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남이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향한 곳은 시외의 한 공원. 날씨도 화창하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준다. 매사... 이렇게 포근하고 기분 좋은 날만 계속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두 눈을 감고 내 몸을 스치는 바람을 느낀다. 좋다... 좋아.
“오빠, 이거 드세요.”
정해가 뭔가를 사온 모양이다. 두 눈을 감고 있다 정해의 말에 눈을 뜨고 대답하며 손을 내밀었다.
“어, 고마워. 응?”
“......”
내가 내민 손과 또 다른 손이 부딪히고 나를 향해 곤란 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해의 얼굴이 보인다. 나와 손이 부딪힌 사람은 수남이다.
“정해야, 누구 주려고 산거야?”
“오... 오빠...”
“어떤 오빠? 나? 수남이?”
“그... 그게...”
수남이는 내 얼굴을 보며 잠시 당황해 하다 자신의 손을 치우며 말한다.
“됐... 됐어. 난 이런 거 안 먹어도 돼.”
“......”
“나 주려고 산 음료수는 아닌 모양인데. 수남이 주려고 사온거야?”
“아니... 아니요. 오빠 주려고요.”
정해가 말한 오빠가 누군지 궁금했다. 나인지... 수남이인지.
“그러니까, 어떤 오빠를 말하는 거냐고?”
“병... 병철 오빠...”
“......”
내 이름을 말하는 정해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내가 아닌 수남이에게 주려고 산 음료수 같은데... 내가 뺏어 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눈치도 보인다.
“그래? 그런데 수남이 너는 왜 손을 내 민거야?”
“그... 그냥.”
“우리 정해가 센스가 없네. 사오려면 두 개를 사와서 나 하나 수남이 하나 줘야지.”
“아, 제가 다시 한 개 더 사올게요.”
“됐어. 난 안 마셔. 너 마시던지 수남이 주던지.”
“......”
완전 빈정이 상한다. 느낌상 나에게 주려고 사온 음료수는 아닌 것 같고 수남이를 위한 음료수인데 마치 내가 중간에서 빼앗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날 소개해 준다는 아가씨는 뭐하는 분이야?”
“나도 몰라. 정해가 알지.”
“제수씨, 그 여자분... 소개 좀 해주세요. 저도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머, 제가 그 얘기를 안 해 드렸네요.”
“지금부터 해 주시면 되죠.”
“이름은 한은정. 예쁘지 않아요?”
“은정씨라... 나이는요?”
“나이는 저보다 두 살 어려요.”
“제수씨가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죠?”
“제가 올해 30살이니까... 은정이는 28살.”
“아... 그런데 제 나이를 알고 그분이 만나는 건가요?”
“오빠 나이를... 말하지 않았는데.”
“그럼, 딱 봐도 사이즈 나오네요. 그냥 오늘 하루 만나면 끝이겠네요.”
“왜요? 절대 아닐 수도 있잖아요.”
“28살 청춘 아가씨가 뭐하러 38살 노총각 남자를 만나겠어요?”
“그... 그런가...”
빈정이 상해 있던 내가 수남의 말에 더욱 빈정이 상한다.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것인가. 뭐, 물론 30살의 정해가 38살의 나를 만나는 것은 가능하고 28살은 안 된다는 말인가. 나와 정해가 처음 만났을 때 정해의 나이는 28살이었다. 수남이 저 새끼... 재수 없다.
“저기, 저기 누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비실비실 웃네.”
“어... 어디요?”
“저기.”
“아! 은정아!”
내가 발견한 여자는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해는 나의 말에 자신의 고향 후배 은정이라는 여자를 알아보며 기뻐한다. 정해가 은정이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가고 덜렁 둘이 남은 나와 수남이 사이에 서먹함이 흐른다.
“꺄! 언니!”
“은정이 더 예뻐졌네?”
“어흥~ 몰라요. 언니는 늘 예뻐요. 형부에게 정말 사랑을 받으시나 봐요!”
“헤헤헤. 우리 은정이 오랜만에 보니까 언니가 너무 기분이 좋네.”
“저도 그래요! 호호호.”
여자들의 수다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나서 저들의 수다를 재제해야 했고 정해의 옆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정해랑 같이 살고 있는 머슴입니다.”
“아, 형부.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그러게요. 제가 집에 한 번 놀러가야지 하면서 먹고 살기 바빠 한 번도 못 갔네요. 죄송해요.”
“별 말씀을...”
은정이는 예상과는 달리 싹싹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이상하게 정해와 매우 닮았다. 옷과 신발을 똑같이 입혀놓고 뒷모습만 보면 정말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법도 하다. 그만큼 은정이는 정해와 비슷한 외형과 외모를 지녔다. 머리스타일까지 말이다.
“빈말이 아니라 우리 정해와 너무 비슷하게 닮으셨네요.”
“어머, 형부 눈에도 그렇게 보여요? 만나는 사람마다 다 그소리에요. 그래서 언니랑 제가 좀 각별하긴 해요. 호호호.”
“그러게요. 사람들이 깜빡 속겠어요.”
“호호호.”
우리의 대화가 한창 물이 오를 만큼 오른 순간 정해가 우리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수남을 부른다.
“수남 오빠,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아, 네...”
“인사하세요. 이쪽은 제 고향 후배인 한은정이라고 해요.”
“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미친 놈, 여자 만나는데 무슨 영광이라고 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수남의 인사에 옆에 서 있는 내가 피씩 웃자 수남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뭐?”
“왜 웃어?”
“웃겨. 너.”
“녀석...”
“뭐? 녀석? 하하하! 이 새끼... 어디서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너 만날 나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하잖아?”
“......”
내가 한 말은 사실이고 진실이었지만 첫 만남의 자리에서 수남이 할 수 있는 언행은 아니었다. 나의 말에 정해가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
“오... 오빠, 쉿. 그런 말은 못써요.”
“알았어. 조용히 있을게.”
다시 정색한 정해가 은정이에게 말한다.
“너도 인사 좀 해. 이 오빠 굉장히 착해.”
“아, 안녕하세요. 저는 정해 언니 고향 후배 한은정이라고 하고요, 언니가 좋은 분 소개시켜 주신다는 소리에 믿음으로 나오게 되었네요.”
“하하하... 저는 조수남이라고 합니다.”
“아, 수남 오빠.”
“네? 오... 오빠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아저씨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닙니다. 오빠... 좋네요.”
“그렇죠? 오빠라고 부를게요.”
“하하하!”
첫 인사 치고는 무난하게 잘 흐르는 분위기 같다. 우리는 공원 한편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꽃피려한다.
“은정씨, 이쪽에 앉으세요.”
“드르륵...”
“어머, 의자까지 당겨주시고... 매너가 참 좋으시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아름다우신 은정씨에게 이 정도는 약과죠.”
“감사해요.”
테이블 의자까지 당겨주고 밀어주는 수남의 거짓 행위에 진절머리가 난다. 매너 있는 척하면서 호감을 사는 수남이 그리 탐탁치않다. 정해는 나를 멀뚱히 쳐다보며 자신에게도 수남이와 같은 매너를 기대하는 눈빛이다.
“알았어. 의자 빼줄게.”
“고마워요!”
“그냥 앉지 뭘...”
“치, 이럴 때 한 번 해주는 게 어디 덧나기라도 해요?”
“알았다고요.”
“흥!”
우리는 음식을 시켰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서로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수남은 오늘따라 말주변에 모터를 단 모양이다. 하는 말마다 여자들이 웃고 즐거워한다. 나도 수남이를 몇 십년 째 알았지만 이렇게 말을 재미있게 하는 녀석 인줄 이제야 알았다. 수남이는 두 여자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나는 반대로 초라한 동승자였을 뿐이다.
“호호호. 수남 오빠, 완전 대박! 너무 재미있어요.”
“재미있다고요? 그럼 빵을 준비해야겠네요.”
“빵? 왜요?”
“잼이 있다면 빵도 있어야죠.”
“네?”
“......”
저렴하고 천박한 미친 개그...
“풉... 풉... 호호호!”
수남이의 유머에 잠시 망설이던 여자들이 곰곰이 생각을 하다 웃음을 터트린다. 어라? 이게... 먹히네? 여자들이 또 난리가 났다. 수남은 두 여자들에게 슈퍼스타다.
“기다리셨던 음식 나왔습니다.”
“감사해요!”
한심한 수남을 노려보는 사이 우리가 준비한 음식이 나왔다. 음식이 나오며 코로 느껴지는 냄새에 취할 것처럼 달콤함을 느낀다. 배가 고프긴 고픈 모양이다.
“자, 이제 먹어 볼까?”
내 왼쪽에 정해가 앉고 정해 옆은 수남이가 앉았다. 그리고 그 옆은 은정이가 앉아 있다. 나와 수남이는 정면으로 향해 있고 정해와 은정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앉아 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 중 정해가 굉장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 그 접시를 정해 쪽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 눈을 의심할 장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음식은 우리 정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여기 앞에다가...”
분명 의자에 딱 달라 붙어있어야 할 엉덩이가 살짝 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수남의 오른손은 정해의 엉덩이 사이에 끼어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내 표정이 들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언제부터 저런 자세로 앉아 있었을까. 언제부터 정해의 왼쪽 엉덩이가 수남의 오른손에 올려져 있었을까. 배가 고팠던 식욕이 뚝 떨어진다.
“병철 오빠, 이 음식은 내가 좋아하지만 우리 다 같이 먹어요.”
“응? 응... 그... 그래.”
“자, 이걸 가운데다 놓고...”
내가 정해 쪽으로 옮겨 놓은 음식을 다시 테이블 가운데로 옮기기 위해 정해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그러자 수남의 손이 치워지고 정해는 접시를 옮겨 놓고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수남을 향해 내가 보지 않는 각도로 인중을 실룩거린다. 아마도... 아마도...
“옆에 오빠가 있어요. 적당히 만져요. 들켜버리겠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잘 먹겠습니다!”
“은정씨, 많이 드세요.”
“수남 오빠도 어서 드세요. 시장하시겠어요.”
“하하하! 미인들과 함께 있으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네요.”
“어머, 정말 수남 오빠의 립 서비스는 최고네요!”
“립 서비스라면 랍스타?”
“뭐라고요? 호호호!”
지랄... 개 같은 자식.
그렇게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수남의 손이 정해의 한쪽 엉덩이를 만지고 있을 것이란 강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밥을 먹어도 먹는 게 아니었다. 음식이 담긴 접시에 정신이 팔린 것이 아니라 곁눈질로 정해와 수남이를 쳐다 봐야했으니 말이다. 그런 가운데 정해의 몸이 이상하게 배배 꼬는 것을 확인한다. 왜... 왜 또 그렇게 몸을 배배 꼬고 있는 거지?
“땡그랑~”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내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고 사람들이 날 향해 쳐다본다.
“아, 숟... 숟가락이 떨어졌네.”
“오빠, 오늘 이상해요. 어디 아픈 것은 아니시죠?”
“으응... 걱... 걱정하지 마. 내가 다시 숟가락을 주서서...”
“아니에요. 더럽게... 다시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죠.”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을 줍기 위해 내가 테이블 밑으로 허리를 숙이자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정해와 수남이 깜작 놀라는 것 같았다. 허리를 숙이며 바라본 우리의 테이블 밑 풍경은 가관이었다. 정해가 입고 있는 원피스는 무릎 바로 위까지 올라가 있었고 활짝 벌어진 정해의 다리 사이에 있던 수남의 손이 재빨리 사라진다. 그와 함께 정해의 다리도 다시 오므려진다.
“......”
“줍... 줍지 말라니까요. 숟가락 다시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는데...”
“괜... 괜찮아. 물로 한 번 씻어서 먹으면 되지.”
“더럽잖아요.”
“......”
더러운 것은 이 숟가락이 아닌... 바로 너희 둘. 너희 둘이 더 더럽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오빠, 이거 드세요.”
정해가 뭔가를 사온 모양이다. 두 눈을 감고 있다 정해의 말에 눈을 뜨고 대답하며 손을 내밀었다.
“어, 고마워. 응?”
“......”
내가 내민 손과 또 다른 손이 부딪히고 나를 향해 곤란 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해의 얼굴이 보인다. 나와 손이 부딪힌 사람은 수남이다.
“정해야, 누구 주려고 산거야?”
“오... 오빠...”
“어떤 오빠? 나? 수남이?”
“그... 그게...”
수남이는 내 얼굴을 보며 잠시 당황해 하다 자신의 손을 치우며 말한다.
“됐... 됐어. 난 이런 거 안 먹어도 돼.”
“......”
“나 주려고 산 음료수는 아닌 모양인데. 수남이 주려고 사온거야?”
“아니... 아니요. 오빠 주려고요.”
정해가 말한 오빠가 누군지 궁금했다. 나인지... 수남이인지.
“그러니까, 어떤 오빠를 말하는 거냐고?”
“병... 병철 오빠...”
“......”
내 이름을 말하는 정해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내가 아닌 수남이에게 주려고 산 음료수 같은데... 내가 뺏어 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눈치도 보인다.
“그래? 그런데 수남이 너는 왜 손을 내 민거야?”
“그... 그냥.”
“우리 정해가 센스가 없네. 사오려면 두 개를 사와서 나 하나 수남이 하나 줘야지.”
“아, 제가 다시 한 개 더 사올게요.”
“됐어. 난 안 마셔. 너 마시던지 수남이 주던지.”
“......”
완전 빈정이 상한다. 느낌상 나에게 주려고 사온 음료수는 아닌 것 같고 수남이를 위한 음료수인데 마치 내가 중간에서 빼앗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날 소개해 준다는 아가씨는 뭐하는 분이야?”
“나도 몰라. 정해가 알지.”
“제수씨, 그 여자분... 소개 좀 해주세요. 저도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머, 제가 그 얘기를 안 해 드렸네요.”
“지금부터 해 주시면 되죠.”
“이름은 한은정. 예쁘지 않아요?”
“은정씨라... 나이는요?”
“나이는 저보다 두 살 어려요.”
“제수씨가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죠?”
“제가 올해 30살이니까... 은정이는 28살.”
“아... 그런데 제 나이를 알고 그분이 만나는 건가요?”
“오빠 나이를... 말하지 않았는데.”
“그럼, 딱 봐도 사이즈 나오네요. 그냥 오늘 하루 만나면 끝이겠네요.”
“왜요? 절대 아닐 수도 있잖아요.”
“28살 청춘 아가씨가 뭐하러 38살 노총각 남자를 만나겠어요?”
“그... 그런가...”
빈정이 상해 있던 내가 수남의 말에 더욱 빈정이 상한다.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것인가. 뭐, 물론 30살의 정해가 38살의 나를 만나는 것은 가능하고 28살은 안 된다는 말인가. 나와 정해가 처음 만났을 때 정해의 나이는 28살이었다. 수남이 저 새끼... 재수 없다.
“저기, 저기 누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비실비실 웃네.”
“어... 어디요?”
“저기.”
“아! 은정아!”
내가 발견한 여자는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해는 나의 말에 자신의 고향 후배 은정이라는 여자를 알아보며 기뻐한다. 정해가 은정이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가고 덜렁 둘이 남은 나와 수남이 사이에 서먹함이 흐른다.
“꺄! 언니!”
“은정이 더 예뻐졌네?”
“어흥~ 몰라요. 언니는 늘 예뻐요. 형부에게 정말 사랑을 받으시나 봐요!”
“헤헤헤. 우리 은정이 오랜만에 보니까 언니가 너무 기분이 좋네.”
“저도 그래요! 호호호.”
여자들의 수다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나서 저들의 수다를 재제해야 했고 정해의 옆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정해랑 같이 살고 있는 머슴입니다.”
“아, 형부.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그러게요. 제가 집에 한 번 놀러가야지 하면서 먹고 살기 바빠 한 번도 못 갔네요. 죄송해요.”
“별 말씀을...”
은정이는 예상과는 달리 싹싹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이상하게 정해와 매우 닮았다. 옷과 신발을 똑같이 입혀놓고 뒷모습만 보면 정말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법도 하다. 그만큼 은정이는 정해와 비슷한 외형과 외모를 지녔다. 머리스타일까지 말이다.
“빈말이 아니라 우리 정해와 너무 비슷하게 닮으셨네요.”
“어머, 형부 눈에도 그렇게 보여요? 만나는 사람마다 다 그소리에요. 그래서 언니랑 제가 좀 각별하긴 해요. 호호호.”
“그러게요. 사람들이 깜빡 속겠어요.”
“호호호.”
우리의 대화가 한창 물이 오를 만큼 오른 순간 정해가 우리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수남을 부른다.
“수남 오빠,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아, 네...”
“인사하세요. 이쪽은 제 고향 후배인 한은정이라고 해요.”
“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미친 놈, 여자 만나는데 무슨 영광이라고 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수남의 인사에 옆에 서 있는 내가 피씩 웃자 수남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뭐?”
“왜 웃어?”
“웃겨. 너.”
“녀석...”
“뭐? 녀석? 하하하! 이 새끼... 어디서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너 만날 나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하잖아?”
“......”
내가 한 말은 사실이고 진실이었지만 첫 만남의 자리에서 수남이 할 수 있는 언행은 아니었다. 나의 말에 정해가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
“오... 오빠, 쉿. 그런 말은 못써요.”
“알았어. 조용히 있을게.”
다시 정색한 정해가 은정이에게 말한다.
“너도 인사 좀 해. 이 오빠 굉장히 착해.”
“아, 안녕하세요. 저는 정해 언니 고향 후배 한은정이라고 하고요, 언니가 좋은 분 소개시켜 주신다는 소리에 믿음으로 나오게 되었네요.”
“하하하... 저는 조수남이라고 합니다.”
“아, 수남 오빠.”
“네? 오... 오빠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아저씨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닙니다. 오빠... 좋네요.”
“그렇죠? 오빠라고 부를게요.”
“하하하!”
첫 인사 치고는 무난하게 잘 흐르는 분위기 같다. 우리는 공원 한편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꽃피려한다.
“은정씨, 이쪽에 앉으세요.”
“드르륵...”
“어머, 의자까지 당겨주시고... 매너가 참 좋으시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아름다우신 은정씨에게 이 정도는 약과죠.”
“감사해요.”
테이블 의자까지 당겨주고 밀어주는 수남의 거짓 행위에 진절머리가 난다. 매너 있는 척하면서 호감을 사는 수남이 그리 탐탁치않다. 정해는 나를 멀뚱히 쳐다보며 자신에게도 수남이와 같은 매너를 기대하는 눈빛이다.
“알았어. 의자 빼줄게.”
“고마워요!”
“그냥 앉지 뭘...”
“치, 이럴 때 한 번 해주는 게 어디 덧나기라도 해요?”
“알았다고요.”
“흥!”
우리는 음식을 시켰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서로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수남은 오늘따라 말주변에 모터를 단 모양이다. 하는 말마다 여자들이 웃고 즐거워한다. 나도 수남이를 몇 십년 째 알았지만 이렇게 말을 재미있게 하는 녀석 인줄 이제야 알았다. 수남이는 두 여자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나는 반대로 초라한 동승자였을 뿐이다.
“호호호. 수남 오빠, 완전 대박! 너무 재미있어요.”
“재미있다고요? 그럼 빵을 준비해야겠네요.”
“빵? 왜요?”
“잼이 있다면 빵도 있어야죠.”
“네?”
“......”
저렴하고 천박한 미친 개그...
“풉... 풉... 호호호!”
수남이의 유머에 잠시 망설이던 여자들이 곰곰이 생각을 하다 웃음을 터트린다. 어라? 이게... 먹히네? 여자들이 또 난리가 났다. 수남은 두 여자들에게 슈퍼스타다.
“기다리셨던 음식 나왔습니다.”
“감사해요!”
한심한 수남을 노려보는 사이 우리가 준비한 음식이 나왔다. 음식이 나오며 코로 느껴지는 냄새에 취할 것처럼 달콤함을 느낀다. 배가 고프긴 고픈 모양이다.
“자, 이제 먹어 볼까?”
내 왼쪽에 정해가 앉고 정해 옆은 수남이가 앉았다. 그리고 그 옆은 은정이가 앉아 있다. 나와 수남이는 정면으로 향해 있고 정해와 은정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앉아 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 중 정해가 굉장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 그 접시를 정해 쪽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 눈을 의심할 장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음식은 우리 정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여기 앞에다가...”
분명 의자에 딱 달라 붙어있어야 할 엉덩이가 살짝 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수남의 오른손은 정해의 엉덩이 사이에 끼어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발견한 내 표정이 들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언제부터 저런 자세로 앉아 있었을까. 언제부터 정해의 왼쪽 엉덩이가 수남의 오른손에 올려져 있었을까. 배가 고팠던 식욕이 뚝 떨어진다.
“병철 오빠, 이 음식은 내가 좋아하지만 우리 다 같이 먹어요.”
“응? 응... 그... 그래.”
“자, 이걸 가운데다 놓고...”
내가 정해 쪽으로 옮겨 놓은 음식을 다시 테이블 가운데로 옮기기 위해 정해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그러자 수남의 손이 치워지고 정해는 접시를 옮겨 놓고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수남을 향해 내가 보지 않는 각도로 인중을 실룩거린다. 아마도... 아마도...
“옆에 오빠가 있어요. 적당히 만져요. 들켜버리겠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잘 먹겠습니다!”
“은정씨, 많이 드세요.”
“수남 오빠도 어서 드세요. 시장하시겠어요.”
“하하하! 미인들과 함께 있으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네요.”
“어머, 정말 수남 오빠의 립 서비스는 최고네요!”
“립 서비스라면 랍스타?”
“뭐라고요? 호호호!”
지랄... 개 같은 자식.
그렇게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수남의 손이 정해의 한쪽 엉덩이를 만지고 있을 것이란 강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밥을 먹어도 먹는 게 아니었다. 음식이 담긴 접시에 정신이 팔린 것이 아니라 곁눈질로 정해와 수남이를 쳐다 봐야했으니 말이다. 그런 가운데 정해의 몸이 이상하게 배배 꼬는 것을 확인한다. 왜... 왜 또 그렇게 몸을 배배 꼬고 있는 거지?
“땡그랑~”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내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고 사람들이 날 향해 쳐다본다.
“아, 숟... 숟가락이 떨어졌네.”
“오빠, 오늘 이상해요. 어디 아픈 것은 아니시죠?”
“으응... 걱... 걱정하지 마. 내가 다시 숟가락을 주서서...”
“아니에요. 더럽게... 다시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죠.”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을 줍기 위해 내가 테이블 밑으로 허리를 숙이자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정해와 수남이 깜작 놀라는 것 같았다. 허리를 숙이며 바라본 우리의 테이블 밑 풍경은 가관이었다. 정해가 입고 있는 원피스는 무릎 바로 위까지 올라가 있었고 활짝 벌어진 정해의 다리 사이에 있던 수남의 손이 재빨리 사라진다. 그와 함께 정해의 다리도 다시 오므려진다.
“......”
“줍... 줍지 말라니까요. 숟가락 다시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는데...”
“괜... 괜찮아. 물로 한 번 씻어서 먹으면 되지.”
“더럽잖아요.”
“......”
더러운 것은 이 숟가락이 아닌... 바로 너희 둘. 너희 둘이 더 더럽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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