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
처음엔 정말로 고민 때문에 여길 찾았다.
정말이다.
그런데 예쁜 여자들이, 아니 섹쉬한 여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바꿨다.
그저 사색에 잠긴 남자 처럼 보이려 애썼다.
초봄의 바닷가.
카페의 볕이 잘드는 파라솔 아래.
커피 한잔을 놓고 사색에 물들어 있는 고독한 남자.
그런데, 도통 되질 않는다.
애써 생각했던 고민들을 떠올려 보지만, 지나가는 여인네들 훑어 보기가 바쁘다.
추운날씨임데도 짧은 치마와 잘 빠진 각선미.
바람만 불어도 보일것 같은 치마속에 푹 빠져 버리고 만다.
하늘거리는 치마 사이로 뭔가 검은것이 스쳐지나는듯 하지만 아쉽다.
쩝.
내 눈길이 보이는 것일까?
시선을 집중하면 어김없이 그 여자의 시선이 내쪽으로 날아온다.
시선을 한곳에만 둘수 없어 자연스레 움직이며 가늘게 뜬 시선을 집중해 보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만 심숭생숭해지고 있을뿐.
"휴~~~~"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내가 해야할 고민들을 떠 올려본다.
그래 고민.
거창하지만 쉽지 않다.
석달전.
제대하였을때만 해도 모든걸 가진것 같았다.
내 꿈을 이룰수 있을거라 자신했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교통사고도 아닌듯 했다.
왜냐하면
제대 후 다음날 가족끼리 여행을 갔었다.
부모님과 나.
일주일간의 제주도 여행은 일반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듯 했다.
추운 겨울의 제주도.
차를 타고 관광지를 돌고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저녘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잠을자고.
여행지에서 돌아오자 마자 두분은 달콤한 전국일주라는 미명하에 또 다시 여행을 떠나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유산을 정리해주신 변호사 말씀으로는 선자(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일년전 유방암으로 치료중이셨는데, 재발 하셨고
간병을 하시던 선친마져도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다고 하셨다.
결국 암진담금과 사고 보험금이든 20억이 조금 안되는 통장하나가 유산으로 남겨졌다.
보험회사에서도 자살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다만 추측만 가능할뿐.
어쨌든 통장의 돈은 부모님의 목숨값이니 마음은 아프지만 내 삶과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다만 부수적으로 남겨진 유산.
50평 아파트와 무궁화5개의 호텔, 직원 아파트.
아파트야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남은 두개가 문제였다.
재산 분쟁도 없이 오로지 내 명의로 되어있는 두개의 건물.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무궁화 다섯개짜리 호텔이 통째로 내것이라는 게.
맞다.
선친의 말도 안되는 쇠고집이 만들어낸 우리가문의 수치.
애초에 약속한대로 해변가나 언덕위에 지어졌다면 떵떵거리고 살아갈수 있었을 명품 호텔.
해안가에서 차로 20여분을 달려 얕은 야산아래 동그라니 남아 있는 건물.
어제도 가 보았지만 외벽 페인트도 거짐 떨어져 나가고
잡초만이 가득한 산속 외딴 건물.
어두워진 밤임에도 주변엔 불빛 하나 없었다.
차라리 직원전용 아파트가 숙박업을 하기에는 더 적당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장소였다.
직원전용 아파트는 호텔에서 차로 15분 정도 가면 해안선 끝자락에 있었다.
그나마 이곳에서 멀리서 나마 바다가 보인다.
5층이상에서 보면.
뭐 호텔을 팔고 직원아파트를 무인텔로 바꿔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선친께 그 말을 들은 후에는.
더욱이 호텔 운영비라고 목숨값까지 받은 마당에 그렇게 할수는 없다.
제주도에서 마지막 밤.
선친의 말씀으로는 호텔의 위치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즉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잡아주셨다고 했다.
호텔의 위치 때문에 그 많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시던 선친의 말씀은 시작부터 충격적이었다.
말도 안되는 변명.
웃기는 소리 같지만 장난기 없는 굳은 표정으로 그분 생전 처음으로 호텔위치에 관해 꺼내신 말씀이셨다.
처음엔 그냥 무시하셨지만 나중엔 잠만들면 나타나셔서 호통을 치셨고 마지막엔 매질까지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일어나 보면 맞은 자리에 피멍이 들었다고 하셨다.
모두가 좋다고 하셨던 해안가 자리를 포기하고 다른곳도 알아보셨지만 번번히 할아버지의 반대가 계속되었고
결국 꿈속에서 지목 받은 그 자리에 호텔을 세울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듣는내내 소설쓰십니다 또는 휴 구라 냄새라고 속으로 욕을 퍼 부었지만 어쩌면 이해도 됐다.
그건 바로 호텔의 이름때무이었다.
80년대 중반에 세워진 호텔 이름이 "필"이다,
한문으로는 서예에서 사용하는 붓이다.
이유는 꿈에서 자신을 때릴때 사용했다는게 붓이여서 그렇게 지었다고 하셨다.
그당시에 지어진 호텔들의 이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대부분 지명을 넣고 다음에 그랜드나 관광같은 단어를 넣어 지은곳이 대부분이다.
속리산 그랜드 관광호텔.
뭐 이런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요즘 말하는 러브모텔에 자주 등장하는 feel이라는 이름처럼 보이는.
당시만해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파격적인 이름을 생각해보면 선친의 말씀이 일리 있어 보였다.
이런 호텔들은 보통 객실의 몇프로는 누구꺼, 또 몇프로는 누구꺼.
커피숍은 누구, 식당은 누구, 나이트클럽은 누구 식으로 지분이 분리되어 있는게 통상적이었고 조금 큰곳은 나이트도
투자금에 비례해서 지분이 나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이 호텔 필은 초반엔 그럭저럭 유지되다가 지금은 손님도 없어 가지고 있던 지분도 헐값에 또는 적선하듯 던져주고
그걸 선친께서 내 명의로 구입하는 통에 내것이 되어있었다.
그걸 왜 내명의로 했냐고?
선친의 말씀으로는 할아버지께서 아버지 몫은 없으니 잘가지고 있다가 손주놈 주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내가 16살이 되는 순간부터 객실부터 조금씩 지분을 늘려 이젠 내이름으로 등기이전까지 끝났다.
내가 언제 달라고 했냐고.
솔직히 말해서 이 빌어먹을 호텔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운영한다고 해도 100% 망한다에 내 손목아지를 걸수 있다.
어떤 미친놈들이 그 비싼 호텔숙박비 내가면서 이 산속에 들어와서 자겠냔 말이다.
이런 쓸데없는 것이 내것이라니.
혹시 나 말고 다른 손주가 있는건 아닐까?
그게 아니면 조만간 엄청난 관광단지가 개발되어 떼돈을 벌진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가능성은 0%다.
인적도 없는 산속.
작은 야산을 낀 좁은 평지에 세워진 호텔.
개발가능성 제로다.
설마 저 작은 야산에서 금광이라도?
그럴거면 호텔을 지을게 아니라 땅만 사놓으면 되는게 아닌가?
빌어먹을.
왜 이두 부자는 이 미친짓을 해서 날 괴롭힐까?
괴로워 미칠지경이다.
그럼에도 저 나플 거리는 치마는 날 미치게 한다.
길게 뻗은 각선미에 침이 삼켜진다.
내가 이렇게 밝히는 놈이었던가?
맞다 난 밝히는 놈이다.
내 꿈은 일본에 진출해서 AV모델이 되는 거였다.
그것도 중2때부터 꿈꿔오고 준비해왔다.
당시엔 AV모델 때문이 아니라 한 여자 때문에 그 꿈을 꾸었었다.
사춘기의 나는 친구들이 가끔 가지고 오는 포르노 잡지와 저질 야동을 보며 환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여선생님이나 이웃집 아주머니, 친구 누나들.
상상속에서는 수천번 능욕을 거듭했지만 현실에서는 접근조차도 힘든 여자들.
때문에 어머니에게 더 집착했는지 모른다.
아들이기 때문에 방심해서 보여지는 젖가슴과 겨드랑이의 털들.
어쩌다 보이는 어머니의 여자.
숨기듯 감추어놓은 팬티의 체향을 맡으며 자위에 몰두 하며 어머니를 탐했다.
그리고 분출과 함께 찾아오는 허탈함과 죄스러움.
그런 날들이 무수히 이어지던 어느날
그녀를 만났다.
분코 카자나와.
이름도 몰랐던 그녀가 날 사로 잡은것은 애교부릴때의 표정과 눈웃음이었다.
어머니를 무척 많이 닮았으며 더 아름다웠던 그녀.
그녀를 상상하며 자위를 할때면 마치 친어머니와 하는 기분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녀가 출연한 야동과 인터뷰를 모으며 생각했다.
일본산 어머니에게 태극기를 꽃으리라고.
대한민국 자연산 흉기로 정복하리라고.
15살 치기어린 마음에 세운 목표였다.
매일 일본어 만큼은 충분히 했다.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괄약근운동을 했고 하체 단련에 좋다는 조깅도 거르지 않고 해왔다.
특히 풋풋하기만 했던 똘이 녀석도 스파르타식으로 단련해갔다.
뭐 시작은 어머니의 팬티로 감싸서 자위하는거였지만 점점 거친소재의 천으로 바뀌고 나중엔 황토흙가루로 비벼가며 단련시켰다.
바싹마른 흙을 냄비에 담아 볶아낸후 알콜에 게어 마구 비비다보면 잘 못느끼게 되었다.
가끔 솎아내지 못한 아주작은 돌때문에 피도 많이 났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만일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훈련이었지만 두분다 호텔에 계셔서 가능한 시간이었다.
분코 카자나와.
난 그녀를 이모라고 부른다.
내 어머니와 너무나 닮은 그녀.
너무나 닮아 혹 여동생 없냐고 여쭈어본적도 있었다.
그녀는 AV배우를 은퇴했다.
그들 세계에서의 은퇴란
지옥이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친구도 없다.
있었다 하더라도 다 외면한다.
친구라고들 같이 활동했던 그녀들 뿐인게 현실이다.
취업을 원해도 써주는 곳 없고 창업을 하려해도 건물을 빌려주거나 물건을 사주는 사람도 없다.
거기에 몸은 만신창이나 다름없다.
그녀가 작품속에서 느꼈던 오르가즘과 행위들을 보면 알수 있다.
쉽게 말하면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다음주에 또다시 풀코스를 뛴다고 생각해 보면된다.
이런 생활들이 이어져서 갖은 잔병치레에 시달리게 된다.
이모도 그러했다.
볼이 쏙들어가게 말라버린 얼굴로 스트립클럽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난 이모를 만나고 싶다.
어린시절처럼 그녀를 정복하거나 또는 불행한 삶을 사는 그녀를 동정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그저 어린시절 소망이었던 그녀를 만나거나
남자 배우가 적어 구하기 힘들다는 배우로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도 많다.
"앗! 뜨거!"
사색에 너무 깊이 몰입했을까?
어느새 타들어간 담배는 필터를 태우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붉은게 화상이라도 입은듯 했다.
"아 쪽팔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야 겠다.
커피잔을 집어든 순간 건너 파라솔 아래 연프른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파란색 모자와 커다란 선글라스를 착용한 여자가 보였다.
작은 체구에 청순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퇴폐적으로 까지 보이는 그녀.
난 그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한눈에 알아 볼수 있다.
그녀가 성형을 했든, 복면을 하던, 그녀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분코 카자나와.
내 사랑스런 이모.
그녀가 내 앞에 있다.
처음엔 정말로 고민 때문에 여길 찾았다.
정말이다.
그런데 예쁜 여자들이, 아니 섹쉬한 여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바꿨다.
그저 사색에 잠긴 남자 처럼 보이려 애썼다.
초봄의 바닷가.
카페의 볕이 잘드는 파라솔 아래.
커피 한잔을 놓고 사색에 물들어 있는 고독한 남자.
그런데, 도통 되질 않는다.
애써 생각했던 고민들을 떠올려 보지만, 지나가는 여인네들 훑어 보기가 바쁘다.
추운날씨임데도 짧은 치마와 잘 빠진 각선미.
바람만 불어도 보일것 같은 치마속에 푹 빠져 버리고 만다.
하늘거리는 치마 사이로 뭔가 검은것이 스쳐지나는듯 하지만 아쉽다.
쩝.
내 눈길이 보이는 것일까?
시선을 집중하면 어김없이 그 여자의 시선이 내쪽으로 날아온다.
시선을 한곳에만 둘수 없어 자연스레 움직이며 가늘게 뜬 시선을 집중해 보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만 심숭생숭해지고 있을뿐.
"휴~~~~"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내가 해야할 고민들을 떠 올려본다.
그래 고민.
거창하지만 쉽지 않다.
석달전.
제대하였을때만 해도 모든걸 가진것 같았다.
내 꿈을 이룰수 있을거라 자신했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교통사고도 아닌듯 했다.
왜냐하면
제대 후 다음날 가족끼리 여행을 갔었다.
부모님과 나.
일주일간의 제주도 여행은 일반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듯 했다.
추운 겨울의 제주도.
차를 타고 관광지를 돌고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저녘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잠을자고.
여행지에서 돌아오자 마자 두분은 달콤한 전국일주라는 미명하에 또 다시 여행을 떠나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유산을 정리해주신 변호사 말씀으로는 선자(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일년전 유방암으로 치료중이셨는데, 재발 하셨고
간병을 하시던 선친마져도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다고 하셨다.
결국 암진담금과 사고 보험금이든 20억이 조금 안되는 통장하나가 유산으로 남겨졌다.
보험회사에서도 자살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다만 추측만 가능할뿐.
어쨌든 통장의 돈은 부모님의 목숨값이니 마음은 아프지만 내 삶과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다만 부수적으로 남겨진 유산.
50평 아파트와 무궁화5개의 호텔, 직원 아파트.
아파트야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남은 두개가 문제였다.
재산 분쟁도 없이 오로지 내 명의로 되어있는 두개의 건물.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무궁화 다섯개짜리 호텔이 통째로 내것이라는 게.
맞다.
선친의 말도 안되는 쇠고집이 만들어낸 우리가문의 수치.
애초에 약속한대로 해변가나 언덕위에 지어졌다면 떵떵거리고 살아갈수 있었을 명품 호텔.
해안가에서 차로 20여분을 달려 얕은 야산아래 동그라니 남아 있는 건물.
어제도 가 보았지만 외벽 페인트도 거짐 떨어져 나가고
잡초만이 가득한 산속 외딴 건물.
어두워진 밤임에도 주변엔 불빛 하나 없었다.
차라리 직원전용 아파트가 숙박업을 하기에는 더 적당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장소였다.
직원전용 아파트는 호텔에서 차로 15분 정도 가면 해안선 끝자락에 있었다.
그나마 이곳에서 멀리서 나마 바다가 보인다.
5층이상에서 보면.
뭐 호텔을 팔고 직원아파트를 무인텔로 바꿔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선친께 그 말을 들은 후에는.
더욱이 호텔 운영비라고 목숨값까지 받은 마당에 그렇게 할수는 없다.
제주도에서 마지막 밤.
선친의 말씀으로는 호텔의 위치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즉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잡아주셨다고 했다.
호텔의 위치 때문에 그 많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시던 선친의 말씀은 시작부터 충격적이었다.
말도 안되는 변명.
웃기는 소리 같지만 장난기 없는 굳은 표정으로 그분 생전 처음으로 호텔위치에 관해 꺼내신 말씀이셨다.
처음엔 그냥 무시하셨지만 나중엔 잠만들면 나타나셔서 호통을 치셨고 마지막엔 매질까지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일어나 보면 맞은 자리에 피멍이 들었다고 하셨다.
모두가 좋다고 하셨던 해안가 자리를 포기하고 다른곳도 알아보셨지만 번번히 할아버지의 반대가 계속되었고
결국 꿈속에서 지목 받은 그 자리에 호텔을 세울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듣는내내 소설쓰십니다 또는 휴 구라 냄새라고 속으로 욕을 퍼 부었지만 어쩌면 이해도 됐다.
그건 바로 호텔의 이름때무이었다.
80년대 중반에 세워진 호텔 이름이 "필"이다,
한문으로는 서예에서 사용하는 붓이다.
이유는 꿈에서 자신을 때릴때 사용했다는게 붓이여서 그렇게 지었다고 하셨다.
그당시에 지어진 호텔들의 이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대부분 지명을 넣고 다음에 그랜드나 관광같은 단어를 넣어 지은곳이 대부분이다.
속리산 그랜드 관광호텔.
뭐 이런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요즘 말하는 러브모텔에 자주 등장하는 feel이라는 이름처럼 보이는.
당시만해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파격적인 이름을 생각해보면 선친의 말씀이 일리 있어 보였다.
이런 호텔들은 보통 객실의 몇프로는 누구꺼, 또 몇프로는 누구꺼.
커피숍은 누구, 식당은 누구, 나이트클럽은 누구 식으로 지분이 분리되어 있는게 통상적이었고 조금 큰곳은 나이트도
투자금에 비례해서 지분이 나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이 호텔 필은 초반엔 그럭저럭 유지되다가 지금은 손님도 없어 가지고 있던 지분도 헐값에 또는 적선하듯 던져주고
그걸 선친께서 내 명의로 구입하는 통에 내것이 되어있었다.
그걸 왜 내명의로 했냐고?
선친의 말씀으로는 할아버지께서 아버지 몫은 없으니 잘가지고 있다가 손주놈 주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내가 16살이 되는 순간부터 객실부터 조금씩 지분을 늘려 이젠 내이름으로 등기이전까지 끝났다.
내가 언제 달라고 했냐고.
솔직히 말해서 이 빌어먹을 호텔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운영한다고 해도 100% 망한다에 내 손목아지를 걸수 있다.
어떤 미친놈들이 그 비싼 호텔숙박비 내가면서 이 산속에 들어와서 자겠냔 말이다.
이런 쓸데없는 것이 내것이라니.
혹시 나 말고 다른 손주가 있는건 아닐까?
그게 아니면 조만간 엄청난 관광단지가 개발되어 떼돈을 벌진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가능성은 0%다.
인적도 없는 산속.
작은 야산을 낀 좁은 평지에 세워진 호텔.
개발가능성 제로다.
설마 저 작은 야산에서 금광이라도?
그럴거면 호텔을 지을게 아니라 땅만 사놓으면 되는게 아닌가?
빌어먹을.
왜 이두 부자는 이 미친짓을 해서 날 괴롭힐까?
괴로워 미칠지경이다.
그럼에도 저 나플 거리는 치마는 날 미치게 한다.
길게 뻗은 각선미에 침이 삼켜진다.
내가 이렇게 밝히는 놈이었던가?
맞다 난 밝히는 놈이다.
내 꿈은 일본에 진출해서 AV모델이 되는 거였다.
그것도 중2때부터 꿈꿔오고 준비해왔다.
당시엔 AV모델 때문이 아니라 한 여자 때문에 그 꿈을 꾸었었다.
사춘기의 나는 친구들이 가끔 가지고 오는 포르노 잡지와 저질 야동을 보며 환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여선생님이나 이웃집 아주머니, 친구 누나들.
상상속에서는 수천번 능욕을 거듭했지만 현실에서는 접근조차도 힘든 여자들.
때문에 어머니에게 더 집착했는지 모른다.
아들이기 때문에 방심해서 보여지는 젖가슴과 겨드랑이의 털들.
어쩌다 보이는 어머니의 여자.
숨기듯 감추어놓은 팬티의 체향을 맡으며 자위에 몰두 하며 어머니를 탐했다.
그리고 분출과 함께 찾아오는 허탈함과 죄스러움.
그런 날들이 무수히 이어지던 어느날
그녀를 만났다.
분코 카자나와.
이름도 몰랐던 그녀가 날 사로 잡은것은 애교부릴때의 표정과 눈웃음이었다.
어머니를 무척 많이 닮았으며 더 아름다웠던 그녀.
그녀를 상상하며 자위를 할때면 마치 친어머니와 하는 기분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녀가 출연한 야동과 인터뷰를 모으며 생각했다.
일본산 어머니에게 태극기를 꽃으리라고.
대한민국 자연산 흉기로 정복하리라고.
15살 치기어린 마음에 세운 목표였다.
매일 일본어 만큼은 충분히 했다.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괄약근운동을 했고 하체 단련에 좋다는 조깅도 거르지 않고 해왔다.
특히 풋풋하기만 했던 똘이 녀석도 스파르타식으로 단련해갔다.
뭐 시작은 어머니의 팬티로 감싸서 자위하는거였지만 점점 거친소재의 천으로 바뀌고 나중엔 황토흙가루로 비벼가며 단련시켰다.
바싹마른 흙을 냄비에 담아 볶아낸후 알콜에 게어 마구 비비다보면 잘 못느끼게 되었다.
가끔 솎아내지 못한 아주작은 돌때문에 피도 많이 났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만일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훈련이었지만 두분다 호텔에 계셔서 가능한 시간이었다.
분코 카자나와.
난 그녀를 이모라고 부른다.
내 어머니와 너무나 닮은 그녀.
너무나 닮아 혹 여동생 없냐고 여쭈어본적도 있었다.
그녀는 AV배우를 은퇴했다.
그들 세계에서의 은퇴란
지옥이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친구도 없다.
있었다 하더라도 다 외면한다.
친구라고들 같이 활동했던 그녀들 뿐인게 현실이다.
취업을 원해도 써주는 곳 없고 창업을 하려해도 건물을 빌려주거나 물건을 사주는 사람도 없다.
거기에 몸은 만신창이나 다름없다.
그녀가 작품속에서 느꼈던 오르가즘과 행위들을 보면 알수 있다.
쉽게 말하면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다음주에 또다시 풀코스를 뛴다고 생각해 보면된다.
이런 생활들이 이어져서 갖은 잔병치레에 시달리게 된다.
이모도 그러했다.
볼이 쏙들어가게 말라버린 얼굴로 스트립클럽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난 이모를 만나고 싶다.
어린시절처럼 그녀를 정복하거나 또는 불행한 삶을 사는 그녀를 동정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그저 어린시절 소망이었던 그녀를 만나거나
남자 배우가 적어 구하기 힘들다는 배우로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도 많다.
"앗! 뜨거!"
사색에 너무 깊이 몰입했을까?
어느새 타들어간 담배는 필터를 태우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붉은게 화상이라도 입은듯 했다.
"아 쪽팔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야 겠다.
커피잔을 집어든 순간 건너 파라솔 아래 연프른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파란색 모자와 커다란 선글라스를 착용한 여자가 보였다.
작은 체구에 청순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퇴폐적으로 까지 보이는 그녀.
난 그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한눈에 알아 볼수 있다.
그녀가 성형을 했든, 복면을 하던, 그녀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분코 카자나와.
내 사랑스런 이모.
그녀가 내 앞에 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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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태그 | |||
황진이-무료한국야동,일본야동,중국야동,성인야설,토렌트,성인야사,애니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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