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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36 875회 0건
어느분의 말씀처럼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써 올립니다.
오늘도 하루종일 정신이 없을 거 같아서요(ㅜㅜ).

29..

“조진민 사무장은 로량로펌에서도 인맥이 넓기로 유명한 사람이던데.”
“.....”
“그리고 김성호 과장이란 사람 말이야.”
“김성호?”

화요일 퇴근 후 일부러 사람이 번잡한 돼지껍데기 집에서 현민을 만나 소주 한 잔을 한다.
핸드폰을 놔둔 차도 회사에 남겨둔 채 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혹시나 있을 미행이란 것을 따돌리며 현민이가 근무하는 회사 근처로 왔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이상한 낌새로 날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 걸 확인한 후 현민을 불러냈다.

강한상이 어떤 장치까지 준비한지를 확신할 순 없었지만, 미행과 같은 범주를 넘는 행위는 아마도 강한상 자신의 자존심 때문이라도 하지 않는 듯 느껴졌다.

“네가 적어온 차량 소유주가 김성호 과장이야. OO종합병원 과장.”
“아~.. 그 사람은 뭐가 나왔냐?”
“별건 없어.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접대에 남다른 솜씨를 보이는.. 일명 싸바싸바맨이더라고.”
“그런데 부원장 자리까지 넘본다고?”
“이번에 조사해보니까. 병원도 정치판하고 똑같더라고, 특히나 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과장이상부터는 로비나 접대, 그리고 뇌물도 아주 비일비재하더만..”
“그래?.... 그런데 왜 강한상이 놈이 그런 사람하고 연줄을 놓고 지낼까?”
“그게 좀 이상해..”
“왜?”
“조진민 사무장이란 사람이야. 로펌에서도 능력 있기로 소문났으니 당연지사 정치 쪽하고도 긴밀한 연줄이 있는데.. 그 김의원이라고 불린 남자는 털어보니 개뿔도 없더란 말이지.. 강한상이란 놈이 도대체 왜 그런 놈하고 다리를 놓고 있는지가 더 이상하단 말이야.. 이번 부원장자리도 사실 다른 내정자가 있는 거 같은데.. 무리를 하면서도 그렇게 힘을 쓸 이유가 없는데...”
“그 병원이 OO종합병원 확실 해?”
“응?.. 그렇다니까. 몇 번을 확인했구만.”
“...”
“그런데.. 신이씨는 좀 괜찮냐?”
“괜찮다니? 뭐가?”
“몸 파는 여자가 아닌 거 같다며. 강한상 새끼가 한 말이 전부 거짓말 같다고 말 한 게 너잖아. 아니야? 아니면 강한상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이야?”
“거짓말 맞아..”
“그럼 그 모임에서 충격이라도 받은 거 아니야? 보나마나 더럽게 놀았을 게 분명한데....”
“나한테 MC를 시키더라..”
“MC?? 갑자기 무슨 MC를 시켜?”
“그러게..”
“그게 무슨 말이야?”
“한상이가.. 나보고 그 모임의 주체자로 진행을 하더라고..”
“그래서?”
“게임이란 걸 해 봤다.. 창구가 데리고 갔던 그 스와핑 모임에서 봤던 걸 그대로 써먹어 봤는데.. 먹히더라..”
“네가 그런 짓을 했다고!??”
“응...”
“정말??”
“나도.. 내 자신한테 놀랄 정도였으니까..”
“와~ 너 진짜 변했구나..”
“변해야지... 신이를 위해서라도.. 변해야지..”
“그럼 신이씨도 같이 즐긴 거야?”
“...”
“왜 또 표정이 그래?”
“사람이란 게 말이야... 질투를 하면 끝장을 볼 수 있는 걸까?”
“갑자기 뭔 소리야? 질투?? 혹시 강한상이란 신이씨가 붙어먹는 걸 보고 질투를 했냐? 이미 각오한 일이잖아. 아니야? 혹시 아직도 흔들 리냐?”
“사랑이라는 게.. 사람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왜? 신이씨가 아직도 강한상한테 전적으로 휘둘려? 조금도 넘어온 거 같진 않고?”
“글쎄다...”
“잘 다독여.. 네 말대로라면 나중을 위해서라도 신이의 기분을 잘 헤아려야지..”
“고맙다..”
“고맙긴.. 아! 사진! 사진은 제대로 찍었냐?”
“응? 아!!.. 잠시만.... 그런데 이 핸드폰도 문자로 사진 보낼 수 있나?”
“글쎄.. 우선 보내봐.”

폴더 폰의 폴더를 열어 사진을 현민이 핸드폰에 보내는데.. 잘 넘어가질 않는다.

“이왕 살 거면 좀 최신형으로 구할 것이지.. 이게 뭐냐!”
“이것도 어렵게 구한거야.. 안되겠다. 내일 사진 뽑아서 퀵으로 쏠게.”
“참나.. 그건 그렇고.”
“뭐?”
“재미있었냐?”
“뭐가?”
“그 모임이란 거 말이야. 네가 MC였다며 어떤 게임을 했는데?”
“재밌기는.. 그냥 보주랑.. 파트너 맞추기.. 그리고 나중엔 빨리 세우기정도로 간단하게 끝냈어..”
“보주? 보주가 뭐냐?”
“보지에 술을 담아서 마시는 게임.”
“뭐?? 그걸 네가 진행했다고?”
“...”
“와~~.. 파트너 맞추기야 뻔하고.. 빨리 세우기는 뭐야?”
“파트너 맞추기 하고 나서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했거든.. 전부 한 번 이상은 뺏더라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게임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서로의 파트너 물건을 얼마나 빨리 세울 수 있나를 놓고 내기를 했었어.”
“내기? 잠깐만! 네 파트너가 박미지라는 그 여자라고 하지 않았냐?”
“..응.”
“그럼 신이씨는?”
“...”
“허~... 그래서 질투란 말을 한 거야?”
“그건 아니야.. 어차피 각오 했던 일이잖아. 그리고 그 각오만큼.. 나도 최대한 즐기기만 하자고.. 내 전 와이프라는 여자로 보지 않고.. 그냥 다른 남자의 섹스파트너로 보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리고.. 한상이 놈과 방에 들어가선 못 나왔으니까... 질투란 걸 할 여력도 없었어.”
“그런데 왜 질투란 말을 하냐?”
“...아니다. 하여튼 그렇게 놀다가 결국은 황제놀이까지 갔지 뭐..”
“황제놀이라니?”
“세우기에서 우승한 조사무관이란 남자가 모든 여자를 맛보는 시간을 줬다고 할까.. 그렇게 놀다가 각자 헤어졌어.”
“캬~ 부럽다.. 나도 한 번 그렇게 놀아보고 싶네..”
“부럽긴...”
“아!! 그리고 네가 준 거 있잖아.”
“응?”
“네가 몰래 가져온 술중에서 ‘구연산 실데나필’이란 성분이 검출 됐다더라.”
“구연산?? 레몬 같은 거에 들어있는 거?”
“그게 아니고. 일종의 비아그라 같은 거라던데.”
“비아그라? 최음제나.. 흥분제가 아니고??”
“응.”
“비아그라가 여자한테도 효과가 있냐?”
“없다고 하더라. 오히려 부작용만 있단다. 두통이나 오바이트 같은..”
“그럼.. 처음 건배를 했을 때 남자들만 먹었던 약주에 있었다는 말인데... 왜 굳이 비아그라를 타서 남자들한테 몰래 먹였을까?”
“창구 말 못 들었냐? 처음엔 흥분보다 긴장감이 더 들 수 있다잖아. 그때 말하길 첫 쓰리섬이나 스와핑에서 간혹 약부터 챙겨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만.”
“그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단순한 도구일 뿐이란 거네...”
“내가 어떻게 아냐. 네가 있었지 내가 있었냐?”
“.....”
“그리고 김의원이란 남자를 보니까. 나이도 많더만.. 발기불능기가 있으니까 그런 약도 준비했겠지. 김의원이 준비 했을 거 아니야.”
“응.. 한상이와 얘기하는 거 보니까. 김의원이 준비를 한 거 같은데... 꼭 한상이가 시켜서 준비 한 거 같더라고.”
“일종의 배려겠지.. 그 새끼 일을 뭘 일일이 신경을 쓰냐? 그것보다 좀 더 자세히 얘기 좀 해봐. 그럼 네 파트너인 박미지란 여자하고 왕게임까지 했다는 거야?”
“왕게임이 아니라.. 하여튼 열쇠 사진을 찍고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판이 벌어졌더라고..”
“판?”
“조사무관하고 미지씨랑 신나게 한 판 벌이고 있었어. 그 옆에서 조사무관의 파트너란 여자가 혼자 하고 있었고..”
“혼자 하다니? 거기서 자위라도 했단 말이야?”
“....응.”
“허~.. 그 여자도 갈 때까지 다 간 여자네.”
“김의원보다 오히려 조사무관이라는 남자가 훨씬 경험이 풍부한 거 같더라고.. 김의원이 조급한 모습을 숨기질 못하는 반면에 조용히 즐기면서 할 건 다 하는 걸 보면 말이야.”
“음.. 하긴 강한상이 조사무관의 로펌을 이용한 게 그의 아버지부터라고 했으니까. 오히려 김의원이란 남자보다 더 깊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있냐.. 신이 때문에 커진 자지를 그대로 조사무관의 파트너에게 꽂았지...”
“허~~ 그럼 스와핑을 한 거네! 미지씨는 조사무관이랑 하고.. 넌 조사무관의 파트너랑 했으니까.”
“....그런가?”
“야~ 제대로 즐겼네! 혹시 김의원의 와이프랑은 안했냐?”
“그냥 보주만 마셨지.. 하진 않았다.”
“캬~~..”
“잘 나가다가 넌 또 뭘 부러워하냐.”
“이왕 즐길 거 제대로 즐겨야지! 어차피 게임에서 이기면 평범하고 알콩달콩하게 살거라면서?”
“이길.... 수 있을까?”
“뭐? 이 새끼 또 약한 소리 하네! 처음 계획을 짤 때의 패기는 어디 갔냐!?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어떻게든 이긴다며!”
“....그래야지.”
“그래야지는! 칼을 뽑았으면 제대로 휘둘러야지 이 친구야!”
“술맛 떨어진다. 그 얘긴 그만하고.. 다 마셨으면 그만 일어나자..”
“벌써?”
“응.. 내일을 위해 청소도 좀 해야지.. 집도 엉망인데.....”
“정성이네.. 그러니까 결혼 때 더 잘하지 그랬냐고!!”
“...크크. 가자.”
“태워줄게 같이 가자.”
“아니야... 회사로 돌아갈란다. 대리 불러서 차타고 가야지.”
“왜?”
“핸드폰도 차에 있잖아. 다시 켜 놔야지...”
“참.....힘들게 산다.”
“크크크크.. 막잔 하자.”



핸드폰 전원을 길게 누르자 밝아진 화면 속에 부재중 통화가 4통이나 기록돼 있다.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번호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난 그 번호의 주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서둘러 통화버튼을 길게 누른다.

“접니다 형님!”
[하하. 잘 지냈고?]

반가운 한선배의 목소리가 걸걸한 웃음소리와 함께 핸드폰 너머에서 날 반긴다.

“형님이야 말로 잘 지내셨습니까? 중국은 어떠세요? 어.. 이 번호는...”
[지금 대한민국이다. 한국에 일 때문에 들어왔지.]
“아~~ 하하하하.. 잘 지내셨죠?”
[나야 뭐.. 마누라가 외롭다고 아주 노래를 부르는 게 탈이라서 그렇지. 잘 지낸다.]
“....혜빈이는요?”
[마누라랑 마찬가지야. 더 말수가 없어져서 걱정인데.. 지금 고민 중이야.. 적응을 못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네. 그래도 형님이라서 다행입니다.”
[뭐가?]
“아..니에요. 만나야죠. 만나서 오랜만에 회포라도 푸셔야죠.”
[오랜만은.. 갑자기 들어왔지만, 중국에 들어온 지 이제 한 주도 안 지나갔구만.]
“하하하. 그래도 바다 건너 가신 거잖아요.”
[그런가? 하하하하하하.]
“내일 시간 되세요?.. 아.. 내일은 좀 그렇고.. 형님 언제 들어가십니까?”
[그것보다.. 부탁 좀 들어줬으면 하는데..]
“부탁이요?”
[응. 좀 어려운 부탁이긴 한데...]








‘띵똥~~~’

“왔어?”
“...네. 밥은요?”
“오자마자 내 식사부터 챙기려고?”
“.....”

어김없이 찾아온 수요일에 신이는 일상처럼 내 집의 벨을 누른다.
불과 며칠 전의 그 음란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수하게 차려 입고 온 신이의 모습은 그 날의 그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함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흰색의 긴 목폴라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그 위에 즐겨 입는 흰색 가디건까지...
처음 내 집을 찾아왔을 때의 섹시함은 어느새 사라진 채 내 집의 내 아내처럼, 근처에 외출했다 돌아온 모습으로 신이는 또 잔뜩 사온 반찬거리를 양손에 쥐고 내 집을 찾았다.

“밥은 됐고.. 손님이 있어.”
“....손님이요?”
“응...”
“누...구??...”

신이의 표정이 내가 말한 손님이란 단어에 흙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날의 기억 때문일까?
어둑한 방안에서.. 숨어 있던 내 바로 앞에서 강한상의 몸에 올라타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며 요분질을 쳐대던 그 음란함을 고스란히 내게 보여줬던 그 날의 기억 때문일까?

그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신이의 표정을 살피게 되는데..
아주 작게 일그러진 미간이 손님의 등장에 크게 놀란 듯 확 펴지며 더 커진 두 눈으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몇 번이나 확인을 다시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혜..혜빈아??”
“....”

‘쪼르르륵~ 덥썩..’

“혜빈이.. 혜빈이 맞지?”

‘끄덕..’

날 그대로 스쳐지나가 신이의 허벅지를 작은 두 손으로 꼭 끌어안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혜빈이의 모습에도 신이는 좀처럼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나 혜빈이를 불러본다.

“이..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응?”
“혜빈이..는 한선배님이란 분이 데리고 간 거.. 아니였어요?”
“응.. 한국에서 정리 못한 일 때문에 잠깐 나오셨데.. 금요일에 들어가셔야 되는데 이틀만 좀 봐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 집이야 어쩔 수 없지만, 급하게 들어가시느라 짐도 제대로 못 챙겨 가셨다는 거 같더라고..”


“아~... 우리.. 혜빈이 얼굴 좀 봐도 될까?”

내 말을 귀로 듣는 건지 코로 듣는 건지..
연신 꼭 끌어안은 혜빈의 머리를 쓸어내리던 신이가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천천히 무릎을 꿇고 혜빈이와 시선을 마주한다.

“어디.. 아픈 데는 없었고? 밥은? 밥은 잘 먹었어?”
“....”
“그래.. 아픈데 없으면 됐어.. 밥은 많이 먹어야 돼..”

첫 번째 물음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던 혜빈이 신이의 두 번째 물음엔 좌우로 작게 흔든다.

“혜빈아......”

말문이 막힌 듯 신이는 혜빈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며 눈물 젖은 이름만 반복해서 부르곤 이내 눈물을 훔치며 혜빈이의 손을 꼭 잡고 거실로 이동한다. 현관문 앞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봉지들을 들고 그런 둘의 뒤를 따라 나도 거실로 들어갔다.

“우리 혜빈이 얼굴 좀 다시 보자... 살이 빠졌어....”
“살이 빠져?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살 빠진 줄 몰라요...”
“그런가?”

“밥 먹자... 아직 안 먹었지?”

“그냥 외식하자. 오랜만에 혜빈이랑 만났는데.. 고기 먹으러 나가야지.”
“고기도 사왔어요. 그리고 밖에 나가서 먹는 게 뭐가 맛있어요.. 금방 준비할게요. 혜빈아.. 삼촌하고 잠깐만 놀고 있어.. 이 언니가 진~~짜 맛있는 고기랑 반창이랑 해 줄게.”

신이가 벌떡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혹여나 혜빈이가 더 배고파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사가지고 온 채소들과 고기, 과일들까지 전부 펼쳐놓고는 요리를 준비했다. 삼일이란 시간동안을 먹을 준비물들을 단 숨에 전부 해치우려는 듯 냄비에 물을 끓이며 동시에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그 사이에도 여러 가지를 준비하며 보기에도 바삐 몸을 움직였다.

“혜빈아. 언니가 디게 기분이 좋은 가부다..”
“...”
“우리 혜빈이 어떻게 하냐.. 저 언니 저걸 다 요리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배터지면 어떻게 하지?”
“.....”

내 말에 얼굴 한 번 쳐다보곤 이내 신이의 분주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음을 짓는 혜빈의 모습은 정말 아기 천사 같다는 느낌을 준다. 요리를 하면서도 신이는 잠깐씩 혜빈의 얼굴을 확인하듯 고개를 돌렸으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같이 미소를 지어줬다.

용심이 과한 게 탈이라고 하더니, 너무 많은 요리를 한꺼번에 시작한 신이는 1시간이 넘도록 계속 싱크대 앞에 자리 잡고 서 있게 된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많은 양의 음식들인 대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드는지 신이는 끊임없이 요리를 하고 또 했었다.

그리고서도 2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저기.. 나 배 많이 고픈데...”
“다 됐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그 말은 20분 전에도 했잖아.”
“우리 혜빈이도 잘 기다리는데 왜 당신은.... 조금만 더 기다려요!”
“...참나. 혜빈아.. 지금이라도 우리 그냥 나가서 먹을까?”

‘절레절레.’

“허.. 알았다! 알았어.. 언제 다 되는데!?”
“이제 콩자반만 끝내면 다 끝나요.”

그러고서도 20분은 넘게 기다리고서야 음식들이 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과해도..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상의 모습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 있기만 한다.

최고라는 15첩 밥상?
신이가 손님용인 커다란 상에 내려놓은 음식들은 족히 20첩은 훨씬 넘어 보이는 가짓수가 자랑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갈비에 고등어조림, 생선 튀김에 오징어 튀김.. 쏘시지 볶음, 계란말이, 햄계란튀김, 계란프라이, 가지,오이등등의 무침과 샤브샤브라고 하기엔 미리 끓여 내온 맑은채소찌개부터 미역국까지...

“이걸.. 누가 다 먹어?”
“네?... 좀.. 많을..까요?”
“이게 좀.. 많냐? 한 10인분은 넘겠구만...”
“그래도.. 먹어요.”
“....”
“그 쪽 좀 들어봐요. 혼자.. 못 옮기겠어요.”
“하~... 이런 정성이면.... 아니다.”

나와 달리 혜빈이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들에 기뻐하면서도 놀란 표정을 숨기질 못하고 박수까지 쳐대기 시작했다.

“좋냐?”

‘끄덕끄덕’

“허.. 그래 많이 먹어라.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더라! 죽자고 먹으면 다 먹겠지!! 자! 먹자고!!”
“히히...”

갑자기 소리 내어 웃는 혜빈의 모습에 농담처럼 말을 뱉어내던 나와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눈을 흘겨 쳐다보던 신이도 깜짝 놀라 혜빈이를 커진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게 된다.

“혜빈이.. 많이 먹어요.. 이 언니가 만드는 거 봤지!? 다 혜빈이 좋아할만하것들만 만들었으니까.. 많이 먹어..”

‘끄덕’

내가 언제 소리 내어 웃었느냐는 듯 조용히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손에 부담스럽게 큰 숟가락을 옹팡지게 잡고는 밥부터 크게 한 번 퍼선 다 들어가지도 않는 작은 입에 우겨 넣는다.

“천천히 먹어야지. 그러다가 채해.”
“....”

“그런데 혜빈이 숟가락이 없네.. 숟가락을 사와야겠다.”
“어차피 내일 갈 건데 무슨 숟가락까....”

무심코 말을 뱉어내다 신이의 표정과 시무룩해진 듯 고개를 살짝 숙인 혜빈이의 모습에 말을 흐리게 된다.

“아!! 혜빈아 잠깐만!!”

뭔가가 생각이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신이가 황급히 싱크대로 달려간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싱크대 아래의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하던 신이가 뭔가를 꺼내선 재빨리 물에 씻기를 반복한다. 세제를 묻혀 한 번 씻고는 또 다시 물로 닦아내길 여러 번 반복하고서야 신이가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자. 이걸로 먹자.”
“......”
“..왜요?”
“그게.. 아직도 있었어?”
“...네. 있었...네요.”

아이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뽀통령이 그려진 숟가락을 신이가 혜빈이에게 건넨다.
지금이야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저 캐릭터 하나면 울던 아이도 그친다는 전설적인 존재였던 3D만화의 주인공이었는데..

자신의 몸이 불임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여러 병원에서 낙인찍히듯 얻기 전에 사뒀던 물건이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신이가 병원을 가기 전 어디선가 아이 물건을 미리 사두면 아이가 잘 들어선다는 말을 듣고 이것저것 사뒀던 게 기억에 떠오른다.

그걸 아직도 신이는 기억 속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이 이 맛있고 따뜻한 밥상 앞에서 날 가슴 쓰리게 만들었다.

“당신도.. 드세요.”
“응?...응. 당신도 먹자.”
“네.. 혜빈아 이것도 먹어 봐. 이게 사실 이 언니가 가장 잘하는 거야. 다 맛있지만 이게 특히 맛있다니까!”

갈비를 아이가 먹기 좋을 크기로 젓가락으로 잘라 숟가락 위에 올려놓는 신이의 모습은.. 천상 엄마의 모습이었다.

너무도 평범한 일상에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이 평온함을, 이 여자는 왜 누릴 수 없었을까...

“너무 급하게 먹지 말라니까.. 진짜 채하면 배 아파요.”
“우거우걱.. 쩝쩝..”
“에이.. 혜빈아. 누가 안 뺏어가요..”

“중국에서 입맛이 맞는 게 많이 없었나보구나.. 급하게 가느라 쌀도 중국 쌀을 먹었을 테니까..”
“...그랬어? 혜빈아 더 먹고 싶은 거 있니? 이 언니가 다 해줄게.”
“그만 해라.. 오늘이 마지막도 아닌데.. 진짜 애 배 터져 죽일 작정이냐?”
“왜 자꾸 죽인다는 얘길 해요.. 재수 없게..”
“재..재수가 없다고!? 지금 나한테 재수 없다고 한 거야?”
“피~.. 누가 당신한테 재수 없다고 했나! 도둑이 제 발 저리나.. 왜 자꾸 시비래.”
“.....”
“자자 혜빈아 이것도 먹고, 이것도 먹어.. 이것도 맛있어.”
“나도 좀 먹자.. 혜빈이만 챙기냐...”
“참나..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먹고 싶은 거 먹어요.”
“......”
“왜요? 또 재수 없는 소리 하게요?”
“와~~.. 아고 답답해.. 진짜 너무하네.....”
“너무하긴.. 왜!? 이번엔 속 터져 죽겠다고 해보지..”
“.....”

“큭큭..큭~”

우리 둘의 티격태격에 또 혜빈이가 웃어준다.

“혜빈아 우리 내일은 놀이동산 갈까?”
“진짱?”

혜빈이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다.
분명 또렷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진짜라고 되묻는 말을 잔뜩 들뜬 표정으로 작지만.. 분명하게 신이를 향해 말을 했다. 다시 내게 감동을 준 혜빈의 목소리에 신이도 아주 약간 갈라진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혜빈을 향해 미소를 지었고, 얘길 했다.

“그럼! 이 언니랑 같이 가자. 저 아저씨는 또 바쁘다고 회사 갈 테니까. 우리끼리만 가면 되지! 가서 뭐부터 탈까? 회전목마? 아니면 어린이 바이킹? 아니다. 가서 전부 다 타자. 다 타고 우리 옷도 사자. 예쁜 혜빈이한테 어울리는 예쁜 옷들도 같이 살까?!”
“....응!!”
“그래.. 우리 혜빈이 좋아하는 거 다 사줄게.. 이 언니가.. 혜빈이가 원하는 거 다.. 사줄게.”
“정말????.. 응!!..........응........”

밝고 크게 웃던 혜빈이가 갑자기 숟가락을 입에 물고는 고개를 천천히 숙이며 힘없이 대답을 한다.

“왜.. 그래 혜빈아.. 옷.. 싫어? 아니면 뭐가 맛없니?”
“.......”
“왜 그래? 혹시 배.. 아프니? 많이 아파??”
“옷..주고.. 또.. 보낼 거야?”
“무..뭐?”
“그냥....아무것도 안 사..주고.. 나 여기 살면.. 안 돼?..아닝.. 안..대요?”
“.............”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보육원의 아이들 중 말이 유난히 빠른 편이었던 혜빈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벙어리처럼 단 한마디도 못하게 변해버린 후 처음 듣게 된 말이 ‘가지마.’ 와.. 두 번째로는 ‘같이 살고 싶다.’ 라니.. 눈물이 맺혀 눈을 적시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나.. 설거지도 잘 해..아니.. 잘 해용. 밥...도.. 할 줄 알아...빨래도..”
“혜빈아.. 누가 그런 거 시켰니?”
“아..니요.”
“혹시.. 지금 엄마 아빠가.. 신이 힘들 게 해?”
“....”

신이의 물음에 눈치를 보며 대답을 하다 고개를 크게 좌우로 흔드는 혜빈이다.

“혜빈이 나이엔... 그런 거 안 해도 돼.. 엄..마를 도울 줄도 아는 정말 기특한 아이라서 우리 혜빈이가 너무너무 예쁜데.... 지금 이 언니는 그만큼 슬프네..”
“왜? 나 잘 못 했어?....요?”
“아냐.. 혜빈이가 왜.. 잘못을 해.. 아니야.. 혜빈아 이리 와서 앉아 봐.”

혜빈이를 무릎에 앉힌 신이가 울먹임을 겨우 참으며 작은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담아 먹이기 시작햇다.
더 이상.. 그런 신이와 혜빈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아.. 배부르다.. 나....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올게...”

객쩍게 말을 하는 날 신이가 잠시 쳐다보긴 했지만.. 이내 혜빈이를 더 신경 쓰며 다시 부드럽게 아이를 타이르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한선배에게 입양을 간 아이를 가슴이 아프다고 순간적인 마음에 섣부른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신이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우리가 지금 처한 환경자체를 내게 몇 번이나 상기시키듯 말을 했던 신이였기에 누구보다 이 순간에 먹먹해져 오는 가슴으로 혜빈이를 타이르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밖으로 도망치듯 나오게 된다.



난 밖으로 나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한선배에게 전화를 건다.

“접니다. 형님.”
[밥은 먹었고?]
“형님.. 한 가지만 물어볼 게 있는데요.”
[물어보다니? 뭘?]
“혜빈이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
“무슨 일이 있었군요...”
[중국에 가서부터.. 울기만 하더라..]
“울다뇨?”
[적응을 잘 못해서.. 많이 힘들어 하더라고.. 혜빈이 엄마가 아무리 타이르고 달래도 쉽사리 정을 못 주는 거 같기도 하고.. 아내도 힘들어 했지만 어쩔 수 있나.. 다 거치는 과정인데.. 왜? 거기서도 많이 울어?]
“.......네.”

한선배에게 차마 혜빈이가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얘길 할 수 없었다.
한선배도 어렵게 내린 결정이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나였기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했고 지금순간 쓰린 가슴일지라도 그건 혜빈이를 위한 결정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중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철저히 냉정해져야 했으며 결단력 있게 행동을 해야 했다.

[힘들면 내가 데리러 갈까?]
“아닙니다.. 신이도... 혜빈이를 만나더니 기분이 좋은가봐요. 지금 잘 타이르고 있어요.”
[그래.... 고생 좀 해줘. 짐정리도 보통일이 아닌데 회사일도 그렇고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녀야 될 거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고마워.]
“네 형님.. 들어가 볼게요. 고생하십쇼.”

전화를 끊고 피던 담배도 끄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때.. 음식이 거의 그대로인 상 앞에 신이가 무릎위에서 잠든 혜빈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잠들었어?”
“네... 밥 먹고.. 울다가 잠들었어요.. 소화 안 되는데....”
“괜찮아. 그 나이 땐 철도 씹어 먹어도.. 당신은....?”
“...네?”
“괜찮냐고..”
“저야.... 에휴...”
“....방금 한 선배랑 통화했는데.. 혜빈이가 중국에서 적응을 잘 못했나보더라고.. 말도 안 통하니까 더 그랬겠지만.. 그리고 음식을 억척스럽게 먹는건.... 일종의 버릇 같은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버릇이라뇨?”
“... 새 엄마나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할 때.. 가끔 아이들이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그런다고 하더라고...”

내 말에 신이는 한 번 더 눈망울을 적시며 혜빈이를 내려다본다.
그 날의..
강한상이란 놈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며 스스로 요분질을 치던 여자의 모습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답지만 너무도 평범한 엄마의 모습처럼 연신 사랑스러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가를 촉촉이 적시기 시작했다.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갑자기 안방에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혜빈이가 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뛰어 들어갔다.
강한상일 줄 알았던 번호의 주인은 내 기억이 맞다면 회사의 번호가 확실했다. 앞자리는 회사에서 쓰는 번호였고 뒤에 4자리는 낯선 번호였다.

“여..여보세요?”
[진태규씨?]
“네? 네.. 접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밤 늦게 죄송합니다. 전 구승민 비서라고 합니다.]
“네? 구.... 아! 네..”
[실례인 줄 알지만 혹시 지금 시간되시겠습니까?]
“지금요?”

구승민 비서라고 하면 분명 우리 회사 사장의 개인 비서로 알고 있었는데.. 이 늦은 시간에 왜 갑자기...



--계속--

흥미롭고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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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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