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최 달구 일행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비로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서로 등을 돌려 팔에 묶인 밧줄을 풀었다. 진우가 사라진 별장 안은 난장판이 된 바닥과 가구가 나뒹굴어 있었다.
최 달구는 급히 권 회장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구는 예전에 밀수품 사건에 보았던 오 덕재를 알고 있었다. 오 덕재 일행에 의해 진우와 지아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권 회장은 대뜸 흥분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뭐라고~!? 이런 병신같은 새끼들. 뭐하고 있었던거야!? 애들 모두 동원해서 반듯이 찾아!”
“네, 네........!”
울화가 치민 권 회장은 전화기를 팽개쳤다. 그리고 분노를 참지 못해서 책상위에 물건들을 마구 집어 던졌다. 비서실 직원들이 뛰어 들어와서 노기등등한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슬며시 문을 닫고 나갔다. 책상 주위를 맴돌던 그는 바닥에 떨어진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아내가 납치되었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려는 것이었다.
다이얼을 누르려던 그는 잠시 생각했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언론에 드러날 것이다. 결국은 누워서 침 밷기이고 권 회장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마련이었다. 또한 아내와 진우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결과이기에 기분이 안좋았다. 방심했던 자신을 원망하는 권 회장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찾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호텔 베란다 창문으로 드넓은 푸른 바다가 드러나 보인다. 갈매기가 선회하는 바닷가에는 출렁이는 파도가 밀려 왔다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 나갔다. 진우는 군산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프린즈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지아와 함께 인천 별장에서 나온 그는 권 회장의 추적을 피해 바로 군산으로 내려왔다.
붉은 태양이 걸린 바다 수평선에는 짙은 노을이 깃들어 있었다. 진우는 악몽보다 더한 정신적인 고통과 번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우선 치료를 받기위해 병원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지아를 진료한 의사의 예상치 않은 진단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의사는 그녀가 임신한 상태에서 충격을 받았으니 주의하라는 권유를 했다.
모든 상황을 보더라도 진우는 지아의 몸속에 잉태한 생명이 자신의 아기라는 것을 부정할수 없었다. 특히 그는 지아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권 회장의 말을 들었기에 더욱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베란다 창문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지만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사실이 아닐거야! 그럴리 없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한숨을 내쉰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 믿고 싶지 않은 고통은 그를 좌절감에 빠트리고 있었다. 아닐거야! 놈이 의도적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려는 거짓말이야! 혼잣말로 부정하지만 권 회장의 말과 악몽속의 영상이 편집되어 떠올랐다.
“오빠~!”
번민에 사로잡혔던 진우는 흠칫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지아가 그의 등뒤에 다가와 있었다. 잠옷차림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리는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그는 그녀가 두려웠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웠다. 같은 핏줄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그녀가 두려웠다.
“잘 잤어......!? 몸은......괜찮고?”
“응~! 오빠가 있어서 마음 편해.”
진우는 작은 경련을 일으키며 지아에게서 떨어져 섰다. 갑자기 그녀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감정에서였다. 같은 침대에 누어서도 그는 그녀의 몸이 잇닿을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서 눈을 떴었다. 그런데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그녀는 오히려 의사의 잔단을 받고 기뻐했었다. 굳어진 그의 표정을 빤히 바라본 그녀가 하얗게 눈을 흘겼다.
“왜, 그래!? 나, 안아줘.”
“그, 그래........!”
진우는 마지못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아를 껴안았다. 아! 사랑스러운 여인! 그러나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체취마저 두려웠다. 갑자기 숨을 쉴수가 없었다. 권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안고 있는 여인은 사랑할수 없는 여동생이었다. 신을 원망하고 싶은 그의 심정이었다. 있을 수 없는 운명! 소름이 돋은 그는 슬며시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저녁식사하러 가야지......!?”
거실로 들어서는 진우는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옷을 걸치는 동안 그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거울속에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을 외면하고 현관문 앞으로 다가섰다. 팔짱을 끼는 그녀의 손길에도 그는 흠칫했다. 그러나 별장에서 당한 상처로 괴로워하던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아 있었다.
“나, 그냥 여기서 조용히 살고 싶다.”
“........”
“오빠는......?”
“........”
“피 잇~! 왜 말이 없어.......!?”
“.........”
“어디 아픈 거야? 난 괜찮은데........”
레스토랑으로 가는동안 지아는 여행하는 소녀처럼 밝은 표정으로 종알거렸다.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진우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고통이 권 회장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그는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 두려움을 되돌려 주고 싶은 충동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삼일후, 진우는 아버지의 별장이 있던 인천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권 회장의 말을 부정하고 싶은 그는 어린시절에 잠시 있었던 고아원의 흔적을 수소문하는 중이었다. 권 회장의 말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다.
시간은 그를 답답하고 조급하게 만들었다. 진우는 지난 시간들을 더듬으며 동사무소와 마을주민을 만나 확인한 결과 천주교에서 당시 고아원을 운영하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당시 고아원을 제물포에 있는 성당 보육원에서 인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일을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 고아원 관리인으로 있던 홍씨가 살고 있다는 주소를 알아냈기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
진우는 낮으막한 야산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승용차를 몰고 갔다. 예전 같으면 숲지역이었다. 홍씨가 살고 있는 마을로 가는 주변은 개발이 되어 주택가가 들어서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소로로 승용차를 몰고 올라간 진우는 허름한 집 몇채가 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승용차에서 내린 그는 스래트 지붕의 마루에 걸터 앉아 있는 여자 노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누구시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누구를 찾는데요?”
“오래전에 읍네에 있던 천사의집 보육원 아시나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알지유.”
“거기서 일하시던 홍 승기씨가 이 마을에 살고 계신다고 하던데요.”
“아~! 형구 애비 찾아 오셨나보네.”
여자노인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우의 아래위를 살펴봤다. 그때 안방의 쪽문이 열리며 백발의 남자노인이 밖을 내다봤다.
“누구,,,,,! 오신겨?”
“아뇨! 형구 애비 찾아왔나봐요. 바람이 차니 문 닫아요.”
방문을 열고 내다보던 남자노인이 아내의 말을 듣고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안에서 가래끊는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어린시절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시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
“어디 사시는데요?”
“저 언덕빼기, 은행나무 있는 집이유. 누구신지 모르지만, 그 양반 시력이 안좋아서 알아보려는지 모르겠네.”
“감사합니다.”
진우는 꾸벅 인사를 하고 한걸음에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황토 흙벽이 군데군데 갈라진 초라한 집이었다. 앞 마당에 있던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었다. 두리번거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아무도 안 계세요?”
“..........”
“누구 계세요?”
“누구요!?”
엉성한 부엌문이 열리고 꾸부정한 여자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군불을 지피고 있었는지 연기가 흘러 나왔다. 진우가 다가서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홍 승기 어르신, 여기 사시나요?”
“그런데, 뉘시오?”
“아! 제가 어린 시절에 저의 아버님이 저 앞산에 있는 별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애구~! 오래전 일인디. 벌써 불타버리고......! 그럼 그 송 사장 자제분이유?”
“네. 기억하시는지 모르지만, 제가 재민입니다.
“어이구~! 그 어린도련님이 살아 있었단 말이유!?”
“네. 기억하고 계시네요.”
“이 마을의 늙은이들은 모두 송 사장을 기억하지.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심성이 좋은 분이라서.”
“홍 승기 어르신 계시나요?”
“애구 딱해라. 들어가슈. 알아보려는지 모르겠네.”
꾸부정한 허리로 여자노인이 손을 내저으면서 마루로 올라섰다. 진우는 노인을 뒤따라 안방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 냄새로 가득했고,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남자 노인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여자노인이 남편 앞에 가서 앉았다.
“여봐요! 그 옛날 송 사장 자제분이 찾아왔어요.”
“누구라고.......!?”
누워있던 노인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껌벅이는 눈빛으로 진우를 올려다봤다. 여자노인이 혀를 찼다.
“이 양반이 귀가 잘 안들리고, 시력도 안좋아서....... 아~! 왜! 저 앞동네 별장을 갖고 있던 송 사장 말예요. 그 자제분이 왔다고요.”
“송 사장.......!?”
진우는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래전 일이라서, 못 알아보겠구만........”
“그러실거예요. 어렸으니까요.”
“어떻게 됐나, 궁금했었지........”
오래되어 퇴색한 벽지, 낡은 이불, 얼마 안되는 살림이 구차하게 보였지만 노인들은 인정이 넘치고 순박해 보였다. 어둠침침한 벽에 걸린 십자가상이 유난히 시야에 들어왔다. 한숨을 내쉰 진우가 넌즛이 물었다.
“혹시, 저하고 같이 보육원에 있던 제 여동생을 기억하세요?”
“글쎄나,.....!? 무척 귀여웠다는 것은 기억하지”
“그럼, 제 여동생이 어떻게 됐는지도 아시겠네요.”
“여러 아이들이 있어서, 사실은 잘 몰라. 나중에 들었는데, 젊은 부부가 입양해서 데려갔다던데......”
“입양된 것은 사실인가요?”
“그랬으니, 보육원을 떠났지.......”
노인의 말에 진우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 회장의 말을 부정하려던 한가닥 희망이 사라졌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는 절망속에 일어섰다. 돌아서려던 그는 다시 다그쳐 물었다.
“누가 입양했는지 알 수 없나요?”
“글쎄! 난 사무적인 일은 몰라. 혹시 그때 계시던 베로니카 수녀님은 알지도 모르지.”
“혹시, 그 수녀님이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내가 알수 있나! 지금은 나이도 많으시니, 살아 계신지도 모르겠고.”
“........!?”
실망스러운 진우이지만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두서없는 질문을 하던 진우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노인의 집을 나왔다.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인간의 정은 잡초처럼 남아있지만 과거의 모습들은 흔적이 없었다.
야산을 내려와 승용차에 오른 진우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을 즐기고 있을 권 종호를 떠올렸다. 진우는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리고 소로를 벗어난 그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입술을 굳게 다문 그의 승용차가 인천 해안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권 회장은 퇴근하는 자가용 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진우의 행방조차 알수 없기에 무척 조바심이 났다. 답답한 마음을 누구와 의논할수도 없었다. 그는 문득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형이 떠올랐다. 그동안 찾아보지도 못했지만 그에게는 유일한 피붙이였다. 지금까지 신화를 그룹으로 성장시켰을뿐만아니라 그의 인생을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했다.
턱을 받치고 생각하던 권 회장은 아무래도 형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지아와 결혼을 반대했던 형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의식이 없는 형이지만 그동안 변하고 있는 회사의 운영상태를 알려야할 것 같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아내와의 관계를 하소연이라도 해야할 것만 같았다. 불쑥 그는 운전을 하고 있는 김 기사에게 물었다.
“김 기사! 인천으로 가자~!”
“네......!? 인천요?”
“형님에게.......!”
“요즘, 상태가 안 좋으셔서 삼성병원에 계신데요.”
“그런가! 그럼 병원으로 가지.”
집으로 향하던 김 기사가 교차로에서 강남 방향으로 승용차를 돌렸다. 권 회장은 문득 형에게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월동 삼성병원에 도착한 권 회장은 승용차 안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렸다. 권 태호는 중환자 실에 입원하고 있었다. 마침 병실에는 도희가 와서 있었다. 권 종호가 방문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도희가 당황하며 일어섰다.
병실안에는 산소호홉기를 착용하고 있는 권 태호가 침상에 누워 있었고 심박지수를 알리는 규칙적인 기계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외면하고 있는 도희를 힐끔 쳐다본 권 종호는 침상 앞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초췌한 몰골로 누워있는 권 태호의 모습! 천장을 향한 동공이 석고상 같았다. 종호는 새삼스럽게 형에게 미안함과 애틋함을 느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끔찍이도 자신을 보살피던 형이었다. 그는 슬며시 형의 손을 잡았다.
“형님! 자주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
종호를 비난하고 때로는 격하게 다그쳤던 형이었다. 그때마다 종호는 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을 할 사람은 형뿐이었다. 호홉기를 통해 가늘게 들려오던 권 태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종호는 의식이 없는 형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만 같았다. 그는 힐끗 도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요즘, 어때?”
“.......이따금 의식이 돌아오는 것 같기도........”
도희의 말을 들은 권 종호는 허리를 굽혀 형의 표정을 살폈다. 권 태호의 감겨있던 눈동자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가늘고 힘겹게 들리는 권 태호의 호흡소리! 권 종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형의 손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내 말 알아듣는거야.......!?”
“..........”
“형~! 미안해. 형 말을 들을 걸.”
“.........”
종호는 형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푸념을 했다. 주위사람들에게는 남자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지키고 있지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종호였다. 회사 운영은 그의 계획을 벗어나 꼬여만가고 더욱이나 아내문제는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지아, 그년 버릴 생각이야. 전혀 나하고 살 생각도 없는거 같고......”
“...........”
“그년이 나를 배반했어.”
“...........”
“ 진우! 그 개같은 놈하고 도망쳤어.”
“.........”
푸념을 하는 종호는 길게 한숨을 흘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아내를 떠울릴수록 분통이 터질릴 것같은 종호는 붙잡고 있는 형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핏줄만이 돋아난 앙상한 궍태호의 손등. 그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인지. 태호의 손이 꿈틀거렸다. 종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그 년을 죽인다고해도, 형은 내 마음 이해하지.......!?”
“.........”
조용한 병실에 종호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흘렀다.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이 날카로운 그의 눈빛! 침묵이 흘렀다. 그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인가. 태호의 동공이 흔들렸다.
권 종호의 말을 듣고 있던 도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진우에 대한 애착심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어쩔수 없이 진우와의 관계를 강제로 당한 것이라고 종호에게 변명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득 진우가 지아에 대해서 세심하게 질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어쩌면 진우가 처음부터 사랑하는 여자가 지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형님! 내 말 알아듣는거야.......!?”
권 종호는 형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되물었다. 어쩌면 자신의 심정을 형에게서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을 내려다보던 종호가 의아스러운 눈빛을 하였다. 태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
종호는 형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태호가 동생의 손을 뿌리치려는 듯이 힘을 주었다. 그리고 눈동자를 크게 뜬 그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동생의 말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아니 멈추어 있는 그의 동공이 동생을 향했다.
“형.........!?”
순간 종호는 멈칫했다. 자신을 원망하는 형의 눈빛이었다. 태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가 숨을 몰아쉬고 갑자기 심박지수가 높아지는 기계음이 들렸다. 병실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혀, 형.....!?”
“회, 회장님.......”
당황하던 도희가 급히 간호실로 향한 응급호출벨을 눌렀다. 간호사가 병실로 뛰어들어오고 이어서 담담의사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권 태호의 건강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정 간호사! 에피네피린.......”
담당의사의 지시를 받고 병실을 나갔던 간호사가 주사기와 약품이 담긴 카트기를 밀고 들어왔다. 모두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담당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급조치를 마친 담당 의사가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을 받아서 그런데, 괜찮으실 겁니다. 환자가 충격받을 말이나 행동은 삼가하십시오. 안정을 취해야하니까요.”
“.........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은 의사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병실 문틈으로 병실안을 엿보고 있는 눈동자가 있었다. 최 종호의 일거일동을 살피기로 결심한 서 진우의 눈빛이었다. 의사가 병실을 나서려고 돌아서는 순간 방문틈에 드러났던 진우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마감하듯이 며칠사이에 산과 들의 따뜻한 양지 쪽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봄이 완연한 강원도의 야산 산등성이를 오르는 길목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그동안 여러번 응급상황을 넘겼던 최 태호는 기어코 영영 눈을 감고 말았다.
경제부흥과 민주화의 격동시절을 보낸 권 태식 회장의 장례식!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에대한 평가가 호불호로 갈렸지만 어쨌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정계와 재계의 많은 인사들이 참여했다. 무덤을 둘러써고 있는 사람들 뒤편에 모자를 눌러쓴 사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는 진우였다. 검은 정장과 상복을 걸친 사람들을 살피던 그는 사람들 틈으로 다가섰다. 모두들 권씨일가를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를 의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뒤편에서 들리는 소근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인내 둘이서 수근거렸다.
“손꼽히는 재벌이지만, 죽음은 못 막는거로군.”
“살아있는 걸 장담하는 사람이 없잖아.”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여자들과 루머도 많고, 나이어린 부인을 후처로 대리고 살더니........”
“자식도 없었다는데, 지금 회장과 여자만 좋게 됐지.”
“한동안 괜찮다고 하더니.......”
“글세.......!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왜......!?”
“병 때문만이 아니라고도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야........!?”
“사인을 의아스럽게 생각한데........”
“뭐가.......!?”
“뇌와 간이 갑작스럽게 손상되어 심장 쇼크를 받아 사망했다는 말이 있던데.......”
“합병증 인게지........”
“어차피 회복할수 없었지만, 담당의사도 석연치 않게 생각한다는데!”
진우는 여인들의 소근거리는 목소리를 유심히 들으며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는 언젠가 도희와 함께 권 태호 회장의 정기검진을 받기위해 병원에 갔던 날을 떠올렸다. 검진후 담당 의사가 도희에게 하던 말이었다.
“회장님이 감기 증세가 있어서 평소 조제해드리던 약에 아스피린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첨가했습니다. 심장마비 예방에는 좋지만, 지금 회장님께서 혈압조절이 안되서 절대로 과다복용시키지 마시고 이상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그런데, 꼭 복용을 시켜드려야 하나요?”
“혈관 질환에 도움되니 염려하지 마시고, 다만 뇌와 간이 손상되는 레이증후군이 일어날 수도 있고 심장에 쇼크를 받을 수도 있기에 주의를 드리는 것입니다. 복용방법만 지키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진우는 도희가 감기증세가 심하다면서 아스피린을 구입해 달라고 여러번 부탁하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렇다면 권 태호 전 회장이 병이 악화되어 사망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원인은 도희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진우는 생각했다. 장지에서 추모식이 마무리되어가고 조문객들이 권 종호 회장에게 애석한 마음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덤가를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진우는 상복을 걸친 도희를 눈여겨 쳐다봤다. 망설이던 진우가 눈치를 살피며 도희의 뒤편으로 다가섰다. 도희는 그 동안 원망스럽고 저주스럽던 남편이 막상 사망하니 허전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동안 붙잡고 있던 줄을 놓아 버린 심정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원하지 않는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도희는 권씨 일기에 들어와서 젊음의 꿈을 빼앗긴 원한을 값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그런데 남편이 죽음으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단지 새롭게 의식하는 여자라는 본능과 욕망의 불꽃만이 그녀의 의식을 살리게 할 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두려운 그녀는 소리없는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서다가 흠칫하였다.
“.........!?”
“.........”
도희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깊숙이 눌러쓴 모지 밑의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자를 보고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비록 살기위해 부정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가슴에 남아있는 진우였다. 남자의 눈빛에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벅찬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녀는 어떤 표정도 들어낼수 없었다. 다만 당황한 그녀는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진우씨.......!?”
“..........”
“마음 편해?”
“피곤 해 요! 어디.....! 있었어요.......”
진우는 자신을 부정하던 도희의 모습을 떠올렸다. 권 종호에게 강제로 당했다고 말하던 도희의 냉랭한 표정! 지아의 순수함에 비해 도희에게는 야망이 들어나 보였다.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가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그것은 조용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또렷이 전달하려는 목소리였다.
“심장 쇼크로 사망한거지!?”
“사망 원인.......!?”
“담당 의사가 말했었지."
"...........!?"
"혈압조절이 안되는 환자에게 이스피린을 과다 복용시키지 말라고........”
“.........”
도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단지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두사람은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진우가 돌아섰다. 도희는 그를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등선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가슴에 안겼던 감정들을 떠올린 것이다. 그녀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다.
권 태호의 장지에 다녀온 진우는 지아가 있는 군산으로 내려가려고 고속도로를 향해 승용차를 몰고 있었다. 그러나 지아를 생각할수록 권 회장의 비웃는 표정이 떠올랐다. 지아를 마주한 다는 것이 두려웠다. 정말 그녀가 잃어버렸던 여동생일가!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그는 사실로 받아 드릴 수 없는 권 회장의 말을 어떻게든지 확인하고 싶었다.----------------------------
최 달구는 급히 권 회장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구는 예전에 밀수품 사건에 보았던 오 덕재를 알고 있었다. 오 덕재 일행에 의해 진우와 지아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권 회장은 대뜸 흥분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뭐라고~!? 이런 병신같은 새끼들. 뭐하고 있었던거야!? 애들 모두 동원해서 반듯이 찾아!”
“네, 네........!”
울화가 치민 권 회장은 전화기를 팽개쳤다. 그리고 분노를 참지 못해서 책상위에 물건들을 마구 집어 던졌다. 비서실 직원들이 뛰어 들어와서 노기등등한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슬며시 문을 닫고 나갔다. 책상 주위를 맴돌던 그는 바닥에 떨어진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아내가 납치되었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려는 것이었다.
다이얼을 누르려던 그는 잠시 생각했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언론에 드러날 것이다. 결국은 누워서 침 밷기이고 권 회장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마련이었다. 또한 아내와 진우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결과이기에 기분이 안좋았다. 방심했던 자신을 원망하는 권 회장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찾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호텔 베란다 창문으로 드넓은 푸른 바다가 드러나 보인다. 갈매기가 선회하는 바닷가에는 출렁이는 파도가 밀려 왔다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 나갔다. 진우는 군산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프린즈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지아와 함께 인천 별장에서 나온 그는 권 회장의 추적을 피해 바로 군산으로 내려왔다.
붉은 태양이 걸린 바다 수평선에는 짙은 노을이 깃들어 있었다. 진우는 악몽보다 더한 정신적인 고통과 번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우선 치료를 받기위해 병원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지아를 진료한 의사의 예상치 않은 진단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의사는 그녀가 임신한 상태에서 충격을 받았으니 주의하라는 권유를 했다.
모든 상황을 보더라도 진우는 지아의 몸속에 잉태한 생명이 자신의 아기라는 것을 부정할수 없었다. 특히 그는 지아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권 회장의 말을 들었기에 더욱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베란다 창문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지만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사실이 아닐거야! 그럴리 없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한숨을 내쉰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 믿고 싶지 않은 고통은 그를 좌절감에 빠트리고 있었다. 아닐거야! 놈이 의도적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려는 거짓말이야! 혼잣말로 부정하지만 권 회장의 말과 악몽속의 영상이 편집되어 떠올랐다.
“오빠~!”
번민에 사로잡혔던 진우는 흠칫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지아가 그의 등뒤에 다가와 있었다. 잠옷차림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리는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그는 그녀가 두려웠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웠다. 같은 핏줄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그녀가 두려웠다.
“잘 잤어......!? 몸은......괜찮고?”
“응~! 오빠가 있어서 마음 편해.”
진우는 작은 경련을 일으키며 지아에게서 떨어져 섰다. 갑자기 그녀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감정에서였다. 같은 침대에 누어서도 그는 그녀의 몸이 잇닿을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서 눈을 떴었다. 그런데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그녀는 오히려 의사의 잔단을 받고 기뻐했었다. 굳어진 그의 표정을 빤히 바라본 그녀가 하얗게 눈을 흘겼다.
“왜, 그래!? 나, 안아줘.”
“그, 그래........!”
진우는 마지못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아를 껴안았다. 아! 사랑스러운 여인! 그러나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체취마저 두려웠다. 갑자기 숨을 쉴수가 없었다. 권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안고 있는 여인은 사랑할수 없는 여동생이었다. 신을 원망하고 싶은 그의 심정이었다. 있을 수 없는 운명! 소름이 돋은 그는 슬며시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저녁식사하러 가야지......!?”
거실로 들어서는 진우는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옷을 걸치는 동안 그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거울속에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을 외면하고 현관문 앞으로 다가섰다. 팔짱을 끼는 그녀의 손길에도 그는 흠칫했다. 그러나 별장에서 당한 상처로 괴로워하던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아 있었다.
“나, 그냥 여기서 조용히 살고 싶다.”
“........”
“오빠는......?”
“........”
“피 잇~! 왜 말이 없어.......!?”
“.........”
“어디 아픈 거야? 난 괜찮은데........”
레스토랑으로 가는동안 지아는 여행하는 소녀처럼 밝은 표정으로 종알거렸다.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진우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고통이 권 회장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그는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 두려움을 되돌려 주고 싶은 충동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삼일후, 진우는 아버지의 별장이 있던 인천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권 회장의 말을 부정하고 싶은 그는 어린시절에 잠시 있었던 고아원의 흔적을 수소문하는 중이었다. 권 회장의 말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다.
시간은 그를 답답하고 조급하게 만들었다. 진우는 지난 시간들을 더듬으며 동사무소와 마을주민을 만나 확인한 결과 천주교에서 당시 고아원을 운영하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당시 고아원을 제물포에 있는 성당 보육원에서 인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일을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 고아원 관리인으로 있던 홍씨가 살고 있다는 주소를 알아냈기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
진우는 낮으막한 야산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승용차를 몰고 갔다. 예전 같으면 숲지역이었다. 홍씨가 살고 있는 마을로 가는 주변은 개발이 되어 주택가가 들어서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소로로 승용차를 몰고 올라간 진우는 허름한 집 몇채가 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승용차에서 내린 그는 스래트 지붕의 마루에 걸터 앉아 있는 여자 노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누구시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누구를 찾는데요?”
“오래전에 읍네에 있던 천사의집 보육원 아시나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알지유.”
“거기서 일하시던 홍 승기씨가 이 마을에 살고 계신다고 하던데요.”
“아~! 형구 애비 찾아 오셨나보네.”
여자노인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우의 아래위를 살펴봤다. 그때 안방의 쪽문이 열리며 백발의 남자노인이 밖을 내다봤다.
“누구,,,,,! 오신겨?”
“아뇨! 형구 애비 찾아왔나봐요. 바람이 차니 문 닫아요.”
방문을 열고 내다보던 남자노인이 아내의 말을 듣고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안에서 가래끊는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어린시절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시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
“어디 사시는데요?”
“저 언덕빼기, 은행나무 있는 집이유. 누구신지 모르지만, 그 양반 시력이 안좋아서 알아보려는지 모르겠네.”
“감사합니다.”
진우는 꾸벅 인사를 하고 한걸음에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황토 흙벽이 군데군데 갈라진 초라한 집이었다. 앞 마당에 있던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었다. 두리번거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아무도 안 계세요?”
“..........”
“누구 계세요?”
“누구요!?”
엉성한 부엌문이 열리고 꾸부정한 여자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군불을 지피고 있었는지 연기가 흘러 나왔다. 진우가 다가서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홍 승기 어르신, 여기 사시나요?”
“그런데, 뉘시오?”
“아! 제가 어린 시절에 저의 아버님이 저 앞산에 있는 별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애구~! 오래전 일인디. 벌써 불타버리고......! 그럼 그 송 사장 자제분이유?”
“네. 기억하시는지 모르지만, 제가 재민입니다.
“어이구~! 그 어린도련님이 살아 있었단 말이유!?”
“네. 기억하고 계시네요.”
“이 마을의 늙은이들은 모두 송 사장을 기억하지.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심성이 좋은 분이라서.”
“홍 승기 어르신 계시나요?”
“애구 딱해라. 들어가슈. 알아보려는지 모르겠네.”
꾸부정한 허리로 여자노인이 손을 내저으면서 마루로 올라섰다. 진우는 노인을 뒤따라 안방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 냄새로 가득했고,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남자 노인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여자노인이 남편 앞에 가서 앉았다.
“여봐요! 그 옛날 송 사장 자제분이 찾아왔어요.”
“누구라고.......!?”
누워있던 노인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껌벅이는 눈빛으로 진우를 올려다봤다. 여자노인이 혀를 찼다.
“이 양반이 귀가 잘 안들리고, 시력도 안좋아서....... 아~! 왜! 저 앞동네 별장을 갖고 있던 송 사장 말예요. 그 자제분이 왔다고요.”
“송 사장.......!?”
진우는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래전 일이라서, 못 알아보겠구만........”
“그러실거예요. 어렸으니까요.”
“어떻게 됐나, 궁금했었지........”
오래되어 퇴색한 벽지, 낡은 이불, 얼마 안되는 살림이 구차하게 보였지만 노인들은 인정이 넘치고 순박해 보였다. 어둠침침한 벽에 걸린 십자가상이 유난히 시야에 들어왔다. 한숨을 내쉰 진우가 넌즛이 물었다.
“혹시, 저하고 같이 보육원에 있던 제 여동생을 기억하세요?”
“글쎄나,.....!? 무척 귀여웠다는 것은 기억하지”
“그럼, 제 여동생이 어떻게 됐는지도 아시겠네요.”
“여러 아이들이 있어서, 사실은 잘 몰라. 나중에 들었는데, 젊은 부부가 입양해서 데려갔다던데......”
“입양된 것은 사실인가요?”
“그랬으니, 보육원을 떠났지.......”
노인의 말에 진우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 회장의 말을 부정하려던 한가닥 희망이 사라졌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는 절망속에 일어섰다. 돌아서려던 그는 다시 다그쳐 물었다.
“누가 입양했는지 알 수 없나요?”
“글쎄! 난 사무적인 일은 몰라. 혹시 그때 계시던 베로니카 수녀님은 알지도 모르지.”
“혹시, 그 수녀님이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내가 알수 있나! 지금은 나이도 많으시니, 살아 계신지도 모르겠고.”
“........!?”
실망스러운 진우이지만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두서없는 질문을 하던 진우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노인의 집을 나왔다.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인간의 정은 잡초처럼 남아있지만 과거의 모습들은 흔적이 없었다.
야산을 내려와 승용차에 오른 진우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을 즐기고 있을 권 종호를 떠올렸다. 진우는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리고 소로를 벗어난 그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입술을 굳게 다문 그의 승용차가 인천 해안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권 회장은 퇴근하는 자가용 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진우의 행방조차 알수 없기에 무척 조바심이 났다. 답답한 마음을 누구와 의논할수도 없었다. 그는 문득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형이 떠올랐다. 그동안 찾아보지도 못했지만 그에게는 유일한 피붙이였다. 지금까지 신화를 그룹으로 성장시켰을뿐만아니라 그의 인생을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했다.
턱을 받치고 생각하던 권 회장은 아무래도 형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지아와 결혼을 반대했던 형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의식이 없는 형이지만 그동안 변하고 있는 회사의 운영상태를 알려야할 것 같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아내와의 관계를 하소연이라도 해야할 것만 같았다. 불쑥 그는 운전을 하고 있는 김 기사에게 물었다.
“김 기사! 인천으로 가자~!”
“네......!? 인천요?”
“형님에게.......!”
“요즘, 상태가 안 좋으셔서 삼성병원에 계신데요.”
“그런가! 그럼 병원으로 가지.”
집으로 향하던 김 기사가 교차로에서 강남 방향으로 승용차를 돌렸다. 권 회장은 문득 형에게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월동 삼성병원에 도착한 권 회장은 승용차 안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렸다. 권 태호는 중환자 실에 입원하고 있었다. 마침 병실에는 도희가 와서 있었다. 권 종호가 방문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도희가 당황하며 일어섰다.
병실안에는 산소호홉기를 착용하고 있는 권 태호가 침상에 누워 있었고 심박지수를 알리는 규칙적인 기계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외면하고 있는 도희를 힐끔 쳐다본 권 종호는 침상 앞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초췌한 몰골로 누워있는 권 태호의 모습! 천장을 향한 동공이 석고상 같았다. 종호는 새삼스럽게 형에게 미안함과 애틋함을 느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끔찍이도 자신을 보살피던 형이었다. 그는 슬며시 형의 손을 잡았다.
“형님! 자주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
종호를 비난하고 때로는 격하게 다그쳤던 형이었다. 그때마다 종호는 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을 할 사람은 형뿐이었다. 호홉기를 통해 가늘게 들려오던 권 태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종호는 의식이 없는 형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만 같았다. 그는 힐끗 도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요즘, 어때?”
“.......이따금 의식이 돌아오는 것 같기도........”
도희의 말을 들은 권 종호는 허리를 굽혀 형의 표정을 살폈다. 권 태호의 감겨있던 눈동자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가늘고 힘겹게 들리는 권 태호의 호흡소리! 권 종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형의 손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내 말 알아듣는거야.......!?”
“..........”
“형~! 미안해. 형 말을 들을 걸.”
“.........”
종호는 형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푸념을 했다. 주위사람들에게는 남자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지키고 있지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종호였다. 회사 운영은 그의 계획을 벗어나 꼬여만가고 더욱이나 아내문제는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지아, 그년 버릴 생각이야. 전혀 나하고 살 생각도 없는거 같고......”
“...........”
“그년이 나를 배반했어.”
“...........”
“ 진우! 그 개같은 놈하고 도망쳤어.”
“.........”
푸념을 하는 종호는 길게 한숨을 흘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아내를 떠울릴수록 분통이 터질릴 것같은 종호는 붙잡고 있는 형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핏줄만이 돋아난 앙상한 궍태호의 손등. 그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인지. 태호의 손이 꿈틀거렸다. 종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그 년을 죽인다고해도, 형은 내 마음 이해하지.......!?”
“.........”
조용한 병실에 종호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흘렀다.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이 날카로운 그의 눈빛! 침묵이 흘렀다. 그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인가. 태호의 동공이 흔들렸다.
권 종호의 말을 듣고 있던 도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진우에 대한 애착심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어쩔수 없이 진우와의 관계를 강제로 당한 것이라고 종호에게 변명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득 진우가 지아에 대해서 세심하게 질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어쩌면 진우가 처음부터 사랑하는 여자가 지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형님! 내 말 알아듣는거야.......!?”
권 종호는 형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되물었다. 어쩌면 자신의 심정을 형에게서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을 내려다보던 종호가 의아스러운 눈빛을 하였다. 태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
종호는 형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태호가 동생의 손을 뿌리치려는 듯이 힘을 주었다. 그리고 눈동자를 크게 뜬 그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동생의 말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아니 멈추어 있는 그의 동공이 동생을 향했다.
“형.........!?”
순간 종호는 멈칫했다. 자신을 원망하는 형의 눈빛이었다. 태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가 숨을 몰아쉬고 갑자기 심박지수가 높아지는 기계음이 들렸다. 병실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혀, 형.....!?”
“회, 회장님.......”
당황하던 도희가 급히 간호실로 향한 응급호출벨을 눌렀다. 간호사가 병실로 뛰어들어오고 이어서 담담의사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권 태호의 건강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정 간호사! 에피네피린.......”
담당의사의 지시를 받고 병실을 나갔던 간호사가 주사기와 약품이 담긴 카트기를 밀고 들어왔다. 모두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담당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급조치를 마친 담당 의사가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을 받아서 그런데, 괜찮으실 겁니다. 환자가 충격받을 말이나 행동은 삼가하십시오. 안정을 취해야하니까요.”
“.........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은 의사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병실 문틈으로 병실안을 엿보고 있는 눈동자가 있었다. 최 종호의 일거일동을 살피기로 결심한 서 진우의 눈빛이었다. 의사가 병실을 나서려고 돌아서는 순간 방문틈에 드러났던 진우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마감하듯이 며칠사이에 산과 들의 따뜻한 양지 쪽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봄이 완연한 강원도의 야산 산등성이를 오르는 길목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그동안 여러번 응급상황을 넘겼던 최 태호는 기어코 영영 눈을 감고 말았다.
경제부흥과 민주화의 격동시절을 보낸 권 태식 회장의 장례식!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에대한 평가가 호불호로 갈렸지만 어쨌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정계와 재계의 많은 인사들이 참여했다. 무덤을 둘러써고 있는 사람들 뒤편에 모자를 눌러쓴 사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는 진우였다. 검은 정장과 상복을 걸친 사람들을 살피던 그는 사람들 틈으로 다가섰다. 모두들 권씨일가를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를 의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뒤편에서 들리는 소근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인내 둘이서 수근거렸다.
“손꼽히는 재벌이지만, 죽음은 못 막는거로군.”
“살아있는 걸 장담하는 사람이 없잖아.”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여자들과 루머도 많고, 나이어린 부인을 후처로 대리고 살더니........”
“자식도 없었다는데, 지금 회장과 여자만 좋게 됐지.”
“한동안 괜찮다고 하더니.......”
“글세.......!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왜......!?”
“병 때문만이 아니라고도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야........!?”
“사인을 의아스럽게 생각한데........”
“뭐가.......!?”
“뇌와 간이 갑작스럽게 손상되어 심장 쇼크를 받아 사망했다는 말이 있던데.......”
“합병증 인게지........”
“어차피 회복할수 없었지만, 담당의사도 석연치 않게 생각한다는데!”
진우는 여인들의 소근거리는 목소리를 유심히 들으며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는 언젠가 도희와 함께 권 태호 회장의 정기검진을 받기위해 병원에 갔던 날을 떠올렸다. 검진후 담당 의사가 도희에게 하던 말이었다.
“회장님이 감기 증세가 있어서 평소 조제해드리던 약에 아스피린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첨가했습니다. 심장마비 예방에는 좋지만, 지금 회장님께서 혈압조절이 안되서 절대로 과다복용시키지 마시고 이상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그런데, 꼭 복용을 시켜드려야 하나요?”
“혈관 질환에 도움되니 염려하지 마시고, 다만 뇌와 간이 손상되는 레이증후군이 일어날 수도 있고 심장에 쇼크를 받을 수도 있기에 주의를 드리는 것입니다. 복용방법만 지키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진우는 도희가 감기증세가 심하다면서 아스피린을 구입해 달라고 여러번 부탁하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렇다면 권 태호 전 회장이 병이 악화되어 사망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원인은 도희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진우는 생각했다. 장지에서 추모식이 마무리되어가고 조문객들이 권 종호 회장에게 애석한 마음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덤가를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진우는 상복을 걸친 도희를 눈여겨 쳐다봤다. 망설이던 진우가 눈치를 살피며 도희의 뒤편으로 다가섰다. 도희는 그 동안 원망스럽고 저주스럽던 남편이 막상 사망하니 허전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동안 붙잡고 있던 줄을 놓아 버린 심정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원하지 않는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도희는 권씨 일기에 들어와서 젊음의 꿈을 빼앗긴 원한을 값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그런데 남편이 죽음으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단지 새롭게 의식하는 여자라는 본능과 욕망의 불꽃만이 그녀의 의식을 살리게 할 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두려운 그녀는 소리없는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서다가 흠칫하였다.
“.........!?”
“.........”
도희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깊숙이 눌러쓴 모지 밑의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자를 보고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비록 살기위해 부정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가슴에 남아있는 진우였다. 남자의 눈빛에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벅찬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녀는 어떤 표정도 들어낼수 없었다. 다만 당황한 그녀는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진우씨.......!?”
“..........”
“마음 편해?”
“피곤 해 요! 어디.....! 있었어요.......”
진우는 자신을 부정하던 도희의 모습을 떠올렸다. 권 종호에게 강제로 당했다고 말하던 도희의 냉랭한 표정! 지아의 순수함에 비해 도희에게는 야망이 들어나 보였다.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가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그것은 조용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또렷이 전달하려는 목소리였다.
“심장 쇼크로 사망한거지!?”
“사망 원인.......!?”
“담당 의사가 말했었지."
"...........!?"
"혈압조절이 안되는 환자에게 이스피린을 과다 복용시키지 말라고........”
“.........”
도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단지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두사람은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진우가 돌아섰다. 도희는 그를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등선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가슴에 안겼던 감정들을 떠올린 것이다. 그녀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느끼게 했던 순간이었다.
권 태호의 장지에 다녀온 진우는 지아가 있는 군산으로 내려가려고 고속도로를 향해 승용차를 몰고 있었다. 그러나 지아를 생각할수록 권 회장의 비웃는 표정이 떠올랐다. 지아를 마주한 다는 것이 두려웠다. 정말 그녀가 잃어버렸던 여동생일가!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그는 사실로 받아 드릴 수 없는 권 회장의 말을 어떻게든지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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