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장 3페이지
주변은 이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시내와 거리가 떨어져 있는 식당의 문과 창문에서 간간히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마당 한켠에 심어져 있는 감나무잎을 간신히 비추고 있었다.
남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거부할 수 없는 기대감에 젖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을로 들어서는 밤하늘에는 시내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별이 그다지 밝지는 않았지만 성탄절 트리의 작은 장식처럼 점멸하며 빛났다.
"오늘이 그믐인가?"
말없이 별을 바라보던 남자가 복잡한 생각을 떨쳐 내려는 듯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달을 찾으며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상현달과 하현달의 파인 쪽이 어느 쪽이더라 등의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남자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이어나가기에는 경험이 없다 싶을 정도로 결혼 후 다른 여자를 이렇게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가리키는 숲길로 가야할 지 아니면 늦었다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보내야 할지 정리할 수가 없었다.
정리를 못한다기보다 그대로 그녀를 집에 보내기에는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기대감을 거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싫어?"
약간의 실망감과 걱정이 뭍어난 목소리로 그녀가 물을 때에야 남자는 하늘에 둔 시선을 그녀에게 옮길 수 있었다.
이때 즈음에 남자는 이미 점점 커져 가는 기대를 거스를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아니, 싫을 리가 있나.
신랑역할 하는 김에 풀 서비스로 해야지."
대답을 들은 그녀는 남자가 내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앞으로 뻗었던 팔을 거두고 손가락으로 시내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키지 않으면 집으로 가도 돼.
오늘 오빠가 해 준 것만으로도 많이 고마운 걸."
그녀가 남자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차의 미등 불빛과 사람의 인기척에 놀랐는지 길옆 풀섶에서 메추라기라고 생각되는 새 한 마리가 날아 올라 어두운 하늘로 사라졌다.
ㅕ
차창에는 두 사람의 체온과 습기로 인해 성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앞유리에 생긴 성애를 닦아야겠다고 생각한 남자는 낮에 주유소에서 받은 곽티슈를 떠올리곤 몸을 일으켜 뒷좌석 위에 놓인 곽티슈에서 티슈를 뽑아 내기 위해 길게 팔을 뻗었다.
"왜. 대답을 제대로 안해!!"
남자가 티슈를 뽑아 내기 위해 몸을 돌리고 있는 사이 그녀가 팔걸이까지 올라와 있는 남자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아니, 어디 남자 엉덩이를 때리고 그래."
남자가 손가락으로 티슈를 집은 채 자리에 서둘러 앉으며 나무랐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뭍어 있는 목소리였다.
"지금 가려고 앞유리 닦잖아."
운전석 유리부터 닦기 시작한 남자가 조수석쪽 유리를 닦기 위해 반쯤 일으킨 몸으로 팔을 뻗었다.
남자의 얼굴이 그녀 앞에 이르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남자의 볼에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는 장난에 성공한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구, 어린 애다, 어린 애. 아이 둘 엄마 맞아?"
남자가 조금전의 복잡한 생각을 잊고 이 상황에 익숙해진 듯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제 간다."
말을 마친 남자가 길로 들어서기 위해 라이트를 켜자 짙게 깔린 어둠이 불빛을 따라 일렬로 비켜섰다.
길이라고는 하지만 겨우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폭인데다 농로로 쓰이는 길이어서인지 파인 곳은 파인 대로, 매끈한 곳은 매끈한 대로 이 길을 지났을 농부의 얼굴처럼 수더분하게 생긴 길이 이어졌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천천히 차를 운전하는 동안 옆에 앉은 그녀는 뭐가 즐거운지 가끔 작은 웃음소리를 던져냈다.
숲으로 향하던 시멘트길은 언제인지 모르게 비포장길로 바뀌어 있었다.
조금전까지 시멘트길이었는데 반만 시멘트길로 바뀌었다가 그마저도 흙길로 바뀌었을테지.
길옆에 늘어서 지난 여름 뜨거운 햇빛과 비를 받아 낸 잡초의 잎이 라이트 불빛에 당당하게 반짝거렸다.
다소 약한 경사가 있는 숲길은 조금전 지나온 농로보다 오히려 넓어 운전이 편했다.
가끔 멀리서 이 숲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던 남자는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숲길 옆으로는 부엽토를 쌓아 놓거나 용도를 알 수 없는 빈 공간이 군데군데 보였다.
"오빠, 저기 앞에 오른쪽으로 공간 보이지?"
그녀가 익숙한 듯 라이트 불빛이 미처 밝히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곳을 가리켰다.
남자는 문득 티브이에서 보던 우주의 블랙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가 가리킨 공간으로 차를 돌려 들어가자 차고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은 물론이고 들어 온 뒤를 빼면 옆으로도 사람이 비켜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는 준중형 차고지구나."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끈 남자가 농담처럼 말했다.
"아마 소형자,중형차,대형차용 공간이 다 있을걸?"
그녀가 맞장구 치며 말했다.
"그런데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았어?"
남자가 의심스럽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남자의 질문에는 오늘 오후부터 줄곧 당돌하면서도 과감한 그녀의 행동에 대한 경계심도 약간은 들어 있었다.
그 물음에 그녀의 숨결이 조금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조그만 목소리였지만 애써 담담하고 단조로운 투로 말했다.
"울고 싶을 때 와."
질문을 했던 남자는 이미 그런 경우에도 올 수 있겠다는 예상을 했기에 괜한 것을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질문을 끝낸다면 남자가 그녀를 밑도 끝도 없이 동정한다는 오해를 받을 것이 두려웠다.
"왜 우는데?"
남자가 짐짓 놀란 척 하며 물었다.
"남자는 뭐 울고 싶을 때 없어?"
어둠속에서 그녀가 남자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있기는 하지. 그래도 남자는 참으니까."
남자가 이 곤혹스러운 질문과 답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면서 마지막 대답이기를 바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는 이런 곳을 모르지."
나름대로 명쾌한 설명이었다.
대답을 들은 남자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화제를 다른 곳으로 확실하게 돌려야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안달이 났다.
"그런데 오빠를 좋게 해 준다는게 뭐야?"
질문을 던진 남자는 금방 자신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화제도 있을텐데 하필 이런 질문이라니.
마치 아까부터 무엇인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들킨 것처럼 남자의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이런 남자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말했다.
"오빠, 기대하고 있었구나?"
이미 마음을 들켜버린 남자가 이 상황을 정면돌파하지 않으면 착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마초같은 남자로서의 매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사실 결혼 전의 연애라고 해봐야 학창시절이거나 회사의 말단직원이었기에 버스와 전철을 타고 야외로 나들이를 가거나 돈이 좀 모이는 날이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고작인데다 몸으로 하는 사랑도 지금 같은 현대식 모텔이 아니라 옆방에서 키스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허름한 여관이 다였으니 이렇게 승용차에서 뭐를 한다는 것도 이야기만 들었지 남자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뽀뽀정도는 해 주겠지."
어색하고 낯선 상황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남자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뽀뽀?"
낮에 놀이터에서 보았단 아이들처럼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말했다.
"음...오빠 뽀뽀까지만 원하는구나. 알았어. 거기까지만 해 줄께."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빤히 들여다 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겸연쩍어진 남자가 비록 가식적이긴 하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하고 싶은만큼만 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의 얼굴에 가까이 있던 그녀가 남자에게 깊은 입맞춤을 했기에 남자는 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두 팔로 목을 감싸안는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남자의 가슴에 느껴졌다.
라일락향이 느껴지는 그녀의 혀가 남자의 혀와 입술을 휘감아 돌자 남자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탐닉하는 동안 다시 차창에는 두 사람의 온기와 습기로 인해 성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자의 귓볼과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기도 하고 혀로 쓸어 올리기도 했는데 간혹 뜨거운 입김을 남자의 귀에 토해내곤 했다.
문득 남자는 구름을 걷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수증기가 응결된 것이 구름이라는 과학적 상식을 차치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본 구름은 푹신하고 따뜻하며 하루종일 놀아도 지겹지 않을 곳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남자의 상상속에는 파란 하늘에 하얀 陋逃만㎱?펼쳐졌다.
남자는 지금 그 구름 위를 때로는 걷다가 눕기도 하고 가끔 높은 곳까지 날아 올랐다 떨어지곤 했다.
"오빠, 커졌다."
눈을 감고 그녀의 손과 입술에 몸을 맡긴 채 구름 속에서 노닐 던 남자가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남자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능숙하게 남자의 바지자크를 내렸다.
잠시후 차가운 그녀의 손이 느껴졌다.
생소하고 낯선 느낌에 몸을 일으키려던 남자의 가슴을 그녀가 우악스럽게 밀어냈다.
그 바람에 그의 몸은 의자에 최대한 누워버린 모양새가 됐다.
미처 끄지 못한 오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이 신경쓰였지만 이 깊은 숲은 그 희미한 불빛마저도 묻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리가 아래 위로 움직일 때마다 옅은 라벤더향이 풍겼다.
굵은 웨이브를 준 그녀의 머리카락이 사타구니에 살짝살짝 닿을 때마다 남자는 온 몸을 휘감아 도는 익숙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신랑, 좋아?"
온전히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물거리며 그녀가 물었다.
"응"
"내가 좋게 해 준다고 했잖아."
깜깜한 숲속으로 이미 짝짓기를 마쳤어야 할 반딧불 한마리가 파랗고 창백한 불을 반짝이며 느리게 날며 지나갔다.
"나만 좋아서 어떡해?"
숲을 벗어나 시내로 접어들 무렵 남자가 물었다.
목소리에서 혼자만 좋았다는 미안함이 뭍어났다.
"괜찮아. 다음에는 오빠가 나 좋게 해주면 되지. 그렇게 해 줄거지?"
갸날프게 떨리면서도 여리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섹시하면서도 호소력이 있었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
"그래. 다음에 또 신랑역할 해줄께."
남자는 어느덧 그런 그녀의 목소리와 다음에 펼쳐질 일에 대한 기대감에 중독된 듯 말했다.
"정말? 고마와."
그렇게 대답하는 여자의 목소리에서 남자는 알 수 없는 짙은 공허함을 느꼈다.
허공을 주시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3페이지 끝 / 4페이지로 이어집니다.)
주변은 이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시내와 거리가 떨어져 있는 식당의 문과 창문에서 간간히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마당 한켠에 심어져 있는 감나무잎을 간신히 비추고 있었다.
남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거부할 수 없는 기대감에 젖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을로 들어서는 밤하늘에는 시내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별이 그다지 밝지는 않았지만 성탄절 트리의 작은 장식처럼 점멸하며 빛났다.
"오늘이 그믐인가?"
말없이 별을 바라보던 남자가 복잡한 생각을 떨쳐 내려는 듯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달을 찾으며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상현달과 하현달의 파인 쪽이 어느 쪽이더라 등의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남자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이어나가기에는 경험이 없다 싶을 정도로 결혼 후 다른 여자를 이렇게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가리키는 숲길로 가야할 지 아니면 늦었다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보내야 할지 정리할 수가 없었다.
정리를 못한다기보다 그대로 그녀를 집에 보내기에는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기대감을 거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싫어?"
약간의 실망감과 걱정이 뭍어난 목소리로 그녀가 물을 때에야 남자는 하늘에 둔 시선을 그녀에게 옮길 수 있었다.
이때 즈음에 남자는 이미 점점 커져 가는 기대를 거스를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아니, 싫을 리가 있나.
신랑역할 하는 김에 풀 서비스로 해야지."
대답을 들은 그녀는 남자가 내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앞으로 뻗었던 팔을 거두고 손가락으로 시내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키지 않으면 집으로 가도 돼.
오늘 오빠가 해 준 것만으로도 많이 고마운 걸."
그녀가 남자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차의 미등 불빛과 사람의 인기척에 놀랐는지 길옆 풀섶에서 메추라기라고 생각되는 새 한 마리가 날아 올라 어두운 하늘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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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에는 두 사람의 체온과 습기로 인해 성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앞유리에 생긴 성애를 닦아야겠다고 생각한 남자는 낮에 주유소에서 받은 곽티슈를 떠올리곤 몸을 일으켜 뒷좌석 위에 놓인 곽티슈에서 티슈를 뽑아 내기 위해 길게 팔을 뻗었다.
"왜. 대답을 제대로 안해!!"
남자가 티슈를 뽑아 내기 위해 몸을 돌리고 있는 사이 그녀가 팔걸이까지 올라와 있는 남자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아니, 어디 남자 엉덩이를 때리고 그래."
남자가 손가락으로 티슈를 집은 채 자리에 서둘러 앉으며 나무랐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뭍어 있는 목소리였다.
"지금 가려고 앞유리 닦잖아."
운전석 유리부터 닦기 시작한 남자가 조수석쪽 유리를 닦기 위해 반쯤 일으킨 몸으로 팔을 뻗었다.
남자의 얼굴이 그녀 앞에 이르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남자의 볼에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는 장난에 성공한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구, 어린 애다, 어린 애. 아이 둘 엄마 맞아?"
남자가 조금전의 복잡한 생각을 잊고 이 상황에 익숙해진 듯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제 간다."
말을 마친 남자가 길로 들어서기 위해 라이트를 켜자 짙게 깔린 어둠이 불빛을 따라 일렬로 비켜섰다.
길이라고는 하지만 겨우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폭인데다 농로로 쓰이는 길이어서인지 파인 곳은 파인 대로, 매끈한 곳은 매끈한 대로 이 길을 지났을 농부의 얼굴처럼 수더분하게 생긴 길이 이어졌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천천히 차를 운전하는 동안 옆에 앉은 그녀는 뭐가 즐거운지 가끔 작은 웃음소리를 던져냈다.
숲으로 향하던 시멘트길은 언제인지 모르게 비포장길로 바뀌어 있었다.
조금전까지 시멘트길이었는데 반만 시멘트길로 바뀌었다가 그마저도 흙길로 바뀌었을테지.
길옆에 늘어서 지난 여름 뜨거운 햇빛과 비를 받아 낸 잡초의 잎이 라이트 불빛에 당당하게 반짝거렸다.
다소 약한 경사가 있는 숲길은 조금전 지나온 농로보다 오히려 넓어 운전이 편했다.
가끔 멀리서 이 숲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던 남자는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숲길 옆으로는 부엽토를 쌓아 놓거나 용도를 알 수 없는 빈 공간이 군데군데 보였다.
"오빠, 저기 앞에 오른쪽으로 공간 보이지?"
그녀가 익숙한 듯 라이트 불빛이 미처 밝히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곳을 가리켰다.
남자는 문득 티브이에서 보던 우주의 블랙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가 가리킨 공간으로 차를 돌려 들어가자 차고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은 물론이고 들어 온 뒤를 빼면 옆으로도 사람이 비켜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는 준중형 차고지구나."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끈 남자가 농담처럼 말했다.
"아마 소형자,중형차,대형차용 공간이 다 있을걸?"
그녀가 맞장구 치며 말했다.
"그런데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았어?"
남자가 의심스럽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남자의 질문에는 오늘 오후부터 줄곧 당돌하면서도 과감한 그녀의 행동에 대한 경계심도 약간은 들어 있었다.
그 물음에 그녀의 숨결이 조금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조그만 목소리였지만 애써 담담하고 단조로운 투로 말했다.
"울고 싶을 때 와."
질문을 했던 남자는 이미 그런 경우에도 올 수 있겠다는 예상을 했기에 괜한 것을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질문을 끝낸다면 남자가 그녀를 밑도 끝도 없이 동정한다는 오해를 받을 것이 두려웠다.
"왜 우는데?"
남자가 짐짓 놀란 척 하며 물었다.
"남자는 뭐 울고 싶을 때 없어?"
어둠속에서 그녀가 남자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있기는 하지. 그래도 남자는 참으니까."
남자가 이 곤혹스러운 질문과 답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면서 마지막 대답이기를 바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는 이런 곳을 모르지."
나름대로 명쾌한 설명이었다.
대답을 들은 남자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화제를 다른 곳으로 확실하게 돌려야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안달이 났다.
"그런데 오빠를 좋게 해 준다는게 뭐야?"
질문을 던진 남자는 금방 자신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화제도 있을텐데 하필 이런 질문이라니.
마치 아까부터 무엇인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들킨 것처럼 남자의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이런 남자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말했다.
"오빠, 기대하고 있었구나?"
이미 마음을 들켜버린 남자가 이 상황을 정면돌파하지 않으면 착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마초같은 남자로서의 매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사실 결혼 전의 연애라고 해봐야 학창시절이거나 회사의 말단직원이었기에 버스와 전철을 타고 야외로 나들이를 가거나 돈이 좀 모이는 날이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고작인데다 몸으로 하는 사랑도 지금 같은 현대식 모텔이 아니라 옆방에서 키스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허름한 여관이 다였으니 이렇게 승용차에서 뭐를 한다는 것도 이야기만 들었지 남자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뽀뽀정도는 해 주겠지."
어색하고 낯선 상황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남자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뽀뽀?"
낮에 놀이터에서 보았단 아이들처럼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말했다.
"음...오빠 뽀뽀까지만 원하는구나. 알았어. 거기까지만 해 줄께."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빤히 들여다 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겸연쩍어진 남자가 비록 가식적이긴 하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하고 싶은만큼만 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의 얼굴에 가까이 있던 그녀가 남자에게 깊은 입맞춤을 했기에 남자는 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두 팔로 목을 감싸안는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남자의 가슴에 느껴졌다.
라일락향이 느껴지는 그녀의 혀가 남자의 혀와 입술을 휘감아 돌자 남자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탐닉하는 동안 다시 차창에는 두 사람의 온기와 습기로 인해 성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자의 귓볼과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기도 하고 혀로 쓸어 올리기도 했는데 간혹 뜨거운 입김을 남자의 귀에 토해내곤 했다.
문득 남자는 구름을 걷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수증기가 응결된 것이 구름이라는 과학적 상식을 차치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본 구름은 푹신하고 따뜻하며 하루종일 놀아도 지겹지 않을 곳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남자의 상상속에는 파란 하늘에 하얀 陋逃만㎱?펼쳐졌다.
남자는 지금 그 구름 위를 때로는 걷다가 눕기도 하고 가끔 높은 곳까지 날아 올랐다 떨어지곤 했다.
"오빠, 커졌다."
눈을 감고 그녀의 손과 입술에 몸을 맡긴 채 구름 속에서 노닐 던 남자가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남자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능숙하게 남자의 바지자크를 내렸다.
잠시후 차가운 그녀의 손이 느껴졌다.
생소하고 낯선 느낌에 몸을 일으키려던 남자의 가슴을 그녀가 우악스럽게 밀어냈다.
그 바람에 그의 몸은 의자에 최대한 누워버린 모양새가 됐다.
미처 끄지 못한 오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이 신경쓰였지만 이 깊은 숲은 그 희미한 불빛마저도 묻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리가 아래 위로 움직일 때마다 옅은 라벤더향이 풍겼다.
굵은 웨이브를 준 그녀의 머리카락이 사타구니에 살짝살짝 닿을 때마다 남자는 온 몸을 휘감아 도는 익숙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신랑, 좋아?"
온전히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물거리며 그녀가 물었다.
"응"
"내가 좋게 해 준다고 했잖아."
깜깜한 숲속으로 이미 짝짓기를 마쳤어야 할 반딧불 한마리가 파랗고 창백한 불을 반짝이며 느리게 날며 지나갔다.
"나만 좋아서 어떡해?"
숲을 벗어나 시내로 접어들 무렵 남자가 물었다.
목소리에서 혼자만 좋았다는 미안함이 뭍어났다.
"괜찮아. 다음에는 오빠가 나 좋게 해주면 되지. 그렇게 해 줄거지?"
갸날프게 떨리면서도 여리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섹시하면서도 호소력이 있었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
"그래. 다음에 또 신랑역할 해줄께."
남자는 어느덧 그런 그녀의 목소리와 다음에 펼쳐질 일에 대한 기대감에 중독된 듯 말했다.
"정말? 고마와."
그렇게 대답하는 여자의 목소리에서 남자는 알 수 없는 짙은 공허함을 느꼈다.
허공을 주시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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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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