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도심의 차들은 평소보다도 느린 속도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있는듯 했다. 하긴, 사실은 소나기때문이 아니라도 굳이 빠르게 운전을 할 필요도 없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출퇴근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이벤트가 있는것도 아니여서 차가 막힐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의 유일한 걸림돌이라면 신호등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유독 차 한대만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듯, 다른 차들을 추월하며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빠아아앙
추월당하는 입장에서는 무모해보이는 운전이였고, 하마터면 충돌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경적을 울리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지만, 문제의 그 차는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듯, 아랑곳하지 않고 곡예에 가까운 운전을 계속하고있었다. 무모해보이는 주행이였지만, 사실 그 차를 운전하고 있는 당사자는 대담한 운전과는 달리, 불안해하면서 뒷자리에 앉은 자신의 손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젠장.... 내 평생 택시운전하면서 이렇게 운전해본 적이 없는데...."
속으로 단속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아니면 빗길에 미끄러져서 다른 차와의 접촉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핸들을 잡은 손이 떨릴 지경이였지만,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손님의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때문에 뭐라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다급하게 통화를 하는것 같았고, 통화했을때의 상대방과 주고받은 말이나, 행선지를 보아하면 누군가 크게 다친게 분명했다. 그리고 다친 사람은 다름아닌 그녀의 아들인것 같았다. 본의아니게 그녀의 통화를 엿들은 택시기사는, 그 전까지는 목적지까지 그를 계속해서 재촉하던 것을 원망했었지만, 그 또한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로써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안되는것은 아니였다.
"에이... 그래... 오늘같은 날 딱지 몇개 끊으면 뭐 어떠냐!"
속으로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면서 매일같이 편안하고 안전한 운행을 목표로 삼았단 자신의 모토를 버리고, 카레이서 못지 않은 운전솜씨를 뽐내기로 다짐했다. 비가 잠깐 내리고 그칠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그것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빗발은 더 강해졌다.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는 정말로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때쯤, 목적지인 한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택시기사가 몇번 와본 병원이였기에 곧바로 응급실쪽으로 향할 수 있었고, 그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에게 5만원짜리 두 장을 건네고는 곧바로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니... 저 손님...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빗물때문이였을까,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도 못한듯 그저 앞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였다. 평소대로였다면 뜻밖에 많은 돈을 받았기에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마냥 기분이 좋을수만은 없었다. 그도 한 사람의 아버지로써 그녀의 아들이 크게 다친것이 아니였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을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걱정했던건, 그녀의 아들이 아니였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그녀의 아들과 비슷할지도 몰랐다. 아니, 사실 그녀의 아들같은 존재이지만 아들같은 존재가 아니였다.
아마 -물론 택시기사는 평생 진실을 모를 가능성이 크지만- 그녀와 그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분명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 4시간 전...
준수가 벗어준 상의로 가까스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은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준수의 뒤에 딱 붙은채 자신을 범하려 했던 그 3인방으로부터 떨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 3인방은 마치 너희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어, 라고 말하는듯한 표정으로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왔고, 준수와 은혜는 그들로부터 달아나듯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준수는 은혜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은혜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또한 알고 있었다.
준수는 다시 한번 자신의 세운 계획을 빠르게 자신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사실 계획이라고 불릴만큼 거창한 것도 아니였고, 딱봐도 실패할리가 없는... 아주 단순한 계획이였다. 하지만 만에하나 실수라거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였다. 그리고 그 경우 자신이 어떻게 되든 그건 상관 없었지만, 문제는 은혜가 저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게 되는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 준수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준수와 은혜는 막다른 벽까지 몰려 더 이상 뒷걸음질을 칠 수도 없었다. 준수는 마지막으로 이 창고의 유일한 출구를 확인하고는 은혜의 손을 잡은채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내가 이 손을 놓으면 저기 문까지 그냥 달려. 알았지?"
"준수야... 어... 어떻게..."
"내가 어떻게든 할테니까. 아무거도 신경쓰지 말고... 알았지?"
"모... 몰라... 나 자신없어...."
"그냥 달리면 되. 뒤는 나한테 맡기고... 나 믿을 수 있지?"
"... 응...."
"그리고 곧바로 선생님들 불러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말하는거야. 할 수 있지?"
"... 응.... 알았어... 괜찮은거지...?"
불안감이 섞인 은혜의 말에 대답하는것 대신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 후, 준수는 은혜의 손을 잡은채 그녀를 이끌듯 그 3인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뒷걸음만 치던 준수가 갑작스럽게 그들을 향해 달려가자 은혜는 물론, 그 3인방도 준수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다는듯,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새끼가..."
준수는 출구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던 기주와 부딪혔다. 부딪히는 순간, 축구에서 몸싸움을 하듯, 기주를 밀어붙였고, 당황스러운 그들의 행동에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던 기주는, 속도실린 준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준수의 손을 잡고 있었던 은혜도 기주를 넘어뜨릴때의 충격이 전해졌지만 준수가 느낀 충격에 비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였다. 하지만 준수도, 은혜도, 그 충격을 느낄 틈도 없이 그대로 출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도 멍하니 있다가 기주가 넘어진 채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준수와 은혜를 ?아갔고, 태민이 준수의 몸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손이 미끄러지면서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가까스로 준수와 은혜는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고, 준수는 거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은혜를 문 밖으로 내보내고는 남아서 문을 닫았다.
"준수야..."
"헉헉... 빨리가. 난 걱정하지 말고 빨리..."
".... 하... 하지만......"
"난 괜찮아. 괜찮으니까... 빨리..."
"알았어... 꼭 괜찮아야되... 알았지?"
문 너머에서 은혜가 달리는듯한 소리가 들려오고나서야 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채 그를 향해 증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3인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 시발놈... 저새끼 혼자 멋있는척은 다하네."
"... 선배... 이건 좀 아닌거 같아요."
"닥쳐 이새꺄. 너 시발 우리 인생 좆되게 만들려고 작정했냐?"
"잘못은 선배들이 먼저 하셨잖아요. 지금이라도 은혜를 ?지 않고 은혜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면 없던 일로..."
"이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준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기주가 준수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후리쳤다. 꽤 묵직한 주먹에 준수는 강한 충격을 느꼈고, 순간 의식을 잃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 이후 돌아오는건 필수와 태민의 발길질이였다. 특히 태민의 발길질이 준수의 왼쪽 정강이쪽을 치며 준수는 순간 균형을 잃어 무릎을 꿇었고, 기주의 발에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맞으며 준수는 의식을 잃은채 바닥에 쓰러졌다.
"좆도 아닌 새끼가 재수없게..."
그들의 일방적인 구타에 정신을 잃은채 바닥에 쓰러진 준수를 보며 욕을 하며 제각각 준수를 향해 침을 뱉었다.
"야, 담배 하나 줘봐."
태민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기주와 필수에게 담배 한 개비씩 주며 불을 붙여주고는, 자신도 담배 하나를 물고 불을 붙였다. 고등학생이지만 그들은 담배를 피는 것이 매우 익숙한듯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 그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범죄에 가까운 행동이 일어난 이 공간에서 은혜가 빠져나갔다. 그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혹할 것이 분명했다. 뭐... 그들의 행동을 생각해본다면 그들이 대가를 치러내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기주야... 우리 어떻게해?"
"아 몰라 시발..."
"야... 은혜가 선생님한테 말하면... 우리 좆되는거 아니야?"
"아 나도 모른다고!!!"
필수와 태민의 불안섞인 말에 기주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피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겉으로 멀쩡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기주 또한 그들만큼 불안해하고 있었고, 그 불안감을 숨기기 위해 괜히 준수에게 더 화풀이를 했다.
"이딴 새끼때문에... 이딴 새끼때문에..."
기주가 몇번 준수를 발로 차자 준수의 몸이 움직였다. 그 때였다. 그들이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넘어져있는 준수의 몸에서 흥건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던 것을 본 것은. 준수가 넘어질때 바닥에 있던 유리조각이 우연히 준수의 몸을 파고들어 깊은 상처를 남겼고,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였다. 그 장면을 보자 가까스로 불안감을 숨기고 있었던 기주마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야... 시발... 저거... 설마 피냐...?
"......"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지 못하겠다는듯한 기주의 말에 필수와 태민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말 큰일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안았지만 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뿐이였다....
병원의 문을 들어선 영희는 주위 사람들에게 응급실의 위치를 묻고 곧바로 응급실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응급실이 위치한 1층 로비쪽은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아 사람가 부딪힌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응급실에 도착하자 그녀의 눈에 수정과 은혜, 그리고 은혜의 부모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영희는 그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준수는 어디냐는듯한 눈빛을 수정에게 보냈다.
"언니... 준수 방금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그... 그래...? 괜찮은거지...? 우리 준수... 괜찮은거지?"
".... 언니..."
수정은 영희의 물음에 확실히 답을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듯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흘렸고, 그것을 본 은혜 또한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영희는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눈물을 흘리면 안된다는 것을...
"자자... 내가 말을 잘못했네. 당연히 준수는 괜찮을텐데 쓸데없는걸 물어서.... 그러니까 울지 말고... 응...?"
슬픔을 가슴 깊은 곳으로 잠시 밀어둔채 영희는 수정과 은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감정이 조금 진정이 되고나서야 은혜의 부모로 보이는 인물이 영희에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뵙게되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리질 못하겠습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은혜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은혜 어머니되는 사람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준수의..."
영희는 그들의 인사에 자신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그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할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냥 이런저런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없이 준수의 이모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을 해도 상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말하고 싶었다. 나는 준수의 애인이에요, 라고...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상황속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그녀 스스로도 실망스러웠다. 그녀의 이런 생각을 알리가 없는 은혜의 부모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진지하게, 하지만 따스한 마음을 가득 담은 말을 이어나갔다.
"피가 섞인것도 아닌데 준수를 저렇게 훌륭하게 키운걸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거에요."
"네... 괜찮아야죠... 감사합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당연히 와야죠. 준수가 아니였으면 우리 딸 은혜가 어떤 험한 꼴을 당했을지 모르는데..."
"그나저나 제가 상황을 정확히 못들어서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아... 그건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고... 아 그래. 여보, 여보가 잠깐 준수 이모님이랑 가서 얘기좀 하고와."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려면 반드시 은혜가 겪은 일을 설명해야했다. 하지만 그 일을 다시 꺼내는건 은혜에게 상처일 수도 있었다, 라는 것을 생각안 은혜의 아버지의 배려에 영희와 은혜의 어머니는 휴게실 한켠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은혜의 어머니로부터 들려오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놀랐지만, 영희는 내심 은혜를 위해 그런 희생을 감수한 준수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멋있게 느껴졌다.
"호호... 그나저나 평소 은혜한테 준수에 대한 얘기를 말로만 들어서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까 어쩜 그렇게 멋있을까요? 제가 10년만 젊었어도 준수한테 홀딱 반할뻔했지 뭐에요."
"... 그러게요..."
은혜의 어머니는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시켜보고자 농담섞인 말을 꺼냈지만 생각만큼 효과를 보지 못하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자신이 준수의 부모 입장이였어도 농담같은걸 들어줄 상황이 아니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모님.. 괜찮을 거에요..."
"정말... 정말 괜찮겠죠....?"
은혜의 어머니가 괜찮을 거라는듯 영희의 손을 붙잡아주었다. 그제서야 영희는 숨겨왔던 눈물을 떨어뜨렸다. 은혜나 수정에게 더 큰 불안감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겨왔던 슬픔의 눈물을...
영희와 은혜, 수정... 세 사람은 수술실 앞에서 앉아서 서로 말없이 초조히 보이지 않는, 그리고 보일리도 없는 수술실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혜의 부모들은 사건의 뒷정리를 위해 경찰서와 학교를 가있었다. 나중에 준수가 회복되면 한번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준수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한 영희가 중간중간에 준수의 수술이 시작된지 얼마나 楹?물어본 것 말고는 그녀들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입을 열면 자신의 초조함이 그대로 묻어나올것 같았고, 그 초조함이 불안감으로 변하고 수술결과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들은 침묵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장준수 환자 보호자분 계세요?"
"네? 전데요..."
"아아.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곧 수술 끝나니까 입원수속 미리 밟아놓으시라구요."
"정말요? 그... 그럼 준수는 괜찮은거죠? 수술 잘 끝났대요?"
"그거야 뭐, 저야 확실히 모르겠지만 아마 괜찮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들을 찾아온 간호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영희는 잠깐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는 간호사를 따라서 준수의 입원수속을 밟았다. 다행히 빈 병실이 많아서 영희에게는 다양한 선택권이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녀는 준수가 입원할 병실로 6인실이라거나 4인실, 2인실이 아닌 1인실을 택했다. 어쨌든 준수는 조금 특수한 상황이였기에 그렇기 하는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였다. 준수가 있을 병실이 정해지자 간호사 여럿이서 그 병실을 미리 정리해두려는듯 이동을 했다. 더 이상 볼일이 없어진 영희 또한 다시 수술실 앞으로 돌아와서 초조하게 준수가 수술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그 때였다.
"저..."
"... 네...? 어머, 선생님..."
영희는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보니 여러가지 기분이 교차해서 선뜻 그녀에게 반가운 표정만을 지을 수 없었다. 그곳을 방문한 여성은 다름아닌 세진이였다. 세진의 모습을 보자 은혜는 반가운 표정을 잠시 지었지만, 그것은 잠시였을뿐, 곧 그녀에게 달려들어 다시 눈물을 흘렸고, 세진 또한 힘없이 그런 은혜를 끌어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수정은 기가 막히다는듯한 표정으로 세진을 쏘아붙혔다.
"야, 암코양이! 너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는거야? 네년이 사람이면 그럴 수 있어?"
".........."
"너 양심도 없니? 언니한테 그런 짓을 해놓고서 어떻게..."
세진의 모습을 보자 수정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것만 같았다. 사실 수정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세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쓸데없이 영희에게 찾아와서 이상한 내기를 하고, 어찌보면 영희에게 치욕적인 시험을 들게한 그녀였기에... 수정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해놓고 뻔뻔스럽게 찾아올 수 있냐는듯 세진을 격렬히 비난하는듯한 표정을 지었고, 거기에 세진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서있었다.
"나가, 나가라고! 꼴도 보기싫으니까 나가!"
"....."
"됐어 수정씨. 그만해..."
"아니, 언니! 어떻게 언니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솔직히 언니도 저 년 얼굴 꼴도보기 싫잖아요."
"... 일단 여기 앉으세요. 곧 준수 수술실에서 나온다니까..."
영희가 수정의 말을 무시하고 세진이 이 장소에 있는것을 허락하자, 수정은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는듯 씩씩댔지만, 영희는 마치 그러지 말라는듯한 표정을 수정에게 보냈다. 하긴, 영희가 괜찮다는데 더 이상 자신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게다가 그녀가 큰 소리를 냈던것에 주변 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궁금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기에 수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자리에 앉은채 뭔가 마음에 안든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응급실 문이 열렸다. 그녀들은 드디어 준수가 나오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응급실에서 나온 것은 준수가 아니라 한 간호사였다. 그녀들은 실망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으려 했다.
"혹시 장준수 환자 보호자분 계신가요?"
"네... 전데요?"
"곧 환자분 나올건데, 환자분 절대안정이 필요하니까 힘드시겠지만 그냥 지켜보시구요... 입원 수속 밟으셨다고 들었는데, 한 30분정도 뒤에 병실로 오시면 될거같아요."
"... 그런가요.... 저... 혹시 수술은 잘 끝난거 맞죠?"
"그건 제가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구요... 곧 의사선생님 나오시니까, 의사선생님한테 물어보시는게 더 확실할거같아요."
영희는 뭔가 그 간호사에게 묻고싶은것이 많았지만, 그 말들이 한꺼번에 그녀의 입에서 나오려고 하기 전에, 준수가 누워있는 침대가 입원실에서 빠져나왔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의식을 잃은채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준수의 모습을 보자 그녀들이 각자 가지고 있었던 불안감이 한번에 폭발하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분명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녀들도 알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보자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였다. 그녀들이 어떻게 해볼틈도 없이 그 이동식 침대는 빠르게 그녀들 곁을 빠져나갔고, 그 뒤에 마치 지친다는듯한 표정으로 가득한 의사가 간호사 한명을 대동한채 응급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저... 선생님... 준수 수술 잘 끝난거 맞죠? 그런거죠?"
"아... 환자 보호자분 되시나요?"
"네..."
"일단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습니다."
"... 그런데 왜... 준수 저렇게 의식이 없는거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크게 다친건 아니니까요. 다만 출혈이 생각보다 심해서 거기에서 온 쇼크때문에 의식이 없는것 같으니, 안정 취하고 있다보면 의식이 돌아올겁니다."
"정말이죠? 다행이다..."
의사의 말에 영희도, 은혜도, 수정도, 세진도 모두 안도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물론 의사는 꽤나 경험이 많은, 이 병원에서도 베테랑급의 의사였기에 응급실의 분위기도 잘 알고, 이런 상황속에서 환자의 보호자들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익숙했다. 하지만 환자에게 이렇게 미인의 여성이, 그것도 4명이나 와서 한 남자를 걱정해주는 광경은 처음이였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그녀들에게 흑심을 품는다거나 하는 감정은 아니였다. 그저 살짝 부럽다는 생각을 할 뿐이였다.
"그나저나, 환자분이 최근이 스트레스 받은 일이 많은것 같아요. 아무래도 학생이다보니 공부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거같은데 그 부분을 조금 신경쓰셔야될거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딱히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때 나타나는 증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거든요. 아... 뭐 심한건 아닙니다만..."
"그... 그렇군요..."
의사의 말에 영희를 포함한 나머지 여자들이 짚이는 데가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였기에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속생각을 알리가 없는 의사는 자신이 괜한 말을 해서 그녀들의 걱정거리를 늘린게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할 뿐이였지만, 이미 자신이 내뱉은 말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였기에 미안함만을 가지고 그녀들의 곁을 빠져나왔다.
절대로 주변에서 큰 소리를 낸다거나, 너무 심하게 준수를 건드리면 안된다는 주의를 하고서는 간호사들은 병실을 빠져나갔다. 꽤 비싼 1인실이였기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가 없어진 그녀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물론 간호사의 주의도 있었고, 꼭 주의가 아니였다고 해도 그녀들 나름의 눈치가 있기에 큰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고 있었다.
"은혜는 여기에 너무 오래있으면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그치?"
"아니에요... 벌써 저희 부모님한테 여기 있고싶은만큼 있어도 된다고 허락 받았어요. 수정언니야말로 학교 가셔야되지 않아요?"
"나는 뭐... 수업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수업들밖에 없어서... 대학생이란 뭐 그런거지... 그나저나... 암코양이, 쟤는 왜 아직까지 안가고 저렇게 버티고있대?"
"... 나... 나는...."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자기가 이 자리에 계속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정말로?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수정의 비꼬는 말에 세진은 어떠한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자신도 특히나 영희와 눈이 마주칠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기에, 차라리 영희가 자신에게 화를 내면 그 분노를 모두 받아내면 되는 일이였지만, 영희는 그녀에게 화를 낸 것도 아니였고 오히려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는가.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던 세진이였기에 오히려 이 자리가 가시방석에 앉은것마냥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정이 쏘아붙이자 세진은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를 떠날수도 없는게, 그녀 또한 준수를 사랑하는 한 여자로써, 준수가 눈을 뜨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게 사실이였다. 그렇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고, 눈물이 나오려고 할 지경이였다. 그런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정말 놀랍게도 영희였다.
"수정씨. 그만해..."
"언니, 안되요. 저런 여자한테 너무 무르게 대하면 또 언제..."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수정씨. 그리고 어차피 선생님도 준수가 걱정되서 이렇게 온건데... 그 마음은 나나 수정씨나 은혜나 같은거잖아. 그런거죠 선생님?"
".... 네... 네...."
"어차피 나도 그렇고... 여기있는 사람들 다 누가 오지 말라고 해도 그거 무시하고 여기 올 사람들이잖아. 그리고 누가 말리지 않으면 여기서 준수가 눈뜰때까지 몇일밤이고 밤샐거라고 말할 사람들이잖아. 안그래?"
영희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반응을 예상한 영희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우리 다 여기서 이렇게 앉아서 준수가 눈을 뜨길 기다릴 순 없는거잖아. 그게 준수가 바라는걸까?"
"......."
"예를들어 은혜같은 경우도 그래. 물론 은혜가 준수를 생각하는 마음은 잘 알아. 어떻게보면 준수가 은혜를 지켜주려고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거고... 그러니까 마음이 편하진 않겠지. 하지만 어쨋든 은혜는 어리고 하니까 계속 여기에 있을 순 없잖아. 이번 일을 계기로 부모님들도 한동안은 집에 일찍 오신다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 네...."
"선생님도 마찬가지에요. 몇일동안 학교를 안나가셨다면서요? 어른이 그래서 제자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오시는건 마음대로지만 대신 조건은 선생님이 제대로 학교를 출근하시는거에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알죠?"
".... 네...."
"그럼 이렇게 해요. 어차피 저도 저 혼자 여기서 매일같이 밤샐수는 없으니까, 둘씩 짝지어서... 음... 그러니까... 아무래도 수정씨가 제 옆집이니까 우리는 따로 오면서 만약에 뭐 필요한거 있으면 가져다주는걸로 하는게 좋을거같은데, 수정씨 생각은 어때?"
"좋은 생각이에요 언니. 근데 저.... 저 암코양이랑은 같이 있기 싫어요."
"... 알았어. 그럼 은헤랑 수정씨가 낮에 여기 있고, 나랑 선생님이랑은 밤에 같이 있기로 해요."
영희의 말에 수정은 놀라서 영희의 눈치를 살폈다. 마치, 그렇게 해도 정말 괜찮겠냐는 식의 눈빛을 보냈지만 영희는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듯했다. 그렇게해서 그녀들의 간호일정(?)이 정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은혜는 더이상 학교를 다니지 않기로 했다. 수정 또한 자신은 학교를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은혜와 수정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준수의 간호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영희와 세진이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간호를 하는 것으로 했다. 특히나 영희는 세진에게 반드시 학교에 출근을 해야하며, 시간이 적당히 늦으면 병실 옆에 있는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자두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수정은 영희가 세진과 함께 있어야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더 따지다가는 그녀 또한 병실에서 ?아낼거라는듯한 영희의 말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벌써 준수가 입원한지 3일째 되는 날이였다. 분명 지금쯤이면 의식을 차릴때도 ?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준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준수를 향한 걱정을 접어둘 수 없었던 영희와 나머지 세 여자는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고, 의사에게 정말로 괜찮은거냐고 몇번이나 물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의사는 여러가지 지표를 보여주면서 준수의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눈을 뜨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만을 할 뿐이였다.
금요일이여서인지 세진은 쌓인 업무가 늦게 끝나서 병원에 늦게 올 수 밖에 없었다. 하긴, 어쩌면 퇴근할 수 있다는것 자체가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한동안 학교에 출근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무단결근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일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건, 은혜가 강간당할뻔한 일, 그리고 그로 인해 은혜가 학교를 그만두고 준수가 입원을 한 일 때문에 학교측에서는 세진을 징계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그 뒷처리들을 하는 것으로 꽤나 학교일은 바쁘게 돌아갔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일은 세진을 지치게 만들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 나면 준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면 그런 일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좋은것만도 아니였다. 우선, 아무리 준수의 얼굴이라고는 하지만 의식없이 누워있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에, 그녀는 그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게다가 어쨋든 자신과 함께 밤새 준수의 옆에 있는 여자는 다름아닌 영희였다. 자신이 영희에게 지난날 했던 행동... 그녀 스스로도 그 행동을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영희가 자신을 용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영희는 이상하리만치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배려해주듯, 피곤하지 않느냐, 잠깐 잠이라도 자둬라, 출근하기 전에는 어디어디 화장이 이상하다, 는 등... 그런 말들에 세진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라도 준수가 눈을 뜬다면... 자신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과연 어떤 말을 할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였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이해할 수 없던 감정이였지만, 비록 준수가 자신을 내쫓는다고 할지라도 그가 의식을 차리는 것을 보고싶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그렇기에 오늘도 이렇게 영희와 함께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올때쯤, 영희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세진은 몸을 일으켜 준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준수의 손을 잡고서는 자신의 얼굴에 대고, 혹시라도 누군가 들을까봐 걱정하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흐느꼈다.
"미안... 앞으로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테니까... 제발 눈좀 떠줘..."
사실 그동안 영희의 눈치를 보느라 한번도 준수의 몸을 만져본 적도 없고, 만질수도 없었던 세진이였기에, 지금 잠시 영희가 자리를 비운 시점에서 준수의 손을 잡았던 것이였다. 하지만 평상시의 따뜻했던 준수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자 세진은 그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만약 자신이 준수를 이렇게 옭아메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책을 했고, 그런 자책감 때문인지 눈물이 한번 흘러나오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때, 갑자기 눈물을 흘리던 자신을 향해 누군가가 말없이 손수건을 건네줬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다름아닌 영희였다. 세진은 마치 잘못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황급히 준수의 손을 놔주었지만, 영희는 그걸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했다.
"흑흑... 고마워요..."
영희는 말없이 세진의 옆에 앉았고, 세진의 울음이 멈추기를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세진이 진정되자 영희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곧 수정씨랑 은혜 도착한대요. 오늘 출근 안하시죠? 가시기 전에 아침이나 같이 먹어요."
".... 네..."
생각지도 못했던 영희의 아침 제안에 세진은 당황했지만 그녀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잠시 세수를 하고 아주 기본적인 화장만 다시 만지고는 세진은 영희와 함께 병원문을 나섰다. 그리고 병원 앞에 있는 국밥집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국밥집에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앉자 세진은 더 어색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세진은 영희가 왜 자신에게 밥을 먹자고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어색하게 게속 있을 순 없었기에 뭐라도 말을 해보려고 한 순간, 영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 용서한적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죠?"
"........"
"앞으로 용서할 생각도 없구요."
".... 네.... 저같아도 그럴거에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저도 떳떳한 입장이 아닌데... 그리고 선생님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니까요..."
"......"
"그리고 선생님을 용서할지 말지는 제가 정하는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선생님이 그렇게 후회한다거나 주눅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정말로 준수를 사랑해서 그런거였다면...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
"그리고 저나 준수에게 용서를 받기보다는 선생님이 선생님 스스로를 용서하세요... 아마 저희한테 용서받는것보다... 그게 더 먼저일테니까요."
"왜... 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거죠...? 사실은 제가 싫으실텐데... 이렇게 저랑 있는것만을도 기분이 나쁘실텐데 왜..."
"... 왜냐구요...? 간단해요. 제가 준수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준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일거니까... 자, 식기전에 먹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영희는 더 이상 세진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때, 자신은 절대로 영희를 능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세진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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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필력이 떨어지는데 오랫만에 써서 그런지 글을 더 못쓴거 같네요.
덕분에 목표는 토요일에 올리려 했는데 이제와서야 올리게 營윱求?..
혹시라도 기다려주신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네요.
아마 다음 편은 다음주 주말쯤에 올릴 수 있을듯 합니다.
바빠도 글을 쓸 시간이 없는건 아닌데
뭔가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보니 글을 쓰기가 힘이 드네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편정도는 올리기 위해 노력해보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한 주 되시길!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도심의 차들은 평소보다도 느린 속도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있는듯 했다. 하긴, 사실은 소나기때문이 아니라도 굳이 빠르게 운전을 할 필요도 없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출퇴근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이벤트가 있는것도 아니여서 차가 막힐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의 유일한 걸림돌이라면 신호등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유독 차 한대만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듯, 다른 차들을 추월하며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빠아아앙
추월당하는 입장에서는 무모해보이는 운전이였고, 하마터면 충돌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경적을 울리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지만, 문제의 그 차는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듯, 아랑곳하지 않고 곡예에 가까운 운전을 계속하고있었다. 무모해보이는 주행이였지만, 사실 그 차를 운전하고 있는 당사자는 대담한 운전과는 달리, 불안해하면서 뒷자리에 앉은 자신의 손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젠장.... 내 평생 택시운전하면서 이렇게 운전해본 적이 없는데...."
속으로 단속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아니면 빗길에 미끄러져서 다른 차와의 접촉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핸들을 잡은 손이 떨릴 지경이였지만,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손님의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때문에 뭐라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다급하게 통화를 하는것 같았고, 통화했을때의 상대방과 주고받은 말이나, 행선지를 보아하면 누군가 크게 다친게 분명했다. 그리고 다친 사람은 다름아닌 그녀의 아들인것 같았다. 본의아니게 그녀의 통화를 엿들은 택시기사는, 그 전까지는 목적지까지 그를 계속해서 재촉하던 것을 원망했었지만, 그 또한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로써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안되는것은 아니였다.
"에이... 그래... 오늘같은 날 딱지 몇개 끊으면 뭐 어떠냐!"
속으로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면서 매일같이 편안하고 안전한 운행을 목표로 삼았단 자신의 모토를 버리고, 카레이서 못지 않은 운전솜씨를 뽐내기로 다짐했다. 비가 잠깐 내리고 그칠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그것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빗발은 더 강해졌다.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는 정말로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때쯤, 목적지인 한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택시기사가 몇번 와본 병원이였기에 곧바로 응급실쪽으로 향할 수 있었고, 그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에게 5만원짜리 두 장을 건네고는 곧바로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니... 저 손님...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빗물때문이였을까,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도 못한듯 그저 앞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였다. 평소대로였다면 뜻밖에 많은 돈을 받았기에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마냥 기분이 좋을수만은 없었다. 그도 한 사람의 아버지로써 그녀의 아들이 크게 다친것이 아니였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을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걱정했던건, 그녀의 아들이 아니였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그녀의 아들과 비슷할지도 몰랐다. 아니, 사실 그녀의 아들같은 존재이지만 아들같은 존재가 아니였다.
아마 -물론 택시기사는 평생 진실을 모를 가능성이 크지만- 그녀와 그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분명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 4시간 전...
준수가 벗어준 상의로 가까스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은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준수의 뒤에 딱 붙은채 자신을 범하려 했던 그 3인방으로부터 떨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 3인방은 마치 너희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어, 라고 말하는듯한 표정으로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왔고, 준수와 은혜는 그들로부터 달아나듯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준수는 은혜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은혜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또한 알고 있었다.
준수는 다시 한번 자신의 세운 계획을 빠르게 자신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사실 계획이라고 불릴만큼 거창한 것도 아니였고, 딱봐도 실패할리가 없는... 아주 단순한 계획이였다. 하지만 만에하나 실수라거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였다. 그리고 그 경우 자신이 어떻게 되든 그건 상관 없었지만, 문제는 은혜가 저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게 되는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 준수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준수와 은혜는 막다른 벽까지 몰려 더 이상 뒷걸음질을 칠 수도 없었다. 준수는 마지막으로 이 창고의 유일한 출구를 확인하고는 은혜의 손을 잡은채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내가 이 손을 놓으면 저기 문까지 그냥 달려. 알았지?"
"준수야... 어... 어떻게..."
"내가 어떻게든 할테니까. 아무거도 신경쓰지 말고... 알았지?"
"모... 몰라... 나 자신없어...."
"그냥 달리면 되. 뒤는 나한테 맡기고... 나 믿을 수 있지?"
"... 응...."
"그리고 곧바로 선생님들 불러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말하는거야. 할 수 있지?"
"... 응.... 알았어... 괜찮은거지...?"
불안감이 섞인 은혜의 말에 대답하는것 대신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 후, 준수는 은혜의 손을 잡은채 그녀를 이끌듯 그 3인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뒷걸음만 치던 준수가 갑작스럽게 그들을 향해 달려가자 은혜는 물론, 그 3인방도 준수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다는듯,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새끼가..."
준수는 출구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던 기주와 부딪혔다. 부딪히는 순간, 축구에서 몸싸움을 하듯, 기주를 밀어붙였고, 당황스러운 그들의 행동에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던 기주는, 속도실린 준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준수의 손을 잡고 있었던 은혜도 기주를 넘어뜨릴때의 충격이 전해졌지만 준수가 느낀 충격에 비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였다. 하지만 준수도, 은혜도, 그 충격을 느낄 틈도 없이 그대로 출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도 멍하니 있다가 기주가 넘어진 채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준수와 은혜를 ?아갔고, 태민이 준수의 몸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손이 미끄러지면서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가까스로 준수와 은혜는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고, 준수는 거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은혜를 문 밖으로 내보내고는 남아서 문을 닫았다.
"준수야..."
"헉헉... 빨리가. 난 걱정하지 말고 빨리..."
".... 하... 하지만......"
"난 괜찮아. 괜찮으니까... 빨리..."
"알았어... 꼭 괜찮아야되... 알았지?"
문 너머에서 은혜가 달리는듯한 소리가 들려오고나서야 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채 그를 향해 증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3인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 시발놈... 저새끼 혼자 멋있는척은 다하네."
"... 선배... 이건 좀 아닌거 같아요."
"닥쳐 이새꺄. 너 시발 우리 인생 좆되게 만들려고 작정했냐?"
"잘못은 선배들이 먼저 하셨잖아요. 지금이라도 은혜를 ?지 않고 은혜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면 없던 일로..."
"이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준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기주가 준수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후리쳤다. 꽤 묵직한 주먹에 준수는 강한 충격을 느꼈고, 순간 의식을 잃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 이후 돌아오는건 필수와 태민의 발길질이였다. 특히 태민의 발길질이 준수의 왼쪽 정강이쪽을 치며 준수는 순간 균형을 잃어 무릎을 꿇었고, 기주의 발에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맞으며 준수는 의식을 잃은채 바닥에 쓰러졌다.
"좆도 아닌 새끼가 재수없게..."
그들의 일방적인 구타에 정신을 잃은채 바닥에 쓰러진 준수를 보며 욕을 하며 제각각 준수를 향해 침을 뱉었다.
"야, 담배 하나 줘봐."
태민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기주와 필수에게 담배 한 개비씩 주며 불을 붙여주고는, 자신도 담배 하나를 물고 불을 붙였다. 고등학생이지만 그들은 담배를 피는 것이 매우 익숙한듯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 그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범죄에 가까운 행동이 일어난 이 공간에서 은혜가 빠져나갔다. 그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혹할 것이 분명했다. 뭐... 그들의 행동을 생각해본다면 그들이 대가를 치러내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기주야... 우리 어떻게해?"
"아 몰라 시발..."
"야... 은혜가 선생님한테 말하면... 우리 좆되는거 아니야?"
"아 나도 모른다고!!!"
필수와 태민의 불안섞인 말에 기주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피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겉으로 멀쩡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기주 또한 그들만큼 불안해하고 있었고, 그 불안감을 숨기기 위해 괜히 준수에게 더 화풀이를 했다.
"이딴 새끼때문에... 이딴 새끼때문에..."
기주가 몇번 준수를 발로 차자 준수의 몸이 움직였다. 그 때였다. 그들이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넘어져있는 준수의 몸에서 흥건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던 것을 본 것은. 준수가 넘어질때 바닥에 있던 유리조각이 우연히 준수의 몸을 파고들어 깊은 상처를 남겼고,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였다. 그 장면을 보자 가까스로 불안감을 숨기고 있었던 기주마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야... 시발... 저거... 설마 피냐...?
"......"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지 못하겠다는듯한 기주의 말에 필수와 태민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말 큰일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안았지만 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뿐이였다....
병원의 문을 들어선 영희는 주위 사람들에게 응급실의 위치를 묻고 곧바로 응급실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응급실이 위치한 1층 로비쪽은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아 사람가 부딪힌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응급실에 도착하자 그녀의 눈에 수정과 은혜, 그리고 은혜의 부모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영희는 그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준수는 어디냐는듯한 눈빛을 수정에게 보냈다.
"언니... 준수 방금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그... 그래...? 괜찮은거지...? 우리 준수... 괜찮은거지?"
".... 언니..."
수정은 영희의 물음에 확실히 답을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듯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흘렸고, 그것을 본 은혜 또한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영희는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눈물을 흘리면 안된다는 것을...
"자자... 내가 말을 잘못했네. 당연히 준수는 괜찮을텐데 쓸데없는걸 물어서.... 그러니까 울지 말고... 응...?"
슬픔을 가슴 깊은 곳으로 잠시 밀어둔채 영희는 수정과 은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감정이 조금 진정이 되고나서야 은혜의 부모로 보이는 인물이 영희에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뵙게되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리질 못하겠습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은혜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은혜 어머니되는 사람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준수의..."
영희는 그들의 인사에 자신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그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할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냥 이런저런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없이 준수의 이모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을 해도 상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말하고 싶었다. 나는 준수의 애인이에요, 라고...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상황속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그녀 스스로도 실망스러웠다. 그녀의 이런 생각을 알리가 없는 은혜의 부모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진지하게, 하지만 따스한 마음을 가득 담은 말을 이어나갔다.
"피가 섞인것도 아닌데 준수를 저렇게 훌륭하게 키운걸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거에요."
"네... 괜찮아야죠... 감사합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당연히 와야죠. 준수가 아니였으면 우리 딸 은혜가 어떤 험한 꼴을 당했을지 모르는데..."
"그나저나 제가 상황을 정확히 못들어서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아... 그건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고... 아 그래. 여보, 여보가 잠깐 준수 이모님이랑 가서 얘기좀 하고와."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려면 반드시 은혜가 겪은 일을 설명해야했다. 하지만 그 일을 다시 꺼내는건 은혜에게 상처일 수도 있었다, 라는 것을 생각안 은혜의 아버지의 배려에 영희와 은혜의 어머니는 휴게실 한켠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은혜의 어머니로부터 들려오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놀랐지만, 영희는 내심 은혜를 위해 그런 희생을 감수한 준수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멋있게 느껴졌다.
"호호... 그나저나 평소 은혜한테 준수에 대한 얘기를 말로만 들어서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까 어쩜 그렇게 멋있을까요? 제가 10년만 젊었어도 준수한테 홀딱 반할뻔했지 뭐에요."
"... 그러게요..."
은혜의 어머니는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시켜보고자 농담섞인 말을 꺼냈지만 생각만큼 효과를 보지 못하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자신이 준수의 부모 입장이였어도 농담같은걸 들어줄 상황이 아니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모님.. 괜찮을 거에요..."
"정말... 정말 괜찮겠죠....?"
은혜의 어머니가 괜찮을 거라는듯 영희의 손을 붙잡아주었다. 그제서야 영희는 숨겨왔던 눈물을 떨어뜨렸다. 은혜나 수정에게 더 큰 불안감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겨왔던 슬픔의 눈물을...
영희와 은혜, 수정... 세 사람은 수술실 앞에서 앉아서 서로 말없이 초조히 보이지 않는, 그리고 보일리도 없는 수술실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혜의 부모들은 사건의 뒷정리를 위해 경찰서와 학교를 가있었다. 나중에 준수가 회복되면 한번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준수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한 영희가 중간중간에 준수의 수술이 시작된지 얼마나 楹?물어본 것 말고는 그녀들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입을 열면 자신의 초조함이 그대로 묻어나올것 같았고, 그 초조함이 불안감으로 변하고 수술결과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들은 침묵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장준수 환자 보호자분 계세요?"
"네? 전데요..."
"아아.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곧 수술 끝나니까 입원수속 미리 밟아놓으시라구요."
"정말요? 그... 그럼 준수는 괜찮은거죠? 수술 잘 끝났대요?"
"그거야 뭐, 저야 확실히 모르겠지만 아마 괜찮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들을 찾아온 간호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영희는 잠깐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는 간호사를 따라서 준수의 입원수속을 밟았다. 다행히 빈 병실이 많아서 영희에게는 다양한 선택권이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녀는 준수가 입원할 병실로 6인실이라거나 4인실, 2인실이 아닌 1인실을 택했다. 어쨌든 준수는 조금 특수한 상황이였기에 그렇기 하는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였다. 준수가 있을 병실이 정해지자 간호사 여럿이서 그 병실을 미리 정리해두려는듯 이동을 했다. 더 이상 볼일이 없어진 영희 또한 다시 수술실 앞으로 돌아와서 초조하게 준수가 수술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그 때였다.
"저..."
"... 네...? 어머, 선생님..."
영희는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보니 여러가지 기분이 교차해서 선뜻 그녀에게 반가운 표정만을 지을 수 없었다. 그곳을 방문한 여성은 다름아닌 세진이였다. 세진의 모습을 보자 은혜는 반가운 표정을 잠시 지었지만, 그것은 잠시였을뿐, 곧 그녀에게 달려들어 다시 눈물을 흘렸고, 세진 또한 힘없이 그런 은혜를 끌어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수정은 기가 막히다는듯한 표정으로 세진을 쏘아붙혔다.
"야, 암코양이! 너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는거야? 네년이 사람이면 그럴 수 있어?"
".........."
"너 양심도 없니? 언니한테 그런 짓을 해놓고서 어떻게..."
세진의 모습을 보자 수정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것만 같았다. 사실 수정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세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쓸데없이 영희에게 찾아와서 이상한 내기를 하고, 어찌보면 영희에게 치욕적인 시험을 들게한 그녀였기에... 수정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해놓고 뻔뻔스럽게 찾아올 수 있냐는듯 세진을 격렬히 비난하는듯한 표정을 지었고, 거기에 세진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서있었다.
"나가, 나가라고! 꼴도 보기싫으니까 나가!"
"....."
"됐어 수정씨. 그만해..."
"아니, 언니! 어떻게 언니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솔직히 언니도 저 년 얼굴 꼴도보기 싫잖아요."
"... 일단 여기 앉으세요. 곧 준수 수술실에서 나온다니까..."
영희가 수정의 말을 무시하고 세진이 이 장소에 있는것을 허락하자, 수정은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는듯 씩씩댔지만, 영희는 마치 그러지 말라는듯한 표정을 수정에게 보냈다. 하긴, 영희가 괜찮다는데 더 이상 자신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게다가 그녀가 큰 소리를 냈던것에 주변 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궁금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기에 수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자리에 앉은채 뭔가 마음에 안든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응급실 문이 열렸다. 그녀들은 드디어 준수가 나오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응급실에서 나온 것은 준수가 아니라 한 간호사였다. 그녀들은 실망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으려 했다.
"혹시 장준수 환자 보호자분 계신가요?"
"네... 전데요?"
"곧 환자분 나올건데, 환자분 절대안정이 필요하니까 힘드시겠지만 그냥 지켜보시구요... 입원 수속 밟으셨다고 들었는데, 한 30분정도 뒤에 병실로 오시면 될거같아요."
"... 그런가요.... 저... 혹시 수술은 잘 끝난거 맞죠?"
"그건 제가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구요... 곧 의사선생님 나오시니까, 의사선생님한테 물어보시는게 더 확실할거같아요."
영희는 뭔가 그 간호사에게 묻고싶은것이 많았지만, 그 말들이 한꺼번에 그녀의 입에서 나오려고 하기 전에, 준수가 누워있는 침대가 입원실에서 빠져나왔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의식을 잃은채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준수의 모습을 보자 그녀들이 각자 가지고 있었던 불안감이 한번에 폭발하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분명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녀들도 알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보자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였다. 그녀들이 어떻게 해볼틈도 없이 그 이동식 침대는 빠르게 그녀들 곁을 빠져나갔고, 그 뒤에 마치 지친다는듯한 표정으로 가득한 의사가 간호사 한명을 대동한채 응급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저... 선생님... 준수 수술 잘 끝난거 맞죠? 그런거죠?"
"아... 환자 보호자분 되시나요?"
"네..."
"일단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습니다."
"... 그런데 왜... 준수 저렇게 의식이 없는거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크게 다친건 아니니까요. 다만 출혈이 생각보다 심해서 거기에서 온 쇼크때문에 의식이 없는것 같으니, 안정 취하고 있다보면 의식이 돌아올겁니다."
"정말이죠? 다행이다..."
의사의 말에 영희도, 은혜도, 수정도, 세진도 모두 안도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물론 의사는 꽤나 경험이 많은, 이 병원에서도 베테랑급의 의사였기에 응급실의 분위기도 잘 알고, 이런 상황속에서 환자의 보호자들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익숙했다. 하지만 환자에게 이렇게 미인의 여성이, 그것도 4명이나 와서 한 남자를 걱정해주는 광경은 처음이였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그녀들에게 흑심을 품는다거나 하는 감정은 아니였다. 그저 살짝 부럽다는 생각을 할 뿐이였다.
"그나저나, 환자분이 최근이 스트레스 받은 일이 많은것 같아요. 아무래도 학생이다보니 공부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거같은데 그 부분을 조금 신경쓰셔야될거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딱히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때 나타나는 증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거든요. 아... 뭐 심한건 아닙니다만..."
"그... 그렇군요..."
의사의 말에 영희를 포함한 나머지 여자들이 짚이는 데가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였기에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속생각을 알리가 없는 의사는 자신이 괜한 말을 해서 그녀들의 걱정거리를 늘린게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할 뿐이였지만, 이미 자신이 내뱉은 말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였기에 미안함만을 가지고 그녀들의 곁을 빠져나왔다.
절대로 주변에서 큰 소리를 낸다거나, 너무 심하게 준수를 건드리면 안된다는 주의를 하고서는 간호사들은 병실을 빠져나갔다. 꽤 비싼 1인실이였기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가 없어진 그녀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물론 간호사의 주의도 있었고, 꼭 주의가 아니였다고 해도 그녀들 나름의 눈치가 있기에 큰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고 있었다.
"은혜는 여기에 너무 오래있으면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그치?"
"아니에요... 벌써 저희 부모님한테 여기 있고싶은만큼 있어도 된다고 허락 받았어요. 수정언니야말로 학교 가셔야되지 않아요?"
"나는 뭐... 수업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수업들밖에 없어서... 대학생이란 뭐 그런거지... 그나저나... 암코양이, 쟤는 왜 아직까지 안가고 저렇게 버티고있대?"
"... 나... 나는...."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자기가 이 자리에 계속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정말로?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수정의 비꼬는 말에 세진은 어떠한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자신도 특히나 영희와 눈이 마주칠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기에, 차라리 영희가 자신에게 화를 내면 그 분노를 모두 받아내면 되는 일이였지만, 영희는 그녀에게 화를 낸 것도 아니였고 오히려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는가.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던 세진이였기에 오히려 이 자리가 가시방석에 앉은것마냥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정이 쏘아붙이자 세진은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를 떠날수도 없는게, 그녀 또한 준수를 사랑하는 한 여자로써, 준수가 눈을 뜨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게 사실이였다. 그렇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고, 눈물이 나오려고 할 지경이였다. 그런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정말 놀랍게도 영희였다.
"수정씨. 그만해..."
"언니, 안되요. 저런 여자한테 너무 무르게 대하면 또 언제..."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수정씨. 그리고 어차피 선생님도 준수가 걱정되서 이렇게 온건데... 그 마음은 나나 수정씨나 은혜나 같은거잖아. 그런거죠 선생님?"
".... 네... 네...."
"어차피 나도 그렇고... 여기있는 사람들 다 누가 오지 말라고 해도 그거 무시하고 여기 올 사람들이잖아. 그리고 누가 말리지 않으면 여기서 준수가 눈뜰때까지 몇일밤이고 밤샐거라고 말할 사람들이잖아. 안그래?"
영희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반응을 예상한 영희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우리 다 여기서 이렇게 앉아서 준수가 눈을 뜨길 기다릴 순 없는거잖아. 그게 준수가 바라는걸까?"
"......."
"예를들어 은혜같은 경우도 그래. 물론 은혜가 준수를 생각하는 마음은 잘 알아. 어떻게보면 준수가 은혜를 지켜주려고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거고... 그러니까 마음이 편하진 않겠지. 하지만 어쨋든 은혜는 어리고 하니까 계속 여기에 있을 순 없잖아. 이번 일을 계기로 부모님들도 한동안은 집에 일찍 오신다고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 네...."
"선생님도 마찬가지에요. 몇일동안 학교를 안나가셨다면서요? 어른이 그래서 제자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오시는건 마음대로지만 대신 조건은 선생님이 제대로 학교를 출근하시는거에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알죠?"
".... 네...."
"그럼 이렇게 해요. 어차피 저도 저 혼자 여기서 매일같이 밤샐수는 없으니까, 둘씩 짝지어서... 음... 그러니까... 아무래도 수정씨가 제 옆집이니까 우리는 따로 오면서 만약에 뭐 필요한거 있으면 가져다주는걸로 하는게 좋을거같은데, 수정씨 생각은 어때?"
"좋은 생각이에요 언니. 근데 저.... 저 암코양이랑은 같이 있기 싫어요."
"... 알았어. 그럼 은헤랑 수정씨가 낮에 여기 있고, 나랑 선생님이랑은 밤에 같이 있기로 해요."
영희의 말에 수정은 놀라서 영희의 눈치를 살폈다. 마치, 그렇게 해도 정말 괜찮겠냐는 식의 눈빛을 보냈지만 영희는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듯했다. 그렇게해서 그녀들의 간호일정(?)이 정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은혜는 더이상 학교를 다니지 않기로 했다. 수정 또한 자신은 학교를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은혜와 수정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준수의 간호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영희와 세진이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간호를 하는 것으로 했다. 특히나 영희는 세진에게 반드시 학교에 출근을 해야하며, 시간이 적당히 늦으면 병실 옆에 있는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자두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수정은 영희가 세진과 함께 있어야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더 따지다가는 그녀 또한 병실에서 ?아낼거라는듯한 영희의 말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벌써 준수가 입원한지 3일째 되는 날이였다. 분명 지금쯤이면 의식을 차릴때도 ?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준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준수를 향한 걱정을 접어둘 수 없었던 영희와 나머지 세 여자는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고, 의사에게 정말로 괜찮은거냐고 몇번이나 물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의사는 여러가지 지표를 보여주면서 준수의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눈을 뜨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만을 할 뿐이였다.
금요일이여서인지 세진은 쌓인 업무가 늦게 끝나서 병원에 늦게 올 수 밖에 없었다. 하긴, 어쩌면 퇴근할 수 있다는것 자체가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한동안 학교에 출근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무단결근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일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건, 은혜가 강간당할뻔한 일, 그리고 그로 인해 은혜가 학교를 그만두고 준수가 입원을 한 일 때문에 학교측에서는 세진을 징계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그 뒷처리들을 하는 것으로 꽤나 학교일은 바쁘게 돌아갔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일은 세진을 지치게 만들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 나면 준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면 그런 일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좋은것만도 아니였다. 우선, 아무리 준수의 얼굴이라고는 하지만 의식없이 누워있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에, 그녀는 그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게다가 어쨋든 자신과 함께 밤새 준수의 옆에 있는 여자는 다름아닌 영희였다. 자신이 영희에게 지난날 했던 행동... 그녀 스스로도 그 행동을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영희가 자신을 용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영희는 이상하리만치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배려해주듯, 피곤하지 않느냐, 잠깐 잠이라도 자둬라, 출근하기 전에는 어디어디 화장이 이상하다, 는 등... 그런 말들에 세진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라도 준수가 눈을 뜬다면... 자신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과연 어떤 말을 할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였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이해할 수 없던 감정이였지만, 비록 준수가 자신을 내쫓는다고 할지라도 그가 의식을 차리는 것을 보고싶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그렇기에 오늘도 이렇게 영희와 함께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올때쯤, 영희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세진은 몸을 일으켜 준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준수의 손을 잡고서는 자신의 얼굴에 대고, 혹시라도 누군가 들을까봐 걱정하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흐느꼈다.
"미안... 앞으로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테니까... 제발 눈좀 떠줘..."
사실 그동안 영희의 눈치를 보느라 한번도 준수의 몸을 만져본 적도 없고, 만질수도 없었던 세진이였기에, 지금 잠시 영희가 자리를 비운 시점에서 준수의 손을 잡았던 것이였다. 하지만 평상시의 따뜻했던 준수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자 세진은 그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만약 자신이 준수를 이렇게 옭아메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책을 했고, 그런 자책감 때문인지 눈물이 한번 흘러나오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때, 갑자기 눈물을 흘리던 자신을 향해 누군가가 말없이 손수건을 건네줬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다름아닌 영희였다. 세진은 마치 잘못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황급히 준수의 손을 놔주었지만, 영희는 그걸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했다.
"흑흑... 고마워요..."
영희는 말없이 세진의 옆에 앉았고, 세진의 울음이 멈추기를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세진이 진정되자 영희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곧 수정씨랑 은혜 도착한대요. 오늘 출근 안하시죠? 가시기 전에 아침이나 같이 먹어요."
".... 네..."
생각지도 못했던 영희의 아침 제안에 세진은 당황했지만 그녀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잠시 세수를 하고 아주 기본적인 화장만 다시 만지고는 세진은 영희와 함께 병원문을 나섰다. 그리고 병원 앞에 있는 국밥집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국밥집에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앉자 세진은 더 어색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세진은 영희가 왜 자신에게 밥을 먹자고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어색하게 게속 있을 순 없었기에 뭐라도 말을 해보려고 한 순간, 영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 용서한적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죠?"
"........"
"앞으로 용서할 생각도 없구요."
".... 네.... 저같아도 그럴거에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저도 떳떳한 입장이 아닌데... 그리고 선생님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니까요..."
"......"
"그리고 선생님을 용서할지 말지는 제가 정하는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선생님이 그렇게 후회한다거나 주눅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정말로 준수를 사랑해서 그런거였다면...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
"그리고 저나 준수에게 용서를 받기보다는 선생님이 선생님 스스로를 용서하세요... 아마 저희한테 용서받는것보다... 그게 더 먼저일테니까요."
"왜... 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거죠...? 사실은 제가 싫으실텐데... 이렇게 저랑 있는것만을도 기분이 나쁘실텐데 왜..."
"... 왜냐구요...? 간단해요. 제가 준수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준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일거니까... 자, 식기전에 먹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영희는 더 이상 세진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때, 자신은 절대로 영희를 능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세진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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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필력이 떨어지는데 오랫만에 써서 그런지 글을 더 못쓴거 같네요.
덕분에 목표는 토요일에 올리려 했는데 이제와서야 올리게 營윱求?..
혹시라도 기다려주신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네요.
아마 다음 편은 다음주 주말쯤에 올릴 수 있을듯 합니다.
바빠도 글을 쓸 시간이 없는건 아닌데
뭔가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보니 글을 쓰기가 힘이 드네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편정도는 올리기 위해 노력해보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한 주 되시길!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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