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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37 1,598회 0건
장르는 편마다 변합니다.


1.


“정말 아무렇지 않냐?”
“그럼?”
“아무리 그래도 가정이 최고라며..”
“한 때였지... 지금은 그냥 자유로운 솔로생활을 즐길란다.”
“....부럽다.”
“크크~ 부럽긴 개뿔..”

일명 돌싱.
결혼 3년 만에 이혼을 해 35살에 다시 솔로남이 된 내게 친구 놈이 부럽다는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쉰다. 이번에 둘째를 갖게 된 친구 놈은 노예생활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고 웃기게도 이혼을 한 날 부러워했다.

이혼이란 게 남에게 부러움을 살 행동인지...
아니.. 대학 졸업 후 거래처 대기업에서 만나 끈질기게 구애를 펼쳐 겨우 내 와이프가 된 신이란 여자를 한 번도 못 본 친구였기에 부럽다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차 얘길 하겠지만...
신이와 내가 이혼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양가 부모들의 불협화음과 더불어 내 경제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곱게 자란 신이와는 달리 대학등록금 때문에 항상 부모님에게 미안함 마음을 간직한 채 밤새도록 아르바이트를 하며 졸업했던 기억과 졸업 후에도 취업문제로 몇 년 동안 가시밭을 걷던 기억, 어렵게 취직한 중소기업에서의 월 160만원부터 시작해 몇 년 동안 오른 봉급을 전부 털어 넣어 겨우 얻었던 5000만 원짜리 전셋집..

그러고 보면 내 삶의 거의 모든 기억이 돈에 대한 쓰라린 추억뿐이었다는 것이 술잔에 담긴 투명한 알코올을 빤히 쳐다보게 되지만..
그것보다 아이의 부재가 컸다.
아내는 불임이었다. 처음엔 내가 문제인 줄 알고 병원가길 꺼려했던 나였지만, 아이를 그렇게나 원해던 아내의 몸이 불임판정을 받게 되었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내였었다.

아무리 본가와 친정에 내 몸이 문제가 있었다고, 그렇지 않아도 날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장모님에게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란 소리까지 들으며 아내를 감싸봤지만... 오히려 그런 내 모습에 아내인 신이는 더 괴로워하며 결국엔 이혼서류를 내게 소리 없는 눈물과 함께 건넸었던, 너무나 완고한 아내의 모습과 날 볼수록 더 괴롭다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날 더 씁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168cm란 키에 48kg이란 모델 같은 몸매의 여자, 가슴이 작은 게 흠이긴 했지만, 고등교육이 몸에 밴 지적인 외모와 더불어 날씬한 몸매에 직장동료들로부터 오히려 잘나가는 커리어우먼 같다는 호평을 받았던 아내인 신이였기에 자신에게 흠이 있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간간히 했었다.

“언제 이혼 했다고?”
“응?... 이제 11개월.. 13개월 됐나?”
“어떠냐?”
“어떻긴.. 쓸쓸해 죽겄다.”
“음~.. 정작 이혼을 하면 쓸쓸할라나?”
“뭐.. 죽자 살자 싸우고 이혼한 게 아니니까.”
“좋게 헤어졌나보네.. 그런데 이혼이란 게 좋게 헤어질 수도 있나?”
“크크큭.. 그러게.. 그러고보니 여기도 와이프랑 자주 왔던..”

추억에 잠겨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내 눈동자를 크게 뜨게 만든 것은 다름이 아닌 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입구쪽에 앉아 있던 나와 반대로 거의 안쪽에 앉아 젊어 보이는 남자와 마주하고 술을 마시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
낯선 밝은 갈색 머리카락에도 너무도 눈에 익은 뒤태에 한동안 눈을 때지 못하고 있을 때 내 시선을 의식한 남자가 그 뒷모습의 여자에게 날 턱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했고, 그 여자가 뒤를 돌아본다.

조금 더 마른 턱 선과 밝은 갈색으로 변한 헤어스타일의 그녀였지만, 동그란 큰 눈에 유난히 긴 속눈썹, 작지만 동그랗고 오뚝한 콧대와 유난히 폭이 좁고 도톰한 입술의 그녀는 분명 내 아내였던 신이였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놀란 듯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날 잠시 동안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을 피해 얼른 고개를 돌린다.

꼭 그녀를 찾아 자주 왔던 술집을 전전하는 놈처럼 보이진 않을지, 아니면 찌질하게 궁상이나 떨고 있는 놈처럼 보이는 건 아닐지를 엉뚱하게 걱정하며 떨리는 손으로 소주잔을 든다.

“오..빠??”
“으.응???”

목을 넘어가던 알코올이 화끈하게 느껴질 정도로 놀란 난 켁켁거리며 고개를 돌리게 된다.

9월말의 쌀쌀한 날씨대로 빨간색 카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신이의 모습을 그제야 제대로 본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얼룩말 무늬의 페인팅이 된 원피스를 입고 있는 신이의 모습은 길어진 머리카락만큼이나 결혼 전 모습으로, 아니 더 젊고 섹시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난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술 한 잔 하러 왔는데...”
“나도 그냥..”
“아~. 그렇구나. 아! 여긴 내 대학동창.”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하하.. 오랜만에 오니까 여기도 많이 변했네.. 그런데 누구야? 애인?”
“응?.. 응.”
“아... 하하하..”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혼한 와이프한테 웃으면서 애인이냐고 묻는 내 자신에게 스스로 묻게 된다. 횡설수설하는 내 어색한 모습을 속으로 가슴 치며 후회하기도전에 내 아내였던 신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친구놈에게 인사를 하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누구야? 와!~ 스타일 죽인다.. 오빠라고 부른 거 보면 친한 사이였던 거 같은데.. 후배?”
“....”
“누구야?”

머릿속이 멍해진 상태로 친구놈의 물음을 흘려듣는다.

“역시 끼리끼리 논다고... 잘난 놈년들만 만나네. 그런데 진짜 누구야?”
“....와이프, 전 와이..”
“뭐??”

무심결에 뱉은 내 말에 친구놈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신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진짜?”
“...........응.”
“...왜 헤어졌냐?”
“........”
“와~. 아니지. 그것보다 저런 여자랑 어떻게 결혼했냐?”
“...”
“어.. 가나보다.”

친구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아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키도 커진 듯 한 착각이 나와의 결혼 전, 연애 때나 아주 가끔 신던 엄청 높은 하이힐로 인한 것임을 똑바로 걸어오는 신이의 발걸음을 통해 눈치 챘을 쯤 계산대가 아닌 나와 친구가 앉아 있는 테이블의 끝자락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합석해도 될까요?”
“...”

굵고 낮은 남자의 음성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투블럭? 옆 라인을 아주 짧게 커트한 헤어스타일의 남자는 세련된 얼굴만큼이나 휴행의 트렌드라 불릴 정도의 타이트하고 짧은 정장바지와 맨발 위 구두, 그리고 목이긴 와이셔츠로 몸짱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참나.. 야 나가자.”
“으.응?”

정작 화를 낸 사람은 내가 아닌 친구 놈이었다.
멍을 때린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나와는 달리 이 여자가 내 전 아내였다는 걸 확인한 친구 놈이 낯선 남자의 이해할 수 없는 거북한 행동에 나대신 화를 냈고, 대답도 듣기 전에 옆자리에 앉는 남자의 행동에 벌떡 일어났다.

“가자고.”
“그..그래.”

끌려 나가다시피 술집에서 나온 내가 온갖 잡생각에 빠져 있을 때 친구 놈이 먼저 입을 연다.

“저 새끼도 이상한 새끼네! 이혼한 전 남편 앞에 왜 대놓고 들이대는 건데!”
“...”
“버림받은 여자나 주워 먹는 새끼가 뭐가... 네가 찬 거 맞지!?”
“응?..으..응..”
“야야.. 술맛 다 떨어졌다. 집에 가자. 대리 부를 테니까. 너도 내 차타고 가라.”
“...”
“야!”
“응?.. 아니.. 아니야. 난 지하철 타고 가면 돼.. 대리 불러서 가라.”
“..너 괜찮냐?”
“그럼.. 좀 충격적이긴 하지만.. 어차피 헤어진 마당에 어떤 놈을 만나던 나랑 무슨 상관이냐.”
“그래. 그렇게 생각해. 괜히 끙끙거리지 말고!”
“...나 갈게.”
“대리 올 때까지 시원한 맥주나 한 잔 더 하고 가!”
“아니야.. 집에 가서 씻을래.”

날 붙잡으려는 친구 놈의 손을 뒤로하고 지하철 입구가 있는 도로가로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아내의 잔상을 곱씹으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너무도 달라진 아내의 모습..
아니.. 정확히는 결혼하기 전의 모습보다도 더 아름답고 섹시하게 변한 아내의 모습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결혼 후 살짝 나오기 시작한 똥배는 찾아볼 수 없이 잘록한 허리가 도드라지는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는 대범하게도 커다란 가슴골을 반이나 들어나...

커다란 가슴골??
앞서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아내는 빈유다.
빈유까지는 아니어도 아담한 편으로 좋게 말해 몸매의 핏을 살려 커리어우먼처럼 보인다고 했었지만, 아무리 영혼까지 끌어 담아 모아본다고 해도 방금 전 봤던 커다랗고 빵빵한, 가슴골이 자연스럽게 섹시한 모양을 보여줄 정도의 모습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형태가 분명했는데...

1년의 시간동안 아내가 어떻게 변했기에 저런 모습으로 저런 제비 같은 놈과 어울리지 않는 술집에 같이 앉아 있는지가 너무나 궁금해졌기에 내 발걸음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하철입구가 아닌 방금 전에 나왔던 그 술집을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자기 합리화적인 행동이게 돼 버렸다.

‘그래도 한때 내 마누라였던 여잔데...’

내 발걸음이 다급할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는 걸 모른 체 숨을 몰아쉬며 한참이나 걸어왔던 길목을 친구 놈의 시선을 피해 돌아 술집에 도착했다.

“어.. 아직 안.. 갔네.. 나..난 열쇠를 떨어 트리.. 여깄었네..”

창피할 정도로 급조한 변명과 어색한 행동으로 들어오기 방금 전에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손에 쥐고 방금 찾은 척을 하며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와 낯선 남자를 향해 떨리는 입술을 숨기며 말을 열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듯 한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아내였던 신이의 눈치를 살피는데..

신이가 소주잔을 든 채 고개를 아주 작게 숙인다.

“태규씨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전 강한상이라고 합니다.”
“네?.....네.”
“땀을 많이 흘리셨는데..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고 가시죠.”
“...”
“이모. 여기 맥주 한 병 추가요.”

내 허락도 없이 강한상은 맥주를 시키며 빈 의자를 내주며 아내에게 더 바짝 앉는다.

“저에 대해 많이 들었다니.. 신이가 저에 대해 말을 했다고요?”
“네.”
“전.. 남편이었다는 걸 말입니까?”
“네.”

너무도 담담하고 간결하게 대답하는 강한상이란 남자의 모스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온 내 자신도 그에 못지않았기에 나온 맥주로 우선 타버릴 듯 한 목구멍부터 축인다.

소주를 먼저 마셔서인지 맥주가 더 쓰게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고 뒤늦게 주도권을 잡으려는 얼빠진 놈처럼 남자에게 질문을 한다.

“몇 살이십니까?”
“....”
“아니..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강렬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의 시선은 부리부리한 눈매에서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동창 친구 놈의 말대로 모델 같은 얼굴로 정말 연예인이나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훈남의 얼굴이 유독 어려 보인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나이를 물어보다 말고 변명부터 하게 된다.

“스물여섯이요.”
“여..여섯?”

나랑 열 살 차이가 나며 신이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남자의 나이에 말문이 막혔다.

“왜요?”
“...”
“신이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 보여요?”
“그..건....”
“어디를 가도 제가 오빠 같다고 하는데.”
“오빠?”
“하하하.. 신이가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매가 끝내주잖아요.”

“하..하지 마..”

아내의,,, 아내였던 신이의 자그마한 목소리에 그제야 신이의 얼굴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남자의 말대로 유독 애기피부였던 신이의 얼굴은 더 광택이 나는 듯 보였고, 나와 있을 때와는 다르게 투명한 윤기까지 흐르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맨들거렸다.

그제야 난 아내의 얼굴에서 더 아래로 시선을 옮겨 가슴을 확인하 듯 내려다본다.
가슴골이 자연스럽게 1자를 그리며 모아진 모습과 밑부분의 풍만한 굴곡의 형태는 뽕브라나 에어브라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족히 C컴은 넘어보였기에 좀처럼 시선을 걷질 못하게 된 나였다.

그런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신이가 카디건의 앞섬을 여미며 날 피한다.
얼른 시선을 돌려 남자를 향한다.

“왜요?”
“아..아닙니다.”
“아~~ 수술한 거 모르셨구나~.”
“수술?”

나도 모르게 다시 손으로 가린 신이의 가슴을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된다.

“제 취향이 껌딱지는 아니라서.. 신이가 딱 제 이상형인데 젖탱이가 문제더라고요.”
“저..젖탱이?”
“하하하하하. 그래서 만나자마자 수술부터 시켰죠.”
“언..제요?”
“음... 이제 8개월 가까이 됐을걸요. 이 두덩어리가 차 한 대 값이지만 결코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
“뭘 숨기냐. 어차피 다 봤던 사인데 카디건 좀 놔봐.”

남자의 말에 신이가 조심스럽게 여몄던 카디건에서 손을 푼다.
큰 누나뻘인 남자와의 나이 차이에도 명령에 꼼짝 못하는 노예처럼 신이는 한 번의 반항이나 노려봄 없이 다소곳이 않자 손을 내려 무릎위에 올려놓고는 고개만 살짝 숙인다.

모은 팔 안에 모아져 더 커 보이는 신이의 가슴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형태를 갖추고 있었기에 태초부터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던 모습으로 내 기억조차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죽이죠.”
“둘이 무슨 사입니까? 애..인 이에요? 아니면 벌써 결혼...”
“섹파요.”
“...네?”
“신이가 섹스를 진짜 좋아하잖아요. 한 번 물면 씨가 마를 때까지 다 뽑아낼 때까지 놔주질 않는.. 모르셨어요?”
“.....미..친.”
“하하하하하하. 원래 이정도 얘긴 친구들끼리 자랑하듯 말하지 않나요? 우린 친구들하고 스스럼없이 얘기하는데.”
“...”
“설마 아직도 미련 같은 게 남아 있으세요? 지금도 자기 와이프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열..쇠는 찾았으니까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금이나마 남았던 미련이란 것이 너무나 부질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 난 더 이상의 모멸감과 불쾌감을 없애기 위해 자리에서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려 했다.

“신이가 말 한대로 속이 좁으시네.. 능력도 안 되고~ 물건도 작고~, 테크닉도 부족하고...”
“뭐라고!?”
“하하하하.”

자리에서 막 이러나려던 난 어정쩡한 자세로 남자의 비아냥거림에 크게 소리를 지르게 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의 비아냥거림은 오히려 내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예민한 얘기였다. 금지되어야 할 부부사이의 속사정까지 까발린 것도 모자라 내 경제능력까지 조롱거리로 만들 여자가 분명 아니었지만 나자의 비아냥거림으로 인해 분노의 화살을 그녀에게 돌리게 된다.

“당신은 뭐가 모자라서 이런 미친놈하고 만나고 다니냐? 당신, 애새끼랑 이러고 다니는 거 장인, 장모님은 알고 계셔!?”
“크크큭~. 누가 애새끼처럼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네..”
“뭐!?”
“오.. 잘 하면 한 대 치시겠습니다.”
“너 이 새끼 나와. 나가서 어른하고 조용히 얘기 좀 하자.”
“감당이 되겠습니까?”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위협에 쫄 기는커녕 등을 뒤로 조금 더 젖히며 우습다는 듯 날 똑바로 응대하는 놈의 행동에 오히려 내가 주춤하게 된다. 그리고...

“그만해요.. 한상씨는 프로까지 갔던 권투선수였어요..”

아내의 걱정 아닌 걱정이 날 더 초라하게 만들었고 더 욱하게 만들었다.

“나 와! 권투 같은 소리 하네! 너 같은 새..”
“쪽팔리게 다 쳐다보잖아요. 싸움하자고 온 거 아니니까, 진지한 얘기나 나누는 게 어떠세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신이가 속옷 하나 안 입고 돌아다닐 정도로 왜 변했고, 왜 전남편 분을 찾아 이곳까지 왔는지...”
“....”
“진정하시고요. 신이도 처음부터 이런 여자는 아니었다는 건 누구보다 전 남편분이 가장 잘 아실 테니 궁금하실 거 아닙니까. 그래도 한 때 아내였던 여자인데 왜 이렇게 변했는지 말이에요.”
“날 찾은 이유가,, 의도가 뭐냐? 이런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나누려고 온 건 아닐 텐데..”
“게임을 하자고요.”
“...뭐!?”
“여기선 좀 그렇고.. 저희 집으로 가시죠. 이런 시끄러운 장소보다는 훨씬 좋거든요. 그리고 태규씨한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겁니다.”
“태규씨??”
“가시죠.”

어이가 없어 하는 날 무시한 채 아내가 한상씨라 불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남자를 조용히 따라 일어난 아내의 모습에 더 기가 차게 된다. 날 사랑해 그렇게 미안해하던 아내의,, 신이의 모습은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잔에 남은 소주를 단 번에 목에 털어놓고는 그 남자를 나도 쫓아간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고급 아파트의 12층에 위치한 한상의 집은 첫 입장부터 날 기죽게 만들었다.
족히 50평은 되어 보이는 내부의 구조는 커다란 거실과 주방을 개조해 바로 만든 형태까지. 단층이라고는 해도 젊어 보이는 남자가 전 와이프였던 신이와 둘 만이 살기에는 너무 과분해 보였다.

“가볍게 와인 한 잔부터 하시죠. 신아 세팅 좀 해.”
“....네.”

한상이 말을하며 커다란 소파에 몸을 깊게 기대며 앉자 신이가 날 한 번 바라보곤 주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 신아 집에 들어왔으면 실내복으로 갈아입어야지?”
“네?? 지..지금요?”
“그럼? 설마 지금 전 남편 앞이라고 내숭떠는 거냐? 다른 놈들 앞에서 홀딱..”
“아..알았어요.”

실내복으로 갈아입으란 소리에 당황을 하는 모습에 의아해하던 난 다른 놈들 앞에서 벗고 지냈다는 한상의 말에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그러나 곧 그런 남자의 말보다 아내의 행동에 더 놀라게 된다.

아내가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은 실내복이란 것은 검은색 바탕에 흰색의 나풀거리는 테두리가 있는 특이한 메이드용 앞치마였다. 옷을 입고 앞에 매는 앞치마를 말 그대로 전라의 몸으로 가슴아래부터 시작하는,, 그래서 커다란 젖탱이가 훤히 보이며 골반의 앞부분만을 겨우 가리는 짧은 앞치마만을 입고 신이가 주방에서 끈 밖에 보이지 않는 뒤태로 술과 안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런 전아내의 뒷모습에 홀린 듯 시선을 뺏긴 나였고, 재미있다는 듯 웃음 섞인 말투로 그런 날 부른 건 한상이 놈이었다.

“몸매 죽이죠!”
“....”
“웃기네요. 만약 이혼을 안 했다면.. 자신의 아내가 저런 모습으로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참~ 재미있는 상황이 일어날텐데 말이죠.”
“둘 다 미쳤군. 아무리 당신 말대로 이혼한 사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둘이 뭔 짓을 하고 다니던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긴 하지만.. 도덕이나 이성 같은 걸 아예 모르는.. 됐습니다. 전 이만..”
“여기까지 쫓아왔으면서 왜 그러십니까.”
“무..뭐?”
“궁금하지 않으세요? 제가 무슨 내기를 제시할지. 신이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됐습니다. 이제 저랑은 상관없습니다.”
“신이가 저랑 헤어지고 싶다고 하더군요.”
“....!?”

남자의 말에 고개를 돌려 아내를 향했을 때, 너무도 음란한 모습으로 아내가 쟁반에 고급와인과 과일 안주를 들고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올려놓은 아내는 놀랍게도 소파가 아닌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는다.

한상이 앉은 소파의 바로 옆에 무릎을 조신하게 꿇어앉고는 내 시선을 피하는 아내의 모습에 혹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슨 약점을 잡혀서 이런 노예 같은 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놈의 말대로 신이가 자신의 이런 처지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어 날 찾은 것이라면.......




[띠리롱~~]

[아..안 돼.. 그..그마..만... 아!!]

내가 생각에 잠겨 고민하고 있을 때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텔레비전이 켜지고 외부입력이라는 문구가 사라지자 화면 가득 여자의 알몸이 나타났다.
너무도 익숙한 작은 가슴의 여자. 신이였다. 낯선 남자가 사타구니 사이로 얼굴을 깊게 파고들수록 알몸으로 몸을 비비꼬으며 힘없어 보이는 손으로 밀어내려는 행동을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일시정지란 문구가 나타나며 그대로 멈춰졌다.

“우선.. 이것부터 보시고 오해하지 마시라고요.”
“오해?”
“이게... 처음으로 신이를 안은 날의 영상입니다. 신이가 처음부터 다리를 벌리던 걸레년이 아니란 말입니다. 친구들 꼬임에 넘어가서 클럽이란 곳을 처음 왔고, 거기서 저한테 낚인 거죠. 물론 약의 도움이 없었으면 저런 모습을 보여줄 리도 없었고 말입니다.”
“약? 지금 약이라고..”
“아아~ 진정하세요. 신이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이젠 약 같은 건 손도 대지 않으니까요. 그것보다 약에 취했는대도 저렇게 반항을 하는 모습이 더 꼴릿하지 않습니까? 요즘 년들은 약도 아니고 술만 꼴아도 미친년처럼 허리를 흔들어대는데. 아~ 요즘 애들을 못 만나 보셨겠네요. 하하.”
“...........”

[그마..그만해요.. 제..제발...아윽!]

흐느적거리며 남자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몸을 자꾸 침대 위로 움직이는 신이의 모습에 더 집요하게 남자가 머리를 들이민다.
그때 무거운 듯 보이는 눈꺼풀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아내였던 신이가 잘빠진 허벅지를 안간힘을 쓰며 비틀자 남자의 몸이 튕겨져 나갔고 남자가 낄낄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제야 모습을 나타낸 슬림하지만 잔근육이 가득한 또 한 명의 남자. 한상이었다.

[비켜봐. 그걸 하나 제대로 못 보내냐.]
[크크크~ 이 여자 독하네.]
[비켜보라고.]


--계속--

오랜만에 찾아 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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