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 머리가. 아파서...내가 좀 미쳤나 보다.. 미안..”
비굴하게 사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긴 싫었지만..
강한상에게 정말 아픈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변명같이 허접한 짓을 하며 사과를 하게 된다.
“......”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런 소문 나봐야 좋을 게 없잖아. 안 그래?”
“소문이요?”
“그렇지! 소문.. 그래도 강회장이라고 불리는 너 아니냐... VVIP회원이라면서.. 체통을 지켜야지..”
“꼴깝떨고 있네...”
“무..뭐??”
강한상의 혼자만의 중얼거림이 내 귀에 분명 들렸지만.. 더 이상 따져들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 하죠.... 매니저!!”
“네?..네!..회장님....”
“오늘 일은 알아서 처리 해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가자.”
“가..감사합니다.”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한참이나 고정 된 남자를 자세를 보며 당장이라도 일으켜 세우고 싶었지만.. 신이의 손을 잡고 나가버리는 강한상의 뒤를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으며 우선 따라간다.
마사지 룸의 문 앞에서 옷을 다 입고 엘리베이터로 뛰어가 보지만..
이미 닫히기 시작한 엘리베이터의 문은 매정하게도 날 기다려주지 않았다. 거의 닫힌 문 너머에서 신이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스치듯 내 시야에 잡혔지만.. 신이조차도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멈춰주진 않았다.
B4...B3..B2.....
지하 2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는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고 결국 빈 엘리베이터에 홀로 타게 된 나였다.
강한상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분노로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난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미쳤었던 게 분명했다. 이 중요한 순간에 마사지라는 것에 취해 졸기나 하고.. 거기다가 강한상의 심기까지 제대로 건드리게 되다니...
생각을 정리하며 지하 2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보지만.. 이 넓은 공간에서 강한상의 차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이미 출발한 듯 엔진음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만이 주차장 안을 채우고 있었기에 체념하듯 그 자리에서 멀뚱히 서있길 계속 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신이다.
“여..여보세요!”
[한상씨가.. 피곤하다고 먼저 나왔어요.]
“그래... 괜찮아?”
[저요?]
“당신도 그렇고.. 강한상이도...”
[.......]
“얘기 안 해도 괜찮아.. 한상이 많이 화났어?”
[....네.]
“역시..........”
[그럼 전화 끊을게요..]
“잠깐만 신이야..”
[네?]
“다음...주 수요일에는 예정대로 오는 거지? 아직....게임이 안 끝났잖아.. 앞으로도 3주..4주는 남았는데..”
[잠깐만요...]
침묵이 핸드폰 너머에서 내 귀를 간질인다.
들려오는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귀에 온 정신을 집중해 보지만 무음으로 돌려놓은 듯 미세한 중얼거림 하나 들리지 않았다.
채 20여초도 지나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내겐 20여분과도 같은 긴 침묵처럼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고요했던 핸드폰 너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이의 숨소리가 전해졌다.
[네.. 예정대로.. 다음 주 수요일엔 찾아 갈게요..]
“그래... 신이야.”
[......네.]
“아니다. 한상이한테... 오늘 미안했다고 다시 한 번만 얘기해줘.”
[..........네. 알겠어요.]
“그래.... 그럼.. 잘 쉬고....”
[뚜뚜뚜~~~뚜~~~]
끊어진 핸드폰을 잠시 내려다보던 난 너무나 일찍,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어이없는 과정으로 끝나버린 세 번째 만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게 된다.
강한상이 아무리 권력과 돈을 양손에 쥐고 있는 놈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20대의 철부지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자 내겐 새로운 고민이 생기게 된다. 냉정하고 철저한 완벽주의자라고 여겨졌던 강한상이 이런 감정적인 면을 숨기지 못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면...
게임에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고민에 고민을 더 하게 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감정이란 소용돌이를 제대로 제어할 수 없는.. 그런 놈이 강한상이라면 이 게임이란 것이 어디로 튈지 모를 폭탄과도 같이 불안전한 요소들이 잔뜩 생겨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이다.
갑자기 술이 당긴다...
“오늘 한상이와 만나기로 한 거 아니야?”
“그랬지...”
“그랬지라니? 만나긴 한 거야?”
“...응.”
“아직 5시밖에 안 됐어. 뭐야?”
“그러게.....”
“야!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봐! 뭔데!?”
“그 휘트니스 클럽이란 델 갔는데.. 어마어마하더라고.. 무슨 종합운동장만한 게.. 수영장도 있고.. 헬스클럽도 동네랑은 비교도 안 되고.. 레스토랑에.. 마사지 룸도 호텔방처럼 여러 개가 있더라고..”
“말 했잖아! 거기 장난 아니라고!”
“......”
“그래서? 수영하고 곧바로 나온 거야?”
“아니.. 수영하고.. 헬스 갔다가..”
“헬스를 가?”
“응..”
“웬 헬스? 좆 빠지게 박고 온 게 아니고 좆 빠지게 뛰다 온 거냐?”
“거기에 마이클이란 친구가 있더라고...”
“마이클? 뭔 소리야?”
“흑인.. 헬스 트레이넌데.. 팔뚝이 우리 허벅지만하더라..”
“팔뚝이? 그래서? 그 놈하고... 쓰리섬???”
“그 친구 자지가... 이만하더라..”
이른 시간 막 문을 연 호프집에서 현민이 놈과 맥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얘길 나누던 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박스 안에 들어 있던 안주거리로 보이는 대형 소시지를 꺼내 현민이에게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이..이만하다니? 진짜!? 이게 사람이냐!? 야! 아무리 그래도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뻥을 치냐!”
“그렇지? 뻥 같지??? 그런데 진짜 이만 하더라고...”
“그..그럼 이만한 걸 신..이씨가??? 보지가 남아나... 아! 미안하다...”
“.....”
“진짜 큰일이다.. 이런 걸 한 번 맛보면.. 우리 같은 놈들은 맨땅에 헤딩.. 아니지.. 양동이에 젓가락질 하는 거 같을 거 아니야.. 와~ 진짜 이만 한....”
봉지에 담겨 있는 소시지를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에 쥐어보는 현민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게 된다. 그런 내 어이없는 웃음에도 현민이는 정말 못 믿겠다는 듯 그 소시지를 계속 만지작거리더니 급기야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소시지의 굵기를 재고는 자신의 물건과 비교를 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뭐하냐?”
“와.. 이게 들락거리면 진짜 허벌창이..... 진짜 했어? 신이씨가.. 이런 걸 받아들이던?”
“아니.. 끝까지 거부하더라고...”
“그래? 그렇지! 아무리 신이씨가 변했어도 이런... 걸...... ”
“그만 만지작거려라 새끼야!”
“아니.. 너무 신기해서.. 야동에서나 봤지.. 진짜 이런 걸 달고 다니는 놈이 있구나.. 해서....”
“...”
“와.. 씨발 졸라 부럽네.. 딱 하루만 이렇게 육중한 걸 달고 다녀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게 좋냐? 굵고 길고.. 그런 거 싫어하는 여자들도 많아.”
“하~.. 이 친구야! 네가 뭘 몰라서 그렇지 작다고 투덜거리는 여잔 많이 봤어도 굵고 길다고 짜증내는 여자는 한 번도 못 봤네요!”
“그건 네가 작으니까 그런 거지!”
“아! 그런가?? 하하하하하.”
“미친..놈..”
“아! 그런데 한상이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어?”
“응..”
“그런데 신이씨가 거부를 했다고?”
“룰이니까.. 모든 결정권은 신이가 마지막으로 내리기로 룰을 정했으니까.”
“그래도 그 한상이란 놈이 가만히 있을 놈이냐? 완벽주의자도 그런 완벽주의가 없더만. 다 준비하고 갔을 거 아니야. 그런데 신이가 거부를 하면.. 그 놈 성격에 가만히 있었다는 게 더 이상하네.”
“내 예상이 맞는다면.. 한상이 그 새끼야 말로 이런 게 익숙하지 않은 게 분명해.”
“뭐? 동영상도 봤다며?”
“아니.. 이런 경험이 없다는 게 아니라.. 신이와 만나고 나서 말이야.”
“그게 말이 돼? 첫날 신이씨 복장도 장난 아니던데.. 너한테 그동안 일도 다 얘기 해줬다며, 그 얘기가 맞으면 말이 안 되지!”
“그러니까.. 허풍이거나 거짓이라는 거지.. 그동안에 한상이놈이 내게 한 얘기가...”
“신이씨도 다 고백했다며?”
“그것도... 거짓말이야. 그건 확실해.”
“하~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그러게 말이다...”
“됐다. 어차피 화요일에 금고부터 열어보면 알겠지.. 술이나 마시자.”
“그래.. 마시자.”
“아!!”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남자끼리 술을 마셔야 되겠냐?”
“그럼?”
“넌 새끼야! 양심이란 게 있으면 그럼 안 되지!”
“또 뭐가!?”
“넌 신이씨가 있으면서 미지씨인가 뭔가 하고도 대놓고 배꼽까지 맞추면서 스와핑 모임까지도 다녀왔다면서! 난 뭐냐고! 뒷조사는 뒷조사대로 좆나게 하고 다니면서...”
“...”
“아.. 진짜 친구 하나 잘 못 둬서 이게 무슨 쌩쇼냐고!”
“그래서 어쩌라고...”
“미지씨 불러서 술 한 잔 하자!”
“미지씨를? 너 제정신이냐? 제수씨 안 무서워?”
“솔직히 말 할까?”
“뭘?”
“네가 신이씨한테 하는 거 보고 마누라한테 다 사실대로 말했거든..”
“뭐? 뭘 다 말해?”
“나 언제 모가지 날아갈지 모른다는 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친구 놈이라도 챙겨주고 싶다고 솔직히 털어놨지.”
“뱃속에.. 아기도 있다면서.. 그런 걸 왜 얘기 하냐..”
“우리 마누라가 좀 대범해야지.. 웃더라..”
“뭐? 웃..다니? 제대로 얘기 한 거 맞아?”
“응.. 다 까발렸다니까.”
“그런데 웃어?”
“나보고.. 그래서 머리가 빠진 거냐고.. 혼자 고민하다가 원형 탈모증이 그렇게 커진 거냐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콧잔등이 시큰했다니까...참나... 망할 여편네....”
“........”
“잘 됐데.. 남의 돈 가지고 장난친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니까.. 평생 갚을 각오로 어떻게든 살면 되지 않겠냐고. 혼자 고민만 하지 말고 차라리 털어놓고 머리를 맞대자고.. 하면서.. 웃어주더라.”
“...........”
“네 와이프만 잘 난 줄 아냐! 내 와이프도 한 몫 하는 여편네야! 이거 왜 이래!”
“미친놈.. 그런 제수씨를 놔두고 뭐? 미지를 불러?”
“이거 참 뭐라고 말해야 되나... 다 까발렸다니까.”
“...?”
“네 얘기하고 신이씨 얘기.. 어차피 하는 김에 다 얘기 했다고..”
“잘 한다.... 참나.. 뱃속에 태아는 생각도 안하냐!?”
“나도 많이 고민했지!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지 않냐.. 와이프도 많이 놀란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숨만 푹푹 쉬는 내 모습을 이해가 돼서 덜 불안하다나... 그리고 이왕 말 나온 김에 산후조리 하고 조금씩 시작해보자고도 하고..”
“뭘 시작해?....설마!!?”
“크크.. 매일 보는 게 그 짓이고 듣는 게 그 얘긴데.. 내가 고자냐? 미친놈 미친년 하면서도 마누라한테 그 얘기하면서 얼마나 꼴리던지..”
“진짜 미쳤구나.. 나야 어쩔 수 없이 하는 게임이라지만.. 애까지 있으면서 그러고 싶냐?”
“와~ 이 새끼 봐라.. 애 있으면 부부생활도 즐길 수 없는 거냐? 애 있으면 빠구리도 자유롭게 못 뛰는 거야?”
“참나.. 그걸 말이라고..”
“애랑 있는 시간은 애한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고! 단 둘이 있을 땐 둘한테 최선을 다하는 게 부부가 아니겠냐고!”
“알았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
“목소리 낮추게 생겼냐!? 지는 할 거 안 할 거 다 하면서! 뭐? 애까지 있으면서??”
“...”
“넌 애 안 키워봐서 모르겠지만! 애 하나 키우는데 얼마나 진이 빠지는 줄 아냐? 낮에 일하고 들어가면 밤새 칭얼거리는 애 때문에 잠도 못 자지! 휴일만 돌아오면 하루 종일 애랑 씨름해야지.. 집에서 애 키우는 와이프는 노는 거 같지? 아침에 남편 출근하고서부터 전쟁이야 전쟁. 젖 물리랴 이유식 챙겨 먹이랴.. 청소하랴 빨래하랴.. 그렇게 힘들 게 키워놓고 좀 즐기자는데! 그게 죽을죄를 짓는 거냐고.”
“알았어... 미안하다.”
“미안하면 부르자.”
“뭘 불...”
“미지씨도 오늘은 혼잘 거 아니야.”
“지금 미지를 부르는 게 더 웃기고 창피한 일인 진 모르겠지?”
“뭐가 창피해?”
“그렇잖아....그리고 네 말은 충분히 알겠는데.. 그래도 즐기려면 같이 즐기던가.. 해야지.. 나중에 제수씨가 배신감 느끼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그건 걱정마라.. 이미 다 얘기 했다니까!”
“하....”
“나도 좀 제대로 뽑아보자고!! 저번에 노래방 갔다 온 후로 딸딸이면 세 번 쳤다!”
“......”
“내가 니 시다바리냐? 아니지.. 시다바리도 심부름 잘하면 상이란 걸 준다던데.. 시다바리보다 못 한 똥개네! 똥 개!!”
“아..알았어.. 대신 장담은 못 해.. 벌써 다른 모임에 갔을지도 모르고... 전화를 안 받을지도 모른.. 아씨.. 진짜 안 되는데...”
“왜 자꾸 안 된다고만 하냐고!?”
“...나 사실 제대로 미지씨 깠단 말이야..”
“까다니?”
“사실은....”
며칠 전..
승진을 하고 난 직후 현민이와 만난 그날의 사건을 이제야 사실대로 얘길 하게 된다.
“허~. 그럼 미지씨 혼자 모텔 방에 남겨 두고 왔다고?”
“....응.”
“....”
“그리고.. 회사를 안 나가서 아직 얼굴 한 번 못 봤다...”
“허~~~. 너 미쳤구나..”
“....”
“미지씨랑 관계를 안 좋게 만들어서 어쩌려고.. 그러다가 작정하고 한상이쪽에 붙어서 너 골탕 먹이면..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냐?”
“그렇지 않아도 좀 걱정이 되긴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미지씨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차피 들러리밖에 안 될 텐데..”
“그건 모르지 새끼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데 적을 왜 만드냐!?”
“........휴~.”
“전화 해!”
“....뭐?”
“전화하라고! 풀어줘야 할 거 아니야. 생각해봐라! 무슨 꼬투리라도 잡히게 됐을 때 미지씨가 도움일 될 사람이었으면 좋겠냐? 아니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사람이 됐으면 좋겠냐? 당연히 후자지! 전화해서 풀어줘야 할 거 아니야!”
“야! 너 지금 속이 뻔히 보이거든!”
“뻔히 보이든 안 보이든! 오늘밖에 시간 없어. 내일도 또 나랑 만나봐라. 한상이 놈이 의심이라도 하면 어떻게 할래?”
“말은... 알았어..”
어차피 미지에게 전화를 한 번 걸어 그때의 일을 제대로 사과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난 회사보다는 이런 사적인 공간이 더 편할 거란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떠올라 미지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누르려다 만다.
“그런데..”
“..응?”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박미지란 여자가 벌써 나한테 앙심을 품고 있다면.. 너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실이 될 확률이 더 높지 않겠냐?”
“그건 내가 누군지 알았을 때 얘기지. 저번처럼 그냥 거래처 직원이라고만 얘기하면 상관없잖아. 안 그래?”
“......하긴.”
핸드폰 통화연결음을 길게 누르고 숨을 한 번 가다듬고 얼굴에 핸드폰을 가져다 댄다.
긴 벨소리를 들으며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진다.
미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들려오던 음악소리가 끝나고 음성메시지로 넘어간다는 안내음이 들려왔고 난 핸드폰을 끊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왜?”
“전화를 안 받네.. 바쁜가 본데.”
“아~~.. 핸드폰을 왜 안 받냐!?”
“바쁜가 봐...”
“참나.. 그런데 태규야.”
“...응?”
“그 핸드폰 말이야. 이렇게 막 들고 다녀도 되는 거야? 일부러 차에 놔두고 다녔잖아..”
“오늘은 상관없어. 핸드폰에 설치된 건 복제 폰하고 연결 된 장치거든.. 어차피 오늘 술 한 잔 하는 게 문제 될 게 없으니까..”
“그러다가.. 우리 대화라도 그 새끼가 들으면?”
“통화 내용하고 위치, 그리고 문자나 카톡 같은 건 다 볼 수 있지만.. 녹음기를 틀어놓지 않는 이상은 우리 대화는 못 들어.. 그게 복제 폰의 특징이라고 하더라.”
“그럼 차 안에는?”
“차엔 위치추적기랑 도청기로 밖에서 다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
“와.. 무섭다.. 혹시 집에도 설치 해 놓은 거 아니야?”
“집은 확인해 봤는데 깨끗하더라.. 다만...”
“다만 뭐?”
“신이 핸드폰이 문제더라고.. 몰카 탐지기라고 그때 보여준 거 있잖아.. 그걸로 신이 잘 때 몰래 집안 구석구석까지 다 뒤져봤는데.. 신이 핸드폰하고.. 가방에서 요란하게 신호를 울리더라고. 가방에도 녹음기가 달려 있었고, 신이가 핸드폰을 잘 모르잖아. 신이 핸드폰에도 나랑 똑같은 장치가 되어있었고,, 거기에 실시간으로 대화 내용을 도청할 수 있는 기능까지 추가로 설치 한 거 같더라..”
“와~~~ 그 새끼 진짜 무섭네...”
[따르르릉~~~ 따르르릉~~~]
“쉿!.. 미지씨다... 여보세요.”
[네. 전화 하셨어요?.]
“네..”
[왜요?]
“네?... 그냥.. 그때 일도 그렇고.. 사과의 의미로 지금 그 때 그 직원과 같이 있는데 같이 술이나 한 잔 할까 해서요.”
[술이요? 지금요?]
“...네.”
[..... 잠시 만요.]
“아. 바쁘시면 굳이 나오실 필요는 없어요.”
[아니에요. 어차피 지금 짜증나서 집에 갈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집이요? 그럼 밖..이신가 봐요?”
[잠깐만요...................]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소리로 박미지가 밖인 건 알겠는데... 왠지 모를 낯설지 않은 음악소리에 더 귀가 간다. 어디서 들었던 음악소린데.. 귓가에 맴돌기만 할 뿐 선뜻 떠오르질 않는 기억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머리도 같이 굴리게 되는데..
[지금 어디세요?]
“여기 OO동 세븐업호프요.”
[OO동이면 한 30분정도 걸릴 거 같은데. 괜찮아요?]
“네. 기다리죠 뭐..”
[알았어요..]
“온데??”
“응.. 30분정도 걸린다는데.. 밖인 거 같더라.”
“오~~ 야야. 마시자. 미지씨 오면 여기서 놀지 말고 다른 데로 자리 옮겨야지. 미지씨 올 때쯤이면 벌써 8시다. 와.. 궁상맞게 3시간이나 여기서 남자 둘이서 수다를 떨고 앉았냐..”
“참나...”
맥주를 마시며 현민이와 화요일 계획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던 난 생각보다 이른 20여분이 지난 8시쯤에 박미지를 보게 된다.
긴 하얀색 코트에 굵은 구멍이 뚫려 있는 망사스타킹... 거기에 에나멜의 반짝이는 하이힐처럼 생긴 샌들을 신고 온 미지의 모습에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휴~.. 저도 한 잔만.. 꿀꺽~~꿀꺽~~”
오자마자 박미지는 자리에 앉으며 내 잔을 뺏어 시원하게 목부터 축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그때 잠깐 뵈었던.. 고다구라고 합니다.”
현민이 놈이 가명을 대며 인사를 한다.
“캬~.. 아.. 목말라 죽는 줄 알았네.. 아! 안녕하세요.”
“어디서.. 급하게 오셨나 봐요?”
“어디서 오긴요. 한상........”
박미지가 말을 하다 현민이를 보며 끝을 흐린다.
눈치가 빠른 현민이 한상이란 이름에 양복 상의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참나.. 요즘 술집은 담배를 못 펴요.. 하여튼 이놈의 금연정책이 뭔지.. 전 담배 좀 피우고 올 테니까. 어디 도망가시면 안 됩니다!!”
“..네?.. 호호.. 네.”
“크크크~ 야. 여기 화장실이 어디지?”
“저쪽...”
“땅께!!~ 내 얘기 좀 잘 부탁해 진차장!!”
“...”
“한상이 집에서 오셨다고요?”
“네.. 그런데 거래처 어디 친구예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양 직원이에요.. 한상이가 오늘 부른 겁니까?”
“네. 참나... 어이가 없어서...”
“....네? 왜요?”
“기껏 불러놓고는.. 사람 병신 만드는 것도 유분수지.. 요즘 진짜 굿이라도 한 번 해야겠네요. 태규씨도 그렇고.. 한상씨도 그렇고.. 제가 그렇게 싸구려로 보여요?”
“네!?? 아..아니요! 왜 미지씨가 싸구려에요! 절대 아닙니다.. 그때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사과를 해야겠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시간이 여의치가 않아서 친구가 있는데도 전화를 한 건데요.”
“....혹시?”
“...네?”
“혹시 저 친구 분이란 남자하고???”
“무..뭘요?”
“하~.. 뭐야! 또 기분 상하려고 그러네...”
“왜요? 왜 기분이..”
“가뜩이나 존심 상해서 뛰쳐나온 여자한테.. 하긴.. 평소 제 행실이 개떡 같았으니 당연한 결과 같네요.”
“무슨 말을...”
뭔가가 잔뜩 짜증이 난 미지의 얼굴에 좀처럼 대응하기가 힘들다.
강한상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미지가 이렇게 짜증을 부릴 일이 과연 무엇일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 나로 인해 짜증과 화를 낼 강한상의 상대로 미지씨가 선택이 된 건 아닐지... 라는 생각 외에는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한상이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혹시 무리하게....”
“네??”
“그러니까... 여러 남자들한테... 미지씨를 막.. 괴롭히거나... 아니면..”
“그랬으면 이렇게 화라도 안 나죠! 아니. 거기서 나올 필요도 없었죠! 신나게 즐기다가 피곤해서 곯아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사람을 불러놓고 혼자 술이나 마시라니.. 신이씨만 노난거지 뭐~~.”
“신이가요? 신이가 왜요?”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토요일 아니에요? 한상씨는 여기 왜 혼자 있었어요?”
“.......”
“원래대로라면 같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한상이 집에서 신이랑.. 한상이만 있나요?”
“아니요.”
“...그럼요?”
“남자 둘이 더 있었어요. 참나.. 난 또 파티 한다고 오라고 해서 갔더니 꿰다놓은 보리자루도 아니고..”
“그럼.. 지금 남자 둘하고... 신이는요? 아니.... 한상이가 부른 게 맞아요? 신이가 혼자 상대하고.. 있다고요?”
“네! 왜 그래요?”
“.....”
“태규씨가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한상이 분위기는요? 분위기가 어땠는데요?”
“분위기요? 그렇지 않아도 처음부터 짜증내고.. 뭔가에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보이던데..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불러놓고 짜증부터 내는 걸 보고 덩달아 짜증이 나던데요. 신이씨도 무슨 잘 못을 했는지 오늘따라 기가 팍 죽어서... ”
“기가.. 죽어요? 신이가요?”
“네에!!”
“허.. 신이씨가 혼자서...”
언제 돌아왔는지 현민이 놈이 앉아 우리 얘길 엿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탄스럽다는 듯 얘길 한다.
“다구씨도 신이씨를 알아요?”
“네?.. 하하.. 몇 번 만나보긴 했죠.”
“아~.. 그럼 다구씨도 게임에 참석했던 사람이구나...”
“뭐..하하하하... 야!!!”
미지와 현민이 나누는 대화는 안중에도 없던 난 무의식중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된다. 지금 순간 느껴지는 불길함에..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철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강한상이 어떻게 비뚤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현실처럼 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자 몸이 먼저 움직이게 된다...
“어디가게!!?”
“가..봐야지.. 신이가......”
“야이 미친놈아! 가서 뭘 어떻게 하려고? 낮에 그런 일도 있었는데 지금 가서? 또 깽판이라도 놓게!?? 그럼 우리 계획은 다 도루아미타불이야 새끼야!!”
“.........”
“우선 진정하고.... 각오 했던 일이잖아! 너도 그 모임이란 곳에 신이랑 같이 놀았으면서 왜 그래!?”
“그거랑 이게 같냐! 더군다나 지금 한상이 새끼는.....”
“한상이가 뭐!? 정신 차려 이 친구야!”
“....”
“낮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 그것보다 계획이란 건 뭐에요?”
“그게...”
“미지씨. 사실 이 친구가 진짜로 게임에 이기고 싶어 하거든요. 계획이라고 해봐야 신이를 우리가 더 뿅 가게 만들자는 건데.. 미지씨가 좀 도와주세요.”
“뿅 가게 만들어요? 아~~.. 그럼 다구씨도 이 게임에 연관이 있는 게 맞네요?”
“하하... 비밀이죠. 한상이도 모르는 조력자라고 해 두죠.”
“오~ 이거 스릴있네..”
“하하하.. 그러니까요.. 그럼 지금 신이씨가.. 한상이 놈들한테 농락을 당하고 있다는 거죠? 어떻게요?”
“어떻게라뇨”
“자세히 알아야 신이씨를 더 뿅 가게 만들 수 있잖아요. 강한상 그 친구가 워낙 대단한 친구에라야 말이죠..”
“그렇죠....”
“그러니까요! 혹시.. 그 두 남자는 본 적 있던 남자에요? 아니면..”
“호스트 같던데..”
“호스트??”
“네.. 저한테도 잠깐 작업 거는 거 보니까.. 얼굴도 그렇고 물건도 그렇고.. 아니.. 물건은 평범한데 테크닉이 좋았다고 해야 되나? 아! 몰라요. 잔뜩 바람만 집어넣고는 신이한테 다 달라붙어서... 생각하니까 또 성질나네..”
“신이..한테 다 달라붙었다고요?”
“네. 한명은 신이씨 위에.. 한 명은 신이씨 아래에..”
“그..리고요?”
“기구도 사용하던데..”
“기구요???”
--계속--
오늘도 바빠서... 후다다닥~~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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