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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36 900회 0건
21..


‘띵똥~~~띵똥!!~~~’

‘쾅쾅쾅!! 쾅쾅!!’

“야! 강한상!!! 야!!! 나와 이 새끼야!!!”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고 문을 주먹으로 소리 나게 두드려도 인기척조차 없었다. 화를 못 참고 발로 문을 차기까지 하는데도 안엔 아무도 없는 지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게 된다.

“어이!! 어이! 아저씨!!”
“.....?”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내 등 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경비 아저씨였다.

“아저씨! 여기 사는.. 강한상이 어디 갔습니까?”
“한상씨? 딤점인지 딤솜인지 먹으러 간다고 어제 나갔는데.”
“딤점이요? 딤섬?? 어제 나갔다고요?”
“그래. 어제 저녁에 나갔다고.”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명동? 아니면.. 차이나타운으로 먹으러 간다고 하던가요?”
“보자.. 여행 간다고 락 걸어 달라고 했는데..”
“락이요?”
“아! 광저우! 광저우로 간다고 했네!!~”
“광..저우요? 딤섬을 먹으러 중국 광저우로 갔다고요?”
“그래 이친구야. 광저우에 가서 딤섬인가 뭔가 먹고 홍콩에 들렸다 내일 온다고 하던데..”
“.........”
“돈 많은 놈들이야 뭐 뭔 짓을 못 하겠나. 특히 121호 이 친구는 더 해~. 젊은 친구가 뭔 돈이 그리 많은지 차도 두세 달에 한 번씩 바꾸질 않나, 뭐만 유행한다면 백화점 직원이 직접 배달까지 하러 온다니까... 쯧쯧~ 어떤 부모인지 모르지만.. 아들놈이 저러고 혼자 사는데 아무 말도 안하나..쯧~~”
“내일 온다고요?”
“내일 온다고 했는데 나야 모르지.. 갑자기 전화로 더 있다가 온다면 그런가 하는 거지 뭐.”
“어제.. 갔다고요?”
“..이 친구가 귀가 먹었나. 몇 번을 말하게 하네.”
“알겠습니다...”
“자네 조심하라고. 이것도 가택침입이야! CCTV보고 아는 얼굴이라서 내가 올라왔는데. 다음엔 그냥 신고할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


곧바로 차를 돌려 보육원으로 향했지만,, 월요일의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많이 막혀 초저녁에야 도착하게 된다. 웃음소리와 함께 뛰어나와 반겨야 할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시간이면 으레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호통을 치며 그런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고 있어야 할 원장님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삭막하기까지 한 마당을 지나 적막한 식당 안을 멍하니 쳐다보던 난 불 켜진 원장실로 발걸음을 옮겨간다.

“왔어...”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원장님이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날 반기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서류들을 다 꺼내놔서 좀 어수선 한데.. 커피라도 한 잔 타줄까?”
“김선배는요? 다른 사람은 안 왔어요?”
“왔다 갔지.. 그냥 가라고 했어.. 뭐 좋은 일이라고...”
“애....들은..... 어디로 갔어요?”
“다 흩어졌지 뭐.. 시내 사립보육원하고 옆 동네 고아원하고.. 뭐 이리저리 다 흩어졌지..”
“혜빈..이는요?”
“혜빈인 양부모가 먼저 데리고 갔어.”
“양부모요?”
“응. 사정 얘기하니까... 고민을 접고 와서 키우겠다고 하더라고.”
“...”
“다행이지. 서류절차가 좀 남았는데.. 감사원에서도 그 정도는 눈감아준다고 하니 잘 된 일이지..”
“혹시...”
“응?”
“강한상..이라는 남자가 데리고 갔습니까?”
“강한상? 아니.............”
“그럼요?”

부정을 하는 원장님의 목소리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 확인하듯 재차 묻게 된다.

“이건 말해주면 안되는데.. 한씨.. 알지.”
“한씨.. 한선배요?”
“응. 한씨 부부가 자네만큼이나 혜빈이를 예뻐했잖아. 첫 번째 아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많이 망설이다가.. 보육원 사정 듣고 그 고민을 결심으로 바꿨나 봐.. 오늘 절차 끝내고 데리고 갔어.”
“아.... 다행이다.....”
“응. 다행이지...”
“........죄송해요.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그런데..”
“아니야. 다행이지!.. 그럼 다행이지..”
“그런데 무슨 감사가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나옵니까? 아니.. 암행감사라고 해도 보통은 보아지시정도만 때리는 거 아니에요?”
“글쎄.. 내가 또 위에 워낙 못 보였어야 말이지.. 내가 또 위에서 만날 작성하라는 서류 같은 걸 질색하잖아. 컴맹한테 뭔 메일인지 뭔지를 하루 걸러서 보내라고 하질 않나.. 닭 키우지 말라고 해도 우리 닭은 건강하다고 키워도 된다고 화를 내서 그랬나... 텃밭에서 키우던 야채들하고 같이 검사를 받으라는데.. 솔직히 그 검사란 걸 어디서 어떻게 받는 질 알 수도 없고... 에휴~... 애들이 엄마 잘못 만나서 고생만 하네...”
“원장님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세요... 애들한테는 싱싱한 게 최고라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텃밭 가꾸시고 닭 같은 걸 같이 키우면서 아이들한테도 책임감을 길러줘야 된다고 하시면서도 항상 뒤처리는 혼자 다 하셨잖아요.”
“에휴......”
“영업..정지가 아니고... 정말 폐쇄에요?”
“응.. 된통 걸린 거지 뭐..”
“말이 안 되잖아요. 원장님처럼 월급까지 다 털어서 애들한테 받치는 사람이 뭘 잘못했다고..”
“서류.. 가 하나도 안 돼 있다고 하니까.. 그 사람들한테는 다른 건 필요 없데.. 요즘 시대에 CCTV도 없는 시설이 우리밖에 없다나.. 이참에 쉬면서 콤퓨턴가 뭔가 좀 배워야지.. 잘 됐지 뭐..”

말끝을 흐리는 원장님의 목소린 물기로 젖어들고 있었다.
항상.. 억센 아줌마처럼, 엄마처럼 호통만 치던 원장님의 이런 나약해 보이는 모습이 날 더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인 듯.. 나로 인해 발생한 모든 일인 듯 죄인처럼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물을 참게 된다.

“죄송..해요....”
“응?.. 태규씨가 뭐가 죄송해? 그런 말 하지도 마! 내가 괜히 더 미안해지니까..”
“죄송해요.. 제가 더 알아볼게요.”
“됐어.. 괜히 미련만 남으면 가슴만 더 아파. 태규씨도 얼른 집에 돌아가. 밤도 늦었네..”
“.......식사 하셨어요?”
“응... 난 먹었으니까.. 아무것도 없어서 밥 먹고 가라는 말도 못 하겠다.. 얼른 가..”
“..네.”







보육원에서 나온 난 좁은 골목길에 차를 세우곤 조용히 시동을 끈다.
고요한 침묵만이 남은 차안에서 몇 번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옆 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데시보드에서 또 다른 하나의 폴더 핸드폰을 꺼내 조용히 만지작거리다 차에서 내려 후미진 골목길의 한 족 구석으로 걸어가 전원버튼을 길게 누른다.

경쾌한 시작음이 어둠속을 밝히는 파란 화면과 함께 내 얼굴을 비춘다.
잡다한 기능이 아무것도 없는 구형 핸드폰을 켜고 그 핸드폰에 고무줄로 같이 묶여 있던 종이쪽지에 적힌 번호를 보며 버튼을 하나씩 누르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나야.”
[태규냐?]
“그래...”
[이제 전화를 하냐. 한참 기다렸다. 그런데 이거 작동은 되네.. 이런 핸드폰은 거의 18년 만에 보는 거 같아서 망가진 줄 알았는데.]
“청계천에서 구하느라 힘 좀 들었어.. 그런데 얼굴은.. 좀 괜찮냐?”
[너 같으면 괜찮겠냐? 짜고 치는 고스톱도 손발이 맞아야 딱딱 맞게 치지.. 내 이빨 어떻게 할 거야! 하여튼 적당히를 몰라요 적당히를!! 아무리 예고 없이 진행했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을 죽일 작정으로 패냐!]
“미안해.. 알면서도.. 진짜 같으니까 힘 조절이 안 되더라..”
[너 때문에 그 친구 입 막느라고 돈이 얼마나 들어간 줄 아냐! 하여튼 내가...]
“다 갚을게..”
[갚을 능력은 되고!?]
“.....내가 부탁한 건... 어디까지 알아 봤어?”
[아!~.. 그 새끼가 주로 이용하는 은행이 코리아은행인데. 예상대로 거기에 개인 금고가 있더라고.]
“그래?.”
[그런데 열쇠는 어떻게 하려고? 네 말대로 목 짤릴 각오하고 부장님 연줄로 다릴 놓긴 했는데.. 그게 말처럼 들어간다고 쉽게 열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거기다가 그 새끼 연줄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더만.. 그건 어떻게 처리하려고? 의사에 변호사, 검찰, 국회의원까지... 어린놈의 새끼가 제대로 물었더만. 계획대로 된다고 해도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러냐?]
“똑같이 해줘야지...”
[뭐? 똑같이 해주다니?]
“그건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고... 해빈이는...”
[그건 좀 더 손을 써야겠더라.. 이게 은행보다 더 골치 아프던데..한상이 새끼가 보통 꼬아놓은 게 아니더라고..]
“혹시.. 중국 쪽으로 보낸다는 얘긴 없냐?”
[어! 그걸 어떻게 알았냐? 그렇지 않아도 입양 얘기 나오는 거 같던데..]
“그 어린 것을.... 마음대로 입양을 시킬 수 있는 거야? 아무리 한상이 새끼가 인맥이 뛰어나도 그렇지...”
[그러니까 아까 얘기했잖아. 어마어마하다고.. 해빈이 정도야 서류상으로 완벽하게 세탁하는 건 일도 아닌 거 같더만.. 뭐..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그래.. 고맙다. 힘 좀 써주는 김에.... 끝까지 좀 부탁할게..”
[알았다. 그런데 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는 건... 결심을 굳힌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거지?.. 괜찮겠냐?]
“.......”
[이제 시작이야. 준비 기간만 삼주 넘게 걸릴 텐데.. 정말 괜찮겠어?]
“응.. 견뎌야지.. 견디는 건 내 특기잖아.”
[그럼 진행한다.]
“그래.... 그리고....”

잠시 동안 소리를 죽여 심호흡을 하곤 그때 못 했던 얘길 조심스럽게 꺼낸다.

“사정 안 좋으면 얘길 하지.. 왜 얘길 안 했냐... 괜히 무리한 부탁한 거 같아서 더 미안해지잖아...”
[됐어 새끼야! 내가 개인파산을 했으면 했지! 친구 돈 때문에 눈 시퍼렇게 뜨고 날름 할 기회만 노릴 정도로 타락한 새끼로 보이냐? 그리고! 너나 잘 해! 이 븅신아! 얼마나 칠칠치 못하면 가장 중요한 걸 걸고 게임이나 하고 자빠졌냐! 누가 누굴 동정해 이 븅신 같은 게! 크크크~ 어차피 난 망했으니까. 돈 들어가는 거 빼고 있는 힘껏 뒷바라지 할 테니까.. 너나 정신 똑바로 차려!]
“.....고..맙다.”
[지랄한다. 나 땡전 한 푼 없으니까! 치료비나 대 새끼야!]

통화를 끝내고 다시 전원버튼을 길게 눌러 핸드폰을 꺼버리곤 잠시 동안 시골의 찬 밤기운을 눈을 감고 찬찬히 느껴본다. 이 게임을 게임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이제야 마친 자신에게 원망까지 하며 정신을 가다듬기 위한 마지막 심호흡을 하듯 차가운 공기를 폐 속까지 들이마시며 숨을 몰아쉬게 된다.






“띵~~”

화요일 저녁 9시..
장미 무늬가 화려한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기다리던 두 남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앞에 걸어오다 말고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춘다.

“어.. 형님?”
“태규씨..”

“딤섬은 맛있던?”
“네? 아~ 이 경비 안 되겠네.. 남의 사생활을 아무한테나 막 말해줘도 되나? 당장 인터폰으로 그 경비 잘라버리라고 해... 윽!!”

‘퍽~’

주먹에 느껴지는 고통이 이렇게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걸.
이혼 후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다닌 이종격투기체육관에서의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수없이 두드렸을 땐 전혀 느낄 수 없는 불쾌감이 내 주먹에 전해진다. 사람 얼굴에 있는 광대뼈로 전해지는 주먹의 타격감은 연극을 하던 도중 신이의 모습에 광분했던.. 잠시 연극을 잊고 죽자 살자 패던 그 감촉과는 전혀 다른 감촉으로..
처음부터 기회를 노리다 준비하고 친 타격감은 전혀 다른 고통을 내 주먹에 안겨준다.

‘쿵!’

“악!! 한..한상씨!! 당신 지금 뭐하는 거예요!!”

뒤로 날아가 엘리베이터 문에 나자빠진 강한상의 모습에 깜짝 놀란 신이가 한상을 감쌌고, 곧 날 노려보며 큰 소리를 지른다.

“하~.. 이게 뭡니까? 제가 한 번만 참는다고 분명히 얘기 했을 텐데요. 이번엔 저도 못 참겠네요. 함 제대로 뜨까요?”
“쥐를 몰 때도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주고 몰라고 했다.”
“...또 뭔 헛소리입니까?
“넌 보육원은 건드리면 안 됐어.. 아니.. 나를 상대로 뭔 짓을 하던 상관없는데! 네 눈에는 내가 아무리 지렁이같이 하찮게 보여도.... 세상에는 건들지 말아야할 지렁이들도 많다는 거.. 그 지렁이들을 다 밟아 죽이면.. 땅이 죽어가고, 땅이 죽으면 너 같은 기생충새끼들도 살지 못한 다는 걸.. 내가 똑똑히 보여주마..”
“지렁이?....무슨 헛소리냐고. 뭐 잘 못 드셨나...”

“보육원이라뇨??.. 보육원이 왜요?”
“....”
“한상씨.. 지금 저이가 말하는 보육원이란 게.. 제가 알고 있는..... 그 보육원을 말 하는 거예요?”

“무슨 보육원을 말 하는데! 너랑 방금까지 중국에 있다 왔는데 저 헛소리를 믿는 거야? 와~ 진짜 열받네! 뭔 보육원이요!”
“보육원 일을 모른다고?”
“미치겠네.. 형님! 게임이 하기 싫습니까? 아니면 질게 뻔하니까! 이제 와서 술수라도 쓰시려고요!?”
“정말 보육원 일을 모른단 말이지!?”
“어어.. 분명히 한 번 만 참는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보육원을 폐쇄한 게 네가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니까! 그 원장이란 여자한테 물어보라고!!! 생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이게 뭔 짓입니까! 여행 다녀오자마자 주먹부터 날리는 인사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고!”
“너답지 않게 말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
“뭐...?.. 그럼 다짜고짜 한 대 맞았는데. 진정할 놈이 어디 있습니까!

“원장이.. 여자란 건 어떻게 알았어요?”
“뭐!?.....”

“....”

신이의 놀라 떨리는 목소리에 순간 적막이 복도를 뒤덮었다.
강한상이 놈답지 않게 당황한 기색을 잠시 드러내지만 역시나 강한상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뻔뻔하게 말을 이어갔다.

“참.. 너까지 날 안 믿냐? 내가 형님이 봉사활동이랍시고 보육원에 한 달에 한 번씩 다녔다는 걸 몰랐겠어? 이 천하의 강한상이!?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했으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한테 와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되는 거 아닌가? 폐쇄라고 했습니까? 그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형님이 무릎을 꿇고 빌기라도 한다면 제가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생각 못하셨습니까?”
“아니.. 됐다. 너 같은 새끼한테 무릎을 꿇고 빌 정도로.. 비굴하지도 다급하지도 않아. 게임하자..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을 다 끝내고.. 그때 다시 얘기하자.”
“허~.. 뭐야.. 난 또 그 보육원이란 곳에 각별히 애정을 담고 있는 줄 알았구먼.. 그것도 아니셨나보네요.”

“태규씨 가요.. 집에 가서.. 얘기 좀.. 해요.”

“아니..”

“네?? 아니라뇨?”

“오늘은.. 화요일이야. 내일 와... 룰대로.. 당신은 오늘까지 저 놈하고 지내는 룰이잖아... 내일 집으로 와.”
“...”

“.....하하하하하하~. 그렇죠! 룰이 중요하죠. 진짜 즐길만해졌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신이를 남겨두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다.
곧바로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천천히 닫히는 문틈으로 흔들리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신이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한다.




일이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오늘도 난 출근을 해 업무를 본다.

신이는...
한상의 얼굴을 후려갈긴 다음 날인 수요일에 날 찾아오질 않았다. 게임의 룰과 예정대로라면 당연히 내 집에 찾아왔어야 할 신이었지만.. 그 후로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내 앞에 모습조차 보여주질 않았고 당연히 강한상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전화를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럴 의욕까진 들질 않았으며 화를 삭히며 냉정해지기 위해선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동안 업무를 보는 틈틈이 보육원이 있는 구청과 동사무소, 지방자치단체까지 찾아 전화를 걸어 봐도 역시나 적법한 절차와 규범에 맞는 틀 안에서의 감사였고 처치였다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욕지거리가 다였다.

오늘도 답답함에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 한 대를 태우려 한다.
다시 피우게 된 담배는 매번 피울 때마다 내게 어지러운 현기증을 유발하며 자리에 앉도록 만들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박미지가 내게 다가와 작은 화장품 가방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담배도 피워요?”
“여직원들 중에 담배 피우는 여자 많아요. 다 몰래 숨어서 하니까 모르는 거지. 혹시 태규씨도 담배 피우는 여자 싫어해요?”
“아뇨. 저도 피우는데 여자건 남자건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죠.”
“역시...”
“..?”
“태규씨라면 그렇게 얘기 할 줄 알았어요.”
“...식사 안하세요?”
“다이어트해요. 선식으로 간단하게 때우고 남은 에너지바 하나 가지고 올라왔어요.”
“네에...”
“저 저번 주에 모임은 어떻게 된 거예요? 한상씨한테 갑자기 연락이 와서 취소 됐다고 하던데. 그리고 이번 주도 잠잠하고..”
“제가 부탁했었어요. 다음으로 미뤄달라고.... 정확히는.. 일요일에 신이를 제 집에 데리고 있겠다고 한 건데...”
“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기대를 해요?”
“네. 어떤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하고요.”
“........”
“왜 그렇게 봐요?”
“저보고 경멸.. 스럽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런.. 게임을 어떻게 하냐고..”
“경멸이라는 단어는 사용 안 했죠!”
“그래도....”
“태규씨 보니까.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네? 괜찮겠다뇨?”
“그날 정말 좋았거든요. 태규씨랑 신이씨랑.. 한때 좋아했던 남자하고 그 와이프였다는 여자하고 했던 행위를 얘기하긴 좀 웃긴데 어차피 나하고는 상관없는 관계가 됐구나~라고 선을 긋고나니까 오히려 편하던데요. 태규씨도 그런 기분 아니에요? 한상씨하고 신이씨 사이에 껴서 즐긴다는..”
“그렇게 보여요?”
“아니에요?”
“맞죠.... 지금 신이의 남자는 태규니까...”
“그래도 괴롭지 않아요? 아무리 이혼한 사이라고 해도 전 배우자가 다른 상대하고 그렇고 그런 걸 본다면 막 화가 날 거 같은데...”
“화는 나는데.. 어쩌겠어요. 제 삼자라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괴로워해야 할 사람이 제가 아니고 한상이 아닐까요?”
“아~ 그러네.. 하지만 둘 사이를 보고 있으면 완벽한 프리섹스를 위한 관계 같던데.. 물론 신이씨를 끔찍이 위하는 거 같긴 하지만.. 뭔가 어긋나 있다고 해야 할까? 여자의 직감이 무섭다고 하잖아요. 제 느낌에는 둘 관계가 좀 삐걱거리면서도 일방적이라고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들던데...”
“착각이겠죠. 그제도 딤섬 하나 먹으려고 둘이서 중국으로 날아갔다 왔다는데..”
“네? 딤섬을 먹으러 중국을 다녀왔다고요? 여행이나 사업차 갔다가 딤섬을 먹은 게 아니고요?”
“.....네.”
“와~~ 진짜 로맨틱하다.. 신이씨가 딤섬이 먹고 싶다고 했나? 한상씨 보면 저녁도 몸에 좋아 보이는 선식 같은 걸로 해결하던데..”
“부자들 머릿속은 저도 이해할 수 없어서요. 갑자기 먹고 싶어졌나보죠.”
“대~~에박! 나도 초밥 먹고 싶다고 한 번 졸라볼까? 혹시 일본으로 초밥 먹으러 갔다 올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글쎄요...”
“하긴 신이씨니까 그런 대우를 받겠지.. 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겠네요. 호호호~.. 아! 그런데 이번 주 토요일엔 몇 시에 출발할거예요?”
“출발을 하다뇨? 어딜요?”
“아직 한상씨한테 얘기 못 들었어요?”
“....네.”
“저번 주에 미뤘던 모임이요. 한상씨가 태규씨 애인 역을 하라고 하던데. 최대한 야한 복장으로 같이 돌아오는 토요일에 태규씨랑 같이 모나리자 펜션으로 7시에 집합하라고.. 어제 저녁에 연락 왔는데 못 받으셨어요?”
“...연락 오겠죠. 그런데 그 펜션에서 뭘 한다고 하던가요?”
“구릅섹스라고 하던데요.”
“구릅섹스요?”
“네. 초보들이 있어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게임 같은 것도 하는.. 네 커플이 모인다고 하던데요.”
“.....”
“무슨 일 있었어요? 태규씨 얼굴이 정말 안 좋은데...”
“아닙니다. 그럼 그 커플 모임이란 것에 신이는 한상이랑 커플로 참가하겠군요.”
“그렇겠죠? 우리가 커플이라고 했으니까. 커플처럼 놀아야겠죠?”
“....네.”
“그럼...음~~~”
“.....”

갑자기 박미지의 표정이 변한다.
요염한 듯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날 똑바로 쳐다보는 미지의 표정변화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내키질 않았지만.. 어차피 이 게임이란 걸 해야 한다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시 떠올리며 박미지의 그런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왜 그렇게 몸을 비비 꼬으세요?”
“으응~. 우리 본게임 전에 좀 즐길까요? 권투에선 경기 전에 스파링 같은 걸 한다면서요..”
“....여기 서요?”
“음~~.. 우리.. 저기로 가요.”

미지가 손가락을 가리킨 곳은 계단이 있는 건물의 바로 옆 후미진 곳이었다. 안쪽엔 청소도구들을 보관하는 별도 창고가 있는 그곳으로 먼저 박미지가 힐의 또각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며 걸어간다.



‘삐삐삑~삐~~ 띠리롱~’

문이 열리고 조용히 신이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일주일만이다.

“왔어...”

최대한 평범함을 유지하며 머뭇거리며 들어오는 신이에게 인사를 한다.

“...네. 당신은 잘.. 지냈어요?”
“잘 지낼게 뭐 있나.”

일주일 만에 날 찾아온 신이의 얼굴은 많이 초췌해 보였다.
그 초췌함이 강한상이란 인간과의 어떠한 육체적 관계에서 발생했다는 본능적 느낌이 들었기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며 신이를 홀대하게 된다.

“조만간.. 한상씨가 보육원 일에 힘 써준다고 했어요. 아마...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원상태?”
“네. 한상씨는 모르는 일이에요. 저랑 중국에 여행 다녀온 것도 사실이고....”
“그래....”
“정말이에요. 한상씨가 아무리 게임을 즐기고 승패에 연연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비열한 짓을 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겠지.. 나가자.”
“네? 어딜....?”
“밥 먹으러 가자고. 오랜만에 창구 놈도 만나기로 했어.”
“창..구씨요?”

신이는 예전부터 창구를 싫어했다.
‘제 버릇 남 못준다’는 속담처럼 신혼때부터 가장 많이 짓궂게 장난을 쳤던 것도 창구였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할 수 없는 성적 농담도 서슴없이 했던 게 창구였다. 그래서 창구놈 과의 만남을 결혼시절에도 신이는 싫어했다.

내가 창구한테 물이 든다나....

“옷.. 갈아입을게요.”
“왜? 예쁜데.”
“....”


내 집에 오기 바로 전까지 강한상과 파티라도 벌이고 온 듯 보이는 신이의 복장은 가슴 윗부분부터 검은색 시스루로 된 긴 팔 원피스로 오늘도 신이의 잘 빠진 몸매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달라붙는 짧은 길이였고 그 시스루란 망사부위 부분이 등으로 이어져 신이의 엉덩이 바로 위까지 깊게 드러내는 스타일이었다.

신이는 내 말을 듣고는 벗었던 검은색의 벨벳 하이힐에 마지못한 듯 다시 검은색 스타킹에 둘러싸인 맨들거리는 발을 다시 밀어 넣는다.

“어..디가요? 정말 옷 갈아입으면 안 돼요?”
“창구랑 미사리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 오랜만에 예쁜 모습 보여주면 좋잖아.”
“창구씨.....는....”
“창구는 좀 그런가?”
“....아니에요.”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잡설을 웬만하면 안하려 했는데..
드뎌 열번째 출판제의가 들어왔습니다.ㅉ.ㅉ.ㅉ.
웃을수만은 없는게..출판제의를 받을때마다 느끼는 감정때문입니다만.. 사실 착한사람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을수록 다짐과 다르게 많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착사를 중단한 가장 큰 이유가 도작 때문이었습니다. 야설넷이란곳의 무단 복사야 그런가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출판물인양 출판하는 모습을 봐야만 한다는게.. 아마 착사를 다시 올린다면 그사람의 이름으로 또 올라가겠죠.
저작권법을 보호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출판사와의 정식 계약이란것도 알아보다가 알게되었으니 여기에만 올린다는 다짐에 흔들림이 올 수 밖에 없잖아요ㅜㅜ.

그래서 당분간 착사는 올릴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리면 죄송합니다라는 사과와 양해를 함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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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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