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여보... 어쩌지...? 역시... 얘기해야겠지...?"
"... 응..."
준수와 영희는 잔뜩 긴장을 한채 오늘 그들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정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에게 말할때는 당당히 말했던 준수도 막상 자신의 엄마인 정윤에게 자신이 영희와 결혼을 할 것이란 사실을, 영희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왠지모르게 더 무서웠다. 어쨋거나 아직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보질 못한 수혁과 달리 정윤은 나이에 걸맞게 사회생활 경험도 많고, 결혼생활도 해봤기에 준수와 영희가 겪게될 현실적인 어려움 같은 것에 대해 더욱 더 많이 파고들 것이였다. 그런 정윤을 그들이 어떻게 설득해야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답이 보이질 않았다.
"여보... 우리 그냥... 도망갈까...?"
"... 그건 안되... 언니는 어떻게하고..."
"... 미안... 약한 소리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정윤이 정신적인 타격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정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교제, 그들의 결혼, 그들의 아이를 받아들이는것은 불가능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영희도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자 준수는 아차 싶었다. 그녀도 불안할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그녀는 지금 임신을 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그가 이렇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남자로써, 그리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써 실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수는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먼저 그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에 파묻힌 준수는 그녀의 체취에 복잡했던 마음에 편해졌다. 그녀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녀와 입술을 포개려고 한 순간...
-띵동~
벨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그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나갔다. 드디어 올것이 온 것이였다... 준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고, 영희는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인데도 불구하고 머리를 매만지고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었다. 긴장되는지 침을 한번 삼키고는 문을 열었다. 준수와 영희 앞에는 반가운 얼굴로 활짝 웃으며 들어오는 정윤이 있었다.
"아들~~~~ 우리 아들 완전 멋있어졌네~? 엄마 안보고싶었어~?"
"윽... 어... 엄마..."
정윤은 너무나도 오랫만에 준수의 얼굴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어쩔줄 몰랐다. 정윤은 준수를 한국에 두고 재혼한 남편과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항상 준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혹시라도 준수가 이상한 길로 빠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었고, 심지어는 준수에게 생겨서는 안될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때문에 악몽을 꾼 날도 하루이틀이 아니였다. 하지만 오랫만에 본 준수가 어엿한 청년이 된 것만같아 그동안 해왔던 걱정이 모두 사라진것 같았다.
"어디... 우리 준수... 얼굴좀 만져보자..."
정윤은 두 손으로 준수의 얼굴을 만지며 그의 피부, 체온을 느꼈다. 그리고 준수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각인받고 싶은 나머지 이제는 준수의 뺨을 자신의 뺨으로 부비부비거리고 있었다. 준수도 오랫만에 정윤을 봐서인지 그가 지고 있는 마음의 짐을 잠시 잊고 자신의 엄마인 정윤의 향기에 젖어있었다.
"... 언니... 일단 들어와... 밥... 안먹었지...?"
"어머어머, 영희도 있었구나. 미안미안... 아들을 너무 오랫만에 봐서... 호호... 잘지냈니?"
"응... 뭐..."
정윤과 준수가 서로에 대한 애정표현을 하는것을 지켜보고 있는 영희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물론 오랫만에 정윤의 얼굴을 봐서 반갑기도 했지만, 그녀와 준수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우와... 이거 준수야, 네가 한거야?"
"저 혼자 한건 아니에요. 영희..... 이모랑 같이 했어요."
"맛있네... 나중에 우리 아들이랑 결혼하는 여자는 정말 좋겠다. 이렇게 맛있는 밥을 매일같이 먹을거아니야. 호호..."
정윤의 말에 영희는 괜시리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준수가 자신을 위해 차려줬다는 밥을 먹는데 정신이 없는 정윤의 시선에 영희의 표정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정윤은 준수의 옆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고, 영희는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 정윤과 준수 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수와 영희의 눈빛이 마주치며 서로에게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떻게 말하지...?"
"언니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윤은 영희와 준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모른채 그저 영희와 준수의 손이 움직이지 않는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아들~ 왜 안먹어. 오랫만에 엄마랑 같이 먹는건데... 아들은 나랑 같이 밥먹는게 싫은거야?"
"아... 아니요... 먹을게요 엄마..."
"영희야, 너두. 좀 먹어."
"아... 알았어... 언니..."
그들의 머릿속은 아직도 복잡했지만 더이상 밥을 먹는것을 머뭇거린다면 정윤이 그들을 의심의 시선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숟가락을 들고 밥알을 입에 넘기기 시작했다. 정윤은 아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엄마로써의 벅찬 감동이 몰려오는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준수와 함께 밥을 먹은지 정말 오랫만인것 같았다. 준수가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정윤이 재혼을 하면서 서로 떨어져지낸 후로는 준수와 밥을 함께 먹은것이 다섯손가락에 뽑힐정도로 적었다. 간혹가다가 귀국을 했을때도 남편이 바빠서 준수의 얼굴도 못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적도 많았다. 정윤은 이제 남편도 쭉 한국에 있을 예정이니 앞으로는 준수를 더욱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모, 이것도 먹어요. 이것도... 이거랑 같이 먹어요."
"응... 알았어. 준수야... 너도 이거 먹어봐. 이건 내가 한거야."
"음... 역시 맛있네요 이모."
정윤은 준수와 영희가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에 질투를 느꼈다. 물론 준수가 한 반찬이라는 생각에 정윤의 젓가락을 쉬지 않고있었기에 준수가 챙겨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래산에 본 아들이 자신을 챙겨주지 않고 매일같이 얼굴을 본 영희를 챙겨준다는 것이 섭섭했기 때문이였다.
"얘! 준수야!! 엄마두..."
"아... 죄송해요 엄마..."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영희에게 반찬을 챙겨준 것이였는데 정윤이 화를내자 마치 영희와의 관계가 탄로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하며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영희도 마찬가지였다. 영희는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영희의 눈치를 살피며 반찬을 집어들었다.
"음~ 얘, 너 그나저나 예전보다 더 젊어진거같네. 무슨 비결이라도 있니?"
"그래...? 난 모르겠는데..."
밥을 다 먹고 준수의 방을 한번 둘러본 정윤은 영희와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집에 먹을 과일이 없어서 준수는 잠시 마트에 갔기에 집에는 영희와 정윤, 두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정윤은 반갑게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영희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녀는 일종의 의무감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수혁에게 그들의 진실을 밝히고 인정받은건 전적으로 준수의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윤에게는 자신이 그들의 일을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준수에게만 모든 짐을 떠넘기는건 원치 않는 일이였다. 준수에게 프로포즈를 받을때 그는 앞으로 있을 모든 역경과 고난을 함께 극복하자고 했었고,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그나저나... 재혼생활 어때...?"
"응? 호호... 그사람이 잘해줘서 좋아. 준수랑 떨어져서 지냈던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서 말인데, 그 사람이 이제는 준수 대학도 가고 자기도 서울에서 계속 살거니까 준수도 데리고 같이 살자고 하더라구."
"... 무... 뭐...?"
"응. 그것도 말하려고 했는데 아까 밥먹느라 말을 못했네. 호호... 아무튼 그동안 정말 네가 고생 많았어. 고맙게 생각해. 이제 준수는 나랑 같이 살거니까..."
영희는 앞이 컴컴해지는것 같았다. 이제와서 준수를 데려가겠다니, 물론... 정윤의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산다는것, 그것은 원래 준수가 있어야 할 곳에 돌아가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희는 정윤의 상식적으로도 너무 당연한 그 말이 자신에게서 준수를 빼앗아가려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이제 준수가 없이 살 수 없기에... 물론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 뱃속의 아이도... 영희는 각오를 다지는듯 침을 크게 삼키고는 영희에게 말했다.
"언니... 나... 사실... 결혼하려고..."
"어머, 뭐~? 정말? 진짜? 기지배!! 그런건 빨리 말해야지. 누구야~? 언제~? 기지배... 어쩐지 예뻐졌더라니... 그런거였구나?"
"응..."
"그 남자는 누군데? 몇살이야? 설마 나이먹은 아저씨는 아니겠지?"
"젊은 남자야... 아니... 후훗... 어린건가..."
"정말~? 능력도 좋다 얘. 그래서 누구야? 어떤 사람인데?"
영희의 말은 정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정윤 또한 재혼을 하고나서 느낀 행복때문에 영희도 이제는 짐승같은 전남편의 악몽에서 벗어나 새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외모에 맞지않게 너무나도 쑥맥인 영희였기에 그것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결혼이라니, 정윤의 계속되는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영희는 다시 한번 호흡을 고르고는 말을 했다.
"언니도 아는 사람이야..."
"정말~? 내가 아는 사람...? 동네 사람인가... 누가 있지...?"
정윤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아는사람과 영희가 아는사람의 공통분모 내에서 영희가 결혼을 할만한 사람을 추려내지 못했다. 정윤의 아리송한 표정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듯 영희는 자신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결혼할 사람은... 준수라는 남자야..."
"준수? 음... 글쎄... 보자... 준수가 누구였더라... 우리 어릴적 다니던 학교에는 준수라는 남자는 못들은거같은데..."
"... 나... 준수... 말하는거야..."
"뭐? 얘는... 싱겁긴... 그러지 말고 말해줘봐. 누구랑 결혼하는데?"
"진짜 준수랑 결혼한다구... 언니 아들 준수..."
"얘, 너 뭐 잘못먹었니? 안하던 농담을 하고 그래. 치. 재미없다 얘."
"나... 장난하는거 아니야 언니... 나 준수를 사랑해... 봐봐... 준수한테 받은 반지..."
"......."
정윤은 순간 말이 없어졌다. 안그래도 아까부터 자신의 옆에 앉은 준수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신경에 쓰여저 물어보려던 참이였었다. 여자아이라면 몰라도 남자아이가, 그것도 전에는 그런것에 관심도 없던 준수가 웬 반지를 끼고 있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반지가 지금 영희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와 같은 디자인이였던 것이다. 정윤은 말없이 영희의 손가락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녀는 믿지 못했지만,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농담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말이나 될법한 소리인가... 준수가 영희와 결혼을 한다니...
"언니... 미안해... 근데... 나 이제 준수 없이는 안될거같아..."
"... 커피가 식었네... 다시 타와야겠다..."
커피잔을 들고 있는 정윤의 손은 그녀의 목소리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영희의 말이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라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그녀가 들어왔을때의 준수와 영희의 어색한 표정, 그리고 밥을 먹는 내내 서로를 챙겨주던 다정한 모습, 그리고 서로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것들... 그냥 별거 아니라고 넘어갔던 것들이 퍼즐조각이 맞춰지는것 같았다.
"언니... 나랑 준수... 허락해줘... 나 준수한테 잘할테니...."
-짜악
-쨍그랑
정윤의 손바닥이 영희의 뺨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정윤의 손에 들려있던 커피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두동강났다. 정윤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된채로 영희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고, 곧 앙칼진 목소리로 영희를 다그쳤다.
"미쳤어? 어떻게!! 준수는 니 아들 친구야!! 니가 어떻게!! 내 아들을..."
"언니... 언니... 미안..."
그것과 동시였을것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윤의 앙칼진 목소리를 들은 준수는 상황이 어떤것지를 직감적으로 깨닫고 자신의 양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바닥에 떨구고는 곧바로 영희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아?!"
"야!! 준수!! 너 사실대로 말해. 이년이 헛소리하는데 사실이야?"
"엄마!! 뭐하는거야!? 영희야... 괜찮아...?"
"뭐어...? 영희야...? 너... 너..."
정윤은 준수가 영희를 부르는 말에 기가막힐지경이였다. 정윤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채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는것처럼 일그러져있었고, 영희가 준수의 앞으로 나서서 뭐라고 말하려고 하기에 또다시 영희의 뺨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준수는 내려치려는 정윤의 손을 막았다.
"엄마! 영희... 홀몸 아니야!! 때리지마."
"...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무슨 소리냐구!!"
"미안... 언니... 내 뱃속에... 애들있어..."
"... 애... 들...?"
"... 응 엄마... 나랑... 영희 사이의 아이... 쌍둥이야..."
정윤은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녀가 꿈꿔왔던 자신의 아들과의 삶... 아들이 대학을 다니는 모습... 나중에 예쁜 며느리를 데려와서 인사시키는 장면... 아들의 결혼식... 그리고 아들의 아이... 그 모든 것이 흐트러진 것이였다.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머리야..."
"엄마...! 엄마...!!!"
머리에 손을 올리고 뭐라뭐라 말을 중얼거리던 정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기절해버렸다. 그렇기에 준수와 영희가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가 기절하신거야?"
"... 네... 죄송해요... 아...버지..."
"녀석... 무리하게 아버지라고 부를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이왕이면 아빠라는 말을 더 듣고싶구나... 풋... 농담이고... 그나저나 그런 말을 들으니 니 엄마가 저리될만도 하지..."
정윤의 남편인 현우는 준수와 정윤이 누워있는 옆방에서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윤이 쓰러진 후 병원에서 단순히 쇼크로 인한 기절이니 건강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현우는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키는것보다는 집에 데려오는것이 낫다고 생각을 했었고, 정윤이 쓰러진 날부터 계속해서 준수와 영희가 그녀의 곁을 지키다가 현우가 준수를 따로 데리고 나와서 그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였다.
준수는 찹찹했다. 자신들때문에 쓰러진 정윤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리고 친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쨋든 새아빠인 현우에게 정윤이 쓰러진 이유인 자신과 영희의 관계에 대해 모조리 털어놓은 이후였기 때문이였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현우의 표정을 밝았다. 예상했던 반응과 달라서일까, 도리어 준수는 더욱 조심스럽게 현우를 대하고 있었다.
"... 아버지... 아니... 아빠...도... 반대하시겠죠...?"
"응? 반대?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 그야..."
"하하하... 뭐 그야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하겠지.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엄마가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어떻게 생각했어? 반대했니?"
"아... 아니요..."
"왜 반대하지 않았니? 어떻게 생각하면 엄마를 나한테 뺏기는 기분이 들었을거 아니야."
"그야... 그렇지만... 엄마가 저랑 언제까지 같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엄마도 엄마의 행복을 찾는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나도 너랑 같은 심정이란다."
"하... 하지만... 저는..."
"녀석... 나도 마찬가지다. 애시당초에 네가 장난식으로, 아니면 젊을적의 호기로 엄마한테 네가 저 여성분... 아니지, 이제는 며느리겠구나. 하하... 아무튼 네가 장난이였다면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겠지. 안그러냐?"
"... 네..."
"그렇지? 나도 그런 심정이였다. 네 엄마를 만났을때..."
현수의 자상함이 넘치는 표정에 준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윤이 쓰러진 이후로 그는 계속해서 마음앓이를 해왔는데 현수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것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준수를 보며 현수는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해. 그중에는 동갑끼리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남자가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고, 여자가 나이 많은 경우도 있지. 혹은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소위 말해서 신데렐라처럼 부자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가난한 여자들도 있고, 반대로 부자 여자 만나서 떵떵거리면서 사는 남자들도 있지.
하나같이 공통점이 뭔지 아니?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데에는 결혼하기 전의 그들의 조건같은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거야. 나이, 지위, 학벌... 이런거는 남들이 보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거긴 하지만서도 실제로 같이 사는 사람들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거란다. 비슷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거다?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그런거같지는 않아. 오히려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끼리 결혼했는데 엄청 잘 사는 사람들도 있어. 결국 결혼생활에 중요한거는 진심이란 거겠지. 나한테 절대로 후회 안할거라고 자신할 수 있니?"
"네...."
"그럼 됐다."
"정말 아버지는...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 네가 좋다는데 뭐 어쩌겠니. 하하... 나는 그저 너희들이 잘살길 바라는거밖에 없단다. 뭐... 나랑 비슷한 나이의 여자한테 아버님 소리 듣는것도 색다른 기분이 들거같기도 하고... 하하하..."
"감사해요... 감사해요 아버지..."
"짜식... 아빠라고 불러주면 더 좋을거라니까..."
"네... 감사해요... 아빠..."
"그리고 엄마가 저러는거, 네가 이해해야되. 엄마가 화내는게 그만큼 엄마가 널 소중하게 생각한다는거니까. 내가 무슨말 하는거 알지?"
"네... 알아요..."
"짜식... 엄마는 내가 알아서 설득할테니까 걱정하지 마렴. 알겠지? 임신까지 했다며. 그 시기에 너무 걱정하고 그러면 부인한테 안좋아. 알았지?"
생각보다 쿨하게 받아들이는 현수덕분에 준수는 한시름 걱정을 놓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준수와 현수는 정윤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자 영희는 현수에게 소리없이 인사를 했고, 준수는 그런 영희의 옆에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수는 소리없이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하지만... 아버님..."
"홀몸도 아닌데 그렇게 몇일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하면 아이한테도 안좋잖아요. 이이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준수야 뭐해. 네 부인 모시고 들어가서 일단 쉬거라. 엄마 괜찮아지면 내가 연락해줄게."
영희는 한사코 정윤의 곁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아이얘기를 꺼내는 현수를 설득시킬 수 없었고,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정윤을 바라보고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현수는 웃으면서 정윤을 보고는 잠든 그녀의 곁에 다가가서 그녀에게 속삭였다.
"후후... 일어나있는거 다 아니까 그만 눈뜨시죠."
"... 정말... 나 없는 사이에 누구멋대로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그러는거야?"
"멋대로 장가보내는게 아니랍니다~ 그럼 어떻게해. 저렇게 둘이 못죽어서 못살겠다고 하는데."
"여보! 준수 이제 20살이야 20살. 반면에 영희... 저년은... 어휴. 그런데 장가를 보내겠다고?"
"왜? 그게 뭐 어때서. 부인이 나이 더 많을수도 있지 왜.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뭐 대수라고."
"당신... 정말... 자기 아들이라고 너무 막생각하는거 아니야?"
정윤은 현수의 말에 화가나서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이 실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준수가 현수의 친아들이 아닌것은 맞지만, 그녀가 미국생활을 하면서 늘 준수생각을 했던것처럼 그 또한 그녀가 준수를 걱정할때마다 마치 준수가 친아들인마냥 같이 걱정을 해주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현수는 정윤의 말에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고 정윤의 표정이 풀어진것을 본 후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 내가 당신이랑 결혼한다고 했을때 제일 걱정했던게 뭔줄 알아?"
"......"
"우리 부모님... 당신도 봐서 알겠지만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야. 그래서 예전부터 내 결혼상대로 생각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더 어린 여자들이였지. 물론 지금도 남자가 연상의 여자랑 만나는걸 상당히 안좋게 보시는 편이구. 그거야. 내가 제일 걱정했던건.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처음 봤는데, 우리 부모님이 대놓고 당신을 싫어하면 당신이 어떤 기분일까... 그걸 걱정했지."
"......"
"그래서 내가 당신이랑 결혼한다고 했을때, 어떤말까지 들었냐면 나한테 집을 나가라는 말까지 했었어. 하하... 그래도 끝까지 설득하고 설득했지.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남자대 남자로 무릎을 꿇고 부탁을 했어. 나를 얼마든지 욕해도 좋으니까 제발 당신을 데리고 왔을때 당신한테 싫은 표정 짓지 말아달라고...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당신이랑 결혼하는거지, 당신을 고생시키고 싶어서 결혼하는건 아니라고. 그리고 당신이 행복해져야 내가 행복해진다고... 그거 기억나? 당신이 우리 부모님 처음 뵙던날, 처음 봤을때 우리 부모님이 억지웃음짓던거... 뭐... 그 이후로는 당신이 그래도 마음에 들었는지 진심으로 대해주셨지만..."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아직도 모르겠어? 왜 당신 며느리가 굳이 당신한테 직접 말을 했는지. 당신 속이고, 나도 속이고 그냥 남들몰래 둘이 지금까지 해왔던것처럼 결혼생활 할수도 있는데 굳이 말한 이유를 모르겠냐고. 당신 아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잖아. 남들에게 축복받는 결혼을 하고 싶어서잖아. 만약에 당신이 나랑 결혼할때 우리 부모님이 결사반대한다고 하면서 당신을 쫓아내고 했으면 당신이 좋았겠어?"
현수의 말에 정윤은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에는 틀린것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정윤의 표정이 확연이 풀어진것을 보고 현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당신이 나랑 결혼한다고 했을때, 준수가 반대한다고 한마디라도 했어? 아니잖아. 당신도 우리 며느리가 준수보다 나이 많다고 색안경끼고 보지 말고 좀 너그럽게 봐주면 안되? 며느리 그정도면 예쁘지, 착한건 당신이 가장 잘 알테고, 요즘같은때에 그런 며느리 찾기 쉽지 않아."
"누... 누가 며느리야...! 난... 아직 인정 안했어..."
"후후... 그 말은 곧 인정한다는 뜻이지?"
"참나... 몰라! 꼴도보기싫어! 나가! 흥..."
"하하하... 네네. 알겠습니다. 우리 마누라 괜찮아진거 보니까 이제는 나가도 될거같네요. 네네. 분부대로 나가서 밀린 일좀 보고 오겠습니다. 푹 쉬고, 한번 잘 생각해봐. 알지? 게다가 손주들도 있다며. 이거... 할아버지 될 생각하니까 좀 설레는데?"
현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정윤에게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는 옷을 차려입고 정윤의 곁을 떠났다. 정윤은 나가는 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불평을 하고는 곧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네네... 아 정말요? 그럼 괜찮은거죠? ... 네... 감사합니다... 아버... 아니, 아빠... 헤헤... 네... 네... 또 연락 드릴게요."
현수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나서야 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는 영희가 샤워를 마친채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준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뭐래요? 아버님 전화죠? 정윤언니... 괜찮대요?"
"응... 3일전에 일어나셨는데 그동안 바빠서 깜빡하고 전화 못하셨었대. 어차피 건강에는 이상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네."
"다행이다..."
화장대를 보며 긴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완전히 말린 영희는 준수가 누워있는 옆자리로 향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 영희는 준수의 품에 안겼고, 준수 또한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은채 다른 한 손으로는 영희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여보... 미안해요... 나때문에... 흑흑... 정윤언니랑 당신 사이가..."
"그런말 하지마..."
"이럴줄 알았으면 임신하는게 아니였어요... 흑흑... 내가 당신을 포기했어야..."
"영희야!! 정신차려! 그게 무슨 소리야! 나중에 애들이 들으면 얼마나 섭섭해하겠어! 당장 그 말 취소해!!"
준수는 영희의 두 팔을 잡았다. 그런 태도에 영희는 자신이 해서는 안될말을 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올것 같았고, 그런 영희의 표정을 보며 준수는 가볍게 그녀와 입술을 맞췄다. 준수의 입술이 떨어져나가자 영희는 준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여보... 우리... 도망갈까...? 아무도 없는 곳으로... 우리 둘만 있는 곳으로... 바다 보이는 그런 곳에서... 우리들만의 집을 짓고... 다른 사람들 신경쓰지 않고 나랑... 당신이랑... 우리 애들이랑... 그렇게 살까...?"
"... 당신... 수혁이 없이 살 수 있겠어...?"
"나... 당신이랑 이렇게 있으면... 다 잊을 수 있을거같아..."
"영희야..."
"사랑해... 준수야... 나 잊고 싶어... 아무것도 생각 못하게 해줘..."
우수에 젖은 영희의 눈망울을 보며 준수는 그녀와 진한 키스를 나눴다.
"하... 어쩌다가..."
정윤은 홀로 집을 나왔다. 너무 오래 집에만 누워있어서일까, 바람을 쐬고 싶었다. 현수가 집에 들어와도 현수의 얼굴이 보기 싫다며 억지로 그와도 각방을 쓰던 정윤은 오늘은 현수가 일이 있어서 들어오지 못할것같다는 말에 오랫만에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막상 밖으로 나와봤자 갈만한 곳도 없었다. 그렇게 기약없이 떠돌다보니 어느새 정윤은 영희의 집 근처에 와있었다.
"내가 여길 왜... 참나..."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향했다는 생각에 걸음을 다시 돌릴까도 생각했지만, 이대로 준수와 영희와의 관계를 모른척하고 넘어갈수도 없는 일이였다. 문득 정윤은 지난날 수혁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는 수혁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됐었는데, 이제는 그의 말이 뭘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그럼 수혁이도 안다는거잖아. 걔는... 지 엄마가 자기 친구랑 결혼을 하겠다는데... 하긴... 그런말을 한거면... 받아들인거겠지..."
수혁의 생각을 하자 정윤은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어떤 식으로든 수혁은 결정을 내린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수혁이 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괜시리 수혁에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어쨋든 이제 남은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고... 정윤은 혼자만의 다짐을 하고는 영희의 집으로 향했다. 수혁에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들어서 정윤은 굳이 벨을 누르지 않고 집 안으로 향했다.
집 안으로 향한 정윤은 깜짝놀랄 수 밖에 없었다. 불꺼진 집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남자와 여자의 신음소리... 설마, 이것들이, 라는 생각을 하며 그 소리가 들리고 있는 준수의 방으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그 신음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정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준수의 방문을 열었다.
"야!! 너희 뭐하는짓이야!!!!"
"어... 엄마..."
"어... 언니..."
"빨리 옷 안입어!!!"
뒷치기자세를 하고 있어서 정윤이 문을 연것도 몰랐던 준수와 영희는 정윤의 고함에 화들짝 놀라 이불로 그들의 알몸을 가리고는 서로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정윤은 화가 난듯 문을 쾅소리가 나도록 닫았고, 준수와 영희는 부랴부랴 자신들의 성기에 묻은 애액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대충 옷을 걸쳐입고는 거실로 향했다. 그들의 시선에 팔짱을 낀채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윤이 들어왔고, 준수와 영희는 살금살금 그녀가 앉아있는 쇼파의 옆에 가서 앉았다.
"으이구!! 으이구!! 짐승새끼!!! 짐승같은 놈아!! 니가 그러니까 애가 안생기고 배기겠냐!! 으이구!!!!"
정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준수의 팔과 등을 때렸다. 준수는 자신의 엄마에게 할 변명이 딱히 없어 정윤이 때리는대로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영희는 정윤이 준수를 때리는 심정을 이해할것 같았고, 그렇게 때릴 수 밖에 없는 정윤이 안쓰럽기도 했다.
"언니... 미안... 준수가 그런거 아니야. 내가... 내가... 하자고..."
"뭐어~? 언니~~??? 참나."
영희의 말에 정윤은 준수를 때리는것을 그만두고 등을 보이고 돌아앉았다. 모르긴몰라도 정윤은 단단히 화가 난것 같아보였고, 준수와 영희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윤의 입밖으로 나온 말은 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였다.
"참나. 요즘 애들은 시애미한테 언니라고 부른다니?"
정윤의 뜻밖의 말에 준수와 영희는 한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동안 멍해져있던 그들은 곧 그녀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를 깨달았다.
"어... 엄마... 방금 한 말..."
"왜? 너는 어떻게 며느리를 데려와도 저런애를 데려오니? 참나... 뱃속에 애도 있는 주제에 그... 그짓을 하고 있질 않나, 뭐? 언니?"
"언니...."
"또 저런다. 또!!!"
"죄송해요... 어... 머님...."
"우와!!!! 엄마~~~!!!"
준수는 날아갈것만같은 기분을 느끼며 뒤에서 정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정윤의 뺨에 계속해서 키스를 했다.
"엄마 최고!! 감사해요 엄마!!"
"하... 하지마... 니 며느리가 질투해..."
정윤은 준수를 보며 얄밉다는듯, 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준수를 바라봤고, 준수는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는 영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정윤은 다시 등을 돌리고 준수와 영희를 보며 말을 했다.
"빨리 날잡아라."
"언... 아니... 어머님... 그래도... 준수는 아직 어리고..."
"맞아 엄마... 결혼은 좀 천천히 해도..."
"얘는. 너는 결혼식때 니 부인이 이만큼 배불러서 결혼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빨리 안하면 언제하게? 조금이라도 젊을때 해야지. 그리고 애낳고 하는거 보기 안좋아. 으휴... 솔직히 뱃속에 애달고 결혼하는것도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데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최대한 빨리 하는걸로 알고있어."
"... 네...."
"그리고, 영희. 너 나좀보자."
"엄마... 나는...?"
"됐어. 여자끼리의 얘기야. 으이구... 걱정마. 니 마누라 안잡아먹을테니까."
정윤은 준수의 방으로 향할까하다가 방금전까지 준수의 방에서 그들이 정사를 벌였던 것을 떠올리고는 영희의 방으로 향했다. 영희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채 정윤의 뒤를 따랐다.
"문 닫고... 여기 앉아..."
"네..."
영희는 조심스럽게 정윤을 마주보고 앉았다. 자주봤던 정윤의 얼굴이였지만 이렇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건 또 새로운 기분이였다. 뜻밖에 정윤이 그들을 받아들인것같아 만감이 교차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정윤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 미안하다... 내가 아들을 돌봐주질 못해서... 이렇게 된거같아..."
"아니에요 어머님..."
"... 그래서... 정말... 준수랑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어...?"
"네... 사실... 저도 고민 많이 했어요... 준수는 제가 가지기에는 너무 과분한거같고... 수혁이도 신경쓰이고... 언니... 아니... 어머니도 신경쓰이고..."
"휴... 수혁이가 그러더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를 용서해달라고. 내가 수혁이한테 그말만 안들었어도..."
"수혁이가요...?"
"아들 잘둔줄 알아. 참나..."
영희는 뜻밖에 자신의 아들인 수혁의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한때는 준수에게 죽일듯 달려들던 수혁이 자신과 준수를 위해 정윤에게 미리 그런 말을 했다니... 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때문에 감동의 눈물이 흘러나올것 같았다. 정윤은 그런 영희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모르겠다... 난 솔직히 모르겠어. 처음에 들었을때는... 진짜 네가 죽도록 미웠는데... 차분히 생각해보니까 너도 마음고생이 심했을거같더라... 준수는 어려서 잘 모르고 그런다고 쳐도 너는 어쨋든 세상을 많이 살아봤고, 너가 준수랑 결혼한다는 의미가 어떤 뜻인지 잘 알테니... 너도 마음고생이 심했겠지..."
"죄송해요... 제 주제에... 게다가 결혼도 한번 했었고 아들도 있는 주제에..."
"이왕 이렇게 된거... 우리 옛날 생각은 하지 말자... 어쨋든 그 결혼은 네가 원하는 결혼도 아니였잖니... 몰라. 난 솔직히 모르겠어. 네가 준수랑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없을지... 그래도 그 길이 꼭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번엔 꼭 네가 원하는 행복을 찾아... 알았지...?"
"네.... 흑흑.... 어머님...."
"울지 말구... 이리와... 우리 며느리좀 안아보자..."
정윤은 눈물을 흘리는 영희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비교적 냉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정윤도 영희의 눈물을 보자 그녀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정윤은 영희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했다.
"행복해져야한다... 알겠지...?"
준수는 정윤과 영희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거실을 서성였다. 예전 수혁때처럼 문에 귀를 대고 그녀들의 대화를 엿들을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불안에 떨때쯤, 드디어 영희의 방문이 열리고 눈가가 붉어진 정윤이 나오고 그 뒤를 영희가 따라나왔다. 준수는 그녀들이 나오자마자 재빨리 영희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붉은 얼굴을 어루만졌고, 정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간... 아들 키워서 남준다더니... 너는 이 엄마는 신경 안써주니?"
"아... 엄마... 그게 아니고..."
"됐다. 치... 하여간... 두고봐. 내가 만만한거같니? 엄청 시집살이 시킬거니까 각오해."
"네... 어머님..."
"그리고 한동안 나 여기서 자주 자고갈거다. 그렇게 알아."
"어... 엄마... 아버지는..."
"몰라! 일주일에 한번만 가면 되지 뭐. 그리고 영희 홀몸도 아닌데 어떻게 혼자 집안일 시키려고 그래."
"집안일은 제가 하면 되는데..."
"그리고, 이 집에 너희 둘만 놔뒀다가는... 어휴... 아무튼 말릴생각 마라."
준수는 영희와 단 둘이 있지 못한다는것이 약간 아쉽기도 했지만, 영희를 향한 정윤의 배려에 좋기도 했다. 정윤마저 허락하니 이제는 진짜로 영희와의 관계가 정식으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그동안 했었던 고민들이 모두 씻겨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자야겠네. 준수... 어휴... 저 방은 내가 차마 오늘은 못들어가겠다. 영희야, 나는 아들이랑 거실에서 잘테니까, 너는 방에서 자. 알았지?"
"... 어머님... 불편하실텐데 제 방 침대에서 주무세요..."
"... 그럼 네가 거실에서 자게? 참나. 니들 속셈을 모를줄아니?"
영희는 정윤이 바닥에서 잔다는 것이 마음에 불편했지만 정윤이 우겨대는탓에 어쩔 수 없다는듯 그녀에게 거실을 양보했다. 정윤은 영희가 잠자리를 까는것마저 못하게하고, 그녀 스스로 이불을 깐 후 준수와 함께 누웠다. 습관처럼 그녀는 옷을 다 벗고 준수의 옆에 누워 잔뜩 상기된 표정의 준수를 보고 있었다.
"아들... 그렇게 좋아...?"
"네..."
"엄마랑 같이 자는게 좋은거야? 아니면 내가 영희를 받아들여줘서 좋은거야?"
"그... 그야... 둘다..."
"얼굴에 거짓말이라고 다 써져있네요... 하여간..."
정윤의 말에 준수는 역시 엄마는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긁적였다. 그러는사이 정윤은 준수를 끌어안았고, 준수는 자연스레 그녀의 젖가슴에 파묻혔다.
"어... 엄마... 숨막혀요..."
"잠깐만 이러고 있어... 나도 아들 좀 안아보자... 이제 앞으로는 이렇게 안으면 며느리가 질투해서 이러지도 못할텐데... 아니면... 싫으니?"
"그건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준수는 어릴때부터 이렇게 엄마의 젖가슴에 파묻힌적이 별로 없었던것 같았다. 정윤이 바빳기에... 그녀의 체취는 너무나도 그리운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런것을 정윤도 느끼고 있는지 더욱 강하게 그를 끌어안았다.
"아들, 오랫만에 엄마 젖 빨아볼래?"
"... 저 다 컸어요..."
"... 그래... 다 컸다 이거지...? 다 커서 그렇게 영희 가슴을 주무르던거야?"
"아... 그건..."
"치... 엄마 가슴은 싫다 이거야? 내가 영희보다 가슴도 더 큰데?"
"어... 엄마....!!"
준수를 놀리는듯한 정윤의 말에 준수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몰라 난처하는사이 정윤은 아들의 볼을 꼬집어주고는 그의 뺨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아들... 그거 알아? 예전에 너 어릴때는 엄마 젖빨고 싶어서 울고불고 난리쳤던거? 그래서 젖좀 물리면 잠잠해졌다가, 젖에서 떼네면 또 울고... 그땐 내가 얼마나 너때문에 힘들었는지..."
"그랬어요...?"
"응... 그랬던 아들이... 크면서 엄청 듬직해지더니... 이제는 어느새... 결혼한다고 하네... 엄마... 그래서 섭섭해... 흑흑..."
"엄마... 흑흑...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저 꼭 행복해질게요... 그리고 엄마한테 앞으로도 잘할게요..."
"흑흑... 약속... 지켜야되... 흑흑... 알았지...?"
"네..."
두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눈물이 진정된 후 정윤과 준수는 다시 평범한 모자로 돌아가서 그동안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잠이 오질 않아 거실쪽에 귀를 기울이던 영희도 그런 모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소리없이 눈물을 한방울 흘리고는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 누나! 아직 멀었어?"
"응... 잠깐만..."
"아... 그냥 대충 가도 된다니까..."
"어떻게그래. 어머님 처음 뵙는건데... 게다가 아버님두..."
"누... 누가 아버님이야!!"
수혁은 못마땅한 얼굴로 지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희가 준수와 결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영희가 그 준수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지연이 영희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러 간다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지연이 바득바득 우겨대는탓에 수혁은 지연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말싸움을 아무리 해도 수혁으로써는 지연을 이길 수 없었기에... 한참을 기다리자 수수해보이는 화장을 한 지연이 문밖으로 나왔다.
"어때? 이정도면 어머님도 마음에 들어하시겠지?"
"... 마음에 들고 안들고가 어디있어? 나도 엄마를 허락해줬는데 엄마가 누나를 마음에 안들어하면 반칙이지..."
"그건 어머님이랑 아버님 일이고, 우린 우리잖아."
"자... 자꾸 그녀석을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지연이 자꾸만 준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것에 수혁은 불만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수혁을 달래기라도 하는듯 지연은 수혁의 팔짱을 낀채로 말했다.
"너한테는 친구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버님이라구. 나중에 우리도 결혼해서 아버님이 나 못살게굴면 너가 책임질거야?"
"참나... 이젠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나오네. 알겠어 알겠어..."
"수혁아~ 이거 봐봐. 우와... 너무 이쁘다... 우리 이거 사가자. 응?"
지연은 유아용품을 파는 매장에 전시된 아기들이 신는 자그마한 신발을 보며 계속해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손바닥보다도 작아보이는 그 신발을 보며 지연은 자신이 임신한것도 아닌데 마치 자신이 곧 아이를 낳아 아이에게 신발을 신기는 상상을 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수혁의 입은 다물어진채 뭐에 홀린듯 계속해서 아기들의 신발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지연보다 먼저 지갑을 열었다.
"이거 얼마에요?"
"수혁아, 내가 살게."
"아니야. 우리 엄만데 내가 사야지."
수혁과 지연은 서로 자기가 사겠다고 우기다가 결국엔 각자 남자아이의 신발 한켤레, 여자아이의 신발 한켤레씩을 구입했다. 아직은 영희의 뱃속의 쌍둥이의 성별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혹시라도 둘 다 남자아이거나 여자아이일 경우를 대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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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99화까지 왔네요.
원래 어제쯤에 올리려고 했는데 좀 바쁘고 피곤하고 하다보니 오늘에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100화와 에필로그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한때는 준수랑 정윤도 관계를 맺고
모두가 해피한 전개로 가볼까도 생각했었던건 비밀....
정윤이 준수와 영희의 관계를 받아들이는걸 너무 쉽게 납득한거같은 느낌도 있는데
뭐...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냥 그러려니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목감기에 걸릴거같은 예감이 드는데 추천을 해주시면 건강해질수도...!?
"여보... 어쩌지...? 역시... 얘기해야겠지...?"
"... 응..."
준수와 영희는 잔뜩 긴장을 한채 오늘 그들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정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혁에게 말할때는 당당히 말했던 준수도 막상 자신의 엄마인 정윤에게 자신이 영희와 결혼을 할 것이란 사실을, 영희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왠지모르게 더 무서웠다. 어쨋거나 아직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보질 못한 수혁과 달리 정윤은 나이에 걸맞게 사회생활 경험도 많고, 결혼생활도 해봤기에 준수와 영희가 겪게될 현실적인 어려움 같은 것에 대해 더욱 더 많이 파고들 것이였다. 그런 정윤을 그들이 어떻게 설득해야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답이 보이질 않았다.
"여보... 우리 그냥... 도망갈까...?"
"... 그건 안되... 언니는 어떻게하고..."
"... 미안... 약한 소리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정윤이 정신적인 타격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정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교제, 그들의 결혼, 그들의 아이를 받아들이는것은 불가능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영희도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자 준수는 아차 싶었다. 그녀도 불안할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그녀는 지금 임신을 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그가 이렇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남자로써, 그리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써 실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수는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먼저 그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에 파묻힌 준수는 그녀의 체취에 복잡했던 마음에 편해졌다. 그녀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녀와 입술을 포개려고 한 순간...
-띵동~
벨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그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나갔다. 드디어 올것이 온 것이였다... 준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고, 영희는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인데도 불구하고 머리를 매만지고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었다. 긴장되는지 침을 한번 삼키고는 문을 열었다. 준수와 영희 앞에는 반가운 얼굴로 활짝 웃으며 들어오는 정윤이 있었다.
"아들~~~~ 우리 아들 완전 멋있어졌네~? 엄마 안보고싶었어~?"
"윽... 어... 엄마..."
정윤은 너무나도 오랫만에 준수의 얼굴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어쩔줄 몰랐다. 정윤은 준수를 한국에 두고 재혼한 남편과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항상 준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혹시라도 준수가 이상한 길로 빠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었고, 심지어는 준수에게 생겨서는 안될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때문에 악몽을 꾼 날도 하루이틀이 아니였다. 하지만 오랫만에 본 준수가 어엿한 청년이 된 것만같아 그동안 해왔던 걱정이 모두 사라진것 같았다.
"어디... 우리 준수... 얼굴좀 만져보자..."
정윤은 두 손으로 준수의 얼굴을 만지며 그의 피부, 체온을 느꼈다. 그리고 준수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각인받고 싶은 나머지 이제는 준수의 뺨을 자신의 뺨으로 부비부비거리고 있었다. 준수도 오랫만에 정윤을 봐서인지 그가 지고 있는 마음의 짐을 잠시 잊고 자신의 엄마인 정윤의 향기에 젖어있었다.
"... 언니... 일단 들어와... 밥... 안먹었지...?"
"어머어머, 영희도 있었구나. 미안미안... 아들을 너무 오랫만에 봐서... 호호... 잘지냈니?"
"응... 뭐..."
정윤과 준수가 서로에 대한 애정표현을 하는것을 지켜보고 있는 영희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물론 오랫만에 정윤의 얼굴을 봐서 반갑기도 했지만, 그녀와 준수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우와... 이거 준수야, 네가 한거야?"
"저 혼자 한건 아니에요. 영희..... 이모랑 같이 했어요."
"맛있네... 나중에 우리 아들이랑 결혼하는 여자는 정말 좋겠다. 이렇게 맛있는 밥을 매일같이 먹을거아니야. 호호..."
정윤의 말에 영희는 괜시리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준수가 자신을 위해 차려줬다는 밥을 먹는데 정신이 없는 정윤의 시선에 영희의 표정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정윤은 준수의 옆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고, 영희는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 정윤과 준수 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수와 영희의 눈빛이 마주치며 서로에게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떻게 말하지...?"
"언니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윤은 영희와 준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모른채 그저 영희와 준수의 손이 움직이지 않는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아들~ 왜 안먹어. 오랫만에 엄마랑 같이 먹는건데... 아들은 나랑 같이 밥먹는게 싫은거야?"
"아... 아니요... 먹을게요 엄마..."
"영희야, 너두. 좀 먹어."
"아... 알았어... 언니..."
그들의 머릿속은 아직도 복잡했지만 더이상 밥을 먹는것을 머뭇거린다면 정윤이 그들을 의심의 시선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숟가락을 들고 밥알을 입에 넘기기 시작했다. 정윤은 아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엄마로써의 벅찬 감동이 몰려오는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준수와 함께 밥을 먹은지 정말 오랫만인것 같았다. 준수가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정윤이 재혼을 하면서 서로 떨어져지낸 후로는 준수와 밥을 함께 먹은것이 다섯손가락에 뽑힐정도로 적었다. 간혹가다가 귀국을 했을때도 남편이 바빠서 준수의 얼굴도 못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적도 많았다. 정윤은 이제 남편도 쭉 한국에 있을 예정이니 앞으로는 준수를 더욱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모, 이것도 먹어요. 이것도... 이거랑 같이 먹어요."
"응... 알았어. 준수야... 너도 이거 먹어봐. 이건 내가 한거야."
"음... 역시 맛있네요 이모."
정윤은 준수와 영희가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에 질투를 느꼈다. 물론 준수가 한 반찬이라는 생각에 정윤의 젓가락을 쉬지 않고있었기에 준수가 챙겨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래산에 본 아들이 자신을 챙겨주지 않고 매일같이 얼굴을 본 영희를 챙겨준다는 것이 섭섭했기 때문이였다.
"얘! 준수야!! 엄마두..."
"아... 죄송해요 엄마..."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영희에게 반찬을 챙겨준 것이였는데 정윤이 화를내자 마치 영희와의 관계가 탄로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하며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영희도 마찬가지였다. 영희는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영희의 눈치를 살피며 반찬을 집어들었다.
"음~ 얘, 너 그나저나 예전보다 더 젊어진거같네. 무슨 비결이라도 있니?"
"그래...? 난 모르겠는데..."
밥을 다 먹고 준수의 방을 한번 둘러본 정윤은 영희와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집에 먹을 과일이 없어서 준수는 잠시 마트에 갔기에 집에는 영희와 정윤, 두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정윤은 반갑게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영희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녀는 일종의 의무감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수혁에게 그들의 진실을 밝히고 인정받은건 전적으로 준수의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윤에게는 자신이 그들의 일을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준수에게만 모든 짐을 떠넘기는건 원치 않는 일이였다. 준수에게 프로포즈를 받을때 그는 앞으로 있을 모든 역경과 고난을 함께 극복하자고 했었고,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그나저나... 재혼생활 어때...?"
"응? 호호... 그사람이 잘해줘서 좋아. 준수랑 떨어져서 지냈던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서 말인데, 그 사람이 이제는 준수 대학도 가고 자기도 서울에서 계속 살거니까 준수도 데리고 같이 살자고 하더라구."
"... 무... 뭐...?"
"응. 그것도 말하려고 했는데 아까 밥먹느라 말을 못했네. 호호... 아무튼 그동안 정말 네가 고생 많았어. 고맙게 생각해. 이제 준수는 나랑 같이 살거니까..."
영희는 앞이 컴컴해지는것 같았다. 이제와서 준수를 데려가겠다니, 물론... 정윤의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산다는것, 그것은 원래 준수가 있어야 할 곳에 돌아가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희는 정윤의 상식적으로도 너무 당연한 그 말이 자신에게서 준수를 빼앗아가려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이제 준수가 없이 살 수 없기에... 물론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 뱃속의 아이도... 영희는 각오를 다지는듯 침을 크게 삼키고는 영희에게 말했다.
"언니... 나... 사실... 결혼하려고..."
"어머, 뭐~? 정말? 진짜? 기지배!! 그런건 빨리 말해야지. 누구야~? 언제~? 기지배... 어쩐지 예뻐졌더라니... 그런거였구나?"
"응..."
"그 남자는 누군데? 몇살이야? 설마 나이먹은 아저씨는 아니겠지?"
"젊은 남자야... 아니... 후훗... 어린건가..."
"정말~? 능력도 좋다 얘. 그래서 누구야? 어떤 사람인데?"
영희의 말은 정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정윤 또한 재혼을 하고나서 느낀 행복때문에 영희도 이제는 짐승같은 전남편의 악몽에서 벗어나 새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외모에 맞지않게 너무나도 쑥맥인 영희였기에 그것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결혼이라니, 정윤의 계속되는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영희는 다시 한번 호흡을 고르고는 말을 했다.
"언니도 아는 사람이야..."
"정말~? 내가 아는 사람...? 동네 사람인가... 누가 있지...?"
정윤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아는사람과 영희가 아는사람의 공통분모 내에서 영희가 결혼을 할만한 사람을 추려내지 못했다. 정윤의 아리송한 표정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듯 영희는 자신이 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결혼할 사람은... 준수라는 남자야..."
"준수? 음... 글쎄... 보자... 준수가 누구였더라... 우리 어릴적 다니던 학교에는 준수라는 남자는 못들은거같은데..."
"... 나... 준수... 말하는거야..."
"뭐? 얘는... 싱겁긴... 그러지 말고 말해줘봐. 누구랑 결혼하는데?"
"진짜 준수랑 결혼한다구... 언니 아들 준수..."
"얘, 너 뭐 잘못먹었니? 안하던 농담을 하고 그래. 치. 재미없다 얘."
"나... 장난하는거 아니야 언니... 나 준수를 사랑해... 봐봐... 준수한테 받은 반지..."
"......."
정윤은 순간 말이 없어졌다. 안그래도 아까부터 자신의 옆에 앉은 준수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신경에 쓰여저 물어보려던 참이였었다. 여자아이라면 몰라도 남자아이가, 그것도 전에는 그런것에 관심도 없던 준수가 웬 반지를 끼고 있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반지가 지금 영희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와 같은 디자인이였던 것이다. 정윤은 말없이 영희의 손가락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녀는 믿지 못했지만,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농담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말이나 될법한 소리인가... 준수가 영희와 결혼을 한다니...
"언니... 미안해... 근데... 나 이제 준수 없이는 안될거같아..."
"... 커피가 식었네... 다시 타와야겠다..."
커피잔을 들고 있는 정윤의 손은 그녀의 목소리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영희의 말이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라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그녀가 들어왔을때의 준수와 영희의 어색한 표정, 그리고 밥을 먹는 내내 서로를 챙겨주던 다정한 모습, 그리고 서로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것들... 그냥 별거 아니라고 넘어갔던 것들이 퍼즐조각이 맞춰지는것 같았다.
"언니... 나랑 준수... 허락해줘... 나 준수한테 잘할테니...."
-짜악
-쨍그랑
정윤의 손바닥이 영희의 뺨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정윤의 손에 들려있던 커피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두동강났다. 정윤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된채로 영희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고, 곧 앙칼진 목소리로 영희를 다그쳤다.
"미쳤어? 어떻게!! 준수는 니 아들 친구야!! 니가 어떻게!! 내 아들을..."
"언니... 언니... 미안..."
그것과 동시였을것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윤의 앙칼진 목소리를 들은 준수는 상황이 어떤것지를 직감적으로 깨닫고 자신의 양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바닥에 떨구고는 곧바로 영희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아?!"
"야!! 준수!! 너 사실대로 말해. 이년이 헛소리하는데 사실이야?"
"엄마!! 뭐하는거야!? 영희야... 괜찮아...?"
"뭐어...? 영희야...? 너... 너..."
정윤은 준수가 영희를 부르는 말에 기가막힐지경이였다. 정윤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채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는것처럼 일그러져있었고, 영희가 준수의 앞으로 나서서 뭐라고 말하려고 하기에 또다시 영희의 뺨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준수는 내려치려는 정윤의 손을 막았다.
"엄마! 영희... 홀몸 아니야!! 때리지마."
"...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무슨 소리냐구!!"
"미안... 언니... 내 뱃속에... 애들있어..."
"... 애... 들...?"
"... 응 엄마... 나랑... 영희 사이의 아이... 쌍둥이야..."
정윤은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녀가 꿈꿔왔던 자신의 아들과의 삶... 아들이 대학을 다니는 모습... 나중에 예쁜 며느리를 데려와서 인사시키는 장면... 아들의 결혼식... 그리고 아들의 아이... 그 모든 것이 흐트러진 것이였다.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머리야..."
"엄마...! 엄마...!!!"
머리에 손을 올리고 뭐라뭐라 말을 중얼거리던 정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기절해버렸다. 그렇기에 준수와 영희가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가 기절하신거야?"
"... 네... 죄송해요... 아...버지..."
"녀석... 무리하게 아버지라고 부를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이왕이면 아빠라는 말을 더 듣고싶구나... 풋... 농담이고... 그나저나 그런 말을 들으니 니 엄마가 저리될만도 하지..."
정윤의 남편인 현우는 준수와 정윤이 누워있는 옆방에서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윤이 쓰러진 후 병원에서 단순히 쇼크로 인한 기절이니 건강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현우는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키는것보다는 집에 데려오는것이 낫다고 생각을 했었고, 정윤이 쓰러진 날부터 계속해서 준수와 영희가 그녀의 곁을 지키다가 현우가 준수를 따로 데리고 나와서 그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였다.
준수는 찹찹했다. 자신들때문에 쓰러진 정윤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리고 친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쨋든 새아빠인 현우에게 정윤이 쓰러진 이유인 자신과 영희의 관계에 대해 모조리 털어놓은 이후였기 때문이였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달리 현우의 표정을 밝았다. 예상했던 반응과 달라서일까, 도리어 준수는 더욱 조심스럽게 현우를 대하고 있었다.
"... 아버지... 아니... 아빠...도... 반대하시겠죠...?"
"응? 반대?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 그야..."
"하하하... 뭐 그야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하겠지.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엄마가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어떻게 생각했어? 반대했니?"
"아... 아니요..."
"왜 반대하지 않았니? 어떻게 생각하면 엄마를 나한테 뺏기는 기분이 들었을거 아니야."
"그야... 그렇지만... 엄마가 저랑 언제까지 같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엄마도 엄마의 행복을 찾는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나도 너랑 같은 심정이란다."
"하... 하지만... 저는..."
"녀석... 나도 마찬가지다. 애시당초에 네가 장난식으로, 아니면 젊을적의 호기로 엄마한테 네가 저 여성분... 아니지, 이제는 며느리겠구나. 하하... 아무튼 네가 장난이였다면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겠지. 안그러냐?"
"... 네..."
"그렇지? 나도 그런 심정이였다. 네 엄마를 만났을때..."
현수의 자상함이 넘치는 표정에 준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윤이 쓰러진 이후로 그는 계속해서 마음앓이를 해왔는데 현수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것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준수를 보며 현수는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해. 그중에는 동갑끼리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남자가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고, 여자가 나이 많은 경우도 있지. 혹은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소위 말해서 신데렐라처럼 부자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가난한 여자들도 있고, 반대로 부자 여자 만나서 떵떵거리면서 사는 남자들도 있지.
하나같이 공통점이 뭔지 아니?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데에는 결혼하기 전의 그들의 조건같은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거야. 나이, 지위, 학벌... 이런거는 남들이 보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거긴 하지만서도 실제로 같이 사는 사람들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거란다. 비슷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거다?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그런거같지는 않아. 오히려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끼리 결혼했는데 엄청 잘 사는 사람들도 있어. 결국 결혼생활에 중요한거는 진심이란 거겠지. 나한테 절대로 후회 안할거라고 자신할 수 있니?"
"네...."
"그럼 됐다."
"정말 아버지는...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 네가 좋다는데 뭐 어쩌겠니. 하하... 나는 그저 너희들이 잘살길 바라는거밖에 없단다. 뭐... 나랑 비슷한 나이의 여자한테 아버님 소리 듣는것도 색다른 기분이 들거같기도 하고... 하하하..."
"감사해요... 감사해요 아버지..."
"짜식... 아빠라고 불러주면 더 좋을거라니까..."
"네... 감사해요... 아빠..."
"그리고 엄마가 저러는거, 네가 이해해야되. 엄마가 화내는게 그만큼 엄마가 널 소중하게 생각한다는거니까. 내가 무슨말 하는거 알지?"
"네... 알아요..."
"짜식... 엄마는 내가 알아서 설득할테니까 걱정하지 마렴. 알겠지? 임신까지 했다며. 그 시기에 너무 걱정하고 그러면 부인한테 안좋아. 알았지?"
생각보다 쿨하게 받아들이는 현수덕분에 준수는 한시름 걱정을 놓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준수와 현수는 정윤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자 영희는 현수에게 소리없이 인사를 했고, 준수는 그런 영희의 옆에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수는 소리없이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하지만... 아버님..."
"홀몸도 아닌데 그렇게 몇일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하면 아이한테도 안좋잖아요. 이이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준수야 뭐해. 네 부인 모시고 들어가서 일단 쉬거라. 엄마 괜찮아지면 내가 연락해줄게."
영희는 한사코 정윤의 곁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아이얘기를 꺼내는 현수를 설득시킬 수 없었고,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정윤을 바라보고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현수는 웃으면서 정윤을 보고는 잠든 그녀의 곁에 다가가서 그녀에게 속삭였다.
"후후... 일어나있는거 다 아니까 그만 눈뜨시죠."
"... 정말... 나 없는 사이에 누구멋대로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그러는거야?"
"멋대로 장가보내는게 아니랍니다~ 그럼 어떻게해. 저렇게 둘이 못죽어서 못살겠다고 하는데."
"여보! 준수 이제 20살이야 20살. 반면에 영희... 저년은... 어휴. 그런데 장가를 보내겠다고?"
"왜? 그게 뭐 어때서. 부인이 나이 더 많을수도 있지 왜.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뭐 대수라고."
"당신... 정말... 자기 아들이라고 너무 막생각하는거 아니야?"
정윤은 현수의 말에 화가나서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이 실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준수가 현수의 친아들이 아닌것은 맞지만, 그녀가 미국생활을 하면서 늘 준수생각을 했던것처럼 그 또한 그녀가 준수를 걱정할때마다 마치 준수가 친아들인마냥 같이 걱정을 해주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현수는 정윤의 말에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고 정윤의 표정이 풀어진것을 본 후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 내가 당신이랑 결혼한다고 했을때 제일 걱정했던게 뭔줄 알아?"
"......"
"우리 부모님... 당신도 봐서 알겠지만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야. 그래서 예전부터 내 결혼상대로 생각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더 어린 여자들이였지. 물론 지금도 남자가 연상의 여자랑 만나는걸 상당히 안좋게 보시는 편이구. 그거야. 내가 제일 걱정했던건.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처음 봤는데, 우리 부모님이 대놓고 당신을 싫어하면 당신이 어떤 기분일까... 그걸 걱정했지."
"......"
"그래서 내가 당신이랑 결혼한다고 했을때, 어떤말까지 들었냐면 나한테 집을 나가라는 말까지 했었어. 하하... 그래도 끝까지 설득하고 설득했지.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남자대 남자로 무릎을 꿇고 부탁을 했어. 나를 얼마든지 욕해도 좋으니까 제발 당신을 데리고 왔을때 당신한테 싫은 표정 짓지 말아달라고...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당신이랑 결혼하는거지, 당신을 고생시키고 싶어서 결혼하는건 아니라고. 그리고 당신이 행복해져야 내가 행복해진다고... 그거 기억나? 당신이 우리 부모님 처음 뵙던날, 처음 봤을때 우리 부모님이 억지웃음짓던거... 뭐... 그 이후로는 당신이 그래도 마음에 들었는지 진심으로 대해주셨지만..."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아직도 모르겠어? 왜 당신 며느리가 굳이 당신한테 직접 말을 했는지. 당신 속이고, 나도 속이고 그냥 남들몰래 둘이 지금까지 해왔던것처럼 결혼생활 할수도 있는데 굳이 말한 이유를 모르겠냐고. 당신 아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잖아. 남들에게 축복받는 결혼을 하고 싶어서잖아. 만약에 당신이 나랑 결혼할때 우리 부모님이 결사반대한다고 하면서 당신을 쫓아내고 했으면 당신이 좋았겠어?"
현수의 말에 정윤은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에는 틀린것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정윤의 표정이 확연이 풀어진것을 보고 현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당신이 나랑 결혼한다고 했을때, 준수가 반대한다고 한마디라도 했어? 아니잖아. 당신도 우리 며느리가 준수보다 나이 많다고 색안경끼고 보지 말고 좀 너그럽게 봐주면 안되? 며느리 그정도면 예쁘지, 착한건 당신이 가장 잘 알테고, 요즘같은때에 그런 며느리 찾기 쉽지 않아."
"누... 누가 며느리야...! 난... 아직 인정 안했어..."
"후후... 그 말은 곧 인정한다는 뜻이지?"
"참나... 몰라! 꼴도보기싫어! 나가! 흥..."
"하하하... 네네. 알겠습니다. 우리 마누라 괜찮아진거 보니까 이제는 나가도 될거같네요. 네네. 분부대로 나가서 밀린 일좀 보고 오겠습니다. 푹 쉬고, 한번 잘 생각해봐. 알지? 게다가 손주들도 있다며. 이거... 할아버지 될 생각하니까 좀 설레는데?"
현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정윤에게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는 옷을 차려입고 정윤의 곁을 떠났다. 정윤은 나가는 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불평을 하고는 곧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네네... 아 정말요? 그럼 괜찮은거죠? ... 네... 감사합니다... 아버... 아니, 아빠... 헤헤... 네... 네... 또 연락 드릴게요."
현수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나서야 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는 영희가 샤워를 마친채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준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뭐래요? 아버님 전화죠? 정윤언니... 괜찮대요?"
"응... 3일전에 일어나셨는데 그동안 바빠서 깜빡하고 전화 못하셨었대. 어차피 건강에는 이상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네."
"다행이다..."
화장대를 보며 긴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완전히 말린 영희는 준수가 누워있는 옆자리로 향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 영희는 준수의 품에 안겼고, 준수 또한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은채 다른 한 손으로는 영희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여보... 미안해요... 나때문에... 흑흑... 정윤언니랑 당신 사이가..."
"그런말 하지마..."
"이럴줄 알았으면 임신하는게 아니였어요... 흑흑... 내가 당신을 포기했어야..."
"영희야!! 정신차려! 그게 무슨 소리야! 나중에 애들이 들으면 얼마나 섭섭해하겠어! 당장 그 말 취소해!!"
준수는 영희의 두 팔을 잡았다. 그런 태도에 영희는 자신이 해서는 안될말을 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올것 같았고, 그런 영희의 표정을 보며 준수는 가볍게 그녀와 입술을 맞췄다. 준수의 입술이 떨어져나가자 영희는 준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여보... 우리... 도망갈까...? 아무도 없는 곳으로... 우리 둘만 있는 곳으로... 바다 보이는 그런 곳에서... 우리들만의 집을 짓고... 다른 사람들 신경쓰지 않고 나랑... 당신이랑... 우리 애들이랑... 그렇게 살까...?"
"... 당신... 수혁이 없이 살 수 있겠어...?"
"나... 당신이랑 이렇게 있으면... 다 잊을 수 있을거같아..."
"영희야..."
"사랑해... 준수야... 나 잊고 싶어... 아무것도 생각 못하게 해줘..."
우수에 젖은 영희의 눈망울을 보며 준수는 그녀와 진한 키스를 나눴다.
"하... 어쩌다가..."
정윤은 홀로 집을 나왔다. 너무 오래 집에만 누워있어서일까, 바람을 쐬고 싶었다. 현수가 집에 들어와도 현수의 얼굴이 보기 싫다며 억지로 그와도 각방을 쓰던 정윤은 오늘은 현수가 일이 있어서 들어오지 못할것같다는 말에 오랫만에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막상 밖으로 나와봤자 갈만한 곳도 없었다. 그렇게 기약없이 떠돌다보니 어느새 정윤은 영희의 집 근처에 와있었다.
"내가 여길 왜... 참나..."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향했다는 생각에 걸음을 다시 돌릴까도 생각했지만, 이대로 준수와 영희와의 관계를 모른척하고 넘어갈수도 없는 일이였다. 문득 정윤은 지난날 수혁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는 수혁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됐었는데, 이제는 그의 말이 뭘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그럼 수혁이도 안다는거잖아. 걔는... 지 엄마가 자기 친구랑 결혼을 하겠다는데... 하긴... 그런말을 한거면... 받아들인거겠지..."
수혁의 생각을 하자 정윤은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어떤 식으로든 수혁은 결정을 내린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수혁이 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괜시리 수혁에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어쨋든 이제 남은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고... 정윤은 혼자만의 다짐을 하고는 영희의 집으로 향했다. 수혁에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들어서 정윤은 굳이 벨을 누르지 않고 집 안으로 향했다.
집 안으로 향한 정윤은 깜짝놀랄 수 밖에 없었다. 불꺼진 집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남자와 여자의 신음소리... 설마, 이것들이, 라는 생각을 하며 그 소리가 들리고 있는 준수의 방으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그 신음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정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준수의 방문을 열었다.
"야!! 너희 뭐하는짓이야!!!!"
"어... 엄마..."
"어... 언니..."
"빨리 옷 안입어!!!"
뒷치기자세를 하고 있어서 정윤이 문을 연것도 몰랐던 준수와 영희는 정윤의 고함에 화들짝 놀라 이불로 그들의 알몸을 가리고는 서로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정윤은 화가 난듯 문을 쾅소리가 나도록 닫았고, 준수와 영희는 부랴부랴 자신들의 성기에 묻은 애액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대충 옷을 걸쳐입고는 거실로 향했다. 그들의 시선에 팔짱을 낀채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윤이 들어왔고, 준수와 영희는 살금살금 그녀가 앉아있는 쇼파의 옆에 가서 앉았다.
"으이구!! 으이구!! 짐승새끼!!! 짐승같은 놈아!! 니가 그러니까 애가 안생기고 배기겠냐!! 으이구!!!!"
정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준수의 팔과 등을 때렸다. 준수는 자신의 엄마에게 할 변명이 딱히 없어 정윤이 때리는대로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영희는 정윤이 준수를 때리는 심정을 이해할것 같았고, 그렇게 때릴 수 밖에 없는 정윤이 안쓰럽기도 했다.
"언니... 미안... 준수가 그런거 아니야. 내가... 내가... 하자고..."
"뭐어~? 언니~~??? 참나."
영희의 말에 정윤은 준수를 때리는것을 그만두고 등을 보이고 돌아앉았다. 모르긴몰라도 정윤은 단단히 화가 난것 같아보였고, 준수와 영희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윤의 입밖으로 나온 말은 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였다.
"참나. 요즘 애들은 시애미한테 언니라고 부른다니?"
정윤의 뜻밖의 말에 준수와 영희는 한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동안 멍해져있던 그들은 곧 그녀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를 깨달았다.
"어... 엄마... 방금 한 말..."
"왜? 너는 어떻게 며느리를 데려와도 저런애를 데려오니? 참나... 뱃속에 애도 있는 주제에 그... 그짓을 하고 있질 않나, 뭐? 언니?"
"언니...."
"또 저런다. 또!!!"
"죄송해요... 어... 머님...."
"우와!!!! 엄마~~~!!!"
준수는 날아갈것만같은 기분을 느끼며 뒤에서 정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정윤의 뺨에 계속해서 키스를 했다.
"엄마 최고!! 감사해요 엄마!!"
"하... 하지마... 니 며느리가 질투해..."
정윤은 준수를 보며 얄밉다는듯, 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준수를 바라봤고, 준수는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는 영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정윤은 다시 등을 돌리고 준수와 영희를 보며 말을 했다.
"빨리 날잡아라."
"언... 아니... 어머님... 그래도... 준수는 아직 어리고..."
"맞아 엄마... 결혼은 좀 천천히 해도..."
"얘는. 너는 결혼식때 니 부인이 이만큼 배불러서 결혼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빨리 안하면 언제하게? 조금이라도 젊을때 해야지. 그리고 애낳고 하는거 보기 안좋아. 으휴... 솔직히 뱃속에 애달고 결혼하는것도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데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최대한 빨리 하는걸로 알고있어."
"... 네...."
"그리고, 영희. 너 나좀보자."
"엄마... 나는...?"
"됐어. 여자끼리의 얘기야. 으이구... 걱정마. 니 마누라 안잡아먹을테니까."
정윤은 준수의 방으로 향할까하다가 방금전까지 준수의 방에서 그들이 정사를 벌였던 것을 떠올리고는 영희의 방으로 향했다. 영희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채 정윤의 뒤를 따랐다.
"문 닫고... 여기 앉아..."
"네..."
영희는 조심스럽게 정윤을 마주보고 앉았다. 자주봤던 정윤의 얼굴이였지만 이렇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건 또 새로운 기분이였다. 뜻밖에 정윤이 그들을 받아들인것같아 만감이 교차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정윤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 미안하다... 내가 아들을 돌봐주질 못해서... 이렇게 된거같아..."
"아니에요 어머님..."
"... 그래서... 정말... 준수랑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어...?"
"네... 사실... 저도 고민 많이 했어요... 준수는 제가 가지기에는 너무 과분한거같고... 수혁이도 신경쓰이고... 언니... 아니... 어머니도 신경쓰이고..."
"휴... 수혁이가 그러더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를 용서해달라고. 내가 수혁이한테 그말만 안들었어도..."
"수혁이가요...?"
"아들 잘둔줄 알아. 참나..."
영희는 뜻밖에 자신의 아들인 수혁의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한때는 준수에게 죽일듯 달려들던 수혁이 자신과 준수를 위해 정윤에게 미리 그런 말을 했다니... 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때문에 감동의 눈물이 흘러나올것 같았다. 정윤은 그런 영희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모르겠다... 난 솔직히 모르겠어. 처음에 들었을때는... 진짜 네가 죽도록 미웠는데... 차분히 생각해보니까 너도 마음고생이 심했을거같더라... 준수는 어려서 잘 모르고 그런다고 쳐도 너는 어쨋든 세상을 많이 살아봤고, 너가 준수랑 결혼한다는 의미가 어떤 뜻인지 잘 알테니... 너도 마음고생이 심했겠지..."
"죄송해요... 제 주제에... 게다가 결혼도 한번 했었고 아들도 있는 주제에..."
"이왕 이렇게 된거... 우리 옛날 생각은 하지 말자... 어쨋든 그 결혼은 네가 원하는 결혼도 아니였잖니... 몰라. 난 솔직히 모르겠어. 네가 준수랑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없을지... 그래도 그 길이 꼭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번엔 꼭 네가 원하는 행복을 찾아... 알았지...?"
"네.... 흑흑.... 어머님...."
"울지 말구... 이리와... 우리 며느리좀 안아보자..."
정윤은 눈물을 흘리는 영희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비교적 냉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정윤도 영희의 눈물을 보자 그녀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정윤은 영희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했다.
"행복해져야한다... 알겠지...?"
준수는 정윤과 영희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거실을 서성였다. 예전 수혁때처럼 문에 귀를 대고 그녀들의 대화를 엿들을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불안에 떨때쯤, 드디어 영희의 방문이 열리고 눈가가 붉어진 정윤이 나오고 그 뒤를 영희가 따라나왔다. 준수는 그녀들이 나오자마자 재빨리 영희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붉은 얼굴을 어루만졌고, 정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간... 아들 키워서 남준다더니... 너는 이 엄마는 신경 안써주니?"
"아... 엄마... 그게 아니고..."
"됐다. 치... 하여간... 두고봐. 내가 만만한거같니? 엄청 시집살이 시킬거니까 각오해."
"네... 어머님..."
"그리고 한동안 나 여기서 자주 자고갈거다. 그렇게 알아."
"어... 엄마... 아버지는..."
"몰라! 일주일에 한번만 가면 되지 뭐. 그리고 영희 홀몸도 아닌데 어떻게 혼자 집안일 시키려고 그래."
"집안일은 제가 하면 되는데..."
"그리고, 이 집에 너희 둘만 놔뒀다가는... 어휴... 아무튼 말릴생각 마라."
준수는 영희와 단 둘이 있지 못한다는것이 약간 아쉽기도 했지만, 영희를 향한 정윤의 배려에 좋기도 했다. 정윤마저 허락하니 이제는 진짜로 영희와의 관계가 정식으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그동안 했었던 고민들이 모두 씻겨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자야겠네. 준수... 어휴... 저 방은 내가 차마 오늘은 못들어가겠다. 영희야, 나는 아들이랑 거실에서 잘테니까, 너는 방에서 자. 알았지?"
"... 어머님... 불편하실텐데 제 방 침대에서 주무세요..."
"... 그럼 네가 거실에서 자게? 참나. 니들 속셈을 모를줄아니?"
영희는 정윤이 바닥에서 잔다는 것이 마음에 불편했지만 정윤이 우겨대는탓에 어쩔 수 없다는듯 그녀에게 거실을 양보했다. 정윤은 영희가 잠자리를 까는것마저 못하게하고, 그녀 스스로 이불을 깐 후 준수와 함께 누웠다. 습관처럼 그녀는 옷을 다 벗고 준수의 옆에 누워 잔뜩 상기된 표정의 준수를 보고 있었다.
"아들... 그렇게 좋아...?"
"네..."
"엄마랑 같이 자는게 좋은거야? 아니면 내가 영희를 받아들여줘서 좋은거야?"
"그... 그야... 둘다..."
"얼굴에 거짓말이라고 다 써져있네요... 하여간..."
정윤의 말에 준수는 역시 엄마는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긁적였다. 그러는사이 정윤은 준수를 끌어안았고, 준수는 자연스레 그녀의 젖가슴에 파묻혔다.
"어... 엄마... 숨막혀요..."
"잠깐만 이러고 있어... 나도 아들 좀 안아보자... 이제 앞으로는 이렇게 안으면 며느리가 질투해서 이러지도 못할텐데... 아니면... 싫으니?"
"그건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준수는 어릴때부터 이렇게 엄마의 젖가슴에 파묻힌적이 별로 없었던것 같았다. 정윤이 바빳기에... 그녀의 체취는 너무나도 그리운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런것을 정윤도 느끼고 있는지 더욱 강하게 그를 끌어안았다.
"아들, 오랫만에 엄마 젖 빨아볼래?"
"... 저 다 컸어요..."
"... 그래... 다 컸다 이거지...? 다 커서 그렇게 영희 가슴을 주무르던거야?"
"아... 그건..."
"치... 엄마 가슴은 싫다 이거야? 내가 영희보다 가슴도 더 큰데?"
"어... 엄마....!!"
준수를 놀리는듯한 정윤의 말에 준수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몰라 난처하는사이 정윤은 아들의 볼을 꼬집어주고는 그의 뺨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아들... 그거 알아? 예전에 너 어릴때는 엄마 젖빨고 싶어서 울고불고 난리쳤던거? 그래서 젖좀 물리면 잠잠해졌다가, 젖에서 떼네면 또 울고... 그땐 내가 얼마나 너때문에 힘들었는지..."
"그랬어요...?"
"응... 그랬던 아들이... 크면서 엄청 듬직해지더니... 이제는 어느새... 결혼한다고 하네... 엄마... 그래서 섭섭해... 흑흑..."
"엄마... 흑흑...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저 꼭 행복해질게요... 그리고 엄마한테 앞으로도 잘할게요..."
"흑흑... 약속... 지켜야되... 흑흑... 알았지...?"
"네..."
두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눈물이 진정된 후 정윤과 준수는 다시 평범한 모자로 돌아가서 그동안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잠이 오질 않아 거실쪽에 귀를 기울이던 영희도 그런 모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소리없이 눈물을 한방울 흘리고는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 누나! 아직 멀었어?"
"응... 잠깐만..."
"아... 그냥 대충 가도 된다니까..."
"어떻게그래. 어머님 처음 뵙는건데... 게다가 아버님두..."
"누... 누가 아버님이야!!"
수혁은 못마땅한 얼굴로 지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희가 준수와 결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영희가 그 준수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지연이 영희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러 간다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지연이 바득바득 우겨대는탓에 수혁은 지연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말싸움을 아무리 해도 수혁으로써는 지연을 이길 수 없었기에... 한참을 기다리자 수수해보이는 화장을 한 지연이 문밖으로 나왔다.
"어때? 이정도면 어머님도 마음에 들어하시겠지?"
"... 마음에 들고 안들고가 어디있어? 나도 엄마를 허락해줬는데 엄마가 누나를 마음에 안들어하면 반칙이지..."
"그건 어머님이랑 아버님 일이고, 우린 우리잖아."
"자... 자꾸 그녀석을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지연이 자꾸만 준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것에 수혁은 불만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수혁을 달래기라도 하는듯 지연은 수혁의 팔짱을 낀채로 말했다.
"너한테는 친구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버님이라구. 나중에 우리도 결혼해서 아버님이 나 못살게굴면 너가 책임질거야?"
"참나... 이젠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나오네. 알겠어 알겠어..."
"수혁아~ 이거 봐봐. 우와... 너무 이쁘다... 우리 이거 사가자. 응?"
지연은 유아용품을 파는 매장에 전시된 아기들이 신는 자그마한 신발을 보며 계속해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손바닥보다도 작아보이는 그 신발을 보며 지연은 자신이 임신한것도 아닌데 마치 자신이 곧 아이를 낳아 아이에게 신발을 신기는 상상을 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수혁의 입은 다물어진채 뭐에 홀린듯 계속해서 아기들의 신발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지연보다 먼저 지갑을 열었다.
"이거 얼마에요?"
"수혁아, 내가 살게."
"아니야. 우리 엄만데 내가 사야지."
수혁과 지연은 서로 자기가 사겠다고 우기다가 결국엔 각자 남자아이의 신발 한켤레, 여자아이의 신발 한켤레씩을 구입했다. 아직은 영희의 뱃속의 쌍둥이의 성별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혹시라도 둘 다 남자아이거나 여자아이일 경우를 대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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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99화까지 왔네요.
원래 어제쯤에 올리려고 했는데 좀 바쁘고 피곤하고 하다보니 오늘에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100화와 에필로그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한때는 준수랑 정윤도 관계를 맺고
모두가 해피한 전개로 가볼까도 생각했었던건 비밀....
정윤이 준수와 영희의 관계를 받아들이는걸 너무 쉽게 납득한거같은 느낌도 있는데
뭐...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냥 그러려니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목감기에 걸릴거같은 예감이 드는데 추천을 해주시면 건강해질수도...!?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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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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