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어떤 실험
낮잠을 자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분명 꿈은 아니었다. 이런 기
회가 또 있을까? 없을 것이다. 틀림없이 미찌꼬가 계속 빨고 있음을
느끼면서 마사오는 그녀의 볼을 감쌌던 손을 늦추었다.
마사오가 미찌꼬에게 입술을 빨라고 한 것은 키스를 가르쳐 주기 위
해서가 아니었다. 관능적인 기분에 잠겨 보려는 생각도 아니었다. 일
종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마사오가 얼굴을 떼려고 할 때 둑 위에서 소리가 났다.
"대담한 녀석이군."
타교 중학생 둘이 서 있었다. 호크와 단추를 풀어헤친 채 모자를 삐
딱하게 얹고 팔장을 꼬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른 얼굴을 떼고 위를 쳐다보았다. 후박나무 게다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세게 노는 녀석들임을 알 수 있었다. "함정에 걸려든 게 아
닐까?" 놈들은 키도 크고 몸집도 단단해 보였다. 덮쳐 오면 저항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마사오는 각오를 했다. "긴이 녀석!" 다만 지금
까지 미찌꼬가 했던 말고 녀석들은 비슷한 데가 없었다.미찌꼬는 공
모자가 아닐찌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또 귀찮은 일이었다. 미찌꼬
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테니까.
모르는 체하면 오히려 위험할 것 같았다. 마사오는 손을 들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미안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두 남자는 서로 쳐다보았다. 마사오의 반응
이 의외인 모양이었다. 미찌꼬는 굳어진 채 수면만을 응시하고 있었
다.
"너, 몇 학년이야?"
아마 저 두 녀석은 5학년일 것이다. 모가짐이나 얼굴에서 그런 게
풍겼다. 아무리 학교가 달라도 선배는 선배였다.
"4학년입니다."
"뭐어?"
두 사람은 또 마주보았다. 천천히 이쪽을 협박해 올 태세였다.
"4학년이 대단하군. 너 이쪽으로 와 봐."
그때 미찌꼬가 갑자기 돌아서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깜찍하게
두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겁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역시, 아는 사이인가? 몰래 미행했군."
그런데 둑 위에 있던 두 녀석의 반응이 또 의외였다.
"야, 4학년."
"예."
"그 애의 입술을 빌리고 싶은데, 어때? 싫다고는 할 수 없을 거애.
아예 드러내놓고 했으니까."
마사오는 서로 등을 진 채로 미찌꼬에게 살며시 물었다.
"모르는 놈들이야?"
미찌꼬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몰라."
"선배님, 못 본 척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마사오는 아예 손바닥을 붙여올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런 공손한
절도 경우에 따라서는 당당해 보인다. 이럴 때 좀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굳이 그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저 녀석 아주 능글맞는데. 좋아. 그러나 그냥 봐 줄 수야 없지. 벌
금을 좀 받아 볼까?"
그렇지만 두 녀석은 앞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벌금을 받겠다는 것은
미끼였다.
"벌금을 안 내려면 넌 가고 여자애만 남겨."
마사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읍니다."
부드러운 말투가 되도록 애썼다. 험악한 분위기가 되어 버리면 자신
의 손해였다. 이런 무리들의 무서운 점은 변덕이고 본인들 자신도 농
담과 진담의 구별을 짓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우리 사촌누나거든요."
"뭐, 사촌이라고?"
두 녀석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뭔가 쑤근거렸다.
"그렇다면 봐 줄까?"
"야, 임마 대낮이야. 사촌간은 한밤중에 만나는 거야. 알았어?"
(이거.... 이 말만 보면..일본에서는 당연시 되는 관계같은데.. 이거
너무..한거 아닌가요..이야기는 들었지만..실제사항이면 좀 그런데요.
물론 이것이 소설이지만.. 은연중에 실재의 이야기가 나오니 뭐.. 사실로
봐도 무방할것 같은데..?????)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중에 담
뱃불을 붙여 문 녀석이 연기를 뿜어내더니 침을 탁 뱉고는 또 시비를
걸어왔다. 이미 틀린 걸 알았으면서도 아쉬운 게 있는 모양이었다.
"여자애, 다시 한번 얼굴을 돌려 봐."
마사오는 미찌꼬의 팔꿈치를 잡았다. 미찌꼬는 두 사람에게 얼굴을
돌렸다. 잠깐 동안이었고 본래로 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 조거 아까운데....."
"야, 야, 가자."
두 녀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옆걸음질을 쳤다. 여전히 미찌꼬에게
눈을 두고 있었다.
"선배님들, 이 다음에 제가 한턱 낼께요."
"시끄러워."
마사오의 말이 건성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다는 듯이 쏘아 붙이더니
사라졌다.
녀석들이 걱정스러운 듯 미찌꼬가 물었다.
"또 오지 않을까?"
"역 쪽으로 갔으니까 괜찮을 거야."
미찌꼬도 마사오와 나란히 누웠다. 보통 여자라면 "이제 그만 가"
하고 무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찌꼬는 녀석들을 대하는 태도도 능
숙했고 자기 자신도 침착했다.
"미찌꼬, 너 가만 보니까 남자를 다룰 줄 알던데? 경험이 많은가 보
지?"
"저런 패거리들은 남자 심리를 잘 이용해서 다루어야 돼. 난 남자의
심리에 대해서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어. 연구도 좀 했지."
"남자 심리?"
"응."
그 다음에 미찌꼬는 똑같은 말투로 또 마사오를 경악케 했다.
"그것뿐이 아니라 생리도 연구했어."
"생리? 뭘 연구했다는 거지?"
"내 또래 여자애들은 모두 남자의 심리뿐만 아니라 몸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고 있어. 대부분은 흥미가 없는 척하지. 물론 몇몇 애들은
정말로 흥미를 못 느끼지만. 아직 어린애니까 그럴 거야."
미찌꼬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역시 미찌꼬는 여느 여자애가 아니
었다.
"얼마 전에 남학생 셋과 같이 트럼프를 한 적이 있었어. 트럼프가 끝
나자 남자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 취하니까 본심을 털어놓기 시
작하는데 아주 재미있었어."
"긴이도 있었어?"
"아니, 긴이는 없었어. 어쩌다가 노골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곧 남자
의 몸이 화제거리가 됐어. 한 사람이 부추겨서 나머지 두 사람이 경쟁
의식을 느꼈어. 술은 사람에게서 수치심을 빼앗나 봐."
"맞는 말이야."
"그래서 부추긴 사람이 재미있어 하면서 더욱더 우쭐대어 비교하게
까지 된 거야."
"놀랍군."
"나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청했어. 그래도 난 그런 기회는 좀처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신경쓰지 말고 서로 대 보라고 했어.
세 사람 다 깜짝 놀라더군. 그렇지만 오기가 생긴 두 사람은 이제 뒤
로 물러날 수 없었어. 승낙했어."
"술이란 무섭군."
"나도 세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했어. 그리고
두 사람 다 뒤로 돌아서 바시라거리더니 다시 방향을 바꾸었을 때는
자신을 꺼내놓고 있었어."
"....."
"흥분 상태가 되어 있었어. 난 얼굴을 돌리고 싶은 걸 참고 똑바로
봤어. 처음이야. 두 사람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잡아당기기 시작했어.
뭘 경쟁하는 건지는 알았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그때까지도 짐작을 못
했었어."
마사오는 생각했다. 남자들도 파렴치했지만 미찌꼬도 대단한 배짱
이었다. 꽤 이름이 난 불량소녀라도 벌써 동망쳤을 상황이었다.
"난 마지막까지 관찰했어. 서는 것도 봤어. 결국 키가 큰 사람이 멀
리까지 나가서 이겼지만 생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지. 위치
가 높으면 다다미에 떨어질 때까지 날아가는 거리가 길어지는 건 당연
하잖아."
"미친 작자들이군."
"그걸 지켜보고 난 그대로 자리를 일어나 돌아왔어. 그런 걸 보니까
동류 의식을 못 갖겠더라구. 그 후 그 세사람과는 사귀지 않았어. 길
에서 만나도 인사를 주고받기만 했어. 그 사람들은 내가 어린 마음에
혐오감을 느낀 거라고 생각할 거야. 실은 그런 게 아니라 내겐 좋은
공부가 되었어. 그들이 내 실험 대상이 되어 준 것에 감사할 뿐이야.
교제하지 않는 건 필요 이상으로 친밀감을 갖게 해선 안 되니까. 날
위험에 빠드리고 싶지 않아."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굉장해. 너 같은 여자애는 별로 없
겠다."
"놀랐어?"
"누구나 놀랄 거야. 넌 여의사나 과학자가 될지도 몰라."
"그렇게 머리가 좋진 않아. 보통 여자야. 다만 다른 애들은 나처럼
호기심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그러면 나도 네 실험 대상이로군?"
"지금부터야. 나와 함께 실험대에 올라가 줄래? 키스 정도는 대개
상상할 수 있었어."
"이제부터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난 너를 선택했어. 네가 나를 선택해 줄지 어떨지 결정을 내려 주
었으면 좋겠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사오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찌꼬의 얼굴에 다가갔다. 입맞춤을 하자 미찌꼬는 양팔로
마사오의 어깨를 감싸고 곧 빨아 왔다. 짧은 키스 후, 마사오가 속삭
였다.
"즉, 네 말은 경험해 보고 싶다 이거지?"
미찌꼬는 끄덕였다.
"왜 지금까지 사귀어 온 사람들과는 실험하지 않았어?"
"불량스러웠어. 뒤탈이 두려웠고, 한 번만으로 인연을 끊을 수는 있
어도 자랑삼아 소문을 낼 거야. 이런 실험은 비밀이 중요해. 더구나
좋아하는 사람이어야만 돼."
"왜 나를 선택했지?"
"저번에 만났을 때 느꼈어. 멋지구나 하고. 게다가 긴이가 여러 가
지를 말해 주었어."
"나도 소문낼지 몰라."
"아니, 넌 그렇지 않아. 다에꼬와의 일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잖아."
놀랐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알았어?" 엉겁결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너와 다에꼬는 비밀로 할지 몰라도 난 다 안다구."
"넌 다에꼬를 알고 있어?"
"아니야." 미찌꼬는 고개를 저었다.
"예쁜 애 같아. 아직 본 적은 없지만."
강의 수면이 반짝거렸다. 해가 기울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 들었어?"
"그건 말할 수 없어.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사오는 혼자 끄덕였다. 소문 따위, 마사오 자신은 아무렇지 않았
다. 오히려 환영했다. 다에꼬가 마사오의 연인이라는 것을 알리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렇지만 다에꼬로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혼
담이 오고가는 여자니까.
마사오는 다시 한번 풀 위에 누워 팔꿈치를 괴고 미찌꼬를 내려다보
았다. 미찌꼬는 그대로 누워 먼 하늘에 눈을 주고 있었다. 뺨이 투명
하고 빨갰다. 다에꼬보다도 피부가 고운 듯했다. 농민의 자식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다에꼬와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좋
을 게 없다는 것도 분명했다. 마사오는 화제를 돌렸다.
"미찌꼬, 내가 네 실험을 승낙한다면 어떻게 할 거지?"
"기뻐."
"언제, 어디서?"
"언제든지 좋아. 오늘이라도, 지금부터라도."
"이런 곳은 무리야."
"그러면 어디로 가자."
"난 아직 너의 이름 밖에 몰라."
"더 알 필요가 있을까?"
"물론이지."
"너와 똑같은 나이의 보통 여자애. 그것으로 좋잖아? 부모가 무엇을
하는지, 가족이 누구누군지, 주소나 본적, 성격, 그런 건 필요없잖
아? 안 그래?"
"......."
"꼭 알고 싶으니?"
"....아니."
"그러면 지금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갈까?"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조건을 붙였다.
"단, 내일부터는 너를 만나지 않겠어."
"그건 나도 그래."
마사오는 일어섰다. 몸이 바지를 땡기고 있었지만 이제 미찌꼬의 눈
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눈치채도 괜찮았다.
한 시간쯤 후에 마사오와 미찌꼬는 산속의 석탄 창고에 도착했다.
다에꼬와 함께 갔던 산은 아니었다. 다에꼬와의 장소에 데리고 가는
것은 역시 꺼림칙했다. 길에서 상당히 깊숙이 들어간 곳에 그 창고는
있었고 기대대로 석탄을 굽는 흙가마는 깨친 채였다. 문은 닫혀져 있
었다. 새소리와 골짜기의 여울물소리, 바람 소리뿐이었다.
마사오는 창고 문을 열었다. "자, 들어가자."
무서워하지도 않고 산속 깊은 창고 앞까지 따라온 미찌꼬는 그제서
야 비로소 주저하기 시작했다.
"여기로?"
"그게 안전해. 몇 시간이라도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
지. 자, 빨리. 산나물 캐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면 안 된다구."
우선 마사오가 들어갔다. 곰팡내는 나지 않았다. 풀 냄새가 훅 끼쳐
왔다. 마사오를 따라 미찌꼬도 들어왔다. 조용한 어조로 미찌꼬는 말
했다.
"장소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나와 너야."
"그래. 맞아."
창고 안에 움직이는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사오는 미찌꼬를 안
았다. 미찌꼬는 가방을 떨어뜨렸다.
"곧 어두워져. 너의 얼굴을 잘 봐두고 싶어."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한 시간 남짓 가파른 산길을 걸어왔으
므로 미찌꼬의 몸은 땀이 배어 있었고 뺨은 붉으스레했다.
"마사오, 경험은 있어?"
미찌꼬가 곧바로 물었다. 마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게 되
면 다에꼬와의 사이를 알리게 되는 셈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자신은 없지만."
"전부 너에게 맡기겠어. 난 지시대로 하면 되지?"
일상적인 일에 착수하는 듯한 말투였다. 이제까지 마사오가 여자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상대였다. "엉뚱한 곳에서, 전
혀 뜻밖의 여자와 첫 체험을 하게 되었군. 그렇지만 관념적으로 실험
하려는 것이니까 육체적으로 꽤 어려울지도 몰라. 단단히 닫혀 있는
건 아닐까?"
마사오는 창고 문을 닫으러 갔다. 열 때와 똑같이 문은 삐걱거리며
좀체 쉽게 닫혀지질 않았다. 겨우 문을 닫고 나자 창고 안은 곧 어두
워졌다. 그러나 지붕 사이에 난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빛 때문에 아주
깜깜하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마주섰다.
낮잠을 자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분명 꿈은 아니었다. 이런 기
회가 또 있을까? 없을 것이다. 틀림없이 미찌꼬가 계속 빨고 있음을
느끼면서 마사오는 그녀의 볼을 감쌌던 손을 늦추었다.
마사오가 미찌꼬에게 입술을 빨라고 한 것은 키스를 가르쳐 주기 위
해서가 아니었다. 관능적인 기분에 잠겨 보려는 생각도 아니었다. 일
종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마사오가 얼굴을 떼려고 할 때 둑 위에서 소리가 났다.
"대담한 녀석이군."
타교 중학생 둘이 서 있었다. 호크와 단추를 풀어헤친 채 모자를 삐
딱하게 얹고 팔장을 꼬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른 얼굴을 떼고 위를 쳐다보았다. 후박나무 게다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세게 노는 녀석들임을 알 수 있었다. "함정에 걸려든 게 아
닐까?" 놈들은 키도 크고 몸집도 단단해 보였다. 덮쳐 오면 저항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마사오는 각오를 했다. "긴이 녀석!" 다만 지금
까지 미찌꼬가 했던 말고 녀석들은 비슷한 데가 없었다.미찌꼬는 공
모자가 아닐찌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또 귀찮은 일이었다. 미찌꼬
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테니까.
모르는 체하면 오히려 위험할 것 같았다. 마사오는 손을 들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미안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두 남자는 서로 쳐다보았다. 마사오의 반응
이 의외인 모양이었다. 미찌꼬는 굳어진 채 수면만을 응시하고 있었
다.
"너, 몇 학년이야?"
아마 저 두 녀석은 5학년일 것이다. 모가짐이나 얼굴에서 그런 게
풍겼다. 아무리 학교가 달라도 선배는 선배였다.
"4학년입니다."
"뭐어?"
두 사람은 또 마주보았다. 천천히 이쪽을 협박해 올 태세였다.
"4학년이 대단하군. 너 이쪽으로 와 봐."
그때 미찌꼬가 갑자기 돌아서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깜찍하게
두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겁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역시, 아는 사이인가? 몰래 미행했군."
그런데 둑 위에 있던 두 녀석의 반응이 또 의외였다.
"야, 4학년."
"예."
"그 애의 입술을 빌리고 싶은데, 어때? 싫다고는 할 수 없을 거애.
아예 드러내놓고 했으니까."
마사오는 서로 등을 진 채로 미찌꼬에게 살며시 물었다.
"모르는 놈들이야?"
미찌꼬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몰라."
"선배님, 못 본 척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마사오는 아예 손바닥을 붙여올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런 공손한
절도 경우에 따라서는 당당해 보인다. 이럴 때 좀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굳이 그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저 녀석 아주 능글맞는데. 좋아. 그러나 그냥 봐 줄 수야 없지. 벌
금을 좀 받아 볼까?"
그렇지만 두 녀석은 앞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벌금을 받겠다는 것은
미끼였다.
"벌금을 안 내려면 넌 가고 여자애만 남겨."
마사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읍니다."
부드러운 말투가 되도록 애썼다. 험악한 분위기가 되어 버리면 자신
의 손해였다. 이런 무리들의 무서운 점은 변덕이고 본인들 자신도 농
담과 진담의 구별을 짓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우리 사촌누나거든요."
"뭐, 사촌이라고?"
두 녀석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뭔가 쑤근거렸다.
"그렇다면 봐 줄까?"
"야, 임마 대낮이야. 사촌간은 한밤중에 만나는 거야. 알았어?"
(이거.... 이 말만 보면..일본에서는 당연시 되는 관계같은데.. 이거
너무..한거 아닌가요..이야기는 들었지만..실제사항이면 좀 그런데요.
물론 이것이 소설이지만.. 은연중에 실재의 이야기가 나오니 뭐.. 사실로
봐도 무방할것 같은데..?????)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중에 담
뱃불을 붙여 문 녀석이 연기를 뿜어내더니 침을 탁 뱉고는 또 시비를
걸어왔다. 이미 틀린 걸 알았으면서도 아쉬운 게 있는 모양이었다.
"여자애, 다시 한번 얼굴을 돌려 봐."
마사오는 미찌꼬의 팔꿈치를 잡았다. 미찌꼬는 두 사람에게 얼굴을
돌렸다. 잠깐 동안이었고 본래로 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 조거 아까운데....."
"야, 야, 가자."
두 녀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옆걸음질을 쳤다. 여전히 미찌꼬에게
눈을 두고 있었다.
"선배님들, 이 다음에 제가 한턱 낼께요."
"시끄러워."
마사오의 말이 건성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다는 듯이 쏘아 붙이더니
사라졌다.
녀석들이 걱정스러운 듯 미찌꼬가 물었다.
"또 오지 않을까?"
"역 쪽으로 갔으니까 괜찮을 거야."
미찌꼬도 마사오와 나란히 누웠다. 보통 여자라면 "이제 그만 가"
하고 무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찌꼬는 녀석들을 대하는 태도도 능
숙했고 자기 자신도 침착했다.
"미찌꼬, 너 가만 보니까 남자를 다룰 줄 알던데? 경험이 많은가 보
지?"
"저런 패거리들은 남자 심리를 잘 이용해서 다루어야 돼. 난 남자의
심리에 대해서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어. 연구도 좀 했지."
"남자 심리?"
"응."
그 다음에 미찌꼬는 똑같은 말투로 또 마사오를 경악케 했다.
"그것뿐이 아니라 생리도 연구했어."
"생리? 뭘 연구했다는 거지?"
"내 또래 여자애들은 모두 남자의 심리뿐만 아니라 몸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고 있어. 대부분은 흥미가 없는 척하지. 물론 몇몇 애들은
정말로 흥미를 못 느끼지만. 아직 어린애니까 그럴 거야."
미찌꼬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역시 미찌꼬는 여느 여자애가 아니
었다.
"얼마 전에 남학생 셋과 같이 트럼프를 한 적이 있었어. 트럼프가 끝
나자 남자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 취하니까 본심을 털어놓기 시
작하는데 아주 재미있었어."
"긴이도 있었어?"
"아니, 긴이는 없었어. 어쩌다가 노골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곧 남자
의 몸이 화제거리가 됐어. 한 사람이 부추겨서 나머지 두 사람이 경쟁
의식을 느꼈어. 술은 사람에게서 수치심을 빼앗나 봐."
"맞는 말이야."
"그래서 부추긴 사람이 재미있어 하면서 더욱더 우쭐대어 비교하게
까지 된 거야."
"놀랍군."
"나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청했어. 그래도 난 그런 기회는 좀처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신경쓰지 말고 서로 대 보라고 했어.
세 사람 다 깜짝 놀라더군. 그렇지만 오기가 생긴 두 사람은 이제 뒤
로 물러날 수 없었어. 승낙했어."
"술이란 무섭군."
"나도 세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했어. 그리고
두 사람 다 뒤로 돌아서 바시라거리더니 다시 방향을 바꾸었을 때는
자신을 꺼내놓고 있었어."
"....."
"흥분 상태가 되어 있었어. 난 얼굴을 돌리고 싶은 걸 참고 똑바로
봤어. 처음이야. 두 사람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잡아당기기 시작했어.
뭘 경쟁하는 건지는 알았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그때까지도 짐작을 못
했었어."
마사오는 생각했다. 남자들도 파렴치했지만 미찌꼬도 대단한 배짱
이었다. 꽤 이름이 난 불량소녀라도 벌써 동망쳤을 상황이었다.
"난 마지막까지 관찰했어. 서는 것도 봤어. 결국 키가 큰 사람이 멀
리까지 나가서 이겼지만 생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지. 위치
가 높으면 다다미에 떨어질 때까지 날아가는 거리가 길어지는 건 당연
하잖아."
"미친 작자들이군."
"그걸 지켜보고 난 그대로 자리를 일어나 돌아왔어. 그런 걸 보니까
동류 의식을 못 갖겠더라구. 그 후 그 세사람과는 사귀지 않았어. 길
에서 만나도 인사를 주고받기만 했어. 그 사람들은 내가 어린 마음에
혐오감을 느낀 거라고 생각할 거야. 실은 그런 게 아니라 내겐 좋은
공부가 되었어. 그들이 내 실험 대상이 되어 준 것에 감사할 뿐이야.
교제하지 않는 건 필요 이상으로 친밀감을 갖게 해선 안 되니까. 날
위험에 빠드리고 싶지 않아."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굉장해. 너 같은 여자애는 별로 없
겠다."
"놀랐어?"
"누구나 놀랄 거야. 넌 여의사나 과학자가 될지도 몰라."
"그렇게 머리가 좋진 않아. 보통 여자야. 다만 다른 애들은 나처럼
호기심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그러면 나도 네 실험 대상이로군?"
"지금부터야. 나와 함께 실험대에 올라가 줄래? 키스 정도는 대개
상상할 수 있었어."
"이제부터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난 너를 선택했어. 네가 나를 선택해 줄지 어떨지 결정을 내려 주
었으면 좋겠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사오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찌꼬의 얼굴에 다가갔다. 입맞춤을 하자 미찌꼬는 양팔로
마사오의 어깨를 감싸고 곧 빨아 왔다. 짧은 키스 후, 마사오가 속삭
였다.
"즉, 네 말은 경험해 보고 싶다 이거지?"
미찌꼬는 끄덕였다.
"왜 지금까지 사귀어 온 사람들과는 실험하지 않았어?"
"불량스러웠어. 뒤탈이 두려웠고, 한 번만으로 인연을 끊을 수는 있
어도 자랑삼아 소문을 낼 거야. 이런 실험은 비밀이 중요해. 더구나
좋아하는 사람이어야만 돼."
"왜 나를 선택했지?"
"저번에 만났을 때 느꼈어. 멋지구나 하고. 게다가 긴이가 여러 가
지를 말해 주었어."
"나도 소문낼지 몰라."
"아니, 넌 그렇지 않아. 다에꼬와의 일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잖아."
놀랐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알았어?" 엉겁결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너와 다에꼬는 비밀로 할지 몰라도 난 다 안다구."
"넌 다에꼬를 알고 있어?"
"아니야." 미찌꼬는 고개를 저었다.
"예쁜 애 같아. 아직 본 적은 없지만."
강의 수면이 반짝거렸다. 해가 기울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 들었어?"
"그건 말할 수 없어.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사오는 혼자 끄덕였다. 소문 따위, 마사오 자신은 아무렇지 않았
다. 오히려 환영했다. 다에꼬가 마사오의 연인이라는 것을 알리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렇지만 다에꼬로선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혼
담이 오고가는 여자니까.
마사오는 다시 한번 풀 위에 누워 팔꿈치를 괴고 미찌꼬를 내려다보
았다. 미찌꼬는 그대로 누워 먼 하늘에 눈을 주고 있었다. 뺨이 투명
하고 빨갰다. 다에꼬보다도 피부가 고운 듯했다. 농민의 자식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다에꼬와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좋
을 게 없다는 것도 분명했다. 마사오는 화제를 돌렸다.
"미찌꼬, 내가 네 실험을 승낙한다면 어떻게 할 거지?"
"기뻐."
"언제, 어디서?"
"언제든지 좋아. 오늘이라도, 지금부터라도."
"이런 곳은 무리야."
"그러면 어디로 가자."
"난 아직 너의 이름 밖에 몰라."
"더 알 필요가 있을까?"
"물론이지."
"너와 똑같은 나이의 보통 여자애. 그것으로 좋잖아? 부모가 무엇을
하는지, 가족이 누구누군지, 주소나 본적, 성격, 그런 건 필요없잖
아? 안 그래?"
"......."
"꼭 알고 싶으니?"
"....아니."
"그러면 지금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갈까?"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조건을 붙였다.
"단, 내일부터는 너를 만나지 않겠어."
"그건 나도 그래."
마사오는 일어섰다. 몸이 바지를 땡기고 있었지만 이제 미찌꼬의 눈
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눈치채도 괜찮았다.
한 시간쯤 후에 마사오와 미찌꼬는 산속의 석탄 창고에 도착했다.
다에꼬와 함께 갔던 산은 아니었다. 다에꼬와의 장소에 데리고 가는
것은 역시 꺼림칙했다. 길에서 상당히 깊숙이 들어간 곳에 그 창고는
있었고 기대대로 석탄을 굽는 흙가마는 깨친 채였다. 문은 닫혀져 있
었다. 새소리와 골짜기의 여울물소리, 바람 소리뿐이었다.
마사오는 창고 문을 열었다. "자, 들어가자."
무서워하지도 않고 산속 깊은 창고 앞까지 따라온 미찌꼬는 그제서
야 비로소 주저하기 시작했다.
"여기로?"
"그게 안전해. 몇 시간이라도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
지. 자, 빨리. 산나물 캐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면 안 된다구."
우선 마사오가 들어갔다. 곰팡내는 나지 않았다. 풀 냄새가 훅 끼쳐
왔다. 마사오를 따라 미찌꼬도 들어왔다. 조용한 어조로 미찌꼬는 말
했다.
"장소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나와 너야."
"그래. 맞아."
창고 안에 움직이는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사오는 미찌꼬를 안
았다. 미찌꼬는 가방을 떨어뜨렸다.
"곧 어두워져. 너의 얼굴을 잘 봐두고 싶어."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한 시간 남짓 가파른 산길을 걸어왔으
므로 미찌꼬의 몸은 땀이 배어 있었고 뺨은 붉으스레했다.
"마사오, 경험은 있어?"
미찌꼬가 곧바로 물었다. 마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게 되
면 다에꼬와의 사이를 알리게 되는 셈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자신은 없지만."
"전부 너에게 맡기겠어. 난 지시대로 하면 되지?"
일상적인 일에 착수하는 듯한 말투였다. 이제까지 마사오가 여자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상대였다. "엉뚱한 곳에서, 전
혀 뜻밖의 여자와 첫 체험을 하게 되었군. 그렇지만 관념적으로 실험
하려는 것이니까 육체적으로 꽤 어려울지도 몰라. 단단히 닫혀 있는
건 아닐까?"
마사오는 창고 문을 닫으러 갔다. 열 때와 똑같이 문은 삐걱거리며
좀체 쉽게 닫혀지질 않았다. 겨우 문을 닫고 나자 창고 안은 곧 어두
워졌다. 그러나 지붕 사이에 난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빛 때문에 아주
깜깜하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마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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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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