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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 단편4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18 791회 0건
최윤하 (23) : 대한대 건축학과 4학년

김하늘 (23) : 대한대 건축공학과 4학년
문국희 (23) : 대한대 건축공학과 4학년
박영환 (23) : 대한대 건축학과 4학년

황해리 (21) : 명화여대 영어과 2학년
황영철 (23) : 윤하의 고교 동창. 황해리의 친오빠.

윤은경(25) : 황영철의 여직원
신예진 (22) : 한경여대 미대. 2학년


=*=*=*=*=*=*=*=*=*=


4. 신예진




[1]
갑자기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이 광경이 펼쳐지자 내게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웃음을 억지로 참고 삼켰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떨어진 물건들을 쳐다만 보고 서있다. 그 모습이 딱하고 불쌍하다고나 할까? 이런 정도의 일로 그녀는 이미 패닉 상태인 것 같다.

그 때 거기에는 우리 둘 박에 없었다. 내가 이 총체적인 난국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나는 재빨리 옆에 있는 쇼핑카트를 뽑았다. 그녀에게 가서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낮은 소리로 그녀에게 천천히 말했다.



"저기요. 짜증 나시겠지만, 꾹 참으세요. 우선 여기에 주워 담으세요."
"예? 아. 예에. 고맙습니다."



나를 쳐다보는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다.



그녀는 쪼그리고 앉더니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카트로 주섬주섬 담는다. 그러면서 커다란 눈으로는 가끔씩 나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빛이 내 마음에 예사롭지 않게 와닿는다. 눈이 큰 여자가 슬퍼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그녀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지만, 그녀에게 나는 낯선 남자일 것이다. 오늘은 그녀가 화장을 별로 하지 않아서 내가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내 차로 달려가서 물티슈를 꺼내왔다. 계란 깨진 것이 엉겨붙어서 지저분해진 물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물건 하나하나를 깨끗이 닦는다. 그런데 그녀의 플라스틱 봉투는 너덜거려서 더 이상 사용할 수도 없고, 다른 봉투도 곧 찢어질 것처럼 위험하다.



"잠시만요. 내가 안에 가서 빈 박스를 가져올게요."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



나는 매장 안 쪽에 빈 박스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갔다. 큼직한 종이 박스 두 개를 들고 나와서, 쇼핑카트에 담긴 물건들을 박스로 옮겨 담았다. 그녀는 주변 정리를 한다. 생각보다는 사태가 빨리 수습된 것 같다. 이제는 그녀도 안심하는 표정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차가 없다. 그렇다고 그녀가 이 박스들을 손으로 들고 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틀림없이 그녀도 지금 이것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실어다 준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뒤에, 원룸촌에서 사시죠? 내 차로 실어요. 집에까지 실어다 드릴께요."
"그건 너무 미안한데. .."

"가는 길이니까 괜찮아요. 나도 거기 살거든요."
"그래도 .."



나는 카트를 밀고 내 차로 갔다.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내 뒤를 따라온다. 내 차의 뒷좌석으로 그녀의 물건이 들어있는 박스를 실었다. 그런데 내가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이 일이 터지는 바람에, 나는 아직 아무 것도 산 것이 없다. 그 순간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하아. .. 그 쪽은 살 것 다 사셨어요? 아까 막 오는 것 같던데."
"내일 다시 와도 돼요."

"아이. 말도 안돼. .. 그럼 같이 들어가요.
나도 계란 한판 샀는데, 많이 깨졌거든요."

"그럼. .. "



그녀가 원룸촌에서 사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녀를 그 동네에서 마주친 적이 몇 번 지만, 아직 말을 해본 적은 없고,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얼굴은 그렇게 잘 생긴 편이 아닌데, 굴곡진 몸매의 볼륨과 화장만 내 기억에 남아있다. 볼 때마다 그녀가 화장을 엄청 짙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일은 정말 잘 된 일인 것 같다. 나중에 가서는 어쩌면 냉수나 마시고 속을 차려야 할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마치 로또에 당첨되기라도 한 기분이다. 도전 정신, 승부 근성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자신을 갖고 덤벼보기로 하고 이를 지긋이 깨문다.




[2]
우리는 쇼핑카트를 하나씩 밀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사야할 물건을 같이 고르면서 카트에 담았다. 그런데 여자랑 같이 진열대 사이를 오가면서 장보는 기분이 참 묘하다. 진열대에서 그녀가 시간을 너무 오래 끌때에는 약간 지루한 기분도 든다.

나는 내가 사야할 물건들의 절반도 사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새 내 관심사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이야기 하는 것에 쏠려있다. 나는 그녀와 농담을 많이 했다. 그녀도 자주 웃으면서 나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씩 그녀가 아래쪽에 있는 진열대에서 물건을 꺼내오느라고 몸을 굽히면, 청바지를 터트릴 듯 빵빵한 엉덩이를 쳐다보면서 야릇한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녀와 눈길이 마주친다.

한참 후에는 그녀의 카트에도 제법 수북하게 쌓였다.



"차에 있는 것 만큼 되네요."
"실어다 주신다고 하니까요. 헤헤."

"그런데 혼자 살면서 그렇게 많이 사요?"

"이렇게 사도 오래 못가요.
친구들이랑 모여서 같이 해먹거든요."




매장을 천천히 돌고 나서 나는 내 이름을 말하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유치하게 그 쪽이 뭐예요?
내 이름은 최윤하거든요. 그 쪽은요?"



만일 그녀도 자기 이름을 말하면 우리 둘은 말이 통하는 것이고, 다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왠지 이 여자를 놓치기 싫다. 나는 그녀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인다. 그런데 드디어 그녀의 입이 열린다.



"예진. .. 신예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바로 내가 기대했던 그녀의 이름이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 다음 단계를 내딛는다.



"나는 대한대 건축학과 4학년. 예진씨는요?"
"한경여대 미대. 2학년."

"어? 그럼, 나는 23살."
"나는 22."

"와아아. 내가 완전 오빠다."
"웃겨. 누가 오빠라고 한대요?"

"혹시 재수했어요?"
"예. 맞아요. 금방 알아차리네요."

"우리 ..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지 않아요?"
"글쎄요? 아직 별로?"



신예진은 여기서 내숭기가 있다는 것을 내세우면서, 자기는 여자라는 것에 밑줄을 두개 긋는것 같다. 이런 젠장. 네가 여자가 아니면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예진의 재수 스토리가 자동으로 나온다. 작년에 신예진은 자기 친구와 함께 우리 대학의 미대에 지원했다가, 그 친구는 붙고, 자기는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자존심에 금이 간 예진이는 재수를 결심했다. 그런데 막판에 가서 보니까 결과는 똑같을 것 같아서, 그 다음 해에는 아예 레벨을 확 낮추어서 한경여대 미대로 갔다고 한다. 삼수는 워낙 끔찍해서 자기는 꿈도 꾸지 못하겠더란다.

우리는 물건을 모두 차에 실었다. 이번에는 예진가 물건을 아예 박스에 담았다. 이제 그녀가 산 물건은 모두 다섯 박스가 되었다. 장보는 시간이 나뿐 아니라 그녀에게도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우리는 내 차에 짐을 모두 싣고 차에 탔다. 신예진이 차 안을 둘러보며 말한다.



"와아. 완전 깨끗하네. 새 차죠?"
"아니야. 엄마가 1년 타셨는데, 이번에 내가 접수했어."



그런데 예진이는 안전벨트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몸을 돌리고 그녀의 안전벨트를 당겨와서 매주었다. 그 때 우리의 몸이 마치 키스를 하려는 것처럼 가까워지고, 그녀의 숨소리는 분명히 멎어있었다. 그녀만의 향긋함이 내 코를 찌른다. 향수 냄새는 아니고 옅은 화장품 냄새 그리고 여자의 냄새였다. 그녀의 페로몬은 너무 강렬했다. 안전 밸트의 끈이 그녀의 가슴 봉우리를 짓누르고 지나오다가 그녀의 손에 의하여 계곡 속으로 묻혔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았는데, 그녀는 무안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우리의 눈길이 마주친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옆으로 비켰다.



"바로 요긴데. 금방이잖아요. 그래도 이 벨트를 꼭 해야 해요?"
"걸리면 무조건 벌금이야. 나 돈 없어."



우리는 마트 주차장을 천천히 빠져 나와서 원룸촌으로 향한다. 시간이 벌써 저녁 9시가 넘었다. 세 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갑자기 할 말도 떠오르지 않고, 침묵이 참 쑥스럽다.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예진씨 오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지?"
"아이, 참. 실어다 준다고 하는 바람에 나도 더 많이 샀잖아요."




[3]
예진이의 원룸은 내 오피스텔에서 두 블럭 정도 떨어져 있고, 걸어 온다면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잡고있고, 나는 혼자 부지런히 오가면서, 그녀의 박스 다섯개를 엘리베이터에 싣고, 8층에 있는 그녀의 방문 앞까지 날라주었다. 방문을 열고 안에까지 날라다 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문을 열지 않고 있고, 또 내가 처음부터 너무 들이대는 인상을 줄 것 같아서, 오늘은 어쩌면 여기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됐지? 그럼 나 갈게. 충동구매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안좋대.
다음에는 오늘처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사지마."



예진이가 이 말을 어떻게 받을까? 만일 "고맙다, 잘가라"이면 삽이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는데, 그 순간에 너무 긴장된다. 그런데 그녀가 약간 망설이는 듯 하더니, 재빨리 내 팔을 잡으며 나에게 말한다.




"그냥 가면 어떡해요? 들어가서 음료수 한 잔 마시고 가요."
"뭘 이런 일로 그렇게까지 .."

"아니야.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래요. 들어와요."
"미안해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이 말에 짜릿한 기분이 드는 것은 뭐지? 그녀가 엄청 고맙고 귀엽다. 내 팔을 잡고있는 그녀의 손에는 손톱마다 서로 다른 네일 아트의 문양이나 색깔도 특이하다.

예진이가 나에 대하여 어느 정도 믿음이 가는 것일까? 처음 보는 남자인 나를, 여자인 자기가 사는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기까지, 갈등을 한 것은 아닐까? 방안은 정리가 되어있나? 여자만의 속옷들이 침대에 널려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가 먼저 들어가고, 나는 잠시 기다려야 하나? 겨우 1분도 채 된지않는 짧은 시간 동안에 오만가지의 잡생각으로 골치가 끓으면서 지끈거린다.

신예진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



"불금인데, 나 때문에 다 망쳤잖아요."

"나한테는 불금이 아니라 물금이니까 안심해.
차라리 예진씨 짐 실어다 주는 것이 마음이 편해."

"뭐라고? 물금?"
"나는 불금 이런거 안한다고."

"하아. .. 알았으니까 빨리 들어오기나 해요."
"그럼 .."



그녀는 내 팔을 당기고, 나는 못이기는 척 하고 안으로 들어선다. 음료수만 마시고 바로 가자고 쓸데없는 생각을 혼자 한다.




나는 세 번을 오가면서 복도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그녀의 박스들을 주방에 있는 냉장고 옆에까지 옮겨주었다. 이것 때문에 나를 들어오라고 했다면 나는 완전 낚인거다. 예진이는 창가에 있는 원탁으로 나를 앉게 하고, 냉장고에서 500짜리 유리컵에 담긴 쥬스를 내놓는다. 예진이의 방은 엄청 깨끗하고 단정하다. 습관이고 성격인가? 여학생의 방이라서 그런지 아기자기한 면도 있다. 그녀의 침대에서는 큼직한 곰돌이 인형이 내 심뽀를 읽었다는 듯 나를 째려보고 있다.



"앉아서 이것 좀 마셔요. 시원할거예요.
아까 마트에 가기 전에 갈아서 냉장고에 뒀었거든요."

"예진씨가 직접 갈았어요?"
"그럼요. 과일을 여섯 가지나 넣고 갈았어요."



신예진이 박스를 열고 물건을 냉장고와 수납장으로 넣는다. 이렇게 되면 마시는 것은 일단 미루고, 나도 박스를 밀고 당기면서 그녀를 도왔다. 가끔씩 우리 둘의 팔이나 어깨가 부딪치고, 스친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지만, 나를 쳐다볼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으로 내 눈길이 자꾸 가려고 했으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참았다.


그녀는 정리하는 일을 대충 끝냈다. 나는 빈 종이 박스를 모두 접어서 현관 문 밖의 복도로 내놓았다. 우리는 다시 원탁에 나란히 앉았다. 신예진의 얼굴에 홍조가 피기 시작하고, 자꾸 헛기침을 한다. 내 숨결도 더 이상 조용하지 않다. 음료수만 마시고 간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져버렸다.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그녀와 더 같이 있고 싶다. 아직은 이 방을 나가기가 싫다. 더 할 일은 없을까?




[4]
"예진아. 그럼 내가 오빠한다?"
"와아아. 해도 너무한다. 처음 만나서 바로 오빠래?"

"내가 나이가 .."
"참나. 노인네야?"



예진이가 입을 굳게 닫고, 마치 뭔가를 계산하고 있는 것 처럼, 두 눈을 깜빡이며 조용하다.



"여자한테 오빠 소리 듣는 것이 그렇게 좋아요?"
"좋기만 해? 완전 뾰옹 가지."

"하여간에. 그게 뭐라고"
"누가 부르냐에 따라 달라. 예진이처럼 예쁜 여자애가 여동생 하면 엄청 좋지."

"하아. .. 그럼. .. 내가 친동생이라도 그럴까?
우리 친오빠는 나랑 만나기만 하면 아옹다옹인데."

"나는 절대 안그래. 아직도 몰라?"
"그거야, 처음이니까 .."

"앞으로 주욱 두고 봐."

"그래. .. 오빠는 매너남인 것 같기는 해.
그 대신 내가 마트에 갈 때 오빠가 도와주고. 콜?"

"알았어. 그럼 거래 끝?"
"거래는 무슨 거래야? 나는 "헬프미" 하는데."



비록 신예진이 마트에 가자고 부르면 달려온다는 조건하에서였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오빠 동생을 하기로 한다.

신예진은 평소에 여러 번 내 눈에 띈 여자였고, 오늘 보니까 엄청 착한 것 같기도 하다. 또 앞으로는 길에서 먼나면 같이 이야기도 하고, 좋을 것 같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카톡에 친구 등록도 해버린다.



"저녁 아직 안먹었지? 나갈까?"
"그럴까? 나도 이 시간에 차려 먹기는 귀찮은데."

"이렇게 예쁜 여동생이 생겼는데, 오늘 저녁은 당연히 이 오빠가 쏜다."
"아이. 참. .. 신세는 내가 졌거든요."

"겨우 그게 무슨 신세야? 오빠가 그 정도 하는 것은 당연한데."



신예진은 옷을 갈아 입는다면서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물소리도 여러 번 난다. 내가 기다리는 것을 이렇게도 못한다. 나중에 나올 때에는 검정색의 짧은 미니스커트와 몸에 딱 붙는 옅은 하늘 색의 남방을 입었다.

키는 약간 작은 편인데도, 주욱 뻗어내린 두 다리가 엄청 길어 보인다. 큼직한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잘록한 허리가 완전 예술이다. 뱃살은 조금 있는 것 같지만, 저 정도야 얼마든지 애교뱃살이다. 얼굴만 조금 된다면 완전 배우일텐데. 안타깝다. 신은 왜 모든 것을 다 주지 않았을까?



"와아. 엄청 예쁜데? 눈부시다."
"옷을 다 빨았는데, 아직 안말라서 .."

"지금도 예쁘다니까. 다리 시려울텐데, 스타킹 안신어도 되겠니?"
"그럴까?"



예진이는 등을 내 쪽으로 하고 침대에 걸터앉아서 스타킹에 두 발을 끼고 일어선다. 나는 먼저 그녀의 원룸을 나서서 빈 박스를 엘리베이터 족으로 가져갔다.

바깥 공기가 제법 차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얇은 봄 점퍼를 걸친다. 우리는 건물의 뒤쪽에 있는 분리수거하는 곳으로 가서 박스를 버렸다.

차에 타자 이번에는 예진이가 나를 보고 웃으며 혼자 안전벨트를 한다.



"오빠 있으니까 엄청 좋네.
앞으로 내가 자주 애용해도 돼? 하하."

"그러라고 했거든.
나 잠시 집에 들러서 아까 산 물건을 냉장고에 두고 가자."

"어? 당연히 그래야지. 집이 어딘데?"
"두번째 길, 버스 다니는 길, 편의점 건너."

"그 오피스텔?"



내 짐이라고 해야 와인 한박스, 그리고 자질구레한 것들이 들어있는 비닐팩 한 개 뿐이다. 나는 도로변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면서 예진이에게 물었다.



"같이 올라가지 않을래?"
"나는 차에서 기다릴게. 오빠 혼자 갔다 와."

"어두운 밤길에 이렇게 예쁜 예진이를 혼자 두고 가면 마음이 안놓이거든."
"누가 납치라도 할까봐? 하하."



다행히 예진이도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내가 든 와인박스 위에 얹혀있는 비닐팩을 들어준다. 나는 2층에 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다. 우리는 바로 계단으로 올라갔다.

나는 내 텔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그녀에게 말했다.



"잠시 들어와."





[5]
그녀도 나를 따라서 들어온다. 나는 와인 박스를 수납장에, 쇼핑백은 그대로 냉장고 안으로 넣었다. 그녀가 구경하느라고 두리번거린다.



"지저분하지?"
"돼지들이 보면 자기 집인 줄 알겠다. 하하."

"예진이가 올 줄 알았으면 청소를 하는 건데."
"아이. 뭐 어때?"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먹자 골목으로 걸어갔다. 거기에 있는 치킨 호프집으로 간다. 원룸촌에 사는 학생들도 자주 가는 곳이다. 나도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걷는 동안에 내 머리 속에서 음란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 밤에 혹시라도 어떤 역사를 쓰게 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까? 클럽에 가서 비비다 보면 또 몰라도 호프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는 예진이에게 물었다.



"예진아. 우리 클럽에 갈래? 시간은 완전 딱인데."
"나한테는 그럴 광란이 안생겨. 나도 오빠처럼 물금이야."

"그래. 치맥으로 .."



예진이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예진이가 간다고만 했더라면 오차없는 명중인데, 안타갑다. 혹시 내 음흉한 마음을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냥 치맥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따가 먹고 나서, 오빠 혼자 가면 안돼?"




얘가 지금 나를 떠본다. 겁을 상실한 건가? 아니면 내가 4학년이라고 진짜 영감취급하나?



"총맞았니? 혼자 무슨 .."
"뭐. .. 들어갈 때는 혼자라도, 나올 때는 둘이 나오면 되잖아. 하하."

"나는 둘이 들어가서, 둘이 나오거든요?"
"그럼 ..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은 같은 사람? 하하."

"꼭 그렇다고 보장은 못하지. 하하."
"이 남자 뭐야아. .."







[6]
우리는 치킨 호프집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매콤한 순살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다. 예진이는 자리에 앉아 있고, 나는 화장실에 갔다. 부재중 전화에 하늘가 보이기 때문이다.



"어떡해? 자기 보고 싶은데. .."
"이번 주말에는 안돼."

"까칠하기는."
"지금 알바 하니?"

"어. 교대 시간 다 됐어."
"다음 주에 시간 내볼게."

"자기 화 안났지?"
"왜? 내가 화낼 일이 뭐 있어?"

"아니야. 아니면 됐어."
"어라?"



하늘이는 알쏭달쏭한 말 몇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왜 전화를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서 나는 예진이의 옆자리로 앉았다. 우리는 매콤한 닭고기를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예진이가 맥주 잔을 손으로 잡을 때마다 그녀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자꾸 내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지금쯤이면 내가 적극적으로 시도해도 성공할 확률이 제법 높지않을까?

그렇지만 시간을 더 두기로 하고 참는다. 그런데 예진이가 갑자기 나에게 내 여자 친구 이야기를 묻는다.



"오빠, 여친 있지?"
"있었는데, 방학 때 쪽났어. 예진이는?"

"나는 아직. .. 그런데 오빠가 엄청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럼 우리 사귈래?"

"나 너무 쉽게 보지마. 몇 번이나 만났다고."
"미안해. 쉽게 보는 것이 아닌데."




내가 사귀자고 했던 말은 나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다. 나도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엄청 후회된다. 김하늘과 황해리가 계속 번갈아가면서 떠오른다.

사귀자는 말은 일단 예진이에게 까인 것 같기는 한데, 그녀가 완강하게 저항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 예진이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들을 생각해보면 예진이가 은근히 기다리던 말일 수도 있다. 예진이도 오늘 당장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낼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가졌던 막연한 기대를 아직은 접지 않기로 한다.

예진이가 두 눈을 사르르 감고, 그녀의 두 눈이 파르르 떨린다. 보통 때 같으면 바로 지금 내가 손을 잡든가 해서 첫번째 신체접촉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예진이에게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같은 동네에서 살기 때문에 원나잇처럼 섣불리 처신하다가는 변태로 낙인이 찍혀버리기 때문이다. 만고 불변의 진리에 의하면 숙성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

내 머리 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엄청 복잡해진다. 그냥 친구처럼 먹고 마시면 마음은 편할 것 같은데, 왜 사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솔직히 오빠가 쪼끔 아깝다."
"왜? 뭐가?"

"오빠는 .. 매너나 비주얼이 진짜 끝내주거든."
"너도 참. 예진이도 하나도 빠지지 않는데?"

"그럼 나도 아깝나? 하하."
"당연하지."

"그런데, 내가 이 동네에서 산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 스토커는 아닌 것 같고."



그제서야 나는 예진이에게 그녀를 길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까 마트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이렇게 자리를 같이 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랬더니 예진이가 발끈한다.



"뭐야? 아까 나는 완전 돌겠더만, 그 일이 오빠한테는 다행이라고?"
"미안. 하하."

"그런데 오빠는 길에서 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해?"
"글쎄. .. 다른 사람은 안그러는데, 이상하게 예진이만 기억에 남네."




[7]
오늘의 목표는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 한가지로 할까? 이미 예진이의 빨간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은 마음은 들기 시작했고, 그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다는 말은 관심을 갖는다는 말 같은데, ..
오빠. 나한테 관심 있어?"

"관심 뿐이니? 사귀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니까."

"사귄다고. .. 오빠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알고만 사귀나? 시귀면서 알아도 되는데 .."

"오빠는 모르는 여자라도, 가슴 크고 엉덩이 빵빵하면 관심있으니까 사귀자고 들이대냐?
그런 말 들으면 내가 얼마나 부담스러워 할 지는 생각 안해?"

"미안해. 부담스러워 하지마. 나는 내 진심을 말한 것뿐이야.
예진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도 그런 마음이 들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혹시 첫눈에 반했나? 하하."

"진짜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
오빠 눈에는 내가 그렇게 쉬워보여?"

"그런 것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예진이는 외모가 되니까 그런 소리는 자주 듣지 않니?"

"그러는 오빠는? 오빠한테도 들이대는 여자들 엄청 많을 것 같은데?"
"전혀 없거든요. 그렇게 넘겨짚지 마."

"뻥치시네. 조사하면 다 나와. 하하."
"조사? 해! 뭐가 나오는지 나도 궁금하다. 하하."



예진이는 거침없이 쏟아부더니, 맥주를 마신다. 나는 예진이의 얼굴, 어깨, 목 그리고 가슴까지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다.

마치 무엇인가 확인이라도 할 것처럼 신예진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예진이의 커다란 눈이 깜빡거린다. 내가 마치 예진이의 깊은 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오빠. 사귄다는 말이 오빠한테는 뭐야? 같이 자는 것을 말해?"
"야아. 처음부터 다짜고짜로 어떻게 그러냐?"

"같이 잘것도 아니면서 왜 사귀지? 보고 싶을 때 그냥 만나기면 해도 되잖아."
"그건 그래.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가고 서로 원하면 같이 잘 수도 있지 않을까?"

"아오오. 변태."



사귄다는 말, 그리고 잠자리에 대한 말이 불쑥 등장하니까 나는 당황스럽다. 예진이에게 감추고 있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기도 하다. 예진이 나이가 지금 22살인데, 이런 것을 왜 물어보는 것일까? 정말로 몰라서? 아니면 내 생각을 떠보느라고? 순진? 영악? 바보?

긴장이 계속되고, 나 혼자만 머리 속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 이제 슬슬 지겨워진다. 뭔가 결정적인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이 자리를 끝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침착하려고 하지만 맥주 잔을 든 내 손이 약간 떨린다. 예진이가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것 같다.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하다. 혹시 집에 가려고 준비하는 것일까?

드디어 예진이가 다시 돌아와서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잔을 들고 나머지를 다 마신다. 예진이는 내 얼굴을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입을 연다.



"이제 늦었어. 나가자."
"벌써?"

"12시 넘었거든요."
"불금이라며? 좀 늦으면 안돼?"

"오빠는 물금이라며?"
"너는 치킨집에서도 불금하니?"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나는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했다. 싸늘한 밤공기가 우리 몸을 감싼다. 처음으로 만난 날임을 감안하여 나는 예진이를 그녀의 원룸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춥지?"
"아니. 뭐. .. 약간 쌀쌀하네."

"술마셔서 걸어가야 해."
"걷는 것이 더 좋아. 바로 요기, 엎드리면 코 닿잖아."

"코? 별로 긴 것 같지도 않은데? 하하."
"뭐야아. 썰렁아."




[8]
우리는 예진이의 원룸을 향하여 밤길을 걷는다. 그녀는 한 손은 주머니에 찌르고, 다른 손으로는 가방 끈을 잡고 있다. 나는 예진이의 그 손을 꼭 잡고 내 점퍼 주머니로 넣는다.



"손 안시렵니?"
"이제는 막 잡아? 그게 오빠 손이야?"

"예진이 손이지. 그래도 차가우니까."
"나도 주머니 있거든."

"내 주머니가 더 따뜻해."
"별론데?"



예진이는 지지않으려고 끝까지 대든다. 그런데 예진이가 손을 빼려고 하지 않고 그냥 둔다. 나는 아까 예진이가 화장실에 갓다 왔을 때 나를 빤히 보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때 한 잔 더 마실거냐고 물어봤어야 하는데. 그 생각이 왜 이제야 나는거지? 4학년이라고 벌써 녹슬기 시작하나?



"오빠는 군대 안가?"
"안가."



예진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왜? 왜 안가? 오빠 금수저구나?"
"하하하. 금수저는 무슨 금수저? 나무수저, 흙수저야."

"그런데 남자가 왜 군대에 안가?
오빠네 집이 국회의원, 장관 뭐 이런거 아냐?"

"아니야.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그럴 일 없어. 그 얘기는 고만 해."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벌써 예진이의 원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시간이 이렇게 빠른지. 우리는 길을 건너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자 문이 바로 열린다. 그래도 예진이가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손을 빼지 않는다. 예진이가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타는 바람에 나도 같이 탔다.



"오빠. 이상해."
"뭐가?"

"우리, .. 만난지 엄청 오래 된 것 같지않아?"
"나도 그래."



어느새 8층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진이가 엉뚱하게도 전혀 뜻밖의 말을 한다.



"치킨이 짰나? 엄청 목마르다. 오빠는?"
"나도."

"그럼 아까 그 생과일 쥬스 어때?"
"진짜 시원하고 맛있던데. 주면 고맙지."



예진이가 키의 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연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의 등 뒤에서 문이 잠기고, 그제서야 예진이가 내 주머니에서 손을 빼려고 한다 나는 힘을 주어 꼬옥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잠시 쳐다본다. 그제서야 나도 웃으며 손을 놔주었다. 예진이가 살짝 눈을 흘긴다.



"짓궂기는. .."
"네가 나라면 놓고 싶겠니?"

"오빠라는 남자가 왜 그래?"
"뭐가?"

"아까부터 자꾸 느끼하잖아."
"내가 그랬나? 미안."



언제 들킨거지? 내가 느끼했으면, 이 방에까지 오면서 나에게 잡혀있는 손을 빼지 않은 것은 뭔데?

그녀가 나의 스킨쉽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늘의 목표는 초과달성이다. 나는 그녀의 원탁으로 가서 쥬스를 받아서 마셨다. 차가운 것이 목으로 넘어가자 정신이 번쩍 든다.

예진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나는 또 예진이의 손을 잡고 당겨왔다. 예진이가 고개는 숙이지만, 뿌리치지 않는다. 손등, 손가락 하나하나 그리고 손톱까지를 마사지 하듯이 가볍게 비볐다. 그래도 조용히 있는다. 그리고 예진이의 손등을 내 입술에 댔다. 그제서야 예진이가 손을 뿌리친다. 이것은 분명 내숭이고.



"어머. 오빠 왜 이래?"
"예쁘니까."

"예쁘면 다 끌어다가 뽀뽀해?"
"다는 아니고, 예진이만."

"아닌데. .. 하나 둘이 아닐 것 같은데."
"뭐가?"

"지금 나 선수한테 딱 걸린 느낌이야."
"마음대로 생각해. 나 갈께."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나올 뻔 했다. 나는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예진이가 신발을 신고, 원룸 밖으로 따라나선다. 게다가 예진이가 내 팔에 팔짱을 낀다. 엘리베이터가 오는 동안에 예진이는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 한다.



"오빠, 오늘 여러 가지로 너무 고마웠어."



그럼 이것은 마침표? 나는 내 팔로 그녀의 가슴을 살짝 누른다. 예진이가 눈치를 챘을텐데도 피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 나는 그녀의 뺨에 입술을 대고 가볍게 뽀뽀했다. 예진이가 눈을 흘긴다.



"못됐어. 이러려고 오빠하고, 사귀자고 했어?"
"뭐가?"

"아니야. 됐어."
"내가 못돼서가 아니라, 예진이가 예뻐서라고 했거든."

"함부로 입술질 하지마."
"함부로 한 것 아니거든?"

"그게 아니라. 이 여자 저 여자한테 막 들이대지 말라고."
"그럼 예진이한테만 해?"

"알아서 해."
"참나. .."


그런데 의외로 예진이도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타버린다. 이제부터 나는 완전 헷갈리기 시작한다.

입술에 키스를 해버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나는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 그녀가 얼굴을 돌려서 피한다. 나는 기왕에 내친 김에 그녀의 뺨에도 뽀뽀했다.



"오빠! 정신 안차려?"
"예진이가 있으니까 그러나? 엄청 헷갈리거든."

"1층 안눌렀잖아."
"어? 맞네."



그제서야 나는 1층을 눌렀다. 사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지만, 나는 깜빡했던 것처럼 연기를 했다. 엘리베이터는 바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예진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한다.



"쪼옴 귀엽기도 하단 말이야."
"누가? 내가?"

"그럼 여기 오빠 말고 또 누가 있어?"
"예진이도 엄청 귀엽거든."



나는 위대한 결심을 해버린다. 재빨리 그녀의 입술에 짧게 그리고 가볍게 서너번 빨아당겼다. 예진이가 내 팔을 아프지 않게 꼬집는다.



"이 오빠가 정말. .. 오빠 너무 심하지 않아?"
"뭐가?"

"그렇게 급해? 만난지 몇 시간이라고 벌써 입술을 빨아?"
"예진이니까."



예진이는 약간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다행히 우리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CCTV정도야 신경쓸 일이 아니다.

예진이가 건물 입구까지 몇 걸음을 따라 나온다. 문 앞에 서서 나는 예진이에게 몸을 돌렸다. 예진이는 아직도 내 팔짱을 풀지 않고, 도로 쪽을 내다보고 서있다. 어차피 집에 가는 것. 나는 예진이를 덥썩 안아버렸다.

예진이가 몸을 뒤틀며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예진이의 등을 감은 두 팔에 힘을 주어 당기며 내 얼굴을 예진이의 머리에 묻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 그리고 내 몸에 느껴지는 여자의 몸. 물컹한 그녀의 가슴. 미칠 지경이다. 숨이 벅차온다.



"이러지 마. 오빠가 갑자기 이러니까 무섭고 놀랐잖아."
"미안. 그냥 가려니까 발이 떨어지지를 않네."

"뭐야아. 어쩌라고."
"그냥. 아쉽잖아."

"됐어."



나는 그래도 예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나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갑자기 예진이의 입술에 내 입을 대고, 입술을 빨아버렸다. 계속해서 서너번을 혀 끝으로 핥으며 빨아당겼다. 저항이 없다. 너야말로 이거였어? 예진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입술로부터 오는 말랑거리는 느낌에 너무 짜릿한 기분이다. 나는 예진이를 풀어주고, 예진이의 한 손을 내 뺨에 갖다 댔다. 예진이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무슨 시츄?"
"내 뺨 대리라고."



예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뺨을 갈긴다. 그런데 별로 아프지는 않다. 때려놓고, 그 소리에 놀랐는지 예진이가 내 뺨을 어루만진다.



"그니까 왜 맞을 짓을 하냐고."
"맞고 싶어서."



나는 예진이를 엘리베이터에 밀어 넣고 8층 버튼을 눌러주었다. 문이 닫힌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예진이 잘 자."



예진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완전히 닫히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나도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처음 대쉬한 날, 클럽도 아닌데, 이 정도까지 했으면 성공 아닌가?

나는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전화기를 열어보니까 예진이에게서 카톡이 들어와있다.



"오빠, 아까 아팠지?"
"아니야. 하나도 안아파. 다음에 또 맞을 짓 하고 맞을거야."

"오빠도 참. .. 진짜 왕변태다."
"여자 앞에서, 남자는 다 그럴텐데."

"그래도 오늘 첫날인데 너무 표나게 들이댔거든. 알아?"
"그래서 부담스럽니?"

"당연하지. 이건 뭐 .. 내 관리가 안되잖아."
"미안.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그래주면 고맙고. 오빠. 잘자."
"예진이도 꿀잠."




- 다음 회에서 계속 ?? -



=*=*=*=*=*=*=*=*=*=*=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죄송 .. 엄청 죄송 ..
이번 얘기는 오직 <작업의 정석> 에 나온 필수예제의 문제풀이와 해설입니다. ㅋㅋ
소라스럽지 않아서 실망하신 분?

내 삶을 돌이켜보면, 언젠가 저런 날이 분명 있었는데 ... 쩝! ... - Ja"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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