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준수야. 자?"
"......"
"오늘도 그냥 이렇게 자는거야?"
"으음... 이모 피곤해요... 미안..."
아마 모르는 사람이 이 두 남녀를 대화를 듣는다면, 평범한 부부관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부부는 연애때의, 혹은 신혼때의 불타오르는 욕구는 세월의 흐름에 씻겨내려가서 부부관계는 결국 형식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일반적이였다. 특히나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을 강요받다시피하는 남성의 경우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드는 일이 일반적일지도 모른다. 물론, 피곤하다는 이유가 진짜로 밖에서 일을 열심히 해서인지 아닌지는 뭐...
어쨋든, 그런 일반적인 경우는 이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들은 부부관계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 피곤하면 어쩔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지만..."
영희는 혹시라도 자신이 유혹하면 준수의 얕은 잠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수에게 그녀의 뜨거운 입김을 내뿜었지만, 그녀의 유혹은 준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듯 했다. 준수는 오히려 귀찮다는듯 영희에게 등을 보인채 잠을 청했다. 그런 준수에게 영희는 섭섭함을 느꼈다. 벌써 오늘이 한달째였다. 정기적으로 다른 여성들과 광란의 주말을 보내긴 했지만, 그녀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평일 밤에는 그와 어떠한 관계도 가지지 못했다. 아침에는 준수가 먼저 일어나서 그녀가 어떻게 할 틈이 없었고, 집에 들어와서는 계속해서 공부, 그리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을 청하는 일상속에서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영희였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타들어갈수록, 그녀의 육체적인 갈망 또한 더욱 더 커져만갔다.
"내가 싫어진걸까..."
오죽하면 영희는 혹시라도 준수에게 버림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지만, 함께 밥을 먹을때에는 평상시의 준수였기 때문에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설마 다른 여자가 생긴거 아니야...? 선생님 말로는 학교에서 다른 여자가 생긴것 같진 않다고 하던데..."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때마다 세진은 딱히 준수가 학교에서 다른 여자에게 접근한다거나, 다른 여자가 준수에게 접근하는것 같진 않다고 귀뜸해주었기 때문에 그런 의심 또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내 몸에 질린걸까..."
영희는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만지며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는지 확인해봤다. 하지만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영희는 준수가 혹시라도 자신에게 싫증을 느끼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때문에 예전보다 더욱 열심히 몸매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군살이 생길리도 없었다. 아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녀의 몸이 더욱 뜨거워졌다는 점 말고는...
"알았어... 대신 이렇게 안고 잠들어도 되지?"
"으음... 네... 뭐 그 정도는... 잘자요 이모..."
영희는 아쉬운대로 뒤에서 준수를 끌어안고는 그의 넓은 등에 그녀의 가슴을 밀착시켰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영희는 외마디의 신음을 내뱉었다. 영희는 내심 그녀의 신음소리가 준수를 자극하는 것을 원했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준수는 벌써 깊은 잠에 빠졌는지 요지부동이였다. 영희는 아쉬운대로 그녀의 다리를 비비며 사타구니의 허전함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의 그 행위가 그녀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리는 없었다. 자위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지만, 그녀의 그 행위로 인해 준수가 잠에서 깨어나서 자신에게 뭐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위를 하는 것도 포기했다. 그녀에게 이 밤은 정말 긴 밤이였다.
영희에게도 긴 밤이였지만, 그것은 준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한달째였다. 그녀들의 조언을 듣고, 나름 완벽한 프로포즈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참고 또 참았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욱 참기 힘들었다. 영희 나름대로 준수에게 잘보이기 위해 입었던 비장의 잠옷을 보자마자 준수는 그녀를 쓰러뜨리고 그녀의 몸을 유린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욕구를 참아냈다. 하지만 그의 등 뒤로 전해지는 영희의 풍만한 가슴의 느낌은 정말로 참기 힘들었다.
"아... 빨고싶다..."
준수는 자신이 발기한 상태라는 것을 영희에게 들키면 지금까지 한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자신의 욕정을 철저히 숨기고 잠든척을 했다.
-여자는 의미있는 일은 평소와 달리 특별한걸 해주길 원해. 프로포즈도 마찬가지고.
세진, 수정, 은혜가 정상적인(?) 여성이라고는 하기 애매했기에 그녀들의 조언은 대부분 조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것을 뿐이였지만, 그나마 건질만했던 수정의 한 마디를 떠올리며 준수는 눈을 감은채 자신의 작전을 실행으로 옮기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이미 프로포즈에 필요한 모든 것은 준비해둔 상태였다. 나머지는 일주일 뒤에 실행만 하면...
"이모,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을래요?"
"응? 근데 오늘은 그날이잖아..."
"아아... 그거 오늘은 그냥 안만나기로 했어요."
"그래...? 나는 그런거 못들었는데... 그... 그렇다면 뭐... 그렇게 하자... 근데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사람 많을텐데...?"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까봐 예약해둔 곳이 있거든요."
"너가 돈이 어디있어서 예약을 했다고..."
"치...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되지 왜 자꾸 그렇게 물어봐요... 알았어요. 지금 전화해서 취소...."
"아... 아니야아니야. 싫긴 누가 싫다고 그래... 알았어."
"아, 맞다. 그리고 지금 저 잠깐 어디 갔다올테니까 이모 혼자서 거기로 오셔야되요. 장소는 알려드릴테니깐..."
"나 혼자 오라고...?"
영희는 갑작스럽게 준수가 저녁을 나가서 먹자고 하는 것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영희에게는 그것이 준수의 데이트 신청과도 다름이 없는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였지만,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듯,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였다. 영희가 상반된 기분을 느끼는 중 준수는 가벼운 차림으로 나가버렸다.
영희는 멍하니 앉아서 준수가 자신에게 왜 나가서 밥을 먹자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생각해도 준수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마음속의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는 수 밖에...
"그나저나 뭘 입지...?"
그녀는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서 옷장을 열고 그녀의 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옷장에 걸려있는 그녀의 옷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세진이나 수정에게 속옷에 대한 조언 말고 다른 옷에 대한 조언도 들어둘걸, 하는 후회를 하며 그녀는 옷을 하나하나 다 꺼내서 거울에 대보고는 마음에 안든다는 듯한 표정을 짓길 반복했다.
"어서오세요. 어머, 진짜로 오셨네요."
"네. 그나저나 아직 그거 안나갔죠?"
"어머, 어떻하죠 손님? 요즘 워낙 성수기라 다 팔려버렸는데..."
"윽... 이런... 제가 돈은 준비할테니 제발 오늘까지 하나만 남겨달라고 부탁드렸잖아요..."
종업원 앞의 준수의 표정은 금새 울상이 되어버렸다.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것은 다 무엇이였단 말인가, 이럴줄 알았으면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일찍 왔어야했나, 라는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런 준수의 표정과는 달리 종업원은 그런 준수를 보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싱글벙글했다. 준수는 종업원의 태도가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날 비웃냐, 라는 표정으로 준수가 종업원을 노려봤다. 그러자 종업원은 다른 손님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준수에게 말을 했다.
"후훗... 손님. 거짓말이에요. 여기 딱 하나 남겨뒀어요."
"저... 정말요??"
"남기려고 남긴건 아니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딱 하나 남게 됐네요. 뭐... 하나남았을때 혹시라도 준수군이 아닌 다른 손님이 찾으실까봐 몰래 숨겨두긴 했지만... 후훗... 이거 우리 사장님한테는 비밀이에요. 알죠?"
"다...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준수는 언제 울상을 짓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종업원에게 건냈고, 물건을 구입한채 문 밖으로 나가는 준수는 보면서 종업원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어려보이지만, 그래도 저런 훈남 스타일에 열정적인 남자에게 오늘같은 날 고백받는 여자는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준수는 다행히 모든 일이 잘 풀린 것에 안도하며 영희야 약속한 장소에 향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굉장히 사람이 많았다. 거리를 메운 수많은 연인들, 벌써 취한 커플들도 꽤 많아보였고,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거리에서 키스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늘도 수많은 커플들에 질투를 느꼈는지 오늘따라 바람이 굉장히 차가웠지만, 아마 그들에게 바람이 찬지 아닌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준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바람이 너무 차서 영희가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을뿐...
사실 불안감은 그런 것만 있는것도 아니였다. 어쨋든 준수는 자신이 18살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반면 영희는 36... 아무리 사랑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였다. 게다가 단순히 연애가 아닌 결혼은 전혀 다른 문제기도 했다. 스스로가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어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섣불리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쩌면 자신과 영희 사이의 관계를 망가뜨리게 될지도 모르기도 했다.
그런 위험성이 있음에도 준수가 오늘 일을 실행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영희에게
-넌 내여자다,
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어서가 아니였다. 그가 영희에게 말하고 싶었던 진짜 의도는
-난 영원히 네 남자다,
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그 영원히에 대한 확신같은 것 또한 있었다. 앞으로 어떤 여자를 만나더라도 영희, 그 이상의 여자를 만나지는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영희 사이를 가로막는 금단이라는 이름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즈음, 준수는 저 멀리서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 영희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의 주변에서 광채같은 것이 풍겨나오기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리가 없었다. 비단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은 준수뿐만이 아니고 그녀들이 걸어가는 길 주위의 남자달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들은 각자의 여자친구들에게 팔뚝을 꼬집히곤 했지만... 준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영희를 맞이하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그 마음을 가라앉혔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준수는 입구에서 영희를 기다렸다.
"사람 참 많네... 그나저나 정말 오늘 춥네... 추운데 안에서 기다리지 왜 이런데에서 보자고 했어?"
"왜 이런데에서 보자고 하기는요. 여기에서 밥을 먹을건데 여기서 기다려야죠."
"... 여기 비싸기로 유명하잖아."
"비싸도 오늘같은날 이런데에서 먹어야지. 안그래요?"
"우리 그냥 다른데에서 먹자. 그래도 잘 찾아보면 어딘가는..."
"쉿. 오늘은 제가 하자는대로 해요. 안그러면 저 그냥 집에 가버릴거에요."
"치... 알았네요."
"그럼 들어가볼까요?"
준수는 영희의 손을 잡고는 가게 안으로 향했다. 영희는 준수와 손을 잡은채 걸음을 옮기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왠지 민망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명백히 엄마와 아들, 혹은 이모와 조카의 관계가 손을 잡고 이런 날 이런 곳에 온다고 비꼬는 시선을 던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돈을 주고 젊은 남자를 만나는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에게 비난의 시선을 던지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준수에게 그런 경멸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이였다. 그렇기에 영희는 준수에게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오늘따라 준수는 영희의 손을 놔주질 않았다.
"오늘 예약한 장준수입니다. 번호는..."
"아... 장준수님이요? 네,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카운터에서 안내를 받으며 준수와 영희는 창가 쪽의 자리에 앉았다. 화려하게 치장된 샹들리에부터 벽과 천장에 전시된 와인잔, 고풍스러운 테이블, 그리고 하드커버의 메뉴만 보더라도 이곳이 꽤 고가의 레스토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영희는 이런 곳에서 준수와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황홀하기도 했지만, 너무 준수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편히 앉아있질 못했다. 영희가 그런 생각을 하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수는 영희에게 말을 했다.
"뭐해요. 배고프다... 빨리 골라요."
"하... 하지만 준수야... 여기 너무..."
영희는 자신이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준수를 너무 나무라는 것도 아닌것 같아서 몸을 숙이고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준수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준수는 영희의 그런 말을 들은척도 안하고 계속해서 메뉴를 뒤적이면서 자신이 뭘 주문할지를 고민하는듯 했다. 그런 준수의 행동에도 차마 메뉴를 쉽사리 열지 못했던 영희가 계속해서 준수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다른 곳으로 말하는 사이, 어느새 종업원이 그들의 앞에 다가왔다.
"혹시 주문 도와드릴까요 손님?"
"음... 네. 일단 치킨텐터셀러드 하나랑... 그리고 모짜렐라머쉬파티 하나 주시고... 음, 그 다음에 메인은 저는 이걸로 할게요."
"자... 잠깐만요. 준수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여기는 내가 계산할게. 알았지?"
"아니에요. 그냥 무시하세요. 계산은 제가 할게요."
영희는 주문을 하기 전에 계산에 대한 부분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의 가격을 준수가 부담하는 것은 준수에게 너무나도 큰 짐일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잠시 그들이 실랑이자 안그래도 바쁜데 여기에 계속 서있을수는 없다고 판단한 종업원은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을 했다.
"저... 죄송하지만, 그래도 오늘같은 날은 남자친구분이 사시게 하는게 더 좋을거같아요."
그 말을 들은 영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영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채 부끄러워서 대충 준수와 같은 것을 달라는 말을 했다. 종업원은 이런 일은 한두번이 아니라는듯 능숙하게 그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종업원이 걸음을 옮기려는순간, 준수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하며 그녀에게 말을 했다.
"어때요? 제 여자친구 예쁘죠?"
"네.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준수는 종업원이 그들을 보든 안보든 손을 뻗어 영희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영희는 부끄러워서 손을 빼고는 준수에게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조금 적당히 하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준수는 영희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상관이 없다는듯 창밖의 야경을 보며 영희에게 말을 했다.
"오늘 참 야경 예쁘네요. 그쵸...?"
"으... 응...."
길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날이 날인만큼 거리에서는 퍼레이드를 비롯한 온갖 행사로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게다가 한강쪽에서는 불꽃놀이까지... 준수와 영희는 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준수는 끝끝내 영희에게 빌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엄청난 가격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영희는 불만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손을 잡은채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많이 춥진 않아요?"
"... 그냥 그래..."
"음... 혹시 화났어요?"
"왜...? 화난거같아?"
"음... 약간?"
"... 어차피 내 기분이나 내 생각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뭐, 내가 화나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때."
"하하... 이거 많이 화나셨나보네..."
준수는 약간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영희와 손을 잡고 있지 않은쪽의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영희는 이런 날까지 준수에게 그런 태도를 하고 싶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동안 준수가 자신에게 소홀히 했던 것과 겹쳐져서인지 그런 쌀쌀맞은 태도로 준수를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갑자기 화장실 가고싶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요. 알겠죠? 저 버리고 그냥 가면 안되요."
"가든가 말든가. 흥. 확 가버릴까보다..."
영희는 내심 준수가 분위기를 잡고 자신을 달래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기는 커녕 자신을 내팽겨쳐버리고 화장실로 가는 모습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가득했다. 아니, 갈거면 아까 그 레스토랑에 있는 식당에서 가면되지, 왜 하필이면 이 추운날 밖에서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는지... 가능하면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던 영희도 이번만큼은 참지 못할것 같았다. 하필이면 자신을 두고 간 곳 근처에서는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지 노래소리마저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얘는 또 왜 안와..."
영희는 괜히 준수에게 잘보이고 싶어 고른 옷이 하필이면 얇은 편이라 바람이 그녀의 속살로 파고드는것 같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어떻게 보이든간에 두껍께 껴입고 나올걸 하는 후회를 하며... 그 때 거리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3인조였는지, 아까 노래를 부르던 2명보다 노래를 좀 못하는것 같은 한명이 노래를 불렀다.
"풋... 뭐 못하진 않는데 거리공연을 할 정도는 아니네..."
하지만 영희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앰프를 통해 나오는 소리라서 확신할 수 없지만, 뭔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였다. 그 사람은 노래를 부르다말고 중간에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제게 특별한 날입니다. 사실은 더 빨리 했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크리스마스이브를 핑계삼아서 이렇게 말을 하게 되네요. 사실은 지금처럼 그녀와 함께 지내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 사람과 조금 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제 노래를 들어주세요."
영희가 못믿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그 수많은 인파가 갈라져서 길을 만들었고, 그 길 사이로 한 남자가 한 손에는 마이크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뭔가를 잡은채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난 네게 부족하지만, 참많이 부족하지만
세상을 다 뒤져도, 나같은 남잔 없다는걸 아니
조금은 어색하지만, 많이 부족하겠지만
시간이 흐른뒤엔 날 바라보면서 웃을거야.
Your my angel... My Soul.... 후우~~
마침내 그녀의 앞에 다가온 남자는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뭔가를 잡고 있던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와 결혼해줘요..."
"이 아름다운 한쌍을 위해 우리 축하해줍시다~~~"
-짝짝짝
어느새 준수와 영희를 가운데로 하고 원형으로 둘러쌓인 형태로 선 수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영희는 준수의 말을 듣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이대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고 있을수는 없다는 생각에 준수를 일으키고는 도망치듯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계속해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영원한 축복을 기원해주었다.
준수는 나름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로맨틱한 상황을 연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니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였다. 일의 주동자라고 할 수 있는 준수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데, 영희는 오죽했으랴.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말없이 미묘한 기류만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 준수의 손에 들려있었던 뭔가 포장된 물건도 펼쳐보지도 않고 표정도 굳어있었다. 준수도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두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것보다 영희가 더 화를 내는것 같아 준수는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화났어요...?"
"......"
"화나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언젠가는 말해야될거같아서..."
"... 아까는 너무 주변이 시끄러워서 제대로 못들은거같은데...내가 잘못 들은거같아. 그치? 그런거지...?"
"뭐라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못들으셨다면 다시 말해드릴게요. 몇번이든지... 이모... 나랑 결혼해요..."
-찰싹
조금 한적한 곳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영희는 준수의 뺨을 때렸다. 생각치도 못했던 영희의 반응에 준수는 놀랐지만, 정작 더 놀란것은 영희 자신인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뭐라도 말을 해야만 하는 것도 준수가 아닌 영희였다.
"뭐? 미쳤니?"
"아니요. 이모... 진심...."
준수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영희는 준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정신차려. 너는 아직 18이고, 나는 36이야. 게다가 난 수혁이의 엄마고 넌 정윤언니의 아들이고..."
"... 알아요..."
"나는 어쨋든 한번 결혼했었던 몸이고... 넌 아직 성인도 아닌 앞날이 창창한 나이인데..."
"... 그래서 그게 어쨋다구요...?"
"앞으로 나보다 훨씬 좋은 여자들 많이 만나서 그 중에서 진짜 좋은 여자랑 결혼해서 잘 살아야지, 철이 덜들었니? 아니면 미쳤어? 너희 어머니한테, 아니... 정윤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알아요. 아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걸 어떻게해요..."
준수는 영희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정말... 나 없이살 수 있어요...? 난 이모 없이는 못살거같은데... 이모, 정말로 화난거에요...? 그런거에요...?"
"... 그럴리가 없잖아... 바보... 넌 정말 바보야... 흑흑..."
준수에 품에 안기자 영희는 그동안 냉정함을 유지해왔던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준수에게 그 말을 들었을때의 감동, 흥분, 그것을 억지로 눌러왔던 것이 순식간에 풀어졌고, 그 반동때문인지, 그녀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화난거 아니였어요? 왜 그렇게 울고 그래요..."
"흑흑... 화난거 맞아... 너한테 화난게 아니라... 너한테 그런 말을 듣고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나 자신한테 너무나도 화가 나서... 그러면 안되는데... 준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면 안되는데... 안된다는걸 알지만 너무 좋아서... 내가 사랑하는 준수가 나한테 결혼하자는 말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그럼 이모... 제 청혼 받아주시는거죠...?"
"...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다...? 나중에 다른말 하면 평생동안 원망할거야."
준수는 대답 대신 영희에게 입을 맞췄다. 따지고보면 그렇게 오래된것도 아닌데, 이렇게 키스를 하는 것이 굉장히 오랫만인것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입술을 맞추던 그들은 어느새 더욱 강렬한 뭔가를 요구하는듯 서로의 혀를 탐해갔다. 그렇게 남들이 보든, 아니든 한참을 서로의 혀에 붙어있던 그들이 떨어져나갔다. 그만큼 준수와의 애정행각을 갈구해서였을까, 영희의 눈은 황홀감에 젖어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보며 준수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원래 오늘 제가 하자는대로 다 하자고 했잖아요. 근데 이번 요구는 이모가 싫으면 안들어줘도 괜찮아요. 어때요...?"
"으음... 뭔데...?"
"나...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은데..."
"... 그래서...?"
"호텔 잡아뒀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흥... 그럴줄 알았어... 하여튼..."
"그래요? 뭐... 싫으면 어쩔 수 없죠. 저 혼자..."
"누... 누가 언제 싫대? 빨리 가자... 나 추워..."
준수는 웃으며 다시 한번 영희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영희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대신 이번에는 팔짱을 낀채로 준수에게 기댄채로 걸어갔다. 지금의 영희에게 12월의 추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분명 추운 날씨임에도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그 어느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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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입니다. 다들 건강히 잘 지내셨는지요?
그동안 제 신변에 조금 변화가 생겨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동안은 시간적인 여유는 있을것 같아요.
문제는 원래도 부족했던 글솜씨가 더욱 부족해진것만같아서 글을 쓰는 속도가 안난다는점 정도랄까...
그래도 87부까지 왔습니다.
아마 100부 정도로 완결을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대강의 이야기의 흐름은 생각해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어디까지나 생각일뿐...)
아무튼 88부는 그동안 기다리셨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준수야. 자?"
"......"
"오늘도 그냥 이렇게 자는거야?"
"으음... 이모 피곤해요... 미안..."
아마 모르는 사람이 이 두 남녀를 대화를 듣는다면, 평범한 부부관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부부는 연애때의, 혹은 신혼때의 불타오르는 욕구는 세월의 흐름에 씻겨내려가서 부부관계는 결국 형식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일반적이였다. 특히나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을 강요받다시피하는 남성의 경우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드는 일이 일반적일지도 모른다. 물론, 피곤하다는 이유가 진짜로 밖에서 일을 열심히 해서인지 아닌지는 뭐...
어쨋든, 그런 일반적인 경우는 이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들은 부부관계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 피곤하면 어쩔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지만..."
영희는 혹시라도 자신이 유혹하면 준수의 얕은 잠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수에게 그녀의 뜨거운 입김을 내뿜었지만, 그녀의 유혹은 준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듯 했다. 준수는 오히려 귀찮다는듯 영희에게 등을 보인채 잠을 청했다. 그런 준수에게 영희는 섭섭함을 느꼈다. 벌써 오늘이 한달째였다. 정기적으로 다른 여성들과 광란의 주말을 보내긴 했지만, 그녀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평일 밤에는 그와 어떠한 관계도 가지지 못했다. 아침에는 준수가 먼저 일어나서 그녀가 어떻게 할 틈이 없었고, 집에 들어와서는 계속해서 공부, 그리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을 청하는 일상속에서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영희였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타들어갈수록, 그녀의 육체적인 갈망 또한 더욱 더 커져만갔다.
"내가 싫어진걸까..."
오죽하면 영희는 혹시라도 준수에게 버림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지만, 함께 밥을 먹을때에는 평상시의 준수였기 때문에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설마 다른 여자가 생긴거 아니야...? 선생님 말로는 학교에서 다른 여자가 생긴것 같진 않다고 하던데..."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때마다 세진은 딱히 준수가 학교에서 다른 여자에게 접근한다거나, 다른 여자가 준수에게 접근하는것 같진 않다고 귀뜸해주었기 때문에 그런 의심 또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내 몸에 질린걸까..."
영희는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만지며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는지 확인해봤다. 하지만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영희는 준수가 혹시라도 자신에게 싫증을 느끼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때문에 예전보다 더욱 열심히 몸매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군살이 생길리도 없었다. 아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녀의 몸이 더욱 뜨거워졌다는 점 말고는...
"알았어... 대신 이렇게 안고 잠들어도 되지?"
"으음... 네... 뭐 그 정도는... 잘자요 이모..."
영희는 아쉬운대로 뒤에서 준수를 끌어안고는 그의 넓은 등에 그녀의 가슴을 밀착시켰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영희는 외마디의 신음을 내뱉었다. 영희는 내심 그녀의 신음소리가 준수를 자극하는 것을 원했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준수는 벌써 깊은 잠에 빠졌는지 요지부동이였다. 영희는 아쉬운대로 그녀의 다리를 비비며 사타구니의 허전함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의 그 행위가 그녀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리는 없었다. 자위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지만, 그녀의 그 행위로 인해 준수가 잠에서 깨어나서 자신에게 뭐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위를 하는 것도 포기했다. 그녀에게 이 밤은 정말 긴 밤이였다.
영희에게도 긴 밤이였지만, 그것은 준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한달째였다. 그녀들의 조언을 듣고, 나름 완벽한 프로포즈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참고 또 참았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욱 참기 힘들었다. 영희 나름대로 준수에게 잘보이기 위해 입었던 비장의 잠옷을 보자마자 준수는 그녀를 쓰러뜨리고 그녀의 몸을 유린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욕구를 참아냈다. 하지만 그의 등 뒤로 전해지는 영희의 풍만한 가슴의 느낌은 정말로 참기 힘들었다.
"아... 빨고싶다..."
준수는 자신이 발기한 상태라는 것을 영희에게 들키면 지금까지 한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자신의 욕정을 철저히 숨기고 잠든척을 했다.
-여자는 의미있는 일은 평소와 달리 특별한걸 해주길 원해. 프로포즈도 마찬가지고.
세진, 수정, 은혜가 정상적인(?) 여성이라고는 하기 애매했기에 그녀들의 조언은 대부분 조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것을 뿐이였지만, 그나마 건질만했던 수정의 한 마디를 떠올리며 준수는 눈을 감은채 자신의 작전을 실행으로 옮기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이미 프로포즈에 필요한 모든 것은 준비해둔 상태였다. 나머지는 일주일 뒤에 실행만 하면...
"이모,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을래요?"
"응? 근데 오늘은 그날이잖아..."
"아아... 그거 오늘은 그냥 안만나기로 했어요."
"그래...? 나는 그런거 못들었는데... 그... 그렇다면 뭐... 그렇게 하자... 근데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사람 많을텐데...?"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까봐 예약해둔 곳이 있거든요."
"너가 돈이 어디있어서 예약을 했다고..."
"치...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되지 왜 자꾸 그렇게 물어봐요... 알았어요. 지금 전화해서 취소...."
"아... 아니야아니야. 싫긴 누가 싫다고 그래... 알았어."
"아, 맞다. 그리고 지금 저 잠깐 어디 갔다올테니까 이모 혼자서 거기로 오셔야되요. 장소는 알려드릴테니깐..."
"나 혼자 오라고...?"
영희는 갑작스럽게 준수가 저녁을 나가서 먹자고 하는 것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영희에게는 그것이 준수의 데이트 신청과도 다름이 없는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였지만,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듯,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였다. 영희가 상반된 기분을 느끼는 중 준수는 가벼운 차림으로 나가버렸다.
영희는 멍하니 앉아서 준수가 자신에게 왜 나가서 밥을 먹자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생각해도 준수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마음속의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는 수 밖에...
"그나저나 뭘 입지...?"
그녀는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서 옷장을 열고 그녀의 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옷장에 걸려있는 그녀의 옷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세진이나 수정에게 속옷에 대한 조언 말고 다른 옷에 대한 조언도 들어둘걸, 하는 후회를 하며 그녀는 옷을 하나하나 다 꺼내서 거울에 대보고는 마음에 안든다는 듯한 표정을 짓길 반복했다.
"어서오세요. 어머, 진짜로 오셨네요."
"네. 그나저나 아직 그거 안나갔죠?"
"어머, 어떻하죠 손님? 요즘 워낙 성수기라 다 팔려버렸는데..."
"윽... 이런... 제가 돈은 준비할테니 제발 오늘까지 하나만 남겨달라고 부탁드렸잖아요..."
종업원 앞의 준수의 표정은 금새 울상이 되어버렸다.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것은 다 무엇이였단 말인가, 이럴줄 알았으면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일찍 왔어야했나, 라는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런 준수의 표정과는 달리 종업원은 그런 준수를 보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싱글벙글했다. 준수는 종업원의 태도가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날 비웃냐, 라는 표정으로 준수가 종업원을 노려봤다. 그러자 종업원은 다른 손님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준수에게 말을 했다.
"후훗... 손님. 거짓말이에요. 여기 딱 하나 남겨뒀어요."
"저... 정말요??"
"남기려고 남긴건 아니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딱 하나 남게 됐네요. 뭐... 하나남았을때 혹시라도 준수군이 아닌 다른 손님이 찾으실까봐 몰래 숨겨두긴 했지만... 후훗... 이거 우리 사장님한테는 비밀이에요. 알죠?"
"다...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준수는 언제 울상을 짓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종업원에게 건냈고, 물건을 구입한채 문 밖으로 나가는 준수는 보면서 종업원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어려보이지만, 그래도 저런 훈남 스타일에 열정적인 남자에게 오늘같은 날 고백받는 여자는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준수는 다행히 모든 일이 잘 풀린 것에 안도하며 영희야 약속한 장소에 향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굉장히 사람이 많았다. 거리를 메운 수많은 연인들, 벌써 취한 커플들도 꽤 많아보였고,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거리에서 키스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늘도 수많은 커플들에 질투를 느꼈는지 오늘따라 바람이 굉장히 차가웠지만, 아마 그들에게 바람이 찬지 아닌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준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바람이 너무 차서 영희가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을뿐...
사실 불안감은 그런 것만 있는것도 아니였다. 어쨋든 준수는 자신이 18살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반면 영희는 36... 아무리 사랑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였다. 게다가 단순히 연애가 아닌 결혼은 전혀 다른 문제기도 했다. 스스로가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어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섣불리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쩌면 자신과 영희 사이의 관계를 망가뜨리게 될지도 모르기도 했다.
그런 위험성이 있음에도 준수가 오늘 일을 실행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영희에게
-넌 내여자다,
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어서가 아니였다. 그가 영희에게 말하고 싶었던 진짜 의도는
-난 영원히 네 남자다,
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그 영원히에 대한 확신같은 것 또한 있었다. 앞으로 어떤 여자를 만나더라도 영희, 그 이상의 여자를 만나지는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영희 사이를 가로막는 금단이라는 이름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즈음, 준수는 저 멀리서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 영희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의 주변에서 광채같은 것이 풍겨나오기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리가 없었다. 비단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은 준수뿐만이 아니고 그녀들이 걸어가는 길 주위의 남자달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들은 각자의 여자친구들에게 팔뚝을 꼬집히곤 했지만... 준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영희를 맞이하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그 마음을 가라앉혔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준수는 입구에서 영희를 기다렸다.
"사람 참 많네... 그나저나 정말 오늘 춥네... 추운데 안에서 기다리지 왜 이런데에서 보자고 했어?"
"왜 이런데에서 보자고 하기는요. 여기에서 밥을 먹을건데 여기서 기다려야죠."
"... 여기 비싸기로 유명하잖아."
"비싸도 오늘같은날 이런데에서 먹어야지. 안그래요?"
"우리 그냥 다른데에서 먹자. 그래도 잘 찾아보면 어딘가는..."
"쉿. 오늘은 제가 하자는대로 해요. 안그러면 저 그냥 집에 가버릴거에요."
"치... 알았네요."
"그럼 들어가볼까요?"
준수는 영희의 손을 잡고는 가게 안으로 향했다. 영희는 준수와 손을 잡은채 걸음을 옮기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왠지 민망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명백히 엄마와 아들, 혹은 이모와 조카의 관계가 손을 잡고 이런 날 이런 곳에 온다고 비꼬는 시선을 던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돈을 주고 젊은 남자를 만나는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에게 비난의 시선을 던지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준수에게 그런 경멸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이였다. 그렇기에 영희는 준수에게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오늘따라 준수는 영희의 손을 놔주질 않았다.
"오늘 예약한 장준수입니다. 번호는..."
"아... 장준수님이요? 네,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카운터에서 안내를 받으며 준수와 영희는 창가 쪽의 자리에 앉았다. 화려하게 치장된 샹들리에부터 벽과 천장에 전시된 와인잔, 고풍스러운 테이블, 그리고 하드커버의 메뉴만 보더라도 이곳이 꽤 고가의 레스토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영희는 이런 곳에서 준수와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황홀하기도 했지만, 너무 준수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편히 앉아있질 못했다. 영희가 그런 생각을 하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수는 영희에게 말을 했다.
"뭐해요. 배고프다... 빨리 골라요."
"하... 하지만 준수야... 여기 너무..."
영희는 자신이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준수를 너무 나무라는 것도 아닌것 같아서 몸을 숙이고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준수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준수는 영희의 그런 말을 들은척도 안하고 계속해서 메뉴를 뒤적이면서 자신이 뭘 주문할지를 고민하는듯 했다. 그런 준수의 행동에도 차마 메뉴를 쉽사리 열지 못했던 영희가 계속해서 준수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다른 곳으로 말하는 사이, 어느새 종업원이 그들의 앞에 다가왔다.
"혹시 주문 도와드릴까요 손님?"
"음... 네. 일단 치킨텐터셀러드 하나랑... 그리고 모짜렐라머쉬파티 하나 주시고... 음, 그 다음에 메인은 저는 이걸로 할게요."
"자... 잠깐만요. 준수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여기는 내가 계산할게. 알았지?"
"아니에요. 그냥 무시하세요. 계산은 제가 할게요."
영희는 주문을 하기 전에 계산에 대한 부분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의 가격을 준수가 부담하는 것은 준수에게 너무나도 큰 짐일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잠시 그들이 실랑이자 안그래도 바쁜데 여기에 계속 서있을수는 없다고 판단한 종업원은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을 했다.
"저... 죄송하지만, 그래도 오늘같은 날은 남자친구분이 사시게 하는게 더 좋을거같아요."
그 말을 들은 영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영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채 부끄러워서 대충 준수와 같은 것을 달라는 말을 했다. 종업원은 이런 일은 한두번이 아니라는듯 능숙하게 그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종업원이 걸음을 옮기려는순간, 준수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하며 그녀에게 말을 했다.
"어때요? 제 여자친구 예쁘죠?"
"네.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준수는 종업원이 그들을 보든 안보든 손을 뻗어 영희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영희는 부끄러워서 손을 빼고는 준수에게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조금 적당히 하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준수는 영희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상관이 없다는듯 창밖의 야경을 보며 영희에게 말을 했다.
"오늘 참 야경 예쁘네요. 그쵸...?"
"으... 응...."
길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날이 날인만큼 거리에서는 퍼레이드를 비롯한 온갖 행사로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게다가 한강쪽에서는 불꽃놀이까지... 준수와 영희는 식사를 마치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준수는 끝끝내 영희에게 빌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엄청난 가격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영희는 불만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손을 잡은채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많이 춥진 않아요?"
"... 그냥 그래..."
"음... 혹시 화났어요?"
"왜...? 화난거같아?"
"음... 약간?"
"... 어차피 내 기분이나 내 생각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뭐, 내가 화나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때."
"하하... 이거 많이 화나셨나보네..."
준수는 약간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영희와 손을 잡고 있지 않은쪽의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영희는 이런 날까지 준수에게 그런 태도를 하고 싶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동안 준수가 자신에게 소홀히 했던 것과 겹쳐져서인지 그런 쌀쌀맞은 태도로 준수를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갑자기 화장실 가고싶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요. 알겠죠? 저 버리고 그냥 가면 안되요."
"가든가 말든가. 흥. 확 가버릴까보다..."
영희는 내심 준수가 분위기를 잡고 자신을 달래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기는 커녕 자신을 내팽겨쳐버리고 화장실로 가는 모습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가득했다. 아니, 갈거면 아까 그 레스토랑에 있는 식당에서 가면되지, 왜 하필이면 이 추운날 밖에서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는지... 가능하면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던 영희도 이번만큼은 참지 못할것 같았다. 하필이면 자신을 두고 간 곳 근처에서는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지 노래소리마저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얘는 또 왜 안와..."
영희는 괜히 준수에게 잘보이고 싶어 고른 옷이 하필이면 얇은 편이라 바람이 그녀의 속살로 파고드는것 같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어떻게 보이든간에 두껍께 껴입고 나올걸 하는 후회를 하며... 그 때 거리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3인조였는지, 아까 노래를 부르던 2명보다 노래를 좀 못하는것 같은 한명이 노래를 불렀다.
"풋... 뭐 못하진 않는데 거리공연을 할 정도는 아니네..."
하지만 영희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앰프를 통해 나오는 소리라서 확신할 수 없지만, 뭔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였다. 그 사람은 노래를 부르다말고 중간에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제게 특별한 날입니다. 사실은 더 빨리 했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크리스마스이브를 핑계삼아서 이렇게 말을 하게 되네요. 사실은 지금처럼 그녀와 함께 지내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 사람과 조금 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제 노래를 들어주세요."
영희가 못믿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그 수많은 인파가 갈라져서 길을 만들었고, 그 길 사이로 한 남자가 한 손에는 마이크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뭔가를 잡은채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난 네게 부족하지만, 참많이 부족하지만
세상을 다 뒤져도, 나같은 남잔 없다는걸 아니
조금은 어색하지만, 많이 부족하겠지만
시간이 흐른뒤엔 날 바라보면서 웃을거야.
Your my angel... My Soul.... 후우~~
마침내 그녀의 앞에 다가온 남자는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뭔가를 잡고 있던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와 결혼해줘요..."
"이 아름다운 한쌍을 위해 우리 축하해줍시다~~~"
-짝짝짝
어느새 준수와 영희를 가운데로 하고 원형으로 둘러쌓인 형태로 선 수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영희는 준수의 말을 듣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이대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고 있을수는 없다는 생각에 준수를 일으키고는 도망치듯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계속해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영원한 축복을 기원해주었다.
준수는 나름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로맨틱한 상황을 연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니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였다. 일의 주동자라고 할 수 있는 준수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데, 영희는 오죽했으랴.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말없이 미묘한 기류만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 준수의 손에 들려있었던 뭔가 포장된 물건도 펼쳐보지도 않고 표정도 굳어있었다. 준수도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두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것보다 영희가 더 화를 내는것 같아 준수는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화났어요...?"
"......"
"화나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언젠가는 말해야될거같아서..."
"... 아까는 너무 주변이 시끄러워서 제대로 못들은거같은데...내가 잘못 들은거같아. 그치? 그런거지...?"
"뭐라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못들으셨다면 다시 말해드릴게요. 몇번이든지... 이모... 나랑 결혼해요..."
-찰싹
조금 한적한 곳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영희는 준수의 뺨을 때렸다. 생각치도 못했던 영희의 반응에 준수는 놀랐지만, 정작 더 놀란것은 영희 자신인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뭐라도 말을 해야만 하는 것도 준수가 아닌 영희였다.
"뭐? 미쳤니?"
"아니요. 이모... 진심...."
준수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영희는 준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정신차려. 너는 아직 18이고, 나는 36이야. 게다가 난 수혁이의 엄마고 넌 정윤언니의 아들이고..."
"... 알아요..."
"나는 어쨋든 한번 결혼했었던 몸이고... 넌 아직 성인도 아닌 앞날이 창창한 나이인데..."
"... 그래서 그게 어쨋다구요...?"
"앞으로 나보다 훨씬 좋은 여자들 많이 만나서 그 중에서 진짜 좋은 여자랑 결혼해서 잘 살아야지, 철이 덜들었니? 아니면 미쳤어? 너희 어머니한테, 아니... 정윤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알아요. 아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걸 어떻게해요..."
준수는 영희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정말... 나 없이살 수 있어요...? 난 이모 없이는 못살거같은데... 이모, 정말로 화난거에요...? 그런거에요...?"
"... 그럴리가 없잖아... 바보... 넌 정말 바보야... 흑흑..."
준수에 품에 안기자 영희는 그동안 냉정함을 유지해왔던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준수에게 그 말을 들었을때의 감동, 흥분, 그것을 억지로 눌러왔던 것이 순식간에 풀어졌고, 그 반동때문인지, 그녀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화난거 아니였어요? 왜 그렇게 울고 그래요..."
"흑흑... 화난거 맞아... 너한테 화난게 아니라... 너한테 그런 말을 듣고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나 자신한테 너무나도 화가 나서... 그러면 안되는데... 준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면 안되는데... 안된다는걸 알지만 너무 좋아서... 내가 사랑하는 준수가 나한테 결혼하자는 말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그럼 이모... 제 청혼 받아주시는거죠...?"
"...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다...? 나중에 다른말 하면 평생동안 원망할거야."
준수는 대답 대신 영희에게 입을 맞췄다. 따지고보면 그렇게 오래된것도 아닌데, 이렇게 키스를 하는 것이 굉장히 오랫만인것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입술을 맞추던 그들은 어느새 더욱 강렬한 뭔가를 요구하는듯 서로의 혀를 탐해갔다. 그렇게 남들이 보든, 아니든 한참을 서로의 혀에 붙어있던 그들이 떨어져나갔다. 그만큼 준수와의 애정행각을 갈구해서였을까, 영희의 눈은 황홀감에 젖어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보며 준수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원래 오늘 제가 하자는대로 다 하자고 했잖아요. 근데 이번 요구는 이모가 싫으면 안들어줘도 괜찮아요. 어때요...?"
"으음... 뭔데...?"
"나...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은데..."
"... 그래서...?"
"호텔 잡아뒀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흥... 그럴줄 알았어... 하여튼..."
"그래요? 뭐... 싫으면 어쩔 수 없죠. 저 혼자..."
"누... 누가 언제 싫대? 빨리 가자... 나 추워..."
준수는 웃으며 다시 한번 영희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영희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대신 이번에는 팔짱을 낀채로 준수에게 기댄채로 걸어갔다. 지금의 영희에게 12월의 추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분명 추운 날씨임에도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그 어느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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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입니다. 다들 건강히 잘 지내셨는지요?
그동안 제 신변에 조금 변화가 생겨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동안은 시간적인 여유는 있을것 같아요.
문제는 원래도 부족했던 글솜씨가 더욱 부족해진것만같아서 글을 쓰는 속도가 안난다는점 정도랄까...
그래도 87부까지 왔습니다.
아마 100부 정도로 완결을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대강의 이야기의 흐름은 생각해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어디까지나 생각일뿐...)
아무튼 88부는 그동안 기다리셨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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