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랑과 진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두 사람의 출현을 경계하고 있
는 것이다. 이 정도 깊은 숲속이라면 사람의 그림자가 없을 것이다.
오직 두 사람뿐.
마사오는 신사에서 깊숙이 들어온 숲속에서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자 힘껏 다에꼬를 껴안았다. 다에꼬의 저항은 없었고 마사오의
손길은 다에꼬의 몸 깊숙한 곳까지 쉽게 접근해 갈 수 있었다.
"마사오, 만나고 싶었어."
다에꼬의 그 말은 그냥 만나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서로 은
밀한 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는 게 틀림없었다. 마사오의 손놀림
이 빨라지자 마침내 다에꼬도 마사오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젠 마
사오의 요구를 기다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능동적인 손놀림이었다.
이윽고 다에꼬는 능숙하게 단추를 풀었다. 그 다음 동작도 부드러웠
다.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
"없어."
부근의 새보다도 먼 곳에 있는 새의 지저귐이 더욱 크게 들렸다. 주
위에 사람이 없다는 뚜렷한 증거였다. 다에꼬는 마사오를 꺼냈다. 손
바닥이 차가왔다. 그러나 곧 체온이 서로 섞여 밖으로 나온 마사오의
몸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다에꼬의 손가락은 마사오가 가르쳐 준 것
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그러나 그 이상
의 것은 모르고 있었다. "미요는 알 텐데. 내가 다에꼬를 먼저 기쁘게
해 줘야지." 땅바닥의 풀은 이슬에 젖어 있어 누울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선 채였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허리를 껴안고 쭈그려앉았
다. 다에꼬는 상수리나무에 등을 기대어 상체를 뒤로 젖혔다. 마사오
는 다에꼬를 벗겨 나갔다. 한 발씩 게다에서 발을 떼며 다에꼬는 스커
트 아래로 깜찍스런 팬티를 벗었고, 마사오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
다. 마사오의머리가 다에꼬의 스커트 속으로 들어갔다.다에꼬의 몸
은 더욱더 뒤로 젖혀졌다. 경련이 일었다. 마사오의 입술이 꽃잎을 벌
리고 샘을 찾아 들어가자 다에꼬의 호흡이 가빠졌다. 마사오의 머리채
는 다에꼬의 두 손에 쥐어뜯기고 있었다. 다에꼬의 몸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초조해 해서는 안 된다. 조급해서도 안 된다. 다에꼬가 어떻게 반응
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며 즐겨야 한다. 마사오도 이제는 다에꼬의 변
해 가는 모습을 즐길 만큼 사랑을 나누는 기술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
러나 다에꼬의 샘물이 혀끝으로 흐르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다에꼬
는 절박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마사오의 머리채를 바싹 움켜쥐었다.
"아, 마사오. 지금이야. 지금."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다에꼬의 신음소리가 마사오의 머리 위에
떨어짐과 동시에 다에꼬의 두 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래도 마사오는
계속 다에꼬를 파고들었다. 다에꼬는 발버둥치다시피 했다.
"이제, 이제 됐어."
곧 호흡을 가다음은 다에꼬는 마사오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마사오
의 부푼 몸 끝이 코에 닿을 정도로 다에꼬는 웅크린 자세로 바싹 죄어
앉았다. 마사오도 굳이 가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사오는 곧 다
에꼬를 일으켜세웠다.
"오늘은 손으로."
"왜?"
"오늘은 그게 좋겠어."
마사오는 자기가 쏟아 놓은 사랑의 액을 다에꼬에게 직접 확인시키
고 싶었다. 액의 양을 다에꼬가 직접 눈으로 봐야 했던 것이다. 증명
이 필요했다. 다에꼬는 마사오의 요청에 순순히 따랐다. 두 사람이 같
이 다에꼬의 손놀림을 볼 수 있게 마사오는 다에꼬를 자기와 똑같이
마주서게 했다. 마사오는 곧 절정에 육박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어
깨를 껴안으며,
"가만히 보고 있어" 하고 말했다.
"응." 다에꼬의 목소리도 고조되어 있었다. 마사오는 정상에 오르기
시작함을 알렸다.
"아, 어떻게 하지?"
다에꼬의 손놀림은 더욱 급해졌다. 마사오가 "이제 됐어" 하고 말할
때까지 계속해야 된다는 것을 다에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침내 마
사오의 몸은 터졌고 다에꼬의 손이 떨어졌다. 준비한 손수건으로 자신
의 젖은 손을 닦은 뒤 다에꼬는 마사오의 앞에 다시 웅크리고 마사오
를 입에 물었다. 손수건이 아니라 입으로 닦는 것이었다.
"많다...."
마사오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마사오가 확인
시키고 싶었다.
"바람은 피우지 않았구나."
"물론이지."
두 사람은 포옹하며 입맞춤을 했다. 다에꼬는 정열적이었다. 오랜
키스가 끝나자 마사오가 주머니에 넣었던 것을 꺼내 손가락에 걸고 높
이 치켜들었다. 눈을 흘기며 팬티를 나꿔챈 다에꼬가 마사오에게 명령
을 내렸다.
"뒤로 돌아."
마사오는 뒤로 돌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파랬다. 어젯
밤 미요의 유혹에 맞서 격전을 벌였던 일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
다. 등 뒤에서 다에꼬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때때로 수업은 오전중에 끝났다. 식량 사정이 악화되었다. 곡식 배
급은 반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거르고 넘어갈 때도 한두 번 있었다.
도시락을 갖고올 수 없는 학생이 많아졌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
다. 배급 중에서도 쌀이 가장 귀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죽이나 잡
곡으로 끼니를 이었고 쌀밥이란 과분한 것이었다. 죽을 도시락에 쌀
수는 없었다.
"학생 대부분이 도시락을 갖고 오지 않으니 오전 수업만 할 수밖에
없어."
모두들 그렇게 말하긴 해도 내심으로는 수업 단축을 반기고 있었다.
그래도 시골 학교인 데다가 농가의 아이가 많아서 학급의 반수는 도시
락을 가져올 수 있었다. 단 부모에게 "수업은 오전만"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을 하면 오전중에 학교가 파하자마자 집에 빨리
돌아와서 집안일을 거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집안일보다는 학교에
서 천천히 도시락을 까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운동장에서 달리
기도 하고, 혹은 어디론가 놀러다니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마사오
가 토요일 밤 술 좌석에서 받았던 성찬은 일상 생활 속에서는 꿈과 같
은 것이었다. 그 정도면 일반 서민의 한 달 지출비에 필적할 만했다.
마사오는 어머니에게 수업은 오전만이라고 알렸다. 그 이유도 알렸
다. 그리고도 도시락은 갖고 다닐 수 있었다. 물론 마사오의 집은 농
가가 아니므로 반쯤 보리가 섞인 밥이었다. 때로는 보리가 좁쌀이 되
기도 하고 감자가 되기도 했다. 감자가 든 밥은 따뜻할 때는 괜찮지만
식으면 영 먹기가 좋지 않았다.
그날도 수업은 오전 수업뿐이었다. 도시락을 먹고나서 마사오와 지
까후지는 운동장으로 나왔다. 운동장 주위는 아름드리 소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다.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기보다는 중학교 창설시 소
나무 숲을 운동장으로 개간하여 숲속에 운동장이 들어가 앉은 셈이었
다. 운동장 남쪽 끝에는 소나무 숲에 잇대어져 고운 잔디가 깔려 있었
다. 두 사람은 잔디 위에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웠다. 하늘은 푸르렀고
여기저기 흰구름이 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구름을 보면서 지까
후지가 말했다.
"너, 그 귀여운 여자를 안아 보지도 않은 것 같더라."
"그게 무슨 물이냐?" 마사오는 적지않이 놀랐다.
"미요 말이지? 그 애가 그렇게 말하던?"
"응."
지까후지는 마사오와 헤어진 직후의 일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첫 경
험 얘기는 나중으로 돌릴 모양이었다.
"부엌에 가서 물을 마셨어. 물독 옆에 술이 있더군. 한 되 가량 됐
을 거야. 잘 됐다 싶어 단숨에 퍼 마셨지. 유곽에서 부엌에 숨어들어
술을 훔친다. 좀체 할 수 없는 곡예잖아?"
지까후지 말에는 조금도 과장기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극적이었
다. "이 녀석, 큰 인물이 되겠군. 나는 발밑에도 미칠 수 없는 -."
"적어도 우등생이 할 짓은 아니었군?"
"난 이번 학기부터 우등생은 그만 두기로 했어. 어른들 세계나 사회에
충실한 양이 될 필요는 없어. 토요일 밤은 나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
는 연회장이었어."
"그래서?"
"어쨌든 술을 마시고 계단을 올라왔어. 네가 있던 방 앞을 지나치려는
데 어두운 복도에 그 애가 서 있었어."
"미요가?"
"그래."
"옷을 다 벗고?"
"아니, 잠옷을 입고, 그렇지만 허리띠는 하지 않았어. 손으로 앞을 여
미고 있었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어."
"......."
"마사오는 갔어요 하고 말했지. 그 여자는 끄덕였어. 그러면 잘 자요
하고 미요의 옆을 지나가려고 했어. 그런데 팔을 잡는 거야."
"재미있어지는군."
"진지하게 들어."
"알았어."
그때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와 둘을 내려다보며 선 얼굴이 있었다. 긴
이였다.
"햇볕 쬐는 거야?"
"응."
"마사오, 후미에와는 잘 지내니?"
마사오는 일어나 앉았다. 지까후지는 모자를 얼굴에 덮고 자는 척했다.
"또 무슨 일이 있어?"
"아니, 그렇지 않아. 오까모또는 이제 후미에를 단념했어. 안심해. 그
런데 너를 소개시켜 달라는 여자애가 하나 있어. 그래서 후미에와의
사이를 알고 싶었던 거야."
"후미에와는 단지 친구고, 날 만나고 싶다는 여자애는 단지 호기심에
서 그럴 거야."
"근처의 여학생이 아니야. 그렇지만 넌 그 애와 벌써 얘기한 적도 있
는 걸!"
".....?" 짐작이 가지 않았다.마사오의 행동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다.
먼 마을의여학생과는 말할 기회도 없었다.
"기억나지 않아?"
"잘못 봤겠지?"
"아니, 너야. 네 사진을 보여 주니까, 틀림없다고 말하던데."
"이상하군."
"글쎄, 좋아. 만나기만 만나 볼래?"
"만나는 정도라면 좋아. 그러지만 착각일 거야."
지나치면서 농담삼아 말을 건 정도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아
는 애가 있을 리 없다. 더구나 긴이를 알고 지내는 부류의 아이라면
옷차림새만 봐도 대뜸 알 수 있었을 테고 그런 여학생에게 마사오가
먼저 말을 걸었을 리는 더구나 없다.
"어쨌든 만나 줘. 난 아무래도 너와 인연이 있는 것 같아. 만나면 너
도 생각날 거야."
긴이가 가자 지까후지는 모자를 얼굴에서 떼었다.
"뭐야? 저 녀석?"
"도무지 모를 애야."
"저 녀석은 불량배면서도 인텔리 같은 묘한 점이 있어. 강경파도 온건
파도 아니야. 묘하게 어두워. 저런 녀석과는 사귀지 마."
"걱정하지 말라구."
마사오는 다시 지까후지와 나란히 누웠다. 구름의 위치가 바뀌었고
모양도 조금 전과 딴판이었다.
"나와 미요는 서로 얼굴을 마주쳐다보았어. 그 애는 매달리는 듯한
눈빛이었어."
미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젯밤의 얼굴이었다. 먼 기억 속에 있었
다. 마사오는 말했다.
"선한 눈이야. 남자의 눈을 끄는 눈이지."
"나도 그렇게 느꼈어. 미요는 말했어. 잠깐 들어와요. 목소리는 작
았지만 저력이 있었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지. 난 무의식중에
고개를 그덕이고 네가 있던 방에 들어갔어."
"그래서?" 여러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마음은 편했다.
"다미의 방과 아주 똑같은 방이었어."
"이 다음에는 넓은 방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세계에도 단계가
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다미와 미요는 신참이니까. 어쨌든 방은 똑같았고,
장식품만 조금 달랐지. 장식품은 다미의 방에 더 많았어."
"......"
"난 앉았어. 미요는 내 앞에 앉았어. 그리곤 단정히 앞을 여미고 있었
어. 능숙했지. 다만 젖가슴께가 느슨해져서 맨살이 보였어. 젖꼭지도
조금 보였고. 미요는 그걸 별로 개의치 않았어. 커다란 눈으로 날 째
려보더군."
"그냥 쳐다봤다고 그래."
"아니야. 째려보았어. 그런 느낌이었다구."
"고집이 센 여자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별로 몰랐는데 다미
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갖고 있었어."
"그럴 거야. 그 세계 여자라도 각각 다르다구. 좋은 공부가 되었군."
"날 계속 째려보면서 미요는 이렇게 말했어. 잘 들어. 이렇게 말했다
구. 날 안아 줘요."
"그럴 줄 알았어."
"난 놀랬어. 다나까는 이골이 난 암거래상인데 이 여자도 이중으로 장
사를 할 생각인가 하고 한 순간 혼란에 빠졌어. 그렇지만 그런 게 아
니었어."
지까후지가 새삼스러운 투로 물어 왔다.
"니네 진짜 결합하지 않았어?"
"응."
"서로 만지기만 했겠구나?"
"응."
"그런데도 끝까지 가진 않았단 말이지?"
"그래."
배트가 공을 치는 소리가 났다. 깨끗한 소리였다. "직구군. 잘 맞았
어." 운동장 맞은편에선 야구부원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도시락도
싸가지고 다닐 수 없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과격한 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든든하게 먹고 마시는 무리도 있었다. 운동부원들은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지고 다니는 애들이었다.
지까후지는 몸을 일으키며 잔디에 팔꿈치를 대고 손바닥을 턱에 고
였다.
"미요는 다나까가 찾아왔던 사실이며 너하고 있었던 얘기를 모두 내게
말해 주었지. 그리고 내게 안겨 왔어."
"능히 그럴 만한 애야, 미요는."
"난 놀랬어. 어쨌든 그런 곳의 관계나 예절을 난 잘 몰라. 여자의 요구
대로 된다면 굉장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기다리라고 했어. 그리곤 다미의 방으로 돌아갔어. 미요도 나와 함께
갔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다미와 미요가 의논을 했지. 다미는
승낙했고 난 미요와 함께 미요의 방으로 다시 돌아왔어."
"다미가 선뜻 승낙해 주었니?"
"동료니까. 미요의 입장을 이해해 준 거지. 게다가 다미는 이제 할 일
을 다 한 셈이었으니까."
"넌 내 뒤처리를 해준 셈이군."
"그렇게 됐어."
"정력적이군."
"난 네가 누워 있던 이불에 들어가 네가 쓰던 베개를 베었지."
"이상한 기분이었겠군."
"아니, 그런 감상에 잠길 새 없이 곧 미요가 다가왔어. 농도 짚은 서
비스를 시작했어."
"......."
"다미와는 전혀 달랐어. 다미는 측은하기만 했어. 심정적인 면이 강했
어. 미요는 그렇지 않았어. 선천적으로 남자와 노는 걸 즐기는 것 같
았어. 나도 열중했어. 상대방도 열심이었고. 어때? 애석하지 않아?"
"조금 그런데."
"넌 바보야. 보물섬에 들어가 빈 손으로 나와 버렸어."
"바보일지도 모르지."
지까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누었다.
"아침까지 난 미요의 방에 있었어. 다나까는 부르러 오지 않았어."
"그래?"
"아침 일찍 미요가 흔들어서 깼지. 미요는 또 날 자극하기 시작했어.
이제 난 베테랑이 된 기분이야. 하룻밤 만에."
"다미는 어떻게 되었지?"
"모르겠어. 가지 않았어. 미요가 날 문까지 바래다 주었어."
"여자를 산 다음 날 뒤돌아서 올 때는 강한 자기 혐오와 후회가 엄습
한다고 하던데, 우리들 나이에는 예외없이 그럴 것 같아. 넌 어땠어?"
"태양이 있었어. 지금의 이 태양보다 훨씬 더 컸었지."
"아침엔 그렇지."
"차원 낮은 소리 하지 마. 어쨌든 내 기분은 그랬어. 그날 아침의 태
양은 아찔했다구. 내 몸 속에는 오염된 슬픔 같은 것이 분명히 들어
있었어."
"......"
"너, 미요에게 들었는데 애인이 있다며? 그래서 마지막엔 미요를 거부
한 거야?"
마사오는 대답하지 ㅇ낳고 눈을 감았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지까후지의 말을 마사오는 의외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까후지
의 행동도 미요의 정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풍부한 경험을 가
진 미요에게 여러 가지 배우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없지 않
았다. 다만 첫 경험인 지까후지가 숙련된 여자를 만족시켰다는 것엔
존경스런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창녀는 남자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연극
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일이 많다고 해. 미요의 경우가 그렇지 않았
을까?"
지까후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연극이 아니야. 몸의 반응으로도 알 수 있어. 정말이야. 근분
적으로 색정적인 여자였어. 돌아올 때 또 와 달라고 말했어."
"갈 거야?"
"모르겠어. 가고 싶어도 돈이 없지. 또한 여자를 사는 것이 습관이
되면 내 인생을 망쳐 버릴지도 몰라. 내게 자세심이 필요한 건 지금부
터야."
"또 놀러가면 다미는 어떻게 되지?"
"다미를 상대로 들어가서 살짝 미요도 부르지. 그렇지만 난 역시 자
제해야 돼. 평범한 세계의 여자를 찾아야 할 테니까. 너의 자세심보다
도 이제부터의 내 자제심이 더 대단한 거라구."
"그럴 거야. 넌 금지된 나무 열매를 맛봤으니까. 이제부터의 너를 주
목하겠어."
지까후지는 마사오 혼자 이른바 순결이라는 것을 지켰다는 것에 그
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고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비밀을 가졌다
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전의 다미의경우는 어w어? 역시 아줌마가 오지 않았어?"
"그랬어. 서른 살을 넘은 한 여자가 왔었어. 두텁게 화장을 했더군.
처음엔 그 아줌마가 나와 예행 연습을 했어. 다미는 그것을 보고 있었
고. 진지한 얼굴이었어. 아줌마가 여러 가지를 다미에게 가르쳐 주었
어. 다미는 끄덕이면서 들었고, 난 곧 폭발한 것 같았어. 아줌마도 여
자니까 곧 민감해졌어. 그러자 그 아줌나는 나를 자기 몸에서 얼른 떼
내고 위세서 나를 누르며서 내 뺨을 때렸어. 술수를 썼던 거야. 난 폭
발을 벗어날 수 있었어. 글쎄, 어쨌든 예행 연습이 끝난 다음에 아줌
마는 나와 다미에게 강의를 했어. 그 뒤 난 아줌마가 가르쳐 주는 대
로 다미의 몸 속에 나를 넣었고 아줌마는 가 버렸어."
"놀랍군."
"사무적인 거야. 마치 바느질하는 법을 가르치는 듯했어. 그렇지만 난
아줌마에게 호감을 느꼈어."
"뭐?"
"내 것을 칭찬해 주었거든. 사실 난 그것이 제일 걱정되었었어. 크기만
이 아니라 형태도 좋다고 했어. 자기 정도라면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
다고 큰소리쳤어. 글쎄, 천 명 이상의 남자를 아니까 그럴지도 몰라."
"아줌마도 기뻐했어?"
"아니, 그렇진 않았어. 하지만 나중에는 나를 가르칠 때 즐기고 싶었
다고 고백했어. 어쨌든 사무적으로 교사 역할만 끝내고 갔지. 어느
정도면 자유자재로 될까?"
다음 날인 화요일 점심 시간이었다. 긴이가 마사오에게 다가왔다.
"잠깐 복도로 나가자."
주머니에서 긴이는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여학생의 상반신 사진이
었다.
"예쁜 애군. 이 애가 나와 만나고 싶다는 애야?"
"그래. 생각나지 않아?"
"글쎄."
사진 속의 여학생이 미소를 짓는 듯했다. 확실히 어디선가 만난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긴이가 드디어 그 여학생의 정체를 밝혔다.
"기차 안에서 네가 그 애에게 말을 걸었었대."
"그 애가? 알겠어. 아, 이 애가 그 애군. 음, 확실히 그렇군."
"알긴 아는 구나. 너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내게 너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난 반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지. 곧 너를 가리
켰어."
"이 애가 너희들하고 같이 어울리니? 그런 애로 보이지는 않던데."
"착실한 애야. 학교도 착실히 나가고. 우리하고는 영화를 보러 가거
나 말을 하면서 산책을 하는 정도야. 같은 학년인데 집이 이사갔기 때
문에 기차 통학을 하고 있고. 굉장한 책벌레야. 이번 토요일 오후가
어때?"
"좋아. 단, 문제가 되는 건 싫어."
"걱정하지 마. 이 애는 아직 애인 같은 건 없으니까. 애인이 있다면
어디 나에게 부탁하겠어?"
금요일 아침, 또 긴이가 다가왔다.
"내일 세 시, 역 우물가로 올 수 있어?"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찬지? 나와 줘. 그 애가 먼저 나와서 널 기다릴 거야. 그 애 이름
은 미찌꼬야. 가시와끼 미찌꼬."
"넌?"
"너희들이 벌써 말을 한 적도 있으니까 내가 또 소개할 필요는 없잖아.
너희들끼리만 만나."
"그 애, 후미에와 친구니?"
"아니. 서로 알지도 못할 거야. 후미에보다는 착실하지."
다음 날인 토요일, 또 긴이가 와서 다짐을 두었다.
"약속, 지킬 거지?"
"염려 마. 갈 거야. 만일 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해도 가기는 갈
거야. 한번 더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한 여자였으니까."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어. 난 그 여자에게 부탁을 받았을 뿐이라구.믿어."
"믿을 수는 없어. 그렇지만 산책할 겸 가 보겠어."
"어쨌든 난 이렇게 주선만 할 뿐이야. 솔직히 말하면 네가 가 부면 미찌꼬
가 자명종 시계를 내게 선물하기로 돼 있어."
"자명종 시계? 놀기만 하는 너에게 자명종 시계라고?"
"미찌꼬다운 착상이고 그 아이 아니면 흉내도 낼 수 없는 선물이지. 자명
종 시계로 학교에 지각하지 말라는 뜻이야. 놀려니까 시계가 필요하지."
시간이 되어 마사오는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왔다. 자전거를 탄 건
낭만적인 밀회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 나타내기 위해서였
다. 만일 긴이와 만나게 되더라도 그렇게 굴욕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도중에 후미에를 만났다. 후미에는 마사로를 보자 양손을 뻗쳐 자전
거를 가로막아서더니 핸들을 잡고 다가왔다.
"오랜간만이야."
열차가 방금 도착했으므로 역에서 나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후미에는 남의 눈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친숙하게 대했다.
"건강했어?"
"별로 그렇질 못했어."
고개를 흔들어 보이는 후미에의 눈빛이 어떤 비밀을 고백하려는 듯
했고 하얀 얼굴에 우수가 드리워졌다. 그러면서도 요염한 색기를 띤
표정이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두 사람의 출현을 경계하고 있
는 것이다. 이 정도 깊은 숲속이라면 사람의 그림자가 없을 것이다.
오직 두 사람뿐.
마사오는 신사에서 깊숙이 들어온 숲속에서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자 힘껏 다에꼬를 껴안았다. 다에꼬의 저항은 없었고 마사오의
손길은 다에꼬의 몸 깊숙한 곳까지 쉽게 접근해 갈 수 있었다.
"마사오, 만나고 싶었어."
다에꼬의 그 말은 그냥 만나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서로 은
밀한 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는 게 틀림없었다. 마사오의 손놀림
이 빨라지자 마침내 다에꼬도 마사오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젠 마
사오의 요구를 기다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능동적인 손놀림이었다.
이윽고 다에꼬는 능숙하게 단추를 풀었다. 그 다음 동작도 부드러웠
다.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
"없어."
부근의 새보다도 먼 곳에 있는 새의 지저귐이 더욱 크게 들렸다. 주
위에 사람이 없다는 뚜렷한 증거였다. 다에꼬는 마사오를 꺼냈다. 손
바닥이 차가왔다. 그러나 곧 체온이 서로 섞여 밖으로 나온 마사오의
몸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다에꼬의 손가락은 마사오가 가르쳐 준 것
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그러나 그 이상
의 것은 모르고 있었다. "미요는 알 텐데. 내가 다에꼬를 먼저 기쁘게
해 줘야지." 땅바닥의 풀은 이슬에 젖어 있어 누울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선 채였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허리를 껴안고 쭈그려앉았
다. 다에꼬는 상수리나무에 등을 기대어 상체를 뒤로 젖혔다. 마사오
는 다에꼬를 벗겨 나갔다. 한 발씩 게다에서 발을 떼며 다에꼬는 스커
트 아래로 깜찍스런 팬티를 벗었고, 마사오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
다. 마사오의머리가 다에꼬의 스커트 속으로 들어갔다.다에꼬의 몸
은 더욱더 뒤로 젖혀졌다. 경련이 일었다. 마사오의 입술이 꽃잎을 벌
리고 샘을 찾아 들어가자 다에꼬의 호흡이 가빠졌다. 마사오의 머리채
는 다에꼬의 두 손에 쥐어뜯기고 있었다. 다에꼬의 몸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초조해 해서는 안 된다. 조급해서도 안 된다. 다에꼬가 어떻게 반응
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며 즐겨야 한다. 마사오도 이제는 다에꼬의 변
해 가는 모습을 즐길 만큼 사랑을 나누는 기술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
러나 다에꼬의 샘물이 혀끝으로 흐르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다에꼬
는 절박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마사오의 머리채를 바싹 움켜쥐었다.
"아, 마사오. 지금이야. 지금."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다에꼬의 신음소리가 마사오의 머리 위에
떨어짐과 동시에 다에꼬의 두 다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래도 마사오는
계속 다에꼬를 파고들었다. 다에꼬는 발버둥치다시피 했다.
"이제, 이제 됐어."
곧 호흡을 가다음은 다에꼬는 마사오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마사오
의 부푼 몸 끝이 코에 닿을 정도로 다에꼬는 웅크린 자세로 바싹 죄어
앉았다. 마사오도 굳이 가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사오는 곧 다
에꼬를 일으켜세웠다.
"오늘은 손으로."
"왜?"
"오늘은 그게 좋겠어."
마사오는 자기가 쏟아 놓은 사랑의 액을 다에꼬에게 직접 확인시키
고 싶었다. 액의 양을 다에꼬가 직접 눈으로 봐야 했던 것이다. 증명
이 필요했다. 다에꼬는 마사오의 요청에 순순히 따랐다. 두 사람이 같
이 다에꼬의 손놀림을 볼 수 있게 마사오는 다에꼬를 자기와 똑같이
마주서게 했다. 마사오는 곧 절정에 육박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어
깨를 껴안으며,
"가만히 보고 있어" 하고 말했다.
"응." 다에꼬의 목소리도 고조되어 있었다. 마사오는 정상에 오르기
시작함을 알렸다.
"아, 어떻게 하지?"
다에꼬의 손놀림은 더욱 급해졌다. 마사오가 "이제 됐어" 하고 말할
때까지 계속해야 된다는 것을 다에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침내 마
사오의 몸은 터졌고 다에꼬의 손이 떨어졌다. 준비한 손수건으로 자신
의 젖은 손을 닦은 뒤 다에꼬는 마사오의 앞에 다시 웅크리고 마사오
를 입에 물었다. 손수건이 아니라 입으로 닦는 것이었다.
"많다...."
마사오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마사오가 확인
시키고 싶었다.
"바람은 피우지 않았구나."
"물론이지."
두 사람은 포옹하며 입맞춤을 했다. 다에꼬는 정열적이었다. 오랜
키스가 끝나자 마사오가 주머니에 넣었던 것을 꺼내 손가락에 걸고 높
이 치켜들었다. 눈을 흘기며 팬티를 나꿔챈 다에꼬가 마사오에게 명령
을 내렸다.
"뒤로 돌아."
마사오는 뒤로 돌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파랬다. 어젯
밤 미요의 유혹에 맞서 격전을 벌였던 일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
다. 등 뒤에서 다에꼬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때때로 수업은 오전중에 끝났다. 식량 사정이 악화되었다. 곡식 배
급은 반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거르고 넘어갈 때도 한두 번 있었다.
도시락을 갖고올 수 없는 학생이 많아졌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
다. 배급 중에서도 쌀이 가장 귀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죽이나 잡
곡으로 끼니를 이었고 쌀밥이란 과분한 것이었다. 죽을 도시락에 쌀
수는 없었다.
"학생 대부분이 도시락을 갖고 오지 않으니 오전 수업만 할 수밖에
없어."
모두들 그렇게 말하긴 해도 내심으로는 수업 단축을 반기고 있었다.
그래도 시골 학교인 데다가 농가의 아이가 많아서 학급의 반수는 도시
락을 가져올 수 있었다. 단 부모에게 "수업은 오전만"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을 하면 오전중에 학교가 파하자마자 집에 빨리
돌아와서 집안일을 거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집안일보다는 학교에
서 천천히 도시락을 까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운동장에서 달리
기도 하고, 혹은 어디론가 놀러다니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마사오
가 토요일 밤 술 좌석에서 받았던 성찬은 일상 생활 속에서는 꿈과 같
은 것이었다. 그 정도면 일반 서민의 한 달 지출비에 필적할 만했다.
마사오는 어머니에게 수업은 오전만이라고 알렸다. 그 이유도 알렸
다. 그리고도 도시락은 갖고 다닐 수 있었다. 물론 마사오의 집은 농
가가 아니므로 반쯤 보리가 섞인 밥이었다. 때로는 보리가 좁쌀이 되
기도 하고 감자가 되기도 했다. 감자가 든 밥은 따뜻할 때는 괜찮지만
식으면 영 먹기가 좋지 않았다.
그날도 수업은 오전 수업뿐이었다. 도시락을 먹고나서 마사오와 지
까후지는 운동장으로 나왔다. 운동장 주위는 아름드리 소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다.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기보다는 중학교 창설시 소
나무 숲을 운동장으로 개간하여 숲속에 운동장이 들어가 앉은 셈이었
다. 운동장 남쪽 끝에는 소나무 숲에 잇대어져 고운 잔디가 깔려 있었
다. 두 사람은 잔디 위에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웠다. 하늘은 푸르렀고
여기저기 흰구름이 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구름을 보면서 지까
후지가 말했다.
"너, 그 귀여운 여자를 안아 보지도 않은 것 같더라."
"그게 무슨 물이냐?" 마사오는 적지않이 놀랐다.
"미요 말이지? 그 애가 그렇게 말하던?"
"응."
지까후지는 마사오와 헤어진 직후의 일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첫 경
험 얘기는 나중으로 돌릴 모양이었다.
"부엌에 가서 물을 마셨어. 물독 옆에 술이 있더군. 한 되 가량 됐
을 거야. 잘 됐다 싶어 단숨에 퍼 마셨지. 유곽에서 부엌에 숨어들어
술을 훔친다. 좀체 할 수 없는 곡예잖아?"
지까후지 말에는 조금도 과장기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극적이었
다. "이 녀석, 큰 인물이 되겠군. 나는 발밑에도 미칠 수 없는 -."
"적어도 우등생이 할 짓은 아니었군?"
"난 이번 학기부터 우등생은 그만 두기로 했어. 어른들 세계나 사회에
충실한 양이 될 필요는 없어. 토요일 밤은 나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
는 연회장이었어."
"그래서?"
"어쨌든 술을 마시고 계단을 올라왔어. 네가 있던 방 앞을 지나치려는
데 어두운 복도에 그 애가 서 있었어."
"미요가?"
"그래."
"옷을 다 벗고?"
"아니, 잠옷을 입고, 그렇지만 허리띠는 하지 않았어. 손으로 앞을 여
미고 있었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어."
"......."
"마사오는 갔어요 하고 말했지. 그 여자는 끄덕였어. 그러면 잘 자요
하고 미요의 옆을 지나가려고 했어. 그런데 팔을 잡는 거야."
"재미있어지는군."
"진지하게 들어."
"알았어."
그때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와 둘을 내려다보며 선 얼굴이 있었다. 긴
이였다.
"햇볕 쬐는 거야?"
"응."
"마사오, 후미에와는 잘 지내니?"
마사오는 일어나 앉았다. 지까후지는 모자를 얼굴에 덮고 자는 척했다.
"또 무슨 일이 있어?"
"아니, 그렇지 않아. 오까모또는 이제 후미에를 단념했어. 안심해. 그
런데 너를 소개시켜 달라는 여자애가 하나 있어. 그래서 후미에와의
사이를 알고 싶었던 거야."
"후미에와는 단지 친구고, 날 만나고 싶다는 여자애는 단지 호기심에
서 그럴 거야."
"근처의 여학생이 아니야. 그렇지만 넌 그 애와 벌써 얘기한 적도 있
는 걸!"
".....?" 짐작이 가지 않았다.마사오의 행동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다.
먼 마을의여학생과는 말할 기회도 없었다.
"기억나지 않아?"
"잘못 봤겠지?"
"아니, 너야. 네 사진을 보여 주니까, 틀림없다고 말하던데."
"이상하군."
"글쎄, 좋아. 만나기만 만나 볼래?"
"만나는 정도라면 좋아. 그러지만 착각일 거야."
지나치면서 농담삼아 말을 건 정도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아
는 애가 있을 리 없다. 더구나 긴이를 알고 지내는 부류의 아이라면
옷차림새만 봐도 대뜸 알 수 있었을 테고 그런 여학생에게 마사오가
먼저 말을 걸었을 리는 더구나 없다.
"어쨌든 만나 줘. 난 아무래도 너와 인연이 있는 것 같아. 만나면 너
도 생각날 거야."
긴이가 가자 지까후지는 모자를 얼굴에서 떼었다.
"뭐야? 저 녀석?"
"도무지 모를 애야."
"저 녀석은 불량배면서도 인텔리 같은 묘한 점이 있어. 강경파도 온건
파도 아니야. 묘하게 어두워. 저런 녀석과는 사귀지 마."
"걱정하지 말라구."
마사오는 다시 지까후지와 나란히 누웠다. 구름의 위치가 바뀌었고
모양도 조금 전과 딴판이었다.
"나와 미요는 서로 얼굴을 마주쳐다보았어. 그 애는 매달리는 듯한
눈빛이었어."
미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젯밤의 얼굴이었다. 먼 기억 속에 있었
다. 마사오는 말했다.
"선한 눈이야. 남자의 눈을 끄는 눈이지."
"나도 그렇게 느꼈어. 미요는 말했어. 잠깐 들어와요. 목소리는 작
았지만 저력이 있었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지. 난 무의식중에
고개를 그덕이고 네가 있던 방에 들어갔어."
"그래서?" 여러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마음은 편했다.
"다미의 방과 아주 똑같은 방이었어."
"이 다음에는 넓은 방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세계에도 단계가
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다미와 미요는 신참이니까. 어쨌든 방은 똑같았고,
장식품만 조금 달랐지. 장식품은 다미의 방에 더 많았어."
"......"
"난 앉았어. 미요는 내 앞에 앉았어. 그리곤 단정히 앞을 여미고 있었
어. 능숙했지. 다만 젖가슴께가 느슨해져서 맨살이 보였어. 젖꼭지도
조금 보였고. 미요는 그걸 별로 개의치 않았어. 커다란 눈으로 날 째
려보더군."
"그냥 쳐다봤다고 그래."
"아니야. 째려보았어. 그런 느낌이었다구."
"고집이 센 여자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별로 몰랐는데 다미
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갖고 있었어."
"그럴 거야. 그 세계 여자라도 각각 다르다구. 좋은 공부가 되었군."
"날 계속 째려보면서 미요는 이렇게 말했어. 잘 들어. 이렇게 말했다
구. 날 안아 줘요."
"그럴 줄 알았어."
"난 놀랬어. 다나까는 이골이 난 암거래상인데 이 여자도 이중으로 장
사를 할 생각인가 하고 한 순간 혼란에 빠졌어. 그렇지만 그런 게 아
니었어."
지까후지가 새삼스러운 투로 물어 왔다.
"니네 진짜 결합하지 않았어?"
"응."
"서로 만지기만 했겠구나?"
"응."
"그런데도 끝까지 가진 않았단 말이지?"
"그래."
배트가 공을 치는 소리가 났다. 깨끗한 소리였다. "직구군. 잘 맞았
어." 운동장 맞은편에선 야구부원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도시락도
싸가지고 다닐 수 없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과격한 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든든하게 먹고 마시는 무리도 있었다. 운동부원들은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지고 다니는 애들이었다.
지까후지는 몸을 일으키며 잔디에 팔꿈치를 대고 손바닥을 턱에 고
였다.
"미요는 다나까가 찾아왔던 사실이며 너하고 있었던 얘기를 모두 내게
말해 주었지. 그리고 내게 안겨 왔어."
"능히 그럴 만한 애야, 미요는."
"난 놀랬어. 어쨌든 그런 곳의 관계나 예절을 난 잘 몰라. 여자의 요구
대로 된다면 굉장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기다리라고 했어. 그리곤 다미의 방으로 돌아갔어. 미요도 나와 함께
갔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다미와 미요가 의논을 했지. 다미는
승낙했고 난 미요와 함께 미요의 방으로 다시 돌아왔어."
"다미가 선뜻 승낙해 주었니?"
"동료니까. 미요의 입장을 이해해 준 거지. 게다가 다미는 이제 할 일
을 다 한 셈이었으니까."
"넌 내 뒤처리를 해준 셈이군."
"그렇게 됐어."
"정력적이군."
"난 네가 누워 있던 이불에 들어가 네가 쓰던 베개를 베었지."
"이상한 기분이었겠군."
"아니, 그런 감상에 잠길 새 없이 곧 미요가 다가왔어. 농도 짚은 서
비스를 시작했어."
"......."
"다미와는 전혀 달랐어. 다미는 측은하기만 했어. 심정적인 면이 강했
어. 미요는 그렇지 않았어. 선천적으로 남자와 노는 걸 즐기는 것 같
았어. 나도 열중했어. 상대방도 열심이었고. 어때? 애석하지 않아?"
"조금 그런데."
"넌 바보야. 보물섬에 들어가 빈 손으로 나와 버렸어."
"바보일지도 모르지."
지까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누었다.
"아침까지 난 미요의 방에 있었어. 다나까는 부르러 오지 않았어."
"그래?"
"아침 일찍 미요가 흔들어서 깼지. 미요는 또 날 자극하기 시작했어.
이제 난 베테랑이 된 기분이야. 하룻밤 만에."
"다미는 어떻게 되었지?"
"모르겠어. 가지 않았어. 미요가 날 문까지 바래다 주었어."
"여자를 산 다음 날 뒤돌아서 올 때는 강한 자기 혐오와 후회가 엄습
한다고 하던데, 우리들 나이에는 예외없이 그럴 것 같아. 넌 어땠어?"
"태양이 있었어. 지금의 이 태양보다 훨씬 더 컸었지."
"아침엔 그렇지."
"차원 낮은 소리 하지 마. 어쨌든 내 기분은 그랬어. 그날 아침의 태
양은 아찔했다구. 내 몸 속에는 오염된 슬픔 같은 것이 분명히 들어
있었어."
"......"
"너, 미요에게 들었는데 애인이 있다며? 그래서 마지막엔 미요를 거부
한 거야?"
마사오는 대답하지 ㅇ낳고 눈을 감았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지까후지의 말을 마사오는 의외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까후지
의 행동도 미요의 정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풍부한 경험을 가
진 미요에게 여러 가지 배우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없지 않
았다. 다만 첫 경험인 지까후지가 숙련된 여자를 만족시켰다는 것엔
존경스런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창녀는 남자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연극
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일이 많다고 해. 미요의 경우가 그렇지 않았
을까?"
지까후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연극이 아니야. 몸의 반응으로도 알 수 있어. 정말이야. 근분
적으로 색정적인 여자였어. 돌아올 때 또 와 달라고 말했어."
"갈 거야?"
"모르겠어. 가고 싶어도 돈이 없지. 또한 여자를 사는 것이 습관이
되면 내 인생을 망쳐 버릴지도 몰라. 내게 자세심이 필요한 건 지금부
터야."
"또 놀러가면 다미는 어떻게 되지?"
"다미를 상대로 들어가서 살짝 미요도 부르지. 그렇지만 난 역시 자
제해야 돼. 평범한 세계의 여자를 찾아야 할 테니까. 너의 자세심보다
도 이제부터의 내 자제심이 더 대단한 거라구."
"그럴 거야. 넌 금지된 나무 열매를 맛봤으니까. 이제부터의 너를 주
목하겠어."
지까후지는 마사오 혼자 이른바 순결이라는 것을 지켰다는 것에 그
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고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비밀을 가졌다
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전의 다미의경우는 어w어? 역시 아줌마가 오지 않았어?"
"그랬어. 서른 살을 넘은 한 여자가 왔었어. 두텁게 화장을 했더군.
처음엔 그 아줌마가 나와 예행 연습을 했어. 다미는 그것을 보고 있었
고. 진지한 얼굴이었어. 아줌마가 여러 가지를 다미에게 가르쳐 주었
어. 다미는 끄덕이면서 들었고, 난 곧 폭발한 것 같았어. 아줌마도 여
자니까 곧 민감해졌어. 그러자 그 아줌나는 나를 자기 몸에서 얼른 떼
내고 위세서 나를 누르며서 내 뺨을 때렸어. 술수를 썼던 거야. 난 폭
발을 벗어날 수 있었어. 글쎄, 어쨌든 예행 연습이 끝난 다음에 아줌
마는 나와 다미에게 강의를 했어. 그 뒤 난 아줌마가 가르쳐 주는 대
로 다미의 몸 속에 나를 넣었고 아줌마는 가 버렸어."
"놀랍군."
"사무적인 거야. 마치 바느질하는 법을 가르치는 듯했어. 그렇지만 난
아줌마에게 호감을 느꼈어."
"뭐?"
"내 것을 칭찬해 주었거든. 사실 난 그것이 제일 걱정되었었어. 크기만
이 아니라 형태도 좋다고 했어. 자기 정도라면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
다고 큰소리쳤어. 글쎄, 천 명 이상의 남자를 아니까 그럴지도 몰라."
"아줌마도 기뻐했어?"
"아니, 그렇진 않았어. 하지만 나중에는 나를 가르칠 때 즐기고 싶었
다고 고백했어. 어쨌든 사무적으로 교사 역할만 끝내고 갔지. 어느
정도면 자유자재로 될까?"
다음 날인 화요일 점심 시간이었다. 긴이가 마사오에게 다가왔다.
"잠깐 복도로 나가자."
주머니에서 긴이는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여학생의 상반신 사진이
었다.
"예쁜 애군. 이 애가 나와 만나고 싶다는 애야?"
"그래. 생각나지 않아?"
"글쎄."
사진 속의 여학생이 미소를 짓는 듯했다. 확실히 어디선가 만난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긴이가 드디어 그 여학생의 정체를 밝혔다.
"기차 안에서 네가 그 애에게 말을 걸었었대."
"그 애가? 알겠어. 아, 이 애가 그 애군. 음, 확실히 그렇군."
"알긴 아는 구나. 너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내게 너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난 반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지. 곧 너를 가리
켰어."
"이 애가 너희들하고 같이 어울리니? 그런 애로 보이지는 않던데."
"착실한 애야. 학교도 착실히 나가고. 우리하고는 영화를 보러 가거
나 말을 하면서 산책을 하는 정도야. 같은 학년인데 집이 이사갔기 때
문에 기차 통학을 하고 있고. 굉장한 책벌레야. 이번 토요일 오후가
어때?"
"좋아. 단, 문제가 되는 건 싫어."
"걱정하지 마. 이 애는 아직 애인 같은 건 없으니까. 애인이 있다면
어디 나에게 부탁하겠어?"
금요일 아침, 또 긴이가 다가왔다.
"내일 세 시, 역 우물가로 올 수 있어?"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찬지? 나와 줘. 그 애가 먼저 나와서 널 기다릴 거야. 그 애 이름
은 미찌꼬야. 가시와끼 미찌꼬."
"넌?"
"너희들이 벌써 말을 한 적도 있으니까 내가 또 소개할 필요는 없잖아.
너희들끼리만 만나."
"그 애, 후미에와 친구니?"
"아니. 서로 알지도 못할 거야. 후미에보다는 착실하지."
다음 날인 토요일, 또 긴이가 와서 다짐을 두었다.
"약속, 지킬 거지?"
"염려 마. 갈 거야. 만일 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해도 가기는 갈
거야. 한번 더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한 여자였으니까."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어. 난 그 여자에게 부탁을 받았을 뿐이라구.믿어."
"믿을 수는 없어. 그렇지만 산책할 겸 가 보겠어."
"어쨌든 난 이렇게 주선만 할 뿐이야. 솔직히 말하면 네가 가 부면 미찌꼬
가 자명종 시계를 내게 선물하기로 돼 있어."
"자명종 시계? 놀기만 하는 너에게 자명종 시계라고?"
"미찌꼬다운 착상이고 그 아이 아니면 흉내도 낼 수 없는 선물이지. 자명
종 시계로 학교에 지각하지 말라는 뜻이야. 놀려니까 시계가 필요하지."
시간이 되어 마사오는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왔다. 자전거를 탄 건
낭만적인 밀회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 나타내기 위해서였
다. 만일 긴이와 만나게 되더라도 그렇게 굴욕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도중에 후미에를 만났다. 후미에는 마사로를 보자 양손을 뻗쳐 자전
거를 가로막아서더니 핸들을 잡고 다가왔다.
"오랜간만이야."
열차가 방금 도착했으므로 역에서 나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후미에는 남의 눈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친숙하게 대했다.
"건강했어?"
"별로 그렇질 못했어."
고개를 흔들어 보이는 후미에의 눈빛이 어떤 비밀을 고백하려는 듯
했고 하얀 얼굴에 우수가 드리워졌다. 그러면서도 요염한 색기를 띤
표정이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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