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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36 760회 0건

26..


“전화를 했으면...”

신이가 핸드폰이 없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박미지씨랑 어디 가시나 봐요?”
“응?...아!...”

여전히 끼고 있는 팔짱. 신이의 시선을 의식하며 난 부담스러운 박미지의 손을 억지로 푸는데..

“이번 모임에선 제가 태규씨의 파트너잖아요. 옷도 사고.. 쇼핑하러 가기로 했어요.”
“쇼핑이요?”
“네! 신이씨도 준비해야 될 텐데.. 아~ 한상씨가 이미 다 준비했을라나?”
“.....”

기싸움?
미지의 행동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뭔가가 틀어진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주라는 시간동안 한상이 놈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유난히 날카롭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일부러 연출하는 듯 보였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것보다.. 꼭 태규씨가 필요한가요?”
“..네?”
“옷이야 미지씨 혼자 골라도 되잖아요. 굳이 태규씨랑 같이 쇼핑을 해야 되냐고요.”
“.....”
“오늘의 태규씨는 저와 지내야 되는 룰이란 게 있어서요. 쇼핑은 혼자 하시죠.”

둘의 잔잔한 말싸움에 오히려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된 나였다. 차라리 언성을 높이던가,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싸움이라도 한다면 말리기라도 할 텐데.. 마주하고 1.5m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둘 다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 앞에선 여지없이 난 어리버리한 남자일 뿐이었다.

“태규씨. 그 룰이란 거 꼭 지켜야 되요? 어차피 게임일 뿐이잖아요.”
“네?.”
“아니면! 이번 모임에서 파트너 없이 혼자 가고 싶어요?”

역시나 불똥은 내게 튀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남자라면 당연히 피하고 싶을 이 상황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던 나였고 이런 상황자체도 적응할 만한 경험조차 없던 나였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있었기에 난 최대한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자리를 옮긴다.

“미지씨 죄송해요. 오늘 옷은 미지씨 혼자 골라주세요. 어떤 옷을 입으셔도 미지씨는 다 섹시하게 소화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하~..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죠?”
“후회는 매일 하는 거라 서요. 한 번 더 한다고 죽진 않겠죠..”
“알았어요. 그럼 혼자 잘 해봐요.”

쌩~하고 몸을 날 그대로 지나친 미지는 그대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간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뒷덜미를 긁적인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후~.”
“.....미..안해요.”
“당신 오버했어....”
“........”
“내가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선... 미지씨의 역할도 중요할지 모르는데...”
“미안해요.. 지금이라도...”
“됐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춘천은 됐고.. 회사 근처에서 밥이나 먹자. 그런데.. 당신답지 않게..”
“왜요? 마중 나온 게 나답지 않다는 거예요?”
“누가 그걸 얘기해? 지금 당신이 한 행동 말이야. 미지씨도 게임을 도와주려고 그런 거지 그걸 꼭 그런 식으로 얘길 해야 되냐.. 질투하는 여자처럼 갑자기 눈까지 부라리...는... 질투 했어?”
“누..누가 질투를 해요!?”
“왜 화를 내냐....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냥 팔짱을 끼고 있어서.. 좀 놀랐을 뿐이에요..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 줄 몰랐으니까요.”
“가깝긴 뭐가 가까워. 그냥 모임에 파트너니까 분위기나 좀 맞춘 거지... 하긴.. 셋이서 몸까지 다 같이 섞은 사인데.. 이제 와서 질투란 얘기도 웃기네..”
“.........”
“왜 그런 표정으로 노려봐?”
“몰라요!”

내 얘기에 신이가 날 흘깃 노려보곤 입을 삐죽 내밀고 날 그대로 지나쳐 똑바로 걸어간다.
어처구니없는 신이의 행동에 나도 ‘헐~’이란 탄성을 지르며 발걸음조차 늦추지 않는 신이를 따라가게 된다.



난 춘천 닭갈비대신 신이의 퍼플블루코드에 어울리는 조금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정말 오랜만에 칼질을 하며 내 위의 크기를 반도 채우지 못하는 스테이크의 양을 투덜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그냥 닭갈비집이나 가지.. 먹으면서 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을 지어요..”
“똥 씹은?... 하긴.. 이게 8만 원짜리 스테이크란 게 말이 돼? 차라리 집에서 소고기를.. 미안.. 괜히 분위기만 깨고 앉았네.”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게 더 이상해요. 그러니까 닭갈비 먹자니까..”
“됐어! 당신이 질투까지 해주는데 내가 이 정도는 쏴야지!”
“질투 안했다고요!”
“그러던가.. 아! 오늘 아침에 출근하다가 옆집 할머니 만났는데...”
“네!? 뭐라고 하세요? 혹시... 또 욕하진 않으셨어요?”
“욕은 하셨지.. 그런데 욕하시면서 다시는 당신 놓치지 말라고 하더라.”
“......”
“아!. 생각난 김에 밥 먹고 핸드폰 매장 좀 들리자.”
“네? 핸드폰은 왜요?”
“내가 답답해서 못 살겠다. 당신 핸드폰 하나 사자고.”
“.....있어요.”
“있어? 그런데 왜 안 들고 다녀?”
“전화 올 데도 없고.. 굳이 필요도 없는데 거추장스럽기만 해서요.”
“.......혹시.. 한상이가 감시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건 아니고?”
“아니요. 한상씨가 감시를 왜 해요?”
“.....”
“왜요”
“아니야. 밥이나 먹자.”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형님 접니다.]
“그래..”
[지금 미지씨한테 전화가 왔는데 말이죠.]
“미지씨?... 그래서?”
[갑자기 참석을 안 하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
[무슨 일이 있었군요. 혹시 미지씨랑 싸웠습니까? 그럴 리는 없지만.. 미지씨랑 깊은 사이가 되신 겁니까?]
“그런 걸 일일이 너한테 얘기해야 되나? 어차피 미지씨는 들러리잖아.”
[하하하하하.. 하긴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파트너가 없으면 내일 모임은 참석 불간데.. 설마 이번 주도 미루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자꾸 자신 없는 모습만 보여주셔서 이건 게임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헷갈려 말입니다.]
“자신 없는?? 누가 자신이 없을까?? 더러운 뒷공...”

보육원 일이 다시 떠올라 이성을 놓을 뻔 했다.
내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자 신이가 쳐다보는 시선에 흔들림을 발견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냉랭하게 말을 이어간다.

“어차피 파트너는 별 상관없는 모임 아닌가? 그럼 미지씨를 네 파트너로 하고 신이를 내가 데리고 가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시작하면 다 벗고 개떼처럼 몰려서 놀 텐데...”
[아니죠. 누가 그럽니까?]
“뭐??”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제 파트너가 신이고 형님은 제 삼잡니다. 그러니 미지씨를 책임져야 하는 건 형님이란 말이죠.]
“.....미지씨는 어차피 물 건너갔어. 그렇게 파트너가 중요한 모임이라면 차라리 아무 여자나 나한테 붙이던지”
[허~.. 너무 막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자꾸 그러시면 저도 약간의 통제와 제제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
[하하하.. 너무 쫄지 마십쇼. 그럴 생각만 한다는 거지.. 한낱 게임에 제가 힘을 쓰겠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미지씨한테는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서 참석하도록 만들죠. 대신.. 참석하고 나서의 일은 전적으로 형님이 책임을 지셔야 됩니다. 이것도 일종의 배려니까 제 배려에 대한 보답을 하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보답 같은 소리한다.. 알았으니까.. 전화 끊자.”
[그러시죠. 그럼 즐거운 저녁 보내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이프를 다시 손에 들다가 신이의 어두운 표정을 확인하곤 조용히 내려놓는다.

“한상씨가 뭐라고 해요?”
“별거 아니야. 내일 파트너 얘기하는데.. 들은대로 알아서 하라고 했어.”
“...미안해요.”
“뭐가?”
“제가 괜히 질투를 해서.. 놀래켜주려고 하다가 당신하고 미지씨가 나란히 팔짱을 끼고 오길래.. 나도 모르게 괜한 억지를 부렸어요..”
“질투 맞구만..”
“네?...아..니에요.”
“그래. 아니라고 해. 그나저나.. 한 가지만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보다뇨?”
“아.. 잠깐만..”

핸드폰의 배터리를 아예 빼버리곤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핀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미행이나 별도의 도청 같은 걸 붙일 놈은 아니었지만 이 민감한 얘기에 대해선 더 조심을 해야 했기에 철저한 준비를 시작했다.

가방에서 작고 네모난 담배 모형의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스위치를 켠다.
청계천에서 겨우 구한 초소형 전파방해기였다. 반경 5m 정도의 핸드폰은 물론 도청기, 무선 몰카까지도 다 차단해주는 이 기기를 구하기 위해 청계천을 이 잡듯 뒤져서 겨우 구한 고가의 물건이었다.

“그건 뭐에요?”
“그냥 담배케이스야.”
“...”
“혹시 한상이 집에.. 금고 같은 게 있어?”
“금고요? 못 본 거 같은데... 갑자기 금고는 왜요?”
“그래? 하긴.. 저번에도 보니까 테이블 아래에 통장 같은 걸 막 던져놓고 사는 놈이던데.. 금고 같은 걸 놔둘 놈은 아니겠네.... 그럼 말이야. 자동차 키 말고 항상 들고 다니거나 소중하게 챙기는 열쇠.. 같은 건 없어?”
“열쇠라고 해봐야.. 안방 서랍에 있는 몇 개 안되는 게 다인데...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봐요?”
“혹시 항상 들고 다니는 열쇠는 없어?”
“항상... 아.. 자동차 스마트키에 걸고 다니는 작은 키를 본 거 같아요..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확실 한 건 아닌데..... 그런데 왜 이런 걸 물어봐요?”
“.......”
“무섭게.. 왜 그래요? 혹시.. 엉뚱한 생각 같은 거 하는 건 아니죠?”
“응?.. 그냥 물어본 거야. 엄청난 부자 놈들은 어떻게 사나해서...”
“태규씨.. 게임.. 은 그냥 즐겨요. 그냥 즐기기만 하고.. 져도 어떻게든 태규씨한테 피해가 덜 가도록 노력할 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이상한 짓도 하지 말아요... 한상씬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
“게임만 좋아하고 돈만 많은 프리랜서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럼?”
“가끔... 보기에도 무서워 보이는 남자들하고도 같이 어울려서 식사를 하고.. 돈을 주고받기도 해요.”
“무서워 보이는 사람이라니? 깡패 같은??”
“단순한 동네 깡패가 아닌 것만은... 저같이 눈치 없는 여자라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인맥이었다.
현민이 조사했던 내용대로 국회의원까지 섭외 한 한상의 능력으로도 현실 가능한 얘기다. 아니.. 오히려 그쪽이 더 먼저 생각했어야 할 인맥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엉뚱한 생각하지 말라고요...”
“기껏 해봐야 몇 대 맞고 말지 뭐. 크크크~”
“태규씨!.... 농담으로 듣지 말고요.. 저한테도 즐긴다고.. 말 했잖아요. 그냥 즐기기만 해요.. 당신 다치는 거.. 정말 싫어요.”
“......알았어.”
“.....”
“밥 먹고 영화 보러 갈까? 요즘 재미있는 거 많이 하던데.”
“...네.”

내일을 위해서라면 오늘은 힘을 아껴야 된다는 생각으로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자 한다.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신이의 얼굴에 오늘만큼은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를 봤고, 곧바로 집으로 향하게 된다.






“가죠. 지금 가도 늦어요.”
“그래요. 갑시다.”

몇 가지를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많이 늦었다.
이미 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박미지를 태우자마자 차를 출발한다. 예상대로 박미지는 내게 눈길조차 한 번 주지 않은 채 차에 올라 날 재촉하기만 한다. 나도 박미지와 같이 가기 싫었지만 오늘의 목적은 이 변태적인 모임만이 아니었기에 서둘러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도착한 펜션은 펜션이라기보다는 별장에 가까웠다.
2층 구조의 커다란 복층 건물은 일반 펜션과는 달리 펜션간 거리가 상당했고 그래서 음밀한 밀회나 모임을 갖기에 최적화 된 형태처럼 보여졌다.

내 차가 도착했을 땐 이미 세 대의 고급 세단과 외제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망설일 시간도 없이 나와 미지는 그 펜션의 문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후 강한상이 문을 열며 우리를 반긴다.

들어가자마자 거실로 보이는 넓은 공간의 중앙에 위치한 ㄷ자 형태의 소파에는 이미 두 쌍의 커플과 얇고 흰 골덴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신이가 앉아 있었다.

빈 술병들로 이미 음주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8시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벌써 9시가 다 됐습니다.”
“미안.. 급하게 회사에 일이 생겨서..”

“강군 뭐해! 빨리 놀자고.”
“하하. 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야죠. 마지막 멤버도 왔으니까요.”
“오~ 어서 오시게!”

소파에 앉아 술잔을 들어 거만하게 인사를 하는 뚱뚱한 남자는 어디선가 봤던 인물처럼 낯이 익다.

“소개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정도는 알아야 서로 어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여기 계신 분은 김의원님, 이 분은 조사무관님이십니다. 인사들 나누시죠. 이 분은 새로 오신 김과장님 되십니다.”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강한상은 날 과장이라 호칭하며 사람들에게 소개를 한다.

“자자~ 오늘은 예고 한대로 홀딱 숍니다! 이제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탈의들 하고 오시죠!”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한 사람들은 정해놓은 듯이 엇갈림 없이 방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까운 큰 방으로 강한상과 신이가, 그리고 위층에 두 커플이 올라갔고 나와 미지는 1층의 옆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멀뚱히 방안을 구경하는 나와는 달리 박미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하나씩 다 벗기 시작했다.

“뭐해요? 안 벗어요?”
“응?.. 벗..어야죠. 그런데.. 왜 번거롭게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는 거죠? 놀다보면 자연스럽게 벗고.. 그런 거 아닌가요?”
“이곳은 사적인 공간이라는 거 같아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공용공간인 거실 같은 덴 서로 같이 즐기고 이곳은 동의 된 파트너나 권태로운 파트너만 들어온다고 하던가..”
“... 그렇군요.”
“저도 딱 한 번 밖에 안 와봐서 잘 몰라요.”
“그때도 여기로 오셨어요?”
“네.”
“그럼.. 저기 있는 사람 중 그때 왔던 사람이 있어요?”
“김의원님이요. 여자는 달랐지만..... 분명 저 뚱띵이는 그때 만났던 남자가 확실해요.”
“여자가 달라요?”
“네. 아!!”
“....왜요?”
“그때 있던 파트너는 파트너가 아니었네.. 그냥 저처럼 따라 나온 여자였던 거 같은데...”
“미지씨처럼 따라나온??”
“네. 분위기도 그렇고.. 하여튼 빨리 나가요. 사람들 기다리겠어요.”
“네..”

서둘러 옷을 벗고는 미지의 뒤를 따라 거실로 나가게 된다.
확실히 이 어색함은 나만이 느끼는 듯 보일정도로 이미 거실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모두 알몸인 채로 스스럼없이 술을 즐기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어색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있었다. 신이와 김의원이란 남자의 파트너.. 분명 그 둘은 남자들의 알몸에 당황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편해 보이진 않는 듯 시선을 연신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역시나 강한상의 축 처진 커다란 자지가 가장 눈에 먼저 띤다.

“처음이라서 긴장 많이 하시나보네. 하하~ 앉으시죠.”

사무관이라 불린 남자가 멀뚱히 서 있는 나와 미지를 불러 앉혔고 우린 곧 테이블을 기준으로 빙~ 둘러앉은 알몸의 일행들에 합류하게 된다. 스와핑 모임이나 노래방 도우미들과의 시간, 박항구와의 만남에서도 이런 어색함은 못 느꼈었는데,,, 이상하리만큼 내 자신이 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파트너들과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며 얘기를 나누는 이 순간에 혼자 외톨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잔에 담긴 도수 높은 술로 목을 축이며 나누고 있는 대화를 듣기만 하고 있다.

나와는 거리가 좀 먼..
사람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는 경제, 정치 얘기가 주를 이뤘고 농담 같은 서민체험같은 얘기도 간간히 섞어 얘길 하긴 했지만 확실한 건 나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대화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잡담은 그만하시고. 모여서 포커나 치고 사담이나 나누는 건 다음에들 하시죠.”

말을 끊고 의견을 내듯 조금 큰 목소리로 얘기를 하는 강한상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이 된다.

“매번 똑같은 모임과 섹스도 식상하지 않으십니까?”
“그럼?”

“하긴.. 블랙잭 하다가 술 먹고, 그러다가 뒹굴고.. 이제 좀 지루하지. 그럼 뭔가 색다른 게 있나?”

“그래서! 제가 이 형님을 모신 겁니다!”

말을 하며 손으로 날 가리키는 강한상. 일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술을 홀짝거리며 마시던 난 순간 스포트라이트라도 받은 배우처럼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날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쿠..쿨럭.. 나??”
“이 형님이 일명 섹스 머신! 파티플래너 같은 분이라 이겁니다!”

“오~~ 강군이 갑자기 사람을 영입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 했는데.. 역시!! 하하하.”
“파티플래너라.. 어떻게 놀자는 건가?”

“네! 의원님. 그건 이 김과장님이 이제부터 말씀을 해 주실 겁니다.”

“......”

어색하다.
아니.. 쪽팔리고 창피하다라는 감정이 온 머리를 휘젓기 시작했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모임이 날 희롱하기 위한 모임일지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내 뒤통수를 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한 채 술만 홀짝거리다가 제대로 얻어맞은 꼴이 되어버렸다.

그때.. 당황하는 내 모습을 낄낄거리며 신이난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한 강한상의 옆에서 신이가 잔뜩 걱정서린 시선으로 날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음~.. 우선.... 인사드리겠습니다. 일개 나부랭이인 절 이런 곳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짝짝~~.”

“우리 강군이 이렇게 갑자기 소개를 할 줄 알았으면 좀 더 멋진 멘트를 준비할 걸.. 그랬네요. 하하..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이런 변태적이고 더러운 모임에...”
“허흠...”

의원이라 소개했던 남자가 내 단어 선택이 껄끄러운 지 헛기침을 크게 한다.
그리고 그런 의원의 모습에 강한상이 또 낄낄거리며 작게 웃는다.

“모임에.. 뭔 놈의 게임을 한다는 건지 참~.. 하지만! 이왕 놀 거 더럽고.. 변태적일수록 더 화끈 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놀라면 제대로 놀아야지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놀려고?”
“그거야...”
“......”
“...........”

순간 정적이 흐른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되는데.. 입에서 말이 맴돌고 좀처럼 밖으로 튀어나가질 못하는 경험을 지금순간 하게 된다. 이 만남의 의도를 너무도 잘 알게 된 난 다시 한 번 신이의 얼굴을 쳐다보곤 이내 주먹을 자연스럽게 펼치며 나도 놀랄 정도의 능글맞음과 언변으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게임을 해야죠.”

일순 웅성거림이 내 귀에 들려온다.
사람들의 시선은 ‘갑자기 무슨 게임이냐?. 게임? 무슨 게임? 섹스 자체가 놀인데 파트너나 빨리 정하고 찢어질 것이지..’등등의 감정들이 뒤섞인 채 의아한 듯 나만을 바라봤지만 난 한 발 더 나아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빈 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만지작거리며 얘길 이어갔다.

“어차피 여기 모이신 분들은 삶의 권태로움에 짜릿한 경험을 위한 모임 아니십니까. 그럼 게임만큼 흥미롭고 재미난 게 없지 않을까.. 하는데 말이죠.”
“무슨 게임을 하자는 말씀이죠?”

계속 날 비웃듯 쳐다보던 강한상이 조금은 경직된 얼굴로 날 똑바로 쳐다본다.
내 예상대로 이 모임 자체가 섹스를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기에 유희보다는 유흥을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즐기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의 얼굴과 몸을 다시 한 번 관찰하듯 둘러본다.

김의원이라 불린 남자와 그 옆에 앉은 여자.
50대 정도로 보이는 김의원이라는 남자와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분명 부부가 확실했다. 비슷한 모양의 반지와 그리고 바짝 붙어 앉아 있는 형태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관계였다. 뚱뚱한 김의원과는 달리 전형적인 사모님의 모습을 하고 곱게 머리를 따 올린 그의 파트너에 대한 추측을 한 후 옆에 앉아 있는 조사무관을 쳐다본다.

많이 마른 타입의 조사무관과 육덕진 그의 파트너..
연인이든 그 이상이든 분명 밀접한 관계만은 확실했다. 김의원과 같이 액세서리를 맞추고 나온 건 아니었지만 연신 조사무관의 자지를 주무르고 있는 그의 파트너에 행동으로 부부보다는 연인이나 섹스 파트너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세 커플의 모습과 박미지가 했던 말, 그리고 신이의 방어적인 행동들을 확인하며 한 가지 추리를 조심스럽게 더 해본다.

“오늘 모임은 특별하다고 들었는데.. 각자 소중한 파트너 분들을 모시고 모인 건 처음 아닌가요?”
“그렇지!”

무의식중에 김의원이 내 말에 동의로 내 추측을 어느 정도 확신하도록 도와준다.
김의원의 파트너가 김의원이 눈치까지 보게 거북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그럼 분위기부터 풀어야죠. 남자들만 좋다고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말했잖아. 게임으로 분위기를 띄우자고.”
“게임이요?”
“음.. 이건 나도 해본적은 없는데 말이야... 여러분들만 동의해주신다면 재미있게 할 만한 게임 같더군요.”

한상이에게 말을 하다말고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룰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희가 네 커플이잖아요. 테이블을 4등분해서 가운데에 올려놓은 병을 돌리는 거죠. 그리고 그 병이 가리키는 첫 번 째 지목자가 술을 따르는 겁니다.”
“에이~~ 식상하게 술 먹기 게임인가?”
“단! 두 번째 지목된 커플에 여자의 그곳에 술을 따라서 정성껏 비워주는거죠!”
“그곳??”

김의원이 내가 그의 파트너 가랑이 사이를 가리킨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곤 히쭉히쭉 웃기 시작했다.

“그럼.. 여기 있는 여자들 그곳에 술을 따른 남자가 시음을 한다?”
“그렇죠!”
“오~~..크크.. 그거 재밌겠군.”

“난 싫어요..”
“싫어?”

“싫으시면. 술을 드시면 됩니다. 아주 간단한 얘기죠. 아래로 드시던 위로 드시던 그건 자윱니다!. 단! 아래로 받으실 땐 따라주신 분이 흑기사처럼 드시겠지만.. 위로 받아 드실 땐..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드셔야 됩니다.”
“....”
“...”

“해보자. 어차피 우리 관계 개선하러 온 건데..”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창피해.. 죽겠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자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빙그르르르르르르르르~~~ 탁탁...탁.....탁...’

첫 번째 병은 운 좋게도 내 방향에서 주둥이를 멈춘다.

“허.. 이게 참..... 주인을 알아보네요.”
“참나.. 첫 판부터.. 잘 좀 해봐요...”

미지가 기가 차다는 듯 날 노려본다.

“그럼 시중들 하인은~~~”

‘빙그르르르르르르르르~~~ 탁탁...탁.....탁타타..’

“오~~~.”

이걸 운이 좋다고 얘길 해야 할까?
두 번째 방향의 주인공은 김의원이라 불리는 뚱뚱한 사람이었다.

“크크크크~.. 엿차...”

뚱뚱한 엉덩이를 드러내며 김의원이 일어나선 옆에 있던 높은 도수의 병을 들고 천천히 걸어온다. 그러나 정작 우리 앞에 서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날 멀뚱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해. 잔이 됐으면 준비를 해야지.”
“네?.. 어떻게요?”
“내가 도와줄까?”
“뭘... 헉!..”

미지를 그대로 눕히곤 두 발목을 잡아 있는 대로 미지의 머리 방향으로 잡아당겨 엉덩이를 하늘로 크게 치켜 올렸다.

“아파요!..윽..”

“자~ 준비는 됐습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쓰읍~.. 흐흐.. 이거 참... 이런 남사스러운 짓은 난생 처음인데...”

말은 점잖게 하는 김의원이었지만 이미 그의 시선은 미지의 크게 벌어진 엉덩이 사이에 꽂혀 미동조차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 느끼하고 징그러운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왜 미지가 김의원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는지를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그럼.. 차려진 술상이니 맛있게.. 먹어야지..”

‘또르르르르~~‘

“앗!.. 차..차가워.. 자..잠깐마...ㄴ... ”

엉덩이를 하늘로 추켜세우고 있는 미지의 보지를 손가락으로 벌린 김의원은 곧 술병의 주둥이를 그 곳에 맞춰 안에 들어있는 술을 따르기 시작했고, 금세 작은 잔은 가득 채워져 미지의 아랫배를 타고 가슴과 목으로 그대로 흘러내려기 시작했다.

“씁... 아...이거.. 참... 힘 조절이 힘드네..흐흐흐~... 그럼... 이제 시음을.....”

손등으로 흐른 침을 닦은 김의원이 아주 잠깐 그런 자신의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파트너를 향해 줬다 뺏고는 천천히 허리를 숙인다.

“윽~..”
“흐후루룹~~..쩝..흡흡~~ 쓰읍..쯥씁~~”
“아~~~”

잡고 있는 미지의 발목을 천천히 기울이자 잔뜩 추켜세워졌던 엉덩이가 천천히 김의원의 방향으로 내려갔고 아예 그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담긴 술을 맛보고 있던 김의원이 대놓고 마셔대기 시작했다.

그 찰나에 곁눈질로 난 사람들의 시선을 훔쳐본다.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미지를 뒤로하고 노려보듯 자신의 파트너인 김의원이란 남자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 그리고 이 관경에 혼이라도 빨린 듯 연신 서로의 음부를 주무르며 서로를 애무하고 있는 조사무관.. 미지정도는 아니었지만 인상을 작게 쓰고 있는 신이와 이런 내 예상 못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나와 눈이 마주친 강한상...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김의원의 행동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강한상만은 예외였다.
강한상은 내 뻔뻔하기까지한 행동과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김의원이 아닌 날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쩝쩌~..캬아~~ 이게 옥문주란 거구나~~ 크크큭~”
“아씨.. 다 젖었잖아... 이번엔 내가 돌릴래!!”

‘빙그르르르르~~~ 탁...탁.“

다시 돌기 시작한 병의 주둥이가 신이를 향했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놀란 신이와는 달리.. 김의원과 조사무관이란 남자의 눈빛이 번뜩이며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변했다.

“오~.. 이번엔 한상씨 파트너네.. 오늘의 히로인이시네! 하하하....”

“하하하.. 이거 어쩌냐.. 신이야 준비 해야겠는데..”
“이런 거 싫어요.....”
“싫어도 어쩌겠어.. 형님이 이런 게임이라는 걸 시작한 건데.”
“....”

“어서 돌리자고.. 저기 진행자 양반..”
“진행자? 저요?”
“그래! 자네 말이야. 이거.. 술만 마셔야 되나? 아니면....”
“의원님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고요... 게임이란 게 즐길수록 재미진 거 아니겠습니까..... 우선 돌리겠습니다.”

‘빙그르르르르~~~ 타타..탁’

“아~~..”
“아고.. 아까부라....”

“허.. 이거 이번엔 제가 걸렸네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들고 천천히 신이에게 걸어간다.
그런 내 행동에 신이가 뒤로 엉덩이를 빼며 나와 강산상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봤지만.. 내가 들고 있는 술의 도수는 대략 40도가 넘는 야주였기에 마실 엄두를 못 내는 듯 신이의 얼굴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그냥 마실게요.”
“네?.....”
“주세요.. 마시면 되는 거죠?”

--계속--

늦어서 죄송합니다.
점심 먹고 부랴부랴 쓰긴 했는데... 이번주에 생각지도 못한 업무로 일이 많아졌습니다.
좀 늦어도 양해부탁드리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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