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10분까지 준비하세요. 1분 늦을때마다 1km씩 추가로 뛸거에요."
아직도 달콤한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에게는 연유미의 목소리가 마귀할멈의 그것처럼 짜증스럽게 느껴진다. 잠이 많은 나에게 새벽부터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일은 고역 중에 고역이다.
새벽 6시에 기상하여 5km 조깅을 하면서 몸을 푼다. 벌써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 새벽부터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뛰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침부터 자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트레이닝. 그리고 꼭 필요한 영양분만큼만 제공되는 식사. 이런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지만 유독 새벽에 뛰는 조깅만큼은 힘들다.
한달전에 연유미로부터 받은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나를 민영이의 신랑감으로 내세운다는 계획을 따라준다면 백억을 지급받고, 야구선수로서 재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처럼 폐인이 되어버린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연유미는 거대한 이곳 별장에 나를 가두다시피 했다. 그리고 시작된 지옥의 트레이닝. 고교야구 선수로 뛰던 시절의 훈련량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지만, 훌쩍 불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니 그 시절보다 훨씬 힘들었던 것이다.
민영이의 소유라고 하는 이 거대한 별장에는 모든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 각종 헬스 트레이닝이 가능한 시설에 농구장과 수영장까지 구비되어 있었으니 운동을 하고 몸을 만들기에는 최적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있다. 바로 트레이너다.
"빨리 따라와요. 예정된 시각보다 아침식사가 늦어지면 곤란하니깐."
지금 내 앞에서 뛰어가는 저 여자 연유미, 그녀가 트레이너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여자라고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운동에 대해 빠삭한 전문가였다. 헬스 뿐만 아니라 달리기, 수영, 스쿼시, 심지어 복싱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거기다 남자 못지 않은 체력까지 갖춘 괴물이었다.
그런고로 이렇게 그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똥개훈련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녀의 탄력있는 몸매를 감상 할수 있다는 것이다. 연유미의 몸매는 민영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늘씬하고 탄탄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글래머러스한 민영과 비교했을때 확실히 슬렌더한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엉덩이와 가슴에 볼륨이 없는것도 아니었다. 민영이의 몸매가 비현실적으로 볼륨있을 뿐이지 그녀 역시 나이키나 아디다스 광고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몸매다.
그런 그녀와 한달간 함께한 내 몸 역시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불과 한달 사이에 선수 시절 체중으로 돌아왔고 근육량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흐릿하기만 했던 희망 역시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 와서 공을 던져보지는 않았지만 팔을 힘껏 휘둘러도 어깨에 걸리는 느낌 없이 말끔하다. 지난 몇년간 공을 잡지 않았던 것이 이런 효과로 나타난 모양이다.
처음엔 백억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평생 벌어도 거머질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끌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제안을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야구선수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이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한달간의 생활이 내 자신감을 점점 키워주고 있었다. 하루빨리 공을 던지고 싶다.
지금 공을 던지지 않는 이유는 연유미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녀는 몸이 완전한 상태가 되기 전에 의욕만 앞서 공을 던지다가는 부상 부위가 덧날수도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을 한계까지 만들고 나서 공을 잡기로 한 것이다.
"후우우...."
5km 조깅이 끝나고 그녀와 내가 함께 숨을 고른다. 별장 안에 러닝머신도 있고 실내 체육관도 있어서 안에서 뛰어도 되는데 그녀는 굳이 아침, 저녁으로 하는 조깅만은 밖에서 하기를 고집한다. 게으른 습성을 뜯어고칠수 있다나 뭐라나. 그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5km, 저녁 7km의 조깅을 빠짐없이 한다고 한다. 부지런하다고 해야할지 독하다고 해야할지..
"추운데 얼른 들어가죠."
나는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말했다.
"30분 휴식이에요. 7시까지 식사하러 내려와요."
그녀는 뒤도 안돌아보고 별장쪽으로 사라진다.
별장에 사는 사람은 그녀와 나 단 둘뿐이었지만 별장 자체가 워낙 넓었기 때문에 남녀 둘이서 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는 일층에서, 나는 이층에서 지내기 때문에 운동할때 이외에는 마주칠 일 또한 없다. 밤에 혼자 누워있으면 황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민영은 지금까지 한번도 이곳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매일 생각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한 그녀에게서 무슨 이야기라도 듣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연유미는 모든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계약서를 내밀었고 나는 거기에 싸인하고 지장까지 찍은 상태다. 계약서에는 민영이가 원하는 기간 동안 나는 그녀의 말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쓰여져 있었다. 노예 계약이라고 해도 좋을 조항이었다.
그녀가 나를 선택한 이유도 그녀의 입으로 듣고 싶다. 연기자를 쓰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연유미로부터 설명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역할을 내가 맡아야 할 이유도 없다. 연유미는 민영이의 뜻에 따랐다고만 말했다. 민영이는 나와 48시간도 안되는 시간동안 함께했고 충동적인 섹스를 한번 나누었을 뿐이다. 그 사실이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민영에 대한 여러 상념이 들었지만 모두 머리속에서 지워버렸다. 우선 몸을 완벽하게 만들 것이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내가 봐도 확실히 달라져 있다. 184cm에 80킬로그램. 떡 벌어진 어깨와 발달된 승모근.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흉근. 배에는 선명하게 왕짜 복근이 새겨져 있다. 여자들이 탐낸다는 굵고 탄탄한 허벅지이면서도 기다랗게 쭉 뻗은 다리는 내가 봐도 괜찮다. 불과 한달만에 이런 몸을 만들 수 있었던것 운동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 대학교에 들어갔을때 까지만 해도 프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랬기에 운동에 전념을 했고 지금보다 더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건 예전으로 돌아온 얼굴이다. 퉁퉁하게 붙어있었던 살들이 쪽 빠지면서 갸름한 턱선과 콧날이 그대로 살아났다. 철없던 시절엔 이 얼굴과 비율로 여자들을 마음대로 꼬시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지만 고등학교 때는 최성빈과 함께 꽃미남 유망주로 불렸었다. 그 녀석이 메이저리그에서 그 정도 투수가 되어버릴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이 정도 비주얼이라면 민영이의 옆에 있어도 부족함이 없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나 같은 놈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의 옆에 최성빈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질투가 날 정도로 잘 어울린다. 그건 어쩌면 나만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꺄악...!!"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내 생각들을 끊어버린건 별장에 메아리치는 비명소리였다. 워낙 넓어서 크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아래층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나는 서둘러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무슨 일 있어요?"
어디 있는지 모르니 큰 소리로 불렀지만 아무 반응도 없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연유미를 찾았다.
"유미씨! 어디있어요?"
"여... 여기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연유미 답지 않은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나왔다.
"어디에요?"
"샤워실... 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아무 일도.. 흐읍..."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신음을 낸다.
"비명소리가 들려서 와봤는데 진짜 아무 일 없는거 맞아요?"
"네.. 괜찮으니까... 올라가요.. 아아..."
"목소리가 괜찮아보이지 않는데요. 어디 다쳤어요?"
"...어깨가 빠진것 같아요..."
결국 그녀가 실토하고 만다. 약한 모습에 괜히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진지해야 했다.
"내가 고쳐줄수 있어요. 나와봐요."
"안되요... 의사 불러줘요...으으... 제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주치의가... 흐으응..."
"의사 오는 동안 어떻게 참으려고요. 그냥 들어갑니다?"
"아... 안되요! 들어오지마요!"
막무가내로 샤워실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져있는 그녀가 보였다. 비누거품이 씻기지도 않은 채로 벌거벗은 연유미의 뇌쇄적인 모습을 보니 흥분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 봐요."
그녀는 체념한듯 고개를 숙이며 팔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플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하나... 둘..."
"......"
"셋!"
"흐으으...!"
빠져있던 그녀의 어깨가 자기자리를 되찾는 느낌이 났다. 연유미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다.
"많이 아팠어요?"
"......"
나는 샤워기를 집어들어 물을 틀어 그녀의 몸에 있는 비누거품을 씻겨주었다.
"내가.. 할게요.."
"그 어깨로 무리하면 안되요. 지금은 그냥 나한테 맡겨요."
"......"
그녀는 최소한의 창피라도 면하려는듯 아픈 팔로는 양쪽 가슴을, 반대쪽으로는 가랑이 사이를 가렸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남자를 자극한다는 것도 모르고.
나는 잡생각을 떨치려고 노력하며 거품을 물로 씻은 다음에는 수건을 꺼내 몸을 닦아주었다. 벗은 모습을 보니 그녀의 몸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끝내준다. 잘록한 허리도 허리지만 잔뜩 업된 히프가 아주 예술이다. 냉랭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의 수줍음까지 더해지자 내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성욕을 억누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여기서 발기라도 되었다가는 창피를 당하는건 나일테니깐. 아무 감정없이 물기 제거에만 최선을 다했다. 옆에 널부러져 있던 안경도 씌워주고 목욕 가운을 입혀줌으로서 아쉽지만 그녀의 알몸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방으로 가죠. 많이 움직이면 어깨가 더 붓거나 할테니까."
그녀를 부축하여 방으로 향했다. 몸에서 나는 바디워시와 살내음이 섞인 여자의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안정을 취하는게 좋아요."
"..어깨 맞추는건 어디서 배웠어요?"
"훈련하다가 간혹 어깨 빠지는 녀석들이 있었거든요. 그 녀석들 응급처치는 다 내가 했다고 봐야죠."
"오늘 트레이닝을 못하게 되서 죄송해요."
"신경쓰지마요. 어차피 쉬고 싶었는데. 아무튼 푹 쉬어요. 밥은 내가 시간되면 들고 올게요"
그러고는 방을 나오려는데...
"자... 잠시만요!"
그녀가 나를 불러세웠다. 지금까지는 본적이 없는 그녀의 순한 얼굴을 마주했다.
"제가.. 강선웅씨 보고 마음에 안든다고 말했던거...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강선웅씨가 순진한 아가씨를 꼬드겼다고 생각했어요... 아가씨는 당신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으니까 동정한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강선웅씨는 지금 잘하고 있어요... 트레이닝도 성실하게 받고 있고... 오늘 일도 고마워요..."
"쑥쓰럽게 왜 그래요. 평소처럼 해요."
"강선웅씨... 좋은 사람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연유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이렇게 귀여운 모습이 있는 여자였나.
"고마워요."
그녀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전에 그렇게 말하고 얼른 방을 나왔다.
"10분까지 준비하세요. 1분 늦을때마다 1km씩 추가로 뛸거에요."
아직도 달콤한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에게는 연유미의 목소리가 마귀할멈의 그것처럼 짜증스럽게 느껴진다. 잠이 많은 나에게 새벽부터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일은 고역 중에 고역이다.
새벽 6시에 기상하여 5km 조깅을 하면서 몸을 푼다. 벌써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 새벽부터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뛰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침부터 자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트레이닝. 그리고 꼭 필요한 영양분만큼만 제공되는 식사. 이런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지만 유독 새벽에 뛰는 조깅만큼은 힘들다.
한달전에 연유미로부터 받은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나를 민영이의 신랑감으로 내세운다는 계획을 따라준다면 백억을 지급받고, 야구선수로서 재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처럼 폐인이 되어버린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연유미는 거대한 이곳 별장에 나를 가두다시피 했다. 그리고 시작된 지옥의 트레이닝. 고교야구 선수로 뛰던 시절의 훈련량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지만, 훌쩍 불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니 그 시절보다 훨씬 힘들었던 것이다.
민영이의 소유라고 하는 이 거대한 별장에는 모든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 각종 헬스 트레이닝이 가능한 시설에 농구장과 수영장까지 구비되어 있었으니 운동을 하고 몸을 만들기에는 최적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있다. 바로 트레이너다.
"빨리 따라와요. 예정된 시각보다 아침식사가 늦어지면 곤란하니깐."
지금 내 앞에서 뛰어가는 저 여자 연유미, 그녀가 트레이너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여자라고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운동에 대해 빠삭한 전문가였다. 헬스 뿐만 아니라 달리기, 수영, 스쿼시, 심지어 복싱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거기다 남자 못지 않은 체력까지 갖춘 괴물이었다.
그런고로 이렇게 그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똥개훈련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녀의 탄력있는 몸매를 감상 할수 있다는 것이다. 연유미의 몸매는 민영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늘씬하고 탄탄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글래머러스한 민영과 비교했을때 확실히 슬렌더한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엉덩이와 가슴에 볼륨이 없는것도 아니었다. 민영이의 몸매가 비현실적으로 볼륨있을 뿐이지 그녀 역시 나이키나 아디다스 광고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몸매다.
그런 그녀와 한달간 함께한 내 몸 역시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불과 한달 사이에 선수 시절 체중으로 돌아왔고 근육량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흐릿하기만 했던 희망 역시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 와서 공을 던져보지는 않았지만 팔을 힘껏 휘둘러도 어깨에 걸리는 느낌 없이 말끔하다. 지난 몇년간 공을 잡지 않았던 것이 이런 효과로 나타난 모양이다.
처음엔 백억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평생 벌어도 거머질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끌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제안을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야구선수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이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한달간의 생활이 내 자신감을 점점 키워주고 있었다. 하루빨리 공을 던지고 싶다.
지금 공을 던지지 않는 이유는 연유미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녀는 몸이 완전한 상태가 되기 전에 의욕만 앞서 공을 던지다가는 부상 부위가 덧날수도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을 한계까지 만들고 나서 공을 잡기로 한 것이다.
"후우우...."
5km 조깅이 끝나고 그녀와 내가 함께 숨을 고른다. 별장 안에 러닝머신도 있고 실내 체육관도 있어서 안에서 뛰어도 되는데 그녀는 굳이 아침, 저녁으로 하는 조깅만은 밖에서 하기를 고집한다. 게으른 습성을 뜯어고칠수 있다나 뭐라나. 그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5km, 저녁 7km의 조깅을 빠짐없이 한다고 한다. 부지런하다고 해야할지 독하다고 해야할지..
"추운데 얼른 들어가죠."
나는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말했다.
"30분 휴식이에요. 7시까지 식사하러 내려와요."
그녀는 뒤도 안돌아보고 별장쪽으로 사라진다.
별장에 사는 사람은 그녀와 나 단 둘뿐이었지만 별장 자체가 워낙 넓었기 때문에 남녀 둘이서 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는 일층에서, 나는 이층에서 지내기 때문에 운동할때 이외에는 마주칠 일 또한 없다. 밤에 혼자 누워있으면 황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민영은 지금까지 한번도 이곳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매일 생각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한 그녀에게서 무슨 이야기라도 듣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연유미는 모든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계약서를 내밀었고 나는 거기에 싸인하고 지장까지 찍은 상태다. 계약서에는 민영이가 원하는 기간 동안 나는 그녀의 말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쓰여져 있었다. 노예 계약이라고 해도 좋을 조항이었다.
그녀가 나를 선택한 이유도 그녀의 입으로 듣고 싶다. 연기자를 쓰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연유미로부터 설명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역할을 내가 맡아야 할 이유도 없다. 연유미는 민영이의 뜻에 따랐다고만 말했다. 민영이는 나와 48시간도 안되는 시간동안 함께했고 충동적인 섹스를 한번 나누었을 뿐이다. 그 사실이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민영에 대한 여러 상념이 들었지만 모두 머리속에서 지워버렸다. 우선 몸을 완벽하게 만들 것이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내가 봐도 확실히 달라져 있다. 184cm에 80킬로그램. 떡 벌어진 어깨와 발달된 승모근.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흉근. 배에는 선명하게 왕짜 복근이 새겨져 있다. 여자들이 탐낸다는 굵고 탄탄한 허벅지이면서도 기다랗게 쭉 뻗은 다리는 내가 봐도 괜찮다. 불과 한달만에 이런 몸을 만들 수 있었던것 운동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 대학교에 들어갔을때 까지만 해도 프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랬기에 운동에 전념을 했고 지금보다 더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건 예전으로 돌아온 얼굴이다. 퉁퉁하게 붙어있었던 살들이 쪽 빠지면서 갸름한 턱선과 콧날이 그대로 살아났다. 철없던 시절엔 이 얼굴과 비율로 여자들을 마음대로 꼬시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지만 고등학교 때는 최성빈과 함께 꽃미남 유망주로 불렸었다. 그 녀석이 메이저리그에서 그 정도 투수가 되어버릴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이 정도 비주얼이라면 민영이의 옆에 있어도 부족함이 없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나 같은 놈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의 옆에 최성빈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질투가 날 정도로 잘 어울린다. 그건 어쩌면 나만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꺄악...!!"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내 생각들을 끊어버린건 별장에 메아리치는 비명소리였다. 워낙 넓어서 크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아래층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나는 서둘러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무슨 일 있어요?"
어디 있는지 모르니 큰 소리로 불렀지만 아무 반응도 없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연유미를 찾았다.
"유미씨! 어디있어요?"
"여... 여기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연유미 답지 않은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나왔다.
"어디에요?"
"샤워실... 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아무 일도.. 흐읍..."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신음을 낸다.
"비명소리가 들려서 와봤는데 진짜 아무 일 없는거 맞아요?"
"네.. 괜찮으니까... 올라가요.. 아아..."
"목소리가 괜찮아보이지 않는데요. 어디 다쳤어요?"
"...어깨가 빠진것 같아요..."
결국 그녀가 실토하고 만다. 약한 모습에 괜히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진지해야 했다.
"내가 고쳐줄수 있어요. 나와봐요."
"안되요... 의사 불러줘요...으으... 제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주치의가... 흐으응..."
"의사 오는 동안 어떻게 참으려고요. 그냥 들어갑니다?"
"아... 안되요! 들어오지마요!"
막무가내로 샤워실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져있는 그녀가 보였다. 비누거품이 씻기지도 않은 채로 벌거벗은 연유미의 뇌쇄적인 모습을 보니 흥분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 봐요."
그녀는 체념한듯 고개를 숙이며 팔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플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하나... 둘..."
"......"
"셋!"
"흐으으...!"
빠져있던 그녀의 어깨가 자기자리를 되찾는 느낌이 났다. 연유미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다.
"많이 아팠어요?"
"......"
나는 샤워기를 집어들어 물을 틀어 그녀의 몸에 있는 비누거품을 씻겨주었다.
"내가.. 할게요.."
"그 어깨로 무리하면 안되요. 지금은 그냥 나한테 맡겨요."
"......"
그녀는 최소한의 창피라도 면하려는듯 아픈 팔로는 양쪽 가슴을, 반대쪽으로는 가랑이 사이를 가렸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남자를 자극한다는 것도 모르고.
나는 잡생각을 떨치려고 노력하며 거품을 물로 씻은 다음에는 수건을 꺼내 몸을 닦아주었다. 벗은 모습을 보니 그녀의 몸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끝내준다. 잘록한 허리도 허리지만 잔뜩 업된 히프가 아주 예술이다. 냉랭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의 수줍음까지 더해지자 내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성욕을 억누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여기서 발기라도 되었다가는 창피를 당하는건 나일테니깐. 아무 감정없이 물기 제거에만 최선을 다했다. 옆에 널부러져 있던 안경도 씌워주고 목욕 가운을 입혀줌으로서 아쉽지만 그녀의 알몸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방으로 가죠. 많이 움직이면 어깨가 더 붓거나 할테니까."
그녀를 부축하여 방으로 향했다. 몸에서 나는 바디워시와 살내음이 섞인 여자의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안정을 취하는게 좋아요."
"..어깨 맞추는건 어디서 배웠어요?"
"훈련하다가 간혹 어깨 빠지는 녀석들이 있었거든요. 그 녀석들 응급처치는 다 내가 했다고 봐야죠."
"오늘 트레이닝을 못하게 되서 죄송해요."
"신경쓰지마요. 어차피 쉬고 싶었는데. 아무튼 푹 쉬어요. 밥은 내가 시간되면 들고 올게요"
그러고는 방을 나오려는데...
"자... 잠시만요!"
그녀가 나를 불러세웠다. 지금까지는 본적이 없는 그녀의 순한 얼굴을 마주했다.
"제가.. 강선웅씨 보고 마음에 안든다고 말했던거...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강선웅씨가 순진한 아가씨를 꼬드겼다고 생각했어요... 아가씨는 당신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으니까 동정한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강선웅씨는 지금 잘하고 있어요... 트레이닝도 성실하게 받고 있고... 오늘 일도 고마워요..."
"쑥쓰럽게 왜 그래요. 평소처럼 해요."
"강선웅씨... 좋은 사람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연유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이렇게 귀여운 모습이 있는 여자였나.
"고마워요."
그녀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전에 그렇게 말하고 얼른 방을 나왔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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