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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ffair 리뉴얼 - 2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34 2,069회 0건
================================================3장 후기==============================================
리뉴얼을 하다 보니 전보단 분량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본 플롯이다라고 하시는데... 말 그대로 리뉴얼입니다.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수정해서 올리는 글이구요.. 지금으로부터 근 1년전에 써서 올렸던 글이라 소라에서 보셨을지도 모를꺼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 즐감 되시길 바랍니다.

엔리오 모르꼬네 - Love Affair: http://www.youtube.com/watch?v=MTNlTVcpUqQ
링크된 영상은 영화 Love Affair 의 피아노 솔로 부분이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정말 여러차례 봤던 영화지만 아직도 다시 봐도 재미가 있고 그 시절 아네트 베닝의 미모에 볼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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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ove affair 1

"저기....지영이가.... 오늘 추...출국했어요..."

지영이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가슴속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매일 매일 날짜를 보며 나름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급작스러운 출국 소식은 그 동안의 준비를 아무런 소용이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쓰나미처럼 슬픔이 밀려옵니다.
떠나는 지영이를 배웅하지 못한 게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만나고 헤어질 때면 항상 아쉬워 뒤돌아보던 지영이의 모습이 생각나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화가 납니다.
생애 처음으로 사랑이랑 감정을 품게 된 여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하기 그지 없는 제 자신에게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어른이나 학생이나 인간이라면 똑같은 것인데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 버리는 지영이의 부모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마음속의 화는 분노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지영이가 너무나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이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그저 원망스럽게만 보입니다.
끌어 오르는 분노에 주먹을 움켜쥡니다.
그리곤 화풀이라도 하듯 눈앞에 보이는 방문을 주먹으로 있는 힘껏 쳐버렸습니다.

퍽....
.
나무로 된 방문에 주먹보다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렸습니다.
손에선 금세 피가 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 안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 슬픔 속에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있는 힘껏 방문을 발로 걷어차 버렸습니다.
닫혀있던 방문의 경첩이 뜯겨져 나가며 방문이 그대로 앞으로 떨어져 나가버렸습니다.

안에서 일고 있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몸에선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나봅니다.
지영이가 지금 한국에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만지고 느낄 수 없다는 생각에 그저 눈물만 흐를 뿐 이었습니다.

꽤나 큰 충격음에 놀라신 어머니께서 황급히 제 방으로 달려오셨습니다.
눈앞에 벌어진 소란에 적잖이 놀라신 것 같았습니다.
손을 타고 흐르는 흥건한 피를 확인하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시며 제 곁으로 달려와 제 등짝을 때리고만 계십니다.
평소 그렇게나 맵게 느껴지던 어머니의 손끝이 오늘따라 전혀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아픔이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육체적 고통이 잠시라도 마음속의 아픔을 가려주지는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미친놈아 어쩌려고 그래 어쩌려고..."

어머니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분노가 한계치까지 다다르면 사람은 바보가 되어 버리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미친놈처럼 멍하니 서서 그냥 맞고만 서있었습니다.
마음속 분노가 사라져가자 사라진 공간만큼을 슬픔이 다가와 어느새 빈자리를 채워버리고 있습니다.
마음속을 온통 채워버린 슬픔은 멈추지 않고 계속 커져만 갑니다.
입에서 슬픔이 새어 나옵니다.
저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슬픔에 어머니의 눈물은 마를 세가 없었습니다.

들고 있는 전화기에서 지영이 친구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흑흑... 지영이가 많이 사랑한다고..흑흑....여름에 한국에 들어온다고..전해달래요 흑흑흑...그리고 제가 보낸 테이프 꼭 B면까지 들어봐 주세요.... "

실어증에라도 걸려버린 것인지 흐느낌 외엔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저에게 찾아온 사랑이란 놈은 저에게 너무나도 벅찬 행복감을 주었지만 반대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슬픔도 가져다주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다친 손의 치료도 거부한 채 방안에만 처박혀 있었습니다.
차라리 헤어진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슬프지도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아닌 이별이 저에게는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겹기만 했습니다.

결국 왕진을 온 의사에 의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의 병까진 치료가 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같이 죽자 죽어..이 놈아 흑흑흑. 어미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 이 나쁜 놈에 새끼.."

어머니는 오늘도 하염없이 저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계십니다.
이제껏 부모님 뜻을 거스르거나 실망시켜드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저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그저 지켜보시기만 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도 제 방으로 건너 오셨습니다.

짜 악~~~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한쪽 얼굴에 얼얼한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언제나 저에겐 온화하셨고 항상 제 편일 것만 같았던 외할아버지께서도 이 번 만큼은 제 편이 아니신 것 같았습니다.

"아빠 뭐 하시는거에요 지금!! 아픈 애한테~"

예상치 못한 외할아버지의 행동에 울고만 계시던 어머니께서 황급히 외할아버지 앞을 막고 서계십니다.


평소 지영이를 만나러 갈 때면 나가기 전 전 외할아버지부터 찾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용돈.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는 데이트에 턱 없이 부족했기에 저는 항상 외할아버지 방을 기웃거려야 했습니다.

“욘석아... 또 색시 만나러 가냐?”
“네 할아버지 헤헤헤...”
“그 색시가 그래 좋으냐?”
“헤헤헤 당근이죠!!! 할아버지”
“또 돈 달라고?”
“헤헤 넵....”
“옛다.. 쓸 만큼 충분히 꺼내가라 그럼... 남잔 자고로 지갑이 두둑해야 돼”

이렇듯 언제나 제 뒤를 든든하게 지원해 주시던 외할아버지셨는데 오늘은 굉장히 노한 모습으로 제 앞에 마주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후로 네 엄마 눈에 또 한 번 눈물 흘리게 하는 날에는, 네놈은 이 집에서 쫓겨날 줄 알어!!!”

어머니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기골이 장대하신 외할아버지는 꿈쩍도 않고 저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자 봐라. 네놈 몰골을 그리고 니 애미 모습도 한번 보라고. 네 놈 하나 어찌되던 나야 상관 할 바 아니지만. 내 딸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건 내 도저히 못 보겠다. 이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정말 쓰레기 같았습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에 어둡기 그지없는 낯빛. 몇날며칠을 방구석에 처박혀 살다시피 했더니 폐인도 이런 폐인이 따로 없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 또한 눈이 퀭하니 들어가 있고 가뜩이나 마른 몸이 앙상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다시금 어머니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소리내지 않으려고 참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고만 계십니다.

"네가 이럴수록 유학 갔다던 그 처자도 지금의 네 엄마랑 같은 모습일 게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쓰니 정신 좀 차려라 인석아!!! 정 힘들면 내가 티켓이라도 끊어줄 테니 가서 만나고 오던가"

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완치가 되셨다곤 하지만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하는 외할아버지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느꼈던 사랑이란 감정이 마치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제 마음을 옥죄어 오자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송장처럼 누워서 지영이 친구가 보내줬던 지영이의 음성이 녹음되어 있는 노래방 테이프만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만 있었습니다.
몇 번을 반복하며 듣다가 그 마저도 지치게 된 저는 그저 지금의 현실을 잊고만 싶은 마음에 눈을 감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때 노래방 테이프의 A면 재생이 끝났는지 B면으로 자동 재생이 되고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반복해서 지영이의 목소리가 나오는 부분만 돌려들었던 저는, 순간 지영이의 친구가 해준 말이 이제야 떠올랐습니다.
‘꼭 B면까지 들어봐 주세요..꼭~’
지영이와 마지막을 함께 했을 때의 노래방 테이프.
정작 노래는 몇 곡 부르지도 않고 사랑을 나누기에 바빴던 지영이와 나.
덕분에 A면도 다 채우지 못했기에 이제껏 B면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딸칵딸칵..
잠시 동안 적막감이 흐르던 스피커에서 녹음을 하기위해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마이크를 잡고 목을 가다듬는 지영이와 정은누나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아.아....아..아.. 이거 잘되는 맞지?)
(될꺼야 아마.. 녹음 끝나고 확인해 보면 되지 지지배..)
(아... 이거 왜 이렇게 부끄럽지....아...아..)

지영이의 목소리에 또 다시 눈가가 시큰거려옵니다.

<안녕 지섭아, 네가 이걸 받아서 확인하고 있는 시간에 나는 일본에 있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서 울고만 싶은데...내 우는 목소리가 들리면 네가 슬퍼할까봐 차마 울지도 못하겠어....
일본에 도착하면 꼭 우편 보낼 테니까 슬퍼하고 있지만 말고 밝게 지냈으면 좋겠어.
비록 지금은 옆에 있지 못하지만 일본도 한국도 결국은 같은 하늘 아래 있다고 생각해..
너와 나는 멀리 있지만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
지금 네가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하늘은 내가 방금 전에 너를 향해 바라본 하늘이라고...
혹시라도 슬퍼 질 때면 우리 앞으로 만날 날을 생각하며 힘냈으면 좋겠어.
나는 우리 지섭이가 아파하지 말고 내 말 잘 따라 줄꺼라고 생각할게...>

바보 같이 그녀가 슬퍼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눈물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노래가 아닌 오랜만에 듣는 맑고 차분한 지영이의 육성에 마음속이 벅차올라서였습니다.
죽어있던 심장이 다시 살아나 숨을 쉬는 것만 같았습니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백색잡음에 녹음된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찰나 지영이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부모님... 내가 공부를 못해서....내가 사귀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길 바라셔....
딴 생각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줘 나를 위해서...
네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우리 부모님의 시선도 바뀌실 거야 분명히...
앞으로 3일 남았는데 너와의 추억들을 마음속에 하나씩 챙겨보니 어느새 마음속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이 뜨거워진 마음 다음 만날 때까지 식지 않도록 할게. 너도 그럴 수 있지?
나 없다고 딴 여자들한테 눈길 주지 말고 알았지? 사랑해 무지 많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니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90년대 엄청난 빅히트를 쳤던 원태연님의 시를 인용한 것입니다.)

(녹음 제대로 된 거니? 녹음 되었나 확인해 보자.......딸깍)

이렇게 아둔하고 미성숙한 저에게 보내는 그녀의 음성과 마주하게 되자 그동안의 아픔이 눈 녹듯 씻겨내려 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지영이에게도 지영이 부모님에게도 그리고 저희 부모님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어서 떳떳하게 지영이를 만나겠다고....

그 뒤로 저는 마치 지난 일은 기억에도 없는 듯 정말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티켓약속을 믿고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여름방학이 오기만을 바라며 학업에만 매진했습니다.
제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아니 전보다 더 근면성실한 제가 되자 지켜보기만 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는 제게 커다란 선물 하나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서울에 볼 일이 있다면 이른 새벽부터 출타를 하신 외할아버지께서는 늦은 저녁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암 판정 이후 절대 입에 대시지도 않던 약주까지 하신 외할아버지께서는 집에 오시자마자 저를 불러 앉히셨습니다.

“지섭아.... 그 색시랑 너랑 연은 연인가 보다”

뜬금없는 외할아버지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알고 보니 그 색시 부친이 나랑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더구나 허허허...”
“지..지영이네...아....아버지요?”
“그래.. 얘기를 해보니 xx건설 임원이더구만”
“저...정말이에요?”
“욘석이 속고만 살았나,,, 이 할애비가 비싼 밥 먹고 너한테 농을 하겠냐”

저는 할아버지가 건네주시는 지영이 아버지의 명함을 통해 두 분이 만나고 왔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전 뛸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아 우리집이 너무 꿀리는 거 아닌가..’
금세 표정이 시무룩해지자 외할아버지께서는 그런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나봅니다.

“인석아 쫄 거 없어.. 이 할애비가 있는데! 그리고 여기 그 색시 일본 주소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입고 계시던 한복 안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내 주셨고 그 메모지에는 정말 일본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색시 공부는 영 잼병인 것 같더라 들어보니.., 서울에 있는 4년제엔 들어갈 실력이 안 돼서 유학이라도 보낸 거더구나. 내 그래서 그랬지 우리 손주는 한국대 갈 거라고 허허허허..”

평소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디 가서도 이 할애비 이름 석자만 대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꺼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곤 하셨는데 그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할아버지 덕택에 그 뒤로 저와 지영이는 편지로라도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영이는 자신의 용돈 일부를 투자해 편지와 함께 제가 좋아하던 가수의 앨범을 사서 소포로 보내주곤 했습니다.
오늘도 전 지영이가 보내준 X-Japan, 아무로 나미에의 싱글앨범을 들으며 지영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다가왔고 지영이가 한국에 온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저의 지영이가 한국에 온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어 왔습니다.

지영이가 입국하기 하루 전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지영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한동안 테이프로만 듣던 지영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치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었습니다.

"지섭아, 많이 보고 싶어~ 입국할 때 마중 나올 거지? 우리 부모님이 너와도 괜찮다고 하셨어"
"응 그럼.. 나두 너무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치겠어.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헤헤"

다음날 공항에 나가 지영이를 이른 시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에 며칠간을 제대로 잠을 못자 피곤하긴 했지만 지영이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새벽부터 준비를 하고 나왔습니다.

게이트를 통해 지영이가 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동안의 얼마나 마음고생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젖살이 쏙 빠진 게 전보다 성숙해 보였습니다.
옷차림도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달리 몰라보게 야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지영이가 저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제 쪽으로 달려 나오고 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온 지영이가 제품에 안깁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보고 싶은 마음에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안겨 있는 지영이의 얼굴을 제품에서 꺼내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있는 힘껏 그녀를 안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온기도 채 느끼기 전에 지영이가 다급하게 제 품에서 떨어졌습니다.

“아빠~~ 엄마~~~”

지영이의 말에 급격히 몸이 굳어져만 갔습니다.
남자가 불알 두 쪽 가지고 태어난 이상 모든 일에 있어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늘 외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곤 하셨는데 지금 만큼은 그 뜻을 따를 수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점점 그녀의 부모님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엄습해 오는 긴장감에 아랫도리마저 쪼그라들 지경이었습니다.
지영이 눈에도 제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지나 봅니다.

“긴장하지 말고 잘 들어... 우리 아빠는 넉살 좋은 남자를 좋아하셔. 하지만 너무 실없어 보이는 남자는 질색을 하시니 조심하고, 특히 거짓말 하거나 과장하는 거 엄청 싫어하니 진짜 조심해야 돼.. 그리고 우리 엄마는 무조건 내편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무조건 외모 칭찬해주면 좋아하시니까 칭찬을 많이 해드려.”
“어? 어어...”

지영이가 알려 준 말들을 되뇌고 있는 사이 어느덧 그녀의 부모님이 눈앞에까지 다가와 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첨 뵙겠습니다. 임지섭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지영이 애빌세..”
“호호호. 반가워요 지영이 엄마에요..”

삭막하고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분위기는 딱딱하지 않았습니다. 예전 지영이 아버님과의 통화에서 느꼈던 그런 매몰참은 느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외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지영이 아버님의 마음을 돌려놓기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첫 만남부터 밝게 웃어주시는 지영이 어머님의 미소에 긴장감이 한층 풀리고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지영이가 귀띔한대로 말해보기로 했습니다.

“지영이가 왜 이렇게 예쁜건가 했는데 아버님 어머님께 감사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말하면서 조금 민망한 생각도 들었지만 확실히 지영이의 속성과외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자네... 식사 안 했으면 가서 식사라도 같이 하지”

이곳에 올 때만 해도 그저 잠시 지영이를 보고 집으로 가야겠거니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전 그녀의 집까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지영이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 하는 자리라 여전히 부담스럽긴 했지만 지영이가 계속 옆에 있으니 마음속이 든든했습니다.

다 같이 지영이 아버지의 차에 올라 그녀의 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지영이 어머님께서 식사 도중 제 손이 자주 가는 음식들을 일부러 제 앞으로 놔주시는 통에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이래서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하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사위가 아닌 겨우 딸의 남자친구인 정도의 자격이었지만 저를 신경써주신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무척 기뻤습니다.

식사 도중 지영이 아버님께서는 저의 미래에 대해 꽤나 궁금하셨는지 넌지시 제게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어느 학교 무슨 과를 갈 건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등등 궁금한 게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최선일 듯 했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할 지 아니면 관심이 생기는 쪽으로 선택할 지 솔직히 아직까진 제대로 정하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큰 명제 하나는 생겼습니다. 부모님들에게나 지영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고 싶다구요.”

저의 솔직한 대답이 나쁘진 않았는지 잠시 동안 지영이 아버님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보였습니다.

한편 지영이는 식사를 하면서도 제 옆에 꼭 붙어서 한시도 제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반년사이 지영이는 외적으로 꽤나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식사 도중 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는 지영이의 눈빛과 마주칠 때면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색기가 물씬 풍겨오는 통에 저도 모르게 오금이 절여올 지경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저희는 지영이의 베프인 정은이누나 커플을 만나기 위해 한 때 자주 갔던 커피숍으로 향했습니다.
커피숍에 입구에 다다르자 지영이는 기다렸다는 듯 과감하게 제 목에 팔을 감고는 안겨옵니다.
오랜만의 애정행각이라 그런지 저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게 됩니다.

“치....뭐야... 식었어...”

제 행동이 못마땅했던지 지영이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는 눈에 힘을 주고 있습니다.
마침 전에도 보았던 직원분이 아직까지 저희를 알아보는지 급하게 저희가 늘상 앉던 자리를 빠르게 치워주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무척이나 익숙했던 그 자리에 다시 앉게 되자 예전에 지영이와 나누었던 행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좀 전의 일로 뾰로통해있는 지영이에게 다가가 최대한 붙어 앉았습니다.
그리곤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갔습니다.
가볍지만 진심을 담은 키스가 연이어 이어집니다.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키스였지만 어느새 저와 지영이의 얼굴은 상기되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죽어 있던 연애세포들이 다시 파릇파릇 깨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키스의 농도가 깊어져 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저 또한 전처럼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흥분한 나머지 지영이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제 몸은 예전의 학습 진도를 금세 따라잡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의 오랫동안의 공백은 오히려 저를 더욱 과감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 손을 치마 안으로 집어넣어 단숨에 팬티 위로 그녀의 은밀한 곳을 만져나갑니다.
전에 느꼈던 지영이의 몸이 다시 제 손 안에 들어와졌습니다.
비록 높은 등받이에 구석인 자리라고는 하나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일 법도 한데 한번 붙어진 불은 점점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팬티 위로 지영이의 통통한 보짓살이 느껴져 옵니다.
제 손을 타고 움찔대고 있는 그녀의 몸이 흥분을 배가시키고만 있습니다.

지영이의 몸을 만지는데 몰두하고 있는 사이 무언가 제 바지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전 모든 행동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그녀의 몸에 빠져있는 사이 벨트가 지영이의 손에 의해 풀어진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리드미컬하게 안쪽을 헤집고 다니던 지영이의 손이 쿠퍼액으로 이미 젖어버린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아~~~”

지영이의 손이 쿠퍼액으로 젖어버린 그곳을 부드럽게 매만져주고 있습니다. 약간 까칠까칠한 면 재질의 팬티가 귀두를 자극하며 깊숙한 곳으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옵니다.
당황할 겨를도 없이 지영이의 과감한 손놀림에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잠시간을 팬티 위에서 움직이던 지영이의 손이 옆트임이 있는 공간을 통해 팬티 안으로 순간 들어와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려졌습니다.
부드러운 손의 감촉과 온기가 고스란히 자지의 기둥을 타고 올라와 귀두까지 잠식해버립니다.
흥건하게 흘러나온 쿠퍼액을 엄지로 찍어먹는 몇 번을 두드리고는 귀두 위에서 부드럽게 펴바르듯 문지르기 시작합니다.

“으윽..”

지영이의 손길에 호흡이 가빠지고 정신이 몽롱해져만 갑니다.
“아주 모텔을 차려라 모텔을 어?!!! 너....너 이기집애 손...손손...~~~”

어디선가 들어봤던 농담조의 말투에 감겨있던 눈이 번쩍 떠지고 맙니다.
재빠르게 자세를 고쳐 앉고 싶지만 지영이의 손이 미쳐 제 바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은이 누나는 지영이의 손의 위치를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좋았으련만 눈치 없이 이때 나타난 정은이 누나커플이 조금은 얄밉게 느껴졌습니다.
정은이 누나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자마자 저희 둘을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때 좋았어?? 좋은 거 같은데~~ 어머 얘 얼굴 좀 봐 어떡하니~~어떡해~~ 나갔다 쪼금 있다 올까? 호호호호호”“

빨갛게 상기된 제 얼굴을 가리키며 정은이 누나는 저를 또 약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지영이와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다 정은이 누나 덕분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둘이 만나자 이야기꽃이 펼쳐집니다.
좀 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던 저는 얘기를 나누고 있는 지영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순간 살짝 고개를 돌려 눈치를 주긴 했지만 지영이는 제 손을 결코 제지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허벅지를 지난 손은 사타구니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저만을 위한 망각의 샘물로 이끌려가고 있습니다.
샘물 위를 덮고 있는 얇은 천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얘기중인 지영이가 가끔씩 움찔하며 저를 흘겨보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저의 손짓에 넘쳐흐르기 시작한 샘물은 그 얇고 보드라운 천을 살포시 적셔가기 시작합니다.
정은누나가 지영이의 미세한 표정변화를 알아차렸는지 시선을 저에게 옮겨 한번 흘겨보고는 바로 테이블 밑으로 고개를 내려 제 손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이거 봐라 아주 이거.... 아주 지영이 죽을려고 하네... 모텔을 가지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니?”

정은누나의 말에 지영이가 저를 다시금 흘겨보고는 가볍게 제 가슴을 양손으로 두드립니다.
저만 좋으라고 한 스킨쉽이 아닌데 왜 저를 때리는 걸까요.
정은누나 말대로 모텔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그 둘은 다시금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된 거 전 대담해지기로 했습니다.
얘기 중이던 지영이의 허리를 팔로 감아 그대로 잡아당겼습니다.
힘없이 그대로 제품 속으로 빨려 들어와 안깁니다.
지인의 눈앞에서 대담하게 애정행각을 버리고 있는 저를 생각해보니 격세지감이란 말을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거 같았습니다.
정은 누나의 시선에 차마 가슴까지는 만질 수 없었기에 제 손은 다시금 지영이의 치마 속을 헤집고 들어갔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지영이와 함께 있으면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만 갔습니다.

아쉽지만 저는 아직 대한민국의 고3이다 보니 오랜 시간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터미널에서 진한 포옹을 나눈 후 저는 집으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그 뒤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지영이와 전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데이트를 이어갔고,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만 흘러갔습니다.

점점 지영이의 출국날짜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은 희망이라는 것이 있기에 그녀가 출국을 하더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면 이내 겨울은 올 것이고 저는 지긋지긋한 고등학생에서 해방이 되어 지영이를 더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만나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남은 시간을 더 애틋하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와는 달리 지영이는 하루하루가 점점 조급해져만 갔습니다.
저와 떨어져야만 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지영이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이 자신에게 너무나 맞지 않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지영이에게 일본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출국하기 3일전 지영이는 부모님에게 일본으로 가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가출을 감행했습니다.

"지섭군. 오늘도 지영이한테 연락 온 게 없나?"

지영이 어머님의 전화였습니다.
벌써 1주일째 매일 같이 저에게 연락을 해오고 계시지만 저 또한 지영이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에 저 역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결국 정은누나가 연락을 해와 어렵사리 지영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저는 지영이 몰래 지영이의 부모님도 함께 모시고 나왔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울어대는 지영이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 마음이 쓰려왔습니다.
지영이의 얼굴에서 부모님을 말도 없이 모셔왔다는 원망 섞인 눈빛과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지영이의 눈빛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집요한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지영이의 고집을 두 분 다 꺾지는 못하셨나 봅니다. 결국 유학은 가지 않는 대신 지영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성우를 하기 위해 국내 대학에 수능을 보고 입학하기로 하였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지만 졸지에 지영이도 수험생이 되어야 했기에 수능까지는 서로 만남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밤에 잠시 통화하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더딜 것만 같던 시간은 흘러 수능을 마치고 저희는 다시 재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즐거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예정대로 특별전형으로 명문 한국대의 영어교육과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허나 지영이는 자신의 바람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지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나 봅니다.
그나마 과외를 해서 어느 정도 성적은 나왔지만 반년 이상을 손을 놓고 있다 다시 한 공부라 성적이 신통치 않게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영이의 부모님은 재수를 염두해 두고 계셨지만, 지영이는 지방에 있는 연극영화과에라도 들어갈 태세였습니다.
저 또한 지영이가 재수를 해서라도 서울 소재의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랐지만 지영이는 또 다시 1년을 수험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상당했습니다.
결국 지영이는 자신의 고집대로 강원도 춘천에 있는 대학교의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단 나중에 편입을 통해서 서울소재의 대학으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였습니다.
저는 이제야 같은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지영이가 강원도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하는 수 없이 또 주말 연애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외할아버지는 강남에 위치한 자신의 건물에 거처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서울은 지영이를 만나면서부터 자주 들락날락 거리긴 했지만 이제 이곳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도 성인이라는 생각에 굉장히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에 있는 일가친척이라고 해봐야 외가쪽 사람들만 있다 보니 거의 저 혼자 서울에 똑 떨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마련해 주신 집은 저 혼자 쓰기엔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각종 생활가전제품과 가구까지 새것으로 다 들여 놓으셨고 요리도 할 줄 모르는 저인데 주방용품까지 다 비취를 해두셨습니다.
방은 2개였지만 굉장히 넓었고 아무리 봐도 혼자서 생활하기엔 쓸쓸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대학교에 합격하자마자 전 운전면허 학원부터 등록을 하였습니다. 내년부터 면허시험 제도가 바뀐다는 말에 부모님이 서둘러 학원에 등록시켜주셨고 한 번 만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저는 외할아버지가 약속해 주신대로 자동차를 입학기념 선물로 받았습니다.
비록 국산차긴 했지만 준중형에 꽤나 고급스러워 대학생인 제가 끌고 다니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거기에 뽀너스로 할아버지께서 기름값에 식비로 쓰라고 카드까지 만들어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자신이 벌어서 충당해야 한다며 한사코 외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카드를 빼앗으려 했지만 외할아버지께서는 남자는 지갑에 돈이 있어야 사회생할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끝끝내 제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서울로 일찌감치 올라온 저는 틈만 나면 지영이와 만나고 있었고 지영이를 만나는 거 외엔 특별히 할 게 없던 저는 다시금 인터넷 채팅으로 인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지영이가 다녀가고 혼자 심심하게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인터넷 머드게임을 잠시 해보았지만 예전처럼의 재미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영이와 만나게 해준 그 채팅사이트로 들어가서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과 가볍게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서울에 거주하는 누나들, 형들,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저에게 있어 이들은 길잡이가 되어주었고 동호회에도 가입하여 가끔씩 술도 마시면서 친목을 도모해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동호회 사람들과 영화벙개를 하고 집에 오자마자 천리안에 접속을 했습니다.

접속하자마자 지인들로부터 쪽지가 쇄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는 일 없는 방학이라 거의 채팅 싸이트에서 나머지 시간을 다 소진하던 터라 이쪽저쪽으로 금세 인맥들이 형성이 되었고 소히 말하는 말빨도 많이 늘어서 어느 방을 들어가던 환영을 받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얌마 언제 오는 거야 기다리다 지쳐서 먼저 간다"
"야 지금 홍대쪽에서 오빠들 만나서 술 한잔 할 건데 이거 보는 대로 빨리 연락해라"
오늘도 한잔 하고 있나봅니다.
급한 마음에 차를 가지고 부리나케 모임이 있는 홍대의 한 술집으로 나갔습니다.
술집에 도착하자 저를 알아보시는 형님들이 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야~~ 우리 막내 오셨네.... 어이 임지섭~~ 머가 그렇게 바빠서 요새 얼굴보기도 힘드냐” 촉새 같은 종식이 형이 저를 반기고 있습니다.

언제나 술자리에서 막내였던 저는 일일이 참석해 있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임엔 어지간해서 빠지지 않고 다 참석을 했었는데 오늘 따라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왔는지 못 보던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인사를 하며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도중 뉴페이스 한 분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눈에 봐도 꽤나 서구적인 몸매에 얼굴은 그와 반대로 무척이나 단아해 보였습니다.
몸매도 몸매지만 저의 이상형인 탤런트 박주미를 연상시키는 외모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간히 보여주는 수줍은 듯한 미소는 보는 사람 모두를 빠져들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런 그녀를 그저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대화명은 Model77이라고 하구요 21살 한희연이라고 합니다."

서울아가씨 특유의 발랄함과 희고 깨끗한 얼굴이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이내 빠져있던 정신머리를 붙들고 형들과 누나들과 어느새 농담 따먹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웃고 떠드는 통에 서로 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그녀가 제 옆에 와서 앉고는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들으니 한국대 이번에 들어갔다며? 나도 한국대 다녀. 사진학과96학번이야. 내가 너보다 한 살 위니 편하게 부를게, 너도 누나라는 호칭만 써주고 편하게 말해~"

꽤나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말투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금껏 이렇게 아름답고 단아한 이미지의 여자는 본적이 없던 저로써는 평소답지 않게 움츠러들기까지 했습니다.
희연누나와의 대화는 주로 희연누나가 묻고 제가 대답하는 형태였습니다.
먼저 제가 말을 걸어 물어보기엔 엄두가 안날 정도로 부담스럽게 예뻤습니다.

"너는 애인 있니? 키도 크고 마스크도 서구적으로 생긴 게 꽤나 여자 울리고 다녔겠는데?"

희연누나가 보기에도 제 외모는 여자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인 거 같았습니다.

"네 저보다 한 살 위인데 빠른 78인 여자 친구가 있어요. 고2 겨울방학부터 사귄"

제 말에 희연누나가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저도 희연누나가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저 미모에 저 몸매면 남자들이 줄을 서고 있겠지.."

"누나는 애인 있으세요?" 제 말에 희연누나는 알듯 모를 듯 미소만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아니 없어..... 왜 없으면 한명 소개 시켜 줄려고?"

정말 의외였습니다.
저렇게 엄청난 매력으로 똘똘 뭉친 누나에게 남자친구가 없다니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우 남자들 눈이 삔 거 아니에요.. 누나처럼 아름다운 여자...."

은연중에 저도 모르게 제 마음속에 있는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잠시 당황해 하는 저를 보며 희연누나가 함박웃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 미소에 그저 화석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야 이 짜식아~~ 넌 여자친구도 있는 놈이 어디 침이나 질질 흘리고 있고..."
종식이 형이 저에게 핀잔을 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이해라도 할 텐데 여성편력이 화려한 사람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하니 콧방귀가 절로 나왔습니다.
더군다나 여자친구 몰래 작업을 걸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대화 몇 마디를 한 것밖에 없는데 말이죠.

하지만 종식이형 말대로 저는 그날 술자리에서 지영이 이외의 저를 가슴 뛰게 만든 그녀에게 잠시 빠져있었습니다.
누나도 왠지 제가 싫지는 않은 듯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로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여자친구가 있지만 저도 본색이 남자인지라 대화를 하면서도 제 두 눈은 은근슬쩍 희연누나의 몸을 훑어보고 있었습니다.
키는 170은 약간 넘어보였고. 까맣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릿결은 자연스럽게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눈썹은 초승달 형태로 부드럽게 나있었으며,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 오똑하게 뻗은 코와 약간은 도톰한 입술, 동그란 이마, 희고 맑은 피부까지.... 도무지 결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빼어난 미모였습니다.
결점이라면 결점인 입술 위의 자그마한 점까지 꽤나 섹시해 보였습니다.
가느다란 목을 지나 움직일 때 마다 살짝살짝 보여지는 쇄골과 그 쇄골아래 볼록 솟아있는 가슴...
골반을 더 주목시키게 만들어주는 잘록한 허리와 s라인의 정점을 찍듯 살짝 업 되 있는 엉덩이 그리고 곧게 쭉 뻗어있는 다리는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완벽한 여자도 있구나’ 란 생각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오늘 쪽지를 못보고 지나쳤으면 아마 평생을 후회할 지도 모를 뻔 했습니다.
이런 여신이라면 아는 사이로라도 지내면 굉장히 좋을 거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그날 술자리가 끝날 때 까지 희연누나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물론 그녀가 예뻐서였던 것도 있지만 의외로 저랑 통하는 구석도 많은 게 대화를 나눌수록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술자리가 끝나고 대리를 불러 기다리는 사이 희연누나가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넌 집이 어디니?”

그렇게 오래 동안 대화를 나눴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어디 사는 곳조차 몰랐습니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우연히 사는 동네도 같았습니다.
거기다 거리도 그다지 멀지는 않은 거 같았습니다.

"누나~~ 동네도 같은데 그럼 같이 타고 가시죠"

급하게 차 뒷자리의 지저분하게 놓여 진 것들을 치우고 누나를 뒷좌석에 태우곤 같은 모임의 형까지 앉히고 나서야 출발을 했습니다.
보조석에 앉아 있지만 자꾸 누나의 모습을 룸미러로 쳐다보고만 싶어집니다.
룸미러로 통해 벌어진 다리 한쪽이 살짝 보입니다.
너무나 잘빠진 각선미에 눈이 잠시 머무릅니다.
제 시선이 느껴지기라도 한 것일까요.
갑작스레 희연누나의 다리가 오므려지며 룸미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아쉽지만 눈요기는 여기까진 봅니다.
미련을 떨치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봅니다.
뒷좌석에서는 형님과 희연누나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귓가에 들려옵니다.
아무래도 그 둘은 이미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걸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를 질투심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희연누나 보다 덜 예쁠진 몰라도 제 눈에 너무나도 예쁜 지영이가 있는데 왜 제가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CD플레이어에 CD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려 서울 시내 야경에 잠시 빠져봅니다.

한참을 지나 집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희연누나의 집까지 바래다주려했지만 누나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고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가버립니다.

혼자 집에 들어온 저는 잠시 아까 술집에서 본 희연누나의 모습을 복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와서도 자꾸 눈에 아른거리는 게 아무래도 제가 미쳤나 봅니다.
이러면 지영이에게 너무 미안해진다는 생각에 결국 머리를 흔들어 봅니다.
애써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희연누나를 지우고 잠을 청해 봅니다.


오늘 지영이가 결국 강원도로 내려갑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매일 봐 온 지영이지만 내일부터는 전처럼 주말연애를 해야 한다는 아쉬움에 한숨이 터져 나옵니다.
아직까지 서로의 몸을 만지고 애무하는 것 외에는 진전이 없던 저로서는 마음 한구석에 불안한감이 남아있었습니다.
지영이를 보조석에 태우고 어머니를 뒷좌석에 모시고 강원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어머니만 안계시면 데려다 주고 하룻밤 같이 보내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머님이 계신 이상 지영이를 데려다 주고 같이 어머니랑 올라와야 했습니다.
"그래 오늘만 날이냐, 앞으로 우리에겐 많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데"
집은 알아뒀으니 시간 날 때 찾아가서 하룻밤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영이의 어머님과 같이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어머님은 저를 연신 흐뭇하게 바라보십니다.

"지섭아, 지영이랑 떨어져서 많이 섭섭하지?"

명문대 입학예정인 저에게 지영이의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제 저를 편하게 불러주십니다.
전에도 물론 그랬지만 요즘 들어 저를 진짜 가족인 것 마냥 살뜰하게 대해주고 계십니다.

"지영이가 편입할 수 있게 공부 좀 잘 봐주고 그래~~~ 만나면 너무 놀지만 말고"

저는 어머님의 말씀처럼 지영이의 편입을 도와주기 위해 나름대로 플랜까지 짜 두었습니다. 내려가기 전에 교재도 같이 가서 고르고 주말에 다닐 학원도 같이 보러갔습니다.
전 지영이와 함께라면 지옥에라도 쫓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결혼까지도 염두해두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 희연누나의 생각이 안 났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제가 진정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지영이였기에 그녀에게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영이가 강원도로 내려 간 후로는 희연누나를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희연누나를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 와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옷과 신발을 사기 위해 희연누와 같이 쇼핑을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당시 서울 고딩들이 선호하는 옷은 힙합패션 이었습니다. 엄청 넓은 통에 길이가 길어 길바닥청소를 할 정도였고 그와는 달리 청주는 골프용 바지와 폴로티가 유행이었습니다.
저 또한 패션은 아직까지 고딩 때의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강하기 전에 미리 스타일을 좀 바꾸고 싶었습니다.

희연누나를 만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왜 이렇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옷가지들을 사기 위해 만나는 것일 뿐인데 말이죠.
잠시 뒤 눈앞에 천사가 다시 재림을 하였습니다.
주변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천사에게 쏠리고 있습니다.
그 천사는 살짝 제게 다가와 팔짱을 걸고는 저를 이끌어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주변 사내놈들의 질투어린 시선이 느껴졌지만 내색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저도 모르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우선 희연누나는 저를 남성복 매장으로 데려갔습니다.
언제라도 슈트 한 벌은 필요하다며 이것저것 제 몸에 옷을 가져다 대보며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 옷태를 점검하는 희연누나의 시선과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순순해 보였는지 희연누나는 연신 미소로 저를 대해주고 있었습니다.

“이게 어울릴 거 같다. 들어가서 갈아입고 와봐”

와이셔츠와 자켓, 바지를 들고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어 봤습니다. 핏한 느낌의 슈트는 처음입어 보는 것이었지만 몸에 감기는 느낌이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슈트에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희연누나는 갈아입고 나온 저를 보고는 엄지를 치켜들며 맘에 들어 했습니다.

“역시 키가 크고 등빨이 있으니 슈트가 딱이다~~~신발만 어떻게 하면 되겠는데 호호호”

저는 어색하게 계속 거울을 쳐다보며 달라진 제 모습에 마냥 신기해했습니다.
제가 봐도 슈트가 꽤나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옷이 날개다’ 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다음으로 캐쥬얼 샵으로 가서 몇 가지의 남방과 청바지를 샀습니다.

“요즘 유행인 게 힙합바지나 통바지인데 너무 유행대로 입는 것도 별루인거 같아 그냥 무난한 스탈일이 학생한테는 더 나을꺼야.”

희연누나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 주고는 이것저것 골라와 또다시 제 몸에 대어보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한참을 몸에 대보고 나서야 초반에 보았던 옷을 골라 다시 몸에 걸쳐 보고 있습니다.

“이게 좋겠다. 레이어드로 입을 수도 있으니 요게 딱 인 것 같다.”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누나가 보기에 괜찮으면 괜찮아 보이는 것이겠죠.
결국 신발까지 사고 나서야 쇼핑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흔히들 남자들은 쇼핑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이런 미인과라면 과연 그 쇼핑을 마다 할 남자가 있을까 했습니다.

“고생했는데 저녁은 내가 쏠게 누나"
"고생은 무슨~~ 괜찮은데..... 흠 그럴까 그럼? 근데 나 솔직히 남자친구랑 이런대 와서 옷 같은 거 골라주고 그러는게 나름 로망이었거든 호호호. 내가 골라준 거 입은 네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서 나도 나름 소원성취 한 기분이네 호호호호..“

분명 ‘남자친구’라고 한 것 같았습니다.
‘혹시 설마.....에이~~~ 아닐거야...’
희연누나가 뭐가 아쉬워서 여자친구도 있고 게다가 연하인 저를....
‘나름 소원성취’란 말이 갖는 뜻은 아마도 남자친구랑 와서 골라주고 싶었는데 너라도 대리고 와서 해보니 즐거웠다 정도의 말이었을 겁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흘깃 흘깃 곁눈질로 누나를 쳐다봤습니다.
제 곁눈질이 자꾸 신경이 쓰였는지 음식을 먹던 누나가 저를 갸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야~~ 보려면 자신 있게 보던가... 그렇게 자꾸 쳐다보면 먹다가 채하겠다 얘~~”

제 곁눈질이 너무 심했나 봅니다.
누나의 말에 너무나 창피했지만 아름다운 이성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저의 눈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너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니? 지금 여자친구랑 가까워?”

잠시 희연누나의 말에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이상형과는 역시 거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웃으며 희연누나를 쳐다봤습니다.

‘누나 같은 사람?’
하지만 그걸 입으로 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음~~지금의 여자친구와 이상형과는 거리가 있는데. 내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좀 감성적으로 풍부한 편이라.... 실제로 여친과는 취미생활이란 걸 같이 해보지지는 못했거든.
그리고 머 딱히 이상형을 정하고 산건 아니지만 이런 건 있어. 같이 영화나 보거나 음악을 듣고 같은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는 거,,,, 그런 내 감성과 맞는 사람이 이상형인거 같아.“

희연누나는 갑작스럽게 진지해진 제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은 뭘 좋아하는데?”

“내가 워낙 잡식성이라, 어렸을 때는 어머니 덕에 클래식을 많이 좋아했고 커가면서는 락이나 알엔비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J-POP을 좋아하는 친구 덕에 그쪽에도 흥미가 생겼고, 그리고 요새는 엔리오모리꼬네 같은 뉴에이지 음악도 좋아하고. 결국 가리는 건 없는 것 같은데 헤헤”

“오~~~ 나도 엔리오모리꼬네 무척 좋아하는데~~ 그 머더라 영화에서 나온 건데 피아노 앞에서 짧은 머리의 여자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허밍하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Love Affair를 말하는 거 같았습니다.

“크크 그거 Love Affair란 영화잖아. 머리 짧은 여자가 ‘아네트 베닝’이구, 남주가 ‘워렌비티’ 잖아. 그거 무지 유명한 영환데.. 리메이크만 2번이나 된!!! 나도 그 곡 무지 많이 연주했는데,,, 한때 ‘아네트 베닝’에 꽂혀서... 완전 미모 폭발이었는데 아네트 베닝~~. 우아함의 극치였다고나 할까 크크크크”

“오~~~ 너 피아노도 칠 줄 아니? 저기 아까 들어올 때 보니 피아노 있던데 한번 쳐주면 안 돼? 응?”

저는 무턱대고 피아노를 쳐달라는 희연누나의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희연누나의 눈빛을 차마 거절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랑이 Yes를 외칠 때 당당히 No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희연누나를 보고선 감히 No를 외칠 수 가 없었습니다. 그 어떤 남자라도 희연누나의 모습을 본다면 감히 거절의사를 나타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미리 밑밥을 깔아야 했습니다 .

“이거 안친지 1년도 넘은 곡이라 틀릴 수도 있어. 더군다나 이곡은 내여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여자에게 처음으로 쳐주고 싶었던 곡인데... 아직 지금의 여자친구에게도 한 번도 쳐주지 않은 거라고”

“야 뭐가 그렇게 거창하니... 그만 말하고 빨리 가서 쳐봐~~~ 빨리~~”

어쩔 수 없이 저는 마지못해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마냥 희연누나에게 끌려서 피아노 앞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매니저로 보이는 분이 제게 와서 피아노 전공자냐고 물어봅니다.
잘하면 안쳐도 될 것 같았습니다.
"아니요" 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도는 사이 희연누나가 선수를 칩니다.

"네 전공자에요~~"

결국 희연누나의 손에 이끌려 피아노에 앞에 앉자 식사중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제게 쏠려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런 상황에 놓이자 손이 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 앞에서는 수도 없이 쳐본 피아노였지만 희연누나 앞에서 피아노를 치려니 저도 모르게 떨려왔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잠시 희연누나를 쳐다봤습니다.
무척이나 기대하는 눈빛에 실수라도 할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너무나 익숙하고 손쉬운 코드로 진행되는 곡이라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에 악보를 떠올리며 떨리는 손을 건반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았습니다.
스르륵 손이 움직여 갑니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에 맞춰 자동적으로 머리가 움직여 갔습니다.
연주하는 사람의 따라 같은 악보라도 다르게 들려오는 피아노.
저는 영화를 보며 느꼈었던 감정을 이곡에 담아 연주를 하였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작은 박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리로 돌아왔지만 희연 누나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미소를 띤 채 앉아 있었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누나의 감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 또한 누나의 기분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거리엔 봄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비에 희연누나는 잠시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습니다.

"여기 있다!!. 혹시나 해서 챙겨 넣었는데 다행이다 그치?"

팬시한 느낌의 3단접이 우산이 보입니다.
희연누나는 기분이 좋은 듯 애들처럼 우산을 마구 흔들어 보입니다.

"누나 그거 무지 작은데요..... 하긴 누나한테야 맞겠네."

"무슨~~~ 이거 둘이 쓸 수 있어 이리 와 봐~~~"

제 눈에는 너무나도 작은 우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2명은 너끈하다며 누나는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누나의 재촉에 어설프게나마 옆으로 들어가 서보았습니다.
못해도 제 몸의 1/3은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습니다.

"이봐.... 너무 작다니까.. 그냥 누나나 써.. 그러다 코트까지 다 젖겠다."

그러나 희연누나는 고집을 꺾지않고 저를 다시 불러 세우고 있습니다.

"야 그렇게 벌어져서 서있으니 그런 거지!!! 이쪽으로 와서 이렇게 서봐!!!"

졸지에 저는 희연누나의 몸 바로 옆에 붙게 되었습니다.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로 잠시 서있자 희연누나의 손이 제 손으로 다가와 잡아들고는 자신의 어깨로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해!! 그래야 비 안 맞지...얻어 쓰는 주제에~~ 우산도 네가 좀 들고... "

어쩌다 보니 제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온 희연누나는 우산까지 반대쪽 제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태연해 보이는 희연누나와는 반대로 누나의 어깨에 손이 닿자 제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쿵쾅 거리는 소리가 희연누나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희연누나의 머리카락에서 피어오르는 샴프향이 어느새 제 코를 타고 뇌에 전달이 되고 있었습니다.
"음음~~~~~도대체 어떤 샴프를 쓰길래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는 거지.."
저도 모르게 잠시 눈을 감고 향기에 빠져 있는데 제 허리쪽에 들어와 있던 희연누나의 손이 옆구리를 콕콕 찔러 옵니다.

"안가고 뭐해???.. 계속 이러고 서 있을 거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저는 누나의 보폭에 걸음을 맞추어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걸을 때마다 뭉클거리는 느낌이 제 몸에 전해져 옵니다. 아무래도 희연누나가 허리를 감고 있는 바람에 몸이 기울어져 제 몸에 가슴이 닿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뜩이나 좁은 우산인데 자꾸만 가슴의 뭉개짐이 느껴지자 눈치 없이 아랫도리가 자꾸 고개를 쳐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스트백을 앞으로 메고 누나의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이내 불편하다는 희연누나의 말에 다시 가방을 고쳐 멜 수밖에 없었습니다.
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忍
혹시나 누나에게 발기 된 걸 들킬까 싶어 역사를 향해 걷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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