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소현과 유나
성태는 소현이 다니는 여고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성태는 유나의 마음속에서 보았던 미래를 떠올렸다. 클로즈 업 된 상태로 자신의 헐떡이는 얼굴만 나왔으니 장소는 미지정이나 마찬가지... 날짜는 오늘. 유나가 보았던 미래는 반드시 재현되므로 성태 자신이 이곳에 있다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곳에서 볼 확률이 높았다. 왜 유나는 이곳으로 오는 걸까? 아니면 성태 자신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만한 일이 생기는 걸까? 이 곳에서 보게 된다면 유나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성태는 학교의 지형을 파악하며 자신이 뿌려둔 재료와 계획을 머리속에서 정리했다.
성태가 이곳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소현은 어제의 일로 심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성태가 이성을 잃고 외쳤던 유나라는 사람의 이름… 다행히 학교에서 울거나하는 꼴사나운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집에서 일어나자마자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더니 마음 한구석이 조금 후련해진 것 같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할 때 넌지시 떠보니 어제의 일은 엄마도 아빠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마도 성태 역시 마찬가지 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있을까? 소현은 어제보다는 확실히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을 느끼며 교과서를 바라보았다. 겨울 방학 보충 수업은 한창이었지만 수업 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태와 소현이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유나는 여고 건물을 보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어떤 각오가 서린 얼굴이었고, 라크샤와 레쉬는 그녀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모습을 감춘 채 유나의 곁을 맴돌던 둘은 유나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앞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건 무모한 계획이다, 나의 주군이여]
[진짜야, 장난 아니야. 제정신으로 여기로 온거야? 몇번이나 말렸는데도…]
라크샤와 레쉬의 걱정을 알 수 있었지만 유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나는 성태를 상대할 수 없어…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이 얼마나 강한지도 몰라. 카타나 여자도 성태도…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강했어.”
침울함을 담은 유나의 목소리에 두악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라크샤도 레쉬도 유나라는 인간에게 매료되었다. 올곧고 착실한 그 영혼은 중간계에 거의 나와보지 않은 두 악마에게는 신선한 것이었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악마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두 악마가 유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 티 없는 영혼을 물들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면서도 있는 그대로 존재해 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감정이 두 악마의 마음에 있었다. 어느쪽이 되던, 유나가 괴로워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라크샤가 말했다.
[괴로운 한 수가 될 것이다, 주군이여. 게임에 대한 것을 알리면 천사들은 분명 참가자들을 배제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주군도 그 대상에 포함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괜찮아.”
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위험해져도, 혹은 죽는다고 해도.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주인, 잊어선 안돼. 오늘 성태를 만나게 되어있어. 어쩌면 너의 계획을 눈치채고 방해하러 온 것일 지도 모르지. 아니면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된 것 자체가 주인 너의 마음에 새겨놓은 명령일지도 몰라. 그놈은 마음을 조종하니까.]
레쉬가 말했다. 그러면서 성태를 떠올렸다.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 레쉬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무릎꿇고 복종하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종의 본능같은 것이었다. 라크샤와 확실하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녀도 똑같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유나의 모습이 들어왔고, 본능을 이겨낸 이성 덕에 그녀를 탈출 시킬 수 있었다. 또 마주친다면 저항할 수 있을까? 분명 능력은 강했지만 자신들에게는 미치지 않는 힘을 가진 인간이었다. 왜 이런 불안함이 자꾸 마음 속에 자리하는 것인지 두 악마는 알 수 없었다.
“천사와의 연결 고리를 찾자. 일단은 그게 우선이야.”
유나는 교문을 통과하며 죽음의 위협에서... 그리고 오늘 성태를 만날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을 애써 억눌렀다.
타이밍 좋게 그 순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소현은 유나가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 몸에 전해오는 감각에 몸을 일으켰다. 수업 종료를 위한 경례가 끝난 순간이라 딱히 소현에게 관심을 가지는 아이는 없었다. 소현과 친한 몇명이 일어나 매점 가자는 말을 하려 다가가는데 소현이 빠르게 창가로 뛰어가 운동장을 걷는 유나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녀가 인간임을 직감했지만 그 주위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이 두개 있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라크샤와 레쉬의 기운이었다. 학교에는 유나의 요청으로 설치된 마법진이 가동하고 있었고 악마가 몸을 숨긴다 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소현을 도와주었다.
“소혀…”
친구들이 소현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소현이 교실을 뛰쳐나갔다.
“왜 저래?”
“화장실?”
“똥을 얼마나 미워하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냐…”
“기분 안좋아보였던 건 생리가 아니라 변비 였나봐.”
친구들의 수다와는 상관없이 소현은 전속력으로 복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목표는 운동장을 걷고있는 유나였다. 친구들이 위험해지기 전에 서둘러 달리는 유나에게 익숙한 왜곡의 기운이 옥상 쪽에서 느껴졌다. 소현은 이를 악 물었다. 어디를 가야하지, 옥상… 아니면 저 여자? 빠르게 아래를 향하던 소현의 몸이 계단이 꺾이는 지점에서 벽을 향해 점프한 뒤 그것을 박차며 도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수가 더 직접적인 위험이다. 우선은 그쪽을 정리한다.
릴리스와 린 콤비는 튀어나온 마수를 보며 흥미롭게 학교 밖의 공중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모습은 숨기고 있으므로 인간의 눈에 띌 염려는 없었다. 옥상에서는 린의 창조 능력을 눈속임 하기 위한 차원 왜곡의 흔적과 새롭게 탄생한 마수가 있었다. 왜곡의 흔적은 곧바로 씻겨나가고 마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체는 거울로 되어있고 팔다리 없이 손과 발이 조금 떨어진 곳에 부유하고 있었다. 땅에 발을 디딘 거울은 옥상 문이 열리는 곳을 보았다.
“멈춰!”
마법 소녀 페르소나의 기본형으로 변신한 소현이 옥상에 들어서자 마자 외쳤다. 거울은 몸을 틀어 소현의 모습을 비추었다. 기본형의 야릇한 옷차림을 자각하게 되자 소현은 얼굴을 붉히며 앞으로 달려갔다. 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발차기가 날아갔다. 스커트가 펄럭이며 매끄러운 다리가 자신을 꼭 닮은 매끄러운 선을 그렸다. 거울은 타격을 받고 조금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거울에서 영상이 떠올랐다. 어제 있었던 성태와 소현의 섹스장면이었다. 성태의 목에서 나온 말에 울부짓고있는 소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거울에서 들려온 대사는 조금 달랐다.
[나는 성태를 좋아하는데… 성태는 나를 안좋아해… 유나가 누구야… 너를 사랑하는 건 나야… 유나가 누구야… 죽이고 싶어…]
소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생각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분노와 수치심을 담은 주먹이 몇번이고 거울을 타격했다. 거울은 맞을 때마다 몸을 비틀거렸다.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고 마음을 비추는 것 빼고는 별다른 능력도 없는 마수 같았다. 얼른… 얼른… 스러트려야 해!
그때 옥상 문이 열렸고 성태가 뛰어들어왔다. 문 열리는 소리에 당황하며 뒤를 돌아본 소현은 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거울이 비추는 것을 성태가 보게된다면… 아찔함을 느끼며 휘두른 주먹에 아까까지는 없던 서투름이 뭍어났다. 거울은 날아오는 그녀의 주먹을 피해 손목을 잡고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소현 누나!”
바닥을 구르면서도 소현은 성태가 이쪽으로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소현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자 성태는 전속력으로 그녀를 향해 달렸다. 손에는 어설프게나마 대걸래에서 뽑아낸 나무 자루도 들려있었다.
“으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소현을 지키려는 듯 그녀 앞을 막아서며 성태가 양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소현의 도장에서 죽도라면 제법 쥐어본 터라 성태의 자세를 그럴싸했다. 거울은 그런 성태에게 딱히 달려들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성태를 비추었을 뿐이다.
유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졌다. 눈물 흘리며 악의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나의 모습에 성태는 겁에 질려있었다. 유나가 악에 받친 듯 고함을 지르자 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부정하는 모습이었다.
[미안해요… 유나 누나… 나는... 누나가 좋아서… 미안해요… 미워하지 말아요… 누나를 좋아해서 그런거에요...]
새파랗게 질린 성태의 모습이 소현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데 거울이 성태를 향해 걸어왔다. 느릿한 걸음이지만 전의를 상실한 듯한 성태의 모습을 보며 거울이 손을 휘둘렀다. 퍼억, 큰 소리와 함께 성태의 몸이 허공을 날랐다. 땅바닥을 몇번 구른 성태는 기절한듯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성태의 옆으로 그가 굳세게 쥐고있던 나무 자루가 허망한 소리를 내며 뒤이어 떨어졌다.
소현은 분노에 찬 함성을 지르며 거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몇번이고 주먹을 내지르며 유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깨부수려했다. 타격을 허용하면서도 거울은 결코 깨지지 않고 그저 비틀거리기만 했다. 소현은 헉헉거리며 증오에 찬 눈으로 유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유나…
옥상에 또 다른 등장인물이 도착했다. 라크샤와 레쉬가 마수의 등장을 알리자 뛰어온 유나였다. 운동장을 가로 질러 쉬지 않고 학교 옥상까지 달려왔던 터라 유나의 호흡은 가빨랐다. 이번에도 라크샤와 레쉬가 자신과 떨어졌지만 워낙 정신이 없었던 유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유나는 자신을 노려보는 야한 옷차림을 한 소녀의 시선에 움찔 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위협적이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워보이는 모습에 유나는 약간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거울이 유나를 비추었다. 눈동자가 멍해진 성태의 얼굴을 재밌어하며 유나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혀로 목을 핥고는 귓가에 무언가 속삭인다. 여전히 멍한 눈동자의 성태가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모습을 보아하니 성태의 정신은 나가버린 듯 했다.
[내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어… 너와 함께 다니는 마법 소녀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이제 잊어버려… 너는 나를 사랑해… 나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어… 나를 좋아해서 터무니 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어… 너는 죄책감과 나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은 생각 할 수도 업어… 너는 나의 노예야…]
영상과 소리에 유나는 어이없어 했고 소현은 급격하게 분노했다. 뒤늦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소현을 발견한 유나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사이 그녀의 복부를 소현의 발이 강타했다. 쿨럭하고 숨을 토해내며 유나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쩌적하고 거울에 금이간 것을 발견한 소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는 일반인 수준의 몸을 하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통증을 느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소현은 그런 유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금방 유나의 앞에 도착한 소현은 그녀의 뺨을 때렸다.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유나의 얼굴이 돌아갔고 이번에도 거울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짜악, 짜악. 분노를 담은 소현의 손바닥이 몇번이고 유나의 뺨을 갈겼다. 부어오른 뺨의 통증에 유나는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아마도 이 아이는 성태에게 뭔가 속고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입이 제대로 움직이지않았다.
“무슨 짓을 했어!”
눈물 투성이인 소현이 소리질렀다. 유나는 그녀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
“저기…”
“성태에게 무슨 짓을 했어! 저 착한 아이한테! 비겁하게!”
대답은 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소현은 다시 손을 휘둘렀다. 거울에 비친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법 소녀인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위해 성태를 이용했다는 것 정도는… 아무런 힘도 없는 성태를 이용해서…
“악마라는 것들은 최악이야! 이런 비겁한 방식으로!”
다시한번 손을 휘둘렀다. 유나는 고통 속에서도 말을 하려 몇번이고 입술을 움직이려했다. 아니야, 너는 속고있어. 정신 차려야해. 그 말은 결코 태어나지 못했다. 유나의 얼굴은 몇번이고 소현의 손바닥에 맞아 좌우로 흔들릴 뿐이었다. 의식을 잃을 지경이었고 입속에 쇠 맛이 났다. 나는 끝까지… 아무것도 못했어…
여기가 끝이 아니지. 그러면 재미없잖아?
마음 속에 들려오는 성태의 목소리에 유나는 흠칫 떨었다. 완강히 저항하려 하면서도 성태의 의도에 따라 몸이 움직였다. 또 따귀를 때리려 휘두르는 소현의 손을 유나가 붙잡았다. 부어오른 얼굴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소현이 움찔거리는 타이밍에 맞춰 유나의 성대가 키득거리는 웃음을 뱉었다.
“많이 아팠니?”
부어올라 튀어나온 소리는 웅얼거리는 듯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소현은 분노에 부들거리며 손을 빼내려했지만 유나의 몸은 놓아주지 않았다. 유나의 다른 손이 거울을 향해 뻗어졌고 자연히 소현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거울이 산산 조각이 나며 부서지더니 조각들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지렁이 같은 모습으로 조각 덩어리들이 꿈틀거렸다.
“멈춰…”
조각 덩어리들은 탐색하듯 성태의 주변을 맴돌았다.
“멈추라고!”
소현이 유나의 옆구리를 후려 차자 유나의 몸이 튕겨졌다. 소현은 자유롭게 변한 몸을 날려 성태를 지키기 위해 조각 덩어리들이 달려드는 경로를 막아섰다. 성태와 소현의 몸이 조각 파편에 둘러쌓였다. 소현이 조각 사이로 유나의 모습을 보려했지만 한 악마가 나타나 유나를 안고 하늘을 날았다. ?을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인지하며 소현은 분노했다.
그런 소현에게 수많은 영상이 보였다.
어두운 밤길을 조용히 산책하던 소년이 있었다. 스스로 소개하기 전까지는 여자로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소년, 성태였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공원을 산책하던 성태 앞에 왜곡이 일어났고 마수가 등장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패닉에 빠진 성태를 마침 인근에 있던 소현이 변신해 구했다.
소현이 가는 곳 마다 성태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위험하다고 말려도 요지부동이었다. 성태는 똑똑한 아이였고, 마수를 상대할 만한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것은 없었지만 지혜가 있었다. 성태의 도움으로 소현은 몇번쯤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힘차게 싸워나가는 소녀를 소년은 언제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동경과 사랑이 담긴 눈빛으로.
성태의 모습이 혼자 비춰졌다. 동경하고 사랑하는 소녀의 옆에서 함께 싸울 수 없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유나가 나타났다.
-마법을 익히면 되요. 어려운 것은 아니랍니다.
악마의 날개를 등 뒤에 펼치자 성태는 꺼림직해 하면서도 혹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의 힘이라도 상관 없어요. 선하게 사용하면 되지요. 그녀를 돕고싶지 않나요?
성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곧 성태의 눈이 몽롱해지고 유나의 손가락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힘을 얻는데에는 댓가가 필요하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갈게요. 좋아요. 큰 여백이 생겼군요. 이만큼이나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힘들일인데… 여기에 제 모습을 넣도록 하죠. 그리고… 악마의 씨앗을 심어볼까요? 언젠가 당신이 사랑하는 소녀는 당신을 죽여야 할 순간이 올거에요.
유나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성태는 총기를 잃은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짜릿한 일이군요.
유나가 성태의 입에 키스했다. 계약이 이루어지고 성태의 마음에 악마의 씨앗이 심겼다. 유나는 곧 사라졌고, 성태는 홀로 남겨졌다. 유나를 만났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자신을 떠올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아… 좋아하는… 사람… 그건… 소현 누나? 하하하. 그럴리가. 그냥 좋은 동료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유나 누나.
유나의 이름을 떠올린 성태는 가슴 아파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큰 잘 못을 저질렀어. 무슨 잘못이었더라… 어, 기억이 안나네. 어쨌건 유나 누나를 만나야 해. 만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야해. 유나 누나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야 해.
영상이 끝을 맺었다. 소현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나를 좋아했는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놀다니… 컴팩트형 손거울을 꺼내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물 범벅이 된 자신의 얼굴이 비춰졌다.
“꿈과 희망을 위해, 다시 한번 절망을 딛기 위해, 페르소나 체인지!”
소현의 주문과 함께 빛이 나타나고 그녀를 감쌌다. 소현의 옷차림이 변했다. 그녀 학교의 교복과 꼭 닮았지만 훨씬 짧은 치마와 가슴 굴곡을 강조할만큼 타이트하게 달라붙은 블라우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허리에 앞치마가 감겨 있었고 양손에는 마법봉 같은 디자인의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들려있었다. 떠도는 조각들을 보며 소현이 빗자루를 휘두르자 조각들이 쓰레받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수의 마지막 한 톨까지 봉인한 것에 성공했음을 느끼고 변신을 풀자 원래 소현의 복장으로 돌아갔다.
소현은 쓰러진 성태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무릎위에 얹힌 채 바닥에 다소곳이 앉았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나를 좋아했어… 처음부터… 소현은 성태의 머리를 쓸었다. 성태가 움찔거리며 눈을 조금 떴다. 소현은 성태를 향해 머리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
한참 유나를 따라 이동하고 있던 라크샤와 레쉬는 릴리스의 습격을 받았다. 유나는 말릴 새도 없이 계속 달려나갔다. 쫓으려 했지만 릴리스의 공격에 둘을 거리를 벌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뭔 개수작이냐?”
레쉬가 이를 갈았다. 릴리스가 꼬리를 흔들었다.
“참가자를 직접 공격할 순 없지만, 따르는 악마를 저지하는 건 반칙이 아니지롱. 알고 있었을텐데?”
일전에 한번 당해보기도 하셨고 말이야. 릴리스가 혀를 낼름거리며 키득거렸다. 라크샤가 한숨을 쉬며 릴리스에게 말했다.
“찬영도 없이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네 년을 벌래처럼 터트려 죽이는 건 내게 일도 아니다.”
“내가 조금 성장해서 말이야. 너희 둘 정도는 뭐… 킥킥.”
레쉬는 달려들며 릴리스를 향해 주먹을 뻗었고, 릴리스는 몸을 띄워 그 주먹위에 사뿐 내려앉았다.
“너 원래 이렇게 시시한 주먹이였나, 으응?”
이번에는 라크샤가 날아올라 릴리스의 머리를 노린 발을 휘둘렀다. 인간의 눈으로는 쫓기 힘든 스피드였지만 릴리스는 사뿐, 고양이처럼 레쉬의 팔 위를 기는 자세를 취하며 발을 피해냈다. 허공을 가른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라크샤의 뺨을 릴리스의 꼬리가 후려쳤고, 라크샤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야옹-!”
릴리스가 장난스럽게 소리를 흘리며 레쉬의 뒤로 빙글 돌며 착지했다. 연이어 숙인 자세 그대로 다리를 휘둘러 레쉬의 발목을 걷어 찼고 레쉬는 바닥에 얼굴을 쳐박았다.
예전이라면 가능하지 못했을 일이었고 릴리스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주인을 위한다는 욕망은 수많은 교미를 그녀에게 행하도록 했고, 릴리스는 자신의 권능 덕에 예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 할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둘이 아니라 이런 놈들쯤 넷이 되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금발 머리를 휙 휘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릴리스는 각자의 위치에서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두 악마를 바라보았다. 인간 여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고 성태의 명령이 마음 속에 새겨졌다. 릴리스는 두 악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느끼면서도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그 욕망을 꺾었다. 등 뒤의 날개를 편 릴리스가 기분 좋게 조롱이 가득 담긴 웃음을 두 악마들에게 흘려보내며 학교 밖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레쉬와 라크샤는 고뇌했다. 당장 릴리스를 쫓아가 계속 싸우고 싶었지만, 유나가 어떤 위험을 겪고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짧은 고민 끝에 라크샤가 먼저 옥상으로 향했고 레쉬도 뒤를 따랐다. 옥상에 도착하니 소현이 유나의 옆구리를 걷어차는 모습이 보였다. 유나의 얼굴은 구타에 의해 엉망이 되어있었고 그 모습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라크샤는 전속력으로 유나에게 날아가 그녀를 허공에서 안아들었다. 라크샤와 레쉬의 시야가 얽혔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를 탈출하기 위해 하늘을 날았다.
***
작가의 말
상가집에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오늘은 빠르게 글을 쓰다보니 노 섹스!
[email protected]
성태는 소현이 다니는 여고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성태는 유나의 마음속에서 보았던 미래를 떠올렸다. 클로즈 업 된 상태로 자신의 헐떡이는 얼굴만 나왔으니 장소는 미지정이나 마찬가지... 날짜는 오늘. 유나가 보았던 미래는 반드시 재현되므로 성태 자신이 이곳에 있다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곳에서 볼 확률이 높았다. 왜 유나는 이곳으로 오는 걸까? 아니면 성태 자신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만한 일이 생기는 걸까? 이 곳에서 보게 된다면 유나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성태는 학교의 지형을 파악하며 자신이 뿌려둔 재료와 계획을 머리속에서 정리했다.
성태가 이곳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소현은 어제의 일로 심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성태가 이성을 잃고 외쳤던 유나라는 사람의 이름… 다행히 학교에서 울거나하는 꼴사나운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집에서 일어나자마자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더니 마음 한구석이 조금 후련해진 것 같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할 때 넌지시 떠보니 어제의 일은 엄마도 아빠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마도 성태 역시 마찬가지 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있을까? 소현은 어제보다는 확실히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을 느끼며 교과서를 바라보았다. 겨울 방학 보충 수업은 한창이었지만 수업 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태와 소현이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유나는 여고 건물을 보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어떤 각오가 서린 얼굴이었고, 라크샤와 레쉬는 그녀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모습을 감춘 채 유나의 곁을 맴돌던 둘은 유나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앞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건 무모한 계획이다, 나의 주군이여]
[진짜야, 장난 아니야. 제정신으로 여기로 온거야? 몇번이나 말렸는데도…]
라크샤와 레쉬의 걱정을 알 수 있었지만 유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나는 성태를 상대할 수 없어…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이 얼마나 강한지도 몰라. 카타나 여자도 성태도…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강했어.”
침울함을 담은 유나의 목소리에 두악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라크샤도 레쉬도 유나라는 인간에게 매료되었다. 올곧고 착실한 그 영혼은 중간계에 거의 나와보지 않은 두 악마에게는 신선한 것이었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악마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두 악마가 유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 티 없는 영혼을 물들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면서도 있는 그대로 존재해 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감정이 두 악마의 마음에 있었다. 어느쪽이 되던, 유나가 괴로워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라크샤가 말했다.
[괴로운 한 수가 될 것이다, 주군이여. 게임에 대한 것을 알리면 천사들은 분명 참가자들을 배제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주군도 그 대상에 포함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괜찮아.”
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위험해져도, 혹은 죽는다고 해도.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주인, 잊어선 안돼. 오늘 성태를 만나게 되어있어. 어쩌면 너의 계획을 눈치채고 방해하러 온 것일 지도 모르지. 아니면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된 것 자체가 주인 너의 마음에 새겨놓은 명령일지도 몰라. 그놈은 마음을 조종하니까.]
레쉬가 말했다. 그러면서 성태를 떠올렸다.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 레쉬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무릎꿇고 복종하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종의 본능같은 것이었다. 라크샤와 확실하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녀도 똑같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유나의 모습이 들어왔고, 본능을 이겨낸 이성 덕에 그녀를 탈출 시킬 수 있었다. 또 마주친다면 저항할 수 있을까? 분명 능력은 강했지만 자신들에게는 미치지 않는 힘을 가진 인간이었다. 왜 이런 불안함이 자꾸 마음 속에 자리하는 것인지 두 악마는 알 수 없었다.
“천사와의 연결 고리를 찾자. 일단은 그게 우선이야.”
유나는 교문을 통과하며 죽음의 위협에서... 그리고 오늘 성태를 만날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을 애써 억눌렀다.
타이밍 좋게 그 순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소현은 유나가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 몸에 전해오는 감각에 몸을 일으켰다. 수업 종료를 위한 경례가 끝난 순간이라 딱히 소현에게 관심을 가지는 아이는 없었다. 소현과 친한 몇명이 일어나 매점 가자는 말을 하려 다가가는데 소현이 빠르게 창가로 뛰어가 운동장을 걷는 유나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녀가 인간임을 직감했지만 그 주위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이 두개 있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라크샤와 레쉬의 기운이었다. 학교에는 유나의 요청으로 설치된 마법진이 가동하고 있었고 악마가 몸을 숨긴다 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소현을 도와주었다.
“소혀…”
친구들이 소현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소현이 교실을 뛰쳐나갔다.
“왜 저래?”
“화장실?”
“똥을 얼마나 미워하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냐…”
“기분 안좋아보였던 건 생리가 아니라 변비 였나봐.”
친구들의 수다와는 상관없이 소현은 전속력으로 복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목표는 운동장을 걷고있는 유나였다. 친구들이 위험해지기 전에 서둘러 달리는 유나에게 익숙한 왜곡의 기운이 옥상 쪽에서 느껴졌다. 소현은 이를 악 물었다. 어디를 가야하지, 옥상… 아니면 저 여자? 빠르게 아래를 향하던 소현의 몸이 계단이 꺾이는 지점에서 벽을 향해 점프한 뒤 그것을 박차며 도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수가 더 직접적인 위험이다. 우선은 그쪽을 정리한다.
릴리스와 린 콤비는 튀어나온 마수를 보며 흥미롭게 학교 밖의 공중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모습은 숨기고 있으므로 인간의 눈에 띌 염려는 없었다. 옥상에서는 린의 창조 능력을 눈속임 하기 위한 차원 왜곡의 흔적과 새롭게 탄생한 마수가 있었다. 왜곡의 흔적은 곧바로 씻겨나가고 마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체는 거울로 되어있고 팔다리 없이 손과 발이 조금 떨어진 곳에 부유하고 있었다. 땅에 발을 디딘 거울은 옥상 문이 열리는 곳을 보았다.
“멈춰!”
마법 소녀 페르소나의 기본형으로 변신한 소현이 옥상에 들어서자 마자 외쳤다. 거울은 몸을 틀어 소현의 모습을 비추었다. 기본형의 야릇한 옷차림을 자각하게 되자 소현은 얼굴을 붉히며 앞으로 달려갔다. 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발차기가 날아갔다. 스커트가 펄럭이며 매끄러운 다리가 자신을 꼭 닮은 매끄러운 선을 그렸다. 거울은 타격을 받고 조금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거울에서 영상이 떠올랐다. 어제 있었던 성태와 소현의 섹스장면이었다. 성태의 목에서 나온 말에 울부짓고있는 소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거울에서 들려온 대사는 조금 달랐다.
[나는 성태를 좋아하는데… 성태는 나를 안좋아해… 유나가 누구야… 너를 사랑하는 건 나야… 유나가 누구야… 죽이고 싶어…]
소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생각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분노와 수치심을 담은 주먹이 몇번이고 거울을 타격했다. 거울은 맞을 때마다 몸을 비틀거렸다.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고 마음을 비추는 것 빼고는 별다른 능력도 없는 마수 같았다. 얼른… 얼른… 스러트려야 해!
그때 옥상 문이 열렸고 성태가 뛰어들어왔다. 문 열리는 소리에 당황하며 뒤를 돌아본 소현은 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거울이 비추는 것을 성태가 보게된다면… 아찔함을 느끼며 휘두른 주먹에 아까까지는 없던 서투름이 뭍어났다. 거울은 날아오는 그녀의 주먹을 피해 손목을 잡고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소현 누나!”
바닥을 구르면서도 소현은 성태가 이쪽으로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소현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자 성태는 전속력으로 그녀를 향해 달렸다. 손에는 어설프게나마 대걸래에서 뽑아낸 나무 자루도 들려있었다.
“으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소현을 지키려는 듯 그녀 앞을 막아서며 성태가 양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소현의 도장에서 죽도라면 제법 쥐어본 터라 성태의 자세를 그럴싸했다. 거울은 그런 성태에게 딱히 달려들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성태를 비추었을 뿐이다.
유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졌다. 눈물 흘리며 악의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나의 모습에 성태는 겁에 질려있었다. 유나가 악에 받친 듯 고함을 지르자 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부정하는 모습이었다.
[미안해요… 유나 누나… 나는... 누나가 좋아서… 미안해요… 미워하지 말아요… 누나를 좋아해서 그런거에요...]
새파랗게 질린 성태의 모습이 소현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데 거울이 성태를 향해 걸어왔다. 느릿한 걸음이지만 전의를 상실한 듯한 성태의 모습을 보며 거울이 손을 휘둘렀다. 퍼억, 큰 소리와 함께 성태의 몸이 허공을 날랐다. 땅바닥을 몇번 구른 성태는 기절한듯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성태의 옆으로 그가 굳세게 쥐고있던 나무 자루가 허망한 소리를 내며 뒤이어 떨어졌다.
소현은 분노에 찬 함성을 지르며 거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몇번이고 주먹을 내지르며 유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깨부수려했다. 타격을 허용하면서도 거울은 결코 깨지지 않고 그저 비틀거리기만 했다. 소현은 헉헉거리며 증오에 찬 눈으로 유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유나…
옥상에 또 다른 등장인물이 도착했다. 라크샤와 레쉬가 마수의 등장을 알리자 뛰어온 유나였다. 운동장을 가로 질러 쉬지 않고 학교 옥상까지 달려왔던 터라 유나의 호흡은 가빨랐다. 이번에도 라크샤와 레쉬가 자신과 떨어졌지만 워낙 정신이 없었던 유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유나는 자신을 노려보는 야한 옷차림을 한 소녀의 시선에 움찔 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위협적이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워보이는 모습에 유나는 약간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거울이 유나를 비추었다. 눈동자가 멍해진 성태의 얼굴을 재밌어하며 유나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혀로 목을 핥고는 귓가에 무언가 속삭인다. 여전히 멍한 눈동자의 성태가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모습을 보아하니 성태의 정신은 나가버린 듯 했다.
[내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어… 너와 함께 다니는 마법 소녀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이제 잊어버려… 너는 나를 사랑해… 나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어… 나를 좋아해서 터무니 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어… 너는 죄책감과 나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은 생각 할 수도 업어… 너는 나의 노예야…]
영상과 소리에 유나는 어이없어 했고 소현은 급격하게 분노했다. 뒤늦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소현을 발견한 유나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사이 그녀의 복부를 소현의 발이 강타했다. 쿨럭하고 숨을 토해내며 유나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쩌적하고 거울에 금이간 것을 발견한 소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는 일반인 수준의 몸을 하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통증을 느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소현은 그런 유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금방 유나의 앞에 도착한 소현은 그녀의 뺨을 때렸다.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유나의 얼굴이 돌아갔고 이번에도 거울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짜악, 짜악. 분노를 담은 소현의 손바닥이 몇번이고 유나의 뺨을 갈겼다. 부어오른 뺨의 통증에 유나는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아마도 이 아이는 성태에게 뭔가 속고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입이 제대로 움직이지않았다.
“무슨 짓을 했어!”
눈물 투성이인 소현이 소리질렀다. 유나는 그녀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
“저기…”
“성태에게 무슨 짓을 했어! 저 착한 아이한테! 비겁하게!”
대답은 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소현은 다시 손을 휘둘렀다. 거울에 비친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법 소녀인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위해 성태를 이용했다는 것 정도는… 아무런 힘도 없는 성태를 이용해서…
“악마라는 것들은 최악이야! 이런 비겁한 방식으로!”
다시한번 손을 휘둘렀다. 유나는 고통 속에서도 말을 하려 몇번이고 입술을 움직이려했다. 아니야, 너는 속고있어. 정신 차려야해. 그 말은 결코 태어나지 못했다. 유나의 얼굴은 몇번이고 소현의 손바닥에 맞아 좌우로 흔들릴 뿐이었다. 의식을 잃을 지경이었고 입속에 쇠 맛이 났다. 나는 끝까지… 아무것도 못했어…
여기가 끝이 아니지. 그러면 재미없잖아?
마음 속에 들려오는 성태의 목소리에 유나는 흠칫 떨었다. 완강히 저항하려 하면서도 성태의 의도에 따라 몸이 움직였다. 또 따귀를 때리려 휘두르는 소현의 손을 유나가 붙잡았다. 부어오른 얼굴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소현이 움찔거리는 타이밍에 맞춰 유나의 성대가 키득거리는 웃음을 뱉었다.
“많이 아팠니?”
부어올라 튀어나온 소리는 웅얼거리는 듯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소현은 분노에 부들거리며 손을 빼내려했지만 유나의 몸은 놓아주지 않았다. 유나의 다른 손이 거울을 향해 뻗어졌고 자연히 소현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거울이 산산 조각이 나며 부서지더니 조각들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지렁이 같은 모습으로 조각 덩어리들이 꿈틀거렸다.
“멈춰…”
조각 덩어리들은 탐색하듯 성태의 주변을 맴돌았다.
“멈추라고!”
소현이 유나의 옆구리를 후려 차자 유나의 몸이 튕겨졌다. 소현은 자유롭게 변한 몸을 날려 성태를 지키기 위해 조각 덩어리들이 달려드는 경로를 막아섰다. 성태와 소현의 몸이 조각 파편에 둘러쌓였다. 소현이 조각 사이로 유나의 모습을 보려했지만 한 악마가 나타나 유나를 안고 하늘을 날았다. ?을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인지하며 소현은 분노했다.
그런 소현에게 수많은 영상이 보였다.
어두운 밤길을 조용히 산책하던 소년이 있었다. 스스로 소개하기 전까지는 여자로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소년, 성태였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공원을 산책하던 성태 앞에 왜곡이 일어났고 마수가 등장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패닉에 빠진 성태를 마침 인근에 있던 소현이 변신해 구했다.
소현이 가는 곳 마다 성태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위험하다고 말려도 요지부동이었다. 성태는 똑똑한 아이였고, 마수를 상대할 만한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것은 없었지만 지혜가 있었다. 성태의 도움으로 소현은 몇번쯤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힘차게 싸워나가는 소녀를 소년은 언제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동경과 사랑이 담긴 눈빛으로.
성태의 모습이 혼자 비춰졌다. 동경하고 사랑하는 소녀의 옆에서 함께 싸울 수 없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유나가 나타났다.
-마법을 익히면 되요. 어려운 것은 아니랍니다.
악마의 날개를 등 뒤에 펼치자 성태는 꺼림직해 하면서도 혹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의 힘이라도 상관 없어요. 선하게 사용하면 되지요. 그녀를 돕고싶지 않나요?
성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곧 성태의 눈이 몽롱해지고 유나의 손가락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힘을 얻는데에는 댓가가 필요하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갈게요. 좋아요. 큰 여백이 생겼군요. 이만큼이나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힘들일인데… 여기에 제 모습을 넣도록 하죠. 그리고… 악마의 씨앗을 심어볼까요? 언젠가 당신이 사랑하는 소녀는 당신을 죽여야 할 순간이 올거에요.
유나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성태는 총기를 잃은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짜릿한 일이군요.
유나가 성태의 입에 키스했다. 계약이 이루어지고 성태의 마음에 악마의 씨앗이 심겼다. 유나는 곧 사라졌고, 성태는 홀로 남겨졌다. 유나를 만났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자신을 떠올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아… 좋아하는… 사람… 그건… 소현 누나? 하하하. 그럴리가. 그냥 좋은 동료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유나 누나.
유나의 이름을 떠올린 성태는 가슴 아파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큰 잘 못을 저질렀어. 무슨 잘못이었더라… 어, 기억이 안나네. 어쨌건 유나 누나를 만나야 해. 만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야해. 유나 누나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야 해.
영상이 끝을 맺었다. 소현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나를 좋아했는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놀다니… 컴팩트형 손거울을 꺼내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물 범벅이 된 자신의 얼굴이 비춰졌다.
“꿈과 희망을 위해, 다시 한번 절망을 딛기 위해, 페르소나 체인지!”
소현의 주문과 함께 빛이 나타나고 그녀를 감쌌다. 소현의 옷차림이 변했다. 그녀 학교의 교복과 꼭 닮았지만 훨씬 짧은 치마와 가슴 굴곡을 강조할만큼 타이트하게 달라붙은 블라우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허리에 앞치마가 감겨 있었고 양손에는 마법봉 같은 디자인의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들려있었다. 떠도는 조각들을 보며 소현이 빗자루를 휘두르자 조각들이 쓰레받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수의 마지막 한 톨까지 봉인한 것에 성공했음을 느끼고 변신을 풀자 원래 소현의 복장으로 돌아갔다.
소현은 쓰러진 성태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무릎위에 얹힌 채 바닥에 다소곳이 앉았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나를 좋아했어… 처음부터… 소현은 성태의 머리를 쓸었다. 성태가 움찔거리며 눈을 조금 떴다. 소현은 성태를 향해 머리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
한참 유나를 따라 이동하고 있던 라크샤와 레쉬는 릴리스의 습격을 받았다. 유나는 말릴 새도 없이 계속 달려나갔다. 쫓으려 했지만 릴리스의 공격에 둘을 거리를 벌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뭔 개수작이냐?”
레쉬가 이를 갈았다. 릴리스가 꼬리를 흔들었다.
“참가자를 직접 공격할 순 없지만, 따르는 악마를 저지하는 건 반칙이 아니지롱. 알고 있었을텐데?”
일전에 한번 당해보기도 하셨고 말이야. 릴리스가 혀를 낼름거리며 키득거렸다. 라크샤가 한숨을 쉬며 릴리스에게 말했다.
“찬영도 없이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네 년을 벌래처럼 터트려 죽이는 건 내게 일도 아니다.”
“내가 조금 성장해서 말이야. 너희 둘 정도는 뭐… 킥킥.”
레쉬는 달려들며 릴리스를 향해 주먹을 뻗었고, 릴리스는 몸을 띄워 그 주먹위에 사뿐 내려앉았다.
“너 원래 이렇게 시시한 주먹이였나, 으응?”
이번에는 라크샤가 날아올라 릴리스의 머리를 노린 발을 휘둘렀다. 인간의 눈으로는 쫓기 힘든 스피드였지만 릴리스는 사뿐, 고양이처럼 레쉬의 팔 위를 기는 자세를 취하며 발을 피해냈다. 허공을 가른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라크샤의 뺨을 릴리스의 꼬리가 후려쳤고, 라크샤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야옹-!”
릴리스가 장난스럽게 소리를 흘리며 레쉬의 뒤로 빙글 돌며 착지했다. 연이어 숙인 자세 그대로 다리를 휘둘러 레쉬의 발목을 걷어 찼고 레쉬는 바닥에 얼굴을 쳐박았다.
예전이라면 가능하지 못했을 일이었고 릴리스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주인을 위한다는 욕망은 수많은 교미를 그녀에게 행하도록 했고, 릴리스는 자신의 권능 덕에 예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 할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둘이 아니라 이런 놈들쯤 넷이 되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금발 머리를 휙 휘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릴리스는 각자의 위치에서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두 악마를 바라보았다. 인간 여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고 성태의 명령이 마음 속에 새겨졌다. 릴리스는 두 악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느끼면서도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그 욕망을 꺾었다. 등 뒤의 날개를 편 릴리스가 기분 좋게 조롱이 가득 담긴 웃음을 두 악마들에게 흘려보내며 학교 밖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레쉬와 라크샤는 고뇌했다. 당장 릴리스를 쫓아가 계속 싸우고 싶었지만, 유나가 어떤 위험을 겪고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짧은 고민 끝에 라크샤가 먼저 옥상으로 향했고 레쉬도 뒤를 따랐다. 옥상에 도착하니 소현이 유나의 옆구리를 걷어차는 모습이 보였다. 유나의 얼굴은 구타에 의해 엉망이 되어있었고 그 모습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라크샤는 전속력으로 유나에게 날아가 그녀를 허공에서 안아들었다. 라크샤와 레쉬의 시야가 얽혔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를 탈출하기 위해 하늘을 날았다.
***
작가의 말
상가집에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오늘은 빠르게 글을 쓰다보니 노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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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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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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