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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8:49 1,154회 0건
에필로그

2002년 초, 주주총회 날 저녁.

서울 강남 모 호텔 연회장에서는 버나드 험버거, 자니 사이크스 등과 구태정, 석경, 오경훈, 하영섭 등이 모여 오늘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고, 혹시 나타날 지 모르는 자객을 방어하기 위해 경호도 철저히 했다.

험버거가 말한다. “미스터 구, 그런데 너무 이상하잖아? 이렇게 쉽게 한강그룹이 무너질 거라곤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어.”

태정은 조용히 대답한다. “그만큼 계획이 치밀했기 때문이지요. “

험버거와 같이 온 외국의 유명 투기펀드 관계자도 말한다. “나는 적어도 두 세 번은 싸워야 할 줄 알았습니다.”
“한국은 이런 인수합병에 대한 대비가 별로 없었기에 이번엔 당했지만 다음에 다른 사람이 시도한다면 쉽지 않을 겁니다.”

태정이 말한다. “석경 회장이 없었다면 국내에서 일어날 시끄러운 일들을 방어하지 못했을 뻔 했습니다.” 석경도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요? 이런 데에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은데.” 험버거는 경훈, 영섭 등을 보고 말했다.

“제 목숨을 구해 준 사람들이고 제 아버지와 같은 분들입니다. 앞으로 적당한 곳에 배치할 예정입니다.”

하영섭, 오경훈 모두 대학은 나온 사람들이다. 등산과 탐험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니만큼 새로운 곳에 대한 도전에도 거부감이 없을 것이고, 한강그룹의 썩은 물을 퍼내는 데에도 추진력을 가지고 임할 것이었다.

대학이라… 그렇다. 태정은 대학은 커녕, 아버지를 따라 나온 이후. 학교라고는 문앞에도 가 보지 않았다…

그 대신, 아버지에게서 웬만한 선생보다 더 잔인하고 더 혹독한 교육을 받았다. 바로 오늘 이 날을 위해 그는 국제금융과 무역, 투기자본에 대한 산교육을 아버지로부터 매일같이 받았던 것이다.

“내가 처음 저 친구를 거뒀을 때 백불의 계좌로 1년 만에 백오십만 불을 벌었다는 내역서 하나만 믿고 저 친구에게 큰 일을 맡겼지…”

험버거도 자화자찬한다. 태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 … 그는 한강그룹에서 단 1원도 받은 것 없이 한강그룹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정화가 생각난다… 벌써 얼굴이 희미해진다.

남극에서 우진하의 음모로 얼음 위에 버려졌을 때에, 오경훈이 구하러 갈 때까지 태정은 거의 12시간 가까이 얼믕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눈이 얼어서 얼음 속에 갇힌 태정을 오경훈 선생이 구해냈을 때 태정은 초죽음이었다…

그의 가슴 속에 있던 엄청난 열기가 없었다면 태정은 벌써 죽었을 것이고, 덕분에 태정은 열기를 거의 다 잃고 추위를 잘 타는 몸이 되었다.

정화가 그놈들에게 붙어서 손태산을 데려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왜 그랬는지 한번 물어 봐야 겠다.

태정은 석경이 미리 봐 둔 저택으로 내일 이사할 생각이었다. 이젠 한강그룹의 새 소유주가 되었으니 더 이상 그런 데서 살 수는 없다.

--

태정은 연회가 끝나고 전에 정화에게 줬던 집으로 돌아온다. 집은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으나 그것을 뜯는 건 어렵지 않다. 혹시 몰라서 오경훈을 데리고 왔고, 먼저 경훈이 집에 총을 들고 들어가 수색한다..

경훈이 소리친다. “캡틴, 여자가 있어.” “네…”

태정은 안으로 들어간다.. 정화가 조용히 앉아 있다.

“오셨어요?”
그녀는 지금까지 그가 보지 못한 화려한 차림이었다… 보나마나 손태산이 사준 옷일 것이다.

태정은 경훈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정화가 안세영과도 같이 있었다는데, 안세영 그자는 절대로 조심해야 할 자다. 안세영에게서 독약이라도 받아 왔을 지 모르는 것이다.

이미 사이크스에게 미국내에서 안세영의 활동을 잘 주시하라고 사람을 붙여 줄 걸 부탁해 놓았다… 사이크스 펀드는 곧 태정의 이름으로 바뀔 것이지만 사이크스도 죽는 날까지 매년 1억불씩의 배당금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저 분은 누구세요?”
“산티아고 공항에서 봤을 텐데?” 태정이 대답한다.

“죄송해요. 그 때는 태정 씨만 봤지 다른 사람들은 안 봐서요.”
경훈은 약간 찡그린다. 태정이 대답한다. “내 생명을 구해 준 분이야. 이제부터 아버지로 모시기로 했고.”

“비밀 이야기가 있어요.” “아버지(경훈) 계시는 데서 하면 안 돼?” “안 돼요.”

태정은 더 이상 정화를 믿을 수 없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그냥 가. “
“태정 씨!”

“아니지 … 이 집은 이제 네 거야. 서류 처리는 비서진이 할 거야.”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어요.”
“내 시체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겠지. 안세영이 뭐라고 했나?” “태정 씨..”

“이제 나는 더 이상 옛날의 구태정이 아니야. 그리고 내일부터는 너와 상대해 줄 시간도 없을 것이다. 너는 나를 배신했고, 손태산에게 붙었다.”

“그건 당신을 구하려 한 것이예요.” 정화가 말한다. “석경 회장이 당신을 위하는 줄 알아요? 지금 저 사람도? 제가 당신을 더 잘 알아요, 저 사람이 더 잘 알아요?”

경훈은 화는 나지만 말이 없다. 태정이 말했다.

“역시 내 판단이 옳았군. 안세영이 너에게 뭘 줬는지는 모르지만 옛 정을 생각해서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하지만 이 분은 나의 생명을 구해 주셨고 너는 나를 죽이려는 자들과 한패가 되었다. 이젠 너와 이분 사이에 고르라면 나는 이분을 고를 수밖에 없다.”

정화는 입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다.

“오 선생님, 갑시다. 오늘은 호텔에서 자고, 오 선생님과 자당님(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 이 사실 집은 차차 알아 보겠습니다.” “네.”

오경훈은 자기 아들 뻘인 태정에게 존대말을 한다.

두 사람이 나간 후 정화는 혼자 말을 한다…

“태정 씨.. 할아버지는 끝까지 화해를 원했어요. 제발 손강택과 손길우를 놓아 주세요. … 오늘 주총에서 본 그 사람(신주식) 이 당신과 매우 닮았어요. 진실을 제가 말한다면 어떨까요? 당신의 복수는… 헛된 것이었어요!”

이 말은 물론 아무도 듣지 못한다.

==

그 후부터 한 달 동안은 한강그룹 관련 뉴스로 신문들이 들끓었다. 유진석은 물론, 뉴질랜드로 도망간 심이철까지 새 경영진 (태정) 과 협의하여, 손강택의 막대한 비자금들을 하나씩 차지했다 .

태정 살인미수로 잡혀간 손길우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으나, 심이철이 한국에 돌아와 천연덕스럽게 위증을 하며 모든 걸 손길우에게 뒤집어 씌웠고, 손강택도 다른 혐의들로 구속되었으며, 자연히 손길우와 이은아의 이혼도 이루어졌다.

태정은 이런 허드렛일은 모두 석경과 오경훈, 하영섭 등에게 맡겨 두고, 아무도 모르게 사하라 사막으로 떠났다. 잃어버린 열기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를 출발하여 낙타를 타고 가이드들과 함께 2천 킬로미터 떨어진 타만라셋 오아시스를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냥 단순한 열기 보충이 아니라, 마지막 미개발 지역인 사하라 사막을 개발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한강그룹 손씨들 중 태정에게 협조한 방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손강호, 손강문 등 잘난척하던 손씨 일족들도 완전히 개박살이 났다… 손태산은 뉴욕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도 없었다. 그리고 안세영도 신주식의 집에 머무르며 하는 일 없이 지낸다는 소식만 있어 태정은 안심한다.

그리고 한강그룹의 모든 계열사는 정송으로 개명하고, 정송그룹과 구 대아그룹 인력들이 속속 한강그룹 시절의 흔적을 지워 나가고 있었다.

2002년 2월 하순, 알제리 사하라 사막 한복판.

타만라셋 오아시스까지는 아직도 300킬로 정도가 남아 있었고, 낙타 행렬을 이끌고 가는 일행들은 옛날 아라비아 대상들과 비슷했다.

태정은 사막에서 찜질을 매일같이 한다. 없어진 열기는 완전히 돌아오진 않겠지만 몸의 냉기는 상당히 빠진 것 같았다. 일단 타만라셋에 들어가면 비행기를 타고 알제를 거쳐 서울로 돌아올 것이다.

이 동네는 사막 한가운데니 이름이 있을 리가 없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한다. “캡틴! 헬기가 보입니다!”
“비행기?”

이 동네에 무슨 헬기? .. 헬기는 일행을 향하여 돌진할 태세였다. 태정은 지난 번같이 어리석지는 않았다. 브라질에 조용호는 갇혀 있겠지만, 아직도 손강택 일당들이 복수하려 들 가능성이 있고, 사막에는 도적도 많고 게릴라도 있기 때문에 일행들은 대부분 무장을 했다.

“우리 쪽으로 옵니다!”

“…..”

안세영이구나. 이런 데까지 쫓아 올 만한 사람은 안세영밖에 없다.

“쏴서 떨어뜨려!”

일행들은 화기를 들고 쏘려고 한다. 이 때 프랑스어로 방송이 나온다.

“죽이러 온 게 아니니 쏘지 말라!”

“너 안세영이지! 네가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 애들을 다 죽일 순 없을 것이다.” 태정이 소리친다.

안세영이 대답한다. “손길정, 이런 데서 만나게 되는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 준다면 내릴 것이고 아니라면 너에게 돌진할 수밖에 없다.”

세영이 돌진할 경우 태정이 죽게 될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화기로 쏴서 떨어뜨린다 해도 그 속도는 관성에 의해 웬만한 건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 태정은 안세영이란 사내를 만나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안세영을 자기 편으로 만든다면 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헬기는 사막 한가운데에 내리고, 태정과 무장한 일행들이 내린다. 안세영은 혼자 왔었다.. 그도 헬기에서 내린다.

“미스터 안, 만나서 반갑소.” 태정은 손을 내밀었고 그의 뒤에는 무장한 사람 20여 명이 있었다.

“손길정 씨, 연락 없이 만나러 와서 미안하오. 하지만 뉴욕에 같이 가셔야겠소.”


“왭니까? 지금 당장 당신을 쏴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만, 나는 당신이란 사람의 그릇이 어떤가 보고 싶기 때문에 당신의 말을 들어주는 겁니다.”

“회장님이 돌아가시려고 합니다. 한번만 보고 싶다고 하셔서…”

태정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지막 도박이구나. 하지만 그것을 역이용해 주겠다. 그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손강택은 안세영을 이용해 계속 공작을 걸 것이다…차라리 여기서 모든 걸 끝내는 게 제일 좋을 듯하다.

안세영은 그런 태정을 보고 불쌍한 생각까지도 들었다. 물론 세영의 실력이라면 지금이라도 태정을 죽일 수 있다. 그 다음에 세영이 죽고 사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도 알고 싶었다.. 손태산과 구태정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알아야 했고 그래야만 이 모든 이야길 끝낼 수 있으니까.

24시간 후, 태정과 안세영은 뉴욕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뉴욕에 올 때까지 정말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태정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다… 만약에 세영이 헬기를 떨어뜨리려 하면 세영을 죽이고 탈출할 생각이었다.

공항에는.. 서정화와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태정 씨. 여기서 만나게 되네요.” 서정화는 화려한 모습이었다. 서정화 옆의 여자는 태정이 잘 모른다.

“오빠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여자는 어려 보였지만 모델 같았고 역시 화려한 모습이다.

태정이 말했다. “도대체 누구야? 나는 너희들에게 잡혀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야.”

정화가 냉정히 대답한다. “완전히 변했군요. 그 회장이라는 자리가 사람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건가요? 당신의 얼굴에서 손강택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그런 너는, 나를 믿지 않고 나와 석경 회장을 이간질하고, 결국 손태산에게 붙어서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정화와 같이 나온 여자가 말한다. “오빠. 처음 보는 제게는 아무 말도 안 해요?”
“당신은 누구신데 이들과 같이 있지요?” 태정은 그냥 건성으로 묻는다.
“저는 손다나라고 하고 손강택 회장님의 딸이예요.”

다나는 태정의 모습을 보고 과연 보통 인간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여러 남자들을 봤지만, 대단하단 생각을 한 건 오로지 안세영 뿐인데 태정도 대단하였다…

“당신도 손강택, 손길우처럼 나를 죽일 생각입니까? “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오빠는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여요.”

안세영이 돕는다. “길우는 내 도움이 없으면 자기 부인의 과거도 알지 못했을 그런 주변머리야. 절대로 살인을 할 사람이 못 돼.”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가서 해요.”

태정은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석경과 오경훈 등이 뉴욕에 도착할 것이고 아무리 안세영이 대단해도 이제는 정송그룹의 힘으로 안세영을 제압할 수 있다.

병원 특실

손태산은 훨씬 늙어져 있었고, 한국에서 선 박사가 다시 날아와 손태산을 돌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역시 매우 늙어 보이는 안 집사가 서 있다.

“안녕하세요, 손 회장님?” 태정은 끝까지 할아버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왔구나, 길정아…“ 손태산은 힘이 없어 보인다. 태정은 약간의 연민은 느꼈지만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저를 알제리 사막까지 안세영을 보내 데려올 정도로 제가 보고 싶으셨습니까?” 태정은 비꼬듯 물었다.

“한강그룹이 네 손아귀에 떨어진 건 사필귀정인 것 같구나. “

태정은 주먹을 쥔다. 손태산이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그는 말했다. “제 인사는 받으셨으니 이제 물러 가겠습니다.”

안세영이 태정의 양 어깨를 잡는다. “그렇게는 안 될 걸? 회장님 말씀을 끝까지 들어.”

정화도 말한다. “당신이 다시는 나를 안 봐도 상관 없어요. 하지만 나도 당신에게 이야기할 자격은 있어요.”

“좋아요, 말해 보시죠.”

손태산 대신 안 집사가 대신 말한다.
--

1945년 가을, 서울 한성룡의 집

한성룡은 골수 친일파로 대단한 재산가였으며, 그의 막내딸 미행은 남편 진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낡은 옷을 입은 손태산이 들어온다. 손태산은 이 집에 식객으로 있던 젊은이로, 미행이 진규성과 결혼하기 직전 군대에 끌려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자네 태산이 아닌가? “ 행랑아범이 묻는다. “네.”

한미행은 자신의 방에서 남편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남편은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만져본다.

아버지 한성룡은 미군 관계자를 만나러 인천에 가셨다. 오빠들은 전에 분가했고 오늘은 집에 다른 식구는 없다.

“안녕하세요?” 태산이 미행의 방으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해방된 후에도 그녀에게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지만 불안함은 어쩔 수 없다. 그녀가 알던 손태산이 나타나니 그녀는 기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밤이 되었다.

“늦었으니 가 보셔야지요.” “네.”

손태산은 한미행의 몸을 쳐다본다. 배가 약간 나왔지만, 그가 전쟁 중에 상대했던 싸구려 여자들에 비하면 봉황과도 같았다. 그는 갑자기 어떤 생각을 한다.

진규성은 조종사였으니 십중팔구 가미가제 특공대가 되어 어느 바다 위에서 죽었을 것이다.. 즉 그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다고 한성룡이 딸을 생과부로 늙힐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규성이는 조종사였다고 했지요?” “네.”


“그런데 어떡하나? 혹시 가미가제라고 들어 보셨는지?”
“그게 뭔데요?”

전쟁 이야기는 신문에 잘 나오지도 않았고 (보도통제로 일본에 불리한 뉴스는 거의 없었음), 그녀와 직접 관계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잘 몰랐다.

“비행기를 적군 배에 들이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건…”

“맞아요. 규성이는 아마도 전투기를 미군 배에 들이치려다가 어딘가에서 격추 당했을 겁니다.”

“아녜요. 규성 씨는 살아 있어요.”

이년이 그래도 앙탈을 떠네?

손태산은 이미 미군들에게 물자를 팔아먹기 시작했다. 어차피 머리가 굳어 공부는 힘들었지만, 병영에 있을 때에도 일본인 상관에게 담배를 팔아먹던 재능으로 장사 길로 나선 것이다.

“미행 아가씨. 진규성은 죽었고 그 집안도 이젠 망했어요.”

진규성의 집안이 망했는지 어쩄는지는 잘 몰랐지만, 평양 갑부라는 그의 집안이 쏘련군이 진주한 지금 잘 되었을 리는 없으리라.

“뭘 보자고 그 애를 낳겠나요?” “그건 내가 결정해요.”

“세상은 달라졌어요. 나는 이미 미군들과 장사하고 있고 지금은 미군 세상이죠. 나는 당신을 왕비처럼 만들어 주겠어요.”

한미행은 은장도를 꺼낸다. “당신, 이걸로 …”

하지만 숱하게 죽는 자들을 지켜본 손태산은 이런 장난감 같은 것엔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순식간에 그녀의 팔을 꺾어 칼을 떨어뜨린 후, 말한다.

“잘 들어. 나는 여기 그냥 온 게 아니다. 너를 가지러 왔다. 나는 네 아버지 때문에 사지로 갔지만, 덕분에 금방석에 오르게 됐지. “

태산은 미행을 수도로 제압한 후, 기절한 그녀의 치마를 벗기고 헌 바지를 벗는다.

이 때 어린 종 안준성이 문을 연다… 준성은 바지를 무릎까지 내린 태산이, 치마가 벗겨진 채 기절한 미행의 몸 위로 올라가는 걸 보았다.

준성은 직감한다… 이 사실을 알리면 태산은 그를 죽일 것이다.

준성의 할아버지는 러시아군 장교 바실리 안토노프 였지만, 혁명 후 조선으로 도망쳐 함경도에서 노름꾼 시다바리로 살다가 폐병으로 죽었다. 아버지도 경성으로 올라와 기생집 기도나 하다가 죽었다.

한성룡이 똘똘한 준성을 데려다 이 집에 갖다 놓지 않았다면 조선인도 아닌 준성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행여 태산을 따른다면 , 혹시라도 큰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준성은 문을 닫고 망을 본다.

태산은 최대한 미행의 배를 누른다. 그녀의 뱃속에 있는 진규성의 씨는 그의 앞날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 그녀가 깨어나려 할 때마다 태산은 계속 혈도를 짚어 깨어나지 못하도록 한다.

태산은 턱이 그녀의 턱에 닿도록 하고, 팔로는 그녀의 복부를 압박하고, 좆은 그녀의 하늘 같은 비부에 깊이 박아넣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면 태산은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흐흐흐 하하하. 태산은 말라붙은 미행의 질 안에 박아댄다. 군에 있을 때 강간을 많이 해서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역시 배운 고급 여자는 달라. 태산은 웃는 얼굴로 미행의 배를 누른 채, 터져 나올 것 같은 그의 좆을 빼서 그녀의 얼굴에 뿌린다.

이 때 그녀가 아픔을 못 이기고 깨어난다. 태산의 우람한 좆이 그녀의 얼굴에 보인다.

“잘 들어. 너는 잠시 전 이것에 뚫렸어. 알았어?”

태산은 그것을 흔들어 댄다..

==

“이런 이야기를 왜 제게 하시는 겁니까? 제 할머니를 욕보인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인가요?”

태정은 더욱더 이 손태산이란 인간이 싫어졌다.

그 때 … 그 자리에 신주식이 들어온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와 있다. 정화와 다나, 그리고 안세영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안 집사가 말한다.

“미행 아가씨가 피를 쏟아내며 아이를 뱉어낸 건 3일 후의 일이었다…”

“그래서요?”

“네 아버지가 생겨났을 때 미행 아가씨는 일곱 번이나 죽으려 했고 그 때마다 내가 살려냈다.” 안 집사가 말한다.

“하지만 끝내 네 아버지가 태어나자마자 미행 아가씨는 목을 매셨단다.. 그 때 회장님과 내가 미군 공사를 하러 갔을 때 말이지. “

태산이 말한다..
“그렇다…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 그녀는 필요가 없었고 나는 새로운 거물로 떠오르던 김영진의 딸과 혼인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네 아버지도 회장님의 뒤통수를 결정적으로 친 일이 있었다.”

이 때 신주식이 말한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안다.”

혹시 있을 사태에 대비해 안세영이 문을 지킨다.

“…”

“혹시 내가 네 아버지를 찾았던 일에 대해 생각나니?”

“나는 댁 같은 사람은 모릅니다.”

안 집사가 말한다. “신 부회장님이 너를 돕지 않았다면 지금의 너는 없으리란 사실을 느끼지 못했냐?”

태정이 대답한다. “그거야 신 부회장님이 저를 믿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지분 해결이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석경 회장에게 전화하여 해결하겠습니다.”

신주식은 망설인다…. 이 이야기를 꺼낸다면 태정이 어떤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건 확실하게 밝혀야 하는 것이다.
==

감옥

손강환, 아니 이제는 구강환은 신주식을 만나고 있었다.

“그래, 구선혜는 길정이가 네 아들도 내 아들도 아니라고 했어.”

손강환은 킥킥 웃는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뭐?”

“내가 손태산의 뜻대로 어른의 따님과 혼인할 것을 거부한 건 그녀를 위해서였어.”

“그렇다면..”

구강환은 말한다. “나는 성인이 되던 날 단종수술을 받았지.”

신주식의 얼굴이 굳어진다.

“…”

“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손태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지.”

“그렇다면 자네 어머니의 핏줄은…”
“어차피 어머니가 원치 않던 자식이었잖은가?”

“그럼 길정이는 내 아들..”

“네 아들인지 다른 놈의 아들인지는 난 몰라.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중요한 건 지금은 태정이는 내 아들이라는 것이고, 너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구선혜가 어떤 여자인지 알고 있었어. 내 아이라고 하고 낙태한 아이들도 사실은 다른 놈들의 애들이었지만 나는 아무 상관 하지 않았어.”

“….”

구강환도 참으로 무서운 놈이었다…

“나는 태정이를 내 아들로 키울 거야. 그리고 태정이가 손태산의 목을 치는 꼴을 반드시 백골이 되어서라도 보고 말 거야. 그 때 손태산 앞에서 태정이가 누구라는 사실을 밝혀 주지. 하지만 그 때까지는 내 아들이야.”

==

이 때 태정이 소리친다.

“손태산. 댁이 원한 게 이런 거였나? 죽은 내 아버지까지 모욕해 가면서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을 살리려 하는가?”

정화가 말한다. “태정 씨.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해요.”

“다 한통속이야! 우리 아버지는 백골이 되어 가면서까지 나를 지키셨어. 그래고 끝내 소원이던 남극점도 보지 못하시고 남위 83도선에서 가루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셨어. 그런데 니들은 고작 한다는 짓이 우리 아버지를 음해하고 모략할 줄밖에 몰라? 아버지는 끝까지 댁들을 용서하려고 하셨는데, 니들은 용서 받을 가치도 없는 것들이야!”

태정은 뛰어 나간다… 안세영이 잡으려 달려 나가려지만 손태산이 말한다. “그냥 놔 둬라.”

--

태정은 혼자 서 있다.

손태산은 태정을 죽이기 위해 마지막 도박을 했던 것이리라… 이런 개소리를 들으면 그가 충격을 받아 자살할 것이라고 말이다.

참으로 노회한 자이다… 그는 주머니 속에 있는, 어우혁이 챙긴 아버지의 뼛조각 몇 가루를 담은 봉투를 만지작거린다.

그의 목에는 장산스님이 써 준 부적 자국이 문신처럼 남아 있다…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으리라.

이 때 차가 도착한다. 석경, 오경훈, 하영섭 등이 내린다.
“캡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 “….”

그렇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이 사람들을 남겨 주셨다. 다시는 손씨들과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살리라.
“별일 아니오.갑시다.”

“남극점에 가는 비행편을 알아봐 주시오. “ “네?”
“아직 남극에 갈 기회는 있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남은 재 몇 가루라도 남극점에 뿌리고 와야 내 기분이 풀리겠소.”
“네…” 석경이 대답한다.

차는 뉴욕 거리를 달려간다.

==

내일 마지막회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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