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아픕니다...눈물이 납니다...ㅠㅠ
기껏 써놓은 수정본 저장한번 잘못 했다가 단번에 날라가는 기분이란...
정말 한숨만 나오고 마지막엔 그만 둘까?? 라는 회한까지 밀려오더군요..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 3편 하나만 날라 간 게 다행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네요..
덕분에 다시 한번 수정했는데 마음이 착잡해서 그런가 수정도 안되고 해서 대충 생각나는
몇 가지만 고쳤습니다.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올립니다.
어차피 이쪽은 그렇게 크게 변한 것도 없으니까...혹시나 이상하다 생각하셔도 그냥 웃으며
넘어가 주세요..흐흐흐
그리고 원래 전에 쓴거에서 그냥 덮어쓰는걸로 하려고 했는데 못찾는 분이 많이 계셔서 그냥 이렇게 올립니다.
헷갈리게 해드려서 죄송...^^::
그럼 저 카셀 뾰로롱~~ 사라집니다~~
PS.보시고 난뒤의 짧은 리플과 살포시 찍어주시는 추천은 저의 글을 기름지게하고 길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부디 잊지마시고 리플이나마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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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치를 처음 만난 건 아주 화창하고 따뜻한 여름 날이었다. 때는 수년전..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우리 가족이 아버지의 휴가를 이용해 큰아버지 댁으로 놀러를 갔을 때였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시골은 언제나 신기한 동경의 대상이다. 마음 것 뛰어 놀 수 있는 들판, 이리 저러 깔려있는 놀이거리, 도시에서는 맛 볼수 없는 색다른 체험들. 모든 것이 신비롭고 신나는 자연의 놀이터. 그곳이 그때의 어린이들이 인식하는 시골이다.물론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큰 아버지 댁에 도착한 나는 남들과는 다른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폭력과 구타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저번에도 말했지만 큰 아버지 댁에는 딸이 하나 있다. 이름은 한시연. 나와 동갑내기의 그 아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하의 왈가닥에 성격파탄자로 실크로드가 깔린 내 인생에 주먹 만한 오점을 남긴 내겐 웬수 같은 기집애이다.
그날도 역시 그 웬수같은 기집애의 마수에 걸린 나는 갖은 고문을 겪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쪼그만 기집애가 어디서 보고 왔는지 프로레슬링 기술을 날려가며 내 몸을 유린하는데 그 공세가 어찌나 매섭던지 비 폭력주의자에 평화주의자인 간디를 존경하는 나로서는 반격조차 할 수 없었다. 솔직히...힘이 딸린 이유가 더 크긴 했지만 중요 한게 아니니 일단 넘어 가자.
결국 녀석의 폭력에 참다못해 울음을 터뜨린 나는 부모님들을 찾아가 일러도 보았지만 당시 시연이 기집애의 가증스런 애교공세에 빠져있던 부모님들이었기에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온 것은 옆에 있던 누나의 차가운 놀림이었다.
<사내자식이 되가지고 계집애한테 맞고 울고나 있고...고추는 왜 달았냐?? 떼서 장이나 담가먹지...챙피한줄 알아라...>
<씨....미워!!다 미워!! 나 갈 거야!! 집에 혼자 갈꺼야!! 누나랑 아빠랑 엄마랑 셋이서 여기서 평생 살아라!>
억울했다. 엄마도 아빠도..누나야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라고 쳐도...자식편은 한번도 안들어 주고 그 나쁜 기집애만 이뻐하는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 원망스러운 마음에 나는 주워온 자식일꺼란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어 진짜 엄마 아빠 찾으러 간다고 하며 집까지 나와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막상 소리를 치고 나오긴 했지만 정작 갈 데는 없었다. 아는 동네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시골이었기에 가뜩이나 얇은 유리 같은 심약한 마음을 가진 나로서는 어딘가로 섯불리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가기에는 어린마음에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렇게 멀리 나가지도 그렇다고 도로 들어가지도 못하던 나는 결국 집 근처에 있던 가까운 창고로 몸을 숨겼다.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쌓여져 있는 짚단위로 일단 몸을 뉘우자 창고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농가의 창고 아니랄까봐 안에는 낫, 가래, 쟁기, 괭이등 여러 종류의 농기구들이 안을 가득 메워 보기에도 섬뜩한 기분을 풍기고 있었다. 거기에 조금 밖에 들어오지 않는 햇빛 탓에 어둡기 까지 않은 창고는 말 그대로 귀곡 산장이라는 말이 딱 떠오를 정도로 음산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절로 연출하고 있었다.
집에서도 자다가 장롱위의 물건이나 창밖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에 벌벌 떠는 콩알보다 작은 담력의 소유자를 가지고 있는 나였다. 그런 창고의 모든 것들은 자연 나에게 두려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거기에 짓굿게 웃으시며 요즘 시골에 홍콩할매가 자주 다닌다고 하는데 조심해라 라고 말씀하시던 큰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나자 그 두려움과 공포는 그 끝을 모르고 커져 내 조그마한 온몸을 덮쳐왔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컴컴한 구석 어딘가에서 무언가 튀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온몸을 엄습해 오는 것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순간 그 느낌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구석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와 동시에 온몸이 움츠러들며 콩알만 했던 가슴은 아주 좁쌀만 해져 엄청난 공포가 조그만 몸으로 밀려 들어와 질끈 눈을 감아갔다. 뭐지 귀신인가?? 아님 괴물?? 뭐든 상관없으니까 빨리 가라..
그렇게 들어 주지도 않을 누군가에게 애원하며 떨고 있던 순간 손에 촉촉한 무언가가 느껴져 왔다. 공포로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이 귀신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간을 보는 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두려움에 나는 그저 눈만 꼭 감은 채 오들오들 몸만 떨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정체불명의 물체는 떠나지 않고 내 손끝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던 중 복슬복슬 부드러운 느낌까지 나는 것이 마치 솜털 부벼지는 것 처럼 간지럽기까지 한 감촉에 두려움 보다 궁금한 마음이 일어 살짝 감았던 눈을 떠갔다.
그리고 나는 내 손 옆에 붙어 있던 강아지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복슬복슬하고 부드러운 하얀 털을 가지고 똘망똘망 하게 생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털을 부비는 강아지. 지금까지 나를 공포 끝까지 몰아 넣었던 녀석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내가 마음에 든 듯 내 손가락을 ?고 있는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에 지금까지 무서웠던 것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그 귀여움에 미소를 지어갔다.
그것이 나와 도치의 첫 만남이었다.
도치가 큰아버지 댁 돌구가 난 새끼 강아지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 무단 외출로 엄청 혼날 때 들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도치와 나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즐거웠다. 같이 들판을 뛰어다니고 같이 냇가를 놀러가고 같이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 다니는 등 마치 플란다스의 개의 파트라슈와 네로처럼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을 함께했다. 나는 도치를 누구보다 사랑해줬고 도치도 그 누구보다 나를 따랐다.
언제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시연이 녀석이 날 괴롭히기 위해 어른들 눈을 피해 나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자기 주인을 다치게 하려는 것을 알았을까?? 그 조그마한 몸에 어디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도치 녀석은 시연에게 아직 대로 나지도 않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도치의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시연이 자식은 지 주인도 몰라 보는 놈 이라는 말만을 남긴 채 도망 가 버렸고 나는 무사히 그녀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도치가 있을 때는 시연이는 나를 건들지 못했고 나 역시도 그 덕분에 여유롭게 시골의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행복했던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가 예정했던 휴일이 모두 지나자 우리에게는 자연스레 이별의 시간이 왔다.
<싫어!!싫어!! 나 도치랑 같이 있을꺼야!!>
<안돼..강혁아..도치 집은 여기고 강혁이 집은 서울이잖아..너 여기서 살꺼야??>
<엄마..도치 내가 데려가면 안될까??내가 밥도 주고 똥도 치우고 다 할께..엄마 아빠 귀찮게 안하고 내가 다 알아서 할께...안될까??>
<어서 개를 키울라고 해!! 안돼!!>
<바보 누난 조용히 해!! 엄마..제발....아빠...>
<강혁아...도치도 엄마랑 식구들이랑 같이 살아야지...혼자 외롭게 만들꺼야??>
<나...나 있잖아...내가 도치 안 외롭게 맨날 붙어 있을께..응??>
<학교는 어떡하고??>
<음...학교 같이 다니면 되지...그러니까..>
<웃긴다..왜 그냥 학교 때려치고 같이 산다고 하지..>
<지연아!!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아빠도 참.. 얘 하는 것 좀 보세요..막 때만 쓰면 다 되는 줄 알잖아요..>
<우리 강혁이 어쩌면 좋니...>
도치를 꼭 껴안고 울고불고 떼를 쓰는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말하는 엄마의 말에도 나의 고집은 좀처럼 꺽이지 않았다.
<데려가라고 해라..>
언제 왔는지 내 뒤에는 큰 아버지가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찬찬히 허리를 숙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는 큰아버지.. 그 투박하고 큰손이 나에겐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혁아..이 강아지가 그렇게 좋으니??>
<네..전 세상에서 도치가 젤 좋아요!!아..아니..엄마아빠큰아버지 다음으로 네 번째로 좋아요!!>
<이름이 도치구나..그럼 데려가서 좋은 거 많이 먹이고 외롭지 않게 잘 키워야 한다. 알았지?>
<정말요??>
<그럼 정말 이고말고..여기선 큰아버지가 대장이라 큰아버지가 하라고 하면 다하게 되있어.그렇지?>
큰 아버지는 짖꿎은 표정을 지으며 찬찬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큰아버지의 갑작스런 행동에 난처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의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호!! 신난다!! 도치야 우리 안 헤어져도 된대!! 너도 좋지?? 좋다고?? 그럴줄 알았어!!하하하!!>
지도 좋은 듯 왕왕 짖으며 대답하는 도치의 모습에 난 너무 신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그때 그 때를 쓴 걸 평생 후회하게 될 줄은..
도치와의 서울 생활은 즐거웠다. 도치가 가족들과 떨어져 우울해 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내가 있어선지 이내 우리 집에 적응 했고 나 역시도 약속한대로 부모님께 폐를 끼치지 않기위해 도치의 밥과 배설물 청소, 목욕 등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해 나갔다.
가끔씩 누나의 구박이 있긴 했지만 누나도 도치가 그리 싫지는 않은 듯 금방 잠잠해 졌다.
그렇게 나와 도치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행복 뒤엔 언제나 무서운 슬픔이 또아리 트고 있다고..정말 옛말은 틀린 게 없는 것 같다. 슬픔은 언제나 행복 뒤에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느끼지도 못할 사이에 덮쳐드니..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여지없이 닥쳐왔다,
그날은 비가 참 많이 왔다. 갓 장마가 시작 되서 그런지 여기 저기서 호우 주위보가 내리고 경계령이 내리는 등 전국이 비 때문에 소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 나였지만 TV나 선생님의 말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위험하다는 것은 감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아침 학교를 가려던 나는 문가에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도치의 눈길을 외면 할 수 없었다. 그 눈은 마치 나도 데려가줘...무서워..라고 말하는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학교에 있을 때 마다 집에서 도치를 봐주시던 어머니마저 일이 생겨 집에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의 걱정은 더 했다.천둥은 치고 바람은 불고 그리고 텅 빈 집안에 혼자 있을 우리 도치를 생각하니 도저히 혼자 두고 갈수가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도치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도치야~~우리 학교 같이 가자~>
<왕!!왕!!>
지도 역시 좋다는 듯 대답하는 도치를 데리고 나는 그렇게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의 도치의 인기는 대단했다. 원체 털이 하얗고 큰 눈을 가져 귀여움이 넘치던 도치였기에 아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것은 순식 간 이었다. 심지어는 여기저기서 서로 도치를 안아 보겠다고 달려 들다가 넘어진 아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평생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도치야~ 오늘 재미었지?? 담에도 또 학교에 가자~~>
<왕!!왕!!>
또 다시 좋다며 도치가 왕왕거려 왔다. 그렇게 내 말에 반응하고 나를 따르는 도치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조그만 나이였지만 지금 이순간이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어느새 횡단보도 앞에 다다른 우리는 천천히 신호를 기다렸다.
<어..비 오네..도치야 잠깐...아빠가 우산 씌워줄게 여기 잠깐만 있어>
안고 있던 도치를 땅에 내려놓은 나는 우산을 꺼내기 위해 가방 문을 열었다. 가방 문이 어딘가 열려 있었던 걸까? 가방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지며 또르르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하지만 우산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리던 나는 그 무언가를 미쳐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줍기 위해 따라가는 도치도...
<여다!! 도치야 아빠랑 우산 쓰자...도치야??>
사라진 도치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나는 이내 횡단보도에 서있는 도치를 발견했다. 언제 물었는지 조그마한 입엔 동그란 구슬이 하나 물려져 있었다.
<도치야...일루..>
퍽!!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순식간에 눈앞으로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그 바람에 잡고 있던 우산이 날라 가 저 멀리 떨어져 갔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내 귀에 들어 왔다.
<도치야...>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트럭이 지나간 그 자리에 도치는 없었다. 핏물과 내장에 뒤섞여 이상한 색을 나타내고 있는 털과 잔뜩 짜부라져 버린 살집이 도치가 있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 내가 사랑하는 도치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헛구역질 하는 소리와 어떻게 된 일인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도치야..어딨어..일루와...집에 가야지..>
역시...대답은..없었다...내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 짖던 녀석인데..
또르르 소리를 내며 발 밑으로 구슬 하나가 굴러와 닿았다. 저번에 동네 꼬마에게 땄던 초록색의 고운 구슬이.. 영롱한 색깔이 보석 같아 맨날 가방에 넣어 가지고 넣어다니며 도치에게 자랑했던 구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군데군데 살점으로 보이는 것이 붙어있어 처음 봤을 때의 영롱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그 구슬을 집었다. 자그마한 손에 미끌미끌하고 끈적한 핏물과 살점 같은 것이 묻어 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진 것 마냥..
언제 내리기 시작했는지 내 몸 위로 촉촉이 빗물이 흘러 내린다. 빗물은 내 몸을 적시고 땅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시고 바닥에 흐른 핏물을 적셔갔다. 그렇게 모든 흔적을 쓸어내리듯 천천히 모든 것을 적셔갔다.
<도...치야...>
그렇게 나는 도치와 헤어졌다.
왜 갑자기 생각이 난건지 모르겠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눈물이 왜 나는 거지?? 아직도 슬픈건가??
<뭐야 이 자식.. 울고있네... 꿈 속에서 차이기라도 했나??>
슬픈 감성을 느낄 시간도 기다려 주지 않고 내 귓가를 타고 낯설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래를 한 움큼 씹고 말을 한다면 이런 목소리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거칠고 걸걸한 목소리에 나는 조금씩 정신을 차려갔다.
순간 푸우~~하고 뭔가 분사되는 소리와 함께 내 얼굴 위로 단번에 기분 나쁜 물기가 내려앉아왔다. 없던 정신도 번쩍 들 만큼 낯선 그 감촉에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려던 정신에 가속도를 붙이며 감은 눈을 뜨고 황급히 몸을 일으켜 갔다.
뭐,,,뭐야..
얼굴 전체에 묻어 버린 기분 나쁜 물기를 닦아내며 이내 완전히 정신을 차려가자 너무나도 익숙한 냄새가 코 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물은 아니다..물은 냄새가 없는 무색 무취의 액체라는 건 초등학교만 제대로 이수해도 다 알수 있는 사실이니까..뭐지??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싸하고 머리가 핑도는 게 혀가 저절로 꼬부라질 것 같은 이 냄새는?? 어딘가 익숙한 냄새... 술이다.. 그것도 소주..
누가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 얼굴에 소주를 뿌린거냐!! 가뜩이나 요즘 부쩍 피곤한 일이 많아서 피부에 트러블 생겨서 짜증나죽겠는데.. 나 같은 평범한 얼굴에는 여드름 하나도 독이 될 수 있단 말이다.
<내가 뿌렸다..기절한 사람 깨우는데는 이게 직빵이거든..>
아까 잠결에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십년 묵은 가래라도 낀 것 마냥 걸걸한 목소리에 궁금증이 일러 주위를 둘러보지만 텅 빈 공간에 보이는 거라곤 내 몸뚱이와 내 팔 근처에서 나를 바라 보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 정도가 전부였다. 가만...강아지?? 이상한 생각에 나는 그 강아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한손엔 자기 얼굴 만 한 소주병을 다른 한손엔 할아버지들이 쓰는 곰방대처럼 보이는 작대기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 강아지는 포부도 당당하게 두발로(?) 서있었다. 약간 삐딱하게 서있는 듯 한 포즈가 너무 자연스러워 나는 옛날에 배웠던 포유류의 특징들에 대해서 잠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상식은 있는 나다. 내 짧은 지식 안에서도 강아지는 포유류였지 두발로 설수 있는 영장류는 아니었다..그런데도 분명히 저 강아지는 자신의 근본도 모른 채 두발로 당당히 서 있었다..그리고 저 익숙한 모습...
크고 동그란 눈 가득 검은 눈동자가 차 있고 하얀 털이 솜처럼 복실거리는 게 영락없이 우리 도치랑 꼭 닮은 강아지다. 하지만 달랐다. 풍겨오는 분위기도 달랐고 전체적인 이미지도 달랐다. 술이라도 취한 듯 초점 없는 눈동자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음침함이 느껴지는 저 얼굴..
분명 저건 도치가 아니었다. 아까 그 강아지다. 아까 차 앞에서 병신같이 서 있다가 내가 구해주려고 하니까 지만 쏙 빠져버린 치사한 강아지. 덕분에 나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이상한 곳에서 깨어나 버렸고.. 암튼 더럽게 재수 없고 짜증나는 강아..악!!
갑작스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 좌측 상단을 강타하는 강한 통증에 나는 머리를 쥐어 싸며 신음했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뭐 병신?? 더럽고 재수없어??
기껏 어린 목숨 불쌍해서 살려줬더니 뭐?? 치사해?? 이거 아주 웃긴 놈 아냐??>
말을... 했어?? 방금 머리를 맞은 아픔도 잊은 채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눈앞의 강아지를 바라봤다.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 눈앞의 강아지는 여느 다른 개들처럼 왈왈이나 멍멍으로 이루어진 의미 불명의 의성어가 아니라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는 언어체계로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배우기 힘들다는 한국말로.. 뭐가 그리 열 받는지 보이지도 않는 짧은 목에 핏대 까지 세우며 말이다.
뭐지?? 유전자 조작인가?? 아님 내가 강아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됐나? 사고의 후유증으로??
<조작은 무슨 조작이야.. 그리고 니가 동물에 왕 타잔이냐 동물 말을 알아듣게..>
<그럼 어떻게??>
<이 몸이 말을 할 줄 아니까 니가 듣는거지..내가 말을 탈줄 알아서 이렇게 너랑 대화 하겠냐??>
더럽게 재미없는 개그다...말 배우면서 개그는 못 배웠나 보다. 그나저나..여긴 어디지?? 나는 분명히 차에 치었는데... 혹시 천국인가?? 그럼 말이 된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천국에는 말하는 강아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그럼 난 죽은 건가??
<천국은 술 이름이 천국이고..너 안 죽었어..그냥 잠깐 기절했을 뿐이야..여기는 니 정신세계고..>
다시 한번 나의 머릿속 의문에 강아지가 정확한 한국말로 심드렁하게 대답을 해왔다. 분명히 속으로 말했는데.. 아까도 그렇고...이 강아지 독심술도 쓰나??
<독심술은 하급 인간들이나 쓰는 기술이고, 이 몸은 그딴 거 안 써. 여기는 니 정신 세계야.
좀 전에 말한 대로 기절한 니 머릿속으로 내가 들어온거고.. 쉽게 말하자면 지금 너랑 나랑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지.. 니 머릿속에서.. 그래서 당연 니가 입으로 소리를 내서 말을 하지 않아도 나에게 전달되는 거지..>
이건 또 무슨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냐?? 내 머릿속을 들락날락 거리고 생각을 공유한다니..텔레파시 같은 건가? 도대체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 소리만 하고 있다. 이 다음에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서 나에게 마력을 전해주며 너는 이 세계를 구할 용자다!! 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아...인간들은 이래서 싫어 상식 밖을 벗어 나기만 하면 지들 관점에 맞춰서 되지도 않는 짱돌을 억지로 굴러가며 이해 할려고 한단 말야.. 주제도 모르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마.. 나까지 머리 아퍼..그냥 간단하게 니 머리 속에 너하고 나하고 같이 있다고 이해해..그럼 돼..>
정말 말하는 강아지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들고 두서없는 설명이다. 역시 강아지는 강아지인가 보다. 설명을 못하고 있는 거 보니.. 설명하고 있는 강아지마저 이내 귀찮다는 듯 짧은 앞발을 내젓자 나 역시도 그 말에 따라 잠시 궁금증을 접기로 했다. 그 말대로다. 내 상식 밖의 일이다. 상식 밖의 일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치부 하고 말일이다. 애써 캐내고 궁금해 해봤자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시람들이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전생이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수십년을 토론해왔지만 명확히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의 지식에는 사람이 이해 할 수 있는 한계범위가 있다. 사람들은 그 범위 내의 일들을 상식이라고 하고 그 밖에 일들을 비상식 혹은 미스테리라고 부른다. 아무리 지금 용쓰며 알려고 해봤자 알 수 없는 게 있다는 거다. 알게 될 거라면 언젠가 자연히 알게 된다. 그때까진 그냥 렛 잇 비 하 는게 젤 속편한 일이다. 그리고 난 그런 쪽에 포기가 빠른 편이다. 되지도 않는 일에 온 신경을 쓸 만큼 난 한가한 놈이 아니니까..그럴 주변머리도 없고..
<여기가 내 정신세계라고요?? 그럼 전 아직 죽은게 아닌건가요??>
어느새 나의 말투는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다. 두발로 서서 곰방대를 휘두르는 강아지. 가히 정상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쉽게 대할 수는 없었다. 잘못 화나게 해서 나에게 파이어 볼이라도 날리면...하하..이건 아니다.. 판타지를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그래..그렇다니까.. 쇼크를 받아서 잠깐 기절한 것 뿐이야..>
<분명 차에 치었는데..날라가는 느낌까지 났는데..>
<차에 치이기 전에 내가 니 몸에 쉴드를 쳐놨거든..약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불구가 되거나 하진 않을 꺼야..그냥 가벼운 찰과상정도??>
쉴드?? 그건 무슨 마법인가??
<몰라...그냥 그러려니 해..그리고 머릿속으로 떠들지마..나까지 머리 아프니까..>
그만하라는 듯 강아지가 손에든 곰방대를 이리저리 흔들어 왔다. 그래...뭔지 모르지만 일단 목숨은 건졌나 보다. 얘기를 들어보니 다친 데도 없는 것 같고..
그건 그렇고 여기는 왜 이래?? 바닥에 뭐가 이렇게 너저분하게 깔려 있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나이도 얼마 안 쳐 먹은 학생 놈이 머릿 속에 들어 있는게 온통 빨래 거리뿐이냐... 니 네 집 세탁소하냐??>
발밑에 차이는 분홍 원피스를 툭툭 걷어차며 강아지가 한심하다는 듯 물어 왔다.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갖가지 종루의 옷가지들이 난지도의 쓰레기처럼 뒤섞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가 내 머릿속이라고?? 이 너저분한 빨래만 가득한 이 공간이??
가슴이... 아파온다.. 강혁아 강혁아 꿈많은 소년이 었던 강혁아!! 어린시절 드룹나무 밑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던 그 마음속의 맹세는 어디로 가버리고 머릿속에 냄새나는 빨래거리만 잔뜩 쌓여있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거니.. 아~ 꿈 많은 소년 강혁아..너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야...
<지랄스럽게도 지랄한다...>
이젠 아주 강아지한테까지 무시를 받는 구나..불쌍한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만물의 영장으로서 창피하기 그지없는 순간이다.
<그건 그렇고...이건 뭐냐??>
발 밑에 쌓인 빨래 더미에서 무언가 발견 한 듯 강아지가 한손에 쥔 곰방대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금색으로 된 쇠 막대기의 끝에는 낚시대에 고기가 걸린 것 마냥 작고 검은 천조가리 하나가 대롱 대롱 매달려 있었다. 저건 뭐지??
<뭐긴 뭐야..여자 팬티지...>
팬티?? 강아지의 말대로 분명히 팬티였다. 보기만 해도 묘한 상상을 뭉클뭉클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꽤나 섹시한 느낌의 검은색 여자 팬티. 여자 속옷만 모으는 수집가가 보면 당장이라도 엄청난 돈을 내놓으며 사갈만한 야릇함을 풍기는 싱싱한 느낌의 속옷이었다. 근데 저게 왜 여기 있지??
<그걸 내가 아냐?? 니 머릿속이니까 니가 알지??>
당연한 걸 뭘 물어 보냐는 듯 대꾸하는 강아지의 말에도 나는 도통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그 묘한 물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너...혹시 변태냐??>
<무..무슨 소리예요!!>
나는 청결 무수한 순수 그 자체의 남자란 말이다!!당연히 동정에다 아직 키스 한번 못해본 그런 순수 그 자체라고!!
<그럼 이건 뭐야..여기 이렇게 증거가 버젓이 있는데??>
강아지가 보란 듯이 곰방대에 걸린 팬티를 내 코앞에 디밀어 왔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잠깐 저 팬티 많이 익숙한 느낌이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질의 실크원단. 거기에 어른스러운 성숙함과 섹시함을 풍기는 디자인...
저건..우리 한 여사 팬티다. 아침에 봤던 그 팬티. 아마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었나 보다. 젠장..그러게 옷 좀 입고 다니라니까...
<그게..그러니까 거기에는 사정이..>
<됐다..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된다..누구에게나 사정이란 있는 법이니까..>
이해해 주는 건가?? 의외로 대인배 강아지다.
<그래..니 나이 때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이해하고 있다. 내가 아주 원치 않던 방향으로...그런 식의 이해는 사양인데...
<나 역시도 철없을 나이였을 때는 너처럼 그런 생각에 빠졌었지..가터벨트 망사 스타킹 티팬티 등등등 특히 방금 입은 싱싱한 미녀의 팬티를 구했을 때의 그 짜릿함과 기쁨이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지..>
정말 인 것 같다. 강아지라는 동물이 표정을 자유자재로 지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강아지의 얼굴에는 그때의 희열이 그대로 떠오르는 듯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어딘지 위험하다..저 강아지..
<흠흠..너무 쓸데 없는 얘길 많이 했군..아무튼 너의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그러니까 그런 이해는 필요 없다고..그리고 그건 왜 뒤로 가져가는 건데??
<원래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지..>
그게 나눌 수는 있는 거냐?? 팬티가 세포분열이라도 해?? 내보기엔 그냥 자기 콜렉션에 추가하려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아까부터 느낀 건데 상당이 말이 짧다.. 글 배울 때 존칭이라는 개념은 저 멀리 개밥그릇에 말아먹고 오셨나 보다..도대체 정체가 뭐야??
<훗...내 정체가 그리도 궁금한가?? 그렇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
역시 이번에도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대답해온다. 아까 한말이 맞긴 맞나보다. 근데 저건 뭐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 한 익숙한 자기 소개는..
<이 세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진실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천계의 미남자~~ 라티엘 님이 이 몸이시다. 하하하~~>
너무나 익숙한 대사와 익숙한 몸짓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저 30센치도 안 되는 짧은 앞다리를 이리저리 연신 움직여대는 강아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저 동작은 우리나라 대표 조각미남 장동건이 해도 우스울 것 같다. 저런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이라니...저게 아마 그거였지??
<포켓단??>
순간 다시 한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아야만 했다. 아씨..맞은데 또 맞았다..졸라 아프다..
<이 자식아 천사라니까 천사!! 그리고 이 대사는 몇 백년 전부터 내가 쓰던 유행어야!! 어떤 인간 자식이 따라서 했는지 몰라도 내가 원조라고 원조!! 천계에 특허까지 낸 상태라고 알아들어?>
저런 꿈에 나올까봐 두려운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특허까지 내준 기관의 행정상태가 심히 의심스럽다. 무슨 비리가 있었을 거다..안 그렇고 서야 저런 이상한 짓에 특허 따위를 내줄 리가 없잖아..
이제는 입에 침까지 튀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그 자칭 천사 강아지는 자기가 천사라는 사실을 인정 안한 것 보다는 자기의 유행어가 도용 됐다는 사실이 못내 기분 나쁜 듯 검은 개코를 벌렁 거리며 연신 씩씩 거려 왔다.
<아이고..아파....말이 안 되잖아요...천사라니...그것도 모잘라서 강아지가?? 왜?? 거기는 인력난에 허덕인답니까?? 강아지까지 천사가 되게??>
천사들이 모두 총 파업 중인가 보다..저런 강아지 까지 데려다 쓰는 거 보니..
<누군 강아지가 좋아서 됐는 줄 알아?? 아..그때 사고만 안쳤어도...아무튼 그건 이쪽이 사정이 있어서 그래...뭐 그런 것 까진 알려 줄 이유는 없고 그냥 그렇게 믿어.알았어??>
<그래두...말이...알았어요...믿어요..믿어..>
내 머리를 향해 천천히 곰방대를 겨눠 오는 강아지 아니 천사 강아지의 모습에 나는 말을 바꾸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곰방대 몇 대 맞아 봤는데 장난이 아니다...앞대가리에 붙어있는 쇠가 머리에 부딪힐 때마다 오는 충격 때문에 머릿속의 뇌수가 흔들리는 게 아닌 가 하고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게 진짜 말 그대로 골 때린다는 말의 뜻을 여실하게 몸으로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래.. 너 정신도 차렸으니까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 도대체 차도엔 왜 뛰어든 거야??세상 살기가 힘들던?? 하긴 니 지금 하는 꼴을 보니 좀 힘들긴 하겠더라..그래두 열심히 힘내서 살아야지..자살하면 쓰나..응?? 자살하면 너 지옥 간다..지옥에 있는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자칭 천사강아지가 곰방대로 왼쪽 어깨를 톡톡 치며 건들거리는 자세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 천사들은 지역 일진으로 뽑나보다. 제대로 양아치 포스다. 그건 그렇고 자살이라니?? 하나님도 감복할 만한 나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자살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자..자살이라니...난 그저 그쪽을 구해줄려고..>
<나 건너간 거 안보였냐?? 니 두 눈깔은 장식품이냐??>
눈깔이라...단어 참 맛깔스럽다...
<아..진짜 그쪽이 멍청하게..아니 다소곳이 거기 서있었잖아요...그래서 내가 치일까봐 걱정되서 구해줄라고 뛰어든걸 가지고 뭐??자살?? 하!!진짜 억울해서 말이 다 안나오네..>
<너 같으면 믿겠냐?? 강아지 하나 구하겠다고 차도에 들었다고 하면??>
솔직히 나 같아도 안 믿겠다. 강아지 하나 구하겠다고 목숨 걸었다고 하면.. 내가 했지만 좀 바보 같은 짓이었기도 했고.. 그래도 왠지 좀 억울하다. 이대로 나의 숭고한 희생이 짓 밟히는건..
<씨이...됐어요!! 됐어!! 믿기 싫으면 믿지 마요!! 무슨 놈의 천사가 사람 말을 안 믿어!!
천사의 덕목이 뭐야?? 믿음, 사랑, 우정, 뭐 그런 거 아냐?? 이건 뭐 천사가 착한 사람 의심이나 하면 서 자살이나 하는 미친놈으로 만들고..>
나의 격한 반응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이내 강아지가 나를 달래듯 짧은 앞발을 까닥거리며 진정시켜 왔다.
<알았어.. 알았어.. 믿어줄게!!>
<됐거든요??>
<믿어준다니까...>
<괜찮거든요??>
<믿어 준다고 했다...>
<일 없거든요??>
다시 한번 팍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로 느껴지는 충격에 나는 앞머리를 문지르며 허리를 숙였다. 씨파.. 아까 부딪힌데 맞은 것 같다...열라 아프다.. 혹 터지는 거 아냐?? 그냥 중간에서 멈출걸..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하다보니 그만...
<이 새끼가 정도를 몰라...어른이 이만큼 했으면 알아서 받들어야지... 하여간 매를 벌어요 벌어..>
<아이고..아파..무슨 천사가 이렇게 폭력적이에요??거기다 입도 거칠고, 또 술까지 마셔??
지금 이러는 거 근무태만 아니에요??>
공무원으로 치면 감봉도 모자라 바로 모가지 감이다. 어서 빨리 감사가 나와야 할 텐데...
<내가 뭐!! 짜식아.. 니가 인간세계에서 백년 넘게 강아지로 한번 살아봐...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세상 살기 얼마나 힘든데.. 이 술이라도 없었으면 나 벌써 자살해서 지옥 갔을거다..>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운 듯 손에는 자칭 강아지 천사는 소주병을 나발로 불며 한숨을 내쉬어 갔다. 그림 참 언발란스 하다...천사라는 하는 사람...아니 강아지가 자살 운운하며 지옥 갈 생각을 하다니.. 하나하나 어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전혀 다른 부조화의 극치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보는 내가 머리가 아프다.
<그래, 날 구할려고 흑!! 차도로 뛰어들었다고?? 그럼 보답을 해야지..자고로 모름지기 천사란 흑!! 착한 어린이에게는 축복을 내려주거든..흑!! 그래 말해 보아라.. 이 천계의 미남자 라티엘님이 흑!! 뭐든 들어주마...>
이젠 딸꾹질 까지 한다. 거기에 짧은 다리로 이리저리 비틀 거리기 까지 하는 것이 그냥 가관이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내 생각이 들린다고 했지..조심하자..또 맞긴 싫으니까. 그나저나 이 대화 방법 진짜 짜증난다..
<뭐해??흑...어서 말하라니까...>
믿을 수 있는 거야?? 당신??
<이게.. 내가 이래뵈도 4천사 중 한분인 가브리엘님의 수석 제자라고...믿어도 돼..>
가브리엘??...아...들어본 것 같은데....뭐...그건 됐고...소원이라...뭘 빌지?? 잘생긴 외모를 달라고 할까?? 아님...엄청난 돈?? 비상한 머리?? 엄청난 권력?? 예쁜 여자나 한타스 내려 달라고 할까??
<야...하나씩 말해...가뜩이나 숙취 때문에 어지러워 죽겠는데...>
천사도 숙취가 있다는 믿지 못할 사실이 그닥 신기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이미 천사에 대한 내가 가진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을 쳐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이젠 천사도 주정을 부린다는 말도 믿겠다...아직 순진한 나인데..벌써부터 이런 안 좋은 것들을 알아버리다니...한숨만 나온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뭘 빌지?? 순간 내 머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소원이 있었다.
<결정했어요...내 소원은 바로...>
<안돼.>
<네! 안돼.. 엥??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들린다고 했잖아..니 생각이...그건 안돼>
<왜 안돼요?? 뭐든 다 된다면서요??>
<내가 드래곤 볼의 용신이냐?? 죽은 사람을 살려내게?? 그건 내 권한 밖에 일이야..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려면 하나님의 권능을 빌려야 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글쎄! 딴 소원 빌어.>
그렇다..내가 빌려던 소원은 부모님이 돌아오시는 것 말하자면 부활 하시는 것. 딱히 그렇게 큰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막상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당하니 아쉽긴 하다. 어쩔 수 없지..권한 밖의 일이라는데..
<그럼 잠깐이라도 못 봐요??>
솔직히 아까 차에 부딪혀 죽는 줄 알았을 때도 영화에서처럼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닌 가 내심 기대도 했었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부모님이 그리운 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니까..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자그마한 기대를 걸며 물었다.
<음...아마 힘들거다... 그렇게 할려면 사계에 있는 너의 부모님 영혼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아마 지금쯤은 영혼이 전생의 껍질을 벗고 다음 생을 준비하고 있을꺼야. 그 상황에서는 자칫 잘못 건들면 영혼의 그릇이 완전히 깨져버려서 다시는 환생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웬만하면 안 건드리는게 좋아..운이 좋아 니네 부모님들이 천계에 있는 천국을 가셨다고 해도 내가 지금 천계로 들어갈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좀 힘들다.. 지옥은 말할 필요도 없구..>
말이 너무 길고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안 된다는 것만은 알겠다. 역시 이것도 힘든가?? 어쩔 수 없지 뭐...
<의외로 포기가 빠르다?? 보통은 울며 불며 매달리는데..>
<제가 원래 이런 쪽으론 좀 그래요..안되는 일을 질질 끌만큼 미련하진 않거든요..>
<그래..좋은 자세다...그래야 오래 살지..그럼 다른 소원을 말해봐.>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진 나는 이내 바로 입을 열어 갔다.
<얼굴을 좀 바꿔주세요. 제가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서 인기가 그렇게 많이 없거든요..>
그렇게 못난 얼굴은 아니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 잘 생긴게 좋다고 나도 미남소리 한번 듣고서 여자 애들한테 인기 한번 얻어 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남자로서의 욕심이라고 할까??
<보아하니...좀 살기 힘들긴 하겠다. 옛날 내 얼굴에 비하면 요즘 말로 브레드피트에 옥동자 얼굴을 놓고 비교 하는 거랑 같은 수준이겠는데..>
순간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참은 나는 다시금 마음을 가라 앉혔다. 그래..일단 빌자.. 소원 들어준다는 데 이 정도는 참아야지..
<그니까 바꿔 주실수 있죠??>
<음...이것도 힘들겠다..견적이 너무 많이 나와...그냥 생긴대로 살아..부모님이 주신 신성한 얼굴 맘대로 고치면 쓰나.. 이 나라 옛말에 그런 말도 있잖냐..身體髮膚는 受之父母하니 敢毁傷이 孝之始也요라 우리의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아무리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그런 불효를 저지르면 안되지.. 그 꼴은 내가 못 본다.>
천사들이 유교사상도 따르나?? 갑자기 한자는 왜 나오는지 의아함에 갸웃 거렸지만 막상 들어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이내 마음을 접어갔다.
<그럼 돈이나 많이 벌게 해주세요..그 톨스토이 소설 보면 바보 이반이 악마한테 나뭇잎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받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한테도 돈을 만드는 능력을 주세요>
<그것도 안되겠다...돈 많아봐야 돈 없는 사람 핍박이나 하고..평생 탱자탱자 놀면서 흥청망청 망나니처럼 살거 아냐.. 니네 부모님이 그꼴을 보시면 얼마나 통탄해 하시겠냐.. 그 꼴도 나는 못보겠다..그냥 니 힘으로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살아..>
뭔가 좀 이상하다..이거..
<그럼..돈 많이 벌수 있는 비상한 두뇌를 주시던가요.. 아인슈타인이나 제갈 공명이 울고 갈 그런 두뇌요..>
<머리 좋아서 어따 쓸라고..잔머리만 굴리면서 사기나 치지..여기 저기 봐봐...하다못해 이 나라만 봐도 머리 좋은 놈들 다 높은 자리 올라가서 그 좋은 머리 악용해 가지고 지 배만 채우면서 사기치고 다니잖아..너두 그럴래?? 그 꼴 보면 참 좋아 하시겠다...니네 부모님이..>
<아니..안 그러면 되지..그리고 왜 자꾸 부모님은 거들먹 거려요...기분나쁘게.. 그럼 오래오래 살게만 해주세요.>
<왜?? 너 평생 벽에 똥칠하면서 살고 싶어?? 오래 살아서 뭐해?? 내가 살아 봐서 아는데 좋을거 하나 없어..더러운 꼴만 많이 보고..한탄만 늘고..그냥 적당히 재밌게 살다가 그냥 갈때되면 편안히 가는게 제일 좋아..암..그렇구 말구..>
당신 모습 보니까 왠지 그 말이 이해는 간다. 그래도 그렇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거예요 안 들어주겠다는 거예요??>
<빌어..누가 빌지 말라고 했냐??>
곰방대 끝트머리로 귀를 후비며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강아지의 모습에 나는 약간의 살의를 느꼈다. 내가 개고기를 좋아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기분이라면 100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계속 말했는데 다 안 된다고만 하고 지금 나랑 장난해요??>
<그거야..니가 나쁜 길로 빠질까봐 걱정 되서 하는 말이고..제대로 된 소원 빌어..들어줄께>
<됐어요!! 소원 안 들어줘도 되니까 빨리 집에나 보내줘요!! 여기 있다간 진짜 내가 홧병으로 죽을 것 같아..어이구!!>
<그래?? 싫으면 어쩔수 없고..니가 싫다고 한거다..난 분명히 들어준다고 했어..>
들어만 줬지...말 그대로 들어만...마치 내말을 기다렸다는 듯 반색을 하는 천사 같지도 않은 자칭 천사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천사라고 마냥 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심 뼈져리게 느꼈다. 하긴 저건 처음부터 천사라고 생각도 안 드니..
<그래두 그냥 보내기엔 이 라티엘님의 투철한 사명의식 때문에 맘이 편치 않으니 너에게 선물을 하나 주마..>
그래도 명색이 천사라고 양심은 있나보다. 미안했는지 선물까지 줄려고 하고... 금도끼은도끼에서 도끼를 찾아준 산신령 같은 목소리로 인심이라도 쓰듯 말한 천사 강아지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이리저리 짧은 앞발을 움직여 갔다. 뭘 찾는 거야?? 저 몸에 주머니가 있나??
<찾았다...자 여기..받아라!>
있나보다..몸에 붙은 이라도 털어내듯 몸을 털던 강아지가 이내 등 쪽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어 왔다. 이젠 신기하지도 않다...그래도 보는 사람 입장엔 조금 안 좋아 보이네..
<이게 뭐예요??>
<응..그냥 일종의 보약 같은 거야.. 이래뵈도 이게 천계에서만 나오는 특산물이야. 옛날에 여기 내려올때 나 먹을라고 몇 개 꼬불쳐서 갔고 온 건데 너 주마..>
한마디로 장물이라는 거다. 출처가 심히 의심스럽다. 명색이 천사라는 사람이 이런 불법을 시행하다니 위에 있는 분이 계시면 당장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할지 모를 노릇이다.
강아지에게서 정체불명의 보약을 건네받은 나는 찬찬히 손에 쥔 구슬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맑은 투명한 빛을 머금고 스스로 광택을 내뿜는듯한 구슬은 마치 내 손바닥에서 세상에는 더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아까 보니까 니가 몸이 많이 허한 것 같더라..쉴드까지 쳤는데 그렇게 기절한거 보면..
그래가지고 어디 사내구실 하겠어..그거 먹고 몸 보신 좀 해..>
하긴 요즘에 몸이 많이 허해지긴 한 것 같긴 하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 거기다 주부 습진까지...돌도 씹어 먹을 팔팔한 나이의 고2가 이런 잔병이라니..한숨만 나온다.
<근데...이거 먹는 거예요??>
<어..그냥 사탕 삼키듯 먹으면 돼>
손에 쥐고 있는 이 구슬의 크기와 내 목구멍의 직경을 비교 해볼 때 도저히 넘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드는데...거기다 이 구슬의 출처를 생각하니까 그나마 약간 있던 식욕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모해?? 안먹구?? 지금 먹어>
<나중에 먹을 께요..>
<그냥 내 눈 앞에서 먹어..니가 맛있게 먹어야 나두 기분 좋지..>
<그냥...나중에..>
<먹으랄때...먹어...>
천천히 강아지가 손에 쥔 곰방대를 들어 올리며 나를 향해 겨눠왔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먹고 죽으나 맞아 죽으나 매 한가지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 옛 속담을 떠올리며 나는 눈 딱 감고 입안으로 뭔지도 모를 보약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순간 입안으로 들어간 보약은 거짓말처럼 미끄덩거리는 느낌으로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넘어가 버렸다.
<어때??>
<음...약간 새콤달콤 한게, 첫맛은 초콜렛처럼 쌉싸름 하다가 끝맛은 달짝지근 한게 얼핏 시원힌 사과맛이 나는 것 같은게...>
<지랄한다...암맛도 안나는거 알아...내가 안 먹어 본줄 알아??>
<진짜예요..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암튼 맛있어요..>
내가 이래 뵈도 요리경력이 5년이 다 되간다. 절대미각!! 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식재료와 조미료 맛은 다 알아 챌 수 있는 나였다. 그런 나에게도 지금 이 맛은 내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오묘한 맛을 갖고 있었다.
<아냐...그럴 리가 없어..잠깐...>
뭔가 잘못 됐는지 그가 갑자기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어갔다.
<너 혹시 그 알약 색깔이..투명한 빛깔의 보석 같은 거였냐??>
<예..막 반짝반짝 빛나는게 마치 햇빛에 비친 수정 같았어요..근데 그건 왜요..>
<안돼...설마..>
강아지도 놀랄 수 있는걸 보여주려는 듯 사색이 된 얼굴을 한 강아지가 자신의 몸을 미친 사람..아니 미친개처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짧은 앞발을 움직이며 이리저리 몸을 터는 모습이 어찌나 필사적이었는지 나는 웃지도 못하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없어..>
<뭐가요??>
<그게 없어...>
<그니까 뭐가요??>
<안돼...이럴 순 없어...>
<왜요??무슨 일인데요??>
<이제 형벌도 얼마 남지 않아서 몇 달만 참으면 돌아갈수 있는데..이럴순 없어..>
<그니까 왜 그러는데요??>
<난 이제..끝났어..하하..난 이제 끝났다고..>
최종부도 선고를 맞은 중소기업 사장님처럼 자리에 주저앉은 강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한숨만 푹푹 내쉬어 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 맞고 궁상맞던지 나는 말도 붙이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하하!!이렇게 끝나는 구나 이 천계의 미남아 라티엘이 이렇게 똥개 신세로 긴 생을 마감하는구나..하하하!!>
진짜로 미쳤나보다. 미친개는 피하는 게 상책인데 집에 가는 방법을 모르니 그냥 갈수 도 없고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이다.
쿵쿵쿵...
이젠 바닥에 머리까지 찧는다. 그래서 죽겠냐?? 더 세게 박아야지..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보다...
쿵!!쿵!!쿵!!
내 말이 들렸는지 이내 천사 강아지는 속도를 높혀 가며 미친 듯이 머리를 바닥에 쳐 박아 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섬뜩하든지 잠깐 소름까지 돋아갔다. 저러다 진짜 죽겠다..죽을라면 나나 보네주고 죽지...집에 가야 되는데...안되겠다 우선 말려야겠다...
<저..저기요..무슨 일이지 모르지만 진정 하세요..힘들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힘내야죠..>
<저리 가 난 이제 끝났어...끝났다고!!>
쿵쿵쿵..
말리는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금 박아대기 시작하는 강아지는 이제 박는 것도 모잘라 한번씩 이마를 짓이기는 센스까지 발휘해 갔다..독한 자식이다...
<저기요..잠깐 진정하시고 저랑 얘기 좀 하세요. 그러면 한결 맘이 편해 지실거예요. 제가 정신상담 전문 자격증이 있거든요. 그러니까..잠깐 얘기 좀 해요..>
물론 뻥이다. 내 나이 아직 고등학생인데 그런게 있을 턱이 없다. 남들 다있는 워드 자격증도 없는데..하지만 이런 내 얘기가 먹혔는지 동작을 멈춘 강아지는 땅에 박힌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갔다. 아까 머리를 찧을 때 이마가 깨졌는지 하얗고 복슬복슬한 느낌의 머리에서는 피로 흥건하게 젖어 보기만 해도 섬뜩한 모습을 풍기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죽어라 박아댔는데.. 지가 박치기 왕 김일도 아니고..멀쩡할 턱이 있나.. 근데 무섭다.. 무슨 호러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우...우선...피부터 닦으시고 차근 차근 얘기를..>
<뱉어>
<엥??>
<뱉으라고..>
<뭘..요??>
언제 일어났는지 강아지가 짧은 두 다리로 나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만한 징그러운 몰골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강아지의 모습에 압도된 나는 나도 모르게 다가오는 그 걸음에 맞춰 조금씩 뒷걸음질 쳐갔다.
<아까..니가..먹은 그거...뱉.으.라.고>
<아니..이미 먹은걸.. 어떡해 뱉어요...>
<못 뱉겠다 이거지..>
<아니.. 못 뱉겠다는게 아니라...뱉을 수 없다는 거죠..>
<그게 그 소리지..>
<아니..그게......그 소리네요...그래두...>
<알았어..뱉게 해주께...>
<아니..어떡해....윽!!>
어디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강아지가 갑자기 튕기듯 뛰어올라 몸을 날려 오자 나는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간신히 허리를 숙여 피해갔다,
<갑자기 뭐예요!!>
<어쭈...피했어??>
당신 꼴을 봐라!! 안 피하고 배기나!!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비장하게 다시 일어선 강아지는 귀여운 두 눈 가득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살기를 번뜩이며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 모습이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굶주린 사자 같아 나도 모르게 목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켜갔다.
<대화 하자 면서..이리와...>
<아뇨..생각해보니까 혼자 냅두는게 낫겠어요..그런 때 있잖아요.. 혼자만 있고 싶을때..
지금 그쪽이 그런 상태같아요.. 전 그냥 여기 있을께요..>
<그래?? 그럼..내가....갈께!!!>
당찬 기합소리와 함께 지 근본도 모르고 토끼처럼 뛰어오른 그는 이번엔 내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어...잠..잠깐..앗..>
운이 좋았던 것일까?? 뒷걸음질 치던 나는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빨래에 걸려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번개 같은 그의 공격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잡았다..>
언제 올라 왔는지 내가 미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도 전에 내 몸 위로 올라탄 강아지는 천천히 앞발을 내밀며 내 목을 졸라왔다.
<켁..켁..>
뭔 개새끼 악력이 이렇게 쎄냐...숨을 못 쉬겠다...윽....
<저...기...켁...말로 하세요....천...천사가..켁...이럼 안되..잖아....켁...요..>
간신히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내며 마지막 회유 작업에 들어가는 나였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발에 힘을 더 쏟으며 내 목을 강하게 압박할 뿐이었다.
<그래...난 천사야..근데...그게 널 죽이고 그걸 꺼내야...천사가 될 수 있어...알겠어?? 나도 이러고 싶진 않은데.. 어쩔수 없다..이해 해라..>
숨쉬기가 더욱 힘들어 지면서 조금씩 정신이 아득 해진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시야가 조금씩 어두워지는게 이번엔 진짜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왔다. 이럴꺼면 아까 죽게 내버려두지..그땐 적어도 이렇게 힘들 진 않았잖아..그리고 이게 뭐야... 쪽팔리게 강아지한테 목 졸려서 죽었다는거 알면 다들 비웃을꺼 아냐...썅...
<뭐야...이런...썅...시간이 벌서 다 된건가...젠장...좀만 더하면 좀만 더하면 다시 천계로 갈수 있는데...이런 씨...발...>
뭔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 듯 목을 조르던 강아지는 당황하며 분하다는 듯이 욕지거리를 내뱉어 갔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 개새끼 입 정말 더럽다..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라 정말 걸레 문 천사다.. 한국말을 무슨 욕쟁이 할머니한테 배웠나...진짜 내가 나중에 죽어서 천국가면 천사들 원래 이런 건지 확인해 볼 거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졸린 걸까...나도 모르게 눈이 조금씩 감겨 온다. 억지로 떠보려 해도 눈꺼풀에 뭔가 달아놓은 듯 마냥 무겁게만 느껴져 온다. 안되는데.. 집에 가야하는데...
<으아악~~~!!>
<꺄아악~~~!!>
비교적 낮은 옥타브의 테너와 고 옥타브의 소프라노가 화음을 맞추듯 한데 어울러져 비명소리가 울려 퍼져갔다.
<무슨 일이죠??>
갑자기 들려오는 감정 없는 무심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언제 왔는지 침대 근처에 흰 가운을 걸치고 있는 장신의 여인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 한 얼굴로 서있었다. 신고 있는 힐을 감안 하더라도 꽤나 큰 키를 자랑하며 모델 같은 늘씬함을 풍기고 있는 여자는 놀라서 헐떡이고 있는 간호사와는 다르게 더없이 차분하다 못해 무심한 듯 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민 선생님....그..그게...저기...환자를...보고있는데....갑자기 숨을 안 쉬어서...그래서...놀래서...갑자기..확..일어나면서.....비명지르고....그래서..>
많이 놀랐는지 설명에 앞도 뒤도 없다. 오죽하면 옆에서 듣고 있는 내가 답답한 마음이 들어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나 역시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무시한 채 가쁘게 숨만 내쉬어 갔다.
<그게 무슨 말이죠??>
다그치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감정 없는 목소리가 더욱 위압적으로 들리는지 그 말에 더욱 긴장한 듯 간호사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해갔다.
<그...그게..그러니까...저도..잘.....모르겠어요...죄송합니다..>
결국 간호사 자신도 설명하기를 포기 한 듯 주눅 든 얼굴로 고개를 숙여갔다.
<알았어요..그만 나가봐요..>
<네...>
잔뜩 처진 어깨로 힘없이 걸음을 옮기며 간호사가 자리를 떠나자 그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여인이 시선을 내 쪽으로 향했다. 세련되면서 어딘가 날카로워 보이는 검은색 뿔테 안경이 지성 넘치는 이지적인 눈동자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보기에도 최고의 엘리트!!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괜찮아요??>
침대 맡에 놓여 진 의자에 앉으며 그녀가 높낮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네..저...물...물 좀 주시겠어요..>
<여기요.>
언제 준비 했는지 그녀가 나에게 물이 가득 담긴 컵을 내밀어 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처럼 받자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 킨 나는 그러고도 몇 잔을 더 요구해 연거푸 3잔을 마셔갔다. 냉수의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퍼지며 갈증과 함께 가쁜 숨소리를 조금씩 사라지게 해 갔다. 이제야 좀 진정이 된다...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여긴 병원 응급실예요.. 전 여기 의사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걸 어느 주민이 데려와서 상태를 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옆에 앉은 그녀가 마치 외워두었던 대사를 내뱉듯 감정 없는 딱딱한 목소리로 설명해왔다. 병원..인가?? 그럼 그 개새끼는?? 그리고 난 살아 있는 건가??
<저..살아 있는 건가요??>
<살아 있다는 것의 정의가 생물학적으로 심장이 뛰고 뇌가 살아있어 사고 할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거라면 당신은 아직 살아 있어요.>
표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 한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가 또박또박 물음에 답해 왔다. 무심한 표정과 잘 어울려 차갑게만 느껴지는 말투였지만 낮게 깔리는 여자답지 않은 허스키한 목소리는 진지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것이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생기고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살아 있
기껏 써놓은 수정본 저장한번 잘못 했다가 단번에 날라가는 기분이란...
정말 한숨만 나오고 마지막엔 그만 둘까?? 라는 회한까지 밀려오더군요..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 3편 하나만 날라 간 게 다행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네요..
덕분에 다시 한번 수정했는데 마음이 착잡해서 그런가 수정도 안되고 해서 대충 생각나는
몇 가지만 고쳤습니다.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올립니다.
어차피 이쪽은 그렇게 크게 변한 것도 없으니까...혹시나 이상하다 생각하셔도 그냥 웃으며
넘어가 주세요..흐흐흐
그리고 원래 전에 쓴거에서 그냥 덮어쓰는걸로 하려고 했는데 못찾는 분이 많이 계셔서 그냥 이렇게 올립니다.
헷갈리게 해드려서 죄송...^^::
그럼 저 카셀 뾰로롱~~ 사라집니다~~
PS.보시고 난뒤의 짧은 리플과 살포시 찍어주시는 추천은 저의 글을 기름지게하고 길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부디 잊지마시고 리플이나마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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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치를 처음 만난 건 아주 화창하고 따뜻한 여름 날이었다. 때는 수년전..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우리 가족이 아버지의 휴가를 이용해 큰아버지 댁으로 놀러를 갔을 때였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시골은 언제나 신기한 동경의 대상이다. 마음 것 뛰어 놀 수 있는 들판, 이리 저러 깔려있는 놀이거리, 도시에서는 맛 볼수 없는 색다른 체험들. 모든 것이 신비롭고 신나는 자연의 놀이터. 그곳이 그때의 어린이들이 인식하는 시골이다.물론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큰 아버지 댁에 도착한 나는 남들과는 다른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폭력과 구타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저번에도 말했지만 큰 아버지 댁에는 딸이 하나 있다. 이름은 한시연. 나와 동갑내기의 그 아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하의 왈가닥에 성격파탄자로 실크로드가 깔린 내 인생에 주먹 만한 오점을 남긴 내겐 웬수 같은 기집애이다.
그날도 역시 그 웬수같은 기집애의 마수에 걸린 나는 갖은 고문을 겪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쪼그만 기집애가 어디서 보고 왔는지 프로레슬링 기술을 날려가며 내 몸을 유린하는데 그 공세가 어찌나 매섭던지 비 폭력주의자에 평화주의자인 간디를 존경하는 나로서는 반격조차 할 수 없었다. 솔직히...힘이 딸린 이유가 더 크긴 했지만 중요 한게 아니니 일단 넘어 가자.
결국 녀석의 폭력에 참다못해 울음을 터뜨린 나는 부모님들을 찾아가 일러도 보았지만 당시 시연이 기집애의 가증스런 애교공세에 빠져있던 부모님들이었기에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온 것은 옆에 있던 누나의 차가운 놀림이었다.
<사내자식이 되가지고 계집애한테 맞고 울고나 있고...고추는 왜 달았냐?? 떼서 장이나 담가먹지...챙피한줄 알아라...>
<씨....미워!!다 미워!! 나 갈 거야!! 집에 혼자 갈꺼야!! 누나랑 아빠랑 엄마랑 셋이서 여기서 평생 살아라!>
억울했다. 엄마도 아빠도..누나야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라고 쳐도...자식편은 한번도 안들어 주고 그 나쁜 기집애만 이뻐하는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 원망스러운 마음에 나는 주워온 자식일꺼란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어 진짜 엄마 아빠 찾으러 간다고 하며 집까지 나와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막상 소리를 치고 나오긴 했지만 정작 갈 데는 없었다. 아는 동네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시골이었기에 가뜩이나 얇은 유리 같은 심약한 마음을 가진 나로서는 어딘가로 섯불리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가기에는 어린마음에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렇게 멀리 나가지도 그렇다고 도로 들어가지도 못하던 나는 결국 집 근처에 있던 가까운 창고로 몸을 숨겼다.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쌓여져 있는 짚단위로 일단 몸을 뉘우자 창고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농가의 창고 아니랄까봐 안에는 낫, 가래, 쟁기, 괭이등 여러 종류의 농기구들이 안을 가득 메워 보기에도 섬뜩한 기분을 풍기고 있었다. 거기에 조금 밖에 들어오지 않는 햇빛 탓에 어둡기 까지 않은 창고는 말 그대로 귀곡 산장이라는 말이 딱 떠오를 정도로 음산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절로 연출하고 있었다.
집에서도 자다가 장롱위의 물건이나 창밖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에 벌벌 떠는 콩알보다 작은 담력의 소유자를 가지고 있는 나였다. 그런 창고의 모든 것들은 자연 나에게 두려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거기에 짓굿게 웃으시며 요즘 시골에 홍콩할매가 자주 다닌다고 하는데 조심해라 라고 말씀하시던 큰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나자 그 두려움과 공포는 그 끝을 모르고 커져 내 조그마한 온몸을 덮쳐왔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컴컴한 구석 어딘가에서 무언가 튀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온몸을 엄습해 오는 것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순간 그 느낌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구석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와 동시에 온몸이 움츠러들며 콩알만 했던 가슴은 아주 좁쌀만 해져 엄청난 공포가 조그만 몸으로 밀려 들어와 질끈 눈을 감아갔다. 뭐지 귀신인가?? 아님 괴물?? 뭐든 상관없으니까 빨리 가라..
그렇게 들어 주지도 않을 누군가에게 애원하며 떨고 있던 순간 손에 촉촉한 무언가가 느껴져 왔다. 공포로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이 귀신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간을 보는 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두려움에 나는 그저 눈만 꼭 감은 채 오들오들 몸만 떨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정체불명의 물체는 떠나지 않고 내 손끝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던 중 복슬복슬 부드러운 느낌까지 나는 것이 마치 솜털 부벼지는 것 처럼 간지럽기까지 한 감촉에 두려움 보다 궁금한 마음이 일어 살짝 감았던 눈을 떠갔다.
그리고 나는 내 손 옆에 붙어 있던 강아지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복슬복슬하고 부드러운 하얀 털을 가지고 똘망똘망 하게 생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털을 부비는 강아지. 지금까지 나를 공포 끝까지 몰아 넣었던 녀석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내가 마음에 든 듯 내 손가락을 ?고 있는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에 지금까지 무서웠던 것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그 귀여움에 미소를 지어갔다.
그것이 나와 도치의 첫 만남이었다.
도치가 큰아버지 댁 돌구가 난 새끼 강아지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 무단 외출로 엄청 혼날 때 들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도치와 나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즐거웠다. 같이 들판을 뛰어다니고 같이 냇가를 놀러가고 같이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 다니는 등 마치 플란다스의 개의 파트라슈와 네로처럼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을 함께했다. 나는 도치를 누구보다 사랑해줬고 도치도 그 누구보다 나를 따랐다.
언제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시연이 녀석이 날 괴롭히기 위해 어른들 눈을 피해 나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자기 주인을 다치게 하려는 것을 알았을까?? 그 조그마한 몸에 어디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도치 녀석은 시연에게 아직 대로 나지도 않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도치의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시연이 자식은 지 주인도 몰라 보는 놈 이라는 말만을 남긴 채 도망 가 버렸고 나는 무사히 그녀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도치가 있을 때는 시연이는 나를 건들지 못했고 나 역시도 그 덕분에 여유롭게 시골의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행복했던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가 예정했던 휴일이 모두 지나자 우리에게는 자연스레 이별의 시간이 왔다.
<싫어!!싫어!! 나 도치랑 같이 있을꺼야!!>
<안돼..강혁아..도치 집은 여기고 강혁이 집은 서울이잖아..너 여기서 살꺼야??>
<엄마..도치 내가 데려가면 안될까??내가 밥도 주고 똥도 치우고 다 할께..엄마 아빠 귀찮게 안하고 내가 다 알아서 할께...안될까??>
<어서 개를 키울라고 해!! 안돼!!>
<바보 누난 조용히 해!! 엄마..제발....아빠...>
<강혁아...도치도 엄마랑 식구들이랑 같이 살아야지...혼자 외롭게 만들꺼야??>
<나...나 있잖아...내가 도치 안 외롭게 맨날 붙어 있을께..응??>
<학교는 어떡하고??>
<음...학교 같이 다니면 되지...그러니까..>
<웃긴다..왜 그냥 학교 때려치고 같이 산다고 하지..>
<지연아!!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아빠도 참.. 얘 하는 것 좀 보세요..막 때만 쓰면 다 되는 줄 알잖아요..>
<우리 강혁이 어쩌면 좋니...>
도치를 꼭 껴안고 울고불고 떼를 쓰는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말하는 엄마의 말에도 나의 고집은 좀처럼 꺽이지 않았다.
<데려가라고 해라..>
언제 왔는지 내 뒤에는 큰 아버지가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찬찬히 허리를 숙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는 큰아버지.. 그 투박하고 큰손이 나에겐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혁아..이 강아지가 그렇게 좋으니??>
<네..전 세상에서 도치가 젤 좋아요!!아..아니..엄마아빠큰아버지 다음으로 네 번째로 좋아요!!>
<이름이 도치구나..그럼 데려가서 좋은 거 많이 먹이고 외롭지 않게 잘 키워야 한다. 알았지?>
<정말요??>
<그럼 정말 이고말고..여기선 큰아버지가 대장이라 큰아버지가 하라고 하면 다하게 되있어.그렇지?>
큰 아버지는 짖꿎은 표정을 지으며 찬찬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큰아버지의 갑작스런 행동에 난처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의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호!! 신난다!! 도치야 우리 안 헤어져도 된대!! 너도 좋지?? 좋다고?? 그럴줄 알았어!!하하하!!>
지도 좋은 듯 왕왕 짖으며 대답하는 도치의 모습에 난 너무 신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그때 그 때를 쓴 걸 평생 후회하게 될 줄은..
도치와의 서울 생활은 즐거웠다. 도치가 가족들과 떨어져 우울해 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내가 있어선지 이내 우리 집에 적응 했고 나 역시도 약속한대로 부모님께 폐를 끼치지 않기위해 도치의 밥과 배설물 청소, 목욕 등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해 나갔다.
가끔씩 누나의 구박이 있긴 했지만 누나도 도치가 그리 싫지는 않은 듯 금방 잠잠해 졌다.
그렇게 나와 도치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행복 뒤엔 언제나 무서운 슬픔이 또아리 트고 있다고..정말 옛말은 틀린 게 없는 것 같다. 슬픔은 언제나 행복 뒤에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느끼지도 못할 사이에 덮쳐드니..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여지없이 닥쳐왔다,
그날은 비가 참 많이 왔다. 갓 장마가 시작 되서 그런지 여기 저기서 호우 주위보가 내리고 경계령이 내리는 등 전국이 비 때문에 소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 나였지만 TV나 선생님의 말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위험하다는 것은 감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아침 학교를 가려던 나는 문가에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도치의 눈길을 외면 할 수 없었다. 그 눈은 마치 나도 데려가줘...무서워..라고 말하는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학교에 있을 때 마다 집에서 도치를 봐주시던 어머니마저 일이 생겨 집에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의 걱정은 더 했다.천둥은 치고 바람은 불고 그리고 텅 빈 집안에 혼자 있을 우리 도치를 생각하니 도저히 혼자 두고 갈수가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도치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도치야~~우리 학교 같이 가자~>
<왕!!왕!!>
지도 역시 좋다는 듯 대답하는 도치를 데리고 나는 그렇게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의 도치의 인기는 대단했다. 원체 털이 하얗고 큰 눈을 가져 귀여움이 넘치던 도치였기에 아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것은 순식 간 이었다. 심지어는 여기저기서 서로 도치를 안아 보겠다고 달려 들다가 넘어진 아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평생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도치야~ 오늘 재미었지?? 담에도 또 학교에 가자~~>
<왕!!왕!!>
또 다시 좋다며 도치가 왕왕거려 왔다. 그렇게 내 말에 반응하고 나를 따르는 도치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조그만 나이였지만 지금 이순간이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어느새 횡단보도 앞에 다다른 우리는 천천히 신호를 기다렸다.
<어..비 오네..도치야 잠깐...아빠가 우산 씌워줄게 여기 잠깐만 있어>
안고 있던 도치를 땅에 내려놓은 나는 우산을 꺼내기 위해 가방 문을 열었다. 가방 문이 어딘가 열려 있었던 걸까? 가방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지며 또르르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하지만 우산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리던 나는 그 무언가를 미쳐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줍기 위해 따라가는 도치도...
<여다!! 도치야 아빠랑 우산 쓰자...도치야??>
사라진 도치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나는 이내 횡단보도에 서있는 도치를 발견했다. 언제 물었는지 조그마한 입엔 동그란 구슬이 하나 물려져 있었다.
<도치야...일루..>
퍽!!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순식간에 눈앞으로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그 바람에 잡고 있던 우산이 날라 가 저 멀리 떨어져 갔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내 귀에 들어 왔다.
<도치야...>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트럭이 지나간 그 자리에 도치는 없었다. 핏물과 내장에 뒤섞여 이상한 색을 나타내고 있는 털과 잔뜩 짜부라져 버린 살집이 도치가 있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 내가 사랑하는 도치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헛구역질 하는 소리와 어떻게 된 일인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도치야..어딨어..일루와...집에 가야지..>
역시...대답은..없었다...내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 짖던 녀석인데..
또르르 소리를 내며 발 밑으로 구슬 하나가 굴러와 닿았다. 저번에 동네 꼬마에게 땄던 초록색의 고운 구슬이.. 영롱한 색깔이 보석 같아 맨날 가방에 넣어 가지고 넣어다니며 도치에게 자랑했던 구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군데군데 살점으로 보이는 것이 붙어있어 처음 봤을 때의 영롱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그 구슬을 집었다. 자그마한 손에 미끌미끌하고 끈적한 핏물과 살점 같은 것이 묻어 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진 것 마냥..
언제 내리기 시작했는지 내 몸 위로 촉촉이 빗물이 흘러 내린다. 빗물은 내 몸을 적시고 땅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시고 바닥에 흐른 핏물을 적셔갔다. 그렇게 모든 흔적을 쓸어내리듯 천천히 모든 것을 적셔갔다.
<도...치야...>
그렇게 나는 도치와 헤어졌다.
왜 갑자기 생각이 난건지 모르겠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눈물이 왜 나는 거지?? 아직도 슬픈건가??
<뭐야 이 자식.. 울고있네... 꿈 속에서 차이기라도 했나??>
슬픈 감성을 느낄 시간도 기다려 주지 않고 내 귓가를 타고 낯설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래를 한 움큼 씹고 말을 한다면 이런 목소리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거칠고 걸걸한 목소리에 나는 조금씩 정신을 차려갔다.
순간 푸우~~하고 뭔가 분사되는 소리와 함께 내 얼굴 위로 단번에 기분 나쁜 물기가 내려앉아왔다. 없던 정신도 번쩍 들 만큼 낯선 그 감촉에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려던 정신에 가속도를 붙이며 감은 눈을 뜨고 황급히 몸을 일으켜 갔다.
뭐,,,뭐야..
얼굴 전체에 묻어 버린 기분 나쁜 물기를 닦아내며 이내 완전히 정신을 차려가자 너무나도 익숙한 냄새가 코 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물은 아니다..물은 냄새가 없는 무색 무취의 액체라는 건 초등학교만 제대로 이수해도 다 알수 있는 사실이니까..뭐지??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싸하고 머리가 핑도는 게 혀가 저절로 꼬부라질 것 같은 이 냄새는?? 어딘가 익숙한 냄새... 술이다.. 그것도 소주..
누가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 얼굴에 소주를 뿌린거냐!! 가뜩이나 요즘 부쩍 피곤한 일이 많아서 피부에 트러블 생겨서 짜증나죽겠는데.. 나 같은 평범한 얼굴에는 여드름 하나도 독이 될 수 있단 말이다.
<내가 뿌렸다..기절한 사람 깨우는데는 이게 직빵이거든..>
아까 잠결에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십년 묵은 가래라도 낀 것 마냥 걸걸한 목소리에 궁금증이 일러 주위를 둘러보지만 텅 빈 공간에 보이는 거라곤 내 몸뚱이와 내 팔 근처에서 나를 바라 보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 정도가 전부였다. 가만...강아지?? 이상한 생각에 나는 그 강아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한손엔 자기 얼굴 만 한 소주병을 다른 한손엔 할아버지들이 쓰는 곰방대처럼 보이는 작대기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 강아지는 포부도 당당하게 두발로(?) 서있었다. 약간 삐딱하게 서있는 듯 한 포즈가 너무 자연스러워 나는 옛날에 배웠던 포유류의 특징들에 대해서 잠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상식은 있는 나다. 내 짧은 지식 안에서도 강아지는 포유류였지 두발로 설수 있는 영장류는 아니었다..그런데도 분명히 저 강아지는 자신의 근본도 모른 채 두발로 당당히 서 있었다..그리고 저 익숙한 모습...
크고 동그란 눈 가득 검은 눈동자가 차 있고 하얀 털이 솜처럼 복실거리는 게 영락없이 우리 도치랑 꼭 닮은 강아지다. 하지만 달랐다. 풍겨오는 분위기도 달랐고 전체적인 이미지도 달랐다. 술이라도 취한 듯 초점 없는 눈동자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음침함이 느껴지는 저 얼굴..
분명 저건 도치가 아니었다. 아까 그 강아지다. 아까 차 앞에서 병신같이 서 있다가 내가 구해주려고 하니까 지만 쏙 빠져버린 치사한 강아지. 덕분에 나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이상한 곳에서 깨어나 버렸고.. 암튼 더럽게 재수 없고 짜증나는 강아..악!!
갑작스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 좌측 상단을 강타하는 강한 통증에 나는 머리를 쥐어 싸며 신음했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뭐 병신?? 더럽고 재수없어??
기껏 어린 목숨 불쌍해서 살려줬더니 뭐?? 치사해?? 이거 아주 웃긴 놈 아냐??>
말을... 했어?? 방금 머리를 맞은 아픔도 잊은 채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눈앞의 강아지를 바라봤다.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 눈앞의 강아지는 여느 다른 개들처럼 왈왈이나 멍멍으로 이루어진 의미 불명의 의성어가 아니라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는 언어체계로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배우기 힘들다는 한국말로.. 뭐가 그리 열 받는지 보이지도 않는 짧은 목에 핏대 까지 세우며 말이다.
뭐지?? 유전자 조작인가?? 아님 내가 강아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됐나? 사고의 후유증으로??
<조작은 무슨 조작이야.. 그리고 니가 동물에 왕 타잔이냐 동물 말을 알아듣게..>
<그럼 어떻게??>
<이 몸이 말을 할 줄 아니까 니가 듣는거지..내가 말을 탈줄 알아서 이렇게 너랑 대화 하겠냐??>
더럽게 재미없는 개그다...말 배우면서 개그는 못 배웠나 보다. 그나저나..여긴 어디지?? 나는 분명히 차에 치었는데... 혹시 천국인가?? 그럼 말이 된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천국에는 말하는 강아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그럼 난 죽은 건가??
<천국은 술 이름이 천국이고..너 안 죽었어..그냥 잠깐 기절했을 뿐이야..여기는 니 정신세계고..>
다시 한번 나의 머릿속 의문에 강아지가 정확한 한국말로 심드렁하게 대답을 해왔다. 분명히 속으로 말했는데.. 아까도 그렇고...이 강아지 독심술도 쓰나??
<독심술은 하급 인간들이나 쓰는 기술이고, 이 몸은 그딴 거 안 써. 여기는 니 정신 세계야.
좀 전에 말한 대로 기절한 니 머릿속으로 내가 들어온거고.. 쉽게 말하자면 지금 너랑 나랑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지.. 니 머릿속에서.. 그래서 당연 니가 입으로 소리를 내서 말을 하지 않아도 나에게 전달되는 거지..>
이건 또 무슨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냐?? 내 머릿속을 들락날락 거리고 생각을 공유한다니..텔레파시 같은 건가? 도대체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 소리만 하고 있다. 이 다음에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서 나에게 마력을 전해주며 너는 이 세계를 구할 용자다!! 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아...인간들은 이래서 싫어 상식 밖을 벗어 나기만 하면 지들 관점에 맞춰서 되지도 않는 짱돌을 억지로 굴러가며 이해 할려고 한단 말야.. 주제도 모르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마.. 나까지 머리 아퍼..그냥 간단하게 니 머리 속에 너하고 나하고 같이 있다고 이해해..그럼 돼..>
정말 말하는 강아지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들고 두서없는 설명이다. 역시 강아지는 강아지인가 보다. 설명을 못하고 있는 거 보니.. 설명하고 있는 강아지마저 이내 귀찮다는 듯 짧은 앞발을 내젓자 나 역시도 그 말에 따라 잠시 궁금증을 접기로 했다. 그 말대로다. 내 상식 밖의 일이다. 상식 밖의 일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치부 하고 말일이다. 애써 캐내고 궁금해 해봤자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시람들이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전생이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수십년을 토론해왔지만 명확히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의 지식에는 사람이 이해 할 수 있는 한계범위가 있다. 사람들은 그 범위 내의 일들을 상식이라고 하고 그 밖에 일들을 비상식 혹은 미스테리라고 부른다. 아무리 지금 용쓰며 알려고 해봤자 알 수 없는 게 있다는 거다. 알게 될 거라면 언젠가 자연히 알게 된다. 그때까진 그냥 렛 잇 비 하 는게 젤 속편한 일이다. 그리고 난 그런 쪽에 포기가 빠른 편이다. 되지도 않는 일에 온 신경을 쓸 만큼 난 한가한 놈이 아니니까..그럴 주변머리도 없고..
<여기가 내 정신세계라고요?? 그럼 전 아직 죽은게 아닌건가요??>
어느새 나의 말투는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다. 두발로 서서 곰방대를 휘두르는 강아지. 가히 정상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쉽게 대할 수는 없었다. 잘못 화나게 해서 나에게 파이어 볼이라도 날리면...하하..이건 아니다.. 판타지를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그래..그렇다니까.. 쇼크를 받아서 잠깐 기절한 것 뿐이야..>
<분명 차에 치었는데..날라가는 느낌까지 났는데..>
<차에 치이기 전에 내가 니 몸에 쉴드를 쳐놨거든..약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불구가 되거나 하진 않을 꺼야..그냥 가벼운 찰과상정도??>
쉴드?? 그건 무슨 마법인가??
<몰라...그냥 그러려니 해..그리고 머릿속으로 떠들지마..나까지 머리 아프니까..>
그만하라는 듯 강아지가 손에든 곰방대를 이리저리 흔들어 왔다. 그래...뭔지 모르지만 일단 목숨은 건졌나 보다. 얘기를 들어보니 다친 데도 없는 것 같고..
그건 그렇고 여기는 왜 이래?? 바닥에 뭐가 이렇게 너저분하게 깔려 있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나이도 얼마 안 쳐 먹은 학생 놈이 머릿 속에 들어 있는게 온통 빨래 거리뿐이냐... 니 네 집 세탁소하냐??>
발밑에 차이는 분홍 원피스를 툭툭 걷어차며 강아지가 한심하다는 듯 물어 왔다.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갖가지 종루의 옷가지들이 난지도의 쓰레기처럼 뒤섞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가 내 머릿속이라고?? 이 너저분한 빨래만 가득한 이 공간이??
가슴이... 아파온다.. 강혁아 강혁아 꿈많은 소년이 었던 강혁아!! 어린시절 드룹나무 밑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던 그 마음속의 맹세는 어디로 가버리고 머릿속에 냄새나는 빨래거리만 잔뜩 쌓여있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거니.. 아~ 꿈 많은 소년 강혁아..너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야...
<지랄스럽게도 지랄한다...>
이젠 아주 강아지한테까지 무시를 받는 구나..불쌍한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만물의 영장으로서 창피하기 그지없는 순간이다.
<그건 그렇고...이건 뭐냐??>
발 밑에 쌓인 빨래 더미에서 무언가 발견 한 듯 강아지가 한손에 쥔 곰방대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금색으로 된 쇠 막대기의 끝에는 낚시대에 고기가 걸린 것 마냥 작고 검은 천조가리 하나가 대롱 대롱 매달려 있었다. 저건 뭐지??
<뭐긴 뭐야..여자 팬티지...>
팬티?? 강아지의 말대로 분명히 팬티였다. 보기만 해도 묘한 상상을 뭉클뭉클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꽤나 섹시한 느낌의 검은색 여자 팬티. 여자 속옷만 모으는 수집가가 보면 당장이라도 엄청난 돈을 내놓으며 사갈만한 야릇함을 풍기는 싱싱한 느낌의 속옷이었다. 근데 저게 왜 여기 있지??
<그걸 내가 아냐?? 니 머릿속이니까 니가 알지??>
당연한 걸 뭘 물어 보냐는 듯 대꾸하는 강아지의 말에도 나는 도통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그 묘한 물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너...혹시 변태냐??>
<무..무슨 소리예요!!>
나는 청결 무수한 순수 그 자체의 남자란 말이다!!당연히 동정에다 아직 키스 한번 못해본 그런 순수 그 자체라고!!
<그럼 이건 뭐야..여기 이렇게 증거가 버젓이 있는데??>
강아지가 보란 듯이 곰방대에 걸린 팬티를 내 코앞에 디밀어 왔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잠깐 저 팬티 많이 익숙한 느낌이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질의 실크원단. 거기에 어른스러운 성숙함과 섹시함을 풍기는 디자인...
저건..우리 한 여사 팬티다. 아침에 봤던 그 팬티. 아마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었나 보다. 젠장..그러게 옷 좀 입고 다니라니까...
<그게..그러니까 거기에는 사정이..>
<됐다..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된다..누구에게나 사정이란 있는 법이니까..>
이해해 주는 건가?? 의외로 대인배 강아지다.
<그래..니 나이 때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이해하고 있다. 내가 아주 원치 않던 방향으로...그런 식의 이해는 사양인데...
<나 역시도 철없을 나이였을 때는 너처럼 그런 생각에 빠졌었지..가터벨트 망사 스타킹 티팬티 등등등 특히 방금 입은 싱싱한 미녀의 팬티를 구했을 때의 그 짜릿함과 기쁨이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지..>
정말 인 것 같다. 강아지라는 동물이 표정을 자유자재로 지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강아지의 얼굴에는 그때의 희열이 그대로 떠오르는 듯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어딘지 위험하다..저 강아지..
<흠흠..너무 쓸데 없는 얘길 많이 했군..아무튼 너의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그러니까 그런 이해는 필요 없다고..그리고 그건 왜 뒤로 가져가는 건데??
<원래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지..>
그게 나눌 수는 있는 거냐?? 팬티가 세포분열이라도 해?? 내보기엔 그냥 자기 콜렉션에 추가하려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아까부터 느낀 건데 상당이 말이 짧다.. 글 배울 때 존칭이라는 개념은 저 멀리 개밥그릇에 말아먹고 오셨나 보다..도대체 정체가 뭐야??
<훗...내 정체가 그리도 궁금한가?? 그렇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
역시 이번에도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대답해온다. 아까 한말이 맞긴 맞나보다. 근데 저건 뭐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 한 익숙한 자기 소개는..
<이 세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진실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천계의 미남자~~ 라티엘 님이 이 몸이시다. 하하하~~>
너무나 익숙한 대사와 익숙한 몸짓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저 30센치도 안 되는 짧은 앞다리를 이리저리 연신 움직여대는 강아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저 동작은 우리나라 대표 조각미남 장동건이 해도 우스울 것 같다. 저런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이라니...저게 아마 그거였지??
<포켓단??>
순간 다시 한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아야만 했다. 아씨..맞은데 또 맞았다..졸라 아프다..
<이 자식아 천사라니까 천사!! 그리고 이 대사는 몇 백년 전부터 내가 쓰던 유행어야!! 어떤 인간 자식이 따라서 했는지 몰라도 내가 원조라고 원조!! 천계에 특허까지 낸 상태라고 알아들어?>
저런 꿈에 나올까봐 두려운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특허까지 내준 기관의 행정상태가 심히 의심스럽다. 무슨 비리가 있었을 거다..안 그렇고 서야 저런 이상한 짓에 특허 따위를 내줄 리가 없잖아..
이제는 입에 침까지 튀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그 자칭 천사 강아지는 자기가 천사라는 사실을 인정 안한 것 보다는 자기의 유행어가 도용 됐다는 사실이 못내 기분 나쁜 듯 검은 개코를 벌렁 거리며 연신 씩씩 거려 왔다.
<아이고..아파....말이 안 되잖아요...천사라니...그것도 모잘라서 강아지가?? 왜?? 거기는 인력난에 허덕인답니까?? 강아지까지 천사가 되게??>
천사들이 모두 총 파업 중인가 보다..저런 강아지 까지 데려다 쓰는 거 보니..
<누군 강아지가 좋아서 됐는 줄 알아?? 아..그때 사고만 안쳤어도...아무튼 그건 이쪽이 사정이 있어서 그래...뭐 그런 것 까진 알려 줄 이유는 없고 그냥 그렇게 믿어.알았어??>
<그래두...말이...알았어요...믿어요..믿어..>
내 머리를 향해 천천히 곰방대를 겨눠 오는 강아지 아니 천사 강아지의 모습에 나는 말을 바꾸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곰방대 몇 대 맞아 봤는데 장난이 아니다...앞대가리에 붙어있는 쇠가 머리에 부딪힐 때마다 오는 충격 때문에 머릿속의 뇌수가 흔들리는 게 아닌 가 하고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게 진짜 말 그대로 골 때린다는 말의 뜻을 여실하게 몸으로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래.. 너 정신도 차렸으니까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 도대체 차도엔 왜 뛰어든 거야??세상 살기가 힘들던?? 하긴 니 지금 하는 꼴을 보니 좀 힘들긴 하겠더라..그래두 열심히 힘내서 살아야지..자살하면 쓰나..응?? 자살하면 너 지옥 간다..지옥에 있는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자칭 천사강아지가 곰방대로 왼쪽 어깨를 톡톡 치며 건들거리는 자세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 천사들은 지역 일진으로 뽑나보다. 제대로 양아치 포스다. 그건 그렇고 자살이라니?? 하나님도 감복할 만한 나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자살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자..자살이라니...난 그저 그쪽을 구해줄려고..>
<나 건너간 거 안보였냐?? 니 두 눈깔은 장식품이냐??>
눈깔이라...단어 참 맛깔스럽다...
<아..진짜 그쪽이 멍청하게..아니 다소곳이 거기 서있었잖아요...그래서 내가 치일까봐 걱정되서 구해줄라고 뛰어든걸 가지고 뭐??자살?? 하!!진짜 억울해서 말이 다 안나오네..>
<너 같으면 믿겠냐?? 강아지 하나 구하겠다고 차도에 들었다고 하면??>
솔직히 나 같아도 안 믿겠다. 강아지 하나 구하겠다고 목숨 걸었다고 하면.. 내가 했지만 좀 바보 같은 짓이었기도 했고.. 그래도 왠지 좀 억울하다. 이대로 나의 숭고한 희생이 짓 밟히는건..
<씨이...됐어요!! 됐어!! 믿기 싫으면 믿지 마요!! 무슨 놈의 천사가 사람 말을 안 믿어!!
천사의 덕목이 뭐야?? 믿음, 사랑, 우정, 뭐 그런 거 아냐?? 이건 뭐 천사가 착한 사람 의심이나 하면 서 자살이나 하는 미친놈으로 만들고..>
나의 격한 반응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이내 강아지가 나를 달래듯 짧은 앞발을 까닥거리며 진정시켜 왔다.
<알았어.. 알았어.. 믿어줄게!!>
<됐거든요??>
<믿어준다니까...>
<괜찮거든요??>
<믿어 준다고 했다...>
<일 없거든요??>
다시 한번 팍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로 느껴지는 충격에 나는 앞머리를 문지르며 허리를 숙였다. 씨파.. 아까 부딪힌데 맞은 것 같다...열라 아프다.. 혹 터지는 거 아냐?? 그냥 중간에서 멈출걸..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하다보니 그만...
<이 새끼가 정도를 몰라...어른이 이만큼 했으면 알아서 받들어야지... 하여간 매를 벌어요 벌어..>
<아이고..아파..무슨 천사가 이렇게 폭력적이에요??거기다 입도 거칠고, 또 술까지 마셔??
지금 이러는 거 근무태만 아니에요??>
공무원으로 치면 감봉도 모자라 바로 모가지 감이다. 어서 빨리 감사가 나와야 할 텐데...
<내가 뭐!! 짜식아.. 니가 인간세계에서 백년 넘게 강아지로 한번 살아봐...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세상 살기 얼마나 힘든데.. 이 술이라도 없었으면 나 벌써 자살해서 지옥 갔을거다..>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운 듯 손에는 자칭 강아지 천사는 소주병을 나발로 불며 한숨을 내쉬어 갔다. 그림 참 언발란스 하다...천사라는 하는 사람...아니 강아지가 자살 운운하며 지옥 갈 생각을 하다니.. 하나하나 어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전혀 다른 부조화의 극치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보는 내가 머리가 아프다.
<그래, 날 구할려고 흑!! 차도로 뛰어들었다고?? 그럼 보답을 해야지..자고로 모름지기 천사란 흑!! 착한 어린이에게는 축복을 내려주거든..흑!! 그래 말해 보아라.. 이 천계의 미남자 라티엘님이 흑!! 뭐든 들어주마...>
이젠 딸꾹질 까지 한다. 거기에 짧은 다리로 이리저리 비틀 거리기 까지 하는 것이 그냥 가관이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내 생각이 들린다고 했지..조심하자..또 맞긴 싫으니까. 그나저나 이 대화 방법 진짜 짜증난다..
<뭐해??흑...어서 말하라니까...>
믿을 수 있는 거야?? 당신??
<이게.. 내가 이래뵈도 4천사 중 한분인 가브리엘님의 수석 제자라고...믿어도 돼..>
가브리엘??...아...들어본 것 같은데....뭐...그건 됐고...소원이라...뭘 빌지?? 잘생긴 외모를 달라고 할까?? 아님...엄청난 돈?? 비상한 머리?? 엄청난 권력?? 예쁜 여자나 한타스 내려 달라고 할까??
<야...하나씩 말해...가뜩이나 숙취 때문에 어지러워 죽겠는데...>
천사도 숙취가 있다는 믿지 못할 사실이 그닥 신기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이미 천사에 대한 내가 가진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을 쳐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이젠 천사도 주정을 부린다는 말도 믿겠다...아직 순진한 나인데..벌써부터 이런 안 좋은 것들을 알아버리다니...한숨만 나온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뭘 빌지?? 순간 내 머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소원이 있었다.
<결정했어요...내 소원은 바로...>
<안돼.>
<네! 안돼.. 엥??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들린다고 했잖아..니 생각이...그건 안돼>
<왜 안돼요?? 뭐든 다 된다면서요??>
<내가 드래곤 볼의 용신이냐?? 죽은 사람을 살려내게?? 그건 내 권한 밖에 일이야..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려면 하나님의 권능을 빌려야 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도...>
<글쎄! 딴 소원 빌어.>
그렇다..내가 빌려던 소원은 부모님이 돌아오시는 것 말하자면 부활 하시는 것. 딱히 그렇게 큰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막상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당하니 아쉽긴 하다. 어쩔 수 없지..권한 밖의 일이라는데..
<그럼 잠깐이라도 못 봐요??>
솔직히 아까 차에 부딪혀 죽는 줄 알았을 때도 영화에서처럼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닌 가 내심 기대도 했었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부모님이 그리운 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니까..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자그마한 기대를 걸며 물었다.
<음...아마 힘들거다... 그렇게 할려면 사계에 있는 너의 부모님 영혼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아마 지금쯤은 영혼이 전생의 껍질을 벗고 다음 생을 준비하고 있을꺼야. 그 상황에서는 자칫 잘못 건들면 영혼의 그릇이 완전히 깨져버려서 다시는 환생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웬만하면 안 건드리는게 좋아..운이 좋아 니네 부모님들이 천계에 있는 천국을 가셨다고 해도 내가 지금 천계로 들어갈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좀 힘들다.. 지옥은 말할 필요도 없구..>
말이 너무 길고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안 된다는 것만은 알겠다. 역시 이것도 힘든가?? 어쩔 수 없지 뭐...
<의외로 포기가 빠르다?? 보통은 울며 불며 매달리는데..>
<제가 원래 이런 쪽으론 좀 그래요..안되는 일을 질질 끌만큼 미련하진 않거든요..>
<그래..좋은 자세다...그래야 오래 살지..그럼 다른 소원을 말해봐.>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진 나는 이내 바로 입을 열어 갔다.
<얼굴을 좀 바꿔주세요. 제가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서 인기가 그렇게 많이 없거든요..>
그렇게 못난 얼굴은 아니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 잘 생긴게 좋다고 나도 미남소리 한번 듣고서 여자 애들한테 인기 한번 얻어 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남자로서의 욕심이라고 할까??
<보아하니...좀 살기 힘들긴 하겠다. 옛날 내 얼굴에 비하면 요즘 말로 브레드피트에 옥동자 얼굴을 놓고 비교 하는 거랑 같은 수준이겠는데..>
순간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참은 나는 다시금 마음을 가라 앉혔다. 그래..일단 빌자.. 소원 들어준다는 데 이 정도는 참아야지..
<그니까 바꿔 주실수 있죠??>
<음...이것도 힘들겠다..견적이 너무 많이 나와...그냥 생긴대로 살아..부모님이 주신 신성한 얼굴 맘대로 고치면 쓰나.. 이 나라 옛말에 그런 말도 있잖냐..身體髮膚는 受之父母하니 敢毁傷이 孝之始也요라 우리의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아무리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그런 불효를 저지르면 안되지.. 그 꼴은 내가 못 본다.>
천사들이 유교사상도 따르나?? 갑자기 한자는 왜 나오는지 의아함에 갸웃 거렸지만 막상 들어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이내 마음을 접어갔다.
<그럼 돈이나 많이 벌게 해주세요..그 톨스토이 소설 보면 바보 이반이 악마한테 나뭇잎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받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한테도 돈을 만드는 능력을 주세요>
<그것도 안되겠다...돈 많아봐야 돈 없는 사람 핍박이나 하고..평생 탱자탱자 놀면서 흥청망청 망나니처럼 살거 아냐.. 니네 부모님이 그꼴을 보시면 얼마나 통탄해 하시겠냐.. 그 꼴도 나는 못보겠다..그냥 니 힘으로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살아..>
뭔가 좀 이상하다..이거..
<그럼..돈 많이 벌수 있는 비상한 두뇌를 주시던가요.. 아인슈타인이나 제갈 공명이 울고 갈 그런 두뇌요..>
<머리 좋아서 어따 쓸라고..잔머리만 굴리면서 사기나 치지..여기 저기 봐봐...하다못해 이 나라만 봐도 머리 좋은 놈들 다 높은 자리 올라가서 그 좋은 머리 악용해 가지고 지 배만 채우면서 사기치고 다니잖아..너두 그럴래?? 그 꼴 보면 참 좋아 하시겠다...니네 부모님이..>
<아니..안 그러면 되지..그리고 왜 자꾸 부모님은 거들먹 거려요...기분나쁘게.. 그럼 오래오래 살게만 해주세요.>
<왜?? 너 평생 벽에 똥칠하면서 살고 싶어?? 오래 살아서 뭐해?? 내가 살아 봐서 아는데 좋을거 하나 없어..더러운 꼴만 많이 보고..한탄만 늘고..그냥 적당히 재밌게 살다가 그냥 갈때되면 편안히 가는게 제일 좋아..암..그렇구 말구..>
당신 모습 보니까 왠지 그 말이 이해는 간다. 그래도 그렇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거예요 안 들어주겠다는 거예요??>
<빌어..누가 빌지 말라고 했냐??>
곰방대 끝트머리로 귀를 후비며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강아지의 모습에 나는 약간의 살의를 느꼈다. 내가 개고기를 좋아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기분이라면 100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계속 말했는데 다 안 된다고만 하고 지금 나랑 장난해요??>
<그거야..니가 나쁜 길로 빠질까봐 걱정 되서 하는 말이고..제대로 된 소원 빌어..들어줄께>
<됐어요!! 소원 안 들어줘도 되니까 빨리 집에나 보내줘요!! 여기 있다간 진짜 내가 홧병으로 죽을 것 같아..어이구!!>
<그래?? 싫으면 어쩔수 없고..니가 싫다고 한거다..난 분명히 들어준다고 했어..>
들어만 줬지...말 그대로 들어만...마치 내말을 기다렸다는 듯 반색을 하는 천사 같지도 않은 자칭 천사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천사라고 마냥 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심 뼈져리게 느꼈다. 하긴 저건 처음부터 천사라고 생각도 안 드니..
<그래두 그냥 보내기엔 이 라티엘님의 투철한 사명의식 때문에 맘이 편치 않으니 너에게 선물을 하나 주마..>
그래도 명색이 천사라고 양심은 있나보다. 미안했는지 선물까지 줄려고 하고... 금도끼은도끼에서 도끼를 찾아준 산신령 같은 목소리로 인심이라도 쓰듯 말한 천사 강아지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이리저리 짧은 앞발을 움직여 갔다. 뭘 찾는 거야?? 저 몸에 주머니가 있나??
<찾았다...자 여기..받아라!>
있나보다..몸에 붙은 이라도 털어내듯 몸을 털던 강아지가 이내 등 쪽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어 왔다. 이젠 신기하지도 않다...그래도 보는 사람 입장엔 조금 안 좋아 보이네..
<이게 뭐예요??>
<응..그냥 일종의 보약 같은 거야.. 이래뵈도 이게 천계에서만 나오는 특산물이야. 옛날에 여기 내려올때 나 먹을라고 몇 개 꼬불쳐서 갔고 온 건데 너 주마..>
한마디로 장물이라는 거다. 출처가 심히 의심스럽다. 명색이 천사라는 사람이 이런 불법을 시행하다니 위에 있는 분이 계시면 당장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할지 모를 노릇이다.
강아지에게서 정체불명의 보약을 건네받은 나는 찬찬히 손에 쥔 구슬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맑은 투명한 빛을 머금고 스스로 광택을 내뿜는듯한 구슬은 마치 내 손바닥에서 세상에는 더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아까 보니까 니가 몸이 많이 허한 것 같더라..쉴드까지 쳤는데 그렇게 기절한거 보면..
그래가지고 어디 사내구실 하겠어..그거 먹고 몸 보신 좀 해..>
하긴 요즘에 몸이 많이 허해지긴 한 것 같긴 하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 거기다 주부 습진까지...돌도 씹어 먹을 팔팔한 나이의 고2가 이런 잔병이라니..한숨만 나온다.
<근데...이거 먹는 거예요??>
<어..그냥 사탕 삼키듯 먹으면 돼>
손에 쥐고 있는 이 구슬의 크기와 내 목구멍의 직경을 비교 해볼 때 도저히 넘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드는데...거기다 이 구슬의 출처를 생각하니까 그나마 약간 있던 식욕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모해?? 안먹구?? 지금 먹어>
<나중에 먹을 께요..>
<그냥 내 눈 앞에서 먹어..니가 맛있게 먹어야 나두 기분 좋지..>
<그냥...나중에..>
<먹으랄때...먹어...>
천천히 강아지가 손에 쥔 곰방대를 들어 올리며 나를 향해 겨눠왔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먹고 죽으나 맞아 죽으나 매 한가지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 옛 속담을 떠올리며 나는 눈 딱 감고 입안으로 뭔지도 모를 보약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순간 입안으로 들어간 보약은 거짓말처럼 미끄덩거리는 느낌으로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넘어가 버렸다.
<어때??>
<음...약간 새콤달콤 한게, 첫맛은 초콜렛처럼 쌉싸름 하다가 끝맛은 달짝지근 한게 얼핏 시원힌 사과맛이 나는 것 같은게...>
<지랄한다...암맛도 안나는거 알아...내가 안 먹어 본줄 알아??>
<진짜예요..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암튼 맛있어요..>
내가 이래 뵈도 요리경력이 5년이 다 되간다. 절대미각!! 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식재료와 조미료 맛은 다 알아 챌 수 있는 나였다. 그런 나에게도 지금 이 맛은 내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오묘한 맛을 갖고 있었다.
<아냐...그럴 리가 없어..잠깐...>
뭔가 잘못 됐는지 그가 갑자기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어갔다.
<너 혹시 그 알약 색깔이..투명한 빛깔의 보석 같은 거였냐??>
<예..막 반짝반짝 빛나는게 마치 햇빛에 비친 수정 같았어요..근데 그건 왜요..>
<안돼...설마..>
강아지도 놀랄 수 있는걸 보여주려는 듯 사색이 된 얼굴을 한 강아지가 자신의 몸을 미친 사람..아니 미친개처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짧은 앞발을 움직이며 이리저리 몸을 터는 모습이 어찌나 필사적이었는지 나는 웃지도 못하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없어..>
<뭐가요??>
<그게 없어...>
<그니까 뭐가요??>
<안돼...이럴 순 없어...>
<왜요??무슨 일인데요??>
<이제 형벌도 얼마 남지 않아서 몇 달만 참으면 돌아갈수 있는데..이럴순 없어..>
<그니까 왜 그러는데요??>
<난 이제..끝났어..하하..난 이제 끝났다고..>
최종부도 선고를 맞은 중소기업 사장님처럼 자리에 주저앉은 강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한숨만 푹푹 내쉬어 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 맞고 궁상맞던지 나는 말도 붙이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하하!!이렇게 끝나는 구나 이 천계의 미남아 라티엘이 이렇게 똥개 신세로 긴 생을 마감하는구나..하하하!!>
진짜로 미쳤나보다. 미친개는 피하는 게 상책인데 집에 가는 방법을 모르니 그냥 갈수 도 없고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이다.
쿵쿵쿵...
이젠 바닥에 머리까지 찧는다. 그래서 죽겠냐?? 더 세게 박아야지..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보다...
쿵!!쿵!!쿵!!
내 말이 들렸는지 이내 천사 강아지는 속도를 높혀 가며 미친 듯이 머리를 바닥에 쳐 박아 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섬뜩하든지 잠깐 소름까지 돋아갔다. 저러다 진짜 죽겠다..죽을라면 나나 보네주고 죽지...집에 가야 되는데...안되겠다 우선 말려야겠다...
<저..저기요..무슨 일이지 모르지만 진정 하세요..힘들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힘내야죠..>
<저리 가 난 이제 끝났어...끝났다고!!>
쿵쿵쿵..
말리는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금 박아대기 시작하는 강아지는 이제 박는 것도 모잘라 한번씩 이마를 짓이기는 센스까지 발휘해 갔다..독한 자식이다...
<저기요..잠깐 진정하시고 저랑 얘기 좀 하세요. 그러면 한결 맘이 편해 지실거예요. 제가 정신상담 전문 자격증이 있거든요. 그러니까..잠깐 얘기 좀 해요..>
물론 뻥이다. 내 나이 아직 고등학생인데 그런게 있을 턱이 없다. 남들 다있는 워드 자격증도 없는데..하지만 이런 내 얘기가 먹혔는지 동작을 멈춘 강아지는 땅에 박힌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갔다. 아까 머리를 찧을 때 이마가 깨졌는지 하얗고 복슬복슬한 느낌의 머리에서는 피로 흥건하게 젖어 보기만 해도 섬뜩한 모습을 풍기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죽어라 박아댔는데.. 지가 박치기 왕 김일도 아니고..멀쩡할 턱이 있나.. 근데 무섭다.. 무슨 호러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우...우선...피부터 닦으시고 차근 차근 얘기를..>
<뱉어>
<엥??>
<뱉으라고..>
<뭘..요??>
언제 일어났는지 강아지가 짧은 두 다리로 나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만한 징그러운 몰골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강아지의 모습에 압도된 나는 나도 모르게 다가오는 그 걸음에 맞춰 조금씩 뒷걸음질 쳐갔다.
<아까..니가..먹은 그거...뱉.으.라.고>
<아니..이미 먹은걸.. 어떡해 뱉어요...>
<못 뱉겠다 이거지..>
<아니.. 못 뱉겠다는게 아니라...뱉을 수 없다는 거죠..>
<그게 그 소리지..>
<아니..그게......그 소리네요...그래두...>
<알았어..뱉게 해주께...>
<아니..어떡해....윽!!>
어디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강아지가 갑자기 튕기듯 뛰어올라 몸을 날려 오자 나는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간신히 허리를 숙여 피해갔다,
<갑자기 뭐예요!!>
<어쭈...피했어??>
당신 꼴을 봐라!! 안 피하고 배기나!!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비장하게 다시 일어선 강아지는 귀여운 두 눈 가득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살기를 번뜩이며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 모습이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굶주린 사자 같아 나도 모르게 목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켜갔다.
<대화 하자 면서..이리와...>
<아뇨..생각해보니까 혼자 냅두는게 낫겠어요..그런 때 있잖아요.. 혼자만 있고 싶을때..
지금 그쪽이 그런 상태같아요.. 전 그냥 여기 있을께요..>
<그래?? 그럼..내가....갈께!!!>
당찬 기합소리와 함께 지 근본도 모르고 토끼처럼 뛰어오른 그는 이번엔 내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어...잠..잠깐..앗..>
운이 좋았던 것일까?? 뒷걸음질 치던 나는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빨래에 걸려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번개 같은 그의 공격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잡았다..>
언제 올라 왔는지 내가 미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도 전에 내 몸 위로 올라탄 강아지는 천천히 앞발을 내밀며 내 목을 졸라왔다.
<켁..켁..>
뭔 개새끼 악력이 이렇게 쎄냐...숨을 못 쉬겠다...윽....
<저...기...켁...말로 하세요....천...천사가..켁...이럼 안되..잖아....켁...요..>
간신히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내며 마지막 회유 작업에 들어가는 나였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발에 힘을 더 쏟으며 내 목을 강하게 압박할 뿐이었다.
<그래...난 천사야..근데...그게 널 죽이고 그걸 꺼내야...천사가 될 수 있어...알겠어?? 나도 이러고 싶진 않은데.. 어쩔수 없다..이해 해라..>
숨쉬기가 더욱 힘들어 지면서 조금씩 정신이 아득 해진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시야가 조금씩 어두워지는게 이번엔 진짜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왔다. 이럴꺼면 아까 죽게 내버려두지..그땐 적어도 이렇게 힘들 진 않았잖아..그리고 이게 뭐야... 쪽팔리게 강아지한테 목 졸려서 죽었다는거 알면 다들 비웃을꺼 아냐...썅...
<뭐야...이런...썅...시간이 벌서 다 된건가...젠장...좀만 더하면 좀만 더하면 다시 천계로 갈수 있는데...이런 씨...발...>
뭔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 듯 목을 조르던 강아지는 당황하며 분하다는 듯이 욕지거리를 내뱉어 갔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 개새끼 입 정말 더럽다..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라 정말 걸레 문 천사다.. 한국말을 무슨 욕쟁이 할머니한테 배웠나...진짜 내가 나중에 죽어서 천국가면 천사들 원래 이런 건지 확인해 볼 거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졸린 걸까...나도 모르게 눈이 조금씩 감겨 온다. 억지로 떠보려 해도 눈꺼풀에 뭔가 달아놓은 듯 마냥 무겁게만 느껴져 온다. 안되는데.. 집에 가야하는데...
<으아악~~~!!>
<꺄아악~~~!!>
비교적 낮은 옥타브의 테너와 고 옥타브의 소프라노가 화음을 맞추듯 한데 어울러져 비명소리가 울려 퍼져갔다.
<무슨 일이죠??>
갑자기 들려오는 감정 없는 무심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언제 왔는지 침대 근처에 흰 가운을 걸치고 있는 장신의 여인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 한 얼굴로 서있었다. 신고 있는 힐을 감안 하더라도 꽤나 큰 키를 자랑하며 모델 같은 늘씬함을 풍기고 있는 여자는 놀라서 헐떡이고 있는 간호사와는 다르게 더없이 차분하다 못해 무심한 듯 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민 선생님....그..그게...저기...환자를...보고있는데....갑자기 숨을 안 쉬어서...그래서...놀래서...갑자기..확..일어나면서.....비명지르고....그래서..>
많이 놀랐는지 설명에 앞도 뒤도 없다. 오죽하면 옆에서 듣고 있는 내가 답답한 마음이 들어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나 역시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무시한 채 가쁘게 숨만 내쉬어 갔다.
<그게 무슨 말이죠??>
다그치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감정 없는 목소리가 더욱 위압적으로 들리는지 그 말에 더욱 긴장한 듯 간호사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해갔다.
<그...그게..그러니까...저도..잘.....모르겠어요...죄송합니다..>
결국 간호사 자신도 설명하기를 포기 한 듯 주눅 든 얼굴로 고개를 숙여갔다.
<알았어요..그만 나가봐요..>
<네...>
잔뜩 처진 어깨로 힘없이 걸음을 옮기며 간호사가 자리를 떠나자 그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여인이 시선을 내 쪽으로 향했다. 세련되면서 어딘가 날카로워 보이는 검은색 뿔테 안경이 지성 넘치는 이지적인 눈동자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보기에도 최고의 엘리트!!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괜찮아요??>
침대 맡에 놓여 진 의자에 앉으며 그녀가 높낮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네..저...물...물 좀 주시겠어요..>
<여기요.>
언제 준비 했는지 그녀가 나에게 물이 가득 담긴 컵을 내밀어 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처럼 받자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 킨 나는 그러고도 몇 잔을 더 요구해 연거푸 3잔을 마셔갔다. 냉수의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퍼지며 갈증과 함께 가쁜 숨소리를 조금씩 사라지게 해 갔다. 이제야 좀 진정이 된다...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여긴 병원 응급실예요.. 전 여기 의사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걸 어느 주민이 데려와서 상태를 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옆에 앉은 그녀가 마치 외워두었던 대사를 내뱉듯 감정 없는 딱딱한 목소리로 설명해왔다. 병원..인가?? 그럼 그 개새끼는?? 그리고 난 살아 있는 건가??
<저..살아 있는 건가요??>
<살아 있다는 것의 정의가 생물학적으로 심장이 뛰고 뇌가 살아있어 사고 할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거라면 당신은 아직 살아 있어요.>
표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 한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가 또박또박 물음에 답해 왔다. 무심한 표정과 잘 어울려 차갑게만 느껴지는 말투였지만 낮게 깔리는 여자답지 않은 허스키한 목소리는 진지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것이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생기고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살아 있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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