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도 독자님들의 성원이나 반응이 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알바" 와 비교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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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셀린에게 작업 걸기
나는 강대리를 안고는 있지만, 지금 내 머리 속에는 엠마가 들어있다. 그런데 강대리는 유난히 몸부림치면서 보챈다.
"뭐야아. 도대체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왜?"
"꼭 실연이라도 당한 남자처럼 왜이래? 나한테 집중을 안 하잖아.
여자랑 침대에 있으면서 멍때린다는 것이 말이 돼?"
"어? 미안. .. 그런데 나 실연당한 일 없거든."
"안 할 것도 아니고, 기왕 하는 거니까 집중해서 잘 좀 하면 안돼?"
"선미 너는 나랑 그렇게 하고 싶니?"
"오빠가 한 짓을 생각하면 무지 얄밉기는 해.
그렇지만 지금 여기 있는 남자라고는 오빠 뿐인데 별 수 없잖아."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
"내가 이렇게 덤벼드는 것은 내 자존심을 다 버렸다는 말이거든요."
처음에 나는 소극적이었다. 강대리가 나를 몇 번 꼬집고, 손톱을 등에 박는 바람에 나도 미친 듯이 열을 올렸다. 그런데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엠마 때문이다. 아니다. 내 머리 속에 엠마가 있는 것을 모르고, 강대리가 내 남성을 잠에서 깨우려고 입에 물고 빨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엠마를 생각하면서 강대리의 입을 들락거리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때가 되자 내 머리 속은 텅 비워지고, 내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이 엠마인지 강대리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된다. 때가 되어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지만 보이는 것이 없다.
강대리와 나 사이에는 오직 몸부림의 언어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몸부림의 언어만으로도 충분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문화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존재라는데,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마치 영광의 탈출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언어를 포기한다. 그래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진화 이전 유인원의 상태로 돌아간다. 쾌락과 희열이라는 함수들은 만족이라는 새로운 합성함수를 만든다. 우리는 이 함수에 빠져서 괴성을 지르면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만족이라는 새로운 함수의 극한값을 체험한 것이다.
도달할 수는 없지만, 한없이 가까이 수렴하는, 그래서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된다는 극한값.
이 만족의 극한값은 인간이라는 범주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 값은 극한값이므로 인간은 이 극한값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의 존재를 감싸고 있는 교양, 예술, 지식, 문화, 도덕, 종교, 철학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존재를 "인간"이라는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탈바꿈 시켜놓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자리를 과감하게 벗어나서, 우리 위에 덧입혀져 있는 모든 것을 벗어서 내던질 때, 우리는 인간 이전의 존재로 되돌아가고, 몸부림을 칠 정도의 쾌락을 맛보는 것은 무슨 일일까?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평소에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탈인간의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이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이미 사라지고 없다. 마치 비누방울이 점점 커지면서 빛을 영롱하게 반사시키다가, 우리가 감탄하는 바로 그 순간에 "빵" 하고 터지고 사라져버린 것 처럼. 이제 남은 것은 축축한 습기뿐이다.
이제 우리가 인간이라는 위치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서글픈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부등켜 안고 쓰다듬으며, 서로를 위로한다. 우리는 물고 빨고 핥으면서 키스한다.
사건이 마무리 지어지고, 우리는 씻고 다시 침대에 와서 누웠다. 강대리가 내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것들 보면 주인공이 항상 우유부단하고,
그런 주인공 주변으로 사람들이 덤벼들잖아?"
"글쎄. 그런가?"
"오빠도 마음이 착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여자들한테 너무 잘해주는 것이 문제야."
"내가? 선미 말고 내가 잘해주는 여자가 있나?"
"효원이, 성대리, 조과장, 등등"
"아휴. .. 효원이는 아직 어리잖아."
"그건 오빠 생각에 그렇고, 과연 걔 생각에도 그럴까?"
"그렇다고 쳐. 그런데 지금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야?"
"나 말고 다른 여자는 다 캇 하라고."
"캇 하고 싶어도 할 여자가 없거든요."
"하아... 그러셔? 그래서 어제 밤에는?"
"그건 내 사생활이라니까."
"우리 지금 오빠 사생활을 얘기하는 중이거든요."
"그럼 선미가 내 생활 영역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이 정도면 벌써 들어가있는 것 아닌가?"
"글쎄. .. 그건 나한테 별로 감동이 안 오는 말이다."
"어라? 오빠 갑자기 까칠해지네?"
"내가 너랑 공유할 수 없는 생각이니까. 내 관심은 여기까지만."
"그럼 이제 나한테 관심 끝이라고?"
"우기지마.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어.
선미가 내 사생활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에 관심 없다고 했어."
"말 참 엄청 어렵게 하네."
"몸이 피곤하면 모든 것이 또 생각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져."
"에이.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무슨 잠을 그렇게 많이 자려고 해? 잠보가 터졌나?"
"어제 밤에 오빠 없이 내가 잠을 제대로 잤을꺼라고 생각해?"
"그랬나?"
우리는 잠을 잔 것이 아니라 깜빡 졸았다. 그런데 한 시 정각으로 맞춰둔 알람이 울어버린다. 우리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내려왔다. 셀린 보델이 와서 호텔 앞에 차를 세워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차에 탔고, 셀린은 몽오쥬로 출발했다. 셀린이 강대리에게 물었다.
"선미, 어제 야경 구경은 했어?"
"잠만 잤어."
"왜? 그렇게 피곤했어?"
"그게 아니고 저 남자가 밖에 나가서 새벽 네시에 들어왔거든."
"유부남 혼자 밤에 나가서 무엇을 했을까? 하하."
"본인 말고 누가 그걸 알겠어?"
"내가 빠지니까 그런가?
오늘 밤에는 나도 좀 거들어줄까?"
"그럴래? .. 하하."
뒷좌석에 혼자 앉아있는 나를 앞자리에 있는 두 여자가 마구 씹어댄다. 우리는 사또이에에 도착해서 그리이츠만의 방으로 바로 갔다. 그는 우리에게 커피를 마시게 한 후에 셀린과 함께 한 바퀴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보델양이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니까 나보다 안내를 훨씬 더 잘 할 것입니다."
셀린은 앞장서서 방을 나갔고, 우리는 셀린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강대리는 어느새 셀린의 팔짱을 끼고 걷는다. 공장으로 들어서면서 셀린은 설명을 시작했는데, 강대리가 울상을 짓는다.
"상수.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선미가 이해를 못하는데."
나는 셀린이 소개하는 시설들을 보면서 그녀의 말을 듣고 강대리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그런데 어제 엠마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방향제는 기본적으로는 일반 방향제와 똑같아. 그런데 거기에 이런 저런 약재를 섞는 것이 달라. 여기가 식물에서 필요한 성분들을 얻어내는 추출실이야."
"이거 혹시 원심분리기 아닌가?"
"맞아. 일단 식물의 잎과 줄기를 갈아서, 원심분리기로 걸러내면 그 성분들을 얻어낼 수 있어. 그리고 그것들을 끓이는 것이 제일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야."
"나중에 고체 덩어리로 굳으면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서 통 안에 담는구나."
"고체 상태의 물질이 기체로 바귀는 것을 승화라고 하거든. 승화를 잘 하려면 공기와 접촉하는 면 이 넓어야 해. 커다란 덩어리 한 개 보다는 작은 알갱이들이 훨씬 유리해. 이것은 열역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어."
우리는 셀린의 안내로 두 시간에 걸쳐서 생산 시설들을 보고 나서 그리이츠만 씨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가 웃으며 내게 물었다.
"잘 보셨어요?"
"예. 너무 훌륭한 시설입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에게는 우리 몸에서 어디가 안 좋을 때에는 무슨 식물을 어떻게 해서 먹으면 낫는다라는 말이 잇죠? 우리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합니다. 이것이 과연 한국 사람들에게도 그런 효능을 나타낼지는 우리가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식물들은 한국에도 있지요?"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 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는 생각해봐야겠어요."
"지난 번에 여기에 오신 분이 장 이사님이었죠? 나는 그 분께 굳이 수입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어요. 그런데 그 분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그럼 한국 말고, 일본이나 중국에도 수출을 하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우리와 거래하지는 않습니다.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서 일본과 중국은 아예 꿈도 꾸지 않습니다. 그쪽 지역에 있는 우리의 비지니스 파트너는 오직 한국입니다."
"왜 하필 한국에만 수출하는 거죠?"
"우리는 유럽의 수요만 공급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 한국에서 장이사님이 오셔서 시험적으로 한국에서 시판을 해보자고 사정하는 바람에 조금씩 하게 된 것입니다."
"없어서 못 팔겠다는데 할 말이 없네요."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제네바에 있는 본사에 가도 대답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맞아요. 그렇지만 .."
"예?"
"한국에도 노인들은 병을 치유하는 식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오히려 그 식물들이 맞을 수 있어요. 그 쪽으로 연구를 해보시는 것이 훨씬 권할만한 일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연구해서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까지는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 때 까지는 저희에게 공급을 계속해주십시오."
"노력하겠습니다."
"확실하게 약속해주십시오."
"우리는 유럽에 있는 매장들과 백년 가까이 거래하고 있습니다. 이 매장에 공급할 물량을 한국으로 돌릴 수는 없지않습니까? 그래서 확실한 약속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못하면 그것도 우리 둘에게 모두 좋은 일은 아닙니다."
"저는 오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돌아가겠습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주말을 아름답게 보내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셀린 보델은 우리의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강대리는 이해를 하지 못해서인지 답답해하는 것 같고, 짜증스러운 얼굴이다.
우리는 그리이츠만씨와 작별을 하고, 셀린 보델과 함께 파리로 출발했다. 강대리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돋는다. 앞자리에서 두 여자는 깔깔거리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가 파리에 온 이유가 뭐였지?
나에게 갑자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가지는 셀린 보델에게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을까이다. 그리이츠만씨는 책임자의 입장에서 원칙만을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원칙만으로 돌아가는가? 또 한가지는 우리 나라에서 한약으로 쓰이는 수많은 약재들이다. 파리에서 지금 당장 약재를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까 이 문제는 한국에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셀린과는 오늘 헤어지면 끝이다. 반드시 오늘, 나는 셀린에게 작업을 걸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강대리가 도끼눈을 하고 지키고 있을 것이므로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셀린에게 어떻게든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셀린에게 말을 걸었다. 강대리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영어로 얘기했다.
"셀린."
"응?"
"오늘 금요일인데, 저녁에 좋은 계획 있어?"
"없어. 오늘은 무조건 쉬어야 하거든."
"그럼 오늘 저녁을 우리랑 같이 보낼래?"
"오늘? 너희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내일이 토요일이고, 원래 우리는 제네바로 가야 하는데, 거기는 월요일에 갔으면 해."
"토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이 돼있잖아?"
"전화해서 월요일로 돌려달라고 해볼꺼야."
"왜 그러는데?"
"파리 구경을 전혀 하지 못했거든."
"제네바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거든."
"그건 그래. 그런데 제네바에는 셀린 보델이라는 여자가 없어서 유감이야."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하."
"우리랑 같이 저녁 먹고, 파리 야경을 보자."
"저녁은 어디서 먹게?"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
"와아. 야경은 어디서 볼껀데?"
"저녁 먹기 전에 에펠탑에 올라가서 봐도 좋겠다.
아니면 몽마르뜨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내려다 봐도 좋지. 그럼 에펠탑까지 같이 볼 수 있으니까."
"아아. 마음이 흔들리네. 오늘은 원래 쉬려고 계획했는데."
"우리도 원래는 제네바로 가기로 했었거든.
이번에 우리가 파리를 떠나기 전에 보델씨와 함께 하루 저녁을 보내게 해주세요."
"하아. .. 저렇게까지 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그럼 같이 가."
"그럼 파리 야경은 포기하고, 저녁 먹으러 시골로 갈래?"
"시골이라면, 혹시 꾸브브와(Courbevoie))?"
"어? 상수도 꾸브브와를 알아?"
"여러 해 전에 거기에 가본 적이 있거든."
"좋아. 그럼 여기서 순환도로를 타고 그리로 간다."
"오케이."
지금 시작은 잘 되어가는 것 같다. 강대리는 조용하다. 나는 제네바에 있는 본사에 전화를 해서 토요일로 약속한 미팅을 월요일로 미뤄달라고 했다. 엠마에게는 저녁 식사 후에 늦게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셀린은 꾸브브와로 가기 위해 파리 순환도로를 탄다. 시간은 여섯시가 가까워지고, 날은 벌써 어둡기 시작한다.
저는 "알바" 와 비교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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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셀린에게 작업 걸기
나는 강대리를 안고는 있지만, 지금 내 머리 속에는 엠마가 들어있다. 그런데 강대리는 유난히 몸부림치면서 보챈다.
"뭐야아. 도대체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왜?"
"꼭 실연이라도 당한 남자처럼 왜이래? 나한테 집중을 안 하잖아.
여자랑 침대에 있으면서 멍때린다는 것이 말이 돼?"
"어? 미안. .. 그런데 나 실연당한 일 없거든."
"안 할 것도 아니고, 기왕 하는 거니까 집중해서 잘 좀 하면 안돼?"
"선미 너는 나랑 그렇게 하고 싶니?"
"오빠가 한 짓을 생각하면 무지 얄밉기는 해.
그렇지만 지금 여기 있는 남자라고는 오빠 뿐인데 별 수 없잖아."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
"내가 이렇게 덤벼드는 것은 내 자존심을 다 버렸다는 말이거든요."
처음에 나는 소극적이었다. 강대리가 나를 몇 번 꼬집고, 손톱을 등에 박는 바람에 나도 미친 듯이 열을 올렸다. 그런데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엠마 때문이다. 아니다. 내 머리 속에 엠마가 있는 것을 모르고, 강대리가 내 남성을 잠에서 깨우려고 입에 물고 빨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엠마를 생각하면서 강대리의 입을 들락거리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때가 되자 내 머리 속은 텅 비워지고, 내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이 엠마인지 강대리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된다. 때가 되어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지만 보이는 것이 없다.
강대리와 나 사이에는 오직 몸부림의 언어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몸부림의 언어만으로도 충분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문화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존재라는데,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마치 영광의 탈출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언어를 포기한다. 그래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진화 이전 유인원의 상태로 돌아간다. 쾌락과 희열이라는 함수들은 만족이라는 새로운 합성함수를 만든다. 우리는 이 함수에 빠져서 괴성을 지르면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만족이라는 새로운 함수의 극한값을 체험한 것이다.
도달할 수는 없지만, 한없이 가까이 수렴하는, 그래서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된다는 극한값.
이 만족의 극한값은 인간이라는 범주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 값은 극한값이므로 인간은 이 극한값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의 존재를 감싸고 있는 교양, 예술, 지식, 문화, 도덕, 종교, 철학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존재를 "인간"이라는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탈바꿈 시켜놓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자리를 과감하게 벗어나서, 우리 위에 덧입혀져 있는 모든 것을 벗어서 내던질 때, 우리는 인간 이전의 존재로 되돌아가고, 몸부림을 칠 정도의 쾌락을 맛보는 것은 무슨 일일까?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평소에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탈인간의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이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이미 사라지고 없다. 마치 비누방울이 점점 커지면서 빛을 영롱하게 반사시키다가, 우리가 감탄하는 바로 그 순간에 "빵" 하고 터지고 사라져버린 것 처럼. 이제 남은 것은 축축한 습기뿐이다.
이제 우리가 인간이라는 위치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서글픈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부등켜 안고 쓰다듬으며, 서로를 위로한다. 우리는 물고 빨고 핥으면서 키스한다.
사건이 마무리 지어지고, 우리는 씻고 다시 침대에 와서 누웠다. 강대리가 내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것들 보면 주인공이 항상 우유부단하고,
그런 주인공 주변으로 사람들이 덤벼들잖아?"
"글쎄. 그런가?"
"오빠도 마음이 착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여자들한테 너무 잘해주는 것이 문제야."
"내가? 선미 말고 내가 잘해주는 여자가 있나?"
"효원이, 성대리, 조과장, 등등"
"아휴. .. 효원이는 아직 어리잖아."
"그건 오빠 생각에 그렇고, 과연 걔 생각에도 그럴까?"
"그렇다고 쳐. 그런데 지금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야?"
"나 말고 다른 여자는 다 캇 하라고."
"캇 하고 싶어도 할 여자가 없거든요."
"하아... 그러셔? 그래서 어제 밤에는?"
"그건 내 사생활이라니까."
"우리 지금 오빠 사생활을 얘기하는 중이거든요."
"그럼 선미가 내 생활 영역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이 정도면 벌써 들어가있는 것 아닌가?"
"글쎄. .. 그건 나한테 별로 감동이 안 오는 말이다."
"어라? 오빠 갑자기 까칠해지네?"
"내가 너랑 공유할 수 없는 생각이니까. 내 관심은 여기까지만."
"그럼 이제 나한테 관심 끝이라고?"
"우기지마.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어.
선미가 내 사생활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에 관심 없다고 했어."
"말 참 엄청 어렵게 하네."
"몸이 피곤하면 모든 것이 또 생각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져."
"에이.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무슨 잠을 그렇게 많이 자려고 해? 잠보가 터졌나?"
"어제 밤에 오빠 없이 내가 잠을 제대로 잤을꺼라고 생각해?"
"그랬나?"
우리는 잠을 잔 것이 아니라 깜빡 졸았다. 그런데 한 시 정각으로 맞춰둔 알람이 울어버린다. 우리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내려왔다. 셀린 보델이 와서 호텔 앞에 차를 세워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차에 탔고, 셀린은 몽오쥬로 출발했다. 셀린이 강대리에게 물었다.
"선미, 어제 야경 구경은 했어?"
"잠만 잤어."
"왜? 그렇게 피곤했어?"
"그게 아니고 저 남자가 밖에 나가서 새벽 네시에 들어왔거든."
"유부남 혼자 밤에 나가서 무엇을 했을까? 하하."
"본인 말고 누가 그걸 알겠어?"
"내가 빠지니까 그런가?
오늘 밤에는 나도 좀 거들어줄까?"
"그럴래? .. 하하."
뒷좌석에 혼자 앉아있는 나를 앞자리에 있는 두 여자가 마구 씹어댄다. 우리는 사또이에에 도착해서 그리이츠만의 방으로 바로 갔다. 그는 우리에게 커피를 마시게 한 후에 셀린과 함께 한 바퀴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보델양이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니까 나보다 안내를 훨씬 더 잘 할 것입니다."
셀린은 앞장서서 방을 나갔고, 우리는 셀린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강대리는 어느새 셀린의 팔짱을 끼고 걷는다. 공장으로 들어서면서 셀린은 설명을 시작했는데, 강대리가 울상을 짓는다.
"상수.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선미가 이해를 못하는데."
나는 셀린이 소개하는 시설들을 보면서 그녀의 말을 듣고 강대리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그런데 어제 엠마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방향제는 기본적으로는 일반 방향제와 똑같아. 그런데 거기에 이런 저런 약재를 섞는 것이 달라. 여기가 식물에서 필요한 성분들을 얻어내는 추출실이야."
"이거 혹시 원심분리기 아닌가?"
"맞아. 일단 식물의 잎과 줄기를 갈아서, 원심분리기로 걸러내면 그 성분들을 얻어낼 수 있어. 그리고 그것들을 끓이는 것이 제일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야."
"나중에 고체 덩어리로 굳으면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서 통 안에 담는구나."
"고체 상태의 물질이 기체로 바귀는 것을 승화라고 하거든. 승화를 잘 하려면 공기와 접촉하는 면 이 넓어야 해. 커다란 덩어리 한 개 보다는 작은 알갱이들이 훨씬 유리해. 이것은 열역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어."
우리는 셀린의 안내로 두 시간에 걸쳐서 생산 시설들을 보고 나서 그리이츠만 씨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가 웃으며 내게 물었다.
"잘 보셨어요?"
"예. 너무 훌륭한 시설입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에게는 우리 몸에서 어디가 안 좋을 때에는 무슨 식물을 어떻게 해서 먹으면 낫는다라는 말이 잇죠? 우리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합니다. 이것이 과연 한국 사람들에게도 그런 효능을 나타낼지는 우리가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식물들은 한국에도 있지요?"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 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는 생각해봐야겠어요."
"지난 번에 여기에 오신 분이 장 이사님이었죠? 나는 그 분께 굳이 수입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어요. 그런데 그 분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그럼 한국 말고, 일본이나 중국에도 수출을 하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우리와 거래하지는 않습니다.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서 일본과 중국은 아예 꿈도 꾸지 않습니다. 그쪽 지역에 있는 우리의 비지니스 파트너는 오직 한국입니다."
"왜 하필 한국에만 수출하는 거죠?"
"우리는 유럽의 수요만 공급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 한국에서 장이사님이 오셔서 시험적으로 한국에서 시판을 해보자고 사정하는 바람에 조금씩 하게 된 것입니다."
"없어서 못 팔겠다는데 할 말이 없네요."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제네바에 있는 본사에 가도 대답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맞아요. 그렇지만 .."
"예?"
"한국에도 노인들은 병을 치유하는 식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오히려 그 식물들이 맞을 수 있어요. 그 쪽으로 연구를 해보시는 것이 훨씬 권할만한 일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연구해서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까지는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 때 까지는 저희에게 공급을 계속해주십시오."
"노력하겠습니다."
"확실하게 약속해주십시오."
"우리는 유럽에 있는 매장들과 백년 가까이 거래하고 있습니다. 이 매장에 공급할 물량을 한국으로 돌릴 수는 없지않습니까? 그래서 확실한 약속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못하면 그것도 우리 둘에게 모두 좋은 일은 아닙니다."
"저는 오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돌아가겠습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주말을 아름답게 보내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셀린 보델은 우리의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강대리는 이해를 하지 못해서인지 답답해하는 것 같고, 짜증스러운 얼굴이다.
우리는 그리이츠만씨와 작별을 하고, 셀린 보델과 함께 파리로 출발했다. 강대리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돋는다. 앞자리에서 두 여자는 깔깔거리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가 파리에 온 이유가 뭐였지?
나에게 갑자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가지는 셀린 보델에게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을까이다. 그리이츠만씨는 책임자의 입장에서 원칙만을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원칙만으로 돌아가는가? 또 한가지는 우리 나라에서 한약으로 쓰이는 수많은 약재들이다. 파리에서 지금 당장 약재를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까 이 문제는 한국에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셀린과는 오늘 헤어지면 끝이다. 반드시 오늘, 나는 셀린에게 작업을 걸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강대리가 도끼눈을 하고 지키고 있을 것이므로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셀린에게 어떻게든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셀린에게 말을 걸었다. 강대리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영어로 얘기했다.
"셀린."
"응?"
"오늘 금요일인데, 저녁에 좋은 계획 있어?"
"없어. 오늘은 무조건 쉬어야 하거든."
"그럼 오늘 저녁을 우리랑 같이 보낼래?"
"오늘? 너희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내일이 토요일이고, 원래 우리는 제네바로 가야 하는데, 거기는 월요일에 갔으면 해."
"토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이 돼있잖아?"
"전화해서 월요일로 돌려달라고 해볼꺼야."
"왜 그러는데?"
"파리 구경을 전혀 하지 못했거든."
"제네바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거든."
"그건 그래. 그런데 제네바에는 셀린 보델이라는 여자가 없어서 유감이야."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하."
"우리랑 같이 저녁 먹고, 파리 야경을 보자."
"저녁은 어디서 먹게?"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
"와아. 야경은 어디서 볼껀데?"
"저녁 먹기 전에 에펠탑에 올라가서 봐도 좋겠다.
아니면 몽마르뜨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내려다 봐도 좋지. 그럼 에펠탑까지 같이 볼 수 있으니까."
"아아. 마음이 흔들리네. 오늘은 원래 쉬려고 계획했는데."
"우리도 원래는 제네바로 가기로 했었거든.
이번에 우리가 파리를 떠나기 전에 보델씨와 함께 하루 저녁을 보내게 해주세요."
"하아. .. 저렇게까지 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그럼 같이 가."
"그럼 파리 야경은 포기하고, 저녁 먹으러 시골로 갈래?"
"시골이라면, 혹시 꾸브브와(Courbevoie))?"
"어? 상수도 꾸브브와를 알아?"
"여러 해 전에 거기에 가본 적이 있거든."
"좋아. 그럼 여기서 순환도로를 타고 그리로 간다."
"오케이."
지금 시작은 잘 되어가는 것 같다. 강대리는 조용하다. 나는 제네바에 있는 본사에 전화를 해서 토요일로 약속한 미팅을 월요일로 미뤄달라고 했다. 엠마에게는 저녁 식사 후에 늦게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셀린은 꾸브브와로 가기 위해 파리 순환도로를 탄다. 시간은 여섯시가 가까워지고, 날은 벌써 어둡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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