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주연이와 헤어지기
다음 날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전화기에서 울리는 컬러링 때문이었다. 처음에 나는 알람이려니 했다. 그런데 오미현이 전화를 한 것이다.
"오빠. 내 전화 문자 다 씹고. 왜 그러는데?"
"미안해. 안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나야 그렇다고 쳐도, 아영이는 어쩔거야?"
"뒤처리가 쫌 있거든요. 일이 커지기도 하고."
"지금 어딘데? 집이야?"
"아니. 왜 그러니? 또 상훈이가 집에 없니?"
"언제는 주말에 집에 붙어있나? 언제쯤 올래?"
"오늘은 어렵겠고, 내일 저녁에나 시간이 될까 모르겠네."
"하여간에. .. 그런데 오빠 각오해야 할거야."
"그래. 각오 단단히 할게."
"무슨 일인지 알면서나 그래야죠.
아영이 동생 해리 있잖아?"
"어. 해리가 왜?"
"오빠가 하다 못해 샤넬 향수 한 병 정도는 들고 왔을거라면서 엄청 기다려."
"저런. 그럼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향수를 기다린다는 말 아냐?"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내일 보자. 약속 꼭 지켜."
"전화할게요."
전화기에는 강대리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있다. 나를 찾는다면서 왜 연락이 안되느냐는 내용이다. 시간이 벌써 11시가 되고 있다. 답장을 보낼까 하다가 포기했다. 내가 괜히 강대리에게 무슨 죄라도 지은 듯한 느낌이어서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 자리에 있어야 할 주연이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을 대하기가 어색해서 일찍 가버린 것일까? 일어나서 욕실로 가는데, 물소리가 들린다. 주연이가 샤워중인 것 같다. 방 안을 둘러보니까 소파에 주연이의 가방이 아직 그대로 있다. 옷장 속에는 내 옷과 주연이의 옷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다.
잠시 고민을 했다. 주연이가 나오면 얼마나 나나 주연이가 어색해 할까? 내가 먼저 조용히 나갈까? 그래도 같이 하루 밤을 보냈는데, 밥이라도 같이 먹고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다시 침대로 가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 겪는, 정말 어색하고 부끄러운 아침이다. 하지 않았어야 했을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든다. 어떤 여자가 자기 스스로 업소에 나가서 일을 할까? 지금 한참 공부에 열을 올릴 나이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다면 경제적으로 얼마나 쪼들려 할까?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약자일지도 모르는 주연이에게 내가 술을 마시고 술의 힘을 빌려서 갑질을 한 셈이다.
갑자기 엠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엠마는 아직 의사라는 직업에 더 미치고 싶다면서 자신을 가정에 묶어둘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서 결혼 이야기를 꺼낸 것도 수상하다. 엠마의 아버지와 엄마가 무슨 입김을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결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있는가? 오미현이 유아영과 소개팅을 주선했을 때 그 자리에 왜 나갔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오미현의 고집스러운 우정 때문에? 결혼은 나중 문제고, 일단 만나서 사귀라면서, 오미현은 말을 그럴 듯 하게 했다. 내가 유아영과 사귈 생각은 하고 있는가? 딱히 지금 내가 누구랑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물에 떠가는 나뭇잎처럼, 정해지지 않은 이 삶에 이젠 종지부를 찍어야 하나? 나도 한 여자와 결혼이라는 일부일처제의 관습 속으로 묻혀 들어가야 하나?
그러고 보니까 회사 일 만큼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나는 아직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일만 달라졌을 뿐, 사는 것은 똑같다. 학창 시절에는 먹고 공부했지만, 이제는 먹고 일하는 것이 내가 사는 전부이다. 즐길 줄도 모르고, 즐기는 것도 별로 없고, 지난 밤에는 즐긴다는 것이 결국 퇴폐적인 것으로 끝나버렸다.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라는 것이 살아지는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이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내 인생이라는 수레바퀴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냥 굴러가는 것 같다. 이러다가는 내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에 빠질 수도 있겠다. 지난 밤, 주연이와의 잠자리가 나에게는 충격으로 작용한 것 같고, 오늘은 벼라별 잡생각이 다 든다.
"오빠. 아직 자요?"
충격녀. 주연이가 벗은 몸으로 내 앞에 서있다. 그녀는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까? 나는 엄청 부끄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일찍 일어났네?"
나는 도망치다시피 욕실로 갔다. 나도 서둘러 샤워를 하고 나왔다. 주연이는 벌써 옷을 다 입고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면서 옷을 입었다. 주연이는 조용히 나를 보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남자니까, 또 연상이니까,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혹시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배고프지?"
"아뇨. 커피 한잔 마셨으면 좋겠어요."
"믹스 있던데. 정수기 물로 타 마시지 그랬어?"
"그것 말고. 아메리카노."
"네 말 들으니까 나도 땡기네. 같이 나갈래?"
"정말요?"
"일단 회사에 가서 차를 갖고 와야 하는데. .."
우리는 호텔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회사로 출발했다. 주연이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우리 둘이 마치 싸우고 난 것처럼, 주연이가 나를 외면하는 것 같다. 우리는 너무 어색하다.
우리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부적절한 장소에서 처음 만났다. 또 그 곳보다 더 부적절한 곳에 와서 하루 밤을 같이 보냈다. 그런데 이 밤에 있었던 일은 우리 둘 다 비밀에 묻어야 한다. 이제 밝은 낮이니까, 우리는 원래 우리가 있었던 그 곳으로 돌아가면 된다. 다시 우리는 아무 일 던 것처럼 원래의 모르는 사이로 되돌아가면 간단하다. 지난 밤은 우리 둘에게 일탈로 처리하고, 기억 속에서 지우면 된다. 이것이 고등 동물이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할 일이다. 더러운 년놈들.
그렇지만 우리는 5000원자리 커피 한 잔을 같이 마시겠다면서 같이 잡고 있는 줄을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주연이의 손을 잡았다. 손이 따뜻하다. 그제서야 주연이가 고개를 돌려서 나를 쳐다본다.
"오빠 회사 멀어요?"
주연이는 이 말을 하고 내게 기대온다. 마치 내 대답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두 눈을 사르르 감는다. 주연이의 얼굴에서 잘 익은 빨간 자두에서 나는 냄새가 향긋하게 난다. 나는 그녀의 허리로 팔을 둘렀다. 주연이가 내 귀에 입을 가까이 하고 소근거린다.
"오빠. 엄청 피곤하지?"
"피곤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헛다리를 짚은 것 같다. 주연이는 지난 밤의 일로 피곤하냐는 말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유럽에서 어제 돌아왔다는 일 때문인 것으로 알아 들었다. 내가 이 모양이니까 연애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한다.
우리는 회사 앞에서 내려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지하 주차장에 있어야 할 차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까 김효원과 강대리에게 차와 짐을 내 오피스텔 앞에 갖다 놓으라고 심부름을 시켰던 기억이 났다. 나는 주연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하고 사과 헸다.
"정말 미안해. 내가 치매인가봐."
"오빠. 기왕이면 내 매력에 푹 빠져서 헷갈렸다고 생각하세요. 하하."
그런데 강대리의 차가 눈에 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주연이를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 왠지 나는 도망치고 싶어서 엄청 서둘렀다. 우리는 도로에 서서 택시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타고, 기사에게 내 오피스텔로 가자고 했다. 주연이가 이번에는 나를 쳐다보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한다.
"오빠. 이번에는 어디 가는데?"
"주연이 납치할꺼야."
"제발 그래줄래?"
"지금 I.N.G. 야."
나는 차마 내 오피스텔로 간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납치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주연이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납치를 해달라고 한다. 혹시 주연이의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서 해 본 소리는 아닐까? 주연이의 입이 도 내 귀로 가까이 온다.
"멀리?"
"아냐. 지하철 네 정거장."
"완전 실망이다."
"왜? 멀리 가고 싶어?"
"응."
"일단 커피부터 마시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오피스텔 앞에서 내렸다. 도로 옆에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주연이는 편의점에 들러야 한다며 날보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내 차의 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침착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것일까? 김효원이 아마도 내 짐과 함께 내 텔로 올려다 둔 것 같다.
나는 주연이를 데리고 내 텔로 올라갔다. 거실에 있는 책상 위에 키가 놓여있고, 현관에는 내 캐리어와 가방도 있다.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 그런데 주연이는 아직도 현관 앞에 서있다.
"들어와."
"여기가 오빠 사시는 곳이야?"
"응. 지저분하지?"
"쪼끔. .. 하하."
"일주일만에 와서 그래."
"오빠는 청소랑은 거리가 멀 것 같은데."
주연이는 바로 욕실로 들어가고, 나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주방에 있는 식탁으로 가져왔다. 전원에 연결하고, 파워 스위치를 눌렀다. 부팅이 되는 동안에 커피 메이커에 물과 커피를 넣고 파워 ON 버튼을 눌렀다.
클래식 소품들이 들어있는 CD를 재생기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나는 내 개인 메일박스를 열었다. 엠마에게서 이메일이 와있다. 그런데 비트를 보니까 내용이 제법 길 것 같다.
TO : Sang-Su
너는 베를린을 떠나면서, 파리도 같이 떠났구나. 파리 어딘가에 나를 위해서 너의 그림자만이라도 남겨두지 그랬어?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고 다 가져갔다는 착각은 하지마. 여기 네 방에는 아직 네 책상과 옷장이 있고, 그 옷장 속에는 너를 기다리는 옷들이 있어. 주방에는 네 잔들도 있어. 파리에는 우리가 저녁 먹을 수 있는 식당들도 많아.
아프지 마. 네가 아프면 부인과 의사인 내가 서울에 가서 치료할 수는 없잖아? 다른 여자 의사나 간호원이 네 엉덩이에 주사바늘을 꽂는 것은 진짜 싫거든.
식사 걸르지 마.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힘 많이 써야 할거야.
힘들다고 어리광 부리지 마. 지나고 나서 나중에 돌이켜보면 다 견뎌냈을 시간들이야. 나도 견딜게.
너는 내가 놓치기 싫은 만큼 좋은 남자거든. 내가 내 일만큼이나 너를 사랑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노력할게. 결혼해서 살면서 천천히 조금씩 노력해볼게. 시간이 오래오래 걸리면 어때?
신생아로 태어나서, 또 내가 자라면서 나는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했다고 자부심을 가졌어. 그런데 나에게 내 자아라는 것이 들면서, 또 스스로 독단적인 판단을 하면서 나는 자주 그들을 슬프게 했어.
지금 엄마에게 조기성 알츠하이머가 시작되었대. 아빠도 너와 함께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아. 너랑 결혼하라고 아빠가 나한테 한 말, 또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한 대답에 엄마가 행복해했어. 나 지금 내 과거의 지난 날들을 엄청 후회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이 결혼 나는 꼭 할거다. 나를 위해서, 또 내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야. 너도 이 결혼을 피하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
FROM : Emma Binoche
P.S. 길었지? 읽느라고 수고했어.
갑자기 슬픈 표정을 한 엠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가 슬플 때에는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 엠마는 눈물도 많고, 잘 훌쩍이는 여자이다. 이메일을 받은 시간을 보니까 내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동안이다. 그 때 파리가 아직은 낮이었다.
엠마가 이 편지를 쓰면서 분명히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어느 부분에서 그랬을지도 알겠다. 내가 엠마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흐르게 하다니. .. 친구들과 같이 식당에 가서 앉아있으면서도 왕따처럼 혼자 머엉하니 앉아있다는 털보사장의 말도 떠오른다. 이번에 가서 처음 보았을 때, 엠마는 병원 정문 입구 앞에 있는 벤치에 혼자 앉아서 가을 오후의 햇살을 쬐고 있었다. 천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금발을 늘어뜨리고, 나를 기다리며 ..
셀린이 자기 오빠를 소개해준겠다고 했었고, 엠마도 만나겠다고 짜증스럽게 말했었는데, 과연 만났을까?
이제는 내가 울 것 같다.
"아이이잉. 오빠 뭐야아."
"어?"
"커피 다 됐잖아요."
"어?"
주연이가 내 등 뒤에 와있다. 나는 머그잔 두 개를 꺼내서 커피를 따랐다.
"어머."
"왜?"
"이거 불어죠?"
"응."
주연이가 노트북의 화면을 들여다 본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주연이도 불어를 할까? 나는 주연이에게 커피를 주었다. 주연이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완전 쓰네."
"써? 설탕은 없는데 .."
"너무 진해요."
"미안. 잠시만."
나는 다른 컵에 정수기에서 끓는 물을 받아서 거기에 커피를 조금 부었다. 커피가 매우 옅어서 잔의 밑바닥이 보이도록 했다. 주연이는 그제서야 마신다.
"오빠, 불어 잘해?"
"잘은 아니고, 매우 조금."
"와아앙. 좋겠다. 완전 부럽다."
"왜?"
"의상을 하다 보니까, 파리에 가고 싶은 것이 내 꿈인데. .."
"내가 다음에 갈 때 따라와. 하하."
"하아. .. "
주연이가 고개를 창 밖으로 돌린다.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부친의 병환? 아니면 다른 복잡한 가정사? 그것도 아니면 돈?
"파리에 가려면 불어를 잘 해야겠죠?"
"벙어리처럼 하지 않으려면 해두는 것이 좋겠지? 안되면 영어라도."
"돈은 많이 들어요?"
"파리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 않을까?"
주연이는 조용히 커피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나는 주연이를 데리고 내려왔다.
"고기 먹으러 가자. 갈비 좋아해?"
"없어서 못먹죠."
우리는 내 차를 타고 청담동으로 갔다. 청담동 갈비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홀이 거의 꽉 찼다. 우리는 30분 정도를 옆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었다.
음식이 나오자 주연이는 팔을 걷고 고기를 굽는다.
"주연아. 많이 힘드니?"
"그게 .. 나만 힘들겠어요? 다들 힘들죠."
"부모님은 살아계셔?"
"아빠만."
"아빠는 많이 아프시다며?"
"췌장암. 얼마 못사신대요."
"집은 어디지?"
"아빠는 대전. 나는 혜화동."
"오빠나 언니나 동생은?"
"오빠만. 아직 군에 있어요."
"아빠한테 돈이 많이 들겠네. 그 돈을 너 혼자 벌어야 해?"
"예. 그런 것을 왜 물어요?"
"너를 보니까 샤넬(Chanel) 생각이 나서 .."
"아. 코코 샤넬요?"
"그 여자분도 어린 시절을 참 불행하게 보냈다고 들었어. 그 분 얘기 들어봤니?"
"전혀요."
"어렸을 때, 그러니까 12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셨거든.
그러니까 아버지는 샤넬을 내다 버렸다고 해.
그래서 어린 샤넬은 수도원, 고아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았대.
나중에 바느질 노동자로 고아원을 나와서, 가수가 되려고 캬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대."
"우리 나라에서는 샤넬 하면 성공한 비지니스의 레전드로 알려져 있는데 .."
"그건 일부만 이야기하는 것이고, 전부는 아니야.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 장교와 연애도 하고 타락하기도 해.
그래서 샤낼은 전쟁 끝나고는 스위스로 망명해서 로잔이라는 곳에서 살아야 했어.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샤넬이 매국노라면서 욕을 먹어."
"으음 ..."
"불어는 배웠니?"
"전에 학원에 다니다가 포기했어요."
"샤넬은 살면서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 에뛰엔느 발장, 아더 카펠, 웨스트민스터, 등등.
주연이도 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실력을 갖춰야 할텐데 .."
"일단 오빠는 만났잖아요. 헤헤."
"내가 너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니?"
"일단 불어를 배워볼게요. 다음에 파리에 가실 때 데리고 가주세요."
"불어 웬만큼 하면 혼자 가도 되거든."
"싫어. 오빠랑 같이 갈거야."
"우리 회사 일로 프랑스 사람들이 오면 소개시켜 줄까?"
"그게 .. 내가 아직은 벙어리라서 .. 헤헤."
"그렇겠지. 어쨌든 주연이도 열심히 살자. 뭐든 열심히 하고. 알았지?"
"오빠.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해. 안그러고는 방법이 없는걸."
"그래. 주연이는 해낼거야."
"고마워. 소주 한잔 안해요?"
"운전도 해야 하고, 어제 마셨잖아? 별로 생각이 없네."
"운전은 내가 하면 되는데."
"아니야."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다시 내 오피스텔로 왔다. 그런데 주연이가 나와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따로 팁을 챙겨주지 않아서일까?
나는 식탁에서 잔에 와인을 따랐다.
"아까 소주 안드시던데. 와인 드시려고 그러셨어요?"
"이거 마시고 한숨 푹 자려고."
"그럼 저도 한 잔 주시면 안돼요?"
"신 맛인데 괜찮아?"
"좋아요. 저도 와인 맛이 달면 못마셔요."
나는 잔을 내려와서 주연이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우리는 건배하고 마셨다. 주연이의 빨간 입술이 굳게 닫힌다.
그런데 나에게 현금은 얼마 없고, 대신 수표가 있었다. 나는 100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꺼내서 주연이에게 주었다.
"이것을 왜 저한테 주죠?"
"많지는 않지만, 주연이 지갑에 보태라고."
"지금 나를 콜걸 취급 해요?"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런 오해 하지 마."
"저는 이렇게 돈을 주시는 것 보다 가끔씩 저를 만나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오늘처럼 좋은 얘기도 해 주는 것이 훨씬 좋겠는데. .."
"해줄게. 내가 시간이 나면 얼마든지 해줄게. 단 조건이 있어."
"조건? 그럼 오빠는 조건 만남을 원해?"
"그런 말이 아니야.
주연이가 지금 이 수표를 받으면 해주고, 안받으면 안해준다."
"진짜아아."
"짜증 부리지 말고, 그냥 받아 넣으면 안되겠니?
앞으로도 힘들 때에는 나한테 연락해.
내가 바빠서 시간이 안되면 할 수 없지만, 시간이 되면 언제든지 만날게."
"그때도 이런 것 주실 생각이세요?"
"글쎄. .. 그건 그 때 가서 보고 얘기하자."
"돈 받고 만나는 기분이잖아요."
"주연이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주는 거야.
나는 돈 주고 여자랑 자야 할 만큼 여자가 궁한 남자 아니거든요."
"미혼이시면. .. 여친 있어요?"
"사람 생긴 것을 봐라. 여자가 하나둘이겠니?"
"하아. .. 그럴 것 같아요.
그럼 이 돈은 감사하게 받아서 잘 쓸게요.
그 대신 약속 지키세요."
주연이는 내가 주는 수표를 들고 소파로 가서, 자기 가방에 있는 지갑에 챙겨 넣는다. 그녀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우리는 같이 잔을 비웠다. 오후의 햇살이 주연이의 금발에 와서 부딪히며 반짝인다.
"내가 오빠한테 나중에 전화해도 돼?"
"하라고 말 했잖아."
"그럼 오빠 전화 번호를 나한테 가르쳐 주면 안돼?"
나는 주연이에게 내 전화기를 주고 번호를 보여주었다. 주연이가 그 번호로 내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서 자기 번호를 내 전화기에 입력했다. 그리고 나서 주연이가 일어서서 내 손을 잡는다.
"자겠다고 했죠? 가서 주무세요."
"알았어. 조금만 더 있다가."
"아이이잉. 지금. 빨리. 으응으응."
"갑자기 왜 이러는데?"
"침실 어디죠?"
그녀는 내 손을 잡아서 끌고 거실 쪽으로 나갔다. 문이 열려있는 침실을 기웃거리더니 그리로 들어간다.
"오빠한테서 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오빠랑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주연아 .."
"싫어? 아직도 내가 업소에서 일하는 연주로 보여요?"
"그게 아니라 .."
나는 주연이의 몸을 안았다. 속으로는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주연이를 안을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나는 주연이의 입술을 빨았다. 그런데 주연이가 엠마의 모습으로 보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옷을 모두 벗고 침대로 갔다. 주연이는 자신의 몸을 나에게 각인시키려는 것처럼 구석구석을 빨아달라고 했다. 내가 삽입했을 때, 주연이는 아프다는 말을 하면서도 나에게 매달려왔다. 나는 모두 두 번을 방출했다. 끝나고 나서 우리는 서로를 꼬옥 안고 서로의 몸을 입과 손으로 애무했다. 그리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잠이 들었다.
한참 자는데 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김효원이다.
"오빠도 주무세요?"
"응"
"강대리님도 자던데. 다들 왜 이런대?"
"시차 때문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어제 배달 해드렸는데, 오빠가 수고비를 오늘 주신다고 했거든요."
"알았어. 지금 어디야?"
"지금 다섯시니까, 여섯시쯤에 오빠네 오피스텔 앞으로 갈게요."
"알았어. 강대리랑 같이 오니?"
"그래야 해?"
"어제 두 명한테 같이 말했잖아."
"몰라요. 전화 할게요."
"그럼 이따가 보자."
그런데 주연이가 보이지 않는다. 주연이가 벌써 집으로 간 것 같다. 전화기에는 그녀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들어있다.
"안녕히 주무세요.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나는 샤워를 하려고 욕실로 갔다. 주연이가 씻고 나갔을텐데도 아무런 흔적도 없다. 주연이는 처음에 만날 때에도 룸으로 혼자 들어왔다. 그런데 헤어질 때에도 여기서 혼자 나가버렸다. 만날 때에도, 헤어질 때에도,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녀가 혼자 와서 나를 만나고, 그녀는 혼자 내 방을 나간다.
그런데 이렇게 주연이와 헤어지기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앞으로 더 만나게 된다면, 주연이와 헤어지기에 적응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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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쓰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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