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여행을 찾아서
‘탑 걸즈’와 ‘하이윈디 걸즈’의 녹음 완료 마무리 회식 다음 날의 방과 후. 하늘이와 동행해 병원에 갔고 의사에게 특별히 나빠지거나 좋아진 건 아니란 진단을 받고 나와서 도보로 기획사를 갈 때. 지름길이 되어주는 시장을 거닐고 있었다.
생선의 비린내와 사람들의 흥정과 고함을 쳐 손님을 끌어 모으려는 싸구려 마이크 음성. 어머니 없이 자란 나로서는 상가라고는 마트나 백화점 쇼핑몰이 다였기 때문에 처음엔 몹시 정신없고 번잡스럽게 보이며 비위생적으로 느껴져 꺼려 졌었다. 하지만 하늘이에게 이끌려서 시장에 있는 식당에 가서 소고기 들어간 국에 밥을 말아먹어보기도 하고 떡이나 김밥을 사 먹기도 하고 옷을 사보기도 하면서 시장 특유의 재미를 알아버려서 즐거운 공간이 되어있었다.
“어머니가 이런데 오셔서 장 보셔.”
난 하늘이 어머니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서 물었고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나. 5년 전 까지 할머니 집에 자주 가 있었어. 그래서 할머니랑 자주 왔었어.”
할머니라. 나도 5살 전 까지 할머니가 돌봐주셨다.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막연하게 생각되지만 고맙게도 아직도 생일 선물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진이 할머니는 독일인이라고 했지. 아직 살아계시지.”
“응”
“그럼 편지도 쓰고 그래라. 늙으면 외로움 많이 탄다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려 시더라.”
“보고 싶어.”
“음~~ 가끔. 그 주름지고 마른 손이 그리워. 괜한 잔소리도 그립고.”
“하하. 애기는 할머니 좋아했나 보네.”
“응”
하늘이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어 눈물을 글썽였고 난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오늘 미루고 미뤘던 편지를 쓸 생각을 했다.
오늘 기획사는 한산했다. 어제 과음할 것 같은 사람들은 거의 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연습생도 현역 가수들도 소수만 보였다. 난 털북숭이도 없는 거 아닐까 싶어서 걱정했지만 역시나 그는 자기 자리인 제1녹음실을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는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어색해서 선생님으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응 그래. 하늘이도 왔구나.”
“안녕하세요.”
털북숭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내 몸 상태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 괜찮아요. 병원에서도 별 이상은 없다고 하던걸요. 다만 그 것 때문에 불안해서 그런 거죠. 뭐.”
털북숭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내 고민에 동조해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 일이 세상에 들어날 일은 없을 거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극히 적을 거야. 거기다 성필성씨가 대부분 자료는 파기시켰거든. 경찰 쪽도 자료는 없다고 알고 있어.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극히 일부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걱정할 일은 없다는 이야기다. 만일 그 일이 세상에 들어나려 한다면 내가 내 이름을 걸고 막으마. 나 이렇게 살고 있어도 재산도 많고 인맥도 넓거든.”
“네 감사합니다.”
“네 어머니를 지키진 못했지만 넌 반드시 지켜 보이마.”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엔 굳은 의지와 슬픔 그리고 후회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어머니를 지킬 의무는 없었다. 그저 그러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의무는 아버지에게 있는 거였다. 이렇게 생각하자 다시 한번 아버지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아마 아직도 나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요.”
“오늘 웬만하면 다들 쉬라고 했다. 과음한 사람들이 많았거든.”
털북숭이는 그렇게 말한 후에. 기타를 가져오라고 손짓을 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기타가 새워져 있는 쪽으로 가서 그의 기타와 내 연습용 기타를 가져왔다. 오늘 그는 자신이 먼저 내가 치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곡을 먼저 연주하고 부족한 내 악보 보는 법과 코드 잡는 법을 1시간 동안 봐주고 다음 1시간 동안 연주를 시켜보고 도와주었다. 나의 기타 연주는 코드를 잘못 잡고 현을 잘못 튀기고 해서 중간에 중단되어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 하다가 결국 마지막 한번 완주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완주가 아니라 넘어지고 구르다가 억지로 완주 테이프를 끈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털북숭이는 털사이로 조금보이는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칭찬을 해 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배우는 구나. 감각도 있어. 수진이 보다 낮아.”
그의 말에 하늘이가 기뻐하며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난 믿기지 않았다. 지금 까지 살아오면서 누나이외 사람에게 뭔가를 잘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그가 그저 격려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 표정에서 그런 점을 얽었는지 고개를 흔들며 다시 말해주었다.
“아니. 빈말이 아니다. 너 감각이 있다. 재능이 있어.”
그리고 하늘이도 동조해 주었다.
“나 잘 모르지만 진이 잘 하는 거 같은데.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재능이 있어. 진이 재능 있다고 생각해.”
난 그녀의 말에 환희를 참을 수 없어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응”
“그래 정말이다. 그렇게 좋아.”
“네.”
지금 이 순간 털북숭이가 너무 좋고 고마워서 고개를 푹숙여 버리며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계속 연습해야 한다.”
“네.”
“그리고 아쉽지만 가르쳐 주는 건 여기 까지다. 그러니 이젠 여기 오지 않아도 된다.”
단호하고 상처를 주는 말이지만 그의 말속엔 아쉬움이 묻어났고 나 역시 그 마음과 같았다. 하지만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매달릴 때 약속이 이것이라 때 쓸 수가 없어서 난 풀죽은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풀죽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헤헤. 미안하다. 하지만 가끔 연락은 하고 지내자. 하늘이랑 결혼할지 안할지는 모르지만 만약 결혼한다면 내가 네 둘에게 노래를 하나 선물하마.”
“네. 감사합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나와 하늘이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우려하는 것을 말로 표현한 적이 없었지만. 내가 만약 언론의 표적이 되었다가 누군가 어머니가 격은 참혹했던 일을 세상에 알려버리지 않을까. 심려되었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난 어머니에게 크나큰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이고 다 알려져 버린 더러운 피의 네 존재를 감추고 싶어 해. 자살을 선택할 것이다.
털북숭이가 나를 생각해서 그러는 건지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지만 2달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고 있던 그 생각이 어제 전직 기자란 양반 때문에 다시 들어난 것 같았다. 사실 약속은 했었지만 그 동안 많이 친해지면서 그가 계속 네 기타연주를 봐주고 기획사 출입을 허락할 것 같았기에 나도 어제 그런 일이 있기 전 까지는 이런 마무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척 아쉬웠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감사 했습니다.”
그는 녹음실을 벗어나지 않고 문에 기대어서 복도에 서 있다 다시 인사를 하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슬프고 또 아쉬움이 묻어났다. 난 하늘이 손을 잡은 체 그런 그의 모습을 뒤로 하고 기획사를 천천히 둘러보며 엘리베이터 까지 걸어가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른 채로 생각에 잡혔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 곡이란 것만 알고 악보를 가지고 있을 뿐. 음반을 들어보지 못했다. 집에 있던 건 아버지가 다 없애 버렸고 이모한태 있던 건 캐리가 장난치다 못쓰게 되어서 케이스만 있고. 털북숭이는 이사를 하다가 도둑맞는 바람에 잊어 버렸고 기획사 쪽에도 건물을 새로 짖는 동안 썼던 창고가 불이 나서 음반을 소실 해 버려서 찾으려면 외부에서 찾아야 했다. 하늘이는 인터넷에서 뒤져 보자고 했지만 20년이 넘은 음반을 파는 사람을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아직까지 듣지 못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음성 어떤 음성으로 어떤 감성으로 노래를 불렀는지 너무 궁금했다. 단 순한 호기심이 아닌 혈육에 대한 이끌림이 작용해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난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내려서 건물을 빠져 나올 때 까지 어머니의 음반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하늘이는 말 없는 나를 슬픈 눈으로 올려 볼 뿐이었다. 그러다 내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말이다.
“하늘아! 아버님(어느새 이렇게 부르고 있다.) 우리 어머니 음반 가지고 계시지 않을 까.”
“음. 모르겠어. 물어 볼까.”
“응.”
그녀는 미소 지으며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그 모습에 매료된 난 키스를 하고 싶고 또 하루. 하루가 다르다고 느낄 만큼 아름다워져 가는 그녀의 육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 여자들은 나의 의도를 알아버린다. 늘 그렇듯이. 이는 하늘이도 마찬가지가 아니다. 난처하게도. 그래서 난 한번 씩. 노골적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지금 노골적이 되어버린 난 그녀의 귀에 조용히 말했다.
“하늘아. 하고 싶어. 될까.”
하늘이는 이런 나를 부끄러운 표정이 되어 밀치며 튕겨온다.
“정말.”
하지만 부끄러움 잘 타는 하늘이는 항상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다가가서 손을 잡고 약간 슬픈 표정을 지으며 돌려서 말했다.
“나 오늘 네게 위로 받고 싶어.”
“진이 정말이지.”
그녀는 섹스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남자와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무척 좋아할 뿐이다. 태혁형에게서 들은 거지만. 여자는 35세 쯤 되어야 섹스를 즐기는 몸이 된단다. 하지만 남자는 15세부터 30세 까지 엄청 강하고 그 다음부터는 하양 곡선이라나. 왜 남자와 여자가 다른 나이 때에 가장 강하게 즐기는 몸이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불공평 한 것 같다.
“근데 어디서~”
하늘이는 모텔이나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지 말끝을 흐렸고 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생각나서 지갑을 꺼내서 액수를 확인했고 에러가 발생했음을 알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텔비가 없어. 하늘아 좀 없어.”
여자에게 숙박비를 내게 하는 건 왼지 꺼려져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말인데도 하늘이는 싫은 기색 없이 핑크빛이 감도는 헬로키티 지갑(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유아틱 한)을 꺼내서 확인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없어. 둘이 합하면 안 될까.”
난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지갑에 있는 액수와 내 지갑에 있는 액수를 합해 보았다. 하지만 결론은 어림도 없는 결론뿐이다. 이 돈으론 DVD방도 갈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난 실망감을 느꼈다. 하늘이는 그런 나를 한심한 눈초리로 보다가 입술을 삐죽 내 밀었다.
“바보.”
하지만 4일째 하지 못한 난 섹스가 무척하고 싶었다. 그래서 돈 없이 또는 지금 있는 액수로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머릿속에 떠 올렸다. 일단 누나와 나의 빌라. 하지만 이내 난 고개를 흔들었다. 소라에게 들켜버린 것으로 생겨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하늘인 그 장소에서 하자고 하면 늘 퇴짜를 놓았었다. 그럼 공원이나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장소의 화장실 등. 예전에 누나와 거의 강제로 해봤던 장소이지만 거기는 적어도 불량배들에게는 안전한 장소다. 다른 곳의 화장실이나 공원은 불안해하는 하늘이를 되려가고 싶은 생각이 절대 들지 않았다.
“오늘은 힘들겠네.”
“바보 그런 일로 풀죽지 마.”
“하고 싶은 걸.”
내가 생각해도 하늘이에게 무뢰한 말이다. 몸을 썩은 사이라 해도 예의가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미안. 참지 뭐. 정말 미안.”
그녀는 내가 이렇게 나오면 저 자세로 나온다. 그렇다고 내가 이것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본적은 절대 없고 지금은 그저 그녀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정말. 괜찮아.”
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미심적어 하는 표정이었고 난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손세에를 치며 부인했다.
“아냐.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하늘이가 순간 감적으로 말해왔다. 난 그녀의 변화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참 동안 침묵을 유지 했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쯤에 입을 열었다.
“미안. 나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미안.”
그녀가 왜 이러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이 건 내 책임이다. 누나를 마음속에서 때어 놓을 수 없는 내 탓에 그녀가 불안해하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래서 혹시 내 손을 뿌리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며 손을 내밀어 손을 잡아서 살며시 끌어당겨 기획사 빌딩 외곽에 있는 나무와 벤치가 있는 휴식공간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7시였고 여름이라 아직 밝았지만 공사 관계로 쇼핑몰과 극장가가 문을 닫고 있는 때문인지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그런 곳에 하늘이를 일단 앉게 한 다음.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를 양팔을 맞잡고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왜 그래.”
그녀는 내가 이런 자세로 말하자 울먹일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 난 그녀의 표정 변화를 슬픈 눈으로 보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녀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너무 좋아하지 마. 너무 잘해 주려고 하지 마. 지금 보다 조금 덜 잘해주면 돼. 그 정도면 돼. 그래도 나 하늘이를 좋아해.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옆에 있는 거. 너잖아.”
그녀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알 수가 없다. 난 절대 그녀가 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싫은 말이라도 들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아 말해 줄래. 뭐가 불안한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녀의 입에서 겨우 울먹임이 약간 썩힌 음성이 흘러나왔다.
“내 마음이 가지고 싶어. 오직 나를 봐라봐 주는 마음이 가지고 싶어.”
이 순간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현실의 하늘이 그것도 너무도 가련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가진 하늘이의 모습이 내 시아에 가득히 들어왔다. 그래서 난 나와 합의를 하기 시작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하늘이를 울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누나를 조금 뒤로 밀어 놓는다고.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응~ 그렇게 할게. 하늘이만 봐라봐 줄게. 적어도 그렇게 노력할거야. 약속해.”
내 뒷말은 하늘이가 원하는 말이 아닐 것이지만. 그녀의 진심을 깊게 이해하는 나로서는 철저하게 뻔뻔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이해를 해준 것일까. 하늘이가 나를 끌어 당기며 말해왔다.
“안아 줘.”
난 일어나 그녀 옆자리 앉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체구의 그녀의 어깨를 둘러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여름이라 체온이 부담스러워야 했지만 이상하게 그런 느낌은 없었다. 서로의 체온은 공명하며 마음의 따듯함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마음이 안정되자 다른 생각을 불러왔다.
“하늘아~~”
“읍~~”
하늘이는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 입술과 자신의 입술을 포개게 되었지만 당황하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곧 그녀도 눈을 감으며 호응해 왔고 난 그녀의 팔목을 살며시 잡으며 혀로 혀를 이를 잇몸을 어루만지며 타액을 교환했다.
“음~~ 하~ 하늘아~ 음~”
“음~ 하~ 진아~ 음~”
더 없이 황홀하고 멋진 키스 기교를 그녀는 좋아해서 난 늘 키스 시간을 길게 잡았고 그녀는 긴 키스 후에는 항상 아래가 축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가슴을 만진다.’던가 하는 건 뒤로 미룬다. 또 키스만 할 것 같으면 길게 하지 않았다.
근데 이 장소에서 할 것도 아닌데 오늘은 감정이 고조되어 버려 나도 모르게 그 페이스를 넘어 버렸고 하늘이는 키스가 끝나고 황홀함의 여운이 끝났을 때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나 어떻게 젖어 버렸어. 앙~”
“미안.”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짧은 바지 아래는 어두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엉. 진아.”
“그래. 음~~~”
일단 떠오르는 것이 기획사 의상실과 캐리가 가끔 자고 오는 지애방이다. 의상실은 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데 옷의 양 엄청났었고 지애방에는 하늘이가 입을 만한 속옷도 있을 것이다. 난 일단 전화를 걸어서 털북숭이에게 허락을 얻어낸 다음 울상인 하늘이에게 말했다.
“하늘아 기다리고 있을래.”
“응”
“일 있으면 전화해~”
“응”
하늘이는 애써 웃음 지으며 남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두 다리를 오므렸다.
다시 올라온 기획사는 조금 전 보다 더 조용하고 조명도 많이 꺼져 있으며 냉방도 제한 적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불과 30분 쯤 지났을 건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에 난 잠깐 동안 이상하게 생각할 뿐 별 생각이 없었다.
난 일단 털북숭이가 거의 먹고 자는 녹음실로 가서 인사를 한 다음. 보안을 위해서 외부와 격리된(비상 대피 탈출구는 특별제작 되어 있음.)숙소를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전에 딱 한번 와본 지애 방으로 향했다. 근데 정작 위치는 대충 알겠는데 번호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20호? 22호? 23호? 24호? 이중에 하나인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다고 함부로 열었다가 사람(여자 기숙사 구역이라 여자들만 있음)이 있으면 큰 실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전화를 기를 들었다.
하지만 캐리와 지애는 둘이 어디서 놀고 있는지 전화를 안받았다. 난 그냥 열어 볼까 말까 생각하다가 이번엔 털북숭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아세요. 캐리 방 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미안 모르겠다.”
“하 그럼.”
“아까 연락 받았는데 오늘하고 내일 임시 휴가라고 하더라. 뭔 변덕인지 몰라도 그렇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집에 내려가지 않았을까. 노크 하면서 열어봐. 그러면 되겠지. 너 캐리언이랑 한집에 사니까 그 녀석이 어떤 식으로 방 쓰는지 알거 아냐.”
“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응 그래.”
알겠다고는 했지만 캐리는 숙소에서 잘 지내지 않는다. 과연 내가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22번방을 들어갔을 때. 왼지 캐리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신발은 도두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신발장 옆으로 1개의 캐릭터인형 슬리퍼가 역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으며 쓰레기통은 냄새가 하나도 안 나며 바닥은 빛이 날 것처럼 반질반질하며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작은 액자에도 신발장 위에도 먼지하나 없었다.
“오! 대청소라도 했나.”
캐리언이 조금 개으르긴 해도 이상하게도 스트레스 많이 쌓이면 필요이상으로 청소를 했었고 그런 모습을 몇 번인가 본 나로서는 크게 이상한 것이 아니었기에 난 신발을 벗어서 신발장에 올려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집안 탐험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일보를 시작해서 32인치쯤 되어 보이는 LCD-TV와 3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소파를 확인하고 이곳에는 부엌이 없고 화장실만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런 주제에 소형 냉장고는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전에 들어와 본 기억으론 2층 침대가 있는 방 문 앞에 섰다.
하지만 더 이상 진행 할 수가 없었다. 분명하게 들려오는 성교의 희열에 들떠 헐떡이는 중년 남자의 신음과 천박하기 짝이 없는 과격한 말이 들려왔다.
“앗~ 앗~ 하~ 앗~ 역시 보지는 맛이 죽여줘. 아~ 아~ 네가 날 밀어내려고 해봐야 또 이렇게 만나서 또 내 자지에 박히는 신세일 뿐이잖아. 아~ 앗~”
“이젠 신물이 나. 이번으로 끝내줘. 재발.”
순간 난 미칠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이 방은 분명 캐리와 지애 방이니 저놈이 욕보이고 있는 이는 둘 중에 하나이며 저 말을 들어봐선 상습적이란 말이다. 한마디로 이건 강간인 것이다. 내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하얗게 변했고 의식이 들었을 때 난 부러진 화장대 의자를 들고 있었다.
난 한참동안 내 돌발적인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며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울며 몸을 숨기는 나체의 여자도 머리를 강타당해 기절해 버린 알몸의 남자도 휴지와 콘돔 그리고 먼지하나 없는 입구를 봐선 이해할 수 없는 어지럽게 벗어놓은 옷들도 나에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외부로 끌어 당기도 있었고 곧 난 주변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애써 감추려하지만 겉으로 들어나고 있는 여자의 흐느낌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보였다.
“흐. 흑~~ 으~~ 앙~~ 으~ 흑.”
난 일단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려 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안경은 내 얼굴에서 떨어져 나가있어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저 남자가 누군 인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 겨우겨우 정신을 수습한 난 다가가면 상대방이 두려움을 느낄 까 봐서 가장 알고 싶을 것을 물었다.
“누구야. 캐리, 지애.”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난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어서 다시 물었고 그것에도 대답이 없어서 난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려 했고 그 때 서야 대답이 나왔다.
“장재랑이야. 오지마.”
장재랑이라면 나를 아니꼽게 보던 20세의 연상이다. 난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 짓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접어 버리고 지금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상관 마.”
역시나 쌀쌀한 여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다니 나의 좁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에~ 뭐라고요.”
“상관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아무리 그래도 강간하던 남자가 기절해 있는데 여자를 혼자 두고 간다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적어도 저 남자는 어떻게 해야죠.”
내 말을 듣고 재랑은 흥분해서 목소를 높였다.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여기저기 나 이런 미친놈에게 당했다고 광고라도 하라는 말이야.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뭐가 되. 난 아직 일 그만 두고 싶지 않단 말이야. 응~ 흑. 흑.”
재랑은 목소리를 죽여서 울었고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마음은 지독하게 복잡해져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고 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는 거야, 그냥 모른 척 하고 가 버릴 걸, 처음부터 방을 잘못 들어온 것이 문제 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봐 버린 것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옷부터 입고 부모님에게 가세요.”
“어떻게 하려고.”
“아무것도 안 해요. 일단 이 남자 깨워서 내 보내려고요. 근데 이 남자 우리 기획사 사람인가요.”
“아니 저번 주에 잘렸어.”
“그럼 이렇게 하죠. 이 남자가 기획사 숙소에 침입해서 도둑질을 하다가 물론 누나는 집에 돌아간 상태고요. 도둑질을 하다가 저에게 발각되어서 저를 잡으려다 제가 의자로 기절시킨 걸로 하죠. 이 남자 아마 경찰에 잡혀도 함부로 말 못할 걸요. 장기적인 해결책은 안 되도 단기적으로 해결이 될 걸요.”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라며 손짓을 했다.
“돌아서 있어.”
그녀는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옷들 말고 옷장에서 옷을 꺼낸 다음 침실을 나갔다. 그리고 몇 분 있지 않아서 짧은 청바지와 반짝이가 가득 붙은 티셔츠를 입고 와서 내 안경을 주워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나 내려갈게. 그리고 고마워.”
난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 남자의 옷을 입히고 재랑의 옷들을 침대 아래로 숨기고 쓰레기를 쓰레기통으로 보낸 후에 휴대폰을 들어서 털북숭이 아저씨를 불렀다. 난 아저씨에게 경비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싸우다가 내가 의자로 때렸다는 말 때문에 나를 걱정한 그는 단신으로 올라왔고 나의 무사함을 확인한 그는 그 커다란 손으로 기절한 남자의 뒤통수를 가격하며 이 남자가 어떻게 잘렸는지 말해 주었다.
“미친 놈. 어디라고 들어와선. 허허. 이 놈 또. 도박하다가 돈 떨어졌나. 저 번엔 회사 계좌에 장난을 치더니만. 처자식 있는 놈이 왜 이런지 원. 한심해서.”
“어떻게 하죠.”
난 이 남자가 심하게 맞아서 죽거나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물론 내가 살인자가 된다는 꺼림칙함 때문이지 불쌍해서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털북숭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려주려고 웃음 지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넌 가보 거라. 별거 아냐. 그냥 기절한 거뿐이야. 뒷일은 내가 다 해결하마. 전혀 걱정할거 없다. 아무것도.”
하지만 선 듯 내 발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는 나를 밀면서 말했다.
“어서 어서 가 보거라. 하늘이 기다리잖아. 어서. 가.”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응 그래. 가끔 전화해라.”
“네”
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기획사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1층 도달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기다린 다고 지쳐서 젖은 부위를 누가 볼까봐 자주 주위를 확인하는 하늘이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늦어.”
“미안.”
“근데 옷은.”
“앗~~”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재랑의 속옷을 잡아서 숨길 때도 재랑의 치마를 잡아서 장속에 넣어 버릴 때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서야 겨우 떠 올랐다.
“미안. 다시 올라갔다 올게.”
그렇게 말 했지만 털북숭이에게 미안해서 꺼려졌다.
“아냐. 택시 타고 집에 갈래. 진이가 가려주면 되잖아.”
아쉽기는 하지만 모텔비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물론 아까 흥분 했을 때는 으쓱한 공원이나 화장실에서도 하고 싶은 기분 이었지만.) 그래서 그녀의 말에 동의 해 주었다.
“응. 그러자.”
난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며 걸었다. 앞에 서기도 하고 뒤에 서기도 하며 무사히 건물을 빠져 나온 다음 택시를 잡을 수 있는 도로가로 향하고 있었다.
난 하늘이를 가려주려고 정신이 없었고 뒤에서 오는 차를 확인하지 못했고 대신 확인한 하늘이가 나를 불렀다.
“진아. 뒤에 차. 뒤에 차. 뒤에 차.”
나는 일단 길가로 피했지만 중형으로 보이는 차는 우리 옆을 지나가지 않고 정지했다. 난 이 차가 왜 이러나 싶어서 운전자를 확인하려 했고 그것을 눈치 챈 것처럼 창이 내려가고 안에 있는 여성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타.”
“네~?”
하늘이는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백안시 때문에 나를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약한 부분을 봐버린 난 하늘이와는 조금 시각이 달랐다.
“괜찮아요. 먼저 가세요.”
“미안 하지만 내가 안 괜찮아서 그러니까. 따라가 줄래. 부탁이야. 둘이와도 좋아.”
“왜요?”
“그게. 말이야.”
그녀는 수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무서워.”
“하늘아 일단 따라가자 가서 옷도 좀 빌리자.”
하늘이는 내 말에 자기 귀를 의심하다가 내가 이 여자에게 관심 있어 이러는 건 아닌지 하고 미심쩍어 하는 표정을 보였다. 난 이에 손을 흔들며 부인했다.
“절대 아냐. 이건 사정이 있어 그러니 오해 하지 마.”
“메롱.”
하늘이가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그녀 나름의 자기 화 났다는 표현이겠지만 네겐 그저 귀여운 짓으로 밖에 안 보인다.
운전 중. 재랑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난 하늘이의 말에 대구를 해주거나 아주 짧게 의견을 말하는 것 이외에는 말을 하지 못했고 아파트 숲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대 단위 아파트 단지 속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우리는 갈게요.”
옷 이야기는 하늘이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을 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녀는 우리가 바로 가길 원하지 않았다.
“나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혼자 살거든. 잠시만 들어갔다 갈래.”
그녀를 말을 들으며 난 그 남자가 이 곳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경찰에 잡혀 있지 않다면 말이지만.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요.”
“뭐가 괜찮아.”
하늘이가 내 말이 어떤 뜻인지 궁금해서 물었지만 본인 앞에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수 있겠는가. 난 대답하지 못하고 재랑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잠시만 있어 줄래. 이사 하려고 짐을 다 싸놨거든 삭막해서 무서워서. 조금이면 돼.”
그녀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썩혀있었고 이는 나 보다 하늘이가 더 느꼈는지 즉각 반응이 왔다.
“안돼 진아. 이상해. 저 언니 이상해.”
하지만 하늘이는 간절함을 날 유혹하는 걸로 판단했지만.
“하늘아. 잠깐만 올라가자. 저 누나 오늘 큰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래. 그러니까 잠시만 있다가자.”
하늘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뜻인지 내 손을 당겨 잡고서는 달라붙어 왔다. 재랑은 그런 우리 모습을 보다 보기 드물게 웃고는 따라 오라며 손짓을 한 후 앞장섰다.
그녀의 집은 대랑 41평 쯤 되는 곳으로 제법 넓어 보였는데 그 구성이 화장실은 2개. 방은 3개 거실 1개. 부엌 1개로 내가 사는 빌라와 흡사했다. 하지만 방 마다 쌓여있는 이사용 플라스틱 상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너무 삭막하게 보였다.
“미안 하지만. 차나 먹을 것 없어. 사실 올 생각이 없어서 다 치워 놓았거든.”
“알겠어요. 그런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자려고요. 아무리 익숙한 곳이라고 해도 너무 삭막해서”
그녀는 내 말에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 본 후. 입을 열었다.
“어~ 그러내. 오면서 생각도 안 했네.”
“정신 차려요.”
“어! 미안.”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캐리언 집에. 그래 네 집에 가서 자면 안 될까.”
캐리언과 장재랑은 같은 걸 그룹이다. 친하게 진해는 것이 어디가 나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난 하늘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건 염두 해 두지 않고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고마워.”
순간 하늘이가 내 팔을 꼬집었다.
“아~!”
“미워.”
“여기엔 사정이 있어. 괜한 생각하지 말자 우리.”
“몰라. 이 바람둥이.”
하늘이는 입을 삐죽 내민다. 물론 그것도 귀여워서 화를 낼 수가 없지만. 그녀의 생각을 머물게 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몰고 온다는 것을 아는 나로선 장소를 바꾸기 위해 빨리 이 집안을 나가는 것에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삿짐을 싸다가 생긴 쓰레기로 보이는 자루위에 담겨있는 수두룩한 CD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LD 더미들을 난 지나칠 수가 없었다.(최근 몇 달 간 어머니의 음반을 찾으려고 했었기 때문에) 난 길을 가다 말고 그 것들을 보았고 한 참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재랑에게 물었다.
“이 속에 혹시 진수진 이라는 가수의 음반 없나요. 한 20년 전 음반인데.”
“진수진이라면 알지만. 음~ 몰라. 다 엄마 거여서. 난 잘 모르겠는데.”
“뒤져봐도 될까요. 꼭 찾아야 하는 게 있거든요.”
그녀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몰랐기 때문인지 의문 가득한 표정을 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고 하늘이는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음반 찾으려고.”
“응”
“같이 하자.”
“응”
우리는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둔 음반들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확인해 나갔다. 색 바랜 마분지로 되어있는 촌스러운 겉표지의 LD를 한개 씩 조사하고 테이프가 빠져 있기도 하고 부러져 있기도 한 카세트테이프를 보고 마지막으로 CD들의 겉표지들을 조사해 나갔다.
“아~~”
찾고 싶은 음반이 끝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짜증이 났고 하늘이는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가능성 있는 곳 아직 남았잖아.”
“응~~ 하~~”
난 마지막 것을 꺼내 놓으며 아쉬워. 나도 모르게 한숨 소리 냈다. 재랑은 그 소리를 듣고는 내게 말해 왔다.
“뭘 찾는 거야.”
경계심을 잊어버리고 있던 난 그녀의 물음에 무심결에 답했다.
“어머니 음반인데. 제목이 여행 이라고.”
“어머니 그럼 네 어머니가 진수진이야.”
“아!”
순간 아차 싶었지만 지금 상대는 경계 대상이란 느낌이 들지 않아 답해 주었다.
“네.”
“오~~~ 그래서 그 털북숭이가 널 편애하는 거였군.”
여기서 의문.
“어떻게?”
“응. 털북숭이가 전에 이야기 하더라. 자기가 만난 여자 중에 가장 멋진 여자였다고. 그 말 듣고 다들 털북숭이 짝사랑 했던 여자라고 소근 되었거든 그래서 기억하고 있었어.”
“네~ 저 사실 어머니 음반 찾을 수가 없어서. 알아보고 있거든요.”
아마 내 목소리엔 실망감이 가득 실려 있었을 거다. 그녀는 그런 내 목소리를 듣고 말해왔다.
“엄마 음반이라면 버리는 거 말고 또 있어. 저기 2번째 뒤져볼래.”
우리는 그녀가 가리킨 박스테이프로 봉인된 파란색 상자를 개봉했고 그 안에 든 비교적 깨끗한 음반들을 하나 씩 조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커다란 글씨로 ‘여행’이라고 적혀 있는 어머니의 1집 CD를 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프라스틱으로 된 CD케이스에 들어가 있는 기타를 들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청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하얀색 원피스와 긴 생머리 그리고 하늘색 가디건, 하얀색 운동화 차림을 하고 나무그늘에 있는 튀어 나온 뿌리에 앉아 무척 즐거운 표정으로 기타를 치고 있었다. 이 사진은 연출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웠다. 먹다 남은 과자 봉지와 도시락을 담아온 것 같은 가방이 있었는데 그 것들이 사진의 구도를 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따위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감격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어머니를 접할 수 있는 건. 이모와 누나가 해준 이야기 그리고 집 거실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만 있는 가족사진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그 외의 것으로 어머니를 만나는 거다. 이 감격에 코끝이 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행운에 하늘이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해주었다.
“와~~~ 잘 됐다.”
“울어.”
재랑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왔고 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미안요. 몇 개월 동안 찾아 헤맸는데 겨우 찾았거든요. 저기. 이거 팔면 안 될까요.”
“헤~~ 거울 좀 봐라 그 표정하고 있는 녀석에게 돈을 어떻게 받아. 그냥 가져가. 아마 엄마도 그렇게 했을 거야.”
“고맙습니다.”
“일단은 가자. 대충 집어넣어. 나중에 또 다른 거 나오면 줄게.”
난 재랑이 너무 고마워서 미소 지어 보인 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다 무엇 때문인지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깊게 생각하는 표정으로 변했다가 다시 편안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재랑이 차를 주차시키는 걸 기다렸다. 2명의 여자를 대동하고 이모네를 현관을 열었을 때. 덥다고 선풍기 앞에서 짧은 치마를 들고 있던 캐리와 지애를 볼 수 있었다. 난 낮 간지러운 짓을 하고 있는 숙녀분들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고 그녀들은 내가 뭔 죄라도 지은 듯 내 이름을 마구 불러 대었다.
“야~~ 진이 너.”
“야 진이. 노크 좀. 해라.”
현관이 화장실이야. 아님 침실이야. 그것도 아니면 집무실인가. 왼 노크? 도무지 내 잘못이라고 하기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여성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남자에게 들킨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상당히 불쾌할 것이다. 내가 참아 줘야지.
“미안~”
난 사과를 했지만 지애는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는지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를 약하게 때렸다. 그리고 나와 동행한 여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하늘아. 어~~ 안녕 재랑언니. 근데 하늘이야 진이 여자 친구지만 언니는 왜? 이 녀석 하고 같이 이 집 왔어.”
재랑은 그 일이 떠올랐는지 잠깐 인상을 썼고 지애가 그것을 보았다. 하지만 둘 다 그 것에 대해선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고 재랑도 다시 안정을 찾아서 답해 주었다.
“우리 집이 너무 삭막해서. 무섭더라고. 숙소엔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캐리언 방에서 하루만 잘까 하고 따라 왔어.”
“어떡하지 오늘 내가 잘 건데.”
“그래.”
둘 다 고민하는 표정이다. 이러다가 하루 종일 현관에서 이야기 하게 될 것 같아 난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일단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 이야기해요.”
그녀들은 둘 다 나를 돌아본 다음 다시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소파로 향했다.
탑걸즈 멤버들의 토의의 결론은 남자방인 내 방에서 지애와 재랑이 자고 난 소파에서 자는 걸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어디 까지나 우리들끼리의 결론이라 외출중인 어른들을 기다려야 했다.
“언니 우리 치킨 시켜 먹자.”
요즘 뜨는 예능 프로그램이 끝나고 볼 만한 프로그램을 찾아서 채널을 돌리다가 캐리가 같이 TV를 보던 재랑에게 물었고 강간당하던 기억 같은 건 싹 잊어버린 것 같은 재랑이 고개를 저었다.
“야~ 우리 다음주에 첫 출연한다더라. 신경 좀 써.”
“어 때. 시간 남았잖아. 야! 진아 전에 기거 후라이드 하나랑 양념 하나 시켜 줘. 계산은 여기 있는 연장자께서 한단다.”
재랑은 캐리의 장난에 별 반응이 없어서 일어나 전화를 돌려서 주문대로 시켰고 배달은 제법 빠르게 왔다.
“나갔다 올게.”
닭 두 마리는 생각보다 많았다. 난 비교적 적게 먹고 하늘이는 조금 얌전빼고 탑걸즈 멤버 3명은 다이어트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많이 먹지 않아서 남을 정도였다.
먹다 남은 닭고기를 치우고 주변을 다 같이 정리하고 20분 쯤 흘렀을까. 소파에 누워있던 여자들이 하나둘씩 졸기 시작했다. 캐리가 먼저 자고 지애 그 다음 하늘이가 눈을 감아 버렸다. 오직 재랑과 나만 돈 꾀나 들어간 것 같은 미니시리즈를 멍하게 보고 있었다.
난 오랫동안 TV만 보고 있다가 그 프로그램마저 끝났을 때.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재랑 쪽으로 돌아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소파 등받이에 턱을 괴고 부담스런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는 재랑을 보았기 때문인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모른 척 한개 자존심이 상해서 다시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봐요.”
내 목소리엔 당황스러움이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저 자연스럽기만 했다.
“그냥 네가 너무 연약하고 착한 아이란 생각이 들어서.”
“안 그래요.”
“그래. 뭐 그 인간 의자로 쳐 버릴 땐 다르긴 하더라.”
그 때의 나를 난 기억하지 못한다. 누나를 범한 놈 하나를 죽이고 내가 누나를 범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기억이 나중에 나타날지 알 수는 없지만 현제로선 기억이 없었다.
“저 병이 있어요. 심하게 흥분해서 한 행동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 그래서 그 때 어떻게 했는지 전 잘 몰라요.”
“그래.”
재랑의 목소리엔 놀람이 있었다. 하지만 잠시 뿐 그녀는 우울한 표정과 목소리로 작게 말해왔다.
“구해줘서 고마워.”
“아뇨.”
하지만 경찰서에 넘긴 털북숭이 말로는 죽은 것도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며 무단침입으로 구속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아닌 것이다. 내가 감사를 받아도 되는지 의심이 드는 상황이었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그녀는 내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남 이야기를 하듯이 작게 입을 열었다.
“처음엔 그 남자 그런 사람 아니었어. 나 그 사람 아버지가 운영하던 기획사에서 처음 연예생활 시작 했거든.”
“몇 살에요.”
“11살. 몰라 나 첫 데뷔해서 광고도 많이 찍고 했는데 한동안 이슈 꺼리였는데.”
“헤헤 미안해요.”
“나이가 문제네. 그 때면 너 7살 이니까. 본론으로 넘어가서 그 사람 아버지가 있을 때. 그 남자가 내 매니저였거든 처음에는 나도 그 남자 좋아했어. 그저 착한 아저씨로 생각했어. 근데 16살 네 나이 때. 그 놈에게 당했어. 나 그 때 드라마로 인기절정이었고 그 드라마에서 같이 출연하던 오빠랑 사귀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내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어. 나 당한 후에 엄마에게 이야기 했지만 우습게도 그 놈이 엄마랑 사귀고 있는 거 있지 엄마는 어떻게 된 건지 내가 거짓말 한다고 하는 거야.”
“어떻게.”
모친이 딸자식을 믿지 않는다니 이해하기 힘들어서 난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해 주었다.
“나 그 때 진짜 못되게 굴었거든 사람들이 다 예쁘다고 떠 받쳐주고 똑똑 하다고 잘한다고 칭찬만 해주니까. 나 진짜 그런 줄 알았어. 그래서 옷도 잘 못 입고 늘 바보 같은 엄마가 싫어서 진짜 못 되게 굴었어. 그 영향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엄마 진짜 안 믿어주더라 그래서 고립된 난. 활동 중이던 걸 전부 놔 버렸어. 뭐 퇴짜 놓은 게 아니라 연기도 안 되고 몸도 나빠지니 자연스럽게 중단 되더라. 그리고 인기가 떨어지니까 좋아하던 오빠도 떠나 버리고 나 그 때. 약 먹었어. 뉴스에 나왔어. 그것도 못 봤구나.”
“네.”
“뉴스에 나오고 나서 내 연기 인생은 끝났어. 그래도 다행인건 엄마가 그제 서야 날 믿어줬어. 그 남자 그 때 까지 다시 성폭행 하지는 못했어도 성추행을 계속 했거든 뭐 사랑 한다나 미친놈.”
그녀의 말 속엔 증오가 불타올랐고 듣고 있는 나도 그에 조금 동조했다.
“나쁜놈.”
“그 남자를 ?아내고 우리끼리 조용히 몇 년을 살았어. 근데 내가 다시 연예계 진출하려고 하니까 그 놈이 찾아 온 거야. 내 16살 때 알몸 사진을 들고.”
그 다음 이야기는 짐작이 갔다. 알몸 사진으로 협박해서 성관계를 가지고 돈을 뜯어내는 루프 그 남자는 도박으로 거액의 빛도 있고 빛이 있는 상황에도 또 도박에 손을 댔다고 하니 그 남자에게 있어 재랑은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존재 인 것이다.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신고해요.”
“무서워.”
이야기를 할 때와는 확연하게 다르게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답해왔고 그런 그녀를 난 안쓰러운 시선으로 지켜보며 내가 경솔한 방법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남자가 그 사진을 인터넷에 띠워 버린다면 재랑은 암흑에 묻혀 버릴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남자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재랑은 계속 암흑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그 암흑 속에서 모친 같은 의지할 만한 존재가 더 이상 없는 그녀가 언제 까지 버틸까. 아마 곧 무너져 버릴 것이다. 그녀에겐 나에게 누나 같은 존재가 꼭 필요했다.
“적어도 끄려 다녀선 절대 안 되요. 앞으로 절대 성 관계는 거부해요. 돈은. 돈도 너무 주지 말고 최소한으로 주고요. 특히 만날 때는 사람들 있는 곳에서 만나요. 그런 장소가 힘들면 지인을 대동하고요. 그리고 그 사진 너무 겁내지 마세요. 그 놈이 믿는 건 그 사진이니 그 사진이 무용지물임을 내포하는 말을 은근슬쩍 뛰어 주세요. 그리고 미력하지만 필요하면 저도 불러 주세요.”
난 수사물을 읽으며 얻는 지식을 토대로 말해준 거지만. 그녀는 내 말을 경청하며 점점 표정이 밝아지고 또 놀람이 썩혀들고 마지막에는 눈물과 미소가 썩혀 들어왔다.
“너 정말. 착한 아이구나.”
“아뇨.”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 미소년 선생.”
“헤헤”
그녀는 내 웃음소리와 미소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소현누나의 그것과 같은 표정.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 말은 안했지만 너 처음보고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어. 너무 귀여워서. 죽겠더라.”
‘탑 걸즈’와 ‘하이윈디 걸즈’의 녹음 완료 마무리 회식 다음 날의 방과 후. 하늘이와 동행해 병원에 갔고 의사에게 특별히 나빠지거나 좋아진 건 아니란 진단을 받고 나와서 도보로 기획사를 갈 때. 지름길이 되어주는 시장을 거닐고 있었다.
생선의 비린내와 사람들의 흥정과 고함을 쳐 손님을 끌어 모으려는 싸구려 마이크 음성. 어머니 없이 자란 나로서는 상가라고는 마트나 백화점 쇼핑몰이 다였기 때문에 처음엔 몹시 정신없고 번잡스럽게 보이며 비위생적으로 느껴져 꺼려 졌었다. 하지만 하늘이에게 이끌려서 시장에 있는 식당에 가서 소고기 들어간 국에 밥을 말아먹어보기도 하고 떡이나 김밥을 사 먹기도 하고 옷을 사보기도 하면서 시장 특유의 재미를 알아버려서 즐거운 공간이 되어있었다.
“어머니가 이런데 오셔서 장 보셔.”
난 하늘이 어머니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서 물었고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나. 5년 전 까지 할머니 집에 자주 가 있었어. 그래서 할머니랑 자주 왔었어.”
할머니라. 나도 5살 전 까지 할머니가 돌봐주셨다.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막연하게 생각되지만 고맙게도 아직도 생일 선물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진이 할머니는 독일인이라고 했지. 아직 살아계시지.”
“응”
“그럼 편지도 쓰고 그래라. 늙으면 외로움 많이 탄다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려 시더라.”
“보고 싶어.”
“음~~ 가끔. 그 주름지고 마른 손이 그리워. 괜한 잔소리도 그립고.”
“하하. 애기는 할머니 좋아했나 보네.”
“응”
하늘이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어 눈물을 글썽였고 난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오늘 미루고 미뤘던 편지를 쓸 생각을 했다.
오늘 기획사는 한산했다. 어제 과음할 것 같은 사람들은 거의 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연습생도 현역 가수들도 소수만 보였다. 난 털북숭이도 없는 거 아닐까 싶어서 걱정했지만 역시나 그는 자기 자리인 제1녹음실을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는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어색해서 선생님으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응 그래. 하늘이도 왔구나.”
“안녕하세요.”
털북숭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내 몸 상태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 괜찮아요. 병원에서도 별 이상은 없다고 하던걸요. 다만 그 것 때문에 불안해서 그런 거죠. 뭐.”
털북숭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내 고민에 동조해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 일이 세상에 들어날 일은 없을 거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극히 적을 거야. 거기다 성필성씨가 대부분 자료는 파기시켰거든. 경찰 쪽도 자료는 없다고 알고 있어.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극히 일부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걱정할 일은 없다는 이야기다. 만일 그 일이 세상에 들어나려 한다면 내가 내 이름을 걸고 막으마. 나 이렇게 살고 있어도 재산도 많고 인맥도 넓거든.”
“네 감사합니다.”
“네 어머니를 지키진 못했지만 넌 반드시 지켜 보이마.”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엔 굳은 의지와 슬픔 그리고 후회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어머니를 지킬 의무는 없었다. 그저 그러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의무는 아버지에게 있는 거였다. 이렇게 생각하자 다시 한번 아버지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아마 아직도 나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요.”
“오늘 웬만하면 다들 쉬라고 했다. 과음한 사람들이 많았거든.”
털북숭이는 그렇게 말한 후에. 기타를 가져오라고 손짓을 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기타가 새워져 있는 쪽으로 가서 그의 기타와 내 연습용 기타를 가져왔다. 오늘 그는 자신이 먼저 내가 치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곡을 먼저 연주하고 부족한 내 악보 보는 법과 코드 잡는 법을 1시간 동안 봐주고 다음 1시간 동안 연주를 시켜보고 도와주었다. 나의 기타 연주는 코드를 잘못 잡고 현을 잘못 튀기고 해서 중간에 중단되어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 하다가 결국 마지막 한번 완주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완주가 아니라 넘어지고 구르다가 억지로 완주 테이프를 끈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털북숭이는 털사이로 조금보이는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칭찬을 해 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배우는 구나. 감각도 있어. 수진이 보다 낮아.”
그의 말에 하늘이가 기뻐하며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난 믿기지 않았다. 지금 까지 살아오면서 누나이외 사람에게 뭔가를 잘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그가 그저 격려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 표정에서 그런 점을 얽었는지 고개를 흔들며 다시 말해주었다.
“아니. 빈말이 아니다. 너 감각이 있다. 재능이 있어.”
그리고 하늘이도 동조해 주었다.
“나 잘 모르지만 진이 잘 하는 거 같은데.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재능이 있어. 진이 재능 있다고 생각해.”
난 그녀의 말에 환희를 참을 수 없어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응”
“그래 정말이다. 그렇게 좋아.”
“네.”
지금 이 순간 털북숭이가 너무 좋고 고마워서 고개를 푹숙여 버리며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계속 연습해야 한다.”
“네.”
“그리고 아쉽지만 가르쳐 주는 건 여기 까지다. 그러니 이젠 여기 오지 않아도 된다.”
단호하고 상처를 주는 말이지만 그의 말속엔 아쉬움이 묻어났고 나 역시 그 마음과 같았다. 하지만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매달릴 때 약속이 이것이라 때 쓸 수가 없어서 난 풀죽은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풀죽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헤헤. 미안하다. 하지만 가끔 연락은 하고 지내자. 하늘이랑 결혼할지 안할지는 모르지만 만약 결혼한다면 내가 네 둘에게 노래를 하나 선물하마.”
“네. 감사합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나와 하늘이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우려하는 것을 말로 표현한 적이 없었지만. 내가 만약 언론의 표적이 되었다가 누군가 어머니가 격은 참혹했던 일을 세상에 알려버리지 않을까. 심려되었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난 어머니에게 크나큰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이고 다 알려져 버린 더러운 피의 네 존재를 감추고 싶어 해. 자살을 선택할 것이다.
털북숭이가 나를 생각해서 그러는 건지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지만 2달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고 있던 그 생각이 어제 전직 기자란 양반 때문에 다시 들어난 것 같았다. 사실 약속은 했었지만 그 동안 많이 친해지면서 그가 계속 네 기타연주를 봐주고 기획사 출입을 허락할 것 같았기에 나도 어제 그런 일이 있기 전 까지는 이런 마무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척 아쉬웠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감사 했습니다.”
그는 녹음실을 벗어나지 않고 문에 기대어서 복도에 서 있다 다시 인사를 하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슬프고 또 아쉬움이 묻어났다. 난 하늘이 손을 잡은 체 그런 그의 모습을 뒤로 하고 기획사를 천천히 둘러보며 엘리베이터 까지 걸어가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른 채로 생각에 잡혔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 곡이란 것만 알고 악보를 가지고 있을 뿐. 음반을 들어보지 못했다. 집에 있던 건 아버지가 다 없애 버렸고 이모한태 있던 건 캐리가 장난치다 못쓰게 되어서 케이스만 있고. 털북숭이는 이사를 하다가 도둑맞는 바람에 잊어 버렸고 기획사 쪽에도 건물을 새로 짖는 동안 썼던 창고가 불이 나서 음반을 소실 해 버려서 찾으려면 외부에서 찾아야 했다. 하늘이는 인터넷에서 뒤져 보자고 했지만 20년이 넘은 음반을 파는 사람을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아직까지 듣지 못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음성 어떤 음성으로 어떤 감성으로 노래를 불렀는지 너무 궁금했다. 단 순한 호기심이 아닌 혈육에 대한 이끌림이 작용해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난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내려서 건물을 빠져 나올 때 까지 어머니의 음반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하늘이는 말 없는 나를 슬픈 눈으로 올려 볼 뿐이었다. 그러다 내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말이다.
“하늘아! 아버님(어느새 이렇게 부르고 있다.) 우리 어머니 음반 가지고 계시지 않을 까.”
“음. 모르겠어. 물어 볼까.”
“응.”
그녀는 미소 지으며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그 모습에 매료된 난 키스를 하고 싶고 또 하루. 하루가 다르다고 느낄 만큼 아름다워져 가는 그녀의 육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 여자들은 나의 의도를 알아버린다. 늘 그렇듯이. 이는 하늘이도 마찬가지가 아니다. 난처하게도. 그래서 난 한번 씩. 노골적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지금 노골적이 되어버린 난 그녀의 귀에 조용히 말했다.
“하늘아. 하고 싶어. 될까.”
하늘이는 이런 나를 부끄러운 표정이 되어 밀치며 튕겨온다.
“정말.”
하지만 부끄러움 잘 타는 하늘이는 항상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다가가서 손을 잡고 약간 슬픈 표정을 지으며 돌려서 말했다.
“나 오늘 네게 위로 받고 싶어.”
“진이 정말이지.”
그녀는 섹스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남자와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무척 좋아할 뿐이다. 태혁형에게서 들은 거지만. 여자는 35세 쯤 되어야 섹스를 즐기는 몸이 된단다. 하지만 남자는 15세부터 30세 까지 엄청 강하고 그 다음부터는 하양 곡선이라나. 왜 남자와 여자가 다른 나이 때에 가장 강하게 즐기는 몸이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불공평 한 것 같다.
“근데 어디서~”
하늘이는 모텔이나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지 말끝을 흐렸고 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생각나서 지갑을 꺼내서 액수를 확인했고 에러가 발생했음을 알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텔비가 없어. 하늘아 좀 없어.”
여자에게 숙박비를 내게 하는 건 왼지 꺼려져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말인데도 하늘이는 싫은 기색 없이 핑크빛이 감도는 헬로키티 지갑(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유아틱 한)을 꺼내서 확인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없어. 둘이 합하면 안 될까.”
난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지갑에 있는 액수와 내 지갑에 있는 액수를 합해 보았다. 하지만 결론은 어림도 없는 결론뿐이다. 이 돈으론 DVD방도 갈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난 실망감을 느꼈다. 하늘이는 그런 나를 한심한 눈초리로 보다가 입술을 삐죽 내 밀었다.
“바보.”
하지만 4일째 하지 못한 난 섹스가 무척하고 싶었다. 그래서 돈 없이 또는 지금 있는 액수로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머릿속에 떠 올렸다. 일단 누나와 나의 빌라. 하지만 이내 난 고개를 흔들었다. 소라에게 들켜버린 것으로 생겨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하늘인 그 장소에서 하자고 하면 늘 퇴짜를 놓았었다. 그럼 공원이나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장소의 화장실 등. 예전에 누나와 거의 강제로 해봤던 장소이지만 거기는 적어도 불량배들에게는 안전한 장소다. 다른 곳의 화장실이나 공원은 불안해하는 하늘이를 되려가고 싶은 생각이 절대 들지 않았다.
“오늘은 힘들겠네.”
“바보 그런 일로 풀죽지 마.”
“하고 싶은 걸.”
내가 생각해도 하늘이에게 무뢰한 말이다. 몸을 썩은 사이라 해도 예의가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미안. 참지 뭐. 정말 미안.”
그녀는 내가 이렇게 나오면 저 자세로 나온다. 그렇다고 내가 이것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본적은 절대 없고 지금은 그저 그녀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정말. 괜찮아.”
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미심적어 하는 표정이었고 난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손세에를 치며 부인했다.
“아냐.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하늘이가 순간 감적으로 말해왔다. 난 그녀의 변화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참 동안 침묵을 유지 했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쯤에 입을 열었다.
“미안. 나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미안.”
그녀가 왜 이러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이 건 내 책임이다. 누나를 마음속에서 때어 놓을 수 없는 내 탓에 그녀가 불안해하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래서 혹시 내 손을 뿌리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며 손을 내밀어 손을 잡아서 살며시 끌어당겨 기획사 빌딩 외곽에 있는 나무와 벤치가 있는 휴식공간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7시였고 여름이라 아직 밝았지만 공사 관계로 쇼핑몰과 극장가가 문을 닫고 있는 때문인지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그런 곳에 하늘이를 일단 앉게 한 다음.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를 양팔을 맞잡고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왜 그래.”
그녀는 내가 이런 자세로 말하자 울먹일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 난 그녀의 표정 변화를 슬픈 눈으로 보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녀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너무 좋아하지 마. 너무 잘해 주려고 하지 마. 지금 보다 조금 덜 잘해주면 돼. 그 정도면 돼. 그래도 나 하늘이를 좋아해.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옆에 있는 거. 너잖아.”
그녀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알 수가 없다. 난 절대 그녀가 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싫은 말이라도 들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아 말해 줄래. 뭐가 불안한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녀의 입에서 겨우 울먹임이 약간 썩힌 음성이 흘러나왔다.
“내 마음이 가지고 싶어. 오직 나를 봐라봐 주는 마음이 가지고 싶어.”
이 순간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현실의 하늘이 그것도 너무도 가련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가진 하늘이의 모습이 내 시아에 가득히 들어왔다. 그래서 난 나와 합의를 하기 시작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하늘이를 울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누나를 조금 뒤로 밀어 놓는다고.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응~ 그렇게 할게. 하늘이만 봐라봐 줄게. 적어도 그렇게 노력할거야. 약속해.”
내 뒷말은 하늘이가 원하는 말이 아닐 것이지만. 그녀의 진심을 깊게 이해하는 나로서는 철저하게 뻔뻔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이해를 해준 것일까. 하늘이가 나를 끌어 당기며 말해왔다.
“안아 줘.”
난 일어나 그녀 옆자리 앉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체구의 그녀의 어깨를 둘러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여름이라 체온이 부담스러워야 했지만 이상하게 그런 느낌은 없었다. 서로의 체온은 공명하며 마음의 따듯함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마음이 안정되자 다른 생각을 불러왔다.
“하늘아~~”
“읍~~”
하늘이는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 입술과 자신의 입술을 포개게 되었지만 당황하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곧 그녀도 눈을 감으며 호응해 왔고 난 그녀의 팔목을 살며시 잡으며 혀로 혀를 이를 잇몸을 어루만지며 타액을 교환했다.
“음~~ 하~ 하늘아~ 음~”
“음~ 하~ 진아~ 음~”
더 없이 황홀하고 멋진 키스 기교를 그녀는 좋아해서 난 늘 키스 시간을 길게 잡았고 그녀는 긴 키스 후에는 항상 아래가 축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가슴을 만진다.’던가 하는 건 뒤로 미룬다. 또 키스만 할 것 같으면 길게 하지 않았다.
근데 이 장소에서 할 것도 아닌데 오늘은 감정이 고조되어 버려 나도 모르게 그 페이스를 넘어 버렸고 하늘이는 키스가 끝나고 황홀함의 여운이 끝났을 때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나 어떻게 젖어 버렸어. 앙~”
“미안.”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짧은 바지 아래는 어두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엉. 진아.”
“그래. 음~~~”
일단 떠오르는 것이 기획사 의상실과 캐리가 가끔 자고 오는 지애방이다. 의상실은 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데 옷의 양 엄청났었고 지애방에는 하늘이가 입을 만한 속옷도 있을 것이다. 난 일단 전화를 걸어서 털북숭이에게 허락을 얻어낸 다음 울상인 하늘이에게 말했다.
“하늘아 기다리고 있을래.”
“응”
“일 있으면 전화해~”
“응”
하늘이는 애써 웃음 지으며 남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두 다리를 오므렸다.
다시 올라온 기획사는 조금 전 보다 더 조용하고 조명도 많이 꺼져 있으며 냉방도 제한 적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불과 30분 쯤 지났을 건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에 난 잠깐 동안 이상하게 생각할 뿐 별 생각이 없었다.
난 일단 털북숭이가 거의 먹고 자는 녹음실로 가서 인사를 한 다음. 보안을 위해서 외부와 격리된(비상 대피 탈출구는 특별제작 되어 있음.)숙소를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전에 딱 한번 와본 지애 방으로 향했다. 근데 정작 위치는 대충 알겠는데 번호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20호? 22호? 23호? 24호? 이중에 하나인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다고 함부로 열었다가 사람(여자 기숙사 구역이라 여자들만 있음)이 있으면 큰 실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전화를 기를 들었다.
하지만 캐리와 지애는 둘이 어디서 놀고 있는지 전화를 안받았다. 난 그냥 열어 볼까 말까 생각하다가 이번엔 털북숭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아세요. 캐리 방 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미안 모르겠다.”
“하 그럼.”
“아까 연락 받았는데 오늘하고 내일 임시 휴가라고 하더라. 뭔 변덕인지 몰라도 그렇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집에 내려가지 않았을까. 노크 하면서 열어봐. 그러면 되겠지. 너 캐리언이랑 한집에 사니까 그 녀석이 어떤 식으로 방 쓰는지 알거 아냐.”
“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응 그래.”
알겠다고는 했지만 캐리는 숙소에서 잘 지내지 않는다. 과연 내가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22번방을 들어갔을 때. 왼지 캐리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신발은 도두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신발장 옆으로 1개의 캐릭터인형 슬리퍼가 역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으며 쓰레기통은 냄새가 하나도 안 나며 바닥은 빛이 날 것처럼 반질반질하며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작은 액자에도 신발장 위에도 먼지하나 없었다.
“오! 대청소라도 했나.”
캐리언이 조금 개으르긴 해도 이상하게도 스트레스 많이 쌓이면 필요이상으로 청소를 했었고 그런 모습을 몇 번인가 본 나로서는 크게 이상한 것이 아니었기에 난 신발을 벗어서 신발장에 올려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집안 탐험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일보를 시작해서 32인치쯤 되어 보이는 LCD-TV와 3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소파를 확인하고 이곳에는 부엌이 없고 화장실만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런 주제에 소형 냉장고는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전에 들어와 본 기억으론 2층 침대가 있는 방 문 앞에 섰다.
하지만 더 이상 진행 할 수가 없었다. 분명하게 들려오는 성교의 희열에 들떠 헐떡이는 중년 남자의 신음과 천박하기 짝이 없는 과격한 말이 들려왔다.
“앗~ 앗~ 하~ 앗~ 역시 보지는 맛이 죽여줘. 아~ 아~ 네가 날 밀어내려고 해봐야 또 이렇게 만나서 또 내 자지에 박히는 신세일 뿐이잖아. 아~ 앗~”
“이젠 신물이 나. 이번으로 끝내줘. 재발.”
순간 난 미칠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이 방은 분명 캐리와 지애 방이니 저놈이 욕보이고 있는 이는 둘 중에 하나이며 저 말을 들어봐선 상습적이란 말이다. 한마디로 이건 강간인 것이다. 내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하얗게 변했고 의식이 들었을 때 난 부러진 화장대 의자를 들고 있었다.
난 한참동안 내 돌발적인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며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울며 몸을 숨기는 나체의 여자도 머리를 강타당해 기절해 버린 알몸의 남자도 휴지와 콘돔 그리고 먼지하나 없는 입구를 봐선 이해할 수 없는 어지럽게 벗어놓은 옷들도 나에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외부로 끌어 당기도 있었고 곧 난 주변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애써 감추려하지만 겉으로 들어나고 있는 여자의 흐느낌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보였다.
“흐. 흑~~ 으~~ 앙~~ 으~ 흑.”
난 일단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려 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안경은 내 얼굴에서 떨어져 나가있어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저 남자가 누군 인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 겨우겨우 정신을 수습한 난 다가가면 상대방이 두려움을 느낄 까 봐서 가장 알고 싶을 것을 물었다.
“누구야. 캐리, 지애.”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난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어서 다시 물었고 그것에도 대답이 없어서 난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려 했고 그 때 서야 대답이 나왔다.
“장재랑이야. 오지마.”
장재랑이라면 나를 아니꼽게 보던 20세의 연상이다. 난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너무 잔인한 짓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접어 버리고 지금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상관 마.”
역시나 쌀쌀한 여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다니 나의 좁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에~ 뭐라고요.”
“상관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아무리 그래도 강간하던 남자가 기절해 있는데 여자를 혼자 두고 간다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적어도 저 남자는 어떻게 해야죠.”
내 말을 듣고 재랑은 흥분해서 목소를 높였다.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여기저기 나 이런 미친놈에게 당했다고 광고라도 하라는 말이야.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뭐가 되. 난 아직 일 그만 두고 싶지 않단 말이야. 응~ 흑. 흑.”
재랑은 목소리를 죽여서 울었고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마음은 지독하게 복잡해져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고 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는 거야, 그냥 모른 척 하고 가 버릴 걸, 처음부터 방을 잘못 들어온 것이 문제 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봐 버린 것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옷부터 입고 부모님에게 가세요.”
“어떻게 하려고.”
“아무것도 안 해요. 일단 이 남자 깨워서 내 보내려고요. 근데 이 남자 우리 기획사 사람인가요.”
“아니 저번 주에 잘렸어.”
“그럼 이렇게 하죠. 이 남자가 기획사 숙소에 침입해서 도둑질을 하다가 물론 누나는 집에 돌아간 상태고요. 도둑질을 하다가 저에게 발각되어서 저를 잡으려다 제가 의자로 기절시킨 걸로 하죠. 이 남자 아마 경찰에 잡혀도 함부로 말 못할 걸요. 장기적인 해결책은 안 되도 단기적으로 해결이 될 걸요.”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라며 손짓을 했다.
“돌아서 있어.”
그녀는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옷들 말고 옷장에서 옷을 꺼낸 다음 침실을 나갔다. 그리고 몇 분 있지 않아서 짧은 청바지와 반짝이가 가득 붙은 티셔츠를 입고 와서 내 안경을 주워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나 내려갈게. 그리고 고마워.”
난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 남자의 옷을 입히고 재랑의 옷들을 침대 아래로 숨기고 쓰레기를 쓰레기통으로 보낸 후에 휴대폰을 들어서 털북숭이 아저씨를 불렀다. 난 아저씨에게 경비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싸우다가 내가 의자로 때렸다는 말 때문에 나를 걱정한 그는 단신으로 올라왔고 나의 무사함을 확인한 그는 그 커다란 손으로 기절한 남자의 뒤통수를 가격하며 이 남자가 어떻게 잘렸는지 말해 주었다.
“미친 놈. 어디라고 들어와선. 허허. 이 놈 또. 도박하다가 돈 떨어졌나. 저 번엔 회사 계좌에 장난을 치더니만. 처자식 있는 놈이 왜 이런지 원. 한심해서.”
“어떻게 하죠.”
난 이 남자가 심하게 맞아서 죽거나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물론 내가 살인자가 된다는 꺼림칙함 때문이지 불쌍해서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털북숭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려주려고 웃음 지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넌 가보 거라. 별거 아냐. 그냥 기절한 거뿐이야. 뒷일은 내가 다 해결하마. 전혀 걱정할거 없다. 아무것도.”
하지만 선 듯 내 발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는 나를 밀면서 말했다.
“어서 어서 가 보거라. 하늘이 기다리잖아. 어서. 가.”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응 그래. 가끔 전화해라.”
“네”
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기획사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1층 도달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기다린 다고 지쳐서 젖은 부위를 누가 볼까봐 자주 주위를 확인하는 하늘이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늦어.”
“미안.”
“근데 옷은.”
“앗~~”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재랑의 속옷을 잡아서 숨길 때도 재랑의 치마를 잡아서 장속에 넣어 버릴 때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서야 겨우 떠 올랐다.
“미안. 다시 올라갔다 올게.”
그렇게 말 했지만 털북숭이에게 미안해서 꺼려졌다.
“아냐. 택시 타고 집에 갈래. 진이가 가려주면 되잖아.”
아쉽기는 하지만 모텔비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물론 아까 흥분 했을 때는 으쓱한 공원이나 화장실에서도 하고 싶은 기분 이었지만.) 그래서 그녀의 말에 동의 해 주었다.
“응. 그러자.”
난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며 걸었다. 앞에 서기도 하고 뒤에 서기도 하며 무사히 건물을 빠져 나온 다음 택시를 잡을 수 있는 도로가로 향하고 있었다.
난 하늘이를 가려주려고 정신이 없었고 뒤에서 오는 차를 확인하지 못했고 대신 확인한 하늘이가 나를 불렀다.
“진아. 뒤에 차. 뒤에 차. 뒤에 차.”
나는 일단 길가로 피했지만 중형으로 보이는 차는 우리 옆을 지나가지 않고 정지했다. 난 이 차가 왜 이러나 싶어서 운전자를 확인하려 했고 그것을 눈치 챈 것처럼 창이 내려가고 안에 있는 여성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타.”
“네~?”
하늘이는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백안시 때문에 나를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약한 부분을 봐버린 난 하늘이와는 조금 시각이 달랐다.
“괜찮아요. 먼저 가세요.”
“미안 하지만 내가 안 괜찮아서 그러니까. 따라가 줄래. 부탁이야. 둘이와도 좋아.”
“왜요?”
“그게. 말이야.”
그녀는 수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무서워.”
“하늘아 일단 따라가자 가서 옷도 좀 빌리자.”
하늘이는 내 말에 자기 귀를 의심하다가 내가 이 여자에게 관심 있어 이러는 건 아닌지 하고 미심쩍어 하는 표정을 보였다. 난 이에 손을 흔들며 부인했다.
“절대 아냐. 이건 사정이 있어 그러니 오해 하지 마.”
“메롱.”
하늘이가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그녀 나름의 자기 화 났다는 표현이겠지만 네겐 그저 귀여운 짓으로 밖에 안 보인다.
운전 중. 재랑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난 하늘이의 말에 대구를 해주거나 아주 짧게 의견을 말하는 것 이외에는 말을 하지 못했고 아파트 숲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대 단위 아파트 단지 속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우리는 갈게요.”
옷 이야기는 하늘이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을 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녀는 우리가 바로 가길 원하지 않았다.
“나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혼자 살거든. 잠시만 들어갔다 갈래.”
그녀를 말을 들으며 난 그 남자가 이 곳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경찰에 잡혀 있지 않다면 말이지만.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요.”
“뭐가 괜찮아.”
하늘이가 내 말이 어떤 뜻인지 궁금해서 물었지만 본인 앞에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수 있겠는가. 난 대답하지 못하고 재랑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잠시만 있어 줄래. 이사 하려고 짐을 다 싸놨거든 삭막해서 무서워서. 조금이면 돼.”
그녀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썩혀있었고 이는 나 보다 하늘이가 더 느꼈는지 즉각 반응이 왔다.
“안돼 진아. 이상해. 저 언니 이상해.”
하지만 하늘이는 간절함을 날 유혹하는 걸로 판단했지만.
“하늘아. 잠깐만 올라가자. 저 누나 오늘 큰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래. 그러니까 잠시만 있다가자.”
하늘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뜻인지 내 손을 당겨 잡고서는 달라붙어 왔다. 재랑은 그런 우리 모습을 보다 보기 드물게 웃고는 따라 오라며 손짓을 한 후 앞장섰다.
그녀의 집은 대랑 41평 쯤 되는 곳으로 제법 넓어 보였는데 그 구성이 화장실은 2개. 방은 3개 거실 1개. 부엌 1개로 내가 사는 빌라와 흡사했다. 하지만 방 마다 쌓여있는 이사용 플라스틱 상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너무 삭막하게 보였다.
“미안 하지만. 차나 먹을 것 없어. 사실 올 생각이 없어서 다 치워 놓았거든.”
“알겠어요. 그런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자려고요. 아무리 익숙한 곳이라고 해도 너무 삭막해서”
그녀는 내 말에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 본 후. 입을 열었다.
“어~ 그러내. 오면서 생각도 안 했네.”
“정신 차려요.”
“어! 미안.”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캐리언 집에. 그래 네 집에 가서 자면 안 될까.”
캐리언과 장재랑은 같은 걸 그룹이다. 친하게 진해는 것이 어디가 나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난 하늘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건 염두 해 두지 않고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고마워.”
순간 하늘이가 내 팔을 꼬집었다.
“아~!”
“미워.”
“여기엔 사정이 있어. 괜한 생각하지 말자 우리.”
“몰라. 이 바람둥이.”
하늘이는 입을 삐죽 내민다. 물론 그것도 귀여워서 화를 낼 수가 없지만. 그녀의 생각을 머물게 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몰고 온다는 것을 아는 나로선 장소를 바꾸기 위해 빨리 이 집안을 나가는 것에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삿짐을 싸다가 생긴 쓰레기로 보이는 자루위에 담겨있는 수두룩한 CD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LD 더미들을 난 지나칠 수가 없었다.(최근 몇 달 간 어머니의 음반을 찾으려고 했었기 때문에) 난 길을 가다 말고 그 것들을 보았고 한 참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재랑에게 물었다.
“이 속에 혹시 진수진 이라는 가수의 음반 없나요. 한 20년 전 음반인데.”
“진수진이라면 알지만. 음~ 몰라. 다 엄마 거여서. 난 잘 모르겠는데.”
“뒤져봐도 될까요. 꼭 찾아야 하는 게 있거든요.”
그녀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몰랐기 때문인지 의문 가득한 표정을 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고 하늘이는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음반 찾으려고.”
“응”
“같이 하자.”
“응”
우리는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둔 음반들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확인해 나갔다. 색 바랜 마분지로 되어있는 촌스러운 겉표지의 LD를 한개 씩 조사하고 테이프가 빠져 있기도 하고 부러져 있기도 한 카세트테이프를 보고 마지막으로 CD들의 겉표지들을 조사해 나갔다.
“아~~”
찾고 싶은 음반이 끝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짜증이 났고 하늘이는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가능성 있는 곳 아직 남았잖아.”
“응~~ 하~~”
난 마지막 것을 꺼내 놓으며 아쉬워. 나도 모르게 한숨 소리 냈다. 재랑은 그 소리를 듣고는 내게 말해 왔다.
“뭘 찾는 거야.”
경계심을 잊어버리고 있던 난 그녀의 물음에 무심결에 답했다.
“어머니 음반인데. 제목이 여행 이라고.”
“어머니 그럼 네 어머니가 진수진이야.”
“아!”
순간 아차 싶었지만 지금 상대는 경계 대상이란 느낌이 들지 않아 답해 주었다.
“네.”
“오~~~ 그래서 그 털북숭이가 널 편애하는 거였군.”
여기서 의문.
“어떻게?”
“응. 털북숭이가 전에 이야기 하더라. 자기가 만난 여자 중에 가장 멋진 여자였다고. 그 말 듣고 다들 털북숭이 짝사랑 했던 여자라고 소근 되었거든 그래서 기억하고 있었어.”
“네~ 저 사실 어머니 음반 찾을 수가 없어서. 알아보고 있거든요.”
아마 내 목소리엔 실망감이 가득 실려 있었을 거다. 그녀는 그런 내 목소리를 듣고 말해왔다.
“엄마 음반이라면 버리는 거 말고 또 있어. 저기 2번째 뒤져볼래.”
우리는 그녀가 가리킨 박스테이프로 봉인된 파란색 상자를 개봉했고 그 안에 든 비교적 깨끗한 음반들을 하나 씩 조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커다란 글씨로 ‘여행’이라고 적혀 있는 어머니의 1집 CD를 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프라스틱으로 된 CD케이스에 들어가 있는 기타를 들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청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하얀색 원피스와 긴 생머리 그리고 하늘색 가디건, 하얀색 운동화 차림을 하고 나무그늘에 있는 튀어 나온 뿌리에 앉아 무척 즐거운 표정으로 기타를 치고 있었다. 이 사진은 연출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웠다. 먹다 남은 과자 봉지와 도시락을 담아온 것 같은 가방이 있었는데 그 것들이 사진의 구도를 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따위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감격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어머니를 접할 수 있는 건. 이모와 누나가 해준 이야기 그리고 집 거실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만 있는 가족사진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그 외의 것으로 어머니를 만나는 거다. 이 감격에 코끝이 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행운에 하늘이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해주었다.
“와~~~ 잘 됐다.”
“울어.”
재랑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왔고 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미안요. 몇 개월 동안 찾아 헤맸는데 겨우 찾았거든요. 저기. 이거 팔면 안 될까요.”
“헤~~ 거울 좀 봐라 그 표정하고 있는 녀석에게 돈을 어떻게 받아. 그냥 가져가. 아마 엄마도 그렇게 했을 거야.”
“고맙습니다.”
“일단은 가자. 대충 집어넣어. 나중에 또 다른 거 나오면 줄게.”
난 재랑이 너무 고마워서 미소 지어 보인 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다 무엇 때문인지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깊게 생각하는 표정으로 변했다가 다시 편안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재랑이 차를 주차시키는 걸 기다렸다. 2명의 여자를 대동하고 이모네를 현관을 열었을 때. 덥다고 선풍기 앞에서 짧은 치마를 들고 있던 캐리와 지애를 볼 수 있었다. 난 낮 간지러운 짓을 하고 있는 숙녀분들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고 그녀들은 내가 뭔 죄라도 지은 듯 내 이름을 마구 불러 대었다.
“야~~ 진이 너.”
“야 진이. 노크 좀. 해라.”
현관이 화장실이야. 아님 침실이야. 그것도 아니면 집무실인가. 왼 노크? 도무지 내 잘못이라고 하기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여성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남자에게 들킨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상당히 불쾌할 것이다. 내가 참아 줘야지.
“미안~”
난 사과를 했지만 지애는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는지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를 약하게 때렸다. 그리고 나와 동행한 여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하늘아. 어~~ 안녕 재랑언니. 근데 하늘이야 진이 여자 친구지만 언니는 왜? 이 녀석 하고 같이 이 집 왔어.”
재랑은 그 일이 떠올랐는지 잠깐 인상을 썼고 지애가 그것을 보았다. 하지만 둘 다 그 것에 대해선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고 재랑도 다시 안정을 찾아서 답해 주었다.
“우리 집이 너무 삭막해서. 무섭더라고. 숙소엔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캐리언 방에서 하루만 잘까 하고 따라 왔어.”
“어떡하지 오늘 내가 잘 건데.”
“그래.”
둘 다 고민하는 표정이다. 이러다가 하루 종일 현관에서 이야기 하게 될 것 같아 난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일단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 이야기해요.”
그녀들은 둘 다 나를 돌아본 다음 다시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소파로 향했다.
탑걸즈 멤버들의 토의의 결론은 남자방인 내 방에서 지애와 재랑이 자고 난 소파에서 자는 걸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어디 까지나 우리들끼리의 결론이라 외출중인 어른들을 기다려야 했다.
“언니 우리 치킨 시켜 먹자.”
요즘 뜨는 예능 프로그램이 끝나고 볼 만한 프로그램을 찾아서 채널을 돌리다가 캐리가 같이 TV를 보던 재랑에게 물었고 강간당하던 기억 같은 건 싹 잊어버린 것 같은 재랑이 고개를 저었다.
“야~ 우리 다음주에 첫 출연한다더라. 신경 좀 써.”
“어 때. 시간 남았잖아. 야! 진아 전에 기거 후라이드 하나랑 양념 하나 시켜 줘. 계산은 여기 있는 연장자께서 한단다.”
재랑은 캐리의 장난에 별 반응이 없어서 일어나 전화를 돌려서 주문대로 시켰고 배달은 제법 빠르게 왔다.
“나갔다 올게.”
닭 두 마리는 생각보다 많았다. 난 비교적 적게 먹고 하늘이는 조금 얌전빼고 탑걸즈 멤버 3명은 다이어트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많이 먹지 않아서 남을 정도였다.
먹다 남은 닭고기를 치우고 주변을 다 같이 정리하고 20분 쯤 흘렀을까. 소파에 누워있던 여자들이 하나둘씩 졸기 시작했다. 캐리가 먼저 자고 지애 그 다음 하늘이가 눈을 감아 버렸다. 오직 재랑과 나만 돈 꾀나 들어간 것 같은 미니시리즈를 멍하게 보고 있었다.
난 오랫동안 TV만 보고 있다가 그 프로그램마저 끝났을 때.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재랑 쪽으로 돌아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소파 등받이에 턱을 괴고 부담스런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는 재랑을 보았기 때문인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모른 척 한개 자존심이 상해서 다시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봐요.”
내 목소리엔 당황스러움이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저 자연스럽기만 했다.
“그냥 네가 너무 연약하고 착한 아이란 생각이 들어서.”
“안 그래요.”
“그래. 뭐 그 인간 의자로 쳐 버릴 땐 다르긴 하더라.”
그 때의 나를 난 기억하지 못한다. 누나를 범한 놈 하나를 죽이고 내가 누나를 범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기억이 나중에 나타날지 알 수는 없지만 현제로선 기억이 없었다.
“저 병이 있어요. 심하게 흥분해서 한 행동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 그래서 그 때 어떻게 했는지 전 잘 몰라요.”
“그래.”
재랑의 목소리엔 놀람이 있었다. 하지만 잠시 뿐 그녀는 우울한 표정과 목소리로 작게 말해왔다.
“구해줘서 고마워.”
“아뇨.”
하지만 경찰서에 넘긴 털북숭이 말로는 죽은 것도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며 무단침입으로 구속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아닌 것이다. 내가 감사를 받아도 되는지 의심이 드는 상황이었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그녀는 내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남 이야기를 하듯이 작게 입을 열었다.
“처음엔 그 남자 그런 사람 아니었어. 나 그 사람 아버지가 운영하던 기획사에서 처음 연예생활 시작 했거든.”
“몇 살에요.”
“11살. 몰라 나 첫 데뷔해서 광고도 많이 찍고 했는데 한동안 이슈 꺼리였는데.”
“헤헤 미안해요.”
“나이가 문제네. 그 때면 너 7살 이니까. 본론으로 넘어가서 그 사람 아버지가 있을 때. 그 남자가 내 매니저였거든 처음에는 나도 그 남자 좋아했어. 그저 착한 아저씨로 생각했어. 근데 16살 네 나이 때. 그 놈에게 당했어. 나 그 때 드라마로 인기절정이었고 그 드라마에서 같이 출연하던 오빠랑 사귀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내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어. 나 당한 후에 엄마에게 이야기 했지만 우습게도 그 놈이 엄마랑 사귀고 있는 거 있지 엄마는 어떻게 된 건지 내가 거짓말 한다고 하는 거야.”
“어떻게.”
모친이 딸자식을 믿지 않는다니 이해하기 힘들어서 난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해 주었다.
“나 그 때 진짜 못되게 굴었거든 사람들이 다 예쁘다고 떠 받쳐주고 똑똑 하다고 잘한다고 칭찬만 해주니까. 나 진짜 그런 줄 알았어. 그래서 옷도 잘 못 입고 늘 바보 같은 엄마가 싫어서 진짜 못 되게 굴었어. 그 영향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엄마 진짜 안 믿어주더라 그래서 고립된 난. 활동 중이던 걸 전부 놔 버렸어. 뭐 퇴짜 놓은 게 아니라 연기도 안 되고 몸도 나빠지니 자연스럽게 중단 되더라. 그리고 인기가 떨어지니까 좋아하던 오빠도 떠나 버리고 나 그 때. 약 먹었어. 뉴스에 나왔어. 그것도 못 봤구나.”
“네.”
“뉴스에 나오고 나서 내 연기 인생은 끝났어. 그래도 다행인건 엄마가 그제 서야 날 믿어줬어. 그 남자 그 때 까지 다시 성폭행 하지는 못했어도 성추행을 계속 했거든 뭐 사랑 한다나 미친놈.”
그녀의 말 속엔 증오가 불타올랐고 듣고 있는 나도 그에 조금 동조했다.
“나쁜놈.”
“그 남자를 ?아내고 우리끼리 조용히 몇 년을 살았어. 근데 내가 다시 연예계 진출하려고 하니까 그 놈이 찾아 온 거야. 내 16살 때 알몸 사진을 들고.”
그 다음 이야기는 짐작이 갔다. 알몸 사진으로 협박해서 성관계를 가지고 돈을 뜯어내는 루프 그 남자는 도박으로 거액의 빛도 있고 빛이 있는 상황에도 또 도박에 손을 댔다고 하니 그 남자에게 있어 재랑은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존재 인 것이다.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신고해요.”
“무서워.”
이야기를 할 때와는 확연하게 다르게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답해왔고 그런 그녀를 난 안쓰러운 시선으로 지켜보며 내가 경솔한 방법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남자가 그 사진을 인터넷에 띠워 버린다면 재랑은 암흑에 묻혀 버릴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남자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재랑은 계속 암흑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그 암흑 속에서 모친 같은 의지할 만한 존재가 더 이상 없는 그녀가 언제 까지 버틸까. 아마 곧 무너져 버릴 것이다. 그녀에겐 나에게 누나 같은 존재가 꼭 필요했다.
“적어도 끄려 다녀선 절대 안 되요. 앞으로 절대 성 관계는 거부해요. 돈은. 돈도 너무 주지 말고 최소한으로 주고요. 특히 만날 때는 사람들 있는 곳에서 만나요. 그런 장소가 힘들면 지인을 대동하고요. 그리고 그 사진 너무 겁내지 마세요. 그 놈이 믿는 건 그 사진이니 그 사진이 무용지물임을 내포하는 말을 은근슬쩍 뛰어 주세요. 그리고 미력하지만 필요하면 저도 불러 주세요.”
난 수사물을 읽으며 얻는 지식을 토대로 말해준 거지만. 그녀는 내 말을 경청하며 점점 표정이 밝아지고 또 놀람이 썩혀들고 마지막에는 눈물과 미소가 썩혀 들어왔다.
“너 정말. 착한 아이구나.”
“아뇨.”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 미소년 선생.”
“헤헤”
그녀는 내 웃음소리와 미소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소현누나의 그것과 같은 표정.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 말은 안했지만 너 처음보고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어. 너무 귀여워서. 죽겠더라.”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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