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그룹의 약점은 권 이사의 금고에서 꺼내왔던 비자금명세였다. 그리고 신우는 권 이사의 심복이었던 관리인 황 석기가 신화의 또 다른 정보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민경도 포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주택가는 각기 다른 구조의 저택과 정원들이 화폭처럼 여유롭게 펼쳐져 있었다.
정원들 사이로 뚫린 넓은 도로 끝에 흰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승용차가 점점 다가오더니 정원 앞에 와서 멈추어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줄무늬 원피스를 걸친 여인이 승용차에서 내려섰다. 날씬한 체구에 육감적인 몸매! 마침 진우가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던 민경이었다.
진우는 한동안 민경과 대면할 시간이 없었다. 그가 피하기도 하지만 요즘 스케줄이 바쁜 그녀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를 만날 생각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그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가 민소매의 원피스로 의상을 바꿔 입고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현관을 나서려던 민경이 걸음을 멈추어 섰다. 몸을 틀어 거실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혼자 앉아있는 진우를 발견하고 주춤거리던 그녀는 거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있는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대뜸 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빤히 쳐다봤다.
“요즘 보기 힘드네!”
“.........”
“혹시 연애하는 거 아냐?”
“..........”
“여전히 목석같은 남자! 호호.......! 그래서 내가 좋아하나!?”
“.........!?”
진우는 민경에게 얻어낼 수 있었던 정보는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그녀가 요즘 권 이사를 통해 신화 그룹의 또다른 사업내용에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대뜸 그녀가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발딱 일어나더니 한쪽 눈을 질끈 감아 보이며 윙크를 했다.
“나. 스케줄 때문에 바쁘거든. 다섯 시쯤 돌아올게, 그때 봐!”
“........!”
민경은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유혹하는 몸짓을 보였다. 그리고 그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한마디도 하지 못한 그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사냥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이층으로 향한 층계를 올라가 자신의 방문을 열려던 그는 청각을 곤두세웠다.
“.........!?”
복도 한쪽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예민해진 그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 서재 쪽을 향해 갔다. 분명히 서재 안에서 들리는 인기척이었다. 관리인 황 석기는 정원에 있었고 가정부와 도희는 일층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그는 긴장을 했다. 소리 없이 문손잡이를 돌린 그는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전등도 켜지 않은 서재 안의 양면은 책꽂이로 가득했다. 중앙에는 큰 책상과 소파가 놓여있었다. 책상 뒤의 높은 책꽂이에 걸쳐진 사다리가 보였다. 그런데 도희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 무엇인가 찾고 있었다. 사다리로 다가간 그는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스커트 자락 밑으로 그녀의 뽀얀 허벅지가 드러나 보였다.
“거기서 뭐해요?”
“핫~! 깜짝이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도희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소스라쳐 놀랬다. 그녀는 서재 안에 진우가 들어왔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다. 양 손에 책을 꺼내들고 있는 그녀는 당황했다. 그를 내려다보려던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사다리와 함께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앗! 나, 난 몰라.........”
“........!?”
바닥에 떨어져 쓰러지는 도희를 진우가 재빨리 부축했다. 그녀는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들고 있던 책들이 와르르 바닥에 떨어져 흩어졌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와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동그랗게 뜬 그녀의 눈동자! 그녀는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
“놀랬잖아.......! 혹시 아버지 물건이 있지 않나........ 인기척이라도 하지.......!”
“뭘 찾으려고.......!?”
“아~! 사실 아버지가 물류센터 건립을 추진했었는데, 그 사업계획서가 있나 보려고.......”
“그럼 불이라도 켜고 찾을 것이지........!”
도희는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안겨있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그녀는 그의 강렬한 체취를 느끼고 들이마신 숨을 멈추었다. 그녀 안에 갇혀있던 여자의 감정과 본능을 일깨워준 남자였다. 정사 이후에 며칠간을 그를 항상 주시하고 있었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류센터 건립이 도희의 아버지가 게획했었던 일이라는 것을 확신한 진우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도희의 눈빛을 의식햇다., 그는 자신의 깊은 관심만큼 그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얼굴빛이 발그스름하게 변한 그녀가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는 가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녀의 얼굴을 양 손으로 받쳐 들었다. 마주친 그녀의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어 보였다.
“..........!”
“...........!“
진우는 천천히 도희의 입술로 다가갔다. 그리고 입술을 포갰다. 그녀의 짙은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리고 사르르 눈을 감았다. 양팔을 늘어트린 그녀는 그의 가슴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키스가 이어지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팔로 그의 목덜미를 감쌌다. 혀가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도희의 혀를 빨아 당겨 타액을 들이마시는 진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혀와 혀가 엉키어 열기를 뿜어냈다. 그의 혀끝이 그녀의 윗볼과 목 밑을 맴돌았다. 그의 목덜미를 잡고 매달린 그녀는 그의 혀끝으로 온 몸의 신경이 몰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점점 젖가슴으로 내려가는 그의 열기를 느끼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음........!”
진우의 손에 의해 도희의 블라우스 단추가 풀어졌다. 그는 그녀의 브래지어를 끌어 내리고 젖가슴을 보듬었다. 그리고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그녀가 젖가슴에 묻힌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한쪽 젖가슴은 그의 손에 애무당하고 또 다른 젖꼭지는 그의 혀끝에 돌돌 말려졌다.
“지, 진우씨........”
온몸의 신경이 그의 혀끝에 몰려 녹아내리는 도희는 다리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현기증마저 느낀 그녀는 등 뒤의 사다리에 몸을 의지했다. 양쪽 젖가슴을 애무하는 그의 혀끝이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스커트 밑으로 그의 머리가 묻혔다. 그의 혀끝이 무릎을 거쳐 허벅지로 올라왔다.
“음........!”
온 몸의 신경이 허벅지 사이로 몰리는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구름위로 떠오르는 착각 속에 그녀는 사다리 위로 다리를 올려놓고 버텼다. 그녀의 팬티를 무릎 밑으로 끌어내린 그의 혀끝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열기를 불어 넣었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에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틀었다.
“나, 난 몰라........하 으!”
“..........!”
진우가 허리를 비트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그녀의 허벅지 사이가 타액과 샘물로 적셔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붉은 꽃잎! 몸을 일으킨 그는 그녀의 입술을 포갰다. 혀와 혀가 엉키었다. 그는 입속으로 그녀의 혀를 강하게 당기며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 내렸다.
“.........!?”
숨결이 급해진 그는 그녀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그의 혀를 빨아 당겼다. 그는 젖가슴을 애무하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더듬었다. 그리고 잔득 발기해서 치솟은 페니스 귀두를 그녀의 보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혀를 빨아 당기던 그녀가 입술을 벌리며 눈동자를 크게 떴다.
“하읍.......!”
“음..........!”
도희는 몸속을 치밀고 들어오는 불기둥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사다리 한층 계위로 올라선 그녀는 그의 등을 움켜잡고 매달렸다. 몸속 깊숙이 채워지는 열기의 포만감에 그녀는 상체를 뒤로 젖혔다. 골반이 뻐근하도록 몸속을 가득채운 남성이 진퇴를 하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치켜 올랐다가 추락을 거듭했다.
“읍. 하 읍, 으 읍, 읍........”
“허, 하, 음..........”
하나가 된 그들의 몸이 흔들리고 사다리가 삐걱거렸다. 어둠침침한 서재 안은 습한 열기로 휩싸였다. 그의 등을 붙잡고 매달린 그녀는 저절로 둔부를 들어올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활활 타오르는 본능의 불길에 휘말린 그녀의 몽롱한 눈동자! 그녀는 오직 그의 여자가 되어 있는 순간이 이어지기를 갈구하는 심정이었다.
“읍, 으 읍, 진우씨.....나! 하 읍............”
“음........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번쩍 들어서 껴안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가슴에 매달린 그녀를 책상위에 눕혔다. 책상위에 있던 물건들이 밀려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그녀의 표정은 간절했다.
“...........”
그의 손에 호크가 풀어진 그녀의 브래지어가 벌어지고 젖가슴이 들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스커트가 벗겨져 책상 밑으로 흘러내렸다. 그녀의 몸 위에 상체를 굽힌 그는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속을 채우고 있는 페니스를 깊이 밀어 넣었다. 그녀의 둔부가 꿈틀거렸다.
“하 읍! 이제.......난........”
충격을 받은 도희는 상체를 젖히며 그의 가슴에 손을 뻗었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그녀의 몽롱한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녀는 뼈끝까지 잇닿는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어 그를 밀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허우적거리던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그의 남성이 그녀의 몸속을 헤집기 시작하고 그녀의 몸이 반사적으로 흔들렸다.
“아 읍! 아,.....! 읍. 읍.........”
“음........!”
점점 숨결이 거칠어지는 진우가 도희의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그녀는 몸속의 살갗이 마찰 당할수록 엑스터시의 환희에 빠져 들었다. 한없이 치솟았던 환각의 세계에서 아찔한 읍속으로 추락하기를 거듭하는 그녀는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뚝딱거리는 심장소리, 땀방울이 으깨지는 소리에 이어서 어느 순간 그녀는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합~! 하 으.......”
“헛.......!”
진우는 남성을 옥죄며 휘감는 열기를 느꼈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상체를 들어 올렸다. 들이마신 숨을 멈춘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의 목덜미를 잡고 매달렸다. 그리고 부르르 떨던 그녀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오르가즘의 희열 속에 빠진 그녀의 표정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헉~!”
“음.......!”
도희는 자신을 부둥켜안으며 경직되는 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몸속을 채우고 있는 그의 남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자궁까지 흘러 들어가는 엑스터시를 느끼게 했다. 그녀는 이어지는 쾌감 속에 빠져 들었다. 그와 두 번째 정사를 하는 그녀는 더욱 뜨거운 절정감에 휘말렸다. 그들은 하나가 되어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켰다.
잠시 그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서 누워있는 그녀를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걸친 블라우스를 입혀서 드러내놓고 있는 젖가슴을 가려주었다. 돌아선 그는 벗어던졌던 팬티와 바지를 집어 들고 입었다. 셔츠를 걸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팬티를 무릎위로 끌어올린 그녀가 브래지어 호크를 잠그려고 등 뒤로 손을 뻗고 있었다. 쳐다본 그가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호크를 채워주었다. 그녀가 옷을 걸치는 동안 그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들추고 정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얼른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정원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황 씨의 시선이 서재 창문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왠지 진우는 황 씨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뒤로 돌아선 그는 책상에 엎드려 있는 도희를 보고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과의 관계로 그녀가 고민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그는 그녀의 등 뒤에 다가섰다. 뒤를 돌아보는 그녀의 표정이 석연치 않았다.
“어디 아파요?”
“아니........!”
“그럼, 무슨 걱정거리라도......?”
“그건 아니고.........”
책상위에 걸터앉은 진우가 그녀의 손을 잡아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그녀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물끄러미 그의 손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
“권 이사가 수시로 협박하듯이 전화하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미치겠어.”
“왜......!?”
“각서 없어진 것을 알았는지 요즘 더 미쳐서 날뛰네. 권 이사가 물류센터 건립을 포기했으면 좋겠어.”
“그걸 포기할 리가 있나!?”
“허가가 안 나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건 당연히........”
열기로 가득했던 서재 안에 침묵이 흘렀다. 한동안 앉아있던 도희가 그가 잡고 있는 손을 빼내고 서재 입구로 걸어갔다. 잠시 멈칫하며 뒤돌아보던 그녀가 서재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그녀가 바라보던 눈동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 싶은 그녀의 간절함이었다. 그는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신화그룹이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 그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안타까웠다.
밖으로 나온 진우는 도희가 소망하는 물류센터 허가에 관한 사항을 생각하며 차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용차가 집 앞에 와서 멈추고 차고로 들어오는 자동문이 열렸다. 민경의 흰색 승용차였다. 그는 천천히 민경의 승용차로 다가갔다. 운전석에서 내려서려던 그녀가 그를 발견하고 착용하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진우씨! 오늘은 집에 있네. 저번에 내가 다섯 시까지 들어온다고 했는데 어디 갔었어?”
“회사에.”
민경이 운전석 문을 열고 다리 한 짝을 밖으로 드러 내놓았다. 진우는 열린 운전석 문 옆에 기대섰다. 운전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가 눈을 흘기듯이 그를 올려다봤다. 그를 유혹하듯이 그녀는 짧은 스커트 밑으로 허벅지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녀의 긴 눈썹이 깜박거렸다.
“요즘, 오빠가 진우씨 칭찬하던데. 무슨 일 하고 다녔어?”
“그건 말해도 몰라.”
“피 잇~!”
“뭐 하나 물어 볼게. 오래전 일이라, 아는지 모르지만.......”
“뭔데.......!?”
“혹시 대한기업이라는 이름 들어봤어?”
“내가 어떻게 알아! 요즘 엄청 많은 회사를.......! 부도가 나서 사라지고, 이름 모르는 회사도 부지기수이고, 잘나가던 그룹들도 비자금 횡령, 공무원 뇌물로 망하는데, 난 골치 아파서 회사 일에 상관하기도 싫어.”
“비자금.........!?”
진우는 민경의 말을 되받아 혼잣말을 흘렸다. 그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언론에 대기업이 조성한 비자금을 뇌물로 받은 공직자들 이름으로 떠들썩했다. 그는 권 이사의 금고에서 탈취했던 비자금 거래 명세를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비자금 명세에 오른 공무원들을 이용하면 도희가 소망하는 물류센터 허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부지런히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가!? 오늘 외식하러 같이 가려는데.”
“..........”
“어디 가냐고? 내 말 안 들려!”
“..........”
민경의 외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책꽂이에서 문학 전집 한권을 꺼내들었다. 커버 속에 넣어 두었던 비자금 명세를 꺼내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비자금 거래 명단에는 현재 고위 공직자 이름들도 있었다.
며칠 후 진우는 궁리 끝에 인터넷 전화기를 구입했다. 책상 앞에 앉은 그는 별도로 메모했던 공직자 명단을 펴들었다. 주로 건립허기에 관련된 국토관리청과 국토해양부 고위 공직자들이었다. 컴퓨터 전원을 올린 그는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를 확인하고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틀 후 국토해양부의 강 익현 차관은 여비서가 가져다 놓은 한통의 우편물을 집어 들었다. 많은 우편물들을 접수하는 비서실에서는 특히 친전으로 된 봉함 우편물은 차관에게 직접 전달하는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정치적인 소재나 청탁에 관한 것이기에 강 차관은 별 생각 없이 봉함을 뜨고 안색이 변했다.
[국민을 사랑하시는 강 차관님께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공무로 가정을 돌보기 힘들어서 신화 그룹으로부터 여러 차례 큰 용돈을 받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연히 신화그룹의 비자금 거래 명세 원본을 입수했습니다. 신화와 경쟁그룹의 직원도 아니고, 단지 강 차관님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공직자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못 믿으실 것 같아서 차관님이 신화로부터 받았던 비자금 명세를 복사해서 보내드립니다. 앞으로 악덕 기업 신화에서는 물류센터 건립 허가서를 제출할 것입니다. 현명한 판단을 하셔서 허가서를 반려하실 것으로 알겠습니다, 만약 제 충고가 물거품이 되면 부득이 비자금 거래 명세가 언론에 유포될 것입니다. 사랑받는 공직자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무명인 올림.]
우편물을 확인하는 강 차관의 손이 떨렸다. 발신자 이름은 영어인데 Mr Truepenny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첨부된 용지에는 그가 신화로부터 받았던 고가품과 현금과 거래일자 들이 상세히 적힌 명세를 복사한 것이었다. 그는 우편물이 협박이던 권고든 지간에 사실과 다르지 않기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 차관이 우편물을 받고 당황하는 시간에 고위 공직자 다섯 사람이 유사한 내용의 우편물을 받았다. 모두 진우가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노숙자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며 접수시킨 우편물이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는 권 이사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있었다. 자주 모임을 갖는 공직자들과 오찬을 할 생각이었다.
혼수상태인 권 회장이 언제 의식을 회복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권 이사는 형을 대신해서 회장권한까지 쥐고 흔들었다. 그가 당면한 문제는 물류센터 건립 허가였다. 그는 토지공사 본부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으나 외출중이라는 여비서의 말을 들었다. 볼펜으로 책상을 두들기던 그는 평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국토부의 강 차관의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 강 차관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시지요?”
“음, 그래요. 권 이사! 무슨 일로.......?”
“하하.....! 몇 분모시고 오찬이나 할까 하는데요. 시간이 어떠십니까?”
“고맙네만, 난, 빠지겠네.”
“하하~! 어차피 식사는 하셔야지요.”
“일 없네. 앞으로 내게 사적인 전화 하지 말게. 그럼 바빠서, 이만!”
짤깍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냉정한 강 차관의 말투에 권 종호는 무척 기분이 언짢았다. 지금까지 그와 오찬을 거절해 본적이 없는 강 차관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수시로 식사를 같이 하던 공직자들의 전화번호를 눌러 통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부재중이거나 통화를 해도 어찌된 일인지 모두 강 차관과 비슷한 대답을 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은근히 분통이 터진 그는 절친한 친구사이인 국토해양부 한 기수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고 그는 친숙한 말투를 흘렸다.
“아! 한 국장! 요즘 보기도 힘들고 다른 재미가 있나봐!”
“재미는 뭐! 공직자가 다 그렇지. 웬일로 전화했어?”
“점심식사 안 해? 좀 만나지.”
“난, 이미 약속이 있는데. 다음에 전화해.”
“약속!? 무슨 약속?, 모처럼 전화를 했는데.”
“음......! 친구니까 말하는데, 요즘 권 이사 소문이 안 좋아.”
“무슨 소문!? 하하......! 여자 문제는 누구나 마찬가지 아냐.”
“그게 아니고, 다들 신화 그룹을 피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 그럼!”
권 종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피하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금고 안에 서류도 누군가에 의해 사라지고, 밀수품 인수도 실패로 돌아가고, 하는 일마다 마음대로 안 되는데 오찬을 피하는 공직자들의 태도에 분통이 터졌다. 그는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난 그는 책상위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서 바닥에 팽개쳤다.
“개 같은 놈들! 내 돈 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모르쇠할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린 권 종호는 자신의 방을 박차고 나왔다.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는 그는 비서실 문을 밀어 붙이고 들어갔다. 직원들은 점심 식사를 하러가고 여비서 혼자 남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는 여비서에게 공연히 버럭 소리를 질러 화풀이를 했다.
“냄새 풍기면서 여기서 밥을 처먹어? 김 기사, 차 준비 시키라고 해.”
“네. 이사님!”
예기치 않은 질책을 받은 여비서가 입가에 묻은 음식 자국을 손으로 문질러 씻으며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는 다시 여비서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주춤거리다가 비서실을 휑하니 나갔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가던 그는 애꿎은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가는 권 종호를 보고 직원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피했다. 건물을 나온 그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허리를 굽히고 서 있던 김 기사가 뒷좌석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올라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짜증스런 목소리를 뱉었다.
“빨리 국토부로 가자.”
“네.......!”
김 기사는 가속페달을 밟으며 백미러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급한 성격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로에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지나고 있어 혼잡했다. 김 기사는 크락숀을 연속 누르면서 서행을 하는 차량들을 추월했다. 국토부 청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권 종호가 급히 승용차 문을 열고 내려섰다.
그는 부리나케 청사 입구로 들어가 한 기수 국장실로 걸어갔다. 복도 맞은편에서 한 국장이 양복 차림의 남자와 얘기를 하며 걸어왔다. 그를 발견한 한 국장이 난처한 표정을 하고 멈추어 섰다. 뚜벅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간 권 종호가 한 국장 옆에 서있는 남자를 힐끔 바라봤다. 그리고 한 국장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나하고 잠간만 얘기해.”
“손님 있어서 곤란한데.......”
“잠간이면 돼.”
권 종호는 무작정 한 국장의 소매를 붙잡아 끌고 복도 모서리로 갔다. 한 국장이 일행을 쳐다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권 종호가 한 국장과 남자 사이를 가로 막듯이 버티고 서서 신경질적인 말투로 물었다.
“누구야? 신화를 깔보고 다니는 놈들이.”
“나도 모르지. 내가 알기로는 한 두 사람이 아닌 것 같더라고.”
“너는 이유를 알거 아냐?”
“이거......, 참!?”
“말하라고! 너도 내 돈 처먹었잖아.”
“그게 문제라니까........! 이거 보여 줄게. 필요하면 가져.”
주위를 둘러보던 한 국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봉투 안에서 그가 받았던 우편물을 권 종호에게 내밀었다. 건네받은 봉투를 열어보는 권 종호의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가 도난당했던 비자금 조성과 거래 명세에 관한 글이었다. 누군가 그가 계획하고 있는 물류센터 건립을 방해하려는 목적이었다.
“어떤 놈이야.......?”
“나뿐만 아니라 몇 사람이 이런 우편물을 받았는지는 몰라. 난 손님이 기다려서 가봐야 돼.”
권 종흐의 눈치를 살피던 한 국장이 기다리고 있는 일행에게 다가갔다. 우편물에 첨부된 비자금 명세 복사본을 훑어보는 권 종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발신자는 익명이었다. 그는 멀어져가는 한 국장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좌절감으로 청사를 나온 그는 승용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서재에 침입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물류센터 건립에 문제 제기를 하는 임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반대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쟁업체일는지도 모른다. 서재의 비밀금고는 그의 형이 사용하던 것으로 외국에서 수입한 특제품이었다. 금고를 열수 있는 사람은 권 회장뿐이 없었다.
권 종호는 형이 누군가에게 금고에 대해서 알려줬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가족이나 회사 직원들 중에 관련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족들 중에는 그가 의심 가는 사람은 도희였다.
그는 의심 가는 인물들 중에 아내도 배제할 수 없었다. 지아는 어린 시절에 형의 양녀로 입양되어 어린 시절부터 한 집안에서 자랐다. 여자들과 난잡한 관계로 루머를 퍼트리던 그는 늦은 나이에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결혼을 했다.---------------------------
정원들 사이로 뚫린 넓은 도로 끝에 흰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승용차가 점점 다가오더니 정원 앞에 와서 멈추어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줄무늬 원피스를 걸친 여인이 승용차에서 내려섰다. 날씬한 체구에 육감적인 몸매! 마침 진우가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던 민경이었다.
진우는 한동안 민경과 대면할 시간이 없었다. 그가 피하기도 하지만 요즘 스케줄이 바쁜 그녀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를 만날 생각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그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가 민소매의 원피스로 의상을 바꿔 입고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현관을 나서려던 민경이 걸음을 멈추어 섰다. 몸을 틀어 거실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혼자 앉아있는 진우를 발견하고 주춤거리던 그녀는 거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있는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대뜸 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빤히 쳐다봤다.
“요즘 보기 힘드네!”
“.........”
“혹시 연애하는 거 아냐?”
“..........”
“여전히 목석같은 남자! 호호.......! 그래서 내가 좋아하나!?”
“.........!?”
진우는 민경에게 얻어낼 수 있었던 정보는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그녀가 요즘 권 이사를 통해 신화 그룹의 또다른 사업내용에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대뜸 그녀가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발딱 일어나더니 한쪽 눈을 질끈 감아 보이며 윙크를 했다.
“나. 스케줄 때문에 바쁘거든. 다섯 시쯤 돌아올게, 그때 봐!”
“........!”
민경은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유혹하는 몸짓을 보였다. 그리고 그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한마디도 하지 못한 그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사냥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이층으로 향한 층계를 올라가 자신의 방문을 열려던 그는 청각을 곤두세웠다.
“.........!?”
복도 한쪽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예민해진 그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 서재 쪽을 향해 갔다. 분명히 서재 안에서 들리는 인기척이었다. 관리인 황 석기는 정원에 있었고 가정부와 도희는 일층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그는 긴장을 했다. 소리 없이 문손잡이를 돌린 그는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전등도 켜지 않은 서재 안의 양면은 책꽂이로 가득했다. 중앙에는 큰 책상과 소파가 놓여있었다. 책상 뒤의 높은 책꽂이에 걸쳐진 사다리가 보였다. 그런데 도희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 무엇인가 찾고 있었다. 사다리로 다가간 그는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스커트 자락 밑으로 그녀의 뽀얀 허벅지가 드러나 보였다.
“거기서 뭐해요?”
“핫~! 깜짝이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도희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소스라쳐 놀랬다. 그녀는 서재 안에 진우가 들어왔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다. 양 손에 책을 꺼내들고 있는 그녀는 당황했다. 그를 내려다보려던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사다리와 함께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앗! 나, 난 몰라.........”
“........!?”
바닥에 떨어져 쓰러지는 도희를 진우가 재빨리 부축했다. 그녀는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들고 있던 책들이 와르르 바닥에 떨어져 흩어졌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와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동그랗게 뜬 그녀의 눈동자! 그녀는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
“놀랬잖아.......! 혹시 아버지 물건이 있지 않나........ 인기척이라도 하지.......!”
“뭘 찾으려고.......!?”
“아~! 사실 아버지가 물류센터 건립을 추진했었는데, 그 사업계획서가 있나 보려고.......”
“그럼 불이라도 켜고 찾을 것이지........!”
도희는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안겨있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그녀는 그의 강렬한 체취를 느끼고 들이마신 숨을 멈추었다. 그녀 안에 갇혀있던 여자의 감정과 본능을 일깨워준 남자였다. 정사 이후에 며칠간을 그를 항상 주시하고 있었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류센터 건립이 도희의 아버지가 게획했었던 일이라는 것을 확신한 진우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도희의 눈빛을 의식햇다., 그는 자신의 깊은 관심만큼 그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얼굴빛이 발그스름하게 변한 그녀가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는 가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녀의 얼굴을 양 손으로 받쳐 들었다. 마주친 그녀의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어 보였다.
“..........!”
“...........!“
진우는 천천히 도희의 입술로 다가갔다. 그리고 입술을 포갰다. 그녀의 짙은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리고 사르르 눈을 감았다. 양팔을 늘어트린 그녀는 그의 가슴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키스가 이어지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팔로 그의 목덜미를 감쌌다. 혀가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도희의 혀를 빨아 당겨 타액을 들이마시는 진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혀와 혀가 엉키어 열기를 뿜어냈다. 그의 혀끝이 그녀의 윗볼과 목 밑을 맴돌았다. 그의 목덜미를 잡고 매달린 그녀는 그의 혀끝으로 온 몸의 신경이 몰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점점 젖가슴으로 내려가는 그의 열기를 느끼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음........!”
진우의 손에 의해 도희의 블라우스 단추가 풀어졌다. 그는 그녀의 브래지어를 끌어 내리고 젖가슴을 보듬었다. 그리고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그녀가 젖가슴에 묻힌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한쪽 젖가슴은 그의 손에 애무당하고 또 다른 젖꼭지는 그의 혀끝에 돌돌 말려졌다.
“지, 진우씨........”
온몸의 신경이 그의 혀끝에 몰려 녹아내리는 도희는 다리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현기증마저 느낀 그녀는 등 뒤의 사다리에 몸을 의지했다. 양쪽 젖가슴을 애무하는 그의 혀끝이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스커트 밑으로 그의 머리가 묻혔다. 그의 혀끝이 무릎을 거쳐 허벅지로 올라왔다.
“음........!”
온 몸의 신경이 허벅지 사이로 몰리는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구름위로 떠오르는 착각 속에 그녀는 사다리 위로 다리를 올려놓고 버텼다. 그녀의 팬티를 무릎 밑으로 끌어내린 그의 혀끝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열기를 불어 넣었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에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틀었다.
“나, 난 몰라........하 으!”
“..........!”
진우가 허리를 비트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그녀의 허벅지 사이가 타액과 샘물로 적셔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붉은 꽃잎! 몸을 일으킨 그는 그녀의 입술을 포갰다. 혀와 혀가 엉키었다. 그는 입속으로 그녀의 혀를 강하게 당기며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 내렸다.
“.........!?”
숨결이 급해진 그는 그녀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그의 혀를 빨아 당겼다. 그는 젖가슴을 애무하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더듬었다. 그리고 잔득 발기해서 치솟은 페니스 귀두를 그녀의 보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혀를 빨아 당기던 그녀가 입술을 벌리며 눈동자를 크게 떴다.
“하읍.......!”
“음..........!”
도희는 몸속을 치밀고 들어오는 불기둥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사다리 한층 계위로 올라선 그녀는 그의 등을 움켜잡고 매달렸다. 몸속 깊숙이 채워지는 열기의 포만감에 그녀는 상체를 뒤로 젖혔다. 골반이 뻐근하도록 몸속을 가득채운 남성이 진퇴를 하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치켜 올랐다가 추락을 거듭했다.
“읍. 하 읍, 으 읍, 읍........”
“허, 하, 음..........”
하나가 된 그들의 몸이 흔들리고 사다리가 삐걱거렸다. 어둠침침한 서재 안은 습한 열기로 휩싸였다. 그의 등을 붙잡고 매달린 그녀는 저절로 둔부를 들어올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활활 타오르는 본능의 불길에 휘말린 그녀의 몽롱한 눈동자! 그녀는 오직 그의 여자가 되어 있는 순간이 이어지기를 갈구하는 심정이었다.
“읍, 으 읍, 진우씨.....나! 하 읍............”
“음........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번쩍 들어서 껴안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가슴에 매달린 그녀를 책상위에 눕혔다. 책상위에 있던 물건들이 밀려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그녀의 표정은 간절했다.
“...........”
그의 손에 호크가 풀어진 그녀의 브래지어가 벌어지고 젖가슴이 들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스커트가 벗겨져 책상 밑으로 흘러내렸다. 그녀의 몸 위에 상체를 굽힌 그는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속을 채우고 있는 페니스를 깊이 밀어 넣었다. 그녀의 둔부가 꿈틀거렸다.
“하 읍! 이제.......난........”
충격을 받은 도희는 상체를 젖히며 그의 가슴에 손을 뻗었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그녀의 몽롱한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녀는 뼈끝까지 잇닿는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어 그를 밀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허우적거리던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그의 남성이 그녀의 몸속을 헤집기 시작하고 그녀의 몸이 반사적으로 흔들렸다.
“아 읍! 아,.....! 읍. 읍.........”
“음........!”
점점 숨결이 거칠어지는 진우가 도희의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겼다. 그녀는 몸속의 살갗이 마찰 당할수록 엑스터시의 환희에 빠져 들었다. 한없이 치솟았던 환각의 세계에서 아찔한 읍속으로 추락하기를 거듭하는 그녀는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뚝딱거리는 심장소리, 땀방울이 으깨지는 소리에 이어서 어느 순간 그녀는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합~! 하 으.......”
“헛.......!”
진우는 남성을 옥죄며 휘감는 열기를 느꼈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상체를 들어 올렸다. 들이마신 숨을 멈춘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의 목덜미를 잡고 매달렸다. 그리고 부르르 떨던 그녀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오르가즘의 희열 속에 빠진 그녀의 표정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헉~!”
“음.......!”
도희는 자신을 부둥켜안으며 경직되는 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몸속을 채우고 있는 그의 남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자궁까지 흘러 들어가는 엑스터시를 느끼게 했다. 그녀는 이어지는 쾌감 속에 빠져 들었다. 그와 두 번째 정사를 하는 그녀는 더욱 뜨거운 절정감에 휘말렸다. 그들은 하나가 되어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켰다.
잠시 그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서 누워있는 그녀를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걸친 블라우스를 입혀서 드러내놓고 있는 젖가슴을 가려주었다. 돌아선 그는 벗어던졌던 팬티와 바지를 집어 들고 입었다. 셔츠를 걸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팬티를 무릎위로 끌어올린 그녀가 브래지어 호크를 잠그려고 등 뒤로 손을 뻗고 있었다. 쳐다본 그가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호크를 채워주었다. 그녀가 옷을 걸치는 동안 그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들추고 정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얼른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정원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황 씨의 시선이 서재 창문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왠지 진우는 황 씨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뒤로 돌아선 그는 책상에 엎드려 있는 도희를 보고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과의 관계로 그녀가 고민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그는 그녀의 등 뒤에 다가섰다. 뒤를 돌아보는 그녀의 표정이 석연치 않았다.
“어디 아파요?”
“아니........!”
“그럼, 무슨 걱정거리라도......?”
“그건 아니고.........”
책상위에 걸터앉은 진우가 그녀의 손을 잡아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그녀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물끄러미 그의 손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
“권 이사가 수시로 협박하듯이 전화하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미치겠어.”
“왜......!?”
“각서 없어진 것을 알았는지 요즘 더 미쳐서 날뛰네. 권 이사가 물류센터 건립을 포기했으면 좋겠어.”
“그걸 포기할 리가 있나!?”
“허가가 안 나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건 당연히........”
열기로 가득했던 서재 안에 침묵이 흘렀다. 한동안 앉아있던 도희가 그가 잡고 있는 손을 빼내고 서재 입구로 걸어갔다. 잠시 멈칫하며 뒤돌아보던 그녀가 서재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그녀가 바라보던 눈동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 싶은 그녀의 간절함이었다. 그는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신화그룹이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 그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안타까웠다.
밖으로 나온 진우는 도희가 소망하는 물류센터 허가에 관한 사항을 생각하며 차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용차가 집 앞에 와서 멈추고 차고로 들어오는 자동문이 열렸다. 민경의 흰색 승용차였다. 그는 천천히 민경의 승용차로 다가갔다. 운전석에서 내려서려던 그녀가 그를 발견하고 착용하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진우씨! 오늘은 집에 있네. 저번에 내가 다섯 시까지 들어온다고 했는데 어디 갔었어?”
“회사에.”
민경이 운전석 문을 열고 다리 한 짝을 밖으로 드러 내놓았다. 진우는 열린 운전석 문 옆에 기대섰다. 운전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가 눈을 흘기듯이 그를 올려다봤다. 그를 유혹하듯이 그녀는 짧은 스커트 밑으로 허벅지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녀의 긴 눈썹이 깜박거렸다.
“요즘, 오빠가 진우씨 칭찬하던데. 무슨 일 하고 다녔어?”
“그건 말해도 몰라.”
“피 잇~!”
“뭐 하나 물어 볼게. 오래전 일이라, 아는지 모르지만.......”
“뭔데.......!?”
“혹시 대한기업이라는 이름 들어봤어?”
“내가 어떻게 알아! 요즘 엄청 많은 회사를.......! 부도가 나서 사라지고, 이름 모르는 회사도 부지기수이고, 잘나가던 그룹들도 비자금 횡령, 공무원 뇌물로 망하는데, 난 골치 아파서 회사 일에 상관하기도 싫어.”
“비자금.........!?”
진우는 민경의 말을 되받아 혼잣말을 흘렸다. 그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언론에 대기업이 조성한 비자금을 뇌물로 받은 공직자들 이름으로 떠들썩했다. 그는 권 이사의 금고에서 탈취했던 비자금 거래 명세를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비자금 명세에 오른 공무원들을 이용하면 도희가 소망하는 물류센터 허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부지런히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가!? 오늘 외식하러 같이 가려는데.”
“..........”
“어디 가냐고? 내 말 안 들려!”
“..........”
민경의 외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책꽂이에서 문학 전집 한권을 꺼내들었다. 커버 속에 넣어 두었던 비자금 명세를 꺼내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비자금 거래 명단에는 현재 고위 공직자 이름들도 있었다.
며칠 후 진우는 궁리 끝에 인터넷 전화기를 구입했다. 책상 앞에 앉은 그는 별도로 메모했던 공직자 명단을 펴들었다. 주로 건립허기에 관련된 국토관리청과 국토해양부 고위 공직자들이었다. 컴퓨터 전원을 올린 그는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를 확인하고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틀 후 국토해양부의 강 익현 차관은 여비서가 가져다 놓은 한통의 우편물을 집어 들었다. 많은 우편물들을 접수하는 비서실에서는 특히 친전으로 된 봉함 우편물은 차관에게 직접 전달하는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정치적인 소재나 청탁에 관한 것이기에 강 차관은 별 생각 없이 봉함을 뜨고 안색이 변했다.
[국민을 사랑하시는 강 차관님께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공무로 가정을 돌보기 힘들어서 신화 그룹으로부터 여러 차례 큰 용돈을 받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연히 신화그룹의 비자금 거래 명세 원본을 입수했습니다. 신화와 경쟁그룹의 직원도 아니고, 단지 강 차관님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공직자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못 믿으실 것 같아서 차관님이 신화로부터 받았던 비자금 명세를 복사해서 보내드립니다. 앞으로 악덕 기업 신화에서는 물류센터 건립 허가서를 제출할 것입니다. 현명한 판단을 하셔서 허가서를 반려하실 것으로 알겠습니다, 만약 제 충고가 물거품이 되면 부득이 비자금 거래 명세가 언론에 유포될 것입니다. 사랑받는 공직자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무명인 올림.]
우편물을 확인하는 강 차관의 손이 떨렸다. 발신자 이름은 영어인데 Mr Truepenny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첨부된 용지에는 그가 신화로부터 받았던 고가품과 현금과 거래일자 들이 상세히 적힌 명세를 복사한 것이었다. 그는 우편물이 협박이던 권고든 지간에 사실과 다르지 않기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 차관이 우편물을 받고 당황하는 시간에 고위 공직자 다섯 사람이 유사한 내용의 우편물을 받았다. 모두 진우가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노숙자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며 접수시킨 우편물이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는 권 이사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있었다. 자주 모임을 갖는 공직자들과 오찬을 할 생각이었다.
혼수상태인 권 회장이 언제 의식을 회복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권 이사는 형을 대신해서 회장권한까지 쥐고 흔들었다. 그가 당면한 문제는 물류센터 건립 허가였다. 그는 토지공사 본부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으나 외출중이라는 여비서의 말을 들었다. 볼펜으로 책상을 두들기던 그는 평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국토부의 강 차관의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 강 차관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시지요?”
“음, 그래요. 권 이사! 무슨 일로.......?”
“하하.....! 몇 분모시고 오찬이나 할까 하는데요. 시간이 어떠십니까?”
“고맙네만, 난, 빠지겠네.”
“하하~! 어차피 식사는 하셔야지요.”
“일 없네. 앞으로 내게 사적인 전화 하지 말게. 그럼 바빠서, 이만!”
짤깍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냉정한 강 차관의 말투에 권 종호는 무척 기분이 언짢았다. 지금까지 그와 오찬을 거절해 본적이 없는 강 차관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수시로 식사를 같이 하던 공직자들의 전화번호를 눌러 통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부재중이거나 통화를 해도 어찌된 일인지 모두 강 차관과 비슷한 대답을 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은근히 분통이 터진 그는 절친한 친구사이인 국토해양부 한 기수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고 그는 친숙한 말투를 흘렸다.
“아! 한 국장! 요즘 보기도 힘들고 다른 재미가 있나봐!”
“재미는 뭐! 공직자가 다 그렇지. 웬일로 전화했어?”
“점심식사 안 해? 좀 만나지.”
“난, 이미 약속이 있는데. 다음에 전화해.”
“약속!? 무슨 약속?, 모처럼 전화를 했는데.”
“음......! 친구니까 말하는데, 요즘 권 이사 소문이 안 좋아.”
“무슨 소문!? 하하......! 여자 문제는 누구나 마찬가지 아냐.”
“그게 아니고, 다들 신화 그룹을 피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 그럼!”
권 종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피하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금고 안에 서류도 누군가에 의해 사라지고, 밀수품 인수도 실패로 돌아가고, 하는 일마다 마음대로 안 되는데 오찬을 피하는 공직자들의 태도에 분통이 터졌다. 그는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난 그는 책상위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서 바닥에 팽개쳤다.
“개 같은 놈들! 내 돈 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모르쇠할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린 권 종호는 자신의 방을 박차고 나왔다.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는 그는 비서실 문을 밀어 붙이고 들어갔다. 직원들은 점심 식사를 하러가고 여비서 혼자 남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는 여비서에게 공연히 버럭 소리를 질러 화풀이를 했다.
“냄새 풍기면서 여기서 밥을 처먹어? 김 기사, 차 준비 시키라고 해.”
“네. 이사님!”
예기치 않은 질책을 받은 여비서가 입가에 묻은 음식 자국을 손으로 문질러 씻으며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는 다시 여비서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주춤거리다가 비서실을 휑하니 나갔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가던 그는 애꿎은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가는 권 종호를 보고 직원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피했다. 건물을 나온 그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허리를 굽히고 서 있던 김 기사가 뒷좌석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올라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짜증스런 목소리를 뱉었다.
“빨리 국토부로 가자.”
“네.......!”
김 기사는 가속페달을 밟으며 백미러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급한 성격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로에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지나고 있어 혼잡했다. 김 기사는 크락숀을 연속 누르면서 서행을 하는 차량들을 추월했다. 국토부 청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권 종호가 급히 승용차 문을 열고 내려섰다.
그는 부리나케 청사 입구로 들어가 한 기수 국장실로 걸어갔다. 복도 맞은편에서 한 국장이 양복 차림의 남자와 얘기를 하며 걸어왔다. 그를 발견한 한 국장이 난처한 표정을 하고 멈추어 섰다. 뚜벅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간 권 종호가 한 국장 옆에 서있는 남자를 힐끔 바라봤다. 그리고 한 국장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나하고 잠간만 얘기해.”
“손님 있어서 곤란한데.......”
“잠간이면 돼.”
권 종호는 무작정 한 국장의 소매를 붙잡아 끌고 복도 모서리로 갔다. 한 국장이 일행을 쳐다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권 종호가 한 국장과 남자 사이를 가로 막듯이 버티고 서서 신경질적인 말투로 물었다.
“누구야? 신화를 깔보고 다니는 놈들이.”
“나도 모르지. 내가 알기로는 한 두 사람이 아닌 것 같더라고.”
“너는 이유를 알거 아냐?”
“이거......, 참!?”
“말하라고! 너도 내 돈 처먹었잖아.”
“그게 문제라니까........! 이거 보여 줄게. 필요하면 가져.”
주위를 둘러보던 한 국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봉투 안에서 그가 받았던 우편물을 권 종호에게 내밀었다. 건네받은 봉투를 열어보는 권 종호의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가 도난당했던 비자금 조성과 거래 명세에 관한 글이었다. 누군가 그가 계획하고 있는 물류센터 건립을 방해하려는 목적이었다.
“어떤 놈이야.......?”
“나뿐만 아니라 몇 사람이 이런 우편물을 받았는지는 몰라. 난 손님이 기다려서 가봐야 돼.”
권 종흐의 눈치를 살피던 한 국장이 기다리고 있는 일행에게 다가갔다. 우편물에 첨부된 비자금 명세 복사본을 훑어보는 권 종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발신자는 익명이었다. 그는 멀어져가는 한 국장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좌절감으로 청사를 나온 그는 승용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서재에 침입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물류센터 건립에 문제 제기를 하는 임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반대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쟁업체일는지도 모른다. 서재의 비밀금고는 그의 형이 사용하던 것으로 외국에서 수입한 특제품이었다. 금고를 열수 있는 사람은 권 회장뿐이 없었다.
권 종호는 형이 누군가에게 금고에 대해서 알려줬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가족이나 회사 직원들 중에 관련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족들 중에는 그가 의심 가는 사람은 도희였다.
그는 의심 가는 인물들 중에 아내도 배제할 수 없었다. 지아는 어린 시절에 형의 양녀로 입양되어 어린 시절부터 한 집안에서 자랐다. 여자들과 난잡한 관계로 루머를 퍼트리던 그는 늦은 나이에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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