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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남긴 흔적 - 단편41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20 667회 0건







41. 귀국




나는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까 아침이다. 옆에서는 강대리가 웅크리고 자고 있다. 나는 강대리의 몸을 당겼다. 그녀는 몸을 굴려 내게로 파고든다.



"선미, 깼니?"
"벌써 아침이야?"



강대리는 눈을 뜨지 않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9시가 되어간다. 나는 엠마와 같이 아침 먹기로 했으므로 일어나야 했지만, 강대리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구슬러 보기로 한다.



"아침 먹으러 뷔페로 내려가자."
"늦게 오더만, 왜 안하던 짓을 해?"

"엠마가 내려오래."
"싫어. 오빠 혼자 가. 난 더 잘래."

"늦잠 자서 될 일이 아닌데."
"베를린에 더 있을거잖아?"

"아침 먹으면서 생각해보자."
"오빠 혼자 생각하고, 나중에 결론만 말해."



나는 엠마의 입술에 키스하고,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엠마가 무슨 일로 베를린에 왔는지, 또 오늘은 어떻게 할 지가 궁금하다. 엠마가 오늘 탈 비행기 예약이 가능하기나 할 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를 나와 같이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지.

나는 샤워를 끝내고 엠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지금 막 일어났다면서 아직 15분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옷을 입고 엠마의 방으로 내려갔다. 엠마가 문을 열어주면서 내 입술에 키스했다. 엠마는 옷을 갈아 입는 중이었다.



"엠마, 프론트에 비행기 예약 해달라고 할까?"
"내가 빨리 가기를 원해?"

"그건 아니지만, 비행기 티켓이 뭐 지하철 표 사는 것도 아니고 .."
"런던이나 파리는 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내려가서 아침이나 먹어요."




엠마는 내 손을 잡고 손깍지를 꼈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아침식사 뷔페는 2층이다. 엠마는 시리얼과 커피를, 나는 둥근 햄이 얹힌 작은 빵과 커피를 들고 우리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몇 개 안되는 테이블이지만 텅텅 비어있다.



"상수. 호텔을 왜 여기로 정했어?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아침을 먹다니 .."

"시내 구경을 하려고.
너랑 같이 이침 식사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

"하긴. .. 아침을 먹어보는 것도 정말 오래만인 것 같아.
나도 오늘은 왜 아침 식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까 아침 일찍 상수를 만나네."

"아침 일찍이라서 내가 좀 싱싱해 보여?"
"우리 나이에 싱싱하다니, 말이 돼? 선미는 싱싱해 보이던데."

“나 아직 젊은데?”
“늙었다고 안했어. 단지 싱싱하지는 않다고. 하하.”



식사를 끝낸 우리는 30분 후에 만나기로 하고 엠마와 헤어졌다. 방에 올라와보니까 강대리가 샤워 중이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을 들여다보았다. 제네바에서 샤네끄 박사가 보낸 메일이 있다. 그녀는 지금 러시아에서 머무르고 있지만, 자기가 이틀 후에 제네바로 돌아가는 길에 베를린에 들러서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주말에는 그녀가 파리에 있는 농장에서 셀린과 함께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날더러 파리로 오라는 얘기이다. 이것은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답장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오미현도 이메일을 보내왔다. 보나마나 상훈이 자랑을 늘어놓았겠거니 하고 클릭을 했다. 그런데 상훈이 얘기는 단 한마디도 없다. 유아영이 나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다면서 화를 낼 것 같단다. 그녀는 유아영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놓았다. 그렇지만 유아영에게 뭐라고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패쓰했다.

회사에서 메일을 보낸 사람은 김효원 밖에 없다. 그녀는 자기가 하는 일들을 적고 나서, 마지막 줄에는 다음에 파리에 갈 때에는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혹시 강대리가 일은 별로 안하고, 열심히 놀았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닐까?

다른 메일을 읽고 있는데, 강대리가 욕실에서 나왔다.



"오빠, 엠마 오늘 간대?"
"그런 말 없었어."

"참나. 눈뜨고 못 보겠네.
내가 그냥 혼자 귀국해버릴까?"

"뭐가 마음에 안드는데?"

"도대체 오빠한테서 떨어지려고를 안하잖아.
여기까지 쫓아와서 새벽같이 불러 내리지를 않나."

"엠마 덕분에 오래만에 아침도 먹고 좋은데?"

"그래? 알았어. 그게 그렇게 좋았다 이거지?
그럼 이제부터 나도 매일 꼭두새벽에 깨워서 아침 먹자고 한다!"

"야아아. 그건 아니지."

"그 Love Story 는 이미 철 지난 옛날 얘기 아냐?
그런데도 저렇게 오빠한테 목을 매는 것을 보면, 진짜 가슴이 짠하단 말이야.
여기까지 따라와서 저렇게 매달리는데, ..
같은 여자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야."

"누가 목을 매고, 누가 매달린다고 그래?
쓸데없는 소리 고만하고 옷이나 입어.
다 큰 여자가 벌거벗고 그게 뭐야?"

"와아아. 오빠, 진짜 완전 바보 아니야?"

"그래. 나 바보 할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고, 나갈 준비나 해요."

"난 뭐냐고. 완전 억울하잖아.
여기까지 따라와서도 낙동강 오리알이나 하고. ..
엠마가 후줄근한 여자라면 내가 뭐라고 구박이나 하겠는데,
이건 뭐 미모에, 학식에, 완전 자체발광이니 뭐라고 할 말도 없고 .."

"도대체 오늘 아침에 왜 이 난리야?"

"엠마랑 오빠를 보면 미녀와 야수가 생각난단 말이야."
"그럼 내가 미녀냐? 하하."

"돌겠다."

"준비 끝나는 대로 1층 로비로 내려와."



등 뒤에서 강대리가 벌거벗은 몸으로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방을 나왔다. 나는 일부러 계단으로 천천히 내려와서 엠마의 방을 노크했다. 엠마가 문을 열어주면서 키스한다. 엠마도 속옷만 입은 채로 휴대 전화기로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우리는 화장대로 갔다.



"미안. 여행사에 전화했어."
"비행기 자리는 있대?"

"당연하지. 그런데 오늘 말고 모레, 목요일 비행기야."
"뭐야?"

"왜 놀라는거지? 상수랑 같이 있으려고 일부러 이틀 후로 예약했거든.
그런데 아직도 내 벗은 몸이 예쁘니?"

"엠마. 너는 봐도 봐도 숨이 막힐 정도야. 바비 인형보다 훨씬 예뻐. 됐니?"
"하아. 상수. .. 나 겁난다."

"왜? 무엇이 겁난다는 말이지?"

"이제 네가 가고 나면, 벗은 몸도, 옷을 입고서도 누구에게 보여주지?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멘탈이 흐물흐물해져."

"그러니까, 서울로 오라니까."

"아니야. 나는 서울로 갈 수 없으니까 네가 파리로 와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거든.
나는 반드시 너를 파리로 돌아오게 만들꺼야."

"야아아. 고집 부리지 마세요."

"너는 이번에 선미를 데리고 나타난 것을 나에게 사과해야 해.
그런데 비지니스로 같이 온 것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또 내가 없다는 이유로, 젊고 예쁜 서울 여자랑 같이 잠자리를 하는 것도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네가 하는 이런 일을 모두 끝내려면, 네가 파리로 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엠마. 미안해. 사과할께."

"너와 선미가 파리를 떠나고 나서 나는 파리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단 말이야.
베를린이니까 내가 올 수 있었거든.
서울로 가면 나는 어떨 것 같아? 상상이 가니?"



엠마가 내게 안겨오며 키스한다. 엠마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내 뺨을 어루만진다. 그런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엠마의 커다란 두 눈에 슬픈 그림자가 깃들여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엠마의 표정은 그녀의 고집으로 가득하다.



"우리 둘은 이렇게 앙상블(ensemble)인데 .."
"그래. 우리는 헤어져 있어도 반드시 함께야. 이제 옷 입으세요."

"이번에는 우리 서로 욕하고, 미워하고 싸워볼래?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헤어져볼까?"

"아니야.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어.
내가 어떻게 너에게 욕을 하고, 어떻게 너를 미워하고, 어떻게 너와 싸우니?"

"하긴. .. 그렇게 하고 나서도 시간이 웬만큼 지나가면 다시 원래로 돌아갈 것 같다."



나는 창가에 있는 원탁에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본다. 출근 시간은 지났어도 저 아래에는 여전히 혼잡한 쿠담 거리가 내려다보인다.

엠마는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붉은 라운드 티에 녹색 점퍼를 걸친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과 입술에 화장을 끝내더니, 핸드백을 둘러메고 내가 있는 탁자로 온다.



"맘에 들어? 이렇게 입으면 되겠니?"
"완전 아트 자체거든요."

"상수. 그런 말 진짜 마음에 든다.
너 가고 나면 누가 나한테 이런 말 해주지?"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세요. 다들 그렇게 말 하거든요."
"그랬다가는 그 사람들이 나보고 정신이 탈출했다고 할껄? 하하."

"안그럴 것 같은데 .."



우리는 방을 나가서 1층 로비로 갔다. 강대리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어디 갈 계획이니?"
"나가서 점심 먹고, 오후에는 어제 그 회사에 가서 서류에 사인 해야해."

"그럼 너랑 선미랑 둘이 가면 안될까?"
"그럼 엠마는?"

"너무 불편해서 아무래도 차를 렌트해야 할 것 같아.
내가 베를린에서 운전을 할 수 있거든.
나중에 차 나오면, 너에게 전화해서 그 회사로 너를 데리러 갈께."

"찾아올 수 있겠니?"
"헬램프사 맞지? 거기는 지도 보고 찾아가면 어렵지 않아."

"우리와 같이 점심을 먹고 가지 않을래?"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전혀 배고프지 않아."



엠마는 프론트에 가서 렌트카 회사의 전화번호를 묻고, 그리로 전화를 했다. 한참 통화를 하더니 엠마는 내 손을 잡고 호텔을 나섰다.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나에게 키스하고 택시에 탔다. 그녀는 내게 손을 흔들고 택시는 떠나갔다. 나는 다시 호텔 로비로 돌아갔다. 잠시 후에는 강대리도 내려왔다.

우리는 호텔을 나와서 베를린 지도를 보면서 사비뉘플라츠를 향하여 걸었다. 그 주변에는 식당 표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레스토랑을 발견했는데, 간판에는 Ristorante San Marino 라고 적혀있다. 아마도 이탈리아 식당인 것 같다. 밖에 걸린 메뉴표에는 사진과 함께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스테이크까지 표시되어있다. 강대리가 메뉴표를 보면서 입맛을 다신다. 우리는 여기에서 파스타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겼다.

우리는 택시로 헬램프사로 갔다. 수위는 어제 본 그 어르신이다. 내가 그에게 인사하자, 그는 어제 그 한국인 여학생을 불러 내렸다. 그녀는 우리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녀의 방문 옆에도 다미 정 (Dami Jung) 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어제 선생님 가시고 난 후에 뢰레 박사님과 선생님 얘기를 했습니다.
이제 제 과제에도 속도가 엄청 붙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정다미씨 혹시 불어 하시나요?"
"아뇨. 못하는데요. 왜요?"

"그 져널은 불어판인데 .."

"박사님은 영어판들이 그 후속으로 나왔다면서 몇개 주시던데요?
제가 하는 작업에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베를린에 계시는 동안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고마워요. 아직은 없어요."



그녀는 레나테 슈미트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그녀의 방에 와있음을 알렸다. 또 그녀가 나에게 명함을 달라고 해서, 내가 가진 마지막 명함을 그녀에게 주었다. 엠마에게서 회사 앞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얼마 후에 레나테가 합의서라고 적힌 서류를 가져왔다. 서류는 영어로 작성되어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나는 읽어본 후에 사인을 하고, 한부는 강대리가 갖고, 다른 한부는 레나테에게 돌려주었다. 우리는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가 헬램프사의 건물을 나오는데, 엠마가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엠마는 주차되어있는 진한 회색빛의 Mercedes-Benz 에 기대고 서있다. 강대리의 입이 열린다.



"와우. 엠마. .."
"마음에 들어?"

"이거 벤츠 아니니?
렌트비 엄청 비쌀텐데?"

"베를린에 왔으니까. 하하."
나는 무료로 렌트할 수 있어.
어차피 이번 달은 벌써 부도났어. 하하."

"어떻게 무료?"
"간단해. 아빠가 지불하거든."

"네 아빠가?"
"상수랑 같이 사용한다고 말했더니, 계산서를 자기한테 보내래."



강대리는 갑자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웃던 얼굴이 굳어졌다. 엠마와 강대리는 앞으로, 나는 뒤로 탔다. 엠마는 우리를 태우고 베를린 시내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도심은 어디를 가든지 정체현상이 심한 것 같다. 엠마는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했는데, 강대리는 중지시키고 나에게 다시 물었다. 강대리는 곳곳에서 차에서 나를 데리고 내려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늦은 오후에 엠마는 우리를 큰 호수로 데리고갔다. 지도에는 반제(Wannsee)라고 표시되어있다. 우리는 도로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물가를 걸었다. 강대리의 사진 찍기는 여기서도 계속되었다. 싫다는 엠마까지 불러서 같이 찍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셋이 찍기도 했다.

그런데 엠마는 우리를 차에 태운다.



"이제 곧 해가 질꺼야. 그러면 금방 어두워져요.
아직 밝을 때 저녁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자."




엠마는 하펠(Havel) 강변으로 나있는 숲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이 길은 빨리 달리는 지역이 아니라면서 천천히 간다. 숲속을 한참 가니까 레스토랑이 하나씩 나타난다. 강대리는 동화에 나오는 장면 같다면서 좋아한다. 엠마가 말한 것처럼 어느새 숲 속은 깜깜하다. 엠마는 슈바이네학센을 먹자면서 어떤 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강대리는 서울에도 슈바이네학센이라는 요리를 하는 식당이나 맥주집들이 있다면서 엄청 좋아한다. 종업원은 양이 많다면서, 우리 셋이 먹으려면 1접시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엠마는 두 접시를 주문했다. 한 접시는 나에게 오고, 그리고 두 여자가 나머지 한 접시를 나누어 먹겠다고 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셨는데, 엠마는 불쌍하게도 운전을 해야 한다면서 물만 마셨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샤네끄 박사가 보내온 이메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를 어디서 만나는 것이 좋을까를 물었다.



"상수. 나는 당연히 파리에서 만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파리에서 가까운 곳에 농장이 있으니까 필요하면 가볼 수도 있거든."

"엠마. 나는 여기서 만나고 귀국했으면 좋겠어.
파리에 가면 또 몇일 걸릴 것 같아."



나는 샤네끄 박사에게 파리로 가는 길에 베를린에 들러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베를린의 남서쪽에 있는 포츠담에서 가서 하루를 보냈다. 나는 금요일에 귀국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직행은 없고 프랑크푸르트에서 갈아타야 했다.

샤네끄 박사가 목요일 오후에 베를린에 도착해서 우리와 만나기로 되어있다. 엠마는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짐을 싣고 우리와 함께 테겔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게이트를 빠져 나오는 그녀를 바로 만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엠마를 셀린과 친구라면서 소개했다. 우리는 모두 카페테리아로 갔다. 그녀는 쉬지도 않고 바로 미팅을 하자고 했다.

그녀는 자기가 전해 받은 자료에 의하면 중국 시장이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면서 우리에게 기술지원을 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그녀에게 셀린을 우리에게 보내달라는 말을 했고, 그녀는 동의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제품을 개발할 때 까지는 우리에게 수출하는 양을 우선은 다섯배까지 늘리기로 했다. 부족한 양은 농장을 확장해서라도 하겠다면서, 우리에게 제품 개발을 서둘러달라고 했다. 샤또이에사가 갑질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여기까지는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녀를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이다.



"박사님. 무리하게 진행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이것은 우리가 생산 시설까지 늘려야 하기 때문에, 사업을 전체적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언제 해도 할 일이었는데, 우리는 조심하느라고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번 기회에 우리도 투자를 과감하게 해서 사업 구조를 뜯어고치도록 할께요."



보수적인 유럽인들은 과감한 미국인들과는 다르다. 유럽인들은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우선 조심부터 먼저 한다. 필요성이 나타나면, 우리나라나 미국은 너무 빨리 반응하지만, 유럽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 경험하면서 천천히 결정한다.

그러니까 샤또이에사는 사업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오래 동안 미루어왔었지만, 이번에 우리 때문에 드디어 실행에 옮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선동만을 했을 뿐이고, 그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도전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고맙기도 했지만, 은근히 부담도 된다.

그런데 샤네끄 박사는 그 자리에서 내게 물었다.



"우리 농장에서 한국이나 중국에서 자라는 약용 식물들을 재배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한 방 먹은 것 같았다. 이 말은 샤또이에사가 제품 개발에 앞장을 서겠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경험과 기술이 충분하게 있으므로, 이 말이 우선은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처럼 할 일이 별로 없고, 중국을 다니면서 영업과 마케팅만을 담당해야 하는 결과가 생길 것 같다. 완벽한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백척간두에 선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의견에는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우며 반대하여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유럽에 온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내가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으므로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 모르니까 또 엄청 긴장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온다.

만일 우리가 제품을 개발하게 되면, 우리가 기술이전을 해주지 않는 한, 샤또이에사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저들이 이 점을 모를 리가 없다. 호락호락 양보할 것 같지는 않다. 순간적으로 당황되면서 앞이 캄캄해진다. 나는 웅얼거렸다.



"글쎄요. .. 좋은 생각인 것은 알겠는데 .."



그 때 나에게 한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오래 전에 독일에서는 우리 나라의 인삼을 재배하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 나라와 기후 조건이 비슷한 지역을 선정해서 인삼 농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였다. 똑같은 인삼도 우리나라산과 중국산 또는 동남아시아산은 전혀 다르다. 이것은 식물이 자라는 데에는 기후 조건도 중요하지만 토양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엠마도 나를 거들었다.



"유럽의 토양에는 일반적으로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이 너무 적어요. 그래서 콩과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 결과는 가축에게 먹일 사료에 단백질 성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비노쉬 박사님, 나도 그 얘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병에 걸린 양이나 가축을 갈아서 퇴비로도 사용하고, 또 사료에 직접 섞기도 했어요. 오랜 시간 동안을 이렇게 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광우병이었다고 합니다."

"흐으음. .."



결국 샤네끄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국을 겨냥한 제품의 제품 개발은 우선 한국에서 한다는 데에 찬성했다.

샤네끄 박사와 엠마는 테겔 공항에서 오후 늦게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떠났다. 나는 공항에서 그녀들을 전송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오후 내내 너무 신경을 곤두세운 탓인지 녹초가 되었다. 나와 강대리는 다음날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천 공항에는 김효원이 차를 갖고 마중 나와있다. 엠마나 셀린과는 달리, 김효원이 손을 흔들며 가을날의 청초한 들국화처럼 우리에게 하늘거리며 다가온다.




"강대리님! 팀장님!"
"김효원!"



강대리와 김효원은 서로를 부등켜 안는다.



"팀장님. 지금 땡기는 것이 뭐죠? 뭐 먹고 싶어요?"
"불닭발에, 닭똥집에 쐬주 한잔. 흐흐."

"오후 3시에 술을 마신다고요? 하하."
"이러언. 너무 심했지? 그럼 일단 한숨 자고 저녁에?"

“콜. 하하.”



앞자리에서 김효원과 강대리가 재잘거린다. 나는 뒷좌석에 혼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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