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하얀 철쭉
철쭉산에 다에꼬와 함께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와 함께 간다고 어머니
께 말했고, 다에꼬도 숨기지 않았다. 다에꼬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었다.
"네 도시락까지 싸 주셨어. 사실대로 말하니까 마음이 편해."
다에꼬는 집에서 손수 만든 보리차가 담긴 물통도 들고 있었다. 마사오는 누구의 눈도 의
식하지 않고 사랑을 나눌 장소만 나타난다면, 오늘 다에꼬와 한몸이 될 생각이었다. 물론
욕망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에꼬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또 미찌꼬가 이
미 거쳐 간 자신을 다에꼬에게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중의 배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에꼬의 몸을 완전히 갖지 않는다는 게 그들 사이에선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데, 그리고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은밀하게 서로를 고
백해 왔는데…. 이제 당연한 거였다.
"산에서 넌 내 여자가 되는 거야. 마음의 준비를 해둬."
약속을 정하면서 마사오는 다에꼬에게 자신의 계획을 분명하게 말했었다. 다에꼰느 동작을
멈춘 채 떠는 듯했다. 그리곤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맑은 눈빛으로 마사오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마사오의 말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순수한 애정의 표현으로 받아
들였을 것이다.
산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더욱 가파라졌다. 작은 돌덩이가 굴러내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길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이끼를 밟으면서 바위로 올라가 앉았다. 계곡에서 바람이 불어왔
다. 머리 위에는 커다란 오동나무 잎이 아늑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시원했다.
두 사람은 입술을 맞추었다. 가벼운 키스였는데도 마사오의 몸이 갑자기 흥분되어 버렸다.
다에고에게 자기 몸을 닿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다에꼬가 먼
저 일어서며 말했다.
"빨리 올라가자."
두 사람은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중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세상은 암울했고,
신문에는 연알 주먹 덩어리만한 활자가 끔찍한 사건들을 떠들어 대고 있었다. 도시고 시골
이고 공기가 흉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사오의 가방에도 작은 흉기가 있었다. 단도였다. 외진 곳으로 여자를 데리고 오는 남자
의 필수품 중 하나라고 마사오는 생각했다. 물론 위협용일 뿐이었고 두 말할 것도 없이 다
에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머!"
다에꼬가 멈춰섰다.
"철쭉이야."
"정말."
철쭉이 한창일 계절이 이미 지났는데도 오른쪽 언덕받이의 음습한 그늘 밑에 하얀 철쭉이
몇 송이 피어 있었다. 마사오는 감탄?다. 이끼에 묻힌 탓이었는지 꽃잎에 푸른 기운이 어
려 있었다.
"돌아갈 때 가져 가고 싶어."
"자리를 기억해 두자."
철쭉이 있던 곳을 뒤로 하고 가파른 산길을 조금 더 오르자 저 아래로 야트막한 산과 굽이
쳐흐르는 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평지가 나타났다.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
보던 마사오는 두 사람이 앉기에 알맞은 곳을 찾아냈다. 그늘이었다.
준비해 온 신문지와 돗자리를 깔고 마사오가 그 위에 앉자 다에꼬가 도시락 가방에서 젖은
수건을 꺼내 마사오에게 건네주었다. 마사오는 손과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도시락을 꺼냈
다. 아직 점심때로는 시간이 일렀지만 둘은 몹시 배가 고팠다.
"운동을 해서 배가 고픈데.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체육 시간 이외에는 별로 운동을 하지
못해 그렇지?"
"하지만 마사오는 일요일에는 텃밭에서 일을 하잖아."
"그냥 일하는 척만 할 뿐이야."
다에꼬가 만든 도시락은 훌륭했다. 김밥과 야채며 생선이 먹음직스러웠다. 젓가락을 건네
며 다에꼬가 말했다.
"자 내가 한턱내는 거야."
"잘 먹겠습니다."
둘은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식사가 끝나자 다에꼬가 따라준 보리차를 마셨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무슨 생각해?"
"앞으로의 인생, 다에꼬와 나의."
"내가 나이가 많다는 걸 생각해야지."
"상관없어."
"정말 그렇다면 좋겠지. 그러나 내가 아직 어리니까 마사오와 어울릴 수 있는거야."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다에꼬가 마사오에게 다가와 앉았다. 장난스럽게 눈을 들여다보며 살며시 웃었다. 입안에
사탕이 물려 있었다.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마사오의 입에 넣어주려는 시늉을 했다. 눈이
웃고 있었다. 마사오는 입을 벌렸다. 입술과 입술이 서로 만나고 사탕은 마사오의 입에 넣
어졌다. 계수나무의 신선항 향이 마사오의 입안에 퍼졌다.
"어, 꼐수나무 사탕이구나!"
"저번에 집에서 만났을 때 주려 했는데 엄마가 계셔서 안 줬어. 오늘 널 만나면 니j게 입
으로 주려고."
다에꼬는 슬며시 눈을 내리깔더니 힐끗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다에꼬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이젠 마사오도 느낄 수 있었다. 마사오 느낌은 빚나가지 않았다. 다에꼬가 마사오에게
안겨 온 것이다. 마사오는 팔을 뻗어 다에꼬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다에고의 몸이 마사오에
게 실려 왔다.
눈부신 태양이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나무는 미풍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사오는 윗도리를 벗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오늘은 목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된
다는. 둘은 서두르지 않았고 다에꼬도마사오도 말이 없었다. 부드럽게 그리고 깊숙하게 이
어지는 서로의 애무에 이제 말은 필요없었다. 둘은 뜨겁게 애무해 갔다.
드디어 귀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다에꼬를 사랑했다. 몸을 더욱 밀착시켰
다. 둘은 더욱 뜨거워졌다. 새삼스럽게 말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가고자
하는 곳은 금지 구역 이었다. 금지 구역의 울타리를 마사오와 다에꼬가 함께 힘을 모아 넘
으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확인되었고 이제 남은 건 대자연의 섭리에 맡길 뿐
이었다.
울타리는 그리 높지 않았고 다에꼬의 육체는 타올랐다. 그 귀에 마사오는 다시 한번 예고
했다. 울타리를 넘어갈 것이라고. 그러자 다에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다에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는 저항을 마사오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 저항을 무시
하고 나아가야 할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도 마사오는 알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저
항은 거의 없었고 상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몸을 더욱 죄어들었고,
다에고도 말없이 진행되는 이 마지막 의식에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다에꼬, 어떤 느낌이 오면 날 세게 안아. 도망가면 안 돼."
"응."
마사오는 호흡을 멈추고 곧장 나아갔다. 다에꼬가 마사오를 꼭 껴안아 왔다. 마사오는 자
신의 몸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쉬지 않고 나아갔다. 강
인하게 끌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다에꼬는 마사오에게 꼭 달라붙은 채 짧은 신음소리를 계
속 내고 있었다. 다에꼬의 양미간에 주름살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양다리에 이제까지 느끼
지 못했던 엄청난 힘이 주어지는가 싶더니 마사오를 힘껏 죄고는 꼼짝하지 않았다. 신음소
리도 없었다. 마사오는 직감했다. 다에꼬의 마지막 문이로구나. 처녀로구나. 마사오는 정지
했다. 다에꼬의 연약한 몸 속에서 마사오의 온몸이 묵직한 쇠줄로 칭칭 감겨 있는 듯한 느
낌이었다. 다시 다에꼬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마사오를 꼭 껴안고는 떨어질 줄 몰랐다.
마사오는 손으로 다에꼬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아팠어?"
다에꼬는 눈을 감은 채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마사오는 입술을 찾았다. 다에꼬는 지친 몸
을 기댈 의지처를 찾은 듯 마사오의 입술을 한번 격렬하게 빨았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쉬
었다. 호흡이 가빠서 긴 키스를 할 수는 없었다.
다에꼬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빠른 박동이 전해져 왔다. 마사오를 절정까지 이끌기 위한 호
소 같기도 했다. 마사오는 다에꼬를 꼭 껴안은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호소에 귀를 기울이
고 있었다. "상처 난 곳이 아픔을 호소하고 있어." 생명의 호소였다. 비로소 마사오는 다에
꼬와 하나가 되었다. 울타리를 넘은 것이다.
마사오는 손수건으로 땀방울이 돋아나 있는 다에꼬의 뺨을 닦아 주었다.
"눈을 떠 봐."
다에꼬의 눈이 열렸다. 젖어 있었다. 다에꼬의 눈동자에 마사오의 모습이 비치고 잇었다.
진한 눈빛이었다.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열중해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
다. 그 사이에도 다에꼬의 몸은 마사오를 감싼 채 계속 고동치고 있었다. 그 고동은 맨처음
보다, 간격은 길었으나 힘은 더 세어져 잇었다. 마사오의 중심까지 미쳐 왔다. 거기에 맞추
어 마사오도 다에꼬의 몸 속으로 계속 소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또 다른 축제의
시작이었다. 다에꼬는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마사오를 보았다.
"잘 됐어?"
"으음―." 마사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네가 힘든 것 같아서…."
다에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렇지 않아."
힘껏 마사오를 껴안았다. 다에꼬의 몸에서 마사오에게 호소하는 맥박이 더욱 세어졌다.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
마사오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에꼬는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마사오를
빨아들였다. 다에꼬의 몸에서 일어난 커다란 파도가 마사오를 덮었다. 마사오는 거의 무의
식적으로 그 파도에 맞추어 움직였다.
다에꼬의 파도는 계속 출렁거렸고 쉼없이 마사오에게 밀려왔다. 다에꼬는 노력하고 있었
다. 파도가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사오는 이제 정상에 올라서기 직전이었다. 다에꼬에게
알렸다. 다에꼬의 대답이 있었다.
"좋아."
다에꼬의 그 상기된 목소리가 폭발하기 직전의 마사오에게 방아쇠 역할을 했다. 눈 앞이
아뜩해지는 순간이었다. 축제의 마지막 잔을 비우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얗게 물거품을 튀겨울리며 몸부림치던 파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어
깨를 끌어안고 뺨을 비볐다.
"……?"
축축한 온기가 느껴졌다. 눈물이었다. 소리도 없이 다에꼬의 얼굴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
었다.
"후회해?"
"아니."
"이제 우리들은 하나가 된 거야."
마사오는 다에꼬에게서 몸을 빼지 않은 채 입술을 찾았다. 다에꼬는 숨지도 피하지도 않았
다. 그리고 속삭였다.
"분명히 알았어."
"알았다고?"
"응."
끄덕였다.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를 마사오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 마사오는 다에꼬 속에 있었고 다에꼬의 맥박은 약해졌지만 계속되고 있었다.
마사오는 천천히 다에꼬 에게서 떨어졌다. 어느 사이엔가 다에꼬는 손수건을 준비하고 있었
다.
마사오의 손이 다에꼬의 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손수건이 손 끝에 닿았다. 다에꼬의 다
리 사이에 있는 손수건을 마사오가 잡으려 할 때 다에꼬의 손이 그의 손을 붙들었다.
"보지 마."
"왜?"
"부끄러워."
다에꼬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 그 손수건이 마사오의 눈에 들어왔다. 선혈이었다. 순간 마
사오는 다에꼬를 끌어안았다. 눈을 감았다.
"하늘이 예뻐."
맑은 음성으로 다에꼬가 말했다. 다에꼬의 눈은 여전히 조금 붉은 듯했지만 눈물은 없었
다.
"왜 울었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다에꼬에게서 마사오가 물었다.
"사실은… 저…. 조금 슬펐었어. 마사오 때문은 아니야. 그냥…. 나도 잘 모르겠어."
"……."
"난 이제까지 내가 아냐."
"응. 그건 나도 그래."
"난 이제부터 전보다 더 많이 질투할 거야. 괜찮지?"
"응 괜찮아. 어쩌면 내가 더 질투할지도 몰라."
"마사오는 그럴 필요가 없어. 난 마사오뿐이니까."
산을 내려오면서 마사오는 다에꼬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난 마사오뿐이니까." 손을 잡
고 따라오던 다에꼬가 다리를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발길을 멈추었다.
"왜 그래?"
"아직 네가 내 속에 있나 봐."
마사오를 쳐다보는 다에꼬의 눈에 달콤함이 스며 있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어깨를 안고
키스를 했다.
"저어…, 저어…, 조금만 먼저 가 있어."
애원하는 투였다.
"괜찮겠어?"
"응. 걱정할 일은 아니야."
마사오는 다에꼬를 뒤로 하고 저만큼 앞서 걸었다.
조금 있으려니까 숲속으로 들어갔던 다에꼬가 마사오를 따라 내려왔다.
"뭐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너의 그것이었어."
산을 다 내려왔을 때 다에꼬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다시 돌아선
다에꼬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영롱했다. 그 눈빛으로 다에꼬는 마사오에게 말했다. 다에
꼬는 오래 전부터 마사오의 여자였어.
철쭉산에 다에꼬와 함께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와 함께 간다고 어머니
께 말했고, 다에꼬도 숨기지 않았다. 다에꼬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었다.
"네 도시락까지 싸 주셨어. 사실대로 말하니까 마음이 편해."
다에꼬는 집에서 손수 만든 보리차가 담긴 물통도 들고 있었다. 마사오는 누구의 눈도 의
식하지 않고 사랑을 나눌 장소만 나타난다면, 오늘 다에꼬와 한몸이 될 생각이었다. 물론
욕망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에꼬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또 미찌꼬가 이
미 거쳐 간 자신을 다에꼬에게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중의 배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에꼬의 몸을 완전히 갖지 않는다는 게 그들 사이에선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데, 그리고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은밀하게 서로를 고
백해 왔는데…. 이제 당연한 거였다.
"산에서 넌 내 여자가 되는 거야. 마음의 준비를 해둬."
약속을 정하면서 마사오는 다에꼬에게 자신의 계획을 분명하게 말했었다. 다에꼰느 동작을
멈춘 채 떠는 듯했다. 그리곤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맑은 눈빛으로 마사오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마사오의 말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순수한 애정의 표현으로 받아
들였을 것이다.
산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더욱 가파라졌다. 작은 돌덩이가 굴러내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길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이끼를 밟으면서 바위로 올라가 앉았다. 계곡에서 바람이 불어왔
다. 머리 위에는 커다란 오동나무 잎이 아늑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시원했다.
두 사람은 입술을 맞추었다. 가벼운 키스였는데도 마사오의 몸이 갑자기 흥분되어 버렸다.
다에고에게 자기 몸을 닿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다에꼬가 먼
저 일어서며 말했다.
"빨리 올라가자."
두 사람은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중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세상은 암울했고,
신문에는 연알 주먹 덩어리만한 활자가 끔찍한 사건들을 떠들어 대고 있었다. 도시고 시골
이고 공기가 흉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사오의 가방에도 작은 흉기가 있었다. 단도였다. 외진 곳으로 여자를 데리고 오는 남자
의 필수품 중 하나라고 마사오는 생각했다. 물론 위협용일 뿐이었고 두 말할 것도 없이 다
에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머!"
다에꼬가 멈춰섰다.
"철쭉이야."
"정말."
철쭉이 한창일 계절이 이미 지났는데도 오른쪽 언덕받이의 음습한 그늘 밑에 하얀 철쭉이
몇 송이 피어 있었다. 마사오는 감탄?다. 이끼에 묻힌 탓이었는지 꽃잎에 푸른 기운이 어
려 있었다.
"돌아갈 때 가져 가고 싶어."
"자리를 기억해 두자."
철쭉이 있던 곳을 뒤로 하고 가파른 산길을 조금 더 오르자 저 아래로 야트막한 산과 굽이
쳐흐르는 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평지가 나타났다.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
보던 마사오는 두 사람이 앉기에 알맞은 곳을 찾아냈다. 그늘이었다.
준비해 온 신문지와 돗자리를 깔고 마사오가 그 위에 앉자 다에꼬가 도시락 가방에서 젖은
수건을 꺼내 마사오에게 건네주었다. 마사오는 손과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도시락을 꺼냈
다. 아직 점심때로는 시간이 일렀지만 둘은 몹시 배가 고팠다.
"운동을 해서 배가 고픈데.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체육 시간 이외에는 별로 운동을 하지
못해 그렇지?"
"하지만 마사오는 일요일에는 텃밭에서 일을 하잖아."
"그냥 일하는 척만 할 뿐이야."
다에꼬가 만든 도시락은 훌륭했다. 김밥과 야채며 생선이 먹음직스러웠다. 젓가락을 건네
며 다에꼬가 말했다.
"자 내가 한턱내는 거야."
"잘 먹겠습니다."
둘은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식사가 끝나자 다에꼬가 따라준 보리차를 마셨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무슨 생각해?"
"앞으로의 인생, 다에꼬와 나의."
"내가 나이가 많다는 걸 생각해야지."
"상관없어."
"정말 그렇다면 좋겠지. 그러나 내가 아직 어리니까 마사오와 어울릴 수 있는거야."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다에꼬가 마사오에게 다가와 앉았다. 장난스럽게 눈을 들여다보며 살며시 웃었다. 입안에
사탕이 물려 있었다.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마사오의 입에 넣어주려는 시늉을 했다. 눈이
웃고 있었다. 마사오는 입을 벌렸다. 입술과 입술이 서로 만나고 사탕은 마사오의 입에 넣
어졌다. 계수나무의 신선항 향이 마사오의 입안에 퍼졌다.
"어, 꼐수나무 사탕이구나!"
"저번에 집에서 만났을 때 주려 했는데 엄마가 계셔서 안 줬어. 오늘 널 만나면 니j게 입
으로 주려고."
다에꼬는 슬며시 눈을 내리깔더니 힐끗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다에꼬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이젠 마사오도 느낄 수 있었다. 마사오 느낌은 빚나가지 않았다. 다에꼬가 마사오에게
안겨 온 것이다. 마사오는 팔을 뻗어 다에꼬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다에고의 몸이 마사오에
게 실려 왔다.
눈부신 태양이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나무는 미풍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사오는 윗도리를 벗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오늘은 목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된
다는. 둘은 서두르지 않았고 다에꼬도마사오도 말이 없었다. 부드럽게 그리고 깊숙하게 이
어지는 서로의 애무에 이제 말은 필요없었다. 둘은 뜨겁게 애무해 갔다.
드디어 귀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다에꼬를 사랑했다. 몸을 더욱 밀착시켰
다. 둘은 더욱 뜨거워졌다. 새삼스럽게 말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가고자
하는 곳은 금지 구역 이었다. 금지 구역의 울타리를 마사오와 다에꼬가 함께 힘을 모아 넘
으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확인되었고 이제 남은 건 대자연의 섭리에 맡길 뿐
이었다.
울타리는 그리 높지 않았고 다에꼬의 육체는 타올랐다. 그 귀에 마사오는 다시 한번 예고
했다. 울타리를 넘어갈 것이라고. 그러자 다에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다에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는 저항을 마사오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 저항을 무시
하고 나아가야 할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도 마사오는 알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저
항은 거의 없었고 상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몸을 더욱 죄어들었고,
다에고도 말없이 진행되는 이 마지막 의식에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다에꼬, 어떤 느낌이 오면 날 세게 안아. 도망가면 안 돼."
"응."
마사오는 호흡을 멈추고 곧장 나아갔다. 다에꼬가 마사오를 꼭 껴안아 왔다. 마사오는 자
신의 몸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쉬지 않고 나아갔다. 강
인하게 끌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다에꼬는 마사오에게 꼭 달라붙은 채 짧은 신음소리를 계
속 내고 있었다. 다에꼬의 양미간에 주름살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양다리에 이제까지 느끼
지 못했던 엄청난 힘이 주어지는가 싶더니 마사오를 힘껏 죄고는 꼼짝하지 않았다. 신음소
리도 없었다. 마사오는 직감했다. 다에꼬의 마지막 문이로구나. 처녀로구나. 마사오는 정지
했다. 다에꼬의 연약한 몸 속에서 마사오의 온몸이 묵직한 쇠줄로 칭칭 감겨 있는 듯한 느
낌이었다. 다시 다에꼬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마사오를 꼭 껴안고는 떨어질 줄 몰랐다.
마사오는 손으로 다에꼬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아팠어?"
다에꼬는 눈을 감은 채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마사오는 입술을 찾았다. 다에꼬는 지친 몸
을 기댈 의지처를 찾은 듯 마사오의 입술을 한번 격렬하게 빨았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쉬
었다. 호흡이 가빠서 긴 키스를 할 수는 없었다.
다에꼬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빠른 박동이 전해져 왔다. 마사오를 절정까지 이끌기 위한 호
소 같기도 했다. 마사오는 다에꼬를 꼭 껴안은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호소에 귀를 기울이
고 있었다. "상처 난 곳이 아픔을 호소하고 있어." 생명의 호소였다. 비로소 마사오는 다에
꼬와 하나가 되었다. 울타리를 넘은 것이다.
마사오는 손수건으로 땀방울이 돋아나 있는 다에꼬의 뺨을 닦아 주었다.
"눈을 떠 봐."
다에꼬의 눈이 열렸다. 젖어 있었다. 다에꼬의 눈동자에 마사오의 모습이 비치고 잇었다.
진한 눈빛이었다.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열중해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
다. 그 사이에도 다에꼬의 몸은 마사오를 감싼 채 계속 고동치고 있었다. 그 고동은 맨처음
보다, 간격은 길었으나 힘은 더 세어져 잇었다. 마사오의 중심까지 미쳐 왔다. 거기에 맞추
어 마사오도 다에꼬의 몸 속으로 계속 소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또 다른 축제의
시작이었다. 다에꼬는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마사오를 보았다.
"잘 됐어?"
"으음―." 마사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네가 힘든 것 같아서…."
다에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렇지 않아."
힘껏 마사오를 껴안았다. 다에꼬의 몸에서 마사오에게 호소하는 맥박이 더욱 세어졌다.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
마사오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에꼬는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마사오를
빨아들였다. 다에꼬의 몸에서 일어난 커다란 파도가 마사오를 덮었다. 마사오는 거의 무의
식적으로 그 파도에 맞추어 움직였다.
다에꼬의 파도는 계속 출렁거렸고 쉼없이 마사오에게 밀려왔다. 다에꼬는 노력하고 있었
다. 파도가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사오는 이제 정상에 올라서기 직전이었다. 다에꼬에게
알렸다. 다에꼬의 대답이 있었다.
"좋아."
다에꼬의 그 상기된 목소리가 폭발하기 직전의 마사오에게 방아쇠 역할을 했다. 눈 앞이
아뜩해지는 순간이었다. 축제의 마지막 잔을 비우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얗게 물거품을 튀겨울리며 몸부림치던 파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어
깨를 끌어안고 뺨을 비볐다.
"……?"
축축한 온기가 느껴졌다. 눈물이었다. 소리도 없이 다에꼬의 얼굴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
었다.
"후회해?"
"아니."
"이제 우리들은 하나가 된 거야."
마사오는 다에꼬에게서 몸을 빼지 않은 채 입술을 찾았다. 다에꼬는 숨지도 피하지도 않았
다. 그리고 속삭였다.
"분명히 알았어."
"알았다고?"
"응."
끄덕였다.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를 마사오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 마사오는 다에꼬 속에 있었고 다에꼬의 맥박은 약해졌지만 계속되고 있었다.
마사오는 천천히 다에꼬 에게서 떨어졌다. 어느 사이엔가 다에꼬는 손수건을 준비하고 있었
다.
마사오의 손이 다에꼬의 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손수건이 손 끝에 닿았다. 다에꼬의 다
리 사이에 있는 손수건을 마사오가 잡으려 할 때 다에꼬의 손이 그의 손을 붙들었다.
"보지 마."
"왜?"
"부끄러워."
다에꼬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 그 손수건이 마사오의 눈에 들어왔다. 선혈이었다. 순간 마
사오는 다에꼬를 끌어안았다. 눈을 감았다.
"하늘이 예뻐."
맑은 음성으로 다에꼬가 말했다. 다에꼬의 눈은 여전히 조금 붉은 듯했지만 눈물은 없었
다.
"왜 울었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다에꼬에게서 마사오가 물었다.
"사실은… 저…. 조금 슬펐었어. 마사오 때문은 아니야. 그냥…. 나도 잘 모르겠어."
"……."
"난 이제까지 내가 아냐."
"응. 그건 나도 그래."
"난 이제부터 전보다 더 많이 질투할 거야. 괜찮지?"
"응 괜찮아. 어쩌면 내가 더 질투할지도 몰라."
"마사오는 그럴 필요가 없어. 난 마사오뿐이니까."
산을 내려오면서 마사오는 다에꼬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난 마사오뿐이니까." 손을 잡
고 따라오던 다에꼬가 다리를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발길을 멈추었다.
"왜 그래?"
"아직 네가 내 속에 있나 봐."
마사오를 쳐다보는 다에꼬의 눈에 달콤함이 스며 있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어깨를 안고
키스를 했다.
"저어…, 저어…, 조금만 먼저 가 있어."
애원하는 투였다.
"괜찮겠어?"
"응. 걱정할 일은 아니야."
마사오는 다에꼬를 뒤로 하고 저만큼 앞서 걸었다.
조금 있으려니까 숲속으로 들어갔던 다에꼬가 마사오를 따라 내려왔다.
"뭐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너의 그것이었어."
산을 다 내려왔을 때 다에꼬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다시 돌아선
다에꼬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영롱했다. 그 눈빛으로 다에꼬는 마사오에게 말했다. 다에
꼬는 오래 전부터 마사오의 여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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