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백만엔 주우면
여학교 세워 나는 선생님
월사는 조금도 받지 않습니다
예쁜 아가씨 모집해
매일 연애 에로 강의
알몸 댄스를 가르칩니다
재미있네요
백만엔 주우면
일본 은행에 저금해
매일 저녁 긴자의 카페에서
여급에 팁을 10전씩
하면 며칠 놀 수 있을까
계산하고 있으면 잠이 깨었다
바보답네요
“백만원” 후타무라 테이이치 노래,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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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일제시대 때 1엔 = 1원. 본 소설에서는 혼돈을 피하기 위해 모두 ‘원’ 으로 통일해 표기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본정통(지금의 충무로) 에 있는 번화가에서 놀았지, 이곳 북촌까지 올라오는 일은 적었다.
하지만 홋타 변호사는 어느 도시를 갈 때는 그 도시의 여자를 꼭 먹어야 하는 기벽이 있었다. 더우기 돈이야 의뢰인이 쓸 텐데 무슨 걱정인가?
국양관은 조선인이 주로 사는 이곳 북촌에서도 대표적인 요릿집이다. 경수는 이곳에 평생 딱 한 번 와 봤다 .. 물론 손님이 아니라, 선하/국향에게 뭔가를 주기 위해 잠시 들렀을 뿐이다. 이곳에 손님으로 오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경수가 말했다. “그런데 돈은 어떻게 들어 있는 겁니까?
홋타가 대답한다. “돈은 당신이 한방에 들어먹지 못하도록 신탁에 들어 있습니다. 그 신탁을 깰 수는 있지만, 당신은 큰돈을 만져 본 적이 없기에, 신탁을 유지하는 게 나을 겁니다.”
“신탁을 유지하면 어찌 되지요?” “한 달에 4천원씩의 수입이 들어올 겁니다.”
4천원! 교사 봉급이 50원, 조선 총독 연봉이 7000원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기뻐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에 4천원으로는 큰일 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신탁을 깨시면 당신은 아무런 보호를 못 받습니다. 저희 사무소에서는 유산을 탕진한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서 말이죠. “
(그 당시에 로펌이란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명변호사 사무소에 새끼변호사들이 고용되는 건 있었을 테니, 있었을 법도 합니다.)
“그 유언장 원본을 볼 수 있겠습니까? “ “아무렴요. 오사카에 도착하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좀이 쑤셔 죽을 거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기생들은 그들에게 맛있는 요리와 술을 먹여 준다. 평생 너비아니(불고기)라고는 구경도 못해 본 경수이지만, 홋타 앞에서 빈티를 보여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조선인이라고 그를 무시할 텐데, 빈티까지 내 봐라 . 더 그를 우습게 알 게 아닌가?
경수는 요리도 적당히 먹고 술도 적당히 마셨다. 할 일이 많은데 벌써부터 취할 순 없다. 즐거워하는 건 돈을 손아귀에 넣고 즐거워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홋타는 원하는 기생을 품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수는 그냥 술만 마신다. 옆에 앉은 고참 기생이 말했다. “왜 당신은 술만 마시죠?”
“그냥요.. 오늘은 밤일을 별로 하고 싶지 않네요.”
경수는 기생을 지명하지 않고, 그냥 적당한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다. 이런 큰 일에 쓸데없이 기를 허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한 번씩 방사를 하면, 기가 빠져서 어떡게 하나? 그걸 책으로 쓴다면 백권도 넘게 써야 할 것이었다.
잠시 뒷간에 가는 길에 그는 어떤 얼굴을 보았다.
“어이, 케이슈. 여기 왠 일이야?”
“당신은… “ “나? 우리 부서장님이 오셨는데 그냥 시중들러 왔지.”
동대문경찰서 경찰 탁세청이었다. 동대문에 사는 불순분자들(독립운동가, 좌익운동가들) 은 탁세청만 보면 덜덜 떨었다. 잔인하기로는 종로경찰서의 어느 경찰보다 뒤지지 않는 자가 곧 탁세청이었고, 그래서 테로(테러)도 한두 번 당?지만 그 때마다 잔인하게 응징하곤 했다. 경수도 탁세청에게 몇 번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십니까? 잘 놀다 가십시오.”
경수는 세청에게 고개를 숙인다. 돈을 받기 전에 쓸데없는 일에 연루되어 부정타고 싶진 않았다.
세청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자식이 저런 데서 놀 놈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좀 알아봐야 겠다. 내 이름이 뭔데. 탁세청이야. 탁한 이 세상을 맑게 쓸어 버리는 게 내가 할 일이지.
세청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나 일본에 대한 애국심 같은 건 거의 없었다. 단지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불령선인들이나 좌익분자들이 싫을 따름이었다. 그들을 하나씩 제거할 때마다 그는 신임을 얻고 지위도 오른다. 언젠가는 최초의 조선인 출신 경찰서장이 되고 말리라.
경수도 생각한다. 내 경성에 돌아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부터 자르고 말리라. 동대문 경찰서장과 자리 한번 가지면, 너 같은 놈 하나 자르는 건 시간 문제야.
[글쓴이 주 – 탁세청은 괜히 나온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성씨가 별로 흔하지 않은 ‘탁’씨입니다. 그가 왜 나왔는지 알려면 처음 부분을 보세요.
창씨개명은 1940년까지는 강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들도 그 시점에는 일본이름을 별로 안 썼습니다.]
지금쯤은 집에 있는 물건들 다 갖다 버렸겠지. 상관없다. 어차피 다 버려야 할 것들이고 소중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이제 새 생활을 하려면, 근본부터 바꾸고 뜯어 고쳐야 하니 거추장스러운 것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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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홋타는 만족한 얼굴로 나왔고, 경수는 한숨도 자지 못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홋타가 말했다. “어디 갈 때마다 그 지방의 여자를 먹어야 한다니까.” (그 때는 조선도 일본의 한 지방이었으니 그 말이 맞기는 했음)
“조선 여자들은 일본 여자들과 또 다른 맛이 있어. 시원시원하잖아? 일본 여자들은 가식만 많아 가지고, 살랑살랑 웃는 얼굴 뒤에는 비수를 감추고 있지. 조선 여자들은 적어도 좋고 싫은 게 분명해서 그건 봐 줄 만해.”
“맞는 말씀입니다.” 경수는 홋타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래 봤자 그만 손해니까. 돈을 받기 전까지는 낙엽 한 장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택시를 대절해서 국양관에서 경성역까지 갔고, 아침 10시 반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비록 특급열차기는 하지만, 8시간 반이나 걸린다. 경수는 답답했다.
이렇게 되면 내일 오사카에 닿아도 이미 오후 6시. 홋타의 성욕 때문에 하루를 꼬박 버리게 되는 셈이다.
증기기관차는 이미 그 시대에 옛날의 것이 되어 있었고, 당시 간선철도는 대개 디젤유를 사용했다. 주로 시골쪽에만 증기기관차가 다녔다. 특히 경부선은 만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국책사업으로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물론 1등석에 앉았다. 홋타는 법률책을 읽고 경수는 일본어로 번역된 “까라마조프의 형제”을 손에 들었다.
홋타가 말했다. “당신, 재경에 대해 아는 바 있습니까?” ‘재경이 뭔데요?” “돈을 운용하는 법 말입니다. “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법인에 돈을 맡기시는 것은 어떠신지…”
차는 한강철교를 지나가고 있었다.
“제 돈이니 제가 알아서 합니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길 일 있나?
홋타는 모르지만, 경수는 수입이 거의 없는 룸펜으로 살아가면서 돈을 아끼는 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에 기껏해야 30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던 때도 있었고, 그마저도 없어서 굶고 다녔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의 돈은 그가 알아서 한다. 홋타가 이래라 저래라 안 해도 말이야.
이 옆자리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다.
“아빠. 이시하라 선생의 말이 맞아요. “
“아니다.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 동경에 가서 안 되면 뉴육(뉴욕)에라도 가서 치료해 보자.”
아니 이건 최문환과 최수희가 아닌가? 왜 하필이면 그의 옆자리인가. 다행히 아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 거 같았다. 경수는 그저 까라마조프의 형제 책에 파묻혀 있다.
형제가 없던 경수는 까라마조프 가의 막장 모습에 다시금 감탄하면서도 공감은 가지 않는다. 그의 부모는 늦게 그를 낳았으며 구한말에 유행하던 호열자(콜레라) 로 죽었다. 그러니 다른 형제는 처음부터 없었다.
조연주 고모님은 사실 그의 작은아버지의 부인이었다. 하지만 그시절이면 다 그렇듯이 열 살 남짓해석 결혼했던 남편이,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3년을 누워 지내다가 죽은 후, 초야도 못 치른 채 과부가 된 고모님은 조선에 있어 봤자 별 수 없다 생각하고 일본으로 떠났었다.
일본에서 재력가 나가사와라는 사람과 재가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시절 조선에서는 과부의 재가란 생각조차 못하던 일이라 부모님은 고모님과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곧 돌아가셨고, 경수는 고모님이 조선에 잠시 나왔을 때 살갑게 대해 준 기억이 있었다. 그 때가 대정 8년 (1919년), 기미년 독립만세가 있기 직전으로 경수가 열두 살 때였다.
기미년 만세질만 없었어도 고모님은 그를 데려 갔을 지 모르고, 그게 틀려진 게 만세질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는 3월 1일만 되면 술을 퍼마시곤 했다. 남들은 그가 민족의식이 있어서 그런 줄 알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이러는 동안 기차는 천안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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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열차라 대전, 대구에서만 쉬었을 뿐,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몇 번 수희나 문환이 그들 쪽을 보기도 했지만, 경수는 안경을 쓰고 책을 보고 있었으므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대화 내용으로 보아 수희는 모종의 산과 (산부인과) 병이 있고, 그것을 고치러 동경으로 가는 거 같았다. 남편에게서 옮은 화류병이 원인인 듯했다. 불쌍한 수희 … 하지만 그 때는 최문환의 협박을 견딜 힘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된 시점에도, 민통식이 마음껏 쑤신 여자를 그가 뭐가 모자라다고 데리고 살겠는가? 민통식 뿐인가? 동경 유학생 김장석에게 처녀를 내 주었고, 그 때문에 불법시술소까지 다녀온 사실을 경수는 안다. 솔직히 말해 병의 원인에는 그것도 있을 것이야.
차는 부산에 도착했고 최문환 부녀는 먼저 내렸다. 그리고 경수와 홋타 일행도 따라 내렸다. 홋타는 최문환 부녀에게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경수가 끌어서 저쪽으로 갔다.
부산잔교역은 부산항 바로 앞에 있다. 부산역이 코앞에 있는데도 부산잔교역이 그 위치에 만들어진 이유 자체가 일본인들이 최대한 조선 땅을 덜 밟고 만주까지 갈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부산잔교역은 해방 이후 어느 시점엔가 폐지되었는데,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습니다. 해방 이후의 혼란 때에 이것저것 마구 때려 부수다 보니 소리소문 없이 없어진 게 좀 되지요]
그들은 곧바로 관부연락선 ‘덕수환’ 에 올랐다. 이 배는 9년 전 (1926년) 윤심덕과 김우진이 동반자살한 배로 유명하다. 배는 밤 10시에 떠난다.
당시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려는 노동자들이 하도 많아서, ‘도해증’ 이 없으면 건너갈 수 없었다. 하지만 1등석 손님인 경수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다.
물론 그도 전에는 도해증을 받고서 고생고생 해서 냄새나는 3등실에서 노동자들과 같이 일본으로 갔다. 하지만 이제는 그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뒤에서 올라오는 2등석 손님들을 힐끗 보니, 경수에게 낮익은 얼굴이 있었다.. 안성화다! 뿔이 난 얼굴에, 일본에 가면서 기백도 좋게 치마저고리를 입고 탄다. 이거 어쩌지? 안동식이 허락 안하고 여기까지 보냈을 리는 없을 테고.
어떻게 안성화가 이 배에 타게 되었지? 십중팔구 그를 잡으러 온 게 분명한데, 다 된 밥에 코 빠뜨릴라. 그는 재빨리 1등석 객실 안에 들어갔다.
경수는 배가 하관(시모노세키)에 도착할 때까지 한 발짝도 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물론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이거 돈을 받기도 전에 굶어 죽겠네. 홋타는 그에게 떡 하나라도 챙겨 줄 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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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아침에 하관항에 도착했고, 대기하고 있던 특급열차에 올랐다. 홋타는 왜 그가 얼굴을 가리고 가는지 몰라 이상하게 생각?지만, 경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경수가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동안 연락조차 없는 사돈의 팔촌까지 다 와서 뜯어먹을 텐데 그 꼴을 어떻게 보는가?
다행히 다들 자느라고 책으로 얼굴을 가린 경수를 알아보는 자는 없었다. 더우기 이번에는 최문환 부녀와는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안성화만 무사히 피하면, 될 것 같았다.
기차는 열심히 달려 마침내 오후 6시경 대판(오사카)역에 도착했다. 꼬박 32시간 걸린 여정이고, 그것도 돈을 많이 써서 시간이 맞는 특급을 탔기에 가능했다.
이건 장기시합과도 같았다 … 안성화를 어떻게든 피해 도망가야 한다. 경수는 차가 서자마자, 승객들과 함께 내렸다. 홋타가 말했다. “왜 서두르시는 겁니까?”
“당신이 제 입장이라면 안 서두르시겠습니까?”
그는 겨우 차를 빠져 나와, 승강장에 고개를 돌리고 서서 홋타를 기다린다.
홋타는 뭐가 그리 여유가 많은지 천천히 내렸다. 아우 내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무슨… 이 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경수!”
다행히 안성화의 째진 목소리는 아니다. 조선 사람 중에 경수가 그 한 명뿐은 아니지.
홋타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 인사하고 일부러 천천히 내렸다. 경수는 급한 마음을 가다듬고 홋타와 함께 오사카역을 나서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로 ‘차경수!” 라는 째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아. 하지만 다행히 열차는 출발한다. 특급열차라 한 시간 후 교토에 닿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차경수 이 자식! 오사카에 오면 못 잡을 줄 알았어? 내가 오사카를 다 뒤져서라도 잡고 말 거야!”
성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참 그 대담함은 알아 줄만 하다. 일본 땅 한복판에서 조선말로 당당히 외치는 저 무모함!
물론 그녀도 결혼 직전에 신랑이 도망갔으니 화는 날 것이다. 정 저렇게 나오면 천원 정도 줄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백만장자가 된 그가, 고아원에서 잡일이나 하던 안성화와 결혼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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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예로부터 식(食)의 고장, 일본의 주방이라 불리던 곳이다.
경수는 홋타에게 말했다. “어디 가면 좋겠습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변호사 선생이 저보다 잘 알 것 아니겠습니까?”
“오사카의 중심가는 아무래도 신사이바시가 아니겠습니까?”
도톰보리는 서민들의 관광지이고, 좀 있는 사람들은 신사이바시이다. 차는 신사이바시에서도 꽤 오래된 요정으로 향했다.
일본의 요정은 조선과는 달라서 철저히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지 교접이 목적인 곳이 아니다. 그런 데는 따로 있다.
예약 없이 왔지만, 홋타는 경수에게 이십 원을 내도록 했고, 경수는 그대로 했다. 그러니 없던 방이 생긴다. 홋타가 말했다 . “당신은 돈 쓰는 법을 배워야 해요. 백만장자가 되고서도 그렇게 룸펜 시절의 씀씀이를 유지해서야 되겠습니까?”
깍쟁이로 유명한 오사카인이지만 먹고 마시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다. 홋타는 기백도 좋게 제일 비싼 10원짜리 코스를 시켰고, 술도 최고급으로 시켰다. 경수도 그리 하였다.
두 사람은 신나게 먹고 마셨지만, 경수는 배가 고팠다. 배를 타고 오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뿐더러, 음식의 맛은 대단하지만 양이 적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갑시다.” “어디로?” “저는 제 집으로, 당신은 호텔로. 내일 야마자키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나야지요.”
경수는 훗타의 말대로 그의 택시비를 내 주었고, 경수도 오사카에서 제일 좋은 호텔로 가서 쉬었다.
저녁값만 무려 50원. 그의 한 달 수입보다 많았다. 지금까지 쓴 돈은 갚은 빚을 제외하고 불과 3일만에 무려 육백 오십 원, 홋타가 준 천원 중에서 이제 오십원밖에 안 남았고, 호텔비 3원을 내고 나면 47원 남는다.
아니, 그 같은 사람이 천원을 썼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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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항 부근 프레지던트 윌슨 호.
“뭐? 기관 고장이라고?” 딘 넬슨이 말했다.
“예. 기관 고장으로 배가 12시간 정도 멈추어야 합니다.”
“아이 씨! 나는 급하다고!”
“어쩔 수 없습니다. 배를 당신 때문에 따로 움직일 수는 없지요.”
넬슨은 마음이 급했다. 빨리 고베로 가서 연락이 없는 렌코를 만나야 하는데…. 왠지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인생 모두를 걸고 만들어 낸 200만원이다. 미국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일을 끝내고 부리나케 돌아오는 길인데, 이상하게 바람이 도와 주지 않아 예상보다 날짜가 3일이나 더 걸렸다.그 동안 무슨 일이나 일어나지 않을지?
렌코. 내가 간다. 도착하면 너와 나, 필리핀이든지 난인(인도네시아)든지 따땃한 곳에 가서 살자. 이제 우리가 얼마나 살겠다고 이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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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나니와 호텔.
경수는 침대에 누워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고 있었다. 일단은 돈을 찾으면 곧바로 조선으로 돌아갈 것이다. 경성에 가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엇다.
그 다음은… 일본도 좁다. 세계를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아울러 그는 그의 좆에게도 호강을 시켜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루만 참자. 하루를 못 참아서 망한 사람이 역사에는 너무나 많으니까.
당시 조선에서는 20세 이전에 거의 다 혼인을 했다. 하지만 경수는 조실부모 하는 바람에 혼인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혼인이 그리 급하지 않다. 어차피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들은 많을 테니 서두를 필요가 하나도 없다.
그것보다는, 하카타에 들러서 못 받은 졸업장을 받고 싶었다. 금전의 탓으로 1학기만 다니고 말았던 규슈제국대학에 가서 한 3만원을 바치면 3년은 인정해 줄 테고, 반 년만 하카타에 머물면서 졸업을 하고 말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경수는 이날도 잠을 못 이루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경수는 차를 타고 야마자키 변호사 사무소로 향했다.
야마자키는 직접 나와서 경수와 악수를 한다. “차상. 축하드립니다.”
조선인에게 일본인이 악수를 한다, 역시 돈의 힘이다. 하카타의 하숙집에서 얼마나 괄세를 당했었는가? 내 하카타에 가면 필시 그 하숙집 주인 부부를 망하게 하고 말리라. 하기는 그 집 딸 미유끼는 귀여웠는데 .. 미유끼는 잘 있나 몰라? 반드시 미유끼는 내가 먹고 만다.
“다 나가사와 고모님 덕이지요 뭐.”
“당신이 차마동 씨 맞으시지요?”
“네.”
차마동은 그의 어렸을 때 이름이고, ‘차마동이 차경수로 개명 ‘ 이라는 호적초본을 들고 왔다. 때마침 안성화와의 결혼을 위해 그게 필요해서 초본을 만들어 놓은 게 다행이었다. 그게 그런 식으로 쓰이냐?
야마자키와 그의 부하 홋타는 유언장을 보여 주었다.
“소화 3년 (1928년), 나 나가사와 렌코는 나의 전재산을 내 시댁 조카 차마동에게 상속한다.”
단 한 줄이었고 거기에는 조연주 고모님의 도장과 야마자키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죽은 사람이 남자라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가문의 상속이 걸려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죽은 사람이 여자이고 다른 친척이 없기 때문에, 가문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별 문제 없이 쉽게 일이 끝날 겁니다.”
“혹시 상속세는….”
“상속세 빼고 120만원입니다.”
경수는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이 서류에 도장만 찍으시면 다 끝납니다.”
경수는 여러 개의 서류를 잘 읽어 본 후 도장들을 찍었다.
이제 그에게는 어떤 삶이 기다릴까… 일단은 돈들을 급히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조연주 고모님께 다른 친척이 있는지는 한번도 알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숨겨진 친척이라도 나타나면 낭패다. 일단 돈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안성화가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르니 오사카도 곧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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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에는 야한 장면이 없는데, 큰 일을 해야 할 경수가 흐트러지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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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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