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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49 2,140회 0건
[2013년 4월 6일 토요일 07:30 - 현택의 시점]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시간을 확인한다. 아침 7시 30분.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옆에서는 마찬가지로 알람소리에 눈을 뜬 그녀가 이불로 앞을 가린 채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속옷을 챙기고 있었다. 잡티 하나 없는 그녀의 매끈한 등과 잘록한 허리, 유려한 엉덩이라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그녀의 팔을 낚아채 다시금 침대로 쓰러뜨렸다.

「꺅! 왜 이래요?」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왜긴. 한 번 더 하자고.」 그녀의 맨몸을 어루만지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저 오늘 일찍 나가봐야 되요. 9시부터 아르바이트 있어요.」 그녀는 가볍게 눈을 흘기더니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빨리 한 번 빼주고 가. 빨리하면 시간은 충분하잖아.」 나는 이불 속에서 속옷을 입고 있는 그녀를 제지하며 다시 한 번 잡아 당겼다.

「어제 두 번이나 했잖아요..」 하지만 사실상 그녀는 이미 반쯤 체념한 목소리였다.

「얼마 만에 하는 건데.. 겨우 두 번으로 될 것 같아?」 나는 다짜고짜 그녀의 음부에 손을 가져갔다.

「자..잠깐..!」 그녀가 급히 다리를 오므리는 바람에 내 손은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손바닥을 통해 지난밤의 분비물이 눌러 붙은 음모가 느껴졌다. 개의치 않고 그녀의 성감대인 오른쪽 젖꼭지를 베어 물었다.

「..읏..!」 혀로 살살 굴려주자 금세 유두가 발기하여 단단해지더니 이내 힘껏 오므렸던 다리가 느슨해진다. 그녀의 약점은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딱딱하게 뭉쳐있는 음모를 손가락으로 비벼 풀어주며 슬쩍슬쩍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자 조금씩 애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야!」 겨우 손가락 한마디 정도를 질 안에 넣었을 뿐인데 갑자기 그녀가 다리를 오므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또?」

「..아파요..」

「뭐? 어디가?」 나는 괜한 심술로 모른 척 되물었다.

「..거기가요.」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나는 끝까지 모른 척 잡아 떼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그런 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지만 굳이 내 취향과 맞지는 않았다.

「꺅!」

어릴 때 동네 여자아이의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 듯 그녀의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그녀의 그곳은 확실히 육안으로 보기에도 많이 부어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새벽 선잠이 들었다가 깼을 때 자고 있는 그녀를 상대로 억지로 삽입을 했던 것이 무리가 된 것 같았다.

「어쩔래? 입으로 뺄래? 가슴으로 할까?」

「... ...」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녀로서는 둘 다 그다지 내키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럼 입으로 해.」 나는 그녀의 다리를 내려놓고 돌아누워 그녀의 얼굴에 자지를 들이밀었다.

「가..가슴으로 할게요.」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다급히 외쳤다.

비위가 약한 그녀는 평소에도 펠라티오를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특히 지금처럼 사정하고 난 뒤 그대로 잠들어 지난밤의 분비물이 말라붙은 상태일 때는 더 그랬고, 69자세로 펠라티오를 요구할 때는 더욱 더 그러했다. 아마도 지난 번 처음으로 그 자세를 시도했을 당시의 괴로웠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거의 모든 성관계에서 수동적이었지만 펠라티오의 경우 정도가 유독 심했다. 언제나 가랑이 사이에 쪼그려 앉아 혀끝으로 귀두를 할짝거리는 정도에 그쳤고, 간혹 윽박을 질러 입에 물려봤자 그때는 또 전혀 혀를 쓰지 않은 채 입술만 위아래로 움직일 뿐이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전혀 나아짐이 없었기에 야동에서 본 것처럼 서서 그녀의 머리를 잡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엇박자에 서로 기운만 빠질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69자세로 펠라티오를 시도하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그녀의 수동적인 태도와 상관없이 내 움직임만으로 충분한 쾌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 내가 허리를 너무 거세게 흔드는 통에 목구멍 깊숙이 들어오는 자지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녀는 침까지 질질 흘리며 꺽꺽 숨 넘어 가는 소리를 냈지만, 나는 너무 좋았던 나머지 멈추지 않고 그녀의 목구멍 깊숙이 정액을 토해낼 때까지 행위를 강행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그녀는 내가 또 그렇게 자지를 들이밀기라도 할라치면 몸서리를 치며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비로소 알게 된 입보지의 참맛에 흠뻑 빠져 가끔씩 이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어찌 보면 지금의 선택은 충분히 내 예상 가능한 범주였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 고환을 치대는 느낌을 포기하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지난밤의 일도 그렇고 내심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던 나는 오늘만큼은 순순히 그녀의 선택을 인정해주었다. 그녀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양 팔로 가슴을 끌어 모았다. 나는 바닥에 일어서서 그렇게 형성된 가슴골 깊숙이 페니스를 묻었다. 따뜻하고 축축한 성기와는 또 다른 오묘한 탄력과 부드러움이 페니스를 감쌌다.

「꼭지도 잘 오므려.」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순순히 교차했던 팔을 풀었고, 가만히 본인의 젖가슴을 쥔 채 양쪽 유두를 최대한 가깝게 끌어 모았다.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자 그녀의 유두가 살짝 살짝 스치며 묘한 자극을 선사했다. 하지만 사정에 이르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감이 있었다.

「이래서는 알바 시간에 못 맞출 텐데?」

그 말에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조금씩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 아래로 번갈아 움직이는 손에 의해 서로 마찰하기 시작한 D컵의 가슴이 자지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단단하게 발기하여 돌출된 그녀의 유두 역시 적절하게 기둥에 쓸리며 나의 사정을 부추기고 있었다. 허리를 찔러 넣을 때 마다 치골에 닿아 뭉개지는 부드러운 젖가슴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오~ 오~」 머지않아 사정감이 몰려왔다. 그녀도 그 사실을 감지했는지 고개를 돌린 채 손의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나는 그 부드러운 지방덩어리 사이 깊숙한 곳에 뜨거운 정액을 뿜어냈다.

「후우..」 사정을 마친 뒤 한 걸음 물러섰지만 그녀는 여전히 찡그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앉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팔을 강제로 잡아 벌리자 가슴 사이에 고여 있던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세 번째 사정인지라 약간은 묽은 정액이 그녀의 배꼽을 지나 그녀의 음모에까지 흘러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정액의 느낌이 그리 좋지 않은지 서둘러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그만두겠어? 크크-」

재형에게는 그만 두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건 녀석이 은채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녀는 신체 어느 부위를 사용해도 남자에게 극상의 만족을 선사하는, 그야말로 섹스를 위한 몸을 타고난 여자였다. 아마 그녀의 성격만 조금만 더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적극적이었다면 분명 남자 여럿 잡아먹는 색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새끼는 좆도 모르면서..’

갑자기 그 날 재형이 자신에게 윽박지르던 일을 떠올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
.
.

「..그래서 은채씨가 지금 병원에 있어서 수호랑 연락이 안 된다는 거야?」

「아냐.. 마취 깨고 한 3시간 정도 병원에 누워 있다가 바로 퇴원해서 지금 집에 있어.」

「집? 어느 집?」

「어디긴.. 자기 자취하는 데.」

「씨x. 근데 넌 여기 와서 술이나 쳐먹고 자빠져 있었다? 수술한 은채씨를 방에 혼자 두고?」

「... ...」

「야 넌 진짜 남자.. 아니 사람새끼도 아니다. 어떻게 씨x..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가 싸지른 씨앗 아니냐? 너라는 새끼한테는 그 정도 책임감도 없냐?」

「..아니 그건..」

「됐고 씨x놈아. 지금이라도 당장 죽이라도 사들고 가서 간호해라. 아.. 진짜 씨x. 당최 왜 내가 이런 얘기를 수호가 아니라 너한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돌겠다, 진짜.」

속에서 뭔가 욱하고 올라왔지만 그 날만큼은 입을 꾹 다문 채 재형의 강도 높은 비난을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다. 평소 성격 같았으면 그걸 가만히 듣고 있었을 리 만무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나 역시 잘못을 모르는 바 아니었고, 더욱이 생전 처음 보는 재형의 격양된 모습에 살짝 주눅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녀석이 시킨 대로 김밥○국에 들러 죽까지 사들고 그녀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꼴사납게 보일까봐 가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재형이 했던 말이 나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실제로 자신의 아이까지 가졌던 여자를 그렇게 두는 건 남자로서 할 짓이 아니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쩐지 스스로의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복사해둔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 누워 혼자서 울고 있었다. 저녁은 먹었냐고 물었지만 대꾸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내가 사가지고간 죽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뭐라 더 이상 말을 걸기도 어려운 분위기에 머쓱해진 나는 서둘러 몸을 씻고 그녀의 옆에 누웠다. 평소와 똑같이 벽을 향해 누워있는 그녀의 등이 어쩐지 그날따라 더욱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밤새 울다 지쳐 잠들고 다시 깨서 울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
.
.

샤워를 마친 은채가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더니 외출할 채비를 서둘렀다. 시계는 벌써 8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지도 못한 채 급한 대로 옷부터 주워 입고는 화장대에 앉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괜히 나 때문에 알바에 늦어서 꾸중을 듣게 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알바 가는데 무슨 화장이냐? 그냥 가. 화장 안 해도 예쁘면서..」

파운데이션을 펴 바르던 은채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씨x. 급격히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 따위를 하다니.. 하지만 그녀는 평소처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지도, 눈을 흘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입술정도만 칠하더니 화장을 끝낸 듯 일어나 가방을 들었다. 내가 조금 의아해하는 사이 그녀는 결국 젖은 머리카락 그대로 인사도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렇게 쌩하니 나가버릴 때면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나와 그녀의 관계를 생각하면 저런 태도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만 씻고 집에 가기위해 터벅터벅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안은 그녀가 샤워를 마친 뒤라 후끈한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온수를 틀고 손끝으로 적당한 수온을 찾고 있던 그 때였다. 누군가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나가더니 뭔가 두고 간 모양이구만.’

어쩐지 조금 반가운 기분도 들었기에 수건만 두른 채 맨발로 뛰쳐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친 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수호의 모습이었다.

「어..아니.. 네가 여긴 어떻게..」

사람이 너무 놀라면 으레 그런 상투적인 대사가 먼저 튀어나오는가 보다. 수호 역시 갑자기 열린 문에 당황한 듯 아무 말도 못한 채 입만 뻥긋 거리고 있었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내게 달려듦으로써 그 정적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퍼억-’

턱뼈부근에서 발생한 둔탁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렸을 때 나는 볼썽사납게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녀석의 주먹이 매서웠기 때문은 아니고, 내가 반사적으로 그것을 피하려다가 하필 현관에 놓여있던 은채의 힐을 밟은 탓이었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녀석은 그렇게 자빠진 나의 위에서 연신 뭐라 소리를 지르며 연달아 주먹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귀가 울려 녀석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녀석의 눈가에 맺힌 눈물만으로도 그가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다 끝났구나.’

쉼 없이 쏟아지는 주먹세례에도 나는 아픔보다는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녀석은 한참동안이나 그 매가리 없는 주먹을 퍼부었고, 나는 그가 제풀에 지쳐 그만둘 때까지 그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줘야만 했다. 실컷 때리다 지쳤는지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지만 말고 어떻게 된 건지 말을 해봐!」

「..다 알고 왔으면서 뭘 물어.」 나는 녀석의 시선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몰라! 씨x 모른다고!! 대체 왜 네가 여기.. 네가 왜 내 여자친구 방에 있는 건데?!」

「..미안하다..」 입 안에 고인 피 때문에 대답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 미안? 미안하다고? 하하..」

그는 그렇게 헛웃음을 지으며 내게서 떨어졌고 곧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어 앉았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일단 바지와 티셔츠를 주워 입었다. 그리고 욕실로 가 입안을 헹군 뒤 그의 앞에 앉았다. 긴 침묵을 깨고 수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야?」

「..언제부터라니..? 그러니까 왜.. 우리 셋이 데킬라 마셨던 그 날..」

뭐지? 이 녀석 다 알고 온 거 아니었나? 설마 계집애들처럼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 뭐 이런 건가? 마지못해 대답을 하긴 했지만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설마 너 여친이랑 헤어졌다고 해서 우리가 데이트 도중에 합류했던 그날 말하는 거야?」

수호는 골똘히 기억을 더듬더니 그렇게 되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무언가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하.. 그렇게 오래됐을 줄은 몰랐는데..」

「... ...」

「계속 얘기해봐.」

하지만 뭘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네 여자친구를 소개받았던 날부터 따먹고 싶어서 재형이랑 짜고 모든 걸 계획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아니 무엇보다 재형의 얘기를 꺼내도 되는지 의문이었다.
처음 그가 방에 들이닥쳤을 때까지만 해도 이미 재형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라고 생각해 모든 걸 체념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계속해서 나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그의 태도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재형에 대한 부분은 일단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날 너 술 많이 취해서 집에도 못 가고 모텔로 갔던 거는 기억해?」

「..솔직히 과정 같은 건 기억 안나. 근데 그날 네가 우리 모텔에 데려다주고 갔다면서. 아니야?」

확실하다. 수호는 그날 재형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어쩌면 재형이 이 일을 털어놓으면서 자기가 연루된 부분만 의도적으로 누락을 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완벽하게 이 일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심증은 굳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맞아. 근데 그럼 내가 술집에서 은채씨 업고 나갔던 것도 기억 안 나겠네?」

「! 은채가 그날 네 등에 업혀서 나갔었다고?!」

「역시 기억 못 하는구나.. 은채씨도 그날 많이 취했었어. 둘 다 인사불성으로 취해버려서 나 혼자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너야 뭐 남자니까 잠깐 혼자 둬도 괜찮겠지 싶어서 술집에 잠깐 두고 은채씨를 먼저 업고 모텔로 데리고 갔던 거야. 너는 그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데려간 거고..」

입에서는 술술 잘도 거짓말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심장은 긴장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녀석이 진즉에 나의 거짓말을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날 시험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부지런히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면서도 머리로는 그 뒷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열심히 생각을 짜내고 있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구나. 내가 자리에 없을 때..」

「... ...」 어떡하지? 그냥 술김에 실수로 그녀를 범했다고 내 입으로 얘기를 하고 싹싹 빌어야 하나? 그런 말을 하기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아 망설이고 있는 그때였다.

「그래서 그날부터 쭉 둘이 연락하고 있었던 거야?」

..연락?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뭐 굳이 얘기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날 술에 취한 은채를 따먹고 나서 그 일을 빌미로 서로 연락하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이 단순히 그런 의미로 그런 질문을 던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 여자친구인데.. 나한테 안 미안하디?」

「미안.. 할 말이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사과를 던졌다. 어쩐지 대화의 흐름상 그래야할 타이밍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녀석은 그런 나에게 믿었던 친구가 그럴 줄 몰랐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한참을 늘어놓았다. 이 녀석 지금 내가 자기 여자친구를 강간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있는 건가? 근데 고작 이런 식으로 훈계나 하고 있다고? 날 때려 죽여도 모자랄 판에?
하지만 한참을 그렇게 혼자 떠들고 난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그래서 둘이 지금 사귀어?」

나는 그제야 비로소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아마도 자기의 여자친구가 나와 바람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렇게 아둔한 녀석에게 어쩌다가 꼬리를 밟혀서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일단 녀석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니. 사귀는 건 아니야.」

「그럼 무슨 사인데? ..설마 전에 네가 말한 그 세..섹파 사이냐?」 수호는 차마 그 단어를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듯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아니야..」

「씨x!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대체 뭔데, 둘이?!」 갑자기 녀석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 ...」

「너 전에 휴대폰에 사진 있다고 했지? ..휴대폰 줘봐.」

「!!」

아뿔싸! 결국 입이 방정이었다. 그제야 재형의 경고를 무시하고 쓸데없이 주둥이를 놀렸던 본인의 경솔함이 원망스러워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수호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빨리 내놓으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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