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싸움터의 아침
토요일 밤. 친구 집에 놀러가서 그대로 밤을 새며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마사오의 세대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마사
오는 그런 무단 외박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
었다.마사오의 친구가 종종 마사오의 집에서 밤을 지샌 적도 있었다.
내일 아침 일찍 돌아가면 야단을 맞겠지만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늦어졌기 때문에 친구 집에서 자고 왔다고 어머니는 추측하실 테고 계
집애가 아닌 마사오를 그렇게 걱정하시진 않을 것이다. 마사오가 나쁜
곳에, 나쁜 친구와 놀러가리라곤 전혀 생각하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형편에 다라서는 자도 되지." 마사오는 그런 가능성도 염
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토요일 밤에 마사오가 미요의 교묘하
고 솔직하며 대담한 유혹에 결국 넘어가지 않았던 건 마사오 자신의
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까후지가 구원해 주었던 것이다.
노크소리가 났다. 미요의 몸이 굳어지며 낮게 속삭였다.
"다나까 씨에요."
"또 왔군. 모르는 체해."
두 사람은 응답하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이어졌다. 아
까 다나까와 달리 주위를 경계하는 노크라는 것을 마사오는 깨달았다.
"끈질긴 사람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요에게. "아니, 달라." 하
고 마사오는 나직막히 말했다.
"마사오, 자니?" 지까후지의 목소리였다.
"잠깐만."
마사오는 일어나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문을 닫았다. 미요가 누워
있는 것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까후지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여자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고운 꽃무늬 잠옷이었다. 마치 연극 무대
에 서 있는 모습 같았다. 지까후지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어떻게 됐어?"
"글쎄."
"그러면 이제 곧 돌아갈 거야?"
"응."
"난 오늘 밤, 너의 집에 놀러간다고 말하고 나왔어."
"나도 그래."
"저 다나까 사촌과 함께라고는 하지 못 했어. 사촌은 엄마에게 신용이
없거든."
"알았어."
"난 오늘 밤 자기로 했어. 돌아가지 않겠어. 너의 집에서 잤다고 해줘."
"여기서 잘 거야?"
"그래. 그 애는 착한 애야. 함께 있고 싶어."
"이건 그 애의 옷이니?"
"응. 속엔 아무것도 입지 않았어."
지까후지는 마사오의 팔을 잡았다.
"벌써 세 번이나 사랑해 주었다. 또 할 수도 있다구.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
지까후지의 눈은 불타고 있었다. 쾌락을 쫓아 맹진하는 사나이다운
용감성까지 있었다. 마사오의 가슴 밑바닥에서는 그런 지까후지에 대
한 선망의 불빛이 반짝거렸다.지까후지가 자기보다도 학업 성적이 좋
은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가지에 열중하는 성격인 것이다.
마사오는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이대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다에꼬가 있다. 지까후지
와 가장 다른 건 그 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이대로 계단을 내려가
서 아까처럼 밖으로 나가면 무사하다. 그렇지만 사나이로서 맺고 끊는
맛은 최소한 보여줘야 한다.
"조그만 기다려 줘. 현관까지만 같이 가 줘."
마사오는 바으로 들어갔다. 이불 속에 누워 천정을 쳐다보고 있는
미요를 내려다 보았다.
"돌아갈 거예요, 이대로?" 미요는 아무렇게나 내던지듯 물었다. 마
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만나." 마사오로서는 한껏 성의 있게 답한 말이었다.
"그때는 지금의 제가 아닐 거예요."
"몸조심해. 병에 걸려서도 안 돼."
"내일은 무리에요. 다음 일요일에 이 창문 쪽으로 오세요."
"몇 시가 좋을까?"
"열한 시."
"좋아, 그렇게 할께."
"키스해 줘요."
마사오는 다다미 위에 무릎을 꿇고 미요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까
이 대었다. 이불 속에서 미요의 양팔이 뻗어나와 마사오에게 달라붙었
다. 입맞춤을 했다. 어른스러운 키스가 끝나고 미요는 새까만 눈으로
마사오의 눈을 응시했다.
"오늘 밤은 진실이었어요."
"알아."
"배웅나가진 않을께요. 내가 따라나가면 또 가지 못하게 할 거 같아요."
마사오는 일어섰다. 미요는 아쉬운 듯 마사오를 바라보았다. 젖가
슴을 내놓고 이불 위에 주저앉은 채로였다.
"갈께."
"조심하세요. 약속 잊지 말고."
마사오는 방을 나섰다. 미요를 다시 만날 수는 있어도 두번 다시 이
방에 들어오진 않을 것이다. 이 방에서의 사건은 한낱 스쳐지나가는
환상으로 머리속에서 지워질 것이다.
지까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 가자."
"저 애도 좋은 애야?"
"응. 착해. 너무 착해."
문 입구까지 나올 동안 역시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마사오는 게다
를 신고 지까후지를 올려다보았다.
"건투를 빌어."
지까후지는 끄덕였다.
"자세한 건 월요일에 만나서 얘기하자."
밖으로 나왔다. 밤바람은 아까보다 차가왔고 더 셌다. 달이 없는 밤
이었다.
집에 돌아온 마사오는 문을 열어 준 어머니에게, "술을 조금 마셨어
요. 술을 깨느라 좀 자다 왔어요" 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수상히 여
기지 않고 일찍 자라고만 충고해 주었다. 마사오는 일단 방에 들렀다
가 곧장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더운물은 이미 식어 있었다. 머리끝에
서부터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서너 차례 물을 끼얹은 후에야 제 정신
이 돌아오는 듯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난 후 마사오는 몸에 비누칠을
열심히 했다. 미요의 기억을 지워 버리기라도 하듯 온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았다.
"고집일지 몰라도, 오늘 밤만큼은 혼자 손장난을 하지 않아야겠어.
그 대신 내일 다에꼬를 만나 다에꼬의 손으로 직접 하도록 해야지. 그
때까지는 참아야 돼."
그것은 궁극적으로 다에꼬를 배반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
다. 이부자리에 들어간 마사오는 다에꼬의 모습을 그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일찍 눈을 떴을 때 마사오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
해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잠시 후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 일요
일인 그날 아침은 이상하게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똑바로 어머니를
마주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어젯밤은 술을 꽤 많이 마셨나 보구나? 지까후지 집에서는 항사 술
마시는 걸 허락하니?"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지까후지 방에서 살짝 마신 거예요."
아침 식사 후 마사오는 산책하러 간다고 말하고 집을 나와 곧장 다
에꼬의 집으로 향했다. 다에꼬는 우물가에서 대야에 가득한 거품 속에
손을 넣은 채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자 다에꼬가
인기척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다에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사오는 뒤
가 켕겨 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미요의 유혹을 당당히 뿌리치고
돌아온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했다. 아침 나절의 상쾌한 공기
속에서 화장을 하지 않은 다에꼬의 얼굴은 더욱 해 맑아 보였다.
"어머나." 다에꼬는 일어섰다. 미소를 띠었다.
"웬일이야? 오랜간만인데."
물에 젖은 손이 빨갰다. 앞치마가 예뻤다.
"산책하자고 왔어. 밥 먹었어?"
"응. 너 어젯밤에 어디 갔었니?"
다에꼬의 아버지가 마사오를 만난 것을 말한 것 같았다.
"친구 집에."
"빨래 금방 끝나. 끝날 때까지 기다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20분 정도."
"그러면 30분 후에 신사의 도리이 밑에서 기다릴께."
다에꼬는 크게 끄덕였다. 마사오는 곧 다에꼬의 집을 나왔다. 정확
히 30분 후 다에꼬는 잰 걸음으로 나타났다. 일요일 아침이었으므로 길
가에 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수목 사이를 뚫고 세차게 쏟아져내리는
아침 햇살 속에서 다에꼬의 새빨간 뺨이 투명하게 빛났다. 그 투명함
도 어젯밤의 여자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어젯밤의 체험은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어젯밤의 일을 말하면 놀랄 거야. 절교하자고 할지도 몰라. 그렇지
만 말을 안 한다 해도 소문이 돌고 돌아서 다에꼬의 귀에 들어갈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직접 말하는 게 낫지. 결국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그래 말해도 되겠어. 오히려 내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증
명하는 셈이니까. 날 지탱해 준 거도 다에꼬고, 다에꼬에 대한 애정의
깊이도 증명된 거고."
마사오는 다에꼬에게 입술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감은 다
에꼬가 싫어하는 눈치가 아님을 느끼자 슬며시 오른손을 아래로 뻗어
다리 안쪽으로 가져갔다. 마사오의손이 스커트를 만지작거리기 시작
하자 다에꼬는 입술을 때고 속삭였다.
"더 안으로 들어가자."
토요일 밤. 친구 집에 놀러가서 그대로 밤을 새며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마사오의 세대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마사
오는 그런 무단 외박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
었다.마사오의 친구가 종종 마사오의 집에서 밤을 지샌 적도 있었다.
내일 아침 일찍 돌아가면 야단을 맞겠지만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늦어졌기 때문에 친구 집에서 자고 왔다고 어머니는 추측하실 테고 계
집애가 아닌 마사오를 그렇게 걱정하시진 않을 것이다. 마사오가 나쁜
곳에, 나쁜 친구와 놀러가리라곤 전혀 생각하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형편에 다라서는 자도 되지." 마사오는 그런 가능성도 염
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토요일 밤에 마사오가 미요의 교묘하
고 솔직하며 대담한 유혹에 결국 넘어가지 않았던 건 마사오 자신의
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까후지가 구원해 주었던 것이다.
노크소리가 났다. 미요의 몸이 굳어지며 낮게 속삭였다.
"다나까 씨에요."
"또 왔군. 모르는 체해."
두 사람은 응답하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이어졌다. 아
까 다나까와 달리 주위를 경계하는 노크라는 것을 마사오는 깨달았다.
"끈질긴 사람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요에게. "아니, 달라." 하
고 마사오는 나직막히 말했다.
"마사오, 자니?" 지까후지의 목소리였다.
"잠깐만."
마사오는 일어나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문을 닫았다. 미요가 누워
있는 것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까후지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여자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고운 꽃무늬 잠옷이었다. 마치 연극 무대
에 서 있는 모습 같았다. 지까후지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어떻게 됐어?"
"글쎄."
"그러면 이제 곧 돌아갈 거야?"
"응."
"난 오늘 밤, 너의 집에 놀러간다고 말하고 나왔어."
"나도 그래."
"저 다나까 사촌과 함께라고는 하지 못 했어. 사촌은 엄마에게 신용이
없거든."
"알았어."
"난 오늘 밤 자기로 했어. 돌아가지 않겠어. 너의 집에서 잤다고 해줘."
"여기서 잘 거야?"
"그래. 그 애는 착한 애야. 함께 있고 싶어."
"이건 그 애의 옷이니?"
"응. 속엔 아무것도 입지 않았어."
지까후지는 마사오의 팔을 잡았다.
"벌써 세 번이나 사랑해 주었다. 또 할 수도 있다구.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
지까후지의 눈은 불타고 있었다. 쾌락을 쫓아 맹진하는 사나이다운
용감성까지 있었다. 마사오의 가슴 밑바닥에서는 그런 지까후지에 대
한 선망의 불빛이 반짝거렸다.지까후지가 자기보다도 학업 성적이 좋
은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가지에 열중하는 성격인 것이다.
마사오는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이대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다에꼬가 있다. 지까후지
와 가장 다른 건 그 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이대로 계단을 내려가
서 아까처럼 밖으로 나가면 무사하다. 그렇지만 사나이로서 맺고 끊는
맛은 최소한 보여줘야 한다.
"조그만 기다려 줘. 현관까지만 같이 가 줘."
마사오는 바으로 들어갔다. 이불 속에 누워 천정을 쳐다보고 있는
미요를 내려다 보았다.
"돌아갈 거예요, 이대로?" 미요는 아무렇게나 내던지듯 물었다. 마
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만나." 마사오로서는 한껏 성의 있게 답한 말이었다.
"그때는 지금의 제가 아닐 거예요."
"몸조심해. 병에 걸려서도 안 돼."
"내일은 무리에요. 다음 일요일에 이 창문 쪽으로 오세요."
"몇 시가 좋을까?"
"열한 시."
"좋아, 그렇게 할께."
"키스해 줘요."
마사오는 다다미 위에 무릎을 꿇고 미요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까
이 대었다. 이불 속에서 미요의 양팔이 뻗어나와 마사오에게 달라붙었
다. 입맞춤을 했다. 어른스러운 키스가 끝나고 미요는 새까만 눈으로
마사오의 눈을 응시했다.
"오늘 밤은 진실이었어요."
"알아."
"배웅나가진 않을께요. 내가 따라나가면 또 가지 못하게 할 거 같아요."
마사오는 일어섰다. 미요는 아쉬운 듯 마사오를 바라보았다. 젖가
슴을 내놓고 이불 위에 주저앉은 채로였다.
"갈께."
"조심하세요. 약속 잊지 말고."
마사오는 방을 나섰다. 미요를 다시 만날 수는 있어도 두번 다시 이
방에 들어오진 않을 것이다. 이 방에서의 사건은 한낱 스쳐지나가는
환상으로 머리속에서 지워질 것이다.
지까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 가자."
"저 애도 좋은 애야?"
"응. 착해. 너무 착해."
문 입구까지 나올 동안 역시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마사오는 게다
를 신고 지까후지를 올려다보았다.
"건투를 빌어."
지까후지는 끄덕였다.
"자세한 건 월요일에 만나서 얘기하자."
밖으로 나왔다. 밤바람은 아까보다 차가왔고 더 셌다. 달이 없는 밤
이었다.
집에 돌아온 마사오는 문을 열어 준 어머니에게, "술을 조금 마셨어
요. 술을 깨느라 좀 자다 왔어요" 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수상히 여
기지 않고 일찍 자라고만 충고해 주었다. 마사오는 일단 방에 들렀다
가 곧장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더운물은 이미 식어 있었다. 머리끝에
서부터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서너 차례 물을 끼얹은 후에야 제 정신
이 돌아오는 듯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난 후 마사오는 몸에 비누칠을
열심히 했다. 미요의 기억을 지워 버리기라도 하듯 온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았다.
"고집일지 몰라도, 오늘 밤만큼은 혼자 손장난을 하지 않아야겠어.
그 대신 내일 다에꼬를 만나 다에꼬의 손으로 직접 하도록 해야지. 그
때까지는 참아야 돼."
그것은 궁극적으로 다에꼬를 배반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
다. 이부자리에 들어간 마사오는 다에꼬의 모습을 그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일찍 눈을 떴을 때 마사오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
해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잠시 후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 일요
일인 그날 아침은 이상하게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똑바로 어머니를
마주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어젯밤은 술을 꽤 많이 마셨나 보구나? 지까후지 집에서는 항사 술
마시는 걸 허락하니?"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지까후지 방에서 살짝 마신 거예요."
아침 식사 후 마사오는 산책하러 간다고 말하고 집을 나와 곧장 다
에꼬의 집으로 향했다. 다에꼬는 우물가에서 대야에 가득한 거품 속에
손을 넣은 채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자 다에꼬가
인기척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다에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사오는 뒤
가 켕겨 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미요의 유혹을 당당히 뿌리치고
돌아온 자신이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했다. 아침 나절의 상쾌한 공기
속에서 화장을 하지 않은 다에꼬의 얼굴은 더욱 해 맑아 보였다.
"어머나." 다에꼬는 일어섰다. 미소를 띠었다.
"웬일이야? 오랜간만인데."
물에 젖은 손이 빨갰다. 앞치마가 예뻤다.
"산책하자고 왔어. 밥 먹었어?"
"응. 너 어젯밤에 어디 갔었니?"
다에꼬의 아버지가 마사오를 만난 것을 말한 것 같았다.
"친구 집에."
"빨래 금방 끝나. 끝날 때까지 기다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20분 정도."
"그러면 30분 후에 신사의 도리이 밑에서 기다릴께."
다에꼬는 크게 끄덕였다. 마사오는 곧 다에꼬의 집을 나왔다. 정확
히 30분 후 다에꼬는 잰 걸음으로 나타났다. 일요일 아침이었으므로 길
가에 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수목 사이를 뚫고 세차게 쏟아져내리는
아침 햇살 속에서 다에꼬의 새빨간 뺨이 투명하게 빛났다. 그 투명함
도 어젯밤의 여자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어젯밤의 체험은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어젯밤의 일을 말하면 놀랄 거야. 절교하자고 할지도 몰라. 그렇지
만 말을 안 한다 해도 소문이 돌고 돌아서 다에꼬의 귀에 들어갈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직접 말하는 게 낫지. 결국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그래 말해도 되겠어. 오히려 내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증
명하는 셈이니까. 날 지탱해 준 거도 다에꼬고, 다에꼬에 대한 애정의
깊이도 증명된 거고."
마사오는 다에꼬에게 입술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감은 다
에꼬가 싫어하는 눈치가 아님을 느끼자 슬며시 오른손을 아래로 뻗어
다리 안쪽으로 가져갔다. 마사오의손이 스커트를 만지작거리기 시작
하자 다에꼬는 입술을 때고 속삭였다.
"더 안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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