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소망
깨어난 유나는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골목을 걸었다. 더러운 냄새가 가득했다. 찢어진 옷과 엉망이 된 몸이었지만 살아야한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일었다. 살아서… 라크샤와 레쉬의 복수를 해야한다. 유나의 몸은 다행히 인간일 때보다 훨씬 강인했고 걸어가는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날개를 깨닫고 유나는 골머리를 앓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무심결에 날개가 사라지길 마음으로 빌었더니 거짓말처럼 그렇게 되었다. 유나는 고민하던 것을 허탈해하다 걸음을 다시 이어갔다.
“예쁜 언니, 꼴이 말이 아니네.”
약간 도로변으로 나오자 뺀질해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히죽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남자는 뱀같은 시선으로 유나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성태에게 강간당하며 군데군데 찢어진 모습과 유나의 외모가 조합되어 굉장히 퇴폐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별다른 대답이 없자 남자는 신이나 유나의 몸에 바짝붙어 그녀의 엉덩이를 살짝 건드렸다.
“다 큰 언니가 집이라도 나왔나? 내가 옷 사줄 돈 정도는 있는데...”
번들거리는 시선을 바라보자 유나는 성태를 떠올렸다. 남자라는 것들은 다 이런걸까… 정신을 차렸을 때 타오르던 분노는 거짓말 처럼 잔잔하게 가라 앉아있었다. 하지만 꺼트려진 것은 아니었다. 그 열기는 고스란히 간직한 채 거뭇한 재로 겉치장하고 몸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유나는 피곤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잔뜩 기대를 머금은 눈빛으로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광기와 분노를 조용히 머금은 눈빛을 보며 남자는 그저 떨었다. 처참한 공포를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가 어어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바지를 축축히 적시고 말았다. 비릿한 냄새에 유나는 조금 찡그린 다음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공원에 도착한 유나는 밴치에 앉아 가만히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살려는 의지만을 가진 미약한 생명… 유나는 마치 아기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힘차게 자신의 배를 두드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죽일까?
유나가 멍한 눈동자로 배를 쓰다듬었다.
미쳤어? 아기는 아무 죄도 없어.
아니지… 그 개자식의 씨야. 내 배를 축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죄를 지었어.
생명이야!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이렇게 살려고 하는데!
라크샤와 레쉬도 살려고 했어! 그런데 성태 때문에!
아니지…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내가 고집을 부려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어.
아직 결말 맺지 못한 혼란 속에서 유나는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밴치 위에 다리를 올려 무릎을 감싸 안았다. 눈물이 바지를 적셨고, 유나의 몸이 애처롭게 떨려왔다. 알고있다. 아무리 울어도 죽은 자들이 돌아올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도…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염없이 울다 유나는 그 자리에서 지쳐 잠들었던 그녀는 새벽 쯔음 찬 공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아기에 대한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성태를 죽이는 것. 자신의 힘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게임의 참가자는 많을 것이고, 그 중에 성태보다 강한 자도 있기를 기도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둘을 싸우게 만들면 될 일이었다. 성태가 지친다면 자신의 손으로 죽이면 되는 일이다. 싸우다 성태가 죽는다면? 그 시체를 끌고가 난도질을 할 생각이었다.
카타나 여자와 성태를 천사와 연관이 있는 그 학교에서 만나도록 미래를 셋팅했다. 욕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아직도 여분이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미래 관조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인 최상의 욕망으로 단 한번 미래 셋팅을 쓰는 것만으로도 욕망이 바닥이 났었는데 이제는 여유가 제법 있었다. 동료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죄책감이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현실을 깨닫자 마음이 욱신거렸다. 강해지는 것 따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웃으며 행복하기를 바랬는데.
멍하니 공원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겨울 나무는 잎사귀를 모두 떨어트리고 홀로 쓸쓸히 서있었다. 동병상련… 쓸쓸히 겨울 바람에 떨고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유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강하게 불지 않는 겨울 바람은 그래서 더 매서웠다. 천천히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 했다. 유나에게는 여밀 겉옷조차 없었다.
[유...나]
자신의 몸 속에서, 정확히는 새로운 생명이 깃들어 있는 뱃속에서 의사를 가진 어떤 것이 느껴졌다. 유나는 손으로 배를 더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도 익숙한 기운에 눈동자가 떨려왔다.
[...유...나]
“라, 라크샤야? 아니면 레쉬?”
[...모르… 나는… 누구… 말하기 어려…]
“괜찮아, 괜찮아… 살아있어… 살아있어!”
환히에 찬 목소리가 유나에게서 퍼져나왔다. 내 뱃속에서 살아있어!
[...위험… 여기… 이… 도시… 악마… 몰려들...있어…]
집중하며 전해오는 의지를 해석하던 유나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 도시에 악마들이 모여들고 있다. 어쩌면 다른 게임 참가자들의 싸움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아기는 아직 연약해. 내 보호가 필요해.
의식하지 않은 마음이 유나의 속에서 움직였다. 하얀색과 검은색의 날개가 활짝 펼쳐진 뒤 아기를 보호하듯 자신의 몸을 감쌌다. 지키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레벨업을 하고 남아있던 포인트를 모조리 움직였다. 오로지 아기를 지키기 위한 순수한 갈망… 마음 속은 격류 같기도 냇물 같기도 한 흐름이 일었다. 마음의 상류에서 급격하게 휘몰아치던 의지는 서로 몸뚱이를 부딪히고 합쳐가더니 하류로 흘러 완만한 흐름을 만들다가 커다란 바다를 이루었다. 그 바다가 아기를 따스하게 품었다.
[졸...려…]
졸리면 자면 돼, 아가야. 사랑을 담은 유나의 의지가 아기를 쓰다듬었다. 라크샤인지 레쉬인지 알 수없는 새로운 생명은 유나의 사랑을 느끼며 기분 좋게 쌔근쌔근 잠들었다. 자신의 내면을 느끼느라 감고있던 유나의 눈이 떠졌다.
원래 자리하고 있던 미래를 읽고 뒤트는 권능을 넘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새롭게 자리한 그것은 욕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욕망이라함은 본디 부족한 것을 탐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오래도록 유나의 생애를 관통하며 본디 바라던 것. 탐하거나 鍛쨈募?인식 없이, 그저 순수하게 바래왔던 것,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 소망이라고 표현해야 좋을 권능이었다. 원래 이것은 천사들이 권능을 발휘할 때 마음을 이끄는 매커니즘이었지만, 유나는 그런 것은 전혀 몰랐고 안다고 해도 별 상관없었다. 이 아이를 보호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검은 날개에 유나가 원래 가지고 있던 미래에 대한 권능이 깃들었고, 하얀 날개에 아기를 향한 마음에서 비롯된 보호의 권능이 깃들었다.
유나의 날개가 다시 활짝 펴졌다.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해! 유나는 하늘을 바라본 뒤 곧바로 날아올랐다. 일단은 이 도시를 빠져나가 조용한 시골로 갈 생각이었다.
***
“이야, 엄청 빨리 움직였구나. 우리 유나 누나가... “
성태는 낄낄거리며 새로운 손님을 바라보았다. 광기의 군주 폴리가 깃든 카타나와 그것을 든 여자였다.
“그런데 이름이 뭐지? 난 박성태.”
“없어.”
카타나 여자는 짧막하게 말했다. 찬영에게 보고로 들었던 성태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한번 더 질문해본 것 뿐이었다. 성태는 욕망을 풀어 카타나 여자의 정신을 모두 읽어 들인 뒤 가볍게 웃었다. 섬노예라니… 아직도 그런게 있나.
[여자 / 폭력의 악마 / ??세 / 레벨 178
태어난 해도 모르고 사회에 대해 대부분 무지하다. 압도적인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
특기 : 살인
좋아하는 것 : 노는 것
싫어하는 것 : 아픈 것]
카타나 여자의 정보를 보며 성태가 쓰게 웃었다. 예린이랑 싸움 붙이면 바로 죽겠는데? 그렇다고 직접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재밌게 놀고 싶었다.
[멍청아, 니 마음을 조종하려 하잖아!]
폴리가 답지 않게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성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욕망의 움직임을 계속했고 카타나 여자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난생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경험했다. 섬에서 남자들과의 섹스는 단순한 그들의 정액 변기일 뿐이었고, 카타나 여자의 쾌감을 위해 움직인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 격는 쾌감속에서도 카타나 여자는 몇걸음 비틀거릴 뿐 무릎꿇지는 않았다.
“어때?”
“재밌어.”
카타나 여자가 헐떡거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폴리는 카타나 여자의 마음이 순식간에 점령당한 것을 보며 경악했다.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느껴지는 힘에 어울리는 수준의 능력이 아니었다.
“일주일 뒤에 우리 학교로 와. 그때 내 노예들이랑 싸우자.”
“응.”
“그러고나면 내 노예 시켜줄게.”
“응.”
카타나 여자가 뒤로 물러서며 조금이지만 미소를 띄었다. 쉽게 알아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이건 뭐야? 마음이 좋아.”
“그건 사랑이야.”
“응.”
몸을 돌리고 학교를 떠나려는 카타나 여자를 성태가 잠시 멈추게 했다. 멋대로 카타나 여자를 조종한 것이었지만 카타나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폴리가 낮게 신음을 터트렸다.
“이름이 없으니까 불편하네.”
“어떡하지?”
“오늘부터 니 이름은 식칼이다.”
“응, 난 식칼.”
식칼은 이름을 선물 받은 것에 기뻐하며 학교를 떠나 달렸다.
폴리는 참가자들간의 대결에 직접 끼어들 수 없는 것에 분노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그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 힘의 차이가 까마득한데도 거부할 수 없는 마음이, 본능적인 복종심이 느껴졌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게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폴리는 은연중에 했다.
달리던 식칼은 경쾌한 움직임으로 근처의 건물의 벽을 타고 뛰어올라갔다. 순식간에 옥상에 도착한 그녀는 기뻐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건물의 옥상과 옥상을 뛰어다녔다. 밤하늘을 가를 때 피부에 스미는 감각이 기분 좋았다. 아, 이건 사랑이야.
멀리 달려가는 카타나 여자를 바라보던 릴리스는 미친 듯이 자신의 몸을 주물렀다. 성태가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혼자 달아올라 몸을 들썩거렸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릴리스는 바닥에 개처럼 업드렸다. 성태에게 기어가 그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주인님… 아아… 어찌 이리 멋지실까. 릴리스는 꼬리를 발정난 것처럼… 아니 완전히 발정이 나버린 상태로 흔들며 손을 성태의 지퍼로 가져갔다. 떨리는 손이 지퍼를 제대로 열지도 못하자 성태가 그녀의 머리를 몇번 쓰다듬어준 뒤 직접 지퍼를 내렸다. 릴리스는 자지를 꺼내 미친듯이 핥기 시작했다.
“훌륭하셨습니다, 주군.”
찬영 역시 탄복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찬영에게 표정이란 것이 나타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정말로 재미가 없어서 직접 나서지 않으시는 것 이었군요.”
“뭐, 그렇지.”
릴리스는 이제 자신의 옷을 마구 찢기 시작했다. 단정히 머리를 정리하고 있던 머리끈을 던져버리고 탐스러운 금발을 풀어내렸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릴리스가 멀뚱히 서있는 성태의 몸에 바짝 달라붙어 삽입을 했다. 미친듯이 허리를 흔들며 성태의 귀를 핥았다. 저를 죽여주세요… 아아… 행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냥 저를 지금 죽여버려주세요.
“안돼. 너는 내가 아끼는 아이니까.”
그말에 릴리스의 몸이 미친듯이 떨렸다. 오르가즘을 느끼며 릴리스의 눈이 까뒤집히자 성태는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양 어깨를 잡아주었다. 성태의 몸에 기댄 채 실신한 릴리스를 보며 찬영이 말했다.
“천박하군요.”
“뭐, 다들 찬양하는 법이 틀린법이지.”
성태가 가볍게 웃었다.
***
소현은 학교 밖으로 잠시 나오라는 성태의 말에 교문으로 달려갔다. 교문 옆에서 성태의 모습이 보였다. 소현은 성태에게 도착하자마자 그의 몸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학교에는 오면 안된다고 했잖아!”
“천사들 때문이죠? 그건 일단 해결했어요.”
소현은 성태에게서 잠시 몸을 때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 어두워 보였다.
“해코지 당하지는 않았어?”
“네, 뭐.”
그렇게 말을 하며 성태는 뭔가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하기 어려운 말이 있다는 걸 직감한 소현은 성태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걸었다. 성태는 순순히 그녀에게 끌려가면서도 당황하며 말했다.
“학교는요?”
“땡땡이지.”
평일인데다 아직 저녁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조용한 가게가 많았기에 소현은 커피숍 하나를 골라 성태를 이끌고 들어갔다. 소녀적인 분위기의 인테리어에 성태와 들어가기는 약간 부끄러운 기분이 든 소현이었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었기에 행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뒤 각자 자신의 몫의 커피를 만지작거리거나 홀짝거렸다.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성태는 여전히 우물쭈물 거렸다. 두명의 여자 손님이 더 들어오자 소현은 잠시 긴장했지만 떨어진 곳에 앉는 것을 보며 안심했다.
“천사와 관련된 이야기야?”
“네, 아, 아니… 그… 관련된… 아니요, 상관없는 이야기에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성태는 소리 쳤다. 커피숍 주인과 두 손님이 잠깐이지만 소현과 성태를 바라보았다. 성태의 얼굴이 굳으며 고개가 숙여졌다. 그의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그… 저는… 누나와… 그러니까… 그냥 섹스가 하고싶었을 뿐이에요. 좋아하지 않아요.”
성태의 말에 소현이 멍한 표정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입이 살짝 벌어진 채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성태는 말을 이었다.
“단지 그… 성욕 때문에 하고 싶었을 뿐이고… 이제는 아니에요. 질렸어요. 그러니까 우리 헤어… 그… 사귄 것도 아니니까. 이제 만나지 말아요.”
성태가 고개를 숙인 그대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몸을 떨었다. 부끄러운 말을 입에 담은 덕분에 붉어진 성태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소현은 성태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을 추스리며 얼굴을 평온하게 가다듬고 그의 손을 살며시 따스하게 잡았다. 성태의 손이 흠칫 떨렸지만 소현의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 있었구나?”
소현의 얼굴에 자연히 걱정이 깃들었다. 그때 커피숍 주인이 가게 입구로 가더니 잠구고 팻말을 오픈에서 클로즈로 돌렸다. 들어와 있던 두 손님이 소현과 성태를 향해 걸어오자 소현은 긴장하며 팬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여차하면 바로 변실할 기세였다.
“진정해, 적이 아니니까. 악마긴 하지만.”
리빙빙이 건들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악마라는 말에 소현의 신경이 더욱 팽팽해졌고 공기가 날카로워졌다. 마법진이 설치된 학교만큼 확실하게 구분해 낼 수는 없지만 두 여자에게서는 확실히 인간이 아닌 존재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내가 시킨거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말하다니.”
이번에는 사쿠라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사쿠라가 소현의 옆에, 리빙빙이 성태의 옆에 앉았다. 성태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이, 이렇게 말해야 누나가 안전하다고…”
“그래, 그랬지.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짜 그대로 말 할 줄은 몰랐어.”
사쿠라가 빙긋 웃었다.
“무슨 말이에요?”
“지금부터 설명해주지.”
소현이 날 선 목소리로 말하자 리빙빙이 푹신한 의자에 기대며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사쿠라가 소현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자신의 몸에 밀착시켰다. 달짝지근한 향이 소현의 코로 들어왔고, 당황한 소현이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몇 번 반항을 하던 소현은 결국 포기하고 테이블로 시선을 고정했다. 커피는 아직 따스한 김을 모락모락 풍기고 있었다. 사쿠라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제일 중요한 정보부터. 성태는 악마가 되었어.”
“뭐라구요?”
“그 유나라는 악마가 뭔가 수작을 부린 모양이야. 천사 쪽에서도 이를 눈치챘고 제거하기 위해 두 천사가 왔었지. 일단 그쪽은 안심해도 돼. 나와 저쪽 악마가 다 죽였으니까.”
사쿠라가 고개짓을 하자 리빙빙이 씨익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천사와 악마의 수가 더 증가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있니?”
“... 저를 마법 소녀로 만들어준 천사에게 들은 적 있어요.”
“이야기가 쉽겠군. 성태는 지금 굉장히 독특한 포지션에 놓여있어. 이레귤러라고 할 수 있지. 천사와 악마의 수가 고정된 건 시간으로 따지는 것도 무의미할 만큼 오래전부터였어. 그런데 새로운 악마가 탄생한거야. 아직 이 사실을 눈치 챈 쪽은 얼마없지만 대대적으로 움직일 거야. 천사들은 당연히 성태를 죽이려들거고, 악마들은 제각각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겠지. 알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천사들처럼 단합이 잘되는 건 아니거든. 다들 제멋대로지.”
이해 여부를 묻는 사쿠라의 시선에 소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부터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어. 넌 성태를 도울거니? 도울 생각이 없다면 중요한 정보를 누설 할 수는 없어. 성태가 너의 안전을 집요하게 부탁했기 때문에 우릴 돕지 않겠다고 해도 너를 죽이지는 않을 거야.”
“돕는게 당연하잖아요. 저는… 성태를 사랑하고 있어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소현은 성태를 바라본 뒤 사쿠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곧은 시선에서 그녀의 의지를 느낀 사쿠라가 가볍게 웃었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뭐가 말이죠?”
“악마들은 성태를 개체마다 다르게 대하겠지만 천사는 달라. 성태를 돕는다면 너는 천사의 적이되는거야. 죽을 확률이 높아.”
“상관없어요.”
“뭐?”
“제가 아무리 바보라도 그정도도 모를거 같아요. 이미 성태를 죽이려던 천사를 둘 만났어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강한 천사들… 하지만 그렇다고 성태를 위험하게 내버려둘 순 없어요. 저는 성태를 지킬거에요.”
진심어린 표정의 소현의 견고한 의지를 말해주었다.
쾅!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에 사쿠라와 리빙빙, 그리고 소현이 성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분노에 찬 성태의 시선이 사쿠라와 리빙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하는 짓이죠.”
정돈되지 않은 분노가 성태에게서 느껴졌다.
“소현 누나를 위험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돌려보내겠다고… 약속 했잖아요.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가족들도 보지 못하는 그런 꼴이 될게 뻔한데…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잖아요. 나 하고 약속했잖아, 이 빌어먹을 악마들아!”
“네 처지를 모르는 구나.”
리빙빙이 성태를 얼르듯 그의 어깨에 가녀린 손가락을 툭 걸쳤다.
“솔찍히 말하지. 우리는 네가 죽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너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마 너는 죽을거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마당에 눈앞에 뻔히 있는 조력자를 치워버리자고? 자살할 생각이니?”
요염하게 미소지으며 리빙빙이 성태의 귀에 후 하고 달콤한 숨을 불었다. 성태가 야릇함에 움찔 떠는 것을 보며 소현의 눈이 도끼날 처럼 변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소현을 사쿠라가 잠시 보다 손을 들며 나갈 수 있도록 비켜줬다. 소현은 걸음을 옮겨 리빙빙의 옆에 섰다.
“비켜줘요. 그리고, 성태를 자꾸 만지지 말아요.”
이런 상황에도 꼴같잖은 질투심이 생긴다는게 어처구니 없었지만 소현은 자신의 감정에 솔찍하기로 결심했다. 언제 죽을지 몰라. 그런 마음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전해야 할 감정은 바보처럼 머뭇거리지는 않으리라. 리빙빙은 그런 소현을 보며 혀를 빼꼼 내밀더니 자리에서 비켰다. 성태의 빈 옆자리에 소현이 앉았다.
“집에 가세요.”
“싫어.”
소현은 성태를 안았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버릴거야.”
“그런 말이 어딨어요.”
“난 진심이야. 너를 지켜줄거야. 너도 나를 지켜줘.”
“누나…”
“영원히 함께 할 거야.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다 이겨낼거야.”
소현이 미소를 짓자, 성스럽기까지 한 그녀의 얼굴이 빛나는 듯 했다. 서로의 마음에 감동하며 따스하게 흐르는 공기를 느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손을 잡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걱정과 서로를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을 양분 삼아 가지가 뻗어졌다. 힘차게 뻗어나가는 가지에 과실이 맺혔다. 사랑이라는 과실은 탐스럽게 익으며 성태와 소현의 마음으로 떨어졌고, 잔잔한 파문이 번졌다.
소현과 성태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
작가의 말
1. 댓글 감사합니다. 항상 여러분 덕분에 계속 글을 쓰는 것 같아요 ㅎㅎ
2. 주인공 씨발놈 맞습니당 ㅋㅋ 그런 컨셉의 소설이라서요. 쓰다보니 착한놈이 주인공인 것도 한번 써보고싶긴 하네요 ㅋ 하지만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성태는 일변도로 나쁜 놈일 겁니당
3. 심연 정말 재밌었죠. 심연하고 타임 리와인더... 두 작품 제가 소라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죵 ㅋ 타임 리와인더 뒷 내용 더 안나올려나요 ㅜㅜ
4. 점점 판타지 스럽게 변한다는 것은 저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당... 스스로도 느끼고 있구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성태의 능력이 mc와 섹스이다보니 주된 요소는 역시 mc! 아마도 묘사가 직접적으로 상대의 심리를 띄우거나 알림창이 뜨거나 하는 방식에서 문장으로 표현하는걸로 바뀌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미숙하다보니 확립된 스타일 없이 쓰면서 변해가니 그런다는 생각듭니당 ㅎㅎ 아무쪼록 예쁘게 봐주세용. 근데 영원히 쓰는 건 무리에요 ㅋㅋ
5. 가끔 복선 회수하려고 앞부분 읽어보면 정말 민망할 때가 만은데... 원래 자기 글은 만족이 잘 안되나봐용. 그래도 항상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수작가 되면... 좋겠네요 ㅎ 사실 단편까지 합치면 이미 30편 넘었는데 안올라가네요 우수 작가로. FQnA에는 30편 넘으면 우수작가 시켜준다고 돼있던뎅 ㅜㅜ
6. 스팽킹!! 해본적 없습니다... 무서워요 때리지 말아주세요
[email protected]
깨어난 유나는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골목을 걸었다. 더러운 냄새가 가득했다. 찢어진 옷과 엉망이 된 몸이었지만 살아야한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일었다. 살아서… 라크샤와 레쉬의 복수를 해야한다. 유나의 몸은 다행히 인간일 때보다 훨씬 강인했고 걸어가는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날개를 깨닫고 유나는 골머리를 앓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무심결에 날개가 사라지길 마음으로 빌었더니 거짓말처럼 그렇게 되었다. 유나는 고민하던 것을 허탈해하다 걸음을 다시 이어갔다.
“예쁜 언니, 꼴이 말이 아니네.”
약간 도로변으로 나오자 뺀질해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히죽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남자는 뱀같은 시선으로 유나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성태에게 강간당하며 군데군데 찢어진 모습과 유나의 외모가 조합되어 굉장히 퇴폐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별다른 대답이 없자 남자는 신이나 유나의 몸에 바짝붙어 그녀의 엉덩이를 살짝 건드렸다.
“다 큰 언니가 집이라도 나왔나? 내가 옷 사줄 돈 정도는 있는데...”
번들거리는 시선을 바라보자 유나는 성태를 떠올렸다. 남자라는 것들은 다 이런걸까… 정신을 차렸을 때 타오르던 분노는 거짓말 처럼 잔잔하게 가라 앉아있었다. 하지만 꺼트려진 것은 아니었다. 그 열기는 고스란히 간직한 채 거뭇한 재로 겉치장하고 몸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유나는 피곤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잔뜩 기대를 머금은 눈빛으로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광기와 분노를 조용히 머금은 눈빛을 보며 남자는 그저 떨었다. 처참한 공포를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가 어어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바지를 축축히 적시고 말았다. 비릿한 냄새에 유나는 조금 찡그린 다음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공원에 도착한 유나는 밴치에 앉아 가만히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살려는 의지만을 가진 미약한 생명… 유나는 마치 아기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힘차게 자신의 배를 두드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죽일까?
유나가 멍한 눈동자로 배를 쓰다듬었다.
미쳤어? 아기는 아무 죄도 없어.
아니지… 그 개자식의 씨야. 내 배를 축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죄를 지었어.
생명이야!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이렇게 살려고 하는데!
라크샤와 레쉬도 살려고 했어! 그런데 성태 때문에!
아니지…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내가 고집을 부려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어.
아직 결말 맺지 못한 혼란 속에서 유나는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밴치 위에 다리를 올려 무릎을 감싸 안았다. 눈물이 바지를 적셨고, 유나의 몸이 애처롭게 떨려왔다. 알고있다. 아무리 울어도 죽은 자들이 돌아올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도…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염없이 울다 유나는 그 자리에서 지쳐 잠들었던 그녀는 새벽 쯔음 찬 공기를 느끼며 눈을 떴다. 아기에 대한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성태를 죽이는 것. 자신의 힘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게임의 참가자는 많을 것이고, 그 중에 성태보다 강한 자도 있기를 기도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둘을 싸우게 만들면 될 일이었다. 성태가 지친다면 자신의 손으로 죽이면 되는 일이다. 싸우다 성태가 죽는다면? 그 시체를 끌고가 난도질을 할 생각이었다.
카타나 여자와 성태를 천사와 연관이 있는 그 학교에서 만나도록 미래를 셋팅했다. 욕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아직도 여분이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미래 관조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인 최상의 욕망으로 단 한번 미래 셋팅을 쓰는 것만으로도 욕망이 바닥이 났었는데 이제는 여유가 제법 있었다. 동료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죄책감이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현실을 깨닫자 마음이 욱신거렸다. 강해지는 것 따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웃으며 행복하기를 바랬는데.
멍하니 공원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겨울 나무는 잎사귀를 모두 떨어트리고 홀로 쓸쓸히 서있었다. 동병상련… 쓸쓸히 겨울 바람에 떨고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유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강하게 불지 않는 겨울 바람은 그래서 더 매서웠다. 천천히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 했다. 유나에게는 여밀 겉옷조차 없었다.
[유...나]
자신의 몸 속에서, 정확히는 새로운 생명이 깃들어 있는 뱃속에서 의사를 가진 어떤 것이 느껴졌다. 유나는 손으로 배를 더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도 익숙한 기운에 눈동자가 떨려왔다.
[...유...나]
“라, 라크샤야? 아니면 레쉬?”
[...모르… 나는… 누구… 말하기 어려…]
“괜찮아, 괜찮아… 살아있어… 살아있어!”
환히에 찬 목소리가 유나에게서 퍼져나왔다. 내 뱃속에서 살아있어!
[...위험… 여기… 이… 도시… 악마… 몰려들...있어…]
집중하며 전해오는 의지를 해석하던 유나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 도시에 악마들이 모여들고 있다. 어쩌면 다른 게임 참가자들의 싸움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아기는 아직 연약해. 내 보호가 필요해.
의식하지 않은 마음이 유나의 속에서 움직였다. 하얀색과 검은색의 날개가 활짝 펼쳐진 뒤 아기를 보호하듯 자신의 몸을 감쌌다. 지키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레벨업을 하고 남아있던 포인트를 모조리 움직였다. 오로지 아기를 지키기 위한 순수한 갈망… 마음 속은 격류 같기도 냇물 같기도 한 흐름이 일었다. 마음의 상류에서 급격하게 휘몰아치던 의지는 서로 몸뚱이를 부딪히고 합쳐가더니 하류로 흘러 완만한 흐름을 만들다가 커다란 바다를 이루었다. 그 바다가 아기를 따스하게 품었다.
[졸...려…]
졸리면 자면 돼, 아가야. 사랑을 담은 유나의 의지가 아기를 쓰다듬었다. 라크샤인지 레쉬인지 알 수없는 새로운 생명은 유나의 사랑을 느끼며 기분 좋게 쌔근쌔근 잠들었다. 자신의 내면을 느끼느라 감고있던 유나의 눈이 떠졌다.
원래 자리하고 있던 미래를 읽고 뒤트는 권능을 넘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새롭게 자리한 그것은 욕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욕망이라함은 본디 부족한 것을 탐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오래도록 유나의 생애를 관통하며 본디 바라던 것. 탐하거나 鍛쨈募?인식 없이, 그저 순수하게 바래왔던 것,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 소망이라고 표현해야 좋을 권능이었다. 원래 이것은 천사들이 권능을 발휘할 때 마음을 이끄는 매커니즘이었지만, 유나는 그런 것은 전혀 몰랐고 안다고 해도 별 상관없었다. 이 아이를 보호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검은 날개에 유나가 원래 가지고 있던 미래에 대한 권능이 깃들었고, 하얀 날개에 아기를 향한 마음에서 비롯된 보호의 권능이 깃들었다.
유나의 날개가 다시 활짝 펴졌다.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해! 유나는 하늘을 바라본 뒤 곧바로 날아올랐다. 일단은 이 도시를 빠져나가 조용한 시골로 갈 생각이었다.
***
“이야, 엄청 빨리 움직였구나. 우리 유나 누나가... “
성태는 낄낄거리며 새로운 손님을 바라보았다. 광기의 군주 폴리가 깃든 카타나와 그것을 든 여자였다.
“그런데 이름이 뭐지? 난 박성태.”
“없어.”
카타나 여자는 짧막하게 말했다. 찬영에게 보고로 들었던 성태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한번 더 질문해본 것 뿐이었다. 성태는 욕망을 풀어 카타나 여자의 정신을 모두 읽어 들인 뒤 가볍게 웃었다. 섬노예라니… 아직도 그런게 있나.
[여자 / 폭력의 악마 / ??세 / 레벨 178
태어난 해도 모르고 사회에 대해 대부분 무지하다. 압도적인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
특기 : 살인
좋아하는 것 : 노는 것
싫어하는 것 : 아픈 것]
카타나 여자의 정보를 보며 성태가 쓰게 웃었다. 예린이랑 싸움 붙이면 바로 죽겠는데? 그렇다고 직접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재밌게 놀고 싶었다.
[멍청아, 니 마음을 조종하려 하잖아!]
폴리가 답지 않게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성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욕망의 움직임을 계속했고 카타나 여자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난생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경험했다. 섬에서 남자들과의 섹스는 단순한 그들의 정액 변기일 뿐이었고, 카타나 여자의 쾌감을 위해 움직인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 격는 쾌감속에서도 카타나 여자는 몇걸음 비틀거릴 뿐 무릎꿇지는 않았다.
“어때?”
“재밌어.”
카타나 여자가 헐떡거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폴리는 카타나 여자의 마음이 순식간에 점령당한 것을 보며 경악했다.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느껴지는 힘에 어울리는 수준의 능력이 아니었다.
“일주일 뒤에 우리 학교로 와. 그때 내 노예들이랑 싸우자.”
“응.”
“그러고나면 내 노예 시켜줄게.”
“응.”
카타나 여자가 뒤로 물러서며 조금이지만 미소를 띄었다. 쉽게 알아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이건 뭐야? 마음이 좋아.”
“그건 사랑이야.”
“응.”
몸을 돌리고 학교를 떠나려는 카타나 여자를 성태가 잠시 멈추게 했다. 멋대로 카타나 여자를 조종한 것이었지만 카타나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폴리가 낮게 신음을 터트렸다.
“이름이 없으니까 불편하네.”
“어떡하지?”
“오늘부터 니 이름은 식칼이다.”
“응, 난 식칼.”
식칼은 이름을 선물 받은 것에 기뻐하며 학교를 떠나 달렸다.
폴리는 참가자들간의 대결에 직접 끼어들 수 없는 것에 분노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그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 힘의 차이가 까마득한데도 거부할 수 없는 마음이, 본능적인 복종심이 느껴졌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게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폴리는 은연중에 했다.
달리던 식칼은 경쾌한 움직임으로 근처의 건물의 벽을 타고 뛰어올라갔다. 순식간에 옥상에 도착한 그녀는 기뻐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건물의 옥상과 옥상을 뛰어다녔다. 밤하늘을 가를 때 피부에 스미는 감각이 기분 좋았다. 아, 이건 사랑이야.
멀리 달려가는 카타나 여자를 바라보던 릴리스는 미친 듯이 자신의 몸을 주물렀다. 성태가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혼자 달아올라 몸을 들썩거렸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릴리스는 바닥에 개처럼 업드렸다. 성태에게 기어가 그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주인님… 아아… 어찌 이리 멋지실까. 릴리스는 꼬리를 발정난 것처럼… 아니 완전히 발정이 나버린 상태로 흔들며 손을 성태의 지퍼로 가져갔다. 떨리는 손이 지퍼를 제대로 열지도 못하자 성태가 그녀의 머리를 몇번 쓰다듬어준 뒤 직접 지퍼를 내렸다. 릴리스는 자지를 꺼내 미친듯이 핥기 시작했다.
“훌륭하셨습니다, 주군.”
찬영 역시 탄복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찬영에게 표정이란 것이 나타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정말로 재미가 없어서 직접 나서지 않으시는 것 이었군요.”
“뭐, 그렇지.”
릴리스는 이제 자신의 옷을 마구 찢기 시작했다. 단정히 머리를 정리하고 있던 머리끈을 던져버리고 탐스러운 금발을 풀어내렸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릴리스가 멀뚱히 서있는 성태의 몸에 바짝 달라붙어 삽입을 했다. 미친듯이 허리를 흔들며 성태의 귀를 핥았다. 저를 죽여주세요… 아아… 행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냥 저를 지금 죽여버려주세요.
“안돼. 너는 내가 아끼는 아이니까.”
그말에 릴리스의 몸이 미친듯이 떨렸다. 오르가즘을 느끼며 릴리스의 눈이 까뒤집히자 성태는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양 어깨를 잡아주었다. 성태의 몸에 기댄 채 실신한 릴리스를 보며 찬영이 말했다.
“천박하군요.”
“뭐, 다들 찬양하는 법이 틀린법이지.”
성태가 가볍게 웃었다.
***
소현은 학교 밖으로 잠시 나오라는 성태의 말에 교문으로 달려갔다. 교문 옆에서 성태의 모습이 보였다. 소현은 성태에게 도착하자마자 그의 몸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학교에는 오면 안된다고 했잖아!”
“천사들 때문이죠? 그건 일단 해결했어요.”
소현은 성태에게서 잠시 몸을 때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 어두워 보였다.
“해코지 당하지는 않았어?”
“네, 뭐.”
그렇게 말을 하며 성태는 뭔가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하기 어려운 말이 있다는 걸 직감한 소현은 성태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걸었다. 성태는 순순히 그녀에게 끌려가면서도 당황하며 말했다.
“학교는요?”
“땡땡이지.”
평일인데다 아직 저녁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조용한 가게가 많았기에 소현은 커피숍 하나를 골라 성태를 이끌고 들어갔다. 소녀적인 분위기의 인테리어에 성태와 들어가기는 약간 부끄러운 기분이 든 소현이었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었기에 행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뒤 각자 자신의 몫의 커피를 만지작거리거나 홀짝거렸다.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성태는 여전히 우물쭈물 거렸다. 두명의 여자 손님이 더 들어오자 소현은 잠시 긴장했지만 떨어진 곳에 앉는 것을 보며 안심했다.
“천사와 관련된 이야기야?”
“네, 아, 아니… 그… 관련된… 아니요, 상관없는 이야기에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성태는 소리 쳤다. 커피숍 주인과 두 손님이 잠깐이지만 소현과 성태를 바라보았다. 성태의 얼굴이 굳으며 고개가 숙여졌다. 그의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그… 저는… 누나와… 그러니까… 그냥 섹스가 하고싶었을 뿐이에요. 좋아하지 않아요.”
성태의 말에 소현이 멍한 표정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입이 살짝 벌어진 채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성태는 말을 이었다.
“단지 그… 성욕 때문에 하고 싶었을 뿐이고… 이제는 아니에요. 질렸어요. 그러니까 우리 헤어… 그… 사귄 것도 아니니까. 이제 만나지 말아요.”
성태가 고개를 숙인 그대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몸을 떨었다. 부끄러운 말을 입에 담은 덕분에 붉어진 성태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소현은 성태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을 추스리며 얼굴을 평온하게 가다듬고 그의 손을 살며시 따스하게 잡았다. 성태의 손이 흠칫 떨렸지만 소현의 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 있었구나?”
소현의 얼굴에 자연히 걱정이 깃들었다. 그때 커피숍 주인이 가게 입구로 가더니 잠구고 팻말을 오픈에서 클로즈로 돌렸다. 들어와 있던 두 손님이 소현과 성태를 향해 걸어오자 소현은 긴장하며 팬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여차하면 바로 변실할 기세였다.
“진정해, 적이 아니니까. 악마긴 하지만.”
리빙빙이 건들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악마라는 말에 소현의 신경이 더욱 팽팽해졌고 공기가 날카로워졌다. 마법진이 설치된 학교만큼 확실하게 구분해 낼 수는 없지만 두 여자에게서는 확실히 인간이 아닌 존재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내가 시킨거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말하다니.”
이번에는 사쿠라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사쿠라가 소현의 옆에, 리빙빙이 성태의 옆에 앉았다. 성태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이, 이렇게 말해야 누나가 안전하다고…”
“그래, 그랬지.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짜 그대로 말 할 줄은 몰랐어.”
사쿠라가 빙긋 웃었다.
“무슨 말이에요?”
“지금부터 설명해주지.”
소현이 날 선 목소리로 말하자 리빙빙이 푹신한 의자에 기대며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사쿠라가 소현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자신의 몸에 밀착시켰다. 달짝지근한 향이 소현의 코로 들어왔고, 당황한 소현이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몇 번 반항을 하던 소현은 결국 포기하고 테이블로 시선을 고정했다. 커피는 아직 따스한 김을 모락모락 풍기고 있었다. 사쿠라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제일 중요한 정보부터. 성태는 악마가 되었어.”
“뭐라구요?”
“그 유나라는 악마가 뭔가 수작을 부린 모양이야. 천사 쪽에서도 이를 눈치챘고 제거하기 위해 두 천사가 왔었지. 일단 그쪽은 안심해도 돼. 나와 저쪽 악마가 다 죽였으니까.”
사쿠라가 고개짓을 하자 리빙빙이 씨익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천사와 악마의 수가 더 증가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있니?”
“... 저를 마법 소녀로 만들어준 천사에게 들은 적 있어요.”
“이야기가 쉽겠군. 성태는 지금 굉장히 독특한 포지션에 놓여있어. 이레귤러라고 할 수 있지. 천사와 악마의 수가 고정된 건 시간으로 따지는 것도 무의미할 만큼 오래전부터였어. 그런데 새로운 악마가 탄생한거야. 아직 이 사실을 눈치 챈 쪽은 얼마없지만 대대적으로 움직일 거야. 천사들은 당연히 성태를 죽이려들거고, 악마들은 제각각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겠지. 알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천사들처럼 단합이 잘되는 건 아니거든. 다들 제멋대로지.”
이해 여부를 묻는 사쿠라의 시선에 소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부터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어. 넌 성태를 도울거니? 도울 생각이 없다면 중요한 정보를 누설 할 수는 없어. 성태가 너의 안전을 집요하게 부탁했기 때문에 우릴 돕지 않겠다고 해도 너를 죽이지는 않을 거야.”
“돕는게 당연하잖아요. 저는… 성태를 사랑하고 있어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소현은 성태를 바라본 뒤 사쿠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곧은 시선에서 그녀의 의지를 느낀 사쿠라가 가볍게 웃었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뭐가 말이죠?”
“악마들은 성태를 개체마다 다르게 대하겠지만 천사는 달라. 성태를 돕는다면 너는 천사의 적이되는거야. 죽을 확률이 높아.”
“상관없어요.”
“뭐?”
“제가 아무리 바보라도 그정도도 모를거 같아요. 이미 성태를 죽이려던 천사를 둘 만났어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강한 천사들… 하지만 그렇다고 성태를 위험하게 내버려둘 순 없어요. 저는 성태를 지킬거에요.”
진심어린 표정의 소현의 견고한 의지를 말해주었다.
쾅!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에 사쿠라와 리빙빙, 그리고 소현이 성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분노에 찬 성태의 시선이 사쿠라와 리빙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하는 짓이죠.”
정돈되지 않은 분노가 성태에게서 느껴졌다.
“소현 누나를 위험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돌려보내겠다고… 약속 했잖아요.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가족들도 보지 못하는 그런 꼴이 될게 뻔한데…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잖아요. 나 하고 약속했잖아, 이 빌어먹을 악마들아!”
“네 처지를 모르는 구나.”
리빙빙이 성태를 얼르듯 그의 어깨에 가녀린 손가락을 툭 걸쳤다.
“솔찍히 말하지. 우리는 네가 죽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너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마 너는 죽을거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마당에 눈앞에 뻔히 있는 조력자를 치워버리자고? 자살할 생각이니?”
요염하게 미소지으며 리빙빙이 성태의 귀에 후 하고 달콤한 숨을 불었다. 성태가 야릇함에 움찔 떠는 것을 보며 소현의 눈이 도끼날 처럼 변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소현을 사쿠라가 잠시 보다 손을 들며 나갈 수 있도록 비켜줬다. 소현은 걸음을 옮겨 리빙빙의 옆에 섰다.
“비켜줘요. 그리고, 성태를 자꾸 만지지 말아요.”
이런 상황에도 꼴같잖은 질투심이 생긴다는게 어처구니 없었지만 소현은 자신의 감정에 솔찍하기로 결심했다. 언제 죽을지 몰라. 그런 마음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전해야 할 감정은 바보처럼 머뭇거리지는 않으리라. 리빙빙은 그런 소현을 보며 혀를 빼꼼 내밀더니 자리에서 비켰다. 성태의 빈 옆자리에 소현이 앉았다.
“집에 가세요.”
“싫어.”
소현은 성태를 안았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버릴거야.”
“그런 말이 어딨어요.”
“난 진심이야. 너를 지켜줄거야. 너도 나를 지켜줘.”
“누나…”
“영원히 함께 할 거야.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다 이겨낼거야.”
소현이 미소를 짓자, 성스럽기까지 한 그녀의 얼굴이 빛나는 듯 했다. 서로의 마음에 감동하며 따스하게 흐르는 공기를 느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손을 잡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걱정과 서로를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을 양분 삼아 가지가 뻗어졌다. 힘차게 뻗어나가는 가지에 과실이 맺혔다. 사랑이라는 과실은 탐스럽게 익으며 성태와 소현의 마음으로 떨어졌고, 잔잔한 파문이 번졌다.
소현과 성태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
작가의 말
1. 댓글 감사합니다. 항상 여러분 덕분에 계속 글을 쓰는 것 같아요 ㅎㅎ
2. 주인공 씨발놈 맞습니당 ㅋㅋ 그런 컨셉의 소설이라서요. 쓰다보니 착한놈이 주인공인 것도 한번 써보고싶긴 하네요 ㅋ 하지만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성태는 일변도로 나쁜 놈일 겁니당
3. 심연 정말 재밌었죠. 심연하고 타임 리와인더... 두 작품 제가 소라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죵 ㅋ 타임 리와인더 뒷 내용 더 안나올려나요 ㅜㅜ
4. 점점 판타지 스럽게 변한다는 것은 저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당... 스스로도 느끼고 있구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성태의 능력이 mc와 섹스이다보니 주된 요소는 역시 mc! 아마도 묘사가 직접적으로 상대의 심리를 띄우거나 알림창이 뜨거나 하는 방식에서 문장으로 표현하는걸로 바뀌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미숙하다보니 확립된 스타일 없이 쓰면서 변해가니 그런다는 생각듭니당 ㅎㅎ 아무쪼록 예쁘게 봐주세용. 근데 영원히 쓰는 건 무리에요 ㅋㅋ
5. 가끔 복선 회수하려고 앞부분 읽어보면 정말 민망할 때가 만은데... 원래 자기 글은 만족이 잘 안되나봐용. 그래도 항상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수작가 되면... 좋겠네요 ㅎ 사실 단편까지 합치면 이미 30편 넘었는데 안올라가네요 우수 작가로. FQnA에는 30편 넘으면 우수작가 시켜준다고 돼있던뎅 ㅜㅜ
6. 스팽킹!! 해본적 없습니다... 무서워요 때리지 말아주세요
[email protected]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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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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