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서히 끝을향해 달려갈 시점이네요..^^
오늘은 추천이고파서 여기 올려 봅니다~
음란곰탱 퓨어곰탱(@eroticbear88)
12부
사람은 가끔 하지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어찌하지 못 할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겐 그렇다. 이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계속 나 자신을 타일렀지만 결국엔 나약해 빠진 내 의지가 여기로 나를 이끌고 왔다.
조금전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 때 현지를 발견했어도 난 그냥 내 갈길을 갔어야 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에선지 나는 그들이 있는 곳 지척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현지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내 알량한 배려심 탓인지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을테니 이왕 이히 된거 조용히 하고 있어야만 했다.
- 밤이라 좀 쌀쌀하지?
- 네
그들의 말소리가 또렷하진 않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정도로는 들려왔다. 그들은 산책로 에서 조금 떨어진 정자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꼴사납게 이름모를 덤불 아래 몸을 숨기고 있었다
- 키스 해도돼?
- 그런 걸 물어 보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도 원래는 안 하는데 괜히 했다가 뺨 맞을까 봐..
- 요즘 세상에 키스 한번 했다고 뺨 때리는 여자도 있어요?
-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정말 나랑 사귈 생각은 있는거야?
- 그럼 선배는 사귈 생각도 없이 키스 하자고 한 거예요?
- 그럼 완전히 사귄다는 의미로 받아 들인다.
- 그래요.
- 의외로 시원시원 하네.
- 아닐꺼에요..쿨하진 못해요.
- 아직 누구를 담아두고 있다는 뜻이야?
- 어제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은 아닐 거에요.
- 그럼 됐네.
- 뭐가요?
- 다른 남자를 품고 있으면 내가 들어갈 곳이 없잖아. 나한테도 어느정도 자리를 줘야지..
- 선배는 어떤 사람이에요?
- 나? 난..이런 사람..
현준형이 현지의 입술에 키스했고 현지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제는 정말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현지의 삶이었다. 현지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현지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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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자~짐들 내리고 이따 뒷풀이 있으니까 피곤해도 다들 참가하자~권고사항인데 빠지면!!! 알지? 하하하~
도착하자마자 과대표가 또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피곤해 하는 사람도 있고 더 놀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같이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냥 보내 주어도 좋겠건만...하긴 나도 빨리 갈 수 없는게 누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누나는 나름 의리파라 그런 자리는 미안해서 대체로 끝까지 함께 하는 편이 기도 했다.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는 자리에 계속 앉아 시간을 죽치고 있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 빨리 가자고 몇 차례 성화를 한 후에야 데리러 오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누나 핑계를 대고 양해를 구한 후 가까스로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다. 현지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보니 먼저 갔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차를 운전 할 생각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던 터라 바로 누나를 데리러 갈 수 있었다 . 본인이 해독 할 수 있는 주량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오늘도 누나는 살짝 기분이 좋을만큼 취해있었다.
- 또 마셨어?
- 주는데 어떻게 해
- 박스로 주면 박스 채 마시겠네~
- 그러기야 하겠어~
누나가 내 뺨에 뽀뽀를하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사람들 본다고~
- 보라고 해~ 나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 집에 가는 동안 살짝 눈 좀 붙여..
- 응...
늦은 밤시간이라 그다지 막히지도 않았다. 누나도 완전히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일어났다.
- 으아~우리집이다~
누나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 조용히 좀 해 ~
내가 현관문을 열려고 할때 누나가 내 손을 잡아 끌어 입을 맞추었다. 순간 저쪽 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었다. 깜짝 놀란 내가 누나의 어깨를 밀쳤다.
순간적으로 누군가 우리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 코너 부분으로 돌아가니 다행이 아무도 없어 보였다.
- 너 정말 미쳤어?
다시 집 앞으로 돌아온 내가 누나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 왜? 뭣 때문에..?
나는 누나의 손목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 누군가 우리를 본 것 같았단 말이야.. 그래서 뛰어 갔다 온 거고..
- 누가 우리를 봤어?
- 모르겠어~모르겠다고! 가보니 아무도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친남매인 줄 알고 있어. 혹시 누구라도 본다면 어떤 오해를 할지 누나가 몰라서 그래?
갑작스럽게 화를 내서인지 누나는 잔뜩 움츠러 들어 있었다.
- 미안해..다신..안 그럴께..화..내지마...
그런 누나에게 미안해서 다시 안아 주었다.
- 미안해.. 너한테 화내는게 아니었는데.. 내가 좀 예민해져 있었나봐..나도 정말 네가 내 여자라고 말하고 다니고 싶은데.. 지금은 때가 아니잖아. 조금만 더 기다리자. 부모님에게도 허락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해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잖아.. 설령 그럴 수 없으면 우리가 떠나면 되는 거고.. 난 너만 있으면 어디든 괜찮아 너도 그렇지?
내 품에 안겨있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굳이 여기 일 필요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건 단 한 사람이고, 그런 누나가 나와 함께 한다면 어디라도 상관 없었다.
올라가서 누나를 재우고 세탁물을 세탁기에 몽땅 집어 넣었다. 며칠동안 쌓여 있던 집안 청소를 했지만 기분은 생각만큼 깔끔해지지 않았다. 아까 전에 내가 느낀 건 분명 인기척이 없다 내가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 발자국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많은 걸 숨기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불안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이 단순히 불안함에 기인한 나의 과민반응이었다면 하는 바램이다. 또 따지고 보면 어두운 밤이었고 누군가 보았다고 해도 그 자체로 뭘 어쩔 수 없을 거라는 자기 위안을 한 후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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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일주일 동안 장마처럼 내렸고 대학교는 중간고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평소에도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시험 기간에는 더욱더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공강 시간에 잠시 도서관에 들렀다 나오다 현준이형이랑 걸어가는 현지가 보였다. 잠시 아는 체를 하려고 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굳이 날 못봤는데 따라갈 이유는 없었다.
학교식당에서 준석이를 만나 점심을 먹는데 아까 부터 뒷통수가 따끔거렸다.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 두명이 황급히 고개를 내리고 나랑 눈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
- 야..나 뒤에 뭐 묻었냐?
내가 등을 돌려 보이자 준석이가 아무 이상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 네 뒤에 뭐가 묻어서 보는게 아니라 내가 잘생겨서 쳐다 보는 거야~밥이나 먹어~!
- 놀구있네!
한창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괴롭혀대던 준석이가 어느순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도 사방을 살펴보니 모두 다는 아니지만 우리 쪽으로 쏠려있는 일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 현..우야..밥은 일단 두고 나가자..
- 왜?
- 일단..따라 나와..
나는 영문도 모른체 준석이에게 끌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 얌마~밥먹다 말고 왜?
- 너..이..거 사실이냐?
- 뭐?
- 이거..
준석이가 내민 핸드폰에는 우리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한장의 사진과 짤막한 설명글 이었다.
사진은 일주 전, 우리 집 앞에서 누나와 내가 입을 맞춘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짤막한 글..
" 패륜 "
학생이 아니면 글을 못올리게 되어있는 공간이었지만 외부인도 올릴수 있는 곳에 누군가 사진을 올려 놓았고, 그걸 본 누군가 다시 학내게시판으로 퍼나른 것 같았다.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옆에서 채근하는 준석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먼저 누나를 찾아야 했다.
미친듯이 달려 누나가 있는 단대로 갔다.
1시 수업이란걸 알고 있었기에 누나가 수업을 들어 가기 전에 데리고 나와야 했다. 멀리서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 현우야.. 너~야!
나는 누나의 손목을 잡아채고 재빨리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누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누나를 차에 태워 단숨에 학교를 빠져나왔다.
- 현우야..무슨 일인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 일단 여기서 벗어나면 알려줄게..
무작정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조금 한적한 곳이 나오자 길가에 차를 세웠다.
- 무슨일이야...?
- 사진이...올라왔어..
- 사진..? 무슨...
내가 핸드폰으로 해당 사진을 보여주었다.
- 마..말도 안돼...누가 이런 사진을 여기에..
누나는 놀란 나머지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 모르겠어. 도대체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사진을 올린 건지..모르겠어. 누군가 우리를 지켜 봤고 의도적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긴데..누가 그럴..사람이..있을까..
- ...혹시..혹시말야..
- 어..
- 그 사람 아닐까..민석씨! 엠티가서 일도 있었고 나한테 나쁜 마음까지 품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
- 그렇긴한데..그 사람은 자기 흔적을 남기면서 그런 짓을 하진 않았을 거야.
- 엠티가서도 봤잖아. 자기 신분이 그런데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행동 한 사람이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겠어?
- 그땐 이미 술에 많이 취해서 이성 적으로 행동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거야.
- 우리 주위에 그 사람 말고 따로 의심해 볼 만한 사람이 누가 있어?
- 흠...
잠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우리 어떻게 될까.. 부모님도 머지않아 아시게 될 텐데..
항상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해왔던 누나도 본인의 의지가 아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자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이럴때 일수록 내가 더 냉정하고 침착해져야 했다.
- 걱정하지마. 일단 생각좀 해보자.. 도덕적으로 우리를 비난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우린 아무 문제없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떠날 수 있고 우리끼리 살 수 있어. 그거 말고 더 바라는 거 있어?
- 아니..없어..근데 무섭고 불안해.
누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주목했을 사람들 그리고 나와 누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 오랜 생각을 할 것도 없이 현지와 민석이었다.
누나이 말처럼 가장 의심이 가는 사람은 민석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쉽게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현지가 이런 일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현지는 누구보다 착한아이였다. 나에게 악한 감정이 있을지언정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깎아내리는 이런 행동을 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원하는게 뭐길래 우리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뭔가 명확한 구석이 없었다. 부모님이 아시기 전에 먼저 해결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똑똑"
- 어 들어와..
- 안잤어?
- 응 아직..
- 신영이한테 톡이 왔는데.. 이거 너한테 보내 줄게.
- 뭔데?
누나에게서 받은 건 민석이 지난번 엠티때 행패 부린 영상이었다. 다른 학생 한명이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봐 이걸 휴대폰으로 촬영해 놓았다고 했다. 그걸 신영이 누나가 받아서 보내 준 거였다.
- 신영이는 알고 있었어. 며칠 전에 내가 이야기 했거든. 우리 둘이 성이 다르잖아. 신영이도 그래서 이혼하고 같이 살면 가끔 성이 다른 애들도 있으니까 그 정도로만 생각했대. 이해한다고.. 모두가 이해할 순 없겠지만 자기는 이해한다고..그랬어..고맙지?
- 그러네.. 내일 가서 이 사람 만나 볼 거야. 어쨌든 한번은 만나야 할 거야. 저번에도 그랬고 이번 일이랑도 관련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무리 하고 올게. 걱정하지말고 가서 자자.
- 같이 자면 안돼?
- 왜 안돼~ 가자 재워 줄게.
###
번화가에 있는 커피숍에서 약속을 잡았다. 그냥 한번 보자고 전화를 했는데 그는 순순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내가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5분 쯤 시간이 흘러 그가 도착했다. 그때와는 다른 멀끔한 모습이었다.
- 안녕하세요.
- 네. 우선 앉아요.
커피 한잔씩을 가운데 두고 둘다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평행선을 달리던 침묵을 먼저 깬 건 상태편이었다.
- 학교에서 들리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 네.
- 공교롭게도 어제 같은 사건이 있고, 나한테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일까 생각하다가 직업이 이러다 보니까 나름 결론을 내리고 왔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아닙니다.
- 정확하게 추측하셨으니까 저도 사전 설명은 생략 할게요. 제가 의심해 볼 사람이 현재로서는 그 쪽 밖에 없었습니다. 증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현재는 제가 할 수 있는게 이거 밖에 없어요.
- 그날 제가 실수 했던 거 인정 합니다. 그 날은 술에 많이 취해있었고 감정 조절을 못했어요. 원래 술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저는 사실 정아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이해 할 수 없었고 화도 나서 그랬던 것뿐입니다. 절대로 그 이외에 다른 악의를 가지고 있는 건 없어요.
- 이런 말씀 웃기지만.. 그날 그 시간에 어디에 계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 저희 집에 있었습니다. 원하신다면 관리사무소에게 이야기 해서 증거를 보여 드릴 수도 있구요.
그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고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가 아니라면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 밖에 없었는데...곤란했다.
차라리 이 사람이 그랬다면 문제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일은 점점 복잡하게 꼬여 갈 것이 분명했다. 현명하게 생각해야 했다.
- 믿을게요.. 근데 한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 말씀하세요.
- 저희 골목에 cctv가 한데 있어요.
- 그런..데요..
- 알아보니까 따로 범죄 수사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제가 그걸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더라구요.
- ...
- 앞으로 큰 일 하실 분이고 능력 있으시 잖아요. 부탁드립니다.
- 내가 아닌 걸로 해명이 될 줄 알았는데 내가 왜 이런 부탁을 들어줘야 하죠.
나는 말없이 핸드폰을 열어 신영이 누나가 보내준 동영상을 틀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굳어 가고 있었다.
- 설명은 필요없죠? 사람을 잘 보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이걸 어디가서 퍼트리거나 잡음 생기는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 드려요. 한번만 도와주세요.
- 도와 달라는 부탁이 고압적으로 들리네요. 생각보다 영리한 친구 였군요. 빠르면 오늘 저녁이나 내일까지 연락 드릴께요. 아시겠지만 저같은 사람은 안팎으로 잡음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커리어에 있어서도 그렇고.. 당연히 주의하셔야겠죠?
- 물론입니다.
- 일어서기 전에 한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 네.
-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까요? 부모님 밑에서 같이 자란 남매가 어느날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딱 좋은 소재 아닌가요? 더군다나 정아씨는 방송에도 얼굴을 몇 번 비춘적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당신이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 선택은 저희 둘이 했고 그에 따른 책임도 같이 질 겁니다. 다른 사람들 눈 의식하면서 살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예요. 걱정 고맙습니다. 먼저 일어나시죠?
- 그럼.
그냥 살짝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마치 앞일을 예견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듯..
집으로 돌아오니 누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 가봤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을 테니 가지 말라고 내가 일러두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거실로 들어서자 누나는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 뭐래? 그 사람이 자기가 그랬대? 그런 거 맞대?
- 아닌 거 같아.
- 왜 잡아때? 그 사람이 아니면 누구야? 그럴 사람이 없잖아.
- 누나.. 그 사람은 알리바이가 있는 거 같아. 그래서 그 사람한테 우리 동네 cctv자료를 좀 알아 봐 달라고 부탁만 했어..
- 그 사람은 자기가 범인이 아닌데 그런 걸 해 줄리가 없잖아.
나는 지난 밤 받은 동영상으로 그 사람에게 조건을 내걸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네가 그렇게 말했다고? 세상에...너 그거 어떻게 보면 협박인 거 알아?
- 알아도 별 수 있나.. 내가 가진 카드가 그거 밖에 없는데..
- 네 부탁을 들어줄 것 같애?
- 들어줄 거야. 그 사람한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까..선배몇명 찾으면 해결될 일이겠지..
- 그건 그렇다치고 민석씨가 아니면 누굴까..
- 모르겠어 내일까지 기다려 보자. 그 때까지는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저녁을 먹고 9시쯤 전화가 울렸고 그 남자 일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핸드폰 액정에는 현지의 이름이 비춰지고 있었다.
- 어..현지야
- 여기 너네 동네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커피숍이야 잠깐 나올래?
- 어.. 잠깐만 기다려 5분 안에 갈게.
학교 안에 말들이 퍼져서 당연히 현지의 귀에도 들어갔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것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봐야 했다.
구석 자리 앉아 어색하게 나를 보며 인사하는 현지가 눈에 보였다.
- 왔어..?
- 어..가깝잖아.
- 차는 내가 시켰어 괜찮지?
- 그럼
- 잘 지냈어?
- 응
현지가 왠지 말을 돌리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 궁금한 거 있으면 그냥 물어 봐도 돼 괜찮으니까..
- 저기.. 학교에서 들리는 말들 그리고 그 사진.. 아니지? 너랑 정아언니랑... 설마 그런 거 아니지? 사진이 이상한 각도에서 찍히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거잖아.
현지가 이 모든 일을 벌여놓고 이런 식의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만큼 영악한 아이도 아니고 계산적 이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 믿음이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현진 아니어야 했고 아니길 바랬다. 그래서 섣불리 현지를 의심하는 투로 물어볼 수도 없었다.
- 미안해..
- 너가.. 좋아 한다고 했던 여자가 정아 언니였어? 그런 거야? 그럼 정아 언니 때문에 날..
- 이제 다 지난 일이잖아...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누나를 많이 따르고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누나잖아. 성씨가 다르다고 그게 달라지는 거니? 정아언니도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동생인 너한테 그럴 수가 있어? 니가 그렇다고 해도 언니가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현지는 화난 표정이었다.
- 그만해. 현지야..
- 그래 우린 끝났고 내가 이런 말 할 필요도 없는 거 알아. 그래도 난..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젠가는.. 내가 기다리면..
- 너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네 옆자리에 허수아비 아무나 하나 세워 놓고 그 사람한테 상처 주면서.. 너도 상처 받고 그렇게 살고싶어?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 상관없어! 아무 상관 없었다고! 너한테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다른 남자도 만났어.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 할거라는.. 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근데 이건 아니잖아 현우야. 언니랑 너랑은 그래서는 안되는 거야..너흰..
- 우린 뭐? 뭔데? 말해봐.
- 둘다 상처받을거야..
- 괜찮아.. 받아도 내가 받을 거야 걱정 하지마. 윤리? 도덕? 웃기지들 말라고 그래~ 누가 무슨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 할 껀데? 그 딴 거 관심없으니까.. 오늘 여기는 내가 잘못 온 것 같다.
현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면 안돼? 우리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그 사진 오해라고 말하고 사실은 너와 내가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 다 그 말을 믿을 거야.. 우린 예전처럼 돌아가는 거고 우리 사이는 아무 이상 없을 거야. 현우야..
-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내가 왜 너랑 헤어진지 알아?
- ... ...
-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너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 나는 모든 걸 버 리더라도 누나를 지킬 거야. 먼저 일어날게...
- 후회...할꺼야...분명!
- 잘지내.. 나중엔 웃으면서 보자..
밖으로 나오니 또 부슬부슬 비가 오려는지 달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추천이고파서 여기 올려 봅니다~
음란곰탱 퓨어곰탱(@eroticbear88)
12부
사람은 가끔 하지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어찌하지 못 할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겐 그렇다. 이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계속 나 자신을 타일렀지만 결국엔 나약해 빠진 내 의지가 여기로 나를 이끌고 왔다.
조금전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 때 현지를 발견했어도 난 그냥 내 갈길을 갔어야 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에선지 나는 그들이 있는 곳 지척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현지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내 알량한 배려심 탓인지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을테니 이왕 이히 된거 조용히 하고 있어야만 했다.
- 밤이라 좀 쌀쌀하지?
- 네
그들의 말소리가 또렷하진 않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정도로는 들려왔다. 그들은 산책로 에서 조금 떨어진 정자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꼴사납게 이름모를 덤불 아래 몸을 숨기고 있었다
- 키스 해도돼?
- 그런 걸 물어 보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도 원래는 안 하는데 괜히 했다가 뺨 맞을까 봐..
- 요즘 세상에 키스 한번 했다고 뺨 때리는 여자도 있어요?
-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정말 나랑 사귈 생각은 있는거야?
- 그럼 선배는 사귈 생각도 없이 키스 하자고 한 거예요?
- 그럼 완전히 사귄다는 의미로 받아 들인다.
- 그래요.
- 의외로 시원시원 하네.
- 아닐꺼에요..쿨하진 못해요.
- 아직 누구를 담아두고 있다는 뜻이야?
- 어제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은 아닐 거에요.
- 그럼 됐네.
- 뭐가요?
- 다른 남자를 품고 있으면 내가 들어갈 곳이 없잖아. 나한테도 어느정도 자리를 줘야지..
- 선배는 어떤 사람이에요?
- 나? 난..이런 사람..
현준형이 현지의 입술에 키스했고 현지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제는 정말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현지의 삶이었다. 현지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현지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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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자~짐들 내리고 이따 뒷풀이 있으니까 피곤해도 다들 참가하자~권고사항인데 빠지면!!! 알지? 하하하~
도착하자마자 과대표가 또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피곤해 하는 사람도 있고 더 놀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같이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냥 보내 주어도 좋겠건만...하긴 나도 빨리 갈 수 없는게 누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누나는 나름 의리파라 그런 자리는 미안해서 대체로 끝까지 함께 하는 편이 기도 했다.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는 자리에 계속 앉아 시간을 죽치고 있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 빨리 가자고 몇 차례 성화를 한 후에야 데리러 오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누나 핑계를 대고 양해를 구한 후 가까스로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다. 현지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보니 먼저 갔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차를 운전 할 생각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던 터라 바로 누나를 데리러 갈 수 있었다 . 본인이 해독 할 수 있는 주량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오늘도 누나는 살짝 기분이 좋을만큼 취해있었다.
- 또 마셨어?
- 주는데 어떻게 해
- 박스로 주면 박스 채 마시겠네~
- 그러기야 하겠어~
누나가 내 뺨에 뽀뽀를하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사람들 본다고~
- 보라고 해~ 나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 집에 가는 동안 살짝 눈 좀 붙여..
- 응...
늦은 밤시간이라 그다지 막히지도 않았다. 누나도 완전히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일어났다.
- 으아~우리집이다~
누나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 조용히 좀 해 ~
내가 현관문을 열려고 할때 누나가 내 손을 잡아 끌어 입을 맞추었다. 순간 저쪽 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었다. 깜짝 놀란 내가 누나의 어깨를 밀쳤다.
순간적으로 누군가 우리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 코너 부분으로 돌아가니 다행이 아무도 없어 보였다.
- 너 정말 미쳤어?
다시 집 앞으로 돌아온 내가 누나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 왜? 뭣 때문에..?
나는 누나의 손목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 누군가 우리를 본 것 같았단 말이야.. 그래서 뛰어 갔다 온 거고..
- 누가 우리를 봤어?
- 모르겠어~모르겠다고! 가보니 아무도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친남매인 줄 알고 있어. 혹시 누구라도 본다면 어떤 오해를 할지 누나가 몰라서 그래?
갑작스럽게 화를 내서인지 누나는 잔뜩 움츠러 들어 있었다.
- 미안해..다신..안 그럴께..화..내지마...
그런 누나에게 미안해서 다시 안아 주었다.
- 미안해.. 너한테 화내는게 아니었는데.. 내가 좀 예민해져 있었나봐..나도 정말 네가 내 여자라고 말하고 다니고 싶은데.. 지금은 때가 아니잖아. 조금만 더 기다리자. 부모님에게도 허락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해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잖아.. 설령 그럴 수 없으면 우리가 떠나면 되는 거고.. 난 너만 있으면 어디든 괜찮아 너도 그렇지?
내 품에 안겨있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굳이 여기 일 필요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건 단 한 사람이고, 그런 누나가 나와 함께 한다면 어디라도 상관 없었다.
올라가서 누나를 재우고 세탁물을 세탁기에 몽땅 집어 넣었다. 며칠동안 쌓여 있던 집안 청소를 했지만 기분은 생각만큼 깔끔해지지 않았다. 아까 전에 내가 느낀 건 분명 인기척이 없다 내가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 발자국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많은 걸 숨기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불안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이 단순히 불안함에 기인한 나의 과민반응이었다면 하는 바램이다. 또 따지고 보면 어두운 밤이었고 누군가 보았다고 해도 그 자체로 뭘 어쩔 수 없을 거라는 자기 위안을 한 후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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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일주일 동안 장마처럼 내렸고 대학교는 중간고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평소에도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시험 기간에는 더욱더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공강 시간에 잠시 도서관에 들렀다 나오다 현준이형이랑 걸어가는 현지가 보였다. 잠시 아는 체를 하려고 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굳이 날 못봤는데 따라갈 이유는 없었다.
학교식당에서 준석이를 만나 점심을 먹는데 아까 부터 뒷통수가 따끔거렸다.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 두명이 황급히 고개를 내리고 나랑 눈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
- 야..나 뒤에 뭐 묻었냐?
내가 등을 돌려 보이자 준석이가 아무 이상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 네 뒤에 뭐가 묻어서 보는게 아니라 내가 잘생겨서 쳐다 보는 거야~밥이나 먹어~!
- 놀구있네!
한창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괴롭혀대던 준석이가 어느순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도 사방을 살펴보니 모두 다는 아니지만 우리 쪽으로 쏠려있는 일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 현..우야..밥은 일단 두고 나가자..
- 왜?
- 일단..따라 나와..
나는 영문도 모른체 준석이에게 끌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 얌마~밥먹다 말고 왜?
- 너..이..거 사실이냐?
- 뭐?
- 이거..
준석이가 내민 핸드폰에는 우리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한장의 사진과 짤막한 설명글 이었다.
사진은 일주 전, 우리 집 앞에서 누나와 내가 입을 맞춘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짤막한 글..
" 패륜 "
학생이 아니면 글을 못올리게 되어있는 공간이었지만 외부인도 올릴수 있는 곳에 누군가 사진을 올려 놓았고, 그걸 본 누군가 다시 학내게시판으로 퍼나른 것 같았다.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옆에서 채근하는 준석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먼저 누나를 찾아야 했다.
미친듯이 달려 누나가 있는 단대로 갔다.
1시 수업이란걸 알고 있었기에 누나가 수업을 들어 가기 전에 데리고 나와야 했다. 멀리서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 현우야.. 너~야!
나는 누나의 손목을 잡아채고 재빨리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누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누나를 차에 태워 단숨에 학교를 빠져나왔다.
- 현우야..무슨 일인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 일단 여기서 벗어나면 알려줄게..
무작정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조금 한적한 곳이 나오자 길가에 차를 세웠다.
- 무슨일이야...?
- 사진이...올라왔어..
- 사진..? 무슨...
내가 핸드폰으로 해당 사진을 보여주었다.
- 마..말도 안돼...누가 이런 사진을 여기에..
누나는 놀란 나머지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 모르겠어. 도대체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사진을 올린 건지..모르겠어. 누군가 우리를 지켜 봤고 의도적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긴데..누가 그럴..사람이..있을까..
- ...혹시..혹시말야..
- 어..
- 그 사람 아닐까..민석씨! 엠티가서 일도 있었고 나한테 나쁜 마음까지 품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
- 그렇긴한데..그 사람은 자기 흔적을 남기면서 그런 짓을 하진 않았을 거야.
- 엠티가서도 봤잖아. 자기 신분이 그런데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행동 한 사람이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겠어?
- 그땐 이미 술에 많이 취해서 이성 적으로 행동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거야.
- 우리 주위에 그 사람 말고 따로 의심해 볼 만한 사람이 누가 있어?
- 흠...
잠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우리 어떻게 될까.. 부모님도 머지않아 아시게 될 텐데..
항상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해왔던 누나도 본인의 의지가 아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자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이럴때 일수록 내가 더 냉정하고 침착해져야 했다.
- 걱정하지마. 일단 생각좀 해보자.. 도덕적으로 우리를 비난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우린 아무 문제없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떠날 수 있고 우리끼리 살 수 있어. 그거 말고 더 바라는 거 있어?
- 아니..없어..근데 무섭고 불안해.
누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주목했을 사람들 그리고 나와 누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 오랜 생각을 할 것도 없이 현지와 민석이었다.
누나이 말처럼 가장 의심이 가는 사람은 민석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쉽게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현지가 이런 일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현지는 누구보다 착한아이였다. 나에게 악한 감정이 있을지언정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깎아내리는 이런 행동을 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원하는게 뭐길래 우리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뭔가 명확한 구석이 없었다. 부모님이 아시기 전에 먼저 해결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똑똑"
- 어 들어와..
- 안잤어?
- 응 아직..
- 신영이한테 톡이 왔는데.. 이거 너한테 보내 줄게.
- 뭔데?
누나에게서 받은 건 민석이 지난번 엠티때 행패 부린 영상이었다. 다른 학생 한명이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봐 이걸 휴대폰으로 촬영해 놓았다고 했다. 그걸 신영이 누나가 받아서 보내 준 거였다.
- 신영이는 알고 있었어. 며칠 전에 내가 이야기 했거든. 우리 둘이 성이 다르잖아. 신영이도 그래서 이혼하고 같이 살면 가끔 성이 다른 애들도 있으니까 그 정도로만 생각했대. 이해한다고.. 모두가 이해할 순 없겠지만 자기는 이해한다고..그랬어..고맙지?
- 그러네.. 내일 가서 이 사람 만나 볼 거야. 어쨌든 한번은 만나야 할 거야. 저번에도 그랬고 이번 일이랑도 관련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무리 하고 올게. 걱정하지말고 가서 자자.
- 같이 자면 안돼?
- 왜 안돼~ 가자 재워 줄게.
###
번화가에 있는 커피숍에서 약속을 잡았다. 그냥 한번 보자고 전화를 했는데 그는 순순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내가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5분 쯤 시간이 흘러 그가 도착했다. 그때와는 다른 멀끔한 모습이었다.
- 안녕하세요.
- 네. 우선 앉아요.
커피 한잔씩을 가운데 두고 둘다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평행선을 달리던 침묵을 먼저 깬 건 상태편이었다.
- 학교에서 들리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 네.
- 공교롭게도 어제 같은 사건이 있고, 나한테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일까 생각하다가 직업이 이러다 보니까 나름 결론을 내리고 왔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아닙니다.
- 정확하게 추측하셨으니까 저도 사전 설명은 생략 할게요. 제가 의심해 볼 사람이 현재로서는 그 쪽 밖에 없었습니다. 증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현재는 제가 할 수 있는게 이거 밖에 없어요.
- 그날 제가 실수 했던 거 인정 합니다. 그 날은 술에 많이 취해있었고 감정 조절을 못했어요. 원래 술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저는 사실 정아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이해 할 수 없었고 화도 나서 그랬던 것뿐입니다. 절대로 그 이외에 다른 악의를 가지고 있는 건 없어요.
- 이런 말씀 웃기지만.. 그날 그 시간에 어디에 계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 저희 집에 있었습니다. 원하신다면 관리사무소에게 이야기 해서 증거를 보여 드릴 수도 있구요.
그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고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가 아니라면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 밖에 없었는데...곤란했다.
차라리 이 사람이 그랬다면 문제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일은 점점 복잡하게 꼬여 갈 것이 분명했다. 현명하게 생각해야 했다.
- 믿을게요.. 근데 한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 말씀하세요.
- 저희 골목에 cctv가 한데 있어요.
- 그런..데요..
- 알아보니까 따로 범죄 수사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제가 그걸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더라구요.
- ...
- 앞으로 큰 일 하실 분이고 능력 있으시 잖아요. 부탁드립니다.
- 내가 아닌 걸로 해명이 될 줄 알았는데 내가 왜 이런 부탁을 들어줘야 하죠.
나는 말없이 핸드폰을 열어 신영이 누나가 보내준 동영상을 틀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굳어 가고 있었다.
- 설명은 필요없죠? 사람을 잘 보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이걸 어디가서 퍼트리거나 잡음 생기는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 드려요. 한번만 도와주세요.
- 도와 달라는 부탁이 고압적으로 들리네요. 생각보다 영리한 친구 였군요. 빠르면 오늘 저녁이나 내일까지 연락 드릴께요. 아시겠지만 저같은 사람은 안팎으로 잡음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커리어에 있어서도 그렇고.. 당연히 주의하셔야겠죠?
- 물론입니다.
- 일어서기 전에 한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 네.
-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까요? 부모님 밑에서 같이 자란 남매가 어느날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딱 좋은 소재 아닌가요? 더군다나 정아씨는 방송에도 얼굴을 몇 번 비춘적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당신이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 선택은 저희 둘이 했고 그에 따른 책임도 같이 질 겁니다. 다른 사람들 눈 의식하면서 살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예요. 걱정 고맙습니다. 먼저 일어나시죠?
- 그럼.
그냥 살짝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마치 앞일을 예견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듯..
집으로 돌아오니 누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 가봤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을 테니 가지 말라고 내가 일러두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거실로 들어서자 누나는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 뭐래? 그 사람이 자기가 그랬대? 그런 거 맞대?
- 아닌 거 같아.
- 왜 잡아때? 그 사람이 아니면 누구야? 그럴 사람이 없잖아.
- 누나.. 그 사람은 알리바이가 있는 거 같아. 그래서 그 사람한테 우리 동네 cctv자료를 좀 알아 봐 달라고 부탁만 했어..
- 그 사람은 자기가 범인이 아닌데 그런 걸 해 줄리가 없잖아.
나는 지난 밤 받은 동영상으로 그 사람에게 조건을 내걸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네가 그렇게 말했다고? 세상에...너 그거 어떻게 보면 협박인 거 알아?
- 알아도 별 수 있나.. 내가 가진 카드가 그거 밖에 없는데..
- 네 부탁을 들어줄 것 같애?
- 들어줄 거야. 그 사람한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까..선배몇명 찾으면 해결될 일이겠지..
- 그건 그렇다치고 민석씨가 아니면 누굴까..
- 모르겠어 내일까지 기다려 보자. 그 때까지는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저녁을 먹고 9시쯤 전화가 울렸고 그 남자 일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핸드폰 액정에는 현지의 이름이 비춰지고 있었다.
- 어..현지야
- 여기 너네 동네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커피숍이야 잠깐 나올래?
- 어.. 잠깐만 기다려 5분 안에 갈게.
학교 안에 말들이 퍼져서 당연히 현지의 귀에도 들어갔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것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봐야 했다.
구석 자리 앉아 어색하게 나를 보며 인사하는 현지가 눈에 보였다.
- 왔어..?
- 어..가깝잖아.
- 차는 내가 시켰어 괜찮지?
- 그럼
- 잘 지냈어?
- 응
현지가 왠지 말을 돌리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 궁금한 거 있으면 그냥 물어 봐도 돼 괜찮으니까..
- 저기.. 학교에서 들리는 말들 그리고 그 사진.. 아니지? 너랑 정아언니랑... 설마 그런 거 아니지? 사진이 이상한 각도에서 찍히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거잖아.
현지가 이 모든 일을 벌여놓고 이런 식의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만큼 영악한 아이도 아니고 계산적 이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 믿음이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현진 아니어야 했고 아니길 바랬다. 그래서 섣불리 현지를 의심하는 투로 물어볼 수도 없었다.
- 미안해..
- 너가.. 좋아 한다고 했던 여자가 정아 언니였어? 그런 거야? 그럼 정아 언니 때문에 날..
- 이제 다 지난 일이잖아...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누나를 많이 따르고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누나잖아. 성씨가 다르다고 그게 달라지는 거니? 정아언니도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동생인 너한테 그럴 수가 있어? 니가 그렇다고 해도 언니가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현지는 화난 표정이었다.
- 그만해. 현지야..
- 그래 우린 끝났고 내가 이런 말 할 필요도 없는 거 알아. 그래도 난..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젠가는.. 내가 기다리면..
- 너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네 옆자리에 허수아비 아무나 하나 세워 놓고 그 사람한테 상처 주면서.. 너도 상처 받고 그렇게 살고싶어?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 상관없어! 아무 상관 없었다고! 너한테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다른 남자도 만났어.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 할거라는.. 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근데 이건 아니잖아 현우야. 언니랑 너랑은 그래서는 안되는 거야..너흰..
- 우린 뭐? 뭔데? 말해봐.
- 둘다 상처받을거야..
- 괜찮아.. 받아도 내가 받을 거야 걱정 하지마. 윤리? 도덕? 웃기지들 말라고 그래~ 누가 무슨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 할 껀데? 그 딴 거 관심없으니까.. 오늘 여기는 내가 잘못 온 것 같다.
현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면 안돼? 우리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그 사진 오해라고 말하고 사실은 너와 내가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 다 그 말을 믿을 거야.. 우린 예전처럼 돌아가는 거고 우리 사이는 아무 이상 없을 거야. 현우야..
-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내가 왜 너랑 헤어진지 알아?
- ... ...
-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너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 나는 모든 걸 버 리더라도 누나를 지킬 거야. 먼저 일어날게...
- 후회...할꺼야...분명!
- 잘지내.. 나중엔 웃으면서 보자..
밖으로 나오니 또 부슬부슬 비가 오려는지 달이 보이지 않았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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