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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은... - 96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20 801회 0건
96화.














친구. 친할 친(親)자에 옛 구(舊)자를 쓰는 말이며 가깝게 오래 지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녀석과는 내가 친구라는 말의 의미를 알기 전부터, 아니... 친구라는 말을 하기 전부터 이미 친구사이였다. 엄마를 제외하고는, 아니... 사실은 나는 우리 엄마보다도 그 녀석을 더 가깝게 생각하고 있다.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나는 항상 그녀석을 친형제, 그 이상으로 생각해왔었다.

나는 항상 그녀석이 내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나정도의 외모에, 나정도로 머리가 좋고 나정도로 운동도 잘하는 녀석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석은 항상 나보다 뛰어났다. 물론, 그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쨋든 그런 녀석이 내 친구이기에 나는 항상 그 녀석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만약 그 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자만감에 나만의 세계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그 녀석은 내 친구이자, 내 라이벌이자, 내 스승이기도 했다.

언제인지도 모를때부터 그런 녀석과 함께 형제처럼 지내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없을 정도가 되었다. 너무나도 잘 알기때문에 나는 항상 그녀석에게 답답한 점이 하나 있었다. 여자 보기를 돌보듯 한다는 점... 물론 나를 좋다는 여자들도 많았지만, 그 녀석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많았고, 덕분에 나는 엄청난 귀찮음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무리 예쁜 여자를 소개시켜줘도 별로 관심이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고, 심지어는 우리 나이대에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인 야한 이야기를 할때도 똥씹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볼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수업시간에도 그런 표정은 안짓는놈이...

하지만 그런 그 =녀석도 한 여자에게만큼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 엄마... 사실 그 녀석의 그런 태도는 이해가 되는것이, 나도 그 녀석의 엄마인 정윤이모를 볼때면 단순히 여자라거나, 나와 친한 어른이 아닌, 친엄마처럼 정윤이모를 대했기에 그 녀석이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눈치를 챘어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뭐 어쨌든.

그래서 나는 더욱 그녀석이 더욱 좋았다. 가끔가다가 나랑 그녀석이 같이 있을때 우리 엄마는 나보다 그녀석을 먼저 챙겨줄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러는 것에 대해 전혀 섭섭함을 느끼지 않았다. 정윤이모가 바빠서 우리 집에서 잘때도 많아 항상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없는 나에 비하면 그녀석이 더 엄마에 대한 외로움을 많이 탈 것이고, 엄마도 그런 점때문에 친아들인 나보다도 먼저 그녀석을 챙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준수에 비해서 철부지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건 그런 식으로라도 그녀석을 배려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내가 섭섭함을 내색하지 않는것을 엄마 또한 든든하게 생각하시는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인지라는 것이 가능해지기 이전부터 항상 함께했던 그녀석과의 생활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아무리 여자가 좋다고 하더라도 만약 누군가 나에게 친구와 사랑중에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당연히 그녀석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해왔었고 지금도 그 선택을 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그렇게 함께만 하고 싶었던 그와의 학창시절은 결국 고등학교를 기점으로 헤어짐의 시기가 다가왔다. 어쨋든 나는 그녀석을 극복해보고 싶었고, 이겨보고 싶었다. 미운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앞서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동네 학교가 아닌,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로 했다.

아쉬웠다. 그리고 그녀석도 아쉬워했다. 가장 아쉬워한것은 우리 엄마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석과 엄마에게 내가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특히 그녀석에게만큼은 아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정윤이모는 아예 미국으로 가서 그녀석은 홀로 한국에 남겨졌다. 그런데도 그녀석은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하는 기색없이 지내오고 있다. 내가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친구로써 그녀석에게 부끄러울것이다. 물론 내가 아쉬워한다고 그녀석이 날 우습게 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저 나의 자격지심일 뿐이다. 친구로써 함께 하고 싶기에, 당당하게 그녀석의 친구라고 말하고 싶기에 나는 웃으면서 떠나갔다. 나의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에게 엄마를 맡기고...

잠깐, 후... 숨좀 돌려야겠다. 머리속이 너무 복잡하다. 너무 일찍 나왔나... 나는 일부러 더 빨리 서울에 가기 위해서 원래 기숙사에서 나오기로 한 시간보다 먼저 나왔다. 왜 먼저 나왔냐고? 그건... 뭐, 어쨋든....










감이란 녀석은 정말 무섭다. 내가 고등학교로 가기 위해 터미널로 간 날, 나는 그자식에게 엄마를 부탁한다고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왜 하필 그자식한테 엄마를 부탁한다고 말했을까? 엄마는 그자식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아무리 엄마가 여자고, 그자식이 남자라고 해도, 내가 부탁한다고 말해서... 그자식이 엄마를 위해 뭘 한다고 해서 엄마에게 뭐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엄마한테 그자식을 아들처럼 생각해달라고 말하는게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이때의 난... 모든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바라보는 행위는 참 신비한 행위다. 상대방을 보는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말투보다도 눈빛이 더욱 정확하다. 말이란 것은 내뱉기 전에 어느정도 생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지만, 눈빛은 사람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뭐.. 생각 안하고 그냥 마음가는대로 내뱉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긴하지만...

내가 첫 방학때 오랫만에 집에 돌아갔을때만해도 그자식과 엄마는 피는 섞이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모자관계처럼 보였다. 그것에 나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물론 엄마나 준수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그 그리움때문에 슬픔에 젖어사는 것은 싫었다. 물론 처음 나를 봤을때 엄마가 그동안 나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 순 있었지만 내가 걱정했던것만큼은 아니였기때문에, 나는 그자식이 그동안 내가 부탁한 것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때까진...

그자식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먼저 변한것은 엄마쪽이였다. 엄마의 눈빛에는 왠지모를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다. 물론 나를 보면서는 웃고 계셨지만, 그것은 일종의 위장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설마 나때문에? 아니, 일단 이것은 절대 아니였다. 나에 대한 걱정같은것때문이였다면 아마 그런 표정은 아니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준수때문에?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는 준수라는 자식은 그자식의 존재로 인해 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으면 피었지, 그늘이 지게 만들놈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집에 돌아갔을때, 엄마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의 정체는 조금 더 확실해졌다. 사실 그것은 그늘이 아니였다. 내가 그동안 엄마로써의 엄마의 얼굴만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착각했던 것이였던것이였다. 엄마의 얼굴은... 여자의 얼굴이였다...

엄마...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그리고 보통의 아들이라면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든, 싫은 아버지든간에 최소한의 정이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버지라는 호칭도 과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화가 난다. 아버지때문에 우리 엄마는 불행한 삶을 사셨고, 여자로써의 행복을 느끼기도 전에 나를 낳아버리고 혼자 키우느라 여자로써의 삶을 포기했다. 그래서 한때는 내 존재 자체가 엄마에게는 저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짧은 한때의 생각이였지만...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어쨋든 내가 엄마의 얼굴이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된 순간, 엄마를 그렇게 바꾼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남자에 대한 원망같은것은 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나로부터 엄마를 빼앗아갔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을뿐이였다. 평생동안을 나만 바라보고 사신 엄마가 그렇게 얼굴을 바꿀 정도면 얼마나 매력적인 남자일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 남자가 엄마에게 잘해줬으면 하는 생각... 같은 것들을 하며 만약 그 남자가 좋은 남자라면 엄마가 재혼을 한다고 해도 난 반대를 하지 않을 생각이였다. 아니, 왜 반대는 커녕 오히려 좋은 남자라면 엄마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할 생각이였다. 내 신경은 쓰지 말고 엄마도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라는 말을...












하지만... 그날... 그날이였다. 내가 엄마의 얼굴을 여자의 얼굴로 만든 남자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한 날은... 아니, 사실은 확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 마음속에서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 확신을 단순한 의심으로, 그리고 단순한 의심을 말도 안되는 허튼 상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가 그새끼를 사랑할리가 없다. 그새끼도 엄마를 사랑할리가 없다.

가끔 공부를 하다가 집중이 안될때면 엄마와 그새끼가 키스를 하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리고는 내가 점점 미쳐가고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정말 말도 안되는 일 아닐까? 세상에, 친구의 엄마를 사랑한다거나, 반대로 아들의 친구를 사랑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물론 그런것은 야동같은데에서 주로 쓰이는 단골소재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왜 그 소재가 단골소재로 쓰이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금기시된 사랑이기 때문에. 원래 금기일수록 자극적인것 아닌가. 물론 내가 엄마와 그새끼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보긴 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흥분을 했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뭐... 다른 의미로의 흥분을 하긴 했지만...

어쨋든 나는 자꾸만 떠오르는 장면들을 자제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집에 가면 갈수록... 엄마는 마치 이제서야 핀 꽃처럼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내가 알던 엄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확신했던 것은, 몰래몰래 내 눈치를 살피면서 엄마가 그새끼한테 보내는 눈빛... 그리고 그새끼가 엄마에게 보내는 눈빛... 이건 더이상 의심이 필요한 단계의 그런 것이 아니였다.

그 이후... 나는 그새끼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니, 부끄럽지만 일부러 내가 피했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그새끼한테 어떤 말을 할지가 무서웠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그새끼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는 것이였다. 그새끼에게 어떠한 말도 듣고싶지 않았다. 그냥 모르고 넘어갔으면 편했을것을... 비록 나의 추측, 아니... 거의 200%에 가까운 확신으로 엄마와 그새끼의 사이를 오해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제발 그것이 나의 오해이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그저 한 순간의 호기이기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나와 그새끼는 친구사이로, 나와 엄마는 모자관계로, 그리고 그새끼와 엄마는 그저 친구의 엄마이자 친한 언니의 아들 관계로 돌아가길...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제발... 나는 친구를 잃기 싫다고...

하지만 평소에 신을 믿지 않는 나를 신이 벌한건지, 화장실을 나오면서 본 엄마와 그새끼의 모습은... 연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사실 둘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안다고 해서 달라질건 없었다. 더 열받는건... 엄마와 그새끼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것이였다. 너무나도...














그리고 난 지금 내 친구였던 그 녀석을, 그 자식을... 그 새끼를 때리고 있다. 분명 때리는건 나인데 내가 더 아픈 느낌은 뭘까...

"시발, 똑바로 들어. 난 방금 너한테 아무 말도 못들은거야. 그리고 넌 나한테 아무 말도 못한거야. 그치? 그치? 맞다고해! 제발 맞다고 하라고!!"

"수혁아..."

"야이 시발놈아. 말좀 해봐. 엉!? 제발 내 말이 맞다고... 니가 아무런 말도 안했다고 말을 해보라고!!"

어둠속에도 그새끼의 얼굴은 벌겋게 부어올랐다. 하지만 그새끼는 눈은 고통에 젖은 눈빛이 아닌, 나를 걱정해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찢어진 그의 입술은 다시 말을 하면서 벌어졌다.

"아니... 너가 아까 들은 그대로야. 나... 진심으로 영희 사랑해..."

"이런 씨발새끼가!!"

나의 주먹은 다시 그의 얼굴로 향했다. 나조차도 내가 어느정도의 힘으로 때리고 있는건지 가늠이 안된다. 다만 그새끼가 내 주먹을 맞고 나자빠지는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였다. 하지만 나자빠지면서도 그새끼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나도... 나도 어쩔 수 없어... 사랑하는걸..."

"미친새끼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이 시발놈아!!"

"때려... 때려서 네 분이 풀릴만큼 때려... 다 맞아줄게.. 대신... 나... 나때문에 너랑 영희의 사이가 이상해지는건 싫어..."

"이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면 다야!? 새꺄! 니가 그따구로 말하는데 그걸 바라냐 이 개새꺄!"

그가 한마디를 할때마다 내 주먹은 그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친다. 벌써 몇대를 쳤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다만 그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고, 내 주먹에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흘린 피인지, 그새끼가 흘린 피인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하아... 하아... 개새끼... 개새끼......"

난 그의 몸 위에 올라탄채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때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새끼의 얼굴을 때릴 힘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때리려했지만 힘이 빠진 내 주먹은 그의 얼굴을 빗겨나가 애꿎은 땅을 치고 말았다. 내 눈에서 뜨거운 뭔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왜... 왜 하필이면 너야... 왜 하필이면... 너냐고..."

"....."

"그리고 왜... 왜 하필이면 엄마야... 시발놈아... 왜... 내가 니 여자친구 생기면... 어떻게 축하해줄지 매일같이 생각했었는데... 시발놈아... 왜 하필이면 왜... 우리 엄마냐고..."

"... 수혁아..."

"아니야... 아니지? 하하하하.... 아니야... 꿈을 꾼거야... 꿈을 꾼거지? 하하하하하.... 니가 그럴리가 없어... 엄마가 그럴리가 없다고...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 자꾸만 환청이 들리네? 하하..."

"정신차려... 사실이야... 꿈이 아니라고..."

"어... 준수야. 너 얼굴이 왜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그랬어? 말만해. 내가 이 새끼를 그냥..."

준수는 서글픈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애시당초에 난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머리가 아프다... 아...

"하하... 졸리네... 집에 가야지... 하하... 미쳤었나봐. 하하하하하하하하... 히히히히히... 미칠수도 있지...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난 미친것같은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만약 지나가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날 신고했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엘리베이터를 탈때까지 내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 수혁아...!! 너 피..."

"어... 엄마..."

"다쳤니...? 다친거야? 어디 봐봐... 응...?"

엄마의 모습을 보자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짓을 드디어 깨달았다. 내가 준수한테 어떤 짓을 저지른건지... 하지만 엄마는 방금 있었던 일들을 까맣게 모르는듯 소독약으로 내 주먹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준수... 못봤니? 바람쐬러 나간다던데..."

엄마의 입에서 준수를 찾는 말이 나오자 내 주먹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소독약으로 그나마 깨끗해진 내 주먹에 연고를 발라주고 계셨다. 그리고 아직 입구에서 내가 엄마의 치료를 받고 있을때, 준수가 들어왔다.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주... 준수야!!! 어떻게 된거야!! 얼굴이 그게 뭐야... 응? 무슨 일 있었어?"

터벅터벅... 그는 정상적으로 걷기도 힘들어보였지만 그의 상태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엄마에게 손을 뻗으려고 한 순간 그대로 엄마의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엄마의 비명... 엄마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그것을 보자 난 더이상 견딜수가 없었다.

"내가 그랬어요..."

"응...? 뭐...?"

"내가 그런거라구요 준수..."

엄마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준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을 했다.

"다 말했어... 수혁이한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무... 뭐...?"

엄마는 충격을 받은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나는 더이상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집에 엄마와 준수를 두고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왔다.....















"으음~~~ 누나!! 누나!!!! 문열어!!"

"알았어 알았어. 윽... 술냄새... 너 오늘은 집에서 잔다더니... 켁... 너 술마셨어? 손은 또 왜그래?"

"아 몰라!! 나한테 집이 어디있어!! 여기가 내 집이야! 누나 집이 내 집이라고!!"

나는 꼴사납게 내 여자친구인 지연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물론 술은 마셨지만 정신만은 멀쩡했다. 아니, 술을 마셔도 정신이 멀쩡해서 더 미칠것만 같았다. 오늘 누나의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였다...

"윽... 냄새... 일단 샤워부터 해..."

그러고보니 내 몸에서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거같다. 아, 담배를 펴서 그런가? 일단 씻으라는 누나의 말에 나는 군말없이 그녀의 욕실로 향했다. 기숙사에 사느라 자주 오진 못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구조에 나는 마치 내집마냥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이 내 몸에 쏟아지고, 난 내 주먹에서 쓰라림을 느꼈다. 멍이라도 든걸까...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걸까... 왜 난 항상 이런식으로 행동하는걸까... 정말 못난 놈이다.

밖에서 샤워를 마무리하고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으면서 거실에서 누나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예... 어머니... 예... 여기에 왔어요... 예... 오늘은... 제가 재울게요... 예... 무슨 일... 아니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네... 걱정하시는 일 없을거에요... 그럼 주무세요..."

누나가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는 알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하기 싫었다. 나는 욕실 문을 나와 누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이곳에서 항상 자왔던 누나의 침대로 곧바로 향했다. 내가 누운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누나도 나를 따라왔다.

"수혁아. 자?"

"......"

"우리 수혁이... 무슨 일 있었어? 나한테 얘기 안해줄거야?"

"......"

얘기하기 싫었지만... 그녀에게는 숨기고 싶어도 털어놓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는것같다. 나는 한숨을 쉬며 누나와 눈길을 맞췄다. 그리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누나... 있잖아... 내가 하는 얘기 잘 듣고 누나가 잘 생각하고 말해줘봐. 알았지?"

"그래. 뭐든지 말해봐."

".... 내 친구가 있거든...? 내 친구한테 들은 얘기인데... 내 친구의 친구가... 그녀석의 엄마를 사랑한대... 결혼을 한다는거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으음~~ 그래? 네 친구의 친구가 그런단 말이지? 음... 확실히... 조금 황당한 얘기긴 하네..."

".... 그치... 내 친구를 생각하면 그놈이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친구의 엄마를 사랑하냐고."

"황당하긴 한데... 그러면 안되는거야?"

"다... 당연히 안되지!! 친구였던 놈을 아빠라고 불러야되거나... 내가.... 아니아니 그 친구가 엄마를 뭐라고 부르겠어... 그새끼가 친구를 생각했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 단순히 그거때문에 그러는거야?"

"단순한게 아니잖아. 어떻게 친구의 엄마를 사랑하냐고!! 그 친구의 엄마도... 어떻게 아들의 친구를..."

"그럼 반대로 물어볼게. 너... 나 사랑해?"

갑작스러운 누나의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대답을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려운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으... 응..."

"그럼... 너 만약에... 내가 네 친구의 엄마라고 했다면... 사랑하지 않을거야?"

"그거랑은 다른 얘기잖아! 누나는 누나고..."

"그러니까.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고. 그런 상황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만약에 내가 네 친구의 엄마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어. 그럼 너... 날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거야?"

"그... 그건..."

"네가 날 사랑하는 이유가 뭐야? 네가 사랑한다고 하는 나라는 사람은 누구야? 단순히 너보다 나이가 많은 날 사랑하는거야? 아니면 지연이라고 하는 여자를 사랑하는거야? 애시당초에 나라는 여자는 너한테 뭐야? 그냥 여자? 누나? 네가 사랑하는 지연이라는 여자가... 만약 네 친구의 엄마라고 해서 달라지는거야?"

"그.... 말도 안되! 게다가 만약에 누나가 내 친구의 엄마였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그런 마음을 가지지도 않았어!"

말도 안되는 누나의 가정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누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중요한건 미리 사실을 알았냐, 아니냐가 아니잖아. 이미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져버린거잖아. 사랑에 빠져버렸는데 단순히 친구의 엄마라고 해서 네 마음을 접을 수 있어? 만약... 네가 그런 남자였다면... 나 너한테 정말 실망할거같아..."

"....."

나는 지연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에는 하나 틀린점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말이 없어진 나를 그녀가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마치 그녀가 내 엄마라도 된듯 내 등을 토닥이며 말을 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널 떠나지 않아... 나도... 네 어머님도... 그리고 네 친구도..."

"... 누나.... 흑흑...."

드디어... 나는 참고 또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해버렸다. 그녀의 품에서 나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이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쏟아져나왔다.

"흑흑... 알아... 안다고... 그자식이라면 엄마를 행복해줄거라는걸.... 정말 화났던건... 정말 화났던건... 그자식이 엄마때문에 마음고생했을게 뻔한데 왜 나한텐 먼저 한마디도 안했냐는거... 내가 그자식한테 그정도밖에 안되냐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알아 알아... 네가 섭섭해하는거 이해해... 그래도 친구라면 이해해줘... 그 친구라는애도 널 생각해서 그동안 참느라 힘들었을거야... 네가 힘들었던것만큼..."

"누나... 흑흑... 나 오늘 그자식... 때렸어... 그자식을 알게된 이후로 처음으로... 처음으로 그자식을 때렸어... 이제... 그자식은 날... 친구라고 생각 안하겠지...?"

"그럴리가... 네가 그정도로 그 친구를 생각해주는데, 당연히 그 친구도 그만큼 널 생각해주겠지... 그나저나 부럽다... 너랑 그 친구 사이... 나 친구는 많아도 그런 친구는 하나도 없는거같은데... 히히... 그나저나 어머님 부럽다... 엄청 드라마틱한 사랑을 하시는거잖아..."

한참을 그녀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 내 감정이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다. 그래도 누구한테 털어놓고 말을 하고, 마음껏 눈물을 흘리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되는것 같았다.

"... 그녀석... 여자관계도 복잡해... 내가 아는것만해도 3명... 아니... 이제는 4명이겠구나... 그런 녀석이 정말... 괜찮을까...?"

"그거밖에 안되~? 우리 수혁이는 내가 아는것만 해도... 어디보자..."

"누... 누나...!! 과거는 과거일뿐이잖아!!"

"방금 네가 네 입으로 말했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윽..."

... 역시... 나는 그녀를 이길 수 없다...















한편 영희는 거실 의자에 앉은 준수의 옆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얼굴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바보!! 바보... 흑흑... 왜... 왜 그걸 말한거야... 흑흑흑..."

"미안... 더이상 숨기기 싫었어..."

"그래도... 흑흑... 얼굴이... 잘생긴 얼굴이 이게 다 뭐야..."

"후훗... 괜찮다니까 그러네. 아니면 얼굴이 이렇게되서 싫어진거야? 아얏... 아아..."

"미... 미안... 흑흑... 많이 아프지...?"

"아니... 하나도 안아파... 아마 나보다도... 수혁이가 훨씬 더 아플거야... 수혁이의 마음이 아플걸 생각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걸..."

영희는 한참동안을 준수의 가슴에 안겨 눈물을 흘릴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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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96화... 나름 힘줘서 써보긴 했는데 뭔가 마음에 안드네요.
한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수혁의 독백부분에서 준수에 대한 지칭이 그녀석, 그자식, 그새끼로 바뀌는 것에 주목해서 읽으시는것도
수혁이 심경변화를 어느정도 따라가실 수 있을것 같습니다.

97화는 늦어도 월요일 안에는 올리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럼 추운 겨울 모두 감기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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