어박은 그녀는 지난 밤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급한 대로 폼클렌져로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마치고나니 이제는 온 몸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술기운이 남아 어지러운 상태였지만 따뜻한 물줄기가 몸에 닿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누가 쓰던 것인지 모를 샤워 폼이 찝찝하게 느껴져 맨 손으로 샤워를 해서 그런지 몸은 유난히 더 미끄덩거리는 느낌이었다.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입으려 집어 들었다. 퀴퀴한 술집의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응?"
속옷을 집어 들던 은채의 손에 축축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자신의 팬티가 상당 부분 젖어있었다. 어쩐지 부끄러워진 그녀는 누가 볼까 황급히 팬티를 감추었다.
"아.. 뭐야 진짜..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빨아야 되나.."
하지만 지금 세탁을 한다고 하더라도 드라이기로 말리다가 자칫 그 소리에 수호가 깨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그냥 입지 말고 스타킹만 신을까.."
그녀는 팬티를 입지 않은 채로 스타킹을 신어보았으나 이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얼굴이 새빨개져 허겁지겁 스타킹을 벗어던졌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팬티를 발목에 건 후 최대한 다리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끌어올렸다. 그렇게 끌어올려진 팬티는 이내 그녀의 비부에 닿는 높이까지 도달했고, 그녀는 그 축축하고 불쾌한 느낌에 잠시 몸서리쳤다.
수호가 겨우 눈을 뜬 것은 11시가 지나서였다.
그녀는 그가 잠에서 깨면 어젯밤 자신의 허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한 것에 대해 채근할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역시 지난밤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깨질듯 한 두통을 호소하며 씻겠다고 욕실로 향하는 그에게 은채는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지만, 어쩐지 자기가 먼저 대놓고 묻기에는 뭔가 쑥스러운 것들 투성이었기에 선뜻 그러지도 못했다.
끝내 은채는 수호가 숙취가 너무 심해 도저히 버스나 지하철은 못 타겠다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 때까지 지난밤의 일에 대해 한 마디도 물어보지 못하였다.
그녀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었다.
은채와 함께 있던 수호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재형이었다.
보통 연락을 하더라도 카톡으로 하지 전화를 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기에 무슨 급한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
「나? 여친이랑 데이트 중.ㅋㅋ」
「아..그래? 휴우~ 알았다 그럼.」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냐?」
「현택이가 자기 여친이랑 깨졌다고 술 한 잔 사달라고 해서 나가는 중인데 너도 올 수 있나싶어서 걸어봤다.」
「헐; 어쩌지. 난 못 가는데. 나 오늘 여친이랑 400일이라 간단히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아~ 그래? 이런 몰랐네. 축하한다. 넌 헤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사귀어라.」
「당연히 그래야지.ㅋ 근데 현택이는 또 왜 헤어졌대?」
「모르지. 가서 들어 봐야지.」
「주영이는 불렀고?」
「응, 근데 주영이는 전화를 안 받네. 나 혼자 만나서 위로해주게 생겼다.」
「아.. 그러냐? 어떡하지..」
「아니야. 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은채씨랑 데이트 잘 해라. 끊는다.」
「어? 어.. 그래.」
통화를 끝내자 옆에서 통화 내용을 대충 듣고 있던 은채가 물었다.
「왜? 오빠 친구가 여자 친구랑 헤어졌대?」
「응. 그런가 봐.」
「그래서? 오빠더러 오래?」
「그러려고 전화한 건데 내가 오늘이 우리 400일이라고 얘기했어.」
「그래도.. 헤어졌다는데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은채의 이런 성격까지 고려된 것은 아니지만 그 밖의 거의 모든 상황은 애초에 재형이 의도한 바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날이 둘의 400일인 것도 진작부터 몰랐던 바가 아니었다.
하지면 재형이 생각하기에 ①연락을 받을 당시 둘이 만나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예측하기에도, ②술자리까지 둘을 함께 부르기 자연스러운 상황을 이끌어 내기에도 그런 기념일만한 날이 없었다.
주영이에게 전화를 했었다는 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혹시라도 수호가 주영이에게 직접 연락을 해보거나, 아니면 나중에라도 전화가 온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거짓말이 들통 날 위험은 단순히 전화를 안 받아서 연락이 안 되었던 것으로 해둠으로서 대비책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그 이후의 진행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다시 수호에게 전화를 건 그는 자신이 급한 볼일이 생겨서 곧 가봐야 할 것 같다며, 현택이를 혼자 놔둘 수는 없으니 은채씨와 같이 와서 있어주면 안되겠냐고 이야기했다.
이미 그 전의 통화로 인해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던 수호와 은채는 그런 재형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였고, 제 발로 그들이 파놓은 함정 근처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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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와 은채가 도착했을 때 둘은 이미 한 허름한 민속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야. 우리 왔다.」
「어~ 왔냐?」
「새끼. 넌 또 왜 헤어졌냐?」
「그러게 말이다. 근데 또는 뭐냐 또는.」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사실 현택의 시선은 이미 두 사람이 주점에 들어올 때부터 은채에게 쏠려있었다.
2주 사이에 부쩍 선선해진 날씨에 롱자켓을 걸친 그녀의 옷차림은 지난 번 원피스와 같이 가슴이 부각되는 옷은 아니었으나, 하늘하늘한 크림색 쉬폰 미니 스커트 아래로 곧게 뻗어있는 그녀의 다리는 검은색 반투명 스타킹과 어우러져 묘한 색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전히 수줍은 듯 수호의 뒤에 살짝 숨은 채인 은채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애인과 헤어져서 술을 마신다기에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하는 현택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런 위화감은 곧 격한 환영과 더불어 술잔에 채워지는 술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괜히 저 때문에 데이트도 못 하고..미안해요.」
「아니에요~ 저흰 정말 괜찮아요.」 현택이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하자 은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래도 두 사람 400일인데..」
「기념일이야 매번 돌아오는 건데요 뭐. 안 그래도 얼마 전 1주년 때도 오빠가 이벤트라고 무리를 많이 해서 이번에는 간단히 저녁만 먹기로 했었어요.」
「이야~ 수호자식이 1주년이라고 이벤트도 해줬어요? 새끼야 우리한테도 은채씨한테 하는 거 반만큼만 해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제가 좀 미안한데... 음..」
그렇게 말끝을 흐리던 현택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 그럼 우리 이런데 말고 자리를 옮기죠. 제가 근처에 분위기 괜찮은 바를 하나 알거든요.」
「네? 아니에요. 안 그러셔도 되요.」
「아니긴요. 두 사람 기념일인데 저 위로한다고 여기까지 와주시고.. 오늘 제가 축하하는 의미에서 쏘겠습니다.」
거듭 웃으며 사양하는 은채였지만, 수호의 입장에서도 이는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었기에 자리 이동은 대체로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도착한 곳은 현택이 얘기한대로 상당히 세련된 분위기의 바였다.
10시도 안된 이른 시간 이지만 바 안은 꽤 많은 손님이 있었고, 유독 젊은 남녀 커플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많이 어두웠지만 현택은 평소에도 자주 들르던 곳인 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비어있는 구석 자리를 향했다. 주영은 자리를 이동하면서 애초에 말했던 용무를 이유로 먼저 돌아갔다.
「왔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메뉴판을 들고 나타나 현택과 인사를 나누었다. 확실히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관계인 듯 보였다.
「사장님, 여기는 제 친구랑 그 여자 친구 분이신데요, 오늘 400일이라고해서 제가 모시고 온 거니까 특별히 잘해주셔야 되요?」
사장이라는 남자가 고개를 돌려 은채가 앉아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치자 얼른 인사를 건넨 은채였지만 사장은 2초 정도 그녀를 주시하고 돌아가 버렸다. 왠지 머쓱해진 은채에게 현택이 메뉴판을 들이밀며 술과 안주를 고를 것을 권했다.
「아니에요. 저는 술을 잘 못해서.. 두 분이서 고르세요.」
「에이~ 누가 많이 드시래요? 조금만 드세요. 그리고 좀 취하면 어때요? 옆에 수호도 있는데.」
난처한 표정으로 은채가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메뉴판을 건네받은 수호였지만, 그 역시 뭘 시켜야 될지 선뜻 고르지 못 하는 건 그녀와 마찬가지였다.
「으이구~ 이리 내봐.」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메뉴판을 가로채간 현택은 뭘 보지도 않고 벨을 눌러 능숙하게 <호세 쿠에르보>라는 데킬라 한 병과 토닉 워터를 주문했다.
평소 술과 친하지 않은 은채였지만 데킬라 슬래머의 제조법은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거기다 맛 또한 소주처럼 쓰기 않았기에 은채에게도 제법 먹을 만하게 느껴졌다. 이에 잠깐 경계심이 풀린 은채는 그만 현택의 잇따른 건배 제의에 연거푸 석 잔의 데킬라를 입 안에 털어 넣고 있었다.
평소 주량이 소주 반 병에 불과한 그녀는 이제부터는 조금씩 나누어 마시겠다고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현택은 데킬라 슬래머는 거품이 올라왔을 때 한 번에 마시는 게 원칙이라며 또 한 차례 건배 제의를 해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데킬라는 절반 이하로 줄어있는 상태였다.
은채는 이미 약간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고, 수호에게 다가가 이제 자신은 그만 마시는 게 좋겠다고 살며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은채가 그러든 말든 이미 수호는 처음 맛보는 양주에 흠뻑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더욱 걱정이 된 은채는 확실히 더 이상은 그만 마셔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까의 사장이라는 남자가 쟁반에 무언가를 들고 왔다. 다름 아닌 두 잔의 칵테일이었다.
사장은 두 분이 오늘 기념일이라 주는 서비스라며 라이터를 꺼내 칵테일에 불을 붙이더니 빨대로 한 번에 쭉 마셔야된다고 일러주었다.
더 이상의 술은 사양하고 싶은 은채였지만 자신들의 기념일을 축하해주려고 "특별히" 가져다 준 성의를 거절할 수 없었기에 수호와 함께 시키는 대로 단번에 칵테일을 빨아들였다.
「이야~ 잘 드시네.」 현택은 그런 광경을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박수까지 치며 신나 있었다.
「어때요?」 라며 사장이 소감을 묻기에 정말 맛있었다며 생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아.. 이제 진짜 그만 먹어야지."
은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잠시, 사장이 또다시 칵테일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저..이건..?」 은채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방금 전에 워낙 맛있게 드셔서 특별히 한잔 더 드리는 겁니다.」 사장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며 아까와 마찬가지로 불을 붙였다.
「아.. 저는 이제.. 좀..」 머뭇거리며 거절의 뜻을 밝히려는 은채에게 사장은 말을 끊고 술잔을 들이밀었다.
「이 칵테일은 불 붙였을 때 얼른 드셔야 됩니다. 자 어서요-」
밤 11시 30분. 자리를 옮긴지 불과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은채는 이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사장은 그 이후로도 두 차례나 더 칵테일을 가지고 와서 그녀에게 강권했다.
세 번째 잔은 아직 메뉴에 올리지 않은 칵테일인데 시음을 좀 부탁하고 싶다는 이유였고, 네 번째 잔은 그냥 손님이 너무 예뻐서 드리는 거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미 상당부분 판단력을 상실한 그녀는 그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들이미는 술잔조차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제는 따로 시키지 않아도 가져다주는 칵테일의 종류나 양에 상관없이 원 샷으로 들이켜고 있었다.
그나마 옆에 있는 남자친구란 녀석은 연거푸 가져다주는 사장의 "서비스"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런 그녀를 제지하기는커녕 연신 좋다고 박수까지 치고 자빠져있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사장은 한동안 테이블 옆에서 그런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지만, 이미 사장의 존재조차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둘은 취해버린 상태였다.
결국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그녀가 테이블 위로 쓰러져버리자 수호는 그제야 비로소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써보았다.
그런 그에게 사장은 술 깨는 약이라며 알약 4정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그런 사장에서 고마움을 표시하며 이미 심하게 꼬이는 발음으로 정말 서비스가 좋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정신을 차릴 심산으로 단숨에 2정을 털어 넣고, 남은 2정은 그녀로 하여금 삼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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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3일 일요일 08:50]
깨질듯 한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깬 은채는 낯선 천장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어떻게 된 일이지..?"
전날의 일을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던 그녀는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 그녀의 옆에는 속옷 차림의 수호가 잠들어 있었다.
"아..내가 너무 취해버려서 오빠가 날 데리고 온 모양이다."
"그런데 왜 옷이 전부 벗겨져 있는 거지..? 왜 집이 아닌 모텔로 데리고 온 거고? ..혹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은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비부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읏..!"
살짝 손만 닿았을 뿐임에도 전해오는 쓰라린 통증에 그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야.. 설마 내가 술 취해 있을 때 한 거야?"
그의 요구라면 언제든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은채였지만, 어쩐지 그가 그녀가 의식이 없는 틈을 타 일방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니 살짝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간 그녀는 그가 깨지는 않았는지 살피면서 거울에 자신의 비부를 슬쩍 비추어 보았다.
"세상에.."
그녀가 깜짝 놀랄 만큼 그녀의 비부는 빨갛게 부어오른 상태였고, 음모는 서로 엉겨 붙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뭔가에 불안해진 듯, 그녀는 비치된 목욕가운만 두른 채 욕실에서 나와 쓰레기통을 뒤졌다.
"휴우..피임은 제대로 해주었구나.."
쓰레기통을 가득 채운 용도미상의 휴지뭉치 가운데 버려진 콘돔 세 개를 확인한 그녀는 걱정했던 일만큼은 벌어지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여전히 그녀가 취해 있을 때 했다는 건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지킬 건 지켜줬다는 생각에 미워할 수 없는 그였다.
"근데 세 번이나 한 거야..?"
평소에는 한 번 하고나면 바로 콘돔을 처리하고 씻으러 가는 그였기에 조금 의아하기도 하였으나 평소보다 훨씬 더 부어있던 자신의 비부를 떠올리며 납득해버린 그녀였다.
괜스레 잠든 그의 이마에 꿀밤 한 대를 쥐어박은 그녀는 지난 밤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급한 대로 폼클렌져로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마치고나니 이제는 온 몸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술기운이 남아 어지러운 상태였지만 따뜻한 물줄기가 몸에 닿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누가 쓰던 것인지 모를 샤워 폼이 찝찝하게 느껴져 맨 손으로 샤워를 해서 그런지 몸은 유난히 더 미끄덩거리는 느낌이었다.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입으려 집어 들었다. 퀴퀴한 술집의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응?"
속옷을 집어 들던 은채의 손에 축축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자신의 팬티가 상당 부분 젖어있었다. 어쩐지 부끄러워진 그녀는 누가 볼까 황급히 팬티를 감추었다.
"아.. 뭐야 진짜..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빨아야 되나.."
하지만 지금 세탁을 한다고 하더라도 드라이기로 말리다가 자칫 그 소리에 수호가 깨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그냥 입지 말고 스타킹만 신을까.."
그녀는 팬티를 입지 않은 채로 스타킹을 신어보았으나 이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얼굴이 새빨개져 허겁지겁 스타킹을 벗어던졌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팬티를 발목에 건 후 최대한 다리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끌어올렸다. 그렇게 끌어올려진 팬티는 이내 그녀의 비부에 닿는 높이까지 도달했고, 그녀는 그 축축하고 불쾌한 느낌에 잠시 몸서리쳤다.
수호가 겨우 눈을 뜬 것은 11시가 지나서였다.
그녀는 그가 잠에서 깨면 어젯밤 자신의 허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한 것에 대해 채근할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역시 지난밤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깨질듯 한 두통을 호소하며 씻겠다고 욕실로 향하는 그에게 은채는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지만, 어쩐지 자기가 먼저 대놓고 묻기에는 뭔가 쑥스러운 것들 투성이었기에 선뜻 그러지도 못했다.
끝내 은채는 수호가 숙취가 너무 심해 도저히 버스나 지하철은 못 타겠다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 때까지 지난밤의 일에 대해 한 마디도 물어보지 못하였다.
그녀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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