兄死娶嫂
6부
북적 북적 시끄러운 학생회관 식당.
하얗고 깨끗한 플라스틱 식판을 들고 밥을 기다리고 있다.
싱글벙글~
얼굴 한 가득 기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한 사람..
민규다.
월요일 오전부터 이어진 3시간 전공을 마치고,
용기를 내서 혜지에게 점심 같이 먹자고 물었다.
3교시 수업이 동시에 끝나는 혜지도
빠른 시간에 답장을 주어 민규를 설레게 했다.
이게 이렇게 쉬울 수가 있다니..
사랑은 쟁취하는.. 아니지,
미인은 용기있는 자가 얻는다는 것은 진리이구나.
새삼스럽게 자신이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한지..
바로 옆에서 수저를 챙기고 있는 후배를 보며 생각한다.
“자요~ 이거 챙기세요”
“고마워..”
“배 많이 고프시죠?”
“응? 조금..
아침을 오늘 바빠서 덜 먹었더니, 너는?”
“저는 오늘 오전에 머리좀 많이 써서요~
배도 꼬르륵~ 하고 견디기 힘들었어요ㅠㅠ”
“하핫~ 그래서 고른게 제육강정이랑 치킨덮밥이야?”
“잉~ 왜요~ 고기는 무조건 먹어줘야해요! 히”
“킥킥..”
“호호 오빠 왜 자꾸 웃어요..?”
“아니야. 그냥 귀여워서..
너 이미지가 왠지~ 육류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아”
“ㅋㅋ 그렇게 보셨어요?
채소를 씩씩하게 잘 먹는건 사실이지만..
고기 없이는 못 살아요~ 호호~”
“그르치, 한국 사람은 밥심인데~ 그 가운데서도 고기는..
갖가지 비타민을 포함한 식이섬유와 필수 성분들이 많아서 꼭, 먹어야해”
“어..?
내가 지금 그런 얘기 하려했는데..”
물끄러미 민규의 입을 바라보며 웃는 혜지.
알면 알수록 의외의 구석에서
생각지 못했던 박학다식함을 뽐내는 선배다.
혜지도 마침 같은 이야길 하려던 중이었다.
후배된 입장에서 선배가 거부감 들지 않게
채식 위주의 식이습관도 몸을 건강히 가꾸는데 좋지만,
무조건적인 채식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영양소를 구비하는 것이 체력 안배에 좋다..
식으로 육식의 장점을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찌찌뽕이라고 생각해서 웃었다.
조용히 생각해본다.
자잘한 면에서 선배와 통하는 면이 많다고.
3월의 마지막주.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크지만 대체로 따듯한 날씨다.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힘겨운 잠과의 싸움을 이겨낸다.
이곳 복지관 식당은 운영주체가 올해부터 생협으로 바뀌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가격에 다양하고 맛있는 식사들을 내놓아,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었다.
오전 내내 골머리를 앓느라 식욕이 발동했다는 혜지.
민규는 처음으로 혜지가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는 식단에
입을 조그맣게 벌리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 조그맣고 가녀리게만 보였던 아이가..
자신보다 섭취량이 많다고 느끼니, 정말 멘붕이었다.
민규가 선택한 것은 순살등심돈까스.
혜지의 메뉴는 앞서 적은대로 사천소스가 곁들여진 치킨덮밥과
매콤하고 입맛 돋구는 제육강정이었다.
힐끗- 눈치를 보던 아이.
귀여운 미소로 영양사 아주머니에게
돈까스에만 딸려나오는 채소 샐러드를 얻자고 부탁한다.
야무지게 차려놓고,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우는 두 사람.
일단 먹는 순간에는 대화가 끼어들 여지도 없다.
맛있게 식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이성을 찾고 나자
놓고 있던 정신줄을 쥐며 어색하게 웃는다.
“후~~아.. 맛있엉 맛있어~ 아 좋다”
“너... 진짜 잘 먹는구나? 놀랐어..”
“호호.. 그래요? 저는 보통이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이라는 기준이~
메인 메뉴 하나랑 사이드 한가지씩은 기본으로 놓고 먹는 거야?~”
“ㅋㅋㅋ 그런건 아니예요.
오늘처럼 막 배고픔을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보니까..”
“에이~ 내가 재미로 놀린거고~ 잘 먹으니까 보기 좋아”
“아, 아니예욧.. 저 돼지 아니라구요..
은서는 저보다 훨씬 더 잘 먹어요..”
“하하하하 그래?
은서면 전에 같이 봤었던 친구 이름..?”
“으응? 오은서라고 소개 안해드렸어요?
음.. 지난번에 독수리탑 있는 광장 앞에서 인사드렸던 애 있잖아요”
“아~ 막 뛰어오면서 같이 가자고..”
“네네~ 약간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애요 히히”
“그렇구나.. 이름이 은서구나.
진짜 귀엽게 생겼던데”
“맞아요 ㅋㅋ 은서 정말 귀여워요.. 깨물어 주고 싶어~”
즐겁게 혜지와 오랜만에 만나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민규.
4교시 공강을 지나면
이제 5교시부터 세시간동안 끔찍한 체험을 해야한다.
아...
적어도 마음 편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보기 싫은 여우년을 어떻게 견뎌야하나.
동준과 금요일에 연이어 어젯밤 술자리를 가졌다.
금요일은 컨디션이 저조해 짧게 이야기를 한 반면
어제는 영섭이와 간만에 삼총사가 모여서
이런 저런 찰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더랬다.
그 중에는 하연에 관한 은근한 뒷담화도 있었다.
민규와 동준은 영섭에게 모든 이야기를 공개할 순 없었지만
영섭 역시도 하연의 절친이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뭐 그건 일단 머리 아프니까 제껴두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눈 앞의 귀여운 후배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기특하게도, 밥을 오빠가 샀으니 점심 티 타임은 꼭 내게 해달라는 그녀.
민규는 머쓱해서 괜찮다고 말렸지만
뭐라 말할 틈도 없이 혜지가 계산해버리고 말았다.
잠시 민규가 턱을 괴고 하연의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작은 허니브레드와 에스프레소를 복닥복닥~
행복한 얼굴로 먹는 혜지를 보고- 빵 터지게 된다.
혜지는 간식을 맛나게 먹다가 민규를 보고 오히려 의아한 얼굴.
어서 더 먹으라며 옆에서 챙겨주는 민규다.
참..
정말 세상에 살다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도무지 나랑은 어느 한 구석도 매치가 안되는데
감사하게 같이 있어주고, 시간을 보내주는지..
민규의 대학생활 내내 가장 놀라운 기적이었다.
오늘 봄바람 산들거리는 혜지의 패션은
카키색 바탕에 노란 체크패턴의 질바이질 니트였다.
체크무늬 니트의 위와 아래는 핫핑크색 포인트와
안에는 화이트 셔츠를 갖춰 입는다.
그리고 얌전한 블루톤의 플레어 스커트로 완성.
앳되고 수수한 여대생 패션을 잘 살려 입었다.
덧붙여 아름다운 검정색 머리카락을 예쁘게 머리 뒤로 넘겨둔다.
따로 악세서리 같은 것은 착용하지 않는다.
왼쪽 귀를 드러나도록 머릿결을 하나로 모아~
하얀 목덜미 옆으로 흘려보낸다.
이 하나하나의 섬세한 구비는 민규에게..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시각적 환상을 체험케 하였다.
맑고 순수함의 결정체로 느껴지는 그녀~
옷 입은 모습이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고, 가슴을 뛰게 한다.
갈색 워커를 신었네..
밝은 파스텔의 치마 아래로 하얗게 드러나는 허벅지.
신발을 뭘 신었나 궁금해서 아래를 보려다가
눈이 자연스레 소녀의 다리를 훑게 된다.
꿀꺽...
저도 모르게 목 울대를 조그맣게 울리는 민규.
청바지를 즐겨 입을 때는 잘 몰랐는데
혜지의 맨다리 살결을 보니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다.
얼굴과 목 그리고 손의 피부색을 보고 짐작은 했지만
역시 하체의 속살도 하얗고 잡티 하나 없었다.
그리고 허벅지는...
늘씬한 종아리에 비해서는 슬쩍~ 육덕진 감이 있다.
우와아..
안돼 이성아. 참아라.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한가운데에 피가 몰려오는 걸 통제하려 힘을 썼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고, 더더욱 하체에 힘이 쏠린다.
정말 문자 그대로~
생뚱맞은 타이밍에 발기 기운이 느껴졌다.
서지마! 이 미친 넘아...
꿀꺽,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음란마귀야..
제발 나 좀 도와주라ㅠㅠ
애닮는 심경으로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그렇게 때 아닌 망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민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처음 먹어보는 빵에 깊이 몰두하고 있었다.
“후후~ 맛있당~ 앗..
오빠는 왜 아무 것도 안 드세요?”
“.......”
“...?
저.. 오빠~ 민규 오라버니?”
“아.. 응??
아, 미안해 나 부른 줄 몰랐어.. 뭐라 그랬니?”
“푸힛~ 뭐야~
물끄러미 어딜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어요?”
“아핫~ 그런..게 아니고..
실내가 좀 덥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하하”
“키득~
자!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마시고, 어서 요거 하나 드셔요”
“에이 됐어.. 나 이미 배 찼으니까 후배님 많이 먹어요~”
상큼한 얼굴로 저렇게 즐거이 디저트를 즐기는데..
어디 그 경건한 간식타임을 내가 방해할 쏘냐!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
눈 앞에 앉은 작은 천사의 모습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청년에게는 푸짐한 디저트를 먹은 것과 같았다.
“오빠~ 근데..
조교 일은 어때요, 좀 할만 하세요?”
“조교?
음.. 아직은 괜찮아. 잘 버티고 있어..”
“후훗~ 표정이 살짝 미묘한데..
그럼 실례지만~
지난번에 쪼오금 사이 불편했던 언니하고는..”
“아니 무슨 실례야?
걔는 원래부터 친구였고 잘 지내고 있지~
처음엔 좀 불편하고 많이 부딪쳤는데
어릴 때 얘기도 조금씩 하면서 괜찮아진 것 같아”
“그래요.. 정말루..?
으음~ 오빠 얼굴을 보니까 좀 무거워보여서
조심스럽게 한번 여쭈어 봤어요.. 다행이네요~!”
우라질...
전혀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후배 안심시킨다고 지어내려니 속이 갑갑했다.
민규는 잠깐 잠깐의 얼굴 표정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잘 드러나는 타입이다.
그래서 약간 식은 땀을 흘리며 생각해본다.
포커페이스와 같은 위장도 할 줄 알아야하는데..
너무 여과없이 생각하는대로 드러나버리니~
이것도 문제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밝게 웃는다.
스윽-
핑크색 긴팔 소매를 걷고 시계를 보는 혜지.
15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민규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는데..
동의를 얻어야할 것 같아 눈치를 엿본다.
“저, 오빠.. 있잖아요.
오늘 과사무실에 언제까지 있는다 그랬죠?”
“왜..?
있기는 네시까지 있어. 한시부터..”
“그래요?”
“너 설마~
혹시라도~ 같이 가보자거나 하는 엉뚱한 소리는 안하겠쥐?”
민규의 표정이 사실적이다.
제발 그것만은 간절히 말리고 싶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혜지도 그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호호호- 가면 왜 안되는데요?
걱정마세요. 저도 곧 수업이라 시간이 없으니까..
대신에 언젠가 한번 조용히 방문해볼게요”
“...?!
그, 그러지 않는편이 좋아.. 아핫..
혹시, 혹시 오더라도 혜지야?
꼭 나한테 미리 말을 해주고 오는..”
“킥~ 왜 그렇게 당황하고 말 더듬고 그러세요?
알겠어요~!
꼭 사전에 선배한테 연락을 먼저 할게요”
“응.. 꼭 그렇게 해야돼. 알았지?”
“후훗”
이마에 조그맣게 맺힌 땀을
휴우~ 한숨 돌렸다는 듯이 닦아내는 민규.
그런 민규를 보며 혜지도 재밌어한다.
터덕 터덕-
오늘도 힘겨운 발걸음.
사악한 1라운드 보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시 정각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그랬지...
용케 59분에 사무실 복도에 도착했다.
으 다리 아파.
아무도 없었다.
아직 안 왔나?
하연이 복사해준 열쇠를 부스럭 뒤진다.
달칵~
사무실에 들어서서 먼저 불부터 켜고 주위를 살폈다.
고요하군..
단정하게 정리를 잘 해놓은 분위기다.
허투르게 무엇하나 스쳐 보내지 않는..
그런 하연의 깔끔한 성격이 곳곳에 묻어나오는 것 같다.
깔끔하기라도 해야지, 성질도 개판인데..
슬그머니 하연을 생각하자 웃음이 터진다.
꼴꼴꼴..
시원하게 정수기의 냉수를 마신후~
털썩, 몸을 사무용 의자에 묻고 다리를 뻗는다.
언제 올지 몰라도 잠깐만 호사좀 누려보자~
잽싸게 신발을 벗고 하연의 의자 위에 발을 얹는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몸을 기대고 있으니
어저께 두 녀석과 주고 받았던 내용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용케 필름은 안 끊겼지 어제~
엄청 셋이서 쳐마신 것 같은데..
밤 늦게 가양동 k대 근처의 술집에서 모였었다.
11시 반이 지나서 영섭이 합류하기 전까지
민규와 동준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신나게 떠벌리던 참이다.
동준이 이 미친 놈...
하연이 미워말고 다시 어떻게 잘 구슬려보라니..
이게 말이야 돼지야?
너는 몰라서 그래~ 멍청한 새끼야!
나는 그날 똑똑히 들었다구..
혜지랑 처음 사무실에 알아보러 갔던 날,
나중에 들어오며 낯선 사람과 통화하던 걸 들었지..
.....
그거 틀림없이 애인이 있다는 뉘앙스였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연에게는 물을 엄두도 못냈다.
오랜 만에 만나서 그 정도로 진전된 사이도 아닌데다,
눈치없이 사생활에 오지랖을 떤다고 얼마나 화를 낼지..
보나마나 뻔한 이야기 아닌가.
그래도 줄곧 신경은 많이 쓰인다.
짜식은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이상한 얘기해서 기분 이상하게..
[야 근데 말야~
혜지라는 애는 언제 또 꼬셔놓은 거냐..]
[개소리여..
하연이 얘기하다가 바로 넘어가냐?]
[궁금하잖어 쓰불아~
지금부터 너랑 나랑 하던 시덥잖은 논쟁들은 잊자!
우덜이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이야기는! 바로 여자 이야기랑게~~]
[ㅋㅋㅋ 그건 맞는 말이다.
근데 하고 싶어도 몰라~
그 애랑은 나도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무슨 자지 수그러드는 소리야 또~
어디서 처음 보고 개수작을 부렸었는지,
그것부터 얼른 실토를 해보라니까!]
[아, 미친 새끼 진짜..
그러니까 그런 기억이 없다는데 자꾸 그래]
대략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동준에게 어제 둘러댄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아직까지도 혜지란 아이에 대해서는~
잘 웃고 예쁘고 싹싹하다는 것만 머리에 박혔을 뿐,
그 아이가 어떤 인맥과 관계를 가졌다든가, 집안 사정 같은 것 등등 하며..
스스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보가 전무했다.
에이 머리 아파. 시간도 많은데 뭐.
뭐라도 사연이 있었겠지~
넘겨버리는 민규다.
아직 오려면 걸린다는 하연의 카톡을 받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잔소리꾼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나만의 세상이다.
환기차 블라인드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연다.
아... 좋다..
눈부시게 빛나는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듯 민규의 눈 속으로 스며든다.
후흡~
학교 뒷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껴본다.
사무실 한켠에 비치된 작은 컴포넌트를 틀었다.
CD 플레이어를 틀으니 마침 흘러나오는 곡은 영화 탑건의 ost였다.
편안하게 단칸방의 내부에 울려퍼지는 스피커.
음악에 잠겨 탐 크루즈의 리즈 시절을 떠올려본다.
와~ 진짜 진짜 잘 생긴 얼굴이었는데!...
그 영화에 나온 여주인공은 정작 생각도 안나..
정말 그 당시 탐 크루즈의 굉장한 비주얼은
같은 남자가 볼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떠듬 떠듬~
가사도 잘 모르지만 오랜만에 들으며 따라불러도 기분 좋아지는 곡이다.
헤헤-
바보처럼 옆에 걸린 벽거울을 보며 실없이 웃는다.
진짜 오늘은 엄청나게 재수가 좋았지.
가슴 졸이며 혜지에게 톡을 보냈던 아침의 모습이 선명한데~
그걸 반갑게 받아주고 만나서 즐거운 시간까지 보냈으니..
흐뭇한 얼굴로 눈을 감고 그 시간을 되새겨본다.
평상시 이런 짜투리 여유 시간 같으면
민규의 머릿속은 대부분 형수의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런데 오늘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형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보다도,
자연스럽게 동생 혜지에 대한 생각만 떠오르고 있었다.
아직 오려면 멀었나?
입도 심심한데, 담배나 한 대 피울까..
품속을 뒤적거려보니 꼬불쳐둔 두 개피가 있었다.
야~ 이것도 참 오랜만에 피는 것 같네..
구질 구질하게 접혀서 약간 습기에 젖어 있다.
1,2학년때까지만 해도 꽤 피워댔는데..
군 제대하고 나서는 거의 피운 기억이 없었다.
몸을 생각해서 이등병 시절부터 담배를 멀리하다보니
놀랍게도 전역 후에도 담배와 소원해졌던 셈이다.
지금도 자주 생각이 나진 않고
드문드문 어쩌다 생각나면 재미삼아 피는 정도다.
후~~~ 우우~
하하. 나같이 가끔 새우깡처럼 피는 녀석이 또 있을까?
간만에 한 대 가볍게 빨아들이니 맛있다.
드넓은 복도에 나와서 창문을 열고 피고 있다.
사무실에 담배 연기라도 보이는 날에는..
그 괴팍한 녀석에게 싸대기를 맞을 지도 모를 일이다.
“또각- 또각-”
“... 아, 왔냐”
“어~ 너 거기서 뭐해~?”
“아, 아냐.. 그냥 바람 쐬고 있었어 헷~”
“쳇~ 사무실 문 열어두고.. 어서 들어와”
안색을 보니 썩 그리 어둡진 않다.
혹시 담배 핀 것을 들키진 않았겠지?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땀을 흘린다.
킁 킁-
몸에 배어있을 지도 모를 냄새를 서둘러 지우고
종종걸음으로 마님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온다.
우와....
조금 전까지 서서 같은 눈 높이로 하연을 봤을때는 몰랐던 민규.
사무실에 들어와서 다시 하연을 바라보고 놀란다.
경탄을 절로 터뜨릴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매우 가벼워 보이는 핫핑크색의 롱 가디건.
시원해보이는 스웨터 가디건이 깔끔하다.
양쪽 아래 두 주머니는 아기 캥거루도 들어갈만큼 큼직하다.
치마 입었네.
원피스인가?
죽인다...
민규가 뒤에서 뚫어지게 전신을 보는줄도 모르고
등을 돌리고 서서 창문 바깥을 구경 중인 하연.
시원하게 콧등을 간지럽히는 산들바람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꿀꺽...
잠깐만 볼게.. 바로 뒤돌진 않겠지?
휴우~
뒤에서 민규가 뒷태에 푹빠진 줄 모르고 바람쐬는 하연.
두근 두근...
이 놈의 심장은 아무 때나 여러 여자 보고 뛰니 죽을 맛이다.
혜지랑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지났다고~
다시 하연의 눈부신 자태를 보니 박동이 빨라진다.
예쁜 핫핑크의 외투 아래로 보이는 검은색 미니 스커트.
아래는 가볍게 레이스가 들어간 형태다.
가디건이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바람에
약간 하의실종 패션과 비슷한 느낌도 준다.
검정 스커트가 감싸주고 있는 히프에 눈이 간다.
요즘 유행하는 애플 힙이 바로 저런 것일까.
꾸준히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하연의 몸매답게
정면에서 15도 가량 위를 향해 예쁘게 솟아 있었다.
엉덩이가 이쁘네...
고혹적인 분위기의 S라인이 근사하다.
그리고 늘씬하니 아래로 쭉 뻗은 각선미...
정말 침 넘어 가는 순간이다.
혜지에 비교한다면 오히려 조금 더 야윈 허벅지 같은데~
저 아슬아슬한 뒷태만을 봐서는 감이 안온다.
어서 가서 한번 만져봐야할텐데....
무릎 뒤의 굽혀진 부분도 깔끔하고
하얀 피부가 굴욕 없이 깨끗해보인다.
꿀꺽..
그리고 시선이 자연히 가는 곳은..
하얀색 펌프스힐로 한껏 멋을 낸 그녀의 힐이었다.
뒤에서 곁눈질로 봐도 디자인이 괜찮다.
발등을 자신있게 드러내 주기 때문에
늘씬한 다리가 더 길어보이는 착시효과를 준다.
앞부분은 검은색으로 칠해졌는데, 가운데 작은 리본장식이 달렸다.
높은 하이힐과 시원하게 패인 발등의 디자인 덕분에
발목도 더욱 얇아 보였고, 키도 더 크게 느껴졌다.
모델 뺨치게 아름다운 몸매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될 법한 것은, 하연의 자태에 침을 흘리던 민규의 사타구니를 말한다.
넋을 놓고 멍때리며 뒷태를 감상하던 민규..
대개 이 쯤되면 꼿꼿하게 그것이 발기할 수 있는 상황인데
지금은 다행이도 조용하다.
아마도 하연의 전혀 예기치 못한 옷차림을 보고 충격 받은 나머지,
잠시 흥분도 잊은 모양이다..
“꾸우와아아~~! 으흐응~~”
기지개를 쭈욱~ 피며 몸을 뻗는 하연.
뻐근한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 순간 뒤로 돌아선다.
그때까지 침 흘리며 보고 있던 민규,
화들짝! 놀라서 쓱쓰슥 입가를 닦고 고개를 돌렸다.
멍하니 서있는 걸 그 모습에 하연의 눈이 동그래진다.
“너 여태 뭘하고 거기 가만히 서있던 거야?
와서 컴퓨터도 키고, 책상 정리도 점검해야지?”
“어, 미안, 미안해..
나도 지금 들어와서 여기 테이블 보고 있었어..”
붉어진 얼굴로 차마 그녀의 눈을 마주보지 못한다.
조금 전까지 훔쳐보던 걸 들킬까봐,
서둘러 아무렇지 않은척 사무실을 여기저기 정리했다.
“......
훗, 천천히 해~ 오늘 특별히 바쁜 일도 없다”
“엥~ 오늘 월요일인데?
월요일이 서두를 일이 없다니 뭔 말이야”
“그렇게 됐어..
어우 야앗~ 거기 빗자루로 쓸지마~”
“응?”
“토욜날 퇴근할 때 다 물걸레질 해놨어.. 띨빵아”
먼지 일으키지 말라고 눈치를 준다.
에헤헤-
어벙하게 웃으며 한쪽으로 물러나는 민규.
그래도 기분이 싫진 않았다.
저리 치우라며 잔소리하는 하연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따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짝 찡그리는 눈매가 요염하기까지 하다.
일도 없고 한가하다며 풀썩~ 의자에 몸을 묻는 하연.
꼴꼴꼴꼴...
시원한 정수를 민규처럼 쭈욱 들이킨다.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는 그녀.
민규는 멀리서 마른 행주를 가지고 유리 테이블 위를 닦고 있다.
그러는 한편 하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몰래 훔쳐본다.
“오늘, 너 무슨 일 있어..?”
“나? 아니~ 별로~ 왜 그래?”
“아냐 그냥...
그냥 기운이 좀 없어 보이길래..”
“후훗~ 니가 왠 일로 그런걸 물어보고,
나 걱정해주는 거야?”
“걱정이라니..
친구인데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지..”
“쿡쿡쿡..”
아닌게 아니라 오늘 하연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약간 우수에 젖은 듯한 분위기라고 할까..
지저분하고 화를 잘 내는 성질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듯 내가 모르던 생소하고 차분한 이미지도 있었네.
너 많이 변했구나, 하연아.
그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민규도 바보가 아니었다.
티가 많이는 안 나도 하연은 오늘 조금 다르다.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그것을 애써 감추는 느낌이라 할까..
어째서인지 그것이 느껴졌다.
조용히 그녀를 주시하며 자극하지 않으려는 민규.
그러면서도 머리는 솔직해서-
아까 못 보았던 예쁜 옷차림의 앞부분도 궁금해진다.
어디...
예쁜 핫핑크 외투 속에 검은색 시스루를 입었다.
가슴 윗부분은 자수로 꽃무늬가 새겨진 망사재질이다.
자연히 민규의 시선은 쇄골뼈와 목선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며 상체를 훑는다.
가슴이 커진 것 같네..
이 녀석 혹시 수술했나?
옛날 기억으로도 그렇게 빈유는 아니었다.
적당히 탐스러운 볼륨의 건강한 체형이었는데..
오랜만에 얇은 질감의 상의를 보니
하연의 멋진 가슴에 자꾸 눈이 가게 된다.
새근- 새근-
잠깐 잠이라도 든 것일까.
미약하게 숨쉬는 소리를 하연이 낼때마다,
그녀의 살짝 부푼 가슴이 조금씩 위아래로 움직인다.
꿀꺽...
쟤는 저렇게 입으면 안 춥나?
옷이 전체적으로 얇아 보여.
보는 나야 눈이 엄청 즐겁지만~
이제 보니 스커트랑 상의가 따로가 아니고
하나로 된 시스루 원피스였구나..
야리야리하다고 표현하면 좋으려나.
선이 몹시 가늘고 가냘픈 느낌마저 주는 하연의 몸매.
봄기운 물씬한 차림의 그녀를 쭈욱~
아래 위로 골고루 훑어보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안됐고 짠한 심정까지 들었다.
그런데 젠장할...
머리로는 이녀석 왠지 오늘 안쓰러워 보이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아랫도리는 불끈! 치솟는 것이다.
아니 슈발....
아까는 뒷태를 봐도 안 서더니,
하필이면 이런 조용한 순간에 자지가 서는 거냐..?
어쩔 수 없다.
예쁘다고 생각만 했던 예전 여자친구에게서
어느새 다소 낯설은 여인의 향기가 물씬~ 느껴졌으니..
전에는 미처 몰랐던 성숙한 요염함이 색다르다.
틀림없다.
민규가 전혀 모르고 있던..
묘하게 자극적인 섹시함을 내뿜고 있었다.
두근 두근...
괜시리 덜렁이는 가슴을 원망하며
시도 때도 없이 서지 말란 말여 미친 넘아~
말 안듣는 주니어를 나무라고 감춘다.
근데 말을 지독하게 안듣는다.
딱딱하게 서있는 그걸 들키면 큰일인데..
“민규야”
“.... 응!”
“나~ 커피나 한잔 좀 타줘”
“커, 커피..?
알았어 지금 탈게.. 설탕은 몇 스푼??”
갑자기 눈을 지그시 감던 하연이 말을 건네자
민규도 필요 이상으로 놀래버린다.
“쿡~ 너 왜 그러냐~ 도대체~
떠먹는 설탕이랑 프림 치운지가 언젠데~
거기 내가 사온 커피믹스 있잖아.. 그거 타줘”
“아, 미안. 못봤다.. 물은 얼만큼이나?”
“......
알아서 적당히 타. 중간 쯤”
심상치 않은 분위기긴 했지만
오늘 말하는 어투가 어인일인지 다정하다.
한결 부드러운 하연의 음성에 적응이 안되는 민규.
그렇지만 그 역시도 기분 좋게 웃으며
어떻게든 기분을 맞춰주고 싶어~ 빠르게 움직였다.
민규가 타준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하연.
눈을 잠시 떴다가, 다시 목을 넘어가는 그 맛을 음미한다.
그리고는 편안한 얼굴로 눈을 다시 감았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민규는 어린아이와 같은 눈으로 모두 지켜본다.
정말 이쁘긴 이쁘구나.
정하연..
“커피 맛있다.. 고마워”
“그래..? 뭘~ 하하.
너 오늘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 하연아”
“.... 내가?
그렇게.. 느껴졌어, 너 보기에?”
“아니~ 그냥~~
쫌.. 속상한 일이 있는 것 같아서..”
하연이 민규를 슬쩍 올려다본다.
바라보는 눈이 이쁘다.
싫지 않다는 얼굴이다.
니가 용케 내 기분을 알고 있구나..?
하는 듯한, 작은 감동의 눈빛이었다.
“후훗~ 박민규..
오늘 쫌 멋져보이는걸~~”
“하하하...”
“음악도 틀어놓고 센스 있어~
노래 좋은데.. 너 샹송도 들어?”
“어? 아니.. 나 그런것까지 몰라 무식해서..
이건 그냥 좋은 영화음악 모음집이거든~”
“아, OST 야?”
“맞아. 명곡들이 많아”
“음... 그렇구나~
지금 나오는 노래는 제목이 뭐니?”
“이거..?
나도 아직 안봤는데..
이거 가수 이름을 못 읽겠어.. 이사벨르..?”
“이리 줘봐”
버벅거리는 민규를 보고 하연이 손을 뻗는다.
CD 뒷면 케이스를 유심히 보더니, 픽 웃는 그녀.
“이거~ 이자벨 아자니잖아”
“이자벨 아자니?”
“몰라?”
“어.. 생소한 이름이야”
“후후~ 여왕 마고라고 영화 몰라?”
“어...”
“프랑스 국민배우인데.. 쫌 충격이다 너~”
“쳇 모르면 어때..”
“킥킥~ 그래 니 말대로 모를 수도 있지.
까미유 끌로델, 여왕 마고.. 이 언니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데”
“그래??”
“응~ 얼굴도 디게 이뻐..
근데 앨범을 냈었네?? 나도 몰랐다 이건~”
어지간한 팝송은 잘 안다고 자부하는 민규인데
모르는 노래를 하연이 알고 있자 신기했다.
이런 저런 이름 모를 배우의 이름을 주고 받으며
하연과 그렇게 영화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간다.
그 느낌이 무척 즐거웠다.
예전 같으면 내가 너무 어려서..
아니 지금도 어른스럽다고 생각은 잘 안해.
그렇지만 그나마 훌쩍 컸잖아.
그렇지, 하연아~
나 조금은 그때보다 어른이 되지 않았어?
......
눈을 부드럽게 마주보면서,
그렇게 묻고 싶었다.
유대감..
공유한다는 정서.
스무살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예쁘고 멋진 여자친구와..
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오랜 시간 즐겨본 적은
아마도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너랑 이야기하다보니까 나 기분이 좀 풀렸어..
니 덕분인 것 같아~”
“그렇다면 나는 다행이고.. 헤헷”
“응.. 사실은 아까 표정이 왜 그랬냐면 말야.
오늘 누가 중요한 일정을 펑크 냈었거든”
“어쩐지~ 그랬구나..”
“응, 정말이야 후후-
근데~ 나 너한테 묻고 싶은게 생각났어~”
“말해봐. 뭔데?”
“음~~~...”
잠시 망설이고 있는 하연.
이젠 아까에 비해서 편하게 그런 하연을 내려다 볼수 있다.
이 말인 즉슨, 아직 민규는 서서 그녀와 대화중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간에 어떤 질문을 할까 궁금하다.
스윽-
동그란 모양의 바퀴 의자를 당겨 민규도 앉는다.
오늘 하연의 스타일링은 볼수록 욕심이 나고 끌린다.
앉아서 자세히 보니 더더욱 그런 충동이 밀려왔다.
그뿐인가?
웃으며 그를 대하는 그녀의 미소에
며칠전까지 가졌던 경계심도 많이 풀어진 상황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별안간 저렇게 두근거리는 환타스틱함으로 나타나다니..
헤벌레~하는 얼굴로
아름다운 곳곳을 계속 바라보게 된다.
그런 민규의 사심 그득한 눈빛을 모르는지,
곧 하연의 말이 이어진다.
“있잖아~
오늘.. 나 어때, 이뻐?”
“......
뭘 뜸들이나 했네.. 그거 물어보려고?”
“... 으응...”
“하하하하하~”
“.... 칫..”
본인이 생각해도 엄청 부끄러운가보다.
갑자기 민규가 하연의 생뚱맞은 질문에 빵 터져버리자
이번엔 하연이 얼굴을 붉히며 쳐다보았다.
“왜 웃어!”
“ㅋㅋㅋㅋ 아니야, 웃어서 미안.
너 이뻐~~ 오늘. 디게 많이 눈에 띈다! 진짜 이쁘고”
“저, 정말이야..?”
“어~ 정말이지~?..”
“호호호-”
민규가 직설적으로 칭찬해주자
하연도 기분이 꽤 좋은 눈치다.
내심 기다리던 입에서 의외의 멘트가 나오는 걸 듣고
소리내어 밝게 웃는다.
하연의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미소를 보고
아~ 솔직함이라는 건 이렇게 좋구나..
방긋-
마찬가지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게 되는 민규.
“너 많이~ 컸다~? 우후훗~ 달라졌어”
“쳇~~ 컸지 그럼..
나~ 이제 너랑 맨날 싸우던 그 어린애가 아냐”
“쿡, 그래?
좋은 쪽으로 많이 변했어 그럼?”
“... 그거는.. 야~ 내 입으로 어떻게 그렇다고 해.
니가 직접 보고 느껴야지, 이제부터..”
“흐음~ ”
촉촉히 젖은 눈으로 웃는 하연.
아이같이 상냥한 모습에 민규는 완연히 마음이 풀어진다.
그리고나서 하연은 뭔가 찾을 것이 있는지,
벌떡 갑자기 일어나서 잔과 음료들이 놓인 테이블 위를 살폈다.
민규는 슬쩍 뒤로 물러서서 하연의 뒷태를 바라본다.
엇, 가만..
살색 스타킹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정하연 스타킹 안 신었네..?
맨다리구나!
투명한 살결이 은은하게 반짝이는 모습이다.
미끈한 각선미가 눈을 쉬지않고 유혹하는데...
깨끗한 살결에 맨다리라고 생각하니,
잠시 잠들어 있던 페니스가 다시 용솟음치는 것이다.
야.. 이거 미치게 좋지 또...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요사스러울 수가 있단 말인고.
순진한 청년은 여인이 의도하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이미 그 설레는 미색에 흠뻑 취하고 있었다.
“없네~ 찾아봐도~”
“뭘.. 찾는데?”
“있어, 유에스비를 가져왔는데 안보이네”
“USB? 나 하나 갖고 있어. 줄게”
“으이구 밥오야~ 내가 너한테 보여줄게 있단 말이지”
“아...”
하연은 자료를 급 찾는다면서
사무용 의자를 바싹 땡겨앉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고 있던 민규..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던 것을 어렵게 던져본다.
“저.. 하연아..”
“응~”
“너 혹시..
오늘 펑크났다던 약속 외에..
누구 또.. 만나러 가는 거야?”
“뭐어~?
너 왠일이야, 그런걸 나한테 묻고? 호호”
두근 두근...
눈이 부실 정도로 아찔한 하연의 꿀벅지가-
나란히 앉은 책상 아래로 계속 시선을 붙잡는다.
하연은 뜻밖의 질문에 잠깐 이쪽을 보고는
다시 휙- 고개를 돌리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다.
민규는 하연의 눈을 피해 다시,
탐스럽게 익은 그녀의 허벅지만 숨죽이며 훔쳐보았다.
이쁘다...
음란한 생각은 제쳐두고 그녀의 상큼함에 취하는 민규.
다시 전신을 이리저리 몰래 바라본다.
너무 다리와 봉긋한 가슴만 보는게 왠지 미안해서,
깔끔하게 위로 틀어올린 머리와 목덜미도 감상하였다.
가녀린 쇄골을 따라 이어지는 그녀의 하얀 목.
예쁘게 틀어올린 머리 뒤편으로-
귓불에 드리워진 은빛 귀걸이만 바라본다.
이 자식은 목덜미도..
이쁘네..
“.... 응? 호호~
왜 말을 하다가 마냐구~?”
“어? 아니 내가 질문한 거잖아..
오늘 누구 또 다른 약속 있느냐고~”
“그랬나?
흐흣, 근데 내 스케줄은 알아서 니가 뭐하게?”
“그, 그거야 궁금해서지..”
그러자 하연은 여태 바라보던 화면에서 눈을 뗀다.
민규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고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며 슬쩍 웃었다.
“후후, 왜~ 나 아무런 약속 없으면
같이 데이트라도 하러 나가게?”
“뭐, 미, 미쳤냐?? 말이 되는 소릴해.
내가 너, 너한테 데이트라니..?”
“호호~ 아니야?
난 은근하게 니가 신청하는 줄 알고.. 기분 좋았는데”
어라?
미친 척 하고 던졌는데..
그냥 더 나가볼까..
“... 그게 야, 아까는 데이트라고 하니까..
나도 놀래서 그랬지..”
“호호”
“... 하연아..”
“응~ 얘기해”
“오늘 그러면..
나랑 같이 바람 쐬러 나갈까..?”
“......
바람을 쐬러, 너랑 같이..?”
“응!!...”
하연은 그러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민규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바짝, 다가 앉는다.
야야~ 가까이 오지말고 그냥 말해..
흥미롭다는 눈이다.
잠시 말이 없다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어, 가능해..?”
“응~ 그러지 뭐~
넌 왠일로 나한테.. 용기를 내는 거야?”
“용기라기보다.. 헷..
니가 오늘 너무 이쁘잖아, 인간적으로.. 또..”
“호호호! 너 지금 뭐래~?
그래, 이쁘고~?”
상당히 반응이 좋다.
이거 느낌 좋은데...
민규도 말을 더듬지 않고 한결 자신있게 말한다.
“오늘 니가 좀 마음이 안좋아보여서..
나라도 괜찮으면~
그래, 나랑 있어도 괜찮다면.. 위로 좀 해주고 싶었거든”
“... 정말?”
“그렇다니까~”
“와~~~ 싸나이 방밍규~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구나!!”
“쳇... 내가 만년 호구냐..”
그런데 그 이후로 또 정적이 찾아온다.
소심한 민규는 하연의 눈치를 살피는데..
너무 던졌나?
민규는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가 좋은데도
쿵덕 쿵덕~
자못 떨리는 기분으로 하연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바람쐬러 갈거지..?”
“응.. 그러겠다고 했잖아”
“아, 그게 바로~ 오케이 한거 였어?”
“어~ 안될 이유가 없잖니? 후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랑 너 사인데~~”
“나랑 너 사이가 어떤 사인데~?
쪼금 오해할 소지가 있게 말한다 너.. ”
“키득~ 미안해~ 나쁜 의미가 아니었어”
“헤헤.. 그래.
그럼 하연아, 지금 바로 나갈까?...”
“얘는~? 뭐가 그리 급해?
이거부터 지금 타이핑 좀 해놔”
“엥?”
“얏~! 너 오늘 일 안할 거야? 오늘 산적한 서류 해결못하면 퇴근 못해~”
“아.. 난 놀랐네 또.. 알았어”
yes구나!
신이 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자세를 다잡는다.
정하연이 승낙을 하다니...
자기도 모르게 손놀림이 굉장히 빨라지는 민규다.
=
지난 후기에 안내해드린대로.. 이틀간 가벼운 몸살 기운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토요일 오후에 올렸었는데, 이번엔 올리고 읽어보니 생각했던 방향과 흐름이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서 어쩌지.. 하다 과감히 지운거예요.
이 글은 새로 쓴 글입니다. 그날 잠깐 보신 분들께 양해말씀 드립니다.
6부
북적 북적 시끄러운 학생회관 식당.
하얗고 깨끗한 플라스틱 식판을 들고 밥을 기다리고 있다.
싱글벙글~
얼굴 한 가득 기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한 사람..
민규다.
월요일 오전부터 이어진 3시간 전공을 마치고,
용기를 내서 혜지에게 점심 같이 먹자고 물었다.
3교시 수업이 동시에 끝나는 혜지도
빠른 시간에 답장을 주어 민규를 설레게 했다.
이게 이렇게 쉬울 수가 있다니..
사랑은 쟁취하는.. 아니지,
미인은 용기있는 자가 얻는다는 것은 진리이구나.
새삼스럽게 자신이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한지..
바로 옆에서 수저를 챙기고 있는 후배를 보며 생각한다.
“자요~ 이거 챙기세요”
“고마워..”
“배 많이 고프시죠?”
“응? 조금..
아침을 오늘 바빠서 덜 먹었더니, 너는?”
“저는 오늘 오전에 머리좀 많이 써서요~
배도 꼬르륵~ 하고 견디기 힘들었어요ㅠㅠ”
“하핫~ 그래서 고른게 제육강정이랑 치킨덮밥이야?”
“잉~ 왜요~ 고기는 무조건 먹어줘야해요! 히”
“킥킥..”
“호호 오빠 왜 자꾸 웃어요..?”
“아니야. 그냥 귀여워서..
너 이미지가 왠지~ 육류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아”
“ㅋㅋ 그렇게 보셨어요?
채소를 씩씩하게 잘 먹는건 사실이지만..
고기 없이는 못 살아요~ 호호~”
“그르치, 한국 사람은 밥심인데~ 그 가운데서도 고기는..
갖가지 비타민을 포함한 식이섬유와 필수 성분들이 많아서 꼭, 먹어야해”
“어..?
내가 지금 그런 얘기 하려했는데..”
물끄러미 민규의 입을 바라보며 웃는 혜지.
알면 알수록 의외의 구석에서
생각지 못했던 박학다식함을 뽐내는 선배다.
혜지도 마침 같은 이야길 하려던 중이었다.
후배된 입장에서 선배가 거부감 들지 않게
채식 위주의 식이습관도 몸을 건강히 가꾸는데 좋지만,
무조건적인 채식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영양소를 구비하는 것이 체력 안배에 좋다..
식으로 육식의 장점을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찌찌뽕이라고 생각해서 웃었다.
조용히 생각해본다.
자잘한 면에서 선배와 통하는 면이 많다고.
3월의 마지막주.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크지만 대체로 따듯한 날씨다.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힘겨운 잠과의 싸움을 이겨낸다.
이곳 복지관 식당은 운영주체가 올해부터 생협으로 바뀌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가격에 다양하고 맛있는 식사들을 내놓아,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었다.
오전 내내 골머리를 앓느라 식욕이 발동했다는 혜지.
민규는 처음으로 혜지가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는 식단에
입을 조그맣게 벌리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 조그맣고 가녀리게만 보였던 아이가..
자신보다 섭취량이 많다고 느끼니, 정말 멘붕이었다.
민규가 선택한 것은 순살등심돈까스.
혜지의 메뉴는 앞서 적은대로 사천소스가 곁들여진 치킨덮밥과
매콤하고 입맛 돋구는 제육강정이었다.
힐끗- 눈치를 보던 아이.
귀여운 미소로 영양사 아주머니에게
돈까스에만 딸려나오는 채소 샐러드를 얻자고 부탁한다.
야무지게 차려놓고,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우는 두 사람.
일단 먹는 순간에는 대화가 끼어들 여지도 없다.
맛있게 식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이성을 찾고 나자
놓고 있던 정신줄을 쥐며 어색하게 웃는다.
“후~~아.. 맛있엉 맛있어~ 아 좋다”
“너... 진짜 잘 먹는구나? 놀랐어..”
“호호.. 그래요? 저는 보통이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이라는 기준이~
메인 메뉴 하나랑 사이드 한가지씩은 기본으로 놓고 먹는 거야?~”
“ㅋㅋㅋ 그런건 아니예요.
오늘처럼 막 배고픔을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보니까..”
“에이~ 내가 재미로 놀린거고~ 잘 먹으니까 보기 좋아”
“아, 아니예욧.. 저 돼지 아니라구요..
은서는 저보다 훨씬 더 잘 먹어요..”
“하하하하 그래?
은서면 전에 같이 봤었던 친구 이름..?”
“으응? 오은서라고 소개 안해드렸어요?
음.. 지난번에 독수리탑 있는 광장 앞에서 인사드렸던 애 있잖아요”
“아~ 막 뛰어오면서 같이 가자고..”
“네네~ 약간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애요 히히”
“그렇구나.. 이름이 은서구나.
진짜 귀엽게 생겼던데”
“맞아요 ㅋㅋ 은서 정말 귀여워요.. 깨물어 주고 싶어~”
즐겁게 혜지와 오랜만에 만나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민규.
4교시 공강을 지나면
이제 5교시부터 세시간동안 끔찍한 체험을 해야한다.
아...
적어도 마음 편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보기 싫은 여우년을 어떻게 견뎌야하나.
동준과 금요일에 연이어 어젯밤 술자리를 가졌다.
금요일은 컨디션이 저조해 짧게 이야기를 한 반면
어제는 영섭이와 간만에 삼총사가 모여서
이런 저런 찰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더랬다.
그 중에는 하연에 관한 은근한 뒷담화도 있었다.
민규와 동준은 영섭에게 모든 이야기를 공개할 순 없었지만
영섭 역시도 하연의 절친이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뭐 그건 일단 머리 아프니까 제껴두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눈 앞의 귀여운 후배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기특하게도, 밥을 오빠가 샀으니 점심 티 타임은 꼭 내게 해달라는 그녀.
민규는 머쓱해서 괜찮다고 말렸지만
뭐라 말할 틈도 없이 혜지가 계산해버리고 말았다.
잠시 민규가 턱을 괴고 하연의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작은 허니브레드와 에스프레소를 복닥복닥~
행복한 얼굴로 먹는 혜지를 보고- 빵 터지게 된다.
혜지는 간식을 맛나게 먹다가 민규를 보고 오히려 의아한 얼굴.
어서 더 먹으라며 옆에서 챙겨주는 민규다.
참..
정말 세상에 살다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도무지 나랑은 어느 한 구석도 매치가 안되는데
감사하게 같이 있어주고, 시간을 보내주는지..
민규의 대학생활 내내 가장 놀라운 기적이었다.
오늘 봄바람 산들거리는 혜지의 패션은
카키색 바탕에 노란 체크패턴의 질바이질 니트였다.
체크무늬 니트의 위와 아래는 핫핑크색 포인트와
안에는 화이트 셔츠를 갖춰 입는다.
그리고 얌전한 블루톤의 플레어 스커트로 완성.
앳되고 수수한 여대생 패션을 잘 살려 입었다.
덧붙여 아름다운 검정색 머리카락을 예쁘게 머리 뒤로 넘겨둔다.
따로 악세서리 같은 것은 착용하지 않는다.
왼쪽 귀를 드러나도록 머릿결을 하나로 모아~
하얀 목덜미 옆으로 흘려보낸다.
이 하나하나의 섬세한 구비는 민규에게..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시각적 환상을 체험케 하였다.
맑고 순수함의 결정체로 느껴지는 그녀~
옷 입은 모습이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고, 가슴을 뛰게 한다.
갈색 워커를 신었네..
밝은 파스텔의 치마 아래로 하얗게 드러나는 허벅지.
신발을 뭘 신었나 궁금해서 아래를 보려다가
눈이 자연스레 소녀의 다리를 훑게 된다.
꿀꺽...
저도 모르게 목 울대를 조그맣게 울리는 민규.
청바지를 즐겨 입을 때는 잘 몰랐는데
혜지의 맨다리 살결을 보니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다.
얼굴과 목 그리고 손의 피부색을 보고 짐작은 했지만
역시 하체의 속살도 하얗고 잡티 하나 없었다.
그리고 허벅지는...
늘씬한 종아리에 비해서는 슬쩍~ 육덕진 감이 있다.
우와아..
안돼 이성아. 참아라.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한가운데에 피가 몰려오는 걸 통제하려 힘을 썼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고, 더더욱 하체에 힘이 쏠린다.
정말 문자 그대로~
생뚱맞은 타이밍에 발기 기운이 느껴졌다.
서지마! 이 미친 넘아...
꿀꺽,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음란마귀야..
제발 나 좀 도와주라ㅠㅠ
애닮는 심경으로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그렇게 때 아닌 망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민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처음 먹어보는 빵에 깊이 몰두하고 있었다.
“후후~ 맛있당~ 앗..
오빠는 왜 아무 것도 안 드세요?”
“.......”
“...?
저.. 오빠~ 민규 오라버니?”
“아.. 응??
아, 미안해 나 부른 줄 몰랐어.. 뭐라 그랬니?”
“푸힛~ 뭐야~
물끄러미 어딜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어요?”
“아핫~ 그런..게 아니고..
실내가 좀 덥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하하”
“키득~
자!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마시고, 어서 요거 하나 드셔요”
“에이 됐어.. 나 이미 배 찼으니까 후배님 많이 먹어요~”
상큼한 얼굴로 저렇게 즐거이 디저트를 즐기는데..
어디 그 경건한 간식타임을 내가 방해할 쏘냐!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
눈 앞에 앉은 작은 천사의 모습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청년에게는 푸짐한 디저트를 먹은 것과 같았다.
“오빠~ 근데..
조교 일은 어때요, 좀 할만 하세요?”
“조교?
음.. 아직은 괜찮아. 잘 버티고 있어..”
“후훗~ 표정이 살짝 미묘한데..
그럼 실례지만~
지난번에 쪼오금 사이 불편했던 언니하고는..”
“아니 무슨 실례야?
걔는 원래부터 친구였고 잘 지내고 있지~
처음엔 좀 불편하고 많이 부딪쳤는데
어릴 때 얘기도 조금씩 하면서 괜찮아진 것 같아”
“그래요.. 정말루..?
으음~ 오빠 얼굴을 보니까 좀 무거워보여서
조심스럽게 한번 여쭈어 봤어요.. 다행이네요~!”
우라질...
전혀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후배 안심시킨다고 지어내려니 속이 갑갑했다.
민규는 잠깐 잠깐의 얼굴 표정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잘 드러나는 타입이다.
그래서 약간 식은 땀을 흘리며 생각해본다.
포커페이스와 같은 위장도 할 줄 알아야하는데..
너무 여과없이 생각하는대로 드러나버리니~
이것도 문제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밝게 웃는다.
스윽-
핑크색 긴팔 소매를 걷고 시계를 보는 혜지.
15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민규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는데..
동의를 얻어야할 것 같아 눈치를 엿본다.
“저, 오빠.. 있잖아요.
오늘 과사무실에 언제까지 있는다 그랬죠?”
“왜..?
있기는 네시까지 있어. 한시부터..”
“그래요?”
“너 설마~
혹시라도~ 같이 가보자거나 하는 엉뚱한 소리는 안하겠쥐?”
민규의 표정이 사실적이다.
제발 그것만은 간절히 말리고 싶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혜지도 그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호호호- 가면 왜 안되는데요?
걱정마세요. 저도 곧 수업이라 시간이 없으니까..
대신에 언젠가 한번 조용히 방문해볼게요”
“...?!
그, 그러지 않는편이 좋아.. 아핫..
혹시, 혹시 오더라도 혜지야?
꼭 나한테 미리 말을 해주고 오는..”
“킥~ 왜 그렇게 당황하고 말 더듬고 그러세요?
알겠어요~!
꼭 사전에 선배한테 연락을 먼저 할게요”
“응.. 꼭 그렇게 해야돼. 알았지?”
“후훗”
이마에 조그맣게 맺힌 땀을
휴우~ 한숨 돌렸다는 듯이 닦아내는 민규.
그런 민규를 보며 혜지도 재밌어한다.
터덕 터덕-
오늘도 힘겨운 발걸음.
사악한 1라운드 보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시 정각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그랬지...
용케 59분에 사무실 복도에 도착했다.
으 다리 아파.
아무도 없었다.
아직 안 왔나?
하연이 복사해준 열쇠를 부스럭 뒤진다.
달칵~
사무실에 들어서서 먼저 불부터 켜고 주위를 살폈다.
고요하군..
단정하게 정리를 잘 해놓은 분위기다.
허투르게 무엇하나 스쳐 보내지 않는..
그런 하연의 깔끔한 성격이 곳곳에 묻어나오는 것 같다.
깔끔하기라도 해야지, 성질도 개판인데..
슬그머니 하연을 생각하자 웃음이 터진다.
꼴꼴꼴..
시원하게 정수기의 냉수를 마신후~
털썩, 몸을 사무용 의자에 묻고 다리를 뻗는다.
언제 올지 몰라도 잠깐만 호사좀 누려보자~
잽싸게 신발을 벗고 하연의 의자 위에 발을 얹는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몸을 기대고 있으니
어저께 두 녀석과 주고 받았던 내용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용케 필름은 안 끊겼지 어제~
엄청 셋이서 쳐마신 것 같은데..
밤 늦게 가양동 k대 근처의 술집에서 모였었다.
11시 반이 지나서 영섭이 합류하기 전까지
민규와 동준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신나게 떠벌리던 참이다.
동준이 이 미친 놈...
하연이 미워말고 다시 어떻게 잘 구슬려보라니..
이게 말이야 돼지야?
너는 몰라서 그래~ 멍청한 새끼야!
나는 그날 똑똑히 들었다구..
혜지랑 처음 사무실에 알아보러 갔던 날,
나중에 들어오며 낯선 사람과 통화하던 걸 들었지..
.....
그거 틀림없이 애인이 있다는 뉘앙스였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연에게는 물을 엄두도 못냈다.
오랜 만에 만나서 그 정도로 진전된 사이도 아닌데다,
눈치없이 사생활에 오지랖을 떤다고 얼마나 화를 낼지..
보나마나 뻔한 이야기 아닌가.
그래도 줄곧 신경은 많이 쓰인다.
짜식은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이상한 얘기해서 기분 이상하게..
[야 근데 말야~
혜지라는 애는 언제 또 꼬셔놓은 거냐..]
[개소리여..
하연이 얘기하다가 바로 넘어가냐?]
[궁금하잖어 쓰불아~
지금부터 너랑 나랑 하던 시덥잖은 논쟁들은 잊자!
우덜이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이야기는! 바로 여자 이야기랑게~~]
[ㅋㅋㅋ 그건 맞는 말이다.
근데 하고 싶어도 몰라~
그 애랑은 나도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무슨 자지 수그러드는 소리야 또~
어디서 처음 보고 개수작을 부렸었는지,
그것부터 얼른 실토를 해보라니까!]
[아, 미친 새끼 진짜..
그러니까 그런 기억이 없다는데 자꾸 그래]
대략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동준에게 어제 둘러댄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아직까지도 혜지란 아이에 대해서는~
잘 웃고 예쁘고 싹싹하다는 것만 머리에 박혔을 뿐,
그 아이가 어떤 인맥과 관계를 가졌다든가, 집안 사정 같은 것 등등 하며..
스스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보가 전무했다.
에이 머리 아파. 시간도 많은데 뭐.
뭐라도 사연이 있었겠지~
넘겨버리는 민규다.
아직 오려면 걸린다는 하연의 카톡을 받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잔소리꾼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나만의 세상이다.
환기차 블라인드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연다.
아... 좋다..
눈부시게 빛나는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듯 민규의 눈 속으로 스며든다.
후흡~
학교 뒷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껴본다.
사무실 한켠에 비치된 작은 컴포넌트를 틀었다.
CD 플레이어를 틀으니 마침 흘러나오는 곡은 영화 탑건의 ost였다.
편안하게 단칸방의 내부에 울려퍼지는 스피커.
음악에 잠겨 탐 크루즈의 리즈 시절을 떠올려본다.
와~ 진짜 진짜 잘 생긴 얼굴이었는데!...
그 영화에 나온 여주인공은 정작 생각도 안나..
정말 그 당시 탐 크루즈의 굉장한 비주얼은
같은 남자가 볼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떠듬 떠듬~
가사도 잘 모르지만 오랜만에 들으며 따라불러도 기분 좋아지는 곡이다.
헤헤-
바보처럼 옆에 걸린 벽거울을 보며 실없이 웃는다.
진짜 오늘은 엄청나게 재수가 좋았지.
가슴 졸이며 혜지에게 톡을 보냈던 아침의 모습이 선명한데~
그걸 반갑게 받아주고 만나서 즐거운 시간까지 보냈으니..
흐뭇한 얼굴로 눈을 감고 그 시간을 되새겨본다.
평상시 이런 짜투리 여유 시간 같으면
민규의 머릿속은 대부분 형수의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런데 오늘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형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보다도,
자연스럽게 동생 혜지에 대한 생각만 떠오르고 있었다.
아직 오려면 멀었나?
입도 심심한데, 담배나 한 대 피울까..
품속을 뒤적거려보니 꼬불쳐둔 두 개피가 있었다.
야~ 이것도 참 오랜만에 피는 것 같네..
구질 구질하게 접혀서 약간 습기에 젖어 있다.
1,2학년때까지만 해도 꽤 피워댔는데..
군 제대하고 나서는 거의 피운 기억이 없었다.
몸을 생각해서 이등병 시절부터 담배를 멀리하다보니
놀랍게도 전역 후에도 담배와 소원해졌던 셈이다.
지금도 자주 생각이 나진 않고
드문드문 어쩌다 생각나면 재미삼아 피는 정도다.
후~~~ 우우~
하하. 나같이 가끔 새우깡처럼 피는 녀석이 또 있을까?
간만에 한 대 가볍게 빨아들이니 맛있다.
드넓은 복도에 나와서 창문을 열고 피고 있다.
사무실에 담배 연기라도 보이는 날에는..
그 괴팍한 녀석에게 싸대기를 맞을 지도 모를 일이다.
“또각- 또각-”
“... 아, 왔냐”
“어~ 너 거기서 뭐해~?”
“아, 아냐.. 그냥 바람 쐬고 있었어 헷~”
“쳇~ 사무실 문 열어두고.. 어서 들어와”
안색을 보니 썩 그리 어둡진 않다.
혹시 담배 핀 것을 들키진 않았겠지?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땀을 흘린다.
킁 킁-
몸에 배어있을 지도 모를 냄새를 서둘러 지우고
종종걸음으로 마님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온다.
우와....
조금 전까지 서서 같은 눈 높이로 하연을 봤을때는 몰랐던 민규.
사무실에 들어와서 다시 하연을 바라보고 놀란다.
경탄을 절로 터뜨릴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매우 가벼워 보이는 핫핑크색의 롱 가디건.
시원해보이는 스웨터 가디건이 깔끔하다.
양쪽 아래 두 주머니는 아기 캥거루도 들어갈만큼 큼직하다.
치마 입었네.
원피스인가?
죽인다...
민규가 뒤에서 뚫어지게 전신을 보는줄도 모르고
등을 돌리고 서서 창문 바깥을 구경 중인 하연.
시원하게 콧등을 간지럽히는 산들바람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꿀꺽...
잠깐만 볼게.. 바로 뒤돌진 않겠지?
휴우~
뒤에서 민규가 뒷태에 푹빠진 줄 모르고 바람쐬는 하연.
두근 두근...
이 놈의 심장은 아무 때나 여러 여자 보고 뛰니 죽을 맛이다.
혜지랑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지났다고~
다시 하연의 눈부신 자태를 보니 박동이 빨라진다.
예쁜 핫핑크의 외투 아래로 보이는 검은색 미니 스커트.
아래는 가볍게 레이스가 들어간 형태다.
가디건이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바람에
약간 하의실종 패션과 비슷한 느낌도 준다.
검정 스커트가 감싸주고 있는 히프에 눈이 간다.
요즘 유행하는 애플 힙이 바로 저런 것일까.
꾸준히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하연의 몸매답게
정면에서 15도 가량 위를 향해 예쁘게 솟아 있었다.
엉덩이가 이쁘네...
고혹적인 분위기의 S라인이 근사하다.
그리고 늘씬하니 아래로 쭉 뻗은 각선미...
정말 침 넘어 가는 순간이다.
혜지에 비교한다면 오히려 조금 더 야윈 허벅지 같은데~
저 아슬아슬한 뒷태만을 봐서는 감이 안온다.
어서 가서 한번 만져봐야할텐데....
무릎 뒤의 굽혀진 부분도 깔끔하고
하얀 피부가 굴욕 없이 깨끗해보인다.
꿀꺽..
그리고 시선이 자연히 가는 곳은..
하얀색 펌프스힐로 한껏 멋을 낸 그녀의 힐이었다.
뒤에서 곁눈질로 봐도 디자인이 괜찮다.
발등을 자신있게 드러내 주기 때문에
늘씬한 다리가 더 길어보이는 착시효과를 준다.
앞부분은 검은색으로 칠해졌는데, 가운데 작은 리본장식이 달렸다.
높은 하이힐과 시원하게 패인 발등의 디자인 덕분에
발목도 더욱 얇아 보였고, 키도 더 크게 느껴졌다.
모델 뺨치게 아름다운 몸매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될 법한 것은, 하연의 자태에 침을 흘리던 민규의 사타구니를 말한다.
넋을 놓고 멍때리며 뒷태를 감상하던 민규..
대개 이 쯤되면 꼿꼿하게 그것이 발기할 수 있는 상황인데
지금은 다행이도 조용하다.
아마도 하연의 전혀 예기치 못한 옷차림을 보고 충격 받은 나머지,
잠시 흥분도 잊은 모양이다..
“꾸우와아아~~! 으흐응~~”
기지개를 쭈욱~ 피며 몸을 뻗는 하연.
뻐근한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 순간 뒤로 돌아선다.
그때까지 침 흘리며 보고 있던 민규,
화들짝! 놀라서 쓱쓰슥 입가를 닦고 고개를 돌렸다.
멍하니 서있는 걸 그 모습에 하연의 눈이 동그래진다.
“너 여태 뭘하고 거기 가만히 서있던 거야?
와서 컴퓨터도 키고, 책상 정리도 점검해야지?”
“어, 미안, 미안해..
나도 지금 들어와서 여기 테이블 보고 있었어..”
붉어진 얼굴로 차마 그녀의 눈을 마주보지 못한다.
조금 전까지 훔쳐보던 걸 들킬까봐,
서둘러 아무렇지 않은척 사무실을 여기저기 정리했다.
“......
훗, 천천히 해~ 오늘 특별히 바쁜 일도 없다”
“엥~ 오늘 월요일인데?
월요일이 서두를 일이 없다니 뭔 말이야”
“그렇게 됐어..
어우 야앗~ 거기 빗자루로 쓸지마~”
“응?”
“토욜날 퇴근할 때 다 물걸레질 해놨어.. 띨빵아”
먼지 일으키지 말라고 눈치를 준다.
에헤헤-
어벙하게 웃으며 한쪽으로 물러나는 민규.
그래도 기분이 싫진 않았다.
저리 치우라며 잔소리하는 하연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따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짝 찡그리는 눈매가 요염하기까지 하다.
일도 없고 한가하다며 풀썩~ 의자에 몸을 묻는 하연.
꼴꼴꼴꼴...
시원한 정수를 민규처럼 쭈욱 들이킨다.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는 그녀.
민규는 멀리서 마른 행주를 가지고 유리 테이블 위를 닦고 있다.
그러는 한편 하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몰래 훔쳐본다.
“오늘, 너 무슨 일 있어..?”
“나? 아니~ 별로~ 왜 그래?”
“아냐 그냥...
그냥 기운이 좀 없어 보이길래..”
“후훗~ 니가 왠 일로 그런걸 물어보고,
나 걱정해주는 거야?”
“걱정이라니..
친구인데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지..”
“쿡쿡쿡..”
아닌게 아니라 오늘 하연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약간 우수에 젖은 듯한 분위기라고 할까..
지저분하고 화를 잘 내는 성질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듯 내가 모르던 생소하고 차분한 이미지도 있었네.
너 많이 변했구나, 하연아.
그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민규도 바보가 아니었다.
티가 많이는 안 나도 하연은 오늘 조금 다르다.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그것을 애써 감추는 느낌이라 할까..
어째서인지 그것이 느껴졌다.
조용히 그녀를 주시하며 자극하지 않으려는 민규.
그러면서도 머리는 솔직해서-
아까 못 보았던 예쁜 옷차림의 앞부분도 궁금해진다.
어디...
예쁜 핫핑크 외투 속에 검은색 시스루를 입었다.
가슴 윗부분은 자수로 꽃무늬가 새겨진 망사재질이다.
자연히 민규의 시선은 쇄골뼈와 목선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며 상체를 훑는다.
가슴이 커진 것 같네..
이 녀석 혹시 수술했나?
옛날 기억으로도 그렇게 빈유는 아니었다.
적당히 탐스러운 볼륨의 건강한 체형이었는데..
오랜만에 얇은 질감의 상의를 보니
하연의 멋진 가슴에 자꾸 눈이 가게 된다.
새근- 새근-
잠깐 잠이라도 든 것일까.
미약하게 숨쉬는 소리를 하연이 낼때마다,
그녀의 살짝 부푼 가슴이 조금씩 위아래로 움직인다.
꿀꺽...
쟤는 저렇게 입으면 안 춥나?
옷이 전체적으로 얇아 보여.
보는 나야 눈이 엄청 즐겁지만~
이제 보니 스커트랑 상의가 따로가 아니고
하나로 된 시스루 원피스였구나..
야리야리하다고 표현하면 좋으려나.
선이 몹시 가늘고 가냘픈 느낌마저 주는 하연의 몸매.
봄기운 물씬한 차림의 그녀를 쭈욱~
아래 위로 골고루 훑어보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안됐고 짠한 심정까지 들었다.
그런데 젠장할...
머리로는 이녀석 왠지 오늘 안쓰러워 보이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아랫도리는 불끈! 치솟는 것이다.
아니 슈발....
아까는 뒷태를 봐도 안 서더니,
하필이면 이런 조용한 순간에 자지가 서는 거냐..?
어쩔 수 없다.
예쁘다고 생각만 했던 예전 여자친구에게서
어느새 다소 낯설은 여인의 향기가 물씬~ 느껴졌으니..
전에는 미처 몰랐던 성숙한 요염함이 색다르다.
틀림없다.
민규가 전혀 모르고 있던..
묘하게 자극적인 섹시함을 내뿜고 있었다.
두근 두근...
괜시리 덜렁이는 가슴을 원망하며
시도 때도 없이 서지 말란 말여 미친 넘아~
말 안듣는 주니어를 나무라고 감춘다.
근데 말을 지독하게 안듣는다.
딱딱하게 서있는 그걸 들키면 큰일인데..
“민규야”
“.... 응!”
“나~ 커피나 한잔 좀 타줘”
“커, 커피..?
알았어 지금 탈게.. 설탕은 몇 스푼??”
갑자기 눈을 지그시 감던 하연이 말을 건네자
민규도 필요 이상으로 놀래버린다.
“쿡~ 너 왜 그러냐~ 도대체~
떠먹는 설탕이랑 프림 치운지가 언젠데~
거기 내가 사온 커피믹스 있잖아.. 그거 타줘”
“아, 미안. 못봤다.. 물은 얼만큼이나?”
“......
알아서 적당히 타. 중간 쯤”
심상치 않은 분위기긴 했지만
오늘 말하는 어투가 어인일인지 다정하다.
한결 부드러운 하연의 음성에 적응이 안되는 민규.
그렇지만 그 역시도 기분 좋게 웃으며
어떻게든 기분을 맞춰주고 싶어~ 빠르게 움직였다.
민규가 타준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하연.
눈을 잠시 떴다가, 다시 목을 넘어가는 그 맛을 음미한다.
그리고는 편안한 얼굴로 눈을 다시 감았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민규는 어린아이와 같은 눈으로 모두 지켜본다.
정말 이쁘긴 이쁘구나.
정하연..
“커피 맛있다.. 고마워”
“그래..? 뭘~ 하하.
너 오늘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 하연아”
“.... 내가?
그렇게.. 느껴졌어, 너 보기에?”
“아니~ 그냥~~
쫌.. 속상한 일이 있는 것 같아서..”
하연이 민규를 슬쩍 올려다본다.
바라보는 눈이 이쁘다.
싫지 않다는 얼굴이다.
니가 용케 내 기분을 알고 있구나..?
하는 듯한, 작은 감동의 눈빛이었다.
“후훗~ 박민규..
오늘 쫌 멋져보이는걸~~”
“하하하...”
“음악도 틀어놓고 센스 있어~
노래 좋은데.. 너 샹송도 들어?”
“어? 아니.. 나 그런것까지 몰라 무식해서..
이건 그냥 좋은 영화음악 모음집이거든~”
“아, OST 야?”
“맞아. 명곡들이 많아”
“음... 그렇구나~
지금 나오는 노래는 제목이 뭐니?”
“이거..?
나도 아직 안봤는데..
이거 가수 이름을 못 읽겠어.. 이사벨르..?”
“이리 줘봐”
버벅거리는 민규를 보고 하연이 손을 뻗는다.
CD 뒷면 케이스를 유심히 보더니, 픽 웃는 그녀.
“이거~ 이자벨 아자니잖아”
“이자벨 아자니?”
“몰라?”
“어.. 생소한 이름이야”
“후후~ 여왕 마고라고 영화 몰라?”
“어...”
“프랑스 국민배우인데.. 쫌 충격이다 너~”
“쳇 모르면 어때..”
“킥킥~ 그래 니 말대로 모를 수도 있지.
까미유 끌로델, 여왕 마고.. 이 언니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데”
“그래??”
“응~ 얼굴도 디게 이뻐..
근데 앨범을 냈었네?? 나도 몰랐다 이건~”
어지간한 팝송은 잘 안다고 자부하는 민규인데
모르는 노래를 하연이 알고 있자 신기했다.
이런 저런 이름 모를 배우의 이름을 주고 받으며
하연과 그렇게 영화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간다.
그 느낌이 무척 즐거웠다.
예전 같으면 내가 너무 어려서..
아니 지금도 어른스럽다고 생각은 잘 안해.
그렇지만 그나마 훌쩍 컸잖아.
그렇지, 하연아~
나 조금은 그때보다 어른이 되지 않았어?
......
눈을 부드럽게 마주보면서,
그렇게 묻고 싶었다.
유대감..
공유한다는 정서.
스무살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예쁘고 멋진 여자친구와..
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오랜 시간 즐겨본 적은
아마도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너랑 이야기하다보니까 나 기분이 좀 풀렸어..
니 덕분인 것 같아~”
“그렇다면 나는 다행이고.. 헤헷”
“응.. 사실은 아까 표정이 왜 그랬냐면 말야.
오늘 누가 중요한 일정을 펑크 냈었거든”
“어쩐지~ 그랬구나..”
“응, 정말이야 후후-
근데~ 나 너한테 묻고 싶은게 생각났어~”
“말해봐. 뭔데?”
“음~~~...”
잠시 망설이고 있는 하연.
이젠 아까에 비해서 편하게 그런 하연을 내려다 볼수 있다.
이 말인 즉슨, 아직 민규는 서서 그녀와 대화중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간에 어떤 질문을 할까 궁금하다.
스윽-
동그란 모양의 바퀴 의자를 당겨 민규도 앉는다.
오늘 하연의 스타일링은 볼수록 욕심이 나고 끌린다.
앉아서 자세히 보니 더더욱 그런 충동이 밀려왔다.
그뿐인가?
웃으며 그를 대하는 그녀의 미소에
며칠전까지 가졌던 경계심도 많이 풀어진 상황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별안간 저렇게 두근거리는 환타스틱함으로 나타나다니..
헤벌레~하는 얼굴로
아름다운 곳곳을 계속 바라보게 된다.
그런 민규의 사심 그득한 눈빛을 모르는지,
곧 하연의 말이 이어진다.
“있잖아~
오늘.. 나 어때, 이뻐?”
“......
뭘 뜸들이나 했네.. 그거 물어보려고?”
“... 으응...”
“하하하하하~”
“.... 칫..”
본인이 생각해도 엄청 부끄러운가보다.
갑자기 민규가 하연의 생뚱맞은 질문에 빵 터져버리자
이번엔 하연이 얼굴을 붉히며 쳐다보았다.
“왜 웃어!”
“ㅋㅋㅋㅋ 아니야, 웃어서 미안.
너 이뻐~~ 오늘. 디게 많이 눈에 띈다! 진짜 이쁘고”
“저, 정말이야..?”
“어~ 정말이지~?..”
“호호호-”
민규가 직설적으로 칭찬해주자
하연도 기분이 꽤 좋은 눈치다.
내심 기다리던 입에서 의외의 멘트가 나오는 걸 듣고
소리내어 밝게 웃는다.
하연의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미소를 보고
아~ 솔직함이라는 건 이렇게 좋구나..
방긋-
마찬가지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게 되는 민규.
“너 많이~ 컸다~? 우후훗~ 달라졌어”
“쳇~~ 컸지 그럼..
나~ 이제 너랑 맨날 싸우던 그 어린애가 아냐”
“쿡, 그래?
좋은 쪽으로 많이 변했어 그럼?”
“... 그거는.. 야~ 내 입으로 어떻게 그렇다고 해.
니가 직접 보고 느껴야지, 이제부터..”
“흐음~ ”
촉촉히 젖은 눈으로 웃는 하연.
아이같이 상냥한 모습에 민규는 완연히 마음이 풀어진다.
그리고나서 하연은 뭔가 찾을 것이 있는지,
벌떡 갑자기 일어나서 잔과 음료들이 놓인 테이블 위를 살폈다.
민규는 슬쩍 뒤로 물러서서 하연의 뒷태를 바라본다.
엇, 가만..
살색 스타킹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정하연 스타킹 안 신었네..?
맨다리구나!
투명한 살결이 은은하게 반짝이는 모습이다.
미끈한 각선미가 눈을 쉬지않고 유혹하는데...
깨끗한 살결에 맨다리라고 생각하니,
잠시 잠들어 있던 페니스가 다시 용솟음치는 것이다.
야.. 이거 미치게 좋지 또...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요사스러울 수가 있단 말인고.
순진한 청년은 여인이 의도하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이미 그 설레는 미색에 흠뻑 취하고 있었다.
“없네~ 찾아봐도~”
“뭘.. 찾는데?”
“있어, 유에스비를 가져왔는데 안보이네”
“USB? 나 하나 갖고 있어. 줄게”
“으이구 밥오야~ 내가 너한테 보여줄게 있단 말이지”
“아...”
하연은 자료를 급 찾는다면서
사무용 의자를 바싹 땡겨앉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고 있던 민규..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던 것을 어렵게 던져본다.
“저.. 하연아..”
“응~”
“너 혹시..
오늘 펑크났다던 약속 외에..
누구 또.. 만나러 가는 거야?”
“뭐어~?
너 왠일이야, 그런걸 나한테 묻고? 호호”
두근 두근...
눈이 부실 정도로 아찔한 하연의 꿀벅지가-
나란히 앉은 책상 아래로 계속 시선을 붙잡는다.
하연은 뜻밖의 질문에 잠깐 이쪽을 보고는
다시 휙- 고개를 돌리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다.
민규는 하연의 눈을 피해 다시,
탐스럽게 익은 그녀의 허벅지만 숨죽이며 훔쳐보았다.
이쁘다...
음란한 생각은 제쳐두고 그녀의 상큼함에 취하는 민규.
다시 전신을 이리저리 몰래 바라본다.
너무 다리와 봉긋한 가슴만 보는게 왠지 미안해서,
깔끔하게 위로 틀어올린 머리와 목덜미도 감상하였다.
가녀린 쇄골을 따라 이어지는 그녀의 하얀 목.
예쁘게 틀어올린 머리 뒤편으로-
귓불에 드리워진 은빛 귀걸이만 바라본다.
이 자식은 목덜미도..
이쁘네..
“.... 응? 호호~
왜 말을 하다가 마냐구~?”
“어? 아니 내가 질문한 거잖아..
오늘 누구 또 다른 약속 있느냐고~”
“그랬나?
흐흣, 근데 내 스케줄은 알아서 니가 뭐하게?”
“그, 그거야 궁금해서지..”
그러자 하연은 여태 바라보던 화면에서 눈을 뗀다.
민규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고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며 슬쩍 웃었다.
“후후, 왜~ 나 아무런 약속 없으면
같이 데이트라도 하러 나가게?”
“뭐, 미, 미쳤냐?? 말이 되는 소릴해.
내가 너, 너한테 데이트라니..?”
“호호~ 아니야?
난 은근하게 니가 신청하는 줄 알고.. 기분 좋았는데”
어라?
미친 척 하고 던졌는데..
그냥 더 나가볼까..
“... 그게 야, 아까는 데이트라고 하니까..
나도 놀래서 그랬지..”
“호호”
“... 하연아..”
“응~ 얘기해”
“오늘 그러면..
나랑 같이 바람 쐬러 나갈까..?”
“......
바람을 쐬러, 너랑 같이..?”
“응!!...”
하연은 그러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민규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바짝, 다가 앉는다.
야야~ 가까이 오지말고 그냥 말해..
흥미롭다는 눈이다.
잠시 말이 없다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어, 가능해..?”
“응~ 그러지 뭐~
넌 왠일로 나한테.. 용기를 내는 거야?”
“용기라기보다.. 헷..
니가 오늘 너무 이쁘잖아, 인간적으로.. 또..”
“호호호! 너 지금 뭐래~?
그래, 이쁘고~?”
상당히 반응이 좋다.
이거 느낌 좋은데...
민규도 말을 더듬지 않고 한결 자신있게 말한다.
“오늘 니가 좀 마음이 안좋아보여서..
나라도 괜찮으면~
그래, 나랑 있어도 괜찮다면.. 위로 좀 해주고 싶었거든”
“... 정말?”
“그렇다니까~”
“와~~~ 싸나이 방밍규~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구나!!”
“쳇... 내가 만년 호구냐..”
그런데 그 이후로 또 정적이 찾아온다.
소심한 민규는 하연의 눈치를 살피는데..
너무 던졌나?
민규는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가 좋은데도
쿵덕 쿵덕~
자못 떨리는 기분으로 하연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바람쐬러 갈거지..?”
“응.. 그러겠다고 했잖아”
“아, 그게 바로~ 오케이 한거 였어?”
“어~ 안될 이유가 없잖니? 후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랑 너 사인데~~”
“나랑 너 사이가 어떤 사인데~?
쪼금 오해할 소지가 있게 말한다 너.. ”
“키득~ 미안해~ 나쁜 의미가 아니었어”
“헤헤.. 그래.
그럼 하연아, 지금 바로 나갈까?...”
“얘는~? 뭐가 그리 급해?
이거부터 지금 타이핑 좀 해놔”
“엥?”
“얏~! 너 오늘 일 안할 거야? 오늘 산적한 서류 해결못하면 퇴근 못해~”
“아.. 난 놀랐네 또.. 알았어”
yes구나!
신이 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자세를 다잡는다.
정하연이 승낙을 하다니...
자기도 모르게 손놀림이 굉장히 빨라지는 민규다.
=
지난 후기에 안내해드린대로.. 이틀간 가벼운 몸살 기운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토요일 오후에 올렸었는데, 이번엔 올리고 읽어보니 생각했던 방향과 흐름이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서 어쩌지.. 하다 과감히 지운거예요.
이 글은 새로 쓴 글입니다. 그날 잠깐 보신 분들께 양해말씀 드립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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