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집안이 화목해야 밖에 나가서 편히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실히 옛말은 곱씹어보면 맞는 말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아내와의 관계가 다시 원상회복이 된 이후로 거짓말처럼
회사에서의 일들은 더욱 더 잘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휴가를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은 나에게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며
전권을 부여해주었고 나는 정현이와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그 시기..
아내와 난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임의 몸..
아내는 입양을 원했다.
입양이란 두 글자..
그 두 글자가 나에게 묵직하게 다가왔다.
명과 암이 뚜렷이 존재하는 것..
아이가 없는 우리에게 더 없이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떠한 것에도 좋은 면만 존재할 수 없듯이
매스컴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안 좋은 점들도 많이 알려져 있었기에
내 입장은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웠다.
“정말 그렇게 아이를 가지고 싶어...?”
“응...오빠는 우리 피가 안 섞여서 싫은 거야?”
“아니..그런 건 아니고..그냥 솔직히 무작정 좋을 수는 없잖아..걱정도 많이 되구..새로운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잘 적응할지..상처가 많지는 않을지..”
“나두 무작정 다 잘 될 거야 그런 건 아냐..걱정도 되지..그렇지만 오빠랑 나랑 사랑으로 잘 보듬어서 키우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
“오빠..나 내 몸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꼭 키워보고 싶어..우리 아이..오빠와 나의 아이..”
“알았어..알았어..은주야..”
더 이상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이렇게 간절히 원하는데..
아내에게 아이는 간절함이었다.
외동으로 태어난 아내는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서 항상 외롭게 자라서, 나와 연애시절에도 결혼하면 꼭 아이 둘 이상은 무조건 낳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 아내가 불임이라니.. 아내의 상실감은 이루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힘들 정도였으니..
“내가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오빠에게 받은 사랑 고스란히 다 아이에게 전해 주고 싶어..우리 아이에게..”
“그래..그러자..은주 너라면 분명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거야..우리 은주라면..”
더 이상 거절할 명분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아내라면 충분히 입양을 한 아이라도 훌륭히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난 아내를 꼭 끌어안으며 나도 반드시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오빠도 좋은 아빠가 되 줄 거지...?”
“그러엄..”
사랑스런 아내의 모습..어쩜 생각하는 것까지 이렇게 예쁠까..
난 아내의 입술에 살며시 내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아내의 입술..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아내의 향긋한 체취
그 느낌에 그 향에 취한 듯 난 아내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고, 우린 침대도 아닌 거실에서 딥 키스를 나누며 쇼파에서 뒹굴었다.
“뭐야..안에 들어가서..”
“왜...나 급해..”
“으휴..응큼해..변태..”
“헤헤..오늘은 그럼 변태 하는 걸로..”
역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법일까..
아내가 돌아오고 몇 년 만에 아내와 나눈 그 기분 좋은 섹스 이후 아내와 나의 관계는 다시 놀랍도록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연애시절처럼..결혼 초기의 그 때처럼..
정말 한 때는 섹스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확실히 마음의 대화만큼 몸의 대화도 중요했었던 건가보다.
“사랑해..”
“나도..사랑해 은주야..”
달콤한 아내의 입술..그리고 그 입술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내의 온 몸을 느끼며, 아내의 옷을 하나하나 벗겼다.
“나 부끄러..밖에 누가 보면 어떡해..커튼이라도..”
“알았어..잠깐만~!”
아내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난 황급히 뛰어가 거실의 커튼을 쳐버리고 다시 아내에게 돌아왔다.
“귀엽네...얼굴이 빨간 게..”
“놀리는 거야..?”
“아니..정말 귀여워서..”
“흐으음...”
내가 놀리는 줄 알고 얼굴이 더욱 더 빨갛게 물든 귀여운 아내에게 다가가 다시 부드러운 키스를 나누며 난 아내의 알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봉긋하게 솟은 예쁜 가슴부터 잘록한 허리 그리고 아내의 소중한 그 곳까지..
“하아아....”
아내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나의 손길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음소리가..
아내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나도 옷을 하나하나 벗으며 아내와 완전히 하나가 될 준비를 하였고, 아내의 손길이 나의 그 곳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헤헤..커졌네 울 오빠 꺼...”
“커지지..요렇게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내 앞에 있는데 어떻게 안 커지겠어?”
“입에 발린 립 서비스 아니고..?”
“립 서비스 아니거든...!!”
“요즘 회사에서 입 발린 소리 잘 하고 다닌다며..그래서 칭찬도 많이 받고..그래서 혹시나 했지...헤헤..”
“그건 회사고..집에선 안 그러지..”
“알았어..하아앙...”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손길은 분주히 아내의 그 곳을 간질이며 충분히 애무를 했고, 적당히 촉촉이 젖어있는 그 곳으로 난 한 번에 내 물건을 밀어 넣었다.
“하아..하아..좋아..오빠..너무..”
“나도 나도 좋아..”
“이렇게 좋은데 왜 안 하고 살았나 몰라..”
“그러게...”
“사랑해..오빠..오빤 내 꺼야..”
“그래..네 꺼지..”
나른한 일요일 오후만큼..온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아내와의 섹스..
우린 서로의 몸에 집중하며 그 행복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과장님..아니 이제 부장님이시구나~ 부장님..!!”
“뭔 소리야 아침부터..”
“출근해서 사내 게시판 확인 안 하셨어요? 부장님으로 승진하셨잖아요!”
“내가..? 진짜...??”
난 정현이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게시판을 들어가 확인했다.
그리고 그 곳에 떠 있는 선명한 내 이름 세 글자..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들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동기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과장을 단 내가 1년 만에
부장으로 승진이라니..
어안이 벙벙해서 새로 고침을 눌러서 확인하고 다시 또 확인해봤지만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부장님~ 흐흐흐”
그리고 승진 대상자에 포함되어 있는 또 다른 이름..정현이..
그 동안 은근히 같은 팀이면서 안 좋게 본 것도 사실이고, 시기한 것도 사실이지만 얼마 전에 끝낸 3개월짜리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느낀 건 확실히 윗사람에게 엄청 잘 하는 스타일인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일도 엄청 열심히 하고 잘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특정 한 부분을 너무 안 좋게 봐서, 전체가 다 안 좋게 보였을 뿐..
확실히 능력은 엄청 좋은 녀석이었다. 가끔 그 가식적인 아부가 지나칠 때가 있어서 좀 싫은 건 여전했지만..
“정현이 너도 승진했구나. 축하한다. 이제 대리네”
“네 감사합니다. 부장님...흐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축하, 박정현 이 녀석은 확실히 진급을 해야 할 녀석이었다.
오히려 진급을 못한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일..
난 아침부터 입에 귀에 걸려서 좋아 죽는 정현이를 보면서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은 일찍 못 들어갈 거 같다고.. 나 진급했다고..
아내는 휴대폰에 대고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이제 부장님이니까 옷도
새로 사야하고,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둥 한참을 자기 할 말만 하고 부장님이니까 이제 바쁠 거 아니냐며 내가 전화를 했는데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지...”
“형수님이랑 통화하셨어요?”
“어? 어어”
“엄청 좋아하셨겠네요..흐흐..부장님 오늘 회식 어디로 갈지 이야기 좀 해야죠~ 부장님이랑 저랑 진급했으니까 쏘라고 할 게 분명하니까 싼 곳으로 가시죠..제가 싸고 맛난데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 그래 한 번 이야기 좀 들어보자..”
3월..이제 겨울은 다 지나간 것 같다.
아직까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고 찬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낮은 확실히 포근했고 눈에 띄게 해도 다시 길어지고 있었다.
따뜻한 봄의 기운..그 기운만큼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정현이 녀석에게 회식 메뉴를 들으면서 그렇게 나의 부장으로서의 첫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따뜻한 봄에서 뜨거운 여름이 되기 전 아내와 나는 마침내 아내가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입양했다.
이제 갓 젖을 떼고 돌이 지난 예쁜 여자 아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 아이는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왜 진작 조금 더 일찍 입양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걱정했던 건 모두 기우에 가까울 정도로 난 아이에게 푹 빠져 있었다.
아이의 손짓..몸짓..우는 목소리 하나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아내와 나는 뜨거운 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아이에게 푹 빠진 체 어느새 가을이 다가왔다.
완연히 여름의 기운이 빠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 말의 날씨..
문득 1년 전의 그 날이 떠오른다. 지영에게 문자를 받았던 날이 아마도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바람피기 좋은날..
어쩔 땐 지영의 그 문자만 아니었어도 우리 부부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지냈을 거라는 생각에 원망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 탓에 가까웠고, 결국 바람을 피운 건 나여서 누굴 원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아내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아내와 우리 사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이가 생겼으니까 오히려 더 다행인 걸지도..
잠시 신호가 걸려서 창밖을 보며 멍하니 1년 전 생각에 잠겨있던 순간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어. 오빠 나..일찍 오지?”
“어 지금 가고 있어”
“그래 얼른 들어와~ 하나야 아빠 해봐 아빠”
“아..아빠..”
“그래 우리 딸..아빠 얼른 들어갈게. 엄마랑 잘 놀고 있어”
“으..으응..”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아빠라는 말에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아이와 아내가 기다릴 나의 보금자리로 출발했다.
“아빠 왔..”
“쉿~ 하나 자”
“어어??벌써?”
“애잖아..어제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런지...배고프다고 칭얼거려서 이유식 먹이고 나니까 바로 또 자네..”
“그래...? 저러고 또 밤에 깨는 거 아냐..?”
“아마도...?”
“에휴..밤에 잘 자면 좋겠는데 하나 때문에 우리 은주가 고생이네..”
“고생은 무슨..애들이 다 그렇지..저녁 안 먹었지? 얼른 들어가서 씻어..”
“그래..일단 자는 우리 하나 얼굴 좀 보고..”
“어휴..저 딸 바보..”
“흐흐...남자들이 다 그렇지 모..”
난 씻으러 가기 전에 하나의 방에 들어가 천사 같은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하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욕실로 향해야만 했다.
오랜만에 조용한 저녁 식탁..
하나가 자고 있어서 그런지 집 안이 너무나 조용한 듯 했고, 늦은 저녁을 아내와 함께 먹고 우리는 쇼파에 앉아 잠시의 여유를 가졌다.
그때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비..
“비 와...?”
“어어..”
“일기 예보에 오늘 비 온다는 말 없었는데..”
“그러게..소나기인가..”
그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모르는 번호가 아닌 낯익은 번호가...
정희씨였다.
분명 문득문득 정희씨가 떠오른 순간들도 많았고, 한 번씩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연락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한 번도 정희씨에게 그 후로 연락한 적이 없었다.
정희씨 역시 나에게 연락이 온 적이 없었고..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연락이라니..무슨 일일까..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 순간
아내가 내 손에 휴대폰을 쥐어준다.
“받아. 그 사람이지..? 나쁜 사람 아니잖아.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 했을 거야. 도움이 필요해서..”
“은주야..”
“나 진짜 괜찮으니까 받아. 왠지 오빠가 전화를 받아야 할 거 같아..”
“어어...”
나는 마지막까지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었지만 아내의 허락에 그리고 아내의 말마따나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한참의 고민 끝에 전화를 받았다.
“여..여보세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몇 번이나 여보세요 라고 말해도 휴대폰 너머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고 빗소리만 들려왔고, 순간 불안한 느낌이 내 몸을 감쌌다.
“정희씨. 어디에요. 왜 빗소리가 나..비 맞고 있어? 정희씨 정희씨 말 좀 해봐요”
“여...여기..꽃집..”
“정희씨. 정희씨..!!!”
전화가 끊어졌다. 꽃집이란 한 마디말만 하고선..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아내가 놀라 나를 바라본다. 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서 있으니..
“오빠 말 좀 해봐 어?”
“무..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아. 나 좀 나갔다 와도 될까?”
“그래..갔다 와. 근데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알았지?”
“어..알았어..”
아내의 허락을 받자마자 난 잠옷 차림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우산 하나를 들고 서둘러 뛰어나갔다.
정희씨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고 설렘을 느꼈던 그 가게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그런 거지...?’
잘 살기를 바랐다. 누구보다 더 행복하게..즐겁게..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연락 와서 이렇게 끊어져버린 전화라니..
불안함과 슬픔의 감정이 섞여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고, 오늘따라 정희씨의 가게를 가는 그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비가 와서 그런 건지..내 마음만 조급해서 그런 건지..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그 곳.. 익숙한 그 곳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지만 가게의 불은 꺼져 있었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정희씨의 가게에 올 때까지 전화를 했지만 정희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분명 정희씨가 마지막으로 꺼낸 말이 꽃집이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보이다니...
그런데 그 순간 비가 오면 가게 앞에 항상 화분을 놔두던 그 곳에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저..정희씨...?”
혹시나 하는 맘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 살펴본 그 사람은 분명 정희씨였다.
“정희씨, 정희씨!!! 일어나봐요!!”
정희씨는 비가 오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난 서둘러 정희씨를 업어서 내 차에 태우고 근처의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신호고..비가 오는 것도 나에게 지금 아무 것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시라도 빨리..정희씨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마음 밖에 없었고, 살면서 가장 미친 듯이 난폭하게 운전했다는 생각과 함께 평소라면 20분이 걸릴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해 정희씨를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병명은 과로..
2~3일은 족히 굶은 듯 하고, 몸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며칠 좀 쉬면서 안정을 취하고 나면 나을 겁니다. 딱히 병원에서 더 해줄 거 없고 포도당 주사 다 맞고 나면 퇴원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아..감사합니다. 의사선생님..”
정말 심각한 병이 아닐까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고, 아내가 걱정할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와 있었다.
“여보세요”
“어..오빠..많이 심각해? 전화도 안 받구..”
“어어..미안..병원 데리고 온다고 정신이 없어서..”
“병원?? 어디 많이 아파?”
“아니..그런 건 아니고..과로라네..”
“과로?? 이런...혼자 사는 거 아니었어?”
“어어..”
“그럼 누구 보살펴 줄 사람도 없겠네..”
“아마도..”
“집으로 데려와..”
“은주야..”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줄 사람도 없다며..아플 때 옆에 아무도 없는 게 얼마나 서러운 건데..”
“그래도..”
“그럼 오빠가 간호할 거야? 나도 여자야..아무리 그래도 오빠가 바람피던 상대인데..그걸 어떻게 봐..질투 나서..”
“그..그렇긴 하지..”
역시 말 못하는 나..아내의 조리 있는 말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 결국 아내의 말에 따라 난 잠든 정희씨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거운 발걸음..집 앞에서 몇 번이나 정희씨를 집에 데리고 들어가도 되나 라는 고민이 들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고 난 깊은 한숨과 함께 정희씨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왔어..”
“어어...”
어색하다. 집에 아내가 있는데 내가 바람피던 상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다니..
“저기 작은 방에 이불 펴놨어. 거기 눕혀. 어차피 오빠랑 나랑 하나는 안방에 자면 되니까”
“그..그래..”
난 작은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정희씨를 눕히고 거실로 나왔다.
뭔가 아내에게 죄를 짓는 기분..난 고개를 푹 숙인 체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왜 그래..죄 지었어..?”
“어? 어..지었지..”
“뭐야..그건 옛날 일이잖아..”
“정말..괜찮아...?”
“나도 오빠랑 바람났던 사람을 집에 데리고 들어오는 게 썩 유쾌하지 않은데..별 수 없잖아. 누군가 보살 필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
“그렇긴 한데..”
“됐어..그만 이야기 하자.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고 오빠는 얼른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엉망이네..”
“어? 어어..”
그제야 내 꼴을 보니 정말 말이 아니었다. 잠옷에 온통 비며 흙탕물이며 튀어서..
“어지간히 급했나봐..잠옷만 입고..내가 아파도 그럴까...흥..난 우리 하나 잘 자나 보러 가야겠네”
“으..은주야~!”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난 이번 일로 왠지 아내에게 오랫동안 구박을 받을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하아..갑자기 뭔 일인지..’
시원하게 때려 붓는 물줄기..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맞으며 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씨를 아내의 말에 따라 집으로 데리고 오긴 했는데 정희씨가 정신 차리고 나서 내가 너무 잘 해준다거나 애매하게 굴면 아내에게 두고두고 구박을 받을 테니..
‘그래..지금 내가 사랑하는 건 아내고..정희씨에겐 미안하지만 정희씨는 예전의 사랑이니..’
확실하게 마음을 다 잡고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작은방에서 기척이 들린다.
정희씨가 깨어난 것인가..
서둘러 옷을 입고 작은방으로 가니 정희씨는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지 억지로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여..여기가...”
“정희씨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미..민수씨?”
겨우 뜨고 있던 정희씨의 눈이 크게 커진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미..민수씨..민수씨가 어떻게..? 여긴 어디에요...?”
나에게 전화를 한 기억이 없나보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하는 얼굴..
“여긴 우리 집이에요. 정희씨가 나한테 전화를 해서 내가 정희씨에게 간 거고..빗속에 쓰러져 있는데 도저히 두고 갈 수가 있어야죠. 병원에 데려갔다가 퇴원해도 된다 그래서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왔어요. 옆에서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왜 데려왔어..그냥 두고 가지..나도 미쳤나 보네..민수씨한테..”
정희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직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왜 또 우는지..
마음이 아프다. 그토록 행복하길 바랐던 사람인데..오랜만에 다시 만나 처음 마주보는 모습이 우는 모습이라니..
“일어났어요...”
“아.....”
언제 왔는지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서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토록 난감한 순간이 있을까..
아내와 정희씨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그토록 피하고 싶던 순간이 나에게 다가왔다.
“좀 더 자도 되는데..”
“저..정말 죄송합니다. 그만 나갈게요..”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정희씨가 아내를 보고 급히 나가려 했고, 아내는 그런 정희씨를 붙잡아 다시 눕혔다.
“아직..아직 안 괜찮아요..누워요..”
“저..정말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요. 아직 비도 안 그쳤어. 몸도 성치 않은 사람 이렇게 보내면 내 맘이 안 좋아요..”
“왜..왜 화 안 내세요...나 민수씨랑 바람피던 사람인데..막 욕하고 때리고 그래야 하잖아요..”
“내가 그랬으면 해요..? 그럼 마음이 편할 거 같아..? 그렇다면 그렇게 해줄게..근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나에게 오빠한테 다시 돌아가라고 말해준거잖아요..”
“나..나쁜 사람이잖아요...언니 남편이랑 바람 피고..그것도 모자라..이렇게 연락하고...나..나...”
“아니야. 그런 사람 아니야. 사랑은 마음처럼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정희씨가 나쁜 사람인건가...사랑이 나쁜 거지..어떻게 하지도 못 하게 하는..사랑이 나쁘죠..”
“언니...언니...!!”
정희씨가 아내의 품에 안겨 운다. 서럽게 너무나 서럽게...
마치 자신의 마음을 모두 알아줘서 너무나 고맙다는 듯이 속에 있는 걸 모두 끄집어내서..울분을 토하듯이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한참을 아내의 품에 안겨서..
“이제 좀 괜찮아요...?”
“네에....언니 고마워요..”
“근데 왜 빗속에 그렇게 쓰러져 있던 거에요...”
“그게...”
정희씨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나와의 여행 중에 했던 그 이야기를..
그 누구에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그 아픈 이야기를 다시 아내에게 털어 놓고 있었다.
“민수씨와 헤어지고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러다..아빠를 문득 찾고 싶었어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어떻게 생긴 사람인지..그래도 내가 세상에 있게 해준 사람인데..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찾으러 간 거에요..?”
“네...근데 너무 늦었더라구요..아빠는..아빠는 내가 찾고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어요..겨우 찾은 아빠인데..처음으로 본 아빠인데...”
“휴.....”
아내가 정희씨를 품에 꼭 끌어안는다.
정희씨가 아내의 품에 안겨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아빠는 한 눈에 절 알아보셨어요. 호흡기를 달고 숨쉬기도 힘드신데..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힌 체로 힘겹게 저에게 말하셨어요..미안하다고...미안하다고...”
“울어요...실컷 울어..”
“나..나는...엄마한테 그 말 듣고 아빠를 너무나 원망하고 살아왔는데 그 말 한마디에 모두 용서가 됐어요. 아빠의 미안하다는 그 말 한 마디에...그리고 제발 아빠가 날 위해 살아주길 바랬어요..그런데 아빠를 찾은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아빠는 떠나버렸어요. 영원히 볼 수 없는 그 곳으로..이제 겨우 찾았는데...너무나 보고 싶은 아빠인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값 싼 위로일 뿐..
그 어떤 말도..그 어떤 위로도 해줄 수 없었다.
천 마디의 위로보다 그저 아내가 지금처럼 정희씨를 안아주는 것이 훨씬 큰 위로가 될 터..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너무 힘들고..슬프고...모르겠어요..그냥 며칠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거 같아요. 미친 사람처럼...그러다 그냥 쓰러진 거 같은데...무슨 생각으로 민수씨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빠가 떠나고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겨진 연락할 사람이 민수씨 밖에 없었나 봐요...나도 염치도 없지...”
“무슨 염치가 없어요...오빠가 나쁜 사람이지..그렇게 떠나고..”
뜨끔하다. 난 차마 두 사람을 바라볼 수 없어 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정희씨 참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야..얼마나 힘들었을지 차마 이해한다고는 못하겠네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꼭 안아주는 것 뿐...힘들면 더 울어도 돼..”
“아니..괜찮아요 언니..그리고 정말 고마워요...내 맘 알아줘서..날 이해해줘서..”
“우리 정희씨 너무 예쁜데 자꾸 울어서 눈 붓겠다...그만 울어요..이렇게 예쁜데 왜 자꾸 울어..”
“나..나 하나도 안 예쁜데...언니가 더 예뻐요..”
정희씨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체 웃는다. 환하게...
“거 봐..얼마나 예뻐 웃으니까..너무 예쁘네..우리 정희씨..”
“언니이...정말 제 언니였으면 좋겠어요...”
“알았어..언니 해줄게..내가 정희씨 언니..”
“정말..정말이요..??”
정희씨가 깜짝 놀란 얼굴로 아내를 바라본다.
“네..그럼요..”
“저..그럼 내 입장이 난처한데..”
“죄 지은 사람은 조용히 좀 있지..?”
아내와 정희씨가 동시에 나를 노려본다.
그렇지..난 죄 지은 사람이었지..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야겠다..
도저히 그 따가운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난 슬그머니 작은방에서 빠져나왔다.
그 날의 극적인 화해...
그 일이 있은 후 아내와 정희씨는 정말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
정희씨는 스스럼없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고, 아내도 정희씨의 가게에 자주 찾아가 만나곤 했다.
오히려 둘 사이에서 나만 공기처럼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뭔가 서운한 느낌..?
하지만 뭐 싫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내 죄를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면..씻을 수 있다면..
충분히 나쁘지 않았다.
“오빠”
“어??”
“정희 남자친구 생겼다”
“진짜??”
“어어~ 얼굴도 잘 생겼고 키도 훤칠하고 무엇보다 성격이 맘에 들더라”
“벌써 만나 본거야?”
“그러엄~ 내가 제일 먼저 보고 평가해야지. 우리 정희 남자친구인데..정희 울리는 놈은 내가 절대 용서 못 하지”
“그래...하하..근데 왠지 좀 섭섭하기도 하고 그러네..남자 친구 생겼다니까..”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아냐...”
아내의 따가운 시선..말 한 마디 잘못했다고 엄청난 레이저가 돌아왔다.
물론 반은 진심..반은 농담이었지만..
정희씨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솔직히 조금은 섭섭한 것도 사실이었다.
드디어 날 잊는 건가라는 생각에..
하지만 그것보단 드디어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겠구나라는 생각에
훨씬 더 기뻤다. 드디어 즐거운 날이..행복한 날만이 가득하기를..
바람피기 좋은날..이런 날은 사랑하기에도 좋은 날이니..현재의 사람에게 충실하며..
행복한 사랑을 하기를..
**그동안 바람피기 좋은날을 사랑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힘이 되어주는 댓글 남겨주신 분들에게도 고맙고, 댓글은 달지 않더라도
묵묵히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원래는 15~20부 정도를 예상하고 썼는데 생각보다 하고 싶던 이야기를 모두 하고 나니
일찍 끝나버렸네요..프롤부터 에필까지 11부 정도니..뭐 그래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모두 했고
더 길게 쓰면 오히려 늘어질 거 같아서 원래 쓰고자 했던 방향대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차기작으로 네토장편을 쓸까 로맨스장편을 쓸까 고민했는데..지금 음란한 우리엄마re를
쓰고있어서 자극적인 장르 두 개를 쓰는건 힘들거 같아..로맨스 중장편(20부작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으로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바람피기 좋은 날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다시 새로운 로맨스 글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집안이 화목해야 밖에 나가서 편히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실히 옛말은 곱씹어보면 맞는 말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아내와의 관계가 다시 원상회복이 된 이후로 거짓말처럼
회사에서의 일들은 더욱 더 잘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휴가를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은 나에게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며
전권을 부여해주었고 나는 정현이와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그 시기..
아내와 난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임의 몸..
아내는 입양을 원했다.
입양이란 두 글자..
그 두 글자가 나에게 묵직하게 다가왔다.
명과 암이 뚜렷이 존재하는 것..
아이가 없는 우리에게 더 없이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떠한 것에도 좋은 면만 존재할 수 없듯이
매스컴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안 좋은 점들도 많이 알려져 있었기에
내 입장은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웠다.
“정말 그렇게 아이를 가지고 싶어...?”
“응...오빠는 우리 피가 안 섞여서 싫은 거야?”
“아니..그런 건 아니고..그냥 솔직히 무작정 좋을 수는 없잖아..걱정도 많이 되구..새로운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잘 적응할지..상처가 많지는 않을지..”
“나두 무작정 다 잘 될 거야 그런 건 아냐..걱정도 되지..그렇지만 오빠랑 나랑 사랑으로 잘 보듬어서 키우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
“오빠..나 내 몸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꼭 키워보고 싶어..우리 아이..오빠와 나의 아이..”
“알았어..알았어..은주야..”
더 이상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이렇게 간절히 원하는데..
아내에게 아이는 간절함이었다.
외동으로 태어난 아내는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서 항상 외롭게 자라서, 나와 연애시절에도 결혼하면 꼭 아이 둘 이상은 무조건 낳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 아내가 불임이라니.. 아내의 상실감은 이루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힘들 정도였으니..
“내가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오빠에게 받은 사랑 고스란히 다 아이에게 전해 주고 싶어..우리 아이에게..”
“그래..그러자..은주 너라면 분명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거야..우리 은주라면..”
더 이상 거절할 명분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아내라면 충분히 입양을 한 아이라도 훌륭히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난 아내를 꼭 끌어안으며 나도 반드시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오빠도 좋은 아빠가 되 줄 거지...?”
“그러엄..”
사랑스런 아내의 모습..어쩜 생각하는 것까지 이렇게 예쁠까..
난 아내의 입술에 살며시 내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아내의 입술..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아내의 향긋한 체취
그 느낌에 그 향에 취한 듯 난 아내에게 진한 키스를 퍼부었고, 우린 침대도 아닌 거실에서 딥 키스를 나누며 쇼파에서 뒹굴었다.
“뭐야..안에 들어가서..”
“왜...나 급해..”
“으휴..응큼해..변태..”
“헤헤..오늘은 그럼 변태 하는 걸로..”
역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법일까..
아내가 돌아오고 몇 년 만에 아내와 나눈 그 기분 좋은 섹스 이후 아내와 나의 관계는 다시 놀랍도록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연애시절처럼..결혼 초기의 그 때처럼..
정말 한 때는 섹스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확실히 마음의 대화만큼 몸의 대화도 중요했었던 건가보다.
“사랑해..”
“나도..사랑해 은주야..”
달콤한 아내의 입술..그리고 그 입술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내의 온 몸을 느끼며, 아내의 옷을 하나하나 벗겼다.
“나 부끄러..밖에 누가 보면 어떡해..커튼이라도..”
“알았어..잠깐만~!”
아내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난 황급히 뛰어가 거실의 커튼을 쳐버리고 다시 아내에게 돌아왔다.
“귀엽네...얼굴이 빨간 게..”
“놀리는 거야..?”
“아니..정말 귀여워서..”
“흐으음...”
내가 놀리는 줄 알고 얼굴이 더욱 더 빨갛게 물든 귀여운 아내에게 다가가 다시 부드러운 키스를 나누며 난 아내의 알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봉긋하게 솟은 예쁜 가슴부터 잘록한 허리 그리고 아내의 소중한 그 곳까지..
“하아아....”
아내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나의 손길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음소리가..
아내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나도 옷을 하나하나 벗으며 아내와 완전히 하나가 될 준비를 하였고, 아내의 손길이 나의 그 곳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헤헤..커졌네 울 오빠 꺼...”
“커지지..요렇게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내 앞에 있는데 어떻게 안 커지겠어?”
“입에 발린 립 서비스 아니고..?”
“립 서비스 아니거든...!!”
“요즘 회사에서 입 발린 소리 잘 하고 다닌다며..그래서 칭찬도 많이 받고..그래서 혹시나 했지...헤헤..”
“그건 회사고..집에선 안 그러지..”
“알았어..하아앙...”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손길은 분주히 아내의 그 곳을 간질이며 충분히 애무를 했고, 적당히 촉촉이 젖어있는 그 곳으로 난 한 번에 내 물건을 밀어 넣었다.
“하아..하아..좋아..오빠..너무..”
“나도 나도 좋아..”
“이렇게 좋은데 왜 안 하고 살았나 몰라..”
“그러게...”
“사랑해..오빠..오빤 내 꺼야..”
“그래..네 꺼지..”
나른한 일요일 오후만큼..온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아내와의 섹스..
우린 서로의 몸에 집중하며 그 행복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과장님..아니 이제 부장님이시구나~ 부장님..!!”
“뭔 소리야 아침부터..”
“출근해서 사내 게시판 확인 안 하셨어요? 부장님으로 승진하셨잖아요!”
“내가..? 진짜...??”
난 정현이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게시판을 들어가 확인했다.
그리고 그 곳에 떠 있는 선명한 내 이름 세 글자..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들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동기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과장을 단 내가 1년 만에
부장으로 승진이라니..
어안이 벙벙해서 새로 고침을 눌러서 확인하고 다시 또 확인해봤지만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부장님~ 흐흐흐”
그리고 승진 대상자에 포함되어 있는 또 다른 이름..정현이..
그 동안 은근히 같은 팀이면서 안 좋게 본 것도 사실이고, 시기한 것도 사실이지만 얼마 전에 끝낸 3개월짜리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느낀 건 확실히 윗사람에게 엄청 잘 하는 스타일인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일도 엄청 열심히 하고 잘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특정 한 부분을 너무 안 좋게 봐서, 전체가 다 안 좋게 보였을 뿐..
확실히 능력은 엄청 좋은 녀석이었다. 가끔 그 가식적인 아부가 지나칠 때가 있어서 좀 싫은 건 여전했지만..
“정현이 너도 승진했구나. 축하한다. 이제 대리네”
“네 감사합니다. 부장님...흐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축하, 박정현 이 녀석은 확실히 진급을 해야 할 녀석이었다.
오히려 진급을 못한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일..
난 아침부터 입에 귀에 걸려서 좋아 죽는 정현이를 보면서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은 일찍 못 들어갈 거 같다고.. 나 진급했다고..
아내는 휴대폰에 대고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이제 부장님이니까 옷도
새로 사야하고,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둥 한참을 자기 할 말만 하고 부장님이니까 이제 바쁠 거 아니냐며 내가 전화를 했는데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지...”
“형수님이랑 통화하셨어요?”
“어? 어어”
“엄청 좋아하셨겠네요..흐흐..부장님 오늘 회식 어디로 갈지 이야기 좀 해야죠~ 부장님이랑 저랑 진급했으니까 쏘라고 할 게 분명하니까 싼 곳으로 가시죠..제가 싸고 맛난데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 그래 한 번 이야기 좀 들어보자..”
3월..이제 겨울은 다 지나간 것 같다.
아직까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고 찬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낮은 확실히 포근했고 눈에 띄게 해도 다시 길어지고 있었다.
따뜻한 봄의 기운..그 기운만큼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정현이 녀석에게 회식 메뉴를 들으면서 그렇게 나의 부장으로서의 첫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따뜻한 봄에서 뜨거운 여름이 되기 전 아내와 나는 마침내 아내가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입양했다.
이제 갓 젖을 떼고 돌이 지난 예쁜 여자 아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 아이는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왜 진작 조금 더 일찍 입양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걱정했던 건 모두 기우에 가까울 정도로 난 아이에게 푹 빠져 있었다.
아이의 손짓..몸짓..우는 목소리 하나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아내와 나는 뜨거운 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아이에게 푹 빠진 체 어느새 가을이 다가왔다.
완연히 여름의 기운이 빠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 말의 날씨..
문득 1년 전의 그 날이 떠오른다. 지영에게 문자를 받았던 날이 아마도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바람피기 좋은날..
어쩔 땐 지영의 그 문자만 아니었어도 우리 부부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지냈을 거라는 생각에 원망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 탓에 가까웠고, 결국 바람을 피운 건 나여서 누굴 원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아내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아내와 우리 사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이가 생겼으니까 오히려 더 다행인 걸지도..
잠시 신호가 걸려서 창밖을 보며 멍하니 1년 전 생각에 잠겨있던 순간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어. 오빠 나..일찍 오지?”
“어 지금 가고 있어”
“그래 얼른 들어와~ 하나야 아빠 해봐 아빠”
“아..아빠..”
“그래 우리 딸..아빠 얼른 들어갈게. 엄마랑 잘 놀고 있어”
“으..으응..”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아빠라는 말에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아이와 아내가 기다릴 나의 보금자리로 출발했다.
“아빠 왔..”
“쉿~ 하나 자”
“어어??벌써?”
“애잖아..어제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런지...배고프다고 칭얼거려서 이유식 먹이고 나니까 바로 또 자네..”
“그래...? 저러고 또 밤에 깨는 거 아냐..?”
“아마도...?”
“에휴..밤에 잘 자면 좋겠는데 하나 때문에 우리 은주가 고생이네..”
“고생은 무슨..애들이 다 그렇지..저녁 안 먹었지? 얼른 들어가서 씻어..”
“그래..일단 자는 우리 하나 얼굴 좀 보고..”
“어휴..저 딸 바보..”
“흐흐...남자들이 다 그렇지 모..”
난 씻으러 가기 전에 하나의 방에 들어가 천사 같은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하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욕실로 향해야만 했다.
오랜만에 조용한 저녁 식탁..
하나가 자고 있어서 그런지 집 안이 너무나 조용한 듯 했고, 늦은 저녁을 아내와 함께 먹고 우리는 쇼파에 앉아 잠시의 여유를 가졌다.
그때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비..
“비 와...?”
“어어..”
“일기 예보에 오늘 비 온다는 말 없었는데..”
“그러게..소나기인가..”
그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모르는 번호가 아닌 낯익은 번호가...
정희씨였다.
분명 문득문득 정희씨가 떠오른 순간들도 많았고, 한 번씩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연락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한 번도 정희씨에게 그 후로 연락한 적이 없었다.
정희씨 역시 나에게 연락이 온 적이 없었고..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연락이라니..무슨 일일까..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 순간
아내가 내 손에 휴대폰을 쥐어준다.
“받아. 그 사람이지..? 나쁜 사람 아니잖아.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 했을 거야. 도움이 필요해서..”
“은주야..”
“나 진짜 괜찮으니까 받아. 왠지 오빠가 전화를 받아야 할 거 같아..”
“어어...”
나는 마지막까지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었지만 아내의 허락에 그리고 아내의 말마따나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한참의 고민 끝에 전화를 받았다.
“여..여보세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몇 번이나 여보세요 라고 말해도 휴대폰 너머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고 빗소리만 들려왔고, 순간 불안한 느낌이 내 몸을 감쌌다.
“정희씨. 어디에요. 왜 빗소리가 나..비 맞고 있어? 정희씨 정희씨 말 좀 해봐요”
“여...여기..꽃집..”
“정희씨. 정희씨..!!!”
전화가 끊어졌다. 꽃집이란 한 마디말만 하고선..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아내가 놀라 나를 바라본다. 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서 있으니..
“오빠 말 좀 해봐 어?”
“무..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아. 나 좀 나갔다 와도 될까?”
“그래..갔다 와. 근데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알았지?”
“어..알았어..”
아내의 허락을 받자마자 난 잠옷 차림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우산 하나를 들고 서둘러 뛰어나갔다.
정희씨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고 설렘을 느꼈던 그 가게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그런 거지...?’
잘 살기를 바랐다. 누구보다 더 행복하게..즐겁게..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연락 와서 이렇게 끊어져버린 전화라니..
불안함과 슬픔의 감정이 섞여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고, 오늘따라 정희씨의 가게를 가는 그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비가 와서 그런 건지..내 마음만 조급해서 그런 건지..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그 곳.. 익숙한 그 곳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지만 가게의 불은 꺼져 있었다.
그럼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정희씨의 가게에 올 때까지 전화를 했지만 정희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분명 정희씨가 마지막으로 꺼낸 말이 꽃집이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보이다니...
그런데 그 순간 비가 오면 가게 앞에 항상 화분을 놔두던 그 곳에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저..정희씨...?”
혹시나 하는 맘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 살펴본 그 사람은 분명 정희씨였다.
“정희씨, 정희씨!!! 일어나봐요!!”
정희씨는 비가 오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난 서둘러 정희씨를 업어서 내 차에 태우고 근처의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신호고..비가 오는 것도 나에게 지금 아무 것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시라도 빨리..정희씨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마음 밖에 없었고, 살면서 가장 미친 듯이 난폭하게 운전했다는 생각과 함께 평소라면 20분이 걸릴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해 정희씨를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병명은 과로..
2~3일은 족히 굶은 듯 하고, 몸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며칠 좀 쉬면서 안정을 취하고 나면 나을 겁니다. 딱히 병원에서 더 해줄 거 없고 포도당 주사 다 맞고 나면 퇴원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아..감사합니다. 의사선생님..”
정말 심각한 병이 아닐까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고, 아내가 걱정할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와 있었다.
“여보세요”
“어..오빠..많이 심각해? 전화도 안 받구..”
“어어..미안..병원 데리고 온다고 정신이 없어서..”
“병원?? 어디 많이 아파?”
“아니..그런 건 아니고..과로라네..”
“과로?? 이런...혼자 사는 거 아니었어?”
“어어..”
“그럼 누구 보살펴 줄 사람도 없겠네..”
“아마도..”
“집으로 데려와..”
“은주야..”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줄 사람도 없다며..아플 때 옆에 아무도 없는 게 얼마나 서러운 건데..”
“그래도..”
“그럼 오빠가 간호할 거야? 나도 여자야..아무리 그래도 오빠가 바람피던 상대인데..그걸 어떻게 봐..질투 나서..”
“그..그렇긴 하지..”
역시 말 못하는 나..아내의 조리 있는 말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 결국 아내의 말에 따라 난 잠든 정희씨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거운 발걸음..집 앞에서 몇 번이나 정희씨를 집에 데리고 들어가도 되나 라는 고민이 들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고 난 깊은 한숨과 함께 정희씨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왔어..”
“어어...”
어색하다. 집에 아내가 있는데 내가 바람피던 상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다니..
“저기 작은 방에 이불 펴놨어. 거기 눕혀. 어차피 오빠랑 나랑 하나는 안방에 자면 되니까”
“그..그래..”
난 작은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정희씨를 눕히고 거실로 나왔다.
뭔가 아내에게 죄를 짓는 기분..난 고개를 푹 숙인 체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왜 그래..죄 지었어..?”
“어? 어..지었지..”
“뭐야..그건 옛날 일이잖아..”
“정말..괜찮아...?”
“나도 오빠랑 바람났던 사람을 집에 데리고 들어오는 게 썩 유쾌하지 않은데..별 수 없잖아. 누군가 보살 필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
“그렇긴 한데..”
“됐어..그만 이야기 하자.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고 오빠는 얼른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엉망이네..”
“어? 어어..”
그제야 내 꼴을 보니 정말 말이 아니었다. 잠옷에 온통 비며 흙탕물이며 튀어서..
“어지간히 급했나봐..잠옷만 입고..내가 아파도 그럴까...흥..난 우리 하나 잘 자나 보러 가야겠네”
“으..은주야~!”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난 이번 일로 왠지 아내에게 오랫동안 구박을 받을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하아..갑자기 뭔 일인지..’
시원하게 때려 붓는 물줄기..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맞으며 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씨를 아내의 말에 따라 집으로 데리고 오긴 했는데 정희씨가 정신 차리고 나서 내가 너무 잘 해준다거나 애매하게 굴면 아내에게 두고두고 구박을 받을 테니..
‘그래..지금 내가 사랑하는 건 아내고..정희씨에겐 미안하지만 정희씨는 예전의 사랑이니..’
확실하게 마음을 다 잡고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작은방에서 기척이 들린다.
정희씨가 깨어난 것인가..
서둘러 옷을 입고 작은방으로 가니 정희씨는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지 억지로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여..여기가...”
“정희씨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미..민수씨?”
겨우 뜨고 있던 정희씨의 눈이 크게 커진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미..민수씨..민수씨가 어떻게..? 여긴 어디에요...?”
나에게 전화를 한 기억이 없나보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하는 얼굴..
“여긴 우리 집이에요. 정희씨가 나한테 전화를 해서 내가 정희씨에게 간 거고..빗속에 쓰러져 있는데 도저히 두고 갈 수가 있어야죠. 병원에 데려갔다가 퇴원해도 된다 그래서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왔어요. 옆에서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왜 데려왔어..그냥 두고 가지..나도 미쳤나 보네..민수씨한테..”
정희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직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왜 또 우는지..
마음이 아프다. 그토록 행복하길 바랐던 사람인데..오랜만에 다시 만나 처음 마주보는 모습이 우는 모습이라니..
“일어났어요...”
“아.....”
언제 왔는지 뒤를 돌아보니 아내가 서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토록 난감한 순간이 있을까..
아내와 정희씨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그토록 피하고 싶던 순간이 나에게 다가왔다.
“좀 더 자도 되는데..”
“저..정말 죄송합니다. 그만 나갈게요..”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정희씨가 아내를 보고 급히 나가려 했고, 아내는 그런 정희씨를 붙잡아 다시 눕혔다.
“아직..아직 안 괜찮아요..누워요..”
“저..정말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요. 아직 비도 안 그쳤어. 몸도 성치 않은 사람 이렇게 보내면 내 맘이 안 좋아요..”
“왜..왜 화 안 내세요...나 민수씨랑 바람피던 사람인데..막 욕하고 때리고 그래야 하잖아요..”
“내가 그랬으면 해요..? 그럼 마음이 편할 거 같아..? 그렇다면 그렇게 해줄게..근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나에게 오빠한테 다시 돌아가라고 말해준거잖아요..”
“나..나쁜 사람이잖아요...언니 남편이랑 바람 피고..그것도 모자라..이렇게 연락하고...나..나...”
“아니야. 그런 사람 아니야. 사랑은 마음처럼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정희씨가 나쁜 사람인건가...사랑이 나쁜 거지..어떻게 하지도 못 하게 하는..사랑이 나쁘죠..”
“언니...언니...!!”
정희씨가 아내의 품에 안겨 운다. 서럽게 너무나 서럽게...
마치 자신의 마음을 모두 알아줘서 너무나 고맙다는 듯이 속에 있는 걸 모두 끄집어내서..울분을 토하듯이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한참을 아내의 품에 안겨서..
“이제 좀 괜찮아요...?”
“네에....언니 고마워요..”
“근데 왜 빗속에 그렇게 쓰러져 있던 거에요...”
“그게...”
정희씨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나와의 여행 중에 했던 그 이야기를..
그 누구에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그 아픈 이야기를 다시 아내에게 털어 놓고 있었다.
“민수씨와 헤어지고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러다..아빠를 문득 찾고 싶었어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어떻게 생긴 사람인지..그래도 내가 세상에 있게 해준 사람인데..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찾으러 간 거에요..?”
“네...근데 너무 늦었더라구요..아빠는..아빠는 내가 찾고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어요..겨우 찾은 아빠인데..처음으로 본 아빠인데...”
“휴.....”
아내가 정희씨를 품에 꼭 끌어안는다.
정희씨가 아내의 품에 안겨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아빠는 한 눈에 절 알아보셨어요. 호흡기를 달고 숨쉬기도 힘드신데..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힌 체로 힘겹게 저에게 말하셨어요..미안하다고...미안하다고...”
“울어요...실컷 울어..”
“나..나는...엄마한테 그 말 듣고 아빠를 너무나 원망하고 살아왔는데 그 말 한마디에 모두 용서가 됐어요. 아빠의 미안하다는 그 말 한 마디에...그리고 제발 아빠가 날 위해 살아주길 바랬어요..그런데 아빠를 찾은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아빠는 떠나버렸어요. 영원히 볼 수 없는 그 곳으로..이제 겨우 찾았는데...너무나 보고 싶은 아빠인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값 싼 위로일 뿐..
그 어떤 말도..그 어떤 위로도 해줄 수 없었다.
천 마디의 위로보다 그저 아내가 지금처럼 정희씨를 안아주는 것이 훨씬 큰 위로가 될 터..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너무 힘들고..슬프고...모르겠어요..그냥 며칠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거 같아요. 미친 사람처럼...그러다 그냥 쓰러진 거 같은데...무슨 생각으로 민수씨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빠가 떠나고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겨진 연락할 사람이 민수씨 밖에 없었나 봐요...나도 염치도 없지...”
“무슨 염치가 없어요...오빠가 나쁜 사람이지..그렇게 떠나고..”
뜨끔하다. 난 차마 두 사람을 바라볼 수 없어 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정희씨 참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야..얼마나 힘들었을지 차마 이해한다고는 못하겠네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꼭 안아주는 것 뿐...힘들면 더 울어도 돼..”
“아니..괜찮아요 언니..그리고 정말 고마워요...내 맘 알아줘서..날 이해해줘서..”
“우리 정희씨 너무 예쁜데 자꾸 울어서 눈 붓겠다...그만 울어요..이렇게 예쁜데 왜 자꾸 울어..”
“나..나 하나도 안 예쁜데...언니가 더 예뻐요..”
정희씨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체 웃는다. 환하게...
“거 봐..얼마나 예뻐 웃으니까..너무 예쁘네..우리 정희씨..”
“언니이...정말 제 언니였으면 좋겠어요...”
“알았어..언니 해줄게..내가 정희씨 언니..”
“정말..정말이요..??”
정희씨가 깜짝 놀란 얼굴로 아내를 바라본다.
“네..그럼요..”
“저..그럼 내 입장이 난처한데..”
“죄 지은 사람은 조용히 좀 있지..?”
아내와 정희씨가 동시에 나를 노려본다.
그렇지..난 죄 지은 사람이었지..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야겠다..
도저히 그 따가운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난 슬그머니 작은방에서 빠져나왔다.
그 날의 극적인 화해...
그 일이 있은 후 아내와 정희씨는 정말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
정희씨는 스스럼없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고, 아내도 정희씨의 가게에 자주 찾아가 만나곤 했다.
오히려 둘 사이에서 나만 공기처럼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뭔가 서운한 느낌..?
하지만 뭐 싫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내 죄를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면..씻을 수 있다면..
충분히 나쁘지 않았다.
“오빠”
“어??”
“정희 남자친구 생겼다”
“진짜??”
“어어~ 얼굴도 잘 생겼고 키도 훤칠하고 무엇보다 성격이 맘에 들더라”
“벌써 만나 본거야?”
“그러엄~ 내가 제일 먼저 보고 평가해야지. 우리 정희 남자친구인데..정희 울리는 놈은 내가 절대 용서 못 하지”
“그래...하하..근데 왠지 좀 섭섭하기도 하고 그러네..남자 친구 생겼다니까..”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아냐...”
아내의 따가운 시선..말 한 마디 잘못했다고 엄청난 레이저가 돌아왔다.
물론 반은 진심..반은 농담이었지만..
정희씨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솔직히 조금은 섭섭한 것도 사실이었다.
드디어 날 잊는 건가라는 생각에..
하지만 그것보단 드디어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겠구나라는 생각에
훨씬 더 기뻤다. 드디어 즐거운 날이..행복한 날만이 가득하기를..
바람피기 좋은날..이런 날은 사랑하기에도 좋은 날이니..현재의 사람에게 충실하며..
행복한 사랑을 하기를..
**그동안 바람피기 좋은날을 사랑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힘이 되어주는 댓글 남겨주신 분들에게도 고맙고, 댓글은 달지 않더라도
묵묵히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원래는 15~20부 정도를 예상하고 썼는데 생각보다 하고 싶던 이야기를 모두 하고 나니
일찍 끝나버렸네요..프롤부터 에필까지 11부 정도니..뭐 그래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모두 했고
더 길게 쓰면 오히려 늘어질 거 같아서 원래 쓰고자 했던 방향대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차기작으로 네토장편을 쓸까 로맨스장편을 쓸까 고민했는데..지금 음란한 우리엄마re를
쓰고있어서 자극적인 장르 두 개를 쓰는건 힘들거 같아..로맨스 중장편(20부작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으로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바람피기 좋은 날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다시 새로운 로맨스 글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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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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